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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조선시대 초상화 초본 특별전 - 이원복

한여름 장마철엔 습도에 민감한 서화를 대상으로 한 기획전시는 가급적 피하는 게 원칙이다. 전시실은 현대적인 시설과 장비로 조명은 물론 온습도 조정이 가능하나 이동 중 문제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립전주박물관에선 원래 예정과 달리 초복 사흘 뒤 대서(大暑)인 지난 7월 22일 '조선시대 초상화 초본(草本)' 특별전시를 열었다. 이는 지난해부터 복원수리에 들어간 보물 제931호인 〈태조어진(太祖御眞)〉 귀향 예정일에 맞춘 그야말로 특별한 파격적 처사였다.하지만 이 어진 귀환이 10월로 늦춰져 본의 아닌 차질이 발생했다. 이에 이 지역 출신 어용화사(御容畵師) 채용신(蔡龍臣,1850-1941)이 그린 〈고종어진(高宗御眞)〉으로 대체했다. 별도의 개막행사는 접고 22일 당일 두 차례에 걸쳐 전시품 설명회를 개최했다. 지난해 중앙서 연 전시이나 서울과 달리 박물관에 기탁된 보물 제792호로 〈이상길(李尙吉,1566-1637)초상〉등 명품들이 추가되었다. '조선의 화불(畵佛)'로 지칭되는 김명국(金命國,1600-1663이후)이 1634에 그린, 드문 조선중기 양식을 지닌 점에서 중시된다.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초상화는 우리 옛 그림에서 점하는 비중이 높고 그림 됨됨이인 화격(畵格)이나 기량 모두에서 크게 주목된다.잘 알려진 것처럼 용산에 신축된 국립중앙박물관은 근 10년 걸려 규모나 내용 모두에서 국제적으로도 손색없는 대규모 박물관으로 일신되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답보상태였던 지역 소재 국립박물관들도 지난해부터 특화사업이 시작되어 국립전주박물관은 금년 봄 '고대문화실'이 새롭게 탈바꿈을 시도했다. 연말까지 2층 '미술실'을 그동안 발굴과 학문성과를 반영하고 이 지역 출토 문화재를 중심 불교문화와 도자공예, 조선 종실서화 및 전북의 서화 등 지역적 특징을 강조한 전시실로 새롭게 개편한다. 2010년 후년이면 개관 20주년을 맞으니 그 때까지 세 전시실이 모두 바뀌니 일단락된다. 새 정부 들어서 일단 금년 말까지로 제한적이긴 하나 전국 국립박물관 모두는 대규모 기획전을 제외한 상설전시는 무료이니 전주도 예외가 아니다.염장군(炎將軍)의 기세가 대단한 그야말로 복중(伏中)이다. 장마가 끝난다는 보도는 휴가와 피서여행 등 마냥 꿈에 들뜨게 할 무렵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제적인 고유가 등 국내외 결코 밝지 않은 경제 여건은 우리들에게 예년과는 같지 않다. 도심에서 냉방시설이 썩 잘된 곳으론 은행이 있다. 잠간 무더위를 피할 장소로 애용되어 특히 노인 분들이 즐겨 찾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에 지지 않는 다른 장소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도심에서 조금은 외진 곳이나 시내버스가 닿는 곳, 근 2만 평에 이르는 대지, 푸름이 싱그러운 소나무 숲이 있는 곳, 정문을 거쳐 매미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걸어 들어와 현관을 통과하면 된다. 다름 아닌 완산구 효자동 쑥고개길에 위치한 국립전주박물관이 다름 아닌 그곳이다. 전시를 두루 둘러본 뒤 정원 한 모퉁이 언덕,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한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박물관 뜰을 내려보는 멋도 각별하다./이원복(국립전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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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7.29 23:02

[문화마주보기] '좋은 국민' 을 만들려면 - 박영주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이 국민들과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며 연거푸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소통의 문제를 바로 잡아주려나 하는 기대로 기다렸더니 사과 담화문이 곧 소통이라 착각했는지 이제는 오히려 국민들이 정부와 대통령을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된 정보에 현혹되어 국가의 안녕을 어지럽힌다고 살수차, 소화기, 방패 등 1970년대 유행했던, 한물가도 한참 간 공포의 종합선물세트를 안겨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특이한 소통 방법이다.한 가정의 가장이 부모라면 한 나라의 가장은 대통령이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를 성공하는 아이, 좋은 아이, 나아가 자신이 원하는 아이로 만들고 싶어 한다. 대통령인들 국민을 자신을 믿어주는 국민, 좋은 국민으로 만들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민을 망치는 교육법만 피하면 될 일이다.《기트너 교육법》으로 알려진 앨리스 기트너 박사가 얼마 전 내한하여 우리나라 부모들을 대상으로 성공하는 아이를 위한 교육법에 대해 강연을 했는데 그 중에서 "아이를 망치는 교육법"이 눈길을 끈다. 사실 좋은 아이, 공부 잘하고 똑똑하고, 성공하는 아이로 키우는 법에 관한 정보들은 너무 많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부모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내 아이가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혹시 부모 탓인가 하는 죄책감마저 갖게 된다. 그에 반해 아이를 망치지 않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의외로 간단한데 이는 바로 아이를 위협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사탕발림 같은 보상으로 꼬드기지 말라는 것이다. 앞으로 한 번만 더 그러면 가만 안 놔둔다는 식의 위협은 아이의 자율성을 심히 저해한다. 사실 사람의 심리가 위협을 받으면 오히려 반감이 커질 수 있고 금지하는 것을 어기고 싶어 하는 마음이 더 커지지 않던가. 아이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면 될 일이다. 이것이 소통 아니고 무언가! 마찬가지다. 화가 난 국민들에게 소통이 안 돼서 벌어진 일이라 사과를 했으면 그 다음엔 정말 소통다운 소통을 하면 좋은 국민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대통령과 국민을 이어주는 진정한 소통, 대화는 국민의 감정에 대응하는 것이다. 왜 화가 났는지 알아달라고 외치는 국민들을 향해 그들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지고, 외국관광객의 방문이 줄어들고, 하는 이런 어줍지 않은 죄의식을 심어 주려는 구태의연한 방식에 의존하지 말고 분노한 연유와 무엇을 요구하는지 들어보면 되는 것이다. 즉, 이해와 감정이입이 위협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말과 행동은 지그재그이면서 단지 부모라는 이유로,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일방적인 권위를 행사하는 것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것과 같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부모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말 잘 들어 줄 때만 사랑스러운 내 아이이고, 정부가 무슨 짓을 해도 아무런 의사표시 없이 조용(?)한 국민일 때만 좋은 국민이라면 이는 아이의 자아형성을 망치는 지름길이요 민주사회를 죽이는 지름길이다. 부모의 권위는 아이에게 이해되어 질 때 진정한 권위가 된다. 좋은 아이, 어진 국민을 얻고자 한다면 이해와 감정이입이 바탕이 된 소통을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위협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간단하다!※ 박영주 교수는 프랑스 리용 2대학에서 심리학 석사박사 과정을 마치고 2000년부터 우석대학교 심리학과에 재직하고 있습니다./박영주(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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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7.22 23:02

[문화마주보기] 창의력 돋보이는 필립스탁 디자인 - 정성환

선물로 파리채 받아 본적 있으세요?한 학기 수업을 끝내고 감사의 표시로 내게 미국인 교수가 선물이라며 책상서랍 속에서 긴 박스를 꺼내 건네었다. 고마움의 표시가 파리채라.그런데 그게 필립스탁 디자인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필립스탁은 파리채 아랫부분에 삼각대처럼 생긴 다리를 달아 세워 놓을 수 있도록 했는데 역시 파리잡는데는 더 효과적일 것이다. 또한 윗부분의 재미없는 연속무늬를 점의 크기를 달리해 재미있는 표정을 집어넣었다.비행기에서 포크, 나이프, 스푼 챙겨 가지고 내리세요?911 테러사건 이후 기내에서는 플라스틱 포크, 나이프, 스푼만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는데 사용상의 문제해결을 위해 필립스탁이 디자인한 에어 프랑스의 포크, 나이프, 스푼은 승무원의 양해를 구하고 챙겨 와야 할 만 한 것으로 이는 어떤 분의 경험담이다.레몬 즙 짜는 물건을 왜 대리석 좌대 위에?필립스탁 디자인의 레몬즙 짜는 도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대부분은 마치 현대 조각 작품처럼 소중하게 디스플레이해 놓고 감상한다.마치 럭비공모양의 작은 머리통을 거미의 다리같이 생긴 세 개의 다리로 구성되어 있다. 머리 부분은 레몬즙이 아랫부분으로 흐르게 하고 높은 다리 밑에 컵을 놓을 수 있는 기능을 고려하여 디자인되었지만 형태 또한 매우 조형적이다.필립스탁 디자인은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다.첫째, 디자인들이 대단한 발상이나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든 것이 아니라 너무나 상식적이고 주변에 흔히 있는 것들을 활용한 디자인임에도 그 방법이 절묘하다는 것이다.둘째, 다른 사람은 의식하지 못하는 것을 문제를 발견했고 그렇기 때문에 해결방법 또한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셋째, 그를 세계적 디자이너로 만든 사고의 유연성, 관찰력, 상상력 그리고 이것들을 모두 합친 창의력은 사물을 남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었으며 그 결과로 어떤 사물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고 디자인을 통해 가치를 실현되도록 했다.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에게 훈련된 상상력이라고 정의되기도 하는 창의력만큼 소중한 것이 또 있을까.아침마다 중학생인 애들 교복을 다림질하면서 생각한다. 이렇게 똑같은 교복, 두발상태, 미술, 음악, 체육도 암기해서 시험을 치러야 하고, 방과 후 학원으로, 과외로, 학습지로.우리의 애들은 무엇을 상상할까, 이런 교육으로 창의력이 개발될까, 우리의 아이들이 한번이라도 문제를 발견하기 위해 깊게 사고하는 시간이 있을까?그러다가 우리 아이들에게서 필립스탁은 고사하고 필립도, 스탁도 안 나오는 것 아닐까?※ 정성환 교수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제일기획 등에서 일했으며 1989년 이후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산업디자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정성환(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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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7.15 23:02

[문화마주보기] 전북, 관광선진 프로젝트 필요 - 정명희

새정부 출범과 함께 관광선진화를 위한 5대 과제가 발표됐다.세계 관광시장은 성장추세임에 반해 한국관광시장의 지속적인 정체 상태로 관광수지 적자의 폭이 심화되고 있다는 위기감에서다.그 결과 정부는 매력적인 관광상품 개발과 함께 파격적인 규제완화와 세제지원, 환경개선 등의 과제들이 도출됐다.새만금 방조제 개통을 계기로 전라북도 관광산업에 대한 기대감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높다. 전북 관광산업에 대한 진단과 점검에 관한 로드맵이 필요한 시점이다.그렇다면 전라북도 관광선진화를 위한 과제는 무엇일까? 문제점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대비가 필요하다.한국관광공사에서 실시하는 국민여행실태조사 결과 국내여행 경험률 및 1인당 국내여행 참가회수는 1999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그러나 전북은 2004년 이후 관광총량 및 숙박관광 참가자 수가 줄고 있어 정체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2006년 국내관광객의 전라북도 숙박관광 경험은 5.3%로 전남(9.3%), 충남(9.5%), 경남(10.0%)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전라북도 관광산업의 부진함은 여러 가지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으나, 관광서비스에 대한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관광숙박시설 등 물리적 시설은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우나 관광서비스와 같은 소프트웨어는 단기간의 교육만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하지만 도내 음식점 숙박업 종사자들을 보면 서비스 정신에 대한 철학이 부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숙박 관광의 비율이 낮아지는 것도 결국 서비스를 개선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된다.따라서 서비스 질 저하로 전북의 관광산업의 부진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타 지자체가 관광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발굴하고 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북에서도 서비스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경상북도는 지난해 '경북방문의 해'의 성공적 개최를 계기로 '경북 관광 아카데미'를 매월 운영해왔다. 관광업체 종사자 및 유관기관 단체 직원, 담당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친절한 관광서비스와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다.관광업체종사자 등 일반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친절서비스 소양교육' 4개 과정과 관광분야 담당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직무 역량 강화교육' 4개 과정 등을 실시해 민간인 뿐만 아니라 공무원들에게도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시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지방자치단체간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시기에 전라북도도 관광 선진화를 위해 새로운 비전을 담은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도내 관광종사자와 관계공무원들의 관광 마인드를 제고하고 전문화하여 지역관광의 리더로 운용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정명희 전북발전연구원 문화관광팀 부연구원은 한양대 관광학과 대학원 석사박사과정을 마친 뒤 한양대 BK21 연구원, 농촌생활연구소 연구원, 한양대 관광연구소 연구원 등을 거쳐 전북발전연구원 문화관광팀에 재직하고 있다.문광부에서 기획한「문화관광축제 평가모형 개발」「농촌관광 체험 프로그램 개발」등 각종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다./정명희(전북발전硏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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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7.08 23:02

[문화마주보기] 소치 탄생 200주기를 맞아 - 이원복

전통문화 형성에 있어 나라 밖의 영향은 문화의 속성상 어느 민족도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옛 그림을 살핌에 있어 조선후기 진경산수나 풍속화만이 참된 우리 그림이고 정형산수인 중국풍의 남종화는 단순한 모방이나 아류로 봄은 큰 잘못이다. 문화와 예술에는 국제성과 토속미가 공존한다. 국제적 흐름에 적극적, 능동적으로 동참하여 새로운 독자성을 이룩함이 민족의 문화역량이다.금년은 19세기 조선화단에서 묵포도로 이름 높은 옥구의 최석환(1808- 1883이후)과 '남도산수화의 종장(宗匠)'인 진도의 소치 허련(1808-1893)이 탄생한지 2백주년이 되는 해이다. 두 화가 모두 호남 출신으로, 특히 소치는 이른바 지식층 그림인 남종화의 거장으로 생존 당시부터 명성이 지대했다. 몇 차례 소규모 소치 기획전이 열렸지만 국립광주박물관에서 그의 예술세계와 생애를 조명하는 대규모 특별전인 '남종화의 거장, 소치 허련 2백년'(2008.7.8-8.31)을 개최하니 이는 문화사적 의의를 지니는 쾌거가 아일 수 없다.김정희는 편지 글에서"우리나라의 누추한 습관을 깨끗이 씻어 버렸으니 압록강 동쪽에는 이에 비교할 그림이 없다."라 극찬했다. 오늘날 전해온 묵서 중에는 대원군 이하응이 쓴'소치서화대방가(小癡書畵大方家), 민영익이 쓴 현판'운림소치묵신(雲林小癡墨神)', 정인보는 추사가 소치를'묘수(妙手)'로 지칭함이 언급되었고 최순우는'원말 사대가풍의 산수 그림 중에서 시골티를 활짝 벗은 가작을 남긴 지식인 화가'등 긍정적 평가가 이어졌다.소치가 산 말기화단은 왕조의 말폐상과 열강의 각축 등 내우외환으로 범벅된 시기이나 이런 와중에도 미래를 향한 바람직하며 긍정적인 일련의 움직임도 엄존한다. 소치 그림세계는 묵란과 서예에 집중한 추사의 회화 창작의 욕망을 구현해준 그리고 그가 꿈꾸던 세계를 소치가 현실에 형상화 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말년 매너리즘으로 양식화된 그림을 제외하면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이다.소치는 탄탄한 이론을 바탕으로 많은 고서화를 접하고, 실제로 수집하며 감식안을 키웠으며 오랜 세월 쉼이 없이 붓을 잡았다. 시서화를 아우른 학문과 예술의 일치로 필법과 구도에 있어 남종화의 법통을 이어 자신의 모습으로 개진했다. 때론 끝이 달아서 무디어진 몽당붓[禿筆]을 사용해 먹 위주의 거칠고 분방한 필치에 담청과 담황 가채로 강약의 조화를 이룬다. 그림과 글씨가 동가를 이루며 속기가 배제된 청신하며 유현한 분위기의 조촐하면서도 맑고 담박한 그림세계이다.남종화로 대변되는 문인화는 전통을 맹목적으로 고수하거나 답습함이 아닌, 법고창신(法古創新)과 청출어람(靑出於藍)이 말해주듯 과감하게 새로운 시도를 꾀해 자신만의 화경(畵境)을 이룩함에 그 진정한 의의가 있다. 이점에서 조선의 남종화는 동양화가 아닌 우리 그림, 한국화가 된다. 오늘날 소치를 되새기는 의의 또한 다름 아닌 이 점에 있다.▲ 이관장은 서강대학교 사학과 석사박사과정을 마치고,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를 시작으로 국립공주박물관장, 국립청주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 국립광주박물관장을 지낸 뒤 현재 국립전주박물관장로 활동하고 있다.저서로는 「나는 공부하러 박물관 간다」, 「한국의 말 그림」, 「회화」 등 10여편의 공저가 있다./이원복(국립전주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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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7.01 23:02

[문화마주보기] 겉치레 연하장 삼가자 - 정수완

2006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지난 한 해를 반성하고 밝아오는 새해를 준비할 시간입니다. 여러 가지로 바쁜 때이지만 이맘때가 되면 매년 잊지 않고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연하장을 보내는 일입니다. 한 해를 보내며 지난 1년 동안 도움을 주신 많은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연하장을 준비하는 일은 참으로 아름다운 우리의 풍속중의 하나입니다. 늘 감사의 마음이 있어도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아니면 우리의 마음을 그분들께 전하지 못하는 게으름이 죄스럽기도 하지만, 이렇게 한 해 한번이라도 감사의 마음을 표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기도 합니다.그런데 원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풍속인 연하장 보내기가 요즘은 형식적인 행사로 전락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지난 주 연하장을 사기위해 한 서점에 들렀습니다. 받아보실 한 분 한 분을 생각하며 그분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의 연하장들을 고르면서 도움 받은 많은 분들을 떠올리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연하장을 한 무더기씩 쉽게 골라 계산대로 향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겉치레 때문에 연하장을 보내는 일은 이제 그만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와 같은 불쾌감은 연하장을 받는 입장이 될 때에도 느끼게 됩니다. 똑같은 문구로 시작하는 마음이 담기지 않은 연하장은 바쁜 현대 생활을 생각할 때 이해하기로 했지만, 받는 사람의 이름이 틀려 있거나, 똑같은 사람으로부터 2장의 연하장을 받았을 때의 기분은 썩 좋지 못합니다. 이름도 확인하지 않고 바쁘게 보내야하는 연하장이라면 차라리 보내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이런 얄팍한 감사의 마음 전하기는 다만 연하장 보내기에만 국한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연하장 계산대에서 계산기가 고장이 나서 10분을 기다렸습니다. 다시 계산기가 가동되자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계산이 시작되었습니다. 계산기 뒤에는 1년 동안 아껴주신 고객들께 감사하다는 말이 크게 적혀있었습니다. 우리사회에서 너무나 쉽게 사용되는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이제는 진정한 마음이 담긴 감사와 사과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해를 되돌아보면 감사드릴 분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가깝게는 부모님과 동료, 선후배들로부터, 영화제에 도움을 주셨던 많은 분들과 모자라는 글을 넓은 마음으로 읽고 격려해주신 많은 독자여러분들에 이르기까지 한해를 무사히 보내기위해서 너무도 많은 분들께 신세지고 도움을 받았습니다. 모두 찾아뵈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어 아쉽고, 대신 연하장으로 마음을 전하지만 그것도 모두 할 수 없어 죄송합니다. 모두에게 연하장을 보낼 수는 없지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연하장 준비가 진정한 마음을 보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 모두 2007년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정수완(전주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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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2.27 23:02

[문화마주보기] 한해 중요한 일 기록을 - 홍성덕

올 겨울 들어 첫눈이 소담스럼게 내리던 날, 장성에 조문을 갔다. 호남 지역의 대표적인 한학자이신 산암(汕巖) 변시연(邊時淵)선생이 15일 오전 별세했기 때문이다. 생전에 일면식도 없이 글로써만 선생을 뵈었을 뿐이라 자손들과의 인연이 앞섰지만, 한 시대를 지역에서 꼿꼿하게 보내신 어른의 영전에 뒤늦은 인사를 올리는 것이 지역이 좋아서 살겠다고 작심한 마음에 조금이나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자위적인 조문이었다.선생은 장성에서 태어나 전남향교재단 이사와 한국고문연구회장을 지냈으며, 1958년부터 1990년까지 한국 시문을 집대성한 문원(文苑) 73권을 편찬했고, 저서로 산암문집 32권을 남겼다. 50년 넘도록 한문으로만 일기를 쓰신 선생은 선비로서 해야 할 것과 남겨야 할 것들에 대해 몸소 실천하신 분이셨다. 역사학과 기록학의 언저리에 앉아서 지역에서 뭘 해야 할 지를 고민하고 있는 필자에게 선생의 그런 모습들은 큰 힘이었다. 겨울에 뵙기를 약속하고 준비하려는 중에 선생의 부음을 들었기에 발인 일에 내리는 눈이 그리 애처로웠는지 모른다.장성장례식장의 빈소는 유학자의 모습답게 만사(輓詞)가 걸려있었다. 요즘은 좀처럼 보기드문 만사들을 보면서, 새삼 삶과 기록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의미들을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었다. 눈물이 마를 일이 없이 슬픔이 앞선다는 만사의 글귀들은 고인을 보내드리는 지인들의 애절함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장례의 풍습이 언제부터 변화하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릴적 기억에 남는 것은 곡(哭) 소리에 묻힌 고스톱의 소리가 전부였던 것 같고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례들이 갈수록 사라져 버린 듯한데, 만사를 보면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남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던 것이다. 만사를 남기시도록 한 건의가 잘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 역시 우리들이 찾아 볼 수 없는 귀중한 기록이 될 것이라는 점은 확신하고 있다.이달 초 전주역사박물관에서 발표한 1960년대 이전 전주관련 사진 공모작 중에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사진집이 하나 있었다. 어행록(御行錄)이라 이름 붙여진 사진집은 평화동에 사시는 김홍두 선생이 출품하신 것으로 장례식의 제반 절차를 촬영하고 사진집으로 기록화시켜 놓은 것이었다. 돌아가신 날부터 하관할 때까지의 일자별 기록을 맨 앞에 붙이고, 각 절차별로 사진을 찍어 설명을 달아 놓은 이 사진집 한권이야말로 1950년대 후반 전주사람들의 장례 풍경을 설명하는 둘도 없는 자료이다. 올해 몇 차례 열린 옛 사진 공모전을 보면서 조선왕조실록은 보관했던 전라도의 역사정신을 되새겨볼 수 있었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새밑 가족들이 둘러 앉아 음주가무로 한해를 보내기 전에 한해의 기억을 정리하고 간단하게 남겨둔다면 훗날 훌륭한 역사로 후손들에게 비쳐질 것이다./홍성덕(전북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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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2.20 23:02

[문화마주보기] ‘말’로 열어가는 남과 북, 공동의 미래 - 이재규

올해 북핵 문제로 남북관계가 또 한 번 파동을 겪었지만 이미 한반도는 새로운 전환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물론 남북이 지독한 증오감에 휩싸여 서로의 존재를 전면 부인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이제 막 화해와 협력의 길목에 들어섰지만 올해 목격하듯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가 채 가시지는 않은 과도기이다. 백낙청 선생의 지적대로분단시대의 끝자락, 통일시대의 들머리가 충돌하는 지점이기 때문에 모든 일이 순탄하게 나가지는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숱한 우여곡절과 우회, 반전이 숨어 있는 6?15시대에는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기만 하면 되었던 이전의 냉전시대보다 훨씬 정교한 대응을 필요로 한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6?15시대를 상징하는 사업이 아닌가 싶다. 2005년 2월 19일 남북공동편찬위원회가 금강산에서 결성되면서 겨레말사전은 16년 전의 약속에서 현실의 문제가 된 후로 2년 동안 여덟 차례의 공동편찬회의가 서울, 평양, 개성, 금강산, 북경을 오가며 열렸다. 겨레말큰사전은 남과 북의 언어 뿐만 아니라 오랜 이산의 삶을 살아온 재외동포의 말까지도 포괄하는 최초의 우리말 대사전 작업인 관계로 중국 지역 조선족 동포가 살고 있는 연변지역을 방문할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 남과 북의 교류협력이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이뤄지기 전에 연변 조선족 사회는 북과 접촉하는 유일한 우회통로였다. 중국 연변지역은 사회주의 체제의 지배원리가 작동하고 지리적으로도 인접한 곳이며 말과 혈통을 같이하는 조선족이 집단거주해온 사회였기 때문에 중국과 수교가 이루어진 뒤에 연변은 북을 들여다보는 창(窓)과 같은 역할을 했다. 실제 연변 조선족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려서 배운 조선말과 글의 기준은 다 북쪽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조선족 사회는 한국과 거의 실시간으로 움직인다. 위성방송으로 한국의 인기드라마를 같은 시간대에 시청하고, 왕래가 빈번하기 때문에 생활어도 남쪽을 많이 닮아간다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조선말, 한국말, 연변말이 뒤섞이면서 아직 북측 언어체계를 따르고 있는 교육현장과 실제 생활과의 괴리 등 여러 부문에서 정체성의 혼란이 나타나고 있다. 연변 쪽 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한반도 근현대사의 격동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지켜보았고, 두 개의 사회제도를 경험하고 있으며, 조선동포이면서 동시에 중국 인민이기도 한 연변 조선족의 특수한 처지가 역설적으로 한반도의 미래를 편견 없이 볼 수 있는 제3자의 눈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우리가 지향하는 통일이 1945년 이전 시점으로 돌아가 남과 북을 단순통합하자는 것이 아니라면, 통일이란 남과 북이 각기 걸어온 길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다른 측면을 적극 받아들여 우리 모두가 풍성해지는 길일 것이다. 우리의 통일이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먹어버리거나 일 대 일로 단순 통합하는 것이 아니듯 겨레말큰사전편찬사업은 남과 북의 어휘를 단순히 통합하는 작업이 아니라 겨레말에 녹아 있는 우리 민족의 유산과 얼을 발굴하여 민족 공동체 의식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고. 통일 조국의 밝은 미래를 담보하는 일이다. 어디 이 일이 한반도에만 그칠 일인가. 중국, 러시아, 일본, 미주, 유럽에 이르기까지 집단적 이산의 삶을 살아온 우리의 묵은 상처가 회복되는 순간, 민족어의 영토가 한없이 넓어지면서 우리의 언어도 그만큼 풍성해질 것이다. 물론 공통의 사전 한 권을 우리들 손에 올려놓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6?15시대의 특징이 그러하듯 남과 북의 편찬 작업자들은 어느 한 순간 긴장을 놓지 못하고 격돌하고 논쟁하며 또 한편으론 서로를 아울러 갈 것이다. 평양과 서울, 북경과 개성, 금강산을 종횡으로 연결하며 이어가는 공동편찬회의. 우리 민족이 오랜 고통의 시간을 대가로 지불한 이 유례없는 우리만의 역사를 버물려 가장 풍성한언어의 창고를 함께 만들어내는 작업에, 작은 역할이나마 거들고 있다는 사실에 매번 감격하곤 한다./이재규(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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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2.13 23:02

[문화마주보기] 산촌의 겨우살이 - 장성수

산촌의 겨울은 빠르게 찾아온다. 겨울로 접어든 산골 마을은 황량하다. 가을걷이를 이미 끝낸 논은 벼 그루터기만 앙상한 채 비어있다. 고랑 사이로 헤어진 검은 비닐 조각만 바람에 흔들릴 뿐 밭도 마찬가지다. 감나무 가지 끝에 달려있던 까치밥도 까치와 산비둘기 떼가 이미 다 쪼아 먹어버렸다.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었던 앞 뒷산도 어둔 색으로 산색을 바꾸었다. 이제 머지않아 동장군의 칼바람이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그리고 폭설도 내릴 것이다. 바야흐로 산골마을은 세상과 뚝 떨어진 채 기나긴 겨울을 외롭고 힘들게 견뎌야 한다. 봄이 다시 와 막힌 길을 열어줄 때까지.그래서 산골마을은 겨우살이 채비로 분주하다.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쟁이는 일이다. 아낙들은 배추를 절이고 무를 씻어 김장을 담가야 한다. 땅에 파묻은 항아리에다 동치미와 포기김치를 쟁이면서 아낙들은 백만금 재산을 얻은 것보다 더한 뿌듯함을 느낀다. 저들은 서서히 숙성되어가면서 온 식구들의 구복을 즐겁게 해줄 것이므로 아낙네들의 기다림은 지루하지 않다. 항아리에다 볏짚을 깔아 차곡차곡 쟁여둔 대봉시는 그들의 부족한 영양을 챙겨줄 것이므로 더욱 마음이 든든하다.한편 남정네들은 온 산이 눈으로 덮이기 전에 떨어진 낙엽을 끌어 모아 쟁여야 한다. 황토방의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는 불쏘시개로는 솔잎과 솔가지가 제격이다. 숲속을 돌아다니며 간벌해놓은 통나무들을 주워다가 알맞게 톱질하여 마당 한편에 쟁이는 일도 그들의 몫이다. 추운 겨울을 나는 데에는 무엇보다 등이 따스워야 하기 때문이다. 한밤중 아궁이 속에서 아직 발갛게 빛을 발하고 있는 숯덩이를 모아 헛간에 쟁여둔 밤과 고구마를 구워 헛헛한 배를 채우는 일도 중요하다. 기나긴 겨울밤을 무사히 나려면 등도 따스워야 하지만 뱃속도 든든해야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세상과 단절된 산촌의 겨우살이에서 정말로 중요하고도 필요한 것은 마음의 채비이다. 그것은 홀로 살아 감(獨居)에 편안함과 충족감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자세이다. 그것은 또한 말 많고 탈 많은 세속의 시끄러움에서 등을 돌려 스스로를 외롭게 할 수 있는 용기이기도 하다. 켜켜이 쌓인 세속의 온갖 영리와 욕망이라는 먼지들을 떨어내고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할 수 있어야 한다. 폭설로 고립된 산촌에서 오로지 간간이 지저귀는 새소리에 기쁨을 느끼는 귀만을 열어놓아야 한다. 차디차고 흐린 겨울 하늘이 쩍 갈라지며 언뜻 내비치는 한소끔의 햇빛에 다시 돌아올 봄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눈만을 열어놓아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침묵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겨울은 우리에게 소외와 단절의 시간이 아니라 정화와 생성의 순환을 깨닫게 해주는 귀중한 시간이다.벽에 걸린 추사선생의 세한도를 다시 한번 바라본다. 선생의 서릿발처럼 올곧은 겨우살이를 헤아려 보며 마음을 다잡아 보는 지금은, 바야흐로 한창 겨울이다./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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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2.06 23:02

[문화마주보기] 음식도 문화예술도 골고루 섭취 - 정수완

<비타민>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우리가 즐겨먹는 식품 속에 우리의 질병을 다스리는 성분들이 있음을 알려주는 위대한 밥상이라는 코너라고 한다. 몇 년 전부터 전국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웰 빙 붐과 함께 잘 먹음으로서 잘 살 수 있음을 알려주는 유익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방송되었던 내용이 책으로까지 출판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애독되고 있다고 하고, 실제로 방송된 식품이 방송 후 바로 시장에서 동이난다고하니 이 프로그램이 실제로 인기가 있긴 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을 보니 현대인들에게 질병 없이 장수하는 것이 큰 관심이긴 한 모양이다. 필자도 몇 번인가 이 프로그램을 본 일이 있다. 토마토가 몸에 좋다고 하면 토마토를 꼭 먹어야할 것 같았고, 시금치가 몸에 좋다고 하면 시금치를 꼭 먹어야할 것 같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매회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몸에 좋은 식품들이 하나씩 늘어나면서 <비타민>이 주장하는 것처럼 10년 젊고 건강하게 살기위해서는 매일 매일 먹어야할 식품들이 너무 많아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게 된다는 사실이다. 결국 매일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 편하게 골고루 섭취하면 우리 모두 건강하고 젊게 살 수 있는 것인데 너무도 단순한 이 사실을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다만 음식문화에 국한된 현상만은 아닌 것 같다. 이는 우리 문화 전반에 걸쳐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몇 해 전만해도 대중들과 쉽게 만나기 힘들었던 뮤지컬이 요즈음 새로운 대중예술매체로 급부상하고 있다. 해외에서 크게 각광받는 한국 오리지널 뮤지컬들이 제작되고 있고, 뮤지컬 배우들이 새로운 스타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인기 있는 외국작품의 한국 공연을 통해 한국 뮤지컬 연출의 독창적인 시각이 평가받기도 하고, 외국 뮤지컬 스타들에 견주어 뒤지지 않는 한국 뮤지컬 배우들의 능력이 재평가되기도 한다. 뮤지컬 배우들의 팬클럽도 활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뮤지컬의 발전은 대중 예술의 다양화의 측면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새롭게 부상하는 뮤지컬의 위상이 다른 대중문화를 위축시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연극계가 뮤지컬로 위축되지 않고 상호작용을 통해 함께 발전하기를 바란다. 최근 뮤지컬의 인기가 상승하면서 각 대학의 연극학과들이 뮤지컬학과 만들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연극학과가 연극학과라는 이름을 없애고 뮤지컬학과와 통합하여 공연예술학과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발전이 연극과 뮤지컬이 더욱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한 음식이 몸에 좋다고 그 음식만 먹어 건강할 수 없듯이 건강한 예술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매체에 대한 다양한 관심들이 꾸준히 있어야 할 것이다. /정수완(전주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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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1.22 23:02

[문화마주보기] 전통문화자산의 지식정보화 - 홍성덕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라는 말이 있다. 어느 분야에서건 미칠 정도로 집중하지 않으면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처럼 미치도록 찾아서 뛰는 것이다. 그냥 책상 앞에만 앉아서 경쟁력이 있다고 말하고, 누군가를 설득시키기 위해 힘을 쏟기보다는, 경쟁력이 있음을 찾아서 미치도록 보여주는 것이고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자산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할 때인 것이다. 왜 아직도 검증받기를 원하는가 ? 전통문화중심도시, 한브랜드 전략기지화 사업 등에 있어 전주와 전라북도가 가지고 있는 자산은 모두가 수긍하고 있는 우리의 강점이다. 그런데 너무나도 당연한 그것에 대해 우리들은 우리가 우리만이 이렇게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수많은 논리개발에 몰두해 왔다. 많은 사람들을 불러다 전주를 보여주고 전주와 전라북도가 얼마나 전통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는지를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참가자 대부분들이 우리의 명제에 대해 동의하기도 하였고, 유익한 코멘트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갔다. 서서히 드러나는 사업들이 보이긴 한다. 그럼에도 왠지 허전한 것은 그 모든 것들이 대부분 청사진만 있을 뿐, 체감지수는 매우 낮기 때문이다. 적절한 시점에 필요한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여전히 미쳐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다. 설득에 힘을 쏟았는지 새롭고 놀랄만한 아이디어는 보이지 않는다. 늘 뒤만 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불안감도 상존하고 있다.정통부에서 추진하는 지식정보자원관리 사업이 있다. 1999년부터 과학시술, 교육학술, 문화, 역사 등의 분야 227개 과제에 총 3,479억원이 투자된 정보화사업이다. 호남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전북대학교박물관이 호남지역 고문서 디지털화 사업을 추진한 불모지의 사업분야이다. 2007년도에 사업공모가 진행 중인 이 사업의 수요조사를 보면 우리들이 뭘 해야 하는지를 생각게 한다. 수요조사에서 제시된 과제는 104개였다. 이 과제들 중에 우리 지역에서 제시한 것은 전통소리문화, 호남지역 고문서, 전통복식 등 단 3건에 지나지 않는다. 한옥, 성씨문화는 경북지방에서 하겠다고 제안했고, 유교문화는 수년째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가진 것이라고는 전통문화자산밖에 없는 우리가 갈 길은 그 자산을 고도화시킬 수 있는 콘텐츠의 집적에 있다. 지식정보화사업은 우리가 우수하다는 것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분야로서 정말로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사업인 것이다. △ 홍성덕 연구사는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에 근무하다 전주로 내려와 전주시청 연구원을 거쳐 현재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으며, 대통령비서실 정책자문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등을 맡고 있다./홍성덕(전북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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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1.15 23:02

[문화마주보기] 남북문학인 단일조직을 지켜보며 - 이재규

지난달 30일 금강산에서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문인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단일문학인 조직이 출범했다. 작년 평양에서 열린 민족작가대회를 통해 60년 만에 얼굴을 마주했던 남과 북의 작가들이 이번에는 <615민족문학인협회>라는 이름으로 단일한 문학조직을 결성한 것이다. 애초 7월로 예정되었던 대회가 북측의 수해로 인해 불과 하루를 앞두고 긴급하게 취소된 후 삼개월 동안 남북관계는 6?15공동선언 이전의 상황인 것처럼 긴박한 대치국면으로 전환되었고 대회 자체의 성사도 한치 앞을 가늠하기 어렵게 되었다. 어렵게 일정이 잡힌 대회를 다시 연기하자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북 핵실험 이후 남쪽 사회의 변화된 대북 정서는 간단치 않은 문제였다. 그렇지만 작가들은 다시 만났다. 동족끼리의 전쟁과 오랜 이산이 가져다준 우리 내면의 상처에 대해 누구보다 민감할 수밖에 없는 작가들이기에 전쟁을 반대하고 이 땅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자신들이 먼저 무거운 짐을 져야 한다는데 공감했던 것이다. 물론 현장에서의 팽팽한 긴장과 갈등도 적진 않았다. 작년 작가대회에 이어 이번 협회 결성의 실무과정을 지켜보고 또 거들면서 현장에서 느낀 답답함을 지면으로 다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엄연한 체제의 차이가 가져오는 생각의 차이는 대회 진행의 세세한 대목에서 충돌을 불러왔다. 연설문 자구 하나하나, 축하 노래 한곡을 선정하는 데에도 살얼음을 걷듯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남쪽의 최근 언론환경을 잘 아는 남쪽 작가들의 언행은 조심스럽다 못해 안쓰럽기까지 했다. 분단체제라는 괴물이 어느 순간 다시 우리를 덮칠 것인지 오래 몸으로 겪어온 작가들의 지혜가 발휘되어 대회는 그렇게무사하게 성사되었다. 6?15민족문학인협회는 분단문학을 극복하고 남북의 문학적 공동체를 복원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최초의 남북 단일조직의 탄생은 남북교류사에서 큰 획을 그은 것이 되지만 무엇보다 앞으로 전개될 모든 예술교류의 차원과 형식을 바꾸게 될 것이다. 특히 남북 작가들의 공동 취재와 공동 집필, 문학작품 교류 등이 실행되게 되면 남북 문단은 본격적인 문학교류를 시작하게 된다. 남북의 작가들이 오랫동안 각자의 지역에서 다른 이념을 교육받고 다른 방식으로 사고했던 독자들만을 대상으로 문학 활동을 전개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이제 북의 작가들은 남측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남측 작가들은 북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는 시대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일제 강점에 의해 36년간 겨레말을 빼앗기고 살았다. 해방이 되자마자 다시 강요된 분단으로 그 후 61년 동안 민족어공동체가 분단된 채 서로를 적대하며 살면서 말과 상상력을 규제당하고 살아야 했다. 한반도를 떠나 이국을 떠돌던 재외동포들의 삶도 이 대립구도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어떨 땐 더 가혹하게 분단의 실체와 마주치기도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오랜 분단과 이산의 결과 우리 민족은 이 세상의 어떤 다른 공동체도 경험하지 못한 서로 다른 두 체제의 길, 생활방식, 사고의 체계를 한 민족 안에서 두루 경험한 유일한 민족이 되었다. 20세기 냉전체제의 비극적 산물로 고통을 강요받았던 우리 민족이 화해와 통합, 이질적인 것의 공존을 주축으로 발전해갈 21세기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선도하고 경계를 넘는 상상력을 폭발시킬 축복을 받은 것은 아닐런지. 금강산호텔에서 북측 실무성원과 서로 언성을 높여가며 생각의 차이를 주고받으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그런 역설적 축복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었다. /이재규(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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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1.08 23:02

[문화마주보기] 프랑스 한 시골의 책 마을 - 장성수

지난 12일부터 열흘 남짓한 일정으로 프랑스를 다녀왔다. 프랑스의 여러 박물관과 각 지방의 자료집성 센터를 방문하여 그들의 자료 집성에 대한 기술 동향을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초가을의 날씨였지만 그곳의 풍광은 사뭇 달랐다. 처음 우리가 머물렀던 수도 파리는 듣던 대로였다. 유명한 르부르 박물관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기차역을 개조해 만든 오르새 미술관이나 대통령 친구의 도움으로 세워졌다는 께 브랑리 아시아 및 아프리카 인류학 박물관은 우리들의 부러움을 살만 했다. 프랑스인들에게 옛날과 오늘은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었다.바쁜 일정으로 자세한 속내를 드려다 볼 수는 없었지만, 단순한 관광여행에서는 보지 못할 몇 가지를 볼 수 있었다. 그 중 스위스와 독일의 접경에 위치한 로렌 지방의 퐁트누와 라 주트라는 조그만 시골 마을은 특이한 곳이었다. 세계적인 크리스탈 생산지로 유명한 바카라에서 약 7Km 떨어져 있는 이 마을은 인구가 겨우 280여명밖에 안되는 곳으로 우리 일행을 안내해준 프랑스인조차 잘 모를 정도로 한적했다. 검은 구레나룻이 멋진 촌장이 이곳의 역사를 들려주었다.이곳에 지역구를 둔 프랑스와 기욤이라는 프랑스 정부의 농림부 장관이 자신의 고향이 점점 쇠락해 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책 마을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곳이 적격지로 선정되었고, 마침내 96년에 책 마을을 열게 되었다. 프랑스 전체에서 세 번 째로 조성된 책 마을이다. 당시 이곳은 지속적으로 농민인구가 감소했고, 따라서 빈집이 늘어났기 때문에 서점을 유치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용이했다.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만이 이 마을로 들어올 수 있는데 18개의 책방 외에 출판, 책 수선, 서예(서양식) 등 책과 관련된 가게가 8곳이 있다. 총 26개의 가게가 행정관청 주위의 마을 중앙에 몰려있다. 문을 연 당시부터 10년 동안 방문객의 수는 80만 명으로 일년에 평균 7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 이 마을로 책을 사러오는 사람들은 프랑스인뿐만 아니라 벨기에, 독일, 멀리는 북유럽 사람들까지 있다.프랑스 정부는 국가예산을 책정해서 책 마을 조성사업을 지원하였다. 마을로 들어와서 책방을 운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정부로부터 이주에 관련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집 구입, 수리 및 개조 등을 할 수 있는 자금이 정부로부터 지원되었다. 초기에는 빈집이 많아서 이주가 비교적 수월했던 반면, 현재는 상황이 달라졌다. 책 마을에 대한 소문이 나면서 이주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집의 수는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이 마을에서 빈집을 찾을 수 없다. 이 점만 보아도 농촌회생운동은 성공한 것이다. 대도시에서 책방을 경영하다 초기 이 마을로 이주했다는 최고참 서점 주인은 이전보다 훨씬 수입이 좋다면서 한국 사람들의 방문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지역 농민, 상인 간의 대타협과 화합이 이런 명소를 만들었다며 여유 있는 웃음을 지었다. 내 머리 속에는 날로 피폐해져 가는 우리의 농촌이 떠올랐다. /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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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1.01 23:02

[문화마주보기] 논술과 독서 - 정수완

지난 일요일 수시 대학 입시 논술 고사 채점위원으로 하루 종일 학생들의 논술 고사 채점을 했다. 빽빽이 써내려간 많은 아이들의 답안지를 채점하면서 논술이라는 제도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암기식, 주입식의 현 교육제도의 한계를 보안하고,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언젠가부터 각 대학들은 앞다투어 입시에서 논술 고사의 비중을 강화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과 함께 긴 문장 읽기와 오래 생각하기를 힘들어하게 된 아이들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수 있다는 점에서 논술은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마치 모범답안지를 외워 쓴 듯한 120명 입시생들의 똑같은 답안지를 보면서 과연 논술 고사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사실 논술 고사가 대학 입시에서 당락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며 호들갑을 떨며 논술 학원을 보내고, 논술 과외를 시키는 주위의 학부형 친구들을 보면서 논술이 창조적인 아이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어, 수학 등 많은 과외 수업에 힘겨워하는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짐을 지게 하는 것은 아닌가하고 걱정하곤 했다. 자기 생각을 하는 창조적인 아이들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생긴 논술 고사가 오히려 아이들을 정형화되고 기계적인 사고를 하는 로봇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며칠 전 외국어고등학교 입시를 마친 아들을 둔 친구가 입시 논술 시험에 자신이 예상해준 문제가 그대로 나와 아들이 시험을 잘 보았다고 자랑하던 모습이 생각이 났다. 아들이 자신이 만들어준 모범답안대로 잘 쓰고 나왔다는 것이다. 친구 아들이 좋은 학교에 합격할 수 있다면 축하해줄 일이지만, 그 말을 듣는 나는 어딘지 마음 한 구석이 편하지 않았다.요즘 아이들은 책 한권, 영화 한편을 제대로 볼 시간이 없다고 한다. 논술에 대비해 고전들을 읽긴 읽어야 하는데 두꺼운 고전을 제대로 읽을 시간이 없어 고전을 쉽게 풀이하여 간단하게 정리해 놓은 다이제스트판 고전을 읽는다고 한다. 심지어 영화의 자막 읽는 일을 귀찮아하여 외국 영화 대신에 한국 영화만 보는 아이들 덕택에 한국 영화 산업이 유지되고 있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창조적인 아이들을 만들기 위해 시작된 논술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책읽기와 생각하기의 즐거움과 중요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일요일 내린 비로 끝날 것 같지 않던 여름 같던 가을이 끝이 났다. 이제 본격적으로 가을이 시작될 모양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번 가을 학생들이 시험의 부담에서 벗어나 편안한 마음으로 한권의 책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중학교 때 처음 읽었던 <제인에어>와 <데미안>이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힘이 되는지를 생각해보면, 이번 가을 학생들이 그들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한권의 책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정수완(전주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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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0.25 23:02

[문화마주보기] 불어라 문화의 맞바람 - 홍성덕

한 5년쯤 전의 일이다. 교동 한옥마을 개발에 관련된 의견이 분분했고, 전주역사박물관 건립이 한참 진행되고 있었을 무렵으로 기억된다. 전주 문화판에서 이리 저리 잡일(?)을 하고 있던 젊은 연구자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만나 맞바람을 피운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지역문제에 대한 기탄없는 이야기들이 오고갔었다. 대략 2시간 정도 진행되는 사이버 공간의 만남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정말로 가감없이 내 뱉어버리는 그 공간은 변화에 목마른 30대 힘의 분출구였기도 했다.그리고,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40대 중반의 언저리에 앉아 30대와 50대를 위아래로 바라보면서 낀 세대가 되어가는 것을 족히 느끼고 있다. 맞바람에서 이야기한 것은 당시에 진행되고 있던 한옥마을 개발방식, 향토사박물관, 전주시의 문화판 등등에 대한 맞바람 회원들의 기본적인 고민은, 지역 문화판의 주체이고 방향성에 놓여있었다. 뜬구름 잡는 원론을 말하지 않고 무엇을 위해서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백가쟁명식의 진지한 잡담들이었다. 그때 갈무리한 파일을 보고 있으면 웃음도 나고, 그런 열정은 어디에 간 것일까 하는 자조감에 빠지기도 한다.지역문화의 주체와 방향에 대한 논의의 틀은 지금도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지역의 문화판이 커지고 많은 사람들이 문화판 속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그 한 구석에는 지역이 배제된 행위들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학교 출신이 있기 때문에 억울한 피해를 받았다는 등 학연과 지연이 여전히 꼬리를 물고 있고, 건전한 비판과 의견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런 바닥에서도 젊은 피들은 힘 있게 버텨내고 있다. 전주시내 문화시설들에 종사하는 20-30대의 힘은 그래서 아름다워 보인다. 열악하고 힘든 상황을 굳이 내색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삼척동자라도 그건 이제 모두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젊은 문화일꾼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문화의 맞바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때 거침없이 쏟아 내었던 지역문화를 사랑하는 힘 그 힘에서 부는 그런 맞바람이 필요한 것이다. 문화시설이라는 현실 속에 갇혀 평가의 굴레를 벗어나 버릴 수 없겠지만 20-30대 문화꾼들의 맞바람은 불어야 한다.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는 문화판이 더 오래 끈질기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젊은 문화꾼들의 맞바람이 크게 일도록 하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전주 문화정책의 실패는 곧 이들에게 있음을 이제는 조곤히 앉아 살펴보아야 할 때이다.△ 홍성덕 연구사는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에 근무하다 전주로 내려와 전주시청 연구원을 거쳐 현재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으며, 대통령비서실 정책자문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등을 맡고 있다. /홍성덕(전북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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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0.18 23:02

[문화마주보기] 교양 없는 사회, 인문의 위기 - 이재규

요즘 젊은 후배들에게 최근에 읽은 소설이나 인문사회과학서적이 뭐 있느냐고 물어보면 일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책을 읽는다는 축도 대부분 실용서적이나 처세술이 대부분이다. 영화나 음악에 대해선 시시콜콜한 것까지 쫙 읊어대는 친구도 문학, 역사, 철학은 까막눈인 경우가 적지 않다. 국문학 전공자조차도 교과서에 나오는 근현대작가들 이름과 대표작품 줄거리 정도를 암기할 뿐 원본을 찾아 읽거나 최근 작품을 읽는 경우가 드물다. 인문학 계통의 책들 중에 몇 천 부 판매를 넘기는 경우에는 대박이 났다고 할 정도로 인문 교양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밑바닥 수준이다. 인문학자들의 자가진단을 빌지 않더라도 도처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실감한다. 인문학의 위기가 최근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문사철(文史哲; 문학, 역사, 철학)을 기본으로 세계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통일성을 내세웠던 인문학, 지식인의 존재는 급속한 근대화, 자본주의 고도화 과정에서 계속 주변으로 밀려 나야 했다. 물질과 권력 중심의 이 사회에서는 총체적인 지식인 보다는 기업이 요구하는 표준화된 노동력을 양산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교육정책이 지배해왔으니 당연한 귀결이기도 했다. 인문학의 위기를 좁혀 본다면 돈 안되는 학과인 인문학 전공의 홀대, 인문계의 몰락이 바로 눈앞의 현상일 것이다.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본다면 진정한 근본 문제는 학과를 막론하고 우리 후세대 모두가 인간과 인간 가치에 관한 앎으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교양, 인문을 잃어버린 조각 지식창고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 당대 최고의 선비보다 현대 대한민국 초등학생이 습득하고 있는 정보량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뿐이랴. 실시간으로 세계 반대편의 소식을 전해듣고 원하는 어떤 정보도 인터넷 클릭 몇 번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이 세상이 아닌가. 그러나 컴퓨터를 제 아무리 능숙하게 다룬다 하더라도 단순한 지식정보의 총합이 세계에 대한 인식과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 소통, 통합의 능력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 전통에서는 문사철, 인문을 관통해야 진정한 지식인 대접을 받았다. 서양 사상가 키케로도 모든 영역을 두루 꿰뚫어 보는 지적 능력, 공동체에 대한 의무감, 주어진 상황과 주제를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연설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 이 세 가지 능력을 기르고, 심화시키는 지식과 교육하는 학문 분야를 인문학(studia humanitatis)으로 보았다. 문사철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관련 학자들만의 위기일 수 없다. 인문적 교양이 사라지고 파편화된 지식만으로 쌓아올린 공동체는 영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 일반의 인문적 교양을 드높이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공인하며 인문학적 상상력이 다양한 전문능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하게 하는 사회. 진정한 의미의총체적 인간을 지향하는 그런 세상이야말로 인문학이 꿈꾸는 이상사회가 아닐까. /이재규(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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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0.11 23:02

[문화마주보기] 신 금수회의록 - 장성수

이십일 세기 초엽, 나이 육십에 가깝도록 속진에 푹 빠진 채 허우적대며 살던 한 서생이 있었는데, 어느 날 이러다가는 제 명대로 못살겠다는 깨달음이 퍼뜩 뇌리를 스치더라. 속세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에 누옥 한 채 지어 거처를 옮겼더라. 어느 봄인들 꽃들 다투어 피지 아니하고, 어느 가을인들 잎사귀 울긋불긋 물들지 아니하리오. 우주 조화의 위대함을 이제야 깨닫겠더라. 자연의 가르침에 미련한 서생 깨우친 게 많았으나, 그 중 으뜸가는 깨달음은 인간의 안목이 조조보다 더 간사하다는 사실이라. 누옥 한 채만 횅하니 있을 적에는 사방으로 둘러싸인 산천초목이 자기 집 정원처럼 여겨져 시야가 탁 트이더니, 앞마당을 만들고 잔디 심고 나무 심고 울타리를 치니 금세 시야가 좁아져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버리더라. 제 앞에만 떡 놓으려 하는 사람치고 청맹과니 아닌 자 없다더니 틀림없는 말인 줄을 알겠더라. 어느 봄날, 백화만발할 제 춘풍 언뜻 불어 꽃향기 온 세상 가득 퍼지니 하릴없는 서생 그 향기에 취해 깊은 잠에 빠졌더라. 꿈길에 언뜻 보니 자기 집 안마당에 온갖 금수 모여앉아 웅성웅성 왁자지껄 소란스럽기 짝이 없더라. 깜짝 놀란 서생 몸을 숨기고 저들 하는 양을 살펴보니, 요즘 인간들의 행태에 관해 갑론을박하는 중이더라. 연단에 올라 한참 열변을 토하고 있는 연사는 배불뚝이 개구리라. 분수 모르는 인간들은 우리를 우물 안의 개구리라 하여 소견 좁다 비웃으며 조롱하나 요즘 인간들 저지르는 소행 볼라치면 차마 목불인견이라. 인간들의 탐욕으로 세상 전체가 오염되어 가는 줄은 진작 알았으나, 남보다 더 배운 식자들만이라도 청렴해야 도리이거늘 오히려 썩는 냄새가 더욱 진동하니 인간세상 청정지역 눈을 씻고 찾아봐야 어디에도 없소이다. 우리 개구리 족속은 우물에 있으면 우물에 있는 분수를 지키고, 미나리 논에 있으면 미나리 논에 있는 분수를 지키나니, 이로 보면 우리가 사람보다 윗길이 아니오이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개구리 물러나자, 연이어 입에 거품을 문 채 두 팔을 활짝 펴고 당당하게 연단에 오르는 물건이 하나 있는데 보아하니 무장공자, 게더라.인간들은 우리 게 족속을 가리켜 간도 쓸개도 없는 무리라 하여 업신여기기 일쑤요. 그래, 인간은 우리와 달리 창자가 있긴 있소. 허나 옳은 창자 가진 인간이 몇 명이나 되겠소. 인간도 하느님이 아닌지라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를 수는 있는 법, 그러면 사후에라도 자신을 되 돌이켜보아 잘못을 뉘우치면 용서 받을 수 있는데 그러지를 못하니 최소한의 체면이라도 세울 수가 있겠소. 인간으로서의 권위가 이처럼 땅에 떨어졌으니 창자 없는 우리들의 손가락질을 받아도 싸지요, 싸.연이어 들짐승, 날짐승 너도 나도 등장하여 인간을 성토하는데, 백면서생 부끄럽고 참담하여 차마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돌아서는데 가슴이 철렁하며 깊은 잠에서 문득 깨어나니 때는 한여름을 훌쩍 지나 상큼한 바람 솔솔 부는 가을이 되었더라. /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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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9.27 23:02

[문화마주보기] 눈으로 보는 솔직함, 그 내면의 진실 - 홍성덕

문화라는 게 참 묘한 것이다. 시시콜콜 개념이 어떤 것인가 하는 논쟁을 하려는게 아니라, 전주라는 곳 내가 태어나서 줄곧 살아오고 있는 이 도시에 늘 붙어 다녔던 문화라는게 묘하다는 것이다. 전주가 문화도시라는 점에 대해 토를 다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모두가 인정하고 있지만, 전주의 우수한 문화적 역량을 설명하려면 맞닥트리는 고민이 있는데, 그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이다. 언제부터인가 전주의 역사나 문화를 이야기하는 자리가 만들어 질 때면 맨 처음 꺼내는 이야기가 솔직하자는 것이었다. 솔직히 우리 고장인 전주를 봅시다라고 시작하는 이야기는 문화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것으로 종종 끝을 맺는다. 전주가 가지고 있는 전통문화의 우수함을 이야기할 때 쓰는 우수성의 증거들, 언제 만들어졌고, 어떤 의미들을 가지고 있고, 얼마나 아름답고, 유일한 것들이라는 그런 수사들이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하는 고민 때문이다.문화를 산업화할 때 비교적 쉽게 떠오르는 것이 관광산업이다. 전주의 문화코드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은 눈으로 보는 감흥이 적다는 것이다. 전주의 문화적 코드, 소위 7공주ㆍ6공주로 불리는 소리, 음식, 한지, 한옥, 서예, 한방, 영화 등의 가장 큰 특징은 비가시적이고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전주의 역사적 문화유산도 마찬가지이다. 경기전과 풍남문이 경복궁이나 숭례문을 넘기는 어렵다. 그래서 늘 랜드마크가 없다느니 체류하기 부적합하다는 등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눈으로 보는 솔직한 전주의 문화를 가슴에 담고 전주를 이해하지 않으면 그저 우리만 즐거운 동네 문화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관광산업은 보고 즐기는 것에서 체험하고 학습하는 것으로 바뀌고, 웰빙으로 전환하고 있는 중이다. 전주는 그 트랜드 변화의 중심에 서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웰빙 관광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보고, 듣고, 먹고 마시는 즐거움은 당연한 전제인 것이다. 오감을 만족시키는 전략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비가시적 문화를 가시적 문화로 전환시키는 내재적 발전전략이 필요하다. 아울러, 전주 문화역량의 솔직함은 지적재산으로서의 가치이다. 비가시적인 문화를 가시적 문화로 바꾸는 것이 꼭 한옥컨벤션과 같은 랜드마크를 만드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가시적 문화의 산업화 방안 역시 그 문화에 내재되어 있는 지적 가치를 발굴해 낼 때 가능하다. 외형과 내면의 아름다움이 공존해야만 최고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가치는 그 내면의 지적 자산에 의해서만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콘텐츠 이야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주의 문화코드는 인식과 공감만 있을 뿐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자료)은 너무나 적다.△ 홍성덕 연구사는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에 근무하다 전주로 내려와 전주시청 연구원을 거쳐 현재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으며, 대통령비서실 정책자문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등을 맡고 있다. /홍성덕(전북대 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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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9.13 23:02

[문화마주보기] 민족의 영토, 그 아련한 꿈 - 이재규

요즘 텔레비전 사극은 온통 고구려 이야기이다. 고구려 개국의 주인공인 <주몽>, 고구려 말기의 영웅 <연개소문>에 이어 고구려 이후의 발해 이야기인 <대조영>까지 모두 한반도를 넘어 만주 일대를 무대로 하고 있다. 중국의 한나라 당나라와 맞서 싸우며 만주벌판을 말달리던 호걸들의 이야기는 잠들어 있던 우리의 대륙기질을 부추기며 한반도 아래쪽으로만 향하고 있던 눈길을 저 멀리 잊었던 땅, 북방으로 돌리게 한다. 우리 민족의 영토가 저기인데. 아쉬움 끝에 마른 입술을 적셔 보지만 드라마가 아닌 현실은 어떤가.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 발해를 중국의 변방정권으로 규정짓는 역사작업의 한편으로, 백두산 경계를 포함한 현실의 국경 유지를 넘어서 한반도 유사시 동남진할 현실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작성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남북대립의 덫에 치어 단일민족국가의 수립이라는 근대의 문도 여직 통과하지 못해 버둥거리고 있는 사이에 말이다. 중원을 공략하려던 고구려의 꿈은 변방 소수민족사의 몇 줄에 그치고 말 뿐 우리의 현실적 영토는 한반도를 지켜내기에도 버거운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일부에서는 1909년 9월 일제가 청나라와 불법적으로 맺은 간도협약에 의해 간도의 영유권을 뺏긴 것이기 때문에 이제라도 되찾아야 한다고 한다. 그럴 수 있을까. 간도협약은 법리적인 측면에서 당연히 무효이지만 현실 국제정치의 세력관계를 볼 때 우리가 간도를 되찾는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간도지역은 현재 중국이 실효적으로지배하고 있을 뿐 아니라 1962년, 64년 조중국경조약을 통해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역은 확정된 상태이다.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유엔이 인정하는 독립국가인 조선과 중국이 맺은 국경조약을 원천무효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중국이 백두산 관할권을 옌벤조선족 자치구에서 지린성 정부로 이전한 것을 보더라도 중국은 한반도 통일 이후의 영유권 분쟁을 미리 대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남은 수단은 전쟁에 의해 무력으로 되찾는 것일 뿐인데 주몽과 연개소문이 한꺼번에 부활한다고 해도 그 전쟁에는 반대하고 나설 것이다. 결국 아련한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면 우리 민족의 현실 영토는 한반도이다. 물론 장구한 역사에서 장차 중국과 러시아가 어떤 변화를 겪을지 모를 일이고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진리에서 보면 미리 그렇게 움츠러들 일은 아니다. 동북아 정세의 변화에 따라 민족의 고토였던 만주, 요동, 연해주 등 지금의 현실적 경계가 어찌 변화될지 미리 예단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한반도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의 분쟁이 발생할 경우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민족의 영토가 오히려 축소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꿈을 놓지 않되 철저히 현실에 바탕한지혜이다. 우리가 60년 대립의 남북분단시대를 넘어 한반도 통일정부를 지혜롭게 성사시켜 나가야만 이 힘을 바탕으로 동북아에서의 주도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고 이 길만이 민족의 영토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고대중국 한나라에 맞서 동북아의 신흥강국을 꿈꾸었던 <주몽>을 보면서 지금 우리 민족의 현실적인 꿈은 어디일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이재규(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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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9.06 23:02

[문화마주보기] 저수지의 밤 낚시꾼들 - 장성수

시골의 우리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그리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규모의 저수지가 있다. 이른 아침 잔잔한 수면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 그 너머로 주위 소나무 숲에 서식하는 백로 떼들이 창공을 가로 질러 날아간다. 겨울이 되면 청둥오리 떼들이 차가운 수면 위를 먹이를 구하느라 부지런히 자맥질하며 떠다닌다. 억새꽃이 겨울 석양을 받아 은빛 비늘처럼 반짝인다. 출퇴근하는 길에 바라보는 그곳의 풍경은 이처럼 한 폭의 산수화가 따로 없을 만큼 아름답고 평화스럽다. 작년 여름엔 물난리가 나서 온갖 부유물들이 수면 전체를 가득 메우는 바람에 흉측한 몰골이더니, 올해는 옛날 모습을 되찾았다.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를 인위적으로 치료하지도 않았는데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을 보며 자연의 자기치유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마가 끝나고 올 여름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될 무렵, 이곳에 낚시꾼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였다. 다른 낚시터는 외래종 붕어가 이미 점령해버렸는데 아직 이곳은 토종 참붕어가 잡힌다는 것이 주된 이유라고 했다. 낮에만 낚시꾼들이 모이는 줄 알았더니, 밤늦은 귀가 길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푸르게 빛나는 형광체가 수면 이곳저곳에 보였다. 차를 멈추고 물가에 내려가 보니 밤낚시꾼들이 던져놓은 낚시찌였다. 적막한 어둠 속에서 푸르게 빛나는 한 점 찌만을 응시한 채 수도승처럼 앉아있는 그들을 보며 오래 전에 읽은 강용준의 소설 초망지비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하나, 둘 길게 꼬리를 그으며 떨어지는 밤하늘의 별똥들이, 통풍을 위해 걷어 올린 모기장을 통해 시야로 들어오게 된다. 은하수도 들어온다. 은하수 너머 더 먼 우주도 들어온다. 정말이다. 인생관이 바뀌고, 세계관이 바뀌고, 우주관이 바뀐다. 증오감도 사라지고, 조급함도 사라지고, 같잖은 명예욕, 까부는 자식들을 향해 앙다물었던 이의 힘도 스르르 제풀에 풀려나가고, 그렇게 된다. 인간이 살면 얼마나 사는데, 그렇게 된다. 밤낚시 경험이 전혀 없는 나에게는 그들이 정말 그런 깨달음을 얻게 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이 스스로를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이유가 단지 월척을 낚기 위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서로를 보듬는 언어보다는 상대에게 치명적 상처를 주는 폭력의 언어가 판을 치는 이 번잡스러운 세간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서는 아닐까. 스스로를 글 감옥에 가두는 문인들이나, 텅 빈 캔버스를 앞에 두고 있는 화가, 내면을 다잡고 악상을 떠올리는 음악가, 흰 벽면을 응시하며 화두에 매달리고 있는 수도승과 그들의 모습은 닮아 있는 듯했다. 출세간함으로써 세간에 드는 묘리를 그들은 이미 터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면을 고요히 응시한 채 돌부처처럼 앉아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평생 수도승처럼 글을 써온 최명희 선생을 떠올렸다. 그녀가 남긴 어둠은 결코 빛보다 어둡지 않다는 말의 뜻을 알 것도 같았다./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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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8.3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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