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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들

한병성 전북대 명예교수 그때는 알지 못했죠. 우리가 무얼 누리는지. 거릴 걷고 친굴 만나고 손을 잡고 껴안아주던 것.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것들. 처음엔 쉽게 여겼죠. 금세 또 지나갈 거라고. 봄이 오고 하늘 빛나고 꽃이 피고 바람 살랑이면 우린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우리가 살아왔던 평범한 나날들이 다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버렸죠. 당연히 끌어안고 당연히 사랑하던 날 다시 돌아올 때까지 우리 힘껏 웃어요. 잊지는 않았잖아요. 간절히 기다리잖아요. 서로 믿고 함께 나누고 마주보며 같이 노래를 하던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것들. 우리가 살아왔던 평범한 나날들이 다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버렸죠. 당연히 끌어안고 당연히 사랑하던 날 다시 돌아올 거예요. 우리 힘껏 웃어요. 당연히 끌어안고 당연히 사랑하던 날 다시 돌아올 거예요. 우리 힘껏 웃어요. (이적의 당연한 것들 노랫말) 이 노래는 코로나19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격려하고 어려움을 극복해 보자고 부른 이적의 노래다. 가수 이적처럼 세계 많은 아티스트들이 음악으로 춤으로 또는 그림 등으로 희망을 갖고 어려움을 극복해 보자고 응원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응원들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코로나 19가 우리들 모두에게 견디기 힘든 참 많은 어려움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수십만 사망자 발생도 그 중 하나다. 부모 형제는 물론 매일매일 얼굴 맞대고 인사 나누던 가까운 이웃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을 보내는 마지막 배웅 길마저도 함께하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꾸역꾸역 울음만을 삼켜야 하는 슬픈 광경도 목격했다. 이들 죽음에는 병원에서 제대로 진료도 받지 못하고 죽은 20대 일본 스모 선수도 있다. 중국 후베이 성 우한에서는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처음 세상에 알렸다는 이유로 공안에 끌려가 처벌을 받았던 우한 종합병원 의사 리원량(34세)도 있다. 그는 병원에서 환자진료를 계속하다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확진판정을 받고 투병 중 결국 사망했다. 더 가슴 아픈 것은 그의 부인이 우한의 한 병원에서 둘째 아들을 출산하던 중에 남편 사망소식을 들어야만 했다는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 역시 매우 심각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물론 국가 간 이동 제한에 따른 경제활동 위축으로 많은 실업자가 발생했다. 격리기간이 장기화 되자 배고픔이 코로나보다 더 견디기 어렵다는 원망의 소리도 커지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몇몇 수녀원들이 엄격한 봉쇄와 치솟는 물가로 끼니를 못 잇는 지경이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19의 확산이 가난한 사람에게 더 혹독한 시련이 되었다. 이런 어려움들이 시간이 지나도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지만, 극복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노력이 멈추지 않는다면 희망은 있다. 극복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방호복 옷을 땀으로 흠뻑 젖어가며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생명의 위협도 무릅쓰고 의료현장을 누비는 의료진과 방역 관련자들의 헌신도 있다. 경제적 지원은 물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재능기부도 줄을 잇고 있다. 그렇다. 당연히 끌어안고 당연히 사랑했던 그런 날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희망을 가지고 우리 힘껏 웃어보자, 비록 현실은 어렵더라도 스스로를 격려하고 이웃들에게 웃음을 전하며 응원하자.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극복되어야만 한다. /한병성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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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02 19:28

그해 여름! 곰티재 옛길과 실록길

이미영 전북지역교육연구소 대표 녹음이 무성한 여름이면 걷고 싶은 길이 있다. 더구나 올해처럼 힘들고 답답한 시절엔 자녀와 함께 호젓한 이 길을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바로 완주 소양면 신촌리에서 진안 부귀면 세동리로 넘어가는 곰티재 옛길과 내장사 금선계곡 용굴로 가는 조선왕조 실록길이다. 두 길은 1592년, 그해 여름에 있었던 전라도민의 이야기가 살아 있는 길이다. 곰티재 옛길은 일제 강점기인 1910년대 건설된 신작로로 1970년대 모래재 구간이 건설되기 전까지 전주에서 진안으로 넘어가던 주요 교통로였다. 427m인 곰티재를 오르는 옛길은 고개를 굽이굽이 돌아서 걷는 거리가 5.2Km가 되니 경사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7월의 곰티재 옛길을 도란도란 얘기하며 걷노라면 길가에 핀 하늘나리, 산딸기, 쐐기풀이 미소 짓고 만덕산 울창한 숲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그러나 고갯길 중간까지 높이 100m가 넘는 익산~포항 간 고속도로가 지나며 시야를 막는 것은 옥에 티다. 고개 마루에 도착하면 진안 부귀면의 경계가 보이고 조금 더 오르면 웅치전적비가 있다. 임진왜란 3대 대첩에 버금가는 웅치전투는 1592년 음력 7월 8일에 곰티재 일대에서 벌어졌던 전투이다. 우리 관군과 의병은 웅치전투에서 수천 명이 전사하며 패했으나, 이튿날 다시 지금의 소양과 금상동, 신정동 일대에서 벌어진 안덕원 전투에서 승리해 곡창지대이자 전라감영이 있는 전주성을 지켜냈다. 당시 왜군은 조선군의 용맹함에 감탄해 조선군의 시체를 묻고 조선의 충성스럽고 의로운 행위에 조의를 표한다는 뜻의 조조선국충간의담(弔朝鮮國忠肝義膽)이라는 푯말을 세웠다고 한다. 늦었지만 최근 당시 조선군 무덤 터 등 웅치전적지를 발굴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또 하나의 길은 여름철 짙푸른 내장산 숲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조선왕조 실록길이다. 실록길은 내장사에서 금선계곡을 따라 약 1.5Km 정도 완만한 길을 걷다가 마지막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깍아지른 절벽에 있는 목적지인 용굴이 나온다. 용굴은 길이 8m, 높이는 2~2.5m로 제법 크다. 실록길은 조금만 걸어도 산 안에 숨겨진 것이 많다는 내장산 이름처럼 숲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 느낌이 든다. 1592년 음력 6월, 왜군이 전주로 침략해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경기전 참봉 오희길은 태인의 선비 손홍록을 찾아가 전주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과 경기전에 있는 태조어진을 옮기는데 도와줄 것을 간청했다고 한다. 유생 손홍록은 학문을 같이 했던 안의와 함께 수십 명의 사람과 말을 끌고 전주로 달려가 실록과 어진을 싣고 일주일 넘게 걸려 내장산 깊숙한 곳 용굴암까지 옮긴다. 이후 실록을 조정에 인계할 때까지 13개월여에 걸쳐 실록을 지킨 이는 안의, 손홍록과 더불어 자발적으로 나선 이름 없는 민초들이었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으로 춘추관, 성주, 충주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실록은 불타버렸지만 전라도 선비와 민중이 지켜낸 전주사고의 조선왕조실록만 유일하게 남아서 역사를 전하고 국보와 세계기록문화유산이 되었으니 전북도민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다. 곰티재 옛길과 조선왕조 실록길! 그해 여름, 왜군들의 침략에 맞서서 치열하게 싸웠던 전라도민의 피땀 어린 길이다. 2020년 여름, 전라도 정신이 오롯이 녹아있는 두 길을 걷다보면 힘과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영 대표는 (사)전북청소년교육문화원 이사장을 지냈으며 현재 전북농촌지역교육네트워크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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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26 16:26

코로나19 이후, 우리 교육이 나가야 할 방향

이경한 전주교육대학교 교수 우리 사회는 갑자기 닥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하여 혼란을 겪고 있다. 교육에서도 미래의 교육인 비대면 교육을 준비되지 않은 채로 맞이하여 경험하고 있고, 어느덧 온라인 비대면 교육이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하고 있다. 교사, 학생, 학부모 등의 교육 주체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가져온 상황에 허둥지둥하면서도 나름대로의 적응을 해나가고 있다. 교사들은 온라인 수업 콘텐츠를 개발하여 쌍방향 수업을 하고, 학생들은 부정기적인 등교로 생활의 리듬을 잃으면서도 온라인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을 넘나들며 적응하고 있다. 그리고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생활지도, 가정에서의 교육, 온라인 수업 지도 등을 낯설어하며 경험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가져온 우리 교육의 새로운 일상은 역기능과 순기능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생각보다 먼저 찾아온 미래교육인 비대면 온라인교육은 교사들에게는 수업 콘텐츠의 수동적인 소비자에서 개발자이자 적극적인 활용자로서의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우리교육이 교실 공간을 벗어나 모든 곳을 수업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험시켜주고 있다. 학생들은 온라인 수업 공간에서 자신의 주도성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학부모들은 학교 출석과 함께 가정에서 자녀의 공부를 지도하면서 홈스쿨링의 역량을 축적하고 있다. 우리 교육주체들은 도둑같이 다가온 미래교육을 교육개혁의 견인차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비대면 온라인교육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교육위기를 주고 있다. 먼저, 교육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비대면 온라인교육에 대한 대처와 적응에서의 엄청난 차이에 따른 교육의 양극화를 보여주고 있다. 비대면 교육은 경제적, 사회적 취약 계층의 학생, 학습 결핍이 누적된 학생, 이중 언어 환경의 학생 등에서 학력의 결핍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반면 높은 사회 경제적 계층은 홈스쿨링이라는 미명 하에 사교육을 확대시켜 자녀들의 학력 신장을 적극적으로 도모하고 있다. 또한 온라인 학습 환경의 차이, 즉 디지털 격차로 인한 교육의 양극화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온라인 학습을 위한 하드웨어 차이는 물론이고, 온라인 학습에의 경험 정도, 학부모의 자녀 돌봄 정도, 자녀의 학습 습관 등에 따라서 학생들의 학력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 교육은 새로운 일상이자 낯선 실험을 경험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비정상적 교육을 정상적 교육으로 전환하여 우리의 새로운 일상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교육청, 학교 등의 교육기관은 온라인교육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해서 비대면 교육을 대비해야 한다. 온라인 교육 플랫폼에 수많은 수업 콘텐츠를 개발하여 어떤 수업공간에서도 학습할 수 있도록 준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다양한 에듀테크를 활용하여 학생들의 수준에 따른 맞춤형 수업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비대면 교육과 대면 교육의 장점을 살린혼합형 학습(blended learning)을 실행하여 교과 특성에 맞는 수업, 맞춤형 수준별 학습 등을 실현해야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다가온 미래교육에 대처하기 위해서 디지털 온라인 콘텐츠 개발 및 수업, 디지털 교육환경을 적극적으로 구축하고, 교육청은 이를 교육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컨트롤 타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이경한 교수는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대표와 교육자치전북시민연대 대표,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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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19 16:25

인국공, 공정성을 잃은 공정성 논란

이성원 TBN 전북교통방송 사장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이 난리다. 보안검색 노동자 1902명을 직접 고용하는 일을 놓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미통당이 TF까지 구성하고 나섰으니 당분간 갈 것 같다. TBN 전북교통방송에서도 작년에 보안관리와 환경관리를 맡는 다섯 분이 정규직이 되셨다. 윤종기 이사장의 결단에 따라 도로교통공단 소속 모든 기관에서 동시에 전환됐다. 기존 정규직 직원들의 반대가 있었냐고? 아니다. 오히려 반기고 축하해줬다. 정규직은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된다는 뜻이지, 일반직과 동의어가 아니다. 매번 고용계약을 새롭게 고쳐 써야 하는 불안하고 불편한 절차만 사라졌을 뿐, 그동안 해오던 업무는 변함없다. 임금체계도 거의 그대로이다. 나중에라도 PD가 되거나 일반 행정직이 될 가능성은 없다. 시설관리와 교통정보수집 쪽도 이전에 정규직이 되었지만 지금까지 문제가 없었다. 물론 공공기관(공사, 공단)이라고 해서 모두가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저마다의 특성이 있고 처해있는 상황도 다를 것이다. 기존 정규직의 복지 축소라든지 새로운 노-노 갈등 우려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노조의 반발은 어느 정도 이해도 된다. 그런데 전면에 내세워진 것은 노조보다는 취준생이었다. 자칭 검색요원이 커뮤니티에 올린(올렸다는?) 글이 불쏘시개가 됐다. 알바로 들어와서 190만원을 벌다가 정규직이 돼서 연봉 5000만원을 받게 됐다는 이 사람은 서울대, 연대, 고대 나와서 뭐하냐, 니들 5년 이상 버릴 때 나는 돈 벌면서 정규직이 됐다고 조롱했다.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취준생에 대한 역차별 로또취업 벼락 신분상승 등의 언어로 양념을 치며 청년들의 분노를 유발했다. 그러나 어쩌랴, 가짜뉴스로 밝혀졌다. 보안검색 업무는 2개월간 200시간 이상의 교육을 받은 뒤 국토교통부의 인증평가를 통과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르바이트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취준생들이 꿈꾸는 직장은 더 더욱 아니다. 꼭두새벽으로 오밤중으로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면서 평균 연봉 3500만 원 정도(초봉이 아니다) 받는 직장을 얻기 위해 만점에 가까운 토익점수를 받고 허벅지를 찔러가며 밤새 공부하는 취준생이 많지 않을 것이다. 취준생의 밥그릇 빼앗기가 아니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시비는 채용과정의 공정성으로 옮겨붙었다. 야당은 로또취업방지 법안을 발의하고, 인국공 공정채용 TF까지 만들었다. 과정만 공정하다면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일까? 언론과 정치권 안팎의 논란은 공정한 채용 보다는 채용 반대쪽으로 쏠리는 듯하다. 공개경쟁시험을 치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온갖 어려움 속에서 십 수 년 동안 묵묵히 일해 온 사람들을 내쫒고 새로 충원하는 것이 공정하고 가능한 일일까? 언론은 정규직 전환에 대한 여러 반대의견을 소개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취재원은 신원확인도 어려운 온라인상의 존재들이다. 과장되거나 엉뚱한 주장도 적지 않다. 사실 공정성은 언론의 생명이다. 방송법과 신문윤리강령에도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가 명시돼 있다. 언론에서의 공정성은 대체로 객관성, 사실성, 불편부당성, 균형성, 중립성 등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인국공 보도는 과연 이런 부분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오히려 언론 스스로가 기울어진 심판이 되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판을 벌이는 것은 아닌가. 이를 즐기는 것은 일부 정치권이다. 우리 사회는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그럴수록 사회는 불안하고 혼란스러워 진다. 끔찍한 재앙으로 치닫기 전에 차별과 차이를 하나씩이라도 줄여나가야 한다. 절차적 공정성을 지나치게 따지는 것은 발목잡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 이성원 사장은 전북일보 논설위원, 리더스아카데미 사업단 단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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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12 16:01

사소했던 일상의 소중함

한병성 전북대 명예교수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가 살았던 별에는 바오밥나무가 있다. 왕자는 매일 그 나무를 치워야 했다. 치우지 않으면 어느새 금방 커져서 그의 별을 망가뜨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부지런하게 움직여야만 했다. 그 별에는 바오밥나무 말고도 어린 왕자가 씨앗시절부터 소중히 길러냈던 장미꽃 한 송이도 있었다. 그런데 너무 애지중지 키운 탓인지 장미는 늘 투정이 많고 어린왕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다. 오냐오냐 하며 장미의 말을 들어주던 어린왕자는 결국 장미에게 화가 났고 장미의 오만함과 강한 자존심을 고치기 위해 자신의 별을 떠나,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까지 오게 된다. 어린왕자는 곧장 사하라 사막으로 간건 아니었다. 어린왕자가 지구에 이르기까지 여섯 개의 별을 거치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별에서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한 어린왕자는 여섯 번째 별마저 포기하게 된다. 여섯 번째 별에서 우연히 만난 지리학자로부터 지구라는 별을 소개 받게 되고, 그렇게 하여 도착하게 된 지구에서 어린왕자는 뱀과 장미꽃도 만났다. 지구에서 이것저것 놀랄 일을 많이 겪으며 상심에 빠져버린 어린왕자는 이번에는 여우도 만나고. 또 비행사와 친구가 되기도 한다. 여행한지 1년째 되는 날 어린왕자는 지구에서 장미꽃을 본고난 후 별에 두고 온 장미꽃의 소중함을 깨닫고 비행사에게 돌아간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어린왕자는 떠나오기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장미꽃의 소중함을 뒤늦게야 깨닫고 살았었던 별로 되돌아갔던 것처럼,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아무런 느낌 없이 지내던 사소한 일상들이 돌이켜 생각해 보면 매우 소중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가끔 만나 식사를 함께한 후 찻집에 죽치고 앉아 여자들에게 뒤질세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주변의 따가운 시선마저 무시한 채 수다를 떨었던 시간들도 지금 생각해보면 참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너무 반가워 얼굴가득 함박웃음 머금고 덥석 맞잡은 손으로부터 전해오는 따뜻한 온기도 그립다. 늦은 휴일 아침 아내 손잡고 어슬렁거리며 걷다가 사먹던 재래시장 가판대 음식도 생각난다. 마트 시식코너에서 집어 먹던 맛 배기 공짜 음식의 짜릿함도 잊을 수 없다. 학교도서관 서가들 사이를 오가며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던 마음의 여유. 스치기만 해도 튕겨져 오를듯한 싱싱한 젊은이들의 어깨를 부딪치며 걷던 캠퍼스의 시끌벅적한 소란함. 오랜 망설임 끝에 큰 맘 먹고 구입한 뮤지컬 티켓을 손에 쥐고, 옷장 깊숙이 넣어둔 정장을 꺼내 먼지를 털던 때 손가락으로 전달되어 오던 가벼운 전율. 최근 크게 흥행하고 있는 영화 티켓을 구입하려고 늘어선 긴 대기 줄에서 먹던 심심풀이 팝콘의 유혹. 종일 대문 밖을 서성이며 온몸을 다해 기다리다 지칠 무렵, 밭일 끝내고 돌아오는 어머니를 보고 느꼈던 안도감처럼, 모처럼 적금만기일 맞춰 떠난 해외 단체여행의 무리에서 떨어져 해매다 가이드의 깃발을 본 순간 느꼈던 안도감. 아침 한바탕 혼이 빠지도록 시끌벅적 떠들어대던 말괄량이 손녀들을 노란색 버스에 가까스로 태워 준 후 아내와 마주 앉아 달콤한 양촌리 커피를 마시면서 느낀 평온함. 물론 귀하게 생각되어지는 사소한 일상들이 각자 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이런저런 평범했던 일상들이 매우 소중했음을 깨달았다. /한병성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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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05 16:25

국민의 마음을 얻는 시작

이영희 전북지방병무청장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는 말이 있다. 백성의 마음이 곧 하늘의 마음이라는 것은 민심을 얻지 않고서는 나라의 모든 것이 바로 설 수 없다는 말이다. 예부터 민심의 중요성은 강조되어 왔다. 맹자(孟子)는 하나라의 걸왕과 온나라의 주왕이 천하를 잃은 것은 그 백성을 잃었기 때문이며, 그 백성을 잃은 것은 그들의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다라고 하며 백성을 얻으려면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올해 UN 산하 기구가 발표한 2020 세계행복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세계 153개국 중 작년보다 일곱 단계 떨어진 6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행복지수는 1인당 국내 총생산과 사회적 지원, 사회적 자유, 부정부패 등 6가지 항목을 기준으로 산출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1인당 국내 총생산 규모가 27위, 사회적 지원이 99위인 점을 감안하면 경제적 발전이 국민이 체감하는 행복과는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사회적 지원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보다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복지 불평등이 적은 사회가 더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에서는 지난해를 혁신적 포용국가 원년으로 선언하고 양적 성장을 넘어 성장의 혜택을 우리 모두 같이 누리는 질적 성장을 추구하며, 각종 정책 추진에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 등 사회적 가치 실현을 전제하고 있다. 이에 맞추어 공무원들은 국민의 입장에서 공공서비스를 혁신하고 국민이 삶과 밀접한 공공서비스에서 소외 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취약계층의 공공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제고하고, 제도 및 정책 서비스를 사회적 가치 중심으로 개선해야 하는 이유이다. 병무청에서도 국민의 불편을 해소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다양한 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병역의무부과 통지서를 받아볼 수 있는 모바일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신체적경제적으로 취약한 병역의무자의 병역이행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병무청에서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희망나눔 병역 프로젝트는 경제적신체적 약자의 병역이행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기초생활수급자 등 경제적 약자에 대하여는 모집병 지원 시 가산점 부여 및 사회복무요원 겸직 허가 등을 통해 이들의 안정적인 병역이행을 지원한다. 시력이나 체중으로 보충역 또는 면제 판정을 받은 신체적 약자에 대해서는 이들이 현역병 또는 사회복무요원 복무를 원할 경우 민간 병원, 체중조절기관 등과 협업을 통해 치료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지원으로 전북에서도 사회복무요원소집대상 3명이 질병 치료 후 병역처분 변경되어 현역병으로 복무 중에 있다. 이 외에도 우리청에서는 2016년부터 지역 병원과 협업으로 병역판정검사대상자 중 생계가 곤란하여 질병치료를 중단한 20여명에게 무료 치료 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탄탄한 사회 안전망과 국민에 대한 국가적 지원체계가 우수한 핀란드가 2018년도부터 3년간 국민행복 지수 세계 1위라는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촘촘하게 짜여진 공공서비스가 국민들 삶의 축을 지지하고 개개인의 필요를 채움으로써 삶의 질적 향상은 물론 국민들의 마음까지 풍성하게 한 성과일 것이다. 우리 사회도 공공서비스 개념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한 때다. 국민들의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는 국민들을 단순히 수혜적 대상만으로 바라보지 말고 국민이 요구하기 전에 그들의 입장에서 지금 필요한 공공서비스가 무엇인지 잘 살펴서 개개인에게 맞춤형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갑자기 마주한 낯선 바이러스로 모두가 힘든 시기에 국민의 마음을 여는 열쇠는 바로 따뜻한 관심과 공감, 배려를 품은 마음일 것이다. 국민들이 지금의 힘든 시기를 잘 견딜 수 있도록, 평범하지만 행복한 일상이 이어질 수 있도록 국민들의 필요를 살피고 마음 가득 행복을 채울 수 있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게 병무행정의 배려가 미칠 수 있도록 국민의 요구에 마음과 귀를 열고 국민 편익을 최우선하는 병무 정책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이를 적극 실천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영희 전북지방병무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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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28 16:28

일본의 작은마을 가미야마로부터 배우자

김동영 전북학연구센터 센터장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바위에 앉아 무릎 위 노트북으로 도쿄본사와 화상회의를 하는 프로그래머의 영상이 2011년 NHK에 소개되면서 가미야마라는 작은마을이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도쿄에서 600km나 떨어진 인구 약5300명의 시골마을에 2008년부터 8년간 웹디자이너, 컴퓨터 그래픽 엔지니어, 예술가, 요리사 등 창의적 직업의 청년들을 중심으로 91세대 161명이 넘게 이주했다. 해발 1000미터에 위치한 산간 마을에 어떻게 IT관련 혁신기업이 16개 넘게 이주한 것일까. 변화는 가미야마출생의 오오미나미씨가 도쿄를 거쳐 미국 스탠퍼드대학 대학원 유학을 마치고 건설업인 가업을 잇기 위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면서부터 시작됐다. 1990년 오오미나미씨는 1927년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우호친선을 위해 가미야마초등학교에 보낸 인형에 대한 답례로 인형귀향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가미아먀 국제교류협회를 만들게 된다. 1993년엔 도쿠시마현에서 외국어를 가르칠 외국인 청년 지도교사 연수프로그램을 유치했다. 1999년엔 예술가들이 일정기간 마을에 머무르면서 작품활동을 하는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유명한 예술가가 아닌 마을주민과 함께 할 수 있는 예술가를 원했다. 처음 4명이던 예술가는 2015년 163명까지 늘어났다. 15년 이상 외국교사와 예술가들이 머물었던 홈스테이가 수백가구에 이르면서 가미야마는 자연스럽게 개방적으로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지역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러한 성공적 경험을 바탕으로 2004년 오오미나미씨는 동료들과 함께 마을의 변화를 도모하는 그린밸리라는 NPO를 만들게 된다. 2008년 그린밸리는 가미야마로 이주할 청년을 모집하는 이주지원사업을 시작한다. 이들은 그동안 마을이 청년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다는식의 홍보가 아닌 우리마을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지를 중심으로 청년을 역지명하는 역발상을 시도했다. 일감을 가진 사람, 청년 이주를 우선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마을에 일이 없으니 창업이 가능한 사람을 이주시키자는 취지였다. 이주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그린밸리가 운영하는 가미야마 주쿠에 참여해야 한다. 현재 6개월간의 가미야마 주쿠에 참여한 청년 중 40%가 지역에 남아 활동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2010년 가미야마 1호 IT벤처기업의 위성사무실 유치다. 도쿄에 본사가 있는 클라우드기반 명함관리업체인 이 기업은 위성사무실을 둘 곳을 찾고 있었다.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가미야마에 온 사장은 다양성과 개방성을 추구하는 마을에 끌리게 된다. 마침 도시의 삶에 지친 유능한 엔지니어 한명이 퇴사를 원하고 있어 그에게 가미야마 랩상주직원으로 추천하게 된다. 그는 현재 자전거로 출근하고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고, 매일아침 아이들과 산책을 하면서 실시간 영상으로 업무를 본다. 이제는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업무방식을 추구하는 원격업무가 가능한 IT관련 기업과 직원들이 가미야마에 위성사무실을 두기를 원하고 있다. 시골의 작은마을 가미야마가 누구나 꿈꾸는 일과 삶의 균형이 실현되는 곳을 만들고 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가미야마는 지역의 생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푸드허브 프로젝트, 지역임업과 건설업이 함께하는 공동주택프로젝트, 지역의 리더를 키우는 농업학교 등 지역문제해결에 창의적인 인재를 결합시키고 있다. 지역에 있지만 세계를 향하고 지역의 작은 것들을 연결해 혁신을 만드는 최첨단 과소화 마을을 전북에도 만들어 보자. /김동영 전북학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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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21 16:15

‘문화의 힘’을 모아 ‘새만금의 힘’으로

김현숙 새만금개발청장 새만금에 드디어 박물관이 들어선다. 많은 기대 속에서 오는 7월, 새만금 방조제 초입지에 국립새만금간척박물관 착공이 시작된다. 박물관은 새만금개발청에서 짓는 첫 건축물로, 새만금과 간척의 역사, 기술, 가치를 재조명하는 기회의 공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새만금개발사업을 추진 중인 우리 청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의미가 크다. 새만금개발청은 박물관의 필요성과 정체성에 대해 계획 초기부터 꾸준히 고민해왔다. 어떤 식으로 박물관을 만드느냐에 따라 박물관이 단순한 유물 전시공간으로 끝나지 않고, 새만금에 문화의 힘을 불어넣는 전초기지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한 사회의 정신적물질적 발전 상태를 의미한다. 박물관은 문화의 집성체다. 하나의 박물관에는 역사, 이야기, 생활 등 수많은 문화가 담겨 있다. 따라서 새만금박물관은 지역의 역사와 이야기를 전시해 새만금의 문화를 보여주는 장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중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는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 문화에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힘이 있다며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화는 마음의 문을 열어주고, 인문학적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워주며, 서로간의 소통을 도와준다. 새만금박물관에 기대하는 역할도 비슷하다. 찾아온 관람객들이 박물관의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새만금과 간척의 역사와 의미를 이해하고, 문을 나서면서 새만금과의 소통이 만족스러워 행복함을 느낀다면 박물관은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박물관 건립이 국가가 주도하는 인프라 구축사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주인이 되어 함께 만들어나가는 공통의 관심사가 되기를 바란다. 문화로 행복을 전달해주는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착공 이후에도 전문가와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꾸준히 청취하고 소중한 자료의 의미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현재 새만금개발청은 자료 기증기탁 운동, 박물관 자료수집 공모전 등을 추진준비하고 있다. 오래되고 값비싼 물건들만 박물관의 전시품목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새만금사업에 참여했던 작업자의 낡은 장비, 당시 생생한 간척 시공 현장을 알 수 있는 서류, 간단한 메모 한 장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새만금 간척의 기억이 된다. 새만금개발청은 국민들이 건네준 소중한 자료들에 이야기를 부여해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그 가치와 의미를 느끼며, 기증자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어느덧 새만금사업이 시작된 지도 30년이 흘렀다. 올해는 방조제 개통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쉴 새 없이 달려온 새만금개발에 박물관이라는 문화의 힘을 더하여 더욱 매력적인 새만금을 만들고, 새만금의 힘으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미래를 그려본다. /김현숙 새만금개발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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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14 16:29

순창 촌놈의 한 살이

신형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필자의 고향은 장류와 장수의 고장, 순창 하고도 쌍치다. 쌍치중학교가 1970년이 되어서야 개교했으므로 필자는 중학교 진학을 위해 순창읍내로 유학해야만 했다.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도 경음과 격음이 동시에 들어 있는 고향을 밝히는 것이 죽도록 창피했었다. 그렇지 않아도 동급생들에 비해 몸집도 작고 갑작스러운 도회지 생활에 잔뜩 주눅 들어있던 필자는 이름 대신 집요하게 쌍치쌍치라고 불러대는 친구들이 섭섭하고 또 분해서 외톨이로 지내며 공부에만 몰두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렇게 시작된 유학생활은 대학원까지 죽 이어지게 된다. 고교시절엔 힘들어진 집안사정 때문에 수업료를 못 내 출석정지를 당하곤 했었다. 종국에는 감사하게도 선생님들께서 몰래 내주셨는데 사춘기 소년으로서 엄청 창피한 일이었다. 대학입학 이후로는 부모님으로부터 단 한 푼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7남매의 중간인 내 밑으로도 학업 중이던 동생이 셋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한 것은 1973년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중화학공업을 필두로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서 많은 기술인이 필요했으므로, 요즘처럼 취업용 스펙을 갖추기 위해 애쓸 필요가 전혀 없었다. 2학년을 마칠 때 쯤 무위도식하던 대학생활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그 돌파구로 군(軍)에 지원하였다. 그 때만 해도 북한공비가 출몰하던 고향에는 비상사태에 지역주민을 신속히 무장하여 대응하는 데 필요한 무기를 보관하는 소위 분산무기고가 세 군데나 설치되어 있었고, 필자는 3학년 여름 운 좋게도 이 무기고 경비병으로 차출되어 고향에서 편히 국방의무를 마칠 수 있었다. 고향에서의 군생활은 내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여느 농촌처럼 필자의 고향에서도 길을 내거나 우물을 파는 마을공동의 일은 울력을 통해 수행하였고, 농사일은 품앗이를 통해 해결했으므로 모든 걸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형편이었다. 시골사람들이 도시인에 비해 의리를 중시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높은 것은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시골의 정서에 길들여진 탓이리라 믿는다. 그렇게 서로 도우며 오순도순 살던 고향사람들이 그해 닥친 30년만의 가뭄 속에 모내기 논물을 두고 심하게 싸우는 일을 목도하며, 극한상황에서 무너지는 인간의 나약함에 마음 아팠고, 가난에 허덕이는 부모님이나 고향사람들을 돕기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작심하게 되었다. 농촌의 희로애락을 담은 시작(詩作)을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필자는 유학만 다녀오면 돈벼락을 맞는 줄 알았다. 그래서 복학 후 용맹정진한 끝에 4학년 재학 중 국비유학생에 선발되었고, 이 덕분에 미국의 마음에 드는 대학원을 골라 유학할 수 있었다. 순조롭게 학위를 마치고 박사후 연수중이던 1985년 한국원자력연구원에 해외유치과학자로 초빙되어 국책사업에 참여하였고 사업이 마무리 된 1988년 봄, 마침 고향 인근 대학에 좋은 기회를 얻어 30년 남짓 교육자로서 아이들과 재밌게 보냈다. 지금은 대학을 휴직하고 연구자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던 대덕연구단지에 돌아와 연구자로서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다. 돌이켜보면 필자는 중학교를 빼곤 줄곧 국공립학교를 다녔고 대학원마저 국비로 유학한데다가, 봉직한 직장도 국공립대학과 연구소였으니 필자만큼 국가의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도 없을 듯하다. 50년 전 고향을 등지고 전주로 서울로 또 지구 반대편까지 고향에서 한껏 멀어졌다가, 35년 전 귀국하여 서울 살다가 대전 찍고 이제 전주에 살고 있으니, 부디 공직생활을 큰 탈 없이 마치고 낙향함으로써 순창촌놈의 한 살이가 순조롭게 마무리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신형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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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07 15:54

미래를 준비하면 기회가 보인다

이영희 전북지방병무청장 다가오는 6월 5일은 곡식의 씨를 뿌리는 날로 24절기 중 하나인 망종(芒種)이다. 농사일에는 자연의 시간에 맞춰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것처럼 적절한 때가 있다. 우리의 인생에서 20대 청년기 또한 씨를 뿌리는 것처럼 미래를 준비해야 할 중요한 시기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충격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들의 취업이 어느 때 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계청 4월 고용동향 자료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수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7만 6000명 감소하고 특히, 청년층 취업자는 24만 5000명이 줄어 전 연령대 중 감소폭이 가장 커 코로나로 인해 젊은이들의 일자리 시장에 본격적으로 먹구름이 드리운 모양새다. 이에 범정부적으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병무청도 청년 실업문제 해소에 적극 동참하고자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병역의무자들을 대상으로 군 복무와 취업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취업맞춤특기병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기술이나 스펙이 없는 고졸이하 학력자를 대상으로 입영 전에 본인의 적성에 맞는 기술훈련 기회를 제공하고 관련분야에서 군 경력을 쌓은 후 전역하여 취업을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이다. 올해는 작년보다 600명이 증가한 3200명을 모집해 더욱 많은 청년들이 이 제도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했다. 모집 특기는 기계통신정비건설전기 등 기간산업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어 군 입장에서도 현장 임무수행능력을 갖춘 인력을 즉시 활용할 수 있어 전력증강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군 복무기간 단축으로 인한 숙련된 기술이 긴요한 사항에서 안성맞춤이라 할 만하다. 아울러, 군 복무 후에는 고용노동부, 국가보훈처 제대군인지원센터 등 관련 기관으로부터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취업지원과 각종 취업정보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도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병무청에서는 모든 병역의무자를 대상으로 병역진로설계 사업을 확대 추진하고 있다. 입영 전에 전문상담을 통해 개인의 적성과 전공을 군 특기에 연계하여 진로에 맞는 군 복무 분야를 설계하고 복무 중 자기계발을 위한 학습정보와 군 장비의 모의체험 등 군 생활 정보도 제공하는 것이 핵심으로 이를 통해 군 복무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인생설계가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처럼 군 복무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병역이행이 사회와의 경력단절이 아닌 청년들의 사회진출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군 경력을 토대로 일자리 마련 등 미래 설계를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병역의무자들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어 취업맞춤특기병 제도 등 맞춤정보 서비스를 통해 병역이행의 시간을 자기발전의 기회로 적극 활용한다면 군 복무가 미래의 기반을 다지는 긴요한 자양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최근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사태가 우리의 일상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래의 시나리오를 예측하는 경제사회학자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일어날 것이며 미래를 읽는 자만이 기회를 포착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미래는 준비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앞으로 전북지방병무청은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 청년들의 병역이행이 곧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청년 일자리 창출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영희 전북지방병무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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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31 16:01

재난지원금으로 지역예술작품 구매가 필요한 이유

김동영 전북학연구센터 센터장 재난지원금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코로나19로 인해 소득이 줄어들거나 없어진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생계 가능한 금액을 지원하는 가계소득 증가기능이다. 둘째는 시민들의 소비여력 상승을 통해 골목상권이나 중소기업의 수입보전을 통한 고용유지를 하는데 목적이 있다. 전염병이나 재난 등과 같은 갑작스런 위기는 저소득층이나 자영업자와 같은 취약계층부터 생계를 위협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은 일시적으로 경제적 위기에 빠진 사람들에게 매우 시의적절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재난지원금의 취지와는 다르게 기부와 소비 그리고 사용처 등에 관한 작은 논쟁이 발생하면서 직장인사이에서는 눈치 아닌 눈치를 보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기부를 통해 고용보험의 적자를 줄이는 것과 소비를 통해 생계곤란에 빠진 영세 자영업자의 경제위기를 지원하는 것 모두다 의미가 있는 일이다. 다만, 재난지원금을 명품숍이나 성형외과 등과 같은 개인의 사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재난지원금을 슬기롭게 쓰는 방법은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피해가 심한 소상공인이나 농어업인의 생산물이나 상품을 구매하는 것일 것이다. 소상공인이나 농어업인 만큼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재난지원금 사용과정에서 소외된 집단이 있다. 바로 예술가들이다. 코로나19가 대면접촉에 의해 전염되다 보니 공연이나 미술관람 등과 같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문화예술분야의 타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형 축제의 취소나 공연장과 전시관 폐관으로 인해 고정적 소득이 없는 프리랜서형 예술가들은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에 따르면 전국적인 공연취소로 약 633억 2000만원의 손해액이 발생했다고 한다. 재난지원금의 일부를 문화예술분야에 소비하는 것은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술가 지원과 지역문화의 토대를 튼튼히 해서 지역주민은 문화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착한소비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피카소의 작품을 보기 위해 뉴욕 현대미술관에 가거나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기꺼이 프랑스 르브르박물관을 찾지만 지역에 어떤 예술가들과 작품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이번 기회에 지역의 예술가와 작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역예술가 작품을 하나 소장하는 기회로 삼아보자.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이 지역예술가의 디자인 제품이나 그림 그리고 음악앨범과 같은 예술작품 플랫폼을 만들고 지역작가들은 저렴한 가격에 작품을 내놓고 작품에 대한 해석을 덧붙이면 좋을 것 같다. 가까운 시일 내로 전북문화예술회관 내에 한시적인 오프라인 팝업 스토어를 열어 작품을 판매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먼저 자치단체장부터 예술작품을 사고 이어서 전라북도 전체로 확산하는 재난지원금으로 예술작품구매 릴레이캠페인도 시작됐으면 좋겠다. 아인슈타인은 지식은 한계가 있지만 상상력은 세상의 모든 것을 끌어안기에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다라고 했다. 지역 예술작품구매가 코로나19로 각박한 현실에서 나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치를 제공한다면 그 역할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재난지원금으로 예술작품구매가 일상에서 예술을 즐기는 문화로 이어져 자연스럽게 지역작가의 작품을 사는 문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해 본다. 지역작품구매는 나의 문화적 삶을 위한 투자임을 잊지 말자. /김동영 전북학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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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24 17:27

드림 오브 뉴 월드(Dream of New World)

김현숙 새만금개발청장 코로나19로 전 세계적인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인터넷 상에는 혼자 놀기에 관한 재미있는 게시글들이 여럿 올라왔다. 그 중에서도 400번을 휘저어 만든다는 달고나 커피(Dalgona coffee)는 각별한 유명세를 떨쳤다. SNS에는 각국 언어로 해시태그를 단 달고나 커피 사진들이 넘쳐난다. 우리에게 달고나는 설탕을 녹여 만든 과자를 뜻하는데, 외국인들에게는 특별한 커피의 이름으로 알려진 상황이 꽤 재미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달고나 커피가 우리나라에서 유래된 제조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달고나 커피의 원조는 마카오다. 이 커피가 한국에서 유행하면서 전혀 다른 이름을 달고 세계에 퍼진 것이다.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은 커피를 만들 때 한국을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될지도 모른다. 브랜드화의 중요함을 소소한 일화에서 확인한 셈이다. 달고나 커피만이 아니다. 무언가를 떠올렸을 때 함께 생각나는 단어들은 결국 대상의 브랜드다. 애플에서 생각나는 혁신, 나이키에서 떠오르는 just do it 등의 이미지는 회사 자체를 도전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만들어 준다. 새만금을 아는 사람은 많다.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대표적인 국책 사업이니 당연하다. 하지만 새만금개발청에서 새만금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하면 깜짝 놀라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10년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되면서 새만금 사업도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직도 진행 중인 사업인지, 뭘 하고 있는지를 되묻는 사람들을 보면 실제로 새만금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새만금을 안다는 답변 수보다 훨씬 적을지도 모른다. 새만금, 하면 떠오르는 간척사업의 이미지와 지금의 새만금은 많이 다르다. 최근 새만금개발청은 I♡SEAMANGEUM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새만금을 상징하는 이미지 디자인을 만들었다. 끊임없이 변신할 새만금의 미래와 비전을 반영하여 국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다. 다채로운 색의 이미지 디자인은 드림 오브 뉴 월드(Dream of New World), 클린(Clean), 에코(Eco), 판타지(Fantasy)와 같은 새만금의 콘셉트들을 담고 있다. 새만금개발청은 슬로건과 이미지 디자인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새만금 브랜드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간척사업이 추진되는 매립지와 바다가 아니라, 새로운 꿈의 도시산과 바다가 함께 하는 친환경 공간스마트 신산업의 중심지로 국민들에게 새만금을 알리기 위해서다. 물론 홍보가 사실이 될 수 있도록 관련 산업도 병행하여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이미 계획된 새만금의 변화만 알린다고 해도 홍보할 소식이 넘쳐난다. 홈페이지나 SNS, 전시회 등을 통해 이러한 변화를 알리고 있지만, 이번 이미지 디자인은 새만금의 콘셉트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새만금이라는 단어에 자연스럽게 판타지와 스마트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브랜드화의 효과는 놀랍다. 비전을 알릴뿐만 아니라 비전을 제시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애플은 혁신을 주장했고 사람들은 이제 혁신이란 단어에서 애플을 연상한다. 그 이미지는 기업이 더욱 혁신적인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동력이 된다. 새만금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새만금을 이상적인 미래도시라고, 앞으로 살고 싶고 찾아오고 싶은 멋진 곳이라고 생각해준다면 새만금도 그 기대에 부응하는 곳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김현숙 새만금개발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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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17 16:00

워라벨보다 워라이가 행복한 사람들

신형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모든 사람은 행복한 삶을 꿈꾼다. 행복한 삶이란 뭘까. 필자는 자기만족에 있다고 본다. 어떤 사람은 주야장천 노는 생활을 원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쉼 없이 일하면서 만족감을 느낀다. 요즘 직장에서 노동시간에 대한 얘기가 자주 오간다. 국회가 2018년 2월말 통과시킨 근로기준법 개정안 때문이다. 법정근로시간을 주 52시간(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은 근로자 보호를 위한 강행규정이므로 노사가 합의하더라도 주 52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며 이를 어길 시 사업주가 처벌받게 된다는 게 골자다. 고용노동부는 갑작스런 법 개정에 따른 근로현장의 충격을 덜어주기 위해 기업 규모별로 시행시기를 차등 적용하고, 중소기업에 대해 1년의 계도기간을 부여하며, 유연근로시간제를 통해 사업장 특성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보완책을 제시했다. 그밖에도 불가피한 재난 및 사고 수습이나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 등의 경우에는 특별연장근로 신청을 통해 한시적으로 주 52시간 이상 근무할 수 있도록 규정을 완화한 바 있다. 고무적인 수순이다. 공공기관의 범주에 속하는 정부출연연구소에는 18년 7월부터 개정안이 적용되고 있다. 연구자들은 재량근로시간제를 선호하는데, 주 52시간 한도 내에서 재량껏 근무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율을 부여한 듯 보이는 이 근로제 역시 주 52시간 이상의 연구를 허용하지 않아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평소 적당히 쉬면서 일하자는 워라벨(work-life balance)의 취지에는 적극 동의한다. 필자의 경우 대학원 입학을 기점으로 치면 어언 40여년을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교육과 연구를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그중 대학교수로 살던 30년 동안에 시험출제나 감독, 채점 등의 교육노동이 부담스러운 적은 있었으나 연구만큼은 달랐다. 학창시절의 공부처럼 연구를 노동이라고 여긴 적이 없었다. 그저 내 호기심에 대한 도전이었다. 학생이 매주 52시간까지만 공부할 수 있고 그 이상 하면 처벌한다는 규정이 어불성설일 것처럼 연구도 매한가지다. 필자도 연구가 지지부진하여 몇 달을 허송세월하다가 스트레스성 위궤양이 생겨 죽을 고생을 한 적이 있었던가 하면, 실험이 미친 듯 잘 돼 무박3일 동안 연구에 몰입된 적도 있었다. 한마디로 연구자에게 연구는 삶, 그 자체(work-life equal, 워라이)인 것이다. 필자가 소속한 연구소에서 근로제에 대해 수렴한 의견과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해결을 위한 새로운 근로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연구자에게는 연구성과를 담보로 가칭 자율근무제를 허용해주는 것이다. 연구는 통상 팀으로 진행되는데, 연구팀은 연구계획서에 공약한 성과를 내면 책임을 충분히 다하는 것이다. 어차피 연구계획도 과제책임자 주도로 준비했을 것이니, 그의 책임 아래 근무시간을 비롯한 모든 걸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맡기자는 것이다. 다년연구의 경우 단계평가를 두어 헛고생시키지 않고, 연구를 성실히 수행하는 도중에 내용 일부를 수정할 필요가 생겨 요청이 있을 경우에만 심사하여 조정해주면 될 일이다. 연구특성이나 연구자들의 개인별 습성은 본인들이 가장 잘 알 테니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수행케 하는 100% 자유를 주자는 것이다. 필자는 이 자유가 더 나은 성과를 끌어낼 것이라고 확신한다. 물론 이 제도를 악용하는 연구자도 있을 수 있다. 그 경우 처벌이나 불이익을 주는 일도 그들의 자율에 맡기자. 정부는 연구 실패에 대비하여 큰 틀의 가이드라인만 제시해주면 좋겠다. 따라쟁이에 그치면 일등이 될 수 없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 대처에 창의적선도자 역할을 한 것처럼 이제 과학기술 R&D 방안에 있어서도 세계에 모범을 보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신형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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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10 16:15

위기상황에서 빛나는 국가의 역할과 개인의 의무

이영희 전북지방병무청장 세계는 지금 대한민국을 주시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응 시 이동금지 등 국민기본권을 제한하지 않고 공중보건 관리와 방역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세계적 대유행에도 민주주의 바로미터인 선거를 높은 투표율로 치른 것도 높게 평가되고 있다. 한국산 진단키트 등 의료장비에 대한 각국의 수요도 증가하고 있어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방역 모범국이 될 수 있었던 요인은 신속한 검사와 정보공유, 의료진과 자원봉사자의 헌신적 노력 및 성숙한 시민의식이라고 전문가는 말하고 있다. 특히, 공적마스크 구매 시 질서유지와 장기간의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준수로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는 가운데 상호 배려하고 공동체의 안위를 염려하며 우리는 위기를 극복해왔다. 병무청도 코로나19 심각단계에서 전국의 병역판정검사를 일정기간 중단한 바 있으며 병역판정전담의사를 선별진료소에 의료인력 지원함으로써 공동체 안전을 위한 사회적 연대에 동참했다. 지난 4월 20일 재개된 병역판정검사 시 방역체계를 더욱 강화해 감염의심자 선별발열체크 및 사회적 거리두기를 철저히 이행하고 1일 검사인원 최소화로 감염증 차단에 전 행정역량을 투입하고 있다. 속단하긴 이르지만 10월 15일부터 실시하게 될 전북병무청의 병역판정검사는 최초 감염증 확산 시기보다는 순조로울 것 같다.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기에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과 일상생활 속에서 감염 차단에 주력하는 방역체계는 지속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병역판정검사는 현역보충역 등 역종을 결정짓는 중요한 과정이므로 안전한 환경에서 정밀한 검사를 받은 후 공정한 병역처분이 이루어져야 한다. 병역판정검사에서는 무엇보다 공정성과 정확성이 최우선이기에 검사장에는 MRI 등 최신 의료장비와 전문 검사 인력을 배치하고 전문의 자격을 가진 병역판정전담의사가 과목별로 정밀한 검사를 실시하게 된다. 또한 HIV 검사 등 총 27개 항목에 걸친 병리검사와 잠복결핵검사를 실시하는데 올해부터 당뇨질환 판별을 위한 당화혈색소 검사를 실시하는 등 만19세 남성의 생애 첫 건강검진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수준 높은 검사가 행해진다. 한편, 병역이행의 형평성은 예외 없는 의무 부과를 통해 확보되므로, 병역을 기피하려는 시도는 용납될 수 없다. 그런데 고무적인 것은 병역의무를 고의로 감면받고자 하는 면탈범죄와 달리 자원해서 의무를 다하고자 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질병으로 감면받은 청년들이 질병을 치유한 후 병역을 자진 이행하는 인원이 2016년도에는 256명에서 지난해에는 881명으로 대폭 증가한 데다 병역의무 부담이 없는 외국 영주권자의 입영도 10년 전보다 4배 이상 증가한 643명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선한 영향력을 실천하고자 하는 청년들이 있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19세기 프랑스 사상가 르낭은 애국심을 국가라는 하나의 공동체에 귀속되어 훌륭한 삶을 영위하고 공동의 선을 실현하기 위해 각각 제몫을 하고자 하는 의지로 표현했다. 위기 시 애국심을 발휘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그 예의를 다할 때 공정과 정의는 반칙과 특권 없는 대한민국의 초석이 될 것이다. 연대와 협력으로 코로나19를 이겨낼 즈음 병무청 병역판정검사장에서는 병역의무 이행의 첫걸음을 당당하게 내디딜 청년들을 맞이할 준비를 할 것이다. /이영희 전북지방병무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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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03 15:32

코로나19 이후 변화된 세계를 준비하자

김동영 전북학연구센터 센터장 코로나19는 인류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글로벌 시스템을 한순간에 허물어뜨렸다. 언제나 어디든 갈 수 있었던 국경 없는 세계는 코로나19 이후 꿈같은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는 이제 코로나 이전인 BC(Before Corona)와 코로나 이후인 AC(After Corona)로 구분될 것이라고 봤다. 그 정도로 코로나가 우리의 삶의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세계는 이제 코로나 이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전라북도가 코로나 이후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공급망이 단절돼도 살아남을 수 있는 국내 자립적 생산거점 확보와 언택트 라이프스타일 확대를 대비한 5G 인프라구축이 우선돼야 한다. 첫째, 생필품과 핵심소재 및 부품에 대한 자립적 생산거점을 확보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 각 국가들은 생필품과 의약품, 식량은 물론 전략적 상품의 핵심적 소재와 부품에 대해 수출을 금지하고 국내생산으로의 회귀를 서두르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공장들이 문을 닫고 국가 간 이동을 제한하면서 소재와 부품 공급망이 무너지자 글로벌 밸류체인이 붕괴됐다. 우리는 이미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금지로 공급의 불안이 우리의 경제를 어떻게 위축하는지를 경험한 바 있다. 국제적 연대와 협력시스템이 전염병에 의해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한 국가들은 이제 기업의 아웃소싱을 줄이고 자립적 생산거점 확보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때 전라북도가 국내 기업의 공급망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자립적 생산이 필요한 소재나 부품 또는 상품을 전라북도가 선점하여 국내 자립적 공급거점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둘째, 언택트 라이프스타일 산업을 선도할 5G 인프라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기업들은 재택근무와 유연근무 및 주4일 근무를 시도하고 있고 학생들은 온라인 개학을 통한 원격수업을 경험하고 있다. 이것은 인터넷과 영상회의를 통해 의사결정과 업무추진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인터넷 환경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지만 온라인쇼핑, 원격근무, 게임, 동영상 수요 증가로 인해 전 세계 인터넷 월(月) 데이터 트래픽이 30%이상 증가하고 있다. 급기야 유튜브나 넷플릭스는 트래픽을 낮추기 위해 영상의 화질을 낮춰 서비스하기에 이르렀다. 데이터의 차별을 없애고 많은 트래픽이 필요한 분야의 신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5G 뉴딜프로젝트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 전라북도가 제일 먼저 산골이든 섬이든 전북 어디서나 5G 서비스가 가능한 지역으로 만드는 5G 뉴딜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한다. 도로나 철도를 개설하는 전통적 인프라 구축에는 늦었어도 서버나 5G 서비스 등의 ICT 디지털 인프라 구축에서는 선도적인 지역이 되기를 바라본다.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짐 데이터 하와이대 교수는 한국은 현재 그 어느 때보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으며, 세계 많은 국가가 다양한 영역에서 한국을 롤모델로 지켜보고 있다. 지금의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치지 마라고 당부했다. 코로나가 인류의 많은 것을 변화시킬 것이지만 한국이 세계의 새로운 길을 찾는데 선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이 전세계적으로 부상하는 시기에 전라북도가 그 중심이 되었으면 한다. 이제는 침착하게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준비하고 전라북도가 해야 할 일을 찾아보자. /김동영 전북학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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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26 15:13

10년의 꿈, 새만금 관광

김현숙 새만금개발청장 33.9km,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가 개방된지 10주년을 맞이했다. 기네스북에도 기록된 새만금 방조제는, 개통 후 첫 1년 동안 바다 한 가운데를 자동차로 달리는 이색적인 경험을 위해 찾아온 880만 명의 방문객을 맞이했다. 그러나 방문객들이 가진 관광명소로서의 기대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본래 방조제는 농지조성 목적으로 축조되었으나, 세계 최장 방조제를 관광명소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제방을 따라 부속 토지에 12개소의 명소화 계획이 수립되었다. 그 중 방조제의 중심부인 신시 배수갑문과 연계되어 복합리조트가 예정된 신시-야미지구는 새만금 관광의 핵심 사업지였다. 아쉽게도 이곳의 개발사업 우선협상대상자가 SPC를 설립하지 못해 취소절차 등에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지원 시설이 없는 새만금의 관광매력도와 투자매력도는 낮아져 갔다. 새만금을 찾은 방문객들은 방조제와 배수갑문을 본 후 먹고 즐길만한 오락편의시설이 부족해, 재방문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의견을 냈다. 당연히 방문객도 대폭 감소했다. 감소 추세는 2017년 12월 천혜의 자연경관으로 명성 높은 고군산군도와 방조제를 연결하는 교량이 개통되고서야 멈췄다. 신시도에서 시작해 방조제와 섬들을 연결하는 해상교량은 고군산군도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교량으로 완성된 변산반도 국립공원에서 고군산군도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자연관광축은 5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새만금을 찾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방조제 개통 후 10년을 되돌아보면, 새만금의 관광에서 엉킨 사업 하나의 부정적 영향이, 고군산군도 교량처럼 기반시설 하나의 긍정적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앞으로 10년 후에 같은 아쉬움을 말하지 않도록 새만금만의 매력이 담긴 관광테마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적기에 개발해야 한다. 이에 새만금개발청은 더 많은 사람들이 새만금을 찾아올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준비 중이다. 아름다운 섬, 바다와 호수 등 환경적인 장점을 적극 활용한 고군산군도와 관광레저용지 개발은 물론, 재생에너지 단지와 연계한 체험 프로그램과 미래 스마트도시의 매력을 함께 보여줄 방안을 찾고 있다. 2023년 세계잼버리대회 부지매립을 민간주도에서 공공주도로 전환한 것, 잼버리대회와 함께 호텔이 문을 열 수 있도록 신시야미지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같은 해 개관을 목표로 국립 새만금박물관을 건립 중이며, 박물관과 홍보관 인근에 지어질 가상증강현실 테마파크 사업자를 선정 중이다. 새만금 대표축제인 노마드 페스티벌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행사 추진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조심스럽게, 방조제 첫 완공 시 기대했던 새만금 방조제 명소화 계획처럼 앞으로의 관광명소 새만금도 생각해본다. 개경을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은 자신이 쓴 고려 여행보고서에 고군산군도, 특히 선유도의 아름다움을 자세히 기록해놓았다. 열두 봉우리가 잇닿아 마치 성처럼 보이는 섬의 풍경, 푸른 소나무 숲, 수백 길의 절벽이 만들어 내는 정경. 고군산군도의 아름다움은 사신의 귀국을 14일 간이나 붙잡았다. 방조제 개통으로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새만금은,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머무르고 싶은 곳으로 변화할 것이다. 고국으로 돌아가던 사신이 걸음을 멈추었듯, 지구촌 곳곳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바쁜 일상을 멈추고 또 다른 꿈을 꾸는 공간이 될 새만금의 10년 후를 기대한다. /김현숙 새만금개발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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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19 15:35

초고령사회를 대비하는 과학기술

신형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요즘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의 경우를 보자. 4월9일 00시 기준 우리나라의 전체 치사율은 1.96%이지만 70대 8.67%, 80대 이상 21.14%로 노인의 치사율이 크게 높다. 노화에 따른 장기기능 저하의 결과다. 나이 들면서 기능 저하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장기가 흉선(Thymus)과 폐라고 한다. 흉선은 병원균이 체내에 침입했을 때 균을 인지하고 항체를 만들어내도록 지시하는 기관인데 노화에 따라 기능이 쇠퇴하며 면역력이 떨어지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폐는 노화하며 섬유화가 진행돼 70대 이후에는 기능의 20% 이상이 손상된 상태이기 때문에 노인들의 코로나19 폐렴의 치사율이 증가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작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현재 고령사회이고, 2025년에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이라고 한다. 유엔은 전체인구에서 만 65세 이상의 인구비율이 7%를 넘으면 고령화사회,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한국은 200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지 17년 만에 고령사회로 들어섰다.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빨랐던 일본(24년)의 기록을 추월한 것이다. 온 국민이 빨리빨리를 생활신조로 삼아 고도의 압축성장을 통해 우리경제를 세계사에 유래 없이 빠른 속도로 발전시키다 보니, 인권, 노동, 소득불균형 문제 등의 부작용이 뒤늦게 표출된 것을 우린 잘 알고 있다. 아울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로 진입하다보니 역시 그 변화에 대한 대비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던 게 현실이다. 경제발전의 영웅이었던 기성세대가 고령사회의 피해자로 전락하게 된 것은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고령사회로의 진입은 식생활환경 개선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국민의 평균수명이 증가하는 고무적인 현상이다. 80세, 90세 시대의 넘어 수명 100세를 바라보는 현 세대를 호모 헌드레드로 부른다. 삶의 질 향상이 뒷받침되어 보다 건강하고 즐거운 삶을 누리며 장수한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하지만 앞서 예시한 대로 노인인구 증가에 따라 발생하는 여러 사회경제적인 문제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핵심은 노인들의 경제력과 건강 문제다. 둘 중 과학기술을 통해 대처할 수 있는 분야는 건강, 즉 노인성질환에 대한 대비를 꼽을 수 있겠다. 무릇 병이란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예방이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모든 의료 관련연구는 그 효용성과 독성을 검증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생체(in vivo)실험을 거쳐야 한다. 당연히 사람을 대상으로 할 수는 없으므로 실험동물로 대체하여 수행하게 되는데, 이때 효과적인 노인성질환 연구를 위해서는 고령의 실험동물을 사용해야 함은 자명한 일이다. 2006년부터 퇴행성질환 재생연구를 시작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은 올해 1월 광주센터 부속의 고령동물생육시설을 독립건물로 확대 집적화한 노화연구시설의 준공식을 갖고 본격 가동에 나섰다. 노화연구에 필요한 첨단 연구장비를 갖춘 실험실과 함께, 10여개의 고령실험동물 사육시설과 부대시설로 구성된 연면적 3749 ㎡의 지상 3층 건물이다. 일반적인 실험쥐의 경우 대부분 2~6개월령을 사용하지만, 이 시설은 사람나이로는 60대인 18개월령, 70대인 24개월령, 80세 이상인 30개월 이상의 쥐를 사육공급할 수 있다. 부디 국내 최대 규모의 이 시설이 국내 최고의 개방형 노화연구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여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한 우리나라의 노인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신형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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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12 16:21

건강한 사회, ‘공정한 병역이행’으로부터

이영희 전북지방병무청장 하얀 벚꽃이 만개하고 가로수도 하루가 다르게 녹색 빛이 짙어지는 완연한 봄이다. 코로나19는 여전한데 봄은 아랑곳 않고 찾아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떠올리게 한다. 낯선 감염병은 일상의 풍경을 바꿨고 사회경제적으로도 막대한 피해를 초래해 국가적 재난상황을 부르고 있다. 그러나, 어려울 때 일수록 힘을 모으며 공동체를 지켜온 우리가 아닌가! 정부와 의료진, 국민들 모두가 힘을 모아 이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그럼에도 결코 안심할 수 없으며, 봄꽃이 아무리 유혹해도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고 더욱 힘과 마음을 모아야 할 때이다. 이처럼 국가나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필자는 더욱 절실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회지도층에게 요구되는 높은 도덕적 의무이다. 로마 초기부터 봉사와 기부를 통해 공익에 이바지했던 로마의 귀족들은 앞장서 전쟁에 참여했고, 영국의 고위층 자제인 이튼칼리지 출신 2000여명은 1,2차 세계대전에서 용감하게 싸웠다. 또한, 우리 역사에도 일제강점기에 이회영 일가 등 많은 애국지사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헌신한 바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는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부 사회지도층과 국민적 관심을 받는 연예인, 체육선수들의 병역특혜회피 논란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는 묵묵히 병역을 이행한 청년들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불신을 안겨 주고, 병역의무의 공정성을 훼손시켜 나아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에 병무청에서는 공직을 이용해 부정하게 병역을 회피하는 것을 방지하고 공정한 병역이행 문화정착을 위해 공직자 등의 병역사항 신고 및 공개에 관한 법률을 시행해 오고 있다. 이에 따라 4급 이상 공직자 등의 신고의무자는 병역사항을 신고해야 되고, 이들의 병역사항은 관보와 병무청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2월 말 기준 전국 5만1000여명, 전북의 경우 1200여명의 병역사항이 공개되어 있어 누구든지 고위 공직자와 그 아들의 병역이행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성실한 병역사항 신고를 유도하고, 지연신고 및 누락을 방지하고자 전북청에서는 매년 전수조사 및 신고기관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2017년 9월부터는 고위공직자 및 고소득자와 자녀, 연예인과 운동선수 등 소위 사회관심계층에 대해 병적 별도관리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3만6000여명에 달하는 이들에 대해 병역의무가 발생하는 18세부터 병역의무가 종료될 때까지 병역이행 전 과정에 대해 집중 관리하고 있다. 전북청에서도 1270여명의 대상자에 대해 전담직원을 배치하고, 제도를 악용해 고의적으로 병역의무를 지연하거나 불공정한 감면 사례가 있는지 꼼꼼히 살펴 병역을 성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공정과 정의일 것이다. 세계유일의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병역의 공정성은 그 의미가 더욱 크다. 따라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병역의무에 예외가 있을 수 없으며, 모범이 되어야 할 사회지도층일수록 더욱 성실하게 병역을 이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반칙과 특권 없는 공정한 병역이행 정착은 건강하고 공정한 사회를 위해 반드시 이뤄내야 할 중요한 가치이다. 병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고, 반칙과 특권 없는 공정한 병역문화가 찬란하게 꽃 피우길 화사한 봄날의 햇살에 소망해 본다. /이영희 전북지방병무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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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05 15:30

뻔한 공약보다는 황당한 공약

김동영 전북학연구센터장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지만 후보들의 정책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선거는 후보가 지역이나 국가를 위해 더 나은 정책적 비전을 제시하면 시민들은 어떤 정책이 나의 삶을 변화시킬지를 선택하는 정책경쟁의 장이 되어야 한다. 프랑스의 정치철학가인 알렉시 드 토크빌은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했다. 유권자는 후보들의 정책에 대해 엄정하게 검토하고 비판하면서 더 좋은 정책을 만들도록 심판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후보들은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 더 좋은 정책으로 화답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슷비슷하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뻔한 공약보다는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황당한 공약이 낫다고 생각한다. 국내외 정치후보자들의 공약을 보면 처음 들었을 때는 말도 안되고 황당했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보면 꽤 괜찮은 공약들이 있다. 25년 전 대통령후보로 나왔던 허경영은 결혼하면 1억, 출산하면 3000만원을 주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미래 인구감소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이 공약을 주목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2020년 현재 아동수당으로 월 10만원씩 9년 간 1080만원, 출산장려금 250만원, 보육 누리과정 지원금 월 30만원씩 6년 간 2160만원을 다 합하면 3000만원이 넘는다. 일시불로 지급하자는 공약은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미래의 인구감소문제를 예견하고 미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가치있는 공약이었던 셈이다. 일본의 참의원 선거에서는 고독 담당 장관직을 새롭게 신설하자는 이색적인 공약이 있었다. 65세 이상 노인이 30%를 차지하는 일본에서 혼자 사는 노인의 40% 이상이 고독사를 당한다고 하니 혼자 사는 노인에 대한 정책적 배려는 실제로 필요해 보인다. 이미 영국에서는 2018년에 현대인의 외로움을 사회적문제로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외로움 담당 장관직(Minister for Loneliness)을 세계 최초로 신설한바 있다. 개인적 문제였던 외로움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정부의 정책적 노력으로 이를 해결하고자 시도하는 것은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대통령 민주당 예비후보였던 마이크 그레이블은 석유고갈과 고유가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전역에 풍차 500만대를 설치하겠다고 공약했다. 에너지와 환경문제는 전세계가 직면한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세계 각국은 석유, 석탄 등과 같은 화석연료를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로 재생에너지 확장정책을 쓰고 있다. EU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32%, 중국은 35%, 미국은 48%까지 확대할 목표를 가지고 있다. 에너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으로 풍차를 만들겠다는 공약은 돈키호테같은 황당한 정책이지만 뻔한 공약보다는 차라리 황당한 공약이 그 심각성과 정책적 환기를 해 준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현재 국회의원 후보들은 표가 안되는 정책보다는 직접적으로 표로 이어질 수 있는 조직활동에 전념하는 모양새다. 학연, 지연, 혈연을 통해 사람을 소개 받고 만나고 출근길과 퇴근길에 인사를 하는 것이 선거운동의 전부가 된 듯하다. 후보들의 공약은 비슷비슷해서 분별력이 별로 없고, 공약을 보고 후보를 선택하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 정책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정치꾼은 다가오는 선거만을 생각하고, 위대한 정치인은 다가오는 세대를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후보들을 정치꾼으로 만들 것인지 정치인으로 만들 것인지는 유권자의 행동과 선택에 달려있다. /김동영 전북학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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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29 15:13

새만금의 꿈을 현실로

김현숙 새만금개발청장 어린 시절 나는 집안에서 제법 허풍이 센 아이였다.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꿈을 말하곤 했기 때문이다. 허풍으로 이름 붙여진 그 꿈들을 실현시켜야 할 책임감에 나는 열심히 노력했다. 가족들은 우리가 믿기 어려웠던 네 말이 대부분 이루어져 있더라.라고 말했지만, 사실 이들은 내 꿈을 공유하면서 그 속의 실낱같은 가능성이 커지기를 응원했다. 꿈은 공유될수록 실현 가능성이 커진다. 내가 오늘도 새만금의 미래를 말하는 것은 새만금의 꿈을 공유하고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지난 3월 3일, 새만금개발청은 새로운 문명을 여는 도시, 새만금의 확실한 변화를 주도해 나갈 2020년 업무계획을 발표하였다. 이번 업무계획은 그간의 사업을 체감할 수 있는 성과도출과 새로운 도약을 위한 청사진 마련에 초점을 두고 있다. 새만금 기본계획 재정비는 새만금의 새로운 10년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업무다. 새만금사업은 그간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현재의 새만금사업은 2011년 새만금 기본계획을 바탕으로 추진 중이다. 올해는 1단계 사업(2011~2020)이 마무리되는 시기이다. 2단계 사업은 계획 재정비를 통해 달라진 정책 환경을 반영하고 개발전략을 구체화하여 계획의 실현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민간주도 매립에서 공공주도 매립으로 전환된 내용을 반영하고 공항항만철도 등과 연계한 경쟁력 있는 공간산업 구상 및 기반시설 구축의 재정사업 전환 등을 전면적으로 검토한 후 용지별단계별 세부 개발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실현 가능한 전략을 통한 국책사업으로서의 비전 제시는 민간의 투자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며, 글로벌 명품도시 새만금의 기반 확립에도 기여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신산업 분야에서도 가시적인 성과 창출을 계획하고 있다. 새만금에 들어설 세계 최대 규모의 재생에너지 발전단지는 사업자 지정 후 착공에 들어간다. 투자유치형 1.4GW 수상태양광을 활용하여 기업유치 및 용지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며, RE100 참여를 희망하는 글로벌 기업 유치도 꿈꾸고 있다. 저렴한 임대용지 및 법인세 감면 혜택을 활용한 기업 유치는 올해도 지속될 것이다. 또한 친환경자동차규제자유특구, 에너지산업융복합단지 외에도 강소연구개발특구 및 투자진흥지구 지정을 통해 국가 성장을 이끌 특화산업 육성을 도모할 예정이다. 새만금의 변화가 가장 크게 나타날 대규모 개발사업도 추진된다. 11월에 준공될 동서도로는 신항만과 고속도로를 연결하는 새만금 교통의 허리이다. 동서도로의 개통은 새만금 어디든 20분이면 갈 수 있게 만들어 줄 교통의 한 축이 완성됨을 의미한다. 작년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해 통합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새만금 스마트 수변도시는 올해 말 착공에 들어간다. 미래의 중심 새만금에 드디어 혁신적인 첨단도시가 들어서는 것이다. 편리한 스마트 기술, 아름다운 수변 경관이 어우러져 훌륭한 정주여건을 갖출 스마트 수변도시는 새만금 내부개발의 촉진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또한 재생에너지 발전단지, 산업단지 2지구, 세계 잼버리대회 부지, 신시야미 관광단지 등의 적시적소 개발도 예정되어 있다. 꿈은 그 크기만큼의 인내를 필요로 한다는 말이 있다. 새만금은 환황해경제권의 중심도시, 국가발전을 견인할 미래도시라는 큰 꿈을 가지고 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새만금은 쌓아온 인내를 발판으로 올해도 힘찬 또 한걸음을 딛는다. /김현숙 새만금개발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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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2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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