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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밥상앞에서

밥상 앞에서한 경 선이 음식이 우리를 위해 희생한 것 같이 우리도 남을 위해 희생하게 하소서.라고 하는 식사기도를 들으며 음식을 가볍고 쉽게 대했던 마음을 되돌아 본 적이 있다. 세상에 있는 동식물들의 생명을 흡수해서 우리 생명을 이어간다. 음식을 통해서 마음을 전하기도 하고 정성을 담기도 한다. 한 끼 식사를 간소하게 해결하는 부족도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 사람들은 다양한 음식을 먹는다. 현대인들은 먹는 것을 유난히 즐긴다. 여행지 소개를 할 때 그 주변의 음식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음식 기행도 추억으로 남을 수 있으니 그 정도는 애교로 봐 준다 해도 텔레비전에서까지 시도 때도 없이 먹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침이나 저녁, 주말에는 주말대로 리포터나 연예인이 나와서 음식을 소개한다. 너무 잦은 음식 이야기가 식상한데다가 먹는 것에 집착하도록 부추기는 듯해서 민망할 때가 많다. 이렇게 먹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음식에 대한 불신과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요즘 널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주인공은 단연 중국에서 건너온 먹거리이다. 납꽃게가 식탁에 오르더니 명절이 되면 제수용품 고르는 것도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무분별한 농약 사용이나 믿을 수 없는 첨가물을 넣어 가공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어서 중국산에 대해 거부감이 있다. 중국산 김치는 일본으로 수출하는 김치보다 질이 낮은 상품이 우리나라로 들어온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은 김치 공장 위생 상태와 재료를 꼼꼼히 살피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찌 됐든 원가를 낮춰서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유해한 먹거리 유입을 남의 탓이라고만 할 수 없게 되었다. 국산품이라고 안심할 수도 없다. 가짜가 앞에 붙은 참기름이니 고춧가루는 고전에 속한다. 농약 함유량이 많은 채소와 과일이 심심찮게 뉴스를 장식한다.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즐겨먹는 과자에 해로운 첨가물이 범벅되어 있다고 해서 쓴 입맛을 다셨다. 최근에는 축산물 항생제 과다 함유 문제가 불거지더니 또 양식 물고기에서 말라카이트 그린이라는 발암 물질이 검출 되었다고 야단이다. 그것뿐이랴. 물위로 떠오르지 않은 숱한 문제점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오래전부터 먹거리를 신뢰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것저것 다 따지다가는 백이숙제처럼 산속에 들어가 고사리만 먹든지 굶어야 상책이기에 모르는 척 넘어가기도 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요즘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왕이면 몸에 좋은 것을 먹고 싶어 한다. 국제적으로는 조류 독감, 광우병 때문에 육류 먹는 것도 개운치 않다. 게다가 두부 하나를 사더라도 유전자 변형 식품인지 살펴봐야 한다. 배고픔을 겪은 사람들은 배부른 소리라 할지 몰라도 골라서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눈앞의 이익만 쫓느라 눈이 먼 사람들 때문에 모두들 번지르르한 겉모습과 달리 속으로 병들어가고 있다. 사람답게 먹고 살 권리를 찾고 싶다. 정직한 먹거리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고 싶다. 제발 먹는 것 가지고 장난 좀 치지마라./한경선(글짓기 논술지도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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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0.25 23:02

[문화마주보기] 전주도 서울같이...

단골로 다닌 서울의 몇몇 콘서트홀에서 자주 마주치는 반가운 얼굴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대구에서 내과의(內科醫)로 일하는 K선생, 몇 개월 동안 서울의 공연장에 가질 못해 뵌 지 꽤 됐습니다. 정읍의 L선생도 서울에선 한달이 멀다하고 뵐 수 있었는데, 가까운 전주에 있으면서도 아직 인사조차 못 드렸습니다. 이 분들 외에도 특별한 약속 없이 공연장 로비에서 자주 마주치는 콘서트고어(Concertgoer) 중에는 상당수가 거리를 마다않고 멀리서 온 분들이었습니다.K선생은 병원 문을 닫자마자 대구서 비행기 타고 왔다가 공연을 보고 고속버스 막차를 타고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L선생은 자동차를 운전해서 늘 부인과 함께 왔었지요. 두 분 다 클래식음악을 어찌나 좋아했는지 웬만한 곡은 달달 꿰고 있었죠. 그 많은 음반을 모아서 언제 다 들을 거냐고 물으면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진다고 했어요. 당시 저는 그들의 대단한 열정에 감복하고는 세계의 유명 콘서트가 연일 열리고 있는 서울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곱씹어보곤 했습니다.그러던 저도 이젠 전주생활 8개월째 접어들었습니다. 이곳에 와서 가장 먼저 피부로 느낀 공연문화 양상은 잘 알려진 유행가수들의 공연이 무척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 방송에서 한창 뜨고 있는 스타부터, 흘러간 스타들 과거 TV에서나 본 적 있는 가수들을 매월 한 두 차례는 지역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서울의 아트센터에서도 이런 공연들을 볼 수 있었던가? 생각해보니 거의 없었습니다. 소위 밤(?)무대라는 곳과 가끔 신문광고를 통해 호텔에서 유명 가수들이 출연해 디너쇼를 한다는 것은 보았지만... 대체로 대중음악은 홍대입구나 대학로 근처의 카페나 소극장 같은 데서 매니아(mania) 중심의 장르별로 공연되는 게 다반사였습니다.비단 전주뿐 아니었습니다. 전국 각 지방의 공공 공연장에서는 대중음악 쇼가 생각보다 많이 열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경북 상주에서 일어난 참사를 다시 기억해봅니다. 역시 전국어디서나 치러지고 있는 행사 중 하나였을 겁니다. 그날 수많은 군중들은 K나 L선생처럼 음악에 대한 대단한 열정 때문에 공설운동장에 밀려들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고급예술을 접하기 어려운 지방 여건상, 그것이라도 봐서 공허한 영혼에 꽃을 피워보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요? 그렇다면 그들의 공허한 가슴을 채워줄 꽃은 무엇일까요? TV에서 늘 보고 있는 얼굴의 대중스타들을 지역에 불러들여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대면케 해주는 걸까요?그것은 잠깐의 공허감은 메워질지언정 정신의 심연까지 뒤흔들어 무한한 이상의 세계까지 보여주진 못합니다. 8개월 전, 고속도로를 달려 전주로 내려오는 길은 아직 푸르지 않은 봄이었습니다. 자동차는 새벽안개를 아주 낭만적으로 헤엄치듯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운전을 하며 저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전주도 서울같이, 매일 저녁 클래식음악의 황홀에 빠뜨리자.../배석호(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예술사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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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0.18 23:02

[문화마주보기] 평생학습과 박물관

지난 7월부터 주5일 근무제가 시작되었다. 주5일 근무제는 단지 여가활용의 기회 확대 차원을 넘어 지역사회에도 많은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특히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경우 지역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다음세대에 전하는 전달장치로서의 기능을 뛰어넘어,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휴게공간, 학교교육의 연장선으로서의 학습현장, 고령화시대의 평생학습 기관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문화공간으로서의 새로운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목인 개인소득 1만불의 시대를 맞이하면 대개 자신의 역사나 문화의 뿌리찾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2만불을 넘어서면 지자체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문화를 대변하는 박물관?미술관의 설립과 운영에까지 관심이 확대된다고 한다. 그리고 저 출산에 의한 인구감소와 고령화사회를 함께 맞이하게 된다.이미 70년대부터 시작된 우리사회의 핵가족화, 도시화, 고학력화 그리고 국제화에 따른 정보화의 심화와 더불어 고령화사회의 도래는 문화면에 있어서도 이에 대한 체계적인 대비책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박물관이나 미술관은 단순히 지역사회의 기억장치로서의 보존기능과 다양한 자료의 공개를 운영의 축으로 삼는 일방적인 문화 메신저로서의 기능에 만족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시민의 박물관 미술관 이용 및 참여의 확대로 쌍방간의 대화가 중시되는 인터랙티브 뮤지엄(interactive museum) 운영이 요구되고, 이를 통한 시민생활의 질적향상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교육시설로서의 기능강화가 요구된다.이와 같이 주민 자신 특히 노령층을 중심으로 한 다채로운 학습활동의 확대는 인터넷시대의 급변하는 사회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정신적인 여유를 지닐 수 있게 하며, 퇴직 후의 제2의 인생설계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주게 된다.그리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의 평생학습의 중요성 증진에 따라, 보다 나은 학습활동 지원을 위하여 자원봉사 활동 역시 그 중요성이 증대된다. 노령층 주민들은 이와 같은 평생학습과 자원봉사 활동을 통하여 미지의 이웃들과의 새로운 만남을 이룰 수 있고 나아가 삶에 대한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도 있다.이와 같이 평생학습의 시대를 맞이하여 박물관과 미술관에 부여된 새로운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뮤지엄 에듀케이터(educator : education과 curator의 합성어)의 채용과 양성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제도의 조직적인 운영과 봉사자로 참여하는 성원들의 수준향상이 함께 도모되어야 한다.지자체 운영의 뿌리가 아직 견실하게 내리지 못한 우리의 지역사회에서는, 70-80년대의 개발 지상주의에 따라 상실된 우리의 과거문화를 복원하기에도 벅찬 실정이다. 그러기에 수집과 보존을 그 기본개념으로 하는 제1세대 박물관의 확산도 아직은 절실한 상황이지만, 이들 자료를 체계적으로 전시하여 공개를 그 주된 기능으로 하는 제2세대 박물관의 기능과 더불어, 참여와 평생학습을 지향하는 제3세대 박물관의 기능이 함께 요구되고 있는 시대상황이다. /민병훈(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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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0.11 23:02

[문화마주보기] 미원탑의 추억

무진장 촌놈인 내가 청운의 꿈을 안고 상전(上全)해서 맨 먼저 배운 단어는 아마도 빈대극장(지금의 명화극장 자리에 있던 제일극장)하고 미원탑이지 싶다. 언필칭 제일(第一)극장이 졸지에 빈대로 전락해버린 까닭을 나는 임예진 나오는 진짜 진짜 잊지마를 보러 갔다가 단번에 알아챘다. 말로만 듣던 미원탑은 지금의 홍지서림 입구 네거리 한가운데에 드넓은 팔달로를 굽어보며 거대한 동상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바로 그 70년대 후반, 나는 도청 소재지 입성을 자축하듯 기민하게도 미원탑을 입에 달았다. 미원탑은 다분히 상업적 전략에 따라 조형된 것일 텐데도, 그 어감이 주는 친근함과 네온등의 심미적 이미지, 혹은 당시까지만 해도 식탁 한 켠을 점유하고 입맛을 돋우던 조미료와 관련되어 있다는 복합적 이유로 많이들 친근해했던 건 아닌지.사실 나는 그 미원탑이 화려한 불빛을 내뿜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쨌거나 그 미원탑 아래에는 담배꽁초를 구두 뒤축으로 비벼끄며 초조한 표정으로 주위를 연신 두리번거리던 이들이 참으로 많았던 걸로 기억된다. 그 미원탑이 소리 소문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동안 관통로 객사 앞이 익숙해질 때까지 미원탑 사거리를 버리지 못했다. 1980년 가을의 전국체전을 앞두고 조성된 동서관통로를 우리는 그냥 관통로라고 불렀다. 80년대에 20대 청춘을 이 도시에서 보낸 이들은 관통로 객사 앞이 하나의 보통명사였음을 안다. 아, 그런데 관통이라니. 도대체 어느 누가 이 도시의 중심가를 섬뜩하게도 관통로라고 이름하였던가. 더구나 객사(客舍)는 가끔 객사(客死)를 연상시키기도 했으니 조합(組合)치고는 참 얄궂기도 했다.물론 정겨운 이름 하나는 있었다. 바로 시집가는 날이다. 그 시집가는 날 앞을 서성거리면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지 않고 그 시절을 보낸 청춘들이 있었을까. 웨딩드레스 맞춤 혹은 대여점이었던 그 시집가는 날 앞이야말로 그 시절 우리의 또 다른 보통 명사였고, 명소(名所)였다. 전통문화의 중심임을 자부하는 우리 도시 도처의 이름짓기 패러다임도 이제는 바꿀 때가 되었지 싶어서 하는 말이다. 돌아보자. 관통로는 언제부턴가 충경로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충경로는 그 어감이 주는 작위성은 차치하고라도 20년 넘게 머리와 가슴을 관통당해 버린 이들에게는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둘러보자. 동부우회도로, 서부우회도로, 진북터널, 어은터널은 얼마나 밋밋하고 멋대가리 없는 이름인가. 동부시장남부시장중앙시장서부시장도 그 위치와 방향성을 그대로 따왔을 터이니, 나온 순서에 따라 김일순김이순김삼순으로 명명하는 것과 매한가지다. 하긴 뉴 밀레니엄 시대 전주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택지 개발지구 이름도 서부신시가지다. 그에 비하면 전통문화의 거리 태조로는 무겁기는 해도 멋스러운 구석이 있다. 청사초롱길로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훗날, 우리 지역 어느 곳에 새로 만들 터널이 있다면 국악기 이름 하나 빌려와서 아쟁터널 쯤으로 명명하는 건 어떨까. 서부우회도로와 동부우회도로는 서편제로(西便制露)와 동편제로(東便制露)로 바꿔 부르는 건 또 어떨까. 어감도 그럴싸하거니와 그 길을 지나는 사람은 애 어른 할 것 없이 판소리의 갈래 정도는 모두 알게 될 것이다. 경기도 수원에는 축구선수 이름을 딴 박지성로도 있다는데, 그 옛날 미원탑이 있던 곳에서 다가파출소 방향으로 금은시계점이 아직도 즐비한 그 거리를 이창호길 쯤으로 명명할 수 있는 여유나 멋도 이제는 부려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누군가 나서서 이런 일을 추진해야 한다면, 그 누군가는 아마도 <전통문화중심도시추진단>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송준호(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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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0.04 23:02

[문화마주보기] 2005년 추석이야기

추석이 다가오자 무언가에 쫓기는 듯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 느낌이 우리나라 며느리들에게 있는 명절 증후군에 따른 우울증과는 달랐다. 짧은 연휴 때문인가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 보니 마음 속 깊은 곳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안개처럼 깔려 있었다. 그것은 얇은 주머니 사정과 맞닿아 기분을 무겁게 가라앉혔다. 경제가 언제나 나아져서 서민들의 주름이 펴질지 알 수가 없다. 추석 장보기를 하는 사람이나 장사하는 사람들 모두 얼굴이 밝지 않았다. 고향 마을 골목에 세워놓은 차들이 헤싱헤싱했다. 귀향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매스컴에서 분석한 것처럼 삼 일밖에 안 되는 연휴 때문에 못 왔을 것이다. 미리 성묘를 하고 여행을 가거나 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 말대로 우리나라 명절 문화가 바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는 게 힘겨워서 못 온 사람이 많았을 것이라는 마음이 자꾸 앞섰다. 아직은 고향에서 가족들이 모여 함께 명절을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생활이 풍요롭다면 분명 그 흥을 고향에서 풀고 싶을 것이다. 금의환향은 못해도 내년에는 괜찮아질 것이라고, 배짱 좋은 큰소리는 칠 수 있어야 고향 갈 맛이 나지 않는가. 골목 가득 뛰놀던 아이들도 이젠 없고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추석 아침은 적막했다. 우리 어렸을 때의 명절을 다시 떠올렸다. 손꼽아 기다리던 명절이 오면 새 옷, 새 신발을 머리맡에 두고 잠을 설쳤다. 도시에 나갔던 언니, 오빠들이 선물 상자를 들고 환한 얼굴로 마을을 들어서면 온 동네가 술렁거렸다. 그런 모습을 보는 어린 아이들에게 도시로 간 언니, 오빠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명절은 오랫동안 못 만난 가족과 친척, 친구를 만나는 만남의 장이었다. 고향 바람은 지친 도시 생활에서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카타르시스 작용을 했다. 먹거리의 풍성함으로 보나 계절로 보나 설보다는 추석이 더욱 축제 분위기를 자아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붙들어놓고 싶은 세상 풍속은 변하고 문화도 바뀌어 간다. 해마다 추석이면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해서 긴 팔 옷을 입었었는데 올해는 후텁지근한 날씨가 계속 되고 잦은 비가 내렸다. 추석이 일찍 들은 탓도 있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한 우리나라의 기후 변화를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이래저래 뒤숭숭한 추석이었는데 낯선 날씨까지 마음을 심난하게 했다. 누가 올 추석 연휴 짧은 것이 큰 불만이라고 한 것일까? 방송에서 재빨리 내년 추석에는 징검다리 휴일까지 9일이나 쉴 수 있다는 정보를 희망인 양 알려주었다. 그 말조차 반갑지 않았다. 며칠 쉬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살림살이가 나아져서 내년에는 훈훈한 마음으로 추석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듣고 싶은 것이다./한경선(글짓기 논술지도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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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9.27 23:02

[문화마주보기] 판소리 사세요!

몇 년 전, 비발디의 사계 연주로 유명한 이 무지치(I Musici)의 악장이었던 마리아나 시르브 여사가 한국에서 연주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한 말 기억납니다.그동안 한국을 수차례 다녀갔으면서도 한국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주최사 도움으로 정동극장에 가보았습니다. 마침 한국음악이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의 악기 소리들을 듣고 아, 이런 소리도 있었구나 하고 너무 놀랐습니다. 물론 중국이나 인도 음악을 접했던 것은 꽤 오래 전이었지만, 그때 느낌하고는 다른 감흥을 받았어요. 앞으로 제 연주생활에도 영향을 끼칠 거예요.그 이후 이 악단에서 한국가곡과 민요를 소재로 한 모음곡 한국의 사계라는 타이틀을 붙인 음반을 낸 것을 보았습니다. 외국인들에게 국악은 경이로운 예술로 비쳐집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초월의 소리이며 국악기에서 나오는 범상함에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전주세계소리축제를 앞두고 이 생각이 난 것은 왜 일까요? 저는 처음 이 축제의 명칭을 대했을 때 누구 아이디어인지 참 잘 생각해냈다고 무릎을 탁 쳤습니다. 이 행사는 분명 월드뮤직 페스티벌을 말할 텐데 역시 소리의 고장인 전주에서 먼저 생각해냈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때는 바야흐로 21세기로 접어드는 시기였고 마침 제3세계 음악들이 소개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월드뮤직이라는 생소한 용어까지 생겨난 터였죠.서양의 클래식 연주가들은 새로운 소리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20세기의 대가들이 이미 정복해놓은 고전음악의 위대한 영역(기교적, 철학적으로 완성된)을 그대로 답습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정상급 연주가들 중 몇몇은 기존의 클래식 작품에 남미의 탱고 리듬을 섞기도 하고 중앙아시아의 민요나 아프리카 북소리를 집어넣어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정말 세상은 넓고 음악은 많았습니다. 그런데 전주세계소리축제라니요. 이거 대단한 아이디어 아닙니까?이 모든 음악들이 모이면 월드뮤직 시장(Fair)이 되는 겁니다. 시장에 오는 사람들은 손님들이 아니라 고객들입니다. 손님이 오면 대접을 해야 하지만, 고객이 오면 팔 수 있습니다. 또 저희들끼리 직접 팔거나(계약) 홍보할 수 있도록 부스를 임대해줘도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각 나라의 음악회사들이 부스를 신청할 것입니다. 여기에 지구촌에서 음악가들과 음악도, 음악교육자들, 공연 또는 음반기획자들, 악보출판자들, 악기상과 악기제작자들, 극장 운영자나 무대예술연출가들, 종족음악학자와 문화인류학자 또는 고고학자이거나 교수인 사람들, 음악비평가 또는 음악저널리스트들, 여기에 영상제작자들이나 인쇄업자 또는 캐릭터 상품 개발자들까지 몰려들 것입니다.그렇게 되면 판소리 어떨까요? 해외초청 계약이 많이 이뤄질 겁니다. 전주시민들 어떨까요? 외국사람들(음악)은 어떤지 구경하러 오지말래도 올 겁니다. 고객으로 온 외국인들, 판소리만 듣고 갈까요? 아마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이 지역 특산품도 좀 사가지고 갈 겁니다.전주세계소리축제는 축복입니다./배석호(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예술사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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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9.20 23:02

[문화마주보기] 문화산업과 인프라 구축

멀티미디어 시대를 맞은 지역사회에 있어 문화의 역할은 무엇인가? 현대사회가 당면한 환경파괴, 인구감소, 고령화사회 등의 제 문제 가운데, 문화예술이 주민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지역사회의 발전에 어떻게 공헌할 수 있는 지, 근자에는 이런 문제를 거시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문화산업이나 문화경제학이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전통문화도시를 추구하는 전주의 경우 아직은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문화시설의 개발과 운영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멀티미디어로 상징되는 문화정보기술의 축적과 이를 주변의 지역문화권과 공유하며 네트워크를 추진하는 등 미래지향적인 대처 또한 필요할 것으로 본다.전라북도는 전국에서 인구감소율이 가장 현저한 곳으로 활력저하에 따른 지역경제의 쇠퇴가 우려되고 있다. 그러나 현 추세로 보아 공공기관 등의 이전 등에 의한 인위적인 보전은 일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며, 정주인구의 감소를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가꾸고 내실을 다져 숙성된 문화자원으로 지역사회의 활성화를 꾀할 수밖에 없다.흔히 인프라 구축이라고 하면 도로나 철도망, 항만시설의 충실화 등을 연상하기 쉬우나, 문화와 관광개발에 도시의 장래를 맡길 수밖에 없는 전주의 경우, 생활에 기반을 둔 문화산업의 활성화와 지역의 대학을 포함한 제 기관의 네트워크가 무엇보다 절실한 실정이다. 전주의 한옥마을을 한 예로 들어보자. 한옥마을이 하나의 문화산업 공간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각종 체험시설과 이를 운영하는 단체의 충실화, 그리고 이를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매니지먼트 노하우의 구축, 제도적으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각종 법령과 제도의 보완 등 이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결합되었을 때, 비로소 내외의 관광객 즉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고 만족감을 선사할 수 있는 문화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이 지역의 대학은 전국 어디에나 있을 법한 문화관련 학과의 설립과 운영에 그칠 것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특징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그 연구결과가 문화산업 현장에 직접 피드백 될 수 있는 커리큘럼의 설치 등이 필요하다. 예컨대 거시적인 정책개발의 측면에서 문화정책학과의 설립과 관련 커리큘럼의 개설 그리고 전주의 다양한 문화특징을 문화산업으로 연계시킬 수 있는 미시적인 측면에서의 다양한 학과개설 등이 본격화하여야 할 것이다.그리고 멀티미디어 시대의 지역문화 창조 거점으로서의 전주의 미래를 위하여, 지역의 예술문화 특성과 과학기술을 결합시킨 디지털 뮤지엄이나 영상미디어의 개발, 국내외의 관련문화정보를 네트워크화 한 디지털 아카이브의 설치 등을 선도해 나가야 한다.전주에 산재되어 있는 여러 문화기관이나 대학, 문화산업체 들이 독립된 문화단위로서 기능할 것이 아니라, 상호 유기적인 연계 아래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복합장치로서 그 가능성을 제고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여기에는 지역주민 모두의 주체적이며 적극적인 참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국가의 예산지원 및 정책적인 뒷받침이 절실하다. /민병훈(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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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9.13 23:02

[문화마주보기] 곽병창 형에게

지난 봄에 성산포에 갔었어, 형. 초행이었지. 성산포는 있는 그대로, 조금 과장하면 하나의 장엄한 문화라는 생각이 들더라구, 신이 빚어낸. 관광객 하나가 나한테 담뱃불을 빌려가면서 묻더만. 어디서 왔냐고. 자기는 서울에서 왔다면서. 전주라고 그랬더니 담배 한 모금 기분좋게 뿜어대고는 또 한마디 덧붙이는 거야. 아, 전주비빔밥. 거, 콩나물 해장국 맛도 그만입디다. 그 사람이 좀 만만해 보였으면 한 마디 하고 싶었어. 내 기분은 하나도 그만 아닌디요?사실 말이지, 시내 어느 술자리든 젓가락 숟가락 장단에 판소리 단가 한 대목씩 불쑥불쑥, 구성지게스리 불러제껴서 좌중의 흥을 돋울 줄 아는 사람들, 어느 도시 가서 만날 수 있겠어? 해장국 맛 그만이더라던 그 사람, 아마 콩나물국밥집 어딜 가든 멋들어지게 쓰고 그린 시서화(詩書畵) 몇 점씩은 벽에 다 걸려 있다는 걸, 고속도로 톨게이트 천장에 기왓장 얹고 그 자체가 예술작품인 현판 새겨서 도시를 알리는 데가 전주 말고는 없다는 걸 몰랐던 모양이야. 그게 안 보였겠지. 그런데 그 사람만 탓할 일은 아니더라고. 가만 생각해 보니까 책임은 우리 모두한테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일상처럼 자동화돼서 그런지, 아니면 살기 바빠서 그런지 대부분의 우리 지역 사람들, 그런 데 별로 관심 없는 게 사실이잖아. 오죽하면 전통문화중심도시를 추진한다면서 예쁘장하게 생긴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을 것 같은 댄스 가수들까지 초청해다가 홍보대사로 위촉했겠어. 형. 얼마 전에 우리 한벽루 근처 수퍼마켓에서 가맥 마셨던 거 생각나? 그날 형은 서울 출장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어, 마누라한테 알릴 시간도 없이. 언론사 문화부 기자들 만나고 오는 길이라고 그랬어. 형의 차 뒷자리에는 소리축제 홍보물이 가득 실려 있대. 아마 모르는 사람이 들여다봤으면, 영락없이 인쇄소 직원 차인 줄 알았을 걸? 하긴 아무려면 어떻겠어. 한동안 형은 연극에다 밥 말아 먹고 사는 사람 같았어, 내가 보기에는. 자나깨나 그저 연극이었지. 다들 알고 있는 것처럼 그에 걸맞는 성과도 거두었고. 그러다가 어느날 보니까 소리판 만드는 데 가 있대? 하긴 둘 다 무대예술이니 기획하고 연출하는 건 한 줄기라 딱이겠구나 싶더라고. 더 딱인 이유를 말해줄까? 형은 이름까지도 병창(竝唱)이잖아. 가야금, 거문고 무릎에 눕혀놓고 뜯기만 하면 산조, 노래도 함께 부르면 그게 바로 형 이름 병창 아니우. 이번 전주세계소리축제는 9월 27일에 개막한다고 들었어. 전주시 전통문화중심도시 추진사업하고도 맞물려서 어느 때보다 그 중요성이 더할 것으로 생각돼. 개막일이 다가올수록 형은 밤잠을 설치고 있는 줄 알지만 나는 왠지, 우리 동네 말로 겁도 안 나게 성공적인 대회가 될 것으로 확신해. 왜냐하면 형이 하는 일이고, 그 동안 머리칼 헤성헤성해지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해 왔잖아. 지난 여름에 우리 학과에서 고등학생들하고 문학캠프라는 걸 했었어. 캠프장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전주역 앞을 지나는데 경남 진주에서 온 고3 여학생 하나가 역사(驛舍) 기와지붕을 가리키면서 그러대. 전주는 확실히 뭐가 달라도 다르다 아니가. 문학소녀의 눈에는 그게 보였나 봐. 바로 그거잖아. 그게 우리 색깔이잖아. 그걸 형이 만들어가고 있는 거야, 지금. 곧 죽어도 맛과 멋의 고장이라고, 우리 스스로들 말해 왔어. 자부심도 있었고. 그런데 이제라도 순서를 바꿔야 할 것 같아. 맛과 멋이 아니라 멋과 맛으로 말이지. 그렇게 하면 성산포에서 만났던 그 사람 눈에도 우리 동네 멋이 보일지도 모르잖아. 우리 자신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이번 소리축제 끝나면 그간 제법 헤성헤성해진 형 머리칼 안주삼아서 막걸리 한 잔 하기로 해. 그까이꺼, 내가 쏠게./송준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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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9.06 23:02

[문화마주보기] 누가 뭐래도 쌀은 생명이다

막바지 여름비가 오락가락 했다. 빗방울이 포도 알 만한 크기로 내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갰다. 짐이 되는 우산을 놓고 나섰더니 가로수 사이로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다시 떨어져 마음을 조급하게 했다. 할머니 한 분이 보도블록 위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를 하기에 가까이 가보니 정신없이 쌀을 쓸어 모으고 있었다. 쌀자루에 구멍이 뚫렸던지 제법 멀리까지 하얀 줄을 긋고 떨어져 있었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든 손이 바삐 움직였지만 블록에 틈새가 있어서 쌀 모으는 일이 쉽지 않아 보였고 비는 더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젊은 사람이었으면 흘린 쌀을 보고 그리 안타까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연배의 어른들에게 쌀은 곧 목숨이었다. 배고픔을 몸소 겪으며 살았고 쌀 몇 톨, 밥 알 몇 개만 함부로 해도 야단을 맞은 세대이다. 목숨 같던 쌀이 홀대받기 시작했다. 먹을 것이 지천이어서 사람들은 쌀 귀한 줄을 모른다. 전에 들었던 우스개 소리 하나가 있다. 아이에게 옛날엔 쌀이 없어서 굶을 때가 많았다는 말을 했더니 빵이나 라면을 먹지 왜 굶었느냐고 물었다는 이야기다. 쌀 소비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서양 음식에 길들여지고 인스턴트식품과 친하다. 외국산 밀가루로 만든 먹거리가 주변에 흔하고 이 땅에서 나오는 쌀이 아니더라도 굶을 걱정이 없다. 더 싼 값의 외국 쌀이 손 내밀면 닿을 곳에 있다. 중국산 찐 쌀로 밥을 하는 식당도 있다고 한다. 쌀 한 톨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농부의 손이 몇 번 갔고, 여러 사람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밥상머리에서 하던 교육도 사라졌다. 아직은 벼가 자라고 익어가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이 다행이지만 아름다운 들판을 보는 마음은 개운치 않다. 추수하기 전에 농부가 자식 같은 벼를 갈아엎었다는 소식을 종종 전해 듣는다. 넓은 땅에 사는 외국 사람들은 우리나라 농부가 자신이 키운 농산물을 자식 같다고 표현하는 걸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좁은 농토지만 날마다 새벽같이 일어나 살뜰하게 보살피고 빗소리만 크게 들려도 삽 들고 쫓아나가는 정성으로 쌀 한 톨을 키운다. 그리고 추수가 끝나면 도시에 사는 자식이나 지인에게 쌀을 보내느라 분주하다. 사랑과 정을 보내는 것이다. 우리나라 쌀은 배만 채우는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다.아직도 결식아동이 있고 세상 한 쪽에서는 굶어죽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배고픔에 대해 고민하지 않게 된 시간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쨌든 먹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쌀은 귀하다. 그러나 생명 창고인 농촌은 황폐화 되고 노령화 되어서 힘없이 주저앉고 있다. 식량 자급을 하지 못하는 우리는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 누가 뭐래도 쌀은 생명이다. 농촌을 살려야 하고 쌀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곧 들녘은 황금빛으로 물들 것이다. 예전 같으면 마을마다 윤기가 돌 계절이다. 그러나 이제는 농촌 어디에서고 온기를 느낄 수 없다. 쌀농사가 흉작이라고 해도 눈 하나 깜짝 않고, 풍년을 더 이상 기뻐하지 않는 세상이 암울하다./한경선(글짓기 논술지도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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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8.30 23:02

[문화마주보기] 음악가에게 생물학은 무슨 필요가 있을까?

고봉인은 첼리스트로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12살 때 차이코프스키 국제 청소년 음악콩쿠르에서 1위를 하며 국제무대의 총아(寵兒)가 되었습니다. 이제 스무 살의 아름다운 청년이 된 고봉인은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유럽과 미국 한국 일본 등지에서 독주회를 가진 주목받는 첼리스트입니다.이번 여름에도 서울과 통영에서 연주를 초청받아 한국에 다녀갔습니다. 출국을 며칠 앞두고 모처럼 고향인 전주에 들렀습니다. 고봉인은 불고기를 먹자고 제안했습니다. 불고기라? 그러나 선뜻 불고깃집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삼겹살 등심 갈비 등을 숯불에 굽는 바비큐가 아닌 놋쇠 불판에 양념된 고기를 얹어 지글지글 끓이는 불고기 있잖아요. 그 테두리 오목한 곳에 육수가 괴면 밥에 스윽 비벼 먹기도 했죠. 결국 불고깃집은 찾아내지 못했지만 어느 식당에 들러 불고기 메뉴를 발견했습니다. 다행히 그 식당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불고기요리를 해줘 맛있게 먹었답니다. 그런데 먹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그 많던 불고깃집들은 다 어디 갔을까? 한국에 다녀간 외국인들이 꼭 기억하고 있던 한국음식 중의 하나가 불고기요리였는데... 이제 찌거나 삶거나 볶는 고기보다 소위 직화(直火) 바비큐에 밀려 불고기요리도 사라져가는 건 아닐까?고등학교를 독일에서 다닌 스무 살 먹은 이 청년은, 아버지가 나온 신흥중학교를 자신도 나왔다는 걸 연신 입에 달고 있었습니다. 전주생활 5개월밖에 안된 제가 신흥중학교를 알리 없죠. 그리고 요즘 중학교 어디 나온 게 무어 그리 대수겠습니까? 내심 이렇게 짐작한 저는 이내 부끄러워졌습니다. 고봉인에게 신흥은 남다른 의미가 있었던 거죠. 그에게 중요한 건 중학교 신흥이 아니라 전주에 있는 신흥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중학교 시절만 전주에서 보낸 그에게 신흥은 전주를 환기시켜주는 키워드였던 셈입니다.그런 그가 지난해, 하버드대학에 입학했다는 소식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열려있는 음악가의 길을 마다하고 생물학도로 입문하다니요. 그는 부친인 고규영 박사(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교수)가 전공한 혈관내피 세포 연구 분야를 이어받고 싶어 생물학을 택했다고 합니다. 음악가에게는 음악원이나 음악대학이 필요한 건 아닐까요? 더욱이 한국에서는 특정 예고나 특정 음대 출신 아니면 음악가로 행세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하지만 음악을 한다는 것은 단지 기술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테크닉은 이미 20세기 음악의 대가들에 의해 정복됐다고 합니다. 오히려 21세기 음악가들 중에서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줄만한 음악가를 찾기가 더 힘들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마치 바비큐요리에 밀려 전통적인 불고기요리를 할 수 있는 집을 찾기가 힘든 요즘 상황과 마찬가지죠.저는 세계인들의 입맛이 인정한 한국식 불고기요리가 필요하듯, 기교적으로 완성된 21세기 첼리스트에게 생물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고봉인이 연구하는 혈관은 음악연주사의 한 페이지에 남을지도 모릅니다. 예컨대 음악가의 혈관구조가 연주에 미치는 영향이라든지... 미켈란젤로의 혈관에는 페인트가 흐른다 는 당시 선현(先賢)의 비유가 생각납니다./배석호(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예술사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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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8.23 23:02

[문화마주보기] 고도 전주의 도시미관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불교는 인도에서 태어나 중앙아시아의 사막을 관통하는 실크로드를 따라 동아시아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실크로드의 각 지역에 조영된 불교사원 내부의 불상과 불화는 불교의 동점과정에 나타나는 지역적 문화변용에 의해 모두가 그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백리부동풍(百里不同風)이라는 말이 있듯이, 국내의 불상을 살펴보더라도 고구려의 불상과 백제 불상의 얼굴이 서로 다른 것은 바로 지역의 풍토차가 빚어낸 산물인 것이다.요즈음 전주시내는 물론이고 전국 어디를 가던 도심이나 교외를 막론하고 주위환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그저 높고 뾰족하게만 지어놓은 종교시설물 들을 보면 답답하기조차 하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이미 한 세기도 훨씬 지났건만, 아직도 한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교회건물을 도심에서 조우하기 어렵다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난 7월, 국내의 한 조각가가 제작한 지극히 한국적인 마리아 상이 바티칸에 전시될 예정이라고 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복을 입은 평범한 여인이 발가벗은 아기 예수를 업고 머리에는 물동이를 지고 있는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의 모습으로 형상화 된 마리아상이라고 한다. 이제는 한국적인 성상이 모셔진 극히 한국적인 교회당 그래서 그 자체가 전주의 지역적 정체성을 대변할 수 있는 건축물이 도심 여기저기에 모습을 드러낼 때도 되었다.향후에는 전주 도심에도 주위환경과 잘 조화를 이룬 아담한 교회당 또는 불교사찰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전주시 차원에서 적극적인 계도와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고도 전주의 문화환경에 어울리는 종교시설 들이 세워질 수 있도록 설계단계에서부터 지원과 자문을 해줄 수 있는 창구도 마련해봄직 하다. 전주시가 전통문화도시로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의 파리나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그처럼, 건물의 형태나 건축자재 그리고 간판의 크기나 색상 등에 이르기까지 보다 적극적으로 감독하여 도시미관의 전체 틀을 잡아나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주민들 역시 왕실문화와 양반문화가 살아 숨쉬는 조선왕조의 본향 전주 시민으로서의 문화적 자긍심을 가지고 이러한 시 주도의 사업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전주다운 전주를 꾸며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문화재로 뒤덮인 경주시는 도시정비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민들 자신의 편의도 함께 추구한 결과, 유적사이로 큰 길을 내고 유적 가까이에 주차장을 설치 운영하는 우를 범하였다. 그 결과 외지의 관광객들이 고도를 음미하며 산책하고 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거의 모든 관광객이 자동차를 타고 내리며 유적에 들러 기념사진만을 찍고 가는 뜨내기형 관광의 형태를 취하게 된 것이다. 전주는 도시미관의 정비과정에서 경주가 겪었던 이러한 부정적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이제는 도시미관과 잘 어울리는 건축물 하나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를 지닌 뛰어난 관광자원이라는 점을 모두가 생각해야 한다./민병훈(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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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8.16 23:02

[문화마주보기] 그날 그랬더라면

2002년 월드컵은 참 절묘했다. 4강에 들었대서가 아니다. 스토리가 완벽한 시나리오 같아서다. 돌이켜 보자. 민주화의 발상지 부산에서 월드컵 첫 승을 올렸다. 그게시작이었다. 꿈의 16강은 인천에서 결정했다. 영호남을 아우르는 대전에서 8강까지 손에 넣었다. 그리고 민주화의 성지 광주로 단숨에 달려갔다. 5월의 함성을 되살려 기적 같은 4강마저 해,냈,다. 영호남 편 가르기 따위는, 없었다. 붉은 함성으로 온 나라가 하나였다. 그게 6월이었다. 순국선혈의 달 6월의 일이었다. 뼈마디 쑤시는 그 6월에 우리는 역사상 최고로 가슴이 벅찼다. 모두 하나가 되라는 선혈들의 준엄한 당부라고 생각했다. 지난 8월 5일 전주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큰 축제가 열렸다. 그런데 정작 경기 장면은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반 넘게 텅 빈 스탠드를 바라보다가,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와서, 다른 상상을 줄곧 했다.12년만에 남북의 젊은이들이 축구라는 이름으로 전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만났다. 그건 축구 경기도, 대결도 아니었다. 축구 화합이고, 축제였다. 입장료는 3,000원이었다. 국민 점심 짜장면 한 그릇 값이다. 입장료 손실분은 축구협회장이 아버지와 형의 유지를 받들어 사재를 덜어내 보전한다고 했다. 입장권은 30분만에 완전히 동이 났다. 간신히 한 장 구했다. 경기 시작 두 시간 전에 경기장으로 갔다. 벌써 장사진이었다. 경기장 입구에서는 흰 티셔츠 하나씩을 나누어주었다. 물론 공짜였다. 한반도가 푸르게 그려진 흰 티셔츠를 즉석에서 갈아입고 경기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아, 나는 보았다. 온통 흰색 물결인 사만 삼천 석의 스탠드를. 백두산 천지에 처음 올랐을 때처럼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렇지. 우리는 한 민족이었지, 백의민족이었지. 북쪽 스탠드는 남쪽 응원, 남쪽 스탠드는 북쪽 선수들 편이었다. 붉은색과 흰색, 남과 북, 자랑스러운 한 겨레 젊은이들이 녹색 그라운드를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북쪽 스탠드에서 아리랑이 울려퍼졌다. 세상에, 이토록 우렁찬 아리랑을 들어 본 적이 있었던가. 아리랑이 끝나기 무섭게 남쪽 스탠드는 옹헤야로 신명이 났다. 하여튼 전주 사람들, 못 말리겄데이. 누군가 옆에서 너털,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문화 도시, 전통 도시, 맛과 멋의 도시라 카더니, 여그 사람들, 당최 못 말리겄다, 아이가.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가만 보니 축구경기에는 관심들이 없었다. 한 편에서 골을 성공시킨 순간에도 경기 중계를 하는 아나운서는 엉뚱한 소리를 내며 감격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 모두는 남북통일의 역사적 현장을 미리 체험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나운서의 직무유기조차 가슴 벅차게 했다. 어느새 경기가 끝났다. 2:2였다. 환상의 한민족 스코어였다. 그라운드의 선수들은 땀에 전 유니폼을 바꿔 입고 운동장을 한 바퀴 달렸다. 스탠드의 박수소리가 천둥소리였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선수들은 중앙 원에 둘러서서 어깨동무를 했다. 스탠드의 관중들도 모두 일어나 어깨동무를 했다. 온 겨레가 어깨동무를 했다. 천지와 백록담의 수면이 서서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이여 오라.이건 올림픽 동시입장에 비할 바가 아니야. 벽안의 외신기자도 감격하고 있었다. 그의 손길이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기적을 보았다고 그는 즉석에서 이메일로 전송하고 있었다. 이런 민족을, 이런 겨레를, 누가 어떻게 감히, 까지 쓰다 잠시 멈춘 그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멍한 눈으로 TV를 보면서, 나는 줄곧 그런 상상을 했다. 그랬더라면, 그날 그랬더라면./송준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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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8.09 23:02

[문화마주보기] 그림을 읽다보면

비 갠 뒤의 해맑은 풍경을 보고 누구나 한 번 쯤 감탄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깨끗하고 선명한 세상이 마음으로 쏟아져 들어오면 담담하고 운치 있게 그린 동양화 한 폭이 떠오른다. 동양화 중에서도 수묵화는 먹물의 농담이나 번지고 마르는 효과만을 이용해서 깊고 그윽하게 표현하기에 그와 잘 어울린다. 그림을 보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온 우리 세대와 달리 요즘 아이들은 그림 읽는 법을 배운다. 그림을 통해서 역사를 읽고, 풍습을 읽는다.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 마음을 읽고, 각기 다른 차림새를 비교하여 신분을 알아낸다. 그런 다음 상상의 날개를 달고 그림 속으로 빠져들어 주인공이 되어보기도 하고 한 편의 이야기를 짓기도 한다. 서양 그림도 읽지만 아무래도 우리 선조들의 옛 생활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 더 흥미롭고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가끔 아이들과 옛날 사람들은 미술 학원도 안 다녔을 텐데 그림을 참 잘 그렸다고 천연덕스레 말을 한다. 우리나라 옛 그림을 읽다보면 해학과 여유가 있어서 좋다. 허술하고 느슨한 옷차림과 표정이나 몸짓이 마음을 눅어지게 한다. 그러나 결코 누추해 보이지 않는다. 기러기가 날아가는 가을 날 물가에 배를 대 놓고 잡은 고기가 몇 마리나 되는지 한가로이 세고 있는 사람을 그린 그림이 있다. 배라고는 하지만 사람 몸집보다 더 작아 보인다. 그의 표정에서 쫓기는 듯한 조급함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시간과 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날마다 쳇바퀴를 돌고 있다. 눈 속에 피어 있는 매화를 찾아가거나 달빛 아래에서 거문고를 타는 선비의 풍류는 가히 전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로 보인다. 요즘 같은 삼복 더위엔 이경윤의 고사탁족도나 수하취면도를 보며 그림 속으로 들어가 봄 직하다. 저고리를 풀어헤친 채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피서를 하는 모습과 술에 취해 나무 아래서 낮잠을 자는 선비 그림을 보면 여유와 나태함도 부럽다. 그야말로 현대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요새는 피서조차 번잡하고 북새를 떨어서 몸과 마음이 쉬지 못 한다.동양화의 가장 큰 특징은 여백의 미다. 옛 그림이 좋아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알록달록 색칠하고 빼곡하게 채워놓은 마음과 생활 속에도 여백을 두고 살았으면 좋겠다. 얼마 전에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중국 대사가 폭탄주 열 잔 정도는 사양하지 않고 마시며, 어느 때는 한국 사람보다 더 빨리빨리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우리나라에 대한 친근감을 표시했다. 잠시 기분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 혼란스러웠다. 우리 정서를 빨리빨리라고 압축하여 표현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조금은 느리게 한 박자 늦춰 살자고 말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 하다. 쉴 새 없이 뛰지 않으면 삶의 낙오자가 될 것 같은 강박 관념이 아이들 교육에도 그대로 적용 된다. 어른들 마음에 여백이 없으니 아이들의 시간과 공간에도 일찌감치 여백은 사라졌다. 아이들과 옛 그림을 읽으며 여백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마음을 쓴다. 그 아름다운 빈 자리가 남겨진 채 자라가기를 바란다. /한경선(글짓기 논술지도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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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8.02 23:02

[문화마주보기] 금호문화재단 지금, 여기에서...

열렬한 음악애호가였던 박성용 이사장은 열렬한 음악후원자였습니다. 그는 금호문화재단을 만들어 악단을 운영하고 콘서트홀을 지어 음악보급에 힘썼습니다. 한국의 음악신동들에게 명품 고악기를 빌려줘 국제무대에서 악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게 했고, 한국 출신의 세계를 빛낸 몇몇 음악가들에게는 항공기 탑승권을 무료로 주기도 했습니다.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지낸 그는 음악감상 스타일에서도 다분히 귀족적이었습니다. 간혹 자신의 집에서 지인 몇 명만 초청한 하우스 콘서트를 개최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악단이나 연주자들이 한국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줬습니다.장영주와 함께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을 제2회 통영국제음악제(2003년) 무대에 세운 이도 박성용 회장이었습니다. 하지만 통영처럼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성격의 음악제에 빈 필은 썩 어울리는 악단은 아니었습니다. 이 악단의 규모나 음악적 색깔을 보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빈 필이 8백여 석 규모의 통영시민문화회관 무대에 섰다는 사실은 국제음악계 토픽이었습니다. 통영은 음악제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세계 일류 음악가들이 선망하는 무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국제적인 음악도시 통영의 토대을 마련해줬다는 의미에서 빈 필 초청의 가치를 인정해야겠습니다.반면에 그의 일류음악가 지원 편력은 상대적으로 그 대열에 끼지 못한 다수의 음악가들을 서운하게 만들어놓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에는 한 바이올리니스트의 독주회를 후원해주고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평했다가 감정적인 소송에 휘말리기까지 했습니다.그가 음악에 밝은 귀를 가졌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연주회장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 그를 몇 차례 본 적 있습니다. 그의 모습은 언제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훌륭한 연주에 대하여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며 경의를 표하는 광경과 어떤 때 시시한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객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입니다. 참 솔직한 감상 스타일 아닌가요? 두 달 전, 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와 친분있던 음악인이나 음악단체 사람들은 아쉬움과 함께 금호문화재단의 앞날을 걱정했습니다. 아마 박성용 이사장 없는 금호문화재단을 상상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하지만 그런 염려는 금방 씻겨졌습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이 새 이사장직을 승계한 것입니다. 알고 보니 금호문화재단은 그들의 선대이자 창업주인 고(故) 박인천 회장의 유업이었습니다. 오늘날 기업이 있게 한 출발지와 그 지역주민들에게 이윤의 일부를 돌려주자는 창업주의 경영이념에서 설립되었더군요. 어쩌면 박삼구 이사장은 열렬한 음악애호가가 아닐지 모릅니다. 따라서 고인처럼 열렬한 음악후원자가 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점을 환영합니다. 재단이 오너(?)의 취미 생활을 위한 조직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임 이사장은 지난 주 기자간담회에서 문화사업도 기업경영의 하나라고 얘기했습니다. 금호문화재단이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는 몇몇 특정 음악가들만의 친구가 되지는 않을 테니까요./배석호(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예술사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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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7.26 23:02

[문화마주보기] 도청과 선화당(宣化堂)

조선시대의 전라 감영 선화당이 위치하였던 구 도청청사는 얼마 전까지 전라북도의 정치적 상징물이었다. 이 자리의 활용 여부를 둘러싸고 일각에서는 전통문화도시 추진의 일환으로 전주의 옛 모습을 복원하기 위하여 선화당 관아 건물군을 재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전통문화도시의 위상에 걸 맞는 상징적인 조형물을 세우기를 바라는 등 여러 의견이 분분한 듯 하다.그러나 선화당의 복원이 지니는 의미와 효과가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전통문화도시를 표방하는 전주에는 아직 상징적인 조형물이 없다. 전주의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경기전을 비롯하여 다수의 유적이 산재되어 있지만, 고도 전주의 랜드마크로 삼을만한 상징적인 건축물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의아할 정도이다.그 상징물은 순 목조로 된 극히 한국적인 건축물일수도 있고, 고도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양풍의 건물일수도 있다. 흔히 고도에는 순수한 전통건축물만이 어울릴 것 같지만, 설계의도와 역량에 따라 고전과 현대가 얼마든지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중국의 정치와 문화의 상징 천안문광장에 들어서는 프랑스 건축가 폴 앙드레 설계의 국가대극장이나, 프랑스 르네상스 건축의 걸작 루브르 궁전(박물관)의 마당에 들어선 I.M. 페이 설계의 피라밋 형 유리건축이 얼마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예컨대 전통악기로만 우리의 정신세계를 표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익태의 한국환상곡이나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은 서양의 그릇을 빌어서도 한국인의 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전주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고 관광객들의 모든 요구에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한 방문 센터, 그리고 이와 관련된 부대시설들을 아우른 복합 문화컴플렉스를 세워 전주관광의 시발점으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객사, 경기전, 한옥마을 등으로 이어지는 방문 동선도 자연스럽게 확보할 수 있고 구 도심의 활성화라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옛것을 소중히 보존하여 이를 관광자원화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고도 전체의 분위기를 어떻게 형성해 나갈 것인지 그 큰 틀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주5일 근무제의 가족단위 중심의 관광시대를 맞이하여, 체험센터 등의 참여형 문화시설도 중요하지만 옛 건축물들과 오래된 돌담 등이 자아내는 고풍스럽고 차분한 분위기를 가꾸어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요즈음의 관람객은 부채 등을 제작하는 장인의 손재주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고풍스러운 작업장과 그 작업장이 위치한 마을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취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문화도시 전주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민속촌 등의 인위적인 유사 시설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만일 구 도청청사 자리에 새로운 문화상징물을 세운다면 이러한 전체적인 도시미관의 틀 안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민병훈(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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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7.19 23:02

[문화마주보기] 그들은 왜 걷는가

현장음까지 쌩으로 담아서 잘 만든 광고 카피 하나. 당신이 산 영화표가 칸 영화제 수상작 <올드보이>를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산 음악 CD가 아시아의 별 보아를 만들었습니다. 문화에 투자하세요. 우리 모두에게 돌아옵니다. 공짜영화 밝히지 말고 음악 CD도 정품을 사라는 소리인 건 알겠는데, 그 소리를 되씹다가 잠깐 씁쓸해진 건 또 무슨 까닭인가. 얼마 전에 영화판에서 벌어졌던 해프닝 한 토막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해프닝의 정점에 그 <올드보이>의 주인공이 있었다. 보기 민망하게도 그는 목에 핏줄을 세우고 마이크에 침을 튀기면서 말했다. 우리처럼 예술활동하는 사람이 삶을 지탱하는 이유는 돈이 아니다. 아니할 말로 영화 한 편 출연해서 감독이 요구하는 캐릭터 구현을 위해 혼신을 다해 연기한 대가로 돈 5억도 요구하지 못한단 말이냐. 압권이었다. 억 소리 다섯 개에 피식, 허탈한 웃음까지 나왔다. 문화는 각고의 정신적 산물이다. 인간이 자기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거기에 투자하는 건 옳다. 경우에 따라서는 투기인들 못하랴. 문제는 즉물적이고 말초적인 시각과 청각 만족에 경도된 우리 모두의 문화 편식 현상이다. 편식은 만병의 근원이라고 배웠다. 문화에 아낌없이 투자하라고 했다. 그 대가는 우리 모두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면서. 확실히 돌아오긴 왔다. 편향된 투자 덕에 황금만능과 물신숭배에 따른 정신 공황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공익이라는 이름의 그 광고 카피 속에 당신이 산 시집 한 권이 미래의 노벨 문학상을 만듭니다.라는 한 구절조차 끼워넣을 여유는, 우리에게, 정녕 없었던가. 문득, 밤을 꼬박 밝히면서 시 한 편 소설 한 대목하고 씨름하는 게 일인 몇몇 후배들의 얼굴이 여운처럼 떠올라서, 그래서 더 씁쓸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바로 그들, 우리 지역의 젊은 시인과 소설가들이 <전북문학지도>라는 생소한 이름의 지도를 그리고 있다. 전라북도 전역을 망라하는 문학적 자산을 지역별로 샅샅이 뒤져서 해마다 한 권씩 책으로 펴낸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주말을 이용해서 정해진 행로를 따라 하루 수십 킬로미터씩 문학 유적지를 탐사하는 것이 요즘 그들의 일이다. 시인의 생가도 찾고, 그 후손들을 만나서 뒷이야기도 듣고, 작품의 배경이 된 자연환경이나 시설도 카메라에 꼼꼼하게 담아온다. 그 길에서 새로운 글감을 얻는 건 뒤범벅된 땀을 말끔하게 식혀주는 소나기 같은 덤이다. 작년에는 고창, 부안, 김제, 군산 등지의 지도를 품격높은 한산모시처럼 촘촘하게 잘 짜서 내놓았다. 이 여름에는 무주, 진안, 장수에 더하여 임실, 순창, 남원 지역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다. 내년에는 전주, 완주, 익산, 정읍의 문학 유산이 지도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그려지게 된다. 자신들이 쓴 시집이 영화표 한 장에 덤으로 얹혀지는 세태에 가슴이 아려도 그들은 떠난다. 우리 지역의 소중한 문학 자산이라면 풀 한 포기조차 놓치지 않겠다고 물팍 연골이 닳도록 걷는다. 지난 주말에도, 막걸리 한 사발에 목을 축이고 장맛비와 땀에 젖은 바짓가랑이를 철벅거리며 산과 들길을 걸었을 그들의 뒷모습만은, 아무쪼록, 쓸쓸하지 않았으면 한다./송준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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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7.12 23:02

[문화마주보기] 쓰레기와 함께 살기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 나라는 온돌과 마루를 함께 만들어 이용하며 추위와 더위를 피했다. 지혜롭고 독특한 주거 문화를 옛사람들은 갖고 있었다. 잊혀져 가는 한옥의 장점은 또 있다. 옛집은 생명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었다. 흙과 나무가 숨을 쉬고, 쥐와 뱀과 제비도 사람과 더불어 사는 곳이었다. 같은 울안에 소, 돼지, 닭 따위의 가축도 함께 살았다. 그 밖의 작은 생물들은 말 할 것도 없지만 쓰레기까지도 함께 살았다. 논밭에서 나온 것으로 양식과 생활용품을 만들었으며 먹고 남은 것은 가축을 먹였다. 그래도 버려지는 것은 거름자리에서 발효되어 다시 먹거리를 키웠고, 배설물도 땅심을 돋우는 귀한 재료가 되었다. 생활용품은 기워 쓰고, 다시 쓰고, 돌려쓰다가 썩어서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쓰레기가 거추장스런 존재가 아니었다. 사람과 어우러져 함께 살다가 흔적 없이 소멸되었다.사람들이 좀 더 편하고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며 열심히 노력한 결과, 함께 살 수 없는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남겨 놓았다. 그것들은 소각을 해도 공기 속에서 떠돌고 땅에 묻어도 썩지 않는다. 썩는다해도 심술을 부리며 물과 흙 속으로 스며든다. 그런 줄 알면서도 계속 쓴다는 사실에 마음이 켕긴다. 잘 썩는 비닐이나 플라스틱을 저 비용으로 만들어낼 수 없을까 생각한 것까지가 늘 나의 한계였다.얼마 전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차고 넘쳐서 밖에까지 즐비한 봉지들을 보며 당황했던 적이 있다. 음식물 쓰레기 대란이 멀지 않았다고 써놓은 글을 몇 달 전에 읽은 적이 있긴 하다. 알고 보니 전주 시내 음식물 쓰레기 수거량이 하루 200t으로 제한되었다고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음식물 쓰레기를 집안에 두고 함께 산다는 건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음식물 쓰레기조차 갈 곳이 없어져 흉물스럽게 우리 곁을 맴돈다. 요즘은 쓰레기가 덜 나오는 음식을 찾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웰빙이란 말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주로 가공 식품 쪽으로 고개를 돌려야 한다. 제철 과일도 마음대로 사먹을 수 없는 고민을 누가 알아주랴. 쓰레기 문제가 문화인이라 자부하는 우리들의 우아한 삶을 위협하고 있는데 해결하려는 노력은 거북이 걸음이다. 누구의 문제도 아닌 우리의 문제를 서로 미루며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물 걱정 없이 살던 나라에 집집마다 정수기가 들어앉은 것처럼 이미 시판되고 있는 가정용 쓰레기 처리 기계와 씨름할 날이 머지 않은 것 같다. 함께 살 수 없는 쓰레기를 만든 주체는 우리들이고, 그 때문에 고통받을 대상은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이다. 다시금 쓰레기와 함께 살기를 꿈꾸는 것은 무리겠지만 쓰레기 문제를 이대로 두고 맘놓고 살아도 되는 것인가. 눈앞에 닥친 문제 해결도 시급하지만 멀리 생각하며 심각하게 연구해야할 문제이다./한경선(글짓기 논술지도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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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7.05 23:02

[문화마주보기] 줄기세포와 여성

<365일 천국보다 아름다운 세상>은 지역민영방송이 공동으로 제작하는 난치병 환자 돕기 프로그램이다. 환자의 사연을 소개하고 ARS 성금을 모아서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는데, 수년 동안 희귀난치병 환자를 돕고 있는 익산 만남의 교회 이해석 목사는 난치병을 일컬어 돈 잡아먹는 귀신이라고 표현한다. 집안에 난치병 환자가 생기면 있는 돈 다 까먹고 결국 목숨까지도 잃게 되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얼마 전 촬영했던 한 아이는 뇌종양 발생 1년도 못되어 목숨을 잃었는데, 마지막에 희망을 걸었던 것이 줄기세포 유전자 이식이었다. 1주기 치료에 3천만 원이라는 비용이 들지만 완치 여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일본의 한 의사를 소개받아 비행기를 타고 일본까지 날아갔지만 이식 후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다. 황우석 교수가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프로그램 제작진은 무척 기뻐했다. 그토록 힘들어하는 난치병 환자와 가족들에게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수많은 환자들이 건강한 세포와 장기를 이식 받지 못해서 생목숨을 잃고 있는데, 줄기세포를 이용해서 본인의 유전자와 똑같은 건강한 장기를 복제해서 이식한다면, 대부분의 난치병이 완치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런 획기적인 치료를 가능케 하는 줄기세포의 근원이 난자에 있다는 것을 알고 나는 좀 께름칙해졌다. 황우석 교수는 총 185개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후 환자의 체세포에서 추출한 세포핵을 난자에 삽입, 체세포의 핵이 다시 분열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전기 자극을 주어서, 185개의 난자 중 간신히 31개의 배반포기 배양에 성공했다. 그 중에서 11개의 줄기세포를 얻어낸 것이다.그렇다면 줄기세포 배양에 필수적인 난자는 어떻게 추출해낼까? 황교수는 국내 의사와 간호사들이 일부 난자를 제공했다고 밝혔지만, 하지만 앞으로 난자기증 문제는 중대한 문제로 떠오를 것 같다. <사이언스>지가 황교수의 연구 결과를 전하면서 '줄기세포 연구를 위한 난자 기증의 윤리 문제'를 다룬 글을 함께 실은 것도 그런 맥락인 것으로 생각된다.「믹스언매치」 연작을 통해 인간복제와 물질문명의 모순을 고발해온 소설가 원종국 씨는 이번 황교수의 연구결과에 대해 신체적 봉건주의라는 표현을 썼다. 여성들이 난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과배란 호르몬제를 투여해야 하는데, 이 과배란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난소 비대, 복수(腹水), 난소 과자극 증후군, 골반농양, 조기 폐경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돈에 의해 난자의 가격과 가치가 좌우되는 현상이 도래할 수 있으며, 난자 제공자와 대리모 역할을 하게 될 여성들의 인권과 건강문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생명을 살리자는 의도는 좋지만 또 다른 생명을 곤경에 처하게 하면서 생명을 살린다면 그만큼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줄기세포 연구가 언제 실용화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나친 우려도 섣부른 낙관도 금물이겠지만, 줄기세포 문제를 여성의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봐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김선경(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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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6.01 23:02

[문화마주보기] 전주 유감

나는 이때가 좋다. 모내기를 하기위해 물을 잡아 놓은 너른 들녘을 보노라면 나 자신이 그 만큼 넉넉해진다. 또 그런 하루 중에서도 해질녘이면 황홀경이다. 모를 맞이한 무논이 석양의 노을빛까지 담아내니 그야말로 완전한 세상이다.우리가 만개한 봄꽃들을 보며 호들갑을 떨고 있을 때 들녘은 우리의 일상을 위해 소리 없이 가을까지의 긴 여정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잠깐이다. 해는 어김없이 지고 어둠이 깔린다. 지는 해를 길게 보니 마침 전주 쪽이다. 어디 전주로 간 것이 해 뿐일까. 사실 전라북도 안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전주로 간다. 전주는 도청소재지이기도하지만 사회 각 분야의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주는 서울을 향해 상대적 빈곤을 이야기한다. 소외되었다며 분개하면서 결국 배려를 호소하는 대상은 전주 뿐이다. 서울 집중의 상황을 타박하면서도 다시 전주 집중화를 꾀하는 것은 자신이 비판해온 권위와 권력으로 군림하고자하는 자기모순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전라북도의 근간인 도내 시군의 주 산업인 농업을 부끄러워한다. 농촌인 것을, 농도(農道)인 것을 불편해하고 농업이 전주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고 불평한다. 화려했던 전주의 문화축제가 끝이 났다. 전주의 문화축제가 열리는 기간은 농부들이 들에서 허리 굽혀 일하고 있는 때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전주문화는 이 노동 위에 형성되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주 문화축제는 오로지 전주를 위한 축제일 뿐 이다. 이같은 환경은 전라북도의 맏형격인 전주의 도리가 아니다. 전주는 홀로 이루어진 도시가 아니다. 전주는 스스로 전주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전주문화가 주변문화의 유입과 재정립과정을 통해 형성 되었듯이 혼자 갈 수 없는 것이다. 주변 지역문화의 오랜 전통을 파악하지 않고 당장의 전주만의 문화로 나아갈 때 그 한계는 분명해진다. 더구나 다른 시군의 삶이 농업의 위기로 총체적으로 무너져가고 있는 것을 외면한다면 전주문화는 그 바탕을 잃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근래 열정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전통문화중심도시만들기의 과정만해도 지나치게 전주만을 위한, 전주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지는 해를 따라가 보면 해가 전주에서는 계란 노른자위 형상을 하고 있음을 자주 보게 된다. 계란이 노른자만으로 온전할 수 없듯이 전주 또한 전주만으로 이름값을 하기 어렵다. 전주의 존재는 이제 서울과 전주의 구도 속에서만 찾아서는 안된다. 전주와 기타 시군들과의 수평적 연계와 연대를 구축할때 비로소 전주는 가장 전주다워질 수 있다. 함께 사는 아름다운 도시가 되는 일은 전주의 선택이다. 전주는 이제 그 고민을 해야 한다. /이현배(옹기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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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5.25 23:02

[문화마주보기] 전주국제영화제를 마치며

5월 6일 금요일 폐막식 리셉션을 끝으로 영화제를 마치고, 휴일 내내 긴 단잠에 빠져들었다. 오랜 단잠끝에 눈을 뜨고 나니 어느새 일요일 저녁, 무언가 허전하고 공허함이 필자의 머리 속을 짓누르며 비로소 영화제가 끝났구나하는 생각이 스친다. 아쉬움도 많았고, 소소한 문제들도 많이 부각되었던 우리의 영화제. 영화제 밖의 제 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다가 직접 영화제 운영을 맡고 보니 여러 가지 일들을 피부로 직접 느낀 계기였던 영화제. 지역시민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이벤트행사 확대와 타지에서 오신 영화매니아를 위한 섹션별 영화프로그램의 정체성 추구 속에서 고민하며 만든 영화제. 너나할 것 없이 전 스탭과 자원봉사자 여러분들의 발품과 땀방울로 얼룩진 영화제. 이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우리 영화제는 이제 내년을 기약하며 또 다른 준비를 해야 한다. 우선 이번 영화제의 성과는 이원화되었던 행사공간을 영화의 거리로 일원화함으로써 관객 집적의 효과를 가져다 주었으며, 구도심활성화 차원에도 일조를 하였다고 자부한다. 또한 전주라는 로컬 이미지를 어떻게 하면 국내외적으로 브랜드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공격적인 홍보마케팅을 추진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 결과 22대학에서 1,300명이라는 타지 대학생들이 직접 우리영화제를 체험하는 기회를 가졌으며, 국내외 프레스 기자들의 급증 등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사료된다. 덧붙여서 지역신문과 방송의 애정어린 시선도 큰 몫을 담당했다. 물론 영화제의 잘못이 크지만, 매년 영화제 시작도 하기 전에 기획 및 홍보 미숙이라는 멍에는 영화제에 큰 짐이었다. 물론 지금도 개선해야 되고 고쳐야 할 부분이 많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문제점을 영화제 이후로 미루고, 영화제 기간중 지면을 통해 깊이 있는 영화토론의 장으로 이끌어 주는 역할을 담당해 주어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한적하고 조용한 전주국제영화제를 기억하는 영화매니아들은 올해 부쩍 늘어난 야외공연이나 음악 콘서트가 그다지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여전히 불안한 티켓팅 시스템이나 미숙한 행사진행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는다. 항상 예산이 걸림돌이 되지만, 영화제의 안정적인 행사진행을 위해서는 타 영화제처럼 상근직원의 확충이 필수적이다. 매년 새로운 인력충원으로 행사진행의 노하우가 소멸되고 새출발하게 되는 영화제 사무국체제의 불안은 앞으로 우리가 풀어 나아가야 할 숙제이다. 지역영화인력을 키워내는 것도 급선무이다.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영화제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과감한 인센티브, 그에 합당한 보수체계와 근무여건 조성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바로 그들이 향후 제10회 우리영화제를 이끌어 갈 주역이며, 전북영상산업의 주춧돌 역할을 담당할 재목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현재 우리 영화산업의 인프라를 통합하는 일이다.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영상위원회, 전주독립영화협회 등 영화관련단체 간의 통합추진기구를 두어 영화산업정책이 일관되고 강력하게 추진되며, 영상중심도시 전주을 구축하는 것도 논의되어야 한다. 오늘도 필자는 영화의 거리내 시네마테크를 갖춘 시네 콤플렉스를 꿈꾸어 본다. /김건(전주국제영화제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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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5.1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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