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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미래인의 시각으로 본 도요타 사태 - 이영탁

이번 도요타 리콜 사태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도요타 자동차의 품질관리와 위기관리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무리한 사업 확장을 계속하는 가운데 품질관리가 소홀해졌다는 것이다. 또 최근에 일어난 위기관리 실패에서도 그 원인을 찾고 있다. 늑장 대응, 사실 부인, 뒤늦은 사과 등 위기 발생 초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한마디로 도요타의 내부경영 잘못이 오늘의 도요타 사태를 불러왔다고 보는 관점이다. 과연 이러한 진단이 옳을까? 이 엄청난 도요타 사태가 회사 내부의 품질관리와 위기관리에 문제가 없었다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었을까? 문제를 너무 좁게 보고 단순화시킨 단견적인 시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매사가 그렇듯 어떤 문제든 과거적인 시각보다는 미래적인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과거적인 시각으로 오늘의 문제를 본다면 그 해법도 과거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 가지고서는 올바른 답이 나올 수 없다. 미래적인 시각으로 최근에 일어난 도요타 사태를 보면 그 요체는 이러하다.첫째, 도요타는 자동차 회사이며 제조업이다. 따라서 자동차와 제조업의 미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아직도 자동차를 단순히 수송수단이나 제조업 제품으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의 40%가 IT제품이다. 자동차는 더 이상 사람이나 물건을 실어 나르는 수송수단이 아니다. 이제 자동차는 밤낮없이 일하는 사람들의 사무실이요, 휴식공간이다. 그 결과 자동차 제조와 IT기술을 융합하여 자동차를 '탈것'에서 '움직이는 멀티미디어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개념이 탄생하고 있다. 차가 사무실이 되어 이메일을 처리할 뿐 아니라 금융거래를 하는 등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상황에서 지금도 종래와 같이 자동차는 제조업이요, 제조업은 품질관리 위주로 경영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제조업의 경쟁력이 품질에서 나온다고 하는 것은 옛날식이다. 일본과 같이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가 제조업 경쟁력을 지속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제조업의 서비스화가 어렵거든 차라리 제조업에서 손을 떼라고 하고 싶다.둘째, 최근의 일본 경제를 살펴보라. 1990년대 초반 이후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10년, 20년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년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사회 전체가 가라앉고 있다.그 와중에 과거에 잘 나가던 소니가 그 위상이 많이 떨어졌고 일본항공은 법정관리로 들어가 주식이 휴지조각으로 변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소니와 일본항공 자체에도 문제가 있지만 좀 더 크게 생각해보면 지금 일본 경제사회가 총체적으로 숫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기획기사로 '일본의 악몽: 재정파탄 시나리오'를 실은 바 있다. 이 기사는 20xx년 7월 19일 밤 9시 나카조에 유타카(가명) 일본 총리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다는 내용이다. 최근 세계경제포럼은 일본 경제의 몰락 가능성이 90%이상 된다고 까지 경고했다.셋째, 도요타 문제나 일본의 문제를 남의 문제로만 생각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도요타와 경쟁하는 우리 자동차 회사는 과연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하고 있는가. 우리 대기업이 매년 요구하는 거래 중소기업의 가격조건은 너무도 문제가 많다고 한다. 약자일 수밖에 없는 하청기업을 극한상황으로 내몰고 있다는 소리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또 최근 일본경제의 부진이 우리와는 무관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며칠 전 노무라 증권에서는 지금 한국경제가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기 전 1980년대 후반의 일본경제와 너무도 닮았다고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지금 일본이 겪고 있는 일이 앞으로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또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을 어떤 확실한 준비라도 하고 있는가. 우리도 그동안 급속하게 떨어진 출산율을 감안하면 앞으로 2020년이 오기 전에 경제활동인구에 이어 전체 인구가 줄어드는 단계로 접어드는데.결론적으로 도요타 문제는 도요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조업의 문제요, 일본 전체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동시에 도요타 문제는 곧 우리 자동차업계의 문제, 나아가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이것이 곧 최근에 일어난 도요타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를 미래적인 시각에서 본 것이다. /이영탁(세계미래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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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4.23 23:02

[금요칼럼] 20대의 정치참여, 희망의 싹을 본다 - 김명곤

6월 2일에 실시되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20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20대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세대라고 치부되어 왔다. 정치보다는 텔레비전의 오락물이나 스포츠나 명품 핸드백에 열광하는 세대라고 폄하되기 일쑤였다. 물론 아직도 정치에 관심이 많은 20대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70년대나 80년대의 젊은이들을 휩쓸었던 변화와 개혁의 정치적 열풍이 다시 불기를 기대하기도 쉽지는 않다. 그러나 새 생명의 기운이 움트는 봄을 맞아 터져 나오기 시작한 20대들의 발언과 움직임은 앞으로 커다란 변화를 예감하게 한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이전과는 상당히 다른 에너지를 뿜어낼 것으로 보인다.먼저 '유권자 운동'을 통해서 20대의 권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국대학생연합, 시민주권 대학생모임, 대학생 YMCA, 원불교대학생연합 등은 가칭 '2010 지방선거 대학생유권자연대'를 결성하고 전국의 대학 단체 등에 공동행동을 요청하고 있다. 이들은 20대를 위한 정책을 정당과 후보자들에게 묻는 질의서를 발송하고, 광역기초단체장 후보들을 캠퍼스에 초청해 청년정책 토론회를 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각 정당과 후보들이 20대의 정책을 얼마나 수용하고 있는 지 대학생들에게 공개하고, 이를 기준으로 투표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정책을 수용한 정당이나 후보들과는 협약식을 개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또 각 대학들이 위치한 지역으로 전입신고를 해서 지방자치단체가 그 지역의 대학에 대한 정책을 내놓도록 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고, 이를 통해 '학자금 이자조례 제정'이나 '시도립 기숙사 건립' 등의 정책을 요구할 계획이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는 연세대학교가 위치한 서대문구 구청장 후보와 서울시장에게 "20대를 위한 임대주택을 지어 저렴한 보증금과 임대료로 양질의 주거환경을 제공하라"는 요구를 할 예정이다. 최근 대학가 주변의 임대료가 급등해 대학생들의 주거 문제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터에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은 학생들의 지지를 폭넓게 받고 있어 다른 대학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이들은 이와 같은 활동을 통해 올 지방선거에서 20대 투표율을 대폭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역대 지방선거에서 30%선에 머물러왔던 20대의 투표율을 '88만원 세대'라는 호칭에 맞게 88%까지 높이겠다는 당찬 계획을 내걸고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온라인에서 투표참여를 선언하는 30만 댓글운동을 벌이고, '대학생 정치참여 권리선언 대회'도 열고, 전입신고를 통해 선거구 내 대학생 유권자의 수를 높이고, 전국 주요 대학에 투표소를 설치하는 운동도 활발하게 전개할 계획이다.이런 유권자 운동뿐만이 아니라 직접 선거에 출마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지방선거에 직접 출사표를 낸 20대의 선언이 줄을 잇고 있어 4월 11일 현재까지 선관위에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20대 후보자는 26명이다. 이처럼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이전과 다르게 20대들이 적극적으로 정치 참여를 준비하고 있어 선거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그동안 우리 젊은이들은 정치에 실망하고 냉소적인 태도로 정치를 바라봤다. 그들은 극심한 경제난과 취업난 속에서 미래에 희망을 갖지 못하고 불안에 떨며 방황하고 자포자기하며 지냈다. 그러는 동안 우리 젊은이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고, 지금도 잃어가고 있다.그런데 그들이 방황이나 자포자기에 머무르지 않고 일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 스스로 고대를 퇴교한 김예슬양의 비통하면서도 울분과 절규에 가득 찬 대자보에 대학생들의 관심이 폭발되고 뒤따라서 자퇴 선언을 하는 학생들이 나타난 것을 보면 현재 20대들의 분위기가 어떠한 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이제 암담한 현실에 대한 절규를 넘어서서 스스로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세대뿐만이 아니라 젊은이들에게도 선거는 그들의 권익과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선거를 통해 정책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교육제도를 바꾸고, 정치를 바꾸지 않으면 사회변혁이 어렵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지자체를 변화시키고, 정치를 바꾸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해법을 찾고자 뭉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뭉친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개혁을 시작하고 자신들의 현실을 바꿔내려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가 보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울림을 주고 그 울림이 천둥이 되어 6월의 선거를 통해 꿈과 희망의 미래를 개척해가길 희망한다./김명곤(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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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4.16 23:02

[금요칼럼] 유성매직 그리고 청테이프 - 이기호

얼마 전, 어느 모임 뒤풀이 자리에서 학생들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나온 대화의 대부분은 오직 하나, 스마트폰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어느 회사의 어떤 제품이 압도적인 품질을 가졌다는 말부터, 와이파이(Wi-Fi)가 되는 카페와 그렇지 못한 카페, 앱 스토어에서 구입한 기상천외한 프로그램까지, 학생들은 스마트폰을 탁자 위에 꺼내 놓고,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계속 인터넷에 접속해 실시간 속보들을 중간중간, 충실하게 전해 주었다. 평소 얼리어답터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시대에 뒤처지지는 않는다고 자부하면서 살아왔었는데, 이런, 이젠 정말 구닥다리 세대가 되어버렸구나. 속으론 그렇게 찔끔, 했으면서도 겉으론 계속 어디선가 주워들은 '4G 스마트폰' 운운 하면서 아는 체를 하려고 노력했다. 노력하면서도 한편, 그들의 놀랄 만한 정보 접근력과 속도에 감탄했고, 그것이 못내 부럽기도 했다. 이것이 우리 세대와는 다른 그들만의 활력이고, 그들만의 세대의식이자 특권이겠구나,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렇게 인정하기도 했었다.그런 인정이 다시 뒤바뀐 건, 지난 달 서울 어느 사립대 재학생인 김예슬 학생이 대자보를 통해 밝힌 '나는 오늘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공개 자퇴서를 읽게 된 이후부터였다. 내가 유심히 본 건 그녀의 자퇴서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그녀의 글씨, 그 자체였다. 그녀는 왜 많고 많은 형식 중에서도 굳이 '대자보'란 구세대의 대화창을 사용했을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이나, 트위터, 싸이의 다이어리도 아닌,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대자보를 이용했을까? 그것이 나는 궁금했고, 며칠 동안 계속 그 의문을 머릿속에 품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희미하게나마 그 이유를 내멋대로,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었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공개 자퇴서'를 학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렸다고 치자. 그러면 그 다음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었을까? 아마도 대자보 보단 더 많은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그녀의 글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 뒤에 일어날 일들은 사실 뻔하다. 그녀를 옹호하는 댓글들과, 그녀를 비난하는 댓글들, 양비론의 댓글들과, 농담의 댓글들이 속속 그 아래에 달렸을 것이다. 그러다가 댓글과 댓글끼리 서로 싸우는 일도 일어났을 것이며, 홈페이지 관리자는 이 글을 삭제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본 김예슬 학생 또한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진행되는 논란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입장을 수정하고 싶은 생각들이 슬몃슬몃 들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비단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의 문제만은 아니고, 트위터나 싸이에서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니 어쩌면 그래서, 그녀는 '대자보'를 이용했다. 그것은 돌아갈 길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지만, 말이 아닌 어떤 행동의 의미가 더 컸다. 쉽게 수정되거나 삭제될 수 없는 행동.지금도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수많은 이십대 청춘들이 저마다의 정치적 견해를 견지하고,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들과 정치적 사안들에 대해서 각자의 의견들을 보란듯이 제시하고 있다. 그 의견들만 보면 과연 누가 그들을 정치적으로 무관한, 자신의 스펙 쌓기에만 열중한 세대라고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한데, 문제는 딱 거기까지만이다. 치열하게 담론은 오고 가지만, 언제나 담론은 담론 수준에서만 머물고 만다. 누군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면, 행동으로, 정당한 투쟁으로 실천하는 것이 아닌, 단순한 비아냥거림으로, 또 다른 담론으로만 맞설 뿐이다. 그것은 권력을 가진 자들에겐 참으로 고마운 현상이 아닐 수 없는데, 그저 귀만 닫고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기만 하면, 모든 것을 다 자신들의 뜻대로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사안들이, 왜 수많은 비판들 속에서도 꿋꿋이, 아무런 지장없이 지속되고 있는가는 아마도 그런 사정들 때문일 것이다.대자보를 작성한 김예슬 학생은 자신의 글 말미에 '행동한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라고 썼다. 그녀는 그 문장을 유성매직으로 썼다. 그리고 그것을 청테이프에 의지해 게시판에 붙였다. 정보와 속도는 지식을 쌓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지성까지는 담보하진 못한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인터넷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스스로의 지성을 포기하게끔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 많은 자유를 주는 것 같지만, 더 무서운 포기가 거기 숨어 있는 것이다./이기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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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4.09 23:02

[금요칼럼] '천안함' 침몰, 군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 전용배

천안함이 침몰된 지 일주일 가까이 흘렀지만 아직도 희망적인 소식이 없는 것은 못내 안타까운 일이다. 현장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원인규명도 중요하지만 역시 생사확인이 우선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단지 이번사태를 보며 아쉬운 것은 군이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걸프전이나 이라크전쟁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전황브리핑이나 사건개요는 군 최고책임자 또는 관련 참모총장이 직접 하는 것이 오해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다.초기에는 청와대가 직접 나서는 듯이 보이다가,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슬그머니 군에 미루고, 군도 대변인만 통해 짧게 발표하고 통제하기에만 바쁘다. 이대통령만 하더라도 처음 천안함이 침몰됐다는 사실이 지난 26일 밤 전해지자 청와대에 비상을 걸어 지하벙커에서 긴급 안보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이후에도 몇 번 더 개최하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적절한 조치였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은지 누구나 할 수 있는 '교시'만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발표하고 있다.천안함 침몰사건은 처음부터 군이 전권을 가지고 조치를 취하고 관할해야할 업무이자 영역이다. 사건이후 하루 이틀정도는 정리가 되지 않아 '상부지시'를 기다린다거나, 대응에 신중을 기할 수 있지만, 정보공개 및 상황진척에 대한 브리핑이 너무 더디다. 생존자들에 대한 언론취재 및 기자회견 금지도 이해하기 힘들다. 아무리 안정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국민들이 공개 못 할 뭔가가 있다고 오해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누가 뭐래도 군과 관련된 문제는 군이 제일 전문가 집단 아닌가.청와대 지하벙커에 모인 안보관계 장관회의 면면을 보라. 누가 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는가. 일단 대통령부터 총리, 국정원장, 대통령실장, 정책실장까지 군 면제이다. 군 면제 자체가 문제된다는 것이 아니라 빨리 해결하라고 다그칠 수은 있어도 직접해결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닌 것이다. 필자도 군 면제인 관계로 평소 군과 관련된 문제나 언급은 자제하는 편이다. 이유는 한 가지, 아무리 기준에 미달되었다고 하더라도 병역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은 개인적으로는 씻을 수 없는 상처이다. 따라서 병역의무를 다하지 못한 사람이 국민의 공복(公僕) 즉 공공영역 및 정치영역에 서비스하는 것은 이유야 어떻게 되었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반대하고 있다. 보수주의자로 유명한 이상돈 중앙대 교수도 얼마 전 "내가 제일보기 역겨운 모습은 자신은 병역을 안 한 공직자들이 검은 옷 입고 국립묘지에 가서 엄숙한 표정 지으면서 분향하는 꼴"이라며, "그것이 내가 현 정권을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무지 대통령, 국무총리, 국정원장, 여당 원내대표가 모두 병역면제인 경우가 대한민국 말고 또 있던가"라고 말한 바 있다. 즉 현 정부의 고위층은 군대 조직의 원칙과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대한민국 군대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후로는 적어도 '정치군인'의 오명은 벗어났다. 그동안 국민의 신뢰도 많이 회복하였다.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해서도 정치적인 고려는 할 필요가 없다. 국민의 군대가 정치적인 역학관계나 개인의 이해관계를 따질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원인이 '북한의 소행'이던, 기뢰 때문이던, 내부폭발이던 그 후폭풍은 결국 군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 정치권력이야 이해관계를 따져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되면 뒤로 빠질 것이고,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란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천안함 침몰사건에 군이 주도적으로 나서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책임과 권한에는 동시성(同時性)과 상관성(相關性)이 함께 내재되어 있다. 선진국에서 고위직에 오를수록 출근시간이 빠르고 퇴근이 늦은 이유도 권한에 따른 책임 때문이다. 천암함 침몰사건에 대한 기본적인 책임은 군에 있기 때문에 사건처리에 대한 집행권한도 함께 부여되어야 한다. 청와대 '지령'을 받아 소극적으로 나서기 보다는 군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무엇이 두려워 언론을 피하고, 생존자들의 기자회견을 통제하고 회피하기 급급한지 알 수 없다. 국방장관과 해군참모총장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나서야 한다. 언론 앞에 쩔쩔매는 대변인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매를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하지 않았는가. 어차피 이번사건은 대한민국에서 군 외에는 해결할 수 있는 집단도 없다. 또한 이번사태는 군의 독립적 임무 수행능력과 역량을 검증 받을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도 있다. 어깨에 달린 별이 '상부눈치'보고 얻은 별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이다. 국민들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전용배(동명대 체육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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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4.02 23:02

[금요칼럼] 인구감소와 경제학 - 이영탁

인구문제는 미래예측에 있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하다. 실제로 인구의 미래는 미래를 이해하는데 있어 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인구에 관한 한 통계를 바탕으로 비교적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이다.앞으로는 인구규모 자체가 그 나라의 경제활동에 갈수록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인구와 질 높은 인적자원을 가진 인도가 미래에는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얘기하고 있다. 중국경제가 얼마 후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는 것도 기본적으로는 월등하게 많은 인구에 근거하는 면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가? 한국 인구는 2018년을 정점으로 하여 그 이후부터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경제활동인구, 즉 노동력은 그보다 앞서 2016년을 고비로 하여 감소한다고 한다.우리나라 인구의 미래는 '저출산-고령화-인구감소'로 요약할 수 있다.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어 노인인구가 많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워낙 출산율이 낮아 전체인구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것은 곧 앞으로 젊은 인구는 더 빠른 속도로 줄어든다는 얘기가 된다. 이러한 현상이 가져 올 결과는? 다시 말해 인구가 줄어들면 그 나라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한마디로 경제활동 전반에 걸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구가 줄면 전체 구매력이 줄어들기 십상이다. 그렇게 되면 시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또한 노동력의 감소는 생산 활동의 둔화를 불가피하게 한다. 한마디로 인구가 줄면 노동공급도 줄고 시장에서의 구매력도 줄어들게 된다. 이처럼 인구감소는 경제의 양면 즉 수요와 공급, 모두를 위축시키기 때문에 경제활동 자체가 둔화될 소지가 크다.이런 말이 있다. '지진이 일어나기 1년 전부터 개미가 달아나고, 인구가 줄어들기 10년 전부터 기업이 달아난다.' 인구 감소가 경제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이웃 일본의 예에서 잘 알 수 있다. 일본은 일찍이 1990년대 초부터 노동력이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그 때부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된 것이다. 현시점에서 일본의 문제는 잃어버린 10년이 벌써 잃어버린 20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의 발전을 견인하였던 경제가 어려워지자 일본 사회 전체가 침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우리가 지금 바짝 긴장을 하고 서둘러 준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부에서는 우리와 일본은 다르다고 한다. 그랬으면 오죽 좋겠는가마는 그러한 이유가 우리를 안심해도 좋다고까지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사실 경제적인 면에서 일본은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는 면도 있다. 우리의 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었고, 지금 단계에서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제 곧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된다. 한국에서는 베이비 붐 세대의 시작을 한국전쟁 이후 1955년으로 본다. 이때부터 베이비붐이 일어나 연간 인구가 100만 명 이상씩 증가되었다. 1955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지금 만 55세이다. 이제 곧 은퇴를 시작하게 되어 있다. 본격적인 은퇴는 이들이 만 60세가 되는 2015년경에 나타날 것이다. 이때가 되면 경제 전반의 소비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원래 사람은 일생을 통틀어 볼 때 50세 전후에 가장 경제활동이 왕성하다고 한다. 직장에서의 활동이 활발한 가운데 수입도 많다. 또한 가정에서도 자녀들이 대학에 다니는 동안 큰 집에 살면서 소비지출도 커진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나고 나면 가계의 수입도 줄어들고 동시에 소비도 감소한다. 자녀들이 학교를 마치고 결혼을 하면서 독립하게 되고, 가구주도 일생의 절정기를 지난다. 그 이후 가구주의 연령이 60대로 넘어가 은퇴를 하고 나면 소비규모가 빠른 속도로 줄어든다. 실제로 60대 가구의 소비규모는 40대 가구의 62%, 그리고 50대 가구의 67%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우리의 '빨리 빨리 문화'에도 양면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했을 때는 모두가 부러워했고 우리도 어깨가 으쓱했다. 그러나 지금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달성하고 나서는 고민이 많다. 심지어 한국이 세계에서 인구 소멸 1호국이 된다고까지 얘기되고 있다. 다이내믹하고 별난 한국인이기 때문에 이 문제라고 해서 풀지 못할 것도 없지 않는가. 더구나 이웃 일본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데. 일본의 예를 타산지석으로 삼고 한국인의 지혜를 모아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영탁(세계미래포럼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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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3.26 23:02

[금요칼럼] '88만원세대'의 안타까운 몸부림 - 김명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 초반에 태어난 'G세대(글로벌세대)'는 개인주의 문화에 익숙하고, 배낭여행과 어학연수로 다져진 국제 감각도 뛰어나다. 독립적이고 개성이 강한 그들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소비계층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캐나다 밴쿠버의 동계올림픽 스타들이 보여주듯 재기발랄하면서도 구김살 없는 건강함을 보여준다. 그 중에는 이미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주류에 편입된 젊은이들도 있다.반면, G세대의 몇 년 선배뻘이 되는 1980년대 초반 출생자들은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의 경제위기를 겪으며 성장했다. 그들이 중학생 때 겪은 '외환위기'는 부모의 직업을 위기에 빠뜨렸고, 대학생 때 겪은 '글로벌 금융위기'는 자신들의 취업을 위기에 빠뜨렸다. 한때 'N세대(정보화 세대)'라고 불리며 게임과 인터넷과 핸드폰과 MP3의 주구매자였던 그들은 이제 20대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을 뜻하는 '88만원 세대'가 되고 말았다. 두 번의 경제위기를 겪는 동안 그들의 가정은 불안하게 흔들렸고, 기업은 신규채용을 줄였고, 경제 양극화는 취업의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대학 졸업장이 취업을 좌우하던 시절은 옛날 얘기가 됐다. 요즘은 졸업장에 새로운 변수가 추가됐다. '스펙'이 있어야 한다. '학점 4.0 이상, 토익 900점 이상, 어학연수.....' 기업들이 자신의 제품을 '업그레이드'하듯 취업을 원하는 젊은이들은 자신의 스팩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스펙을 갖추려면 돈이 든다. '토익시험 응시료, 영어 학원이나 어학연수 수업료, 취업 잘되는 학과 복수전공을 위해 대학을 더 다닐 경우 지불해야 할 추가등록금....' 그 많은 돈을 누가 내는가? 부모들의 등이 휜다. 좋은 스펙 갖추도록 뒷받침할 경제력이 부모에게 얼마나 있는가에 따라 비슷한 실력의 젊은이 사이에서 취업의 성패가 갈린다.게다가 정부가 등록금 지원은 갈수록 줄이고 학자금 대출을 확대해서 많은 대졸자가 빚을 안고 사회에 나온다. 빚을 갚기 위해 비정규직이나 인턴이란 꼬리표를 감수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정규직 취업 기회는 점점 멀어진다. 개인은 '업그레이드'되고 사회 전체는 '다운그레이드' 됐다.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일자리를 줄이고,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모든 조건이 지나치게 열악하다. 실업은 점점 심화되고 확대될 것이며, 고용시장의 침체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게다가 직장인의 퇴직이 빨라진 탓에 '아직 젊은', 그러나 일자리가 없는 '실직 부모'들을 부양할 심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이런 부담과 힘겨운 경쟁체제에 자신을 잃은 젊은이 중 일부는 취업이나 승진에 대한 관심보다 취미와 패션 등 자기만족을 제공해주는 일에 몰두한다. 어떤 분야에 지나치게 심취하여 집착하는 '오타꾸'가 일본에 생겨나더니 점점 우리나라에까지 번지고 있다. 또 친구나 이웃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고립적이고 독선적이고 폐쇄적인 '은둔형 외톨이'의 생활에 빠지기도 한다. 일자리를 구하려는 의욕을 상실한 채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프리터' 족도 늘어나고 있다.MBC TV의 일일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황정음은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평소 아끼던 구두와 옷까지 전부 내다판다. 또 새벽부터 취직을 위해 뛰면서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하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다. 그 드라마는 취직에 시달리는 88세대의 애환을 황정음을 통해 보여준다.얼마 전, '명문대'인 고려대 경영학과의 3학년 학생이었던(?) 김예슬양은 불안한 대학생활을 견디지 못해 대자보를 붙이고 자퇴하고 말았다. 그녀의 조리정연하면서도 비통함이 가득한 글은 수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후벼 놓았다."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우리들 20대는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혹독한 경쟁에 시달리다 비좁은 사회 진출 관문에 끼인 우리의 청년들에게 탈출구는 없는가?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확신과 열정을 잃고 이처럼 자본주의의 먹이사슬 맨 밑바닥에서 안타깝게 허덕여야 하는가? 세계를 향해 드높은 꿈을 펼치고 훨훨 날아야 할 우리 젊은이들이 신나게 그 꿈을 펼칠 기회를 되찾기는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김명곤(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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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3.19 23:02

[금요칼럼] 자전거 여행이냐, 급식이냐 - 이기호

예전에 살았던 아파트 단지에선 한때 이런 일이 있었다. 부녀회를 통해 아파트 정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분수대를 설치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것이 주민협의회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된 것이었다. 장기수선충당 이익잉여금인지 무엇인지 자세히 알 순 없으나 건설 자금은 충분히 마련된 상태이니, 보기에도 좋고 여름에도 시원한 오색 분수대 하나쯤 단지 안에 만들자는 것이 몇몇 주민들의 의견이었다.하지만 그 안건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주민들 사이에서 갈등을 야기했는데, 반대하는 쪽의 의견은 간단했다. 그렇지 않아도 주차공간이 부족해 겹주차에 단지 외곽 주차까지 하고 있는 마당에 분수대가 말이 되는 소리이냐, 그럴 공간이 있다면 차 한 대라도 더 세워놓자, 였다. 반대 의견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아서, 분수대는 단순히 보기 좋으라고 만드는 게 아니라, 아파트 매매 가격 상승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 정서에도 좋다, 분수대 공간이라는 게 기껏 해야 차 세 대 정도 주차할 크기인데, 별 다른 영향도 없다, 등등이었다.양 진영은 하루에도 몇 번씩 엘리베이터 옆 게시판에 각각의 의견을 적은 A4지를 붙여놓았고, 서명을 받겠다는 둥, 다수결로 하자는 둥, 한 치의 양보 없이 서로 마주보고 달렸다. 물론 나 같은 전세 세입자에겐 의견을 개진할 기회도, 권리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 일은 여러모로 우리 사회의 어떤 사안들과도 닮은 점이 있어, 엘리베이터 앞에 설 때마다 적잖은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문제는 역시 일의 선후가 될 터인데, 어떤 쪽에 더 가치를 둘 것인가, 어느 의견이 더 긴급한 것인가에 따라서 각자의 입장이 바뀌는 모양이었다.영업용 차량을 모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주차 문제는 당장의 생존권에 해당되는 위치까지 오를 수 있는 일이었고, 분수대를 설치하자는 사람들은 먹고사는 일 못지않게 삶의 질 문제 또한 중요하다고 보는 쪽이었다. 결론이 나기 전에 이사를 해, 분수대가 세워졌는지 그 반대가 되었는지 알 순 없으나, 내심 나는 분수대가 세워지지 않기를 바랐다. 처음엔 그것이 삶의 질 문제보다 생존권을 우선시하는 내 나름대로의 태도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건 그냥 세입자의 시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차피 떠날 공간이니까, 그 기간 동안 만이라도 잠잠하기를 바라는, 여행자와도 흡사한 태도.지금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4대강 사업 중에는 '자전거도로' 건설 항목도 포함되어 있다. 총 1천728㎞ 길이로 건설될 예정인 자전거도로엔 수천억 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인데, 정부에서는 이를 각 지자체의 자전거도로와 연계시켜 권역별 테마노선으로 개발할 계획까지 갖고 있는 모양이다. 한데, 이 '자전거도로'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은 대부분 그 목적을 '레저용'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데 있다. 강줄기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과연 몇 곳이나 되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강'과 '자전거'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가 아무래도 '생활'보다는 '여가' 쪽에 더 기울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에서도 그 목적 중 하나가 '관광용'임을 숨기지 않는 것으로 보아, 도로가 완공된다면 아마도 일반인들의 시선 그대로 '레저용'으로 더 많이 이용될 것이 뻔해 보인다.그러면 우리는 이 지점에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과연 다른 사안들보다 더 긴급한, 또한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도 해야 할 만한 일인가? 그만한 가치를 갖고 있는 일인가? 그러니까 예를 들어 초등학생들의 무상급식을 전면적으로 확대하는 일보다 붉은색 자전거도로를 전국 강가 옆에 까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인가, 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누구의, 어떤 가치인가? 우리는 이 질문을 정부와, 정책입안자들에게 계속 던져야 한다. 그리고 정부 또한 그것에 대해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답변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한데 그런 질문들에 대해서 막연하게 '포퓰리즘 발상'이라고 답변해버린다면, 우리는 또 다시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5년 단위로 바뀌는 정권은 먹고 나면 소화가 되어버리는, 별 다른 티도 나지 않는 급식보다야, 한 번 짓고 나면 수십 년 동안 그 자리 그대로 남아 있는 도로 건설을 선호하는 게 당연하다고, 거기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있다고,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이 정부의 역점 사업들이 대부분 2012년을 완성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 또한 그런 생각을 더욱더 확고하게 만든다. '포퓰리즘' 정권이란 바로 그럴 때 쓰는 말이다. 자신들이 집권하는 기간만 생각하는 것, 눈에 확 띄는 사업만 하는 것. 전세 세입자와도 같은 시선 왜 이다./이기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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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3.12 23:02

[금요칼럼] 김연아 금메달, 자본과 주류의 인정 - 전용배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21회 동계올림픽이 17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폐회되었다. 우리나라는 금6, 은6, 동2개로 동계올림픽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지난 4년간 견디기 힘든 훈련을 제대로 소화한 선수들의 공이 가장 크다. 이번 대회에서 주목할 점은 쇼트트랙에 한정되었던 메달이 빙상 전 부분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피겨 등 빙상 전 부분에서 금메달을 동시에 획득한 나라는 미국과 캐나다 밖에 없다.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스키, 스노보드, 크로스컨트리, 스키점프 등 설상부분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여기에서 질문하나. 역대 동?하계올림픽에서 수많은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유독 김연아의 금메달에 가장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제'(女帝), '여신'(女神)으로까지 '추앙'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국민들이 유독 피겨스케이팅을 좋아하기 때문이어서. 아니면 김연아가 너무 미인이라서. 피겨불모지에 나타난 천재에 대한 경의(敬意)인가. 아니다. 거기에는 '화폐'라는 숨은 그림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역사적으로 동계올림픽은 '선진국, 백인, 귀족'이라는 단어로 압축된다. 특히 설상종목에서 이러한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스피드스케이팅도 장거리는 '그들만의 리그'였다. 이번 대회에서도 한국, 중국, 일본을 제외하면 20위권 안에 랭크된 나라는 모두 서방선진국이다. 1992년부터 채택된 우리나라가 유독강한 쇼트트랙은 '이방인의 스포츠'일 뿐이다.장면하나. 1992년 세계쇼트트랙 선수권대회가 미국 덴버에서 있었다. 우리나라는 남자 전 종목을 석권하고, 여자부분도 개인종합 1위를 했다. 그럼에도 당시 개최도시 덴버의 지역신문에서도 제대로 취급하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란 기억이 있다. 그래도 세계선수권인데 개최도시, 지역 언론에서도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은 백인들의 선호도가 떨어지고, 돈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쇼트트랙은 동계종목 중에서도 소외받는 종목이었다. 주류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김연아의 올림픽 금메달이 가지는 함의는 서구주류 언론의 관심이다. 역대 동?하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수많은 금메달을 땄지만, 서구주류 언론으로부터 관심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심지어 황영조의 금메달마저. 전통적으로 올림픽에서, 서구 특히 미국인들의 저녁밥상머리에 올려지는 종목은 하계올림픽에서는 육상, 수영, 체조 등이며, 동계올림픽 종목은 피겨와 알파인 스키 등이다. 고액을 중계권료를 지불하는 서구 메이저 방송은 철저히 상업적이다. 오직 관심 있는 종목에만 초점을 맞추기 마련이다. 따라서 국내언론도 이러한 흐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결국 올림픽 금메달도 '가치와 금전'에서 사실은 굉장한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우리나라 국민들이 평소 수영과 피겨스케이팅을 좋아해서, 김연아와 박태환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그들이 서구 언론에서 주목을 받기 때문에 더 열광하는 것이다. 변방은 항상 주류의 관심에 목말라 할 수 밖에 없다. 주류가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끼리의 '자화자찬'에 지나지 않으니까.스포츠는 자본과 결합하면서 보다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경기력만큼이나 상업적 가치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가장 먼저 간파한 곳이 스포츠마케팅 회사이다. 사실 김연아와 박태환은 소속사가 같다. 프로선수가 아닌 김연아와 박태환을 몇 년 전에 입도선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이들이 좋은 성적을 낼 경우 얼마나 큰 가치를 생산할 것인지 이미 기업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본주의는 돈을 외면할 수가 없다. 의미가 있건 무의미하건 그건 운명이다. 따라서 스포츠에서도 종목 간 불균형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한쪽은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해도 '굶주리는' 상황이고, 한쪽은 등장만으로 돈이 몰린다. 이러한 구조는 우리가 만든 게 아니다.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그들이' 만든 구조이다.동계스포츠는 근본적으로 인프라 구축에 재원이 많이 든다. 자연환경도 따라야하고, 장비도 고가(高價)이다. 따라서 저변확대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설상종목은 훈련만으로 극복하기에는 자연환경이 따라주지 못한다. 경기력 수준을 높이려면 최소한 10년이 더 필요하다. 짧은 시간에 가능한 건 그래도 스피드스케이팅, 피겨, 쇼트트랙과 같은 빙상부분이다.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가장 큰 성과는 빙상 전 부분의 금메달획득이고, 어쩌면 김연아 때문에 한국도 동계스포츠를 하고 있다는 것이 주류사회에 처음으로 알려진 계기가 된 것이다./전용배(동명대 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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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3.05 23:02

[금요칼럼] 100년 인생을 설계하라 - 이영탁

얼마 전 공기업 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곧 임기가 끝나간다기에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랬더니 별 계획이 없다면서 이제 나이도 60이 되었으니 앞으로는 좀 쉬어야겠다고 하였다. 그제야 이런 말을 하였다. 지금까지 30년 정도 일했을 것 아니냐. 그것도 대단한 일이다. 지금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판에 30년을 쉬지 않고 일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그렇다고 지금부터 쉬겠다고? 앞으로 얼마나 살 것 같은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90까지는 살 텐데, 30년을 쉬겠다고. 그건 과거에 70정도 살다가 죽을 때나 하던 소리가 아닌가.그렇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이다. 과거의 사고에 갇혀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나이가 60이 된 사람은 일생을 통틀어 볼 때 절반 밖에 일하지 않았다. 앞으로 30년이나 남은 인생을 두고 일할 생각은 않고 놀 궁리나 하고 있는 것은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인생 후반 에 30년을 놀다가 간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하겠는가. 이런 인생을 두고 과연 보람 있는 인생이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지난 1960년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52세였다. 그러던 것이 2008년에는 80세가 되었다. 요즘은 매년 0.5세씩 올라가고 있다. 이런 식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난다면 앞으로 90세, 100세가 될 날도 멀지 않았다. 문제는 오래 산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행복하게 오래 살아야 한다. 그러자면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잘 준비하는 자만이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아가는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각자의 취향과 형편에 따라 방법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지금부터 남은 인생을 제대로 설계하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기 인생을 아무런 계획 없이 살아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어떤 미래학자가 이런 말을 하였다. 미래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마치 어둠 속에서 방향감각 없이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것과 같다고.미래를 설계하지 않고도 각자의 인생은 전개되고 삶은 이어진다. 그런 인생의 미래를 가능한 미래(possible future)라고 하자. 한편 인생은 각자가 가고 싶은 미래, 즉 바람직한 미래(desirable future)가 있다. 미래설계는 결국 가능한 미래를 바람직한 미래 쪽으로 근접시키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각자가 원하는 미래 인생의 목표나 방향을 정해놓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곧 미래설계이다.여기서 미래설계에 있어 필수적인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이미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각자의 남은 인생에 있어 지금이 가장 젊을 때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얼마까지 살 수 있을까, 즉 바람직한 건강의 미래를 설정하고 그 때까지의 인생설계를 지금부터 바로 시작하도록 하자.둘째, 뭔가 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 못한다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잘 살펴보라. 밑천을 대고 돈을 버는 일도 있지만 돈 없이 할 수 있는 일도 얼마든지 있다. 더구나 미래는 대개 물질적인 욕구는 어느 정도 채워졌기 때문에 정신적인 측면을 훨씬 더 중시한다고 한다. 물질적인 측면을 앞세우는 것은 아직도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셋째, 각자가 지금까지 남을 위해 무엇을 얼마나 했는지를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그리고 어렵게 사느라 자신 이외에는 큰 신경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이만치 사는 것이 내가 노력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운이 좋았던 측면도 있다. 우리 주변에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더구나 미래의 세상은 윤리의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열악한 조건에서 친환경적으로 농산물을 재배하는 농부들에게 적정한 이윤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공정무역(fair trade)이 그 한 예이다.지금까지 인생의 과정을 30+30+a라고 한다. 부모 밑에서 30년, 부모 노릇하며 30년, 그러고 나서 환갑 이후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제는 30+30+30+a가 되었다고 한다. 오래 산다고 해서 무조건 축복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추가된 30년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전체 인생에 있어 행복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100년 인생을 설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이영탁(세계 미래포럼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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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2.26 23:02

[금요칼럼] 무상급식, 어떻게 할 것인가? - 김명곤

초중등학교 무상급식 문제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여당과 야당을 가리지 않고 서울시, 경기도, 대전시, 광주시 등 일부 시도 단체장이나 교육감 후보들이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세우자 이에 대한 찬반으로 선거판이 달구어지고 있는 것이다.찬성하는 쪽에서는 지금처럼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만 무료급식을 하는 것은 대상 학생과 급식비를 내는 학생 사이에 나타날 수 있는 위화감이나, 그 학생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심리적 아픔을 생각할 때 교육적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그러나 반대쪽에서는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할 경우 매년 1조 5,000억 원에서 최고 1조 8,000억 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한데 한정된 교육 재정을 무상급식으로 돌리다 보면 다른 교육예산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으니 오히려 교육정책이 후퇴할 거라고 주장한다.이에 대해 찬성쪽에서는 무상급식은 단순히 교육적 차원에만 한정되지 않고 학교에 내는 급식비에서 절감된 돈이 가계의 지출에 활용됨으로서 경기부양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서민층과 중산층의 육아에 대한 부담을 줄임으로써 출산율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으며, 우려하는 예산 문제도 다른 부문에서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예산의 지출을 줄여서 국민의 세금 부담이 없이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으니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이에 대해 반대쪽은 강경한 어조로 무상급식이 선거를 염두에 두고 대중들에게 영합하는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다. <조선일보>는 2월 4일자 사설에서 "무상급식 다음엔 공납금 공짜 공약, 외고자사고 폐지 공약, 대학입시 추첨제 공약이 차례차례 또는 한꺼번에 등장할 것이다....아첨꾼 정치인들은 불평등과 빈부격차라는 사회의 그늘을 비집고 독(毒)버섯 돋아나듯 돋아난다"고 썼다. 같은 날 <동아일보>의 사설도 "국민을 속이고 국가에 해독을 끼치는 공약을 남발하는 출마자들은 유권자들이 가려내야 한다"고 했다.포퓰리즘 주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나 아르헨티나의 예를 들어 좌파의 복지 정책이 국가를 부도 사태로 끌고 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반대쪽의 손을 들어 주었다. 2월 12일 한나라당 신임 당직자들과의 조찬회동에서 "있는 사람은 자기 돈으로 해결하고, 그 돈으로 서민을 도와야 한다...복지 예산을 늘리고 싶어도 북유럽 나라처럼 안 된다"고 밝힌 것이 그것이다.현재 전국의 모든 초중고생들을 대상으로 가정형편이 어려운 13% 정도의 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논란의 초점은 바로 이 '가정 형편이 어려운'이라는 단어에 있다. '한 반이 40명이라면 전국적으로 평균 5,6명의 아이들이 무상급식을 받는데 그 아이들에게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 옳은 일인가?' 라는 질문은 타당하다고 본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감정이 예민한 어린 학생들이 다니는 초중등학교 안에서 아이들이 차별을 느끼고 소외감과 상처를 받게 되는 일을 막고 모든 아이들이 똑같이 나라에서 주는 밥을 먹고 평등하게 공부를 시키자는 원칙적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다만 현재 우리 국가의 예산 상황이나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그 시기나 범위를 놓고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니 무상급식은 그 정책이 '옳으냐 그르냐' '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시행되고 있는 수준을 '유지할 것이냐, 더욱 확대할 것이냐, 전면 실시할 것이냐' 하는 실행 방법의 문제로 보인다. 더욱이 무상급식 실행 여부는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에 속하니 부분적으로 실시하든 전면적으로 실시하든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타당하리라고 본다.다만 재원조달 방안에 대한 대안도 없이 표를 의식해서 무조건 선심성 공약을 내세우는 후보는 철저히 검증해야 할 것이다. 그런 한편 이 문제를 포퓰리즘이나 좌파의 이념과 연결시켜 쟁점화하는 일 또한 미래의 꿈나무들을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무상급식 시행으로 인해 학부모들의 세금 부담이 증가하고 더 중요한 교육 사업들이 뒷전으로 밀려날 지, 아니면 평등교육의 혜택으로 인재 양성의 토대가 튼튼하게 마련될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이렇듯 민생이나 교육과 관련된 장기적인 문제일수록 정치적으로 쟁점화하거나 선거의 유불리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국가 백년대계의 수립이라는 과제 속에서 활발한 토론과 공론화 과정을 통해 유권자의 선택에 맡기는 게 올바른 민주주의의 실천이라고 본다./김명곤(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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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2.19 23:02

[금요칼럼]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는 이유 - 이기호

아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알겠지만, 우리나라의 학령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시점은 2016년부터이다. 그해부터 우리나라는 고교졸업자수보다 대입정원이 더 많은 사회에 접어들게 되며, 생산가능 인구 또한 하강곡선을 그리며 감소하게 된다. 그에 따라 많은 대학들이 통폐합이나 퇴출의 과정을 통해 사라지게 될 것이며, 기업 또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파산 절차를 밟게 되는, 우울한 현상을 곳곳에서 목도하게 될 것이다. 하나의 학교나, 하나의 기업이 사라지게 되면, 단순히 그 구성원들만 실업자 신세가 되는 것은 아니어서, 그곳을 기반으로 삶의 터전을 닦아오던 많은 사람들, 그러니까 식당 주인들이나 문구사 주인들, 원룸임대업자, PC방 주인들 또한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한데, 여기서의 학교나 기업은 주로 수도권보다는 비수도권 지역을 소재로 한 곳이 그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 이유는 지난 몇 년 간의 수도권 인구 유입 통계자료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까 수도권으로선 별 문제가 없는 것이 자연인구수가 아무리 감소한다고 해도, 그것을 감내해줄 사회적 인구 유입 증가분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현상을 최소한 몇 년이라도 더 지연시킬 수 있을 거란 얘기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우리나라의 출산율 증가 대책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는 것은 대개가 비수도권 지자체들이고, 장학제도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지방대학들이다.따지고 보면 2016학번이 되는 친구들이 태어난 해는 바로 1997년, 이 땅에 가브리엘 천사처럼 IMF 구제금융이 당도한 해였다. 그 순간부터 우리나라의 인구 증가분은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했는데, 이 땅의 출산율 감소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고 싶다면 우선 그 시기에 대한 보다 면밀한 관찰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이야 외환보유고가 세계에서 몇 번째이니 우리끼리 서로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사실 이 땅에 남기고 간 IMF의 내상은 결코 간단치가 않은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이 땅의 광고에서 '부자되세요'라거나 '대박나세요'라는, 이전까지는 너무 속물처럼 여겨져 금기시되어왔던 카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기 시작한 것도 그맘때쯤이었고, 노숙자 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도, 시골 고향집에 아이만 달랑 맡기고 사라지는 편부모의 숫자가 늘어난 것도, 모두 그즈음의 일이었다.집 안에 있는 금붙이까지 싹싹 끌어 모아 보다 빨리 IMF 체제를 극복하려 노력하다 보니, 이런, 어느새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의 최우선 가치는 '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그 이전에도 우리 시대 최고의 가치는 계속 '돈'이었다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어지지만, 그래도 분명한 건 그 이전까지는 최소한 그런 말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공적인 사람들이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신문만 살펴봐도 그 이전까지는 대부분 우리 시대의 화두는 '이념'이나 '민주'였지, '돈'은 아니었다.하지만 그런 속물적인 화두의 갑작스러운 출물은, 구제금융의 트라우마와 함께 많은 사람들의 의식 자체를 아예 '투자 대비 창출 효과', 혹은 '은행 복리 계산법'으로 뒤바꿔놓았다. 간단한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지자체에서 출산축하금으로 몇 백만 원을 건넨다 해도, 보육료 지원을 얼마씩 인상한다고 해도, 이건 도무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계산이기 때문에, 수지타산에 익숙해진 젊은 부부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IMF가 남기고 간 이 땅의 내상이자, 트라우마이다. 어쩌면 이제 우리들 역시 예전 일본사람들을 비하하면서 종종 했던 말, 바야흐로 '경제동물'들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문제는 이런 화두들이 계속 지속되고 강화된다는 데 있다. 일례로 세종시 문제만 해도 그렇다. 세종시의 원안이 뒤집히는 결정적인 논리들은 무엇인가? 효율과 경제성이 아니던가? 그 역시 다퉈볼 만한 사항들이지만, 사실 원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돈으로 환원되지 않는 가치들이 더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눈에 띄지 않는 가치들이 모두 무시되고 있다는 것은, 현 정부의 가치지향점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그런 지향점 아래에서 출산율을 높이는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는 것 같다. 출산하는 부부에게 원형지를 거의 무상에 가깝게 공급해보라. 성급하게 예견할 순 없지만, 효과는 기대이상일 것이다./이기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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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2.12 23:02

[금요칼럼] 검찰과 법원 논쟁, 누가 반성해야 하나 - 전용배

공부와 운동병행이라는 시대적 경향으로 인해 최근 달라진 체육계의 현상 중에 하나가 운동선수출신들의 고시합격이다. 물론 아직은 그 숫자가 4-5명 수준에 불과하지만 고무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중고 시절 운동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최하위권의 성적을 받았다하더라도 본인의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고시도 합격할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를 보여주었다. 합격한 이들이 하나같이 이야기하는 것이, 공학이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했겠지만, 사회과학영역이라 '체력'을 믿고 도전했다고 한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외우기만 하면 된다는 뜻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고시합격이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사법고시 합격생 중에서도 우리사회에서 아직도 최고 엘리트집단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 판사와 검사이다.최근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검찰과 법원의 논쟁을 보면서,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다. 적어도 엘리트 집단끼리의 논쟁이라면 보다 논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검찰과 법원의 마찰 과정에서 전혀 상관없는 '우리법 연구회'문제가 뜬금없이 튀어나오고 있다. 미네르바,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야간 촛불집회,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전교조 시국선언, 강기갑 민노당 대표, 피디수첩 사건은 모두 우리법연구회와 무관한 판사들이 선고했다. 법원이 어떤 집단인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가치에 충실한 대표적인 집단이다. 왜냐하면 사법부는 기존질서를 지키는 역할을 주로 수행하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진보적이라는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이고, 미국 또한 예외 없이 사법부는 보수적이다. 게다가 판사는 독립적이긴 하지만 판단의 준거는 기본적으로 판례이기 때문에, 큰 틀에서 과거의 관행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다. 일반 판사가 선고한 7건이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면, 답은 검찰의 무리한 기소 때문이다. 논쟁의 핵심은 기소내용에 대한 법리적 문제가 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상관없는 집단을 마녀 사냥하는 것이 21C 선진인류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에서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물론 검찰은 '정치적 판결'이라 주장하면서 법원에 불만을 토로했지, '우리법 연구회'를 지칭한 적도 없고, 공격한 적도 없다. 진짜 정치적으로 이용한 집단은 '우리법연구회'와 이번 7대 무죄판결이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문제를 제기한 거대언론과 여당이다. 검찰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지만 이 와중에 검찰이 궁지에 몰리고 있는 것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항 못하고 '복종'만 해온 역사 때문이다. 검찰이 '정권으로부터 부여받은 수사'에 충실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오죽했으면 지난해 1월 피디수첩 수사를 책임진 주임 검사가 "정부 비판을 명예훼손으로 기소할 수 없다"며 사실상 양심선언을 하고 사퇴했겠는가. 이번 검찰과 법원의 논쟁에서 자기반성이 필요한 집단은 검찰이다."수십 년 검찰역사 속에서, 국민에게 긍정적으로 각인된 검사를 배출한 경험이 없는 검찰. 기소독점이라는 절대 권력을 소유했으면서도, 그 칼을 힘없는 백성과 집단에게만 휘둘러온 검찰. 도쿄지검 특수부가 집권 민주당의 실세인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의 정치 자금을 수사 중인데 비해, 죽은 권력에만 칼을 들이대는 검찰. '거악'과 싸우기는커녕 '거악'과 결탁한 검찰" 이것은 필자의 주장이 아니라, 검사 출신의 김용철 변호사가 새로 출간한 책에서 밝힌, 오늘날 검찰의 자화상이다. 검사도 인간이기에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찌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국민의 공복(公僕)이라면, 최소한 역사를 두려워 할 줄도 알아야 한다. 검찰조직에서 질서, 충성, 의리, 복종 같은 단어가 유의미한 가치로 계속 인정받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러한 가치는 필자가 몸담고 있는 체육계에서도 퇴출된 용어이다. 검찰 깃발에 그려진 칼과 대나무가 진정한 검찰의 상징이 되기를 고대한다./전용배(동명대 체육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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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2.05 23:02

[금요칼럼] 왜 미래인가 - 이영탁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미래를 모르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어둠 속에서 방향감각 없이 절뚝거리는 것과 같다." 이 말대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미래란 먼 훗날에 오는 일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에는 별 관심이 없다. 오늘 하루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미래냐 하는 사람도 있고 온통 과거에 얽매어 옛날이 좋았느니 어쩌니 하면서 뒤만 돌아보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제작년에 홍콩을 방문한 앨빈 토플러가 한 말이 새삼 기억난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지만 미래에 대한 준비가 소홀하다."미래는 항상 미래로 있는 것이 아니라 금방 현실로 다가온다. 미래가 현재가 되고 또 과거로 바뀌면서 금방 새로운 미래가 나타난다. 따라서 미래를 잘 예측하고 준비하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반대로 미래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하면서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될 리가 없다. 이것은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다 마찬가지이다. 행복한 삶을 원하는 개인, 성공적인 기업경영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기업가, 국가사회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자 하는 국민이라면 누구든 미래공부부터 하고 볼 일이다.미래변화의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워낙 다방면에 거쳐 복잡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인구변화나 지구온난화는 어떻게 진전되고 우리에게 던지는 숙제는 무엇인가. 과학기술의 발전속도와 방향, 그리고 그것이 우리생활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인가. 과연 인간이 죽지 않는 세상이 올 것인가, 온다면 언제 쯤인가. 교육이 나라의 장래를 결정한다는데 교육 자체의 미래는 어떻게 되며 미래형 인재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일자리 변화는 어떻게 되며, 어떤 직종이 부상하고 어떤 직종이 사라지는가. 장차 기업의 모습은 어떻게 되고 기업경영방식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개별 국가 대신에 지구촌 정부가 탄생한다는데 과연 그럴 날이 올까. 미래는 온통 사이버 세상이 된다는데 어떻게 적응해 나갈까. 그 때 사람들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생활방식은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 인간의 삶은 결국 행복추구에 최고의 가치를 둘텐데 미래인의 행복은 어디에서 찾을까. 이런 식으로 살펴보자면 끝이 없다.인구문제만 해도 그렇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인구문제는 한마디로 저출산-고령화-인구감소이다. 확실히 우리네는 별난 사람들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저출산 때문에 아무리 고령화 속도가 빨라도 인구는 곧 줄어들게 되어 있다. 얼마 안있어 노동력이 줄면 생산활동이 축소될 것이고 뒤이어 인구가 줄면 구매력과 시장이 위축될텐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도 노동력 감소와 함께 시작되었다는데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고민이 아닐 수 없다.어느 시대, 어느 정부든 국정운영을 잘해서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되지 못하고 국민들로부터 많은 욕을 먹고 만다. 그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정부 당국자의 미래 마인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미래지향적 국정운영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왜 정부정책에 기를 쓰고 반대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국민들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살필 줄 알아야 한다.요즘 사람들은 저마다 똑똑하다. 인터넷이 집집마다 보급되어 있어 매일 매일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산다. 거기다 사람마다 휴대폰을 가지고 그때 그때 소통을 한다. 이처럼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무장한 똑똑한 군중들(smart mobs)의 활동영역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고 정부가 하는 일마다 시시비비를 가리고자 한다. 이들이 무리를 이루어 집단행동을 하기 시작하면 그 위력이 대단하다.능력있는 정책 당국자라면 이들을 끌어안고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책 수립 단계에서부터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으고 특히 반대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들어 받아들일건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기 어려운건 그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결국 이들을 동반자로 만들어 함께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가오는 미래는 감성사회이다. 냉철한 머리도 필요하지만 따뜻한 가슴이 없이는 되는 일이 없는 사회가 바로 미래사회이다.우리가 알아야 할 미래는 너무나 복잡하다. 그런데 미래변화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고, 변화의 내용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남보다 먼저 미래를 파악하고 개척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라고 한다. 단순히 예측만 하는 데서 나아가 각자가 원하는대로 만들어가는 노력과 지혜가 필요하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 더 큰 미래를 열어가는 것은 누구나 원하는 바이다. 그것은 곧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승자가 되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도 하다./이영탁(세계미래포럼 이사장)▲ 이영탁 이사장은전 총리실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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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1.29 23:02

[금요칼럼] 아마존의 눈물, 아바타, 아이티 - 김명곤

아마존의 와우라 족은 토기와 스테인리스 냄비를 함께 사용하며 발전기로 켜지는 텔레비전 을 즐겨 본다. 예전 브라질의 주요 수입원인 고무 채취에 동원됐던 마르보족의 상당수는 죽거나 마을을 떠났다. 여덟 살 소녀 릴리아니의 엄마는 병으로 죽고, 아빠는 도시로 나간 후 소식이 없다. 아마존 상류에 사는 마티스 족은 온 몸을 검게 칠하고 나뭇잎으로 몸을 감싼 어른이 회초리로 아이를 때리는 풍습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아이를 강하게 만들어 준다는 매서운 회초리질이나 얼굴에 새긴 사나운 재규어 문양에도 불구하고 부족민들은 병들어가고 있다. 사냥꾼 비나는 간염 보균자이며, 그의 둘째부인과 딸도 간염환자가 되었고, 큰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역시 간염으로 죽었다.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은 지상 최대 생물의 보고이며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의 위기를 그리고 있다. 만약 아마존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또 다른 행성을 찾아 고달픈 여행을 떠나야 할 지 모른다.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는 에너지가 고갈된 미래 지구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판도라라는 행성으로 날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들은 매장된 자원을 얻기 위해 원주민인 나비족의 고향에 불을 지르려 한다. <아바타>를 보면서 <아마존의 눈물>을 떠올린 것은 판도라 행성의 자연이 아마존의 밀림을 닮았기 때문이고, 원주민들의 고향에 불을 지르는 짓거리가 바로 지금 아마존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바타>에는 <아마존의 눈물>에는 없는 '영웅'이 있다. 휠체어 신세의 다리를 얻기 위해 행성에 들어 온 주인공 제이크 설리는 판도라의 여인과 사랑을 하고 행성의 아름다움에 빠져 결국 행성을 구해낸다. 그런데 판도라의 자연을 파괴하는 주체도 백인이고, 그것을 구하는 주체도 백인이라는 설정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의문에 대해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영화 <아바타>가 "백인 메시아가 세계를 구한다는 우화를 강화시키는 백인 관점의 인종적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고 답하고 있다.1492년에 콜럼버스가 첫 발을 디딘 신대륙은 카리브 연안의 키스케야 섬이었다. 섬의 토착민들이 학살과 질병으로 몰살당하자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데려와 노예로 부렸는데, 이들이 현 아이티 국민들의 선조다. 그 후 프랑스 식민지가 되어 가장 잔혹한 수탈을 당한 아이티의 노예들은 기나긴 독립 투쟁을 했고, 드디어 1804년에 세계 최초로 흑인 공화국이 되었다. 미주 대륙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 공화국으로 독립한 아이티에 대해 흑인노예들의 국가라는 이유로 국가 승인을 거부했던 미국은 1915년에 아이티를 점령해서 1934년까지 통치했다. 아이티가 독립 이후 34번의 쿠데타를 겪으며 최빈국으로 전락한 원인은 서구 열강의 탐욕스런 수탈과 군사개입과 점령을 반복했던 미국의 정책 때문으로 지적된다. 그 미국이 상상을 초월하는 강진 피해로 시신들과 통곡소리와 비명소리 가득한 '생지옥' 아이티의 구호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니 흑인들에게 병 주고 약 주는 백인들의 위세는 대단하다.북극의 빙하가 녹고, 아마존의 숲이 파괴되고, 지진과 해일, 폭염과 강추위가 지구를 뒤덮고 있는 지금 환경파괴로 인한 자연재해는 앞으로 우리의 삶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이러한 자연재해를 보는 시선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아바타>는 웃었지만, 아마존과 아이티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이티, 아마존, 아바타. 공교롭게도 모두 '아'로 시작된다. 이 '아' 자들이 지금 우리 시대의 큰 화두를 제공하고 있다./김명곤(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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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1.22 23:02

[금요칼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 이기호

미국의 작가 레이몬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단편소설엔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 한 쌍이 등장한다. 그들 부부의 아이가 세상을 뜬 것은 우연한 교통사고 때문인데, 그날은 마침 아이의 여덟번째 생일날이기도 했다. 아이의 갑작스러운 사고 때문에 미리 주문해놓은 생일케이크 따위는 잊어버린 채 슬픔에 빠져 있던 부부에게 제과점 주인은 왜 만들어놓은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느냐며 화를 낸다. 제과점 주인은 당연하게도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그래서 그들이 주문만 해놓고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는, 무책임한 손님들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작품 말미에 가서야 사정을 알게 된 제과점 주인은, 젊은 부부에게 사과하며 자신이 만든 롤빵을 내민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스토리로서만 바라보자면 어쩌면 제목 그대로 별것 없는, 밋밋하기까지 한 이 이야기가 감동스러운 것은, 슬픔과 허기를 같은 위치에 두고, 허기를 통해 슬픔을, 슬픔을 통해 허기를 이해하게 만드는 작가의 시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잃은 슬픔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을 것이 뻔한 부부에게 내미는 롤빵은, 세상 그 어떤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되고, 커다란 도움이 된다. 어쩌면 작가는 그 빵을 통해서 누군가가 누군가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일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 아이의 엄마는 그 자리에서 롤빵을 세 개나 먹는 것으로 묘사됐다. 개인적으론 그 부분이 소설에서 가장 슬펐다. 아이를 잃고 롤빵을 세 개나 먹을 수밖에 없는 엄마. 그녀의 허기.지난주엔 일 년 가까이 지연되었던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주 수요일은 그들이 세상을 떠난 지 꼭 일 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그들의 장례식이 치러진 다음다음날, 어느 한 신문의 사설에선 유가족이 받은 보상금이 1인당 6억원이라는 액수를 강조하며, 그 대가를 대한민국 국민이 두고두고 치를 것이라고 일갈했다. 장례식 전전날엔 역시 사설을 통해 희생자들이 정당한 공무집행에 맞서 불법 폭력행위를 일삼다 숨진 사람들임을 강조했다. 사설을 쓰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순 없으나, 정말이지 꼭 누구인지 알아내어 이름 석 자를 똑똑히 기억하고 싶은 심정이다. 사람이 무려 다섯 명이나 불에 타 죽은 일이었다.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들이 죽은 일이었다. 정파적 입장을 떠나서, 사람들이 죽은 자리에, 죽은 사람들이 떠나는 자리에, 꼭 그런 말들을 쏟아내야 했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은 예의를 묻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과연 누구의 아버지,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들인가를 묻는 질문이다.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용산참사에 관련된 법정에 꼬박꼬박 참석한 어느 한 후배작가의 글을 보면, 용산역세권 재개발로 인해 발생하는 건설사의 이익은 일조 사천억원이고, 조합원의 이익은 천팔백억원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 막대한 이익을 위해서 권리금과 시설투자비 포함 이억 육천만원이 투자된 음식점 주인에겐 이주보상비로 오천만원이 나왔고, 일억 이천만원이 들어간 중국집 주인에겐 육천만원을 주겠으니 나가라고 했단다. 엊그제까지 평범한 중국집 주인이었고, 갈비집 주인이었던,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남편이자 아들들은 그래서 이름도 생경한 '전철연'에 가입했고, 아내의 귀를 때려 바닥에 쓰러뜨린 다음 배를 걷어차는, 깡패용역들에 맞서 망루에 올라갔다. 그들이 사고(이 단어는 쓰고 싶지 않으나, 참고 쓴다)로 죽었다. 남은 가족들은 그 죽음이 억울해, 희생자들을 냉동고에 보관한 채 일 년 남짓 거리에서 싸워왔다. 그리고 끝내, 어쩌면 사건의 일차적 책임이 있는 재개발조합 측과 합의를 하게 되었다. 아이를 잃고 롤빵을 세 개나 먹은 소설 속 엄마와는 같을 수 없겠지만, 유가족들이 받은 합의금엔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어떤 비릿한 아픔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이 과연 '떼를 써서' 받은 돈처럼 보이는가? 그 돈이 과연 금액으로, 1인당 얼마 하는 식으로, 셈할 수 있는 돈으로 보이는가?우리가 어느 한 사건, 어느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사건 속으로 보다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그 노력 다음에, 우리는 어렵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을 때, 우리는 최소한 침묵을 지켜야 한다. 사람이 죽었을 땐 특히 그렇다. 그것이야말로 때론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일이기 때문이다./이기호(소설가광주대 문예창작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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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1.15 23:02

[금요칼럼] 타이거 우즈와 살아남은 자의 슬픔 - 전용배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성추문은 2009년 연말 지구촌을 강타한 최대의 가십이었다. 적나라한 사생활 폭로로 한 인간의 인권이 짓밟히고 있다는 시각은 극히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을 뿐 모든 것이 노출되어, 그동안 쌓아왔던 긍정적인 이미지가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퍼라는 찬사를 들었던 타이거 우즈는 왜 이렇게 무너졌을까. 단순한 개인의 일탈인가? 그렇지 않으면, 다른 함의가 내재되어 있는 것일까. 판단하기 쉬운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타이거 우즈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가정이 성립된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도 현역시절 도박과 여자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도박은 중독수준이었다. 그 이외에도 세계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스포츠스타들 중에는 타이거 우즈나 마이클 조던과 같은 사례가 적지 않다. 결론은 극심한 경쟁에 따른 스트레스이다. 연예계, 정계, 스포츠계는 이등을 기억하지 않는 곳이다. 즉 승자독식구조이다. 승자독식구조는 참가선수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승리 아니면 죽음을 다오'이다. 승리는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일시적으로 안겨주긴 하지만 영원하지는 않다. '달콤한 열매'를 지키기 위해 그들은 끝없는 경쟁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연예계 스타는 '자살의 그림자'가, 스포츠 스타는 '일탈의 그림자'가, 주목받는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의 그림자'가 운명처럼 드리워져 있다. 최고가 아니면 용서가 되지 않는 환경이 이들을 자극한다.원래 스포츠는 단순한 놀이에서 출발했다. 근대 유럽에서 발전한 스포츠는 '유희성'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오락이나 재미와 관련이 깊다. 이러한 스포츠가 미국에 전파되면서 새롭게 탄생했다. '경쟁성'이 추가된 것이다. 게다가 미국이 세계질서를 장악하면서, 스포츠의 '경쟁성'은 미국의 경쟁력을 담보하는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물론 강함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는 하지만, 스포츠는 미국 자본주의와 만나면서 무한경쟁을 선언하고 이를 통해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필요했던 것이 경쟁력 있는 '스포츠 영웅'의 출현이었다. 영웅이 없는 오늘날 유일하게 영웅대접을 받는 것이 스포츠스타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들은 영웅이 아니라 극심한 경쟁사회에서 생존해야하는 나약한 인간 일뿐이다.타이거 우즈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 중에 '페인 스튜어트 사건'이 있다. 니커보커스 복장에 중절모가 트레이드마크인 페인 스튜어트는 1999년 여름 US 오픈에서 우승하고, 그해 가을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협회는 PGA선수권대회의 일정을 조정하여 참가 선수들이 조문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모든 선수들이 플로리다 주에서 거행된 장례식에 참석했는데, 타이거 우즈만 빠졌다. 장례식후 치러진 PGA 선수권대회에서 타이거 우즈는 당당하게 우승하고 개인적으로 묘소를 참배했다. 타이거 우즈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회를 앞두고 스튜어트의 장례식에 참석하면 마음이 흔들릴까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보편적 정서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지만, 극심한 경쟁이 상존하는 스포츠세계에서는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살아남은 자들이 원하는 건, 현실에서의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사회에서 경쟁은 피해갈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문제는 이러한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았는데도 슬프다는 것이다. 오늘 밤 타이거 우즈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라는 브레히트의 시(詩),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되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누가 살아남은 것이고, 누가 살아남지 못한 것인가. 과연 이것이 타이거 우즈에게만 해당되는 일일까./전용배(동명대 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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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1.08 23:02

[금요칼럼] 도시의 산소 탱크, 가로수 터널 - 전상국

지난 18일 폐막한 덴마크 코펜하겐의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 총회는 130여 나라 정상들이 참여한 그 규모면에서나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세계의 환경운동가들 수만 명이 매일 회의장 밖에서 벌인 환경 관련 시위만으로도 지구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두 번째 지구는 없다' '말만 하지 말고 지금 행동하라' '부자 나라는 기후변화의 빚을 갚아라' 등의 시위 구호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행동하는 양심, 지구에 사는 우리 모두의 마지막 희망 메시지, 그 절규만 같았다.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가 높은 굴뚝을 쳐다보며 우려했던, 인간 스스로 자초한 지구의 재난, 곧 인류의 멸망을 예언하는 여러 징후들은 남극 대륙의 빙하가 녹으면서 생기는 해수면의 상승 수치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무 심는 시기가 많이 앞당겨졌다든가 강원도 영서지방에서는 그 식재가 쉽지 않던, 주렁주렁 열매를 단 감나무들을 보면서 어찌 기후 변화를 실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지구 온난화에 대비한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은 현 정부의 최대 국정과제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들이 앞 다투어 벌이고 있는 갖가지 온실가스 감축을 통한 각종 녹색성장 사업이야말로 지구 살리기는 물론 그것이 곧바로 우리 모두의 건강과 복지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녹색은 색체 구분으로 볼 때 안전진행구급구호 등을 뜻하는 안전색체로 통한다. 더 넓게 우리는 살아 있는 자연만을 녹색으로 표현한다. 이것은 녹색이 곧 생명이며 그 구원이라는 것을 뜻한다,그 녹색이, 생명의 원천인 자연이 죽어가고 있는 현장을 본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녹지의 걷잡을 수 없는 도시화는 물론 골프장 등 산림의 난개발로 수십 년 된 나무가 잘려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구호가 왜 그리도 허황된 말로 들리는지. 자동차 한 대가 한 달 동안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일 년에 8백 그루 이상의 잣나무를 심어야 한다니 오랜 세월을 우리와 함께 산 나무들의 그 주검이 어찌 예사로 보이겠는가.온실가스 배출 그 공해를 줄이기 위한 답은 처음부터 있었다. 나무가, 숲이, 자연이 그 그을음을 정화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것,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 이룬 저 숲이 바로 녹색 생명, 산소 탱크라는 사실.모든 나무는 인간이 해치지 않는 한 인간보다 몇 배 더 긴 시간을 이 지구에 머물면서 묵묵히 지구를 정화할 것이다. 마을의 한 그루 정자나무는 수백 년 동안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됐음은 물론 그 마을 사람들의 삶을 정화하는 신목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수백 년 나이의 고목들이 터널을 이룬 파리 등 유럽 여러 도시의 가로수 거리를 생각한다. 청주의 관문인 플라타너스 터널 길을 지나면서 그 가로수를 지켜낸 이들의 위대한 승리를 생각한다. 무더운 도시라는 오명을 안고 있던 대구가 푸른 도시 가꾸기로 온도를 낮춘, 담 없는 건물들과 하나가 된 근린공원이며 가로수길 등 도시의 그 숲을 걸으며 놀라고 놀란다. 경주의 보문단지 가로수 길을 차로 달리면서 새삼스레 고도의 자연을 예찬한다.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 벚나무 아치로 도심 속의 숲을 가진 진해하동 등 가로수 터널을 가진 도시들을 지날 때마다 그 속에 사는 시민들이 달리 보였다.그러나 이 겨울 터널은커녕 가지들이 모두 뭉툭 잘려나간 채 그 나무줄기만 앙상한 고목 가로수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녹색 성장에 역행하는 검은 그을음 살리기를 저지르고 있는 여러 도시의 가로수 관리를 고발한다. 고목 한 그루가 전봇대 수십만 개보다 몇 배 더 효용가치가 크다는 것을 그들은 정말 모르는 것인가. 나무들이 그 수난 속에서도 저처럼 거대한 고목이 될 때까지 전깃줄을 땅 속에 묻을 생각도 못한 관리들의 그 무능을 나무의 이름으로 성토한다.지구 기후 변화의 주범, 온실 가스 배출 피해를 줄이는 가장 가까운 길, 산과 물이 도심으로 들어와 하나가 되는, 도시의 숲, 가로수 터널로 녹색도시를 디자인하자./전상국(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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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12.25 23:02

[금요칼럼] 해가 바뀔 때면 드는 생각 - 윤방부

필자가 제일 싫어하는 글은 마치 수도사 같고, 설교투의 글이다. 참으로 역겹게 느끼는 것 중의 하나다. 그러나 이번 글은 바로 이런 류의 칼럼이라서 독자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그러나 한번쯤은 이해하기를 바라며.미국유학시절 미네소타 대학에서 전문의 과정을 보낼 때 이야기다. 병원의 입원환자를 보면서 깜짝깜짝 놀란 것은 한국사람이 꽤 많다고 느끼는 것이다, 회진할 때 누워있는 환자가 영락없는 한국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한국말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소위 Native American(미국 원주민)이라고 불리는 인디언들이었다. 정말 너무나 똑같이 생겼다. 가끔 병원 백인의사친구들이 나를 Are you native American? 이라고 물을 정도였다. 인디안 마을에 관광을 가서 보니 우리나라의 풍습과 비슷한 게 너무나 많은 것이었다.아메리카 인디언들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이 아닌 달'이라고 부른다. 11월이면 나뭇잎도 떨어지고 싱싱하던 자연의 모든 생명 현상들이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때를 가리켜 '모두 다 사라진 것이 아닌 달'이라고 부른다니 참 재미있다.우리는 해가 바뀔 때가 되면, 지난 일년의 시간이 다 지나가버렸다고 생각한다. 이미 흘러간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 과거가 모두 지나가 버렸다고 말하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은 정말 그저 흘러가 버리기만 하는 것일까?우리가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 뿐, 시간은 분명 무언가를 남기고 간다. 아름다운 추억, 슬픈 기억, 아쉬움, 새로운 희망을 뿌려놓고 간다. 오늘이 없는 내일이 없듯이, 지난 일년의 다사다난했던 일들이 없다면 다가 올 새해의 꿈도 없는 것이다. 나뭇잎이 떨어진 앙상한 숲은 보면서도 그 속에서 지난 시간의 의미를 찾아내고, 다가 올 봄의 새싹을 미리 내다볼 줄 알았던 지혜로운 인디언들처럼, 시간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도 좀 더 겸허해지면 좋겠다.언제부턴가 나는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계획이나 희망을 세우기 전에 현재 내게 남아있는 것들을 먼저 돌아보게 된다. 한때는 나도 현재의 나를 돌아보기 전에 내일의 나를 꿈꾸는 일에 바빴다. '새해에는 이런 일을 해야지', '새해에는 꼭 이걸 이루어야겠다' 등등 무언가는 채우고, 더하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보니, 현재 내가 가진 것보다 앞으로 내가 가지고 싶은 것들이 눈에 더 띄었다. 집도 필요하고 차도 필요하고, 승진도 해야 하고 자꾸만 내게 부족한 것들을 먼저 생각했다.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일보다,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진정으로 아끼고 살아가는 일이 더 힘들다는 걸 알게 되었다.그래서 요즘은 해가 바뀔 때마다 이런 생각들을 해본다. 지난 한 해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이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며 살았을까? 지금 내가 가진 것들 중에 버려 할 것은 무언일까? 이런 생각들을 곰곰이 하다 보면 떠오르는 새해의 태양 앞에 아직도 남아있는 나의 욕심이 부끄러워질 때도 있다.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간다. GAMZU YAVOR - This too shall pass!!벌써 2009년도 지나가는구나!새옹지마 - 새처럼 옹졸하게 지랄하지 마라!Spero Spera - 숨 쉬는 한 희망은 있다!이해인 시인의 "한 해를 뒤로 보내며" 몇 구절을 옮기며.한 해를 뒤로 보내며 / 이해인우리가 가장 믿어야 할 이들의무책임과 불성실과 끝없는 욕심으로집이 무너지고 마음마저 무너져 슬펐던 한 해한 해의 마지막 달인12월의 달력을 바라보는 제 마음엔초조하고 불안한 그림자가 덮쳐옵니다.연초에 세웠던 계획은 실천했나요?사랑과 기도의 삶은 뿌리를 내렸나요?감사를 잊고 살진 않았나요?남에겐 좋은 말도 많이 하고더러는 좋은 일도 했지만바쁜 것을 핑계로일상의 기쁨들을 놓치고 살며혼자서도 얼굴을 붉히는 제게조금만 더 용기를 주십시오다시 시작할 지혜를 주십시오.한 해를 돌아보는 길 위에서저녁놀을 바라보는 겸허함으로 /윤방부(가천의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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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12.18 23:02

[금요칼럼] 대한민국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 전용배

고교시절 기억하나.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몇 년 앞두고 스포츠시설물에 대한 경비가 강화되던 시절. 이러한 상황을 모르고, 시민운동장 담을 넘어 봄 정취를 사진에 담고자 했던 필자는 경비에 발각되어 영문도 모른 채 경찰서 보안과에 넘겨졌다. 어린고교생에게 고문은 없었지만, 하루꼬박 걸린 담당형사의 모욕적인 수사방식은 지금도 치욕으로 남아있다. 그날 이후 처음으로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굳이 헌법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시장경제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래도 이 나라가 조금은 자랑스러운 것이 1990년대 중반부터는 이러한 원칙이 최소한은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한국정치를 항상 비아냥거리고 난도질하지만 아시아국가 중에서는 민주주의 지수가 1, 2위를 다투고 있다. 오늘 대한민국을 옥죄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후퇴보다 경제적 양극화와 불균형이다. 모든 문제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서울과 지방, 대기업과 중소기업, 거대언론사와 중소언론사, 서울지역대학과 지방대학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지난 정부는 그래도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구호라도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는 구호조차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선진국 운운하는 것은 레토릭에 불과하다.기득권과 거대보수언론사들은 세종시로 일부 정부부처가 옮겨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수도가 분할된다느니, 효율성이 떨어진다느니 하면서 떠들고 있지만 실상은 '서울공화국'이 유지되어야 배를 더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지구상 어느 국가가 수도에 이렇게 국부(國富)가 집중되어 있는지. 미국, 일본, 중국, 유럽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수도와 지방간의 극심한 불균형에 대해 어떤 해답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넘어 한 국가의 모든 명문대학이 한 도시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정상적인 국가인가. 지방 사람들이 기대를 포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지방경제는 오래전부터 근간이 뿌리 채 흔들리고 있다. 최근 들어 지역방송사와 언론사 중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광고가 중요한 수입원이 되는 곳도 있다. 광고할 기업이 지방에는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서울의 거대보수언론사들은 용비어천가만 부르고 있다. '한국경제, 회복속도가 빠르다', '더블 딥, 우리나라와는 상관없다', '올해 플러스성장 가능'등.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어떠한 팩트를 적용시키느냐다. 2009년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호의적으로 추정해서도 0.25%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중국은 9%대이다. 주가, 국민소득, 외환보유고는 참여정부시절보다도 못하다. 반면에 외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부패지수와 개인의 자유도는 매년 추락하고 있다. 그렇다면 연 평균 경제성장률 4.4% 기록한 참여정부를 '경제파탄 정부',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한 집권당과 거대보수언론은 지금의 정부를 어떻게 규정해야 옳은가. 국어사전에서는 '적절한 용어'를 찾기가 힘들 것이다.참여정부가 고성장 했다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그때도 서민들의 삶은 팍팍했고 힘들었다. 그래도 참여정부는 실천은 못했지만, 추구하는 지향점이 있었다.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한 흔적이 있었다. 현 정부는 조금은 솔직해져야 한다. '서울공화국'의 기득권을 지켜주지 않으면, 정권유지가 어렵다고. 거대보수언론사의 눈 밖에 나면 정권재창출이 안된다고. 비록 지금은 여러 가지 역학구도 상, 지방민이 단결하기 힘들지만 언제까지 침묵할지는 알 수 없다. 국가마저 자본과 기득권의 논리에 지배된다면, 국민들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지방민은 영원한 3류 국민인가.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전용배(동명대 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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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12.11 23:02

[금요칼럼] 실용정부와 녹색성장 정부 - 한정호

정부나 회사나 할 것 없이 모든 조직체는 좋은 정체성 (Identity)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가 일 잘하고 회사가 돈 잘 벌면 되지 무슨 정체성이 필요하냐고 반문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의 조직체 경영에 있어 정체성은 필수불가결하다. 우리는 무엇하는 사람들이며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해 창조적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조직은 저마다의 역사와 개성과 문화가 있기 미련이며 이를 반죽시킨 것이 정체성이다. 정체성이 없으면 조직은 오래가지 못하고 힘을 극대화 시키기 힘들다. 좋은 조직은 자기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조직원들을 담합시키며 환경에 반응한다.조직체 정체성의 전문가인 로렌스 애커먼은 좋은 조직체의 정체성을 위한 7가지 조건을 설명한다. 첫째는 실존성이다. 조직체는 마치 사람 같아서 스스로에게 삶의 의미가 주어져야 한다. 나름대로의 조직의 존재가치를 추구해야 이 문제가 풀린다. 둘째는 개별성이다. 다른 조직체와 달라야 한다. 사람도 모두 다르듯이 조직도 자기 만의 특색을 가져야 한다. 셋째는 일관성이다. 창업이나 출범 때부터 해서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설명할 수 있는 일관성이 필요하다. 아무리 조직체가 변해도 면면이 이어지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넷째는 의지이다. 정체성은 앞으로 이 조직체가 무엇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일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는 가능성이다. 좋은 조직체의 정체성은 가능성을 내포한다. 사실 정체성 자체가 미래지향적이다. 여섯째는 관계성이다. 정체성에 의해 조직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다르게 설정이 되어야 한다. 조직체가 좋은 정체성을 가지면 아래, 위, 옆의 구성원들이 새로운 관계 속에서 만난다. 마지막은 이해성이다. 조직체의 정체성이 남에게 쉽게 이해되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정체성도 너무 복잡하거나 애매해서 이해가 잘 되지 않으면 실패한다.뚜렷하고도 좋은 조직체의 정체성은 조직체 관리의 효율성을 최대화시킨다. 인사, 행정, 재무, 기획의 여러 정책들이 흩어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며 정책과 행동에 대한 설명을 명백하게 해준다. 정체성이라는 구심점이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뻗어나갈 수 있으며 그렇게 해도 궤를 벗어나지 않는다.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쉽게 나타낼 수 있다.정부의 경우 정체성은 한 정권이 다른 정권과 달리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궁극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나를 보여준다. 그 정권다운 특성으로 목표를 세우고 사람들을 결집하고 색깔을 드러낸다. 정부의 정체성의 정점에는 대통령이 있다. 그의 리더십은 바로 정체성의 발현이다. 대통령이 행하는 인사, 이벤트, 사업, 발언, 정책, 대화 모든 것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나타난다. 좋은 정체성을 가지는 것은 그러한 것들이 하나의 궤를 가지는 것이다. 이제 MB정부는 4대강 살리기, 세종도시, 자원외교, G20 회의, 녹색 성장, 서민정책 등 수 많은 사업들을 계획, 추진하려고 한다. 국민들에게 이 모든 것을 잇는 무언가의 축이 느껴져야 한다. 그 축이 무언지 굳이 이름을 붙일 필요는 없다. 좋은 정체성을 가지면 자연스레 정체성을 설명하는 이름이 붙여지게 마련이다. 문제는 그러한 뚜렷한 정체성이 대통령의 머리와 마음 속에 있는가하는 것이다.MB 정부는 스스로를 실용정부라고 부르고 이를 정부의 정체성으로 주장하며 자기변호를 열심히 했다. 아마도 과거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 상응하는 정부의 정체성 이름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정체성으로 그 정부의 이름을 불러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MB 정부는 스스로를 실용정부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거리낄 필요는 없다. 실용정부는 괜찮은 이름이다. 이대통령의 성격과 잘 어울린다. 실용주의의 철학은 이념적이거나 형식적인 것으로 부터의 탈피를 강조하고 실제 (practice)적 성과를 강조하는 이른바 존듀이의 실용주의 (pragmatism) 노선을 따르는 것인데 실용정부는 이러한 정신을 높이 사는 것으로 설명하면 된다. 그러나 실용정부에서 말하는 실용은 스타일이지 정체성은 아니다. 이 대통령이 자신의 정부를 실용정부라고 말하는 것은 좋으나 자신의 통치의 정체성을 실용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도데체 실용이라는 축으로 지금과 미래의 사업과 정책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그런 면에서 MB정부의 정체성은 차라리 녹색성장정부로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비록 외교나 국방, 안보면에서 설명력이 떨어지나 사업과 정책의 중점을 환경과 인간을 강조하는 질적성장으로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실용정부보다는 훨씬 나은 정권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다만 녹색성장의 의미를 더욱 구체적으로, 더 이상적으로 밝히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서민을 중요시 여기는 인본주의와 과학기술에 바탕한 환경주의. "나는 한국적 녹색성장의 주춧돌을 놓는 사람"이라는 개인적 정체성이 "실용주의 정부의 책임자"보다 더 낫다고 본다. 이제집권 2년이 되어 가는 마당에 굳이 정권의 이름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실용주의 정부는 MB정부의 일하는 스타일을 명명하는 것으로 역할이 충분하다. 대통령의 머리와 마음 속에 자신 있게 형성한 정체성이 있으면 된다. 그 정체성이 성공적인 것이면 이 정부가 끝날 때 쯤 멋있는 이름을 언론들이 붙여줄 것이다. 현재까지 내 놓은 것으로는 "녹색성장정부"가 제일 좋다./한정호(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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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12.0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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