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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기우 작가, 김여화 '운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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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강 표지/사진= 최기우 극작가 제공

섬진강은 물줄기가 지나는 마을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진안 백운에서는 백운강, 임실 관촌은 오원강, 순창은 적성강, 곡성은 순자강·압록강이다. 임실 운암을 흐르는 물은 지금 ‘옥정호’라고 불리는 호수 같은 강이 되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운암강이라고 부른다. 

옥정호는 1928년 섬진강 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위해 운암댐을 만들며 생긴 인공호수다. 1965년 대한민국 최초의 다목적댐인 섬진강댐이 완공되면서 호수는 더 넓어졌지만, 기존 운암댐과 함께 마을·농경지가 물에 잠기면서 수몰민들의 슬픈 사연은 깊어졌다. 옥정호 물은 더 서럽고 애틋해졌다. 

김여화(1954∼2023)의 장편소설 『운암강』(유월의나무·2015)은 강이 품은 숱한 곡절을 담았다. 작가는 섬진강댐 건설로 통째로 물에 잠겨야 했던 입석리 잿말(嶺村)을 배경으로 마을 사람들이 겪었던 사연을 구절구절 풀어 놓는다.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던 이야기,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았던 이야기, 강물에 묻어 버린 이야기들이다. 

"갑진년이 저무는 섣달그믐 그 밤이 지나면 을사년이 시작되는 정월의 초하루다. 때는 65년 2월 1일 일진은 정해를 맞는다. 잿말 사람들은 섣달에 한전 사무소로 삼삼오오 몰려가 그곳의 휴게실을 점령하고 하룻밤 묵어 연일 농성을 벌이고 열두 가지의 조건을 붙여 데모하였더니 경찰관들을 동원 강제 해산시키니 주모자를 색출한답시고 조사를 벌이고 뒤숭숭한 상태에서 새해를 맞는 감회는 남다르고. 이제 이곳 잿말에서 차례를 올리는 것으로는 마지막이다. 실로 500여 년 잿말이 생기고 나서부터 평화롭고 정말로 아름다운 국사봉과 강과 넓은 들이 있어 풍요로웠던 구성물 앞 마당벌 구름이 이번 설을 쇠고 나면 미구에 해가 가기 전에 수장되리라. 저 멀리 묵방산 넘어 자시라지는 해는 잿말 구성물 사람들의 이렇듯 의미 깊은, 아쉬운, 쓰리고 애리는 가슴을 알고나 있는지 무장무장 저 홀로 묵방산을 넘고 있다." (김여화의 소설 「운암강」 중에서)

잿말은 수몰되기 전까지 면사무소·파출소·초등학교가 있는 운암면 소재지였으며, 임실군의 동학농민혁명과 3·1독립만세운동의 중심이 되는 마을이었다. 전주최씨 집성촌으로 양요정을 지은 최응숙이 여생을 보낸 곳이며, 조선 시대에 진사를 12명이나 배출할 정도로 바르고 곧은 기운이 가득한 곳이었다. 마을 뒤에 있는 작고 낮은 산이 국사봉(475m)이라는 큰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섬진강댐 20년사』에 따르면 임실군 운암면·강진면·신평면·신덕면과 정읍시 산내면 5개 면 24개 마을 93㎢가 수몰됐고, 2,786세대 1만 9,851명의 이주민이 생겼다. 정부는 수몰민을 부안군 계화도와 경기도 반월로 이주했지만, 이주지 조성이 제때 되지 않아서 상당수 주민이 고향 가까운 곳으로 돌아왔다. 슬픔은 반복되었고 아우성은 커졌다. 그 소리를 놓치지 않은 이는 작가 김여화뿐이었다. 

올봄, 작가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수필집 『임실, 우리 마을 옛이야기』, 『그림이 있는 임실 이야기』, 『임실의 먹거리 이야기』, 어휘사전 『임실 사투리 어휘록』 등 그가 남긴 흔적은 온통 임실이다. 작가가 수몰민의 아픔을 잊지 않았던 것처럼 임실도 작가 김여화의 이름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최기우 극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했다. 희곡집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은행나무꽃>, <달릉개>, <이름을 부르는 시간>, 어린이희곡 <뽕뽕뽕 방귀쟁이 뽕 함마니>,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쿵푸 아니고 똥푸>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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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강 #섬진강 #옥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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