농촌진흥청·축협중앙회 거쳐 2003년 귀농 / 정약용의 실사구시 표방…철저한 육종 관리 / 고기가 아닌 음식문화를 팔 수 있어야 성공 / 돼지 뒷다리 발효시킨 '생햄' 부가가치 높아
우루과이라운드가 발효된 1995년 이후 글로벌시장의 문은 더욱 활짝 열렸다. 요즘은 자유무역협정(FTA) 체제 하에서 세계 시장이 하나로 통합돼 가는 상황이다. 얼마 전에는 정부가 쌀시장 완전 개방을 선언했다. 제조업 수출 비중이 높고, 농수축산업은 글로벌 경쟁력이 취약하다. 대한민국에게 FTA체제는 기회다. 하지만 농수축산업 종사자들에게 절망과 위기를 안겼다.
하지만 희망과 기회는 여전히 현장에 있다. 수입 농산물 홍수 속에서도 국산 농산물의 품질 경쟁력을 높여 위기를 기회로 돌려놓는 농부들이 많다. 전북일보는 새로운 기획 ‘6차산업이 미래다’에서 농업의 가치를 새롭게 세워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농업의 길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지리산 둘레길 2코스 출발지가 있는 남원시 운봉읍은 해발 500m에 달하는 고지대, 지리산 아래 청정 고원이다. 고려 말 이성계 장군이 왜장 아지발도가 이끄는 대군을 섬멸한 황산대첩의 현장이고, 조선 말 판소리 명창 송흥록 선생의 생가지가 있는 판소리 고장이다.
고도가 높은 지형적 특성을 이용해 정부가 1971년 호주에서 들여온 양을 지리산 바래봉 일대에 방목하기도 했고, 국립 가축유전자원시험장(축산기술연구소), 축산고등학교 등 측산 관련 기반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흑돈 농장인 ‘다산육종’을 운영하는 박화춘 박사(52)는 귀농인이다. 서울에서 명문대학을 나와 농촌진흥청과 축협중앙회에서 근무하며 ‘잘 나갔던’ 육종 전문가다. 그가 10년 전 돌연 귀농, 똥냄새 속에서 돼지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왜 ‘좋은 직장 때려치우고’ 돼지 똥 냄새가 진동하는 농장으로 갔을까. 지난 9일 박화춘 박사를 만나 그의 농장과 생햄가공장, 식당, 6차산업의 꿈을 부풀리고 있는 사업예정지 등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그 속마음을 들어봤다.
-박 박사께서는 서울대를 졸업한 뒤 농촌진흥청과 축협중앙회에서 축산과 육종 업무를 담당한 인재였습니다. 귀농을 결심한 이유가 있을 텐데요.
“농촌진흥청에 근무할 때는 1400억 원 규모의 전문종돈업육성사업을 담당해 진행하는 등 열심히 일했습니다. 또 1996년 축협중앙회로 직장을 옮긴 뒤 종돈개량사업을 총괄하는 등 육종 관련 업무를 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교과서는 양식이 아니라 상식’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주변의 기라성같은 선배들과 근무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현장의 일을 배우기 위해 고창군 대산에 있는 축협 종돈사업소 근무를 자청할만큼 열정적으로 일했습니다. 그 때 전공으로 먹고 살지 말자, 전공을 부전공화하자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전공 업무 외에 돼지 키우는 일, 사료와 관련된 일, 축사와 관련된 일 등도 현장에서 배우고 연구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망하지 않는 법을 알게 됐죠. 제가 그곳에서 종돈 개량업무만 했다면, 지금의 저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축협과 농협이 통폐합 됐습니다. 실망감이 컸고, 고향에서 돼지농장을 하기로 결심했죠. 2000년 말에 지금의 부지에 농장을 지었고, 2003년 초 완전 귀농했습니다.”
-돼지 농장인데 다산육종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유가 있는지요.
“다산은 多産이 아니구요, 정약용 선생의 호 다산을 따서 지은 이름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실사구시 정신을 표방하고자 했습니다.”
-처음부터 농장에서 흑돼지를 키웠습니까.
“처음에는 백돼지(요크셔, 우리나라 대부분 돼지 농장에서 사육)였고, 흑돼지는 2003년 남원시가 흑돈클러스터사업을 추진하면서 본격적으로 키웠죠. 제가 흑돼지를 않고 백돼지 농장만 계속 했으면 지금 규모의 농장 3개는 했을 겁니다. 흑돼지 일을 하면서 매년 10억씩 까먹었죠.(웃음)”
-그런데 왜 흑돼지 사업에 뛰어든 겁니까.
“말씀드린대로 남원 흑돈클러스터사업이 진행되면서 참여했습니다. 꺼먹돼지라고 불리는 흑돼지는 어려서 저희 집에서도 키웠고, 도내에서는 남원과 진안 등에서 지역 특산가축으로 인식이 돼 있었죠.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신토불이 토종 흑돼지, 꺼먹돼지, 똥돼지는 우리나라에 없습니다. 1910년을 전후하여 일제가 버크셔, 요크셔종을 들여다 개량하는 과정에서 없어졌고, 일제가 개량했던 잡종 흑돼지도 육종관리가 안돼 처음의 특성을 크게 잃었습니다. 하지만 국내 양돈시장의 대세인 요크셔 백돼지보다 훨씬 품질이 좋은 흑돼지의 경쟁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흑돈클러스터사업에 매진한 것이지요.”
- 박 박사님은 ‘박화춘박사의 지리산흑돈’이란 브랜드의 흑돈을 생산 보급하고 있습니다. 또 남원흑돈클러스터의 ‘고원흑돈’과 국내 생산기반을 고려한 브랜드 ‘버크셔K’ 등 남원에는 3가지 흑돈 브랜드가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모두 제가 육종 관리하고 있는 버크셔 순종 100%의 흑돈 브랜드입니다. 다만 ‘박화춘박사의 지리산흑돈’은 제 농장에서 생산되는 흑돈 브랜드이고, 고원흑돈은 클러스터 참여농가들의 흑돈에 사용되는 브랜드입니다. 버크셔K는 저희가 공급하는 순종 버크셔를 생산하는 국내 농장의 흑돈에 쓰도록 만든 브랜드입니다. ”
-사실 국내에서 흑돈, 흑돼지는 그 맛이 차별화돼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시장에서 남원, 진안, 장수산 흑돼지는 일반 돼지고기보다 비싸고, 제주도흑돼지도 가격이 비쌉니다. 지리산흑돈과 일반흑돈의 차이를 말씀해 주십시오.
“털이 까맣다고 모두 흑돈이 아닙니다. 미국과 일본, 검은털을 가진 돼지 중에서 버크셔 품종의 털색은 열성유전이지만, 다른 흑돈 품종의 털색은 우성유전입니다. 그래서 재래흑돈은 순종, 잡종 모두 검은색 털이고, 잡종흑돈은 검은색 계통의 털색을 지닙니다. 하지만 순종 버크셔흑돈은 네 다리와 꼬리, 머리 등 여섯 곳이 백색(육백보물)인 것이 특징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혈통 관리입니다. 버크셔흑돈은 철저한 혈통관리로 고품질의 육질이 고르게 생산되지만, 여러 품종간 교배가 계속돼 온 잡종흑돈은 상품의 품질 편차가 큽니다. 국내에서는 다산육종에서 생산하는 버크셔 흑돈만이 유일한 순종 100% 버크셔이고,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박 박사님의 버크셔 고기 특징은 무엇입니까.
“고급 브랜드의 조건은 안정적인 맛, 안정적인 공급, 안정적인 가격에 있다고 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좋은 환경에서 좋은 사료를 먹여 사육하는 것이지요. 이들 조건을 모두 갖춘 다산육종의 버크셔 순종은 그 맛이 소고기 이상으로 탁월합니다. 맛있는 육질의 조건은 육질이 부드럽고, 촉촉하고, 고소해야 합니다. 이 기준을 만족하기 위해서는 육질 내 적색근섬유수 비율이 높고, 가열감량이 낮고, 도축 후 24시간 PH가 높아야 합니다. 다산 버크셔흑돈은 적색근섬유수 비율이 10∼12%, 가열감량 18% 이하, PH5.8 이상의 고른 품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버크셔 지방은 불포화지방산과 올레인산, 리놀렌산 함량이 높아 고소하고 건강에 좋습니다. 고기를 구울 때 지방 융점이 섭씨 50도에 불과해 잘 타지 않습니다. 지방을 그냥 마셔도 될 정도입니다."
-과거에 국내에서 버크셔 흑돈 생산을 시도하지 않았나요.
“제가 흑돼지 사업에 관심을 가졌던 2003년까지 우리나라에 버크셔를 들여와 사업하려고 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실패했는데, 그 이유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들의 흑돼지 사업은 사업성이 없었습니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뭐냐 하면, 2003년도까지 모든 버크셔가 1명의 바이어에 의해 미국의 단일 농장에서 들어왔다는 사실입니다. 미국 일리노이주에 있는 튜티힐인데, 모돈이 120두 정도인 작은 농장이예요. 이렇게 작은 농장에서만 버크셔를 수입했으니, 그 수가 적었고, 따라서 금방 근친이 돼 도입 후 얼마 안가서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 겁니다. 많은 자료를 검토 분석하고, 일본 가고시마 흑돼지 농장 등을 둘러보면서 제가 하면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죠."
-결과적으로 다산육종과 박사님이 이끌어 온 남원흑돈클러스터의 흑돈 사업은 성공한 것으로 판단되는데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돼지 사육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흑돼지 사육은 안되는 사업입니다. 그걸 육종 개량 등으로 적극 활용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경제성이 없는 사업이란 얘기죠. 그래서 대기업들이 하지 않는 거죠. 저는 육종전문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지역(남원시)에서 흑돼지 아이템을 갖고 흑돈클러스터를 하자고 했고, (육종을)배운 게 죄고, 지역에 기여하고자 해서 남원흑돈클러스터사업에 참여하게 됐는데, 비전문가는 뛰어들어서는 안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흑돼지 사업은 끊임없이 연구 노력하고, 새로운 모토를 가지고 끌어갈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는 사람이 중심이 돼야 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희들의 흑돼지 사업은 이제 어느정도 궤도에 올라섰고, 권할 수 있다고 봅니다.”
-흑돼지 사업의 성공은 결국 차별화된 ‘맛’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버크셔사업은 고기를 팔려고 하면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차별화된 맛, 음식문화를 팔 수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희는 그런 음식사업을 잘 하는 사람,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밸류라인을 구축하고자 노력합니다."
-박사님은 요즘 농업의 6차산업화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버크셔의 가치를 공유하는 밸류라인을 구축함으로써 모두가 행복한 6차산업 구조의 완성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고품질의 순종 버크셔 육종 및 생산을 위한 연구개발, 부위별 가격 불균형 해소를 위한 다양한 상품개발, 밸류라인 구축을 통한 고부가가치 창출, SNS마케팅 등을 통한 유통 확대, 문화가 있는 마케팅 등 계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부인이 맡아 하고 있는 지리산생햄 가공장을 연계한 6차산업 구조도 구상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생햄은 돼지 뒷다리를 천일염에 절인 후 1년 이상 발효시켜 만드는 고급 가공식품입니다. 운봉은 해발 500미터의 청정한 자연조건을 갖췄습니다. 또 다산육종이 고품질의 버크셔 뒷다리를 공급합니다. 명품 생햄 생산 조건을 모두 갖춘 것이죠. 스페인 이베리코생햄(하몽)이 생산되는 가공공장과 농장, 유통망 등을 벤치마킹했고, 저희 지리산생햄은 요즘 국내에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생햄은 부가가치가 매우 큰 사업 아이템입니다. 신세계백화점서 팔리는 하몽은 뒷다리 하나가 430만원에 달합니다. 돼지 뒷다리가 두 개이니 소 한마리 가격인 셈이죠. 지리산흑돈 생햄 가공장을 운봉 뒷산 중턱에 마련한 5600평 부지에 세울 계획입니다. 카페와 펜션까지 만들어 지리산둘레길 여행자, 관광객들이 운봉에 머물면서 마음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선보일 것입니다. 6차산업은 꿈의 산업입니다. 농수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가치를 향해 공부하고, 연구하고, 사업계획을 세워 추진하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제 민간육종단지, 농진청 혁신도시 입주 등 계기로 전북이 육종의 중심지로 부각할 정도로 전북은 기회를 잡고 있다. 종자, 육종 중요성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종자산업은 앞으로 가치의 척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에는 요리할 때 양념이 어떻게 들어가느냐가 중요했지만, 녹차를 직접 먹인 돼지고기와 단지 녹차가루를 뿌린 돼지고기가 다르듯이, 종자는 가치의 척도가 되고 산업의 근간이 될 것입니다. 종자가 좋지 않으면 산업이 안되는 거죠. 종자, 육종 분야에서 전문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현장에서 손에 흙과 똥을 묻히며 연구 노력하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귀농하려는 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그동안 귀농교육을 다니면서 강조한 것이 젊은가. 기술이 있는가, 3억 원이 있는가다. 만약 이 세가지가 충족되지 않은 채 귀농하고자 한다면 도시에 사는 동안 자기가 아는 사람 50명만 확실히 챙기라고 권합니다. 귀농해서 생산한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충성도 높은 도시 소비자를 확보하는 마케팅 전략을 사전에 펼치라는 것이죠. 꾸러미사업이 이런 식이죠. 귀농하기 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가치를 만들 궁리를 하고, 실력을 쌓은 뒤 귀농해야 성공합니다."
● 박화춘 박사는 가축육종학 전문가…남원흑돈클러스터 사업 성공 견인
박화춘 박사는 학생시절 ‘하룻밤 자지 않고 공부에 매진하면 쌀 10가마를 벌수 있다’며 공부했다. 외길은 없다. 나에게 주어진 길이 있으면 열심히 할 뿐이라는 신념도 그의 뼛속까지 배어 있다. 홀어머니의 고생을 보면서 자란 탓이다.
그는 운봉에서 초중고를 나와 서울대를 졸업했다. 해발 500m 고지대인 운봉에서 자란 그는 집에서 키우는 흑돼지에 친숙해 있었고, 축산고를 거쳐 대학도 축산학과를 선택했다.
가축육종학으로 석박사를 취득한 그는 1994년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축산과학원 축산연구사로 취직했다. 그러나 현장을 중시, 1996년 축협중앙회 종돈개량부장으로 일터를 옮겼다.
그는 돈이 안되는 농업, 부가가치가 없는 농업은 머슴살이 농업이라고 말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실사구시를 좌우명으로 삼은 까닭이다. 이같은 생각이 그를 공무원에서 현장이 더 중시되는 축협으로, 그리고 농장으로 이끌었다.
그는 육종 전문가답게 귀농 10년만에 2만평이 넘는 농장을 일궜고, 이곳에서 버크셔 종돈과 새끼 등 1만 2000두의 돼지를 기르고 있다. 남원흑돈클러스터 사업을 주도해 궤도에 올려놓았고, 그의 생햄은 2012년 전주국제발효식품엑스포를 찾은 영부인 김윤옥 여사의 큰 관심을 받을 만큼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농업이 인간의 가치, 존엄성을 파는 사업이 돼야 2세들도 긍지를 갖고 자랑스럽게 영위할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농민들이 일할 환경을 만들고,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돼지농장이 성공하려면 고기 소비처인 식당이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또 건강과 힐링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고품격 음식문화가 자리잡아야 농장도 함께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급과 보통의 차이를 인정해 주는 풍토를 만들어 주어야 농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음식업을 고급 서비스업으로 만들어 정부가 지원해야 일자리가 늘고 결국 농업이 산다고 말한다. 그의 지향점은 6차 산업화의 성공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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