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력 높은 시나리오 세 편을 제작 지원하는 ‘전주 시네마프로젝트(JCP)’의 공식 기자회견이 2일 전주국제영화제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메이드 인 전주’ 영화 산업의 첫 걸음이자 전주국제영화제 간판 프로그램인 JCP에 올해는 이례적으로 모두 한국영화가 선정됐다. 그 어느 때보다 예산 규모에 비해 작품이 알차게 나왔다는 김영진 수석 프로그래머의 자평. 한국 독립영화계에 새 기운을 일으킬 이창재, 김양희, 김대환 감독을 만나봤다.
● 이창재 감독 '노무현입니다' - 노 대통령 조망, 4년전엔 개봉 상상도 못해
“현대사에서 성공한 ‘진보의 도전’이 있었던가를 생각하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는 과정이 아닌가 싶어요. 순수하게 시민이 성공했던 그 시기를 재현만 하더라도 관객은 희망을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N프로젝트’에서 ‘노무현입니다’로 제목을 바꾼 작품은 노무현의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을 큰 축으로 주변 사람들이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낙선을 거듭하던 지지율 2%대의 그가 당 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승리하기까지는 ‘동서화합·지역감정 철폐’라는 그의 대의를 지지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희생 없이 불가능했다.
이창재 감독은 당시 함께 활동했던 수행원, 정치인, 노사모 회원 등 다양한 주변 인물을 통해 ‘그렇다면 노무현은 어떤 사람이길래, 시민들을 광기에 가깝게 결집시켰는가’에 관해 묻는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한 분들은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그런데 한 번 본 분들조차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죠.” 그에 대한 기억과 애정이 많은 탓일 것. 이야기를 들어주다 인터뷰를 5시간 동안 한 적도 있다.
기획은 4년 전부터 이뤄졌을 정도로 준비 기간이 길었지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실체를 드러내기까지 최대한 숨겼다. 지난 정권 당시 ‘노무현’을 주제화 한다는 이유로 제작 과정의 난항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진짜 영화 제목을 이제야 드러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당의 삶을 다룬 ‘사이에서’, 비구니들의 고행을 담은 ‘길위에서’, 호스피스 병동을 기록했던 ‘목숨’ 등 대중적이지 않은 주제를 밀도 있게 다뤄왔던 이 감독의 또 하나의 굵직한 필모그래피가 탄생했다.
● 김양희 감독 '시인의 사랑' - 인간 관계에 대한 진실함·아름다움 표현
영화를 본 사람은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시인이 나지막하게 읊던 시가 가슴에 스며들 때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진실한 이해’도 함께 파고들었다는 것을. 작품은 아내의 구박으로 인해 현실과 이상에서 괴로워하던 마흔 살 시인이 우연히 도넛 가게의 소년을 만나게 되면서 겪는 감정의 변화를 담았다. 연민인지, 사랑인지 알 수 없는 둘 사이의 감정은 새로운 결을 만들어낸다.
동성애 코드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질문에 김양희 감독은 “동성애를 주 이야기로 다룬 시나리오 버전도 있었지만 원래 버전으로 촬영했다”면서 “모호하더라도 감정의 이해가 넓어지는 내용 전개가 내가 말하고 싶었던 ‘관계의 진실함,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악역 이미지가 강했던 배우 양익준의 180도 다른 진중한 모습과 신예 정가람의 연기도 주목받았다. 감독은 “10년 전에 양 선배를 작품에 섭외하면서 인연을 맺었는데, 그땐 지금과 달리 순박한 청년같았다”면서 “내가 기억하는 그 모습을 잘 살리면 오히려 더 신선한 캐릭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시인의 사랑’은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전주 프로젝트마켓 ‘최우수상’ 선정작으로, 기획부터 제작까지 전주에서 이뤄진 것이 특징이다. 김영진 수석은 “영화제 개막 전에 봤던 1차 완성본보다 극장판이 무척 잘 나와서 만족스럽다”면서 “한국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감성”이라고 호평했다.
감독은 “감정선 변화가 영화가 주는 큰 매력인 만큼 인물들이 어떤 감정을 갖고 행동하는지 생각해본다면 이해가 깊어질 것 같다”면서 “나 역시 주인공을 보며 동질감을 느낀 것처럼 관객이 교감하고 자신을 돌아본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 김대환 감독 '초행' - 섬세한 연출·생활 연기로 공감 100배
첫 작품 ‘철원 기행’으로 한국적 로드무비의 가능성을 인정받고 베를린영화제 등에 초청되며 인지도를 쌓은 그가 이번에는 결혼이라는 인생 제2막 초행길에 접어든 커플 이야기를 꺼냈다.
‘초행’은 6년간 동거했던 연인이 임신으로 결혼을 결심하면서 서로의 가족을 만나고 이해하는 과정.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지만 실제 상황보다 더 실제 같은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생활 연기로 대중의 공감과 의도치 않은 웃음도 끌어냈다.
그는 “익숙한 대화 주제인 ‘연애와 결혼’이다 보니, 관객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영화의 흐름을 따라갔던 것 같다”면서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던 덕분”이라고 겸손한 답변을 내놨다.
하지만 작품에 정작 감독 본인의 사적인 감정은 최대한 배제했다. 특정인이 아닌 다수가 자연스럽게 공감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영화 장면을 사건의 순서에 따라 촬영했는데, 스태프와 배우들이 영화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감정과 분위기를 느끼고 극에 몰입하도록 했다. 또한 촬영장에서 회의를 통해 현장과 분위기에 어울리는 대사와 연출을 새로 짜기도 했다.
감독은 ‘행’시리즈를 냈는데, 연속적인 작품 화두는 세 가지다. 가족과 계절, 공간. 특히 가족에 집중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왜 한국 가정은 아버지와 자식이 서먹할까’등 한국 가정만의 특수한 분위기에 대해 늘 고민했어요. 미묘한 감정을 관찰하고, 서로 왜 그랬어야 했는지 이해해보는 작업을 하고 싶었죠.”라고 답했다. 전작에서는 폭설로 새하얀 철원을 공간 배경으로 삼았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해가 뜨는 삼척과 석양이 지는 인천을 대비해 보여준다. 계절적 배경과 공간이 주는 분위기도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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