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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과 번잡을 잊고, 고요한 내면으로 빠져들다

한지 위 정갈한 수묵은 세상의 소란과 번잡을 잊고, 고요한 내면으로 빠져들게 한다. 다채로운 색으로 채워진 서양화와 달리, 한국화의 농담과 여백이 주는 힘이다. 박종갑 초대전 ‘만경(萬頃)_수묵여정(水墨旅程)’이 다음 달 10일까지 전주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박종갑 작가는 오랫동안 작업실 인근 강인 만경강(萬頃江)을 관찰하고, 이를 통해 깨달은 생명과 순환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수묵화로 담아냈다. 전시에서는 단순히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서 현대인이 잃어버린 자연과의 연결을 되찾고,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전시의 제목처럼 화폭엔 만경강의 풍경이 먹빛으로 깔려있다. 먹의 농담으로만 표현하는 수묵화는 검은 먹의 다양한 농담과 여백으로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과 생명의 순환을 나타낸다. 그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나무와 숲, 물결, 빛은 단순한 자연의 재현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교감하며 이루어가는 하나의 세계를 상징한다. 특히 대형 수묵화 연작은 적막한 자연에 덩그러니 놓인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이 은유적으로 묻어나 다양한 감정을 상기시킨다. 작가에게 그림은 단순히 자연을 그리는 행위로 끝나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 것을 듣게 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그는 비가시적 세계에 대한 사유의 장을 열고, 관람객에게 내적 성찰을 제시하는 것이다. 박 작가는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자연과의 연결을 회복하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며 “자연이 주는 생명의 에너지를 느끼고, 자연 속에서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밝혔다. 예술계에서 오랜 시간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작가는 현재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학장과 경희대 부설 현대미술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5.01.06 17:03

글로벌 OTT 선두주자 K-콘텐츠, 지역에서도 발굴·육성해야

오징어게임과 같은 K-콘텐츠의 파급력이 커지면서 전북도 자체적인 콘텐츠산업 발굴·육성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뉴미디어 플랫폼이 지닌 영향력이 K-콘텐츠 열풍으로 지속되고 있는 만큼, 콘텐츠와 이를 생산하는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 단순히 내수용 콘텐츠 생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콘텐츠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과감한 투자와 공격적인 정책이 요구된다. 최근 나라살림연구소가 발표한 ‘한류 확산을 위한 K-콘텐츠 육성 동향’에 따르면 전 세계 콘텐츠산업 시장이 2022년 기준 약 2조 6000억 달러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연평균 6.0% 성장하고 있으며 오는 2027년까지 3조 3000억 원 달러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개한 ‘2024년 해외 한류 실태조사’에서도 외국인이 K-콘텐츠를 접촉한 후 한국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했다는 답변이 66.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K-콘텐츠에 대한 호감 상승이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확대로 이어져 K-푸드, K-뷰티 등의 성장을 촉진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9월 K-콘텐츠 및 연관 산업 수출 확대 방안을 수립해 2027년까지 글로벌 한류 팬을 3억 명으로, K-콘텐츠 수출액을 250억불까지 확대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콘텐츠·장르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해외시장, 영화제, 인센티브)도 강화해 수출을 적극 뒷받침할 방침이다. 전북에서도 지역 문화 자산을 활용한 K-콘텐츠 활성화 추진에 적극적인 모양새다. 남원시의 경우 지역의 대표 문화 자산인 춘향전을 현대적 감성으로 재해석한 웹툰 '향단뎐'을 미디어 기업과 공동 제작해 선보였다. 지난해 4월부터 카카오웹툰에서 연재했으며 누적 조회수가 200만 회를 돌파하며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문제는 콘텐츠 산업을 구성하는 기업 대다수가 영세하고, 지역에서는 콘텐츠산업에 종사하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산업조사’를 보면 서울은 20만 2462명이 콘텐츠산업 종사자(7개 영역·22년 기준)로 활동하고 있으며 충남 지역에서도 7145명이 콘텐츠산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전북 지역 콘텐츠산업 종사자는 6374명으로 집계됐다. 이에 전문가들은 지역 콘텐츠산업의 미래를 위해 문화예술과 산업 간 균형을 찾고, 산업 인력 양성에 더욱 공격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콘텐츠산업은 장래성이 밝고 문화·예술과의 유기적 협업이 가능해 발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북특별자치도콘텐츠융합진흥원 최화평 로컬사업팀 팀장은 “(지역일수록 콘텐츠산업은) 인력 양성이 중요하다”며 “인력을 발굴·지원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예산 투자가 필수이지만, 세수 부족 등의 이유로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진흥원에서는 예비 창작자를 발굴·육성하기 위해서 다양한 교육 사업과 제작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다양한 주체의 니즈를 엮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민관 협력해 창작자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5.01.06 17:00

[지역서 꿈 펼치는 청년 예술인]① 싱어송라이터 신민수 씨

지역 청년 예술가는 새로운 시각과 아이디어를 제시해 예술 분야의 다양성과 혁신을 끌어내는 등 문화산업을 넘어 지역 사회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지역 사회의 문화적 다양함과 창의성을 반영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영감은 주고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본보는 이번 기획을 통해 지역 예술 생태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청년 예술인들이 지속 가능한 창작 환경을 이끌어 나가는데 기여할 수 있기 바라며, 청년 예술인들이 겪는 도전과 성취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미래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4차례에 걸쳐 소개한다.<편집자 주>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고 있다. 특히 예술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청년들은 지역을 떠나 수도권 또는 해외로 나가려 한다. 지역 내에서의 전시, 공연, 네트워킹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지역에서의 수익 창출이 어려운 경우 더 나은 경제적 조건을 찾아 대도시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전주에 머무르며, 지역에서 자신의 실력을 갈고닦아 지역민들에게 문화를 즐길 기회를 주고자 최선을 다하는 지역 청년 예술인이 있다. 싱어송라이터임과 동시에 문화공간 ‘더 바인홀’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신민수(27·전주) 씨가 바로 그다. 신 씨는 클래식 기타라는 악기를 가지고 진실된 목소리로 잔잔하면서도 따뜻하고 감성적인 노래를 선사하는 청년 예술가다. 그는 2018년 남성 3인조 그룹 ‘오렌지문’으로 데뷔해, 2023년 전라북도 레드콘 음악창작소 7기 뮤지션으로 참여하는 등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데뷔부터 약 8년이라는 세월을 지역의 관객과 마주하며, 열심히 활동해 오고 있는‘가수’라는 직업에 눈에 뜬 계기는 ‘지인의 제안’이었다. 신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진로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던 중,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간 노래방에서부터 ‘보컬’의 꿈을 꾸게됐다”며 “(같이 어울리던)친구 중 노래를 배우고 있는 친구가 제 목소리를 듣고 함께 노래를 배우는 것이 어떻겠냐, 제안해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보컬리스트로 활동을 이어가다, 국방의 의무를 위해 군대에 입대하며 기타라는 악기를 접하게 됐다”며 “처음 접했던 악기지만 금방 재미를 붙이기도 했도, 어느 정도 실력도 늘어가다 보니 작곡에 대한 욕심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대하고 무대 위에서 스스로 작사 작곡을 한 음악을 선보이다 보니, 싱어송라이터라는 수식어가 붙게됐다”고 설명했다. 설렘을 가득 안고 시작했던 ‘가수’로서의 여정 속 신 씨에게 항상 아쉬운 점은 ‘공연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는 “지역은 아무래도 수도권에 비하면, 공연을 할 수 있는 장소도 적고, 예술인들이 활동할 기회도 상대적으로 적어 예술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힘든 구조인 것 같다”며 “더 많은 지원사업과 공모사업 등으로 저뿐만이 아닌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인들이 설 자리가 더 넓어지길 바란다”고 바람을 표현했다. 이어 신 씨는 “지역 내 문화 예술 분야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청년 예술인에게는 ‘공연’은 단순히 무대에 올라 공연을 올리는 것만이 아닌 자신의 존재를 알릴 기회라고 생각된다”며 “무대는 일반 관객분들 앞에 올라 본인만의 예술 세계를 보여줄 기회이기도 하지만, 문화 행사를 기획하는 기획자와 문화재단 등 기관 소속의 전문가들에게도 노출될 수 있는 자리다. 이처럼 소중한 기회가 지역 사회의 청년 예술인에게 더 많이 부여되길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이같이 어려운 지역 예술 생태계를 인지하고 있는 가수 신민수 씨 역시 자신의 공연 활동의 확장성을 위해 끊임없이 실력을 갈고닦으며 더욱 성장할 것을 다짐했다. 그는 “지난해를 돌이켜보면, 7년이라는 세월을 달려오며 저도 모르게 현재에 안주하며 게을러진 한해였던 것 같다”며 “새롭게 맞이한 2025년에는 독학으로 배운 기타 연주의 기본기를 더욱 탄탄히 다지는 등 더욱 전문성 있는 활동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가수 신민수 씨는 오는 14일 새로운 앨범 ‘그대만 사랑할래요’를 발매한다. 새롭게 선보여질 앨범은 팝/어쿠스틱 장르로 당일 낮 12시부터 멜론, 벅스, 유튜브뮤직 등 다양한 음원사이트에서 만나볼 수 있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5.01.05 17:57

[안성덕 시인의 풍경] 걸어 걸어가다 보면

날이 밝았습니다. 해가 떴습니다. 어제 그날이 아니고, 어제 그 해가 아닙니다. 묵은 날이 아니고 새날인 것은, 어제 떴던 해가 아니라 새로운 해인 것은 어제의 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내가 되려는 마음입니다. 남보다 먼저 새날을 맞으려는 사람들 정동진으로 호미곶으로 달려갔지요. 남보다 먼저 새로운 해를 보려는 사람들 모악산에 국사봉에 올랐지요. 바다는 멀어서 못 가고 산은 높아서 못 올랐습니다. 핑계가 많은 나,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지평선에 섭니다. 들판 끝으로 거북이걸음을 뗍니다. 끝 간데없는 들판이 하늘과 맞닿아 있네요. 우보만리(牛步萬里)라던가요. 걸어 걸어가다 보면 저 끝에 닿을 것입니다. 남들처럼 내달리지는 못해도 멈추지 않으렵니다. 만 리도 끝이 있을 겁니다. 고단한 어깨를 기대는 듯 사람 人 자 쓰며 기러기 떼가 남으로 가네요.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지요. 앞서 치고 나간 토끼가 언덕 위에서 낮잠을 자지 않더라도, 어서 와 손 내밀지 않더라도 걸어가야만 할 이유입니다. 걸어 걸어가다 보면 지금 저 황량한 보리밭에도 푸르름이 번질 것입니다. 금세 종달새 높이 떠 봄노래 부를 것입니다. 한여름 땡볕을 견디면 서늘한 바람 불어올 겁니다. 신발 몇 켤레 더 장만해야겠습니다.

  • 문화일반
  • 기타
  • 2025.01.04 08:00

새헤라자데, 을사년으로 향하다… 전주시립교향악단 신년음악회 개최

문화의 도시 전주를 대표해 다양한 기획연주를 선보이며, 문화로 지역의 삶을 바꾸는 예술단체, 전주시립교향악단이 을사년 힘찬 출발을 알린다. 전주시립교향악단이 오는 10일 오후 7시 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올해 첫 정기연주회 ‘2025 신년음악회’를 연다. 전주시향은 이날 공연을 통해 러시아 작곡가 글라주노프와 독일 작곡가 라이네케의 음악 세계를 조명하고 현재까지 걸작으로 뽑히는 ‘천일야화-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4가지 이야기를 선보인다. 먼저 전주시향이 새해 첫 연주곡으로 합을 맞출 노래는 글라주노프 작곡가의 ‘중세 시대로부터’의 모음곡 중 <전주곡>으로 짧고 간결하지만, 깊은 감정을 담은 연주로 청중을 사로잡는다. 이어 라이네케 작곡가의 감정적 깊이와 드라마를 잘 표현한 ‘플루트 협주곡 D장조’를 선보이며, 플루트의 아름다운 음색을 극대화해 전한다. 또 이번 무대에서는 세계적인 고전 ‘아라비안나이트’를 음악감상만으로 즐길 수 있는 ‘세헤라자데’가 연주될 것으로 예정돼, 많은 관람객의 관심을 끈다. ‘세헤하자데’는 러시아 출신 림스키코르사코프 작곡가가 ‘아라비안 나이트’를 소재로 관능적이고 동양의 정취를 담은 환상적인 형태의 교향적 모음곡을 구상한 것으로 총 4악장으로 구성됐다. 먼저 제1악장: ‘바다와 신드바드의 항해’를 통해 바다와 신드바드의 배에서 뱃전을 위협하며 우르릉대는 바다를 묘사하며, 제2악장: ‘칼랜더 왕자의 이야기’로 자유롭고 흥미진진한 어느 왕자의 모험 이야기를 그려낸다. 가장 인기 있는 악장인 제3악장: ‘젊은 왕자와 젊은 공주’로 아름답게 묘사되고 신비로운 현악의 선율을 통해 왕자와 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우아하고 이국적인 색채로 표현한다. 마지막 제4악장: ‘바그다드의 축제-바다-조난’으로 바그다드의 이교적인 축제와 해양의 높은 물결에 뒤집히는 신드바드의 배와 앞으로의 여정을 묘사해 낸다. 유료로 진행되는 이번 공연의 입장권은 일반 1만 원(S석), 7000원(A석)이며, 공연예약은 나루컬쳐에서 가능하다. 공연과 관련한 자세한 문의는 전주시립교향악단(063-274-8641)에 할 수 있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5.01.02 17:50

1970년 전북 설경(雪景)을 담다…미술관 솔 '전북동경 1970'

1970년 전북의 설경(雪景)을 품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마련됐다. 눈 내린 전북의 풍경이 담긴 ‘전북동경 1970’展(전)이 내년 2월 28일까지 미술관 솔에서 열린다. 매주 목요일과 설 연휴기간 휴관. 지역에서 활동했던 서양화가 하정 김용봉(夏丁 金用鳳, 1912-1994), 한소희(韓召熙, 1924-1983), 박남재(朴南在, 1929-2020) 등 3인의 겨울 그림 15점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캔버스에 선운산과 지리산 등 진경(眞景) 풍경화를 그려 현실을 충분히 담아냈다. 단순히 실제를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풍경 속에 작가들만의 깊은 감성을 녹여내 여운을 남긴다. 사람의 흔적이 사라진 고요한 겨울 산에 소복하게 쌓인 눈과 앙상한 나뭇가지 모습은, 외딴섬과 같이 적막하고 깊은 상실감을 유발한다. 한국화에서 설경은 눈이 내리는 어둠을 회색의 하늘로 보여주고, 하얀 눈은 색을 칠하지 않는 여백의 미로 표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서양화에서 눈은 흰색과 푸른색, 보라색 빛의 그림자를 통한 명암의 대비를 통해 드러낸다. 색의 정도는 작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지만, 푸른색과 보라색 빛을 중심으로 눈의 다양한 색을 입혀 보는 보는 즐거움을 극대화했다. 또한 3명의 화백은 설경을 조형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그 속에 담긴 정서를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전시의 주제를 ‘동경’으로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은 어떤 것을 간절히 그리워하여 그것만을 생각한다는 동경의 뜻풀이와 겨울 동(冬)과 볕 경(景)의 겨울 풍경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화폭에 차곡차곡 담아 관객과 정서적 교감을 이루어낸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5.01.02 17:33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소설] 느지막이 새로운 길 앞에 서다

소설을 긁적이기 시작하면서 이런 날이 오기까지 30년이 흘렀다. 몇 번의 최종심 심사평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지 얼마간 도전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40대가 되면서 나는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영화에 빠져들었고, 소설은 그저 이미지로만 내 머릿속을 떠돌았다. 영화 속 수많은 삶과 허구들이 소설로 들어서는 경계를 막아섰다. 50대에 접어들자 프레임 속 이미지에 갇혀있던 눈에서 시리게 눈물이 흘렀다. 나를 가두고 있던 프레임의 틀을 벗어나자 생각은 차곡차곡 정리되고, 그 거름을 자양분 삼아서 이야기들은 조금씩 스스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글쓰기란 어쩌면 자문자답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독자의 동감을 설득하는 과정을 동반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작년, 전북일보 최종심에 올랐던 나의 작품에 대해 김병용, 송하춘 선생님은 큰 울림을 던졌다. 꽁꽁 싸매고 살아온 내 삶과 글을 과감히 탈피해서 다양한 타인들의 생각으로 고치고 또 고쳤다. 인생의 변곡점에 들어선 나이에 아직 늦지 않았음을 깨닫게 해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리고 싶다. 느지막이 맞이한 새로운 도전 앞에서 그저 설레고 벅차다. △ 장용돈 씨는 전라북도 고창 출생으로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중에 동아문학상(소설)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전태일 문학상(소설 부문)을 받았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5.01.01 18:40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소설]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소설

2025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14편이었다. 세상이 어수선하고 현실이 소설의 현재를 넘어서는 시대에 소설 역할은 무엇일 수 있을까. 사회, 경제, 정치적 억압이 심할 때 소설의 경향은 지극히 개인적 서사에 머무는 경우가 많고 대의나 대전제를 작품에 적용하거나 가늠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오히려 소설은 그러한 조건에서 문학적 힘이 발휘된다는 전제를 굳게 믿고 큰 기대와 함께 심사에 임했다. 심사위원들은 14편의 소설을 꼼꼼하게 읽고 최종심에 올릴 작품 4편을 선정하여 심의에 들어갔다. 단점이 적은 작품보다는 장점과 미덕이 많은 작품, 신춘문예 특성에 잘 맞는 작품에 중점을 두고 당선작을 가리는 최종 심사에 들어갔다. 「점, 선, 면」은 발상이 기발하고 전개가 독창적이며 개성도 돋보인 작품이었다. 하지만 독백의 서술이 다소 설명적이고 관념이 삶이 되지 못하고 끝맺는 주제의식의 발현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미친 인간들의 노래」는 정치, 경제계의 추악한 면면을 현실감 있게 그린 전개, 가독성이 좋았으며 인물의 성격을 통한 주제의식의 형성이 매끄러웠다. 다만 주요 서사가 익숙하고 단조로운 고발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새로움이 덜했다. 「기원제」는 현실을 사는 직장인의 욕망과 애환, 삶의 가치를 지켜야 하는 갈등을 소재로 삼고 있다. 전개가 자연스러우며 우리가 매일 겪고 있는 생활의 한 치부를 건드려 여운을 길게 남긴 좋은 소설이었다. 다만 소설의 주제가 다소 협소하고 너무 많이 다룬 소재이다 보니 새로움이 덜했다. 좋은 필력을 가지고 있으니 더 좋은 성과가 있으리라 기대한다. 2025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은 「넋두리」이다. 작품은 현재의 농촌을 배경으로 소를 키우고 소를 잃는 농부의 이야기이다. 그런 이유로 낡은 느낌을 주는 것 빼곤 단점이 가장 적고 장점이 넘치는 소설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단점도 소설 안에 들어가면 기우에 불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전혀 낡지 않은 현재를 그리고 있다. 작품은 소설이 가져야 할 여러 미덕을 잘 갖추고 있다. 뚜렷하며 시대적 반영이 이루어진 주제의식, 서사적 긴장감, 안정적인 문장 등 여러 작품 중 단연 돋보인 작품이었다. 지역어의 복원을 통한 유려한 문장은 이 시대의 소설이 필요로 하는 좋은 예이다. 두 심사위원은 지금 꼭 필요한 소설이라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렇게 진득한 소설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넋두리」를 당선작으로 뽑게 되어 기쁘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건네며 좋은 작가로 남길 바란다./심사위원 이광재·백가흠 소설가

  • 문학·출판
  • 기고
  • 2025.01.01 18:39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동화] 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화쓰기 정진

3살짜리 손녀가 감기에 걸렸어요. 어린이집에 못 가고 답답해 하길래 도서관에 갔지요. 널찍한 유아실이 놀이터인줄 알고 뛰는 손녀를 잡으러 다니다가 당선 전화를 받았어요. 동화쓰기를 시작하고 20년 만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영광의 순간은 항상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믿기지가 않았어요. 공모전에 수없이 떨어지고 좌절하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쳤지요. 글쓰기에 재능도 없는데 헛꿈을 꾸는 건 아닐까. 동화에서 도망갈 궁리를 찾는데, 딸이 육아를 부탁했어요. 헛된 꿈보다 손녀 육아가 보람 있는 일인 것 같았어요. 손녀와 개미와 벌, 나비를 쫓아다니느라 동화는 잊어버렸어요. 3월, 손녀가 어린이집에 가자 다시 동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당선이 더욱 기쁜 건, 내 고향 신문에 작품을 선보이게 된 것입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떠나왔지만 잊은 적 없는 사랑하는 고향, 전라북도. 고향신문에 작품이 당선되어 영광이고 기쁨입니다.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겨준 전북일보 관계자분들, 부족한 제 동화를 읽어주고 당선작으로 밀어주신 심사위원분들, 감사합니다. 이제 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화쓰기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거친 초고를 읽어주는 글벗 선생님들, 든든한 버팀목 양중님, 혜진, 대희, 경하, 하영 사랑합니다. △ 김정숙씨는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나 현재 경기도 김포시에 거주하고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5.01.01 18:39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동화] 기발한 설정과 마음을 울리는 메시지

요즘 어린이들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맞춰 본심에 오른 7편의 작품은 SF, 판타지, 의인화, 생활 동화가 고루 있었다. 7편 모두 어린이의 관심을 담고자 하는 노력이 잘 드러났다. 그중 ‘형광펜’, ‘단비 오는 날에’, ‘재주 내기 한판 할래’가 눈에 띄었다. ‘형광펜’은 어린이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한 점이 뛰어났다. 그러나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된 형과의 관계에서 주인공이 주체적인 존재가 아닌 수동적인 상태로 결말을 맞이해서 아쉬웠다. ‘단비 오는 날에’와 ‘재주 내기 한판 할래’와 를 두고 오랜 고심을 하였다. ‘단비 오는 날에’는 안정적이고 흡인력 있는 문장으로 가독성이 뛰어났다. 이야기는 인공비만 내리는 미래 도시의 우산 가게가 배경이다. 할아버지는 우산이 필요 없는 세상에서도 우산을 만들면서 자연비를 기다린다. 최근 심각해진 기후위기를 상징적으로 다루면서 희망을 보여주려는 시도가 돋보였다. 그러나 인공비가 내리는 미래 도시의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지 않아서 우산이 필요 없다는 설정에 설득력이 떨어졌다. 당선작 ‘재주 내기 한판 할래’는 도깨비 더잘난이 휴대전화와 내기를 하겠다는 시작이 기발했다. 옛이야기를 읽는 듯한 자연스러운 문장과 빠른 전개도 장점이었다. 더 잘난은 휴대전화에 빠진 아이들에게 외면당하고, 어른들에게는 구경거리가 된다. 다시 떠돌던 중 아들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리는 할머니를 만난다. 더잘난이 휴대전화 속으로 들어가서 아들 목소리를 선물하는 결말이 인상적이었다. 작품은 진정한 재주는 내가 더 잘났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 다소 매끄럽지 못한 점이 아쉽지만, 앞으로 크게 발전하리라 기대해 본다. 당선을 축하하며 응모해 주신 모든 예비 작가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심사위원 전은희 작가

  • 문학·출판
  • 기고
  • 2025.01.01 18:39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수필] 겨울에도 꽃은 핀다-김수현

올해 초, 사람들에게 글을 그만 써야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마음을 가다듬기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글을 쓰는 것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정리해야 할 때를 아는 것도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어려운 시기를 한국어교육학과에서 극복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몰라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면 조언을 아끼지 않는 교수님들이 계셨다.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도 정서적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이렇게 즐겁고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해도 되나, 겁이 날 정도였다. 2학기가 되고, 글쓰기와 관련된 전공과목을 수강했다. 주제를 선정해서 신문 기사를 작성하거나, 글을 다시 쓰고, 고쳐 썼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글을 1년 이상 쓰지 않았을 때였다. 쓰다 보니 다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한국어교육학과 전공 연계로 후에외국어대에서 특강을 하고 난 후, 중복 투고 확인 전화를 받았다. 다음날 당선 통보를 받았다. 한국어교육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알려주시는 송복승 교수님, 김지현 교수님, 한지현 교수님, 이정아 교수님, 박은경 교수님, 김정 교수님, 나선혜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한국어교육학과 강의실에서 맞은편을 바라본다. 내가 10년 전에 글을 배웠던 문예창작학과가 있다. 글의 토대를 닦을 수 있게 해 주신 김길수 교수님, 곽재구 교수님, 안광진 교수님, 장철문 교수님, 전성태 교수님, 김춘규 교수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덧붙여, 이 자리까지 오는 데에 많은 지지를 보내 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 김수현 씨는 전라남도 순천 출신으로 순천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해, 같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수료했다. 그는 현재 순천대 한국어교육학과에 재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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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1 18:39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시] 치열하게 꿈꾸는 시인이 될 것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배 한 척, 넘실대는 파도를 가로질러 수평선으로 향합니다. 때론 기우뚱 방향을 잃기도 하지요. 시에 대한 갈증과 물음을 가득 싣고 떠난 배처럼, 시는 가까이 존재하지만 확 잡히지 않는 또 다른 나였습니다. 아우성처럼 쏟아지는 많은 말들을 마음속으로 다시 밀어 넣습니다. 10대 때부터 함께 한 ‘시’이지만, 모든 것이 치열하지 못했던 아쉬움과 핑계일 테니까요. 차곡차곡 접어 둔 못다 한 언어들은 앞으로 써야 할 작품 속에 녹여내면 되지 않을까요. 시를 쓰면서 조금 깨달은 게 있습니다. ‘시’는 언제나 그 과정 속에 놓여 있기에, 매 순간 새롭고 치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 어렵고 힘들지만 참 설레이고 행복한 일이기도 합니다.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넘치게 받은 당선 소식에 감사하고 기쁜 마음입니다. 부족한 제 자신을 다독이면서 더 힘을 내라는 메세지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먼저 부족하지만 가능성을 보시고 선택해주신 김사인 시인님, 박남준 시인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창살에 갇히지 않고 훨훨 날아갈 수 있는 시인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조말선 선생님, 시의 내밀성을 찾지 못하고 추위에 떨고 있는 제가 많이 안타까우셨죠. 시의 바닥과 그 깊이를 채워주시려고 하신 마음 알기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께서 늘 강조하신 사유와 인식, 그리고 대상의 속성으로 새로움을 발견해내는, 이미지와 묘사를 잃지 않는 시인이 되도록 애쓰겠습니다. 시를 쓰는 과정에서 함께 한 신정민 선생님, 강영환 선생님께도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시’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많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누던 다정한 지평 선생님들, 저보다 더 많이 기뻐해 주시는 모습에 울컥했습니다. 애정어린 잔소리로 응원해 준 사랑하는 남편과 딸 시현, 기뻐해 주시는 아버님, 버팀목과 안식처인 김경남 나의 엄마, 현승, 현준 사랑하는 가족을 비롯해, 진심으로 기뻐해 주시는 소중한 지인분들과 나의 사랑하는 벗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딸이 글쓰는 걸 늘 응원해주셨던 그리운 아버지, 아직 늦지 않았지요, 치열하게 꿈꾸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 이주경 씨는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부산광역시와 김해장유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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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1 18:39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시] 고요한 영혼의 시위를 당겨라

‘신춘 병’이라는 오직 문청이라 분류 지칭되는 종족에게만 대책 없이 전염되고 일사불란하게 치유를 거부하는 지독한 병이 세대를 초월해서 아직도 유효한가 보다. 일천여 편이 넘는 투고 시가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왔다. 모두 열두 분의 44편이었다. “필락경풍우 시성읍귀신(筆落驚風雨 詩成泣鬼神), 붓을 들어 떨치면 비바람이 놀라고 시를 지어 이루면 귀신도 울고 가는 이라며 두보가 이백을 일러 존경을 표한 헌사가 있다. 모름지기 시를 짓는다면 적어도 이 정도의 문장을 꿈꾸어야 하지 않는가.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라고 젊은 날 시마에 빠져 시의 날을 벼리기도, 그렇지 못한 남루한 시적 재능을 자학하던 시절이 있었다. 발칙 풍부하고 패기 넘치는 상상력, 갓 건져 올린 물고기의 비늘에 파닥거리는 윤슬, 우주를 들이마신 숨을 멈추며 이윽고 고요한 내면의 시위를 당긴 숨 가쁘도록 팽팽한 긴장, 수면을 차고 튀어 오른 물방울에 비친 영혼의 무게. 신춘문예 심사를 하다가 위와 같은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기쁨을 누리는 순간이다. 잊고 있었던 호승심이 일기도 부러움에 눈꺼풀이 가만히 내리 감기기도 한다. 「카카리키 앵무」외 2편과 「컨베이어 벨트」외 3편, 두사람의 작품을 두고 아주 잠시 머리를 맞댔다. 기성의 시문법, 감각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훈련도 쉽지는 않지만, 그보다는 심사위원으로 대표되는 기성의 미적 감각과 안목을 돌파 해주는 그러한 신선함 속에 시적 설득력을 발휘하는 새 목소리, 새 힘을 우리는 기다리는 것이다. 적어도 그런 의욕과 모험의 열정을 기대하는 것. 기준이 그러했다. 「자석 수평계」, 「새점」, 비록 완성도가 높은 수준작이기는 하지만 기성세대와 크게 다를바없는 작품은 적어도 신춘에서는 보류하기로 했다. 당선작은 왜 꼭 한사람이어야 할까. 「들깨꽃 부각」은 시대상황과 맞물려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시란, 시인이란 내일을 향한 날카로운 예각의 안테나를 갈고 닦고 기다려야 한다. 뮤즈의 샘물이 가득 차오르기 까지. 「카카리키 앵무」는 사회문제로 떠오른 층간소음문제, 육아, 가족, 교육문제등을 반려동물을 통해 바라본 작품이다. 당선작을 받쳐주는 다른 작품의 수준이 조금은 고른 이에게 마음이 더 기울였다. 또한 시를 끌고 나가는 뒷힘과 함께 당선자 쪽의 발랄과 생기가 우리의 의도에 더 맞는 것으로 여겼다. 부디 당선작이 대표작이 된 시인으로 머물지 않기를 바라며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박남준·김사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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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1 18:39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시] 카카리키 앵무-이주경

조용히 우는 아이를 창살에 가둔다 주전자 물 끓는 소리보다 작게 울어도 가둔다 미풍에 머리카락 날리는 소리보다 작게 울어도 가둔다 창문보다 낮게 목소리를 죽이는 아이, 이웃집엔 중문도 방음벽도 없단다 얌전히 울면 해바라기 씨를 가득 줄 테야 호기심 많은 아이를 창살에 가둔다 탁자 위에 놓인 꽃병을 쪼아대도 가둔다 짧고 단단한 부리로 백합 꽃잎을 쪼아대도 가둔다 동글동글한 눈빛으로 수도꼭지를 툭툭 건드려도 가둔다 집안에서 제일 예민한 각도로 웅크리는 아이, 이웃집엔 꽃병도 수도꼭지도 없단다 너의 호기심을 잠그면 해바라기 밭을 줄 테야 혼자 놀기 좋아하는 아이를 창살에 가둔다 오후 햇살이 올리브색 깃털 위로 미끄러져도 가둔다 건반 위를 콩콩 뛰어다니기만 해도 가둔다 깨지지 않는 거울을 보고 혼잣말을 해도 가둔다 방안에서 깃털을 고르는 아이, 이웃집엔 햇살도 거울도 없단다 방안 가득 네 꿈을 펼친다면 새장을 통째로 줄 테야 아파트 밖을 나서는 아이를 창살에 가둔다 창문 여는 소리만 들려도 가둔다 놀이터에서 들리는 웃음소리가 높아져도 가둔다 마오리족의 깃털처럼 가벼워지려는 아이를 가둔다 창살 안에서 노란 깃털을 뽐내는 아이, 이웃집엔 너 같은 아이도 악보도 없단다 내 앞에서만 노래하면 새장을 요람처럼 흔들어 줄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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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1 18:38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소설] 넋두리-장용돈

코뚜레에 걸쳐진 줄은 용수철처럼 딴딴하고 팽팽하다. 조교사들은 금방이라도 튕겨 나갈 듯한 줄을 잡고 용을 쓰며 끌어당긴다. 곧이어 두 소의 머리를 맞대고 코뚜레의 줄을 빼내는 순간, 이내 싸움은 시작된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혓바닥에서 연신 거품이 흘러내린다. 단단한 근육으로 뭉쳐진 네 개의 발은 땅바닥에 단단하게 고정해 상대방의 힘에 밀릴지언정 제 발로 물러서지는 않는다. 목덜미를 앞으로 수그린 채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친 뿔을 부딪치면서 상대 소에게 굴복해 절대로 밀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녀석들의 커다랗고 순한 눈알에서는 이제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전의가 불타오른다. 상대 소는 800Kg 이상의 제일 무거운 체급인 갑종 싸움소 중 청도에서 정읍까지 벌써 4연승을 달리는 갑짱이다. 그렇게 15분여가 흐른 뒤, 갑짱을 상대로 창해의 적극적인 뿔걸이 공격이 시작된다. 창해의 뿔이 갑짱의 뿔을 걸어서 목을 왼편으로 꺾는다. 갑짱은 혓바닥을 땅에 끌릴 듯 길게 늘어뜨리고,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쉰다. 창해는 뿔 기술뿐만 아니라 머리 밀기, 목 감아 돌리기, 들어 밀치기, 배치기 등 어느 기술 하나 나무랄 데 없이 정말 싸움을 하려고 태어난 소 같다. 창해의 지능적인 싸움 앞에서 호흡이 불안해진 갑짱의 눈빛에 긴장한 기색이 뚜렷하다. 곧이어 창해가 뿔걸이 상태로 갑짱의 육중한 몸을 밀치기 시작한다. 밀리지 않기 위해 버티는 갑짱의 앞발이 점차 땅바닥을 파헤치며 뒤로 끌린다. 그러나 창해의 뚝심 있는 밀치기 앞에서 갑짱은 도무지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는 듯 몸을 돌려 싸움을 포기하고 만다. 자신보다 100kg은 더 나가는 갑짱을 이긴 뒤, 창해는 머리에 시퍼런 멍이 들고 뿔에 찢겨 피가 흥건한 상황에서도 갑짱을 뒤쫓아 가지 않는다. 관중들의 환호를 들으며 싸움장 한가운데에 콧바람만 씩씩거리면서 자리를 지킨 채 서 있는 창해의 당당한 눈망울. 당신은 논두렁 길에 우두커니 서서 창해의 맑고 선했던 그 눈망울을 떠올리며 심란해지는 마음을 애써 추스른다. 잔뜩 성이 나서 논배미 위를 휘감아 돌던 바람이 발정 난 수캐처럼 덤벼든다. 조만간 겁나게 심헌 비라도 퍼부어대면 인자 포도시 뿌리 내리고 여물어가는 벼 모가지들이 제대로 버틸랑가, 라고 당신은 멀리 먹물이 번지듯 하늘을 뒤덮은 채 몰려드는 구름을 보며 걱정스레 혼잣말을 한다. 그 구름이 터지면서 내뿜기라도 하는 듯 거칠고 강한 바람이 푸른빛으로 물들어가는 나락을 훑으면서 쏟아져 내린다. 바람은 이내 시누대처럼 가늘고 구부정한 당신의 허리를 세차게 훑는다. 당신은 찢어진 창호지가 되어 금방이라도 바람에 실려 공중으로 날아갈 듯 위태로운 발걸음으로 유모차를 밀면서 논두렁을 걸어간다. 굳이 새로 난 포장된 길이 아닌 좁은 논두렁 길을 택해 걷는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지만, 당신이 매일 이렇듯 비좁은 길로 마을회관에 오고 갔음을 나는 오늘에서야 알게 된다. 잠시 가던 걸음을 멈추고 당신은 이삭이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벼를 자식들 머리카락을 빗겨주듯이 어루만진다. 당신의 손가락 마디에 내 입김이 닿을까 싶어 세차게 내려앉아 보지만, 당신은 그저 두 손에 더욱 힘을 주고서 흔들리는 유모차의 손잡이를 부여잡고 걸어간다. 당신은 젊은 시절 같았으면 몇십 초면 될 마을회관까지의 그 짧은 거리를 한참이나 걸려 어렵게 도착한다. 저 멀리 마을 입구에서는 동물방역단 통제관과 동물위생시험소 소속 가축방역관, 방역팀 등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고, 회관 앞 공터에 모인 사람들에게 군청에서 나온 조사관이 보상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근방에서 소, 돼지 등을 키우는 집은 5가구 정도인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모여있다. 열대여섯 중에서 이장을 비롯한 서너 명의 60대를 제외하면 대부분 70, 80대 노인만 있을 뿐 조사관 또래의 50대 아래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제 머지않아 이 사람들조차 하나둘 떠나고 나면 마을은 잡초와 바람만 무성한 채 느리게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이번에 살처분한 가축들 현시세대로 보상비도 받고, 거기다 위로금까지 더 보태주니 오히려 축산 농가에게는 이득이죠. 그리고….” “에끼! 고런 느자구 없는 야그를 할라문 그냥 우리들까정 다 한꺼번에 묻어 불라고 하쇼. 우리가 키우는 돼아지, 소가 어디 그냥 가축이간디. 맨날 빈 항아리에다 우물물 붓드끼 사룟값도 안 나올 거 뻔히 알면서도 몸이 뽀사져라 지금껏 애지중지 키운 것은…고것들이 우리헌티는 어찌 되었든간에 귀허디 귀헌 자식새끼 같은게 그리 안 했겄소.” 조사관이 설명을 다 마치기도 전에 이장이 금방이라도 멱살이라도 잡아챌 것처럼 눈을 부라리며 잔뜩 부아가 치민 목소리로 말을 던진다. 그는 아침부터 해장술이라도 했는지 눈알이며 얼굴이 불그레하다. “하따! 그렇게 귀헌 자식새끼 같으믄 백신도 잘 맞히고 허지 좀…….” 올봄 이장 선거에서 떨어진 뒤 서로 말도 잘 섞지 않는 낙근 씨가 이장에게 비아냥대면서 말을 받는다. 이번 동물 전염병 사태는 바로 이장이 기르던 소가 처음으로 1급 전염병 판정을 받은 뒤 시작되었기에 사람들은 은근히 이장이 미안하다는 표시라도 해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마을 축산 농가에게 고개 한번 숙이지 않을 정도로 당당했다. “저짝은 고작 3마리밖에 안되는디, 거그서 300미터 떨어진 나는 20마리란 말요. 글고 아, 솔직히 말혀서, 3년 전, 전국적으로 그 생난리를 쳤던 구제역 파동 때도 병으로 죽은 소가 어디 있었다요? 다들 예방 차원에서 수만 마리나 살처분해 불었제.” 낙근 씨가 이장 쪽으로 손가락질을 하더니 조사관을 향해 말을 이어간다. 이장은 은근히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삭이려고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문다. 먼 친척이면서도 두 사람은 무엇이든 서로를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라 결국 이장 선거 때는 삿대질까지 하면서 언성을 높이더니 얼마간 왕래를 끊기까지 했다. 당신은 사람들이 왜 모여있는지, 당신이 여기에 왜 왔는지도 모르는 사람처럼 유모차를 한곳에 삐딱하게 버려둔 채로 ‘백계리 마을회관’이란 팻말이 붙여진 현관을 지나쳐 바로 옆 당산나무 앞으로 걸어간다. 오매, 지지리 복도 없는 년! 태어날 때부텀 망태기로 퍼 담을 맹키로 차고 넘치는 복을 원허지도 않았는디 …. 당신은 느닷없이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더니 신세 한탄을 쏟아낸다. 마을 사람들은 또 시작이라는 듯이 하나둘 그런 당신에게서 시선을 돌린다. 군청 직원이 줄을 선 사람들에게 조사서를 나눠주면서 힐끗 당신을 한번 쳐다보았을 뿐, 당산나무를 향해 연신 절을 하면서 주저리주저리 뱉어내는 당신의 말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나무와 처음 마주하던 날, 낯선 곳에서 시작될 새로운 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어리고 귀엽기까지 하던 당신의 모습과 지금의 당신은 도무지 겹치지 않는다. 신부 화장을 곱게 하고 수줍은 얼굴로 가마에서 내리던 당신은 그때도 당산나무를 보고 손을 모은 채 절을 했었다. 그 당산나무는 이제 곳곳이 썩고 생채기가 나서 몸통만 유독 만삭의 아낙네 배처럼 부풀어 오르고 위쪽으로 가지들은 앙상하게 말라 있다. 몇 년 전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몸 곳곳에 영양제를 찔러대고 보수를 해주어도 도무지 예전의 풍성한 잎들을 드러내지 못한 채 죽어가는 중이다. 당신이 여기 백계리로 시집을 온 것은 막 스물다섯 살 생일을 보낸 며칠 뒤였다. 열 살도 되기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등지는 바람에 엄니 혼자서 위로 오라버니 셋, 아래로 여동생 둘까지 육 남매를 키우다 보니께 울 엄니 손바닥은 늘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맹키로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고, 삼시 세끼 때만 되면 자식들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할 생각에 걱정이 가실 날이 없었당게요. 그래서 울 엄니가 나를 열한 살 때 광주에 있는 고모 댁으로 식모살이를 보냈제. 그때는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라도 한 방울 나올지 알았더만, 엄니 고생을 덜어준다고 생각허니께…. 오매, 거 아예 속이 시원섭섭허드랑게. 그때부텀 난 나중에 시집가더라도 울 엄니처럼 시골 사는 남자하고는 상종도 안할 것이라고 속으로 각오를 해불었제. 그런디도 뭔 놈의 팔자가 이리 배암이 똬리 튼 것 맨키 배배 꼬인 것인지 먼 친척 되는 아재가 중매를 서서 여그 백계리까정 안왔겄소, 첫날 밤, 당신의 옷고름을 풀어주기도 전에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내 머리맡에 앉아 당신은 앞으로 펼쳐질 이곳에서의 생활을 뻔히 아는 사람처럼 방바닥이 꺼지라 한숨을 토하며 혼잣말을 해댔다. 당신이 시집을 온 백계리는 이름처럼 하얀 닭 머리 모양의 산 아래 위치해서인지 돌산이 절반을 차지하고 기껏 논이라고 해봤자 갯물을 먹어서 나락을 심어도 한 마지기에 겨우 서너 가마니밖에 안 나와 농사짓기에도 젬병인 그런 동네였다. 그 논에다 거름 져 나르고 땅심을 북돋아가면서 한 해 한 해 힘겹게 농사를 짓다 보니 기름진 농토가 되었고, 또 밤낮으로 쇠스랑이며 곡괭이로 파내고 일구다 보니 그 많던 돌산에 지렁이가 바글거리고 심는 족족 씨알이 굵은 곡식들이 자라는 밭이 생기게 되었다. 참말로 그때만 하더라도 논밭이 아니면 세상에 먹고 사는 길이 없는 줄 알고 당신이나 나나 눈에 쌍심지 켜고 죽어라 일만 했다. “꼭 송충이마냥 겁나게 징그럽더만, 고것이 인자는 맥없이 좋소잉.” 소쩍새 한 마리가 뒤안 대숲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 곤히 잠들어 있는 어린 것들이 깰새라 당신은 이불을 돌돌 말아 몸에 감더니 코 먹은 소리로 나를 보며 그랬다. 송충이처럼 떡하니 자리 잡은 눈썹을 보면서 처음에는 징그럽다고 하던 당신은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얼굴에서 눈썹이 사내답고 강하게 보여서 유독 좋다고 했다. “남우세스럽구만 잉.” “워매, 고것이 뭣이 남우세스러운 일이다요. 젊을 적에사 밥 먹다 말고도 눈 맞아서 자빠뜨리고 자빠지고 다 그리함서 새끼들 낳고 허는 것이제.” 마당에 덕석 깔고 콩 타작을 할 때면 도리깨를 들어 올릴 적마다 내 눈썹이 위아래로 꼼지락대는 걸 보다가 ‘오매, 참말로 가슴을 콩닥거리게 허요’,라며 당신은 내 팔을 잡아당기고는 했다. 당신과 나는 아직 몸이 젊을 때라 밭에서 일하다 말고 풀밭에 쓰러져 함께 뒹굴기도 여러 번이었고, 논두렁에서 피 뽑다 말고 내 우악스런 손아귀에 못 이기는 척 논 옆 비닐하우스에 들어가서 그런 적도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큰아들놈 낳고 둘째까지 낳아 오직 자식놈 뒷바라지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평생을 살았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남의 집 품앗이 다니고, 하루 일 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뼈가 부서지도록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덧 두 마지기였던 논이 네 마지기로 늘었고, 밭도 기름지고 볕 좋은 놈으로 서너 마지기를 장만할 수 있었다. 나는 땅문서에 찍힌 도장밥이 마르기도 전에 당신을 안고 좋아 죽겠다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오매, 이녁은 몸뚱이는 째깐해도 뭔 일을 혀도 각단지게 허는구만. 그동안 겁나게 고생해 불었네.” “으째 근다요. 나는 암시랑도 안해라. 이쁜 우리 아그들 덕분에 신간은 겁나게 편했당게요.” 나는 그런 당신이 얼마나 귀여웠던지 내 몸쪽으로 바짝 당겨서 안고, 밤이 새도록 탐했다. 자식들도 자기 부모 힘들게 일하는 거 보면서 이런 촌구석 아이들 같지 않게 공부도 잘해주고 아무런 말썽도 부리지 않으면서 잘 커 주었다. 큰아들이 그 어렵다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떡하니 합격했을 때 당신은 얼마나 신이 났던지 마을 입구에는 현수막 걸고, 당산나무 아래엔 덕석 깔고서 동네 사람들 다 불러 놓고 돼지도 잡고 떡도 해서 크게 잔치를 열었다. 다들 아시지라? 그날 진안댁이 막걸리에 취해가꼬 먼저 죽은 자슥놈 생각난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잔치판이 난장판이 되질 않았습디요. 근디 자식 놈들을 그렇게 애지중지함서 키웠는디 그라문 뭣헌다요, 당신의 말은 또 이쯤에서 끊긴다. 당신은 빙판길에서 쓰러진 뒤로 고관절 수술을 두 번씩이나 했다. 그 뒤로 당신은 말투가 어눌해지고 행동거지는 생각대로 되지 않아 늘 마음과 말이 엇박자를 놓았다. 큰아들 명호가 베트남 비행기에 오른 그해 겨울, 눈에 파묻힌 마을은 무섭도록 아름다웠다. 당신의 증상도 아마 그날부터 더욱 심해졌을 것이다. 다랑이 논 사이로 드문드문 베트남 전통가옥인 냐산의 삼각뿔형 지붕이 들어서 있다. 논두렁 위, 시커먼 털과 크고 뾰족한 뿔을 가진 물소에 올라탄 채 까맣게 얼굴이 그을린 중년의 아들이 활짝 웃고 있다. 그 옆에 대나무로 만든 뾰족한 논라를 머리에 쓰고 붉은색 아오자이를 곱게 입은 채, 아직도 앳돼 보이는 트엉이 수줍은 듯 서 있다. 마을을 떠난 지 한 달이 넘어서야 보내온 사진 속에서 아들과 트엉은 행복해 보였다. 당신은 아들이 보내온 사진을 나에게 들키기라도 할까 봐서 몰래 감춰두고 수시로 꺼내 보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마실 가고 없을 때면 몇 번씩 훔쳐보고는 했기에 아들이 중국과 국경을 나란히 한 베트남 북부 농촌 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날이 저리 개러가꼬 어쩔까이? 아무래도 올해 장마는, 몰아치는 바람이며 몰려드는 시커먼 구름떼가 시피 볼 것이 아니구만요. 그랴도 작년처럼 징헌 물난리는 없어야 쓰겄는디.” 언제 왔는지 당신과 그나마 각별하게 지내는 금평댁이 작년 물난리 이야기를 꺼내며 자꾸만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당신의 생각을 토막 낸다. 정말이지 작년에는 염병할 놈의 태풍이 초복이 한참 지나서야 뒤늦게 몰려들더니 근 열흘 동안 내리퍼붓던 장대비 때문에 저수지 둑이 무너져 성수네 논이며, 금평댁 수박밭이 죄다 물에 잠겨버렸다. “어따 성님, 저거 쪼까 보랑게요. 저런 오살헐 놈의 시궁창물이 우리 목심줄 겉은 수박들을 다 아작 낸 것도 모자래서 시방 동동거림서 나를 약 올리는 거 맞지라잉. 오매 징한 거! 저 아까운 것들 우짠단가.” 그 금싸라기 같은 수박들이 물 위로 동동 떠내려가는 걸 망연한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금평댁은 힘이 빠진 목소리로 그랬다. 그리고 그날 이후, 금평댁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유모차를 앞세우지 않고서는 제대로 바깥출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올해는 장마가 오기 전부터 징글맞게 궂은일들만 무시로 들이닥쳐서 당신은 애간장이 다 녹아버릴 듯 힘들 때가 부지기수다. 애써 마음을 추스른 채 금평댁의 유모차를 따라 당신과 당신의 유모차는 사람들 쪽으로 향한다. 조사관 앞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밀치고 당신이 맨 앞으로 끼어들어도 누구 하나 막아서지 않는다. 근디 우리 소는 다르단 말요, 라고 시작되는 당신의 넋두리는 당신이 굳이 다음 내용을 말하지 않아도, 회관 앞에 모인 사람들은 당신이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모두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신은 개의치 않는다. 벌써 사흘째, 당신은 매일 같은 시간에 그곳에서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중이다. 긍게로 이런저런 사정 다 따져서 암만 생각혀도 제일로 불쌍한 것은 우리집 양반이랑게. 우리집 양반이 그 많던 농사는 등한시 하고 날마다 싸움소에 정신이 저러코롬 환장하게 된 게 벌써 십몇 년이 넘었지라. 아들놈들도 어지간한 송아지 열 마리 값을 암시랑도 안하드끼 지불허고 고작 싸움소 될 성싶은 송아지 한 마리만 덜커덩 사오는 즈그 아부지가 제정신이 아니라며 등을 돌리다시피 했당게. 근디도 기언코 우승시키겄다고, 그 양반이 정성을 기울인 내막을 내가 여그서 다 말하는 것은 어림 택도 없을 것이여. 그동안 우시장마다 돌아댕김서 쓸 만한 송아지를 사다가 금이야 옥이야 해감서 보약 다려 멕이고, 타이어 매달고 들로 산으로 끌고 다님서 훈련시킨다고 쏟아 부은 돈만 허드라도 논 열댓 마지기는 족히 넘을 것이요. 근디, 이 양반이 농사일까정 내팽개쳐 감서 그렇게 송아지부텀 온갖 정성을 다해서 키워 어느 정도 자라 코뚜레하고 고생고생 해가꼬 훈련을 시키면 뭣한다요. 이놈의 것들을 비싼 운반 트럭에 태워가꼬 그 먼 곳까지 데리고 가서 조교사까지 붙여 싸움장에 내려놓기만 하면 출전 호명과 함께 잔뜩 긴장을 해가꼬는 상대방 소 한번 들이받지도 못한 채 엉덩이를 빼고 줄행랑을 치기 일쑤였당게. 근디 창해는 고것이 아니드란 말요. 싸움소, 창해! 창해는 흔히 볼 수 있는 누렁소가 아니라 그런 싸움소 중에서도 보기 힘들다는 호랑이 털빛 같은 얼룩 문양을 가진 칡소였다. 정읍 우시장을 수십 번을 다니며 발견한 놈이었고, 태어난 지 석 달밖에 안 된 송아지인데도 목이 드럼통처럼 굵직하고 가슴팍은 단단하면서도 넓으며 등과 뒷다리가 척 봐도 힘깨나 쓰게 생겼었다. 거기다 꼬리는 말 꼬랑지같이 길고, 눈과 귀가 작은 것이 간이 커서 싸움판에서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듯 보였다. 당신은 싸움소에 대해 잘 아는 듯이 창해 등짝을 매만지면서 자랑삼아 말했다. 여보! 이놈은 말여, 무엇보다 뿔이 맘에 든당게. 여그를 좀 보소. 아직 삐져나오지는 않았지만 여그 뿔 자리가 하늘을 향해 있는 모양새가 분명히 노고지리 뿔이여. 인자 이놈이 싸움판에 나서기만 해보라제. 뿔치기, 뿔걸이에서 이놈을 당할 소는 없을 것인게. 창해가 소싸움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올 때면 마을회관에서는 늘 당신 덕에 잔치가 열렸다. 멀리 경상도 김해에서 열렸던 소싸움 대회의 갑종 부문에서 창해가 우승했을 때도 그랬고, 전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싸움소 120마리가 모인 창녕 소싸움 대회 결승전에서 목치기 한판승으로 이겼을 때도 당신은 마을 사람들과도 이 기쁨을 같이 해야 한다며 기필코 상금 800만원 중에서 200만원씩이나 턱하니 잔칫상 차리는데 내놨다. 만약에 매일같이 그런 잔치만 있었다면 당신이 말하듯 ‘가슴팍 한구녕에 애리게 박아 놓은 상처’는 좀 누그러졌을까. 당신이 둘째를 낳고, 겨우 산후조리를 마친 그 날밤, 나는 읍내의 허름한 선술집 김 양의 진한 분 냄새에 취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나는 정신이 회까닥해버린 상태였다. 당신은 그 어둡고 먼 밤길을 손전등 하나만 달랑 들고서 한 시간을 넘게 걸었다. 산짐승과 풀벌레 소리에 잠식되어 어디쯤인지 분간도 하기 힘든 길 위로 눈을 똑바로 못 뜰 정도로 무시로 바람이 덮쳐 왔다. 당신은 고갯길을 두 개나 오르고 바람도 잦아들고 해서 잠시 쉬느라 바위 위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 가득 별들이 마치 화롯불에서 활활 타오르는 숯덩이를 마당에 확 흩뿌려 놓은 것처럼 요상스럽게 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들이 가슴팍으로 아리게 파고들더니 불안한 마음의 잉걸불이 되어 버렸다. 불안은 인제 의심 덩이가 되어 가슴팍에다 쉼 없이 풀무질을 해대고 맥없이 눈물마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당신은 담박질로 읍내까지 가서 기어코 두 눈으로 확인을 하고야 말았다. 부뚜막 아궁이에 집어넣고 장작 때기를 겹으로 쌓아 불을 싸질러도 시원찮을 연놈들이 방구석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저승사자 보듯이 당신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당신은 눈앞에서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으면서 온몸에 있는 기운이 실타래 풀어지듯 스르르 땅바닥으로 꺼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참 주저앉아 있다가 그 문짝이 부서지라 닫아버리고 뒤돌아서 터벅터벅 집까지 걸어갔다. 그날, 당신이 나를 원망하거나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면 아마 나는 당신을 따라서 그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 당신은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일이 있으면 나를 쏘아보며 ‘씨는 못 속인당게. 꼭 그런 것만 저그 아부지를 탁했응게로. 서방 복 없는 년이 뭔 놈의 자식 복을 바란디야.’라며 사금파리처럼 예리한 한 마디를 남편인지 아들인지 모르는 상대에게 쏘아붙이고는 했다. “한탕주의나 부추기는 소싸움이 무슨 놈의 전통이고 민속이라고. 솔직히 불쌍한 동물을 학대하는 거죠. 이제 고만 좀 하세요.” 싸움소에게 먹일 쇠죽에다 미꾸라지며 인삼을 갈아서 넣고 있을 때였다. 아들은 외양간 앞에 삐딱하게 선 채 비꼬는 말투로 이제 막 3살이 되는 창해를 팔자고 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하마터면 왼손에 들고 있는 솥뚜껑을 놓칠 뻔했다. 서울의 그 좋다는 대학 나와서 착실하게 회사 생활하면서 아파트도 한 채 있겠다, 거기다 많이 배운 마누라 얻어서 떵떵거리면서 잘 살던 아들이었다. 그런데 주식이며 부동산 투자한답시고 눈알이 핑 돌더니 밑 빠진 독에 양수기로 물을 퍼 담아 날라도 차지 않을 만큼 맨날 돈을 꼬라박기 시작했다. 결국, 아파트를 처분한 돈과 회사 퇴직금까지 날리고 이혼까지 당하더니 빈털터리가 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싸움소가 돈이 된다는 소리를 어디서 들었는지 사업자금으로 쓸 돈을 해달라고 보챘다. 그건 가당치도 않았다. 당신과 나에게 창해는 그저 사고팔 수 있는 짐승이 아니었다. 그러더니 아들은 동업자인 친구 상현이가 보증을 서준 덕분에 농협에서 빚을 내 콤바인과 트랙터 등의 농기계를 사 왔다. 둘은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기계로 수확해주는 일을 시작했다. 노인들이 대부분인 농촌에서 그나마 몇 안 되는 젊은 사람들인지라 어느 정도 사업이 성공한 듯 보였다. 늦게나마 정신을 차리고 성실하게 살아주는 그런 아들의 모습에 괜히 마음이 아려오기까지 했다. 아직 한창인 창해를 싸움소에서 은퇴시킨 것도 몸이 늙고 병이 와서라기보다는 아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앞서서였는지도 모른다. 럼피스킨병! 당신에게는 화성이니 명왕성처럼 도무지 가늠하기도 어렵고, 발음조차 하기 힘든 낯선 이름의 병명을 방역관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전염성이 강한 병이라고 했다. 같은 마을의 소는 물론이고 돼지들 전부 살처분 대상이라고 했다. 살처분이라는 말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 더미를 처리하는 것처럼 너무도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당신은 그저 창해 발굽에 조그마한 물집이 잡히고 고열이 있으면서 며칠간 침만 질질 흘리고 먹지도 않아 걱정스러워했을 뿐이다. 창해는 은퇴한 지 벌써 5년이 되었지만 비실비실한 일반 소와 달리 싸움소 출신이라 그런 병에 쉽사리 걸리지 않을 것이란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가축방역관들은 인근 500미터 근방의 모든 소는 살처분 대상이라며 막무가내로 창해에게 마취제를 찔러 넣었다. 마취제를 맞더니 힘이 빠진 채 두 눈을 끔뻑이며 당신을 뻔히 쳐다보는 고것 눈에서 굵은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는 걸 당신은 분명히 보고 말았다, 아직 숨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창해를 매몰지까지 싣고 온 굴착기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구덩이에다 쳐 박아넣고 흙으로 덮어 버렸다. 당신은 자기 몸이 굴착기의 삽으로 난도질당하고 파묻히기라도 하는 것처럼 가슴이 녹아내릴 듯이 아프고, 발길이 허청대며 제자리에 발붙이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고혈압 땜시 크게 쓰러지고 난 뒤로는 죽을 날만 기둘리며 몸할라 지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양반이 창해가 있는 외양간으로 기다시피 가더니만 꽥꽥거림서 나옵디다. 내가 야그를 마치기도 전에 이 양반이 울부짖음서 창해가 묻힌 땅을 손가락으로 파내는디 오매, 손톱이 빠지기라도 혔는지 그 양반 손가락 살점들이 찢겨져 피가 흥건해지고 세상 다 망했다는 듯이 눈물을 흘리면서 꺼억꺼억 소리 내어 통곡까정 허더랑게요. 그리고 그날 저녁부텀 시름시름 앓더니만 인자는 저렇게 영영 못 일어나는 신세가 안되야 부렀소. 하이고, 우리 영감 불쌍혀서 어짠단가. 저 양반, 소를 지 자식새끼보다 더 애지중지함서 키웠는디. 좋은 것 많이 멕임서 죽을 때까정 호강시키겄다고 벼르고 있었는디. 말 못 허는 짐승이야 그렇다 치고, 시방 자기할라 이 시상 뜰라고 저래 숨을 꼴딱거리고 있응께 인자는 배겨낼 재간이 없는갑소,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당신은 이제 거의 눈물 콧물 범벅인 채로 땅에 털썩 주저앉아 부지깽이처럼 말라비틀어진 손으로 땅바닥을 내리치며 울부짖기까지 한다. 군청에서 나온 조사관이 재빨리 체크리스트를 넘기면서 무엇인가를 찾는다. 그리고 당신과 이장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부러 한마디 던진다. “그건 너무 걱정마세요. 분명 일반소와 싸움소 가치를 달리해서 보상할 테니까요.” “음마! 누가 보상비 바라고 이라요? 거, 좋은 방법으로다 안락사라는 것도 있는디 뭣땀시 애먼 것들을 그리 숭악허게들 생으로 죽이느냐 이 말이제.” 금평댁이 당신의 손을 잡아 일으키면서 조사관을 앙칼지게 쏘아보며 한 마디 내뱉는다. “시간과의 싸움이니까요. 지금 저희도 동물방역당국과 협조하에 현장 통제와 소독, 역학 조사를 벌이느라 밤낮없이 많은 사람이 고생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해당 동물들 고통 없이 처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너무 염려치 마세요.” “그라요? 그라문 하다못해 마취제를 쓰든가 아님, 가스를 쓰든가 해야 쓸 것 아니요. 몇 년 전에 전국적으로 구제역 돌 때는 시간 아낀다고 애먼 근육 이완제를 쓴 거 다 아요.” 담배만 연신 뿜어대던 낙근 씨가 갑자기 나서면서 3년 전에 전국의 축산업을 위기로 몰았던 구제역 파동으로 이야기를 돌려댄다. 그때는 너무 긴박하고 어려운 상황이라 동물 사체처리반 중에서도 과로사하는 사람이 나올 정도였고, 워낙 많은 수의 살처분이 진행되었기에 근육 이완제만 주사하고 바둥거리는 동물을 곧바로 매몰시키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조사관은 곤란한 표정이 역력한 얼굴로 서류를 신경질적으로 넘겨댄다. 당신은 조사관이 입술 꼬리를 한쪽으로 말아 올리며 인상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어쩐지 아들 명호의 그것과 닮아있음을 느낀다. 상현에게 국제결혼을 부추긴 것은 명호였다. 어릴 때부터 소아마비를 앓아서 몸이 불편했던 상현은 나이가 들어서도 연애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명호는 그런 상현에게 사내로 태어났으면 결혼도 한번은 해보는 게 좋을 거라며, 내켜 않는 그를 꼬드겨 부득불 베트남까지 동행했다. 그렇게 스물다섯 살의 트엉은 낯선 땅에서 신부가 되었다. 트엉은 눈이 솔방울처럼 크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듯 그렁그렁한 눈동자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가느다란 허리와 어딘지 여리게만 보이는 얼굴은 보호본능을 자극하고 서툰 한국말로 인사를 할 때의 목소리는 상냥했다. 얼마간 결혼 생활은 순탄하게 흘렀다. 그러나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절고, 말이 어눌한 것이 늘 상처로 남아있었던 상현이는 툭하면 술에 취해 아내가 자신을 무시한다며 행패를 부려댔다. 낯선 한국에 아직 적응도 되지 않은 채 나이도 어리고 마음마저 여렸던 트엉에게 이제 의지할 사람은 명호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명호가 빠져든 것은 어쩌면 시간문제였다. 명호는 상현이 몰래 농기계를 처분한 돈과 그의 아내인 트엉까지 챙겨서 폭설로 버스마저 끊긴 마을을 도망치듯 떠나갔다. 그날 이후, 매일 술에 취해 동네를 배회하고, 집에 찾아와 명호의 행방을 묻던 상현이는 갈수록 폐인처럼 변해갔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상현이가 베트남 비행기에 올랐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듬해 봄이 되어서야 베트남에서 돌아온 상현이는 형사들에게 둘러싸여 손에 수갑이 채워진 상태였다. 느자구 없는 놈! 하루 점드락 모가지 빠지라 기둘려도 편지 한 장 안 보낸디야. 당신은 우체부가 돌아서는 대문간에서 매일같이 항공우편을 기다렸다. 하지만, 당신이 기다리는 그 편지가 더 이상 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나는 차마 아직껏 말하지 못했다. 꽃상여라? 참말로 벨시럽소잉. 나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당신에게 꽃,상,여,라고 말했고, 당신은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뜨악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군청 장례식장이나 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르면 손님 맞이하기도 훨씬 쉽고 오시는 문상객들에게도 편리할 것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장마철을 앞두고 꽃상여를 태워 보내달라고 하니, 당신은 분명 영감탱이가 죽을 때까지 참말로 주책없이 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지막 가는 길은 그랬으면 했다. 옛날엔 비록 어렵고 힘들게 살았지만, 동네 사람들이 못줄을 치고 한 줄로 서서 타령 불러가며 모내기를 하고 나락도 함께 베었다. 세상 살기 좋고 편해졌지만, 나는 그때 기억들이 뭉실뭉실하면서 간절해질 때가 있었다. 한 세상 궂은일만 징그럽게 하다가 저세상 가는 마당에 온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 마당에 널찍한 차양치고 넉넉하게 차려진 음식 먹어가면서 시끌벅적하게 웃고 떠들고 하는 것 보면 저세상 가는 게 심심치는 않을 것이다. 간짓대에 걸린 꽃술이 깔끄막부터 온 동네에 휘휘 날리며 저세상 가는 길을 훤히 밝혀 주고, 창해가 맸던 워낭을 요령 삼아 앞소리꾼이 메기고 상두꾼들이 받아주는 상엿소리를 들으며 동네 사람들 모두 다 나와서 잘 가라고 손이라도 한번 흔들어주면 북망산천도 꽃구경 삼아 갈만 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바닥에 퍼질러 앉은 당신을 내려다본다. 당신은 바닥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금평댁이 다시금 당신의 몸을 부축해 유모차의 손잡이를 잡게 도와준다. 당신은 한 손으로는 유모차의 손잡이를 잡고, 또 다른 손으로는 코를 팽하고 풀어서 바지춤에 쓱쓱 닦는다. 그리고 이제야 사람들에게 전할 말이 생각난 듯 조금은 가볍고 경쾌한 목소리로 말한다. 어짤라요? 내 홍어 무침도 허고 된장 푼 물에 애 넣고 시원허게 홍어국도 끓일 것인디. 거그다 술까정 푸짐허니 준비헐틴게, 여그 계신 양반들 다들 오실 거지라? 나는 인자 싸게싸게 집으로 가봐야 쓰겄소. 오매, 근디 오늘 저녁에는 저놈의 하늘이 기언시 비를 뿌릴랑가 참말로 날씨 한번 미친년 널뛰드끼 요상시럽구만 잉. 당신 것일 수도 있고, 내 것일 수도 있는 목소리에는 끊어질랑 말랑 엿가락처럼 늘어났다 줄었다 박자가 있다. 당신의 유모차는 그 박자에 맞춰 느릿느릿 논두렁 길을 지난다. 그러다가, 당신에게 손짓하며 더 너른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나를 쫓는 듯이, 박자는 점차로 달음박질을 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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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1 18:37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수필] 겨울에도 꽃은 핀다-김수현

“언니, 자?” 잠결에 동생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날따라 초저녁부터 일찍 잠이 든 터였다. 평소 방문이 닫혀 있으면 동생은 걷는 것도 조심하곤 했다. 눈도 뜨지 않은 채, 손을 뻗어 머리맡에 둔 안경을 찾을 때였다. 방문이 요란스럽게 열렸다. “자는 거, 깨워서 미안해.” 미안하다면서도 동생은 자기 휴대전화를 불쑥 들이밀었다. 어느 유튜버가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텍스트로 와글와글 떠들었다. 안경을 쓰자 그제야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국회의사당이 휴대전화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가끔 서울에 올라갔을 때 지하철 안에서나 보았던 곳이다. 국회의사당 앞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계엄령이 선포되었대.” 그 말에 준비 없이 찬물에 몸을 담근 듯, 숨이 가빠졌다. 계엄령이라는 단어는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학창 시절 내내 역사책에서 계엄령에 대해서 배웠다. 전라도에 둥지를 틀게 되면서는 광주민주화운동과 여순사건에 대해 조금 더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단어는 나의 삶과 가까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계엄령과 가까운 것은 미얀마였다. 미얀마에서 온 유학생들은 ‘계엄령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죽고 있다’고 말했다. 미얀마 유학생들은 자기 나라에 있었을 때, 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했다. 군대가 오면 골목으로 흩어져 숨을 죽였다고 한다. 미얀마 상황을 동영상으로 볼 때면, 미얀마 유학생들은 울곤 했다. 젊은이들은 남녀 구분 없이 군대로 가도록 법이 바뀌었으며, 미얀마로 돌아가면 출국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했다. 말로만 들었던 미얀마의 현실이, 한국에도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문득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처형될 사람들의 사진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같은 이불로 몸을 둘러싸고, 동생과 나는 작은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겨울바람이 창문을 뚫고 집을 배회하는 것만 같았다. 국회의원들은 담을 넘었고, 닫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자들과 시민들도 따라 들어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헬기가 날아다니고, 군대는 국회의사당의 창문을 깨고 들어갔다. 일련의 과정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서 전달되는 동안, 휴대전화는 잠시도 쉬지 않고 울렸다. 사람들은 메신저의 속도가 느려지고 포털 사이트에 접속이 되지 않는 것을 두고 걱정했다. 외국계 메신저를 다시 사용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예술을 하거나 언론을 배우는 친구들은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소식은 외국까지도 금방 퍼져, 외국의 친구들이 한국에서 얼른 몸을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연락이 왔다. 커뮤니티에는 도로에 탱크가 다닌다는데, 진짜냐고 묻는 글들이 올라왔고, 가상화폐 거래소는 접속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원화의 가치는 떨어졌고, 비행기표를 구매했던 사람들은 출국 금지 명령이 내려오지 않을지 걱정하였다. 나와 동생은 생필품을 구비할지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으며, 과거 계엄령에 대해서 다시 찾아보곤 했다. 문득 얼마 전, 일터에서 앞 시간대 사람과 교대하며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날 아침, 그는 평소와는 달리 상기된 표정이었다. 매장에 방문했던 손님과 이야기를 하다 의견 충돌이 생긴 모양이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우리가 과하다고 할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우리에게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었잖아.” 그가 어릴 때,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고 했다. 그의 사촌들은 광주에 살고 있었고, 혼란한 광주에서 근처 지역으로 몸을 피하려고 했다. 그의 고모는 사촌 누나 둘의 손을 잡고 밤에 산을 탔다. 그러나 군인들에게 발각이 되었고 고모와 큰 사촌 누나는 그 자리에서 사살되었다. 작은 사촌 누나는 중학생이었지만, 또래에 비해 작았다 한다. 군인은 그의 작은 사촌 누나에게 너는 어려서 살려 준다고 했다. 그의 작은 사촌 누나는 머리에 피를 흘리며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울면서 며칠을 걸어 그가 있는 지역에 도착했다고 한다. 광주에 있던 그의 친척 중, 살아남은 사람은 그의 작은 사촌 누나 단 한 사람이었다. 계엄령이 선포되었다는 뉴스를 보면서 아마 그녀는 머리의 묵은 흉을 만지작거렸으리라.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몇십 년 만에 과거의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었다. 이번에는 계엄령이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해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혼란에 빠졌다. 경제는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표현의 자유마저 걱정해야 할 정도로 민주주의는 퇴보하였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덕담을 나누는 시점에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혼란이 와도 해는 매일 뜬다. 새해는 올 것이고, 1월 1일의 겨울 해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보다 더 빨리 세상을 밝힐 것이다. 겨울 추위에 마냥 웅크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추울수록 뛰어야 몸이 더워지는 법이다. 이불에서 나와 책장에 있는 역사책을 꺼내 든다. 얇게 먼지가 쌓여 있다. 마른 휴지로 가만히 숨죽인 시간을 털어 낸다. 슬프고 화날 때는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도 한다. 책의 여백에 오늘 날짜를 쓴다. 새해의 시작이 조금 울적하더라도 괜찮다. 서로 손을 잡고 따뜻하게 데운 방바닥에 앉아 옛날이야기, 지금 이야기 가릴 것 없이 도란도란 나누다 보면 지금보다 한결 가볍게 새해를 시작할 테니. 나뭇가지가 창밖에서 참 춥게 흔들린다. 쓸쓸하고 힘든 계절이다. 그래도 몇몇 나무는 꽃을 피운다. 대표적인 것이 동백이다. 제주에는 동백이 한창이라고 한다. 곧 이곳도 동백이 필 것이다. 겨울에도 꽃은 핀다. 그리고 몇 되지 않는 꽃에도 새들이 지저귀며 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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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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