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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소비주의의 천국

자본주의 제도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본주의와 부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즉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비하여 제도적으로 우월하다거나,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부를 보장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우월성과 함께 부를 지배가치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함의 가치나 자본주의 이외의 가치에는 크게 무게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학문적으로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가 우월의 관계가 아니라 제도적으로 보완의 관계이다.가령 물질 자본주의의 절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소비주의, 소비만능이 불러오는 다양한 계급적 갈등의 문제나 자원고갈, 생태학적 이슈들은 우리들에게 자본주의의 제도적 보완을 적극적으로 요구한다. 그리고 물질 중심의 가치가 생산해온 풍요와 함께 상대적으로 증대한 낭비의 이슈가 그러하다. 쓰레기통의 문명, 쓰레기통의 사회학으로도 표현되는 낭비의 문제는 이제 "소비는 허락하지만 무엇을 버리는가는 자유롭지 않다"고 표현될 정도로 사회학적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즉 쓰레기통이 도덕적 이슈가 된 것이다.뚱뚱한 몸매와 날씬한 몸매 사이에는 체격의 차이와 몸무게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부여하는 가치의 차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무엇이 그렇게 만든 것일까? 단순히 인식의 차이인가, 아니면 강박관념인가? 육체는 정신에 봉사하도록 설계된 신학적 가치는 거꾸로 사람은 육체에 봉사하여야 한다는 조항으로 바뀐 듯하다. 모두가 날씬해지기 위하여, 흉하게 보이지 않기 위하여 육체관리인으로 변한다. 그리고 육체를 관리해주는 의사는 오늘날 흡사 성직자의 지위를 누린다. 육신소비주의의 절정인 것이다.통계적으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육체를 관리하는 것보다 아름다움을 위하여 육신을 관리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다. 통통함과 뚱뚱함이 미학적으로 아름다움의 표상으로 인식되던 시대도 엄연히 존재해왔다. 고대의 상징적 인체 조각상들이나 회화작품들은 대부분 통통하거나 뚱뚱하다. 다산의 상징도 있지만 메마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하여 건장하고 통통한 인간미를 가꾸어왔다. 오늘날 이러한 미적 가치는 완전히 어불성설이 되었다. 미를 위하여 생사에까지 모험을 거는 의학적 시술이 성행하는가 하면 그 후유증이 사회문제가 되지만 미를 위한 모험심은 그치지 않는다.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하층계급과 유복한 계층 사이에는 육체와 의료서비스에 대하여 차이가 있음을 강조한다. 가령 의약품의 절반은 보험의 가입 없이도 구입할 수 있지만 질 높은 건강을 위해서는 보험이 반드시 적용되는 의사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의료의 실재 효과보다는 의사를 만난다는 의식적이고 공회적인 소비가 행해진다고 본다. 그러므로 서민은 약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이고 유복한 계층에서는 의사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사와 약은 치료기능보다 심리학적이고 문화로서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늑대소년이 나타난 것은 소년이 늑대들과 함께 생활하여 마침내 늑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늑대들이 하는 행동을 배웠고, 늑대가 생존하기 위한 온갖 기능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늑대소년은 사람모습을 하였지만 사실은 늑대로 변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났어도 사람의 짓을 배우지 못하면 불행하지만 사람이 아닌 것이다.오늘날 사람들을 스스로를 소비인간, 또는 소비형 인간으로 부른다. 상품에 둘러싸여 상품과 함께 생활한 끝에 마침내 상품화 된 소비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인간이 사람에 둘러싸여 살지 않고 상품에 둘러싸임으로써 물질인간이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생태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상품중심, 소비사회는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키는 것은 물론 풍부함이 주는 물질의 마력으로 인하여 본질이 훼손되는 가치의 역전이 심각하다. 과잉의 누적, 아름다운 희소성의 소멸, 호화로운 꿈의 나라의 등장 등은 경전에 묘사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 아니라 상표와 지폐가 난무하는 소비의 마당이 된 것이다./ 이용우(광주비엔날레 상임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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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9.17 23:02

[금요칼럼] 특권층이 아닌 당신 자녀의 미래는?

필자의 어린 시절 자녀가 공부를 잘하면 사법고시 합격이 많은 부모들의 간절한 소원이었 다. 아버지가 장기간 실업자이셨던 가난했던 우리 형제들도 그런 꿈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의사가 되는 길을 택했지만 둘째형이 사법고시에 합격함으로써 그 꿈을 이루었다. 시집와서 이십여년 간 자식들 먹여 살리기 위해 온몸을 바쳐야 했던 어머니를 친척들이 처음으로 부러워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합격은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서민의 자녀가 신분상승하는 가장 확실한 통로이기도 하다.지금 서민들의 그 꿈이 흔들리고 있다. 둘째형이 지금 고등학생이라면 법관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우선 법대에 들어가려면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로스쿨에 들어가야 하는데 로스쿨은 3년에 학비만 해도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당시 대학 입학금부터 친척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둘째형이라면 법관의 길을 조용히 포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사회가 선진화한다는 것은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도리어 이런 측면에서 후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중산층의 일부가 빈곤층으로 내려가고 빈부의 격차는 심화되는데, 빈부의 격차는 학력의 격차로 이어져 계층의 세습화와 고착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과거에는 능력있고 성실한 젊은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 기회의 문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이명박정부는 지난달 소위 '공무원 채용제도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 개편안의 핵심은 내년부터 5급 신규 공무원의 30%를 민간 전문가 가운데서 뽑고 이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2015년부터는 신규 공무원의 절반을 전문가로 채우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시험 방식도 현행 필기시험 위주의 고시가 아닌, 서류전형과 면접만으로 합격자를 가리도록 하는데 학위 및 자격증 소지자나 전문분야 경력자를 우대하기로 했다는 것이다.문제는 서류전형과 면접만으로 뽑는 채용 방식이 '가진 자'에게 절대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학위와 자격증을 만들어서 만반의 준비를 마쳐 서류 전형을 쉽게 통과할 것이고. 온갖 연줄을 이용해서, 면접에서 어떤 것을 주로 물어보는 지 정보를 얻어낼 것이고, 그들이 요구하는 조건을 만들어나갈 것이다.이번 유명환 장관 딸의 외교부 특채 사건은 많은 국민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처럼 응시 조건과 심사위원 선정과 심사과정까지 불법과 탈법으로 얼룩진 경우는 예외라 하더라도 아무리 공정하게 이 제도를 운영한다 하더라도 그 경쟁은 처음부터 불공정한 것이다.전문가를 우대해서 뽑는다고 하면서 학위를 강조하는데 대학 입학해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십여년을 돈을 벌기는커녕 억대의 돈을 써야 하는데 합격할 확률이 극히 낮은 그 기회를 바라고 장기간 투자를 서민들이 할수 있겠는가? 당장 낮은 급여의 일자리라도 얻어서 푼돈이라도 벌어야 하는 서민들에게 장기간의 투자가 필요한 특채는 '당신들만의 잔치'가 될 것이다.문제는 서민들 자녀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불공정 경쟁이 대학입시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대학에 입학하던 70년대에는 오로지 입학시험 하나로 합격을 결정했다. 교과서와 참고서 열 권 정도를 열심히 공부하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고 대학마다 다양한 입학전형을 도입하고 있다. 입학 사정 방식을 다양화할수록 서민들의 자녀는 절대로 불리해진다. 강남의 '있는 집' 자녀들은 '스펙'을 쌓기 위해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외국에 나가서 일이년씩 어학연수를 하기도 하고 방학동안에 수백만원씩 들여서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국제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따라서 입학사정관들 앞에 서면 자기의 온갖 다양한 국제경험에 대해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골에서 책만 읽다가 올라 온 죄 없고 눈 맑은 청소년들은 빈약한 자기 경험 때문에 면접서류에 '글로벌 시대에 부적합한 아이'로 분류가 되어 불합격의 쓴 잔을 받게 될 것이다.그럼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우선 국가의 특별교육기금을 통해 폭넓은 장학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서 가난한 아이들도 능력만 있으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길을 확보해줘야 한다. 만약 로스쿨이 꼭 필요한 제도라면 로스쿨의 30% 정도는 전액 장학금 제도를 만들어서 오로지 공부만 잘해도 로스쿨을 졸업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 그래야 가난한 서민의 자녀도 법관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우리나라 특권층은 소수일 수밖에 없다. 특권층이 아닌 서민들이 희망을 갖는 사회가 밝고 바람직한 사회이다. '공무원 채용제도 선진화 방안'이 그들만을 위한 선진화가 되지 않도록 특채 제도를 폐지하거나 극히 제한하여 더 이상 특권층만을 위한 선진화방안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서홍관(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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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9.10 23:02

[금요칼럼] 정부정책 수립과정의 투명성 중요 - 정진승

최근 대통령은 사회통합의 근본은 소통이며 통합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면서 같이 가는 것이라면서 국무위원들이 소관업무의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소통을 강화해야 함을 강조한 바 있으며 청와대 고위층도 정책성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갈등관리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총리지명자는 소통과 통합의 아이콘이 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한 바 있다. 이러한 발언들은 우리나라의 고위공직자들이 정부정책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현재 심각한 수준임을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앞으로는 정부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다양한 이해당사자들과 충분한 협의를 통하여 사회적 갈등의 사전예방에 노력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우리는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경우 길거리의 법질서가 무시되고 이웃 간의 반목으로 지역공동체가 붕괴되는 현상을 목격하였을 뿐 만 아니라 정부가 수립한 정책의 추진이 수년간 지연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책의 수립 자체가 어려워지는 사례가 발생하는 상황을 경험한 바 있다. 과거의 예를 들어 보자. 서울-부산 간 경부고속철도의 건설을 둘러싼 천성산 터널 공사가 일부 환경단체와 종교계의 반대로 지연되면서 발생하는 사회적비용은 1년에 약 2조 5천여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문기관은 추정한 바 있다, 이외에도 부안의 핵폐기물 매립지 건설, 평택 미군기지 이전, 임진강 유역 홍수방지를 위한 한탄강댐 건설, 4대강 대책, 세종시 이전, 용산 참사 등등 나열하기 조차 어려운 많은 사례들이 사회적인 갈등으로 정책이 확정된 이후에도 상당기간 동안 추진이 지연되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발생한 예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교육문제, 남북한 관계, 국민연금 문제 등 국가적으로 필요한 장기대책의 수립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는 사회적인 갈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인 갈등으로 인하여 우리사회가 지불하는 보이지 않는 비용은 천문학적인 금액에 달할 것이며 상호 신뢰성의 상실과 반목으로 인한 보이지 않는 손실은 국가의 장래를 매우 어렵게 하고 있다. 실제로 전국경제인 연합회가 국내의 600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조산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87%가 우리나라의 사회적인 갈등이 매우 심각하다고 답변하여 사회적인 갈등이 기업의 경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사회갈등지수는 OECD 국가중 매우 심각한 수준이며 사회적인 갈등의 해결이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주장한다.우리나라 사회적 갈등에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정책갈등의 원인 제공자는 정부이다. 따라서 정책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수립 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경제개발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한 약 50년 전에 일부 공무원과 관변학자 등 소수의 전문가들에 의한 국가 정책수립과 추진이 가능했던 이유는 경제규모가 매우 적은 반면 정부가 대부분의 자금과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기관이었을 뿐 만 아니라 국민들은 빈곤의 해결을 위하여 정부정책에 부분적인 불만이 있어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제규모 크게 늘어나고, 기업의 전문성과 역할이 확대되고 민주화가 진전된 상황에서는 정부의 정책수립 과정도 변화되어져야 한다.정책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책수립 과정의 투명성이 매우 중요하다. 투명한 정책수립 과정은 사회의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정책에 관한 논의에 초대되어 필요한 경우 자신들의 의견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는 절차를 의미한다. 정책수립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의 참여는 공무원들이 갖고 있지 않은 전문적인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서 정책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기여한다. 동시에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한 이해당사자들은 정책의 필요성과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파악할 기회를 갖게 되며, 정책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하여 자신들이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를 인지함으로서 정책의 효과적인 추진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투명성은 정책의 성과가 일부 특정 이해당사자, 또는 지역에 편중되는 우려를 해소할 수 있으며 동시에 공무원의 부패를 방지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투명성은 정책갈등을 사전적으로 예방하는 중요한 기능이 있다.만약 정책수립 과정의 투명성이 실현되지 못하고 정부, 또는 일부 힘 있는 이해당사자의 주장에 따라 정책이 수립될 경우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퇴보되고, 사회적인 갈등은 지속적으로 발생될 것이 우려된다./ 정진승(APEC기후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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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8.27 23:02

[금요칼럼]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 - 이용우

우리는 사람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도 읽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음은 반드시 보인다. 마음속으로 결심하지 않고 행동에 옮기는 일이 있는가. 그러니 하는 짓을 보면 당연히 마음이 보이는 것이다.전기는 보이지 않지만 밝은 전등을 통하여 전기의 존재는 보인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나무 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아 바람의 존재를 안다. 사랑은 보이지 않지만 사랑하는 자를 통하여 사랑을 느끼고, 그리움은 보이지 않지만 그 것이 얼마나 뼈 속 깊이 파고드는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우리 모두가 안다.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사이에는 인식의 차이가 존재한다. 현미경이 발명되기 전까지 인간은 미생물의 존재를 몰랐으며, 박테리아도 몰랐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없다고 말하던 인간의 태도는 상당한 수정을 요구받게 되었고, 그러한 편견은 무지에서 온다는 사실도 인정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물론 과학의 공이 크다. 반대로 과학의 재앙도 엄청난 것처럼.신, 또는 절대자의 존재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존재영역이 과학이 아니라 철학적 논쟁에 속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믿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인간의 모순이 속속 드러나면서 신의 존재조차도 단언키 어려워졌다. 그 동안 사람들은 신상(神像)을 대형화하고 숭배하면서 종교적 교의를 키워왔다. 부처의 크기가 상상을 초월 할 만큼 커지는가 하면 십자가의 크기도 하늘을 찌른다. 이슬람이나 힌두교 사원의 크기, 교회의 크기, 사찰의 크기는 각 종교의 위력을 상징하는 것처럼 되어 간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하게 말해 종교라기보다는 각 종파들이 벌이는 키 재기이다. 종교와 종파의 차이는 엄청나다.종교라는 religion은 re+ligion 으로 "다시 연결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뭔가 끊어지고 상실한 것으로부터 다시 연결하고 되찾아서 돌아간다는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상실한 것이 무엇 이길래 다시 연결해야 하는 것일까? 한자로 종(宗)은 갓머리 변에 보여줄 시(示)가 합한 말이다. 즉 머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으뜸이나 우두머리를 보여주는 것이 종교라면 아마도 절대존재나 절대가치 등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가르쳐 다시 연결시키는 목적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의 종교들은 신의, 부처의, 기타 절대존재의 궁극을 보여주려 노력도 하지만 외형적으로 양적 팽창에 주력해온 것도 사실이다. 목적과 가치, 방법론이 섞여 있는 것이다.사람들이 사는 주거양식이나 사무실, 기념비적 건축물 등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건축물들은 좋은 것, 부족한 것, 나쁜 것 등이 마구 섞여 있다. 쓸모 없거나 아름답지 못한 건축물들은 사람들의 눈에 난 뒤 하나 둘 씩 철거된다. 좋은 건축물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역사 속에 고스란히 보존된다. 그러므로 건축물을 보존하는 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사람이 아니라 역사인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의 예술작품은 우리가 보존하고 복원하는 것처럼 인식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들의 위대한 예술성이 스스로를 복원하고 보존하게 한다. 그러므로 생은 질에 대한 판단이다.우리는 지금까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과의 차이에서 무와 유를 결정지어왔다. 그러나 무란 없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란 사실이 더 맞을 것이다. 처음부터 무가 존재하였다면 유와 무는 영원한 이원론적 개념이 될 것이다. 마치 선과 악이 영원히 평행선을 긋는 이원론적 존재이기 때문에 세상은, 인간은 선과 악의 치유불가능의 갈등 속에 영원히 존재한다는 전제와 같은 것과 같다. 지금까지 철학과 과학은 영원한 평행선을 그려왔으며, 하나는 이념으나 방법론으로, 다른 하나는 실증학문으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철학적 논증과 과학적 실증을 거치지 않은 진리가 존재하는가?인류의 달 탐험은 철학적 논리와 과학적 실증이 만들어 낸 위대한 가치이다. 상상력과 가설이 입증되려면 과학적 방법론이 동원되듯 우리들의 삶도 생각을 실천시킬 몸이 필요한 것이다. 예술은 이러한 두 원인과 결과적 등가물이다. 위대한 예술, 예술가일수록 철학과 과학 사이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능력을 지닌 자들이다. 우리시대의 진정한 성상은 이 두 가지의 유연한 결합에 있다. 그것이 진정한 종교이자 예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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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8.20 23:02

[금요칼럼] 젊은이들을 자살로부터 구하라 - 서홍관

한 나라의 건강 문제를 알아볼 때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지표는 사망자료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 수준을 높이고자 하면 가장 먼저 우리나라 국민의 사망원인을 알아보고 사망원인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그런데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의 사망원인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십대, 이십대, 삼십대 사망원인 1위는 모두 자살이다. 결국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살이며,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자살은 오래도록 십대 사망원인 2위를 차지했으나 2008년부터 1위로 뛰어 올랐다. 조사에 의하면 15-24세 청소년의 8.9%는 지난 1년 동안 한번 이상 자살을 생각했다고 한다. 이들이 자살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15-19세는 51%가 성적과 진학문제였고 13.6%는 외로움과 고독을 꼽았으며, 10.1%는 가정불화, 8.8%는 경제적 어려움, 6.6%는 친구불화였다. 이에 반해 20-24세는 22.6%가 직장문제, 21.8%가 외로움과 고독, 18.5%가 경제적 어려움을 꼽았다. 요약한다면 십대 청소년의 고통은 학업 스트레스가 가장 중요하며, 20대가 되면 취업의 고통이 가장 크다고 말할 수 있겠다.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거의 한가지다. 가정이든 학교든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것인데, 부모와 학교 모두 만족할만큼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1%도 안 될 것이다. 더구나 그 1% 학생도 실은 그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을 게 틀림없다.필자도 기억난다. 고 3 가을, 대학입시에 실패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 때 자살을 떠올리며 두려워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자살을 생각한다고 해서 자살을 다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학교가 지금은 마치 질 낮은 입시학원으로 전락했지만 청소년 시기에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간도 물론 확보해야 하고, 자살이나 흡연, 음주, 성 문제를 토론하는 시간도 필수교과 과정으로 확보해야 한다.청소년 자살이 안타까운 이유는 이들이 아직도 인생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겪는 스트레스와 고통이 실은 전체 인생에서 극히 일시적인 일이며 언젠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괴테도 젊은 날 실연을 겪었고 자살의 충동에 시달렸지만 그 고통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책을 썼고 소설의 주인공은 자살했지만 괴테는 살아남아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질 수 있었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실연당했을 때 그게 인생의 마지막이며 자신은 절망에 빠졌다고 굳게 믿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인생이 그게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충동적 자살로부터 보호해야 한다.자살을 막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유명연예인들이 자살했을 때 우리나라 언론들은 온정주의로 일관한다. 자살이 결코 바람직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동료 연예인이나 가족들의 말을 인용하여 한결같이 "고통없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지내라"는 눈물겨운 메시지를 전하거나 아니면 "오죽 힘들었으면 자살했겠느냐"는 식으로 동정 여론으로 몰아간다.결국 이러한 보도는 앞으로 남은 인생이 얼마나 긴지, 그리고 지금의 고통이 매우 순간적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이 길고 긴 고통을 한번에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게 한다.또한 청소년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적 제도망으로서는 생명의 전화나 희망의 전화와 같은 마지막 라인을 남겨두어서 그들이 자살을 결심할 때 마지막으로 매달릴 곳을 확보해주어야 한다.가족의 사랑이 소중하다는 것은 누구라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청소년이 자살하면 그 부모는 한결같이 "다시 살아오기만 한다면 이젠 공부 이야기하지 않고 잘해주고 싶다"고 말하는데 이미 자녀는 떠나가고 없다. 어린 시절부터 만들어진 가족과의 애착은 청소년 시절의 방황을 다 막진 못하지만 방황의 시간을 줄일 것이고, 방황의 범위를 좁힐 것이고 자살의 충동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필자도 자녀들이 십대일 때 자녀들과 대화하는 것이 항상 낯설고 어려웠다. 그러나 그나마 아이들과 함께 여행도 가고 아이들 방에 가서 만난 것이 없었던 것보다는 나았다고 생각한다.자살은 그만큼 두려운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 아무도 나를 이 고통에서 구해줄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생명의 끈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지구상에 단 한명이라도 나를 사랑하고 구해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젊은이들이 자살을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한명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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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8.13 23:02

[금요칼럼] 위험하고 불안한 한나라당 승리 - 김형준

6?2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던 한나라당이 7?28 재보궐선거에서 압승했다. 한나라당은 예상을 깨고 8곳 중 5곳에서 승리했다. 더욱이, 이번 선거의 최대 승부처인 서울 은평을과 충북 충주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과 윤진식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야권 단일후보를 상대로 큰 표 차로 승리했다. 여하튼 이번 재보선 결과로 그동안 한국 선거를 지배했던 몇 가지 통념이 깨졌다. 우선, '재보선은 여당의 무덤'이라는 등식이 무너졌다. 2002년 6월 지방선거 완패했던 여당인 새천년 민주당은 이어진 8월의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13곳 중 11곳에서 패배했다. 또한, 노무현 참여 정부 당시 여당이 22곳의 재보선 중 한 곳도 이기지 못한 것과 비교한다면 한나라당의 압승은 이변임에 틀림없다. 둘째, 투표율이 놓으면 야당에게 유리하다는 '투표율 법칙'도 깨졌다. 이번에도 35% 이상의 투표율이 나오면 야당인 민주당 후보가 유리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은평을(40.5%)과 충주(43.6%) 등은 40%대 투표율을 기록했음에도 한나라당 후보가 압승을 거뒀다. 셋째, 야권 후보 단일화의 위력도 약해졌다. 투표일을 각각 2, 3일 앞두고 은평을과 충주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가 이뤄졌지만 결과는 야당의 참패였다. 넷째, 재보궐 선거에서는 '정권심판론'이 '지역 일꾼론'을 압도한다는 법칙이 깨졌다. 다섯째, 지역주의에 기반 한 텃밭 개념도 요동쳤다. 한나라당이 그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던 충청권에서 교두보를 확보했고, 민주당 소속 송영길 인천시장의 지역구였던 인천 계양을에서도 승리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꼽히는 강원도에서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광재 후보를 도지사로 당선시킨 데 이어, 3곳 중 2곳을 챙기며 기반을 넓혔다. 아무튼 이번 재보선 결과로 왕의 남자는 화려하게 귀환했으며, 민주당의 '56일천하'는 쓸쓸히 막을 내렸다. 이런 선거 결과를 놓고 '민심이 두 달 만에 바뀌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민심이 변한 이유로 '민주당이 지방선거 압승이후 승리에 도취되어 오만하고 안이한 공천을 했기 때문이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야권 후보 단일화만 이뤄지면 여당에서 누가 나와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만이 치명적인 패인이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 대표조차 재보선 패배와 관련해 "지도부의 안이한 공천에 큰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민심이 진짜 바뀌었는가? 그렇지 않다. 민심이 바뀐 것은 없다. 반대로 민심은 일관되게 오만하고 독선적인 권력을 심판하고 견제했다. 다만 그 대상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재보선 결과는 한나라당의 '위험하고 불안한 승리'라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의 쇄신 의지가 쇠퇴하고, 친이계가 파편화되며, 친이-친박간의 '파국적 균형'이 가속화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당장 예상밖의 승리로 7ㆍ28 재보선 이전에 내놓은 한나라당의 쇄신 약속이 흐지부지되는 분위기다. 한나라당 쇄신의 시금석이라 할 수 있는 계파 해체가 용두사미로 끝날 전망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명박 정권의 2인자'인 이재오 의원의 복귀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친이계를 마치 자석처럼 끌어당기며 결집시킬 개연성이 크다"고 전망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날 수 있다. 오히려 친이계는 '이상득-이재오-정두언'의 3각 체제로 재편되어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대립하고 경쟁할 지도 모른다. 당장, 지난 한나라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불거진 권력 농단 문제와 관련해 이재오 당선자가 누구의 손을 들어 주느냐에 따라 여권내 권력지형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다. 한편, 18대 총선 공천 파동의 중심에 있었던 이재오 의원의 귀환으로 친박계의 응집화는 필연적이다. 특히, 이재오계를 중심으로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독자적으로 추진할 경우, 친박계는 이를 '박근혜 죽이기'로 간주하고 거세게 저항할 것이다. 개헌 문제를 잘못 다룰 경우 한나라당의 분당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나라당의 승리가 불안한 이유는 한나라당이기 때문에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임에도 불구하고 승리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승리이후 야당의 오만함과 새로 선출된 야당 출신 광역단체장들, 진보 교육감들의 독선이라는 우연적 요소가 상승 작용해서 얻은 결과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한나라당의 승리는 자신들이 잘해서가 아니라 민주당이 못해서 얻은 반사이익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재보선에서 기대 밖의 성과를 거뒀다고 해서 현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끝난 것은 아니다. 지방선거와 재보선을 통해 확인된 것은 유권자들의 '열정과 환멸의 주기'가 빨라지고 있고,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만약 한나라당이 민심을 오판해 위험하고 불안정한 승리에 도취되어 쇄신과 변화를 멀리하고 또 다시 오만과 독선으로 회귀한다면 어두운 미래를 맞이할 것이다./김형준(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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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8.06 23:02

[금요칼럼] 정확한 기상예보의 필요성 - 정진승

1960년대 영화에서 우리는 일기예보와 관련된 재미있는 화면을 보게 된다. 기상청에 근무하는 사위가 잘못된 일기예보를 따르다가 비에 젖은 옷을 입고 귀가하면서 처갓집 식구들로부터 무안을 당하는 희극적인 내용이다. 반면 작년에 상영된 영화 '해운대'는 지각변동으로 시속 800km의 엄청난 쓰나미가 발생하여 우리나라 최대의 여름휴양지인 부산 해운대에 밀어닥치는 재해를 다룬 공포 영화이다.두 편의 영화를 비교하면서 지난 40여 년 사이에 기상 변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파급효과가 크게 변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60년대의 기상예보는 오늘 출근할 때 우산을 챙기고 가야 하는지 정도의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이었고 예보가 틀려도 단지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면 되는 일이었다. 반면 2000년대의 기후 변화는 '해운대'에서 보듯이 대규모 재해의 원인으로 인식되고 있다.공상영화가 아닌 실제의 상황을 살펴보자.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상 현상으로 2003년의 유럽 폭염은 3만5천여 명의 사망과 16조여 원의 경제적 피해를 입혔으며 2005년 미국 남부지역을 강타한 태풍 '카타리나'는 1천300여 명의 인명피해와 약 148조원의 재산피해를 기록하였다. 지난 2008~2009년 2년 동안 동남아 지역에서는 기상의 돌발적인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로 약 30만 명의 인명이 사망하였으며 이에 따른 경제적인 피해 규모는 약 4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화 '해운대'에 나타나는 재난은 이미 전 세계에서 수시로 발생하면서 수많은 인명 손실과 재산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최근의 국내 상황을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금년 4월까지 예외적인 저온으로 양식장에서는 물고기가 성장이 둔화되어 큰 피해를 주었고 수산물 가격이 상승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또한 초봄의 한파로 과수원에서는 금년 가을 수확량 감소가 예상되면서 농민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지구온난화가 지속될 경우 우리나라의 평균온도가 2050에는 1990년과 비교하여 약 4.0도 상승하여 온대성 기후에서 아열대성 기후로 변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물 부족 현상과 수질오염, 농산물의 병충해 증가와 토양의 황폐화는 물론 건강의 측면에서도 스트레스 증가와 말라리아와 같은 열대 질병이 토착 병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기상의 변화는 재난과 관련된 사항만이 아니다. 국내의 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의 약 50%가 날씨의 변화에 영향을 받고 있다. 이는 전통적으로 기후변화에 영향을 받는 농업, 수산업을 포함한 1차 산업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해운, 항공, 건설, 전기 및 전자, 음료, 섬유, 관광산업 등 제조업과 서비스산업을 포함한 전 산업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안보에까지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기상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기상의 변화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가장 좋은 방법은 원천적으로 기후변화의 발생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지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지진, 홍수를 근본적으로 발생하지 않게 하는 방법은 불가능하다. 또한 정부가 현재 중점적으로 추진 중인 '재난안전관리체계'의 구축은 기후변화로 인한 인명과 재산의 손실이 이미 발생한 이후에 피해를 복구를 위한 제도이기 때문에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추진해야 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기후변화를 사전에 예측하여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대비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기후변화의 예측이 필수적이다.현재 기후예측은 단기예보, 3개월 예보, 6개월 사전예보의 형태로 제공되고 있으나 정확성은 단기예보를 제외하면 30% 수준에 미달하고 지역별로도 세분화되어 있지 못한 형편이다. 만약 정부가 기상예보의 정확성을 약 50% 수준으로 높이기 위하여 기존에 산재해 있는 연구 추진 체계를 재정비하고 기술개발 투자를 합리적인 수준까지 조정한다면 우리나라는 기후변화로 인한 인명과 재산의 피해는 물론 전 산업에 미치는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는 물론 경제성장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정진승(APEC 기후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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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30 23:02

[금요칼럼] 도시는 추억이다 - 이용우

지구촌시대, 정보화시대가 이룩한 최대의 성과는 지리적 경계개념의 소멸이다. 지리학자들은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기술의 무한대 확장으로 사람들은 웹사이트를 통하여 수시로 국경을 넘나들고 있으며, 이러한 습관은 실제로 물리적 국경을 유유히 넘어 관광문화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관광문화야말로 향후 가공할 문화경제를 가능케 하는 요소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그렇다고 국가 간 국경이 실제로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통하여 무시로 넘나들던 습관과 이질 문화에 대한 동경은 과거 그토록 견고하였던 심리적 국경선을 훌륭하게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경개념의 전환이야말로 과거 인종적, 종교적, 계급적 차별을 소멸시키는 촉매제이기도 하다.오늘날 우리가 새로 쓰기 시작한 문화경제라는 용어는 도시문화, 도시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도시는 높은 인구밀도와 자원 과다사용으로 인하여 문제의 중심으로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도시는 오히려 거꾸로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므로 오늘날 도시행정가들은 도시의 규모를 줄이기보다는 도시의 문제점을 줄여가는 방법으로 도시문화를 가꾸어가고 있으며, 그것은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리고 도시의 질을 높이는 방법으로는 건축미학의 활발한 도입이 가장 우선적으로 검토된다는 사실이다.한국 대도시의 건축미는 어떠한가? 도시는 단순히 사람만 많이 사는 곳이 아니다. 도시는 도시를 구성하는 건축물이 결정적이다. 우리가 아름다운 파리를 기억하는 것은 강이나 땅이나 도로가 아니라 도시의 건축물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건축물이 배제된 도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만큼 건축물은 도시의 질을 구성하는 결정적 증거이자 도시에 대한 추억 만들기와 직접 관련이 있다.대다수의 역사적 도시들은 도시형성 초기부터 계획을 만들고 도시가 필요한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축적해왔다. 그러나 한국처럼 식민지시대를 거치고 전쟁을 겪으면서 거의 자연발생적으로 팽창해온 도시들은 건축미학은 고사하고 그 유사한 접근조차 허락되지 않은 채 성장해왔다. 서울은 엄청나게 크지만 크다는 것 이외에 볼 것이 없고, 부산, 대구, 광주 등 지방 도시들도 서울처럼 덩치만 키워왔지 미학적 고려는 전혀 꿈도 꾸지 못하였다. 그야말로 문화적 명소 하나 없이 도시가 진화하고 존재해온 것이다.오늘날 도시미학이나 도시의 질을 논하는 첫째 요건은 건축미와 문화적 명소, 즉 도시를 구성하는 아이콘이다. 건축적 명소는 다수의 문화시설물이 포함된다. 파리의 에펠탑이나 루브르박물관, 퐁피두센터, 런던의 테이트갤러리와 대영박물관, 뉴욕의 구겐하임과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스페인 바스크지역의 빌바오구겐하임 미술관 등이 가장 대표적인 건축적 아이콘이다.그리고 최근에 이러한 문화관광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건축미에 에너지를 쏟아 붓는 지역은 올림픽을 계기로 도시발전을 극대화시키는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지역을 들 수 있다. 중국정부는 기왕 올림픽을 치르면서 다양한 건축적 명소를 만들었다. 미술가이자 건축가인 아이 웨이웨이가 설계한 올림픽주경기장과 스위스의 건축가 헤르조그 드메롱의 수영장, 렘 쿨하스가 설계한 중국 중앙방송인 CCTV건물, 그 밖에 일본 건축가인 안도 타다오와 시게루 반, 아라타 이소자키, 미국의 아이엠 페이와 리베스킨드 등이 남겨놓은 건축물들은 향후 베이징과 상하이의 미래를 명소화 하는 기념비적인 것들이다.아랍 에미레이트의 맏형 격인 아부다비의 경우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하고 있는 아부다비 구겐하임을 비롯하여 루브르박물관까지 유치하여 가히 건축물 천국을 방불케 한다. 작년까지 건축물 붐으로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두바이도 이에 지지 않는다.이제 우리는 도시의 팽창을 경험하면서 도시미학을 가꾸는 건축물의 절대적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해야 한다. 여기에는 주거시설인 아파트의 치장도 물론 포함된다. 한국 대도시의 건축물은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상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냥갑 같은 회색 시멘트의 연속이며, 잠을 위한 베드타운(bed town) 역할만 하는 아파트문화의 개선이야말로 시급한 개선과제이다. 건축미학은 서울을 벗어나 지방 대도시로 가면, 그리고 지방대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가면 더욱 심각해진다.각 지역별로 시행중인 각종 대형 문화프로젝트들에 대한 재검토를 비롯하여 정치적으로 결정된 사업에 대한 구체적 재검토도 시행되어야 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도시에서 태어난 자들은 불행하게도 추억이 없다고 말한다. 이제는 도시가 추억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 책임은 도시를 만드는 자들과 도시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있다. 도시와 추억 사이의 경계가 아름다운 도시, 그것이 바로 미학적 도시인 것이다./이용우(광주비엔날레 상임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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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23 23:02

[금요칼럼] 간접흡연 없애야 건강 선진국 - 서홍관

안데스 산맥에 자생하는 풀이 있었다. 토착 원주민들이 그 풀에 무슨 이유에선지 불을 붙여 빨게 되었다. 콜럼버스가 1492년에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했을 때 그 습관은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유럽의 담배는 아프리카와 인도양을 지나 일본까지 전해졌고,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졌다. 우리나라에서 담배에 대한 기록은 1643년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 '지금 사람들은 담바고를 많이 심는다'라고 최초로 등장한다. 담배를 즐겨 피웠던 정조는 '차가운 몸은 덥혀주고, 더운 몸은 식혀주니 이 아니 좋은가' 하는 담배 예찬론을 쓰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담배가 해롭다는 이야기를 안한 것은 아니다. 성호 이익은 담배 해악론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담배의 해로움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950-1960년대의 연구 결과에 의해 밝혀졌다.문제는 이렇게 우리나라에 전해진지 4백년밖에 안된 담배가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려 오천만 남한 국민 중 무려 천만에 가까운 흡연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담배 때문에 매일 150명이 사망하고 있는데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을 수개월 동안 공포에 떨게 했던 신종플루로 사망한 사람이 250명인데 담배 때문에 이틀 동안 사망하는 수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또한 우리나라 사망원인 1위는 암이고, 2위는 뇌혈관질환이고, 3위는 심장혈관 질환인데 담배는 위의 세가지 모두에 주된 위험요인이다. 따라서 대통령이든 보건복지부 장관이든 의사든 치과의사든 우리나라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담배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할 수 없다. 사망원인 4위는 자살인데 우연찮게도 흡연자들은 자살율도 높다.처음에 금연운동을 할 때는 흡연자의 건강을 위해서 금연을 주장했는데 점차 간접흡연이 해롭다는 것이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금연운동은 새로운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이제는 흡연자는 스스로의 건강을 해치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건강도 해친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간접흡연으로 암을 유발하기도 한다는 것이 밝혀져서 국제암연구소에서는 간접흡연을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또 간접흡연은 천식을 악화시키고, 심장혈관 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심장마비를 유발할 수도 있다. 이러한 심각한 질병이 아니더라도 코와 눈의 따가움, 가슴답답함을 일으켜 불쾌감을 주고 있다.지난 5월 27일 국회에서는 국민건강증진법이 개정되었다. 개정의 골자는 지방자치단체가 조례에 의해 다수인이 모이거나 오고가는 관할 구역 안의 일정한 장소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으며 이를 위반한 자는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된 것이다.과거에는 금연구역은 오로지 보건복지부장관만이 정할 수 있었으며 또한 이를 위반한 경우에도 경범죄처벌법에 의하여 대중교통수단, 의료시설, 승강기에서 흡연할 경우 범칙금 3만원, 역 대합실, 버스터미널, 기타 금연구역에서 흡연할 경우 범칙금 2만원을 부과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것도 오로지 경찰관이 현장으로 출동하여야만 하기 때문에 실제로 그러한 단속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이번 법 개정으로 소리 소문없는 조용한 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현재 각 지방자치 단체들은 이 법에 의해 음식점과 술집을 비롯한 다중이 모이는 모든 실내 공간을 금연구역으로 선포해야 하며, 실외공간이라 하더라도 공원이나 해수욕장 등의 휴게 공간을 금연 구역으로 선포할 수 있다. 또한 주거공간인 아파트에서도 베란다, 복도, 엘리베이터 등은 금연으로 선포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옆집 흡연자가 복도에서 담배를 피워 여름에도 문을 열어 놓을 수 없었던 이웃주민이 간접흡연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다가 말다툼이 벌어지는 일이 있었다. 예전에는 실외에서 흡연하는 것은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국민들도 실내든 실외든 간접흡연을 당할 이유는 없기 때문에 4천만의 비흡연자들은 천만의 흡연자들에게 맑은 공기를 마실 권리를 요구하고 있고 이는 헌법에도 보장되고 있다.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출근할 때 앞사람이 흡연할 때 뒤따라가면서 담배연기를 맡는 불쾌감을 호소한다. 이제는 혼잡한 거리와 체육경기장 관람석처럼 사람이 조밀한 공간에서는 모든 실외공간도 금연이 선포될 전망이다.흡연자들은 이러한 흐름에 초조해하기도 하고, 우리를 너무 밀어부친다고 불쾌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래를 부를 자유는 있지만 남들을 불쾌하게 하면서 고성방가를 부를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듯이 스스로 건강을 해치는 흡연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주변 사람의 건강을 해치고 불쾌하게 만들 권리까지는 없는 셈이다./서홍관(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서홍관 회장은 서울대 의학박사로 2003년 보건의 날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국립암센터 암예방 검진센터 의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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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6 23:02

[금요칼럼] 대의원 혁명만이 한나라당이 살 길 - 김형준

한나라당 새 대표를 선출하기 전당대회 막이 올랐다. 13명의 후보들이 쇄신, 화합, 세대교체 등을 내세우며 당권 경쟁에 돌입했다. 이번에 선출되는 새 대표는 6.2 지방선거 참패의 후유증을 수습하고, 2012년 총선 공천과 차기 대선을 관리해야할 막중한 권한과 책임을 지고 있다. 이런 막중한 책임이 부여된 새 대표를 뽑는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애석하게도 김빠진 사이다처럼 밋밋하고 전혀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당을 실질적으로 상징하고 국민들과 정서적 일체감을 갖고 있는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들이 불참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번 전당대회는 박근혜, 이재오, 정몽준 등 빅3 거물들이 불출마한 가운데 고만고만한 후보들이 난립하면서 차기 총선에 대비하기 위한 '마이너 리그'로 전락했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6?2 지방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을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한나라당에서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보면 2012년 대선에서 다시 야당에게 정권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이유는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이 주된 요인이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한나라당이 정권교체이후에도 허구한 날 친이-친박간에 싸움만 하면서 국민들의 혐오감을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방선거직후 한국정책과학연구원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가장 싫어하는 정당' 비율에서는 한나라당(32.7%)이 민주당(17.1%) 보다 2배정도 많았다. 더구나 0점(아주 조금 싫어함)에서 10점(아주 많이 싫어함)사이의 혐오 점수에서 한나라당은 7.23점으로 민주당(5.64점)에 비해 훨씬 높았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열린 우리당이 참패했을 당시 혐오점수는 7.30점으로 최근의 한나라당 혐오점수와 비슷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야당 후보를 지지한 이유는 다음 중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가장 많은 38.5%가 '대통령이 일을 잘 못해서'라고 응답했고, 그 다음으로 '여당이 싫어서'가 20.0%였다. 이런 조사 결과가 주는 함의는 한나라당 쇄신의 핵심은 기존의 한나라당 혐오감을 불식시키고 이를 위한 실천적 대안으로 계파를 해체하고 보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실질적인 당내 통합을 이뤄내는 것이다. 그런데, 변화와 쇄신을 기치로 내건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이런 민심에 역행하면서 정반대로 치닫고 있다. 너도나도 이심(李心), 박심(朴心)을 들먹이며 저질을 향한 고공행진만 하고 있다. "내가 대통령을 직접 만났다" "내가 진짜 성골 친이다"고 떠들며 다니는 후보가 있는가 하면, "박 전대표가 내 사무실을 먼저 왔다" "박전대표가 최근 전화를 했다"는 유치한 말을 버젓이 하고 있다. 심지어 "박전대표를 지키기 위해 출마했다"고 노골적인 '박근혜 마케팅'을 구사하기도 하고 '박심은 △△△'라는 낮 뜨거운 플래카드를 내건 후보도 있다. 결국 한나라당의 전당대회 모습은 국민은 없고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채 계파정치라는 자리에서 쳇바퀴 돌고 있을 뿐이다. 이런 뒤틀리고 비뚤어진 전당대회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대의원들의 혁명뿐이다. 2001년 4월 일본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비주류의 대표주자로서 '탈파벌'과 '개혁'을 내세운 고이즈미 준이치가 선출됐다. 자민당 총재선거는 지방당원이 참여하는 예비선거 141표, 중의원과 참의원이 참여하는 본선거 346표를 합산해 과반을 넘은 후보가 당선된다. 고이즈미 후보는 과반수를 웃도는 298표를 획득해 155표를 얻은 주류의 하시모토 류타로 후보를 누르고 결선투표 없이 총재로 당선됐다. 구태의연한 자민당 체질로는 생각하기 힘든 파격적인 언동으로 일본 정가에서 '괴짜' 정치인'으로 불렸던 고이즈미가 당선된 것은 본선거에 앞서 지방당원을 상대로 실시한 예비선거에서 '대의원의 반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방 대의원들이 계파 투표보다는 자민당을 살릴 수 있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지방 당원들은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무계파 차세대 정치인 고이즈미를 압도적인 지지로 자민당의 미래로 받아 들였다. 여기에 부흥해 고이즈미는 내각 인사에서 통상적인 파벌 안배 관행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간인과 여성각료에 대해 문호를 대폭 개방하는 등 '파벌 파괴'에 앞장섰다. 고이즈미의 이런 신선하고 창조적인 파괴 행위는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그 이후 치러진 각종 선거에서 자민당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한나라당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은 도전 정신과 창조적 파괴이다. 대의원들이 진정 한나라당을 사랑하고 정권재창출의 미래를 원한다면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그동안 한나라당을 혐오스러운 정당으로 만드는데 앞장섰던 사람, 이심-박심 거들먹이며 호가호위했던 사람, 정책과 비전없이 지역주의와 색깔론에 몰두했던 사람들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정확하고 철저하게 응징해야 할 것이다./김형준(명지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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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09 23:02

[금요칼럼] 갈등 조정 - 정진승

정부는 정책을 수립하는 유일한 기관이지만 모든 국민들이 정부가 수립한 정책을 무조건 따르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은 정부 정책이 자신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따라 찬성과 반대 의사를 표현하고 필요한 경우 추진과정에서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반대운동을 펼치고 선거에서는 투표를 통하여 의견을 제시한다.정부가 약 22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추진 중인 4대강개발계획의 예를 보자. 정부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1인당 연 강우량이 세계 평균의 약 13%(1/8)에 불과하여 추가적인 수량 확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강우량의 대부분이 장마기에 집중되어 빈번한 홍수를 유발하고 갈수기에는 강바닥이 보일 정도로 메말라 강물은 수량 부족으로 오염되어 생태계의 파괴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4대강 개발을 통하여 추가적인 수량 확보, 홍수방지와 수질개선을 달성하고 나아가 생태하천과 생태습지를 조성하여 국민들에게 쾌적한 생활공간을 제공하려는 것이 4대강개발계획의 주요 내용이다. 특히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16개의 보를 설치, 준설하고 96개의 농업용 저수지를 증고하며 신규 댐을 2개 설치하는 과정에서 고용 창출을 통하여 어려운 상황에 있는 경제의 활성화를 유도하는 소위 녹색성장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환경을 개선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4대강개발계획은 우리가 1990년대 초부터 주장하여 왔던 환경과 개발의 조화를 통한 지속가능한 개발(ESSD)의 표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계, 학자, 시민단체, 정치인을 포함한 다수의 국민들이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4대강개발계획이 사회적 갈등으로 지연되면서 발생하는 막대한 사회적비용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앞으로 4대강사업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이룰 수가 있는가?4대강개발계획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크게 사업내용의 타당성에 대한 반대와 계획의 결정과정에서 정당한 절차가 생략되었다는 판단에서 반대를 표시하고 있다. 이들은 가까운 장래에 물 수요량이 크게 증가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추가적인 수량 확보를 위하여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수질개선을 위한 강바닥의 준설과 수중보의 건설은 오히려 수질오염의 유발과 생태계의 파괴 가능성이 있으며 특히 홍수는 정부가 현재 추진하는 4대강의 본류에서 발생하지 않고 대부분이 상류와 지류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절차적인 문제점으로는 막대한 비용과 파급효과가 큰 4대강사업이 소수에 의하여 수립되면서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충분하지 못하였으며, 또한 다른 사업에 비하여 환경영향평가가 단기간에 걸쳐 형식적으로 진행되었다고 주장한다.4대강사업과 관련하여 정반대의 의견이 존재하는 이유는 관련 통계자료에 대한 상호 신뢰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동안 축적한 자료를 통하여 용수의 확보, 수질개선, 홍수의 방지 등을 위하여 4대강개발계획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통계에 의하면 4대강 개발계획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나아가 4대강 대책은 예산의 낭비이며 오히려 환경을 파괴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4대강 대책과 관련되어 정부가 보유한 기초통계와 반대론자들이 보유한 기초통계가 다르다면 양쪽은 앞으로도 계속 어느 통계가 옳은지에 대한 진실게임을 계속할 것이며 찬반 논란은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찬성과 반대 측은 용수의 현재 공급능력과 향후의 수요전망, 4대강의 수질오염 원인과 오염현황, 홍수의 원인과 피해상황 등에 관하여 보유하고 있는 통계와 작성방법을 공개하여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기초통계를 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4대강개발계획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조속히 마무리하기 위하여 약 3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갈등조정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위원회는 중립적이고 갈등조정의 경험이 있는 위원장을 중심으로 정부를 포함한 10개 단체 이내의 중요한 찬성과 반대 그룹 대표들이 참여하여 수자원 확보의 필요성, 홍수 방지, 수질개선 등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중요 주제에 대한 논의를 목적으로 한다. 만약 정부가 위원회의 논의 결과를 존중하여 4대강개발계획의 내용을 결정하겠다고 약속한다면 위원회의 성공가능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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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02 23:02

[금요칼럼] '응원의 집단성'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가 - 전용배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과 독일의 준결승전.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이 태극기로 물들고 있을 때 독일국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대신 수천 명의 독일 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프로팀의 깃발을 들고 독일을 응원했다.전범 국가인 독일은 국가를 내세우는 데 주저하는 문화가 있다.반면에 같은 전범 국가인 일본은 일장기를 당당하게 내세운다.일본대표팀의 닉네임인 '울트라 니폰'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대신 '무임승차'는 경계하는 편이다.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일본 축구팬들의 구호는 '축구팬들만 경기장으로'였다.월드컵은 축구팬들을 위한 축제이지 국민을 위한 잔치는 아니라는 관점이다.2010년 남아공 월드컵,대한민국과 나이지리아전.한국 시간으로 새벽 3시 30분에 경기가 열렸음에도 대한민국은 잠들지 않았다.수십 만의 인파가 거리에서 광장에서 경기를 지켜보았다.이러한 상황이 이성적이냐,비이성적이냐를 따지기 전에 과연 우리나라 이외에서 가능하냐는 의문이 든다.도대체 우리 국민의 이러한 집단성의 원류는 어디에 있으며 실체는 무엇인가.필자가 보기엔 이러한 집단성은 한국의 문화이자 정체성이라고 본다.집단성은 그것이 내재하고 있는 필연적 위험성 때문에 때로는 경계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승화시키느냐에 따라 선진적 문화로 귀결이 가능하기도 하다.월드컵의 이러한 집단적 응원 문화를 객관적으로 보면 해석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우리가 평소 축구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국가관이 남달라서 '조국 사랑'이 지극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군사독재를 통해 집단성과 획일성에 대한 부작용도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에 오히려 경계해야 마땅한 형편이다.이러한 집단성과 획일성 때문에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한 역사를 생각하면,오히려 부정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집단성이 우리문화의 깊숙한 곳에 축적되어 내면화되었다는 사실이다.북한의 정대세가 북한국가를 들으면서 굵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국민은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다.아무리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해도 우리는 이웃과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필자는 최근 이러한 집단성이 갖는 이상적인 시스템을 견학한 적이 있다.광주광역시에 있는 '빛고을 노인건강 타운'이 그 곳이다.이 곳은 지방자치단체가 노인복지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대한 답을 보여주고 있었다.선진국의 양로원과 달리 우리나라의 노인은 많은 이들과 함께 거주하고 즐기기를 원한다.'빛고을 노인건강 타운'은 하루에 이용객이 5천 명이며,수영장과 호텔급 목욕탕,점심은 천원을 받지만 체육관,당구장,공연장,물리치료실,헬스장,노래방,무료건강검진센터 그리고 기타 180여 개의 프로그램들은 무료 이용이다.한국에서 노인 5천 명이 매일 집단적으로 모이는 장소를 필자는 아직 알지 못한다.이러한 대형 노인건강 타운은 공공영역이 나서지 않으면 원천적으로 건설이 불가능하다.다른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 노인들은 외로움 때문에라도 함께 있어야 한다. 대형 노인 건강타운은 어쩌면 우리나라와 같이 집단적 문화를 선호하는 국가에서나 가능하다.매년 70억 원의 운영비는 광주광역시가 절반을 부담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공공의 역할이다.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금이 아깝지 않음을 느낀다"고 말했다.매일 이용하는 수천 명의 노인들은 우선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해 보였다.그리고 무엇보다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새벽 3시 30분에 수십 만의 인파가 거리에서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는 마음의 기저에는 "나 외로우니,함께 가자.우리 이렇게 국가를 사랑하니,우리를 쳐다봐다오"라는 외침이 숨어 있다.시민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이 집단성이 긍정적으로 발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결국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해야 할 궁극적인 역할이자 지향점이 아닐까 싶다. 집단적인 응원문화를 보면서 '군중 속의 고독'이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시민들이 집단적으로 응원할 수 있는 광장이나 거리를 열어주는 것만으로 국가나 자치단체의 역할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집단적 응원문화를 국가나 도시발전으로 승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모인다'는 현상보다는 왜 모이려고 하는지에 대한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삼삼오오의 서구사회와는 달리 동양의 농경문화는 집단성이 이미 문화에 내재화되어 있다. 집단적인 응원문화를 보면서 '군중속의 고독'이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전용배(동명대 체육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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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6.25 23:02

[금요칼럼] 우뇌와 감성의 시대 - 이영탁

20세기까지의 인류역사가 좌뇌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우뇌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우리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기능적인 면을 중시하는 소위 좌뇌 중심의 사고와 관행에 젖어있었다. 교육도 인간의 좌뇌를 개발하는데 치우쳐 있었고 결과적으로 많은 지식근로자를 배출하였다. 나라마다 이들을 중심으로 하여 엄청난 경제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전에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물질적인 부를 누리고 있다.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기능적인 면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감성적이고 직관적이며 큰 그림을 보는 우뇌적 사고가 없이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갈수록 물질적 풍요가 확산되는 세상에서는 좌뇌적 사고보다 우뇌적 사고가 더욱 필요해질 것이라고 한다.예를 들어보자. 좌뇌적으로 판단하면 양초는 불을 밝히는 데 사용된다. 따라서 전기의 보급이 보편화된 지금은 양초가 필요 없어졌다. 그러나 실제는 어떤가. 요즘 양초는 단순히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멋진 분위기를 만들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양초의 운명은 전기의 등장과 함께 사라진 게 아니라 이러한 용도 때문에 우리 곁에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다.인간은 좌뇌와 우뇌를 통해 이성과 감성을 각각 작동시킨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을 때는 이성적인 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풍요로움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요즘은 그 양상이 다르다. 풍요의 시대에는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면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아무리 잘 따져서 설명하더라도 시각적 또는 정신적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면 공감을 얻지 못한다.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수천 년 지속되어 온 좌뇌 중심의 역사가 바뀌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좌뇌형 사고에 운전석을 맡기고 우뇌적 사고를 조수석에 앉혔다면 이제는 우뇌에게도 이따금씩 운전대를 잡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과소평가되고 무시되었던 우뇌형 재능이 도약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 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원래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이 한 말로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자세이지만 요즘 우리 모두가 되새겨야 할 말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여기서 차가운 머리가 지성 즉 냉철한 분석과 판단을 의미하고, 따뜻한 가슴이 감성 즉 포용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머리로만 얘기하고 가슴으로 소통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갖가지 문제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예를 들어 젊은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애기 낳기를 권유했다고 하자. 장차 다가올 인구 감소와 고령사회의 문제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장 자식 낳기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머리로는 수긍할지 몰라도 가슴으로 느끼면서 감동까지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종시 문제만 해도 그렇다. 수도분할의 문제를 이해하면서도 정부시책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은 감성적인 판단이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지를 정리해 보자.첫째, 집단지성을 모아 활용해야 한다. 혼자서 판단하지 말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결론을 내도록 하자. 아무리 좋은 일도 독선적으로 처리하다보면 그르치고 만다. 이제는 영웅이 없는 세상이다. 모든 사람이 다 현명하고 똑똑해졌기 때문에 이 사람들의 지혜를 잘 모으면 아무리 잘난 사람도 당해 낼 수가 없다. 지금 세상을 움직이는 막강한 힘은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무장한 개개인으로 급속하게 이동하고 있다. 이들은 세상을 무서운 속도로 바꾸고 있으면서 동시에 세상을 바꾸는 방식까지도 바꾸고 있는 것이다.사회적 지위의 높낮이가 별의미가 없다. 굵은 머리보다 긴 꼬리가 중요하게 되었다. 지도자 몇 사람의 의견보다는 각 분야에 산재해 있는 다수 보통사람들의 의견이 중요하다. 위키노믹스(Wikinomics)는 인터넷시대의 일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여러 사람의 협동이 곧 그것이라고 한다. 이런 판에 아직도 정부나 기업에서 큰일을 구상할 때 몇몇이 모여 배타적으로 계획을 세우다가는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일을 하기 전에 세상환경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이다.둘째, 논리적 설명보다는 감성적 설득이 필요하다. 누가 몰라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기분 나쁘고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반대하는 세상이다. 원래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파진다는 식으로 시샘이 많은 우리들이다. 필요하고 옳은 일인데 왜 찬성하지 않느냐고 따져 봤자 별 소용이 없다. 마음이 움직이도록 처음부터 껴안고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작부터 여러 사람이 동참하여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의 일처리가 아니고서는 되는 일이 없는 별난 세상이 되었다.셋째, 매사를 솔직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이제 개인의 사생활은 보호받지 못하는 세상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PC에 고스란히 남아 있고,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으며, 신용카드 사용명세서에 다 기록되어 있다. 밖으로 나다니면 하루에 수십 번씩 감시카메라에 찍힌다. 세상은 무서울 정도로 투명해졌다. 이런 판에 누구 모르게 일을 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게 되었다.이제 정부나 기업은 과거보다 더 투명하고 더 솔직하게 일해야 한다. 혼자서 남몰래 일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세상 사람들의 눈과 귀가 워낙 발달해 있어 정부나 기업이 무엇을 하는지는 물론이고 무엇을 생각하는지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나 기업의 솔직하고 투명한 일처리야 말로 국민이나 소비자의 이해와 협조를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확보해 나가는 길이다.21세기는 우뇌적 사고가 크게 작용하는 감성의 시대다. 그동안 지속되어온 좌뇌 중심의 논리적 사고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뇌의 시대에 사람들의 마음을 제대로 움직이자면 논리적 접근보다는 감성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유를 들이대면서 따지기 보다는 마음을 움직여 내편을 만들어야 일이 성사되는 그런 세상이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이영탁(세계미래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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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6.18 23:02

[금요칼럼] 배를 띄운 민심은 배를 엎기도 한다 - 김명곤

6.2 지방선거로 인해 정치권의 지형이 크게 바뀌었다. 그동안 막강한 여당에 의해 지배되던 중앙과 지방정부가 여당과 야당이 상호 공존 또는 대립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따라서 앞으로 정치권의 갈등은 만만치 않게 증폭될 전망이다. 야당은 당장 내각총사퇴 요구와 함께 정권의 핵심 정책에 대해 더욱 강한 제동을 걸겠다는 의사 표시를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야권과 함께 여권 내에서도 불거지고 있는 인적쇄신론과 국정운영 기조 변화 요구에 대해 거부의사를 보이고 있다. 그에 따라 그동안 정부가 핵심적으로 추진해 온 정책들의 앞날은 험난해 보인다. 그 중 대표적인 정책이 '세종시 수정안'과 '4대강 살리기 사업'이다.먼저 4대강 사업에 대해 민주당은 '4대강 죽이기 사업'으로 규정하고 6월 국회에서부터 철회나 수정을 요구할 계획이다. 이번에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들도 반대 의사를 공공연하게 언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조금도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이 현 정부의 핵심정책인 만큼 이를 철회하거나 수정한다는 것은 정책의 기조가 붕괴된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청와대의 입장을 따를 수밖에 없는 한나라당의 친이계도 4대강 사업을 전면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반대 여론이 거세다는 것을 이번 선거에서 인식한 만큼 개선할 부분은 수정하거나 보완한다는 여지를 남겨 놓고 있다.세종시 문제의 경우, 민주당 등 야권은 수정안을 폐기하고 원안을 시행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수정안을 고수하는 종전의 입장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런 청와대의 입장에 비해 한나라당에서는 수정안 추진 동력이 다소 떨어지는 분위기다. 새로운 전략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가 솔솔 흘러나온다.이처럼 정치 지형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정치력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소통과 타협과 절충을 일상화해야 할 구조로 변한 것이다. 이 구조에 적응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은 오직 이번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따르는 길뿐이다.그동안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4대강 사업, 세종시 문제, 천안함 사건, 교육 정책 등의 시행 과정에서 민심을 외면한 채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을 함으로써 매서운 비판을 받아 왔다. 한편 야권에 대해서는 대안 없이 반대만 하고 분열하는 행태에 대한 비판의 민심이 높았다. 그러나 야권도 그러한 민심을 뼈아프게 받아들이지 않았다.이번 선거는 그러한 정치권의 행태에 대한 민심의 매서운 경고이며 심판이었다. 정치권은 이 같은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고 자기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예전처럼 민심을 자신들 위주로 해석해서 불리한 민심에는 눈과 귀를 닫고, 유리한 민심만 귀에 담는 구태를 되풀이한다면 진정한 민심을 얻을 수 없다.2010년 올해 초에 정치권에서 자주 오르내린 사자성어로 '여민동락(與民同樂)', '상하동락(上下同樂)', '수능재주 역능복주(水能載舟 亦能覆舟)'와 같은 말들이 있었다. 이번 선거는 정치인들의 입에 발린 그 말들이 현실 정치에서 얼마나 무서운 결과로 정치권을 휩쓸었는지 실감하게 해주었다. '민심과 함께 하지 않고(與民不同樂)', '권력자가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하지 않으면(上下不同樂)' '배를 띄워준 민심이 언젠가는 배를 엎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 것이다.이번 선거를 통해 정치권은 민심의 흐름을 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했을 것이다. 말로는 언제나 민심을 들먹였지만, 그 민심이 얼마나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잘못 파악된 흐름인지 알고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여론조사도 믿을 수 없고, 시중에 떠도는 말들도 진의를 알기 어렵고 ,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민심의 흐름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제 정치권은 그 강물 속 보이지 않는 곳에 흐르고 있는 '바닥 민심'이 자신들이 띄워 놓은 배를 엎어버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그 민심은 사심을 갖지 않고 진정으로 자신들을 위해 올바르게 일을 할 정치 일꾼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다. 강물의 깊은 바닥으로 내려가 바닥 민심을 찾아내어 그것을 채워주려고 노력하는 일꾼을 원한다. 민심과 함께 웃고, 민심과 함께 울고, 민심과 함께 아파하는 일꾼을 원한다. 민심을 따르지 않는 정치 세력에 대해서는 언제든 그 배를 뒤집어엎을 무서운 흐름이 존재하고 있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김명곤(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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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6.11 23:02

[금요칼럼] 과학이 먹히지 않는 이유 - 이기호

시국이 시국인지라 요사인 점심식사 때마다 전쟁 이야기가 화두에 오르내린다. 어떤 신문의 논설위원이란 사람은 우리의 공군 전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국민이 사흘 만 참아주면 전쟁을 쉽게 끝낼 수 있을 거라는 요지로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런 비상식적인 확신(확신하는 자들은 당연히 고민이 없다)이 버젓이 신문지상에 오를내릴 만큼, 이즈음의 상황은 다분히 비정상적이다. 그리고 그런 비정상적인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6?25 트라우마를 하나둘 씩 꺼내, 다시 현재에 대입하고 있다. 대부분 보도연맹이니, 좌우익 사이 벌어진 피의 보복극에 대한 기억이었다. 이 형, 이 형도 지난번 시국선언 때 서명하지 않았나? 그러면 백 프로 좌익으로 몰리겠네. 전쟁 나면 어디 살아남겠어? 에이, 어디 그런 일까지야, 웃으면서 말을 받았지만, 전쟁이라는 비이성적인 공간이 불러올 예측불허의 사태에 대해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걸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씁쓸해졌다. 예전에 비해, 우리 사회가 외면적으론 보다 이성적이고, 보다 합리적인 사고방식에 접근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자세히 속내를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1950년대보다 정파 간의 갈등은 더 격해졌고, 그에 따른 적의는 더 날카로워졌고 첨예해졌다. 전선 자체의 경계가 명확히 나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예전에 비해 그 피해가 더 크면 컸지, 줄어들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전쟁은 무조건 안 된다. 설령 사흘 만에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그것이 몰고 올 여파는 무시무시한 공멸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예를 이미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보아 알고 있다. 전쟁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지만, 그러나 여전히 전쟁 중인 상황들. 그 안에서 최고권력자들을 뺀 나머지 국민들은 오로지 고통만을 강요당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국가 간의 전쟁이 갖고 있는 진짜 본질이다. 사흘 만 참아달라는, '참아달라는' 어휘 속에 내장된 아무렇지도 않은 희생 강요 같은 것들.그래서 이즈음의 상황이 더 답답하게 느껴진다. 전쟁이 발발하는 계기들이란, 대부분 우연적이고 국지적인 충돌들 때문이다(세계대전의 시작은 언제나 누군가가 발사한 총 한 발 때문에 비롯되었다). 그런 우연과 충돌을 제어해주고 예방하는 것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이양 받은 자들의 몫일 텐데, 작금의 모습은 어쩐지 그 반대의 경우로만 가고 있는 모양새다. 제어와 예방을 제대로 하지 못한 군 수뇌부들은 당당하고, 정부와 여당은 발 벗고 나서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역전된 상황 때문에 국민은 의심하고 신빙성 없는 괴담들만 흉흉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천안함 사건의 처리 과정만 보아도 그렇다. 정부에서 아무리 과학적인 증거라며 수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발표를 해도, 왜 그것이 대다수 사람들에게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일까?(참고로 얼마 전 기자협회에서 발표한 기자들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정부의 천안함 조사 발표의 불신은 41%에 달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크게 두 가지 사안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하나는 작전에 실패한 군 수뇌부가 조사의 주체가 되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발표 시점의 문제일 것이다. 만약 이 정부의 책임 있는 당사자들이 천안함 사태 직후 즉각 군 수뇌부를 교체하고 사건을 조사했다면 지금 같은 불신에 시달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조사 발표 시점을 지방 선거 이후로 미루었다면, 그 신빙성은 더 높아졌을 것이다(이건 너무 속이 뻔해 보이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그러하질 못했고, 그래서 불신을 스스로 자초했다. 더불어 이 정부가 그동안 여러 차례 해왔던 '말 뒤집기'의 사례들이 겹쳐, 불신의 폭은 더 넓어지고 광범위해졌다. 그러니, 아무리 '과학'을 강조해도, '과학'이 먹히지 않는 것이다. 표 때문에 '세종시' 문제를 그렇게 뒤집었으니, 이번 역시 표 때문이지 않겠느냐, 이런 공식이 설득력 있게 통용되는 것이다.어쨌든 이제 선거는 끝났다. 칼럼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선거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알 순 없지만,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선거 종료를 기점으로, 이 송곳 같은 긴장 상태가 다소 누그러지길, 그 마음 하나뿐이다. 어느 영화 제목처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는 것이 맞다. 더불어 불안을 조장하는 권력들이란, 대부분 불신의 늪에 빠져 있는 경우들도 맞다. 영혼을 잠식당하지 않은 국민만이 권력을 올곧게 감시할 수 있는 법이다. 그것이 또한 권력자들만을 위한 전쟁을 막는, 유일한 국민의 길이기도 하다./이기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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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6.04 23:02

[금요칼럼] 누구를 찍을 것인가 - 전용배

체육 및 스포츠분야에 종사하면서 평소 필자는 스포츠가 매력적인 이유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실력이 있음에도 좌절하는 경우는 다른 많은 영역에서는 흔하디 흔하다. 세상이 꼭 실력대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정확한 잣대를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어떤 영역에서든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사파무림(邪派武林)'의 고수는 널려 있다. 그러나 적어도 스포츠 세계에서는 이러한 경우가 많지 않다. 아무리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를 폄하해도, 실력이 있으면 벤치에 머물지 않는다. 관중석의 팬들이 가만두지 않는다. 경기력만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기회는 오게 되어 있다." 사실이 그렇다. 스포츠분야는 보편적 규칙 때문에, 적어도 경기는 공정한 잣대가 적용된다고 믿고 있으며, 우열을 가리기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화두가 정치 또는 선거에 이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6.2지방선거가 눈앞에 다가왔지만, 누구를 찍어야 할지. 우리나라 선거에서, 공약을 찾아 비교분석하면서 누구의 공약이 가슴에 와 닿는지에 따라 투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실제로 공약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북풍'과 '노풍'만 강조한다면, 유권자를 무시하는 처사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라고 주장하지만 실제 국민들 눈에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다고 권리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누가 나은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는 시?도 교육감과 교육의원도 선출해야 하는데, 후보난립과 정보 부족으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유권자를 탓해야 할지,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결국 어떤 선택을 하던 유권자의 몫으로 남겨 둘 수밖에.혹자는 "선거란 결국 최선이 아니라 차선, 최악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는 과정이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면 일리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차악(次惡)을 선출하기 위해 투표장에 간다면 너무 비참하지 않을까. 아무리 오십보백보라지만 그래도 보다 낳은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이 유권자의 역할이다. 서구 선진국의 경우라면 일반적으로 선출직에 당선되기 위해서는 동네 앞마당이라도 쓸어본 경험, 즉 남을 위해 봉사와 희생해본 경험이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이다. 남을 위해 삶의 일부분을 희생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남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느냐는 전제가 깔려 있다. 전문성은 비례대표로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준 말고, 또 어떤 요소가 보편적 기준이 될 수 있는가. 해답은 대한민국 헌법에 제대로 녹아 있다.집권여당이나 기존 시?도지사를 심판해야할 목적이라면, 그 당이 또는 기존 시?도지사 집권 시, 이전 집권세력이나 시?도지사 때와 비교하여 삶의 질이 나아졌는지, 개인 및 집단의 인권이 성장했는지, 경제발전 지표가 우수한지,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었는지, 이념의 다양성이 확보되었는지, 복지가 나아졌는지, 교육 및 의료서비스가 진일보했는지, 보다 투명한 사회가 되었는지, 과거보다 행복해졌는지 등, 대한민국 헌법에 내재되어 있는 기본가치를 준거의 틀로 적용한다면 보다 쉽게 판단할 수 있다. 물론 어떤 정권이든 또는 시?도지사이든 완벽할 수는 없다. 항시 공과 과가 상존할 수밖에 없다. 단지 이전에 비해 이러한 기준에서 10개 중 6~7개 정도의 영역에서 발전과 개선이 있었다면 다시 찍어줘도 무방하다. 그러나 5개 미만이라면 심판받는 것이 당연하다.학교에서 같이 근무 중인 외국인 교수들이 가끔 의아해하곤 한다. 미국의 경우 기득권층과 비즈니스맨들은 대부분 공화당 쪽이고 흑인들 및 지식인층은 대부분 민주당 쪽인데 반해 한국은 자기 정체성과 상관없이 투표하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든다고. 필자가 보기엔 그것은 민주주의의 역사와 성숙도의 문제이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죽기 직전에 "아직도 수천 명의 사회학자 중에서 공화당원을 한명도 확보하지 못했단 말인가"라고 말했다는 우스개가 있다. 비판적 시각을 가진 사회학자가 공화당원이 되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경우 유권자의 정체성은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후보의 정책보다 이미지에 의존하여 투표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선거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래도 대한민국이 아시아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주의 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찍을지 결정하지 못했다면, 헌법에 내재된 가치를 떠올리면 의외로 쉽게 답이 나올 수도 있다./전용배(동명대 체육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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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28 23:02

[금요칼럼] 속도의 충돌과 사고(思考)의 충돌 - 이영탁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부의 미래』(2006)에서 <속도의 충돌>을 언급하고 있다. 기업이 가장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비해 다른 분야가 이를 따라가지 못해 결국 속도의 충돌을 야기함으로써 경제발전의 저해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기업의 속도에 크게 못 미치는 곳으로 정부조직, 학교, 정치조직, 법 등을 열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정치나 법률 분야의 변화속도가 제일 더딘 것으로 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미국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지 않나 하는 점에서 시선을 끌기도 한다.여기서 본인은 우리네가 지니고 있는 사고(思考)의 차이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그동안 급속한 경제발전과 사회변화의 과정에서 세대 간, 계층 간에 형성된 인식이나 판단의 괴리는 엄청나다. 결국 우리 사회에 만연된 <속도의 충돌> 못지않게 <사고의 충돌>이야말로 심각한 문제로서 앞으로 여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우리 사회의 발전을 현저하게 저해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예를 들어보자. 우선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우파 대 좌파 또는 보수 대 진보 간의 갈등이 그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이런 식의 분파는 존재하였다. 그러나 우리처럼 매사에 의견이 갈리고 서로를 헐뜯기만 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지나치다. 그동안 세월이 많이 흘러 각자의 주장을 조금씩 고쳐먹을 법도 한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무조건 옳고 상대방은 늘 문제가 있다는 발상에 큰 변화가 없는 실정이다.세대차이만 해도 그렇다. 워낙 급속하게 변하는 생활환경 속에서 세대와 연령에 따라 가치관이 달라지고 판단의 기준이 차이가 나게 되었다. 같은 집에서 한 솥 밥을 먹고 있는 가족 간에도 대화가 잘 안 되는 것이 바로 단적인 예이다. 이러한 데서 나아가 우리 사회 각 분야에 세대 간의 갈등이 증폭되고 그로 인한 폐해가 엄청난 것이 현실이다. 같은 문제에 대해 정반대의 견해를 가지는가 하면 이것이 지나쳐 서로간의 대화채널이 중단되는 수가 흔히 있다. 이는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경제사회의 발전과 변화의 속도가 빠른 우리가 더 심한 편이다.이러한 현상을 두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사고나 인식의 격차가 우리 경제 사회의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게 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살펴보기로 하자.첫째, 우선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처럼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같은 사안을 두고서도 다양한 의견은 필수적이다. 아니 획일적인 것보다는 다양한 의견이 활발하게 개진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고 좋다. 문제는 나와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세다. 이제부터라도 평소 나와 같지 않는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자. 의견이 다르다고 무조건 비판하지 말자. 설사 반대할 때 반대하더라도 협력할 때는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지금처럼 사사건건 시비에 휘말리는 수밖에 없다.둘째, 여건이 달라진 만큼 사고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은 정보화시대다. 그것도 정보화시대 50년 역사가 이제 곧 막을 내리고 후기정보화시대로 진입한다고 한다. 이런 판에 아직도 산업화 시대의 사고나 논리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결국 옛날 얘기만 되풀이하는 셈이다. 아무리 건강에 주의해도 결국은 늙어 죽는 것이 인간인 것처럼 시대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가기 어려운 것이 또한 인간이다. 현실적으로 자기는 변하지 않으면서 남들한테는 변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다. 스스로 모순을 저지르는 셈이지만 그만큼 여건변화에 맞추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얘기도 된다.셋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아무리 여건이 달라지고 거기에 따라 사고도 달라져야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원칙이다. 여기서 원칙은 기본에 관한 것이다. '정직하게 살고, 열심히 노력하고, 남을 먼저 배려하고, 주변의 약한 사람을 돕고 --- ' 등등은 만고불변의 원칙이다. 원칙은 보편적 적용이 가능한 기본적인 진리이다. 또한 원칙은 영구불변의 가치를 가지는 인간행동의 지침이다. 이러한 원칙은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원칙이 습관으로 자리 잡을 때 그 사람은 보다 완성된 인간의 면모를 갖추게 될 것이다.이렇게 볼 때 <속도의 충돌> 이상으로 <사고의 충돌>이 충격적일 수 있지만 이를 극복해내는 방안도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어렵지만 이것도 사회지도층부터 솔선할 일이다. 남보다 먼저 다양성을 인정하고, 생각을 바꾸고, 원칙에 충실토록 하자.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사회에 고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계층 간의 사고나 인식의 격차를 극복함으로써 국가발전의 원동력을 갉아먹는 일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이영탁(세계미래포럼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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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21 23:02

[금요칼럼] 천안함 침몰의 진실은 무엇인가? - 김명곤

천안함의 연돌에서 화약성분이 검출되고, 해저의 모래와 자갈에서 화약흔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침몰원인이 어뢰의 버블제트 폭발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그 주장을 받아들이기에는 설명되어야 할 의문점들이 너무도 많다.먼저 생존 장병 중에 버블제트로 인한 물기둥을 본 사람이 없고, 물에 젖은 사람도 없고, 죽은 물고기떼와 같은 폭발 흔적이 없는 점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버블제트로 인한 폭발이라면 사고 때 관측된 인공지진파가 시차를 두고 두 번 나타나야 하는데 한 번밖에 나타나지 않은 점도 설명되어야 한다. 또 폭발이 있었다면 화상이나 고막파열이나 장기파열 같은 상처가 있어야 되는데 희생자들의 시신 상태나 생존자들 중 그런 상처가 한 명도 없는 점, 함미 바닥에 배가 긁힐 때 나타나는 스크래치의 흔적이 나타난 점, 스크류의 날이 안쪽으로 크게 휘어있는 점, 인양할 때 함미 밑바닥에 구멍이 뚫려서 물이 샌 점도 설명되어야 한다.사고 다음날 희생자 가족들 앞에서 공개한 작전상황도에 보면 '최초 좌초 6.4'라고 표기돼 있는데, 해군 관계자는 그 글씨가 유족 가운데 한 명이 작전상황도를 뺏어가 임의로 써 넣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누가 왜 그런 중대한 자료에 멋대로 그런 글씨를 썼는지, 또 군은 왜 그런 글씨가 써진 지도를 공개했는지도 함께 설명되어야 한다.이 의문들은 군에서 몇 가지 기록만 공개하면 금방 풀릴 수 있을 것이다. 먼저 TOD 영상 기록이 공개되어야 한다. 군에서는 9시 4분 무렵에서 9시 24분 무렵까지의 20분간만 영상 기록이 없다고 하는데, 만약 그렇다면 TOD 담당 병사의 근무태만이니 그를 불러서 확인해야 한다. 다음은 교신기록이 공개되어야 한다. 군에서는 사고 당일 9시 15분에서 22분까지는 군 통신망을 통해서 교신한 기록이 없다고 하는데, 도무지 납득이 안 간다. 또 KNTDS(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 기록도 공개해서 천안함이 정확히 어느 위치에서 어떤 사고를 당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의 가장 중요한 증거물인 인양된 선체를 공개해야 한다.이런 증거들이 공개되지 않은 채 조사단의 활동이 마무리되는 듯하다. 민군합동조사단은 천안함 근처에서 터진 어뢰가 TNT보다 위력이 강한 고폭약인 'RDX'인 것으로 보고 정밀 분석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정부와 군 당국은 북한 공격설을 기정사실화하는 태도이고, 대다수 언론들도 그런 식의 보도를 하고 있다.게다가 조사에 대한 모든 사항이 철저한 비밀에 싸여 있으니 국민들은 그저 군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꼴이다. 불필요한 혼선을 막기 위해 일부는 보안에 붙인다고 하더라도 조사단의 구성이나 조사 과정이나 최소한의 진행 상황은 공개 못할 이유가 없다. 온 국민에게 슬픔을 안겨준 비극적인 사건의 진상 조사를 하면서 그토록 철저히 비밀주의로 일관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불신을 자초하는 처사다. 보안 때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중요한 사항들이 비밀에 싸여 있으니 온갖 억측과 가설이 난무하는 것 아닌가?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은 희생 장병들을 위한 영결식에서 '국민에게 고통을 준 세력을 끝까지 찾아내서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접한 대부분의 국민들은 '고통을 준 세력'을 북한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세력은 군과 정부라고 생각한다. 이해 할 수 없는 보고 지연과 구조 과정의 난맥상과 비밀에 싸인 조사과정까지 그 무엇 하나 고통을 주지 않는 부분이 없다. 명백하게 군의 위기관리에 커다란 허점이 드러났고, 군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음에도 군은 자신들의 문제를 반성하기보다 북한에 책임전가를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만일 북한이 버블제트 어뢰를 발사해서 침몰한 것이라면 그 또한 군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잠수정이 한미훈련중인데도 백령도 깊숙이 침투해서, 수중음향탐지기인 소나에도 걸리지 않은 채 빠르게 이동 중인 천안함을 버블제트 어뢰를 쏘아 명중시킨 후 몰래 북으로 귀환했다는 얘긴데 참으로 신출귀몰한 북의 침입에 대해 우리 해군은 왜 그토록 무기력했단 말인가? 막대한 국방비를 써서 최신예 무기들로 무장한 우리 해군이 그토록 무능하고 직무에 태만했다는 얘긴가? 만약 그렇다면 북한에 비해 그토록 전력이 뒤떨어진 군을 우리 국민들이 어떻게 믿고 살란 말인가? 이처럼 도저히 믿을 수도 없고 이해도 되지 않은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천안함 침몰의 진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김명곤(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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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14 23:02

[금요칼럼] 토마스가 묻는다 - 이기호

그러니까 이런 상상을 한 번 해보자. 만약 미국 애리조나에 토마스나 보그먼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한 명 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어느 날 한가롭게 거실에서 인터넷으로 뉴욕타임즈를 읽고 있던 토마스는 별 해괴망측한 기사 하나가 올라온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국제 면에 나온 그 기사에는 아시아에 있는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2012년에 환수하기로 한 전시작전통제권을 몇 년 더 미국이 행사해줄 것을 강력히 희망한다고 적혀 있다. 토마스는 잠시 생각해본다. 왜 남의 나라 전시작전통제권을 우리 미국이 갖고 있지? 가난한 나란가? 아니, 분명 한국이라고 했는데.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이 컴퓨터와, 옆 집 더글라스가 몰고 다니는 자동차를 만든 나라가 맞는데, 거 참 이상하네? 이 나라 사람들이 제정신인가, 왜 자신들의 주권을 남에게 받아달라고 이렇게 생떼를 쓰지? 날이 더워서 그런가? 추신수는 그래서 메이저리그로 넘어왔나?정말이지, 창피해서 살 수가 없다. 굳이 토마스를 상상하지 않더라도,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국민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고, 고개를 절로 수그러들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들뿐이다. 우리 군의 주요 지휘관이라는 사람들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천안함 사태에 대한 보복을 다짐하고 있고, 또 한쪽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를 주장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사안에 어떤 모순점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처럼, 부끄럼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만약 다수의 언론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천안함 사태가 북한측의 소행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해군참모총장의 발언처럼 보복 작전을 펼치는 것에 온 국민이 합의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과연 우리가, 우리 스스로 보복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가? 안 된다는 거, 다 알고 있지 않는가?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국에게 있는 마당에, 미국이 그렇게 손쉽게 오케이, 보복 작전의 승인을 해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가? 그걸 믿는다면 당신은 지금이라도 원고지를 펼치고 동시 스무 편을 줄줄 쓸 수 있을 만큼 순진하고 순박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미국이 천안함 사태 하나만 두고 한반도에서 전쟁을 승인해줄 거라곤 믿진 않을 것이다(미국의 대 한국 투자자본, 교역규모, 대 중국 관계 등을 생각해보면, 대번에 계산은 나온다. 친구가 기분 나쁘다고 누굴 함께 때려달라고 했을 때, 같이 싸움에 나설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물론 조폭 빼곤). 설사, 미국의 반대를 물리치고 우리 군대가 단독 작전을 감행했다고 치자. 그럼, 그 뒤의 일은 어떻게 되는가? 미국은 당연 한미군사협정 위반이라며 발을 뺄 게 분명하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전시작전통제권은 우리 쪽으로 넘어오게 될 것이다. 우리 군의 주요 지휘관들은 지금 그것을 원하고 있는 것인가? 한데, 그러면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 주장은 또 뭐란 말인가? 그 사람들은 모두 반어와 모순을 즐기는 전위예술가들이란 말인가?군 수뇌부들은 이번 천안함 사태에 대해서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할 사람들이다. 사태의 원인이 무엇이든, 46명의 고귀한 젊은이들이 스러져갔다. 그들은 용사(勇士)가 아닌, 희생자들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젊은이들 또한 언제든 그런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사태의 교훈이다. 군 수뇌부들은 그런 희생자들의 제단 앞에,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이고도 어떻게 그리 허술하게 사고를 당해야만 했는지, 설명해야 한다.정부측에도 따져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좌파정부라고 부르는 지난 정권에서는 해마다 9%에 가까운 국방예산이 증액되었다. 이 정권 들어서는 과연 국방예산이 얼마씩 증액되었는지, 따져 묻고 싶다. 과연, 우리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주권인지, 4대강 정비인지, 그것에 대한 대답도 듣고 싶다. 왜 우리의 함선 침몰 경위를 국민보다 앞서, 미국이 먼저 알아야 하는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듣고 싶은 것이다.그리고, 다시 애리조나에 사는 토마스도 묻는다. 신문 기사를 보고, 한국의 역사를 구글로 훑어본 토마스는 혼자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건 과연 돈 때문인가, 그도 아니면 오랜 식민 근성 때문인가? 둘 중 어느 하나라도 거 참 이상한 나라인 건 마찬가지다. 토마스의 질문에 나는 그저 고개를 푹 수그릴 뿐이다./이기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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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07 23:02

[금요칼럼] 월드컵 단독중계냐 교차중계냐 - 전용배

월드컵이 한 달 정도 밖에 남지않았지만 SBS의 월드컵 독점중계에 따른 논란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SBS는 지난 2006년 8월 IOC와 FIFA로부터, 2010년부터 2016년까지, 4개의 올림픽과 2개의 월드컵 중계권료를 각각 7250만 달러, 1억4000만 달러라는 엄청난 고가에 사들였다. KBS와 MBC의 제소에서 보듯이 그 파장이 작지 않다. 먼저 법리적인 문제부터 살펴보면, 보편적 시청권이 제기될 수 있다.보편적 시청권이란 "방송법 제 76조 및 동법 시행령 60조의3에 따라 국민관심행사의 경우 대다수 국민들이 시청할 수 있도록 방송 수단을 확보해야 하는 규정"을 말한다. 즉 올림픽과 월드컵은 국민 전체 가구수의 90% 이상이 시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이미 방송통신위원회가 유권해석을 통해 밝혔듯이 큰 문제는 없다. 차라리 방송법 76조에 나와 있는 "지상파 방송사업자를 포함한 모든 방송사업자와 중계방송권자 및 그 대리인에게 재판매할 의무를 지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에 대해 SBS가 성실히 임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물론, 우리나라도 메가스포츠 이벤트를 과거처럼 지상파 3사가 동시 중계할 이유는 없다.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은 차지하고 지구상에서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지상파 여러 채널이 동시에 중계하고 있는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밴쿠버동계올림픽을 SBS가 단독 중계했음에도, 방송중계시간은 중국을 제외하고 가장 긴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국민적 관심사가 큰 스포츠이벤트이긴 하지만 '우민국가'도 아니고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따라서 KBS, MBC, SBS가 모두 월드컵을 동시 중계하는 것은 전파낭비에 지나지 않는다.그럼에도 월드컵과 관련해서 SBS만의 단독중계는 미증유의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일본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NHK와 5개 민영방송이 가입한 '재팬 컨소시엄'이 올림픽과 월드컵 축구중계권 협상에서 창구 역할을 한다. 월드컵과 올림픽의 공익성을 고려하여 NHK가 협상을 주도하고 중계방송도 중복되지 않도록 NHK가 조정한다. 수신료로 운영하는 NHK가 중계권료의 50~60%를 내고 주도권을 쥐며, 경기별로 방송사들이 추첨을 해 중복 방송을 피한다.유럽도 올림픽의 경우에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모여 '유럽방송 연맹'이란 단일 창구를 만든다. 또한 IOC가 보편적 접근권을 내세워 올림픽 경기의 95% 이상을 무료로 방송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지상파의 협조 없이 케이블방송이 높은 값을 주고 중계권을 사들일 수도 없다. 다만 월드컵 중계의 경우 이탈리아, 영국 등은 미국처럼 방송사들이 따로 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보편적 접근권을 법으로 보장해 유료 채널이 독점 중계권을 따더라도, 주요 경기는 지상파로도 방송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올림픽과 월드컵중계권을 두고 각 방송사들이 철저히 경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이 취하는 방식이 그나마 적합한 모델이다. 공영방송의 주도아래 방송 3사가 나누어서 중계하는 것이 모양이 가장 이상적이다.SBS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케이블, 위성방송, IPTV 등 유료방송 사업자에게 동계올림픽을 재전송하는데 대한 대가를 요구해 논란이 있었는데, 올림픽과 월드컵 등 국민적 관심 행사에 대한 재전송 대가를 별도로 요구할 경우 이는 결국 소비자에 대한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기 때문에 '보편적 시청권' 개념과 배치될 수 있다. 또한 케이블 등 유료방송 사업자와 갈등으로 올림픽, 월드컵의 재전송이 불가능해졌을 경우 SBS는 보편적 시청권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2010년부터 2016년까지 올림픽과 월드컵중계권을 고가를 들여 확보한 SBS는 이미 스포츠중계권에 관한한 기득권이다. 지상파 3사가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동시에 같은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것을 반대하지만, 교차중계는 필요하다. 미래 스포츠시장을 예견컨대, 우리나라의 경우 방송 3사가 Korean Pool을 형성하여 접근하지 않으면, 모두가 피해자가 될 뿐이다./전용배(동명대 체육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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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4.3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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