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후보라는 상품은 유권자 입맛에 맞게, 그럴 듯 하게, 그리고 정성껏 포장돼 있다. 포장지 속에 가려진 하자를 발견해 내기란 여건 어려운 게 아니다. 유권자들의 선구안이 필요하다.
몇가지 기준이 있긴 하다. 공약이나 정책은 후보를 판단하는 유력한 수단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전문성이 있어야 판별이 가능한 사안도 있고 표를 의식하다 보니 후보간 차별성이 드러나지 않은 경우도 많다. 공약과 정책이 중요하긴 하지만 딱딱하고 재미가 없다. 눈길도 끌지 못한다. 그래서 감성 투표나 묻지마 투표가 성행한다.
고상한 기준도 있다. 막스 베버(1864∼1920)는 좋은 정치인이 되는 데는 세 가지 자질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열정'과 '책임의식', '균형감각'이 그것이다. 1919년 독일 뮌헨대학 자유주의 학생단체의 요청으로 공개 강연한 것을 정리한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책에서 그렇게 피력했다. 92년이 지난 지금도 딱 들어맞는 조건이다.
잠재적 대권주자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지난주 전남대 강연에서 총선 가이드라인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진영(陣營) 논리에 빠져 정파적 이익에 급급한 사람보다는 국익과 국민을 생각하는 사람, 둘째 과거보다는 미래가치를 이야기하는 사람, 셋째 분노나 대립을 얘기하기 보다는 온건하고 따뜻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건도 훌륭한 기준이다.
막스 베버나 안 원장 모두 후보들이 저마다 잘나고 똑똑하다며 즐비하게 늘어놓은 스펙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점이 무엇보다 맘에 든다. 그런데 이러한 기준을 갖춘 사람도 드물거니와 그런 인물을 고르는 일 역시 쉽지 않다. 그렇다고 대충 선택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후보 고르기가 쉽지 않다면, 특히 부동층 유권자라면 선택 기준을 좁혀 전북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다. 정치력이 왜소한 전북의 처지도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유치 과정에서 보았듯 전북의 정치권은 너무나 무기력했다. 응집력도 약하다. 열정이나 책임, 전략 모두 낙제점이었다. 숫자로도 전북의 정치력은 허약하기 짝이 없다. 이번 선거에서 전국적으로 246명의 국회의원이 탄생하지만 전북은 11명에 불과하다. 4.4% 비율이다.
국회의원 11명으로는 국회 상임위도 다 커버하지 못한다. 상임위(16개)는 다양한 직능분야를 다루고 조율하는 기구다. 사실상의 모든 현안이 이 곳에서 논의되는 곳인데 전북은 한 개 상임위당 한 명꼴도 배치되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런 정치환경을 고려한다면 전북의 국회의원은 일당백(一當百)의 역할을 해야 맞다. 국회의원 한 명이 두 세명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막스 베버나 안 원장이 얘기하는 자질도 중요하지만 정치력이 허약한 전북한테는 오히려 일당백의 인물이 더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돼야 하지 않을까. 전북의 유권자라면 이에 걸맞는 후보가 누구인지를 놓고 천착할 필요가 있다.
선거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선거는 후보 심판이자 인물 천거 행위이다. 기성 정치인은 그동안의 정치행위를 심판 받는 날이고 유권자는 지역 대표 인물을 선택하는 날이다. 또 쓸모 없는 정치 자원들을 솎아 내는 날이기도 하다. 점심 먹을 때도 뭘 먹을까 고민하는데 하물며 우리지역 대표 인물 뽑는 걸 그냥 대충 할 수는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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