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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문신 시인 - 문정 시집 '하모니카 부는 오빠'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소란한 시들

우리의 눈높이가 초록으로 우거지는 계절이면 떠오르는 시 구절이 있다. “아직도 모든 산맥에서는 강물냄새가 난다”라는 문장은 시 ‘물고기자리’에 놓여 있고, 그 시는 문정 시인이 썼다. 시가 실려 있는 시집 <하모니카 부는 오빠> 는 여기 있지만, 시인은 여기 없다.

내가 알기로 그는 시로 태어났어야 옳았다. 결과적으로 시인이 되었으니 다행이다 싶지만, 시집 한 권으로 그를 대신하는 일은 크게 아쉽다. 그런 까닭에 헙수룩한 기분이 들 때면 나는 그의 유고 시집을 펼쳐들고는 소리 내어 읽는다. 꼭 소리 내어 읽는다. 그러면 그의 시가 마침내 눈을 뜬다.

문정 시인은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시인이 되었다. 그리고 2013년 가을, 자신이 쓴 시의 한 구절처럼 그는 “모천으로 헤엄쳐 가던, 수많은 연어나 송어”처럼 “신화도 말라버린 달력 속에 갇혀”버렸다. 나는 특별히 그의 등단작 ‘하모니카 부는 오빠’를 좋아한다. “하모니카 소리가 새어나오는/그 구멍들 속으로 시집가고 싶은 별들”을 찾아 밤하늘을 수없이 올려다본 적도 있다. 그러나 이 따뜻하고 유쾌한 시는 기어코 가슴에 강물을 들여놓고 만다. 그런 날이면 강심까지 숨을 견디며 자맥질해간다. 그의 시는 충분히 그래도 될 만큼 서늘하고 맑기 때문이다.

또 ‘신발’이라는 시를 좋아한다. “두 무릎 꿇고/내 이승과 하늘 별장도 모두 다 내맡기고 싶은 신들이,/현관에 버려져 내일을 기다리고 있다”는 마지막 연을 읽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깊은 숨을 몰아쉰다. 찬탄하기 위해서다. 나는 기다리기 위해서는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 시에서 배웠다. 우리에게 ‘내일’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의탁할 수 있는 ‘신발’의 쓸모에도 새롭게 눈을 떴다. 한 편의 시에서 두 가지, 세 가지를 깨우쳤으니 나는 그의 시에게 인생의 한 나절쯤을 빚진 셈이다.

이제 드는 생각이지만, 그는 제법 소란한 사람이기도 했다. 말수가 적은 대신 그의 눈빛은 늘 어딘가를 바쁘게 헤집어댔다. 구름과 꽃과 나무와 언덕과 국밥과 택시와 골목들이 그를 숱하게도 소란하게 했다. 그 소란을 끌어안고 그는 시를 썼다. 밤벌레가 “내 속에 들어와 알을 슬어놓”(‘밤벌레’)은 이야기도 “노을 한 냄비를/보글보글 끓여 내놓고 있”(‘가을햇볕’)는 가을 햇볕 이야기도 그렇게 썼다.

그렇지만 그의 시를 읽고 난 속내가 소란한 것을 두고 그를 탓할 생각은 없다. 이 무렵이면 일없이 소란할 뿐, 그래서 그의 시집을 펼칠 뿐, 그리고 소리 내어 읽어가는 것 뿐, 그저 그냥 그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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