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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경옥 동화작가-아미나 루크먼 도슨 ‘프리워터’

늪지 너머에서 찾은 인간의 존엄

 

‘프리워터’ 표지/사진=교보문고

최근 2023년 뉴베리상과 코레타 스콧 킹 상을 동시에 수상한 『프리워터』라는 책을 읽었다. 노예 서사를 다룬 것이지만 어린이의 시선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흔히 흑인 노예에 대한 고전이라고 하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차이가 있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흑인 노예의 고통을 공론화하며 노예제 폐지론에 불을 지폈지만, 거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시혜의 대상이거나 인내만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프리워터』는 그 시선을 완전히 뒤집는다. 노예제라는 폭력 앞에서 ‘견디는 인간’이 아닌, 스스로 길을 내는 ‘투쟁하는 인간’의 서사를 보여준다. 소설은 노예 농장이라는 억압의 공간에서 시작해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늪지 속 공동체 프리워터로 이동하며 인간 존엄의 근원을 파헤친다.

『프리워터』는 18세기 미국 남부의 습지와 깊은 숲속으로 도망간 탈주 노예 공동체에서 영감을 받아서 쓴 이야기로, 열두 살 소년 호머와 동생 에이다의 눈을 통해 공포와 희망을 동시에 보여준다. 즉, 소설은 억압의 공간인 농장과 해방의 공간인 늪지라는 두 공간을 대비시킨다. 프리워터는 뱀과 악어가 득실거리고 발이 푹푹 빠지는 위험한 늪지다. 하지만 이런 가혹한 자연은 노예 사냥꾼인 추격자들로부터 지켜주는 천혜의 성이다.

노예 농장은 흑인을 사람이 아닌 재산으로 취급한다. 호머에게 허락된 것은 주인의 명령을 듣는 귀와 노동하는 손과 발뿐이다. 생각이나 감정은 사치이며 가족과의 유대마저도 주인의 기분에 따라 끊어진다. 탈주를 시작하는 사람들 대부분 가족과의 단절이 요인이다. 팔려나간 어린 자식이나 남편을 바라보며 목숨을 걸고 농장을 벗어난다.

반면 깊은 늪지 속에 숨겨진 프리워터라는 공동체는 단순히 숨어 지내는 공간이 아니다. 호머가 프리워터에서 목격하는 것은 단순히 살아내는 생존만이 아니다. 프리워터에서는 지시하거나 채찍을 휘두르고 겁을 주는 사람이 없다. 오직 지시하는 것은 늪지였고, 비가 내려 땅이 젖으면 집에 가라는 뜻이고, 흙이 마르고 안개가 걷히면 일을 하라는 뜻이다. 호머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나’를 위해 선택하는 삶을 배운다.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아이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웃고,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결정하는 행동은 농장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광경이다. 프리워터에서 누리는 자유가 단순히 속박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관계를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알게 된다.

호머는 프리워터에서 서서히 노예로서의 사고와 행동을 지워간다. 그래서 농장에 애나라는 노예를 데리러 갔다가 붙잡힌 엄마를 구하러 공포스러운 농장으로 향한다. 프리워터에서 주체적인 삶을 만들어가는 자유를 알게 되면서 혼자만의 자유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즉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지 않는 자유는 또 다른 고통이라는 걸 알게 된다.

호머가 어머니를 구출하러 가는 과정은 물리적 탈출을 넘어 정신적 해방처럼 보였다. 과거의 호머에게 농장은 도망쳐야 할 공포의 대상이었으나 이제 프리워터에서 얻은 용기를 품고 농장의 질서를 무너뜨리러 가는 전사인 셈이다. 이를 보면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억압적 시스템에 대항할 힘은 결국 타자에 대한 연대와 사랑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2023년에 뉴베리상을 받은 이유가 단순히 과거의 비극을 다루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현대인들은 물리적인 채찍은 마주하지 않지만 자본의 논리나 타인의 평가, 혹은 끊임없는 경쟁이라는 ‘현대판 농장’에 갇혀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프리워터 속에서 질문을 발견한다. 우리는 숨 가쁜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우리만의 늪지’가 있는가? 호머가 늪지에서 발견한 것은 자유를 향한 의지였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생존 전략이라고 여긴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게 소진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호머의 용기를 전해주고 싶다.

이경옥 동화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두번 째 짝>으로 등단했다. 이후 2019년 우수출판제작지원사업과 지난해 한국예술위원회 ‘문학나눔’에 선정됐으며, 2024년 안데르센상 창작동화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의 저서로는 <달려라, 달구!>, <집고양이 꼭지의 우연한 외출>,  <진짜 가족 맞아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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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어린이 #시선 #흑인 #늪지 #인간 #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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