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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완주‧전주 통합, 특례시 지정으로 완성해야

완주·전주 통합 논의가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위기가 현실이 된 상황에서, 행정통합을 통한 지방도시 경쟁력 강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가 있다. 완주·전주 통합은 단순한 행정구역 결합으로 끝나서는 안 되며, 그 완성은 반드시 특례시 지정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시‧군 행정통합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권한과 재정이 그대로라면, 시‧군 통합은 ‘몸집만 커진 기초자치단체’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완주·전주 통합이 이뤄질 경우 인구 약 73만 명, 면적 1027㎢ 규모의 대도시로 탈바꿈한다. 이는 서울의 약 1.7배에 달하는 면적으로 국제행사와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치르기에 충분한 도시 여건을 갖추게 된다. 특례시로 지정되면 도시계획·건축·환경 등에서 광역시 수준의 행정권한을 확보하고 복지급여 결정권과 국고보조금 차등 편성권, 국책사업 직접 제안 및 시행 권한 등이 부여된다. 특례시는 지난 2022년 1월, 지정 기준이 담긴 지방자치법 시행 후 수원·용인·고양·창원 등 4곳이 지정됐고, 지난해 화성시가 추가됐다. 창원을 제외하면 모두 수도권이다. 특례시 지정을 위해서는 우선 현행 인구기준에 대한 현실적 조정이 필요하다. 비수도권 도시까지 획일적으로 100만 명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지방 여건과 맞지 않다. 이대로라면 특례시는 수도권 도시만을 위한 제도로, 국가균형발전 정책에 역행하게 된다. 당연히 비수도권에서 인구기준 완화를 요구하고 있고, 정부와 국회, 지방자치단체 사이에서 특례시 지정 인구기준 완화를 제도개선 과제로 논의·검토하고 있다. 먼저 정부와 정치권에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가 균형발전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 지방 대도시에 필요한 권한 이양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 완주·전주 통합 논의가 본궤도에 오른 지금이야말로, 정부가 특례시 지정과 인구기준 완화에 대한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할 때다. 완주·전주 통합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시‧군 통합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전북의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청사진이 분명해야 한다. 완주·전주 통합은 특례시 지정으로 완성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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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6.02.04 18:48

[사설] 지방선거 앞 공무원 정치적 중립 원칙 지켜야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공직사회의 정치적 중립 문제가 다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가 엊그제 노홍석 행정부지사 주재로 올해 첫 ‘도-시군 부단체장 회의’를 열고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따른 행정 공백 방지와 공무원 정치적 중립 준수 등을 강조한 것도 이러한 우려를 반영한 조치다. 도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단체장 사퇴 등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부단체장 중심의 안정적인 행정 운영을 당부했다. 선거가 행정의 흔들림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최소한의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최근 일부 지역에서 행정 행사나 정책 홍보 과정이 특정 인물이나 정치세력의 이해와 연결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행정은 정책 성과를 알리고 군민과 소통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선거 국면에서는 작은 오해도 불필요한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직자의 말 한마디가 정치적 해석의 대상이 되는 시기인 만큼 더욱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인구 규모가 크지 않은 지역일수록 행정 내부의 움직임이 선거 판세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매 선거때마다 특정 후보와의 관계를 통해 승진이나 요직을 맡았다는 뒷말이 나오곤 한다. 이런 형태의 논란이 나오는 것은 건강한 지방자치를 훼손하고 공직사회 전반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독이다.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줄서기나 눈치 보기 문화가 생긴다면 조직은 쉽게 위축되고 행정의 연속성도 약화된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선택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이 요구하는 기본 원칙이며, 지방자치의 신뢰를 떠받치는 핵심 가치다. 공무원은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지역을 지탱해야 하는 존재다. 특정 정치인과의 친소관계나 외부 압력에 흔들리지 않는 태도가 전문 행정가로서의 책임이다. 정치권 역시 공직사회를 선거 전략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행정은 정치의 하부기관이 아니라 주민을 위한 공공 시스템이다. 지방선거는 지역의 미래를 선택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공직사회는 법과 원칙을 기준으로 흔들림 없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민주주의의 최소한이자 지역 공동체의 신뢰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때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6.02.04 18:47

[오목대] 태풍의 눈 ‘통합 전주시장’

선거를 목전에 둔 한두 달은 평소 일년보다 더 긴 시간이다. 아닌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한 상황에서 대두된 이슈는 일거에 분위기를 바꿔버리고 전혀 예측불허의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요즘 지역의 핫이슈인 전주완주 통합 문제는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가장 휘발성이 있는 이슈다. 향후 통합 진행 추이나 민심 흐름 등에 따라 도지사, 전주시장, 완주군수 판도를 좌우할 핵변수가 될 것이다. 전남광주, 대전충남, 대구경북 등은 마치 거대한 범고래들이 협공을 통해 사냥에 나선 듯한 상황에서, 기초단체인 전주시와 완주군의 통합은 비록 범고래들의 행진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지역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것만큼은 분명하다. 1997년, 2009년, 2013년 3차례에 걸쳐 통합을 추진했으나 무산됐던 것이 바야흐로 성사 단계에 이르렀다. 만일 통합된다면 인구는 대략 72만여명, 면적은 1,027㎢로 규모의 경제를 기대할 수 있다. 행정구는 기존 완산구, 덕진구에 이어 2개의 구가 추가 설치될 것으로 전망된다. 통합시 명칭이나 청사 위치, 행재정적 지원 등 향후 논의를 거쳐 결정해야 할 사항이 산적해있는데 결국 특별법을 어떻게 만드는가에 달려있다. 전주라는 지명의 역사는 1200년이나 되고 국제적인 인지도가 높아 올림픽 유치 등을 감안하면 통합시 명칭은 전주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통합이 되더라도 사실 완주지역 도의원이나 군의원 지역구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나 단체장은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한때 통합시의회 의장을 완주 출신이 맡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기도 했는데 핵심은 통합시장이다. 이론적으로만 보자면 가급적 완주 출신 인사가 첫 통합시장을 맡는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현실정치는 전혀 다르다. 완주군수에 도전장을 낸 유희태, 이돈승, 국영석, 임상규씨 등은 완주 출신이 첫 통합시장을 해야 한다는데 공감하겠지만, 전주시장을 노리고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던 우범기, 조지훈, 국주영은씨 등은 지지도나 민심에 따르면 되지 인위적으로 특정 지역 출신이 맡아야 한다는 논리에 동의하기 어려울 거다. 이때문에 지역정가 일각에서는 정치사회적으로 중량감있는 제3의 인물이 통합시장 후보로 급부상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내다보고 있다. “도지사 선거에 나섰는데 무슨 소리냐”며 본인은 펄쩍 뛰겠지만 항간에서는 농담반진담반 안호영 의원의 통합시장 출마 가능성을 거론하는 이도 있다. 어쨋든 통합시는 전북 인구의 절반 가량을 점유하기 때문에 첫 통합시장은 4년뒤 가장 유력한 도지사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일 통합이 된다면 김윤덕, 이성윤, 정동영, 안호영 의원의 관심사도 빠르게 통합시장 쪽으로 쏠릴 소지가 있다. 메가톤급 이슈인 전주완주 통합 문제는 머지않아 첫 통합시장 건이 핵심의제로 떠오를것 같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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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6.02.04 18:47

[의정단상] 공직 후보자, 아는 만큼 참모습이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인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문으로 널리 알려진 이 말은, 사실 조선시대 문장가 저암 유한준의 글에서 유래했다. 원문은 ‘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즉 ‘알면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비로소 참모습이 보인다’는 뜻이다. 무엇을 얼마나 알고 마음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대상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말이다. 이 말은 사람을 선택하는 일, 곧 선거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선거는 결국 ‘사람’을 제대로 보는 일이다. 그 사람을 판단하는 데 필요한 정보는 선거의 과정 속에 있다. 선거에 무관심하면 후보자의 겉모습과 자극적인 언행만 기억에 남기 쉽다. 반대로 그 흐름을 지켜볼수록, 우리는 후보자를 더 정확히 읽어낼 수 있다. 후보가 어떤 공약을 준비했는지, 검증의 자리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품격을 지키는지 이 모든 것이 후보를 ‘제대로 보는 눈’을 만든다. 필자는 일전에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빌려 ‘선거가 만사’라고 강조한 바 있다. 선거는 작게는 한 지역의, 크게는 국가의 방향을 좌우하는 중대한 선택이다. 누가 대표가 되느냐에 따라 지역의 정책이 달라지고, 예산의 쓰임이 달라지며, 우리의 일상과 지역의 미래 또한 달라진다. 선거는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우리의 내일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이다. 지난 23일부터 31일까지 더불어민주당 전북특별자치도당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출마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예비후보자 자격심사 신청 접수를 시작했다. 기초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을 대상으로 한 이번 절차는, 전북의 미래를 이끌 인재들이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첫 단계다. 지방선거의 시계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전북특별자치도당 위원장으로서 필자는 이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 출마자들이 정책과 비전으로 경쟁하고, 유권자가 그 과정을 지켜보며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도당의 역할이다. 선거의 출발선이 바로 서야, 그 이후의 경쟁도 신뢰를 얻을 수 있다. 현장에서의 운영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 역시 바로 서야 한다. 필자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으로서 선거의 근간을 바로 세우는 데 힘을 쏟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농산어촌의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발의는, 지방 시·도 의원 정수 산정 과정에서 기초자치단체 주민의 목소리가 소외되지 않도록 제도의 균형을 바로 세우기 위한 시도다. 이는 지역의 규모나 여건에 따라 정치적 대표성이 약화되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로잡기 위함이다. 그러나 아무리 공정한 규칙을 마련하고 제도를 정비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좋은 선거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분명한 것은 선거가 유권자의 관심과 참여 속에서 비로소 살아난다는 사실이다. 도민 여러분께서 선거의 전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후보와 정책을 더 알고 이해할수록 후보의 참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힘도 함께 자라난다.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는 결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전북의 미래를 여는 선택의 과정에 동참해 주시길 바란다. /윤준병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정읍시고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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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04 18:46

[타향에서] 관광 전주, 경주에서 배워라

얼마 전 경주를 여행하며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화려한 유적의 규모가 아니었다. 시티 관광버스 안내원의 태도와 열정이었다. 그는 단순히 정해진 멘트를 읽는 가이드가 아니었다. 경주의 지리와 역사, 통일신라의 형성과 쇠락, 왕릉 하나하나의 의미를 마치 고등학교 역사 교사, 아니 그 이상의 전문성을 지닌 사람처럼 풀어냈다. 관광객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고, 버스 안은 짧은 이동 시간에도 유쾌한 역사 교실이 되었다. 설명이 끝날 때마다 감탄이 흘러나왔고, 일부 관광객은 “이런 안내라면 다시 경주에 오고 싶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관광은 시설이 아니라 사람의 품격이 완성한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확인한 순간이었다. 경주는 면적이 넓고 자원이 많은 도시다. 서울의 두 배에 이르는 공간, 전주보다 훨씬 큰 도시 규모는 분명한 장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관광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불국사 인근의 오래된 숙박시설이 문을 닫는 현실 속에서도 경주는 멈추지 않고 관광의 질을 끌어올리고 있다. 석굴암과 다보탑, 왕릉과 고분군에 현대 조명 기술과 디지털 해설을 접목해 과거를 현재의 체험으로 바꾸고 있다. 특히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첨성대는 그 상징성을 새롭게 해석한 대표 사례다. 매우 단순하고 자그마한 구조물이지만, 여기에 AI 기술을 활용한 미디어아트를 입혀 야간 관광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낮에 보는 유적이 지식이라면 밤에 만나는 첨성대는 감동이다. 경주는 역사를 박제하지 않고 살아 있는 콘텐츠로 되살려 세대와 국경을 넘어 공감을 이끌어 낸다. 이것이 관광 도시가 갖춰야 할 시대 감각이다. 전라북도는 어떤가. 우리는 전주 한옥마을이라는 강력한 상징을 갖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전주 시티 관광’에 머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전북의 역사와 문화는 전주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김제의 지평선과 농경문화, 익산의 백제 유산, 완주의 자연과 생태, 임실의 치즈 산업과 생활문화는 모두 전주와 연결된 자산이다. 여기에 전주와 김제 사이의 모악산을 비롯한 크고 작은 명산, 금산사를 중심으로 한 불교 문화, 모악산 일대에 공존하는 기독교와 천주교 유산, 증산도와 동학 전통까지 더해지면 이 지역은 대한민국 영성 철학의 보고라 할 만하다. 이 보석들을 하나의 서사로 엮지 못한 것이 우리의 한계였다. 이제 필요한 것은 통합 전주 마케팅, 더 나아가 통합 전북 관광 전략이다. 관광은 점이 아니라 선이고, 선이 이어져야 길이 된다. 길이 만들어질 때 체류 시간이 늘고 지역 경제도 살아난다. 특히 익산·김제·정읍·전주를 잇는 KTX 접근성은 젊은 MZ 세대를 야간 관광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결정적 기반이다. 여기에 AI 기술과 글로컬라이제이션의 관점이 더해져야 한다. 지역의 이야기를 세계인이 이해할 언어로 풀어내는 상상력, 과거를 현재의 체험으로 바꾸는 기술이 필요하다. 나아가 익산의 백제 문화유산과 전주의 후백제 역사 스토리를 결합한다면 전주는 단순히 조선시대의 역사 도시에 머무르지 않는다. 삼국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반도 정신문화의 흐름을 보여 주는 상징 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관광은 풍경을 소비하는 산업이 아니라 시간을 여행하게 하는 산업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태도다. 전북은 자원이 없어서 뒤처진 곳이 아니다. 스스로를 작게 보는 마음이 발목을 잡아 왔다. 경주가 보여 준 자긍심과 준비된 사람의 힘을 전주와 전북은 겸허히 배워야 한다. 관광은 지역의 얼굴이다. 그 얼굴에 자신감과 품격이 담길 때 사람은 다시 그곳을 찾는다. /곽영길 전북도민회중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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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04 18:46

[기고] 남원 모노레일 500억 참사, 시민은 분노한다

2026년 1월 29일, 대법원은 남원춘향테마파크 모노레일 사건에서 남원시의 최종 패소를 확정했다. 남원시와 민간개발사업자 간의 실시협약은 유효하고, 지방의회 의결을 거친 행위의 대외적 효력까지 부인하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남원시의 주장을 모두 배척하였다. 문제의 핵심은 남원시가 사용‧수익 허가를 지연시키고 사업을 중단함으로써 계약을 어겼다는 데 있다. 결국 남원시는 원금 405억 원에 연 12% 이자를 더한 500억 원대의 배상금을 시민의 혈세로 떠안게 됐다. ​이 사업은 전임 시장의 주도로 시작돼 시장 교체와 책임 떠넘기기가 반복된 끝에 남원시는 재정 파탄의 벼랑으로 몰렸다. 이는 시장, 의회, 공무원이 함께 만든 행정 실패이자 정책 붕괴다. 이 사태의 실체와 책임자를 단호히 밝혀야 한다. 첫째, 재정 파탄의 전모를 투명하게 공개하라. 남원시의 재정자립도는 8.9%로 전국 최하위권이다. 이 열악한 형편에서 500억 이라는 거금은 시민의 숨통을 죄는 족쇄이다. 복지, 교육, 청년, 노인, 도시인프라 예산을 잠식할 것이 분명하다. 시는 향후 5년, 10년 단위의 변제 계획과 어떤 사업들을 포기할 것인지, 재원 조달 방안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남원시민은 이 모든 과정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둘째, 행정과 정치적 책임자를 밝혀라. 모노레일은 사업구상, 협약체결, 의회의결, 중단결정, 상고과정에 수많은 사람이 관여한 사업이다. 투자심사와 법적 검토는 적정했는가? 협약조항은 왜 이렇게 남원시에 불리하게 작성되었는가? 당시 찬성한 시의원들은 누구이며 어떤 결정을 내렸는가? 그 결과에 따라 징계·인사조치·구상권 청구 등 실질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번 사태에 대해 침묵하는 지역 정치인과 국회의원도 명확한 입장과 대응 방안을 속히 제시하여야 한다. 셋째, 대형 사업 계약 시스템을 백지에서 다시 세워라. 건축·관광·환경 등 대규모 사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시장 교체 때마다 정책이 바뀌는 구조를 그대로 둔다면 제2의 모노레일 사태는 또다시 재현될 것이다. 앞으로 모든 민간투자, 개발사업은 타당성 조사, 재정심사, 공개토론, 외부 전문가 자문을 의무화해야 한다. 협약 문구 하나까지 점검해, 원칙이 철저히 작동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넷째, 남원시민은 행동으로 심판하라. 다가오는 6월3일 지방선거에서 남원 시민은 시장, 시의원, 도의원 후보에게 모노레일 사태에 대한 평가와 재발 방지 대책을 구체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구호만 번지르르하고 정책도 대안도 없는, 자리만 지키고 제 역할은 하지 않는 이른바 시위소찬(尸位素餐)형 후보는 과감히 떨어뜨려야 한다. 다섯째, 주민감사와 주민소송으로 책임을 물어라. 주민소송은 지방자치단체의 위법 행위나 예산 낭비에 대해 주민이 직접 책임을 묻는 제도다. 모노레일 협약 체결, 사업 중단, 상고 결정 과정에서 위법·부당한 점이 있었다면 주민감사를 청구하고, 그 결과 위법성이 확인될 경우 주민소송과 구상권 행사를 통해 책임자에게 합당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이 사업은 전임 시장이 시작했지만, 그 대가는 남원 시민의 분노와 좌절, 허탈감으로 돌아왔다. 철저한 책임 추궁이야말로 또 다른 모노레일 사태를 끊어내는 유일한 길이다. 그것이 남원을 다시 세우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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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04 18:45

[사설] 정부는 완전통합에도 재정지원 규모 밝혀라

광역 자치단체 간 통합이 아닌 기초자치단체 간 통합 문제가 전국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끝까지 안 될 것처럼 보였던 과제가 일거에 풀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중앙정부 차원에서 확실한 로드맵과 행재정적 지원을 보장해야만 그동안 통합에 강력 반대했던 상당수 완주군민들과 완주군의회가 납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호영 국회의원이 전격적인 통합 추진 방침을 밝힌 다음날 완주전주통합추진연합회와 완주역사복원추진위원회 등 전주·완주 행정통합 찬성단체들은 “안 의원과 정치를 함께해온 완주군의원들도 원만하게 전주·완주 통합을 의결해 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이들은 특히 어렵게 이뤄진 통합 결단이 실현되려면 정부의 재정적·행정적 지원뿐 아니라 국회의 입법 지원도 신속히 진행돼야 한다고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지적했다. 하지만 3일 완주전주통합반대완주군민대책위원회는 “안호영 국회의원의 (전주·완주) 행정통합 추진 발표에 대해 규탄한다”면서 “완주군민 동의 없는 통합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통합에 대한 주민 선택 및 민주적 절차 보장, 전북 정치권의 주민자치·자기 결정권 보장 등을 중앙정부에 요구했다. 이날 회견에는 그동안 통합에 강력하게 반대한 완주군의회 의원 11명 전원이 참석했다. 이제 지리멸렬한 논란은 그만두고 행안부가 조속히 완주군의회의 의결을 위한 로드맵을 발표해야 한다. 관건은 전주와 완주가 통합할 경우 중앙정부 차원에서 어떤 지원이 있을것인가 하는 것이다. 만일 지원책이 보잘것 없으면 완주군민이나 완주군의원들이 결단을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예를들면 제2차 공공기관 이전 시 우대 조치나 특례시 지정과 4개 행정구 설치 등은 중앙정부가 즉시 화답할 수 있는 문제다. 재정적 지원은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다. 만일 이런 조치가 선행된다면 완주군의원들은 이제 통큰 결단을 해야 할 때다. 다른 지역에서는 시도간 광역통합을 하는 마당에 전북에서는 기초통합도 못한다면 두고두고 회한이 남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군의원들이 통합에 따른 부작용과 우려를 갖는 것은 너무 당연하겠으나 일정부분 중앙정부의 화답이 있을 경우엔 미래를 위한 통 큰 결단을 해주길 간곡히 호소한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6.02.03 18:30

[사설] 남원파크, 전·현직 시장에 구상권 행사해야

남원시가 ‘테마파크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다. 대법원은 지난 29일 남원테마파크 사업 중단과 관련해 남원시의 책임을 인정하고 약 500억 원에 달하는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가뜩이나 열악한 남원시 재정이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번 사건은 계약 당사자인 전임 이환주 시장과 이를 뒤엎은 현 최경식 시장의 공동책임이다. 또 이 사업을 앞장서 추진한 관계 공무원과 사업 승인 및 집행과정에 동의한 남원시의회 역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칫 시민의 혈세가 낭비될 수 있는 만큼 주민소송을 통해 전현직 시장과 관계자들에게 구상권 청구 등 모든 방안을 강구했으면 한다. 이 사건은 2020년 이환주 전임 시장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당시 남원시와 남원테마파크(주)는 함파우관광지에 테마파크를 완공하고, 시설물을 시에 기부채납하는 대신 20년간 민간사업자가 운영권을 갖는 조건의 협약을 체결했다. 이후 2022년, 모노레일과 집와이어 등을 갖춘 놀이시설을 완공했다. 이 과정에서 사업자는 남원시의 보증을 담보로 금융대주단으로부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자금 405억원을 대출받았다. 그러나 2022년 6월 최경식 시장이 취임하면서 사용승인 허가와 기부채납 등 행정절차가 중단됐다. 그러자 민간사업자는 남원시에 대출원리금 등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대주단의 손을 들어주었고 대법원 또한 원심의 판단을 받아들여 남원시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 전부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남원시가 테마파크 사업 추진 과정에서 충분한 사업성 검토를 하지 않았고, 이후 사용·수익 허가 거부와 대체 시행자 선정 의무 역시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사업 전 과정에서 남원시가 책임을 소홀히 했다고 본 것이다. 남원시는 2025년 예산이 1조가량으로 자체수입은 800억 원 남짓한 수준이다. 재정자립도는 8.98%로 전국 최하위다. 그런데 이 사업으로 한 달 4억 원이 넘는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최 시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즉시 사과하고 전임 시장과 함께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나아가 6·3 지방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하는 등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남원시민들은 주민소송을 통해 구상권을 행사하고 공론화를 통해 테마파크 시설 처리 방향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6.02.03 18:29

[오목대] 표절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있다. 표절 논란이다. 이번에는 전북교육감 선거에 표절 논란이 불거졌다. 낯설지 않은 장면이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논란의 중심에 선 후보의 즉각적인 사과다. 표절 논란의 중심에 선 후보가 직접 나서 표절을 인정하며 사과했지만, 여진은 거세다. 여기에 또 하나의 장면이 더해졌다. 표절 후보를 비난하고 나선 상대 후보의 대필 논란이다. ‘내로남불’, 서로를 향해 원색적 비판까지 등장한 선거판에서 ‘표절’과 ‘대필’이 맞서 그 경중을 가리는 듯한 형국은 한편의 코미디와도 같다. 표절과 대필의 무게는 ‘어떤 것이 더 나쁜가’를 따져 경중으로 가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윤리의 문제’로 다뤄져야 옳다. 돌아보면 선거 국면에서의 ‘표절’은 언제나 윤리적 기준으로 적용되지 않고 전략적 선택으로 호출된 ‘재료’였다. 도덕성과 자질, 혹은 정직을 의심케 하는 프레임이 만들어내는 것은 표절 그 자체가 아니라 표절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였다. 그러니 표절은 증명되어야 할 사실이라기보다 의심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작동하기 일쑤였다. 이쯤 되면 표절은 더 이상 윤리의 영역이 아니라 정쟁의 영역이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표절 논란의 핵심은 비껴나기 마련이니,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과는 문제의 출발점이어야 하지만, 선거 국면에서의 사과는 오히려 위험한 국면을 넘기는 장치로 작동하기 쉽다. 그 결과 표절은 해결되지 않은 채 선거 속으로 흡수돼버린다. 표절은 사과로 유예되고 책임은 선거로 미뤄지는 셈이다. 사실 정직함에 보상이 없는 시스템은 우리 선거판의 오랜 관행이었다. 누가 더 옳은가 보다는 누가 더 오래 버티는가에, 무엇이 옳은가 보다는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선거판에서 후보들은 윤리를 성찰하는 대신 위기관리 기술을 먼저 배웠다. 선거와 정치가 ‘가치의 경쟁’이 되지 못하고 ‘버티기의 기술’로 작동하는 현실이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유권자에게 남는 것은 선택의 피로감이다. 표절이 드러나고, 사과가 이어지고, 다시 공방이 반복되는 동안 유권자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지 점점 혼란스러워진다. 윤리의 문제는 설명과 해명의 언어 속에서 희미해지고, 남는 것은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고르는 선택뿐이다. 이 피로감이 반복될수록 선거는 기준을 세우는 시간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을 확인하는 절차로 변해간다. 윤리가 늘 결과 뒤에 서게 되는 형국이니, 윤리를 공적 기준으로 세우는 일은 더 어려워진다. 이번 교육감 선거를 보면서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윤리는 언제 어디서 작동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정치인, 어떤 교육감을 원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치러지는 선거라면, 결과보다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은 우리의 기준일지 모른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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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6.02.03 18:29

[새벽메아리] 시민예술, 무대와 삶을 잇는 다리

시민예술의 현장은 생각보다 폭넓다. 아침마다 모여 합창을 하는 사람들, 주말마다 연극 연습을 하는 시민 배우들, 악기를 처음 잡아본 이들이 결성한 직장인 밴드까지. 이들에게 예술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일상의 일부다. 공연의 완성도만큼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와 변화이기에 누군가는 그 과정속에서 자신감을 얻고, 누군가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진다. 이러한 흐름은 해외에서도 이미 중요한 문화적 실험으로 자리 잡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의 예술집단 ‘리미니 프로토콜(Rimini Protokoll)’이다. 이들은 전문 배우 대신 일상의 전문가들(평범한 시민들)을 무대 위 주체로 세운다. 이 작업은 “전문가만이 예술을 한다”는 오래된 전제를 흔들며, 시민이 예술의 단순한 참여자가 아니라 공동 창작자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리미니 프로토콜의 사례는 시민예술이 단순한 취미 활동이 아니라, 동시대 예술의 중요한 형식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는 전문예술의 위상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이 사회와 만나는 새로운 통로를 확장하는 일에 가깝다. 시민의 경험이 예술적 형식과 만나면서 무대는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되고, 전문예술 역시 새로운 질문을 얻게 된다. 이러한 공존의 모델은 공공극장의 운영 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독일과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는 시립극장이나 주립극장이 전문극단의 공연뿐 아니라 시민 극단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한다. 같은 공간 안에서 다양한 형식의 모두를 위한 예술이 자연스럽게 순환하는 구조다. 시민들은 단순히 관객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극장의 또 다른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공공극장이 시민연극과 전문연극을 동시에 품을 때, 극장은 소비 공간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전문예술은 시민에게 영감을 주고, 시민예술은 전문예술에 새로운 감각을 제공한다. 두 영역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지탱하는 관계다. 그렇게 예술이 확장되며 도시 문화의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간다. 우리 지역의 현실을 돌아보면 아직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다양한 시민예술 활동이 단순한 예술교육 내지 평생교육 형태로만 존재할 뿐 지역예술의 한 분야로서 공생을 유도하는 방향성은 아직 이르다는 판단이다. 그렇기에 공공문화시설 역시 여전히 직업예술 중심의 운영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시민예술은 전문가가 모든 것을 이끌어가는 구조에서 벗어날 때 더욱 건강해진다. 예술가의 역할은 지시자가 아니라 촉진자에 가깝다. 시민들이 스스로 의견을 내고, 실패를 겪고, 다시 시도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때 시민예술은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시민이 주체가 되는 문화적 경험으로 확장된다. 그렇기에 시민예술이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해당 분야 직업예술인들의 관심과 협력도 필요하지만 이러한 지원이 없더라도 시민예술단체가 스스로 판단하고, 운영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방법에 대해 교육하고 보조해야 한다. 그렇게 예술이 삶으로 스며들 때, 도시는 더 이상 차가운 공간이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가 흐르는 무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무대를 채우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의 도시는 오늘보다 조금 더 따뜻한 내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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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03 18:29

[권혁남의 一口一言] 안호영 의원의 위대한 결단

마침내 깃발이 올랐다. 그것은 전북의 어둠을 태우는 횃불이다. 안호영 의원이 완주·전주 통합 찬성을 공식 선언했다. 180만 도민의 30년 묵은 체증이 한 방에 씻겨 나갔다. 2009년부터 통합운동을 벌여왔던 나로서는 그 감격을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동안 모든 눈과 귀가 안호영 의원에게 쏠려있었다. 모든 도민은 오직 안 의원의 결단만을 기다렸다. 전북이 소멸의 길로 갈 것인지, 아니면 대전환의 길로 갈 것인지. 그 운명의 열쇠는 온전히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드디어 그가 결단했다. 그의 결단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통합 찬반의 거센 파도 속에서 얼마나 많은 번민을 했겠는가. 장석주 시인은 「대추 한 알」에서 노래했다. 대추는 저절로 붉어지지 않았다고. 수많은 태풍과 천둥, 벼락을 견뎌낸 끝에 비로소 붉어졌다고. 하물며 통합 반대 여론이 더 우세한 지역 정서를 뚫고 내린 결정은 오죽 많은 천둥 번개와 태풍을 맞았겠는가. 분명 먼 훗날 안의원의 용기 있는 결단은 전북의 미래를 바꿔놓은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웃인 광주·전남과 대전·충남은 더 큰 몸집으로 변신하며 지역소멸 위기 돌파에 나서고 있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 전북만이 내부 통합조차 못 한 채 제자리에 머문다면 전북은 위아래 양 블랙홀 사이에서 고사할 위험성이 매우 크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를 돌파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완주·전주 통합뿐이다. 역사상 위대한 결단은 모두가 ‘여론’과 ‘시기상조’ 논리를 넘어설 때 이뤄졌다. 링컨, 세종대왕, 이병철이 그랬다. 링컨의 노예해방은 국민 다수의 반대 속에서 내려진 고독한 결단이었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역시 사대부들의 조롱과 저항 속에서 이뤄졌다. 이병철 회장의 반도체 진출은 미친 짓이라는 비아냥과 반대를 감수한 도박이었다. 만약 이들이 여론의 눈치를 살피거나 시기상조론과 타협했다면 오늘의 미국, 대한민국, 삼성이 존재했겠는가. 사실 정치인이 주민정서에 편승하는 결정은 매우 쉬운 선택이다.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무책임하고 비겁한 도피이다. 역사는 대중의 박수 속에 내려진 결정을 기억하지 않는다. 반대를 무릅쓴 결단만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전북은 지역소멸 위기가 아니라 이미 소멸이 진행 중이다. 이제 전북에는 지역소멸에 맞설 통합시라는 강력한 동력이 생기게 되었다. 새롭게 탄생할 통합시는 꺼져가는 전북을 되살리는 결정적인 성장엔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샴페인은 아직 이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법. 어쩌면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앞으로 통합이 완성되기까지 적지 않은 진통과 우여곡절이 빚어질 것이다. 반대파는 야료와 가짜뉴스, 폭력, 선동을 동원해 끈질기게 방해할 것이다. 이를 지혜롭게 넘겨야 한다. 이번 통합의 일등 공신인 정동영 의원을 필두로 전북의 의원들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가장 먼저 중앙정부로부터 5극에 버금가는 대규모 지원을 약속받고, 특례들을 법제화해야 한다. 동시에 전주시와 완주군 의회는 신속히 통합 의결을 마쳐야 한다. 이어서 통합추진기구를 구성하여 완주군민의 우려를 말끔히 불식시키는 세밀한 후속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전주가 모든 걸 양보하여 완주군민의 마음을 얻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한 정치인의 용기 있는 결단으로 전북의 미래가 활짝 열리게 되었다. 전북의 위대한 비상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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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03 18:28

[기고] 동학농민혁명 서훈, 왜 1차 봉기 참여자 배제하는가

최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 추진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러나 그 대상을 ‘2차 봉기 참여자’로 한정하면서, 동학농민혁명의 출발점이자 보국안민과 민주개혁의 가치를 담은 1차 봉기는 서훈 논의의 장에서 사실상 배제되고 있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시기별로 나누어 평가하는 이 같은 접근이 과연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성격과 전북이 지켜온 혁명의 의미를 온전히 반영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전북특별자치도는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이자 성지다. 특히 시기적으로 나누는 동학농민혁명 1차 봉기는 단순히 지역적 민란을 넘어, 부패한 신분제 봉건 질서를 타파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서막이었다. 그러나 최근 일부 단체와 정치권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독립유공자 서훈 논의의 골자를 보면, 전북특별자치도가 지켜온 이 소중한 역사의 전반부가 통째로 잘려 나갈 위기에 처해 있다. 이들의 주장대로 하면, 동학농민군 토벌에 참여한 안중근 의사와 혁명 지도자 김개남을 밀고한 임병찬 의병장 등은 졸지에 ‘독립유공자를 토벌하거나 밀고한 자’가 되는 황당무계한 역사적 모순과 민족 영웅을 모독하고 자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서훈 방식을 ‘항일’의 단일 기준에 담은 「독립유공자법」에 맞추다 보니,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효시라 할 수 있는 1차 봉기의 ‘보국안민․민주개혁’ 가치를 부당하게 저평가하는 데 머물지 않고 아예 배제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즉 1차 봉기와 집강소 시기에 희생당한 선열들을 서훈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구조적 모순을 낳는다. 또한 역사의 연속성을 무시한다는 지적을 넘어 참여자 간 형평성 상실은 물론 동학농민혁명이라는 단일 사건을 두 동강 내고, 참여자들은 물론 그 후손들마저 두 패로 나누는 분열과 갈등을 유도한다는 우려를 낳는다. 한편 ‘2차 참여자는 독립유공자로 서훈하고, 1차 참여자는 별도의 명예 회복으로 예우하자’라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부족하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인 동학농민혁명을 편의에 따라 둘로 나누고, 예우의 성격과 무게를 달리 매기겠다는 발상은 또 다른 차별이고, 혁명 참여자들을 모독하는 행위다. 뿌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열매만 취하겠다는 태도는 역사 앞에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현행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은 일제강점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것은 법률 용어 자체가 ‘독립’을 전제로 한다는 데 있다. 이는 상실된 ‘국권’을 되찾아 본래대로 행사하는, 즉 ‘회복’하는데 공헌한 선열을 기억하고 기리며 예우하는 데 있음을 뜻한다. 이에 비추어 보면,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1894년은 국권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일본제국주의로부터 단계적으로 국권을 침탈당하는 시기이다. 따라서 현행 독립유공자법은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시대적 특수성과 국권 침탈 이전의 항일 투쟁이라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포괄하기에 법률적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억지로 기존의 틀에 끼워 맞추기보다 동학농민혁명의 특수성을 반영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동학농민혁명은 ‘안으로 보국안민, 밖으로 척양척왜’라는 두 기둥을 모두 수호할 때 비로소 온전한 기억과 기림, 그리고 계승의 토대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은 ‘2차 봉기 참여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독립유공자 서훈’이 아니라 동학농민혁명이 단순한 항일 투쟁을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라는 입법 절차를 거쳐 지위를 정립하는 일이다. 즉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국권 수호의 뿌리가 동학농민혁명에 있음을 입법으로 확정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역사적 근간을 공고히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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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03 18:27

[사설] 안호영 의원 통합 결단, 끝까지 최선을

주사위는 던져졌다. 전북발전에 중대한 분수령이 될수도 있는 전주완주 통합문제가 사실상 큰 물꼬를 트게 됐다. 통합을 거쳐 광역화로 가는 전국적인 흐름과 정반대로 가던 전북은 마침내 전주시와 완주군의 통합이라고 하는 커다란 전기를 맞게 됐다. 사실 전주시와 완주군의 통합은 찻잔속의 태풍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대통합이 아닌 소통합에 불과하지만,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그나마 차선의 수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전주완주 통합의 키맨인 안호영 의원(3선 완주 진안 무주)은 2일 기자회견을 통해 전주완주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만일 전북이 스스로 새로운 전략과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지역발전이 퇴보하는 것은 물론, 자칫 역사적 죄인이 될 수도 있다는 엄중한 상황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늦었지만 정치적 결단을 한 안호영 의원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며 그 충정 또한 나름의 평가를 받을만 하다. 하지만 6월 3일 지방선거가 목전이 이른 지금 전주와 완주 통합은 시간에 쫓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중앙정부가 바로 화답해야 하고, 완주군의회도 지금까지 어떤 입장을 견지했는지 여부는 별개로 하고 중대결단을 내려야 한다. 지방선거 일정 등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주민투표를 할만큼 충분한 물리적인 시간은 없다. 완주군의원들이 표결형식을 통해 결정하는 방식 말고는 대안을 찾기 어렵다. 지역위원장인 안호영 의원이 결단을 한 만큼 완주군의원들도 이젠 결단해야 할 때다. 하지만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전북에 대해 5극과 대등한 수준의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광역 시도간 통합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인정할만한 행재정적 지원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통합 성사를 예단키 어렵다. 안호영 의원이 앞장서고 전주지역 김윤덕, 이성윤, 정동영 의원과 김관영 전북지사가 적극 통합에 찬성하는 상황속에서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관건은 완주 군민이 흡족할만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안이 도출돼야 한다는 거다. 단순히 예산지원뿐 아니라 당장 오는 6월 지방선거때 초대 통합시장이나 통합시의회 의장을 완주에 통크게 양보하는 것도 검토할만하다. 우리는 특히 중앙정부의 화답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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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6.02.02 19:06

[사설] 전주시, 고사 위기의 기령당 활성화하라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경로당인 기령당(耆寧堂)이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노후화된 건물 보수는커녕 최소한의 운영마저 어렵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전주의 무형자산인 기로연(耆老宴)도 8년째 중단되고 있다. 역사문화도시를 지향하는 전주시는 전주의 자랑스러운 문화자산인 기령당을 지원하고 활성화 방안을 찾았으면 한다. 전주 완산칠봉 자락에 자리 잡은 기령당은 전국 7만 개에 이르는 경로당 중 가장 오래된 곳으로 꼽힌다. 기령당 측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전주성 함락으로 문서가 소실돼 정확한 창립 연도는 알 수 없으나 1610년 중건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올해 창당 429주년인 셈이다. 이를 떠나서라도 정면 5칸, 측면 3칸의 목조 건물인 기령당 본채는 상량문에 1844년에 건립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 건물은 한옥의 변화 과정과 건축 기법을 보여주는 건축적 가치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경로 행사인 기로연을 이어오는 등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23년 3월 전주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또 1938년 건립된 기령당 사적비에 따르면 1899년 옛 관청 건물에 양로당을 창설하였으며 1921년 완산동으로 옮기면서 ‘기령당’이라고 이름하였다고 나와 있다. 기령당에는 현재 30여 개의 현판이 남아 있고 송덕비도 여럿 세워져 있다. 기령당은 설송 최규상이, 유경헌과 송석정은 효산 이광열이 썼고 창암 이삼만의 글씨도 남아 있다. 기령당이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것은 ‘전라도 선생안’과 ‘전주부 선생안’을 소장하고 있어서다. 선생안(先生案)은 조선시대 각 기관에서 전임 관원의 성명, 관직, 생년 등을 적어 놓은 것이다. 기령당의 경우 조선 중기 이후 관찰사가 부임하거나 도지사·시장 등이 취임하면 반드시 찾아와 지역 어른들에게 문안을 드렸으며 지금도 이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기령당은 지금 일반 경로당 중 하나로 취급돼 전주시에서 연간 약 570만 원의 운영비만 지원받고 있다. 또 현재 35명의 고령 회원들이 내는 연회비외 찬조금으로 유지되는 실정이다. 그러나 기령당은 천년고도 전주의 정체성을 지켜온 정신적 지주 중 하나임을 잊어선 안된다. 노후화된 건물을 보수하고 기로연을 재현하는 등 경로효친의 살아있는 현장으로서 역할을 하도록 각종 프로그램 운영 등 활성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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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6.02.02 19:05

[오목대] 리셋되는 행정, 중단의 비용

‘잘못된 시작’보다 ‘잘못된 멈춤’이 더 무거웠다. 길을 잘못 들었다면 즉각 멈춰 서서 돌아오는 게 최선일 것이다. 행정도 그럴까? 개인이나 단체의 판단과는 다르다. 잘못됐다는 이유만으로 약속을 멈추고 되돌릴 수 있다면, 행정은 공공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행정의 연속성과 공신력 문제다. 남원시민들이 충격에 빠졌다. 가뜩이나 열악한 시 재정을 뒤흔드는 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와서다. 최근 대법원이 남원 테마파크 사업에 자금을 빌려준 금융 대주단이 남원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남원시는 400억원대의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줘야 한다. 이번 사태는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현 시장이 취임 직후 전임 시장이 민간사업자와 체결한 협약을 뒤엎고 사용‧수익 허가를 내주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협약 해지에 따른 대체 시행자 선정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됐다. ‘잘못 끼운 첫 단추’라며 전임 시장의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법원이 문제삼은 것은 첫 단추가 아니라 그 단추를 풀어내는 방식이었다. 정책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행정이 약속을 어떻게 다뤘는지가 쟁점이 된 것이다. 특정 사업의 시비를 넘어, 행정의 연속성과 공신력이 무너졌을 때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 지 보여준 판결이다. 법정으로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전주시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반복됐다. 전주종합경기장 개발사업이 그렇다. 전임 시장의 행정행위를 무시하고 추진한 새 청사진이 민선 8기 들어 다시 물거품이 됐다. 그사이 행정력과 예산은 낭비됐고, 당초 계획된 사업은 늦어졌다. 또 시민들은 큰 혼란을 겪어야 했다. 민선 8기 새 단체장도 다르지 않았다. 이미 확정돼 1년 가까이 공사가 진행되던 전주 백제대로 자전거전용차로 조성사업을 전격 중단하고, 백지화했다. 매번 이런 식이라면 평가가 엇갈리거나 그럴 여지가 있는 사업은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된다. 언제 중단되고 변경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행정을 믿을 수 없게 된다. 2026년 다시 ‘선택의 해’다. 지자체장이 바뀌면 어김없이 도시의 청사진도 함께 바뀌었다. 물론 전임자의 흔적을 지우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적 비용은 고스란히 시민의 몫으로 남는다. 행정은 절대 리셋(Reset)되지 않는다. 누적될 뿐이다. 사람이 바뀌어도 계약과 합의, 그리고 법적 책임은 이어진다. 당연하다. 그렇다고 행정의 연속성이 ‘전임자가 시행한 정책이나 사업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떻게 멈출 것인가, 어떤 출구전략을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행정의 기술, 그리고 그만큼의 책임이 요구된다. 오는 6월 실시되는 지방선거를 통해 취임하게 될 새 단체장의 정책 결정에 이번 남원시의 사례가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기를 바란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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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6.02.02 19:04

[경제칼럼]전주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해본다

전 세계가 K-콘텐츠에 열광하는 시대다. 이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현상이 아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의 정체성은 끊임없이 확장되고 진화해 왔다. 이제 이 흐름 속에서 전주의 정체성 역시 다시 생각해볼 시점이다. 그 안에서 전주 콘텐츠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999년, 한국 영화계에는 이른바 ‘서편제와 쉬리 논쟁’이 있었다. 「쉬리」가 전국 693만 관객을 동원하며 1993년 「서편제」의 290만 명 기록을 크게 넘어서자, 문화계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국적 불명의 영화라며 비판했다. 그러나 재야 철학자 탁석산은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2000년 출간한 『한국의 정체성』에서 정체성은 현재성·대중성·주체성이라는 세 요소를 갖출 때 성립한다고 보았다. 이 기준에서 「쉬리」는 남북 분단이라는 한국 사회의 특수한 현실을 서구적 형식에 담아냈지만, 동시대 관객이 공감하고 향유할 수 있었고, 분명한 주체성을 지녔기에 한국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작품이었다. 형식이 서구적이든 한국적이든, 이 세 요소를 충족한다면 그것은 살아 있는 정체성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그 이후 한류의 역사를 이미 경험했다. 2000년대 초 H.O.T의 해외 진출과 드라마 「겨울연가」를 거쳐, 2019년 영화 「기생충」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2020년 BTS의 빌보드 차트 1위, 2021년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 흥행으로 이어지며 한류는 전 세계로 확산됐다. 이제 한국의 웹툰, 음식, 패션까지 전방위적으로 세계의 팬을 확보하고 있다.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탁석산은 2000년 당시, 한글은 한국의 정체성이지만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 머물러 있던 판소리와 한복은 현재성과 대중성을 잃어 정체성으로 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판소리와 한복 역시 한국의 정체성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역할이 있었다. 판소리에 재즈와 댄스를 결합한 이날치밴드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전주의 로컬 기업 ‘한복남’은 한복을 입고 거리를 걷는 경험을 통해 외국인 관광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 다른 전주의 브랜드 ‘리슬’은 한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글로벌 아이돌의 의상으로 선보였고, 밀라노 패션쇼 무대에도 올랐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오늘날 전통이나 정체성이라고 부르는 것들 역시 어느 순간 갑자기 완성된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고, 융합되고, 재창조되며 대중적으로 향유되는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이러한 창조성이 멈추는 순간, 정체성 역시 생명력을 잃게 된다. 전주의 정체성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전통문화의 고장’으로 정의되어 왔다. 그러나 전주의 진짜 정체성은 전국에서 창의적인 인재들이 모여들고, 서로 교류하며, 새로운 예술과 문화를 향유해 온 역동적인 토양에 있지 않을까. 한국 최초로 세계 1위를 기록한 비보잉 그룹 라스트포원, 그리고 브리티시 갓 탤런트 무대에서 세계의 관객을 매료시킨 전주대학교 태권도학과 싸울아비팀의 등장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전통문화의 고장’이라는 정체성만으로는 이러한 전주의 창조적 에너지를 온전히 이해하거나 키워내기 어렵다. 다음 세대가 전주를 K-콘텐츠의 중요한 발신지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이제는 그 길을 열어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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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02 19:04

[문화마주보기] HAI 시대, 지역사회 감응에도 주목

출판을 앞두고 작업 중인 시집에 추천서를 써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시인이 아닐뿐더러 그 작가를 알지도 못하는 나더러 왜 쓰라고 하는지 물었다. 이 책은 시인이 시를 쓰고, 시 하나하나마다 AI가 평론을 하는 독특한 방식인데 내가 적합할 것으로 생각되어 부탁한다는 것이다. 당황스러움을 싸맨 채 며칠간 생각을 쥐어짜고 있다. 요즘 시간개념으로는 꽤 오래 된 8년전, 나는 ‘4차산업과 소셜디자인 문화전략’에서 인간지능과 인공지능이 결합된 형태(HAI)가 어떻게 진화할 지를 3단계로 설명한바 있다. 대략 양적인 확장 -> 인간활동 대체 -> 위임과 같은 외부화로 진화할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지금 이 시집은 바로 HAI 합작품으로 구성됐고, 마지막 단계인 AI에 위임해 외부화된 평론이 당당하게 함께 자리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 우리는 매우 ‘숙련’되고 ‘보편화’된 AI를 끼고 산다. 많은 일들을 AI에 맡기고 있다. 컴퓨터가 두뇌를, 로봇이 몸 대신 위임받은 일을 잘 해준다. 이처럼 누구나 편히 쓰는 범용인공지능(AGI) 시대를 누리려면 인간의 창의성과 통합해서 수행하도록 세심히 관리해야 한다. 인간지능(HI)과 인공지능(AI)이 결합한 ‘HAI의 공진화’로 나아가는 지능사회를 위해 투명하고 책임 있는 시스템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일상생활의 인지보조, 스마트홈, 웨어러블에서 HAI 통합이 이뤄질수록 신뢰는 더욱 절실해진다. 지속발전을 위해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협업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 특히 지역사회에서라면 이런 사회적 관계망의 중심에서 공동 대응을 할 협력구조가 핵심 아닐까? 특히 분산형 협력의 기술적 토대인 디지털 플랫폼은 지리・언어・문화적 경계를 넘어 다양한 주체가 지식・자원・기술을 공유 협력하는 새로운 사회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뒤에 원격 협업 시스템, 온라인 공동창작, 오픈소스 기반 프로젝트가 급속 확대됐다. 시간・공간・인간에 구애받지 않는 ‘협력공진화’ 모델이 현실적으로 가능함을 잘 봤다. 지금 이 같은 AI전환의 시대에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혁신과 신뢰의 균형이다. 신뢰를 위한 활동 주체들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이처럼 우리는 인간과 기술이 서로의 숨결을 감지하는 시대에 산다. 앞에서 말한 HAI와는 다른 HAI(Human–AI Integration)가 요구된다. 그저 말장난으로 쓰는 것이 아니다. 단순한 기술융합을 넘어, 인간 사회 전체의 감응체계가 다시 짜여지는 조용한 혁명을 맞고 있다는 말이다. 앞에서 말한 1, 2단계에서의 AI는 효율과 예측의 도구로 여겼다. 이제 그 역할은 훨씬 더 섬세하고 관계적이며, 사회적 감정의 층위까지 비추는 ‘조감 장치’가 되어가고 있다. 기술이 인간의 감각을 대신하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의 감응을 확장시키는 시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감응성’에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지역사회적 감응이라면, 한 지역사회가 변화의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감정으로 해석하며, 어떤 방식으로 공동의 행동을 선택하는가를 뜻한다. 이는 경제나 제도의 문제를 넘어, 사회의 결을 이루는 정서적 지능이다. ‘휘몰이 충격’의 구조적 변화는 모두 감정의 파동을 동반한다. 그러니 감응을 읽지 못하는 지역사회는 변화를 관리할 수 없고, 감응을 외면한 정책은 설득력을 잃는다. 이제 시대는 숫자보다 정동을, 통계보다 감응을 보라고 말한다. 언제까지 소멸 타령이나 하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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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02 19:03

[기고] 영화 ‘사람과 고기’를 보고

지난해 말, 모처럼 정읍 출신 배우 박근형 교수님과 골프 라운딩을 함께했다. 그의 호방하고 재치 있는 유머 덕분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여든다섯의 나이가 무색하게도 그의 호쾌한 스윙과 비거리는 동반자 중 단연 압도적이었다. 그는 고향에서의 라운딩이 가장 편안하고 의미 있다고 말한다. 여전히 영화와 연극계의 산증인으로 빛나는 이유 역시 올곧은 삶의 자세와 그런 인생관 덕분일 것이다. 지난번 나는 ‘고창 문화의 전당’에서 상연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관람했다. 깊은 철학적 사유가 요구되는 난해한 작품이지만, 객석은 만원이었다. 거장의 연기를 직접 보고자, 관객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공연을 보고 나오며, 시골인 고창에서도 이런 연극을 만날 수 있는데 정읍에서는 왜 그동안 이런 문화적 기회가 드물까 하는 아쉬움이 교차했다. 이후 ‘전주 삼성문화회관’에서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관람했다. 극장은 수천 명의 관객으로 가득 찼지만, 공연이 시작되자 숨소리조차 죽이며 몰입하던 성숙한 관람 태도가 감동을 주었다.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무대에서 그는 쉼 없이 대사를 쏟아내며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는 열정적인 연기에 메료되었다. 무대 위에서 나이를 가늠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였다. 최근 박근형교수가 주연한 영화 <사람과 고기>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상영관을 찾아보았다. 아쉽게도 독립영화는 인근 전주나 광주에는 상영관이 없어 온라인으로 구매해 TV 화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각종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고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가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묵직한 울림을 담고 있었다. 영화 〈사람과 고기〉는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세 노인, 형준(박근형), 우식(장용), 화진(예수정)을 담담히 비춘다. 흔히 노년을 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라 말하지만, 영화 속 그들에겐 그럴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사회가 잊고 방치한 이 ‘외로운 섬’ 같은 존재들은 함께 밥을 먹고 온기를 나누며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그 생존의 몸부림은 때로 서글픈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양심을 뒤로한 채 공짜 고기를 먹으러 다니며, 위태로운 동행을 이어간다. 영화 속 그들이 저지르는 행위는 분명 사회적 규범을 어긋나는 일이다. 하지만 그 범죄 앞에서 관객은 쉽게 단죄의 잣대를 들이대지 못한다. 영화는 끝내 도덕적 판단을 유보한 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저들의 고독하고 남루한 삶에 대해 과연 우리는 책임이 없는가?“ 형준과 화진만이 지키는 외로운 우식의 장례식장에 찾아온 한 제자는 그는 시를 가르치던 교사였으며 시구는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목청껏 웃고 싶어서 크게 소리 내어 울었다.” “살기도 구찮고 죽기도 구찮다.” 그 시는 헤밍웨이의 <노인과바다> 속 한 문장을 떠오르게 하였다. “인간은 파멸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 노년은 단순히 스러져가는 과정이 아니라, 끝까지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버티는’ 숭고한 투쟁의 현장이다. 우리 곁의 소외된 노년들을 다시한번 돌아보며 삶의 의미를 되세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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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02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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