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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119)탑천과 만경강이 만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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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강가 옴서감서 쉼터

 “저문 날 물가에 앉아 추억을 찾아낸다. / 생각도 하나하나 낚아서 챙겨놓고 / 구름도 바람도 듬뿍 한 망태기에 담아야지. / 늦도록 잊고 산 사람 바람처럼 찾아오면 / 그 무슨 그리움 하나 등불처럼 걸어놓고 / 강물은 추억으로 넘치거라 바람으로 울거라."

만경강과 탑천이 만나는 곳에 새겨진 시구이다. 시심이 어우러진 쉼터 이름이 ‘옴서감서’이다. 옴서감서는 전라도 방언으로 ‘오며 가며 드나든다’란 것인데, 만경강 물길따라 오며 가며 쉬어가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만경강이 휘돌아 흐르는 곳은, 물억새와 갈대가 아득하게 이어져 노전백리(蘆田百里)를 이룬다. 시구처럼 노을빛이 강물에 내릴 때 즈음 찾아가면, 은빛 물결 일렁이는 사이로 늦도록 잊고 산 사람이 불현듯 나타날까.

옴서감서 쉼터가 자리한 곳은 군산시 대야면이다. ‘대야(大野)’는 지명 그대로 평야 지대인 ‘넓은 들’에서 유래된 고장이다. 삼한시대 마한 땅으로, 백제시대에 마서량현, 조선시대에는 임피현이었다. 1914년 옥구군 대야면으로 개칭되었다가, 1995년 군산시와 옥구군이 통합되면서 군산시 대야면이 되었다. 

 군산 개항 전 만경강에 둑을 쌓기 전까지는, 백마산까지 배가 닿아 ‘배 닿을 메(山)’라 하여 ‘배달메’라 불린 곳이다. 1921년 개교한 대야초등학교의 교가 1절 시작이 “백마산 푸른 줄기 노령의 기상”이고 2절이 “만경강 젖어가는 옥야천리에~ 사랑과 희망에 찬 대야의 낙원”이다. 100년이 훌쩍 넘는 학교의 교가에 대야의 산과 강 그리고 너른 옥토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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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동 삼층석탑

대야에는 천년 세월을 품고 옛 절터에 홀로 담담하게 서 있는 석탑이 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탑동 삼층석탑’이다. 백제 석탑 양식을 계승한 탑으로 고려시대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5.5m에 이르는 탑은 비교적 완전한 모습을 지녔다. 탑신부는 여러 돌이 짜임새 있게 잘 맞추어져 있는데, 1층 몸돌은 높고 2층과 3층의 몸돌은 낮다. 기단 위에 3층의 몸돌, 지붕돌, 머리 장식이 올려진 상태로 얇은 지붕돌의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지금은 탑골이라 불렸던 ‘탑동마을’ 이름도 석탑에서 유래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마을의 자랑이자 마음을 다독였을 탑이다. 잘생긴 탑을 마을에서는 토박이탑 ‘여장군탑’이라는 별칭으로 부른다. 탑에는 특별한 내기 전설들이 전해진다. 

백제시대 서로 흠모하던 총각 장군과 처녀 장군이 장난삼아 탑 쌓기 내기를 하였다. 처녀 장군은 탑동에 삼층석탑을 쌓고, 총각 장군은 다른 고장에 오층탑을 쌓았는데 처녀 장군이 먼저 쌓았다고 한다. 총각 장군의 허술한 탑 쌓는 실력에 실망한 처녀 장군이 인연을 끊고, 혼인하지 않은 채 삼층탑의 수호신이 되어 여장군탑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탑을 무너뜨린 내기와 관련된 ‘골샘 약수’의 전설이다. 탑골에 탑을 쌓은 여자장수와 인근 장자골에 탑을 쌓은 남자장수가 상대가 세운 탑을 두 손가락으로 무너뜨리는 시합을 해서 여자장수가 이겼다는 것이다. 이때, 힘을 준 남자장수 손가락 자국이 탑골 삼층석탑에 남아 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무너뜨린 탑의 저주를 받아서인지 여자장수의 어머니가 지독한 피부병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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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샘약수터

 병이 심해지자 여자장수가 석탑에서 지성을 다해 백일기도를 드렸더니, 백발노인이 나타나 “골샘 약수를 먹이라”하였다. 그대로 하였더니 병이 완치되었고, 골샘약수터는 피부병에 효험있는 명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추운 겨울에도 얼지 않고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는 ‘골샘 약수’는, 탑동 삼층석탑 아래 안내판까지 설치된 마을 명물이 되었다. 

 이곳 마을을 지나는 하천도 ‘탑동 삼층석탑’에서 유래되어 ‘탑천’이라 불린다. 탑천은 익산 미륵산과 용화산 남쪽 비탈면에서부터 서남쪽으로 흘러와 대야를 적시고 만경강으로 합류하여 새만금에서 서해로 흘러간다. 대야 일대 만경강 유역은 밀물 때면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이다. 그렇다 보니,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바닷물 유입을 막는 갑문을 만들어야 했다. 갑문 만들기에 적절한 만경강과 탑천 합류 지점에 ‘입석배수문’을 일제 강점기 1935년(소화 10년) 7월에 준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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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아면 입석 배수문

 입석배수문이 노후되자 현대시설을 갖춘 배수갑문을 새로 설치했다. 오랜 풍파를 겪은 옛 입석배수문은 곳곳에 깨진 유리창과 콘크리트에 세월의 더께가 쌓인 채 만경강가에 그대로 남아 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배수갑문과 일제 강점기 만들어진 배수갑문이 함께 있다 보니, 만경강 유역의 배수갑문 변천과 역사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그 세월 그대로 강변 풍경이 된 지 오래지만, 한쪽에 방치된 채 있어 아쉽다. 

 그 모습까지도 모두 품은 옴서감서 쉼터 주변은 만경강 낚시명소로 강태공들에게 알려진 곳이다. 그래서인지 낚시꾼들로 몸살을 앓는다. 하지만, 만경강은 노랑머리 저어새와 천연기념물 황새가 찾는 수많은 생명을 품은 강이다. 겨울바람이 흘러가는 만경강에 기댄 풍경들을 바라본다. 오며가며 쉬어가는 것은, 사람 뿐 아니라 흔적을 남기는 모든 생물들이다. 이곳이 사람과 자연이 서로를 품고 쉼을 내어주는 추억의 자리로 오랫동안 이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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