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간 유·불리만 계산 / 포퓰리즘 정치행위 중단 / 진정성 있는 논의·검토를
한 젊은이가 화살 쏘는 연습을 했다. 화살은 과녁을 자꾸 빗나갔다. “에잇 참, 왜 이렇게 안맞지?” 젊은이는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가만 있자. 화살이 어차피 과녁 한 가운데만 꽂히면 되잖아? 그러면 과녁을 맞히려고 이렇게 애쓸게 아니라 화살이 꽂힌 둘레에 과녁을 그리면 되겠군!” 그리곤 붓과 물감을 가져와 나무와 담장에 꽂힌 화살 둘레에다 동그라미를 겹겹으로 그렸다. 쏜 화살이 마치 과녁을 맞힌 것처럼 되었다. “하하하, 이렇게 하면 될 걸 공연히 과녁을 맞히려 애를 썼군.”
본말이 전도되면 얼마나 엉터리로 결과되는 지를 적시한 예화다. 논리학에는 ‘본말전도의 오류’란 게 있다. 두 사건의 관계를 잘못 파악해 전제와 결론을 뒤바꿔 추론함으로써 발생하는 오류다.
올해는 선거제도를 선진형으로 개편하고, 헌재 결정에 따른 선거구도 손질해야 하는 중요한 해다. 그런데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선거제도와 선거구 획정, 의원 정수 논의가 꼭 본말이 전도된 것 같은 느낌이다. 화살 떨어질 곳을 정해 놓고 주변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근 40여년 동안 유지됐다. 장점도 없진 않지만 지역주의가 고착화된 곳에서는 폐해가 더 크다. 영·호남에서는 특정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됐다. 이런 풍토에선 공천이 사천이 되고 뇌물공천이 성행하기 마련이다.
승자독식과 사표의 폐해도 컸다. 40% 가까운 지지표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19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 갑의 김부겸(새정연)과 전주 완산 을의 정운천(새누리), 광주 서 갑의 이정현(새누리)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런 곳은 부지기 수다. 때문에 다음 총선에서는 선거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이 일었다. 정치권도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여야는 선거제도를 진정성 있게 논의하지 않았고, 그럴 뜻도 없는 것 같다.
이를테면 권역별 비례대표제나 석패율제, 중대선거구제, 도농복합형 등 여러 선거제도에 대한 철저한 논의를 벌인 뒤 지금 이 시점의 우리한테 가장 바람직한 제도를 선택하고 그에 따른 선거구획정과 의원 정수에 대해 숙의하는 것이 순리다.
그런데도 지역별 국민 순회공청회 한번 열지 않고 있다.
여야 지도부는 자기 입맛에 맞는 정치발언들만 쏟아내고 있다. “정치생명을 걸고 오픈프라이머리를 관철시키겠다” “오픈프라이머리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일괄타결하자” “의원 정수는 몇명이 적정하다”는 등의 발언이 그런 것들이다.
이런 쐐기발언은 선거제도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차단시키는 행태다. 오로지 자기 중심적이고 자당의 유·불리만 계산한다. 국민은 안중에 없는, 본말 전도의 정치행위가 아닐 수 없다. 정작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중앙선관위 산하의 선거구획정위나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한쪽으로 비켜나 있다.
의원 정수 문제도 그렇다. 정수 증원은 57%가 반대할 만큼 국민적 저항이 크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예컨대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바람직하다면, 그리고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증원이 절대 필요하다고 한다면, ‘현 예산의 범위 내에서 60명 증원’ 같은 안도 검토해야 한다. 정치 선진화를 꾀할 수 있다면 정수 증원도 국민한테 용기있게 호소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진지한 논의도 없이 여야가 ‘현행 정원 고수’라는 결론부터 내 버렸다. 여론을 의식한 포퓰리즘이다. 중앙선관위가 제안한 ‘지역구 200명, 비례대표 100명’ 안은 지역구 축소 때문에 아예 논의대상 축에도 끼이지 못한다.
선거구별 인구편차 2대1 헌재 결정은 작년 10월에 나왔다. 10개월이 지났지만 선거제도와 선거구 획정 등 선거개혁 논의는 제자리걸음이다. 무얼 어떻게 개혁하려는지 목표도 없다.
화살을 쏠 때는 먼저 과녁을 놓은 다음에 쏘는 게 바른 순서다. 화살을 쏜 다음에 과녁을 그려 넣으면 이건 순 엉터리다. 여야는 지향하는 목표를 정하지도 않고 화살만 쏘아대는 꼴이다. 용은 커녕 지렁이도 그리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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