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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계 '작은 거인' 익산국악원장 임 화 영 명창 "제자 양성 주력… 스승 은혜에 보답"

어르신들이 모이는 행사장이면 빠지지 않는 우리 소리와 어깨춤. 멋들어진 춤 실력이나 어려운 가사를 몰라도 들려오는 우리 소리에 손과 어깨를 리듬에 맞춰 흔들면 모두가 실력 있는 전통춤의 댄서가 된다. 특히 이런 모습이 자주 연출되는 익산지역에는 50년이 넘는 익산국악원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1953년 이리국악원으로 출범해 우여곡절을 거치며 익산국악원으로 어렵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곳에선 지금도 끊이지 않고 시원한 목청의 우리 소리와 가야금, 북소리를 들을 수 있다. 꺼져가는 등불을 다시 환히 밝혀가고 있는 '작은 체구의 국악 거인' 익산국악원장 임화영 명창(50)을 만났다.-국악과 어떻게 연을 맺게 되었나요?△익산에서 태어나 군산으로 이사 간 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우연히 동네 공터와 천막을 치고 공연을 하는 유랑극단을 보게 된 때부터인 듯합니다. 당시 창극위주의 공연에서 장화홍련, 호동왕자, 사도세자 등을 선보였는데 사도세자가 갇혀있는 장면을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지금도 당시가 생생합니다. 3년정도 저희 집에 머물던 소리꾼의 북소리와 장구소리도 국악과 연을 맺게 한 인연들이었던 것 같습니다.-임 명창은 초졸(초등학교 졸업)대학교수로 알려져 있습니다.△어려서부터 국악에 웃고 울었지만 가정형편이 좋지 못해 학교조차 제대로 다니지 못했습니다. 2남7녀 중 7째인 저는 언니가 중학교에 입학한 뒤 더욱 어려워 진 가정형편에 중학교 진학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몇날며칠을 울다 지쳐 잠이 들며 부모님께 투정을 부렸고, 그렇게 아픈 상처가 마음속에 몽우리 졌습니다. 어린나이에 고무신공장에서, 가정부로, 가발공장으로, 남들의 학창시절을 저는 그렇게 보냈습니다. 20살에 친구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결혼했지만 생활고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익산으로 이사와 시장통을 지나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인근의 최란수 국악원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운명이 바뀌었던 것 같습니다.-명창 반열에 오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셨나요?△처음 최란수 국악원에 다니며 학원비가 없어 두 달 만에 그만뒀습니다. 그 후 온몸이 아파 병원을 연연하다가 다시 한 번 국악원에 가보라는 남편의 권유에 씻은 듯 나았습니다.이 후 1년여의 시간이 지난 뒤 고인이 되신 성운선 선생님을 만나게 됐고, 민요와 토막소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성 선생님은 다시 이일주 선생님을 소개해 주셨고, 당시 가진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결혼반지와 목걸이 팔찌 등 모은 것을 모두 팔아 91년 드디어 전주로 본격 공부를 하러 다니게 되었습니다. 늦깎이로 시작하면서 가진 모든 열정을 불태운다는 마음가짐으로 공부했고, 익산국악원과도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공석이 된 익산국악원 판소리 선생이 되면서 공부하는 선생이 되기로 마음먹기도 했습니다.95년부터 심청가 완창과 97년 흥부가 완창발표를 하면서 주부가 아닌 소리꾼으로 대접받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97년 적벽가 완창, 200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이수자로 지정받았지만 명창 반열에 오르기 위한 필수인 대통령상이 빠졌었습니다.2001년부터 대통령상에 도전장을 수없이 내밀었지만 본선진출에서 고배를 마신 뒤, 2005년 최우수상까지 가능했습니다. 마지막이라며 도전한 2007년 춘향국악대전 판소리 명창부문에서 꿈꿔온 대통령상을 거머쥐게 됐습니다.-국악가족으로도 유명합니다.△국악과 저의 인연은 가족으로 확대된 셈입니다. 남동생 임청현 고수는 전북도립국악원 교수로 제직하고 있고, 장남 송세운은 남원국립민속국악원 창극단원으로 활동하며 소리꾼이자 고수 두 부문에서 장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전북대 국악과에서 거문고를 전공한 둘째 송세엽은 익산국악원 거문고 강사로 활동하며, 경비 절감을 위해 무급 사무국장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친조카 임세미도 국립남도국악원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제2의 인생을 살고계신 지금은 만족하십니까?△이 모든 일이 꿈만 같다고 할까요. 정말 수없이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부족하지만 명창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받은 만큼은 안 되겠지만 가진 모든 것을 후배들을 위해 쏟아내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인지 4번의 전북교육감상과 전북도지사 상 등 9번의 지도자상이 가장 자랑스럽습니다. 특히 누구보다 가난을 겪어봤기에 주변을 돕고 싶은 마음입니다. -익산국악원장으로 1년여가 지났습니다. 앞으로 계획은?△우선 훌륭한 제자들이 많이 배출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익산을 넘어 전국에 국악이 널리 퍼졌으면 하는 거죠. 특히 실력 있는 국악인들이 어려운 생활고 때문에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없도록 하고 싶은 소망입니다.익산국악원장으로 익산지역에도 국악과 관련된 많은 일들이 꾸준히 전개되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 기획
  • 김진만
  • 2011.12.26 23:02

임화영 명창 프로필

△1986년 12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최란수 선생께 판소리 흥보가, 수궁가 사사△1987 4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성운선 선생께 춘향가 사사△1991년 10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이일주 선생께 판소리 심청가 , 흥보가 사사△1995년 3월 판소리 동초제 심청가 완창 발표△1997년 3월 판소리 동초제 흥보가 완창 발표△1997년 5월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오정숙선생께 판소리 춘향가, 적벽가 사사△1999년 5월 제7회 청소년 문화 한마음 대축제 지도자 표창장 수여 (문화관광부장관 표창)△1999년 5월 판소리 동초제 적벽가 완창 발표△ 2000년 3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춘향가 이수△ 2001년 5월 제11회 군산 전국학생 판소리경연대회 지도자상 수상△ 2003년 최우수지도자상(문화관광부장관)△ 2004년 정읍 전국 국악 경연 대회 지도자상 수상△ 2005년 제32회춘향국악대전 판소리명창부 최우수상△ 2006년 남원 춘향국악대전 판소리 명창부 우수상△ 2007년 남원 춘향국악대전 판소리명창부 대상(대통령상)수상△ 2008년 지도자상 수여 (26회 전국국악대전)△ 2009년 3월 (사)한국국악협회 익산지부 지부장 겸 익산국악원원장△ 201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성우향(판례) 춘향가 이수자 지정△ 현재 (사)익산국악진흥원원장 겸 (사)한국국악협회 익산지부 지부장 △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춘향가 동초제 이수자△ 우석대학교 국악과 출강△ 남원국악예술고등학교 출강△ 원광대학교 국악과 초빙교수△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춘향가 김세종제 이수자

  • 기획
  • 김진만
  • 2011.12.26 23:02

임화영 명창은

임화영은 익산시 웅포면 고창리에서 2남7녀 중 7째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생활 속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어려서부터 공장에서 일하며 언니, 오빠, 동생의 학비를 보탰다. 어린나이이긴 하지만 객지에서 힘든 공장생활을 하며 만난 지금의 남편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도 잠시. 건설 일을 하던 남편도 급격히 안 좋은 경기 탓에 어려운 형편은 낳아지지 않았다.힘든 생활 속에 환한 빛처럼 다가온 소리는 임화영에게 한줄기 희망이었다. 하지만 국악도 생활고를 뛰어넘어야 가능하다는 걸 알면서 희망을 잃고 앓아누웠다. 보다 못한 남편이 국악원의 학원비를 보태면서 밤낮 가리지 않고 몰두하는 열정을 보였고, 얼마 되지 않는 가진 것을 모두 털어 국악공부에 바쳤다.수많은 스승과 인연을 맺으며 "죽어도 잊지 못할 은혜를 입었다"는 임 명창은 그렇게 지금의 명창반열에 올랐다.작은 키에 몸집도 작아 소리가 어디에서 나올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소리 하나는 타고 났다는 스승님들의 평가 속에 그의 열정이 보태졌다.그는 "머리를 뽑아 신을 삼아드려도 다 못 갚을 은혜를 스승님들께 입었다"면서 "스승님들께 받은 은혜를 후진 양성에 쏟아낼 계획이다"고 말했다.

  • 기획
  • 김진만
  • 2011.12.26 23:02

“학생 인권·교사 교권·학부모 참여권 모두 존중받는 ‘학교 인권조례’ 적합”

도내 교육의 황폐화와 학력저하에서 벗어나 과거 명성을 떨쳤던 전북 교육의 본연의 모습을 찾기 위해 30년의 공직생활을 뒤로 한 채 지난 2007년부터 후학 양성에 몰두해 온 이승우(55) 군장대학 총장. 내무부와 대통령 비서실, 순창군수, 전라북도 기획관리실장과 정무부지사 등 화려한 경력의 행정 전문가로 통했던 이 총장이 고향 군산으로 돌아와 군장대학과 군산 중앙중·고등학교를 운영하는 교육자로 변신해 지역인재 양성과 전북 교육의 부활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도내 영어 학력 전국 꼴지 수준’이라는 지난 5일자 본보 보도를 계기로 도내 교육 경쟁력 회복을 통해 전라북도의 미래를 담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전북 교육현안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승우 총장을 만났다.-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학생 인권조례’에 대한 생각과 대안은 무엇입니까?△교육은 교육자의 사명감과 열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같은 열정이 왜곡되고 일방적으로 매도된다면 단순한 지식 전달마저도 어려운 상황을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자가 잘못된 길을 갈 때 바로 잡을 수 있는 최소한의 교권마저도 제도적으로 제한해서는 안됩니다. 교육 구성원 중 어느 한쪽만으로 치우치는 제도는 자칫 교육현장에서 파행을 가져올 수 있는 만큼, 학생 뿐 아니라 교사와 학부모 등 교육 구성원 모두의 인권이 보장되는 ‘학교 인권조례’가 적합합니다. 학생의 인권은 학생에게 주어진 권한이 아니라 보호되고 육성되기 위해 지켜져야 할 권리임에도 학생 인권만 강조될 경우 자칫 교육현장의 주체인 교사들이 방관자 입장으로 내몰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학생의 인권, 교사의 교권, 학부모의 참여권이 모두 존중받는 ‘학교 인권조례’ 제정이 적합합니다. 좋은 예로 강원도교육청 등도 교사의 교권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권리를 아우를 수 있도록 인권 조례의 범위를 확대한 ‘학교 인권조례’ 제정을 추진 중입니다. 전북도교육청도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교권이 상충되는 부분에 대해 공청회 등을 거쳐 문제점을 최소화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접점을 찾아내 ’학교 인권조례’ 로 추진돼야 합니다. 방안으로 도내 14개 시·군을 순회하는 가칭 ‘교원 콘서트’ 등을 통한 토론의 장을 마련해 학생 인권뿐 아니라 교사가 자율적으로 교과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교권을 보장하고 학부모도 학교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인 틀을 만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전북교육이 학생의 권한만을 강조한 인권조례를 만들기에 몰두하고 학생능력의 수월성 제고를 포기한다면 황폐화는 가속화 되고 꼴찌를 면할 수 없습니다.-교육환경이 지역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행정가 시절 느끼신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교육이 지역의 발전과 경제 활성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실제로 1992년 36살의 한창 나이에 순창군수로 부임해 군정을 이끌던 시절 겪은 일화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중앙부처에만 근무하다 처음 지방으로 부임해 농업 중심이던 순창에 ‘순창고추장 특산단지’ 조성을 추진하는 등 부가가치를 높이고 지역경제 활성화 기틀을 마련했는데, 인구가 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주된 이유를 따져 보니 소득이 없어서가 아니고 고교 평준화로 인해 학생들이 중학교 시절부터 전주나 광주로 빠져 나가면서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화가 나 청와대 김하진 교육비서관에게 쫓아가 “그동안 순창중학교를 졸업하고 전주나 광주의 고등학교로 시험을 봤는데, 평준화 되면서 중학교 때부터 그 지역에서 다니는 바람에 인구가 빠져 나간다”고 따졌습니다. 그 지역 고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중학교부터 그곳에서 다녀야 하기 때문에 자녀들을 어릴 때부터 이사보내고 결국 고추장 업자들이 부인까지 보내더니 출퇴근하다 결국 주소를 옮겨 갔습니다. 당시 경험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아무리 노력해도 교육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요원하다는 것을 실감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때부터 명문학교 육성이 단지 교육적 측면만이 아니라 지역경제는 물론 그 지역 사람들의 자긍심으로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지역발전 요소임을 깨닫고 지역에 명문학교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자리잡게 됐습니다.-어려운 상황에도 자율형 사립고를 강력히 추진했던 까닭은 무엇입니까? △기본적으로 평준화에 대한 골격을 흔들 생각은 아니었지만 평준화 이후 공교육이 약화되는 반면 사교육은 더욱 기승을 부리는 폐단이 이어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특히 전국적으로 수월성을 지녔던 전북교육이 평준화로 인해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전반적으로 학교 수업에 흥미를 갖지 못하면서 수준별 학습을 위한 사교육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현상이 가속화 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자율형 사립·공립 고등학교 등 명문 기숙형 학교를 점차적으로 확충해 나가는 것이 평준화로 인한 도내 학력 저하는 물론 지역 침체까지 막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지난 2007년 학교법인 광동학원 상임이사로 취임했습니다. 자율형 학교가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을 경감하면서도 학력을 신장시키고 평준화로 망가진 공교육을 정상화 할 수 있는 정책이며 대안이라는 생각으로 법인 산하의 군산 중앙고등학교를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했습니다. 추진과정에서 도교육청과의 갈등은 물론 교육의 본질인 학력신장은 외면한 채 당연히 부수적으로 따라가고 해결돼야 할 문제들을 부각시키며 혼돈과 대립을 야기하는 쪽으로 흐르면서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하지만 학력이 신장돼 학생이 학습만족도를 느껴 학교에 가고 싶고 교사가 자부심을 갖게 되면 비로소 교육공동체들의 행복한 학교가 된다는 단순하지만 본질적인 생각으로 추진해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최근 도내 교육계를 둘러싼 논쟁들은 교육의 본질에 부합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튀는 정책을 위한 정책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전북도교육청 같이 무상급식 등 보편적 교육복지 실현을 표방하기만 하면 교육의 본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추구하는 교육관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부친께서 어린 시절부터 인간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같은 능력을 표출해 자신의 인격과 가정, 사회, 국가, 인류를 새롭게 창조하고 새로운 문화가치를 이뤄 나갈 수 있도록 교육받아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교육이란 순간적인 지식 전수에만 그쳐서는 안되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계속 업그레이드 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입니다. 창조적 인재는 다양한 분야의 많은 경험을 수용해 낼 수 있는 몸과 마음부터 기르고 이를 바탕으로 지식이 더해질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는 소신입니다. 공직을 떠나면 가업인 교육을 이어가며 후학을 양성해야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기 때문에 부친이 이루어 놓은 창조교육학의 맥을 이어 가겠다는 생각이지 다시 공직으로 돌아갈 일은 없습니다. 그동안의 행정경험을 바탕으로 전북 교육의 현안들에 대해 교육계 동료들과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며 대안을 찾아가는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 기획
  • 이일권
  • 2011.12.08 23:02

장전배 청장은…

장전배 전북지방경찰청장(48)은 1962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전주고(58회)와 경찰대(1기)를 졸업하고 1985년 경찰에 입문, 경찰청 과학수사과장·대테러센터장·경비과장, 서울 기동본부장·경비주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 치안감으로 승진한 뒤 경찰청 경비국장을 지냈다.장 청장은 경비국장 시설 건국 이래 최대행사였던 ‘G20 정상회의’를 1년여 동안의 준비과정을 거쳐 물의 없이 유연하게 치러내는 등 대회의 성공적 개최에 크게 기여, 대외적 업무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경찰의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한몫을 했다는 게 경찰 관계자들의 평가다.또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불거졌던 전·의경 구타 및 가혹행위와 관련해 전·의경 생활문화 개선을 통해 올 1월 76건이었던 구타 및 가혹행위를 9월 1건, 10월에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등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전·의경들을 대상으로 단체생활 에티켓을 가르치고 대원 간 융합을 이끌어 내 화목한 부대생활 문화를 정착시켰다. 평소 ‘치안의 과학화’를 주창하는 장 청장은 범죄심리학, 법생물학 등의 전문가를 특채로 채용하는 등 범죄분석관과 검시관을 확대, 경찰의 과학수사 분야 발전에도 기여했다는 평도 듣고 있다.

  • 기획
  • 강정원
  • 2011.12.01 23:02

‘지역개발 추진’ 전국 최우수기관 이강수 고창군수

고창군이 야심차게 추진한 고창소도읍육성사업으로 읍성 일원이 고창의 문화역사예술의 심장부로 거듭나게 됐다. 군은 이 사업을 통해 행정안전부 지역개발사업 추진평 ?【 전국 최우수기관에 선정되었다. 고창소도읍육성사업은 지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총 사업비 203억 7000만원을 투입하여 읍성 주변을 환경생태공원, 다목적광장, 테마거리로 꾸며, 인근 문화의 전당, 판소리박물관, 군립미술관, 신재효 고택 등과 연계한 역사문화 공간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이강수 군수가 민선 345기 군수로 재임하는 동안 석정온천관광지 개발, 고창일반산업단지 조성, 생태환경도시 건설 등과 함께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최대 현안사업이기도 하다.이 군수로 부터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소도읍육성사업과 후속사업으로 추진하는 문화체험거리 조성에 대해 들어본다.-고창읍성 주변이 새롭게 변했습니다. 개발하게 된 동기와 개발하는 동안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요?△20여 년 동안 아픈사람을 치료하는 의사로 살다가 지난 2001년 낙향을 결심하고 고향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습니다. 지역 어르신들을 뵐때마다 이제 농촌에는 희망이 없다고 낙담하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농촌을 이대로 두어서는 않되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지난 2002년 고창군수에 취임한 후 농촌도 젊은이들이 활기차게 일하며 문화를 접하고, 여가를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평소의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계획에 착수했습니다. 고창읍성 주변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준비를 단계를 거쳐 지난 2006년 첫삽을 떳습니다.주변 집들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군민들의 반대가 너무 심해 가장 힘들었습니다. 이제는 읍성 주변이 각종 문화시설과 명품 소나무길, 고창읍성 경관조명 등을 갖춘 고창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잡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물론 주민들로 부터 참 잘했다는 칭찬도 듣고 있고요.-고창읍성 주변에는 어떤 문화시설과 볼거리가 있나요?△판소리를 집대성한 동리 신재효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 판소리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판소리박물관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판소리 자료를 수집연구전시 등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 수준 높은 판소리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또한 그동안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했던 군민들에게 다양한 공연, 영화, 전시회 등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문화의 전당과, 다양한 분야의 도서 2만권과 자유열람실 등을 갖춘 군립도서관이 있습니다. 또한 무초회향관과 상설전시관으로 꾸며진 군립미술관도 이곳에 있습니다.볼거리로는 주변의 오거리당산을 들 수 있습니다. 오거리당산은 가족형태로 5개소에 분포되어 있으며, 고창읍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풍수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969년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14호로 지정되어 매년 정월 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내고 민속놀이를 통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합니다.또한 주요 시가지를 관통하는 고창천은 읍성과 고인돌 유적지를 연계한, 도심속 생태친수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어 군민의 여가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으며, 자연형 생태하천으로 재 창조하기 위한 공사가 추진중에 있습니다.-소도읍육성사업과 연계하여 새로 추진하는 사업은 무엇인지요?△소도읍육성사업에 이어 신재효 선생의 생가를 중심으로 한 문화체험거리 조성사업을 추진중에 있습니다. 지난 2008년에 기본계획 용역안을 마련하고 감정평가를 거쳐 지난해 4억원, 올해 15억 원 등 총 19억원의 국비를 확보하고 장터 및 주막거리부터 부지매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본계획안을 바탕으로 바로 실시설계에 들어가 동절기가 끝나는 내년 3월부터 동리정사 재현, 오거리당산 이야기와 당산제, 세시풍속, 전통음식(장터국밥)과 절기음식, 지역특산품을 이용한 토속음식점, 야외 전통문화공간 조성 등 이지역의 문화를 한곳에서 보고, 듣고, 즐길 수 있는 문화체험공간을 본격적으로 조성할 계획입니다.-고창의 또다른 관광자원으로는 어떤것들이 있는지요? △석정온천관광지개발사업을 들 수 있습니다. 이는 기존의 단순한 숙박과 목욕하는 온천시스템을 개선하여 건강, 휴양, 레져, 치료를 함께할 수 있는 휴양리조트(웰파크시티)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2014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중에 있습니다. 또한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창 고인돌군이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으며, 2008년에 건립된 고인돌박물관 역시 프랑스의 미슐랭가이드에서 만점(★★★)을 받은 만큼 그 이름값을 하고있습니다. 이와함께 세계람사르습지로 등록된 갯벌과 운곡습지가 이곳에 있습니다.그외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리는 선운산 도립공원, 천년고찰 선운사, 공음 청보리밭, 동학농민혁명유적지, 풍천장어, 복분자 등도 고창의 자랑거리입니다.21세기는 문화, 관광, 레저 등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사회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관광자원과 연계할 수 있는 관광체험건강을 테마로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여 오감이 만족하는 관광고창이 되도록 할 생각입니다.

  • 기획
  • 김성규
  • 2011.11.24 23:02

이강수 군수는

이강수군수는 1951년 고창군 공음면에서 태어나 공음 선동초, 고창중, 조대부고, 조선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교수, 병원장 등을 거쳐 현재 고창군수로 재임중이다. 어린나이에 부모님을 여의고 혼자 몸으로 역경을 헤쳐나가야 하는 절박한 상황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각고의 노력으로 의대 교수, 광주 중앙병원 경영, 고창 중앙학원(북중, 북고) 설립 등 많은 것을 이루었다.지난 2001년 의사생활을 접고 낙향하여 다음해 민선3기 고창군수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평소 강한 추진력과 친화력, 창의적인 마인드를 가졌다는 평을 듣는 그의 군정 수행능력은 아주 탁월했다. 군수에 재임하는 동안 받은 많은 상들이 그의 능력을 말해준다.장한 한국인 대상(2006, 뉴스웨이),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 최고경영자상(2007, 한국공공자치연구원), 투명사회상(2008, 한국투명성기구), 대한민국 최고의 목민관상(2009, 한국경제매거진), 다산목민대상(2010, 다산연구소) 등이 그가 받은 상들이다. 그는 많은 상을 받은 만큼이나 성공한 지자체장으로 소문나, 전국 방방곡곡 초청 강연을 다니기도 한다.지난 10년간 함께해요 희망 고창이란 슬로건으로 중장기적인 청사진을 세우고 착실하게 군정을 펼쳐 온 결과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군민의 최대 현안사업인 석정온천관광지 개발의 성공적인 추진, 국민권익위원회 청렴도 평가 6년 연속 우수기관 선정, 황토배기 G수박 5년 연속복분자 선연 3년연속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대상 수상 등을 들 수 있다.또한 일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최대 행복이라는 기치 아래 일자리 창출을 위한 흥덕 농공단지, 고수 일반산업단지 등 지역여건에 맞는 다양한 사업을 전개, 지역경제 활성화와 주민소득 창출에 기여했다.이 군수는 남은 임기동안 지금까지 추진해 온 역점 사업들을 마무리하는데 중점을 둔 군정을 편다는 계획이다.

  • 기획
  • 김성규
  • 2011.11.24 23:02

“순창발전 기틀 마련하겠다”

지난 10월 26일 치러진 순창군수 재선거에서 혜성같이 나타나 당선된 황숙주 순창군수. 황 군수는 선거를 치르는 과정 내내 지역의 갈라진 민심을 하나로 통합하겠다는 대군민 통합론을 강하게 주장했다. 특히 특정인들에게 지원되는 보조사업은 물론 소규모 지역개발 사업에 대한 특혜성 논란 등에 대해 남은 2년 8개월 동안 깨끗이 정리하겠다며 이를 공약으로까지 내걸었다. 이와함께 순창발전을 10년 앞으로 앞당기겠다는 당찬 비전을 제시한 황 군수. 이 같은 문제 해결를 위해서는 그의 의지와 함께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직접 황 군수에게 이야기를 들어 봤다. △민선 제7대 순창군수로 취임해 이십여일이 지난 현재의 소감은?이십여일이 아니라 몇 달은 된 것 같다. 순창읍을 시작으로 군내를 돌며 지역민심을 듣는 민심탐방을 시작으로 군정 주요업무 보고, 주요사업장 방문을 비롯해 제6회 순창장류축제가 있어 정신없이 지나갔다.예산확보를 위해 기재부, 농진청, 농어촌공사도 방문했다. 순창의 수장으로써 잘사는 순창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겠다는 다짐이 먼저 앞선다. 주민을 섬기는 마음으로 바닥민심을 살펴 화합하고 단결해 살기좋은 순창을 만드는 각오로 군수에 임하겠다.△선거 이후에 분열된 지역의 민심을 대화합 시킬 방안은?화합하는 정치를 위해 겸손하고 헌신적인 자세로 군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으며, 군민들의 고통과 아픔을 듣기 위해 항상 가까이에 있겠다. 충분히 상의하고 의견을 묻겠다. 모든 군민을 부모·형제·친구·동생으로 여기며 화합의 악수를 청하겠다. 갈등과 반목으로 혼란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화합하는 순창을 만들 생각이다.△장류산업은 발전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연계된 지역의 농업발전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대한 대책은?돈 버는 농축산업, 잘사는 농촌건설을 최우선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다. 먼저 농업소득을 증대시키기 위해 실용적 농업정책을 이념으로, KIST의 전문 기술을 접목한, 과학적 영농 시스템을 도입하여 농가의 실질소득을 향상시키는 데 주력하겠다.농업예산을 증액하여, 친환경농업·친환경축산업을 육성하고, 순창군 10대 농산물 중심의 작목반을 집중 육성하겠다.더불어 농축산물 가공산업 육성 및 지원, 농축산물 유통전문회사 설립으로 농가의 안정적인 고소득을 보장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청정이미지를 살린 우리고장의 농산물 통합브랜드를 구축하여, 우리 군에서 생산한 농산물의 경쟁력을 높여 FTA에 적극 대처하겠다.또한 고령의 영세농업인에게 영농경영비 지원을 확대하여 농가 어르신의 소득을 보장하겠다.△군민들의 숙원사업이며 순창 관광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 할 것으로 기대되는 강천산 휴양단지 조성사업을 조기에 완료하기 위한 계획은?2010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강천산 휴양단지 조성사업은 체류형 관광시설로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비전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489억의 사업비를 투자해 205,128㎡ 부지에 콘도 120객실, 아쿠아·스파시설, 농특산물 판매장 등이 들어서게 된다.이 사업은 지난해 MOU 체결을 시작으로 기본계획 용역중이며, 지난해 8월 한국농어촌공사에서 농림수산식품부로 사업승인 신청을 마쳤다. 지금은 사업승인에 따른 관련부처와 협의 추진 중이며, 휴양단지 부지매입은 71% 매입을 마치고, 사업동의서는 90%를 징구 완료했다. 내년 4월에 사업계획을 승인할 계획이며, 5월에는 수변개발 특별법에 따른 개발구역 지구지정, 6월부터 12월까지는 실시설계를 추진할 계획이다.순창의 발전을 앞당길 휴양단지 조성사업에 군민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리며, 조기 완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일자리 부족에 따른 청년인구 감소가 심각한 상황인데 기업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 방안은?2012년 상반기까지 150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청장년이 순창에서 일자리를 구해 정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겠다. 또 한국시멘트 방적공장이 계획대로 완공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으며, 방적공장의 연관업종인 청바지와 장갑 등을 생산하는 공장을 유치해 내년 상반기까지 150개의 일자리를 창출토록 하겠다.내년 3월 완공 예정인 쌍암농공단지는 올해말까지 분양 공고하겠으며, 건강, 장수, 생명, 의학, 기능성식품 등을 생산하는 건강장수관련 기업을 유치해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고향을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며, 출향했던 청년들이 우리 군내로 돌아와 일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우리군은 도로시설 등 교통이 좋아져 기업하기 좋은 곳으로 변하고 있으므로 풍산농공단지 옆 제2풍산농공단지 5만평을 2013년까지 확장 조성해 더 많은 기업과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그렇게 함으로써 순창군의 산업구조가 획기적으로 변하도록 적극 노력할 각오다.△순창은 65세 이상이 28%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인데 구상하고 있는 노인복지정책은?순창군은 여러 가지 건강장수 정책을 중심으로 장수고을로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많은 노력을 해왔다. 지금까지 추진해 온 노인복지 정책인 독거노인 돌보미 시스템, 효도수당 지급, 장제비 지원 등 좋은 정책은 그대로 추진하면서, 노인복지 정책이 그 분들께 직접 느낄 수 있는 사업을 추가해서 추진할 계획이다. 먼저 건강장수과학특구조성 사업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건강장수연구소를 통해 관련 기업유치와 연계하여 노인이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경제활동에 따른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그에 따른 제반사항도 마련하겠다. 일상 생활속에서 정신적 건강, 육체적 건강을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활동을 통해 장수고을에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게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또 오지마을 택시운영 방안을 모색해 어르신들의 막막한 교통 불편을 덜고, 택시업계 종사자들의 수입에도 보탬이 되도록 추진하겠다.△군수로써 군민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나는 늘 고향을 떠나있으면서도 언젠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순창발전을 위해 몸 바쳐 헌신할 것을 항상 다짐해왔다. 숙명처럼 나에게 주어진 이 소중한 부름이 헛되지 않도록 초심을 잃지 않고, 순창발전과 군민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내 모든 열정을 바치겠다.또 청렴한 자세를 끝까지 유지하겠다. ‘모두가 행복한 순창’을 위해 군민들도 열린 마음으로 함께 해주기 바란다.

  • 기획
  • 임남근
  • 2011.11.17 23:02

 이환주 시장은

이환주 남원시장은 1960년 남원시 주천면에서 태어났으며 3살때 전주로 이사해 전주 완산초등학교와 전라중학교, 전주신흥고등학교,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했다.한양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기술고시에 합격해 1985년 내부무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공직에 합격하자 아버지께서 ‘녹을 먹는 사람은 백성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라는 당부를 했다고 한다. 이후 1986년 전라북도로 발령받아 도로, 하천, 도시계획 업무 등을 열정적으로 추진했으며 탁월한 업무 능력을 발휘하며 ‘신한국창조유공’대통령표창 등을 받았다. 1995년에는 남원시 관광건설국장으로 부임해 당시로서는 생소하고 신기한 음악분수대를 남원관광지에 설치하기도 했으며 1998년에는 전주시 도시개발국장으로 있으면서 우리나라 최초로 도시개발법에 따른 서부신시가지 개발과 전국 유일의 도시한옥인 전주한옥마을을 조성했다.이후 전북도청으로 옮겨 핵심보직인 기획관에 기술직 최초로 발탁됐으며 도지사 비서실장과 전략산업국장, 상해 통상사무소 통상본부장, 새만금군산경제자유구역청 개발본부장 등을 역임했다.냉철한 판단력과 뛰어난 통찰력에 언변까지 갖춰 ‘신언서판’을 두루 갖춘 몇 안 되는 공무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새만금군산경제자유구역청 개발본부장 재직 시절에 태양광 전지의 핵심소재생산 기업인 OCI의 10조원 투자를 이끌어낸 것도 이런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 기획
  • 기타
  • 2011.11.10 23:02

“일자리창출 지역경제 활성화 살기좋은 남원만들기에 온힘”

지난 10. 26일 남원시장 재선거에서 이환주 시장이 당선됐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남원시민의 열망이 젊은 행정가 출신의 이 시장의 당선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제7대 남원시장인 이 시장은 선거운동에 지친 심신을 추스릴 틈도 없이 산적한 시정 현황 파악에 몰두하고 있다. 시장실은 휴일은 물론 밤늦게까지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재선거로 당선된 이 시장의 잔여 임기는 2년 8개월로 짧다. 이 기간에 남원시정을 어떻게 이끌어 시민의 기대에 부응할 것인지 이 시장에게 이야기를 들어봤다.△제7대 남원시장으로 취임해 열흘여가 지났다. 소감은? 시정 현안 파악하느라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남원시장으로 취임해 기쁘기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선거운동하면서 시민의 소리를 많이 들었다. 남원을 새롭게 바꿔 잘 살게 해달라는 시민의 기대에 꼭 부응하겠다. 시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초심으로 돌아가서 더욱 낮은 자세로 열심히 일하겠다. 이제 각 부서별 업무보고를 받았다. 남원시의 큰 현안은 거의 파악했지만 풀어 나가야 할 과제가 너무 많다. 시 발전을 위해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지역경제가 매우 어려운데, 경제 활성화 방안은? 선거운동하면서 어렵고 힘든 삶의 현장을 확인했다. 침체에 빠진 남원의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아들, 딸들이 남원에서 공부하고 남원서 직장을 다닐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 남원의 미래를 이끌어 갈 친환경 코메스틱 클러스터 조성을 검토하겠다. 또 복합물류단지 기반 구축, 소상공인 지원 등과 함께 기업유치단 운영으로 신 성장동력사업을 적극 발굴해 지역경제의 기틀을 다지겠다. △시장 개방이 확대되고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농촌의 미래가 어둡다. 농촌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가?남원은 도·농 복합도시이다. 농촌의 미래가 남원의 미래다. FTA체결 등 국제농업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또 농촌의 고령화와 인력 부족이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다. 미래의 잘 사는 남원농업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현실을 잘 진단해야 하며 농업정보도 매우 중요하다. 농산품 가격동향, 농산물 유통, 농외소득 등 체계적인 맞춤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특히 우리 남원지형이 운봉 고랭지와 산동, 주천, 보절 등의 중산간부, 송동, 금지, 대강 등의 평야부로 구분돼 지역별 특성에 따라 전략품목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 지역별 특성이 다르다 보니까 남원 농산물의 브랜드는 너무 많은 반면 지역을 대표할 상징성 있는 전략품목은 없는 실정이다. 통합 단일브랜화가 절실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래야만 비용절감과 우리 남원농산물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는 멀리보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체계적인 맞춤서비스를 통해서 농촌에 활력을 불어 넣겠다. △퇴보하는 남원의 문화관광 산업의 발전방안은? 남원은 수준 높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더불어 지리산을 중심으로 하는 청정 자연환경이 있다. 이러한 훌륭한 문화와 자연이 있음에도 그동안 우리 남원의 관광산업은 춘향 하나로만 생각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시대적 변화에 적극 대응해 나가야 한다. 산재된 수준 높은 문화유산에 대해 역사적 의미, 가치 등을 체계적으로 재정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재조명하고 관광상품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충, 효, 예의 관광자원을 주제별로 계열화해 관광수요에 대응해야 한다. 지리산권역과 시내권역 관광자원을 연계해서 관광객이 남원에 체류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 △남원도 65세 이상이 20%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이다. 구상하고 있는 노인복지 정책은? 농촌 도시 할 것 없이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우리 남원은 도농 복합형 도시 특성상 많은 어르신들이 농사 등 단순 일을 해왔다. 이러한 단순한 일을 해오다 고령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고, 일자리를 잃으면 특별한 기술이나 경제력이 없어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 수급자로 지정되지 않아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일단은 노인일자리를 개발·확대하는 것이 절실하다. 노인에 맞는 맞춤형 일자리 발굴에 관심을 기울이겠다. 특히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 노인층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지겠다. △각종 공약과 구상을 실현화하기 위해서는 남원시 조직을 이에 맞게 개편할 필요가 있을텐데, 개편 방안과 함께 공무원 인사원칙을 설명해 달라. 일 잘할 수 있는 효율적인 조직이 필요하다. 공무원 개인 능력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정성 확보를 위해 상급자의 의견수렴, 공무원 상하 간의 다면평가를 강화하고 시민과 유관 기관, 단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 일 잘하는 사람이 승진하는 객관적이고 투명한 인사시스템을 운영해 나가겠다. 공약사항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임기가 2년8개월여로 너무 짧다고 생각한다. 기간이 짧은 만큼 조직이 흔들려서는 안된다. 이에 시 행정조직은 전면개편보다는 몇 개의 T/F팀의 신설 등 소폭 재구성을 생각하고 있다. △시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남원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 화합이 중요하다. 갈등과 반목은 털어버리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함께 해야 한다.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영원히 일어설 수 없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양식 있는 시민이 존중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 시민도, 지역경제도, 시정도 모두 건강해야 한다. 그동안 저의 행정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열정을 고향발전을 위해 바치겠다. 남원시에서 사는 것이 자랑스럽도록 신명나는 시책을 추진해 나가겠다. 부족한 능력이지만 개인적인 인기를 떠나 진정으로 고향발전을 위한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겠다. 그래서 건강하고 행복한 남원을 만들어 나가겠다. 시민여러분의 뜨거운 애정을 부탁드린다.

  • 기획
  • 신기철
  • 2011.11.10 23:02

송기태 회장은

1941년 전주시 풍남동 송갑섭씨의 5남 3녀중 장남으로 태어난 (유)동성 송기태 회장은 지금까지 풍남동 한 곳에서 한평생을 살아오고 있는 그야말로 전주 토박이중에 토박이다. 해방직후 전주 풍남초등학교를 거쳐 전주북중학교에 진학한 송 회장은 더욱 큰 꿈을 이루고자 서울로 유학해 경동고와 한양대를 졸업하고 문화방송(MBC)에 입사했다.학창시절 송 회장의 학업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고 특히, 중학교 시절에는 전라북도 테니스 대표선수로 활약할 만큼 체력관리 및 운동에도 남다른 실력을 과시하기도 했다.하지만 아버지의 뜻하지 않은 건강 악화로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지난 1973년 고향 전주에 내려와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 경영 일선에 나서며 기업인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송 회장은 왕성한 기업 활동과 더불어 다양한 사회활동 등을 통해 지역사회 발전에 매진했다. 특히 지난 2000년 2월 전주상공회의소 제17대 회장 취임후 2004년에는 전북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 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에 선출돼 중앙과 지역을 오가며 국내외 경영환경 변화와 우리 지역 기업들이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가질수 있도록 노력하는 등 지역발전을 위해 온몸을 바쳤다. 또한 선친 때부터 이어온 불우이웃돕기와 소년소녀가장 장학금 지급, 전북대학교 발전기금, 풍남제전위원회 발전기금 등의 각종 기금 쾌척 등 기업인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충실히 수행할 뿐 아니라 지역 현안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워졌을 때는 우리의 몫을 찾기 위해 험한 가시밭길도 마다하지 않고 헤쳐 왔다. 송 회장의 이력은 대단히 화려하다.88서울올림픽 당시 전북 성화 봉송 마지막 주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고 전주상공회의소 17∼19대 회장을 비롯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 8∼11기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지역사회 발전에 헌신해왔다.이러한 공로로 송 회장은 1987년 국민훈장 목련장, 전라북도 애향도민의 장, 1993년 전주시민의 장, 2001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다.특히 평생 한번 받기도 힘든 국민훈장을 두번이나 수여받았으며 김영삼 대통령부터 노무현 대통령까지 3대의 대통령에게 훈장과 임명장을 받는 등 지역 발전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았다.

  • 기획
  • 강현규
  • 2011.11.03 23:02

‘전북무궁화대상’ 15년째 공동주최 송기태 (유)동성 회장

질서와 안보, 정의, 봉사 등을 통해 헌신하는 전북지역 경찰관들을 발굴해 격려하는 전북무궁화대상 시상식이 올해로 15년째를 맞았다. 지난 1997년부터 시행된 전북무궁화대상은 전북일보사와 전북지방경찰청 외에도 (유)동성(회장 송기태)이 공동주최하고 있다. 경제와는 다소 동떨어진 전북무궁화대상을 오랜 세월 공동주최하고 있는 (유)동성 송기태 회장으로부터 무궁화대상 등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본다.-전북무궁화대상을 올해로 15년째 공동주최하고 있는데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지요?△사실 그때 당시만 해도 요즘처럼 우리 경찰들에 대한 지원이 변변치 않았었고 사회적으로 경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많이 부족했던게 사실입니다. 특히, 24시간 우리의 곁에서 가장 근접하여 생명을 담보로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노력하는데도 사회적 냉대는 물론 위로나 격려, 시상도 별로 없었고요. 이 때 전북일보사에서 지역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일선 경찰들을 발굴하여 격려하고자 하는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전북일보사 사장님께 연락을 드려 행사를 공동으로 주최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죠. 이게 바로 무궁화대상을 공동주최하게 된 동기입니다.-평소 경찰의 역할에 대한 소신은 무엇인지요?△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어느 공무원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경찰이라는 직업은 특히나 위험을 감수하고 국민들과 언제나 함께하는 직업의 특성상 사실 월급쟁이라 생각하면 안됩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시민과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정말 아름답고 따뜻한 사회, 한 가족과 같이 지역주민과 더불어 살아가는 의로운 삶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그동안 공동주최하면서 기억에 남은 일은?△처음에 무궁화대상 시상식을 개최하면서 과연 몇 년이나 이 시상식을 진행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은 없었습니다. 비록 무궁화대상의 요건을 충족하는 대상자를 발굴할 수는 있겠지만 경제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과 성원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의미 없는 행사가 되지 않을까 많은 고민도 했습니다. 그렇게 고민을 하면서 더욱 발전시켜 온 무궁화대상 시상이 벌써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15년이란 세월동안 각 분야에서 탁월한 희생정신을 발휘해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만든 경찰관들을 발굴해 시상할때면 매년 흐믓하고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낍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무궁화대상은 안보, 질서, 봉사 등 경찰관들에게 수여되는 3개 부문과 민간인에게 수여되는 정의부문 등 4개 부문에 걸쳐 매년 5명을 선정하여 시상하게 되는데 올해를 포함해 지금까지 두차례에 걸쳐 민간인에게 수여되는 정의 부문 대상자를 선정하지 못한 점입니다. 각박한 세상을 살면서 의로운 일을 행하며 사회와 함께 따뜻함을 같이 나누는 정의로운 행위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본 행사를 공동주최하면서 느낀 가장 가슴아픈 일로 기억됩니다.-지역사회 공헌사업에도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서는 명절이 되면 항상 어려운 이웃들을 초대해 돼지도 잡고 많은 음식을 장만해 지역주민들을 대접하고 백미를 나누어 주던 것을 지켜봐 왔습니다. 그러다가 아버님의 사업을 이어 경영 일선에 나서면서 저도 아버지께서 해오셨던 일들을 그냥 자연스럽게 이어받게 된 것이지요. 제가 1973년도에 전주로 내려오면서부터 어려운 이웃 돕기를 진행해 왔으니 40여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 같습니다.-전주상공회의소 회장 재임시 지역경제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는데 어떤 일들이 기억에 남는지요.△2000년 4월 18일 전주상공회의소 제17대 회장 취임 당시에는 외환위기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어려운 경제상황과 경제구조의 영세성 및 지역특화산업 부재, 빈곤의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지역기업을 대표하는 경제계 수장으로서 총체적인 지역경제 활로를 찾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던 시절이었습니다. 2005년 3월에는 기업유치위원회를 구성해 자치단체가 할 수 없는 민간부문 역할을 충실히 해냄으로 LS전선, 현대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을 도내에 유치함으로써 전북의 산업구조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고 고도화 시키는데 기여했습니다. 무엇보다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인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신용보증재단 설립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수출입은행 전주지점 개설, 호남고속철도 정읍분기역 설치 단초 제공,중소기업진흥공단 호남연수원 명칭 변경, 지역건설업의 BTL사업의 전반적인 제도개선, 자동차보험료 지역별 차등화 추진 반대, 완주산업단지내 KIST예정부지 송전탑 노선변경 및 지중화사업 등의 쾌거를 이뤄내기도 했습니다.특히 지난 2001년 새천년새전북인운동 실천협의회 회장을 역임하고 2003년 전주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강한전북일등도민운동추진협의회 회장직을 겸하면서 각종 성명발표, 대정부 건의, 200만 도민 서명운동 등을 주도 하면서 마침내 33.3㎞의 세계최장의 방조제를 완공한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앞으로 활동 계획은 무엇인지요△400여년을 전주에서 살아온 명문 후손으로서 집안의 명예와 자존심을 위해 지역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업가와 사회단체장으로서 왕성한 시절을 보냈던 당시에 비해 건강은 좋지 못하지만 지역발전을 위한 일이 있다면 힘이 닿는데까지 노력할 것입니다.

  • 기획
  • 강현규
  • 2011.11.03 23:02

안호영 변호사는

전북 진안군 동향면에서 출생한 안호영(46) 변호사는 동향중학교와 전라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연세대 법대를 졸업했다.대학시절 전두환 정권에 맞서 투쟁하는 동료와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사회현실에 눈을 뜬 그는 1987년 대의원대회 의장으로 선출돼 6월 민주항쟁의 한 복판에 선다.그 후 민주항쟁의 구심체가 되었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영등포 지부에서 지역 활동을 한 뒤 군복무를 마치고 93년 제35회 사법고시에 합격해 사법연수원(25기)을 나왔다.96년 전주 '백제법률사무소'에 몸을 담고 노동자와 서민을 변론하는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으면서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기소된 전북대 혁신대오 이적단체 사건 변론을 맡아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또 김형근 교사의 통일교육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도 무죄를 이끌어냈다.'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전주전북지부장을 지낸 그는 전북겨레하나 후원회 이사장, 여성의 전화 후원이사장, 아파트공동체연구소장, 교육개혁 시민연대 운영위원 등 다양한 시민단체 활동과 후원을 통해 인권과 민주, 통일을 위한 작은 걸음들을 멈추지 않았다. 또 진안군 고문변호사와 한국농업경영인회 진안군연합회 고문변호사를 맡을 정도로 고향과 농촌에 대한 열정도 뜨겁다.안 변호사는 특히 지난 전주시내버스 파업 때 노사 양측에 '사회적 합의안'을 제시해 주목을 받을 만큼 사회적 갈등과 모순에 대한 고민을 끌어안고 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교사로 재직하는 부인(김명숙46) 사이에 세 자녀(예슬, 찬주, 형주)를 두었다.

  • 기획
  • 전북일보
  • 2011.10.27 23:02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前 공동대표 안호영 변호사

10.26 서울시장 재보선을 계기로 안철수로 상징되는 '시민정치'의 파고가 예사롭지 않다.기존 정당과 정치에 대한 국민의 절망과 불신이 촉발한 '시민정치'는 내년 총선과 대선의 판도까지 뒤흔들 태세다.얼핏 수도권에서 먼저 분출된 것으로 보이는 이 같은 시민의 제도권 진입 움직임은 사실 지방이 한 발 앞서 있다.학생운동권 출신의 인권변호사로서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공동대표를 3년 넘게 맡아오다 최근 대표직을 사퇴한 안호영 변호사.그가 고심 끝에 지난 7월 정치에 대한 '참여'의 방식을 180도 바꾸기로 결심했다.안 변호사를 만나 시민운동 실천가로서의 삶과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에서의 활동, 그리고 새로운 '참여'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전북의 대표 시민단체인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공동대표 재임기간의 성과를 정리하신다면.지난 2008년 부임해 광우병 쇠고기반대 촛불문화제를 하면서 국민들의 의식과 생활정치의가능성을 확인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당시 단체를 중심으로 지역사회에서 밝힌 촛불은 제가 87년 민주항쟁의 현장에서 있을 때 그 느낌이었습니다. 촛불을 계기로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 퇴행을 시민 힘으로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죠.아울러 시민교육사업의 일환으로 매년 두 차례씩 문을 연 시민경제아카데미가 올해로 8회쨉니다. 시민과 소비자의 시각에서 경제정의와 지역경제 활성화의 방향과 대안을 마련했다는 점은 매우 의미가 큽니다. 이를 통해 슈퍼마켓연합회와 전통시장 상인회와 연대해 대형마트와 SSM의 횡포를 저지하는 운동을 전개한 일도 보람입니다.▲ 참여연대 공동대표 이전에도 활발한 시민단체 활동을 해오셨죠.- 저는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면서 민중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기로 다짐했었습니다. 당시 노동, 농민 등 계급계층운동으로 진로를 모색한 동지들이 많았지만 저는 법조인으로서 정의와 봉사를 고민해왔습니다.이에 따라 1996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시민단체, 학생운동권 등의 요청과 주변 인권변호사들의 제안에 주저없이 달려갔습니다.그러다보니 남북평화교류와 협력, 여성의 권익신장, 아파트공동체 지원, 진보적인 여성단체 후원, 법률자문과 무료법률지원 등에 관심을 두게 됐고 그런 단체에서의 역할도 피할 수 없었다는 생각입니다.▲ 3년 넘게 일했던 참여연대 공동대표로서 아쉬운 대목도 있을 텐데요.- 참여연대는 지방과 중앙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지 않고 100% 재정자립을 위해 회원회비로 운영하고 부족한 재정은 주막과 후원의 밤을 통해 조달합니다. 주막은 전주시 3대 축제 중의 하나라고 할 정도로 일반 시민의 참여가 높습니다. 준비위원장을 맡아 후원 사업을 준비하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단기간에 자립도를 높이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특히 단체의 핵심 역할을 맡은 상근활동가의 열정과 헌신에 걸맞게 임금과 처우를 챙겨주지 못한 부분이 무척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운명처럼 해왔던 시민운동의 연장선에서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하시다가 그만두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사실 참여연대는 각종 선거에서 중립을 지키면서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지도록 노력해왔습니다. 그 원칙 때문에 때로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저는 이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비록 제가 단체의 대표이기도 하지만 예외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특히 저희 단체는 전북의 낡은 리더십을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단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전북을 바꾸고, 나라를 바꾸려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모색했고 그 결과 공동대표를 그만 두고 제도권 정치에서 변화를 모색하자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물론 저의 현실정치 참여에 대해 주변의 격려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지만 한 번 마음을 먹었으니 도전을 멈출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 대목인데요. 시민단체 경력을 제도권 진출의 기반으로 활용한다는 지적도 나올법한데요.- 결론적으로 말해 그럴 의도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사실 자기 밥벌이 하려고 시민단체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주민과 지역사회의 지지를 절대 받을 수 없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활동해 왔다고 자부합니다.변호사로 일하다가 정치권에 들어가려면 정당에 줄을 대서 기회가 되면 공천 받아 당선되면 되는데 저는 그런 길을 가지 않을 것입니다.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누적된 이유가 뭐겠습니까. 단순히 인물이 맘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기존 제도권 정치권이 시대정신과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이는 정치권에만 맡기지 말고 시민이 나서서 풀어보고 대안을 찾으라는 국민의 요구이자 명령입니다. 그게 제가 추구하는 목표점입니다. 물론 시민단체 활동이 주민들의 평가에 영향은 주겠지만 낡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오해와 편견은 사양하겠습니다.▲ 지난 달 출범한 '전북@혁신과 통합'에서 정치개혁입법특별위원장직을 맡게 된 것도 그런 맥락과 닿아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전북지역은 그동안 민주화운동에서도 앞장섰고 격동기에 올바로 행동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각종 선거에서도 민주와 진보를 선택했죠. 물론 2012년 정권교체와 민주진보정부 수립에 대한 열망도 높지만 지역사회에 높아지고 있는 지역 정치혁신에 대한 욕구가 더욱 넘쳐납니다.그 중에서도 민주당 일당구조로 고착된 전북에서 정치인들의 무책임과 무능, 기득권 안주에 대한 비판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더구나 민노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의 이른바 소통합이 결렬되면서 민주당의 행보가 매우 중요한데, 민주당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전북에서의 민주당은 변화와 혁신에 미온적입니다. 그런 것을 바꿔야 한다는 게 시민사회와 지역주민들의 바램 아니겠습니까.결국 혁신과 통합은 전북의 낡고 보수적인 리더십을 민주진보적인 리더십으로 바꾸고 민주당의 독점구조를 깨뜨릴 것입니다.▲ 결국 내년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굳혔는데 지역구는 정했습니까.- 진안무주장수임실은 민주당 정세균 최고위원이 지난 2009년 불출마를 선언한 곳입니다. 정 최고위원의 선언은 민주당을 변화혁신시켜 전국정당으로 거듭나는데 밀알이 되면서 새로운 리더에게 길을 열어주겠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이 같은 정 최고위원의 의지는 정권교체와 변화와 혁신, 그리고 새로운 리더십 교체를 주장하는 제 뜻과도 일치합니다.특히 그동안 전북은 새만금성(城)에 갇혀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때문에 전북의 동북권인 진안,무주,장수,임실,남원,순창지역은 상대적으로 불균형으로 정체되어왔습니다.전북정치의 혁신과 변화가 도심에서 이루어지는 곳이 전주라면, 전북의 변화와 발전은 동북권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변화는 중심에서보다 변방에서 먼저 시작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따라서 저는 변화와 혁신, 새로운 리더십, 전북정치의 변화를 위해 변방에서부터 출발하려는 것입니다.

  • 기획
  • 김성중
  • 2011.10.27 23:02

임정엽 완주군수

지난달 23~25일 완주 고산 자연휴양림일대에서 열린 '와일드푸드 축제'가 첫 개최임에도 성공적으로 치러져 긴 여운을 주고 있다.3일간의 축제기간 동안 행사장인 고산자연휴양림 일대를 찾은 관광객은 10만명인 것으로 추산되고 다양한 행사와 시식, 판매 등을 통해 주민들이 벌어들인 소득은 5억원에 이른다. 구이면의 경우 8개 마을이 축제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모두 40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지난해까지 총 14번 치러진 대둔산축제가 고작 3만명 방문, 2000만원 정도의 농산물 판매를 기록한 것과 크게 대조된다.무엇보다 완주 와일드푸드 축제는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 완주군의 강점인 로컬푸드와 연계한 특색있는 음식을 선보임으로써, 가을 음식축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는 의의가 크다.완주 와일드푸드 축제를 주도한 임정엽 군수를 만나 축제와 완주군정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와일드푸드 축제를 하게 된 이유와 성공축제로 치러진 의의를 설명해 주십시오.- 주민의 애향심 고취, 지역경제 활성화 등 취지에 맞는 명실상부한 지역축제를 치러보자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대둔산축제 등 지금까지 완주군에서 열렸던 축제는 단체장의 치적쌓기나 일부 기득권 세력의 잇속만 챙기는 수단에 불과했습니다.그래서 와일드푸드 축제는 이같은 병폐를 뿌리뽑고 지역주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축제, 지역의 강점을 적극 활용해 주민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축제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물론 프로그램 구성 및 운영 등 전반적인 사항을 전문 행사업체가 맡지 않고 공무원과 주민이 부딪쳐 해냈습니다.주민 모두가 주인공으로 나서 대접도 받고 많은 수익을 올리니, 잠깐의 수고는 일도 아니라는 말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결국 와일드푸드 축제는 주민참여와 이를 통한 축제 본연의 취지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일면 아쉬운 점도 남았을 것이고, 개선해야 할 부분도 있을 거라 보는데요.- 전문 기획사가 아닌 주민과 공무원 스스로 준비하고 치르다 보니, 주차 및 셔틀버스 운행 등 교통문제, 휴게소 등 편의시설 부족 등이 지적습니다. 지면을 빌어 불편을 겪은 관광객들에게 사죄의 말을 전합니다. 내년 축제에서는 이같은 불편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의 축제 방향과 이를 어떻게 주민소득 및 지역이미지 제고와 연결시킬 것인지 말씀해 주시죠.- 와일드푸드 축제는 음식과 전통을 주제로 몸과 자연의 공존을 꾀하고, 무엇보다 지역주민의 참여도 제고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창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지속시켜나갈 것인지가 중요한데요. 완주군은 농촌 활성화를 위해 크게 마을회사 육성과 로컬푸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중 마을회사 육성은 지역이 현재 가지고 있는 특유의 자산을 활용해 마을을 발전시키는 개념의 사업인데요. 자산이라면, 전통도 있고 맛도 있고, 건강에도 좋은 음식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완주군은 이번 축제에서 관광객의 많은 사랑을 받은 음식이나 전통문화 등을 걸러서,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 마을 공동체회사로 키워나가도록 할 예정입니다.▲ 축제에는 완주군의 대표적인 청정 농산물이 많이 나와 관광객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로컬푸드 1번지'로서 발전하기 위한 사업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습니까?- 완주군의 로컬푸드 사업은, 건강밥상 꾸러미와 직거래 장터 활성화 등 투 트랙으로 추진됩니다.이중 꾸러미 사업은 현재 2,500가구의 소비자를 확보해 10억원의 매출, 16명의 일자리 창출 등의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또한 용진농협과 협조해 11월말부터 1일 유통형 직매장을 개설할 계획이구요.최종적으로 꾸러미, 집단급식, 직매장 등을 통해 관내 3,000여 소규모 농가의 소득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지역경제 활성화의 핵심인 마을회사 육성은 잘 이뤄지고 있는지요.- 현재 127개소(마을공동체 95개, 지역공동체 32개)의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한해 마을회사 육성을 통해 소득 8억4,000만원, 일자리 256개를 창출했는데요. 완주형 마을 공동체 사업 모델은 정부정책으로 반영되기도 했습니다. 임기 내에 약 200개 공동체 사업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다만 '100개소 육성'의 개념을 양적인 것보다는 지역의 많은 공동체를 다양하게 육성하고, 이 공동체들이 서로 협력해 농촌활력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얼마전 본보에도 보도됐지만, 시범적으로 도입한 마을버스가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향후 확대 계획은 있습니까.- 당초 공약사항으로 마을택시 운영을 약속했는데, 여의치 않아 버스로 대체하게 된 것입니다. 상관면 6개마을 137세대, 285명의 주민이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앞으로 대중교통 운행여부, 주민이용량 등을 전반적으로 조사해서 2013년 이후, 추가적인 마을버스 운행 지역을 결정하겠습니다.▲ 역시 지난달 기공식을 갖은 테크노밸리 산업단지 분양은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현재 많은 문의가 있습니다. 완주 테크노밸리는 2012년 완공을 목표로, 40만평 규모로 조성됩니다. 이곳에는 KIST 전북분원, 고온플라즈마 응용연구센터와 연계해 탄소소재, 인쇄전자, 부품 소재 등의 첨단산업을 유치할 것입니다. 또 기존 입주업체와 연관된 태양광, 자동차, 기계산업 등도 유치할 계획입니다.▲ 완주-전주 통합이 최근 지역의 현안으로 다시 부각되고 있습니다.- 김완주지사님이 적극 나서서 방향타 역할을 하겠다는 것인데요. 중요한 것은 통합 의지가 얼마나 강하며 왜 통합하려고 하는가 입니다. 완주군을 어떻게 배려할 것이며 완주군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는지 밝혀야 합니다.완주군민들은 "쇼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약자에 대한 대책없이 전북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아래 일방적으로 완주군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저는 군수로서 당연히 통합하겠다는 의사가 있지만 완주군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배려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거듭 밝힙니다.▲ 내년 총선에서의 출마설이 끊이질 않습니다.- 매번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곤란해지는데요. 지금은 군정에 매진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으로 답변에 갈음하겠습니다.※ 임정엽 군수는1959년 구이 출신으로, 완산고와 전주대를 졸업했다.지방자치가 부활한 지난 91년 도의원을 거쳐 도지사 비서실장, 청와대 행정관을 역임한 뒤 지난 2006년 지방선거를 통해 완주군수에 취임했다. 특유의 추진력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침체에 빠진 완주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선4기 4년 동안 임 군수는 예산 5000억원 시대 개막, 인구증가, 복지 최우수단체 선정, 획기적인 교육환경 조성, 기업유치 등의 성과를 이끌어냈고 이를 토대로 대한민국 신뢰경영대상 대상을 수상했다.지난해 재선에 성공한 이후에는 전국적 주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로컬푸드, 마을회사 육성 등을 통해 '농촌을 살리는 수도'로 완주군을 발돋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임 군수의 선도적 농촌정책은 정부정책에 반영되는 한편 많은 지자체의 벤치마킹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0 약속대상 최우수상 수상, 대한민국 지방자치 경영대전 대통령상 수상은 그 열매다.임 군수는 지난 4년간 수없이 고민하고, 주민과의 협의를 거쳐 올해 처음 개최한 와일드푸드 축제를 성공적으로 치러내 또한번의 성공신화를 썼다.

  • 기획
  • 백기곤
  • 2011.10.20 23:02

소충·사선문화제전위원회 양영두 위원장

소충사선문화제전위원회 양영두 위원장(64). 오랜 세월'소충사선문화제'와 함께 해온 양 위원장이 소충사선문화제전위원회와의 작별을 준비하고 있다. 무려 25년만이다. 자신이 주장해 왔던 지역 문화축제 통합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소충사선문화제는 내년부터 의견제를 비롯해 고추산머루치즈축제 등의 지역 축제와 통합운영된다. 그는 지난달 29일부터 10월 2일까지 열린 제49회 소충사선문화제를 마지막으로 치렀다.-이번 소충사선문화제를 끝으로 위원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는데.△22년간 봉사한 해인 2009년부터 제전위원장을 내놓으려 했으나, 군수공백 상태로 임실군정이 혼미해 행정과 제전위원들의 간곡한 뜻을 받들어 3년여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1986년 민주도로 창립된 사선문화제 행사 이후 1999년 군민의 날 소충제와 통합 '소충사선문화제'위원장으로 추대된 후 만 25년간 무보수로 봉사했고, 제 스스로 5개의 축제(의견제고추산머루치즈축제)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주창하고 나섰으니 내년에는 좋은 결과로 하나된 통합문화축제로 탄생되기를 소망합니다.-이후의 계획은 있습니까.△무엇을 할 것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무주진안장수임실군민과 도민의 뜻을 받들어 나아갈 것입니다. (그는 통합문화축제가 내년에 성공적으로 출발할 수 있도록 올 연말까지 출범작업에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밝혔다.)-지역문화 행사를 전국 행사로 키워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결코 쉽지 않았을텐데, 그간 어려웠던 점은 없었습니까.△1987년 제1회 창립제전을 치를 때 군부독재 시절이어서 행정당국의 반대와 억압, 방해로 어렵게 치러졌고, 이후 98년까지 군비나 도비의 지원 없이 재정상의 빈곤함으로 매년 적자상태의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는 당시 행사출연자였던 국악인 조상현씨 등에게 행사 불참 공문이 발송되기도 했었다고 말했다.)각 읍면에서 조직된 수백 명의 제전위원과 재경향우회의 성원, 눈물과 땀이 베인 열정적인 봉사가 계속 이어져 전국적인 향토문화행사로 평가받게 됐지요. 만 25년 사반세기의 길고도 먼 세월이었습니다.전북의 지역문화축제중 제일 적은 예산을 가지고 10억이 넘는 행사와 어깨를 나란히 해온 점에 자긍심을 가집니다.-행사 개최에는 적잖은 예산이 필요합니다. 자치단체에서의 지원도 많지 않았던데. 그렇다고 위원장께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고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인데, 어떻게 예산을 충당했습니까.△제일 어려운 것은 재정(財政)문제였지요. 거의 매년 적자가 났지요. 전북의 경제 형편상 서울의 선후배 인맥을 동원하고, 어느 회사의 경우 위에서 도와주려해도 아래 실무선에서'무엇 때문에 전라도 임실에서 하는 행사를 도와주느냐, 광고효과도 없다'며 반발이 있어 수십번 찾아가 설득해 광고 협찬이나, 기부금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매년 1억에서 많게는 1억3000만원 이상을 협찬 받았습니다. 올해는 힘이 들었지요.군이나 도에서는 사무실 운영비나 인건비 보조를 주지 않아서 광고협찬금으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행사비에 보태 문화축제를 이끌어왔습니다.이 기회에 그간 도와주신 기업과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일명'마당발'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지인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비결이 있습니까.△신의(信義), 성실(誠實)을 근본으로 한 저에 대한 믿음이 비결일 것입니다.2~3년 도와주었으니 내년에는 끝내자고 했다가도 진정성을 가지고 고향사랑과 나라사랑을 위해 발로 뛰는 저를 믿고, 또 예산내역을 살펴보니 무보수로 봉사한다는 것을 파악한 뒤에는 계속 후원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70년대 초부터 국회에서 활동하며 쌓은 공직사회, 언론계 인맥과 서울 선후배들의 변치않는 인맥의 힘도 컸습니다.'발 없는 말이 천리간다'고 지성이 모여 감천이 된 것이지요.-그동안 국회의원 선거에 많이 출마했습니다. 그로인해 지역문화행사를 정치활동의 기반으로 삼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데.△14대(무소속), 15대(무소속) 17대 총선(민주당 공천)에 출마했지요.지역문화행사 때문에 정치활동에 덕을 보았다기 보다는 오히려 손해를 봤을 겁니다. 서울에서 저를 돕는 분들이'그렇게 공(功)을 들여도 알아주지도 않고 표도 안주는 그 척박한 곳에 미련 버리고 다른 길을 찾거나 지역을 옮기라'고 충고를 받았으니까요. 그런 소리를 들을 때 마다 저는 우직하게 앞만 보고 더욱 열심히 노력했습니다.-지역내의 높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는 번번이 낙선했습니다. 정치인으로서는 지역민들로부터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지난 1415대 국회는 민심이나 당심이 우선 아니 특정 인맥과 소위 돈 공천이라는 당에 기여도가 판을 치던 시대였습니다. 10년이 가고 2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저에 대한 진실성이 알려지고, 오해했던 부분, 몰랐던 사실들이 확인되면서 향토문화발전에 기여한 측면과 정치적인 능력 면도 해가 갈수록 새롭게 평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내년 총선에도 출마하실 생각입니까.△언론에 보도된 것처럼'당심과 민심을 얻는 사람이 지역위원장이 되고, 공천을 받을 것'이라고 밝힌 민주당 정세균 전 대표의 말을 굳게 믿고 있으며,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결과를 기다릴 것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진리를 믿습니다.-개인적으로 문화와 정치중 어느 분야가 더 적성에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정치에 입문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1972년에 정치에 입문하였으니 (국회비서관 3갑 상당) 40여년을 전북 정치인(현역으로)중에서도 중앙당에서도 고참급입니다. 적성이 맞으니 끈기와 인내심으로 지금까지 버텼지요.사업을 했더라면 향토문화에 공들인 만큼 노력했다면 큰 성공을 해 중견기업인이 되어있지 않았을까요.

  • 기획
  • 김준호
  • 2011.10.13 23:02

양영두 위원장은

임실(관촌면 회봉리) 출신으로 소충사선문화제를 전국적인 행사로 이끈 성공과는 달리 정치인으로서는 불우한 길을 걸었다.지난 1972년 국회 손주항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래 40년간 정치활동을 벌였던 그의 정치 이력은 결코 간단치 않다.신민당 정책위원, 임순남지역 부위원장, 민주화추진협의회 운영위원. 평민당 전북도당 대변인, 새천년민주당 창당 발기인, 17대 민주당 진안무주장수지역 위원장 등등. 그리고 현재의 민주당 전북도당 상무위원과 민주당 중앙당 문화예술 특위위원장(중앙위원)에 이르기까지 화려하다.이와함께 흥사단 민족통일 운동본부 공동대표를 지냈던 그는 지난 1979년 YH무역여성 신민당사 농성사건으로 인한 폭력사태 피해(민주화운동유공자인정 12등급)와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고문피해(상이 11등급 국가유공자) 등 야당 정치인으로서 적잖은 고초를 겪기도 했다.그렇지만 3번의 국회의원 도전에서 모두 패배했다. 2차례(14대,15대 총선)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실패하고, 17대 총선때 민주당 공천권(진안무주장수지역 위원장)을 어렵사리 거머쥐었지만 당시 정치권에 불어닥친 열린우리당의 바람을 넘지 못하고 낙선했다. 이에따라 내년 총선에 입지를 다지고 있는 그가 어떤 결과를 거둘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 기획
  • 김준호
  • 2011.10.13 23:02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장

전통사경 전문가 김경호(48한국사경연구회장)씨는 전자현미경보다 더 미세한 눈을 갖고 있다. 그는 0.1㎜ 붓끝에 금니(아교를 녹인 물에 갠 금가루)로 불경을 새겼다. 사경(寫經)을 통해 삶의 진리를 보는 또 하나의 현미경을 발견한 것. 단 1㎜에도 다섯 개 이상의 금선을 그어 정교한 우주를 담는다."사경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여년 전입니다. 단순히 불교 경전을 베껴쓰는 게 아니에요. 조상들이 이어내려온 정신예술의 정수죠. 하지만 사경에 대한 연구는 물론 기초자료조차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습니다."초조대장경 판각 1000주년을 맞아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전시실(15~28일)에서 연 한국사경연구회의 여섯번째 회원전'느림과 정치(精緻) 미학의 정수, 사경'에서 그는 사경에 무관심한 세태에 속상함을, 전통 사경의 맥을 이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토로했다. 회원 80여명이 출품한 100여 점은 예술이기에 앞서 인고의 수행으로 빚어낸 것들. 대부분이 불경 사경이지만, 유교 경전과 성경 사경도 있다.그는 조선 중기 이후로 맥이 끊긴 전통 사경을 되살린 주역이다. 김제 출생인 그가 네 살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서예를 배웠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중학교 진학도 미룬 채 서예에만 매달렸다. 결국 중학교를 1년 늦게 진학했으나 각종 전국서예학생대회에서 최우수우수상 등을 휩쓸어 두각을 보였다. 고등학생 시절 사경에 푹 빠져 부모 몰래 출가도 했다. 스스로 "(사경을 하게 된 게) 다 팔자 소관"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다. 그렇게 간절히 원했으나 본격적으로 전통사경 공부를 시작했을 땐 "정말 깜깜했다". 사라진 것을 익히려다 보니 가르침을 구할 곳도 없었고, 전통사경 유물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지 않아 옛 문헌을 수소문해 연구하면서 독학해왔다. 20년 넘게 외길만을 걸어온 그는 지난해 전통사경 분야의 유일한 기능전승자가 됐다."장사를 하려고 했으면 돈을 엄청 벌 수도 있었겠죠. 금으로 새기니까 대단한 것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가겠어요?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합니다."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꼬박 걸리는 시간은 38개월. 일반 서예나 불화에 비해 수백 배 공력이 든다. 재료 준비와 마무리 작업에도 지극 정성이다. 아교를 중탕해서 녹힌 뒤 아교물을 종이에 발라 말려 다시 바르고 말리기를 여러 차례. 금은가루를 여러 번 정제하고 수시로 붓을 빨아 불순물을 제거하고, 사경을 마치면 표면을 문질러 광을 낸다.숨을 한 번이라도 잘못 쉬거나 눈을 깜빡여 붓이 엇나가도 낭패. 고난이도 집중력을 요하는 이 작업은 온도 35℃, 습도 90% 이상의 '찜통'일 때 가장 잘 된다. 붓 끝에 묻은 아교가 굳기까지는 3초에서 5초 사이에 불과하다. 무엇 하나라도 소홀히 되면 좋은 작품이 나올 리 없다.불교미술사학자 故 장충식 동국대 교수는 그의 사경을 보고 "고려시대의 그것보다 훨씬 정교하다"며 극찬했고, 한글 궁체의 대명사로 꼽히는 이미경 선생은 "한글 궁체를 발전시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그의 사경이 인정받는 것은 독창적인 기법 때문이다. 최대한 원전 5종 이상을 대조하고 자구에 맞게 한글 번역을 할 것, 금니와 은니를 3회 이상 정제하는 등 100% 순도를 유지할 것. 문헌에 근거해 제작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슬라이드만 해도 수 만여 장에 이른다.이번 전시에 내놓은 '감지 금니 아미타경 변상도'는 가로 21.4㎝, 세로 20.4㎝로 A4 용지보다도 더 작다. 하지만 이는 고려 불교의 특색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금니와 은니로 제작된 사경. '변상도'는 까막눈 신자들도 알 수 있도록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성격이 강했던 변상도는 두루마리 식으로 된 권자본이나 접이식으로 된 절첩본의 맨 앞에 붙여져 사경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표현됐다. 이를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매일 6~8시간씩 90일. 두문불출하며 작업했던 탓에 스트레스로 앞니와 양쪽 어금니까지 잃고 난 뒤다."'변상도'는 비스듬하게 불빛에 비춰봐야 알 수 있습니다. 옅은 금색이 무수한 선으로 돼 있는 게 보이죠? 물론 원본과 비교해야 진가를 알수 있지만, 국보라고 해서 다 뛰어난 작품은 아닙니다. 엉성한 것도 많아요. 두루뭉술하던 동정소매옷무늬 등은 개작도 됩니다."그는 인터뷰 내내 '사경 없이는 팔만대장경도 없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목판에 글자를 새겨 책으로 찍어내려면 붓으로 한 자 한 자 종이에 베껴 적는 작업이 필수. 우리나라는 고려 시대엔 국가기관 '사경원'을 뒀고, 원나라에 사경 전문가 수백 명을 파견해 금자은자 대장경을 내놓을 만큼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하나의 불경을 필사하는 데 들인 정성은 일본과 중국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경지였던 셈. 조선시대 억불숭유 정책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전까지 사경은 세계 최초의 목판인쇄물'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금속활자'직지심체요절'의 '산파'였다.그는 "사경 없이는 대장경이 나올 수 없지만 대장경 1000년을 기념하는 거의 모든 전시가 대장경 유물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게 속상했다"며 "사경의 가치와 의의에 대한 인식을 다시금 일깨우고자 기획한 전시였다"라고 했다."본래 사경은 불교 경전을 옮겨 쓰는 행위와 옮겨 쓴 경권에만 국한됐지만 요즘엔 달라졌습니다. 다양한 종교와 함께 사경의 영역이 성경사경, 교전(원불교)사경, 코란사경 등으로 점차 넓혀져 가고 있죠. 일본의 경우 사경인구가 600만명에 이르고 전승도 잘 되고 있지만 한자문화권에서는 우리나라 사경이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합니다. 사경의 전통 양식과 기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세계화할 수 있는 자산이죠."외국에서 전시와 강연 등을 통해 전통사경의 세계화에도 앞장서왔던 그는 내년에는 뉴욕에서 초대전을 가질 계획. 사경의 가치를 알려온 그의 외로운 노력이 이제서야 결실을 맺고 있다.

  • 기획
  • 이화정
  • 2011.10.0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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