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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어렵다?”…어린이의 순수함으로 문턱 낮춘 유휴열미술관

미술관의 문법을 덜어낸 자리에 아이들의 무구한 상상력이 채워졌다. 유휴열미술관(관장 유가림)은 오는 31일까지 전주와 서울의 초등학생 31명이 창작한 ‘모두의 미술관 아이들이 그린 세상’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예술은 어렵다는 대중적인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기획됐다. 완결된 기교보다 ‘보는 행위’ 본연의 가치에 집중해 관람객들에게 예술 향유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은 아는 사람만 가는 곳이라는 심리적 문턱을 낮추는 데 집중한다. 미술관은 ‘모두의 미술관’ 시리즈의 첫 시작으로 어린이의 시선을 선택했다. 이는 어른이 되며 잊고 지낸 직관과 순수함을 예술을 통해 다시 발견하기 위한 시도다. 유가림 관장은 “아이들의 작품이 성인 관람객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통로가 되고, 어린이들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공적인 공간에 펼쳐 보이며 예술의 주인으로 성장하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참여한 아이들은 정해진 주제나 재료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작품을 완성했다. 도화지 위 그림부터 손으로 직접 만든 창작물까지 저마다의 개성을 담았다. ‘얼마나 잘 그렸는가’라는 기존의 평가 기준이 아닌, 아이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진심을 읽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이번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구경하는 것을 넘어 전 세대가 함께 즐기는 소통의 장을 지향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엉뚱하고 발랄한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고, 또래 어린이들은 서로의 그림을 보며 공감대를 쌓는다. 유휴열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누구나 차별 없이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모두를 위한 미술관’의 정체성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관람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가능하며 월요일은 휴관이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6.05.18 15:44

자매결연 25년, 전주시-가나자와시 ‘종이 인연’ 전통공예로 잇다

한지와 화지라는 종이 인연으로 시작된 전주시와 가나자와시의 동행이 올해로 25주년을 맞았다. 한지문화진흥원과 일본 가나자와시는 19일부터 24일까지 가나자와 21세기미술관에서 ‘제25회 전주 전통공예전’을 개최한다. 지난 2002년 첫발을 뗀 두 도시의 전통 공예 교류는 20년 넘게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 이번 전시는 전주의 정체성을 담은 한지와 다채로운 공예품 170여 점을 일본 현지에 소개한다. 전시에는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색지장 김혜미자, 국가무형유산 소목장 소병진, 목조각장 김종연 등 장인들을 포함한 55명의 작가가 참여해 한국 공예의 정수를 선보인다. 한지공예부터 옻칠, 자수, 침선, 입사에 이르기까지 전주 장인들의 섬세한 손길이 담긴 작품들이 가나자와 시민들을 만난다. 두 도시의 인연은 남다르다. 25년 전 자매도시를 맺던 당시 전주의 한지와 가나자와의 후타마타 화지로 제작된 제휴 문서에 서명하며 문화적 동질성을 확인했다. 이후 매년 서로의 도시를 오가며 작품을 전시하고 기술을 나누는 실질적인 교류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 가나자와의 가가상감 작가들이 전주를 찾아 워크숍을 연데 이어, 올해는 전주의 색지장 이수자 허석희 작가가 가나자와 시민들과 함께 ‘한지로 만드는 찻상’ 워크숍을 진행하며 교류의 온기를 직접 전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의 생활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무라야마 다카시 가나자와 시장은 “전통문화 계승에 힘쓰는 두 도시에 걸맞은 교류”라며 감사를 표했고, 김혜미자 이사장은 “전통은 이어지고 확장될 때 더욱 빛난다”며 지속적인 우호를 기원했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6.05.18 15:43

문자의 굴레를 벗고 조형의 실체가 되다, 전주현대미술관 기획전 ‘한글이 숨 쉬다’

580여년 전 세종대왕이 백성을 향한 긍휼한 마음으로 창제한 소통의 도구 한글이 기능적 의무를 내려놓고 시각적인 생명체로 재탄생했다. 전주현대미술관에서 29일까지 열리는 '한글이 숨 쉬다-Font Art 모색’은 납작한 기호로 박제된 문자에 조형적 숨결을 불어넣는 실험의 장이다. 지난해 첫선을 보였던 기획전을 계승한 이번 전시는 필획을 중시하는 전통서예와 색채를 강조하는 현대회화의 접점을 탐색한다. 이를 통해 디지털 텍스트가 지운 문자의 질감을 복원하려는 묵직한 논리적 화두를 던진다. 이번 전시에는 김춘선, 송하진, 박인선, 이기전, 이동근, 이성재, 이적요, 이희춘, 차유림, 최동명 등 10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한글을 각자의 문법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해 24개 자음과 모음이 품고 있는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시각화한다. 특히 서예는 색채를 수용해 회화로 나아가고 회화는 점획의 선형적 골격을 빌려 서예적 깊이를 확보하는 상호침투가 이번 전시의 핵심이다. 실제로 작품 면면을 보면 관습을 탈피하려는 구체적인 시도들이 읽힌다. 차유림 작품 ‘기록된 신체'는 인체의 원초적 곡선인 누드를 배경으로 문자를 배치해 인간의 관계와 생명력을 은유한다. 문자가 신체적 실체와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긴장감을 마주할 수 있다. 이적요는 붓질 대신 바느질이라는 수행적 노동을 택해 문자에 촉각적인 질감을 부여했다. 이희춘의 ‘머무는 것들’은 한글과 한문, 사람의 형상을 융합해 문자의 평면성을 입체적 서사로 전환한다. 서예가 송하진과 최동명은 전통서법의 경계를 허물어 자유롭고 거친 회화적 필치를 드러내어 서예의 새로운 영토를 제안한다. 이기전은 ‘물’이라는 소재를 통해 문자의 조형적 환영을 극대화했다. 실제로 캔버스 위에 투명한 에폭시 액체를 떨어트려 물방울의 굴절과 일렁이는 그림자를 구현한 작업은 문자가 조명 아래에서 입체적으로 부유하는 듯한 시각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이러한 시도는 디지털 텍스트가 지운 문자의 물성을 회복하려는 의도이자 한글이 가진 기하학적 과학성을 예술적 보편성으로 끌어올리려는 조형적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이기전 관장은 “추상이든 구상이든 우리가 평소에 보는 어떠한 형상들인데, 한글이라는 문자(주제)를 그림으로 표현해냈다는 것이 관람객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갈 것”이라며 “한글이 지닌 심미적인 가치와 정체성 그리고 장르 간의 융합을 눈으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6.05.14 16:44

숲속 도서관에 울려 퍼지는 시와 선율…박태건 시인 낭독 공연

시 낭독과 클래식이 만나 시민들에게 ‘착하고 순한 위로’를 건네는 공연이 열린다. 박태건 시인과 클래식 연주팀 ‘Tutti 앙상블’이 함께하는 낭독 공연 ‘당신에게 건네는 착하고 순한 위로’가 오는 15일 오후 3시 학산숲속시집도서관에서 개최된다. 시 낭독과 클래식 선율, 인문학적 해설이 어우러지는 이번 공연은 총 3부로 구성된다. 박 시인은 “시를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지만, 본래 시는 인간의 감정을 나누기 위해 존재했던 것”이라며 “일반적인 시 강연 형식에서 벗어나 음악과 함께하는 공연을 통해 시민들이 시를 보다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음악은 감정을 즉각적으로 전달하는 예술”이라며 “작곡가들이 음악 속에 담아낸 상실과 슬픔, 사랑의 감정은 시와도 맞닿아 있다. 이를 함께 연결하면 시와 음악 모두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공연에서는 박 시인의 시집 <고려인만두>에 수록된 작품들이 중심으로 소개된다. 시집 속 ‘우스또베’, ‘고래’, ‘근황’ 등 디아스포라와 유랑, 생태와 존재에 대한 질문을 담은 시편들이 바흐와 포레, 히사이시 조 등의 음악과 함께 낭독될 예정이다. 1부 ‘당신의 둥글고 단단한 시간’에서는 어머니들의 굽은 손가락과 삶의 주름 속에 숨겨진 떨림을 이야기하며, 오월의 열매처럼 시고도 달콤한 생의 기억을 돌아본다. 이어지는 2부 ‘눈물과 고독이 스며든 자리’에서는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중앙아시아의 차가운 빗돌 아래 잠든 고려인들의 애환을 담은 시와 클래식 선율의 만남이 깊은 울림을 전할 예정이다. 또한 정주(定住)의 욕망을 넘어선 유목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자유를 향한 갈망을 함께 조명한다. 마지막 3부 ‘숲에서 부는 착하고 순한 바람’에서는 예술가의 정치의식과 생태적 사유를 다룬다. 박 시인은 “권력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으며, 변화의 과정 속에서 자기 자신 역시 변화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문학적 소신을 바탕으로, 존재의 본질을 응시하고 서로의 삶을 다독이는 연대의 마음을 전할 계획이다. 박 시인은 “사랑 역시 결국 또 다른 사람에게로 향하는 여행이라고 생각한다”며 “바흐의 사라방드처럼 상실의 감정을 담은 음악과 가곡들을 시와 연결해 공연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 시는 소리에서 출발했지만 어느 순간 ‘보는 시’, ‘생각하는 시’가 되면서 사람들과 멀어진 측면이 있다”며 “이번 공연은 시를 다시 소리와 호흡의 자리로 되돌려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아름다움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그것을 느낄 여유를 잃고 살아간다”며 “숲속 도서관으로 걸어가는 길에서 바람과 나뭇잎의 흔들림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치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일반 시민 20명을 대상으로 진행되며, 참여 신청은 전주시립도서관 누리집을 통해 가능하다. 자세한 사항은 전화(063-230-1857)로 문의하면 된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5.14 16:43

성벽을 허물고 닿은 ‘무목표의 자유’…벽경 송계일의 위대한 귀환

“목표가 없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평생을 정교한 계획과 질서 속에서 붓을 잡아온 화백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역설적이다. 1940년 김제에서 태어난 한국 수묵채색화의 거장 벽경(壁景) 송계일 화백이 10년 만에 고향에서 초대전을 선보인다. 다음달 7일까지 청목미술관에서 열리는 ‘벽경 송계일 초대전’은 60여년간 ‘전통의 현대화’라는 화두를 놓지 않았던 화백의 조형실험이 도달한 현재를 가늠하는 자리다. 12일 청목미술관에서 만난 송 화백은 “지금까지는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그림을 그렸지만 앞으로는 무계획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며 “우연적인 작업을 통해 필연적인 작품을 만드는 데 시간을 할애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수십 년간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내달리다 보니, 때로는 스스로의 표현이 지루하고 딱딱하게 느껴졌던 탓이다. 이번 초대전에서 선보이는 신작 33점은 먹의 번짐과 스며듦, 색채의 확장과 조화를 통해 자연이 지닌 생명의 에너지를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우주의 기본 질서인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광대무변(廣大無邊)’의 세계를 먹과 채색의 물성으로 풀어냈다. 특히 바탕에 먹을 짙게 깔고 그 위에 색을 올리는 화백만의 독창적인 기법은 한국화에 유례없는 묵직한 무게감과 깊은 심연을 부여한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주제를 사유하고 실체를 확인하는 데만 수개월, 실제 완성까지 근 1년을 쏟아붓는 그의 작업 방식은 고행에 가까운 수행이다. 이번 신작들 역시 그러한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송 화백은 화가로서의 명성을 넘어 전북 미술의 기틀을 세운 ‘설계자’이기도 했다. 전남대 교수 시절, 예술대학이 없던 전북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직접 교육부를 설득하며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승인을 이끌어냈고 전북도립미술관 건립에도 헌신적인 힘을 보탰다. “몸은 광주에 있어도 마음은 늘 전주에 있었다”는 그의 고백은 고향을 향한 지독하고도 순수한 애정의 기록이다. 그는 평생을 지탱해온 철저한 계획성으로부터의 작별하겠다고 선언했다. 우연 속에서 필연을 발견하는 문인화적 세계, 즉 어떤 목적도 두지 않는 ‘무(無)목표의 자유’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다. “큰 길에는 문이 없다(大道無門)”는 사상을 가슴에 품고 평생 화단의 경계에서 ‘문제적 작가’로 살아온 화백은 원로의 자리에 안주하기보다 미답의 영역을 탐구하는 모험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앞으로 매일 문인화를 한 점씩 그리려 한다”라며 “화가가 그림을 안 그릴 수는 없으니 습관처럼 문인화를 그려서 새로운 장르와 세계를 후배들에게 제시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수묵의 깊은 울림과 채색의 생명력이 조화를 이룬 이번 전시는 어쩌면 화백이 평생 쌓아온 성취를 내려놓고 마주한 가장 자유롭고 진솔한 고백이 될 것이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6.05.12 17:29

몸짓으로 빚어낸 전북의 어제와 미래…‘제35회 전북무용제’ 열린다

전북특별자치도를 대표하는 무용인들의 축제가 오는 17일 오후 7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화려한 막을 올린다. 사단법인 대한무용협회 전북특별자치도지회(이하 전북무용협회)가 주최·주관하는 제35회 전북무용제는 단순한 공연의 연속을 넘어 전북 무용의 역사와 흐름을 축적해 온 무대다. 특히 오는 10월 서울에서 개최될 전국 무용제로 이어지는 전북 대표 작품을 선발하는 관문으로서 지역 무용계의 예술성과 경쟁력을 동시에 확인하는 장이 될 전망이다. 올해 무용제는 전통과 현대, 그리고 인간의 근원적 생존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세 팀의 경연 작품과 품격 있는 초청·축하 공연으로 구성됐다. 먼저 박수로현대무용단(안무 정승준)은 현대인의 멈출 수 없는 가속된 일상을 다룬 ‘V1’을 선보인다. 끊임없이 울리는 알림 속에서 선택의 여지 없이 다음 단계로 밀려가는 도시인의 움직임을 통해, 이륙의 순간이 아닌 이미 되돌릴 수 없게 된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의 관성을 현대무용 특유의 역동적인 신체 언어로 풀어낸다. 이어 뉴앙스아트컴퍼니(안무 김동훈)는 한국적 정서가 짙게 깔린 ‘바리여 바리여’를 무대에 올린다. 세상에 버려진 상처를 안고도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저승으로 향하는 바리의 여정을 그린다. 원망과 사랑이 뒤섞인 감정의 층들을 섬세한 한국무용 사위로 표현하며, 고통 속에서도 다시 몸을 일으키는 인간의 강인한 의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마지막 경연팀인 하이댄스퍼포먼스(안무 주슬아)는 ‘n번째 빛’이라는 주제로 생명의 진화를 탐구한다. 35억 년 동안 이어져 온 세포의 이동과 생체 전기 신호, 그리고 작용과 반작용의 굴레를 기하학적인 움직임으로 형상화했다. ‘살다’를 넘어 ‘잘 살다’로 나아가려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무대 위에 던진다. 경연의 열기를 더할 화려한 부대 공연도 준비되어 있다. 초청 공연으로는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이수자인 김승애가 ‘십이체장고춤’을 통해 우리 춤의 격조 높은 우아함을 선사한다. 또 색소포니스트 고민석(Kenny-Go)이 ‘A.P.T’, ‘붉은 노을’ 등 대중적인 곡들을 연주하며 관객들과 호흡하는 흥겨운 축하 무대를 꾸민다. 노현택 전북무용협회 지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춤은 인간의 몸을 통해 시대와 감정을 전달하는 가장 근원적인 예술”이라며 “실력 있는 안무가들과 차세대 무용인들이 어우러진 이번 무대가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고 전북 무용예술 발전의 지속적인 동력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5.12 17:22

박종수 화백 개인전 ‘어제와 오늘 사이-생명의 노래’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쉼 없이 붓을 들어온 원로화가 박종수가 다시 한번 고향의 관람객 앞에 선다. 다음 달 3일까지 전주 교동미술관에서 열리는 박종수 개인전의 주제는 ‘어제와 오늘 사이 - 생명의 노래’다. 이번 전시는 그가 평생을 바쳐 탐구해온 ‘전통’과 그 토대 위에서 꽃피운 ‘현대적 재창조’의 결과물을 한자리에 모은 자리라 할 수 있다. 1980~90년대 오방색 기조의 민화적 풍경으로 한국적 정체성을 탐구했던 작가는 이제 제2의 현실을 추구하는 초현실적 환상의 세계로 진입하며 예술적 지평을 한층 넓힌 모습이다. 전시장을 채운 그의 화폭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완연한 ‘주조색’의 변모였다. 전반기 작품이 강렬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오방색의 시대’였다면, 후반기인 최근작들은 깊은 사유의 고요함이 배어있는 ‘청색의 시대’를 보여준다. 하늘과 바다를 닮은 은은한 청색조의 배경 위로 불상, 삼족오, 말, 나비 등 이질적인 오브제들이 배치되어 몽환적이고도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박 화백의 작업을 두고 “전통과 현실, 그리고 초현실이라는 담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상상력을 불러오는 작업”이라고 평했다. 실제로 그의 그림은 과거의 기억과 오늘의 현실을 몽타주 기법 등으로 접목하며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지점은 ‘천지인(天地人) 합일’이라는 우리 민족 고유의 상징체계로 꼽힌다. 금빛 삼족오가 푸른 하늘을 가르고 그 아래로 행글라이더를 탄 인간과 갈매기가 어우러지는 광경은,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되는 ‘생태 환경적 평화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김익두 사단법인 민족문화연구소장은 박 화백의 예술 세계에 대해 “전통을 체득하고 그 속에서 독창적인 ‘차이’를 만들어냄으로써 진정한 화가의 자리를 획득했다”며 “이러한 성취는 단순히 과거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온고지신의 정신을 현대적 회화로 구현해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김 소장은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다양한 도상들은 민족적 기호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생명의 노래”라고 덧붙이며 이번 전시가 갖는 미술사적 의미를 짚었다. 고창 출생인 박 작가는 조선대학교 미술교육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해, 지난 1979년 전북예술회관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광주,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 등 국내외를 넘나들며 380여 회의 전시를 이어온 지역 미술계의 산증인이다. 전북대와 한양여대 강사를 역임하고 고창고와 전북사대부고 등에서 후학 양성에도 힘써온 그는, 2023년 전북 문화예술대상에 이어 2024년 목정문화상 미술부문을 수상하며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현재 상형전 고문과 전북미술대전 초대작가 등으로 활동 중인 그는 이번 교동미술관 개인전을 포함해 총 18회의 개인전을 기록하며 여전히 뜨거운 창작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4.29 13:45

[리뷰] 익숙한 고전의 해체와 재구성… 국립민속국악원 창극 ’춘향’

국립민속국악원이 선보인 2026년 대표창극 ‘춘향’은 모두가 익히 아는 고전의 서사를 과감히 덜어내고, 춘향이라는 인물의 내면과 감정선에 집중한 실험적 무대로 관객과 만났다.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남원 국립민속국악원 예원당에서 열린 이번 작품은 ‘서(序)·이별·그리움·신연맞이·수난·재회·어사출도·다시 사랑가’의 구조 아래 방자·향단 등 주변 인물의 비중을 줄이고, 춘향의 정서적 흐름을 중심축으로 재편했다. 약 80분 분량으로 압축된 공연은 익숙한 ‘춘향전’의 서사적 완결성보다 빠른 호흡과 현대적 감각의 무대화에 방점을 찍었다. 김세종제와 만정제 사설을 혼용하고 일부 현대적 어법을 가미한 구성은 전통의 문법을 유지하면서도 오늘의 관객 호흡에 맞추려는 시도로 읽혔다. 한 국악계 전문가는 “익숙한 춘향 서사를 시대 흐름에 맞게 압축했고, 무대와 의상 역시 현대적 감수성을 더해 신선하게 다가왔다”며 “연출 방향이 분명했고 전반적으로 몰입감도 높았다”고 평가했다. 특히 춘향 역을 맡은 서진희 소리꾼에 대해서는 “긴 서사를 중심에서 이끌어야 하는 부담 속에서도 안정적인 소리와 표현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설명보다 음악과 장면 중심의 흐름을 택했다. 대본은 전통 춘향가의 해학성과 발랄함을 덜어내고 보다 정제된 정서와 비극성을 부각하는 데 집중했다. 연출 역시 군더더기 없는 장면 전환과 상징적 무대장치를 통해 한 편의 음악극이자 시각적 이미지극에 가까운 인상을 구축했다. 대나무, 달빛, 그림자 등 시각적 장치와 새롭게 정비된 의상은 비교적 단출한 무대 조건 속에서도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다만 이러한 재구성이 모든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것은 아니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춘향 개인에게 지나치게 비중이 쏠리면서 이몽룡, 월매, 변학도 등 주요 인물의 입체감이 약해졌다”며 “음악극이라면 인물 간 서사와 감정이 유기적으로 교차해야 하는데, 일부 장면에서는 판소리 원전과 새 창작 요소가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랑가의 축소와 후반부의 빠른 전개에 대해서는 “춘향전 특유의 서사적 축적과 관계의 결이 줄어들면서 감정의 설득력이 다소 약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초반 설명이 과감히 생략된 만큼 원전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는 장면 이해가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평가도 있었다. 실제 이번 공연은 ‘춘향의 기다림’이라는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하는 대신, 고전이 지닌 군상성과 다층적 관계를 상당 부분 덜어냈다. 이는 작품의 방향성을 보다 선명하게 만드는 장점이자, 동시에 일부 관객에게는 ‘춘향전다운 맛’의 축소로 받아들여질 여지를 남겼다. 그럼에도 이번 ‘춘향’은 국립민속국악원이 고전을 단순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려는 방향성을 분명히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통 창극이 익숙한 서사를 오늘의 언어로 어떻게 다시 번역할 수 있는지 보여준 하나의 시도이자, 오는 7월 일본 오사카 공연으로 이어질 해외 무대를 앞둔 시험대이기도 하다. 익숙한 고전의 외피를 벗기고 한 인물의 감정선에 집중한 이번 무대는 분명 호불호를 남겼다. 그러나 전통의 현재화라는 과제를 향한 고민과 실험이라는 점에서, 이번 ‘춘향’은 그 자체로 충분히 주목할 만한 무대였다. 고전의 본질과 현대적 해석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만들어갈지는 앞으로 이 작품이 더 다듬어가야 할 과제로 남는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4.27 17:14

전통 레퍼토리 총망라⋯정읍시립국악단 상설무대 ‘소리의 정원’

정읍시립국악단이 봄의 정취를 담은 상설무대로 시민들과 다시 만난다. 정읍시립국악단은 4월 상설공연 ‘소리의 정원’을 오는 29일 오후 7시 연지아트홀에서 선보인다. 약 70분간 진행되는 이번 공연은 전통음악의 다채로운 매력을 한 자리에서 풀어내며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할 예정이다. 공연의 시작은 연주부의 ‘태평소 시나위’로 문을 연다. 이어 창극부와 연주부가 함께하는 신민요 ‘봄노래’, 무용부 김가슬 단원과 연주부가 어우러진 ‘태평무’가 차례로 펼쳐지며 무대에 생동감을 더한다. 특히 이날 공연에는 정읍시립국악원 판소리반 교수인 윤상호 소리꾼이 특별출연해 판소리 ‘심청가’ 가운데 눈대목인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을 선보일 예정이어서 기대를 모은다. 이후 무용부의 장고춤과 창극부·연주부가 함께하는 입체창 ‘수궁가’ 중 ‘아나 옛나 배 갈라라’ 등 전통의 흥과 멋을 담은 무대가 이어진다. 공연의 대미는 연주부의 실내악 ‘신모듬’이 장식한다. 조용수 정읍시립국악단장은 “한 달 만에 다시 찾아온 상설공연을 통해 시민들에게 우리 전통음악의 흥과 멋을 더욱 친근하게 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읍시립국악단은 다음 달 27일 같은 장소에서 문화산책 프로그램 ‘초록빛에 스며든 몸짓’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4.19 11:09

수만 가닥 한지로 빚은 인고의 결… 차종순 작가가 건네는 ‘휴식'

1990년대 화려한 색채를 뿜어내는 유화 작업으로 화단의 주목을 받았던 차종순(71) 작가는 서구적 재료 너머 ‘한지’라는 소재에 천착하기 시작했다. 그의 행보는 단순히 작업 재료를 바꾸는 차원에 머물지 않았다. 예원예술대학교에 한지문화연구소를 설립하고 학제 개편을 주도하며 한지 예술의 현대화를 위한 학술적 기틀을 닦는데 수십년의 세월을 바쳤다. 이제 그는 복잡한 기교를 덜어내고 한지 본연의 질감 속에 ‘치유’와 ‘명상’의 가치를 담아내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서울 청담 셀리닉 갤러리에서 초대 전시 ‘차종순의 휴(休)’를 열고 있는 그를 지난 8일 전주 오스스퀘어에서 만났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예술적 화두인 ‘休(휴)’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자리다. 아원고택과 오스갤러리에서 차 작가의 작품을 접한 셀리닉의원 원장은 그의 작품에서 얻은 정서적 회복을 환자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제안하며 만남이 성사됐다. 그의 작업은 예술적 노동을 넘어선 고행이자 수행에 가깝다. 한지를 아주 가늘게 꼬아 수만 가닥의 줄기를 만든 뒤, 이를 캔버스 위에 한 올씩 겹겹이 쌓아 올린다. 하루 10시간 이상 이어지는 반복적이고 고단한 과정에 대해 작가는 “한 가닥씩 붙여 나가는 몰입의 시간은 스님들의 명상과 닮아 있다”고 설명했다. 인고의 과정 끝에 탄생한 작품에는 창작자의 집중력이 투영된 명상적 에너지가 깃들기 마련이다. 최근 작품들은 이처럼 치열한 공정을 거쳐 정갈한 미니멀리즘으로 귀결된다. 한지 장판지의 투박하면서도 따뜻한 질감은 복잡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를 것을 권유한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의 전통 가구인 반다지에 그림을 접목하는 새로운 시도를 더했는데, 의료 공간을 문화의 장으로 전환하기 위한 세심한 기획이다. 전시장 한편에서는 작가의 작업 세계를 담은 영상이 상영되며 각 작품에 배치된 QR코드를 통해 SNS와 연동되어 상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소통 방식도 도입했다. 그는 “내 작품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점 하나에 불과한 인간의 존재를 자각하게 하고 일상의 시름을 잠시나마 덜어내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한다”며 ”수만 번의 손길이 닿은 한지 결 위에서 관객들은 비로소 바쁜 걸음을 멈추고 각자의 본질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12월 27일까지 이어지며 오픈식은 26일 오후 3시에 열릴 예정이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6.04.12 13:41

의재 김도영,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 초대 개인전 성황

의재(義齋) 김도영 예원예술대 미술문화 복지학과 교수의 초대 개인전이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이번 전시는 ‘의재 김도영의 지어지서전(止於至書展)’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미술관 2층에서 열렸으며, 서예와 문인화 등 총20여 작품이 출품 돼 서예의 전통적 미감과 작가의 개성적인 필치를 선보였다. 특히 올해 회갑을 맞은 작가를 기념해 마련된 초대 개인전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먹의 농담과 여백의 미를 살린 작품들은 고전 서풍의 깊이를 보여주는 동시에 절제된 구성과 힘 있는 필획으로 관람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전통 서예의 정신성을 바탕으로 작가가 꾸준히 이어온 창작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는 평가다. 이번 전시와 동일한 기획은 올해 가을 전주에서도 열릴 예정이며, 신작 또한 함께 공개될 계획이다. 김도영 교수는 “창작 세계가 부족하다고 느껴 전시를 주저하기도 했지만 뜻깊은 자리에 초대돼 영광스럽다”며 “전북의 문화자산 가운데 하나인 서예의 가치를 지역에서 선보이게 될 가을 전시를 계기로 호남 서맥을 잇는다는 사명감으로 더욱 정진하겠다”고 밝혔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4.09 17:33

색을 매개로 다른 차원의 예술적 사유를 공유하다

국대호‧ 강민기 작가가 ‘색(色)’을 매개로 서로 다른 차원의 예술적 사유를 공유하는 2인전 ‘차원의 채집: 採集’을 공간 허이재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회화의 질감과 조각의 구조가 만나는 접점을 탐구하며 2차원과 3차원의 경계를 넘나드는 두 작가의 독창적인 작업세계를 조명하는 데 집중한다. 국대호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시·공간의 응축을 담은 작품을 선보인다. 기존의 평면적 스트라이프 작업을 넘어 물감의 밀도와 속도감으로 변주해 다채로운 질감을 캔버스에 구현했다. 작가에게 색은 시각적 요소만이 아니다. 여행지에서의 인상이나 유년의 풍경처럼 언어로 형언하기 어려운 기억의 파편들을 특정한 색채로 치환하여 캔버스 위에 층층이 채집해 나간다. 조각가 김민기는 회화를 조각하다 라는 개념의 스컬페인팅을 통해 평면의 붓 터치를 3차원 입체 공간으로 조성했다. 작가는 개별적인 붓 터치 유닛을 입체적으로 구축하며 현대인의 불안하고 모호한 감정 상태를 시각화했다. 예술가로서 창작의 희열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불안이라는 대립적 감정을 색채 덩어리로 표현해 관람객들에게 감정의 궤적을 마주하게 한다. 국대호·강민기 작가는 회화와 조각이라는 서로 다른 매체를 다루지만 ‘색’이라는 공통의 언어를 통해 인간의 내면과 기억을 탐구한다. 평면에서 깊이를 찾아내고, 입체에서 회화성을 입히는 두 작가의 만남은 관람객에게 차원을 넘나드는 감각의 순환을 제안한다. 전시는 5월 2일까지.

  • 전시·공연
  • 박은
  • 2026.04.07 14:28

3000년의 침묵 깨운 붓끝…최남규, 40년 고문학 연구 예술로 피어나다

학자로서의 집념과 예술가의 호흡이 만나 3000년의 침묵을 깨우는 생명력으로 부활했다. 40년간 고문자(古文字)의 뿌리를 추적해온 최남규(65) 전북대학교 명예교수의 작품전이 오는 11일까지 전주 오브제갤러리에서 열린다. 본래 글자는 사물의 그림자이자 세계를 향한 가장 정직한 묘사였다. 인류가 바위나 뼈 위에 최초의 선을 새겼을 때, 그것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간절한 기원이자 지독한 관찰의 산물이었다. 이번 전시는 문자가 추상적인 기호로 굳어지기 전의 생명력을 복원해낸 현장으로 갑골문(甲骨文)과 금문(金文) 해독에 매진해온 최 교수의 학문적 궤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6일 전시장에서 만난 최 교수는 학자로서의 냉철한 분석을 내려놓고 고대 문자가 지닌 원초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역설했다. “문자의 자원을 알면 문자가 지닌 특성을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설명처럼, 산을 보고 산(山)이라 쓰고 거북을 보고 구(龜)라 썼을 때의 직관적인 조형성이 그의 붓끝과 칼끝을 통해 예술로 승화됐다. 최 교수는 고문자의 본질을 ‘그림의 연장’으로 정의한다. 사물의 특징을 포착한 그림에서 시작된 문자가 시간이 흐르며 간략해져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는 논리다. 그는 “그림이 문자가 되기 전의 단계가 바로 고문자”라며 “본격적인 생략이 이뤄지기 전의 고문자에는 문자성뿐만 아니라 강렬한 회화성이 공존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이 마주하는 것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고대인이 세상을 바라보던 시선이 담긴 하나의 화폭인 셈이다. 전시된 50여 점의 작품들은 전서와 예서, 행서, 초서 등 다양한 서체를 넘나든다. 단정한 예서(隸書)에서는 학자의 단단한 골격이 느껴지고 유려한 행초서(行草書)에서는 정형화된 틀을 벗어던진 자유로운 사유가 읽힌다.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고문자이지만, 글자가 담고 있는 본연의 의미를 관람객들이 시각적으로 공감할 수 있도록 깊이 있게 풀어냈다. 최 교수는 이번 전시를 ‘40년 연구한 고문자에 대한 정성어린 기록’이라고 표현했다. 학문적 성취라는 결과물을 넘어 자신이 평생 연구한 문자에 대한 정중한 예우라는 의미이다. 예술적 허용이라는 이름 아래 왜곡될 수 있는 문자의 원형을 그는 학자의 고집으로 지켜냈다. 그러면서도 단단한 골격 위에 입혀진 서각의 깊이와 서예의 필치는 파격적이다. 또한 나무의 결을 살려 문자를 새기고 감각을 덧입히는 과정은 고문학이 현재까지도 호흡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향후 인문학 아카데미를 통해 고전과 서예를 잇는 공부를 이어가겠다는 포부도 전했다. 그는 “한자는 오랜 훈련이 필요해 거리감이 생기기 쉽지만, 그 근원을 알면 우리 문화의 깊이를 만나는 소중한 통로가 된다”며 “고문자가 현대의 예술로 소통할 수 있도록 남은 생도 붓을 놓지 않겠다”고 말했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6.04.06 17:41

화선지 넘어 시대의 여백으로…안뜰 김영희가 증명한 ‘살아있는 전통’

사십 년 넘게 붓을 잡아온 서예가의 필력이 화선지라는 익숙한 경계를 넘어 캔버스라는 여백과 만났다. 안뜰 김영희(77) 작가가 평생 천착해온 서예의 정신을 캔버스 위로 옮겨 심은 이유는 명확하다. 지난 3일 전주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내 자식조차 거실에 걸어두지 않는 그림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살아있는 전통이겠느냐”는 뼈아픈 자문을 던졌다. 오는 7일부터 12일까지 교동미술관 본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매화향기 봄바람 타고’는 박제된 서예를 현대인의 일상으로 복원해내려는 작가의 치열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기록이다. 작가가 10년 전부터 시도한 변화는 지극히 논리적인 통찰에서 시작됐다. 아파트라는 현대적 거주공간에서 전통 액자와 화선지가 공간과 불협화음을 내며 외면받는 현실을 직시한 결과다. 그는 서구적 재료인 캔버스를 선택하되 그 위에 흐르는 정신만큼은 정통 서예의 운필(運筆)을 고수했다. 붓 끝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느라 안구 실핏줄이 세 번이나 터졌을 만큼 몰입했고, 재료의 변화를 넘어 전통의 생명력을 동시대로 확장하기 위해 분투했다. 재료라는 옷은 갈아입었을지언정 그 속에 자신의 필력을 온전히 표현해내기 위해서였다. 52점의 작품이 걸리는 이번 전시에는 손녀에게 선물했던 그림을 다시 빌려와 내놓은 각별한 사연도 담겨 있다. 작품 ‘가을 언덕 위에 머묾’은 동일한 구도로 다시 그리려 해도 당시의 필치가 재현되지 않아 결국 원본을 다시 청해왔을 만큼, 매 순간의 작업에 진심을 쏟는다. 초등학교 교사 시절 잡았던 붓이 평생의 동반자가 된 이후 국전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을 지내며 서예의 정점에 올랐으나, 그는 여전히 2주에 한 번씩 진주에 계신 스승을 찾아가 자신의 서법을 점검받는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배움과 고민을 멈추지 않는 엄격한 자기검열은 그의 작품세계를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바탕이다. 작가는 인생의 굴곡을 매화에 담아낸다.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가장 맑은 향기를 내뿜는 매화처럼, 삶의 고난을 딛고 일어선 이들에게 따뜻한 위안을 건네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다. 사라져가는 서예를 걱정하며 퇴직 후에도 아이들에게 붓 잡는 법을 가르쳤던 그의 사명감은 이제 캔버스라는 새로운 형식을 통해 대중과 깊게 호흡한다. 작가는 “학문과 예술은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나오지만, 그 고비를 넘으려는 희망이 나를 계속 젊게 만든다”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전통의 문법을 유지하면서도 매체의 확장을 통해 현대적 공간과의 접점을 찾으려는 작가의 시도는 이번 전시를 통해 구체화됐다. 박제된 과거가 아닌, 동시대의 일상 속에서 호흡하는 예술로서의 전통이 나아갈 방향을 담담히 보여준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6.04.05 16:35

제42회 전북연극제, ‘예술집단 고하’ 대상 수상

예술집단 고하가 제42회 전북연극제 대상을 수상하며 ‘제44회 대한민국연극제 부산’에 전북특별자치도 대표로 출전하게 됐다. 전북특별자치도연극협회가 주최한 이번 연극제는 지역 연극계를 대표하는 창작 축제이자 전국 무대에 나설 작품을 선발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제한된 예산 여건으로 올해는 두 개 극단만이 참가했지만, 창작극 중심의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무대에 올라 전북 연극의 저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호응 역시 지역 창작극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대상을 받은 예술집단 고하는 창작극 ‘오얏꽃이 피었다’(김정숙 작/ 김경민 연출)를 통해 과거의 강요된 선택으로 인해 비극적 삶을 살아가는 왕가 여성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그려냈다. 작품은 인간 존재의 한계와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선택의 문제를 중심 서사로 풀어내며 극적 긴장감을 형성했다. 금상은 극단 새로고침의 ‘METEOR: 떨어지는 별’(전준모 작·연출)이 차지했다. 이 작품은 재앙의 상황 속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구조로 전개되며 또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선택이라는 화두를 제시했다. 무대에 오른 두 작품은 모두 인간의 선택이라는 공통된 문제의식을 중심에 두고 각기 다른 미학적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창작극임에도 완성도 높은 서사 구조와 무대 구현을 보여줬으며, 새로운 창작 인력의 참여가 눈에 띄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더했다. 심사위원단은 두 작품 모두 완성도가 높아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은 치열한 심사였다고 밝혔다. 한 작품은 극작과 연출을 겸하며 독창적인 구조와 형식을 시도했으나 무대 확장성 측면에서 보완 필요성이 제기됐고, 다른 작품은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했으나 장면 전환의 밀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일부 장면에서는 춤 요소가 극적 흐름과 완전히 결합되지 못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연기 부문에서는 연극 고유의 현장성을 살린 발성과 전달력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자연스러운 일상 언어 중심의 연기 경향 속에서도 무대 언어로서의 표현력과 입체적인 인물 구축이 향후 과제로 제시됐다. 심사는 대한민국연극제 심사 규정과 전북연극제 기준을 준용해 진행됐으며, 희곡의 완성도와 연출의 창의성, 배우들의 연기력이 관객에게 공감과 감동을 전달했는지가 주요 평가 기준이 됐다. 이날 개인상 부문에서는 김경민이 연출상을, 정준모가 희곡상을 수상했다. 무대예술상은 ‘오얏꽃이 피었다’의 무대미술을 맡은 길고은이 받았으며, 최우수연기상은 이혜지에게 돌아갔다. 우수연기상은 ‘METEOR : 떨어지는 별’의 하형래와 ‘오얏꽃이 피었다’의 강지수가 각각 수상했다. 제42회 전북연극제는 제한된 여건 속에서도 완성도 높은 창작극을 선보이며 지역 연극의 경쟁력을 확인하는 자리로 마무리됐다. 대상 수상작인 예술집단 고하의 ‘오얏꽃이 피었다’가 전국 무대에서 어떤 성과를 거둘지 관심이 모아진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3.29 16:46

지역에 보이지 않던 전자음악 씬을 부른다⋯‘BOLD : GOOD’

지역에서는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던 전자음악 씬(Scene)을 불러내는 ‘굿판’이 열린다. 로컬 문화기획팀 ‘어반스트라이커즈 전주’가 다음 달 4일 오후 8시, 전자음악 공간 해상도와 해결 리스닝룸에서 다원예술 프로젝트 ‘제5회 BOLD: GOOD’을 개최한다. ‘제5회 BOLD: GOOD’은 전자음악과 시각예술, 문학이 결합된 프로젝트로, 그간 지역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못했던 전자음악 씬의 존재를 보다 직접적으로 가시화하고자 기획됐다. 전자음악과 디제잉이 예술적 감상보다는 유흥의 맥락으로만 소비돼 온 지역의 고정된 인식 속에서, 전자음악 씬이 마치 ‘없는 것’처럼 취급돼 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단체는 이처럼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웠던 지역 씬의 부재를 한국적 정서와 종교적 전통인 ‘굿(巫堂)’의 언어로 돌파하고자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씬을 갈망하고 목격하고자 하는 바람을 모아 신을 불러내듯 지역 안팎을 연결하고 사람과 씬을 호출한다. 동양의 종교적 실천이자 한국의 무속 전통 속에서 굿은 소리와 몸, 제물과 염원, 분명한 목적을 통해 이 세계에 없는 것을 끌어들이는 능동적 행위였다. 이번 프로젝트는 이러한 전통적 태도를 차용해 회피나 이주가 아닌, 자신이 발 딛고 선 지역을 스스로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핵심 정신으로 삼는다. 프로그램은 전자음악, 시각예술, 문학으로 구성된다. 음악 파트에서는 MINDWICH, XS, IF, CASHTRAY, SINGLE LEG, MOONICE, THANG, 3D3N, HANFLO 등 9명의 DJ가 참여해 각자의 개성을 담은 세트를 선보이며 굿판의 소리적 층위를 형성한다. 시각예술 파트에는 매드김(김성빈), 작호(최혁), 한준 등 3명의 청년 작가가 참여한다. 이들은 ‘기원’이라는 행위를 중심으로 관객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미술 작업과 제단의 형식을 통해 공간 전체를 하나의 씬으로 전환하는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문학 파트에는 Q, WEOL DAM(월담)이 참여해 시와 글을 통해 공간 곳곳에 존재하지만 이름 붙여지지 않았던 감각과 존재들에 언어를 부여하는 ‘언어적 기도’를 펼친다. 공간적 배경 역시 주목할 만하다. 단체는 그동안 ‘임대’ 현수막이 걸린 공실을 활용해 사람들이 머물지 않던 장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게릴라성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난 2월 개소한 ‘공간 해상도’를 거점으로 지역 전자음악 씬의 지속적인 활성화를 도모한다. 제도와 관성적 시선 속에서 지워져 온 부유하는 씬들이 보다 단단한 기반을 마련하고 확장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지역에서 쉽게 마주하기 어려웠던 전자음악 씬을 선명하게 경험할 수 있는 다원예술 프로젝트 ‘GOOD’은 미성년자 입장이 제한되며, 현장에서는 주류를 판매하지 않는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자세한 사항은 공식 인스타그램(@bold.letusbe)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3.24 17:11

“똑바로 서라”는 세상에 던지는 기분좋은 반항…기획전 ‘삐딱善’

우리는 왜 직선만이 정답이라고 믿어왔을까. 모든 것이 수직과 수평으로 정렬되는 세상에서, 세상이 정해놓은 정답인 직선을 거부하고 나만의 각도를 찾으려는 다섯 명의 예술가들이 있다. 남들과 똑같은 시선을 강요받는 현대인들에게 “삐딱함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개성”이라고 외치는 기획전이 24일부터 29일까지 교동미술관 본관에서 열린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함께 수학하며 각자의 조형언어를 다져온 김정해, 김효선, 최진희, 한정원, 해랑 박선영은 기획전 ‘삐딱善’을 통해 삐딱함에 대한 고정관념을 기분 좋게 뒤집는다. 이들에게 삐딱함이란 중심에서 밀려난 결핍이나 비정상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세상을 응시하는 ‘가장 나다운 각도’를 의미한다. 작가들은 안과 밖, 자연과 인공, 이상과 현실 등 서로 다른 곳을 향하는 시선을 억지로 교정하거나 봉합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이의 간극을 인정하고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역동적인 에너지를 화폭에 담았다. 전시명의 핵심인 ‘선(善)’ 또한 흥미로운 지점이다. 작가들이 말하는 선은 단순히 도덕적인 착함이나 이분법적인 판단에 머물지 않는다. 익숙한 질서를 의도적으로 비껴가며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는 작가들만의 감각적인 방식인 것이다. “조금 다르면 어때?”라고 묻는 듯한 이들의 삐딱한 시선은 우리에게 정답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정하면서도 강렬하게 일깨워준다. 결국 ‘삐딱善’은 다섯 개의 서로 다른 방향이 빚어내는 긴장과 균형을 확인하는 자리다. 관람객은 작품을 통해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삐딱한 선’을 마주하게 된다. 규격화된 일상에서 벗어나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자유로운 각도를 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6.03.23 16:05

‘한’을 탱고로⋯페탈예술기획 ‘세한송백’ 무대

지역 내 문화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우리소리 우리가락’이 올해 첫 무대로 색다른 음악적 실험을 선보인다. 도내에서는 접하기 힘든 장르 ‘탱고’를 통해 ‘한국적 정서’를 현대 음악으로 풀어낸 공연이 관객을 찾는다. 우진문화재단은 20일 오후 7시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 제152회 ‘우리소리 우리가락’ 공연으로 페탈예술기획의 ‘세한송백: 겨울을 춤추는 푸른 열정’을 선보인다. 전주시가 후원하는 이번 무대는 클래식과 탱고가 결합된 ‘누에보 탱고’를 통해 동시대 청년 예술가들의 내면과 시대 감각을 풀어낸다. 공연 제목인 ‘세한송백’은 ‘추운 계절이 와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는 의미처럼,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예술적 열정을 상징한다. 페탈예술기획은 이를 ‘겨울을 이기는 춤’이라는 이미지로 형상화해, 관객들에게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전한다. 특히 이번 공연은 ‘우리소리 우리가락’이라는 이름에 대한 재해석에서 출발했다. 페탈예술기획은 “우리 소리라고 하면 흔히 국악을 떠올리지만, 한국인의 정서인 ‘한’을 현대적인 누에보 탱고와 결합해 표현하고자 했다”며 “정서적으로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선택한 음악적 기반은 누에보 탱고의 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작품들이다. 피아졸라의 음악에는 노동자 계층의 삶과 애환이 녹아 있는 만큼, 오늘날을 살아가는 관객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단체 측은 “당대의 아픔이 담긴 음악을 통해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건네고 싶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램은 자작곡과 피아졸라 작품을 넘나들며 구성됐다. ‘Rdando lentamente’를 시작으로 ‘항구의 겨울’, ‘Escualo’, ‘Cafe 1930’, ‘천사의 죽음과 부활’ 등 서정성과 긴장감이 교차하는 무대가 이어진다. 바이올린·첼로·피아노 등 클래식 악기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탱고 특유의 강렬한 리듬과 감정선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2018년 결성된 페탈예술기획은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젊은 예술가 그룹이다. 학교 선후배로 구성된 이들은 클래식과 무용을 결합한 융합 공연을 통해 자신들만의 색을 구축해 왔다. 최근에는 창작곡 EP ‘흑백개화’를 발매하며 음악적 정체성을 확장하고 있다. 단체는 이번 무대에 대해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이들은 “전북은 국악의 기반이 매우 탄탄한 지역인 만큼, 클래식 기반 팀으로서 선정된 책임감을 크게 느낀다”며 “지역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탱고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관객들에게 신선한 ‘마음의 충격’으로 다가가는 공연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관람료는 1만 원. 공연 예매는 전주티켓박스를 통해 가능하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3.19 17:34

색채를 빼고 수묵으로 빚어낸 산의 철학…송관엽 초대전 ‘그래! 산’

화폭에서 색이 빠져나가는데 꼬박 10년이 걸렸다. 화려한 색채를 걷어내고 수묵의 농담으로 산의 본질을 빚어내는 경산 송관엽 작가가 전주 기린미술관을 사유의 공간으로 채웠다. 오는 4월 16일까지 이어지는 초대전 ‘그래! 산’은 작가가 평생을 천착해온 ‘산’이라는 화두가 어떻게 변화하고 깊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예술적 집약체다. 송관엽 작가의 작품세계는 10년을 주기로 변해왔다. 과거에는 실제 풍경을 생생하게 담아내기 위해 먹 위에 화려한 색을 덧입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화폭에서 색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는 눈에 보이는 겉모습 대신 자연의 생생한 기운을 담아내기 위해 스스로 비움을 택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절제된 수묵의 미학을 추구하고 있다. 산의 겉모습을 복사하듯 그리지 않고 작가의 기억 속에 녹아 있는 산의 흔적을 몇 개의 선과 먹의 농도만으로 표현한다. 안개를 활용해 깊은 입체감을 만들고, 실제 풍경에 내면의 이상을 결합해 독창적인 산수화를 선보인다. 전통의 맥을 잇되 동시대적 감각으로 산수를 재해석해온 작가는 벽천 나상목, 송계일 등 한국 산수화의 거장들에게 사사하며 탄탄한 기초를 다졌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 등을 맡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써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600회 이상의 그룹전과 14번의 개인전을 거치며 작가가 구현해온 정제된 수묵산수의 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이현옥 기린미술관 관장은 “송 작가의 작업은 단순한 자연의 재현을 넘어 기운 생동을 추구하고 있다”며 “서예적 필획에서 오는 리듬감과 철학적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하는 귀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6.03.17 18:47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