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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고수이명창

아무리 뛰어난 판소리 명창이라 하더라도 노련한 고수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된 무대를 만들 수 없다는 의미를 뜻하는 말이 “일고수이명창(一鼓手二名唱)”이다. 판소리는 소리꾼의 역량과 성향, 관객의 반응과 분위기 등에 따라 같은 내용이지만 다른 느낌을 만들고는 하는데, 이러한 미묘한 차이를 북장단과 추임새를 통해 바로잡는 이가 진정한 고수이다. 더욱이 고수는 무대에서 홀로 고독할 수 있는 소리꾼의 상대 역할을 담당하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도 하고, 관객의 호응을 유도해 소리꾼의 사기를 올려주기도, 사설을 잊었을 경우 능청스럽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소년 명창은 있어도, 소년 명고는 없다는 말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이와 같이 판소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고수이지만, 관객의 관심을 받지는 못한다. 객석을 바라보며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소리꾼과는 달리 고수는 소리꾼을 바라보며 명품 조연 역할을 할 뿐인데, 판소리 고수처럼 우리 지역 문화현장에서 명품 조연을 맡고 있는 숨은 일꾼 이야기를 해보자. 야외 녹화 현장이나 행사장에서 만나게 되는 기술진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빠른 현장 대처 능력과 정확한 기술적 이해가 아닐까 싶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변수들과 날로 새로워지는 장비와의 만남 앞에서 “내가 경력이 얼마인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조명감독 A는 그런 면에서 탁월하다. 언제 어떠한 질문을 하더라도 답변에 막힘이 없으며, 상황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음이 느껴지는데, 오롯이 끊임없는 공부와 노력 덕분이다. 그는 항상 공부하며, 새로운 장비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연구한다. 절대 자신의 위치와 경력을 뽐내지 않으며, 최고의 작품을 위해서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누구나 그와 일하는 것을 기대하게 된다. 새로운 공연,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기획자 B는 행복한 사람이다. 지금의 기획 말고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는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언제나 공연의 준비 과정 자체를 즐기며, 현명한 판단으로 녹록하지 않은 지역의 현실을 넘어, 기대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내고는 한다. 변하지 않는 그의 열정과 전문적인 업무 역량 덕분에 관객들은 지역에서 접하기 어려운 작품을 만나는 행운을 맛볼 수 있다. 항상 진지한 고민과 가슴 뛰는 도전을 위해 열심이며,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의 미소에서 행복을 찾는 그야말로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다양한 분야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 문화계의 대표 일꾼에서 이제는 예술경영을 고민하고 있는 관리자 C는 내일이 기대되는 사람이다. 누구보다 성실한 자세로 일해 왔으며, 지역의 동료 예술인들을 위하는 마음을 잊은 적이 없다. 전통의 가치를 지키며, 새로운 시도를 마다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속적인 사업을 통해 지역의 인재를 발굴하고, 응원하며, 새로운 관객과의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회성이 아닌 지역 문화의 지속적인 가치를 가꾸어가는 중심에 그가 자리하고 있음은 너무도 다행이며, 그의 새로운 행보가 기대된다. 눈에 잘 보이는 명품 주인공 뒤에 진심을 다하는 조연들이 어디 이 세 사람뿐이겠는가? 끊임없는 탐구정신과 지칠 줄 모르는 도전정신, 그러한 그들의 열정이 있기에 지역 문화계가 더욱 풍성하게 발전할 수 있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홍현종 (JTV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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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15 18:24

민본을 지켜온 땅의 기운

이 땅을 딛고 선 사람들은 일찍부터 군주가 백성으로부터 존재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왕이 그릇된 정치를 할 때마다 ‘백성은 국가의 근본이고, 군주의 하늘’임을 명확하게 밝혔다. 반상의 귀천과 남녀 차별이 없는 대동계를 조직하고 왕조 세습을 부인했던 정여립(1546∼1589)의 꿈과 토지는 백성이 균등하게 나눠야 한다며 낮은 곳에서 민본을 실천한 유형원(1622∼1673)의 바람도 이곳에서 시작됐다. “사람이 하늘이다.” 외치며 일어선 동학농민혁명군은 곳곳에 집강소를 설치하며 풀뿌리민주주의의 주춧돌을 놓았다. 부안 우동리에 터 잡고 칠산바다 위도를 율도국 삼아 「홍길동전」을 쓴 허균(1569∼1618)은 <호민론>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에 반발하는 백성이 있음을 알렸다. 일제강점기에도 그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1923년 정우상(1911∼1950)이 13세의 나이로 매일신보 신춘현상공모에 당선된 동화 「무도(舞蹈)하는 어(魚)」의 핵심은 임금이 갖춰야 할 으뜸은 백성의 소리를 고루 들어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는 것이다. 1930년 김완동(1905∼1963)의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동화 「구원의 나팔소리」에는 정사에 무관심한 채 악착같이 자신의 이익만 좇던 임금이 백성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추방당하는 내용이다. 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임금은 몰아내야 한다는 두 작가의 신념은 1926년 공립전주고등보통학교의 동맹휴학과 일본인 교장 추방 사건으로 이어졌다. 김제소년회에서 활동한 곽복산(1911∼1971)의 동화 「새파란 안경」(1928)은 물욕에 눈이 먼 부자가 가난한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이 아름다운 것임을 깨닫는 내용으로,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다. 1929년 전국의 소작쟁의 389건 중 전북에서 일어난 것이 314건이라는 기록은 이 작품들의 가치를 더 확고하게 한다. 글에는 작가가 속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와 사회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민주화 과정에서 청년과 시민이 거리를 가득 메운 것도 바른 정치를 일깨우기 위해서다. 1960년 4·19혁명에 앞서 이승만 정권을 규탄하는 학생들의 첫 시위가 전주에서 있었다. 전북대 학생 7백여 명이 독재 정치 타도와 3·15 부정선거의 재선거를 요구한 ‘전북대 4·4운동’이다. 1965년 3월 한·일 외교 회담 반대 데모가 전국적으로 벌어졌을 때도 전북대와 전주고 학생 수백 명이 ‘매국적인 한·일 회담 절대 반대’를 쓴 현수막을 들고 시내를 누볐다. 유신 치하에서 처음 구속된 성직자는 1972년 12월 13일 전주남문교회에서 강제 연행된 은명기(1921∼1996) 목사다. 원광대·전북대·전주대 학생들이 앞장선 1980년 5월 4일 시위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운동이며, 전주신흥고 학생들이 주축인 5·27시위는 고교생이 스스로 무리를 이뤄 분연히 일어선 전국 최초이자 유일한 시위다. 1980년 5월 17일·18일 전주의 처절한 밤과 5·18민주화운동의 첫 희생자인 이세종(1959∼1980) 열사, 1987년 14개 시·군의 거리를 가득 메운 6월항쟁, 2000년대의 촛불집회 등은 얼마나 애절하고 당당한가. ‘부정’이 ‘정의’를 압도하는 시대에 ‘민주’와 ‘민본’은 우리가 다시 새겨야 할 가치가 되고 있다. 난세 속 4·10 총선, 외침과 저항과 혁신이 가득한 이 땅의 기운을 거스르지 말자. /최기우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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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08 16:23

지방 소멸과 고향 붕괴를 보며

지방 붕괴니 지역 소멸이니 하는 말 뜻은 매한가지일 것이다. 이에 따라서 우리는 모두 소중한 고향도 잃어간다. 말하자면 거주민 감소를 넘어 아예 시골 동네가 텅텅 비어간다. 사람들이 도시로 떠났거나 사망에 의한 자연 감소일 터이다. 보충되거나 채워짐은 전혀 보여지지 않는다. 동네마다 아기 울음 들린 지가 몇십 년이 넘었다고들 말해진다. 사람 사는 데 따른 모든 부차적 문화나 기구 또는 제도도 소멸된다. 삭막하고 휑한 분위기가 농촌마다 다르지 않다. 아직 빈집들은 몇몇 남아 있어서 겉으로는 가옥 수가 유지되는 듯하나 마을을 들어가 보면 사람의 기척이 없다. 인간의 아름다운 정서를 누리던 소중한 고향 산천이 인정 떠난 낯설고 물설은 타향으로 변모해버린다면 얼마나 안타깝고 서러운 일인가? 부모님 자애로운 눈길이 서려 있던 고샅길 하나하나가 폐허가 되고 정겹던 그 옛 추억마저 소멸되는 게 아니겠는가? 요샛말로 귀촌 귀농이란 말이 있어 ‘고향 되돌림’에 대한 시책이 제시되고 있으나 그 실효는 미미할 뿐이다. 그래서인데, 필자는 감히 의견 하나를 내고 싶다. 막연한 낭만풍의 귀촌은 실효가 없을 터이고, 돌아가서 무슨 할 일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일은 즐거움이 되는 것이어야 하고 경제적 생산성도 담보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잠깐 중국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인용해 본다. 장차 전답이 잡초로 무성할 것이니 고향으로 돌아가 자연에 묻혀 살리라 하는 소위 선언문이다. 살벌하고 번다한 도시 생활과 벼슬길을 청산하고 인간 성정이 부활하는 자연 귀의의 주장인 셈이다. “돌아가리. 전원이 장차 거칠어지니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 이미 스스로 마음이 몸의 부림을 당했으니 어찌 한탄하고 슬퍼하지 않으리. 지난 날이야 어쩔 수 없음을 깨닫고 앞날은 좇을 수 있음을 안다네. 실로 길은 잃었어도 멀리 가지는 않았으니 지금이 옳고 어제가 틀렸음을 안다오.” 긴 명문이었다. 도연명은 고향에 돌아가 글을 읽었다. 문학과 학문을 달성시켰다. 필자는 그 의견 하나가 예술인들을 농촌에 영접하자는 것이다. 빈집들을 수리하여 저렴하게 임대해 주어 맹렬한 예술 활동을 할 수 있게 터전을 마련해 주자는 제언이다. 농촌이 느닷없이 예술촌이 되는 것이다. 별장의 개념이 아니다. 주민등록도 마쳐서 주민 인구수도 늘리고 농촌 생산물 소비 통로도 마련하는 상부상조의 실현을 해보자는 것이다. 도시와 농촌은 자연 빈번히 교류할 것이다. 호강스러운 말이지만 무슨 힐링의 계기도 되며 약간은 지역 경제도 살아나지 않겠는가? 그림 그리는 사람, 글 쓰는 사람, 여타 골고루 재주 있는 예술인들이 농촌을 드나든다면 사람 사는 정경이 살아날 것이다. 옛날에 조정에서 고급 벼슬아치를 벽지에 귀양 보냈는데, 그 배소에서 학문과 문학을 일으키는 긍정적인 부수 효과가 있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사람 하나, 문명한 사람 하나 이주는 그 지역의 명소화를 이끄는 법이다. 강진에 머물던 정약용 선생의 경우가 그 본보기이다. 유명 소설가, 유명 시인들을 지자체에서 크게 환대하는 경우를 더러 보게 된다. 필자의 생각은 그런 화려한 귀촌을 말함이 아니라 잠재력 있는 예비 예술인, 아주 유명치는 않아도 성실한 예술인을 영접하자는 것이다. 루소도 그랬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소재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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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01 15:55

전통한지 복원보다 세계유산 지정이 우선인 나라

한국의 전통한지는 무엇이며 어떤 제작 과정을 거쳐서 완성되는가. 이 물음에 바른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문화재청에서 한국 전통 한지 기술의 근거로 제시하는 자료는 류행영의 제지기술이다. 그의 전승 이력을 살펴보자. “자신의 부친에게 배워 한지를 제작하던 김갑종 씨로부터 전통한지 제조법을 전수 받아 55여 년 동안 전통한지 제작에 몰두해 왔다. 김갑종 선생은 ‘일제 강점기 군용지’를 제조하여 납품하던 장인이었으며 그 제조 기술은 유일하게 류행영 선생에게만 전수하였다” 무형문화재는 계보 중심에 의한 전승을 기준으로 한다. 류행영은 그의 부친과 부친의 제자 그리고 보유자에게 이어졌다는 계보가 인정되어 문화재로 지정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그가 유일하게 전승받은 제지술이 일본 군용지 기술이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대한민국은 한지장인을 지정하면서 일제 강점기 전쟁물자인 군용지를 만들던 기술자를 대한민국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 한지장으로 지정한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전통한지에 대한 첫 단추부터 어긋나게 만든 파행의 단초다. 지금 우리는 한국 고유의 한지에 대해 용어와 개념에 대한 정리조차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계유산 등재를 부르짖는 황당무계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전통 한지기술은 정립되어 있는가? 한지를 뜨는데 사용하는 발과 발틀은 전통성을 가지고 있는가? 연구 성과는 물론이고 연구를 시도한 기록조차 없다. 도구뿐 아니다. 소위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들조차 종이를 뜨는 전통 초지법이 무엇인지, 어떤 기법이 있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하나의 줄이 발틀의 뒤에 매달린 채 물을 흘리며 뜨는 기법만이 유일한 한국식 초지법이라 주장하지만 조선시대 유물에는 가둠뜨기 종이도 다수 존재한다. 더욱이 줄을 이용한 흘림뜨기는 1953년경 일본식 가둠 뜨기 도구를 새롭게 개량한 초지법으로 조선시대 제지법과 다르다. 이 초지법은 많은 양을 뜰 수 있다는 경제성 면에서 선호했지만 앞과 뒤의 종이 두께가 다른 관계로 홑지 두 장을 엇갈리게 놓아 두 장을 하나로 합해야만 만들어지는 불완전 방식이다. 제지법의 관점에서 보면 단점이다. 결국 한지의 특성은 완성품인 종이가 말한다. 현대 한지장이 만든 한지는 조선시대 종이 수준의 반도 미치지 못하는 저급한 수준이다. 특히 밀도가 크게 낮으며 새롭게 종이 표면에 남겨진 발 지지대 자국으로 표면이 균질하지 못하다. 백색도는 낮고 크기도 작다. 이것은 많은 이야기를 시사하고 있지만 특히 원료처리와 도구 그리고 초지법이 달랐음을 반증한다. 조선시대의 종이 한 장조차 재현하는 기술력이 없는 현실에서 도대체 무엇을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한다는 말인가. 지금은 문화유산의 실체만 있을 뿐 과거의 도구와 제지술은 사라졌다. 그래서 전통한지는 긴급 보호가 필요한 종목이다. 시급히 원형 기술을 찾아 복원하지 않으면 사라질 위험에 놓여있다. 세계유산 지정에 앞서 전통한지 기술부터 복원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일부 몰지각한 등재운동단체와 이에 편승하는 중앙부처, 지자체는 유네스코 지정을 위해 온갖 술수와 편법 그리고 세몰이에 혈안이 되어 있다. 필자는 지정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자 한다. 정부와 관계부처는 좀 더 솔직해져야 한다. 전통한지 정의조차 내리지 못하고, 신용장도 없으면서 세계저명 미술관 미술품 수리와 복원에 한지가 쓰인다는 거짓 정보 등을 언제까지 언론이 받아쓰게 할 것인가? 거짓은 아무리 덮어도 거짓이고, 따라서 영원히 거짓이다. /김호석 수묵화가·전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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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3.25 16:43

제발 지방방송 좀 꺼

“지방방송 좀 꺼!” 교실 한쪽 집중하지 못하고 떠드는 아이에게 주는 선생님의 핀잔이자. 술자리에서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내세울 때 사용하는 독기 어린 표현이다. 오늘은 그 지방방송 이야기를 해보자. 내 어린 시절에는 1대의 텔레비전 앞에 수많은 동네사람들이 모였지만, 내 아이의 어린 시절인 지금은 1명의 시청자 앞에 수많은 텔레비전이 존재한다.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으니, 지방방송의 경쟁력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참고로 서울을 중심으로 지역에 대한 차별을 의미하는 ‘지방(地方)’과 달리 ‘지역(地域)’은 사회 전체를 동등하게 나눈 일정한 공간의 의미이니, 지역에 사는 우리는 ‘지역방송’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이 옳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지역방송이다. 흔히 “지역방송은 재미가 없어요”, “왜 서울의 재미있는 방송을 못 보게 하는 거예요”라고 말을 한다. 지역방송 피디인 나로서도 부정하기 어려운 지점이 충분히 존재함을 고백한다. 그렇다면 정말 전주MBC와 JTV 같은 지역방송이 없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루 종일 서울 중심의 이슈와 사건만 보도되는 뉴스, 인기 연예인이 출연하는 예능프로그램, 세계를 오가며 제작한 걸작 다큐멘터리의 세상이 될 수도 있다. 물론 훌륭하고, 재미있고, 의미 있을 수 있으나, 그 어디에도 지역에 사는 우리의 모습과 이야기는 발견할 수 없다. 지역에는 누가 사는지, 지역에는 어떤 문화가 있는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고민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하루 이틀이 아닌, 매일 매일이 이렇다면 지역에 사는 우리들은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물론 지역방송도 당연히 볼만하여야 하며,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더 나아가서는 타지에 살고 있는 출향민이 “이게 우리 동네 이야기야”라고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방송이어야 할 것이다. 내 나름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장수 프로그램을 뽑아보았는데, 전주MBC의 ‘얼쑤 우리가락’과 JTV의 ‘와글와글 시장가요제’이다. ‘얼쑤 우리가락’은 1995년 첫 방송을 시작으로 2021년까지 26년을 이어온 국악전문 프로그램으로, 대한민국 지역방송을 대표하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국악 꿈나무를 발굴하는 것은 물론 고품격 콘서트의 기회를 제공해 국악의 저변을 확대하였으며, ‘광대전’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예향 전주의 자긍심을 높인 프로그램이다. 또한 2008년 5월, 첫 방송을 시작으로 17년간 지역 전통시장을 탐방하며 제작하는 ‘와글와글 시장가요제’는 매주 수많은 지역민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더욱이 이 프로그램은 ‘방송’이기 이전에 누군가에게는 ‘복지’이고 ‘문화활동’이기도 하다. 특히 전주와 같은 도시를 떠나 시골의 작은 전통시장을 찾을 때 더욱 그러한데, 작은 면(面)에서 녹화가 있는 날이면 수백의 관중이 모이고, 도시의 대형 공연장 못지않은 흥겨움이 넘쳐난다. 지친 농촌생활을 벗어나 시골 장터에서 만나는 해방구 같은 역할을 지역방송이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시장의 논리로만 결정된다면, 사회는 정상적으로 유지되기 힘들 것이다. 강자만이 살아남고 모두가 서울만을 바라보며 지역의 가치가 무시되는 사회, 과연 우리의 미래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역 소멸이 최대의 화두가 되고 있는 시대에, 지역을 보다 살기 좋고 즐거운 공간으로 만드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역에도 사람은 살고, 문화가 필요하며, 그러한 곳에 지역의 방송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홍현종 JTV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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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3.18 17:07

‘미술로창’ 10년이 남긴 선물

㈔문화연구창의 ‘미술로창 잡담클럽’은 매주 수요일마다 미술관을 찾아 그림 보고 점심 먹고 수다 떠는 모임이다. 2014년 2월 26일 첫 모임을 한 미술로창은 2024년 2월 28일 531회를 끝으로 10년의 여정을 마쳤다. 531주의 수요일마다 단 한 번도 빠짐 없이 미술관을 찾은 것이다. 미술로창의 진행 과정은 항상 같았다. 매주 월요일 그 주에 찾아갈 전시장을 SNS로 알린다. 수요일 정오에 만나서 그림을 보고, 작가와 만나거나 참가자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갹출해 점심을 먹고, 헤어진다. 참가자는 대중없고, 서로에게 관여하지 않는다. 오면 좋고, 안 와도 그만. 왜 빨리 안 오냐고, 왜 안 왔냐고 묻지 않는다. 사실 처음부터 몇 회를 하겠다거나 몇 명을 모으겠다는 계획이나 기대도 없었다. 그저 설·추석·크리스마스 등과 날짜가 겹쳐도 꿋꿋하게 전시장을 가자는 다짐뿐이었다. 10년 동안 회당 평균 참가자는 5∼9명. 적을 때는 2∼3명, 많을 때는 30명에 이르기도 했다. 초기에는 각 영역의 예술인과 문화시설·단체 근무자가 주를 이뤘다가 학생, 종교인, 교사, 주부, 퇴직자, 자영업자, 직장인들로 연령과 직업이 다양해졌다. 매주 전시를 고르고, 작가를 섭외하고, 기록을 남기며 미술로창을 이끈 사람은 한국화를 전공한 고형숙 화가다. “미술관에 가고 싶지만, 낯설고 어려워하는 이들에게 친구가 돼주고 싶었다. 작품에 대한 이해보다 화가와 작품을 가깝게 느끼기만을 바랐다.”라는 그의 소망처럼 모임이 계속되면서 미술관은 편하고 익숙한 공간이 되어갔고, 화가와도 스스럼없이 말을 나누는 사람이 늘었다. 참가자들끼리 마음을 맞춰 전주시·완주군을 벗어나 군산시·남원시·담양군·서울시·순창군 등으로 꽃놀이를 겸한 미술기행을 떠났고, 화가들의 작업실을 찾아가 작품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비문과 오기, 현학적 수사가 지나치게 많은 전시 소개 글을 원망하다가 문화시설과 연계해 글쓰기 강좌인 ‘문화예술인을 위한 문장강화’를 열기도 했다. 고형숙 화가는 마지막 모임에서 “많은 분을 만나 나이와 직업과 상관없이 그림과 삶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가 된 시간이었다. 그동안 재밌게 잘 놀았다.”라면서 해산을 알렸다. 그의 말처럼 미술관을 향한 걸음은 때론 해찰하며 느슨하게 때론 유쾌하고 발랄한 나들이가 돼야 한다. <2023 문예연감>에는 2022년 1,612건의 전라북도 문화 활동 중 시각예술이 697건으로 43.2%였다. 경북(621건), 전남(417건), 강원(404건), 충북(401건), 충남(351건), 제주(316건) 등과 비교하면 적지 않은 숫자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의 ‘2023년 국민 문화예술활동조사’에 따르면 문화예술행사 관람률은 영화 52.4%, 대중음악·연예 11%, 미술 7.3%, 뮤지컬 5.5%, 연극 5.4%, 전통예술 2.4%, 문학 행사 1.9%, 서양음악 1.9%, 무용 0.55% 순이며, 미술 분야는 2019년 13.5%, 2020년 8.7%, 2021년 5%, 2022년 6.7%로 코로나19의 회복세가 더디다. 미술로창과 같은 활동이 지속돼야 할 명확한 이유다. 미술로창은 끝났다. 하지만, 미술로창이 10년 동안 다져 놓은 길은 수천수만의 갈래로 이어질 것이다. 누구든 가까운 사람들과 숱한 미술로창을 만들어 예술작품 감상이 일상다반사가 되기를 희망한다. “생활 속 미술로, 헤쳐모여!” /최기우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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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3.11 16:35

베이컨의 4대 우상과 우리네 현실 사이

우리는 우리 사회생활 중에 허다히 많은 선입견으로 생기는 편견 때문에 갈등이 증폭되고 협치가 결렬되며, 증오가 유발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하다못해 세상 돌아가는 시국을 화제로 올렸을 때에도 상대편이 무슨 종류의 신문을 보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대화를 풀어가야 하는 웃지 못할 경우에 직면한다. 왜냐하면 ‘ㅈ’신문을 구독하는 사람과 ‘ㅎ’신문을 구독하는 사람 사이는 극보수와 극진보 견해의 시국관으로 각각 상대를 용납 못 할 정도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오랜 우정도 이런 견해 차이로 결별을 맞는 경우도 필자는 가끔 보았던 것이다. 그 서로 다른 견해 차이의 서로 다른 정보만 받아들여서 상호의 경계를 도저히 허물 상태가 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정치 붕당을 서로 다르게 지지하며 지역 감정으로까지 발전하는 우리네 현실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영원한 보수 진영 논리와 영원한 진보 진영 논리는 중도의 회색 지대를 용납하지 않고 오로지 흑백 논리로만 일관한다. 역사적 과거 사실에까지 더듬어 역류하여 자기 편협의 논리 프레임에 오류의 역사관을 가둔다. 종교 문제도 그렇다. 서로 다른 프레임에 갇혀서 다른 종교는 철저히 봉쇄한다. 종교 문제를 담론으로 삼는 좌담회는 절대로 상존할 수 없는 어리석음의 극치인 것이다. 이미 한국 사람들은 종교 문제로 갈등을 유발하지 않는 슬기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민족들 종교 전쟁을 우리는 비웃듯이 말이다. 이처럼 선입견에 의한 편견의 오류를 규명하고 경계하며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4대 우상이란 명제로 우상의 갈래를 화두로 띄웠다. 첫째로, 집단의 공통된 성질에서 생기는 문제의 우상을 종족 우상이라 하였고, 둘째로, 환경, 습관, 교육, 취미 등의 영향으로 생기는 문제의 우상을 동굴 우상이라 하였으며, 셋째로, 사람들의 교제나 특히 언어가 사고를 제한하는 것에서 생기는 문제의 우상을 시장 우상이라 하였으며, 넷째로, 역사, 종교, 전통, 전설 등의 신봉에서 생기는 문제의 우상을 극장 우상이라고 정리했다. 그런데 우리네 현실 속에서는 다른 많은 우상들이 너무나 많이 생겨났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맨 먼저 학벌에 대한 편견의 우상이다. ‘S’대를 나온 사람과 삼류 대학을 나온 사람 사이는 편견이 바다처럼 깊고 넓다. 그 “S’대 법대 출신들 검사들은 우상의 꼭지점에 놓여 있디. 인격 인품의 변별성은 학벌로 좌우된다. 동창의 인연 끄나풀은 우리나라 사회의 병폐 중의 병폐이다. 명문고 동창의 연대도 마찬가지이다. 다음으로 지연에 따른 우상이다. ‘우리가 남이가‘ 하는 어휘는 내내 우리들 인식 속에 지연의 고리 병폐로 굳어진 상징어가 되어 버렸다. 다음으로는 씨족 관념의 우상이 대두된다. 일가친척 간의 연대 맺음은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부부 자녀 간의 편견은 정의와 보편적 상식으로는 제어될 수가 없다. 이 외에도 우상으로 자리매김된 분야가 허다하다. 직업 우상, 직위 우상, 예술 우상, 양반 우상, 사법 기관 및 검찰 경찰 우상, 대학교수 우상, 재벌 우상, 건달 우상, 연예인 우상, 체육 선수 우상, 자동차 우상, 주택 우상 등등 모두 나열할 수가 없다. 작가 제인 오스틴의 작품으로 <오만과 편견>이란 명저가 있다. 내가 오만하면 남이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내가 편견에 사로잡히면 내가 남을 사랑할 수 없다는 명언이다. /소재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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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3.04 15:33

전통 기술력 없이 한지 산업화 불가하다.

전주한지산업지원센터는 한지문화와 산업을 연구, 개발, 교육하는 전국 최초의 한지관련 전문기관으로 2010년 건립되었고, 2013년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국제공인 시험기관으로서 자격을 획득했다. 센터는 연구 개발 분야에서 신소재. 신상품 개발, 응용제품 연구 수행과 품질인증을 연구하고 국가 공모과제와 연구 용역과제를 수행하고 한지 품질 향상을 위한 연구 업무를 수행한다고 소개되어 있다. 그럼에도 현실은 한지 산업화에 집중했다. 한지가 좋고 세계 최고의 가치를 가진 것은 알고 있지만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는 파고 들지 못했다. 연구실에서 파악한 수치는 실제 한지 현장에서 완성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전통한지의 특성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없는 현실에서 “한지 산업의 기반을 구축하고 핵심 생산 기술을 개발해 이를 기업에 이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전통기법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기술력도 턱없이 부족한데 전통한지의 무엇을 산업화시키겠다는 것인가.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한지 산업화에 눈독을 들여 눈먼 돈을 받아갔지만 단 하나도 의미 있게 산업화에 성공한 예가없다. 실체 없는 예산 남용은 도돌이표처럼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전주시는 뼈아픈 반성을 하기 보다 오히려 과장 홍보에 열을 올린다. 이제부터는 한지 산업화를 주장하기보다 한지의 전통 기술을 찾아 규명하는데 집중할 때이다. 이런 점에서 한지산업지원센터가 행자부 전통문화 원형 사업에서 이룩한 성과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2015년 이후 독립유공자에게 수여하는 훈장 증서 등에는 전통한지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한지센터가 최고 수준의 품질기준을 제시하자 계약제도 운영 부문에서 과잉제한에 해당된다고 하여 입찰조건에 제동이 걸렸다. 입찰 과정에서 통로가 막혀 확대되지 못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한지산업지원센터는 조달청 문화 상품 등록을 통해 돌파구를 열었다. 최상의 한지를 사용하게 하겠다는 소명으로 새로운 방안을 찾아낸 것이다. 적극 행정이 이룬 성과이다. 이제 전주한지지원센터는 정부에서 사용할 훈. 포장용지를 독점 납품하게 된 것이다. 최근 한국국제자원봉사회(KIVA)에서도 행안부 훈장증서와 동일한 한지를 인증증서에 사용하기로 했다. 전통한지 수요처 확장을 위한 연구센터의 숨은 노력이 이제 막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한지산업지원센터의 위상을 재고해 봐야 한다. 현재 한지장의 기술력은 통일신라시대의 종이조차 재현하지 못한다. 조선시대에 만든 서화용은 물론이고 인쇄용 종이까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초지기술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부끄럽지만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답은 나와 있다. 전통한지 기술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한지가 세계 속에 자리매김 되려면 역사 속에서 검증된 우수한 종이를 표본으로 이를 복원하려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복원 과정은 유물 속에만 숨 쉬고 있었던 한지의 모든 것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만들 것이다. 한지지원센터는 처음 전주시 소속으로 정부부문에서 대한민국 유일한 한지전담기관으로 출발했다. 그러한 전담기관이 전주시 전통문화기관의 일개 부서로 편입되었다. 안타깝게도 이곳은 한지원형을 탐구하는 연구 수행과 한지 제조기법을 규명하고, 한지 정책을 연구하는 기능 등이 주어지지 않았다. 독립성을 가지고 독자적 연구 영역을 개척할 명분과 권한을 주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하루에 몇 명의 가족 체험 학습을 위해 고급 인력이 동원될 것이다. 전주시의 근시안적 행정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폭싱(Foxing) 기관으로 전락할 것이 분명하다. /김호석 수묵화가·전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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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2.26 18:31

이야기로 전하는 행복의 맛

남도의 맛을 자랑하는 고장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외지에서 찾아오는 지인들이 있으며, 주저 없이 그들에게 추천해 줄 수 있는 맛집은 어디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 나름대로 추천하는 곳은 객사 근처 ‘동창갈비’와 전북대병원 앞 ‘이연국수’, 전주남부시장내 ‘조점례남문피순대’ 그리고 익산역 앞 ‘엘베강’과 전주남부시장 ‘현대옥’이다. 복잡하지 않고 부담스럽지도 않은 곳들이다. 맛은 기본이요,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연륜을 넘어서는 나름의 역사 덕분에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이 배가 될 수 있는 곳으로, 잘 차려진 프랜차이즈 식당과는 다른 그 무엇이 존재하는 우리만의 노포(老鋪)이다. 이 맛집 중 엘베강은 ‘역전할머니맥주’로 현대옥은 ‘현대옥프랜차이즈’를 통해 전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대기업의 물량 공세는 물론 유명 프랜차이즈와의 경쟁을 이겨내며 선전하고 있다. 잘 짜인 메뉴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음식 맛이 한몫을 했을 터이다. 반면 엘베강과 현대옥의 시작은 그다지 거창하지는 않다. 군산에 살던 김칠선 여사는 제주도에 다녀오는 길에 기차 안에서 어린 딸을 잃게 되고, 1982년 익산역 앞에 작은 호프집 엘베강을 개업한다. 애당초 돈보다는 잃어버린 딸을 찾는 것이 목적이었던 그녀는 3일간 냉장고에서 숙성한 생맥주와 저렴하지만 식사 대용까지 가능한 안주들을 푸짐하게 내어놓게 된다. 사람들은 살얼음생맥주의 신기함과 오징어입이라는 생소한 안주에 열광하게 되며, 국민 반찬 소시지가 저렴한 안주로 등장할 수 있음에 행복을 느끼게 된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어린 네 자녀를 홀로 키워야만 했던 양옥련 여사. 평소 남편이 좋아하던 음식인 콩나물국밥으로 1979년 전주남부시장속 작은 국밥집 현대옥을 시작한다. 오롯이 아이들을 키우기 위함이며, 비장한 그녀의 마음으로부터 놀라운 신공이 시작된다. 토렴을 통해 국밥 최적의 온도를 맞춰내는 것은 물론, 속풀이 손님이 보는 즉석에서 마늘을 찧고, 오징어를 데치며, 대파와 고추를 썰어서 국밥에 넣어준다. 음식을 맛보기 이전 그녀의 손놀림에 모두가 반해버린다. 대한민국 골목상권을 점령하고, 이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대기업과 유명인들을 앞세운 프랜차이즈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물론 음식 본연의 맛과 품질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들이 갖고 있지 않은 약점이 있는데, 그것은 음식 속에 담겨,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이다. 엘베강과 현대옥이 갖고 있던 공간의 의미를 이야기로 살려보는 것은 어떨까? 6대의 냉장고에서 숙성되는 생맥주와 맥주잔. 고작 8천 원인 오징어입과 2천 원이라는 놀라운 가격에 제공되는 소시지 안주. 엘베강이 남들과 다르게 운영될 수 있는 것은 딸을 기리는 김철선 할머니의 마음이 여전히 그곳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주문과 동시에 토렴하고 즉석에서 찧은 마늘과 시장에서 바로바로 구입한 대파와 고추로 맛을 내는 콩나물국밥에는 양옥련 할머니의 정성이 담겨있다. 자본과 아이디어로 이겨낼 수 없는 그 집만의 오랜 ‘이야기’야말로 신세대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개성 강한 아이템일 수 있다. 김칠선과 양옥련. 두 할머니의 처음을 기억하며, 지금이라도 이러한 이야기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안내해 보자. 부족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맛을 넘어, 진정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음식 속에 담겨있는 아름다운 이야기일 수 있을 것이다. /홍현종 JTV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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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2.19 16:41

전북연극박물관을 세우자

연극박물관은 어디에 있을까? 한국에 800여 개가 넘는 국립·공립·사립·대학 박물관이 있지만, 연극박물관은 국어사전에만 있을 뿐 실체가 없다. 공연예술을 앞세운 곳도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하나다. 대표적인 예술 장르인 연극을 상징화한 박물관은 왜 없을까? 이유를 불문하고 소중한 예술 자산이 무참히 사라지기 전에 유·무형의 연극 유산을 수집·연구·보존하고, 전시실·자료실·체험실·수장고를 갖춘 공간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어느 지역보다 연극의 역사가 깊고 탄탄한 전북특별자치도가 먼저 관심을 보인다면 이는 무척 탁월한 선택일 것이다. 1910년대 이후, 전북의 연극판은 꾸준히 역량을 쌓으며 큰 성과를 올렸다. 1921년 전국 최초의 군(郡) 단위 소인극(전문 배우가 아닌 사람들이 하는 연극) 운동이 고창에서 시작한 후 익산·김제·전주·군산·정읍·남원·진안·옥구·임실·무주 지역으로 확산하며 근대연극의 공고한 뿌리를 만들었다. 작품은 문맹 퇴치와 풍속개량뿐 아니라, 불합리한 시대를 깨닫게 하는 항일과 민족자존을 담기도 했다. 1921년 군산에서 창단한 동광단은 여성으로만 구성된 최초의 극단으로, 평양·서울 공연에서 잇달아 흥행했다. 익산에서는 1926년 전북 최초로 연구극(硏究劇) 성격의 동인극단인 계명극단이 창단했다. 1932년에는 극단 연양사가 단원들의 역할을 연출·연기·무대·운영으로 나눠 전문극단의 출발을 알렸다. 이는 지역 연극계의 높은 자생력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크고 작은 부침이 있었지만, 전북의 연극은 1940·50년대 전주문화동우회와 전북극예술협회, 전문연극인과 순수예술, 이봉섭과 정구하, 학생극, 인형극 운동, 1960·70년대 박동화와 창작극회, 살롱극과 행동무대, 문치상과 비사벌극회, 대학극, 1980·90년대 황토의 부상과 창작극회의 부활, 소극장 연극, 관립극단(전주시립극단) 태동, 2000년대 전북연극제와 소극장연극제, 청소년연극제 등 촘촘하게 성과를 일구며 성장했고, 수준 높은 무대는 전국 규모 연극제에서 잇따른 수상으로 이어졌다. 척박한 환경에서 뚝심 있게 생명을 지켜온 전북 연극의 힘은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창작 희곡 시대를 연 극작의 역사에서도 찾아진다. 전북과 연관된 국내 극작가의 숫자가 이를 증명하고, 작품의 우수성 또한 여전히 유효하다. 한국연극의 갈래를 가면극, 인형극, 판소리, 창극, 신파극, 신극으로 크게 나눠도 전북 연극은 울울창창하다. 일인다역인 판소리의 발상지가 전북이며, 춤·음악·연극이 어우러진 농악의 신명과 멋이 살아 있는 곳이 전북이다. 판소리가 발전해 우리 고유의 음악극이 된 창극의 연희자들도 대개 전북 출신이며, 세계 유명 인형극축제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극단도 전북에 있다. 전북 연극이 한국 연극사의 굵직한 축으로 인정받는 것은 연극 정신의 맥을 이으며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부침의 세월, 극단들의 탄생과 소멸이 악순환처럼 이어졌지만, 이것이 가져온 양적 질적 변화가 지금의 전북 연극을 있게 한 바탕인 것처럼 전북의 연극은 스스로 살아나고 다시 살아나며 억척스럽게 자신을 지켜왔다. 그 분명하고 무한한 생명력은 전북특별자치도가 한국연극박물관을 유치하려 할 때 경쟁력을 한껏 높이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전북 연극의 역사와 현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알려 도민의 자긍심과 자존감을 높이는 ‘전북연극박물관’ 건립이 먼저다. /최기우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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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2.12 17:59

교집합과 개성공단

문학에서 수사법을 논하면서 원관념에서 보조관념으로 이미지를 의탁하며 건너갈 때 은유법을 활용한다. 가령 ‘그 여인은 한 송이 장미다’라고 했을 때 여인과 장미의 공통 특성인 ‘아름다움’이 양자를 연계시켜 ‘A는 B이다’라는 등식을 성립시킨다. 이런 문장 기교를 은유법이라 한다. 또한 ‘여인’이란 단어는 숨고 ‘아름다운 장미여! 그대 영혼의 향기 그윽하여....’어쩌고 했을 때 원관념은 감추고 보조관념으로만 구성되어 ‘여인’의 이미지를 이끌어내는 문장 수사법을 상징법이라고 한다. 그 여인이 100퍼센트 장미다운 것은 아니다. 극히 일부만 장미스러울 뿐이다. 그래도 ‘그 여인은 장미다’라는 문장은 성립된다. 이렇듯 작은 일부가 전체를 대표하면 이도 또한 일컬어 상징이라 할 것이다. ‘태극기가 대한민국을 상징한다’ 할 때와 같은 논법이다. 그 매우 일부분의 양자 공통 특성(공유 특징)으로 서로 접속되어 엇물린 것을 수학용어로 교집합이라 일컫는다. 필자는 감히 한국 문학계에서 은유와 상징 개념을 교집합으로 설명한 최초의 사람이다. 그 공유됨으로 양자 사물은 서로 물들어 상생의 전기를 만들기도 한다. 한 가정에서 부부가 성립하는 경유도 서로 물들기에서 비롯된다. 서로 달랐던 가문의 문화나, 서로 다른 성격이 조금씩 닮아가서 서로 물들고 상생의 단계로 옮아가는 것이다. 가정의 완결성은 서로 물들어 교집합의 영역이 넓어감에서 담보된다. 파랑과 노랑이 상호 일부가 물들어 초록이 생겨나고 이 교집합이 생성의 색깔이 되는 것이다. 지구가 온통 초록으로 덮힌다면 인류는 번창과 번영을 누릴 것이다. 교집합을 정치적으로 운위하자면 협치니 협동이니 하는 용어에 접근할 것이다. 우리가 한때 개성공단을 창설하여 절묘한 교집합을 누릴 때가 있었다. 개성공단의 초록 색깔 창달은 우리 민족사에 빛나는 하나의 전기였었다. 재봉틀 돌리며 이념 논쟁을 할 리 없었고, 돈벌이가 되는 일을 하면서 체제 논쟁을 벌일 일이 없었다. 저렴한 생산 비용으로 생산된 생산물은 해외에 판로를 넓혀 순이익을 높여가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이유로 개성공단은 파멸을 맞았다. 박근혜 정부였던가? 아예 개성공단 철수를 선언하고야 말았다. 국정 농단 이모저모보다 더 큰 만행이요 죄악이었다. 양쪽 민족의 공동선 추구가 약간씩 도모되고 있을 때 저리 어리석은 결단을 내렸으니....조금 과장해 말한다면 민족에 대한 반역이었다. 개성공단을 창의한 정치인을 일컬어 필자는 민족 최고의 예술가라 칭하기도 했었다. 북한은 오늘날 남쪽을 향해 주적이란 말도 서슴없이 사용한다. 한반도에 전운이 감도는 듯 트라우마가 울컥 솟는다. 양쪽이 자제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오히려 중국에서 ‘자제’란 용어를 사용하는 아이러니가 보인다. 교집합은 공영 공존의 미학이다. 러시아와 우크라니이와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또는 지구상 분쟁 지역에서 저러한 교집합 수준의 중립 지대나, 중화 경역을 만들지 못한 데서 비롯된 화근이리라. 예루살렘은 기독교인들이나 이슬람교도인 모두에게 성지이다. 함께 같은 신에게 경배드리면서 거기서 평화니 공존 공영의 단초를 못 만든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민족들인가? 개성공단을 불지른 우리네 누구의 어리석음의 극치여! 민족의 귀중한 슬기를 차단해버린 우리네 커다란 아쉬움이여! /소재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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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2.05 17:34

전통한지 정책에 전통한지가 없다.

2017년부터 2021년 6월까지 전통한지에 대한 국고 보조금은 7개 중앙 부처에서 100개 사업에 109억 원, 한지 관련 보조금 등은 중앙‧지방정부에서 341억 원이다. 2006년 서화용지 국가표준(KS)을 제정했고, 2013년 한지 품질 표시제를 시행했다. 국가무형문화재 한지장 지정자도 1명에서 4명으로 늘었다. 그럼에도 전통한지 사업은 조금도 진흥되지 않았다. 폐업이 속출하고 도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왜 그럴까. 문제는 전통문화 활성화의 주체인 정부마저 전통한지 연구와 관리에 뒷짐을 지고 있고, 전통문화 활용에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전통한지의 근본에 충실하지 않았고 정책도 부재했다. 연구는 원칙과 기본을 근간으로 더께를 입혀야 함에도, 한지의 원료와 재료 처리 그리고 원천 기술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한지의 정의도 수립되어 있지 않았고 전통한지의 기술이 무엇인지 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과정이 정당하지 못한 연구는 성공적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최근 KIST에서는 ‘한지와 면상 발열체가 결합된 고전도성 카본시트 제조 및 디바이스 구현’ R&D 과제를 추진했다. 전통문화와 관련 된 사업으로 수요와 공급간 가교 역할을 할 목적으로 과업을 수행한 기관은, 한지의 정의 등에 대하여 “본 기관은 한지 분야를 전문 연구 대상으로 추구하는 기관이 아니며 한지 분야는 전문 영구 영역이 아니므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한지 기술에 대해서는 주관부처도 예외는 아니다. 문화재청에 국가 무형문화재 한지장 인정 조사와 관련, 한지 전통 기술 기준이 무엇인지 심의 근거 자료를 요청했다. “한지장 보유자 인정 조사는 조사 대상자의 평소 한지제조 과정을 평가하기 위한 것으로 특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의 기법을 확인하기 위해 자유로운 시연 과정을 통해 도구, 제조방법, 이해도, 등을 조사위원들이 모니터링하고 평가하였음을 알려 드립니다” 국가 무형문화재를 지정 예고하면서 전통한지의 제조 기법에 대한 평가 기준이 없이 지정을 진행한 것이다. 한지 제조에 전문성이 없는 조사위원들의 주먹구구식 판단으로 국가 한지장을 지정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답변이 아닐 수 없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일이 이런 지경에 이르다 보니 한국문화관광원에서 용역한 전통문화산업의 저변확대 방안 연구(한복,한식, 한지를 중심으로)에서 “기존에 전통문화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지원되고 있는 다양한 정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대상과의 미스매칭으로 인하여 기대했던 정책적 효과를 얻을 수 없는 상황임”이라고 결론 내렸다. 미스매칭이란 부정합으로 논리의 내용이 정돈되어 있지 아니하고 모순되어 있음을 말한다. 곧 정책 목표가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다는 말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연구는 계속된다. 한지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연구용역은 2016년과 2022년 같은 제목으로 중복 용역한 사례까지 발생했다. 더 황당한 일도 있다. 2020년도부터 최근까지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태지와 시지 그리고 감지와 전통한지 제지기법 등을 연구하여 재현에 성공했다고 언론을 통해 홍보하였다. 그러나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시행한 한지 연구는 연구 윤리를 지키지 못했다. 전주 흑석골 천년 한지관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은 전주 산 닥나무에 대한 연구나 한지 원료에 대한 연구와 성찰 없이 제지 기법인 선자지 재현에 성공했다며 홍보에 열을 올린다. 전주시도 학문의 영역을 오염 시키고 있는 국립산림과학원을 닮아가고 있다. 한지의 고장 전주라는 표현이 수치로 변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김호석 수묵화가·전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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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1.29 16:54

새로운 국악의 꽃, 창극

국악의 본향임을 자랑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우리 지역 사람들에게 국악의 대표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그것은 판소리 아니겠느냐 답할 것이다. 그럼 판소리가 진심으로 들을만하고 볼만한지를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판소리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와 성악적 특색을 잘 담아내고 있는 훌륭한 음악이지만, 일반인 수준에서 받아들이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한자어와 고어로 이루어진 ‘사설’이 어렵고 ‘소리꾼’과 ‘고수’로 짜인 구성이 단조롭게 느껴진다. 익숙할 수 있으나 쉽게 접근하기는 어려운 것이 판소리다. 반면 판소리를 바탕으로 연극적 요소와 연희적 요소가 어우러져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장르가 있으니, 그것이 창극(唱劇)이다. 흥부놀부가 박을 타고, 암행어사가 춘향이를 구해주는 모습을 보았다면 이미 창극을 경험해 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창극은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누구나 진정으로 향유할 수 있는 음악 장르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창극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악평론가 윤중강은 전통예술 중에서 앞으로 K-컬처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을 창극과 탈춤으로 꼽았다. 맞는 말이다. 국악을 잘 모르는 사람, 국악이 처음인 외국인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창극이다. 이해하기 쉽고, 재미지기까지 하다. 화려한 무대와 흥미로운 음악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극은 서양의 오페라와 뮤지컬에 비교될 수 있다. 소리와 무용, 조명 및 화려한 세트가 무대 위에 종합적으로 펼쳐지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반면 창극에는 그러한 정도로 숙련된 소리꾼과 연주자, 무용수가 필수인데, 이러한 방대한 인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창극을 제작할 수 있는 단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국립창극단’과 ‘광주시립창극단’, ‘전남도립국악단’ 그리고 우리 지역 ‘전북도립국악원’, ‘국립민속국악원’, ‘남원시립국악단’ 6곳이다. 전국에 고작 6곳의 단체가 있는데, 그중 우리 지역 단체가 3곳이다. 창극을 운영할 수 있는 인력과 기술을 이렇게 많이 갖고 있다는 객관적 사실과 지속적으로 공연장을 찾아주는 관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지역 전북을 국악의 본향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 따라 하고 싶어도 쉽게 모방할 수 없고, 흉내 내려 하여도 높은 음악적 역량을 충족할 수 없어 포기하게 만드는 예술이 창극이다. 우리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3곳의 창극을 운영할 수 있는 단체가 있고, 전주세계소리축제라는 소프트웨어도 보유하고 있는 우리 지역에서 춘향과 심청, 흥부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재미지고 새로운 창극이 등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국악의 도시로 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K-POP, K-푸드의 뒤를 이어 국악이 K-컬처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을 때, 전북특별자치도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악의 성지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국악으로 향유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예술, 시대 흐름에 가장 적합한 전통예술장르, 그것이 창극이다. 우리가 찾고 있는 국악의 세계화, 그 해답은 창극에서 찾을 수 있다. /홍현종 JTV PD △홍현종 PD는 중앙대를 졸업했으며 전북의 역사와 문화, 예술에 관심을 갖고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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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1.22 16:15

‘백년도서’를 선정하자

매년 수많은 책이 출간되고, 그만큼의 책이 버려진다. 힘겹게 모았을 연구자의 책장과 장서가의 창고도 맥없이 사라지고, 도서관에서 폐기하는 책도 상당하다. 책이 쉽게 없어지는 세상. 전라북도와 14개 시·군이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할 책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 영구 보존 도서에 관한 생각은 2007년부터 ‘전라북도 작고 문학인 추념 행사’를 치르며 더 뚜렷해졌다. 이 행사는 높은 지명도보다 전북 문학사에 윤기를 더하며 자존을 세운 문학인들을 대상으로 연 소박한 세미나다. 초기에는 연구자들을 설득해 발제를 맡긴 후 학술지 발표를 유도했다. 이를 통해 작고 문학인의 삶과 작품 연구가 확산하기를 바랐다. 몇 년 전부터 틀을 바꿨다. 모든 작품을 후배 문학인이 나눠 읽은 뒤 언론매체에 서평을 발표하고, 함께 모여 감상을 이야기했다. 후배들은 선배들의 작품을 읽고 일상의 아름다움과 고운 인연을 느꼈으며, 느슨하면서도 끈질기고, 깐깐하면서도 찰진 선배들의 글쓰기를 통해 삶과 글이 진실했던 문학인의 참모습을 만났다. 그러나 이 사업에는 큰 걸림돌이 있었다. 문학인들이 쓴 책들의 행방이다. 서점과 헌책방, 인터넷 서점, 원로 문학인의 서재, 학교·지역 도서관 등 어디에서도 개별 문학인의 작품집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는 없었다. 기댈 곳은 출신지와 거주지의 도서관. 전북 1세대 수필가인 목경희(1927∼2015)·김순영(1937∼2019)의 수필집·서간집 열세 권은 전주의 도서관 곳곳에 있었다. 아쉬움도 남는다. 전주시립도서관에는 ‘전북의 살아있는 역사’라 불리던 작촌 조병희(1910∼2002)의 『완산고을의 맥박』이 없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 유적 등을 찾아다니며 그것의 의의와 가치를 조명한 향토사학자의 노고가 담긴 책이다. 부안군립도서관에는 신석정(1907∼1974), 정읍시립도서관에는 정렬(1932~1994), 익산시립도서관에는 이광웅(1940∼1992) 시인이 생전에 낸 시집이 없다. 전라북도교육청 진안도서관에는 백운면 출신 문정희(1961∼2013)의 유고 시집이, 전북대학교 중앙도서관에는 1956년부터 20년 동안 대학에 근무하며 전북연극의 초석을 다진 박동화(1911∼1978)의 유고 희곡집이 없다. 1987년 6월항쟁부터 전주의 민주화운동을 서사시로 형상화한 최형(1928∼2015)의 『다시 푸른 겨울』은 시인의 출생지인 김제와 말년을 보낸 익산의 도서관에는 있지만, 정작 시집의 배경지인 전주의 도서관에는 없다. 이 책들이 처음부터 없지는 않았을 터. 세월에 바래고, 찾는 이가 없으니 자연스레 폐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년 동안 아무도 찾지 않는다고 그 책의 가치가 사라지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자체의 도서관은 도·시·군과 인연이 깊은 책을 뚝심 있게 간직해야 한다. 이 땅에 대한 지극한 애정으로 역사와 문화, 풍경과 감성, 언어를 오롯이 담은 책, 삶터의 자존을 올곧게 세운 책. 후손에게 물려줘야 마땅한, ‘백년도서’를 선정하고 알리고 보존하는 것은 도서관의 분명한 사명이다. 백 년 전 선조들이 후손을 위해 작정하고 남겨준 책이 많이 있었다면 우리 역사는 조금 더 당차고 꼿꼿해졌을 것이다. 아! 책 선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조건은 저작권자의 무조건적인 협조다. 작가와 작품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다양한 활동 속에서 공공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소불위의 권력만 휘두르려는 안하무인도 왕왕 있기 때문이다. /최기우 극작가 △최기우 작가는 다수의 희곡집과 인문서를 냈으며, 전북일보사 기자와 전주대학교 겸임교수, ㈔문화연구창 대표, 전북작가회의 부회장, 한국문학관협회 이사, 최명희문학관 관장 등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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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1.15 17:15

노인은 폐기물이 아니라 귀중한 재보다

대개의 선진국에서는 신생아 출산율이 줄고 노인 비율은 팽창하여 결국 미래 사회는 노인들 나라가 되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벌써 65세 이상의 인구비가 40%를 넘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 우려하는 점의 이유는, 노인들은 노동력을 상실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재화 생산은커녕 철저한 재화 소모의 비 경제인이기 때문이다. 도덕 윤리 개념의 ‘노인 공경’의 담론은 여기서 제외하기로 한다. 현대 사회 구조상 비 경제인이란 조합은 존대받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미래로 갈수록 젊은이들에게 부양의 책임만 가중되는 현상으로, 노인 문제가 증폭되는 바, 어찌 노인들이 공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노인을 일컬어 소외 인간이라는 어휘보다 잉여 인간이라는 말이 더 적절한 말일 터이다. 그런데 의식의 전환에 따라서는 노인은 결코 부담스런 존재가 아니라 국가 사회의 존귀한 재보라는 생각에 이를 것이다. 노인들은 노동력을 결코 상실하지 않았다. 다만 정년이란 제도하에서 밀려났을 뿐이다. 서울의 지하철은 이제 노인철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일손 부족으로 인한 농촌이나 산업 현장의 아우성을 보면서, 그리고 외국인 임시 고용의 여려 문제를 만나면서, 이런 현장에 노인들을 왜 활용하지 못하는가 하는 의문이 인다. 포도 수확하는 농장에서 그 일을 노인 시키면 왜 안 되는가 하는 구체적 의문이 뒤 따른다. 포도 따기는 단순 노동 아닌가? 상추 재배에는 노인이 적절하지 않는가? 사실 노인들에게는 젊은이들 못지 않는 정렬도 잠재한다. 부지런함, 성실성이 그것이다. 노인들을 집합시켜 생산 라인에 연결시키는 매개의 조직만 있으면 된다고 본다. 지방 소멸이라는 용어가 근래에는 낯설지 않다. 인구는 해마다 준다고 한다. 전북 인구는 1년에 1만 7천 명 이상 감소한단다. 통계가 맞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따른다. 여하튼 1만 명씩은 넘게 감소하는 것만은 틀림 없을 듯하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노인은 넘쳐나는데 인구는 감소한다?’ 이 역설적 논리를 풀면 인구 감소는 막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떠오른다. 이스라엘의 모샤브(moshv)처럼 집단 농업 공동체나, 키브츠(kibbutz)의 노동 시온주의를 융합시킨, 그리고 현대적 복지 사회 시스템을 가미한 코리안 모샤브를 만든다면 전국 노인들이 구름처럼 모여들 것이다. 남해의 서독 귀국 광부 정착촌은 관광 명소가 되어 있다. 새로운 집단 노인 사회의 전범을 만든다면 노인의 마을이 저리 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노인 천국은 세계적 이목을 집중시킬 것이다. ‘일과 놀이’를 병합시킨 복지의 천국을 획책해 볼 만하다. 놀이란 예술로 확대되는 아우라를 지닌다. 부대 시설인, 병원, 노인 학교, 요양원, 골고루 음식점, 이미용소, 목욕탕, 오락 유희 시설, 예술 문화 활동의 방, 또는 계절별 국내 순행 여행 시스템, 또는 장례 예식장 등까지를 강구하고 마련해 보자. 노인 부부들 자부담금 적정 지참케 하고 금융 여러 모양도 갖추고, 경찰도 몇몇 상주시키고....새만금에 연기 풍풍 오르는 공장만 유치할 게 아니라 노인 천국을 만들자. 노인 천국으로 정착촌 인구와 자녀 유동 인구까지 합하여 인구 넘치는 전북특별자치도가 될 것이 뻔하다. 바다가 있고, 섬들이 많고, 들이 있고, 꽃밭과 꽃밭이 지평선까지 출렁이는, 한국적 인정이 골목골목을 넘치는, 노인 복지 천국은 허무맹랑한 꿈만은 아닐 것이다. 노인들 자녀들은 휴가를 예서 즐길 수도 있으리라. 여기서는 도덕 윤리도 구현되리라. 더욱이 노인들 정신문화는 예서 천년에 빛날 것이다. /소재호 전북예총 회장 △소재호 회장은 전주 완산고 교장·전북문인협회 회장·석정문화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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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1.08 17:08

초상화가 소모품이 된 세상

미술 작품을 보고, ‘좋음’을 판단하기까지 뇌가 반응하는 속도는 0.3초다. ‘좋다’라는 표현에는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의미는 물론 보는 자가 인지하는 철학과 사회적 공감, 과거와 현재에 대한 역사성 나아가 시의성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까지 폭넓고 농밀하게 작용한다. 시각정보에 대한 반응이 빠르고 판단을 요구하는 것은 몸의 특성상 자극이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각을 특성으로 하는 이미지는 생명력을 갖는다. 초상인물화에서 그림의 가치는 대상인 그 자체이다. 사진이 일상화 된 지금에도 역사적 인물에 대한 시각화 작업이 필요한 이유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에 대한 초상화 작업이 정부부문을 통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자료에 근거한 그림은 많은 의미를 전달한다. 사실이 아니어도 예술성이 탁월하게 구현된 작품은 현실보다 더 현재적일 수 있다. 모든 개념은 형태와 함께 탄생한다. 가상 인물을 창작하거나 상징화 시키는 경우 그 인물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현재적 당위성이 표현되어야 한다. 더하여 탁월한 예술적 완성도가 있어 정신의 극점이 이미지화 되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박제화 되어 생명력을 전달 받기 어렵다. 초상화는 한 인간이 죽은 뒤 영당에 모시기 위한 의례적인 그림이다. 여기에는 숙명적으로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 먼저 사실적으로 닮게 그려야 한다는 점과 표현 대상 인물의 정신까지 그려야 한다는 점 그리고 전신사조 구현을 위해 뒷면에서 색을 칠하는 배채 기법이 운용된다는 사실, 인물의 전형성을 드러내기 위해 형태에 왜곡이 적용된다는 점 등이다. 이런 점에서 1688년 태조영정도감의궤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이 의궤는 그리는 목적, 화원 선발을 위한 취재, 참여인원, 역할 분담, 모사작업에 필요한 물목의 내용과 개수까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 화사 선발을 위해 유순정 초상화를 모사하게 하여 선발한 점은 특기할 만하다. 과거의 역사를 현재화 시킨다는 점에서 원형은 살아있는 교과서이다. 역사적 사실 등을 참고로 하여 초상화 작업을 진행하면 역사의 정통성을 계승함은 물론 현재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좋을 방안을 생각해 보았다. 먼저 도감을 설치하여 책임자를 선정할 필요가 있다. 책임소재와 사명감을 고취시켜야 한다. 다음 화가를 선발하는 취재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조건을 제시하고 평가는 객관성을 유지해야한다. 실력은 오직 취재에 답한 능력이어야 한다. 시험에 참여한 작품에 등위를 매겨 능력과 경험에 따라 분업화를 이루어 집단 창작으로 하면 시대를 대표하는 걸출한 작품이 탄생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 초상화 제작을 위한 모든 진행 과정을 소상히 기록하는 제작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기록은 정확해야 하고 공개해야 가치가 있다. 이 제작보고서에는 제작한 초상화의 모든 원형 인자가 수록되어야 한다. 그것은 훗날 또 다른 역사를 만드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역 공동체의 합의가 필요하다. 지역 사람들이 부정하는 그림은 누구도 공감하지 않는다. 초상인물화는 목적과 목적을 위한 과정이 엄정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지금 대한민국에서 세금으로 제작되는 초상화가 지자체의 선전과 홍보를 위한 관광 상품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믿고 싶지 않겠지만 국민의 눈을 흐리게 하고 잇속만 차리는데 급급한 상품 초상화가 정부의 후원과 참여로 제작되고 있다. 자칫 소모품으로 전락할 가능성까지 우려된다. 한번 잘 못 발을 들여 놓는 일은 다시 원상 복구하기가 힘들다. 그것은 규제해야 한다. 국민의 미적 감각과 눈높이는, 생각하는 것보다 높다. /김호석 수묵화가·전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김호석 교수는 정읍 출신으로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했으며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국내외에서 28차례 초대·개인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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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1.01 16:12

우리는 신흥계곡에 가면 기적을 만난다.

대체 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운전을 잘못하는데, 이렇게 눈이 많이 오면 사람들이 토요걷기에 오지 못할 것 같아서 조심조심 왔어요”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토요일 아침, 수줍게 웃으며 걷는 그녀. 비가 오는 토요일이면 함께 걷는 이가 있다. 그는 건축일을 한다. 그러고 보니 몇 번밖에 함께하지 못했다. 토요일에 비 오는 날은 드물었다. 명절 연휴 중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오는 그녀들. 사람들이 명절이라 못 올까 봐 이럴 때라도 함께 하고 싶다고 한다. 일주일의 시작을 ‘토요걷기’로 두고 이를 삶의 양식으로 삼아 ‘진지화’하는 동무들. 대체 이들은 왜 토요일이면 계곡을 걷는 걸까! 이들은 숱한 장소상실의 고통을 겪으며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는 성장하느라 시골을 먹어 치운 도시 자본주의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자연을 대하는 모습에서 품위나 수치를 모르는 이들을 향해서는 단호하다. 그들의 제도와 관행이라는 테두리에 순응하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속에 지키고 싶은 장소와 기억을 공유하며 연대할 수 있는 동무들을 찾아 신흥계곡을 걷는다. 자연을 사유화하려는 자들을 향해 맞서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근대화가 제거한 흙과 바람을 찾아 걷는다. “상처 입은 자는 걷는다”(김영민)라고 하지 않던가! 얼마 전 때아닌 높은 기온이 며칠 계속되었다. 최악의 기후위기로 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두려움마저 드는 토요걷기 중에 아주 불길한 경험을 했다. 마짐바위 근처의 계곡에서 악취가 공기와 섞여 콧속으로 훅 들어왔다. 깜짝 놀랐다. 마짐바위는 바위가 휘돌아가는 형국이어서 계곡물이 비교적 깊게 고여 있는 곳인데, 이처럼 심한 악취는 처음이었다. 이젠 영영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일까! “풍경은 기원을 은폐한다.”(가라타니 고진)라는 말처럼 이 순간, 이 장소가 풍경이 되어버린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무의 뿌리에서 샘솟아 상긋한 바람에 실려 지줄거리며 흘렀던 저 맑은 물은 우리 생명의 근원이었다. 그 긴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생명과 사람의 목숨 속에 파고들었는지 그 기원은 은폐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조 잔디밭처럼 깔린 해캄 위로 악취를 풍기며 흘러내리는 계곡물을 보며 차마 신흥계곡이라 말할 수 없다. 세찬 바람 탓에 흩어지며 내리는 진눈깨비가 계곡 위로 떨어진다. 신흥계곡의 불확실성을 걷기와 접맥시키려 여러 동무와 느리고 숙지게 버티며 걸어왔다. 남이 나서주길 기다리는 희망은 욕심일 뿐임을 아프게 배웠다. 보석처럼 투명하고 맑았던 계곡에 대한 그리움의 병을 앓고 있는 동무들은 2024년 계획을 세우고 있다. EM 진흙 공을 수백 개 만들어 신흥계곡에 던져보자고. 흐르는 물이라 효과가 미흡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유익한 미생물이 만경강에 이르러서는 제구실을 하지 않겠냐고. 아, 그러고 보니 강을 나무에 비유한 이가 있었다. 만경강의 최상류에 있는 신흥계곡은 나무의 뿌리란다. 이 뿌리로부터 우뚝 서서 바람과 비를 맞으며 울창한 가지를 뻗어내어 마침내 건강한 만경강이라는 나무가 완성되는 것이라고 한다. “진리는 시간의 딸”이라 하지 않던가. 자본의 욕망이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시간의 두께에 기대어 시민사회 운동이라 할만한 움직임을 발효시킨 것! 우리는 이를 기적이라 말한다. 신흥계곡에 가면 우리는 기적을 만난다. “제 상처를 이루어 꿈이 되는 길”(권경인) /이선애 농부∙완주자연지킴이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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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25 16:10

비상시국의 영화제

4반세기를 맞이하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예산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아직 최종 확정된 상황은 아니지만 영화제에 교부되는 국고 지원금이 절반 이상 깎일 예정이다. 국가 R&D 예산 마저도 사라지거나 대폭 줄어드는 마당이니 말 해 무엇 하랴. 내년이 스물 다섯번 째 맞는 영화제라 무언가 특별한 프로그램을 구성해도 모자랄 판에 기존 영화제 규모를 줄여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비상시국인 셈이다. 생각해 보면 영화제가 비상시국이 아니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전주시 지원금 9억원을 베이스로 시작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영화제로 성장하려면 전체 20억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영화제 자체적으로 여러 대기업에 각종 제안을 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별로 없었다. 처음 만들어지는 영화제였고 성공적으로 개최되리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한승헌 변호사가 나서 주셨다. 감사원장 임기를 마치고 전주로 돌아오셨을 때 영화제의 어려운 사정을 들으시고 지인들을 통해 지원 사격을 해주신 것이다. 그 결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여러 대기업에서 억 단위 후원금을 지원해 준 것이다. 10억원을 가볍게 넘기는 역대 전주국제영화제 최대 후원금 기록이다. 덕분에 영화제는 총 24억원 정도의 예산으로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었다. 홍상수 감독의 <오수정>이 개막작으로 상영 되었고 지금은 거장이 된 봉준호, 류승완 감독 등의 첫 작품이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세상에 처음으로 소개 되었다. 제작비 1억5천만원이 들어가는 <디지털삼인삼색>도 당시 한국영화계를 이끌던 우노필름의 차승재 대표가 흔쾌히 후원해줘 전주국제영화제만의 특별한 제작 프로젝트로 세계에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렇듯 성공적으로 영화제가 출발 했지만 예산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매 해가 어려웠고 위기였다. 기업들은 경제가 어렵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다른 영화제들에 비해 지역을 기반으로 한 기업들의 후원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주시와 전주시의회의 전폭적인 지원에 비해 광역자치단체인 전라북도의 지원이 미비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대부분의 영화제는 시를 기반으로 개최되며 도에서 지원 사격에 나선다. 전주국제영화제는 보통 전라북도로부터 2억원에 못 미치는 지원금을 교부 받는데 다른 지역의 도에서는 적게는 5억원, 많게는 30억원까지 영화제에 지원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정준호 집행위원장과 함께 김관영 도지사와 국주영 도의회 의장께 전달하니 두 분 모두 흔쾌히 내년 예산부터는 타 광역단체에 버금가는 지원을 해주기로 하셔서 우리 영화제 만큼은 국고 지원금 50% 삭감의 여파는 없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세계 잼버리 대회 문제가 불거지면서 전라북도로 부터의 내년 예산 증액이 불가능해져 버렸다. 다시 비상시국이 돼버린 것이다.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정상적으로 치루기 위해 사무처에서는 경상비부터 줄이기 시작했고 정준호 위원장은 많은 기업들과 접촉하며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으며 마케팅 팀장도 그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기존의 후원 기업 유지와 새로운 후원 기업 유치에 힘쓰고 있다. 영화제는 한번 기세가 꺾이면 다시 회복하는데 몇 배 이상의 시간이 필요해진다. 계속해서 성장하는 영화제가 되기 위해서는 이번 위기를 언제나 그랬듯이 잘 돌파해야한다. 고인이 되신 한승헌 변호사가 그리워지는 하루이다. /민성욱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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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18 15:29

군산 내항 근대역사문화공간

문화재청의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 사업은 근대기에 형성된 우리 생활 공간 중 건축 유산을 포함하여 보존된 근대 문화유산의 밀도가 높고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은 일정 영역의 공간을 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다. 2018년부터 추진된 문화재청의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 사업에서 전라북도에서는 ‘군산 내항 역사문화공간’과 ‘익산 솜리 근대역사문화공간’이 선정되어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글에서 익산 솜리 근대역사문화공간이 갖는 특성과 가치를 살펴보았고 이달에는 군산 내항 근대역사문화공간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군산 내항은 대한제국 정부에 의해 1899년 개항된 후 각국 거류지가 설정되며 구 군산세관 본관을 중심으로 형성된 초기 군산항으로부터 일제강점기 경제 수탈항으로 건설된 근대 항만의 역사와 광복 후 산업화 시기의 어업 및 산업생활사를 보여주는 역사문화공간이다. 군산 내항을 구성하는 주요 항만 시설인 뜬다리 부두(부잔교)와 호안 시설, 내항 철도는 개항과 함께 시작된 군산 내항의 120년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초기에 해당하는 1930년대에 조성된 근대 항만의 중심 시설이었다. 20세기 전반 동안 군산, 부산, 인천, 목포에서는 대규모 축항 공사가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항만의 자연조건을 극복하거나 활용하기 위해 근대 토목 기술이 동원되었다. 또한, 항만 인접 섬이나 돌출된 지형은 축항 공사에서 활용하기 좋은 조건이 되었다. 부산항의 절영도(영도), 인천항의 월미도, 목포항의 삼학도가 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금강 하류의 군산 내항에는 활용하기 좋은 지형 조건이 없었다. 군산 내항에서도 대규모 매축 공사가 진행되었으나 조석, 지형과 같은 자연조건의 극복은 역부족이었다. 군산 내항에 적용된 근대 축항 기술의 핵심은 대규모 뜬다리 부두 조성이었다. 선거(船渠, Dock)를 건설한 인천항과 달리 군산 내항은 매축 공사를 통해 조성된 호안에서 연결되는 뜬다리 부두를 통해 대형 선박의 안정적인 접안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군산 내항의 뜬다리 부두는 인천항과 구별되는 서해안의 자연 환경적 단점을 극복하고자 한 또 다른 근대 토목 기술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뜬다리 부두와 호안 시설, 철도 조성 과정에서 생산된 도면 등 다양한 기술 문서가 국가기록원에 보존되어 있다는 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군산 내항의 공간 구조는 1930년을 전후하여 완성되었으나 개항기로부터 현재까지 누적된 다양한 시간의 물리적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구 군산 세관 본관 영역은 축항 공사가 시작된 영역으로 구 거류지 영역과 함께 가장 오랜 역사를 갖는 공간이다. 일제강점기 축항 공사 과정에서 개항기 공간이 많이 지워졌지만 구 군산 세관 본관과 원도심의 격자형 가로망은 대한제국기의 공간적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동쪽 째보선창 영역은 수산업과 선박 수리 및 조선업 관련 시설이 위치하였고, 광복 후 수산업과 제조업 등 여러 시기에 걸친 다양한 기능이 채워지기도 지워지기도 하였다. 뜬다리 부두와 철도 일부가 멸실되었고, 진포해양테마공원과 관광시설 일부가 새로 조성되었으나, 뜬다리 부두와 호안시설, 철도는 여전히 군산 내항의 중심 시설이다. 이와 함께 서쪽의 세관과 동쪽의 째보선창 영역을 포함한 군산 내항 역사문화공간은 근대 이후 우리 역사에서 형성된 소중한 공간적 단편을 담고 있는 의미 있는 문화유산이다. /송석기 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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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11 17:32

‘돈이 되는 문화’를 넘어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도에 문화 분야 정부 예산이 전체 대비 1.02%가 되었다.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이 문화 대국으로 가는 첫걸음이었다고 평가한다. 이즈음 등장한 말이 ‘문화가 돈이 되는 시대’이었다. 영화 <쥬라기공원>(1993년)이 자동차 150만 대 수출대금과 맞먹는 돈을 벌었다는 담론은 ‘돈이 되는 문화’를 뒷받침하였다. 대통령이 나서서 한 ‘문화가 곧 돈’이라는 말은 모든 문화 활동의 핵심이 되었고, 문화를 통한 경제적 가치 창출에 국가, 지자체, 민간 분야까지 나섰다. 정부마다 문화산업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는데, 결과는 창대하였다. 게임 등 경제적 가치가 어마어마한 콘텐츠산업이 새로 만들어졌고,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데 크게 이바지한 한류라는 성과로 나타났다. 지역 전통문화를 활용한 축제나 상품으로 지역경제를 살린 사례도 적지 않았다. 2000년에 들어선 뒤로 20년 넘게 문화가 돈이 된 시대였다. 굴뚝 있는 공장에 상응하는 돈을 문화가 벌어준다고 하니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시간을 돌아보면 문화로 돈을 벌면서 본래 있던 가치가 훼손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지금은 사라진 전주 풍남제가 그중 하나이다. 단옷날에 열린 풍남제는 난장이 유명하였다. 풍남제를 가는 게 의무이듯이 생업에 바쁜 부모님도 “풍남제는 꼭 가봐야지”라며 난장을 찾았다. 유명한 가수가 오지도 않았다. 그래도 난장은 인산인해였다. 사람 구경, 싸움 구경이 전부였지만 전주시민은 “축제라는 게 원래 그런 거지”라면서 양기(陽氣)가 가장 세다는 단옷날에 ‘일탈의 카니발’을 즐겼다. 문화가 돈이 되는 시대에 풍남제도 관광 축제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전문가와 언론은 비위생적인 음식과 바가지요금뿐인 난장에 어떤 외지인이 지갑을 열겠냐며 쓴소리를 쏟아냈다. 세계적인 축제로 만들자며 일탈의 요소를 지워갔다. 질서정연한, 전통이 두드러진 행사로 채워진 풍남제에서 더는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다. 바가지도 사라졌다. 하지만 재미도 없어졌다. 없어진 재미만큼 시민의 발길도 줄어들었다. 외국인은 고사하고, 기대했던 국내 관광객도 오지 않았다. 돈 버는 문화로 지역을 살리자는 전문가와 언론의 외침에 전주를 대표하던 시민 축제만 사라진 셈이다. 창조산업을 이끈 영국에서도 ‘돈을 버는 문화’에 회의적 시선이 많아졌다. 문화가 만들어내는 가치가 돈에만 있지 않으며, 사회적 배제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문화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커졌다. 경제적 기능 중심에서 사회적 기능으로 문화의 역할을 확장하자는 움직임이다. 풍남제는 1년에 한 번 시민이 찾는 일탈의 장소였다. 생업에 힘듦을 난장에서 해소하고 일할 힘을 충전하는 카니발이었다. 시민 축제로서 풍남제의 사회적 기능이 이러하였는데, 문화가 곧 돈이라는 이슈에 휩쓸린 나머지 우리 스스로 진정한 가치를 지워버린 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0여 년 전부터 지역사회 문제를 문화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많아졌다. 문화실험실이라는 이름으로 갈등, 범죄, 외로움을 해결하는 방안을 문화적으로 찾고 있다. 그럼에도 경제적 가치에 무게중심을 둔 지역문화정책의 시선은 여전하다. 돈 버는 문화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경제적 가치에만 주목하지 말자는 이야기이다. 본래의 가치를 상실한 문화는 돈을 벌 수 없다. ‘돈 버는 문화’ 너머에 있는 문화의 다양한 가치에 시선을 옮겨보자. /장세길 전북연구원 사회문화연구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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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0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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