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처럼 즐기는 인문강좌, 삶의 활력소"
진지하고 열정에 가득찬 눈빛, 배움에 대한 갈증, 무언가를 받아 적는 소리, 커피나 녹차향 보다 사람에게서 전해지는 인문의 향기가 가득한 곳. 고등학생부터 퇴직 교수까지 100여명의 시민들이 모인 전주시 평생학습관의 화요일 저녁 풍경이다.
전주시 평생학습관이 매주 화요일 저녁에 진행하는 ‘유쾌한 인문학’강좌가 어느덧 7년이 됐다. 7년을 한결같이 참여해준 시민 4명과 함께 강의에 참여하게 된 동기와 인문학이 삶에 준 영향, 그리고 앞으로 바라는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회 - 구성은(전주시 평생학습관장)
△대담 - 성기수(전주영생고 교사) / 이명희(전통교육 맥 대표) / 유정애(문화해설사) / 김상희(직장인)
- 사회(구성은): 어떻게 이 강좌(유쾌한 인문학)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 이명희: ‘희망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보고, 나도 누군가에게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가지고 있는 자원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마침 가까운 전주시 평생학습관에서 강좌를 시작한 덕에 7년 동안 빠짐없이 듣게 되었습니다.
- 사회: 인문학 강좌를 오후 7시에 시작하다보니 직장인은 저녁밥을 거르는 경우가 많은데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사회생활도 하실텐데, 7년을 개근하실 수 있었던 비결이 뭘까요?
- 김상희 : 그냥 매주 화요일 저녁은 늘 비워놓아요. 늘 듣다보면 이 시간이 제게 주는 여행같은 느낌도 들고, 소설을 읽는 기분도 들어요. 무언가 채워지는 시간이고, 제 인생에 활력소가 되고 있죠.
- 사회: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많잖아요. ‘유쾌한 인문학’은 매년 한 주제를 가지고 공부하는데(2015년은 ‘동아시아사’) 딱딱하거나 머리 아프진 않은가요?
- 성기수: 매주 수업에 몰입해서 듣는 편은 아니예요. 그냥 딴 생각도 하고, 편안하게 듣죠. 그런데, 계속 듣다보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뭔가 막혔던 생각이 탁 풀리는 때가 있어요. 그래서 ‘유쾌한 인문학’은 내 삶의 아이디어 공장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데, 듣다보면 관련있는 내용이 나올 때도 많아요. 그러면 굉장히 반갑고, 내가 알았던 지식을 포함해서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기도 하죠.
- 사회: 인문학 강좌를 들어서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 이명희: 제 경우에는 인생이 달라졌죠. 처음 인문학 답사 때 선생님 한 분이 문화유산 공부를 권유하셨어요. 그래서 시민단체에서 문화재 공부를 하다가 전통놀이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배우고 공부해서 지금은 전통교육, 전통놀이 전문가가 되었죠. 저는 남편이 직장 때문에 서울로 가고, 딸도 서울로 대학을 갔어도 이 인문학 때문에 이사도 안 가고 전주시 평생학습관 옆에 딱 붙어 있어요.
- 김상희: 저는 한 주제가 끝날 때마다 가는 답사가 참 좋아요. 강좌만 같이 들을 뿐, 잘 몰랐던 수강생들이 친해지는 계기도 되고, 강의에서 듣는 것과는 또 다른 것을 보고 느낄 수가 있어요.
- 유정애: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강의를 들으며 채워지는 것이 많아요. 2010년에 전북대 쌀·삶·문명 연구원과 전주시 평생학습관이 공동으로 농경문명사, 조선시대 회화사, 도가철학, 동양철학 등을 함께 했는데, 그 때 그 강의들은 다시 듣고 싶어요. 정말 좋은 내용이었고, 이런 강의는 전국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른 선생님들과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데, 강의에서 듣는 내용이 자양분이 되고, 스스로 성장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 사회: 지금까지 7년동안 ‘유쾌한 인문학’강좌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여러분의 열의와 참여 때문인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전주시 평생학습관에 바라는 점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 성기수: 사실, 우리보다 더 훌륭한 수강생들이 많아요. 전북대 역사교육과 퇴직 교수님 부부나 전주대 퇴직 교수님 부부가 나란히 인문학 강좌를 듣고 계시는데 참 멋져 보여요. 저희도 좋은 강좌를 들으며 배움으로 행복한 삶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유쾌한 인문학’프로그램 담당자 김지영 선생님은 신영복 선생님이 쓴 〈담론〉의 ‘강의의 최상은 공감’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어떠한 형식의 인문학이든 전주시민이 공감하는 강의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7월에는 ‘실크로드, 그리고 돈황학’을 주제로 유쾌한 인문학 동아시아사 3탄이 열릴 계획이다. 실크로드 강좌를 듣고, 진짜 실크로드 여행을 꿈꿔 보면 어떨까?
● ['인문 공간 파사주'는] 시민이 만드는 인문학 열린 공간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바로 옆에 있는 허름한 건물 3층으로 올라가면 130㎡ 남짓, 인문과 자유가 그득한 공간이 펼쳐진다. 2015년 1월 문을 연 ‘인문 공간 파사주’다.
이 공간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어느날 우연히 15년 만에 대학 동창들을 만난 청년도 중년도 아닌 사내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학습세미나를 계획하게 된다. 2년간 커피숍과 학교 연구실 등을 전전하며 발터 벤야민, 칸트, 푸코의 책을 읽던 그들은 안정적인 공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고,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영화의 거리, 한 건물 3층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한 달 동안 회원들의 막노동으로 인테리어를 마치고 문을 연 공간이 ‘인문 공간 파사주’다.
성기석 대표는 ‘파사주’라는 이름에 대해 ‘이행, 통과, 통로’의 뜻이라고 설명한다. 발터 벤야민의 책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따온 이름인데, 이 공간을 통해 회원들이 더 나은 삶으로 통과, 이행하는 통로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한다.
문을 연 후에는 먼저 회원들이 가진 특기를 살리는 강좌를 시작했다. 미디어 아트, 음악감상실, 조각, 페미니즘 특강 등…. 물론 2년 전부터 진행해온 철학 세미나는 여전히 2주에 한 번 열고 있다.
안정적인 공간이 생긴 만큼 ‘파사주’는 새로운 꿈을 꾼다. 공부를 하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인문’공간이 그것이다. 그래서 1년 계획으로 준비한 ‘철학 고전 읽기’는 모두에게 열려진 공간이다. 6월 23일 오후 7시 30분에 시작하는 플라톤의 ‘향연’부터 5강에 걸친 플라톤 읽기가 준비되어 있고, 8월 중순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진다.
회원들이 기증한 책과 재능 기부로 만들어진 공간이 자율로 운영되고, 모두에게 열려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 본 공간이 아닐까? 게다가 위치는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바로 옆이다. 전주시에서, 전라북도에서 주최하는 인문학보다 시민들이 만드는 인문학이 풍성해질 때, 그것이 바로 전주의 자랑이고 힘이지 않을까?
‘파사주’에 참여하고 싶은 시민은 010-8649-1968이나 gmail.com으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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