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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박복영 시인-장선희 ‘조금조금 초록 벽지’

현실의 경계를 넘어

‘조금조금 초록 벽지’ 표지/사진=독자

시는 왜 살아가면서 현실을 잊고 살 수는 없는가. 그것은 삶이 시적이길 기대하는 사람들의 염원이 깃들어 있기도 하고 어쩌면 한 켠으로 대체되지 못하는 철학적 관념을 시가 대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극히 일상적인 삶과 생활을 불러들여 벌이는 시인의 사소하면서도 디테일한 소묘는 우리를 점점 시인의 삶속으로 끌어들인다. “우린 초면 입니까?”(여긴 초면입니다)처럼 당신과 나와 우리를 접목시키는 간결하고도 자연스러운 능청은 읽는 내내 지루함을 지워주기에 충분하다.

 여기 현실과 꿈의 경계를 벽 하나, 벽지 한 장으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찾고 있는 시집이 있다.(조금조금 초록벽지. 달을 쏘다. 정선희) 어딘가 있을 벽의 구조물을 통과하면 아이들의 안쪽에 있을 꽃밭을 향해 간다. 벽은 벽과 벽지로 가로 막혀 있다. 가시적 전개로는 벽을 통과해 세상으로의 탈출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벽이라는 가로 막힌 상태를 오랫동안 지지 않는 들꽃으로 이미지를 변환시키며 피어있는 벽지를 사이에 두고 틈을 소환, 벌어지는 환상통을 노래한다. 

 

 

 벽지로 막아놓은 세상입니다

 벽을 통과하면 하얀 꽃잎이 휘날립니다

 웅성거림을 찾아 아이가 벽 속으로 들어가고

 사람으로 매만진 저녁이 반질거립니다

                                        

 아무도 아이를 찾지 못하네요

 아이는 벽 밖으로 나오려다 넘어집니다

 초록벽지는 또 한번 답장일까요

 초록과 같이 자란 벽이

 안을 밖으로 바꿉니다

 반쯤 빠져나온,

 벽지에서 바라본 옆모습이 들꽃 같습니다

 이름을 불러 보지만

 입술 밖으로 떨어지는 건 빨간 꽃잎이네요

 초록벽지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숨바꼭질이 너무 재밌던 나이,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느라

 배가 고픈 줄도 몰랐습니다

                                        

 벽지가 바래도록 자란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요

 사방연속무늬로 뻗어나간 들꽃입니다

 천장과 벽 사이 어딘가 있는 세상

 찢어진 벽지를 꽃잎인 양 날려 봅니다

 벽을 넘을 땐,

 숟가락 한두 개쯤 없어져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조금조금 초록벽지 전문」

 벽이라는 경계에서 걸려 넘어지고 바깥세상으로 빠져나오지 못할 때 벽은 꽃잎을 끌어들여 이미지 전환을 시도한다. 통과할 수 없는 구조물의 탈출을 감수한다. 초록 벽지의 기억을 꽃잎인 양 날리며 아무렇지 않다는 말로 시적 주체를 이미지로 변환하여 우리에게 삶을 설득하고 불가능한 벽의 탈출을 통해 사라진 아이를 뜯어진 벽지에서 발견할 때 비로소 오래된 벽지가 아닌 우리 생이 소환되는 이유다.

 벽은 더 이상 벽이 될 수 없음을 제시하며 우리의 선입견을 회복하기 위한 행위로 기억을 꺼낸다. “사방연속무늬로 뻗어나간 들꽃”에서 우리는 풍성했던 시절의 기억을 더듬는다. 그렇게 벽지를 통해 기억을 연결하여 미래를 찾아간다. 벽이라는 일방적 가로막힘의 현실을 타파해가는 시적 이미지의 전개가 매우 흥미롭다.

 살아가면서 “벽을 넘을 때”처럼 “숟가락 한두 개쯤 없어져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이 미래를 향한 삶을 부축해 주는 이유다. 무의식적 의지가 내보이는 시어의 복귀. 아름다운 시어보다 이미지의 긍정성으로 의미로 틈입해 써 내려간 이미지는 빛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페룰라 꽃”을 불씨로 이미지를 전환시키듯 오래볼수록 꽃은 불이 붙는다는 표현은 지중해에 있는 “에게 식당”에 있고 그 꺼지지 않는 불씨로 미래를 이야기 한다. 불씨가 내는 불빛은 “신전이 아니라 폐허”를 찾는 빛이다. 그럼에도 “아직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다가와 우리를 덥혀준다. 이처럼 시인이 현실 속 가득한 삶의 여정을 재밌고 유쾌하게 이미지를 환기시키는 것은 아직 미래가 기다리고 있음을 제시하는 시인의 따듯한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복영 시인은

 1997년 월간문학 등단해, 2014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2015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됐다. 그는 작가의 눈 시 작품상과 여순10.19평화문학상 등 서울문화재단 창작 지원금 수혜를 받기도 했다. 저서로는 시집 <아무도 없는 바깥> 외 5권과 시조집<그늘의 혼잣말을 들었다>외1권이 있다. 현재 그는 전북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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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영 #시인 #장선희 #현실 #시 #꿈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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