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은 늘 그럴싸했다. 그래서 각 기관이 경쟁적으로 추진했고, 주변에서는 거마비까지 건네며 장도(長途)를 응원했다. 그들이 무리 지어 비행기에 오른 후 돌아올 때까지의 실망스러운 행적이 속속 드러난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21세기 들어 대한민국에 해외연수 열풍이 불었다. 정치인과 공무원, 시민단체·언론인·농어민까지 너도나도 명분을 만들어 해외로, 해외로 나갔다. 마치 모든 문제의 답이 바다 밖에 있는 것처럼. 글로벌시대, 선진 사례를 직접 체득함으로써 조직의 정책 역량을 강화하고, 개인의 전문성 향상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다. 해외 일정을 아예 여행사에서 짜는 경우가 허다했다. 결국 외유성 해외연수의 부끄러운 민낯과 비위가 속속 드러났다. 이 같은 논란에 단골로 등장한 게 지방의원들이다. 지방의회는 그때마다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관행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전북지역 시·군의회가 예정된 해외연수를 속속 취소해 눈길을 끈다. 고창군의회를 시작으로 익산시의회, 군산시의회가 잇따라 올 공무국외연수를 취소했다. 부적절한 해외연수 사실이 드러나 거센 비난을 받을때도,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로 지역사회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비행기에 오르던 사람들이다.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할당된 몫’을 챙겨왔던 그들이 올해 예산 전액을 반납했다. 지역경제 회복과 주민 생활안정, 시급한 지역 현안 처리 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렇다면 지방의회, 지방의원들이 하루아침에 달라진 것일까? 그럴 리 없다. 말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를 비롯해 전주와 익산·군산·고창 등 전북지역 대다수의 지방의회가 국외연수비 부풀리기 의혹 등으로 경찰 수사를 받으면서 잔뜩 몸을 움츠린 것이다. 논란이 끊이지 않던 지방의회 해외연수가 도덕적 지탄을 넘어 위법성 문제로 수사대상에까지 올랐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성의 목소리 대신 생색을 냈다. ‘시민 생활고를 고려한 솔선수범’이라며….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지자체의 살림살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전주시는 빚이 올해 6000억원을 넘어섰다. 관행으로 굳어진 외유성 해외연수에 마냥 혈세를 낭비할 수는 없다. 하루라도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지금이 기회다.
지방의회 뿐만이 아니다. 공공기관의 해외연수 프로그램 전체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전북지역 각 시·군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해오다가 서거석 전 교육감이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수혜자가 급격히 늘어난 학생 해외연수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이제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이다. 꼭 바다 건너에 찾고자 하는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해외 성공사례를 참조해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안방에서도 상세하게 접할 수 있다. 그런데도 ‘해외에 나가 시야를 넓히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리가 있다. 주민 혈세에 손대지 않는다면 말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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