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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입학사정관제 정착하려면 - 김윤태

입학사정관제의 기원은 미국대학의 대입전형에서 찾을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상위권 대학에 유대인 학생의 입학 비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버드 대학의 유태인의 입학비율은 1900년에 7%에서 1922년에는 21.5%로 증가했고 콜롬비아 대학은 1918년에 40%에 이르렀다. 따라서 유대인 학생 비율을 낮출 수 있는 입학제도의 개선이 절실했다. 그래서 미국 대학 당국은 학업성적 외에 지원자의 인성, 운동실력, 성향, 리더십 등을 고려하여 학생들을 뽑겠다며 입학사정관제도를 도입했다. 물론 성적의 빛에 가려있는 지원자의 창조적인 면을 발굴하여 키우겠다는 입학사정관제의 취지는 아주 좋다. 하지만 미국에서 입학사정관제도의 도입은 유태인 학생을 배제하고자 하는 은폐된 목적을 갖고 있었다. 이 결과 하버드 대학의 유태인 학생 입학비율은 10%대로 낮아지게 된다.이명박대통령이 지난 7월 27일 라디오 연설에서 임기 말(2012년)쯤 가면 대학들이 입학사정관 전형을 통해 100% 가까이 학생을 뽑을 것이라는 기대를 보인 이후 입학사정관제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대통령은 또 충북 괴산고를 방문한 자리에서 사교육 받지 않고 학교 교육만 받은 사람이 대학가기 쉬운 시대가 열리며, 논술도 시험도 없이 면담만으로 대학에 가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입학사정관제도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미국이 입학사정관 제도를 도입한 의도에서 알 수 있듯이, 다양한 선발방법이라는 미명하에 시행되는 한국의 입학사정이 엘리트 운동선수, 연예인, 동문의 자제, 그리고 기여입학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또 대학의 서열화와 빈익빈 부익부, 학벌의 세습으로 이루어지는 은폐된 목적은 없는지 의심스럽다.포털사이트에서 '입학사정관'을 검색해보라! 입학사정관제도 관련 컨설팅을 자처하는 사교육기관이 이미 넘쳐나고, 이른바 스팩(자격증이나 경시대회 수상 등 눈에 띄는 활동 성과물)쌓기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 이미 TOEFL, TOEIC, TEPS 등 각종 영어 능력 시험에 각종 경시대회, 봉사 체험이 지옥의 입시경쟁을 낳고 있다. 현재의 입학사정관제도가 사교육열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예고하는 현상이다.공교육이 정상화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다양한 입학사정 문제점은 이미 서울대 특목고 입학자 분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서울대 특목고생 비율은 1998학년도 24.1%까지 증가하다가 1999학년도 13.9%로 뚝 떨어졌다. 그 이유는 동일계열 비교내신제가 폐지된 결과이다. 하지만 서울대가 2005학년도부터 특기자 전형을 도입하자 각종 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은 특목고 출신이 대거 합격해 신입생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2009학년도에는 다시 24.3%로 크게 증가했다. 서울대 입학생 4명 중 1명이 특목고 출신이 된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입학사정관제도는 이러한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전망이다. 결국 입학사정관제가 강조하는 다양한 전형방법에 특목고가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한국의 입학사정관제도는 미국의 입학사정관제 도입 때처럼 은폐된 목적이 없어야 한다. 입학사정관 제도가 한국에 올바르게 정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입학사정 방법을 통하여 오히려 일부 특수계층 자녀의 입학비율을 낮추고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가정의 자녀들로 입학사정대상을 제한하여 이들의 능력을 개발하고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김윤태(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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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9.29 23:02

[문화마주보기] 일본인의 가업 - 임경택

한국인들이 일본인에 관해 이야기할 때 약간의 칭찬조로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의 가업(家業)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동경대학을 졸업한 수재가 고급관료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와 대를 이어 국수집을 경영한다든지 하는 등의 이야기이다. 그것이 마치 일본인의 근면성과 성실을 상징하는 것처럼 회자되곤 하지만, 실제로 사회구조의 산물이라는 것을 아는 한국인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이러한 가업의 연원은 고대의 가직(家職)에까지 거슬러 갈 수도 있지만, 가업이 제도로 정착하게 되는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개혁부터이다. 도요토미는 집권 후 전국에 걸쳐 병농분리정책(刀狩令)을 실시하여, 일본 열도의 주민들을 직업별로 거주하게 하였다. 그리고 거주단위를 무라(村)와 초(町)로 나누고 자유롭게 상호이동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이때부터 일본인의 각 이에(家)는 고유한 직업을 갖게 되었고, 신분과 주거와 직업이 일치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으며, 그것이 결국 가업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체제는 도요토미의 뒤를 이어 집권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도 이어받아, 메이지 유신이 성립되는 시기까지 30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이른바 가업이 성립되었다. 일본의 이에가 혈연집단이라기보다는 경영체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던 까닭에, 가업은 당연히 그 집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고, 정체성의 근간이 되었다. 즉, 혈연적 계보를 중시하는 한국사회와는 달리, 일본의 이에는 그 자체가 하나의 인격적인 성격을 띠고, 그것이 유지되어야만 그 안의 구성원들이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이에의 유지를 보증하는 것이, 가업가산가옥의 온존과 유지이다. 그 이에의 가장은 자신의 대에 그 이에를 잘 유지하여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것이 최대의 사명이자 임무이다. 실제로 내가 현지조사 중에 만난 한 가게의 주인에게 가업이란 무엇인가 물어보았을 때, 그는 '내 생명'이라고 대답하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 이에인 것이다.습명제(襲名制)라는 제도에서도 이러한 관념은 뚜렷이 나타나는데, 습명제란 초대 당주부터 동일한 이름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임진왜란 때 끌려간 도공 중 유명한 심수관이란 분이 있다. 그런데 몇 해 전 한국을 방문한 분도 심수관인 것이다. 후자는 14대 심수관인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이에의 유지가 최대의 목표이고, 그 이에를 현세에서 담당하는 가장은 그것을 망하지 않게 하는 것이 최대의 임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이에의 유지가 가업과 가산 및 가옥의 유지로 상징되는 만큼, 이에를 존속시키는 데 가장 적합한 사람을 차세대의 가장으로 선정하고, 뒤를 이어가게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혈연관계가 중요하게 개입될 소지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데릴사위로만 이어가는 집이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이와 같이, 문화는 역사적 시간 안에서 인간이 만들고 학습해 오는 것이지, 결코 본성적으로 애초부터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타문화를 마주보는 것도 가능해 질 것이다./임경택(전북대 일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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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9.22 23:02

[문화마주보기] 도심속의 축제 - 이명훈

지난 9월 6일 서울에 있는 동덕여대에서 고창굿 한마당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서울 하늘아래에서 풍물굿을 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힘든 현실에서 그날 열린 굿판은 그 굿판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신명의 도가니로 끌어들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매년 9월 초순이 되면 세대와 지역을 아울러 하나 되는 고창굿 한마당이 열리는데 올해로 일곱 살이 되었다.처음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성황리에 굿판이 벌어지는 데는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두 달 전부터 정성스럽게 소원지를 쓰고 만장을 쓰고 각자 준비한 굿판을 위해 모임을 갖고 연습을 하고 서로 교류를 하면서 서로의 마음들은 더욱 돈독해 진다. 사는 곳도 다르고 연령대도 다르지만 이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것은 굿이었다. 굿은 그렇게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즐겁게 놀아지게 하는 힘이 있다. 굿은 각 지역마다 마을마다 이루어졌던 작은 축제였다. 오늘날 마을에서 작은 축제들이 사라지는 가장 큰 이유는 굿치는 마을사람들이 점점 없어지기 때문이다. 당산제를 올리거나 줄을 비벼 줄다리기를 하거나 백중날 막걸리 한 동이씩 내놓고 노는 날에도 항상 굿 소리와 함께 했었는데 그 굿 소리가 점점 사라지면서 마을마다 성행했던 굿 축제가 어느 순간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작은 굿 축제가 살아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굿 축제를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따라 달라지는데 가장 큰 힘은 굿을 치는 주체와 굿을 향유하는 주체가 함께 준비하는 것이다. 고창굿 한마당을 예로 들자면 고창군에서는 행정적으로 예산을 뒷받침 해주고 고창농악보존회원들은 한마당의 문을 여는 문굿을 준비하고 고창농악 전수관 에서는 행사장 무대 셋팅과 음식을 준비하고 그리고 고창굿 한마당을 즐기기 위해서 고창군 14개 읍,면에서 농악 동호인들이 버스를 여러 대 준비하여 서울로 출발한다. 서울에서는 고창농악 대학생 전수생들과 사회풍물패가 각각 젊은 굿판을 준비하고 고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맞이굿을 쳐준다. 한마당을 축하하기 위한 축하공연도 여러 풍물 명인들을 초대하여 멋진 공연을 준비한다. 재경 고창인들은 고향의 문화 향수를 느끼기 위해 매해 빠지지 않고 많은 분들이 오셔서 굿전도 내고 하루 종일 고창농악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고창인 으로서 고창의 전통문화에 자부심을 느끼는 날이 된다. 또한 고창을 모르는 외부사람들도 고창농악을 통해 고창의 전통문화를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하루종일 고창농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여 작은 정성을 모으고 막걸리 한잔 기울이면서 작은 신명의 축제의 장에 몰입하게 된다. 그 옛날처럼 굿으로 유명한 어느 동네에서 굿 축제가 열리면 집집마다 쌀이 한 가마씩 없어질 정도로 구경꾼들이 많이 모여드는 축제는 아니지만 도심에서 벌어지는 두 달 동안 준비한 굿판은 그렇게 대 성황리에 마치게 된다. 내년의 고창굿 한마당을 기약하며 고창으로 내려오는 길은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진다. 내년에는 서울 하늘 어느 곳에서 아름다운 작은 굿 축제가 열릴지 미지수지만 매해 한마당에 다시 찾고자 하는 마음들은 해가 갈수록 늘어남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기대감 때문에 굿치는 것이 즐겁고 준비과정의 힘듦도 잊게 만든다. 전국 어느 도심에서든지 지역에서든지 굿 소리와 함께 하나가 되는 작은 축제들이 풍성해졌으면 하는 바램 이다. 그 옛날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엮어내고 마을 굿의 자부심을 느끼게 해줬던 마을의 작은 굿 축제처럼./이명훈(고창농악보존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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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9.15 23:02

[문화마주보기] 친절의 힘 - 전성환

"여보세요! 거기 아무개 식당이죠? 점심 예약 좀 하려고 하는데요.""그냥 오시면 돼요. (뚝!)"똑같은 경험을 두 번이나 했다. 나는 전주 음식을 좋아하고 전주의 문화를 사랑하는 편이지만, 이런 식의 불친절한 태도에는 도무지 익숙해질 수가 없다. 한번씩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그 집 음식이 아무리 맛있다 해도 다시 가기가 싫어진다. 내가 새삼 이 말을 꺼내는 이유는, 음식점의 불친절함을 고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친절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태도가 너무나 안타까워서다. 왜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 더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키우지 못하는가? 조금만 친절하면 되는데.최근 스티븐 M. R.코비의 〈신뢰의 속도〉라는 책을 흥미 있게 읽었다. 신뢰가 얼마나 강력한 자산인지를 밝혀낸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대다수가 믿고 있는 것과 달리 신뢰는 실증이 어려운 관념적이 것이 아니며, 실행 가능한 유형의 자산이다."라고 말한다. 신뢰가 있으면 강력한 정부, 성공하는 기업, 번영하는 경제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신뢰가 없으면 이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를 테면 기업의 회계부정, 테러리스트의 위협, 조직 내 관계의 단절은 신뢰를 떨어뜨리게 되고, 그로 인해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신뢰만 있다면 이러한 비용을 줄일 수 있으니 그 경제적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나는 '신뢰'라는 단어 자리에 '친절'이라는 말을 슬쩍 대입해 본다. "친절은 글로벌 경제에서 살아남기 위한 핵심 역량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친절의 속도만큼 빠른 것은 없다." 신뢰가 결과적 가치라면, 친절은 신뢰를 불러오는 과정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친절하면 신뢰가 높아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 곧바로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친절은 이자까지 붙어 되돌아온다〉의 저자 에드 호렐은 "친절은 우리 몸속의 세라토닌 호르몬을 분비시켜 만족과 감동을 유발시키고 고객을 끌어당긴다."고 말한다. 때로는 경제적인 손해까지도 감수할 만큼 친절의 힘은 강력하다. 수수료는 저렴하지만 기계가 업무를 보는 은행과, 수수료는 좀 비싸지만 친절한 직원이 있는 은행 중 어느 곳을 선택하는가를 실험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를 선택했다는 것이다.25년 전 도쿄 디즈니랜드가 개장했을 때 3년을 넘기지 못하고 폐장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금 도쿄 디즈니랜드는 미국 본사가 인정한 최고의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것은 친절의 힘이다. 디즈니랜드의 친절 매뉴얼 북은 무려 300권을 넘는다. 그들은 알고 있다. 친절하지 않음으로 해서 지출해야 할 비용과 친절함으로 해서 얻게 될 경제적 효과를.과연 전라북도는 '친절'이라는 자산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가? 아무리 훌륭한 문화유산이 있고 맛있는 먹을거리가 있고 독보적인 스토리가 있다 해도, '친절'이라는 무형의 인프라가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사람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예향,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맛의 고장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전성환(전북도 홍보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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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9.08 23:02

[문화마주보기] 사람과 물건의 관계에 대한 생각의 차이 - 임경택

한국사회와 비교할 때, 일본적인 특질이 뚜렷이 드러나는 것 중의 하나가 주위의 물건에 대한 관심이나 물건에 구애받는 모습일 것이다. 사람과 물건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 달라서, 놀라고 당혹스러웠던 적이 매우 많았다.수없이 많은 예가 있는데,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매년 2월 8일은 일본에서 바늘을 공양하는 날이다. 이 날에는 평소에 집에서 사용하다 버리게 된 바늘을 죄다 절에 가지고 온다. 본당 앞에는 두부가 놓여 있고, 그 두부에 가지고 온 바늘을 꽂는다. 스님의 염불이 끝나면 그 옆에 설치된 바늘무덤(針塚)에 넣고 공양을 한다. 일본 전국을 다니다 보면 이러한 종류의 물건들의 무덤이 산재해 있다. 내가 필드워크를 했던 사와라 지역은 과거에 잠사업이 발달하였었는데, 시내 한 곳에 누에공양탑이 있다. 고래를 많이 잡았던 지역에는 고래공양탑, 새우요리 전문점의 식당 뒤뜰에는 새우공양탑, 부채공양탑 등등, 오랫동안 쓰던 물건을 정성스레 공양하는 풍습이 있는데, 과연 이것은 무슨 마음에서 행하는 것일까?장례식 이틀째에 고인의 유품을 나눠가진다든지, 자신의 탯줄이나 배냇머리를 버리지 않고 보관하는 것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우스갯소리로 일본인이 3박 4일의 신혼여행을 간다면, 그 중 이틀은 오로지 선물을 사는 데 소비한다고 한다. 그들이 이렇게 선물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일본TV에서 본 장면인데, 자기네 집과 가장 인연이 깊거나 의미있는 물건을 하나 들고 나오라고 하니, 어떤 할아버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기 집 옆에 떨어진 포탄의 탄피를 들고 나오는 것을 보고 아연해진 적도 있었다.이처럼 물건이 차지하는 존재감과 현실감이 우리와 다른 것은 그 무엇보다도 애니미즘적인 신앙체계를 지닌 신도(神道)의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신도를 근저로 하는 일본인의 민간신앙에서는 자연계의 수목, 암석, 동물에 대해서도 영적인 주체를 상정하고, 물건에 깃들인 이러한 주체의 의사나 영역을 범해서는 안된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한 관념은 용어에서도 나타나는데, 일본의 토착개념인 '모노'라는 말은 물건(物)과 사람(者) 그리고 영적인 주체라고도 할 수 있는 것까지 포괄하고 있으며, 이것들이 연속적인 관계를 가졌음을 인정하고 있다. 즉 절대적인 신이나 권위가 결여된 일본문화에서는 물건이나 장소의 상호성 안에 인간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이와 같이, 자기 주위에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물건에 대한 관심은 일본인의 즉물적인 사고나 행동과 무관하지 않으며, 그것은 일본인의 생활에서 나타나는 경험의 중시나 실천지향을 초래했다고 생각된다. 일본인의 장인정신을 이러한 관념과 결부시켜 분석하는 학자도 있다. 한편 구체적인 물건에 대한 관심이나 배려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일본인에게는 추상적인 논리나 보편적인 가치 혹은 이념에 대한 관심이 희박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결국 일본인들에게 진리란 '눈앞의 현실'이며 그것을 보여주는 물건에 대한 감성을 강조하는 그들만의 독특한 세계관이 있다는 것이다./임경택(전북대 일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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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8.25 23:02

[문화마주보기] 지역문화가 살아나는 참 쉬운 방법 - 이명훈

'아리-씨구나----앗. 어 어허어--야-아----암. 모 오호-----홋. 에 에헤--'지난 8월 9일 고창군 성송면 학천리 논에서 울려 퍼졌던 풍장소리 후렴이다. 기계화 이전에 농사짓던 때였다면 이맘때쯤 각 마을마다 만두레 풍장굿 소리가 울려 퍼졌을 것이다.전라도는 넓은 평야지대이기 때문에 들노래가 많이 발달되어 왔다. 전라도 서부평야지대는 선후창 방식의 들노래, 동부산간지역은 교환창 방식의 민요가 주로 성행했다. 노동이 이루어지는 곳에는 항상 노동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 일노래가 존재했었다. 전라북도에서 잘 알려진 들노래로는 1972년과 2002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를 통해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지방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익산삼기목발노래와 순창금과들노래이다. 한 지역에서도 마을마다 소리가 다르게 불리워질만큼 풍성했던 전라도 들노래는 문화재 지정으로 인해 위의 두 지역 들노래가 대표격이 되었다. 그러나 익산삼기목발노래는 2005년 보유자 박갑근 선생의 타계로 인해 문화재 지정이 말소가 됨으로써 행정적 지원이 없어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소리를 되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서 후대에 까지 전해질 수 있는 좋은 전범이 되고 있다고 본다. 현장에서 불리워지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소리를 하는 어르신들이 점점 사라지면서 그 풍성했던 소리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 사람을 통해서 전해지는 우리의 무형문화유산의 현 주소이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동안 민속학자들에 의해 민요는 많이 조사되어서 자료로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그 민요들이 영원히 자료로서만 남아있을 것 같은 우려는 나만의 생각일까? 사람에 의해 소리가 불리워지고 사람에 의해서 전해져왔던 민요가 현재에도 살고 후대에까지 사람들에 의해 불리워질려면 현재가 중요하다. 학계에서든 행정에서는 아니면 개인적으로든 각 지역의 민요를 찾아내고 현재 민요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살아계실 때 함께 불리워져야 한다. 이번에 고창에서의 풍장소리가 그러했다. 성송면 향산리에 살고 있는 78세 홍순삼 선생이 선창을 하고 같은 마을사람들을 포함하여 젊은 사람들이 함께 받는소리를 했는데 선창자가 3명이었다. 78세 어르신과 30대 젊은이 둘이였으며 서로 노래 전장을 보내면서 주고받는 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무대에서나 경연장에서나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었던 들노래를 실제로 현장에서 해보니 그렇게 재미날 수가 없었다. 저절로 흥얼거려지고 그 소리들이 점점 퍼지면서 주의의 모든 분들이 함께 부르는 그 소리에 저절로 애정이 생기게 되었다. 우리동네의 소리니까 더 정감이 가게 되었고 자꾸만 부르게 되었고 부르다보니 저절로 흥이 생긴 것이다. 각 지역의 소리는 그렇게 지역 사람들이 애정을 가지고 자부심을 가지고 그렇게 살아나야 하며 직접 해 보니까 참으로 쉬운 일이었다. 우리네 삶과 함께 했던 우리의 소리는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전라도 들녘 곳곳마다 살아 숨쉬며 대대손손 내려왔던 우리네 소리가 곳곳에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 굿과 함께 일년 농사과정 시기마다 그 시기에 맞는 우리네 노동요를 지켜내는 일은 우리네 일상 속에서 자꾸만 부를 수 있게끔 우리 모두 일상적으로 유행가를 흥얼거리듯 흥얼거리면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을 듯 하다./이명훈(고창농악보존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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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8.18 23:02

[문화마주보기] 명품도시는 지금 이곳에서부터 - 전성환

요즘 들어 '명품도시'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인천세계도시축전에서도 '미래를 여는 명품도시'를 주제로 담론이 진행되고 있고, 새만금을 '세계가 부러워할 명품복합도시'로 개발한다는 정부 계획안이 발표되기도 했다.도시 앞에 명품이 붙으니, 뭔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도시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명품도시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보았을 때 아름답고, 살았을 때 편안하고, 그 안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에게서 기품이 느껴진다면 그것이 바로 명품도시가 아닐까. 파리 사람들은 '불편한 것은 참아도 아름답지 않은 것은 참지 못 한다'고 한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명품도시 파리는 그러한 시민의식의 결과물이다.우리는 어떨까? 우리는 거꾸로 '아름답지 않은 것은 참아도 불편한 것은 참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하루가 다르게 건물이 세워지고 있는 서부 신시가지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곳도 한때는 '명품도시'의 기치를 내걸고 출발한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명품'은 사라지고 '원룸'만 남았다. 품격이 느껴지고 살기 좋은 명품 신시가지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곳이 이렇게 됐다면, 분명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물론 그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를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똑같은 돈을 투자해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건물과 건축방식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건축은 오로지 이윤획득의 수단일 뿐이다. 행정 입장에서는 사유재산권을 침해할 수 없으니 그저 그들의 안목과 자질에 호소할 뿐이다. 그러나 돈 앞에서 건축의 공공성이나 미적 측면에 대한 고려는 설자리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똑같은 재질, 똑같은 구조, 똑같은 층수의 거대한 원룸촌을 보고 살아야 한다. 이것은 공공의 시각적 측면에서는 거의 폭력에 가깝다.그렇다고 좋은 건축이 화려함과 웅장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 말뫼나 함마르비 같은 도시의 주거지구에서는 고층 빌딩을 찾아보기 힘들다. 단아한 단층 아파트에 물과 숲과 정원이 어우러져 더없이 안락한 분위기를 풍긴다. 수십 명의 건축가가 주거지구 조성에 참여했지만 행정기관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층수, 색깔, 전체적인 톤만 고르게 유지하되, 각각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했다. 그래서 멋진 명품 주거지구가 탄생했다.우리는 왜 그렇게 할 수 없을까? 도시 한복판에 건축을 하면서도 공공성을 고민하는 건축가는 없고 눈앞의 경제적 이득만 따지는 건축주만 있기 때문이다. 건축가 승효상 씨는 "어떤 작업이든 공간적 개념을 품고 있다면 반드시 건축가가 함께 작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면 건축은 지어지는 순간 공적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새만금만 명품도시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을 하루하루 명품도시로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좋은 건축은 좋은 삶을 만들지만 나쁜 건축은 반드시 나쁜 삶을 만든다고 한다. 건물 하나를 짓더라도, 작은 장소 한곳을 기획하더라도 그 안에는 반드시 삶을 사유하는 건축가가 있고 미래를 내다보는 철학이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전성환(전북도청 홍보기획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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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8.11 23:02

[문화마주보기] "통섭은 안돼, 한예종은 하던 거나 하라?" - 김윤태

현대 무용은 인습과 형식에서 벗어나 해방된 몸으로 춤을 춘다. 인간의 정신과 영혼의 자유로운 표현을 추구한다. 현대무용의 대표적인 춤꾼 세인트 데니스는 동양의 정신적인 요소가 담긴 춤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특히 동양의 무녀의 춤에서 영감을 얻었다. 무녀가 추는 춤에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했던 영혼의 소리를 발견했다. 한자의 '무'는 양 소매를 자유롭게 늘어뜨리고 기교와 형식을 초월하여 신명나게 춤을 추는 무녀를 표현하고 있다. 데니스는 자신도 모른 채 서양 춤꾼으로서는 최초로 무녀의 모양을 본떠 만든 한자 '무(巫)'가 품고 있는 비밀을 푼 셈이다.이사도라 던컨에 의해 촉발된 유럽 현대무용은 루돌프 폰 라반에 의해 화려하게 꽃을 피운다. 무용수인 라반은 탁월한 이론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무용 이론에만 천착하지 않고 다양한 학문과의 학제간 연구를 중시했다. 그는 무용에 운동학의 움직임 이론과 인문지리학의 공간이론 뿐 아니라 철학, 수학, 기하학, 해부학 이론을 접목시켰다. 음악을 활용하여 무대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기도 했다.대학에서 학제간 통섭 교육은 이제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대학에서도 학과가 없어지고 학부제가 시행되고 있는 것도 그 영향이다. 어떤 대학에서는 심지어 인문학부와 자연학부도 구분하지 않는 자유전공학부가 생긴다는 고무적인 소리도 들린다.현대무용의 대가 데니스가 자신의 춤을 통해 영혼의 소리를 표현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춤만을 고집하지 않고 과감하게 동양의 무녀의 춤을 응용한 결과이다. 라반이 유럽 현대무용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도 바로 무용을 초월하여 학제간 통섭을 시도했기 때문이다.소위 '한예종 사태'이후 통섭이 세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한예종의 통섭교육은 예술 장르간 그리고 예술과 과학기술간의 다양한 소통가능성에 대한 성찰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한예종에서 통섭교육을 주도했던 심광현 교수에 따르면 통섭은 어원상 "함께 도약하기"라는 의미이여 "수많은 지식들이 양팔을 벌려 함께 도약하면 다양한 유형의 지식들 간의 결합방식이 나타날 수 있다. (...) 이런 유형의 도약의 귀결은 미리 결정될 수 없지만, 반복되다 보면 마치 여러 실들이 꼬이듯 여러 지식들이 중첩적으로 연결되어 수많은 지식들 간에 '가족적 유사성'이 형성될 수 있다." 또 "이렇게 얻어지는 가족적 유사성은 결국 전체 지식들 사이의 소통을 강화하고 확산하게 될 것"이다.정부는 틈만 나면 소통을 이야기한다. 촛불집회와 같이 무슨 일이 터졌다하면 소통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마치 정부 현안이 소통인 것처럼 들린다. 그걸 감안하면 소통을 지향하는 통섭교육을 기치로 내걸었던 한예종은 정부의 시책을 앞장서서 실행한 셈이다. 상을 주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한예종에 대해 "하던 일이나 하라"며 통섭교육 중단을 지시했다고 한다. 정부와 관료들의 생각이 얼마나 엇박자가 나고 모순을 이루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김윤태(우석대교수유아특수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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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8.04 23:02

[문화마주보기] 일본의 마츠리(祭)와 지역사회 - 임경택

2주 전에 일본의 마츠리(祭)를 보고 왔다. 나리타 공항에서 가까운 사와라라는 곳이었다. 이 곳은 일본의 도쿠가와 시대에 토네가와라는 큰 강의 유로를 변경하면서 생겨난 상업도시로 내가 박사학위 논문을 집필하기 위한 필드워크를 행했던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그 당시부터 지역주민들만의 마츠리가 만들어져 지금까지 시행해 오고 있다. 십 수 년에 걸쳐 관찰하고 조사해 왔지만, 언제나 일본 지역사회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마츠리, 한국인이 일본문화를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의 하나이다. 일본관광공사의 달력을 보면, 일본열도 어디에선가 하루도 빠짐없이 마츠리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얼핏 보면 단순한 축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일본인의 삶을 질서 짓고, 그 안에 작은 해방공간을 만들어 주는 중요한 기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하다. 일본의 지역사회와 그 질서를 이해하는 데 마츠리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임을 알아야 한다.일본의 마츠리는 크게 도시와 농촌의 마츠리로 나눌 수도 있는데, 농촌에서는 농사의 주기에 맞추어 신에게 제사를 지내왔고, 도시지역에서는 주로 여름철에 역병이 도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실시해 왔다. 역신보다 더 강한 신을 모심으로써 그 역병을 제압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것이며, 거기에 축제적인 요소를 가미한 것이다. 소박한 믿음에서 출발한 마츠리는 관의 도움없이 철저하게 민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다. 그 안에서 그들은 지역 사회 내에서의 자기 위치를 확인하고, 내부의 역할분담을 통하여 자치의 경험을 익히고 축적시켜 왔던 것이다. 일본어로 정(政)과 제(祭)를 모두 '마츠리'라고 읽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이다.(대부분이 비슷한 형태로 진행되지만) 역병을 막기 위해 열리는 사와라의 경우 그 안에 초나이라는 지역집단이자 생활집단이 마츠리를 수행하는 실행단위가 된다. 각 초나이는 마츠리에 필요한 경비를 모두 스스로 충당하며, 그 해의 당번이 된 초나이가 전체 운영경비를 좀 더 부담한다. 각 초나이의 내부는 연령집단으로 구분되어 있고, 각자가 맡은 역할이 명확하게 구별되어 있다. 이러한 각 단계를 경험해 가면서 사와라의 주민들은 '사와라인'이 되어 가는 것이다. 물론 전체 초나이들의 관계를 조정하는 것은 그 해의 당번 초나이이다. '내부완결체제'와 '협동 속의 경쟁'을 통해 그들은 지역사회의 자치를 경험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마츠리가 그들에게는 삶이요, 일상이 되는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를 '마츠리 바보'라고 부르고, 사와라를 떠나고 싶기도 하지만 마츠리 때문에 벗어날 수 없다고 하는, 어쩌면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도, 바로 그것이 그들의 삶 안에 용해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현재 한국의 지역사회에서도 많은 축제들이 경쟁하듯이 열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지속성을 가지고 지역주민들의 삶 속에 자리잡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마츠리와 축제의 간극 속에 그 답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임경택(전북대 일문과 교수)▲ 임경택 교수는 일 동경대 문화인류학과를 졸업했다. 동경대 연구원,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2002년부터 전북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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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7.28 23:02

[문화마주보기] 꿈은 이루어진다 - 이명훈

10년 넘게 키워오고 있는 꿈이 있다.커다란 당산나무 옆에는 아기자기한 솟대가 세워지고, 정갈한 마을 공동샘과 시원한 모정이 자리를 하면 주변으로는 소박하지만 정취 있는 흙집과 한옥들이 들어선다. 그곳에는 오래된 지인들이 산다. 글을 쓰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 음악을 하는 사람, 조각을 하는 사람, 굿을 치는 사람 그리고 오래도록 황토빛 흙을 일궈온 사람들, 그들과 함께 마을을 이루고 싶은 꿈이다. 일상의 생활에서 항상 굿이 함께 하는 굿치는 마을을 이루어 같이 사는 꿈이다.이러한 꿈을 꾸게 된 것은 어르신들께 20여년간 굿을 배우고 후배들에게 굿을 가르키면서 어떻게 하면 마을에서 현장에서 사라지고 있는 굿을 제대로 이어갈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생긴 것이었다. 마을에서 항상 굿과 함께 했던 당산제, 줄감기, 천제, 풍어제등이 굿치는 사람이 없어 점점 사라지고 있거나 남아있어도 형식적으로만 남아있음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수 천년동안 이어져온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 문화가 각 마을에서 굿을 연희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사라지고 있고 있는 현실이라니. 무형의 문화유산이 보존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연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사람을 통해서 전해져야 하기 때문에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교육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교육이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현실도 아니거니와 전수관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문제이다. 그나마도 다행이기는 하지만 말이다.요즘 굿을 교육 받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젊은 학생들이다. 이들은 굿의 근간을 이루었던 농촌의 삶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교육을 통해서 전통의 문화예술을 배우고 익히고 각자 학교에 돌아가서 발표회라는 형식으로 굿을 치고 있다. 판굿 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실 속에서 판굿이 굿의 전부인양 인식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하는가 고민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들에게 굿을 치는 일상적인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어 전수관 마당에 당산나무도 옮겨 심고 당산에 줄을 감고, 솟대와 장승도 함께 매년 세우고 있다. 이후에는 이곳에 집도 여러 채 짓고 공동샘도 만들고 하여 굿치는 마을을 만들고 싶다. 이미 농촌에서 굿을 치기 위한 기본이 사라져버린 오늘날 새로운 개념의 마을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굿치는 마을은 전국 곳곳에 있어야 한다. 지역마다 생활풍습과 억양이 다르듯이 그 지역의 풍토에 어울리는 마을과 굿이 살아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만이 그 옛날 굿으로 화합하고 자존심을 가졌던 우리 한민족의 정신이 아름답게 되살아 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한 지역에서 20년 넘게 한 지역굿만을 지키고 살아오면서 답답하기도 하고 조급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꾸준히 여유를 가지고 지역굿을 계승 발전시키는 일을 하면서 지역의 굿이 그 지역만의 색깔을 가지고 올바로 살아나야 우리나라 전체의 굿이 풍성해질 것이라는 나름대로 큰 생각이 생겼다. 작게는 풍물 굿판의 중심이었던 전라도 굽이굽이 마을 곳곳에서 모심을 때, 김 맬때, 백중 때, 칠석 때, 정월대보름 때, 아플 때, 기쁠 때마다 주기적으로 굿과 함께 살아왔던 우리 조상들의 삶이 되살아나는 희망을 가져본다. 온 들판 가득 초록 물결이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요즘 굿치는 소리가 마을마다 울려 퍼지기를 꿈꾸며./이명훈(고창농악보존회 회장)▲ 이명훈 회장은 서울예술대와 전북대를 졸업했다. 98년 전주대사습 장원, 2006년 한국민속예술축제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고창농악전수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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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7.21 23:02

[문화마주보기] 창고를 박물관으로 활용하는 역발상 - 전성환

지난 6월, 북유럽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유럽의 거리를 걷는 동안 내 손에는 늘 위치우이의 책이 들려 있었다. 그가 쓴 〈유럽문화기행〉은 한 문명과 문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나침반과도 같았다. '한 문명이 외부 세계를 똑바로 볼 수 없다면 자신의 역사 또한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그의 말은 마치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 같았다.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박물관거리였다. 마인강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박물관 거리는 크고 작은 박물관들이 모여 있어 마치 작은 마을처럼 보인다. 흔히 박물관하면 거대한 건물과 방대한 유물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곳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구 국립박물관, 페르가몬 박물관, 보데 박물관 등 진귀한 유물을 소장한 박물관들이 있고, 이 가운데 건축박물관, 유대인박물관 같은 테마별 박물관들이 섞여 있다. 이 때문에 박물관 거리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기도 했다.재미있는 것은 원래 이곳이 부둣가 창고단지였다는 점이다. 19세기 초에 이 일대를 매립하면서 건축가 쉰켈의 주도하에 최초로 박물관이 들어섰고, 이후 갖가지 박물관이 들어서면서 명소가 된 것이다.이런 사례는 유럽 어딜 가나 한 두 개씩은 있다. 영국의 시골마을 '헤이 온 와이'는 책마을로 유명하다. 1962년 리차드 부스라는 사람이 낡은 성을 사서 헌 책방을 열었고, 세계 곳곳의 헌책들을 사서 모았다. "이곳에 가면 헌책이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지금은 마을 전체가 헌책방이다. 37개의 헌책방과 16개의 갤러리에서는 세미나, 강연회, 작가와의 대화가 열린다. 그들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인구 1천3백 명밖에 안 되는 작은 시골마을이 세계적인 명소가 된 것이다.창고를 박물관으로, 낡은 성을 헌책방 마을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발상의 전환이다. 나는 전주 한옥마을을 박물관마을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옥의 느낌과 구조를 그대로 살려서 박물관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굳이 건물을 새로 지을 필요도 없고 거창한 유물을 들일 필요도 없다. 옛 선조들이 썼던 농기구 박물관, 고서?고지도 박물관, 생활용품 박물관, 사투리 박물관. 생활 속에서 명멸했던 수많은 도구들이 모두 박물관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영국의 책마을처럼 주민들이 직접 박물관을 운영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너무 터무니없는 발상이라고? 모든 성공한 문화도시는 터무니없는 발상에서 시작됐다. 개발계획을 세우고 인공조형물로 치장하는 것이 쉽고 빠른 길일 수 있지만, 그것은 빨리 망하는 길일 수도 있다.위치우이는 문화도시의 등급을 세 단계로 매겼다. '맨 아래 등급은 생활에 가치를 두는 것이고, 그 다음 등급은 역사에 가치를 두는 것이고, 가장 높은 등급은 자연에 가치를 두는 것이다.' 자연 그대로 두는 상태가 가장 높은 문화라는 얘기다.'진정한 문화인 혹은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은 바로 문화예술계 안에서 있는 힘을 다해 반대자 노릇을 하는 일'이라고 했던 콜링우드의 말을 새겨본다. 그러기 위해서 문화관계자들은 더 멀리 떠나볼 필요가 있고, 말갛게 씻긴 눈으로 모든 문화현상을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전성환(전북도 홍보기획과장)▲ 전성환 과장은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주) 제일기획 카피라이터, 서울미디어 대표이사,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외래교수를 거쳐 현재 전북도청 홍보기획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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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7.14 23:02

[문화마주보기] '탈라'와 '대한늬우스'의 화려한 복귀 - 김윤태

탈라는 전통적으로 유럽에서 법관과 성직자가 착용하는 긴 겉옷을 말하지만 대학졸업식에서 교수들이 입는 겉옷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학졸업식에서 교수들이 탈라를 입는 전통은 프로이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마다 저마다 독특한 유형의 탈라를 갖고 있었지만 학과에 따라 깃의 색깔은 똑 같았다. 신학과는 보라색, 법학과는 자색, 의학과는 진홍색, 철학과는 감청색 깃으로 과의 고유한 전통을 과시했다.탈라는 독일에서 오랫동안 독일 대학교수들의 졸업식장 공식복장이었다. 하지만 탈라는 1968년 최고조에 달했던 독일 학생운동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 독일 대학 졸업식장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특히 그 당시 함부르크 대학의 학생들은 "탈라 속에 천년 묵은 곰팡이가 피어난다(Unter den Talern der Muff von tausend Jahren)"며 탈라 착용을 빗대 대학교수들의 보수적이고 소시민적인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68운동은 독일에서 나치의 전통을 극복하려고 시도한 유일한 시민혁명으로 평가된다. 독일은 이 운동의 결과 권위주의 시대를 청산하고 건강한 사회로 진일보 할 수 있었다. 따라서 독일 사회학자들은 68운동의 '脫탈라'로 상징되는 변화에서 중요한 시대적 의미를 찾는다. 독일 대학은 탈라를 벗음으로써 중세풍의 세레모니에서 나타나는 권위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학문의 본연의 길을 찾았다는 것이다.최근 독일신문에서 탈라가 독일의 대학 졸업식에 다시 등장 했다는 기사를 읽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하지만 탈라의 복귀소식에 남의 나라 일이라고 부리던 여유는 며칠 전 오랜만에 영화관에 들렀다가 갑자기 '대한늬우스'를 접하면서 사치가 되고 말았다. 코미디언들이 나와 벌이는 코미디에 호들갑을 떨고 싶지는 않다. '복고 마케팅 광고'일 뿐이라는 재미나고 멋들어진(!) 해명도 믿고 싶다.하지만 요즈음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 '대한뉘우스'의 복귀는 단순히 코미디도 아니고 추억의 복고 마케팅도 아닌 것이 분명하다.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어야 할 청계천이나 시청 앞 광장이 가두리 양식장처럼 전경차로 그야말로 물 샐 틈 없이 둘러 쳐진 것을 보라. 누가 그것이 사라진 군사정권의 종식을 추억하며 퍼포먼스한다고 생각하겠는가? 또 시국선언교사들을 징계하는 모습에서는 권력의 비열함이 엿보인다. 정작 시국선언을 시작한 교수들을 징계하겠다는 말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김윤태(우석대 교수유아 특수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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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7.07 23:02

[문화마주보기] 생태의학과 건강한 밥상문화 - 한면희

태평양의 섬나라 나우루는 주민이 고작 8천명 수준에 불과하지만, 산호초로 둘러싸인 천혜의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서양인들이 몰려오면서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호사를 누리고 있는데, 그것에 수반되는 사회적 후유증도 심각하게 앓고 있다. 주민들은 관광수입으로 벌어들인 외화로 현대식 슈퍼마켓에서 코카콜라와 각종 통조림 등 인스턴트식품을 구매하여 일상으로 섭취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서구식 생활습관으로 인해 1954년까지는 거의 없었던 당뇨병 환자가 최근 41%로 늘어남으로써 국가 보건체계에 비상이 걸렸다.미국은 닉슨정부 시절에 암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10년 동안 250억 달러 이상을 지출한 바 있지만,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했다. 국민의 의료비 지출은 갈수록 커져서 1940년에 GNP의 4%에 해당하는 40억 달러 규모였는데, 1992년에는 14%에 달하는 8천억 달러로 대폭 늘어났다. 현재도 3명 가운데 1명이 암에 걸리고, 5명 가운데 1명이 사망하고 있다. 의료기술이 높아지는 것 이상으로 의학이 고치지 못하는 불치병과 그 환자가 계속 늘고 있는 셈이다. 돈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산업사회의 생활양식이 사태의 주범이다. 지난 주 유명을 달리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도 성형수술 후유증을 앓고 있다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했는데, 이런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인다.미국에서 암과 각종 불치병을 고치기 위해서 자국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1992년에 대체의학연구위원회가 설립되었다. 대체의학은 마음과 몸을 통합해서 바라보고, 질병치료보다 예방에 우선적 주안점을 두며, 생활습관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에는 자연을 맑고 깨끗하게 유지하지 않고서는 인간도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인식이 강렬하게 싹트고, 이에 따라 생태의학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것은 대체의학의 연장선상에서 생태계를 보전하면서 자연적 이치에 따라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알고 보면 동아시아 문명의 의학적 이해는 생태의학의 원형에 해당한다. 장기와 신체, 몸과 마음, 인간과 자연을 유기적 연관관계로 조망했다. 음식도 에너지 공급원이자 질병 예방의 눈으로 보았다. 이제 의식동원(醫食同源)의 관점에서 위험한 밥상을 건강하게 재구축하는 방향으로 조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 주식으로 쌀밥을 유지하면서 수입 밀 섭취를 최소화하고, 가능한 한 채식 위주의 식단을 짜며, 유익한 미생물이 많은 발효식품의 섭취 비율을 늘려야 한다. 유기농 재배를 계속 늘리고, 패스트푸드를 피하며, 생활 속에서 약초를 가까이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생명의 원천인 자연을 건강하게 하면서 일상생활에서 자연의 생기를 향유하는 데 더욱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한면희(전북대 쌀삶문명연구원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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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6.30 23:02

[문화마주보기] 돈키호테 DJ, 6급 세무공무원 - 곽병창

'기사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읽던 시골 선비(hidalgo) '알론소 퀴아노'는 늘그막에 가슴에 불타오르는 열정을 담은 채로 세상의 부정을 바로잡고 학대받는 사람들을 돕고자 길을 떠난다. 그는 '돈키호테(Don Quijote)'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비쩍 마른 애마 로시난테를 타고 편력의 길을 떠난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라만차(La Mancha)의 들판을 걸으면서 그의 이성이 잠시 작동을 멈춘 사이에, 열정으로 가득한 그의 심장이 시키는 대로 마지막 삶을 불사른다. 그리하여 마침내,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양떼를 백만 군졸(軍卒)로 착각해 돌격하거나, 풍차를 흉악한 거인으로 몰아 달려들고, 여관집 하녀인 알돈자를 둘시네아 공주라 부르며 흠모하기도 한다. 그의 이런 행위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거나 놀림감이 될 뿐이었다. 즐겨 읽던 책에 나오는 대로 스스로 행하고자 했던 그의 순진함이 현실에서는 미친 사람 취급으로 되돌아왔다.소설 속 돈키호테의 시대착오적인 꿈과 무모한 도전은 많은 이들에게서 멸시와 조롱을 받았지만, 현실에서의 그 이름은 시대를 뛰어넘어서 불의에 눈 감지 않는 정의와 분투의 상징으로 많은 이들의 가슴에 자리잡았다. 또 그보다 조금 먼저 세상에 알려진 '우유부단한 이성'의 표상 '햄릿'과 대비되는 '저돌적인 열정'의 표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돈키호테의 이야기는, 인간의 얄팍한 이성과 눈 앞의 객관적 사실만을 중시하며 스스로에게 해가 되는 일은 철저히 피해가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훌륭한 우화이다.따지고 보면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돈키호테의 뒤를 따랐는가? 당대의 주류 권력과 기생(寄生) 지식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거짓과 불의의 풍차를 향해, 맨몸으로 달려들곤 하던 시대착오적 이상주의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멀리 싯달타와 예수가 그랬고, 허준과 김정호와 전봉준이 그랬다. 아주 가까이는 김구와 전태일과 문익환이 그러했으니, 그들은 모두 당대의 권력으로부터 조롱받는 자였고 고통을 당하는 자였다.그러나 그들은 권력 쥔 자들이 보지 못 한 저 거대한 불의의 성채를 꿰뚫어 보았고, 세상이 뒤에서 조롱할 때 그 불의의 성을 부수려고 죽기 살기로 돌진하였으며, 고통 당하는 더 많은 이들과 더불어 세상을 마친 이들이다. 그들의 육신을 핍박하고 영혼을 조롱한 이들은 늘 이긴 자들, 총칼을 쥔 자들이었으니 그들 이긴 자들에게 세상의 어두운 그늘과 부정한 풍차가, 욕망의 거짓 성채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런즉 그 눈에 저들 돈키호테는 영원히 허상과 싸우는 존재로만 보일 것이다.전직대통령이 나라의 현실을 우려하며 몇 마디 개탄한 것을 두고 세상의 화려한 입들이 돈키호테 같은 노인이라며 조롱한다. 사리분별이 흐려진 노인이 내던지는 무모한 언사쯤으로 깎아내리고 싶은 생각임이 분명하지만 알고 보면 그런 찬사가 없다. 두 눈 멀쩡히 뜨고도 세상이 잘 안 보이는 이들이나, 한쪽 눈만으로 세상을 보고 싶은 철 지난 포수들에게는 능히 그럴 수 있다.하지만 진짜 돈키호테들은 따로 있다. 광장을 막은 차벽이 그냥 차벽으로 보이지 않고 거짓의 산성으로 보이는 이들, 높은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불의를 보고 손가락질했다가 파면 당하고 고발 당하는 6급 세무공무원, 저들이야말로 빈약한 애마를 타고 낡은 투구를 썼으나, 눈 앞에 어른거리는 불의의 풍차를 향해 앞뒤 안 가리고 차례로 돌진하는 이 시대의 돈키호테들이다.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전직대통령의 입이 아니라, 가진 것도 뒤에 의지할 것도 없이 차례로 돌진하고 있는 저 광장의 돈키호테들 아닌가?/곽병창(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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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6.23 23:02

[문화마주보기] 제주에서의 문화예술 단상(斷想) - 이 찬

지난 6월8일에서 10일까지 제주에서 해비치 아트페스티벌이 열렸다. 전국의 공연장 관계자와, 동시에 개최된 아트마켓에 참가하는 국내 공연기획사 종사자등 전문가 약 8백 명이 한 자리에 모인 자리였다. 초기에는 전국문예회관연합회의 정례 워크숍 형식으로 시작되었던 것이 국내 예술시장이 함께하는 축제와 소통의 장으로 발전된 것이다.이번에 수도권에서 약 4백여 명이 참가한 공연기획사들의 현황을 보면 우리나라 문화예술 활동에서 중앙과 지역의 간극을 뚜렷하게 알 수 있었다. 공연예술 작품의 경쟁성과 시장성이 중앙에서는 얼마나 치열한가를 보여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처럼 경제가 침체된 상황에서는 지역보다 중앙의 문화예술계가 더욱 큰 타격을 받게 마련이다. 중앙의 예술 활동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만큼 사회경제적 영향을 지방보다 더욱 크게 받게 되어 있다.이런 가운데 전주에 소재한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은 그 이름에 걸맞게 전국의 많은 문예회관 가운데 중앙을 포함하여 몇 대표적인 위상을 갖고 있는 반열에 안착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은 비슷한 규모의 수도권 지역 문예회관보다 지역의 시장성이나 재원의 규모는 취약할지라도 그동안 지역성을 뛰어 넘는 전국적 운영 패러다임을 구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21세기는 네트워크의 경제시대라고 한다. 이것은 20세기 규모의 경제시대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이 첨단의 시대에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나름대로 이미지 구축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중앙과 지역을 통섭하는 개방된 마인드세트와 효과적 네트워킹을 실현시켜온 결과라고 생각된다.그것은 국내 최초의 민간위탁 체제에서 선진국의 행정 가치인 '팔길이 원칙'을 토대로 안정적 경영의 지속성이 가능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나라 공연장의 효시인 세종문화회관과, 그리고 최신 공연장 시설인 김해문화의전당의 조직체계를 두루 경험해 본 필자로서는 상대적으로 역량 있는 민간 체계의 조직이 얼마나 효과적이며 생산적인지를 느낄 수가 있다.이번 아트페스티벌에는 일본의 전국공립문화시설협회를 대표하여 다쑤아키 마쑤모토(松本辰明) 상무이사가 참가하여 일본의 문예회관 현황을 설명하였다. 일본에는 약 3천 개의 공연장이 있는데 이중 약 70퍼센트가 공립이라고 한다. 1980년대 지방자치제의 도입과 당시 경제 버블에 힘입어 전국적으로 많은 공연장이 건립되었다.그동안 대부분 일본 문예회관들이 지방자치단체의 직영이나 문화재단과 같은 공공기관에 의해 운영되던 체제가 지방정부의 재정난으로 한계를 맞게 되었다. 그래서 일본은 2006년부터 민간위탁의 '지정관리자제도'를 도입하여 민간기업이나 비정부기구나 심지어 개인에게도 위탁을 부여하는 체제로 전환하였다고 한다. 민간의 효율성과 자율성을 통해 정부의 재원 한계를 극복해 나가겠다는 정책이었다.그 설명을 들으면서 지금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공연장 건립 붐은 언젠가는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되지나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일본 문예회관의 현재는 우리의 미래를 가늠하게 하는 단초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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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6.16 23:02

[문화마주보기] '원한의 도덕' 넘어서기 - 김성환

"선천(先天)에는 상극의 원리가 인간과 사물을 지배하니, 모든 인사가 도의에 어그러져서 원한이 맺히고 쌓여 하늘과 땅과 인간의 삼계(三界)에 넘쳐 마침내 살기가 터져 나와 세상의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나니." 지금부터 백 년 전인 1909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증산 강일순은 낡은 인류문명의 질병을 이렇게 진단했다.강증산이 아직 20대 초의 청년이던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좌절됐다. 우금치에서 30만 명이 넘는 동학군이 희생됐다.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도 동학군 토벌에 나선 토포사에게 다시 잡혀 맞아 죽었고, 남은 가족들도 모진 박해를 받거나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그 대부분의 희생자가 호남의 너른 들에서 나왔다. 호남에는 산 자들의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했고, 죽은 자들의 원혼이 하염없이 구천을 떠돌았다. 그 때 강증산이 서러운 민초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원한을 풀어라. 척을 짓지 말라."그는 해원(解寃)하고 상생(相生)하는 것으로 낡은 인류문명, 끝없이 상극하는 선천시대의 악업에서 사람들이 벗어나기를 갈망했다.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의 도로써 선경(仙境)을 열고, 조화정부를 세워 하염없는 다스림과 말없는 가르침으로 백성을 교화하고 세상을 고치리라"는 그의 염원은, 그리하여 그 어떤 분노와 복수와 저주보다 더 강렬하게 조선백성들의 마음을 흔들고 그들의 영혼을 치유했다. 그런데 다시 백 년이 지나, 우리는 또 한 사내의 말을 듣는다.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그러나 상극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계, 잔인한 무한경쟁시대는 원한분노저주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지 않고, 진리를 자기만 독점한다고 믿으며, 자기가 공격당할 수 없는 존재이고, 최강의 권력이며 절대로 대체될 수 없고 경멸당하지 않는다는 확신에 사로잡혀있다. 그들이 던지는 사문난적, 반동, 빨갱이, 사탄 따위의 언사가 우리를 두렵게 한다. 그들은 자기와 다른 남을 적으로 몰며, 증오와 저주의 이빨로 적을 물어뜯어야 스스로 '고귀한 자' '강력한 자' '지배자' '권력자'가 된다고 믿는다. 니체는 이처럼 뒤틀린 자기 확신을 '원한의 도덕'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마음 안에 남을 처벌하려는 강한 충동을 가진 모든 자들을 신뢰하지 말라"고 충고했다.하지만 상극의 세상에서는 이런 충동을 품은 자들이 대개 부유하고 강하며 유식하다. 강증산은 말했다. "부귀한 자는 빈천함을 알지 못하며, 강한 자는 병약함을 알지 못하고, 유식한 자는 어리석음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멀리하고, 오로지 빈천하고 병약하고 어리석은 자들을 가까이 하겠노라. 그들이 곧 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강증산이 한 달 동안 쌀 한 톨 입에 대지 않고 빈속에 소주만 붓다가 쓰러져 갔다. 1909년 음력 6월이었다. "후천개벽의 날이 아직도 멀어서 다가오지 않으니 중생의 고통이 너무 심하다. 내 스스로 민중의 밥이 되어, 민중의 온갖 고통을 다 한 몸에 스스로 짊어지고 가노라"며. 그것은 결국 자살이었다. 그리고 백년 뒤 2009년 5월, '대통령'으로 불린 또 한 사내가 잔인한 세상의 고통을 짊어지고 목숨을 끊었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며.강증산이 바보였듯이, 노무현도 바보였다. 그들은 자신의 죽음으로 상극의 기운이 가득한 세상의 악업을 대신하고자 했고, '원한의 도덕'에 사로잡힌 자들이 뿌린 저주와 복수심마저 거둬가고자 했다. 다시 니체의 말이 떠오른다. "인간이 복수심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최상의 희망으로 가는 가교이며 오랜 폭풍우 뒤의 무지개다." 그러나 화해와 상생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는 말라! 그것은 용서를 구해야 할 자들, 잔인한 하이에나의 이빨을 번득이는 자들이 스스로의 악덕을 덮기 위해 쓸 수 있는 언사가 아니므로. 삐뚤어진 지배욕에 사로잡힌 그들의 '원한의 도덕'으로부터 세상이 벗어나는 것, 그것이 곧 상생의 시대로 가는 길이다./김성환(군산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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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6.09 23:02

[문화마주보기] 생명문화와 노 전 대통령의 자결 - 한면희

노무현 전대통령은 국민의 가슴 속에 진한 감동을 남기고 이 세상을 하직했다. 서민으로 태어나 서민을 위한 아름다운 삶과 정치를 펼치다가 떠났다. 무엇보다도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와 권위주의를 타파하는 데 앞장섰다. 그런데 그가 자연스런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자살을 택했다는 점에서 당혹감도 감출 수가 없다. 생명존중의 문화에서는 이 사건을 어떻게 조망할 수 있을까?니체는 도덕이 개인의 눈 속에 있다고 함으로써 윤리적 주관주의를 설파했다. 이런 경우, 사람이 취하는 행위의 윤리성이 개개인에게 돌아가므로 타인이 시비를 걸 수 없다. 이완용의 매국 행위도 타인이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없게 된다. 지구촌 여러 사회는 고유한 문화를 갖고 있고 윤리는 문화의 산물이므로, 한 문화권의 행위 양상을 다른 문화권이 시비를 걸 수 없다는 윤리적 문화상대주의도 있다. 이것은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존중을 가능하게 하는 큰 장점이 있다. 그러나 허약한 여아를 자연에 유기하여 죽게 하는 일부 토착사회의 행위도 문화적 풍습이어서 비난할 수 없게 된다.바로 이런 문제로 인해 칸트는 도덕규칙을 보편화하여 절대적 지평에 올려놓았다. 윤리적 절대주의에 따르면,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지상명령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조선총독 히로부미를 저격한 의사 안중근과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저명한 신학자 본회퍼를 기억한다. 이분들의 행위는 윤리적으로 그릇된 것으로 볼 수 없다. 왜? 윤리적 객관주의로 설명이 가능하다.주관주의와 상대주의는 도덕규칙을 용인하지 않는다. 반면 절대주의와 객관주의는 도덕규칙을 보편적으로 용인한다. 다만 전자는 예외를 허용하지 않지만, 후자는 조건부로 승인한다. 객관주의는 타인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도덕규칙을 준수하지만, 또 다른 규칙으로 강력한 사회적 해악은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별한다. 성숙한 합리적 직관은 가치 우열의 비교 속에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 안중근과 본회퍼는 옳은 일을 한 것이다.노무현의 자결은 어떠한가? 살해와 자살은 조금 다르다. 그것을 옳다고 보기 어렵다. 조선 말 경술국치를 당하여 자결한 애국지사가 여럿 있었다. 나라를 빼앗긴 데 따른 책임과 간악한 매국노의 행위를 규탄하는 사회적 저항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번 노무현 전대통령의 자결 이면에도 자신으로 비롯된 책임과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그릇된 현실정치에 대한 저항의 의미가 담겨 있다. 국민이 그의 죽음을 마음 속 깊이 슬퍼한 연유가 여기에 있다. 원칙적으로 생명을 앗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다만 사회문화적 의미를 중요하게 갖는 경우에 예외적 평가를 다르게 내릴 뿐이다. 역사성을 띤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어떤 유형의 자살도 바람직하지 않고 또 옳지 않다./한면희(전북대 쌀삶문명연구원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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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6.02 23:02

[문화마주보기] 비극의 가치 - 곽병창

참으로 착한 한 인간이 죽었다. 자기 조국을 사랑했고, 자신과 가족의 따뜻한 밥 한 그릇, 평안한 잠자리를 궁리하는 대신, 핍박받고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못 견뎌 하던 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신의 섭리를 저버린 일이라지만, 그런 걸 가려 자신의 길을 선택하기엔 그에게 주어진 세상이 너무 좁고 강퍅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순결한 영혼이고자 했다. 그 순결함이, 도덕적인 정치, 청렴한 대통령을 향한 그의 필생의 의지가 마침내 그를 봉화산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높은 도덕적 자존심과 구차한 현실 사이의 질긴 싸움 끝에 그는 스스로를 버렸다. 비극적인 바보 노무현은 언제쯤 그 결말을 알았을까?비극은 마지막까지 주인공으로 하여금 자신의 비극적 선택에 대한 깨달음을 주지 않는다.'외디푸스'도 그랬다. 나라의 운명과 스스로의 출생에 얽힌 진실을 알고자 했던 그 순간부터, 그 끔찍한 비극의 시계바늘은 여지없이 돌아서 그의 몰락을 불렀다. 진실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의지를 불태우면 불태울수록 비극적 주인공들의 최후는 점점 더 빠르게 다가온다. 외디푸스의 '비극적 결함(hamartia)'이 진실에 대한 맹목적 집착이었다면, 노무현의 그것은 더러운 현실에 어울리지 않게 높은 도덕적 이상이었다.그는 말 뒤집기를 밥 먹듯 하고 거짓말과 배신을 태연히 저지르는 이 나라의 평균적 정치인들과 달랐다. 이 더러운 한국 정치의 늪에 자발적으로 뛰어든 그 순간부터 인간 노무현의 비극은 싹텄다. 감히, 대학도 못 나온 주제에, 돈도 줄도 변변치 않은 주제에, 수십 년 덕지덕지 쌓아온 계보와 부패정치의 성곽을 허물겠다니, 그건 불을 지고 섶에 뛰어드는 일이었다. 그 거대한 거짓과 탐욕의 풍차에 돌진한 결과는 돈키호테보다 더 끔찍한 비극으로 끝났다. 적들은 생각보다 더욱 막강했고 겁 없는 도전자에 대한 응징은 날카롭고 집요했다. 돈키호테 노무현의 창은 너무 무거웠고 그의 이상을 실어 나를 애마는 아직 덜 자랐으니, 그가 말에서 내린 순간 남은 것은 집요한 보복의 칼날뿐이었다.그것이 이 비극의 전말이다. 이 나라 평균 국민의 상식으로는 결코 따를 수 없던 높은 이상을 세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 국민들의 세상이 더욱 깨끗하고 평화롭게 되기를 바랐던 한 인간이, 결국은 평균적 인간들의 야유와 조롱 속에 스스로 세운 이상을 무참히 꺾고 떠났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국민들을 향해서 자신을 버려달라는 말을 남겼다. 외디푸스는 생모가 곧 아내라는 끔찍한 진실을 알게 된 순간 두 눈을 찌르고 광야로 떠났지만, 유랑할 광야조차 허락받지 못한 이 나라의 전직 대통령은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어' 허공에 몸을 던졌다.하지만 비극은 깨달음을 남겨야 비극이다. 이 비극 앞에서 목 놓아 우는 동안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어떤 고결한 영혼도 설 자리를 찾을 수 없는 이 위선과 탐욕의 정치판, 휴전 60년이 다 되도록 아직도 '좌빨' 타령으로 소일하는 돌심장들, 동서로, 남북으로 갈려 제각기 저주와 분열의 진지전을 이어가고 있는 이 나라의 정치적 조폭들, 욕망의 탑을 쌓느라 눈 뜨고도 진실을 보지 못 하는 청맹과니 백성들을 향해, 그가 허공에서 지금 외치고 있다. 제발 그만 하자고-. 저주는 저주를 낳고 보복은 보복을 부른다. 이 비극의 악순환을 끊는 길은 눈물 속에서 우리가 마침내 서로 뉘우치고 정화(淨化)되는 것이다.오늘도 우리는 살아서 국밥을 사 먹을 것이고, 착한 대통령 노무현은 생사의 긴 틈새를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삼가 고인의 남은 긴 길에, 봉화산 꽃향기 내내 그윽하기를 빈다./곽병창(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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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5.26 23:02

[문화마주보기] 이제는 컬쳐노믹스 시대이다 - 이찬

21세기는 문화콘텐츠 산업의 시대이다. 공연, 영화, 게임, 음악, 인터넷 등을 포함하는 문화콘텐츠 산업은 기존의 제조업 성장률을 추월하고 있고, 전 세계 약 2조억 달러의 시장규모는 기존의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문화의 발전은 인간의 삶의 질적 성장과 이제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발전하였다. 바야흐로 컬쳐노믹스(Culture+Economics : 문화+경제)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프랑스 파리의 오르세역(驛)을 개축하여 인상파 회화를 비롯한 19세기 미술작품을 소장한 오르세 미술관, 거대한 철골 트러스 속에 도서관(BPI), 공업창작센터(CCI), 음악음향의 탐구와 조정 연구소(IRCAM), 파리국립근대미술관(MNAM) 등이 있는 퐁피두 예술센터 등은 컬처노믹스의 대표적 구조물이라 할 수 있으며, 그 밖에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개조한 영국의 테이트 모건 갤러리, 제철소, 광산등이 있던 도시를 개조한 스페인의 구겐하임 미술관 등은 지역 일자리 창출과 관광객 유치로 지역 경제에 큰 활력소가 되고 있다.이런 하드웨어적 접근 방식 이외에도 소프트웨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계림의 아름다운 산과 강을 배경으로 한 장예모 감독의 수상뮤지컬 '인상유삼저((印象劉三姐)'는 전 세계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야외 공연으로 년 간 약100 만 명 이상의 관객유치, 약 600여명의 지역주민들을 배우로 등장시켜 지역 주민들의 일자리 창출은 물론 지역 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이 외에도 아시아 최대의 예술촌을 조성하고, 이와 동시에 콘텐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가을에 내한공연을 가진 장예모 감독 발레극 '홍등', 서커스와 발레를 결합한 '백조의 호수' 등은 앞으로 전 세계를 내다보고 기획된 작품으로 앞으로 공연시장에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생각된다.19세기의 산업혁명은 유럽이 중심 이였고 20세기에는 미국에서 발전하여 이제 21세기는 아시아에서 꽃 피울 것이다. 그 내용은 제조업과 굴뚝산업이 아닌 문화콘텐츠 사업 일 것이다. 이런 패러다임 변화에 발 빠르게 움직이는 중국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국내의 문화콘텐츠는 게임과 인터넷 산업을 제외하면 아직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것을 소재로 창의적으로 만들어진 세계적 수준의 콘텐츠는 전무한 실정이다. 그러나 최근의 '안면도 꽃 박람회', '함평 나비축제', '보령 머드 축제' 와 폐석산을 예술문화공원으로 바꾼 포천의 아트밸리, 담배창고를 문화발전소로 변신시킨 대구의 창의적 프로젝트, 전북의 전통소리문화 DB구축사업 등은 우리 문화콘텐츠를 발굴한 좋은 출발의 상징이다.문화콘텐츠 개발은 정부의 문화정책과 지방자치단체의 의지에 달려있다. 즉 중앙정부의 지원과 지역의 문화특성이 결합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21세기 소비 주최의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어야 하고 그들의 정서를 담은 것이어야 한다. 문화는 지역을 살릴 수 있는 힘이자 가치 산업이다.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창의성의 기반으로 불루오션을 개척하여야 한다./이찬(한국소리문화의전당 예술사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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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5.19 23:02

[문화마주보기] 도시의 미래 - 김성환

지금부터 한 달여 전, 2009년 4월 3일에서 5일까지 미국 하버드대학의 디자인대학원에서 미래의 도시로 여행하는 국제컨퍼런스와 전시회가 열렸다. 조경, 도시계획 및 설계, 공공 위생, 건축, 공공정책, 예술과 인문 분야 등에서 50여 명의 석학이 발표를 하고 5백 명에 가까운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첨단 과학과 공학의 중심인 미국, 그 지성의 심장부인 하버드대학에서 그린 미래도시의 풍경은 어떤 것일까. 영화 〈터미네이터〉와 〈메트릭스〉에서 상상하듯 기계와 인간의 역할이 뒤바뀌는 암울한 디스토피아? 아니면 첨단기술이 인류의 미래를 구원하는 유토피아?하지만 지금 세계적인 도시전문가들이 그리는 미래도시는 허리우드 SF영화의 상상력을 비켜간다. 하버드대학의 교수들과 연구팀은 '생태적 도시주의(Ecological Urbanism)'라는 신조어로 도시의 미래를 제안했다. '생태적 도시주의'는 심포지엄의 주제를 넘어, 모센 모스타파비(Mohsen Mostafavi) 학장이 이끄는 하버드디자인스쿨의 미래지향적 연구와 교육의 비전과 실천방향으로 선포되었다.그리고 지난주 5월 6일, 고려대학교에서 다시 생태적 도시주의를 논의하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대체가능하고 지속가능한 미래의 도시들'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하버드대학 디자인대학원 조경학과장 겸 환경기술연구소장인 니얼 커르크우드(Niall G. Kirkwood) 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대여섯 명의 도시전문가가 토론을 했는데, 나도 논평자로 초대되었다. 사실 나 같은 인문학자가 도시설계와 개발에 대해 발언하는 것은, 직업적인 도시기술 전문가와 인문학자 모두에게 주제넘은 간섭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런데도 주최 측에서 인문학자의 참여를 요청했고 나 역시 흔쾌하게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어쩌면 이런 시도야말로 '생태적 도시주의'가 추구하는 목표와 접근방식을 잘 보여준다.오늘날 도시의 설계와 개발은 건축, 토목, 조경, 디자인 등 도시공학 분야의 전문기술로 취급된다. 그런데 '생태적 도시주의'는 이런 도시공학기술이 주도하는 현대의 도시환경이 "인간의 삶, 전통적 관습, 자연환경, 그리고 도시의 지속가능한 다양성과 복합성에 주의를 기울이는데 실패했다"고 최종적으로 평가한다. 이런 혹독한 평가는, 과학(공학)기술이 인간의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맹신한 20세기의 '과학기술결정론'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도시 공학자들은 도시를 자연에서 분리된 공간으로 보고, 인공적인 기술로 얼마든지 도시를 조작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생태적 도시주의'는 이런 믿음이 결정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선언한다.도시는 단지 인공적 구조물들로 이뤄지는 '건물덩어리' 그 이상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 지역적 특성, 자연환경, 지질, 경제, 역사, 예술, 정치, 문학, 철학, 교육, 의료, 종교, 그리고 다양하고도 복합적인 문화가 뒤엉켜 도시의 생태계를 구성한다. 그런데 도시공학의 전통적인 접근방식은 도시의 이런 자연생태와 사회생태, 그리고 문화생태의 다양성과 복합성을 고려하는데 실패해왔다. 이에 하버드대학에서 제안하는 '생태적 도시주의'는 도시 계획 및 관리의 관행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청하며, "타 분야에 대한 배타성을 버릴 때 도시디자인의 도전적 기회가 더 커진다"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생태적인 도시설계에서 "인문학적인 주요 이슈가 무엇인가?"하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심포지엄이 끝난 뒤, 나는 사석에서 커르크우드 교수에게 새만금이 '생태적 도시주의'를 구현할 최적의 미래도시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그 역시 깊은 관심을 보이며, 내년 1년 동안 한국에서 안식년을 보내면서 새만금을 눈여겨 살펴보자고 기약했다. 뜻 깊은 만남이었다.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도시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더 아름답고 인본주의적이며 생태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사회적으로 고양된 환경의 창조를 위해, 조경건축가와 여타의 디자인 분야에서 아주 높은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미래도시는 단지 도시의 미래가 아니라, '인간의 미래'이자 '자연의 미래'이기 때문이다./김성환(군산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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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5.1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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