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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큘럼으로 짜본 하네케 감독의 영화들

훌륭한 교사가 그 자체로 좋은 교육과정이라면, 하네케의 필모그라피는 충성도 높은 지프광들에게 괜찮은 커리큘럼이다. 내면의 심연을 고찰하는 커리큘럼으로서 하네케는 사실 친절한 교사는 아니지만, 피할 길 없다. 하네케는 불편하다. 때론 비관적이다. 그는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증상을 깨우지만 도덕과 교훈으로 가르치려 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제 지프에서 마주할 '성'과 '감독 미카엘 하네케'를 앞두고 예습이든 복습이든 시간표를 짜 본다. 이사벨 위페르의 도발을 보여준 '피아니스트'는 건너뛴다. 아래는 수준별 학습 커리큘럼.△ 교양 필수 '아무르'= 하네케는 '아무르'를 통해 선수만 알던 감독에서 민간인들도 제법 아는 선생이 되었다. 그러니 영감님의 심연 혹은 미궁 탐색은 아무래도 '아무르'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 그에게 두번째 황금종려상을 안긴 만큼, 명불허전이다. 안락한 조명의 거실에서 프레스토 16분음표의 섬세함을 표현하던 제자의 연주에 기쁨을 표현하던 할매가 이상하다. 경동맥이 막히는 질병이 도둑처럼 찾아온 것. 노인은 존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병은 깊어진다. 미동 없는 하네케의 카메라는 상호의존적이지만 독립적 존재인 독한 할머니의 심지를 닮았다. 반복되던 암전이 아예 어둠일 때, 관객들은 자신의 미래를 생각한다. 영화는 묻는다. 평생 사랑한 아내가 갑자기 '변신'의 벌레가 되어있는 상황에서 사랑의 가치는 무엇인가고. 고독사가 사회문제인 지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지만 노인의 세계는 있을 텐데. 죽음에 대한 준비는 100세 실손보험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 스스로 알아서 노년존재에 대해 고민하라는 것. △ 교양 선택 '하얀 리본'= 독일의 어느 작은 마을. 순수와 복종, 종교적 엄격함이 주는 불안하고 불쾌한 분위기를 다룬 '하얀 리본'에서 마을 아이들에게 닥쳐오는 끔찍한 폭행 뒤에는 공동체의 비밀이 도사리고 있다. 지역 토호인 남작의 권한 앞에 온 마을이 복종하고 아이들은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내세운 종교 앞에 순종하지만 사실 마을은 광기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침묵 속 아이의 눈을 도려낸 악마는 누구일까. 교사가 진실을 밝히려는 순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청년이 쏜 한 발의 총탄은 세계 제1차대전을 부르고 만다. 남작과 위선적 어른들의 폭력은 거대한 폭력 속에 묻히고 마는 것. 과연 우리는 아이들에게 하얀 리본을 매어주고 있지는 않은지. △ 전공 선택 '퍼니게임' '히든' '일곱 번째 대륙' = '퍼니게임' 감상은 고문에 속한다. 하네케 자신의 1997년 작품을 2007년 새롭게 복제한 리메이크작. 해질녘, 클래식이 흐르는 별장에 찾아온 잘 생긴 이놈들은 주인장의 다리를 부러뜨리는데, 글쎄, 악마는 흰색을 입는가? 제3세계를 찾아온 유럽인들이 그들은 아니었을까 유추하기엔, 섬뜩하다. 나사를 조이듯 벌어지는 이 레미제라블에 관객은 무력감에 빠진다. '히든'의 오프닝은 고정된 카메라다. 평화로운 중산층 주택가 화면에는 소리가 없다. 여기 갑자기 소리가 끼어들면서 화면이 리와인드된다. 조르쥬의 집에 자신들의 일상사를 찍은 비디오테이프와 섬뜩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긴 그림이 배달되는데. 테잎은 파도가 모래성을 흔들어대듯 부부간의 신뢰를 조금씩 무너뜨린다. 40년 넘게 어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며 응급의 봉합으로 살아온 조르쥬의 평온한 삶은 사실 프랑스의 치부인 것. 그래, 조르쥬는 '정신 승리' 방법으로 기억을 감추고 조작하는 현대 지식인들의 상징일 터. '일곱 번째 대륙'은 영감님의 데뷔작. 자동차 세차기 안 소음, 차고가 개폐되는 소리, 도트프린터가 뱉는 기계음, 식탁에서 저작하는 소리 등 이 영화는 소리 백화점이다.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 클로즈업으로 반복되면서 심하다 싶게 잘리는 암전의 시간들은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효과를 지닌다. △ 특강 혹은 과외 '성' = 궁금하다. 세 차례의 약혼을 모두 파국으로 끝낸, 보험국에서 일하다 폐결핵으로 죽은 남자 카프카. 그가 끝내 완성하지 못한 소설 '성'(城)을 영화화한 하네케의 '성'에서 그의 불확실성, 불안, 비이성은 어떻게 형상화될까? 하네케에 중독된 선수에게 오스트리아에서 두 달 전 개봉된 다큐는 아주 따끈따끈한 작품이 될 것이다. 둥글게 둥글게 손뼉을 치면서 환하게 웃으라고 매트릭스 운영자가 고함칠 때, 우리는 링가링가링 춤추는 시늉을 하며 극장에 간다. 왜? 하네케 커리큘럼을 마스터한 우리는, 이제 '선수'니까./영화평론가 신귀백

  • 영화·연극
  • 기고
  • 2013.05.01 23:02

리뷰 - '숏!숏!숏! 2013' 출품작

'센 놈! 조용한 놈! 재밌는 놈!'.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숏!숏!숏! 2013'에 초대된 이상우이진우박진성 박진성 감독의 영화를 압축하면 이렇다. '소설 영화와 만나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김영하 작가의 소설이 세 편의 단편영화로 새롭게 태어났다. 지난달 27일 전주 메가박스에서 상영된 이상우 감독의 '비상구', 박진성박진석 감독의 'THE BODY', 이진우 감독의 '번개와 춤을'. 이들은 모두 원작 소설을 선택한 배경에 대해 "소설을 읽자마자 한눈에 들어왔다. 일체의 고민도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일까. 감독들은 각각 개성 넘치는 세 편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빨강 파랑 노랑이 모여 하얀색을 만드는 것처럼 '숏!숏!숏! 2013' 프로젝트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숏!숏!숏! 2013'는 1일 오후 5시 전주 메가박스 10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센 놈' 이상우 감독, 원작에 충실 = 자칭타칭 '센 놈' 이상우 감독의 '비상구'는 원작의 느낌을 가장 충실하게 살렸다. '아버지는 개다', '엄마는 창녀다' 등 파격적인 작품을 선보이며 주목받았던 이 감독답게 원작도 그리고 영화 내용도 날 것 그대로였다. 신촌의 모텔에 거주하는 우현은 친구들과 뻑치기를 하거나 소일을 하며 보낸다. 아무런 미래도 없이 폭력과 섹스를 통해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사귀는 여자의 문신에 매번 관심을 보이며 화살표가 새겨진 그녀의 성기를 비상구라고 이름 붙인다. 우현은 여자친구에게 모욕을 준 남성을 찾아 죽이면서 경찰에 쫓기게 되고 탈출구 없는 거리로 뛰쳐나간다. 영화 내용만큼이나 주목받은 것은 배우 조윤희의 과감한 노출 장면. 이 감독은 "배우 섭외가 잘 안 돼 걱정했다. 작품상 마른 몸을 가진 여배우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조윤희씨가 망설였지만, 결국엔 출연에 응해줘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어 "조윤희씨가 '살이 많이 쪘기 때문에 노출해도 될까'하고 고민을 털어놨지만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며 "사실적인 영화를 그리고 싶었고 몸매 좋은 여배우가 옷을 벗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의 몸이 필요했다"고 덧붙였다.△'조용한 놈' 박진성 박진석 감독, 흑백으로 현실과 환상 교차= '비상구'에 이어 상영된 박진성 박진석 감독의 'THE BODY'. 영화는 잔잔한 호흡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며 비상구에서 빨라졌던 관객의 호흡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마지막 손님'을 각색한 이 작품은 원작 소설에는 없었던 후일담을 새롭게 등장시켜 흑백 화면에 담았다. 영화에서는 한 영화감독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젊은 부부 영선과 정수의 집을 방문한다. 정수의 집에는 촬영에 쓸 시체 모형이 놓여 있다. 가짜이긴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꺼림칙함을 주는 모형은 묘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이런 가운데 크리스마스 캐럴이 조용히 흐르는 거실과 바람이 거세게 부는 바닷가 모래톱이 교차한다. 영화는 현실과 환상을 교차시켜 일종의 판타지를 만들어 낸다. 박진석 감독은 "원작을 읽고 이게 영화로 만들어지면 흑백영화이겠거니 라고 생각했다. 소설에 보면 여중생(모형)의 몸이 흉측하게 묘사돼 있는데 왠지 컬러의 모습이 아니었다. 좀 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이런 느낌을 컬러로 옮기기에는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김영하도 "원작과는 다르게 후일담을 소개해 영화가 어디로 가나 싶었지만 나름 유쾌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잘 자아냈다"고 평했다. △'재밌는 놈' 이진우 감독, 코믹한 각색 즐거운 결말= 조용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는 코믹하게 마무리됐다. "원작소설 '피뢰침'은 무겁고 어두운 느낌이었고 단편으로 소화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이진우 감독은 '번개와 춤을'을 밝고 명랑하게 풀어냈다. 이 감독의 말대로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함을 선사했다. 연기학원 실장인 미정은 시계를 보면 소변이 마려운 이상한 병을 가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연히 벼락을 맞고 살아난 사람들의 모임을 알게 되고 모임의 리더인 동규와 번개를 찾아 여행에 나선다. 하지만 수차례 '번개 세례'를 받았다는 동규는 여행에서 처음으로 벼락을 맞으며 미정과 같은 병을 얻게 된다. 미정은 속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규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유쾌함의 압권은 마지막 장면. 영화는 두 주인공이 소변을 보며 사랑 고백을 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됐고 관객들은 폭소를 금치 못했다.

  • 영화·연극
  • 김정엽
  • 2013.05.01 23:02

"출입불허의 성(城) 불편한 진실 상징"

지난 27일 오후 8시 전주 메가박스 6관에서 열린 카프카(1883~1924) 특별전의 '성'(Castle)이 상영된 뒤 철학자 강신주(46)가 나타났다. 그가 토크 클래스에 응낙한 것은 이상용 프로그래머와의 친분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카프카에게 갖는 경외감이 그대로 묻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영화가 원작의 대사를 그대로 살린 데다 프리다의 역할을 제대로 조명해서다." 영화는 성의 측량기사로 임명된 주인공 'K'가 어느 마을로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K'는 성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답답하게 변죽만 울린다. 그 와중에 프리다의 유혹에 넘어가 사랑에 빠지면서 이야기는 엉키고 이 성에 측량기사가 과연 필요한지 의문이 증폭되다가 급작스레 마무리된다. 이 대목에서 강신주는 카프카의 생애로 관객들을 끌고 들어갔다. "카프카는 자기 문학도 하면서 작품을 팔아야 한다는 기존 작가들과눈 차원이 다른 작가였습니다. 당시 수입이 가장 좋았던 변호사였거든요. 결국 카프카에게 문학은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였습니다. 제발 좀 나를 버려줬으면 하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그런." 그래서 "들어오길 허락하지 않는 성의 주인은 카프카의 아버지이자 부패한 세계에 대한 상징"이다. 그는 대중문법을 통해 드러난 사실과 숨은 진실의 간극에 대해 존재론적 질문을 던졌다. 관객들은 평온하다고 착각했던 일상에서 느닷없이 따귀를 맞는 듯한 그의 질문에 때때로 멍해졌다. "여러분은 부모를 선택했나요, 아니죠. 그런데 선택하지도 않은 것에 왜 감사해할까요. 폭력을 상습적으로 당하는 자식들이 그래도 부모가 선하다고 믿는 건 왜 일까요. 그건 감사가 아니라 습관입니다." 카프카가 겪은 좌절감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착했던 게 성(性). 영화 속 프리다는 카프카를 유혹하며 "여길 떠나자"고 부추기지만, 그럴수록 'K'는 그 성에 들어가려고 기를 쓰면서 둘의 관계는 삐걱거리다 어긋난다. "수직적 관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출구가 바로 사랑"이라는 그의 통찰은 "두 번 파혼한 카프카의 삶이 여기에 반영 돼 있다"는 설명으로 이어졌댜.그는 결국 "이 작품은 성이 가까워졌나 싶으면 짓궂게 멀어지고 또 멀어졌나 하면 가까워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면서 "스스로도 40세가 넘어서야 이 소설이 제대로 읽혔다"고 털어놨다. "때때로 작품 읽기는 이해가 아닌 의지의 문제"라는 그의 고백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의지가 뒤늦게 생겼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여러분이 카프카의 작품을 이솝우화처럼 쉽게 읽는다면 우리 시대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 겁니다. 하지만 작품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애써 보고 싶지 않은 게 많다는 뜻과 같습니다." 그래서 카프카의 '성'은 무심결에 읽었다가, 봤다가 돌부리로 걸리는 그런 작품에 가깝다. 하여 보는 내내 불편하고 언짢지만,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바로 이 대목이 의도치 않게 드러난 카프카의 문학적 야심일 수 있겠다.

  • 영화·연극
  • 이화정
  • 2013.04.30 23:02

전주프로젝트프로모션 지원작 결정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전주프로젝트마켓의 메인 프로그램인 '전주프로젝트프로모션(JPP)' 지원작이 결정됐다. '극영화 피칭'과 '다큐멘터리 피칭'으로 나뉘어 열린 이번 프로모션은 심사위원이 뽑은 최우수상 1편과 관객투표 결과를 통해 선정된 관객상까지 각 부문 당 2편씩 무도 4편의 수상작을 선정했다. 최우수상에는 제작지원금 1천만원 및 (재)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사)전주영상위원회, (주)푸르모디티에서 지원하는 각종 지원혜택이 제공된다.참신한 기획력이 돋보이는 영화기획자를 발굴하기 위해 마련된 극영화 피칭에는 다양한 장르의 프로젝트가 경합을 벌인 끝에 김형옥 프로듀서의 '13계단'이 영예를 안았다. 극영화 피칭에 참석한 영화 관계자들의 투표로 뽑힌 관객상은 유쾌한 코미디를 그린 이창원 프로듀서의 '작은 형'에게 돌아갔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작 가능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마련된 다큐멘터리 피칭에는 가족, 환경, 연애 등 다양한 소재를 가진 다섯 프로젝트가 경합을 벌여 박혁지 감독의 '춘희막이'가 최우수상의 영예을 안았다. 관객상은 김기민 감독의 '우리는 홍리안'이 수상했다. 고석만 집행위원장은 "전주프로젝트프로모션 피칭 행사는 끝났지만, 전주프로젝트마켓은 5월 2일까지 인더스트리 서비스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영화 산업 관계자들과의 비즈니스를 강화하고, 한국영화의 해외 배급에 청사진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 영화·연극
  • 김정엽
  • 2013.04.30 23:02

작은 영화관의 성공 열쇠는

전국적으로 확산 예정인 전북발(發) '작은영화관'이 지역 커뮤니티 공간으로 거듭나려면 지역영상미디어센터와 연계해 시민들이 미디어를 생산·소통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소장 장낙인)와 서울영상미디어센터가 26일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전라북도의 지역 영상문화 발전과 지역민의 영화·영상 문화 향유권 강화 방안 모색'을 주제로 연 세미나에서 토론자 허경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사무국장은 전국 시·군 228곳 중 109곳이 영화관이 없는 지역 간 영화 관람의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전국적으로 모범 사례로 꼽히는 장수 한누리 시네마와 같이 100석 미만의 '작은 영화관'이 전국적으로 많이 생겨나야 한다는 토론자들의 주장에 공감했다. 이어 " '작은 영화관'이 최신 영화를 볼 수 있는 데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직접 영상물을 제작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되려면 '지역영상미디어센터'를 건립하거나 이와 비슷한 기능을 갖는 단체와 협력망을 구축해 활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작은 영화관'이 최신 영화만을 상영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운영 인력에 대한 예산 지원이 선결돼야 한다고 목소리도 제기됐다. 토론자 전병원 전북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은 "대기업 영화관이 전국 소도시에 영화관을 짓지 않는 것은 돈이 안 되기 때문"이라면서 "그런데 작은 영화관에서 대기업이 만드는 영화만 트는 것은 명분이 떨어지고, 장기적으로 한국 영화계에 독이 될 수 있다"고 반발했다. 전 국장은 이어 "전북에 영화관이 없는 8개 시군에 건립되는 영화관이 민간위탁이 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공간을 짓는 것 외에 운영 인력에 대한 예산 지원이 없다면 공공성은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경계했고, "작은 영화관이 지역영상미디어센터의 역할을 겸하는 '시네마테크' 등과 같은 과도한 역할을 부담시키는 것은 무리가 많다"고도 했다. 발제자 임노욱 전북도청 문화콘텐츠 담당자는 "작은 도서관 사업과 같이 새롭게 건립되는 작은 영화관에 문화코디네이터를 배치하는 계획이 중장기 방안에 있다"면서 "기존 상영관 보다 관람료가 50% 이상 싸게 제공되는 작은 영화관 관람료를 유지하려면 전국 단위의 협동조합을 만들어 배급사와 협상해 배급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발제자 최성은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 사무국장도 "작은 영화관이 성공하려면 지역미디어센터와 유기적인 네트워크가 구성될 수 있도록 전북도의 종합적인 장기적인 정책과 지원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지자체, 지역미디어센터 담당자가 전북에서 처음 가진 이번 세미나에서는 임노욱 전북도청 문화콘텐츠 담당자와 최성은 영시미 사무국장 외에 박병우 문화체육관광부 영상콘텐츠산업과장, 김보연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부장, 허경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사무국장, 전병원 전북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이주봉 군산대학교 유럽미디어문화학과 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 영화·연극
  • 김원용
  • 2013.04.29 23:02

"합리적 의심조차 없는게 문제"

"천안함 확신 못해 영화로 만들었다."뜨거웠다. 최근 남북관계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가운데 지난 27일 전주 메가박스에서 처음 공개된 '천안함 프로젝트'. 영화가 끝난 뒤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제작진들에게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정지영 감독은 "이 영화는 우리 사회의 소통 문제를 얘기하기 위해 만들었다. 힘 있는 자가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면 소통이 막힌다. 천안함 사건이 이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누구라도 이 사건에 대해 속 시원한 결론을 내렸다면 영화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고 제작 배경을 밝혔다. 백승우 감독도 "범인을 찾고자 하는 것처럼 천안함 사건에 대해 결론을 내리고자 만든 영화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비전문가는 접근조차 어려운 사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조차 국가관을 의심받아야 할 정도로 경직됐다. 이 문제는 언론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영화나 철학 문학계에서 풀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불편하고 귀찮은 일이 생겨도 존재의 이유가 있는 영화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외압은 없었나?", "다른 상영관에서 개봉할 계획이 있느냐?" 등 제작진을 걱정하는 질문을 던지며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일부 관객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한 관객은 "소통을 목적으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영화 내용은 갈등과 혼란만 더 가중시킨다"며 "아직 재판 중인 사건을 영화화해 한쪽의 주장만을 보여줘 국민의 판단이 흐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 감독은 "이 영화를 혼란으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소통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며 "영화에서처럼 합리적 의심조차 허락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이런 혼란조차도 없다"고 답했다. 다른 관객은 포털사이트 네이버 영화 평점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을 들며 "이는 보는 사람들이 혼란을 느꼈고 이로 인해 소통이 가로막히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백 감독은 "소통에 대한 이야기가 맞다. 관객이 1점이든 10점이든 각자의 판단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정부의 이야기는 이미 많이 거론됐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 영화·연극
  • 김정엽
  • 2013.04.29 23:02

'물음표' 마저 침몰…소통 부재를 꼬집다

정부의 천안함 사건 발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가 지난 27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개봉됐다.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등 민감한 문제를 연출해 주목 받은 정지영 감독이 제작을 맡고 백승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는 소통에 관한 이야기로 출발한다. 영화는 "합리적인 의문 제기조차도 북한과 관련되면 '왜?'라는 질문이 사라진다"며 천안함 사건에서 보여준 정부의 소통 부재를 지적한다. 이어 천안함 사건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아직 여러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 뒤 논란들을 하나하나 되짚는다.영화 전반부에서는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위원이었던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와 구조구난 전문가인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의혹을 제기한다. 이들은 천안함의 침몰 원인에 대해 좌초, 제3국 잠수함과 충돌 등의 가능성을 주장하며 여러 가지 근거를 내놓는다. 먼저 어뢰공격에 의한 침몰이라는 정부의 주장을 반박한다. 어뢰가 폭발했을 당시 해수면 온도가 상승해야 하는데 당시 국방부가 공개한 TOD(열상감시장비) 영상에는 온도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 제작진은 당시 수온이 낮고 조류가 강했다고 해도 어뢰 공격을 받은 주변 해역에서 10분 정도는 수온의 변화가 감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백 감독은 이종인 대표와 함께 인천 앞바다에서 직접 실험에 나선다. 쇠붙이를 340도까지 가열해 바다에 담갔다가 뺀 뒤 주변 해역의 온도변화를 TOD카메라로 관찰한다. 실험 결과 10분이 지난 뒤에도 달궈진 쇠붙이로 인해 상승한 주변 바닷가의 수온은 크게 변하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또 어뢰 추진체에서 발견된 참가리비가 서해안에서는 잡히지 않고 동해안에서만 잡힌다는 점을 들어 어뢰 공격에 의한 침몰 가능성에 물음표를 단다. 이어 '그렇다면 천안함은 왜 침몰을 했는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천안함 바닥이 긁힌 자국과 프로펠러가 휘어진 모습 등을 근거로 천안함이 백령도 인근 해역의 암초와 충돌하며 좌초하던 중 또 다른 암초에 걸려 배가 두 동강 났다는 것. 신상철 대표는 TOD영상과 함미와 함수에 설치된 부표 외에 제3의 부표 등을 근거로 들면서 좌초된 천안함이 표류하다 제3국의 잠수함과 충돌해 두 동강이 났다고 주장한다. 영화 후반부에서는 의혹을 제기한 신상철 대표와 그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해군과의 법정공방을 재구성해 보여준다. 공판 과정에서는 해군 등 국방부 관계자들이 증인으로 출석해 피고 측 변호사의 질문에 답한다. 하지만 변호사의 질문에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며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조차 어려운 과정이 그려진다. 또 신 대표를 고소한 해군 등 국방부 측이 오히려 피고인처럼 심문을 당하는 듯한 모습도 연출됐다. 영화는 "정부의 발표를 신뢰하지만 직접 보지 않았기에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던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낙마한 것을 예로 들며 북한과 관련된 이야기만큼은 의심을 허락치 않는 사회적 분위기 즉 소통의 부재를 이야기하며 마무리된다.

  • 영화·연극
  • 김정엽
  • 2013.04.29 23:02

정우성 "감독 데뷔 꿈 늘 간직하고 있다"

(전주=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감독 데뷔는 늘 꿈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되겠다고 얘기하는 건 무의미한 것 같아요."배우 정우성은 26일 전주 영화제작소에서 열린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심사위원 기자회견에서 감독 데뷔 계획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그는 이 부문에 카자흐스탄 출신 감독 다레잔 오미르바예프, 미국 코넬대 교수인 돈 프레드릭슨, 류승완 감독과 함께 4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그가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을 맡은 건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두 번째다.그는 "전주영화제는 이번이 처음이고 그동안 참여할 기회를 놓쳤는데 이번에 심사위원 자격으로 처음 참여하게 돼서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오늘 두 편의 영화를 봤는데 흥미로운 소재를 다룬 영화들이었고 앞으로 볼 영화들에 기대도 크다"고 소감을 말했다.또 독립예술영화를 주로 소개하는 전주영화제의 특성과 관련해 평소 이런 영화들을 얼마나 보느냐는 질문에는 "독립영화는 솔직히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제 심사를 하면서 흔히 접할 수 없는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인 것 같다"고 답했다.그는 "작년 부산에서도 그렇고 전주에서 여러 영화를 만나면서 이 시간이 값진 시간이란 걸 느꼈다"며 "상업영화의 전형적인 연기 말고 파격적인 표현들을 자주 보게 돼서 연기를 좀더 폭넓게 바라볼 기회가 된다"고 덧붙였다.심사 기준으로는 "아무래도 배우이다 보니까 좀더 관객 쪽에 다가가려는 의식이 크다. 새로움을 위한 새로운 영화보다는 새롭고도 진실한 표현방식이 좋다. 표현방식이 서투를 수도 있지만 진실한 목소리가 느껴지는 주제나 그런 표현이 있는 영화를 선택하겠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물음표를 던질 수 있고 그 질문에 대한 생각을 한번 더 할 수 있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전날 개막식에서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영화를 뽑겠다"고 말한 류승완 감독은 이와 관련한 질문에 "영화를 보다가 그동안 잘 못 봤던 표현형식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고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인물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고 어떤 진지한 의문을 갖게 되는 것도 재미있다. 단순히 낄낄대거나 오락영화를 대할 때의 재미뿐 아니라 좀 더 포괄적인 재미를 얘기한 것"이라고 부연 설명하며 "본질적으론 마음이 동하는 영화에 표를 주지 않을까 싶다"고 답했다.다레잔 오미르바예프 감독은 "전주영화제는 다른 영화제와 달리 독립예술영화를 많이 다루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주영화제의 정신을 살려 독립영화나 작가정신이 투철한 영화들을 중점으로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돈 프레드릭슨 교수는 "인간 의식의 부패와 거짓을 어떻게 감독들이 잘 표현하는가, 또는 깨트리는가를 중점에 두고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 영화·연극
  • 연합
  • 2013.04.26 23:02

주말 상영작

SO = 한국소리문화의전당, CB = 전북대 삼성문화회관, DC = 디지털독립영화관, M = 메가박스, J = 전주시네마타운, C = CGV, GV = 게스트와 관객과의 만남.◇4월 26일△오전 10시30분 =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단편1 극영화 M4, 그로기 썸머 M8△오전 11시 = 아자가사미의 말 CB, 눈물과 웃음의 베오그라드 안내서 M6, 할머니 맘보 M7, 디셈버 M10, 행복한 시한부 인생 C.△오후 1시 = 하얀 흑인 소년 M4, 영화보다 낯선 단편1 M8.△오후 2시 = 두 남자의 하늘 CB, 플래시백 메모리즈 3D M6, 미친년들 M7(GV), 힘내세요 병헌씨 M10, 낯선 하늘 J1, 야생의 아이들 C.△오후 2시30분 = 파파로티 M5(GV), 리틀 페레스트로이카 M9, 문 라이더 J5.△오후 3시30분 = 어머니들 M4(GV), 안녕 유지 M8.△오후 5시 = 디지털 삼인삼색 CB, 가라오케 걸 M6(GV), 성 M7, 파라다이스:신념 M10, 굿바이 모로코 J1, 돌아올 거야 C.△오후 5시30분 = 마이 플레이스 M5(GV),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단편2 애니메이션 M9, 인 블룸 J5.△오후 6시 = 깃털 M4(GV), 서칭 포 빌 M8.△오후 8시 = 폭스파이어 CB, 춤추는 여자 M6(GV), 1+8 M7(GV), 샤히드 M10(GV), 물새들 J1, 양귀비 밭 C.△오후 8시30분 = 범죄소년 M5(GV),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단편3 클레르몽페랑 M9, 델리의 하루 J5.△오후 9시 = 써클즈 M4, 전주곡+첼로 M8.◇4월 27일△오전 10시30분 = 센트로 히스토리코 M4, 영화보다 낯선 단편2 M8.△오전 11시 = 우리의 교환일기 CB, 레바논 감정 M6, 카프카는 누구인가 M7, 51+ M10(GV), 낯선 하늘 J1, 하유타와 벨의 마지막 장 C.△오전 11시30분 = 어머니들 M5(GV), 스트레인진 리틀 캣 J5.△오후 1시 = 한국단편경쟁4 M4, 침묵의 방문자들 M8.△오후 2시 = 미소는 나의 것 CB, 맘메이 아저씨 M6(GV), 해리 결혼하다 M7(GV), 숏!숏!숏! 2013 M10(GV), 계급관계 J1, 나의 독일인 친구 C(GV).△오후 2시30분 =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 단편 M5(GV), 마테호른 J5.△오후 3시 = 한국단편경쟁3 M4, 영화보다 낯선 단편3 M8.△오후 5시 = 까미티 CB, 항해 M6, 비 에이 패스 M7, 용문 M10(GV), 파괴된 낙원 J1(GV), 에브리데이 C.△오후 5시30분 = 꿈꾸는 자들 M5, 사랑해 홍합 J5.△오후 6시 = 천안함프로젝트 M4(GV), 환생의 주일 M8(GV).△오후 8시 = 마스터 CB, 환상속의 그대 M6(GV), 아메리카 M7, 가리봉 M10(GV), 아자가사미의 말 J1, 지젝의 기묘한 이데올로기 강의 C(GV)△오후 8시30분 = 오빠가 돌아왔다 M5(GV), 모바일 홈 J5.△오후 9시 = 전설의 주먹 M4(GV), 티토와 함께 M8. ◇4월 28일△오전 10시30분 = 관성 M4, 츠베탕카 M8.△오전 11시 = 묻지마 사랑 CB, 빅보이 M6(GV), 한국단편경쟁1 M7, 파라다이스:신념 M10, 물새들 J1, 소냐와 황소 C.△오전 11시30분 = 청소년 특별전:유스보이스1 M5(GV), 날 내버려 둬 J5.△오후 1시 = 연소 석방 폭발 대적할 이가 없는 M4(GV), 그로기 썸머 M8(GV).△오후 2시 = 어쨌든 존은 죽는다 CB, 눈물과 웃음의 베오그라드 안내서 M6(GV), 젊은 사형수의 경우 M7, 디지털 삼인삼색 M10(GV), 굿바이 모로코 J1, F5 C(GV).△오후 2시30분 = 청소년 특별전:유스보이스2 M5(GV), 오르탕스를 찾아서 J5.△오후 3시 = 디셈버 M4(GV), 타협 M8.△오후 5시 = 루나시 CB, 5년 M6(GV), 그리고 다섯 번째 마부는 두렵다 M7, 할매-시멘트정원 M10(GV), 돌격 라토르 J1, 내 심장이 멈추기 전에 C.△오후 5시30분 = 한국단편경쟁2 M5, 감독 미하엘 하네케 J5.△오후 6시 = 버닝 붓다맨 M4(GV), 전쟁과 한 여자 M8.△오후 8시 = 숏!숏!숏! 2013 CB, 성 M6(GV), 빌레가스 M7, 미친년들 M10(GV), 폭스파이어 J1(GV), 말하는 건축 시티:홀 C(GV), 카프카 특별전 단편 DC.△오후 8시30분 = 미스 러블리 M5, 센트로 히스토리코 J5.△오후 9시 = 신세계 M4(GV), 이상한 루카스 M8(GV).

  • 영화·연극
  • 김정엽
  • 2013.04.26 23:02

호흡 조절로 녹여낸 '소녀들의 반란'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폭스파이어(FOXFIRE)'는 주인공 '메디'를 통해 기존 사회 질서에 반기를 드는 소녀들의 이야기다. 메디는 소녀들이 조직한 갱단 폭스파이어의 일원으로 날짜, 장소, 시간 등 육하원칙에 따라 갱단의 역사를 담담히 기록한다. 메디가 기록한 첫 번째 사건은 폭스파이어의 리더인 렉시와 자신들을 억압하는 것에 대해 반항키로 마음먹는 장면이다. 메디는 "이 날이 '어쩌면' 폭스파이어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폭스파이어가 결성된 계기는 동급생인 리타의 성폭행 사건. 소녀들은 갱단을 조직하기 전 수동적인 삶을 살며 '느린' 호흡으로 살아 왔다. 하지만 자신들을 억압했던 남성에게 복수를 가하면서 폭주 기관차처럼 달린다. 급기야 차를 훔쳐 해방감을 만끽하던 중 경찰과 추격전을 벌이다 사고를 당한다. 브레이크가 없을 것 같았던 이들의 질주는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 질서의 상징인 경찰에 의해 멈추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리더인 렉시가 교도소에 가게 된다. 리더를 잃은 폭스파이어 구성원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러면서 영화의 호흡은 다시 느려진다. '기록자' 메디는 이때의 상황을 "아무것도 기록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느리게 가던 시간은 렉시의 출감으로 다시 빨라진다. 렉시는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를 꿈꾼다. 그리고 돈을 모아 시골에 한적한 집을 구입한다. 폭스파이어 맴버들은 이곳에 모여 그들만의 세상을 꿈꾼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은 쉽게 오지 않는다. 부풀었던 꿈은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 앞에 무기력해진다. 그들만의 리그는 구성원들 간의 다툼으로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렉시는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다시 남성들을 겨냥한다. 남성들을 유혹해 돈을 벌기 시작하는 것으로 이들의 폭주는 다시 시작된다. 하지만 렉시가 감옥에 가기 전의 '유쾌한 폭주'가 아니다.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벌이는 '위험한 질주'가 돼버린 것.렉시는 재벌 납치극을 꾸미며 폭주의 종국으로 치닫는다. 메디는 이때 폭스파이어에서 탈퇴하며 "어디서부터가 폭스파이어의 시작인지 알 수가 없다"고 말한다. 납치한 재벌의 죽음으로 이들의 폭주는 멈추고 렉시는 홀연히 사라진다. 영화의 모호한 결론은 로랑 캉테 감독의 이야기 방식과 맞닿아 있다. 그는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고 부조리에 대한 저항을 다룬 영화를 많이 찍어왔다. 조이스 캐롤 오츠의 소설을 선정하게 된 이유는 기존에 하던 작품 성향과 비슷한 것도 있지만 정치적인 면을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고서도 그 시대가 가지고 있는 강한 내러티브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국 1950년대 미국의 소녀들이 겪은 사회적 억압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관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영화·연극
  • 김정엽
  • 2013.04.26 23:02

올해 최고 영화 가린다, 전대상·우석상 주인공은?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 고석만4월25일~5월3일)의 필사의 탐독은 단연 '국제경쟁'이다. '국제경쟁'은 세계 각국에서 걸출한 영화적 가능성을 가늠하는 신인 감독들의 화제작 10편을 상영하는 섹션. 새로운 질문을 던져 낯설고 매혹적인 경향을 탐독하길 권하는 1편의 다큐멘터리와 9편의 극영화가 초청됐다. 올해 최고의 영화에 수여되는 '전대상'(2000만원전북대 후원)과 '우석상'(1000만원우석대 후원)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올해 초청작 주제는 사랑과 상처, 생명과 죽음으로 요약된다. 일단 도발적 제목의 '미친년들'(감독 드류 토비아)이 눈길을 끈다. 알코올 중독자인 엄마 메이, 레즈비언 첫째 딸 요르단, 언제나 좌불안석인 그러나 임신까지 한 둘째 딸 모나가 삼각관계를 이루며 사랑과 저주를 오가는 애증의 바닥을 보여주는 블랙 코미디. 네 커플을 통해 예술과 정치 이야기까지 아우르는 퍼즐 맞추기를 시도한 '눈물과 웃음의 베오그라드 안내서'(감독 보얀 불레티치)도 유쾌하다.실화에 바탕을 둔 '5년'(감독 슈테판 샬러)은 5년간 관타나모 수용소에 감금된 한 남자를 보여주는 묵직한 영화. 911 사태 이후 테러리스트로 감금된 그는 수용소의 억압된 상황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묵살하는 폭력성을 보여준다. '5년' 못지 않게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킬 '어머니들'(감독 쉬 후이 징)은 중국 정부가 산아 제한을 위해 낙태피임을 권하는 정책 수행자들과 피해자들의 아이러니를 좇아가는 다큐멘터리.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엄마로부터 딸을 지키고픈 아버지와 성장통을 겪는 루시의 이야기를 다룬 '파괴된 낙원'(감독 이브 드부아즈)이나 가족으로부터 학대 받은 사이코가 살고 있는 위탁시설을 벗어나기 위해 한 소년과의 동행을 소재로 삼은 '깃털'(감독 오자와 마사토)은 그나마 비슷한 부류다.살 권리가 아닌 죽을 권리에 관한 화두를 던지는 '맘메이 아저씨'(감독 드웨인 발타자르)나 꿈 속에 나타난 배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담은 '항해'(감독 엘리프 레피으), 옛 연인이 입원했다는 소식에 간호를 하면서도 그와 나눈 사랑의 기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관성'(감독 이사벨 무뇨스 코타) 역시 독특하다. 전주영화제를 찾은 배우 사 사티준이 열연한 '가라오케 걸'(감독 비스라 비칫 바다칸)은 가라오케에서 일하는 주인공의 절망적이고 무기력한 삶을 극과 다큐의 경계를 오가며 전한다.

  • 영화·연극
  • 이화정
  • 2013.04.26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