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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한해 중요한 일 기록을 - 홍성덕

올 겨울 들어 첫눈이 소담스럼게 내리던 날, 장성에 조문을 갔다. 호남 지역의 대표적인 한학자이신 산암(汕巖) 변시연(邊時淵)선생이 15일 오전 별세했기 때문이다. 생전에 일면식도 없이 글로써만 선생을 뵈었을 뿐이라 자손들과의 인연이 앞섰지만, 한 시대를 지역에서 꼿꼿하게 보내신 어른의 영전에 뒤늦은 인사를 올리는 것이 지역이 좋아서 살겠다고 작심한 마음에 조금이나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자위적인 조문이었다.선생은 장성에서 태어나 전남향교재단 이사와 한국고문연구회장을 지냈으며, 1958년부터 1990년까지 한국 시문을 집대성한 문원(文苑) 73권을 편찬했고, 저서로 산암문집 32권을 남겼다. 50년 넘도록 한문으로만 일기를 쓰신 선생은 선비로서 해야 할 것과 남겨야 할 것들에 대해 몸소 실천하신 분이셨다. 역사학과 기록학의 언저리에 앉아서 지역에서 뭘 해야 할 지를 고민하고 있는 필자에게 선생의 그런 모습들은 큰 힘이었다. 겨울에 뵙기를 약속하고 준비하려는 중에 선생의 부음을 들었기에 발인 일에 내리는 눈이 그리 애처로웠는지 모른다.장성장례식장의 빈소는 유학자의 모습답게 만사(輓詞)가 걸려있었다. 요즘은 좀처럼 보기드문 만사들을 보면서, 새삼 삶과 기록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의미들을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었다. 눈물이 마를 일이 없이 슬픔이 앞선다는 만사의 글귀들은 고인을 보내드리는 지인들의 애절함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장례의 풍습이 언제부터 변화하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릴적 기억에 남는 것은 곡(哭) 소리에 묻힌 고스톱의 소리가 전부였던 것 같고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례들이 갈수록 사라져 버린 듯한데, 만사를 보면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남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던 것이다. 만사를 남기시도록 한 건의가 잘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 역시 우리들이 찾아 볼 수 없는 귀중한 기록이 될 것이라는 점은 확신하고 있다.이달 초 전주역사박물관에서 발표한 1960년대 이전 전주관련 사진 공모작 중에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사진집이 하나 있었다. 어행록(御行錄)이라 이름 붙여진 사진집은 평화동에 사시는 김홍두 선생이 출품하신 것으로 장례식의 제반 절차를 촬영하고 사진집으로 기록화시켜 놓은 것이었다. 돌아가신 날부터 하관할 때까지의 일자별 기록을 맨 앞에 붙이고, 각 절차별로 사진을 찍어 설명을 달아 놓은 이 사진집 한권이야말로 1950년대 후반 전주사람들의 장례 풍경을 설명하는 둘도 없는 자료이다. 올해 몇 차례 열린 옛 사진 공모전을 보면서 조선왕조실록은 보관했던 전라도의 역사정신을 되새겨볼 수 있었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새밑 가족들이 둘러 앉아 음주가무로 한해를 보내기 전에 한해의 기억을 정리하고 간단하게 남겨둔다면 훗날 훌륭한 역사로 후손들에게 비쳐질 것이다./홍성덕(전북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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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2.20 23:02

[문화마주보기] ‘말’로 열어가는 남과 북, 공동의 미래 - 이재규

올해 북핵 문제로 남북관계가 또 한 번 파동을 겪었지만 이미 한반도는 새로운 전환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물론 남북이 지독한 증오감에 휩싸여 서로의 존재를 전면 부인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이제 막 화해와 협력의 길목에 들어섰지만 올해 목격하듯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가 채 가시지는 않은 과도기이다. 백낙청 선생의 지적대로분단시대의 끝자락, 통일시대의 들머리가 충돌하는 지점이기 때문에 모든 일이 순탄하게 나가지는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숱한 우여곡절과 우회, 반전이 숨어 있는 6?15시대에는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기만 하면 되었던 이전의 냉전시대보다 훨씬 정교한 대응을 필요로 한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6?15시대를 상징하는 사업이 아닌가 싶다. 2005년 2월 19일 남북공동편찬위원회가 금강산에서 결성되면서 겨레말사전은 16년 전의 약속에서 현실의 문제가 된 후로 2년 동안 여덟 차례의 공동편찬회의가 서울, 평양, 개성, 금강산, 북경을 오가며 열렸다. 겨레말큰사전은 남과 북의 언어 뿐만 아니라 오랜 이산의 삶을 살아온 재외동포의 말까지도 포괄하는 최초의 우리말 대사전 작업인 관계로 중국 지역 조선족 동포가 살고 있는 연변지역을 방문할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 남과 북의 교류협력이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이뤄지기 전에 연변 조선족 사회는 북과 접촉하는 유일한 우회통로였다. 중국 연변지역은 사회주의 체제의 지배원리가 작동하고 지리적으로도 인접한 곳이며 말과 혈통을 같이하는 조선족이 집단거주해온 사회였기 때문에 중국과 수교가 이루어진 뒤에 연변은 북을 들여다보는 창(窓)과 같은 역할을 했다. 실제 연변 조선족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려서 배운 조선말과 글의 기준은 다 북쪽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조선족 사회는 한국과 거의 실시간으로 움직인다. 위성방송으로 한국의 인기드라마를 같은 시간대에 시청하고, 왕래가 빈번하기 때문에 생활어도 남쪽을 많이 닮아간다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조선말, 한국말, 연변말이 뒤섞이면서 아직 북측 언어체계를 따르고 있는 교육현장과 실제 생활과의 괴리 등 여러 부문에서 정체성의 혼란이 나타나고 있다. 연변 쪽 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한반도 근현대사의 격동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지켜보았고, 두 개의 사회제도를 경험하고 있으며, 조선동포이면서 동시에 중국 인민이기도 한 연변 조선족의 특수한 처지가 역설적으로 한반도의 미래를 편견 없이 볼 수 있는 제3자의 눈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우리가 지향하는 통일이 1945년 이전 시점으로 돌아가 남과 북을 단순통합하자는 것이 아니라면, 통일이란 남과 북이 각기 걸어온 길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다른 측면을 적극 받아들여 우리 모두가 풍성해지는 길일 것이다. 우리의 통일이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먹어버리거나 일 대 일로 단순 통합하는 것이 아니듯 겨레말큰사전편찬사업은 남과 북의 어휘를 단순히 통합하는 작업이 아니라 겨레말에 녹아 있는 우리 민족의 유산과 얼을 발굴하여 민족 공동체 의식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고. 통일 조국의 밝은 미래를 담보하는 일이다. 어디 이 일이 한반도에만 그칠 일인가. 중국, 러시아, 일본, 미주, 유럽에 이르기까지 집단적 이산의 삶을 살아온 우리의 묵은 상처가 회복되는 순간, 민족어의 영토가 한없이 넓어지면서 우리의 언어도 그만큼 풍성해질 것이다. 물론 공통의 사전 한 권을 우리들 손에 올려놓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6?15시대의 특징이 그러하듯 남과 북의 편찬 작업자들은 어느 한 순간 긴장을 놓지 못하고 격돌하고 논쟁하며 또 한편으론 서로를 아울러 갈 것이다. 평양과 서울, 북경과 개성, 금강산을 종횡으로 연결하며 이어가는 공동편찬회의. 우리 민족이 오랜 고통의 시간을 대가로 지불한 이 유례없는 우리만의 역사를 버물려 가장 풍성한언어의 창고를 함께 만들어내는 작업에, 작은 역할이나마 거들고 있다는 사실에 매번 감격하곤 한다./이재규(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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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2.13 23:02

[문화마주보기] 산촌의 겨우살이 - 장성수

산촌의 겨울은 빠르게 찾아온다. 겨울로 접어든 산골 마을은 황량하다. 가을걷이를 이미 끝낸 논은 벼 그루터기만 앙상한 채 비어있다. 고랑 사이로 헤어진 검은 비닐 조각만 바람에 흔들릴 뿐 밭도 마찬가지다. 감나무 가지 끝에 달려있던 까치밥도 까치와 산비둘기 떼가 이미 다 쪼아 먹어버렸다.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었던 앞 뒷산도 어둔 색으로 산색을 바꾸었다. 이제 머지않아 동장군의 칼바람이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그리고 폭설도 내릴 것이다. 바야흐로 산골마을은 세상과 뚝 떨어진 채 기나긴 겨울을 외롭고 힘들게 견뎌야 한다. 봄이 다시 와 막힌 길을 열어줄 때까지.그래서 산골마을은 겨우살이 채비로 분주하다.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쟁이는 일이다. 아낙들은 배추를 절이고 무를 씻어 김장을 담가야 한다. 땅에 파묻은 항아리에다 동치미와 포기김치를 쟁이면서 아낙들은 백만금 재산을 얻은 것보다 더한 뿌듯함을 느낀다. 저들은 서서히 숙성되어가면서 온 식구들의 구복을 즐겁게 해줄 것이므로 아낙네들의 기다림은 지루하지 않다. 항아리에다 볏짚을 깔아 차곡차곡 쟁여둔 대봉시는 그들의 부족한 영양을 챙겨줄 것이므로 더욱 마음이 든든하다.한편 남정네들은 온 산이 눈으로 덮이기 전에 떨어진 낙엽을 끌어 모아 쟁여야 한다. 황토방의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는 불쏘시개로는 솔잎과 솔가지가 제격이다. 숲속을 돌아다니며 간벌해놓은 통나무들을 주워다가 알맞게 톱질하여 마당 한편에 쟁이는 일도 그들의 몫이다. 추운 겨울을 나는 데에는 무엇보다 등이 따스워야 하기 때문이다. 한밤중 아궁이 속에서 아직 발갛게 빛을 발하고 있는 숯덩이를 모아 헛간에 쟁여둔 밤과 고구마를 구워 헛헛한 배를 채우는 일도 중요하다. 기나긴 겨울밤을 무사히 나려면 등도 따스워야 하지만 뱃속도 든든해야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세상과 단절된 산촌의 겨우살이에서 정말로 중요하고도 필요한 것은 마음의 채비이다. 그것은 홀로 살아 감(獨居)에 편안함과 충족감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자세이다. 그것은 또한 말 많고 탈 많은 세속의 시끄러움에서 등을 돌려 스스로를 외롭게 할 수 있는 용기이기도 하다. 켜켜이 쌓인 세속의 온갖 영리와 욕망이라는 먼지들을 떨어내고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할 수 있어야 한다. 폭설로 고립된 산촌에서 오로지 간간이 지저귀는 새소리에 기쁨을 느끼는 귀만을 열어놓아야 한다. 차디차고 흐린 겨울 하늘이 쩍 갈라지며 언뜻 내비치는 한소끔의 햇빛에 다시 돌아올 봄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눈만을 열어놓아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침묵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겨울은 우리에게 소외와 단절의 시간이 아니라 정화와 생성의 순환을 깨닫게 해주는 귀중한 시간이다.벽에 걸린 추사선생의 세한도를 다시 한번 바라본다. 선생의 서릿발처럼 올곧은 겨우살이를 헤아려 보며 마음을 다잡아 보는 지금은, 바야흐로 한창 겨울이다./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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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2.06 23:02

[문화마주보기] 음식도 문화예술도 골고루 섭취 - 정수완

<비타민>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우리가 즐겨먹는 식품 속에 우리의 질병을 다스리는 성분들이 있음을 알려주는 위대한 밥상이라는 코너라고 한다. 몇 년 전부터 전국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웰 빙 붐과 함께 잘 먹음으로서 잘 살 수 있음을 알려주는 유익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방송되었던 내용이 책으로까지 출판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애독되고 있다고 하고, 실제로 방송된 식품이 방송 후 바로 시장에서 동이난다고하니 이 프로그램이 실제로 인기가 있긴 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을 보니 현대인들에게 질병 없이 장수하는 것이 큰 관심이긴 한 모양이다. 필자도 몇 번인가 이 프로그램을 본 일이 있다. 토마토가 몸에 좋다고 하면 토마토를 꼭 먹어야할 것 같았고, 시금치가 몸에 좋다고 하면 시금치를 꼭 먹어야할 것 같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매회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몸에 좋은 식품들이 하나씩 늘어나면서 <비타민>이 주장하는 것처럼 10년 젊고 건강하게 살기위해서는 매일 매일 먹어야할 식품들이 너무 많아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게 된다는 사실이다. 결국 매일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 편하게 골고루 섭취하면 우리 모두 건강하고 젊게 살 수 있는 것인데 너무도 단순한 이 사실을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다만 음식문화에 국한된 현상만은 아닌 것 같다. 이는 우리 문화 전반에 걸쳐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몇 해 전만해도 대중들과 쉽게 만나기 힘들었던 뮤지컬이 요즈음 새로운 대중예술매체로 급부상하고 있다. 해외에서 크게 각광받는 한국 오리지널 뮤지컬들이 제작되고 있고, 뮤지컬 배우들이 새로운 스타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인기 있는 외국작품의 한국 공연을 통해 한국 뮤지컬 연출의 독창적인 시각이 평가받기도 하고, 외국 뮤지컬 스타들에 견주어 뒤지지 않는 한국 뮤지컬 배우들의 능력이 재평가되기도 한다. 뮤지컬 배우들의 팬클럽도 활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뮤지컬의 발전은 대중 예술의 다양화의 측면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새롭게 부상하는 뮤지컬의 위상이 다른 대중문화를 위축시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연극계가 뮤지컬로 위축되지 않고 상호작용을 통해 함께 발전하기를 바란다. 최근 뮤지컬의 인기가 상승하면서 각 대학의 연극학과들이 뮤지컬학과 만들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연극학과가 연극학과라는 이름을 없애고 뮤지컬학과와 통합하여 공연예술학과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발전이 연극과 뮤지컬이 더욱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한 음식이 몸에 좋다고 그 음식만 먹어 건강할 수 없듯이 건강한 예술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매체에 대한 다양한 관심들이 꾸준히 있어야 할 것이다. /정수완(전주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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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1.22 23:02

[문화마주보기] 전통문화자산의 지식정보화 - 홍성덕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라는 말이 있다. 어느 분야에서건 미칠 정도로 집중하지 않으면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처럼 미치도록 찾아서 뛰는 것이다. 그냥 책상 앞에만 앉아서 경쟁력이 있다고 말하고, 누군가를 설득시키기 위해 힘을 쏟기보다는, 경쟁력이 있음을 찾아서 미치도록 보여주는 것이고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자산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할 때인 것이다. 왜 아직도 검증받기를 원하는가 ? 전통문화중심도시, 한브랜드 전략기지화 사업 등에 있어 전주와 전라북도가 가지고 있는 자산은 모두가 수긍하고 있는 우리의 강점이다. 그런데 너무나도 당연한 그것에 대해 우리들은 우리가 우리만이 이렇게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수많은 논리개발에 몰두해 왔다. 많은 사람들을 불러다 전주를 보여주고 전주와 전라북도가 얼마나 전통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는지를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참가자 대부분들이 우리의 명제에 대해 동의하기도 하였고, 유익한 코멘트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갔다. 서서히 드러나는 사업들이 보이긴 한다. 그럼에도 왠지 허전한 것은 그 모든 것들이 대부분 청사진만 있을 뿐, 체감지수는 매우 낮기 때문이다. 적절한 시점에 필요한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여전히 미쳐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다. 설득에 힘을 쏟았는지 새롭고 놀랄만한 아이디어는 보이지 않는다. 늘 뒤만 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불안감도 상존하고 있다.정통부에서 추진하는 지식정보자원관리 사업이 있다. 1999년부터 과학시술, 교육학술, 문화, 역사 등의 분야 227개 과제에 총 3,479억원이 투자된 정보화사업이다. 호남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전북대학교박물관이 호남지역 고문서 디지털화 사업을 추진한 불모지의 사업분야이다. 2007년도에 사업공모가 진행 중인 이 사업의 수요조사를 보면 우리들이 뭘 해야 하는지를 생각게 한다. 수요조사에서 제시된 과제는 104개였다. 이 과제들 중에 우리 지역에서 제시한 것은 전통소리문화, 호남지역 고문서, 전통복식 등 단 3건에 지나지 않는다. 한옥, 성씨문화는 경북지방에서 하겠다고 제안했고, 유교문화는 수년째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가진 것이라고는 전통문화자산밖에 없는 우리가 갈 길은 그 자산을 고도화시킬 수 있는 콘텐츠의 집적에 있다. 지식정보화사업은 우리가 우수하다는 것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분야로서 정말로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사업인 것이다. △ 홍성덕 연구사는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에 근무하다 전주로 내려와 전주시청 연구원을 거쳐 현재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으며, 대통령비서실 정책자문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등을 맡고 있다./홍성덕(전북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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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1.15 23:02

[문화마주보기] 남북문학인 단일조직을 지켜보며 - 이재규

지난달 30일 금강산에서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문인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단일문학인 조직이 출범했다. 작년 평양에서 열린 민족작가대회를 통해 60년 만에 얼굴을 마주했던 남과 북의 작가들이 이번에는 <615민족문학인협회>라는 이름으로 단일한 문학조직을 결성한 것이다. 애초 7월로 예정되었던 대회가 북측의 수해로 인해 불과 하루를 앞두고 긴급하게 취소된 후 삼개월 동안 남북관계는 6?15공동선언 이전의 상황인 것처럼 긴박한 대치국면으로 전환되었고 대회 자체의 성사도 한치 앞을 가늠하기 어렵게 되었다. 어렵게 일정이 잡힌 대회를 다시 연기하자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북 핵실험 이후 남쪽 사회의 변화된 대북 정서는 간단치 않은 문제였다. 그렇지만 작가들은 다시 만났다. 동족끼리의 전쟁과 오랜 이산이 가져다준 우리 내면의 상처에 대해 누구보다 민감할 수밖에 없는 작가들이기에 전쟁을 반대하고 이 땅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자신들이 먼저 무거운 짐을 져야 한다는데 공감했던 것이다. 물론 현장에서의 팽팽한 긴장과 갈등도 적진 않았다. 작년 작가대회에 이어 이번 협회 결성의 실무과정을 지켜보고 또 거들면서 현장에서 느낀 답답함을 지면으로 다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엄연한 체제의 차이가 가져오는 생각의 차이는 대회 진행의 세세한 대목에서 충돌을 불러왔다. 연설문 자구 하나하나, 축하 노래 한곡을 선정하는 데에도 살얼음을 걷듯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남쪽의 최근 언론환경을 잘 아는 남쪽 작가들의 언행은 조심스럽다 못해 안쓰럽기까지 했다. 분단체제라는 괴물이 어느 순간 다시 우리를 덮칠 것인지 오래 몸으로 겪어온 작가들의 지혜가 발휘되어 대회는 그렇게무사하게 성사되었다. 6?15민족문학인협회는 분단문학을 극복하고 남북의 문학적 공동체를 복원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최초의 남북 단일조직의 탄생은 남북교류사에서 큰 획을 그은 것이 되지만 무엇보다 앞으로 전개될 모든 예술교류의 차원과 형식을 바꾸게 될 것이다. 특히 남북 작가들의 공동 취재와 공동 집필, 문학작품 교류 등이 실행되게 되면 남북 문단은 본격적인 문학교류를 시작하게 된다. 남북의 작가들이 오랫동안 각자의 지역에서 다른 이념을 교육받고 다른 방식으로 사고했던 독자들만을 대상으로 문학 활동을 전개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이제 북의 작가들은 남측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남측 작가들은 북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는 시대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일제 강점에 의해 36년간 겨레말을 빼앗기고 살았다. 해방이 되자마자 다시 강요된 분단으로 그 후 61년 동안 민족어공동체가 분단된 채 서로를 적대하며 살면서 말과 상상력을 규제당하고 살아야 했다. 한반도를 떠나 이국을 떠돌던 재외동포들의 삶도 이 대립구도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어떨 땐 더 가혹하게 분단의 실체와 마주치기도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오랜 분단과 이산의 결과 우리 민족은 이 세상의 어떤 다른 공동체도 경험하지 못한 서로 다른 두 체제의 길, 생활방식, 사고의 체계를 한 민족 안에서 두루 경험한 유일한 민족이 되었다. 20세기 냉전체제의 비극적 산물로 고통을 강요받았던 우리 민족이 화해와 통합, 이질적인 것의 공존을 주축으로 발전해갈 21세기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선도하고 경계를 넘는 상상력을 폭발시킬 축복을 받은 것은 아닐런지. 금강산호텔에서 북측 실무성원과 서로 언성을 높여가며 생각의 차이를 주고받으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그런 역설적 축복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었다. /이재규(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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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1.08 23:02

[문화마주보기] 프랑스 한 시골의 책 마을 - 장성수

지난 12일부터 열흘 남짓한 일정으로 프랑스를 다녀왔다. 프랑스의 여러 박물관과 각 지방의 자료집성 센터를 방문하여 그들의 자료 집성에 대한 기술 동향을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초가을의 날씨였지만 그곳의 풍광은 사뭇 달랐다. 처음 우리가 머물렀던 수도 파리는 듣던 대로였다. 유명한 르부르 박물관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기차역을 개조해 만든 오르새 미술관이나 대통령 친구의 도움으로 세워졌다는 께 브랑리 아시아 및 아프리카 인류학 박물관은 우리들의 부러움을 살만 했다. 프랑스인들에게 옛날과 오늘은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었다.바쁜 일정으로 자세한 속내를 드려다 볼 수는 없었지만, 단순한 관광여행에서는 보지 못할 몇 가지를 볼 수 있었다. 그 중 스위스와 독일의 접경에 위치한 로렌 지방의 퐁트누와 라 주트라는 조그만 시골 마을은 특이한 곳이었다. 세계적인 크리스탈 생산지로 유명한 바카라에서 약 7Km 떨어져 있는 이 마을은 인구가 겨우 280여명밖에 안되는 곳으로 우리 일행을 안내해준 프랑스인조차 잘 모를 정도로 한적했다. 검은 구레나룻이 멋진 촌장이 이곳의 역사를 들려주었다.이곳에 지역구를 둔 프랑스와 기욤이라는 프랑스 정부의 농림부 장관이 자신의 고향이 점점 쇠락해 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책 마을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곳이 적격지로 선정되었고, 마침내 96년에 책 마을을 열게 되었다. 프랑스 전체에서 세 번 째로 조성된 책 마을이다. 당시 이곳은 지속적으로 농민인구가 감소했고, 따라서 빈집이 늘어났기 때문에 서점을 유치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용이했다.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만이 이 마을로 들어올 수 있는데 18개의 책방 외에 출판, 책 수선, 서예(서양식) 등 책과 관련된 가게가 8곳이 있다. 총 26개의 가게가 행정관청 주위의 마을 중앙에 몰려있다. 문을 연 당시부터 10년 동안 방문객의 수는 80만 명으로 일년에 평균 7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 이 마을로 책을 사러오는 사람들은 프랑스인뿐만 아니라 벨기에, 독일, 멀리는 북유럽 사람들까지 있다.프랑스 정부는 국가예산을 책정해서 책 마을 조성사업을 지원하였다. 마을로 들어와서 책방을 운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정부로부터 이주에 관련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집 구입, 수리 및 개조 등을 할 수 있는 자금이 정부로부터 지원되었다. 초기에는 빈집이 많아서 이주가 비교적 수월했던 반면, 현재는 상황이 달라졌다. 책 마을에 대한 소문이 나면서 이주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집의 수는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이 마을에서 빈집을 찾을 수 없다. 이 점만 보아도 농촌회생운동은 성공한 것이다. 대도시에서 책방을 경영하다 초기 이 마을로 이주했다는 최고참 서점 주인은 이전보다 훨씬 수입이 좋다면서 한국 사람들의 방문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지역 농민, 상인 간의 대타협과 화합이 이런 명소를 만들었다며 여유 있는 웃음을 지었다. 내 머리 속에는 날로 피폐해져 가는 우리의 농촌이 떠올랐다. /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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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1.01 23:02

[문화마주보기] 논술과 독서 - 정수완

지난 일요일 수시 대학 입시 논술 고사 채점위원으로 하루 종일 학생들의 논술 고사 채점을 했다. 빽빽이 써내려간 많은 아이들의 답안지를 채점하면서 논술이라는 제도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암기식, 주입식의 현 교육제도의 한계를 보안하고,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언젠가부터 각 대학들은 앞다투어 입시에서 논술 고사의 비중을 강화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과 함께 긴 문장 읽기와 오래 생각하기를 힘들어하게 된 아이들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수 있다는 점에서 논술은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마치 모범답안지를 외워 쓴 듯한 120명 입시생들의 똑같은 답안지를 보면서 과연 논술 고사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사실 논술 고사가 대학 입시에서 당락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며 호들갑을 떨며 논술 학원을 보내고, 논술 과외를 시키는 주위의 학부형 친구들을 보면서 논술이 창조적인 아이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어, 수학 등 많은 과외 수업에 힘겨워하는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짐을 지게 하는 것은 아닌가하고 걱정하곤 했다. 자기 생각을 하는 창조적인 아이들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생긴 논술 고사가 오히려 아이들을 정형화되고 기계적인 사고를 하는 로봇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며칠 전 외국어고등학교 입시를 마친 아들을 둔 친구가 입시 논술 시험에 자신이 예상해준 문제가 그대로 나와 아들이 시험을 잘 보았다고 자랑하던 모습이 생각이 났다. 아들이 자신이 만들어준 모범답안대로 잘 쓰고 나왔다는 것이다. 친구 아들이 좋은 학교에 합격할 수 있다면 축하해줄 일이지만, 그 말을 듣는 나는 어딘지 마음 한 구석이 편하지 않았다.요즘 아이들은 책 한권, 영화 한편을 제대로 볼 시간이 없다고 한다. 논술에 대비해 고전들을 읽긴 읽어야 하는데 두꺼운 고전을 제대로 읽을 시간이 없어 고전을 쉽게 풀이하여 간단하게 정리해 놓은 다이제스트판 고전을 읽는다고 한다. 심지어 영화의 자막 읽는 일을 귀찮아하여 외국 영화 대신에 한국 영화만 보는 아이들 덕택에 한국 영화 산업이 유지되고 있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창조적인 아이들을 만들기 위해 시작된 논술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책읽기와 생각하기의 즐거움과 중요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일요일 내린 비로 끝날 것 같지 않던 여름 같던 가을이 끝이 났다. 이제 본격적으로 가을이 시작될 모양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번 가을 학생들이 시험의 부담에서 벗어나 편안한 마음으로 한권의 책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중학교 때 처음 읽었던 <제인에어>와 <데미안>이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힘이 되는지를 생각해보면, 이번 가을 학생들이 그들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한권의 책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정수완(전주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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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0.25 23:02

[문화마주보기] 불어라 문화의 맞바람 - 홍성덕

한 5년쯤 전의 일이다. 교동 한옥마을 개발에 관련된 의견이 분분했고, 전주역사박물관 건립이 한참 진행되고 있었을 무렵으로 기억된다. 전주 문화판에서 이리 저리 잡일(?)을 하고 있던 젊은 연구자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만나 맞바람을 피운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지역문제에 대한 기탄없는 이야기들이 오고갔었다. 대략 2시간 정도 진행되는 사이버 공간의 만남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정말로 가감없이 내 뱉어버리는 그 공간은 변화에 목마른 30대 힘의 분출구였기도 했다.그리고,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40대 중반의 언저리에 앉아 30대와 50대를 위아래로 바라보면서 낀 세대가 되어가는 것을 족히 느끼고 있다. 맞바람에서 이야기한 것은 당시에 진행되고 있던 한옥마을 개발방식, 향토사박물관, 전주시의 문화판 등등에 대한 맞바람 회원들의 기본적인 고민은, 지역 문화판의 주체이고 방향성에 놓여있었다. 뜬구름 잡는 원론을 말하지 않고 무엇을 위해서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백가쟁명식의 진지한 잡담들이었다. 그때 갈무리한 파일을 보고 있으면 웃음도 나고, 그런 열정은 어디에 간 것일까 하는 자조감에 빠지기도 한다.지역문화의 주체와 방향에 대한 논의의 틀은 지금도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지역의 문화판이 커지고 많은 사람들이 문화판 속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그 한 구석에는 지역이 배제된 행위들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학교 출신이 있기 때문에 억울한 피해를 받았다는 등 학연과 지연이 여전히 꼬리를 물고 있고, 건전한 비판과 의견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런 바닥에서도 젊은 피들은 힘 있게 버텨내고 있다. 전주시내 문화시설들에 종사하는 20-30대의 힘은 그래서 아름다워 보인다. 열악하고 힘든 상황을 굳이 내색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삼척동자라도 그건 이제 모두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젊은 문화일꾼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문화의 맞바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때 거침없이 쏟아 내었던 지역문화를 사랑하는 힘 그 힘에서 부는 그런 맞바람이 필요한 것이다. 문화시설이라는 현실 속에 갇혀 평가의 굴레를 벗어나 버릴 수 없겠지만 20-30대 문화꾼들의 맞바람은 불어야 한다.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는 문화판이 더 오래 끈질기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젊은 문화꾼들의 맞바람이 크게 일도록 하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전주 문화정책의 실패는 곧 이들에게 있음을 이제는 조곤히 앉아 살펴보아야 할 때이다.△ 홍성덕 연구사는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에 근무하다 전주로 내려와 전주시청 연구원을 거쳐 현재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으며, 대통령비서실 정책자문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등을 맡고 있다. /홍성덕(전북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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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0.18 23:02

[문화마주보기] 교양 없는 사회, 인문의 위기 - 이재규

요즘 젊은 후배들에게 최근에 읽은 소설이나 인문사회과학서적이 뭐 있느냐고 물어보면 일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책을 읽는다는 축도 대부분 실용서적이나 처세술이 대부분이다. 영화나 음악에 대해선 시시콜콜한 것까지 쫙 읊어대는 친구도 문학, 역사, 철학은 까막눈인 경우가 적지 않다. 국문학 전공자조차도 교과서에 나오는 근현대작가들 이름과 대표작품 줄거리 정도를 암기할 뿐 원본을 찾아 읽거나 최근 작품을 읽는 경우가 드물다. 인문학 계통의 책들 중에 몇 천 부 판매를 넘기는 경우에는 대박이 났다고 할 정도로 인문 교양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밑바닥 수준이다. 인문학자들의 자가진단을 빌지 않더라도 도처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실감한다. 인문학의 위기가 최근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문사철(文史哲; 문학, 역사, 철학)을 기본으로 세계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통일성을 내세웠던 인문학, 지식인의 존재는 급속한 근대화, 자본주의 고도화 과정에서 계속 주변으로 밀려 나야 했다. 물질과 권력 중심의 이 사회에서는 총체적인 지식인 보다는 기업이 요구하는 표준화된 노동력을 양산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교육정책이 지배해왔으니 당연한 귀결이기도 했다. 인문학의 위기를 좁혀 본다면 돈 안되는 학과인 인문학 전공의 홀대, 인문계의 몰락이 바로 눈앞의 현상일 것이다.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본다면 진정한 근본 문제는 학과를 막론하고 우리 후세대 모두가 인간과 인간 가치에 관한 앎으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교양, 인문을 잃어버린 조각 지식창고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 당대 최고의 선비보다 현대 대한민국 초등학생이 습득하고 있는 정보량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뿐이랴. 실시간으로 세계 반대편의 소식을 전해듣고 원하는 어떤 정보도 인터넷 클릭 몇 번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이 세상이 아닌가. 그러나 컴퓨터를 제 아무리 능숙하게 다룬다 하더라도 단순한 지식정보의 총합이 세계에 대한 인식과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 소통, 통합의 능력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 전통에서는 문사철, 인문을 관통해야 진정한 지식인 대접을 받았다. 서양 사상가 키케로도 모든 영역을 두루 꿰뚫어 보는 지적 능력, 공동체에 대한 의무감, 주어진 상황과 주제를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연설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 이 세 가지 능력을 기르고, 심화시키는 지식과 교육하는 학문 분야를 인문학(studia humanitatis)으로 보았다. 문사철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관련 학자들만의 위기일 수 없다. 인문적 교양이 사라지고 파편화된 지식만으로 쌓아올린 공동체는 영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 일반의 인문적 교양을 드높이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공인하며 인문학적 상상력이 다양한 전문능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하게 하는 사회. 진정한 의미의총체적 인간을 지향하는 그런 세상이야말로 인문학이 꿈꾸는 이상사회가 아닐까. /이재규(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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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0.11 23:02

[문화마주보기] 신 금수회의록 - 장성수

이십일 세기 초엽, 나이 육십에 가깝도록 속진에 푹 빠진 채 허우적대며 살던 한 서생이 있었는데, 어느 날 이러다가는 제 명대로 못살겠다는 깨달음이 퍼뜩 뇌리를 스치더라. 속세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에 누옥 한 채 지어 거처를 옮겼더라. 어느 봄인들 꽃들 다투어 피지 아니하고, 어느 가을인들 잎사귀 울긋불긋 물들지 아니하리오. 우주 조화의 위대함을 이제야 깨닫겠더라. 자연의 가르침에 미련한 서생 깨우친 게 많았으나, 그 중 으뜸가는 깨달음은 인간의 안목이 조조보다 더 간사하다는 사실이라. 누옥 한 채만 횅하니 있을 적에는 사방으로 둘러싸인 산천초목이 자기 집 정원처럼 여겨져 시야가 탁 트이더니, 앞마당을 만들고 잔디 심고 나무 심고 울타리를 치니 금세 시야가 좁아져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버리더라. 제 앞에만 떡 놓으려 하는 사람치고 청맹과니 아닌 자 없다더니 틀림없는 말인 줄을 알겠더라. 어느 봄날, 백화만발할 제 춘풍 언뜻 불어 꽃향기 온 세상 가득 퍼지니 하릴없는 서생 그 향기에 취해 깊은 잠에 빠졌더라. 꿈길에 언뜻 보니 자기 집 안마당에 온갖 금수 모여앉아 웅성웅성 왁자지껄 소란스럽기 짝이 없더라. 깜짝 놀란 서생 몸을 숨기고 저들 하는 양을 살펴보니, 요즘 인간들의 행태에 관해 갑론을박하는 중이더라. 연단에 올라 한참 열변을 토하고 있는 연사는 배불뚝이 개구리라. 분수 모르는 인간들은 우리를 우물 안의 개구리라 하여 소견 좁다 비웃으며 조롱하나 요즘 인간들 저지르는 소행 볼라치면 차마 목불인견이라. 인간들의 탐욕으로 세상 전체가 오염되어 가는 줄은 진작 알았으나, 남보다 더 배운 식자들만이라도 청렴해야 도리이거늘 오히려 썩는 냄새가 더욱 진동하니 인간세상 청정지역 눈을 씻고 찾아봐야 어디에도 없소이다. 우리 개구리 족속은 우물에 있으면 우물에 있는 분수를 지키고, 미나리 논에 있으면 미나리 논에 있는 분수를 지키나니, 이로 보면 우리가 사람보다 윗길이 아니오이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개구리 물러나자, 연이어 입에 거품을 문 채 두 팔을 활짝 펴고 당당하게 연단에 오르는 물건이 하나 있는데 보아하니 무장공자, 게더라.인간들은 우리 게 족속을 가리켜 간도 쓸개도 없는 무리라 하여 업신여기기 일쑤요. 그래, 인간은 우리와 달리 창자가 있긴 있소. 허나 옳은 창자 가진 인간이 몇 명이나 되겠소. 인간도 하느님이 아닌지라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를 수는 있는 법, 그러면 사후에라도 자신을 되 돌이켜보아 잘못을 뉘우치면 용서 받을 수 있는데 그러지를 못하니 최소한의 체면이라도 세울 수가 있겠소. 인간으로서의 권위가 이처럼 땅에 떨어졌으니 창자 없는 우리들의 손가락질을 받아도 싸지요, 싸.연이어 들짐승, 날짐승 너도 나도 등장하여 인간을 성토하는데, 백면서생 부끄럽고 참담하여 차마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돌아서는데 가슴이 철렁하며 깊은 잠에서 문득 깨어나니 때는 한여름을 훌쩍 지나 상큼한 바람 솔솔 부는 가을이 되었더라. /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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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9.27 23:02

[문화마주보기] 눈으로 보는 솔직함, 그 내면의 진실 - 홍성덕

문화라는 게 참 묘한 것이다. 시시콜콜 개념이 어떤 것인가 하는 논쟁을 하려는게 아니라, 전주라는 곳 내가 태어나서 줄곧 살아오고 있는 이 도시에 늘 붙어 다녔던 문화라는게 묘하다는 것이다. 전주가 문화도시라는 점에 대해 토를 다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모두가 인정하고 있지만, 전주의 우수한 문화적 역량을 설명하려면 맞닥트리는 고민이 있는데, 그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이다. 언제부터인가 전주의 역사나 문화를 이야기하는 자리가 만들어 질 때면 맨 처음 꺼내는 이야기가 솔직하자는 것이었다. 솔직히 우리 고장인 전주를 봅시다라고 시작하는 이야기는 문화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것으로 종종 끝을 맺는다. 전주가 가지고 있는 전통문화의 우수함을 이야기할 때 쓰는 우수성의 증거들, 언제 만들어졌고, 어떤 의미들을 가지고 있고, 얼마나 아름답고, 유일한 것들이라는 그런 수사들이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하는 고민 때문이다.문화를 산업화할 때 비교적 쉽게 떠오르는 것이 관광산업이다. 전주의 문화코드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은 눈으로 보는 감흥이 적다는 것이다. 전주의 문화적 코드, 소위 7공주ㆍ6공주로 불리는 소리, 음식, 한지, 한옥, 서예, 한방, 영화 등의 가장 큰 특징은 비가시적이고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전주의 역사적 문화유산도 마찬가지이다. 경기전과 풍남문이 경복궁이나 숭례문을 넘기는 어렵다. 그래서 늘 랜드마크가 없다느니 체류하기 부적합하다는 등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눈으로 보는 솔직한 전주의 문화를 가슴에 담고 전주를 이해하지 않으면 그저 우리만 즐거운 동네 문화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관광산업은 보고 즐기는 것에서 체험하고 학습하는 것으로 바뀌고, 웰빙으로 전환하고 있는 중이다. 전주는 그 트랜드 변화의 중심에 서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웰빙 관광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보고, 듣고, 먹고 마시는 즐거움은 당연한 전제인 것이다. 오감을 만족시키는 전략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비가시적 문화를 가시적 문화로 전환시키는 내재적 발전전략이 필요하다. 아울러, 전주 문화역량의 솔직함은 지적재산으로서의 가치이다. 비가시적인 문화를 가시적 문화로 바꾸는 것이 꼭 한옥컨벤션과 같은 랜드마크를 만드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가시적 문화의 산업화 방안 역시 그 문화에 내재되어 있는 지적 가치를 발굴해 낼 때 가능하다. 외형과 내면의 아름다움이 공존해야만 최고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가치는 그 내면의 지적 자산에 의해서만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콘텐츠 이야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주의 문화코드는 인식과 공감만 있을 뿐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자료)은 너무나 적다.△ 홍성덕 연구사는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에 근무하다 전주로 내려와 전주시청 연구원을 거쳐 현재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으며, 대통령비서실 정책자문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등을 맡고 있다. /홍성덕(전북대 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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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9.13 23:02

[문화마주보기] 민족의 영토, 그 아련한 꿈 - 이재규

요즘 텔레비전 사극은 온통 고구려 이야기이다. 고구려 개국의 주인공인 <주몽>, 고구려 말기의 영웅 <연개소문>에 이어 고구려 이후의 발해 이야기인 <대조영>까지 모두 한반도를 넘어 만주 일대를 무대로 하고 있다. 중국의 한나라 당나라와 맞서 싸우며 만주벌판을 말달리던 호걸들의 이야기는 잠들어 있던 우리의 대륙기질을 부추기며 한반도 아래쪽으로만 향하고 있던 눈길을 저 멀리 잊었던 땅, 북방으로 돌리게 한다. 우리 민족의 영토가 저기인데. 아쉬움 끝에 마른 입술을 적셔 보지만 드라마가 아닌 현실은 어떤가.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 발해를 중국의 변방정권으로 규정짓는 역사작업의 한편으로, 백두산 경계를 포함한 현실의 국경 유지를 넘어서 한반도 유사시 동남진할 현실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작성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남북대립의 덫에 치어 단일민족국가의 수립이라는 근대의 문도 여직 통과하지 못해 버둥거리고 있는 사이에 말이다. 중원을 공략하려던 고구려의 꿈은 변방 소수민족사의 몇 줄에 그치고 말 뿐 우리의 현실적 영토는 한반도를 지켜내기에도 버거운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일부에서는 1909년 9월 일제가 청나라와 불법적으로 맺은 간도협약에 의해 간도의 영유권을 뺏긴 것이기 때문에 이제라도 되찾아야 한다고 한다. 그럴 수 있을까. 간도협약은 법리적인 측면에서 당연히 무효이지만 현실 국제정치의 세력관계를 볼 때 우리가 간도를 되찾는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간도지역은 현재 중국이 실효적으로지배하고 있을 뿐 아니라 1962년, 64년 조중국경조약을 통해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역은 확정된 상태이다.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유엔이 인정하는 독립국가인 조선과 중국이 맺은 국경조약을 원천무효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중국이 백두산 관할권을 옌벤조선족 자치구에서 지린성 정부로 이전한 것을 보더라도 중국은 한반도 통일 이후의 영유권 분쟁을 미리 대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남은 수단은 전쟁에 의해 무력으로 되찾는 것일 뿐인데 주몽과 연개소문이 한꺼번에 부활한다고 해도 그 전쟁에는 반대하고 나설 것이다. 결국 아련한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면 우리 민족의 현실 영토는 한반도이다. 물론 장구한 역사에서 장차 중국과 러시아가 어떤 변화를 겪을지 모를 일이고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진리에서 보면 미리 그렇게 움츠러들 일은 아니다. 동북아 정세의 변화에 따라 민족의 고토였던 만주, 요동, 연해주 등 지금의 현실적 경계가 어찌 변화될지 미리 예단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한반도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의 분쟁이 발생할 경우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민족의 영토가 오히려 축소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꿈을 놓지 않되 철저히 현실에 바탕한지혜이다. 우리가 60년 대립의 남북분단시대를 넘어 한반도 통일정부를 지혜롭게 성사시켜 나가야만 이 힘을 바탕으로 동북아에서의 주도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고 이 길만이 민족의 영토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고대중국 한나라에 맞서 동북아의 신흥강국을 꿈꾸었던 <주몽>을 보면서 지금 우리 민족의 현실적인 꿈은 어디일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이재규(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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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9.06 23:02

[문화마주보기] 저수지의 밤 낚시꾼들 - 장성수

시골의 우리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그리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규모의 저수지가 있다. 이른 아침 잔잔한 수면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 그 너머로 주위 소나무 숲에 서식하는 백로 떼들이 창공을 가로 질러 날아간다. 겨울이 되면 청둥오리 떼들이 차가운 수면 위를 먹이를 구하느라 부지런히 자맥질하며 떠다닌다. 억새꽃이 겨울 석양을 받아 은빛 비늘처럼 반짝인다. 출퇴근하는 길에 바라보는 그곳의 풍경은 이처럼 한 폭의 산수화가 따로 없을 만큼 아름답고 평화스럽다. 작년 여름엔 물난리가 나서 온갖 부유물들이 수면 전체를 가득 메우는 바람에 흉측한 몰골이더니, 올해는 옛날 모습을 되찾았다.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를 인위적으로 치료하지도 않았는데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을 보며 자연의 자기치유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마가 끝나고 올 여름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될 무렵, 이곳에 낚시꾼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였다. 다른 낚시터는 외래종 붕어가 이미 점령해버렸는데 아직 이곳은 토종 참붕어가 잡힌다는 것이 주된 이유라고 했다. 낮에만 낚시꾼들이 모이는 줄 알았더니, 밤늦은 귀가 길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푸르게 빛나는 형광체가 수면 이곳저곳에 보였다. 차를 멈추고 물가에 내려가 보니 밤낚시꾼들이 던져놓은 낚시찌였다. 적막한 어둠 속에서 푸르게 빛나는 한 점 찌만을 응시한 채 수도승처럼 앉아있는 그들을 보며 오래 전에 읽은 강용준의 소설 초망지비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하나, 둘 길게 꼬리를 그으며 떨어지는 밤하늘의 별똥들이, 통풍을 위해 걷어 올린 모기장을 통해 시야로 들어오게 된다. 은하수도 들어온다. 은하수 너머 더 먼 우주도 들어온다. 정말이다. 인생관이 바뀌고, 세계관이 바뀌고, 우주관이 바뀐다. 증오감도 사라지고, 조급함도 사라지고, 같잖은 명예욕, 까부는 자식들을 향해 앙다물었던 이의 힘도 스르르 제풀에 풀려나가고, 그렇게 된다. 인간이 살면 얼마나 사는데, 그렇게 된다. 밤낚시 경험이 전혀 없는 나에게는 그들이 정말 그런 깨달음을 얻게 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이 스스로를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이유가 단지 월척을 낚기 위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서로를 보듬는 언어보다는 상대에게 치명적 상처를 주는 폭력의 언어가 판을 치는 이 번잡스러운 세간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서는 아닐까. 스스로를 글 감옥에 가두는 문인들이나, 텅 빈 캔버스를 앞에 두고 있는 화가, 내면을 다잡고 악상을 떠올리는 음악가, 흰 벽면을 응시하며 화두에 매달리고 있는 수도승과 그들의 모습은 닮아 있는 듯했다. 출세간함으로써 세간에 드는 묘리를 그들은 이미 터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면을 고요히 응시한 채 돌부처처럼 앉아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평생 수도승처럼 글을 써온 최명희 선생을 떠올렸다. 그녀가 남긴 어둠은 결코 빛보다 어둡지 않다는 말의 뜻을 알 것도 같았다./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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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8.30 23:02

[문화마주보기] 도시 만보객으로서의 기쁨 - 정수완

파리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미국의 한 대학교수가 세계에서 비만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로는 미국이, 가장 적은 나라로는 일본을 꼽으면서 그 이유로 일본인이 하루 평균 6.4Km를 걷는데 비해, 미국인은 하루 평균 1000에서 3000보를 걷는데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발표했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건강한 생활에 걷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기사였다. 갑자기 끝없이 걸어 다녔던 파리에서의 일주일이 생각났다. 그리고 나는 걷기가 육체의 건강 뿐 아니라 또 다른 행복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파리는 작은 도시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곳은 모두 걸어서 갈 수 있다. 실제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보아도 한 정거장이 30초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래서인지 거리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나도 그 중 한사람이었다. 개선문에서 에펠탑까지, 오르세 박물관에서 세느강을 건너 루브르 박물관까지, 그리고 룩셈부르 공원에서 솔본느 대학까지... 이렇게 걷다보니 그 동안 보지 못했던 파리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보지 못했던 파리의 뒷골목이 보였다. 골목과 골목 사이에 있는 작은 상점과 찻집에서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파리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도를 보지 않아도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골목 모퉁이에 있는 빵집, 시장 입구에 있는 과일 가게, 어느 벽에 붙어있는 작은 영화 포스터와 콘서트 포스터가 거리의 이름보다 먼저 내 머리 속에 남았다. 파리는 이번이 네 번째다. 지금까지 내게 파리는 박물관의 그림과 영화관의 영화로만 기억되었지, 파리라는 도시 그 자체로는 기억된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걸어 다녔던 골목, 거기서 만났던 사람들이 내 발과 내 머리 속에 그대로 기억되어있다. 지도를 보지 않아도 파리의 모습이 그대로 떠올랐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신문을 읽으며 서울을 떠올려보았다. 30년을 넘게 살아 온 곳이다. 그런데 서울의 모습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서울의 거리를 걸어 본 기억이 아득하다. 이런 저런 핑계로 서울에서는 참 걷지 않는다. 내 발이 기억하는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서울이 아름답지 않은 도시라고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서울을 구석구석까지 잘 알고 하는 말일까? 문득 전주의 한옥마을이 생각났다. 처음 한옥마을을 둘러보며 놀라고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그곳을 차로 지나갔다면 한옥마을에 대한 기억이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기차와 자동차가 처음 생겨났던 근대 초기, 사람들은 걸어 다니며 보던 풍경과 다른 풍경을 보며 경이로워했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너무 자동차의 속도로만 풍경들을 봐왔다는 생각이 든다. 천천히 걸으며 몸으로 도시를 느낀다면 건강이외에 더 많은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수완(전주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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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8.23 23:02

[문화마주보기] 천년전주, 한옥마을의 승부수 - 홍성덕

전주는 전통을 꿈꾼다. 정확하게 전통에 기반한 현대 생활문화를 지향하고 있지만 전통이 갖는 시공간적 의미와 평가에 대해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기도 하다. 전주가 가지고 있는 전통의 문화자산들은 분명 조선시대에 크게 발전하였거나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우리의 전통문화도 조선시대 유교이념에 의해 형성된 문화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전주의 한옥마을에 대해서도 막연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한옥은 조선시대 기와집이라는 생각 때문에 전주를 방문한 여행객들이 한옥마을이 어디에요?라고 묻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시대에 형성된 마을이 아닌 전주 한옥마을에는 우리가 보았거나 알고있는 생각 속의 한옥이 없다. 한옥마을의 우수성을 이야기 하는 것은 한옥이라는 건물의 외양이 갖는 전통성이 아니다. 한옥이라는 기와집 형태의 가옥이 전근대에서 근현대에 이어지기까지 자생적으로 발전해 오고, 전주사람들이 그 속에서 살아 왔기 때문이다. 1999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옥마을에는 일복식 목조건물이 11%를 차지하고 있고, 일제시대에 지어진 가옥이 46%, 해방 이후 70년대까지가 49%를 차지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전주 한옥마을은 조선시대 마을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시한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전주한옥마을의 역사 때문이다.지금 전주 한옥마을은 공사 중이다. 곳곳에서 낡고 칙칙한 한옥을 걷어내고 조선시대 형식의 한옥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마을의 자생적 발전이 탄력을 받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다 천년전주, 전주한옥마을만의 색깔과 목소리는 없어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정비례해서 쌓이고 있다. 도시한옥과 주미의 생활은 사라지고 무늬만 조선시대인 한옥과 가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몇 년이 지나면 도심 속에 자리잡은 민속촌이 하나 형성될 듯하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전주한옥마을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전주 한옥마을의 정체성은 근현대 100년의 가옥과 생활에 있다. 경제적 논리에 의한 변화는 최소화하고 한옥마을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는 정책이 시행되어야 할 때이다. 시대별 주거의 변화와 근현대 생활사를 느낄 수 있도록, 시기별 대표적인 한옥을 매입하여 당시 생활상을 복원하고, 그 점들을 연결하는 한옥마을 관광루트를 개발해야 한다. 아울러 현재 남아있는 도시한옥에 대해서라도 종합적인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조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속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조사이다. 한옥은 껍질이고 사람은 알맹이이기 때문이다. 알맹이를 빼놓고 껍질만 바라보는 것은 앙꼬 없는 찐빵과 다름없다. 전주한옥마을의 승부수는 조선시대로의 회귀가 아니라 근현대 100년의 문화자산을 끌고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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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8.16 23:02

[문화마주보기] 전북의 문화발전지수 얼마? - 이재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7월 27일 발표한2004~2005 민주발전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화영역의 민주발전지수(5.00점 최고기준)는 3.00으로 전체평균 2.91에 비해 다소 높게 나타났으나 시민사회 영역 안에서는 하위에 해당되는 점수를 받았다. 정보, 교육, 인권, 여성 영역에 비하면 상당히 뒤처지는 것으로 나왔다. 문화영역은 공공도서관 수, 문화관광 관련예산, 도서관 이용회수, 가계지출 중 문화비지출 비중, 1인당 도시공원면적 등 주로 문화 인프라에 관련된 사항을 기준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이런 방식의 계량화가 문화발전의 객관적 지수화에 딱 들어맞는 것이냐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일정한 한계를 감안하고 하나의 비교 치로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공공도서관수는 인구 1만명당 0.1개로 나타나 체코,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등 동구권 국가들의 3.8~7개에 비해 그 수가 적게 나타났으며, 1인당 연간 평균 도서관 이용회수도 선진국의 20회 이상에 비해 평균 3.48회로 매우 적게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도서관 수가 제법 늘고 있는 추세인데도 그렇다.또한 가계지출 중 문화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0~20%로 20% 이상 문화비를 지출하는 선진국에 비해 많이 부족한 편이다. 정부 예산 가운데 문화관광예산은 전체 정부예산에 대비해 선진국은 3% 수준인 반면 우리는 1%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주목할 점은 문화전문가들이 문화시설의 지역간 격차가 매우 심각하다고 평가했으며, 소수자 문화나 주변부 문화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답변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문화인프라의 지역 간 격차, 계층 간 격차는 결국 지역주민들의 삶의 만족도를 떨어뜨릴 것이고 지역 간, 계층 간의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지만 일반인들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시민들의 문화생활을 위해 기울이는 노력 정도를 그저 그렇다고 평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지역의 문화발전지수는 어느 정도일까. 지방자치 15년 동안 축제 등의 문화행사는 외형상 크게 늘어났지만 지역주민이 체감하는 문화적 삶의 질은 그렇게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할 것 같다. 주5일제근무가 확산, 강화되면서 여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만 이러한 욕구를 수용할 문화공간과 프로그램은 크게 부족하기만 하다. 고령화시대로 접어들면서 노인들의 여가문화 등 새로운 문화적 욕구를 담아내는 특별한 정책도 시급하기만 하다.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와 기대를 담아낼 수 있는 인프라의 구축과 프로그램의 개발에 시민(사회), 지방자치단체, 정부가 함께 나서야 한다. 소득 몇 만 불 시대, 집집마다 차 몇 대 하는 경제적 차원의 사회발전 지표보다 우리 마을에 도서관이 몇 곳, 문화공간과 프로그램은 얼마, 우리 집의 읽을만한 책은 몇 권인가를 가장 중심적인 삶의 질로 계측하는 그런 고장, 진정한 문화중심도시를 꿈꾸어본다. /이재규(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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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8.09 23:02

[문화마주보기] 자서전을 씁시다 - 장성수

우린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또 그것을 오랫동안 배워왔지만, 정작 우리 자신의 역사를 갖지는 못하였다. 우리가 배운 역사란 왕조나 지배계급의 흥망성쇠, 위대한 인물들의 영웅담, 그리고 거창한 사건들로 대부분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역사의 큰 물줄기를 이루는 다수 보통사람들의 삶과 그 자취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이들의 삶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일은, 따라서 역사를 민주화하는 작업이며 은폐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이기도 하다.그런데 이런 일은 먼 옛날을 통해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까운 옛날인 지난 20세기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시기도 그렇게 한가하게 해찰할 여유가 없다. 시대를 증언해 줄 많은 분들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이 시대 생활의 흔적이 급격히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서둘러야 할 일은 지난 20세기를 살아온 그들 스스로의 입으로 자신의 생애를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역사의 객체로만 머물러 있던 그들을 역사의 주체로 세우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역사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날의 삶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민중들에게 일상적 삶은 전쟁이나 혁명보다 중요하다. 20세기 한국 민중이 겪은 거창한 사건들도 이러한 일상생활을 떠나면 진정한 역사가 될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들 스스로가 말하거나(구술하거나) 쓴 생애사 또는 생활사, 다시 말하면 자서전은 역사 바로 잡기의 구체적 실천 가운데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 동안 우리는 역사에 이름을 남길만한 사람들이나 자서전을 남기는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민중들의 자서전이란 이른바 잘난 사람들이 쓰는 자화자찬 일변도의 찬양록이나 회고록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일제시대, 6?25전쟁 등등으로 이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한국의 민중들은 어떤 형태로든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그들의 마음 속 깊이 넣어둔 삶의 응어리들은, 그것이 자서전으로 복원되는 한, 한국 현대 생활역사 자료의 귀중한 보고가 된다.그들의 파란만장한 일상적 삶의 역정을 듣고 기록하는 일은 그들의 생애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지금 바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올해로 4년째 이런 일을 해온『20세기 민중생활사 연구단(www.minjung20.org)』에서는 때마침 민중자서전을 널리 공모하여 수집하고 있다. 가능한 한 그것들을 많이 모아 체계적이고도 종합적인 자료집성을 구축해야 한다. 21세기 우리 세대들에게 주어진 역사적 책무이다. 그 임무 수행의 구체적 방법이나 내용에 대해서는 연구단 홈페이지에 들러 그들의 작업을 참고하기를 권한다./장성수(최명희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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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8.02 23:02

[문화마주보기] 나를 찾아 떠나는 산사로의 여행 - 정수완

해인사를 다녀왔다. 신임교직원 여름수련회라는 조금은 강제적인 모임 때문이었다. 영화제 프로그래머라는 일을 시작하고부터 계속된 잦은 출장으로 짐을 싸고 짐을 푸는 일에는 이력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2박3일의 짧은 여정의 해인사 여행을 앞두고는 무엇을 준비해야할지 많이 망설여졌다. 스님들과 똑같은 생활은 아닐지라도 산사에서의 생활은 도심의 세속 생활과는 다른 생활이 될 것이다. 그곳에서의 생활에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필요치 않을까?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가득 안고 떠나던 출장 때와는 달리 해인사로의 발길은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산사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입고 있던 옷을 벗어버리고 수련복으로 갈아입는 일이었다. 산사에서는 나를 꾸미거나 치장할 필요가 없었다. 꾸민 겉모습이 마치 나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았던 속세의 생활을 버리고, 모두가 같아 보이는 속에서 진정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두 번째로 산사에서 필요 없는 것은 말이었다. 길을 걸을 때나, 밥을 먹을 때나 묵언을 해야 한다. 하지만 말을 잊음으로서 얻는 것들이 많았다. 오랜 만에 밥의 참맛을 느낄 수 있었다. 밥의 단맛, 고추장의 달콤한 내음, 콩나물의 고소함... 그동안 우리가 밥을 먹으면서도 제대로 밥을 먹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걸을 때에도 말을 줄이니까 생각이 늘었다. 보이는 것도 늘었다. 하늘이 보이고 땅이 보였다. 그리고 잊고 있던 내가 보였다. 게다가 속세에서 말 때문에 생기는 많은 오해와 싸움들을 생각해보면 묵언은 참 많은 소중한 것들을 가져다주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산사에서 필요 없는 것은 잠이었다. 10시가 넘어야 하루의 일과가 끝이 난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3시 예불로 또 하루가 시작된다. 잠이라고 해서 제대로 잘 수 있는 시간은 4시간이 채 못 된다. 그러나 짧은 4시간의 산사에서의 잠은 속세에서의 긴 잠보다 더 꿀맛 같았다. 이처럼 옷과 말과 잠을 버린 산사의 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이 있었다. 고통이었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1시간이 넘는 산행을 해야 했고, 저린 발을 주물러가며 참선을 해야 했다. 익숙하지 않은 움직임으로 108배에 도전해야했고, 암모니아냄새가 코를 찌르는 재래식 화장실에 익숙해져야했다. 그러나 이런 고통들이야말로 너무 익숙해서 잊고 있었던 우리 생활의 많은 편리함에 대한 고마움을 새롭게 인식하게 해주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해인사는 조선팔경중의 하나인 가야산에 위치하고 있어 아름다운 산사로 유명할 뿐 아니라,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문화유적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런 해인사에서의 2박3일은 산사의 아름다움 이상의 아름다운 추억을 내게 주었다. 가끔은 자연과 문화를 만나고, 그 속에서 새롭게 나를 발견하는 산사로의 여행도 권한만 하다. /정수완(전주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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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7.26 23:02

[문화마주보기] 태조어진과 전주사고 조선왕조실록 - 홍성덕

약탈문화재 환수가 아닌 도쿄대학교의 기증형식으로 돌아온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47책을 보면서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기록의 도시를 강조해 온 우리는 뭘하고 있나? 전주를 떠난 지 4백년이 넘은 실록뿐 만 아니라 1년 전에 대여해 간 태조 어진도 감감 무소식이고, 완판본이나 전라도에서 출간된 옛 전적을 제대로 소장하고 있는 곳 역시 우리 고장에는 없다. 두해 전 모 대학에서 조선왕조실록 전주사고본을 환수하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뒤 2년이 흘렀지만 환수 움직임은 전혀 없고, 태조어진은 누가 잘못했느니 하다가 어진전을 세우는 것이 좋네 마네하고만 있다. 그럼에도 우리고장은 출판의 고장이고, 기록의 도시란다. 무엇이 문제일까 ?실록, 애초에 방향이 잘못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전주사고본은 전주 것이 아니다. 임진왜란 때에 전라도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냈지만, 조선전기 전주사고본은 그후 선조~철종대가지가 합쳐져서 정족산성본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약탈되지 않은 전주사고본만을 환수하자는 것은 맞지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적상산성본 환수운동을 벌이는 것이 맞다. 적상산성본은 한국전쟁 때 북한이 약탈해간 문화재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전 기간 동안 실록을 보존한 곳은 전라도가 유일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태조어진 문제의 핵심은 보물로 지정된 어진에만 있지 않다. 보존관리 측면에서 보면 어진이안에 사용된 각종 장엄구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문화재청이나 국립전주박물관, 전주시, 전문가들 모두 이 점에서는 똑같다. 지정된 보물만 관리해야 할 문화재인가? 어진과 동 시기에 제작된 장엄구들 역시 하루빨리 보존 관리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이 유물을 속히 박물관에 위탁 보존토록 한 뒤, 어진 반환을 이야기해야 한다.태조어진은 일단 무조건 가져와야만 한다. 어진 외의 장엄구들에 대해 일언반구 한마디 없는 문화재청이나 국립고궁박물관이나 이참에 어진을 차지하려는 그 꿍꿍이 속은 똑같다. 국립고궁박물관이나 국립전주박물관 모두 국립박물관이다. 어진이 굳이 고궁박물관에 있을 이유가 없다. 일단 국립전주박물관으로 가져다 놓고 이야기하면 된다. 국립전주박물관 역시 그저 임기만 채우고 떠나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앞장 서야 한다. 국립전주박물관만이 현 단계에서 어진을 제대로 관리할 시설도 있고 인력도 있기 때문이다. 그저 상황이 되면 할 수 있다는 수동적인 생각을 버리고 우리가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화재청과 고궁박물관을 설득해야만 전북에 있는 국립박물관으로 사랑받을 것이다.어진에 대한 우롱과 실록환수에 대한 한탄 속에서 이제 적상산성본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와 어진반환위원회를 꾸려야 할 모양이다. 위원회 세상이라지만 꼭 필요한 것을 만들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홍성덕 연구사는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에서 근무한 뒤 전주시청 연구원을 거쳤으며, 대통령비서실 정책자문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등을 맡고 있다. /홍성덕(전북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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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7.1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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