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은 나…반짝반짝 다듬어 갈거예요" / 아이들 직접 기획한 공간 오픈식 / 음식준비·영상 등 오롯이 담아내 / / 전주 어은골 골목 벽화로 디자인 / 스스로 하는 과정 배워나가는 곳 / 지역 주민과 어우
아이들이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는 새로운 경험을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던 오픈식 현장을 찾아가보았다.
어은터널 아래, 뭔가 희미한 불빛이 반짝거린다. 아~ 저기로구나! 가던 발걸음을 불빛 있는 쪽으로 향했다. 입구에서부터 우렁차게 아이들이 손님들을 맞이한다. “안녕하세요. 아지트 오픈식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식이랑 준비했으니 마음껏 드세요” 아이들에게서 오픈식 멘트를 써보고, 직접 연습한 모습이 보여 기특한 마음에 웃음이 났다. 어두운 마당에, 아이들이 나누어준 야광봉이 반짝거린다.
마당 한켠 자리한 가마솥에 아이들이 돼지고기를 삶았다. 맛이 아주 기가 막힌다. 다들 수육 맛에 빠져, 약속이라도 한 듯 ‘맛있다’를 연발하고 있는데, 지역주민 한분이 물으신다.
“ 왜 이렇게 수육이 맛있는 줄 알아요?”, “ 왜요?”
“ 아이들의 예쁜 마음이 담겨서 ^-^” 우아..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 좋은 장소로 지역을 디자인 한 아이들.
“ 어은골 소개를 해드릴게요. 함께 가실 분은 입구로 모여 주세요!”
아이들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서니 벽마다 벽화가 그려져 있다. 아이들이 마을 골목골목에 벽화를 그렸다. 터널 안에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고 있다. 벽마다 작고 큰 그림들이 그려 져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요즘, 벽화사업이 유행이다. 관광객들을 끌어 모을 수 있다고 하니 과정과 결과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고 벽화사업을 하겠다고 난리도 아니다. 그렇게 시작한 벽화사업은 고스란히 지역주민들의 고통으로 자리 잡는다. 동네가 시끄러워지고 땅값은 올라간다. 그리고 높아진 땅값에 오랜 터를 잡았던 원주민들은 지역을 떠난다. 그러나 어은골에 아이들이 그려낸 벽화는 다르다. 과정이 담겨 있고, 지역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어은골이 있는 지역은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하는 장소이다. 그곳에 아이들이 벽화를 그리겠다며 자주 왕래하기 시작한다. 호기심 많은 어르신들은 아이들이 여기서 뭐하는지 궁금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어르신세대와 아이들 세대가 만난다. 스파크가 튀는 것이다. 채성태 선생님도 그 세대 간의 만남 안에서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스파크가 튀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제 이곳은 아이들이 생각을 담아내고, 활동을 만들어나갈 아지트의 공간이다. 아이들의 역사가 쌓이는 공간이 된 것이다.
좋은 장소는 그곳에 사는 사람의 삶과 생활이 쌓여 형성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좋은 장소를 만들려면, 그곳에 사는 사람의 삶과 생활이 쌓일 수 있게 하면 되는 것이다. 벽화를 구실로 시작된 ‘좋은장소’에 아이들과 지역주민의 삶이 색을 덧칠해지며 ‘더 좋은 장소’로 디자인되길 기대해 본다.
△ 아이들이 할 수 있도록 가만히…가만히…바라봐 준다는 것.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경험이 많다. 그래서 두려움도 크다. 빗겨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잘 안다. 그래서 마음속을 뒤져 애써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하게 된다. 아이들을 위해서라기보다 어른들의 편리함을 위해서라는 생각도 든다. 정답을 알려주면, 과정이 없어지니 그만큼 얻어지는 결과물도 빠르기 때문이다.
문화공간 싹에서는 아이들에게 정답을 알려 주지 않았다. 아이들 스스로 직접 몸으로 경험하고 느낄 수 있도록 모든 과정을 맡겼다. 이번 오픈식 과정도 마찬가지다. 아이들 스스로 음식준비, 영상, 발표 팀으로 나누어 준비하게 했고, 날짜도 아이들이 정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함께하는 법을 배워갔다.
사실,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선생님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참 크다.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도와야 하고, 막히는 부분에서는 실마리를 스스로 찾을 수 있게 물꼬를 터 주어야 한다. 기다려야 하고, 인내해야 하고, 맘에 차지 않은 부분까지도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아이들에게 경험이라는 것이 쌓이고 시행착오라는 것이 쌓여 자기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문화공간 싹 선생님들은 그것을 알기에, 이렇게 묵직한 과정을 아이들과 만들어 나간 것이다.
△ 반짝반짝한 오늘이 만들어 낼 내일
2015년 문화공간 싹의 토요문화학교 주제는 ‘오늘도, 반짝반짝’ 이다. 2014년도에는 ‘그래도 반짝반짝’이라는 주제로 미래에 대한 상상이 중심이었다면, 올해는 아이들이 살아가는 지금에 대한 고민이 묻어나게 하기 위함이었다. 오늘이 반짝반짝하다면 다가올 내일, 미래는 당연히 반짝 거릴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이 반짝반짝하기 위해서 세상으로 나가보는 준비를 개별 프로젝트 ‘반짝반짝 세상나들이’를 통해 아이들이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그 중 다혜라는 친구는 채성태 선생님을 따라 전북일보에서 주관하는 기자학교 프로그램에서 보조강사 역할을 맡고 있다. 다혜라는 친구가 오픈식에서 ‘반짝반짝 세상나들이’에 대한 소회를 나눠 주었다.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데 지금껏 한사람의 능력을 어떠한 기준을 정해서 선을 그었었구나, 라는 것을 경험하면서 깨달았어요. 누구나 충분히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세상에서 자신이 주인 되어 반짝반짝하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각자에게 있어요. 이 프로젝트는 어쩌면 각자에게 특별하게 주어진 그 잠재력, 그것을 끌어올려가는 과정도 될 수 있습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이더라도 조금씩 내가 꿈꾸는 모습과 닮아가도록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다듬어가도록 노력하는 과정인 것이죠”
다혜의 소회가 감동스럽게 다가왔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없을 수는 없다. 때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일까 두렵기도 하다. 그럴 때, 그 상황을 바라보고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은 내가 경험한 것으로 비추어 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 바로 살아가는 삶의 태도로 만들어 진다.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내 삶의 주인으로 내가 살아가려 하는 모습. 아이들은 문화공간 싹을 통해 그 태도를 쌓아가고 만들어 가고 있구나 싶었다.
△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오픈식을 준비하는 과정에, 너무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고, 작은 공간에 모든 분들을 초대 할 수 없어 이번 오픈식은 부모님들을 모시고 ‘오늘도 반짝반짝’에 참여하는 친구들의 온전한 과정을 위해 꾸며졌다. 아이들 과정 중에 여럿이 함께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에 대해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기도 했고,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격력의 말을 해주기도 했다. 지역에서 큰 도움을 주신 ‘사부님’의 인사말도 들었다. 어은골을 함께 멋지게 만들어 준 청소년동아리 크로다일의 축하인사도 들었다. 2시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이 오롯이 만들어낸 과정이 눈에 스쳐 지나가는 듯 했다.
아이들 스스로 했지만, 아이들 스스로 하기 위해 애써준 많은 분들의 노력 덕분임이 눈에 그려졌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고 한다. 이제 아지트는 만들어 졌다. 지역 사람들과 아이들이 함께 만들며 쌓아갈 역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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