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곤 논설위원
32년 전인 1988년 10월. 탈주범 지강헌 일당의 가정집 인질극이 TV로 전국에 생중계 됐다. 주동자인 그는 창문을 통해 피맺힌 목소리로 세상에 외쳤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다, 우리 법이 그렇다” 며 울분에 가득차 있었다. 말 그대로 돈 있으면 무죄로 풀려 나지만, 돈 없으면 유죄로 처벌 받는 것을 빗대 한 말이다. 국민 80% 가량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동의한다는 조사결과도 나와 주목을 끌기도 했다. 그 사건 이후 사법부와 검찰에 대한 불신을 상징하는 의미로 이 말이 지금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재벌총수 봐주기용 ‘3·5 법칙’도 있다. 실형을 면하기 위한 통과의례로 1심과 항소심에서 각각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 판결을 통해 구속을 피하거나 감옥에서 석방 된다는 뜻이다. 진위 여부는 차치하고 내로라하는 재벌총수 대부분이 실제 이런 룰에 따른 법 집행으로 국민들의 의구심을 자아냈다. 한술 더 떠‘집사 변호사’활동도 노골적이어서 따가운 눈총을 받은 건 물론이다. 교도소에 수감된 재벌이나 유력 정치인 등에게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해주는 변호사 들이다.
얼마 전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수사와 관련해 초호화 변호인단이 화제가 됐다. 20개월 가까이 수사가 진행되면서 수사팀 일원에 대한 1대1 맞춤형 변호사가 선임됐다는 설이 파다했다. 무려 350명이 넘는 변호사가 총동원 되다시피 한 것이다. 그 중 전북출신으로 전주지법원장을 지낸 한 승씨와 법무연수원장 출신 김희관씨가 눈에 띈다. 판사들의 신망이 두터운 한 변호사는 이 부회장의 구속여부 갈림길에서 키 플레이어 역할을, 김 변호사는 수사 총책임자인 이성윤 중앙지검장과 전주고 동기다.
최근 국감자료에서 밝혀진 검찰의 무리한 수사·기소 논란이 관심을 끌었다. 2016년 이후 올해 5월까지 구속됐다가 무죄로 풀려난 사람이 905명이나 된다. 해마다 평균 160명 이상이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다가 석방된 셈이다. 검찰이 과오를 인정한 경우는 14.4%이며, 이 중‘수사 미흡’으로 판단한 것이 52.7%로 가장 많다. 이에 못지않게 강압수사도 여론의 관심에서 비켜갈 수가 없다. 1999년과 2000년 발생한 삼례 나라슈퍼 살인사건과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이 대표적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억울한 옥살이를 한 끝에 결국 진범이 잡혀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신체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한 사람의 인권을 짓밟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법조계는 “구속은 엄격한 요건에서 최소한의 필요에 의해서만 이뤄져야 하는데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며 비뚤어진 수사관행에 일침을 놓았다. 수사 편의를 위한 구속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개인 인권이 그 어느 때보다 중시되는 요즘이다. 시대착오적인‘구속영장 남발’이 거론되는 현실이 마냥 안타까울 따름이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