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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마을 이야기 콘텐츠化 고창 반암마을 사람들

명당의 땅·십승지 마을…이번엔 '추사의 길' 이야기 만든다

▲ 고창 반암마을 전경.

“옛날 옛적 신선이 놀러와 차일봉에서 잔치술을 마시다가….” 고창 아산면의 반암마을 사람들은 마을 이야기를 그렇게 시작한다. 선운산 자락으로 굽이치는 인천강 모래톱 위에 기묘하게 우뚝솟은 병바위가 있어 그로부터 마을이 열리기 때문일까. 1750년에 제작된 <해동지도> 에도 나타나 있는 병바위(壺岩)는 말 그대로 병 모양새를 닮았다. 신선이 마시던 술병이 거꾸로 꽂혀 병바위란다. 이웃에 호암(壺岩) 마을이 있다.

 

△전북 8대 명당으로 알려져=마을을 둘러싼 산세나 들녘은 예사롭지 않은 자연지형으로 이방인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며, 거기에 더해 오래도록 살아온 인간의 흔적은 인문적, 풍수적 경관으로 흐르고 흘러 잊혀질 듯 말 듯 많은 이야기거리들을 제공해주고 있다. 인촌 김성수의 할머니 묘가 있어 전라북도 8대 명당으로도 알려졌다. 선비 김길중(1882-1949)은 병바위 위에서 주변의 일품 8경을 한시로 읊었다. 마을 이야기들을 최근 콘텐츠화한 것이 반암마을 풍수담론이다. 그 절정은 아무래도 정감록 십승지 이야기겠다. <정감록> 에 십승지(十勝地)라 하여 전쟁, 흉년으로부터 피신해 살기 좋은 열 곳이 기록되어 전해지는 바, 그 한 곳이 바로 반암마을이라는 것이다. 원래는 부안군의 변산으로 지목되어 왔으나, 2012년 고창군의 연구용역 결과 고창의 반암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이는 도내 일간지들이 보도하여 알려졌고, 이 마을 출신의 풍수학자 김상휘 박사가 이전부터 주장했다.

 

△농촌마을 개발사업 시행착오=명당의 땅이니 십승지니 하며 조명되는 것만으로도 반암마을은 복받은 동네다. 그 기세로 반암마을은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으로 54억원의 정부지원을 받는다. 2007년의 일이다. 테마파크가 조성되고 주민참여로 반암권역영농조합법인이 설립되었다. 풍천장어, 참게, 복분자, 자생녹차를 특산물로 내세우고 복분자 체험, 인천강 뗏목타기, 풍천장어와 참게 잡기, 경관 볼거리 등으로 농촌테마관광의 명소로 자리잡겠다는 의지가 컸고 주민들도 그렇게 기대했다.

 

그러나 초기에만 잠깐 반짝였다. 생각대로 명소로 자리잡기는 커녕 주민간 불화와 갈등이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반암마을은 한국전쟁 때의 인민재판 후유증이 한 켠엔 아직도 남아 있다. 반암리 601번지는, 맑스주의의 역사유물론에 기반해 조선경제사를 연구한 역작 <조선사회경제사> 와 <조선봉건사회경제사> 로 유명한, 그리고 해방공간 시기에 좌파 정치가로 활동하다 월북하여 최고인민회의 의장까지 역임한 동암 백남운(1895-1979)이 태어난 곳이다. 백남운이야 전쟁 전에 북으로 갔으니 무관한 일이겠으나 학살 피해를 입은 집안의 원한은 그와도 연루시키는 모양이다.

▲ ‘추사의 길’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반암마을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역사문화자원 관심 가져=반암권역사업은 애초부터 방향을 잘 못 잡은 것일 수도 있다. 겉보기 성과와 소득증대사업에 치중했다.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농촌마을이다보니 주민소득사업에 집중한 것은 당연한 일일 터, 그러나 관광객 유치와 돈벌이를 앞세우기 전에 주민들 스스로 공동체적 연대감을 형성하도록 하고 이해관계에 얽혀 마을이 불신하고 분열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프로그램 설계가 진행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마을의 풍부한 역사·문화·풍수 자원들을 콘텐츠화하는 것도 세심한 배려와 방식의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백남운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마을의 자랑으로 내세울만한 대단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태어난, 부친 한학자 백낙규가 운영한 초당은 ‘백남운’이라는 이름 석자도 없이 폐허로 방치되고 있다. 피해자 후손의 원한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 그 원한은 특히 이념적 비극에서 비롯된 바 크기에 마을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역사적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서 풀어나가는 것도 한 방법일테다.

 

반암마을 사람들은 올해 작은 사업 하나에 참여한다. 전북문화관광재단이 주최하고 고창학연구회가 주관하는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사업이다. 고창학연구회의 오강석 대표가 작년에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주련(기둥이나 벽 따위에 써붙이는 글귀) 11점이 반암마을 김성수 조모 재실에 있음을 발견하였다. 여러 언론들이 보도했다. 반암마을의 역사문화적 콘텐츠에 김정희 주련이 추가되었다. 반암 역사문화의 새로운 상징이 발굴된 것이다.

 

이 상징은 전문가들의 몫으로만 돌리지 않고 주민들의 문화적 의미망으로 가져가자는 게 오 대표의 생각이다. 교육 활동을 주민참여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반암마을 사람들의 문화공동체적 관계를 새롭게 조성해보자는 취지다.

▲ 추사 김정희 선생의 ‘주련’

△ ‘주련’ 계기 문화로 소통나서=이 마을에 김정희의 주련이 왜 있을까. 오 대표는 반암마을이 1840년 김정희의 제주도 귀양길 행적지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글을 남기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인천강 별빛을 보았을까. 주련 중에 하나는 “귀양길 강 물결에 별빛도 따라 움이네”라는 소동파 시구로 귀양길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한 주민은 “마을에 김정희가 지나갔으면 전해질텐데 그런 이야기가 전혀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고창학연구회는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이번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추사의 길’을 만들어나가게끔 할 계획이다. 김정희의 반암마을에서의 행적을 조사하여 스토리텔링하겠다는 것이다. 마침 선운사 성보박물관에 김정희가 직접 짓고 써준 백파율사비가 보관되어 있어 마을 사람들의 탁본 체험도 마련된다.

 

교육이 시작된 4월,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제각기 관심을 표명하고 있지만 아직 간보고 있는 모양새다. 광역사업 후유증이 남아 있어 그런 걸까. 당시 그렸던 벽화 인물화도 지우고 새로 조성해야 할 판이다. 그 사이 세상을 뜬 어르신들이 있어 마치 영정사진같다는 공론이 돈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병바위 옆 두암초당에서 만정 김소희가 15살 때 득음을 했다고 한다. 이제 마을 사람들이 득음하려나 보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자기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반암마을 사람들에게 다시한번 기회가 왔다. 서로 신뢰를 쌓는 문화공동체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기회다. 그래서 교육 프로그램의 진행자나 마을 주민들의 마음이 더 소중해진다. 이 시대 민초로 살아왔을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직접 표현되고 소통되고 공감되는 스토리텔링, 풍부한 역사-문화-풍수 자원들과 함께 사람들의 감동과 향기가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

▲ 고길섶 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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