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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년 전 완주 하이테크놀로지 세우겠다”

김재호 선임기자
김재호 선임기자

최근 완주에서 ‘2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완주’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새로운 현상이다. 지난 6월18일부터 9월29일까지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열린 ‘오로지 오롯한 고을 완주’편이 무려 4만 관람객을 돌파한 가운데 마무리 된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

이후 역사적 정체성은 물론 전북 지자체 최고의 경제수준을 갖춘 완주의 자랑스러움을 대내외에 표방할 웅장한 규모의 ‘랜드마크’를 세워 완주의 자존감을 드높여야 한다는 움직임도 처음으로 나왔다. 완주군미래발전위원회가 지난 11일 이런 주장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이런 움직임은 ‘완주는 완주’여야 한다는 강한 홀로서기 몸짓으로 보인다. 2100년 완주의 역사 문화적 정체성을 확실히 하여 자족도시 완주를 만들겠다는 포석이다.

사실 완주군 지역은 전주시 변방의 농촌산간지방으로 알려졌다. 과거 마한·백제시대에 완산주로 불렸고, 신라 경덕왕 때 전주로 개칭됐다. 1935년 행정구역 개편 때 ‘전주군’은 전주시와 완주군으로 분리됐다.

이후 전주·완주 통합 움직임을 거부하며 홀로서기 의지를 보였고, 2012년 전주시에 소재하던 군청사를 용진으로 이전했다.

사통팔달 교통망을 갖춘 완주는 현대차와 LS엠트론 등이 위치한 240만 평의 산업단지에 더해 최근 64만 평 규모의 제2산단을 조성하며 안정적 경제 부흥 기반을 갖췄다. 로컬푸드, 사회적경제 등은 전국 모범사례다. 그런 기반 위에서 아동 청년 노인 정책이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완주는 항상 뭔가 허전했다. 전국 지자체 도시경쟁력 2위, 산업 성장률 전북 1위 등 경제 부문 빼어난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역사 문화적 정통성 부문에서 나약했다. 2% 부족한 느낌이었다. 전주가 후백제와 조선 왕조를 치켜세울 때 완주는 자존감이 위협됐다. 걸핏하면 “전주·완주는 한 몸이었으니 이제 전주와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에 직면했고, 완주는 그야말로 ‘전주 발전을 위해 흡수돼야 할 대상’으로 치부되는 분위기에 있었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확인된 완주는 한반도 경제의 중심축이라고 할 만큼 위상이 컸다. 그동안 완주 일대를 샅샅이 뒤진 학계가 내놓은 결론이다.

그들에 따르면, 적어도 2100년 전 만경강 주변 완주 일대는 한반도 청동기와 초기 철기문화의 선구적 도시였고, 선진문물 교역기지였다.

실례로 청동검과 청동꺽창, 거푸집, 그리고 다뉴세문경이 완주 갈동유적에서 나왔다. 그 가치가 커 국가문화재 보물로 지정됐다. 이서면 반교리 산94-11번지 일원 17기의 무덤 중 1호에서는 세형동검 거푸집, 5호와 7호에는 다뉴세문경이 부장되었다. 당시 완주는 동주시대(기원전 770~221) 중국과 선진문물을 직접 교류한 한반도 하이테크놀로지의 중심이었다는 것이 학계의 보고다.

완주군 용진면 상운리에서 발굴된 마한계 무덤군에서는 300여 점의 토기와 500여 점의 철기, 6000여 점의 옥류 제품들이 출토됐다. 강력하고 화려한 위세가 읽힌다. 또 고산 봉림사지에서 출토된 석등과 석탑, 삼존불 등은 최고 수준의 불교미술품으로 주목된다.

완주 사람들은 이처럼 고고학적으로 완전히 증명된 2100년 역사를 바탕으로 그들의 자존심을 확실히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오로지 오롯한 고을, 완주’를 만방에 자랑스럽게 보여주고자 한다. 이런 논의가 지역 역사문화 자산을 바로 세우고, 또 이런 저런 갈등을 치유하는 화합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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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 bada1-1@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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