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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앞만 보고 달린 우리들 이제는 한박자 쉬어갈때…다함께 스스로 돌아보자

▲ 서경석 청어람출판사 대표

2015년 을미년을 보내면서 하나의 화두를 던져본다. 어떻게 살아야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까. 어떻게 살아야 사회가 좀 더 아름다워질까. 어떻게 해야 우리나라가 글로벌화 된 세상에서 뒤처지지 않고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공부를 할 때는 ‘왜’를 생각해야 한다. 어떤 현상에 대한 근원과 이유를 알아야 새로운 이론이 창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에 ‘왜’를 대입하면 팍팍해지고 덧없어진다. 때문에 ‘어떻게’와 ‘무엇’을 대입해야 한다. 그래야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답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유한한 삶을 살아간다. 제 아무리 천하를 떨어 울린 영웅호걸도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 그런데도 인간은 영원히 살 것처럼 억척을 부린다. 모두가 더 가지려하고, 더 높아지기 위해 욕망의 파도를 탄다.

 

조금은 엄숙하게 삶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어 거부가 된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이 노벨상을 만들어 후세에 길이 빛나는 업적을 쌓게 된 계기가 있다. 그의 형 루드비히 노벨이 죽었을 때 알프레드 노벨이 죽은 걸로 오인한 프랑스 기자가 부고 기사를 쓰면서 “죽음의 사업가” “파괴의 발명가”라는 카피를 뽑은 것이다.

 

살아서 자신의 부고 기사를 본 노벨은 충격을 받는다. 결국 심기일전하여 자신의 이력을 다시 써갔고, 유산 중 94%인 3200만 스웨덴 크로나(345만 유로, 374만 달러)를 노벨상 설립에 남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굳이 동원하지 않더라도 살아생전에 자신의 죽음을 한번쯤 진지하게 응시해 보는 것도 바른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될 듯싶다.

 

우리는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 아래 전 국민이 하나 되어 가난 극복에 전념한 결과 나름 국제적 위상을 갖게 됐다. 그러나 우리는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찬사는 빛이 바랬고, 도덕적 가치는 땅에 떨어진지 오래다. 오죽하면 인성교육의 목소리가 날로 드높아질까.

 

한 박자 쉬어 가자. 그동안 변화와 속도를 얘기해온 필자의 글과 모순된다 할 수 있겠으나 차원이 다른 부분이다. 변화의 속도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가되 정신적인 부분에서 정체성을 확인해보자는 얘기다. 잘 왔는지, 또 잘 가고 있는지 점검해보고 삶의 본질을 돌아보자는 얘기다.

 

너와 나를 넘어 우리를 생각해야 할 때다. 어른들은 헬조선을 외치는 젊은이들의 고충에 귀 기울이고, 젊은이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맨땅에 헤딩하며 일어선 윗세대만큼은 아니니까 분발하기 바란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위임받은 권한을 스스로의 것인 양 으스대며 밥그릇 싸움만 하지 말고 진정 어떻게 해야 국민들을 위하는 길인가를 먼저 생각하라. 국민들은 개인주의와 집단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모두가 하나 되는 노력을 해야 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퍼펙트 스톰(위기가 한꺼번에 겹치는 상황)으로 돌입할 수도 있는 위기중중의 시대를 헤쳐 나갈 수가 없다. 연말연시를 맞아 우리 다함께 ‘어떻게 살 것인가’를 화두로 삼아 스스로를 돌아보자. 각자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는 것은 주변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맞물리면 좀 더 따스한 정이 흐르는 사회로 거듭나지 않겠는가. 문제가 있다면 나부터 돌아보고 해결점을 찾는다면 못 풀 문제가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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