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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명산, 회문산의 속살] ⑥명당자리가 있다?

회문산 정상에 서면 전북의 대표 산이라고 할 모악산 내장산 변산 지리산까지 사방으로 조망할 수 있다. 회문산 정상(큰지붕)까지 1시간이면 오를 수 있는 단거리 코스부터 연봉으로 이어진 능선 코스를 취향과 시간에 맞게 선택해 즐길 수 있다. 정상에 접근할 수 등산 시작점도 여러 곳이다. 이렇게 회문산은 등산객을 유인할 수 있는 여러 매력을 갖췄다. 그럼에도 회문산 등산객은 그리 많다. 회문산에서 등산객을 마주칠 때가 드물다. 배후지 인구수가 적고, 휴양림 외에 달리 편의시설을 갖추지 못한 이유가 클 게다. 인근 강천산과 경쟁에서 밀린 것도 원인일 수 있다.

회문산에서 등산객보다 더 눈에 많이 띄는 게 무덤이다. 산 사람의 산이 아닌 죽은 이들을 위한 산이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실제 회문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 바위가 있는 곳이면 위아래 좌우를 가리지 않고 무덤이 있다. 심지어 산 정상의 암반위에 억지로 만들어 놓은 무덤도 볼 수 있다. 낭떠러지 가까운 곳에 어떻게 흙을 옮겨 묘를 썼는지 신기할 정도다. 회문산 자락에 묻힌 무덤이 1000기 안팎으로 추산된다.

 

오선위기에 도선 국사까지 등장

이렇게 많은 묘가 회문산을 덮은 데는 오래 전부터 회문산에 명당자리가 있다고 전해지면서다. 대표적인 게 풍수지리의 대가인 홍성문 대사가 썼다고 전해지는 풍수가사 <회문산가> 다. 18세기 초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회문산가> 는 6~7개 혈(穴)을 소개하면서 특히 오선위기(五仙圍碁)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오선위기’에 묘를 쓰면 당대부터 발복하여 59대까지 갈 것이라는 예언을 곁들여서다. 이에 앞서 1600년대 활동한 분으로 알려진 일이승 스님은 산도(묫자리 그림)를 통해 회문산 오선위기와 함께 그 적합자로 배씨를 언급했다. 오선위기에 집착하는 풍수가 중에는 통일신라시대 풍수대가인 도선 국사까지 끌어들이기도 한다. 즉 도선의 풍수비기라는 <유산록> 순창편에 나오는 ‘선녀직금혈’(선녀가 베를 짜는 형상)을 일이승과 홍석문이 ‘오선위기’로 이름 붙였다는 것이다. 회문산 오선위기형 명당이 널리 회자된 계기는 증산교를 창시한 강증산에 의해서다. 강증산은 모악산과 회문산에서 ‘천지공사’(天地公事)가 펼쳐진다고 역설하면서 회문산에 24개 명당이 있고 그 중 오선위기형을 으뜸으로 꼽았다.

 

명당자리 놓고 의견 분분

이런 바탕 위에 오늘날에도 많은 풍수가들이 <회문산가> 의 ‘오선위기’를 금과옥조로 여기며 그 혈을 찾겠다고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오선위기 명당이 어떤 곳이기에 풍수가들이 여기에 꽂혀 있을까. 오선위기형은 다섯 가지 서로 다른 모양 산들이 둥글게 모인 형상을 말한다. 다섯 산의 가운데 바둑판을 두고 있는 형국이 오선위며, 풍수에서 아주 좋은 명당으로 여긴단다. 그러나 <회문산가> 에서 그 혈 자리가 구체적으로 지목되지 않아 풍수가들이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오선의 산이 어떤 산인지조차 의견이 분분하다. 주인격을 놓고도 회문산 큰지붕과 장군봉, 깃대봉 등으로 엇갈린다.

풍수지리의 대가인 홍성문 대사가 '회문산가'에 밝힌 명당인 '오선위기'터라며 풍수가 신남식씨가 지목한 터에서 풍수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오세림 기자
풍수지리의 대가인 홍성문 대사가 '회문산가'에 밝힌 명당인 '오선위기'터라며 풍수가 신남식씨가 지목한 터에서 풍수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오세림 기자

그럼에도 잊힐 만하면 오선위기혈을 찾았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근래만 해도 회문산 정상에서 1.3km에 위치한 문터바위를 지목한 이가 있고, 그 위‘천근월굴’에 혈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근 깃대봉 아래 능선에서 오선위기혈을 발견했다는 제보도 있었다. 풍수가이기도 한 제보자가 지목한 곳은 임실군 덕치면 일중리 마을 바로 위쪽으로, 회문산 마지막 파구(물이 빠져 나가는 곳) 지점과 닿아 있다. 제보자는 오선이라고 할 봉우리들이 둘러싸여 바람을 피할 수 있고, 단단히 물을 틀어막는 파구를 갖췄으며, 거북이 목이 죽 밀고 나오는 형상을 지니고 있단다. 여기에 오선위기에서 말하는 다섯 개 반석이 땅 밑에 감춰져 있었다는 설명을 곁들여 일이승이나 홍성문이 말하는 오선위기혈처라고 주장했다.

<회문산가> 에 의한 오선위기를 허구로 보는 견해도 많다. 풍수가 김성암은 “회문산가는 누군가가 도선 국사의 옥룡자 유산록에 있는 인근의 몇 혈처들을 찾아 모아 미사여구로 그저 재구성한 것에 불과하다”며, 회문산가에 의한 오선위기는 없다고 단언했다.(대한풍수지리연합회,‘회문산-오선위기 그리고 여러 혈들에 대한 세찰’).

 

풍수적으로 본 회문산

풍수가에 따르면 '풍수에서 물도 중요한 데, 회문산을 둘러싸고 물(치천)이 돌면서 유속을 떨어뜨려 명당에 필요한 조건을 갖췄다'고 한다. /사진 = 오세림 기자
풍수가에 따르면 '풍수에서 물도 중요한 데, 회문산을 둘러싸고 물(치천)이 돌면서 유속을 떨어뜨려 명당에 필요한 조건을 갖췄다'고 한다. /사진 = 오세림 기자

오선위기형을 떠나 풍수가들이 회문산에 명당자리가 많다고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임실에서 활동하는 풍수가 신남식씨(60, 식품가공업)는 “회문산은 특이하게 동서남북 큰 봉우리에서 분파된 혈들이 내려오면서 각기 좌청룡우백호로 혈을 맺어 그만큼 많은 혈을 품고 있고, 섬진강이 물을 막아 다른 곳으로 흩어지지 않게 기를 가둔다”고 했다. 풍수에서 물도 중요한 데, 회문산을 둘러싸고 물이 돌면서 유속을 떨어뜨려 명당에 필요한 조건을 갖췄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바위가 많은 것이 말해주듯 강한 기운의 산이어서 7부 능선 이상에서 혈을 찾기 힘들며 3부 능선 밑에 혈이 있다는 게 신 씨의 소견이다. 또 회문산에는 음기도 많아 피해볼 수 있는 곳도 많다며, 현재 산 능선 곳곳에 관리 되지 않는 사묘들이 그 예라고 덧붙였다. 높은 산에는 낮은 곳에, 낮은 산은 높은 곳에 혈이 있다는 풍수 원리를 벗어나 회문산 높은 곳만 찾는 것도 잘못됐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러나 순창 출신의 풍수학자 김두규 교수(우석대)는 회문산 명당에 대해 부정적이다. 김 교수는 “명산은 그 기의 응결이 대단히 강하기 때문에 하찮은 인간 유골 하나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크다”며, “명산과 영산에 명당이 없다는 철칙이 회문산에도 그대로 해당된다”고 했다. 또 “한국전쟁에서 수많은 젊은 목숨들을 앗아간 회문산은 악산이어서 음택이나 양택으로서 적절한 곳이 아니다”며, “더 이상 부질없이 조상 유골을 높은 산, 험한 곳, 바람 부는 곳, 음습한 곳, 잡초 우거진 곳에 내버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했다. (전북전통문화연구소 ‘순창지역의 풍수지리’)

 

풍수답사지로 좋은 관광자원

회문산에 위치한 임병찬 의병장의 묘 /사진 = 오세림 기자
회문산에 위치한 임병찬 의병장의 묘 /사진 = 오세림 기자

실증적으로 회문산 일대 명당자리로 큰 인물이 났다는 말은 풍수가들 사이에서도 회자되지 않는다. 다만 조선의 실학자 이재 황윤석 손자 묘가 만일사 위쪽에 자리하는데, 북한의 서열 안에 꼽히는 황병서가 그의 후손이라는 정도의 이야기가 나돈다. 명당 여부를 떠나 구한말 임병찬 의병장의 묘소가 큰지붕 아래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모셔져 있고, 조선인 최초 신부인 김대건 신부의 동생 묘가 정읍 산내쪽 회문산 기슭에 묻혀 있다. 회문산 명당을 거론했던 강증산과 관련한 선대 묘가 깃대봉 기슭에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회문산만이 아닌 순창에 명당이 많아 예부터 외지 세력가들이 묘지 명당을 많이 찾아 썼다. 그래서 ‘생거부안(남원) 사거순창’이라는 말이 보통명사가 될 정도다. 김두규 교수는 순창에 명당이 많아 풍수답사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만큼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묘지뿐 아니라 들판에 서 있는 석장승이나 남근석, 선돌, 정자, 전통 가옥, 서원, 향교, 사찰, 도시입지와 지명에 이르기까지 풍수와 관련된 명당들을 순창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복흥면 용지마을에 위치한 조선 성리학 대학자인 기정진의 할머니 묘, 복흥면 화용리와 쌍치면 보평마을에 있는 인촌 김성수의 9대조 묘와 증조모 묘, 복흥면 외양실에 있는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의 선조묘, 동계면의 ‘논두렁 명당’, 남원양씨 세거지인 동계면 구미리, 조선 최고의 정자 명당으로 꼽히는 귀래정, 팔덕면 산동리 남근석, 순창읍의 기울어진 진산을 바로잡기 위한 정자, 허한 쪽을 막아주기 위해 세운 순창읍 북쪽의 석장승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델을 갖고 있어 풍수지리의 산교육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봤다. 물 좋고 산 좋은 곳이 많은 순창인 만큼 ‘사거순창’이 아닌 ‘생거순창’으로 바뀌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다. /김원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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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자리가 있다? #전북명산 회문산의 속살 #전북일보 기획
김원용 kimwy@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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