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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못 해요

“사장님, 올해는 김장 언제 하십니까? 김장하는 날 맞춰와야 새 김치 얻어먹잖아요.” 어느덧 김장철이 코 앞이다. 여느 해 같으면 시장도 돌아다니고 그동안 거래했던 배추밭들도 돌아보며 김장 준비에 발품을 파느라 바쁠 시기다. 다만 올해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올해는 김장 안 하기로 했어요. 인증받은 우리 지역 김치공장하고 계약했거든요. 재료도 다 국산이고 맛이며 위생이며 다 검증받은, 믿을만한 회사예요.” “아, 왱이집 김장만 기다렸는데 아쉽네요.” 며칠 동안 김장을 물어보는 손님들이 이어졌다. 대답을 거듭할수록 죄송한 마음이 쌓여갔다.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야 손님들보다 배는 크면 컸지, 적지 않을 것이다. 여러 해 동안 미련을 가지고 고민을 거듭했지만, 결론은 명확했다. 요즘 음식점 가운데 김장을 계속하는 곳이 많지 않다. 반찬 중 김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곳일수록 좀 더 쉽게 매입 김치를 선택한다. 반찬 가짓수가 많지 않아 김치에 많이 의존하는 음식점들은 그나마 김장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우리 가게와 다르지 않은 고민 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가게에서 김장을 계속해 왔던 이유는 어찌 보면 단순했다. 나에게 ‘김장’이란 ‘나누는 잔치’였기 때문이다. 어릴 적 김장을 하던 날이면, 내 역할은 하나였다. 이웃집에 김장 김치를 돌리는 일이었다. 옆집에 잘생긴 오빠라도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거운 그릇을 들고도 발걸음이 날아다녔다. “아이고, 반가운 김장 김치네. 잘 먹을게. 고맙다!” 김치를 받아 드는 이웃의 인사가 나를 향한 칭찬인 것만 같았다. 아마도 그 반가운 목소리 때문에 가게에서도 김장하는 날이면 갓 담근 김치를 손님들에게 맛보여 드렸던 것 같다. 잘 먹었노라 인사하는 손님께는 김치 한 통씩 싸드리곤 했다. 왱이집과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손님들에겐 그것이 하나의 풍속놀이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헌데 젊은 손님들은 상황이 좀 다르다. 김치 자체에 손이 많이 가지도 않거니와 한두 젓가락 건드리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한번 손님상에 올라간 음식은 재활용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갓 담근 맛깔 난 김치를 고스란히 음식물쓰레기로 버려야 하는 심정은 쓰라리기 그지없었다. 또 한 가지 곤란한 것은 젓갈 달이는 냄새였다. 우리 김장 김치는 멸치젓갈과 황석어젓갈을 직접 달여 사용했는데 이 냄새를 둘러싼 민원이 적지 않았다. 동문사거리 이웃들은 그나마 왱이집의 오랜 전통이라 여겨 냄새나는 며칠을 참아주었지만, 손님들은 아무래도 불편해했다. 이 냄새가 나면 며칠 후 김장 김치를 맛볼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식사하는 동안 옷에 젓갈 냄새가 밸까봐 신경을 썼다. 쌀쌀해지는 날씨에도 일주일은 모든 문을 활짝 열고서 환기하며 여간 조마조마했던 것이 아니다. 결정적인 것은 ‘맛손’ 부족이다. 우리 가게는 오래 일한 직원들이 많았다. 그런데 절반 이상이 노환으로 가게를 떠나시고 젊은 사람들은 힘든 일을 피하려 하니 일손을 구하는 것이 아무래도 어렵다.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은 솜씨로 김장 김치 맛을 내오던 이모님들이 점차 나이 들어 일손을 놓게 되니 이제는 혼자서 직원들 진두지휘하며 김장을 치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런저런 푸념을 늘어놓지만 결국 하고 싶은 건 사과이다. “올해는 김장 못 해요. 김장 김치도 못 싸드려요. 죄송합니다. 저도 그 시절이 그리워요.” /유대성 전주왱이콩나물국밥전문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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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07 17:53

마약범죄 근절을 위한 대책이 필요한 요즘

연일 연예인 마약 투약과 기상천외한 사기 범죄가 보도되고 있다. 필자 역시 최근 가장 많이 처리한 형사사건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니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마약류관리법’) 위반과 사기죄였다. 그만큼 주변에서 매우 흔하게 발생하는 범죄유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전 펜싱 국가대표와 관련 있는 희대의 사기극은 개인의 윤리의식 문제로 볼 수 있지만 마약범죄는 개인의 일탈을 넘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위험성이 더 커 보인다. 마약류관리법 위반의 경우 법에 따르지 않은 마약류 사용, 마약의 원료가 되는 식물의 재배, 마약·향정신성의약품·대마 등 매매, 매매의 알선, 수수, 소지, 흡연, 섭취를 금지하고 있고, 마약류의 종류 및 행위 유형에 따라 처벌수위를 달리 정하고 있다. 단순 투약에 그치지 않고 제조, 매매, 알선을 할 경우에는 경우에 따라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처하는 등 처벌 수위가 매우 높으며, 실형선고나 구속 수사 가능성이 매우 높은 범죄이다. 이렇듯 상당히 엄한 처벌을 하고 있지만 이번 국정감사 기간에도 지적되고 있는 바와 같이 마약 밀수 건수와 범죄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마약은 한 번 복용하면 쉽게 중독되기 때문에 재범률이 매우 높다. 마약범죄 피고인들의 범죄경력 등 조회 회보서를 살펴보면 마약범죄로만 해당 문서가 몇 장인 경우가 있을 정도다. 이렇듯 한 번 마약범죄를 저지르게 되면 벗어나기 매우 힘들고, 이러한 이유로 중독자들에 대한 치료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마약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게 오히려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마약류를 구하는 것이 지나치게 쉽다는 문제가 있다. 마약을 구하고자 하는 이들은 텔레그램 등을 이용하여 공급책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그들이 알려준 계좌로 마약 구매비를 입금하면 미리 특정 장소에서 은닉한 마약을 수령하는 일명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을 입수한다. 그 과정이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사건의 기록에 나타난 범죄의 수법과 습득의 과정을 보다 보면 그 과정이 너무 쉬워 깜짝 놀라곤 한다. 우스개 소리로 지금은 구하기가 쉬워졌지만 한창 유행일 당시 구하고 싶어도 구하지 못했던‘먹태깡’보다 구하기 쉬운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마약이 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는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예만 봐도 알 수 있다. 실리콘밸리의 태생지이자 중심이었던 샌프란시스코는 낭만의 도시로 유명했지만 최악의 마약이라고 하는 펜타닐로 인한 사회문제가 심각해져 이제는 좀비도시라는 악명에 시달리고 있다. 마약 복용자들에게 관대했던 도시는 대낮에도 ‘좀비 마약’ 펜타닐을 투약한 홈리스가 진을 치고 있고, 약물중독자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하자 이제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하는 마약 사망 사건을 살인 사건처럼 취급해 증거를 수집하고 범죄 조직을 수사하도록 하고, 펜타닐을 판매하는 판매상을 살인 혐의로 기소할 수 있도록 했다. 결국 마약범죄 근절을 위해서는 마약류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 이를 구하기 어렵게 만들어야 하고, 중독자를 적시에 치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난 7월 마약류 중독자를 적시에 치료할 수 있도록 치료보호기관의 판별검사 및 치료보호에 드는 비용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도록 하는 등을 내용으로 하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되기도 했다. 이제 대한민국은 더 이상 마약청정국이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사회 전체를 파괴하는 마약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 우아롬 변호사∙민변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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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31 16:00

전주의 도시재생지원센터는....

쇠퇴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전주도시재생사업은 2011년부터 도시재생 테스트베드 사업을 시작해 오래된 주거지를 중심으로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전주의 도시재생사업은 역사와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한 원도심도시재생을 시작으로 전주의 오래된 주거지와 상권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도 손 꼽힐만큼 현재 전주 곳곳에서 다수 진행중에 있다. 도시재생 지역의 활성화를 위한 촉매제, 지원센터 전주시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는 이와 같이 전주 여러지역의 도시재생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현장에서 소통하며 추진하는 조직이라 할 수 있다. 전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는 전주 곳곳에서 도시재생 사업 발굴과 사회적 공동체 육성 지원, 지역경제 활성화 등 상민과 주민간의 협력네트워크가 원활하게 이루어 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도시쟁지원센터는 도시재생 마스터플랜의 방향을 현장에 적용하고자, 현장의 환경에 맞는 방향을 재설정해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센터가 추진하는고자 하는 도시재생 활동과 사업은 하드웨어만을 목적으로하기 보다는 하드웨어가 완성되고 쇠퇴된 공간과 장소에 새로운 활력 불어 넣기위한 콘텐츠를 발굴하고 주민공동체와 지역사회중심의 사회적주체를 양성하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을 위한 협력과 소통, 지원센터 쇠퇴한 도시를 다시 살리기 위해 현장에서 활동 중인 전문가들은 ‘협력과 소통’이 도시재생의 중요한 요소임을 늘 강조하고 있다. 사업의 크기가 아닌, 주민과 주민사이의 관계 속에서 비롯되는 갈등을 해결하고 상생의 방안을 찾기 위한 지속적인 교류 또한 중요하다, 이 부분에 있어 각자의 경험과 정보의 차이로 생기는 갈등을 관리하고 풀어낼수 있는 기재가 매우 중요하다. 현장 센터가 운영되는 5년이란 기간은 해당지역의 활성화 지점을 찾아내고 그 과정에서 주민간의 다른 이해에 따른 차이를 원만히 풀어내고, 동네을 활성화하기 위한 최적의 협력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어쩌면 재생현장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이를 지속적인 소통과 협력으로 맞물리게 만드는 과정의 공간일 것이다. 센터는 그 경계에서 지역의 주민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상생의 가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원동력을 만들어낼수 있게하고, 사이와 사이을 연결하고 서로를 잇는 곳일 것이다 이렇듯 센터는 재생현장에서 정책(행정)과 주민의 연결 고리로서 지역사회와 함께 전주를 시민의 삶터로 만들기위해 노력하는 곳이다. 도시재생은 성장하고 완성된 도시에서 성장 멈추거나 쇠퇴된 동네에 대한 회복과 활성화를 고민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센터는 그 안에서 도시의 살림이 잘 운영되도록 주민들의 참여을 도모하고, 참여자들의 지속 가능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일들을 해나가고 있다. 전주의 가치를 높이고 건강한 소비를 유도하는 도시재생사업! 상생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하는 전주 도시재생지원센터가 전주 곳곳에 더 좋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전주가 도시재생 선도도시로 자리잡는데 초석같은 역할을 하기 바란다. 또한 “앞으로 전주도시재생이 더 전문적이고 고도화를 이뤄 전주의 오래되고 쇠퇴한 곳곳을 건강하고 활기차게 회복하길 바란다.” /소영식 전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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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24 15:16

바닥을 본다

가을에는 바닥을 본다. 나의 바닥은 어떠한지.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무늬. 가게 주차장 앞 의자에 앉아 바닥을 보고 있는데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볼 때마다 개수가 늘어. 한두 푼도 아니고. 이러니 명절이 두렵다.” 명절이 반짝 반가운 식당 사장 입장에서는 슬그머니 피하고 싶은 순간이다. “학교 다닐 때 공부 좀 열심히 해서 치과의사나 될 걸 그랬나. 내 얼굴에 임플란트가 쓰여 있냐고.” 화분에서 떨어진 잎이 소리 없는 무늬를 그리며 바닥을 구른다. 발로 슬쩍 무늬를 뭉개며 가게 안으로 향했다. 이번 추석에는 연로하신 부모님을 동반한 가족 손님이 많았다. 3년 만이다. 코로나 때문에 요양병원으로 모신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다가 3년 만에 모시고 나왔다는 사연을 여럿 들었다. 며느리와 손주를 얻은 이후, 3대가 동반한 가족 손님이 더욱 반갑다. 마음이 가까우니 눈길이 가깝다. 어린 자녀를 둔 손님에게는 어린이용 숟가락과 육수 부은 수란도 하나 더 가져다주고 어르신이 계신 테이블에는 가위도 챙겨드렸다. 몰려든 손님에 깜빡 설명을 잊어도 아이에게 밥 말아주라는 수란인 줄은 다들 안다. 어머니 마음은 똑같다. 내 식사 챙기기 전에 수란에 밥부터 말아 아이 입에 떠넣는다. 그런데 아이 숟가락과 수란의 사용법은 설명하지 않아도 척척 아는데 도통 가위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필요 없다’라며 바로 내미는 경우도 있었다. 국밥을 뒤적이며 밥알만 뜨는 어르신 옆에서 가위를 들었다. “어르신, 콩나물이 질기지는 않으세요? 씹기 힘드시면 잘게 잘라 드세요. 콩나물도 드셔야 피부도 좋아지고 화장실도 잘 가는데, 제가 좀 잘라드려 볼까요?” 우리 엄마도 임플란트하셨던가?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멀리서 사는 막내를 늘 안타까워하고 애달파하셨던 엄마는 내게 약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이가 부실하면 먹는 것이 시원찮고, 영양 섭취가 부족하니 야위기 십상이다. 그러다 한 번 아프기라도 하면 부쩍 늙어버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병환에 시달리는 동안 먹을 것이나 변변찮았을 터이다. 친정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그리운 얼굴들은 연휴 내 이어졌다. 명절마다 반기던 얼굴을 3년 만에 마주하고 보니 뭉클했다. ‘그새 부쩍 굽으셨구나.’ 내 귀에도 ‘할머니’보다 ‘어머니’라는 호칭이 달가우니 ‘어머니, 오랜만에 뵙네요. 건강하시지요?’라며 호들갑에 가깝게 인사드렸다. 그런데 인사를 받는 표정에 변화가 없다. ‘어머니’라는 호칭이 맘에 안 드시나, 잠깐 고민하는 사이 아들이 작게 설명했다. “치매가 심해지셔서요.” 요양병원에 모실 때만 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이제는 가족 얼굴도 몰라보신단다. 3년이 길었다. 수란에 참기름과 김가루 듬뿍 뿌려 어르신 앞에 놓아드리는데 슬그머니 손을 잡아 오셨다. “반갑네. 손 보니 알겠구먼. 잘 지냈는가?” 어쩌면 나의 바닥은 이 손이 아닐까. 손에 새겨진 무늬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내 무늬를 기억하던 어르신을 떠올려본다. / 유대성 전주왱이콩나물국밥전문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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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10 15:15

교권 보호 4법의 의미

학부모들의 과도한 민원에 시달리던 교사들이 잇달아 사망하자 뒤늦게 교권 보호를 위한 법률 개정이 논의 되었고, 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이른바 '교권 보호 4법'이 9월 2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교권보호 4법’은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 등 4개 법률을 말한다. ‘교원지위법’ 개정안은 교원이 아동학대로 신고됐더라도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직위해제 처분을 금지하고, 교장은 교육 활동 침해행위를 축소·은폐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교육감은 교원을 각종 소송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공제사업을 할 수 있다는 조항도 담겼다. 교육지원청이 교권 침해 조치 업무를 맡고, 지역교권보호위원회를 설치한다는 내용, 아동학대 신고로 조사나 수사가 진행되면 교육감은 반드시 의견을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 등도 포함됐다.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는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것과 학생보호자가 교직원이나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학교 민원은 교장이 책임진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유아교육법’ 개정안은 교원의 유아 생활 지도권을 신설하고,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되었으며, ‘교육기본법’ 개정안은 부모 등 보호자가 학교의 정당한 교육활동에 협조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규정했다. 이번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①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선생님을 보호 ② 악성민원으로부터 선생님의 교육활동을 보호 ③ 피해 교원에 대한 확실한 보호와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 강화 ④ 정부의 책무와 행정지원체제 강화, 유아생활지도 권한 명시 ⑤ 보호자의 권리와 책임 간의 균형을 위해 의무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개정안의 내용은 너무 당연한 내용이어서 그동안은 이를 법으로 규정하지 않았어도 사회에서 당연히 지켜져 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명문화의 필요성도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변했고 어느 순간 교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좋은 교사가 될 수 있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면 아동학대 범죄자가 될지도 모르는 불합리한 현실에 놓이게 되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교사를 상대로 갑질을 하는 몰상식한 학부모에게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너무 쉽게 이를 개인의 문제로만 책임을 돌릴 수 없다. 자신의 권리의식만 앞세우는 사회 분위기 속에 이제는 선생님에 대한 존중마저 강제해야 지켜지는 것이 현실이 되었고, 교사들은 적절한 대응책도 없이 수년 동안 아무런 지원 없이 혼자 싸워야 했다.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책임자들은 회피하는 모습만 보여왔다. 무엇보다 원인을 제공한 악성 민원인들에 대한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아 결국엔 이들에 대한 신상공개 등의 사적제재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대법원은 교원의 전문성과 교권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보장되는 것으로서 정당한 자격을 갖춘 교사의 전문적이고 광범위한 재량에 따른 판단과 교육 활동에 대해서는 이를 침해하거나 부당하게 간섭하여서는 안 된다는 법리를 최초로 판시했다. 교권보호 4법 개정을 통해 교권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보장되는 것이고, 악성 민원은 범죄라는 상식이 통용되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우아롬 민변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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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03 15:24

사람은 공간을 만들지만, 그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윈스턴 처칠의 “사람은 공간을 만들지만, 그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명언이 있다. 처칠은 1943년 런던 폭격으로 파괴된 하원을 재건하기 위한 연설에서 한 말이다. 처칠은 기존의 작고 좁은 하원 공간처럼 ‘서로를 마주보며, 가까이에서 토론하는 공론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좌우가 가까이에서 토론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영국 의회의 모습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무엇인가 ? 역세권, 구도심, 주거지, 전통시장등 다양한 현장에서 공동체 재생 혹은 마을이란 주제로 여러 사업들이 펼쳐지고 있다. 그 안에서 항상 고민해왔던 지점은 ‘우리는 어떻게 협력 하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어떻게 성장시키고 있는가?’였다. 즉,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무엇인가?’란 근본적인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곤 했다. 도시의 압축적인 성장과 개발(과도한 팽창) 속에서 만들어진 공간은 혹은 장소는 삶의 지평을 안정화하기 보다는 자본을 축적 시키는 부동산 가치로 환원되지 오래다. 결국 어떤 소비만을 독촉하는 시설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삶을 담아내기란 쉽지 않다. 편의시설은 많아졌지만, 삶의 공간과 장소들은 한쪽으로 계속 내몰려 잃어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관습화되고 상투적으로 변질된 공간과 장소 속에서 삶에 의미 있는 생산을 멈춘 지 오래고, 어쩌면 공급과 소비란 단순화된 패턴의 공간과 시설 속에서 반복된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에게 창조란 행위가 관념적이거나 도시민의 삶(일상과 생활)과 괴리된 무거운 단어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반면, 요즘 도시와 농촌공간에 대한 개발과 성장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실험중이기도 하다. 공동체, 재생, 창조, 협력과 협동, 주민-시민, 순환, 문화적 생태계 란 가치 중심적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문화적 공동체, 일상과 생활의 새로운 탐독, 문화와 예술로 관계 맺기, 일상적 장소에 대한 재생과 같은 다양한 시도와 새로운 문화적 실험들이 신선하게 이루지고 있다. 결국 이러한 시도들이 연결되어 시대의 또 다른 흐름으로 단단히 성장하기를 열망 해본다. 관념에 갇히지 않고 즐겁게 상상하는 것 현재의 일에 지쳐 있지만 휴식을 계획하고 새로운 일을 꾸며내는 당찬 기운은 부러울 만큼 힘찼다. 아직도 뭔가를 해봐야 되는 열정과 앞으로 살아낼 시간에 대한 설렘과 불안이 섞여 있는 청년들이지만, 그들 각자의 또 다른 길에 대한 불안과 부족함을 관계를 통해 채우고 위로할 줄 아는 현명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한 청년들일 것이다. 사는 것은 진지하고 무겁다. 살수록 더욱 그렇다. 경험이 많을수록 자기만의 고정관념에 빠지기 쉽다. ‘새로움이란 창조란 그러한 것을 유쾌하게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즐거움’일 것이다. 유쾌한 해석과 실천을 해나가는 것 결국, 우리네 삶의 모습과 활동이 공간을 디자인하고 장소를 창조하는 것 아닐까? 창조적인 행위가, 장소가 일부 전문가와 극히 일부의 예술가의 생산적 전유물이 아닌, 우리네 일상과 생활의 무대가 되는 평범한 공간과 장소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실천의 모습을 찾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소영식 전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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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26 14:32

전주콩나물국밥의 원조는요

식사를 마친 젊은 여성 손님이 카운터 앞에서 서성거렸다. 친구가 밥값을 계산하고 나가자는 모양새를 보이는데도 뭔가 볼 일이 남은 듯 쉬이 발걸음을 떼지 않았다.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손님?” 여행객인 듯 보였다. 전주역까지 가는 방법, 인근 게스트하우스 안내, 한옥마을 외에 전주 볼거리 소개 등 그간 젊은 여행객들이 주로 문의해오던 것들에 대한 답을 속으로 찾고 있을 때였다. “저 혹시 여기가 진짜 전주콩나물국밥 원조집이에요?” 뜬금없이 전주콩나물국밥 원조를 찾다니, 이 손님은 여행객임이 다시 한번 확실해졌다. 전주 사람은 누구도 콩나물국밥 원조를 논하지 않는다. 얼른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그럴 리가요. 콩나물국밥은 전주 지역 토속음식이어서 누가 원조인지 알 수가 없어요. 아주 오래 전에 일반 가정집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지 않았을까 추측만 하는데요. 그리고 저희 집보다 더 오래 장사해오신 가게들이 많은데 그분들 들으시면 속상해하세요.” 손님은 살짝 홀가분해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아, 저는 누가 블로그에 여기가 원조집이라고 써놨길래 일부러 찾아왔거든요.” 그러면서 가게 안에 어디에도 ‘원조’라는 표기가 없어 궁금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맛있게 드셨죠? 원조는 아니지만 전주시내에 콩나물국밥집들은 다 자부심을 가지고 개성있고 정직하게 국밥을 만들고 있거든요.” 음식으로 유명한 거리라면 어디에나 있는 원조 논쟁을 콩나물국밥에서까지 듣게 될 줄이야. 40년 가까이 국밥을 말아왔지만 이 정도 경력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의 역사와 내력을 가진 콩나물국밥집이 여럿이다. 열심히 발품 팔아봐야 큰돈 되지 않는 소박한 서민의 음식을 가지고 꿋꿋이 한 길을 걸어왔다는 것만으로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분들은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에는 비빔밥뿐 아니라 콩나물국밥도 있는데 비빔밥축제만 있고 콩나물국밥축제는 없는 것이 서운하지 않느냐고도 묻는다. 축제를 만들고 지속해오는 데에는 그만한 배경이 있을텐데 축제 전문가도 아닌 음식점 업주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전주비빔밥축제가 오늘날 이렇게 자리잡은 데에는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 전주를 상징하기에 가장 적합한 음식이 비빔밥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음식과 문화, 예술을 아우를만한 소재로 비빔밥이 손꼽힌 것이다. 전주가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로 선정된 데에는 전주의 각 가정집들이 가지고 있는 음식 솜씨와 생활문화가 높게 평가받았다고 들어 알고 있다. 가정 밥상에서 기초해 한식 백반이, 시장 공간에서는 콩나물국밥과 콩나물비빔밥이 산업화되었다. 올해 전주비빔밥축제 일정이 확정되었다. 2023 전주비빔밥축제는 10월 6일(금) ~ 9일(월) 전주종합경기장 내 야구장 부지에서 열린다. 여느 해와 달리 한옥마을이나 동문거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어서 다소 아쉽지만 일부 프로그램에는 호기심이 쏠린다. 35동 음식축제는 전주시 35개동이 선보이는 동네 맛잔치이다. 전주를 다시 세분화하여 각 가정의 음식을 좀더 가까이 맛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미식피크닉도 기대가 크다. 주최 측에서 대여해주는 도시락과 피크닉세트를 들고 한옥마을과 동문거리로 나들이와도 좋겠다. 올해 전주비빔밥축제에서는 전주의 생활문화가 좀더 두드러지게 드러나면 싶다. 단순히 먹고 마시고 소리 큰 일탈의 장이기보다 전주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음식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 유대성 전주왱이콩나물국밥전문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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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12 15:29

KCC이지스의 연고 이전을 바라보며

필자는 전북현대의 거의 모든 홈경기를 직관하고 늘 응원하는 팬이다. 그리고 서울, 대전, 광주를 오가며 야구 직관을 즐기는 야구팬이기도하다.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이 취미인 프로 스포츠 구단의 팬이다 보니 KCC이지스의 연고 이전은 전주 시민으로서의 안타까움보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갑자기 연고이전을 한다면 어떨까라는 측면에서 감정 이입을 하게 된다. 그런데 다른 종목의 경우 보통 연고 이전 이야기가 나오면 해당 프로팀에 대한 비난의 여론이 들끓고는 한다. FC서울을 예로 들어보자 지면에 이러한 표현을 쓰는 것이 부적절할 수 있으나 이들은 2004년 FC서울의 전신인 안양 LG 치타스 시절에 모기업인 LG그룹 측이 기존 연고지인 안양시를 떠나 서울특별시로 연고지 이전을 한 이후 ‘북쪽의 패륜’이라는 뜻의 ‘북패’라는 멸칭을 가지게 되었다. 야구에서는 현대유니콘스가 2000년 현대그룹이 일방적으로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를 인천광역시에서 서울특별시로 이전하면서 인천, 경기지역 팬들이 실망감에 빠지게 했던 사건 역시 존재한다. 이렇게 축구와 야구에서는 한 두 번만 일어나도 사회적 이슈가 되고 구단은 팬들의 질타를 받는 반면, 농구는 비교적 연고지 이전에 자유로운 편인지 프로농구 원년인 1997년부터 지금까지 연고지가 같은 팀은 원주 DB, 창원 LG, 안양 정관장(전 KGC인삼공사)뿐이라고 하니 오히려 연고 이전을 경험하지 않은 팀을 찾는게 더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잦은 연고 이전은 대다수의 프로농구 구단이 지방 도시를 연고지로 삼으면서 수도권에 훈련과 합숙시설을 갖춰놓고, 홈경기가 열릴 때만 연고지를 찾다 보니 지역 정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그 원인이 있어 보인다. KCC이지스 역시 선수단의 훈련장이나 숙소, 구단 사무국까지 전부 전주가 아닌 경기도 용인에 있고, 경기만을 전주에 와서 하는 상황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KBL은 2017년 6월 연고지 정착제를 발표하면서 2023∼2024년 시즌 전까지 연습장과 홈구장을 같은 지역에 두게 했다. KCC이지스가 들고 있는 연고지 이전의 이유는 체육관 건립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전주시와 신뢰가 깨졌다는 것이고, 전주시는 농구단 측이 제대로 된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연고 이전을 결정했다고 주장한다. 양측의 주장은 평행을 달리고 있고, 팬들은 KCC이지스가 기다릴 만큼 기다렸으나 약속한 내용이 전혀 지켜지지 않은 점을 이유로 이전의 책임은 전주시에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주시의 안일한 대응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전주시의 탓이 아니라는 그런 옹호를 위해 이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응원하는 팀의 승패에 일희일비하는 팬으로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KCC이지스는 2001년부터 전주를 홈으로 하며 3번의 우승을 차지했고, 22년간 전주에서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단장의 “22년간 응원해주신 전주 팬들에게 가장 죄송한 마음”이라는 말 한마디로 시즌 개막 한 달 여를 앞두고 갑자기 연고지 이전이 이루어졌다. 아름다운 이별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싶지만 그래도 전주시민과 팬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며 이별했어야 한다. 그들의 입장표명에는 그동안 응원해준 팬들에 대한 충분한 사과가 없다. 그리고 체육관과 관련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원론적인 말의 반복 뿐 그 동안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였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 역시 없다. 이 점 역시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다. /우아롬 민변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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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05 15:26

도시의 공간과 장소 그리고 문화... 도시재생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의 공간적 정체성의 회복. 즉, 도시라는 공간과 구성원들 삶과의 관계성 회복의 기회가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우리가 생활하고, 숨 쉬어 오던 도시의 변화를 우리들의 내적 변화의 계기로 삼지 못한 채 변화의 물결에 길을 잃거나 맹목적인 방관의 무기력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도시의 공간과 역사적 연속성에 대한 무지와 공간과 문화적 급변에서 비롯된 자신외의 타물(他物)에 대한 웅크린 방치속에서, 우리들의 삶은 시간성과 공간성이 지원되어지지 않고 있는 ‘무대없는 연극’처럼 이미 의미없는 '구역적' 도시속에서 소비되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개별적 자율성과 창조성으로 지탱되어지고 구성원 스스로에 의해 살찌워지는 도시, 공간문화와 삶의 문화, 일상적문화가 일치 되어진 하나의 융합된 지평으로서의 도시를 회복해야할 때일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문화가 함께 오래도록 지속 되어질 수 있는 살아있는 도시, 지역적 문화가 소중히 간직되어지고 지역적 삶의 일상과 문화가 연결되어질 수 있는, 지속되어지는 문화예술의 교육적 전통이 생명의 숨결로 하나 되어 지는 공간적 담론이 필요할 때 이다.. 오래도록 지속되어진 삶의 역사성을 담고 있는 역사적 연속상(連續像)에서 개체성이 인정되어지고 각자의 구성원들에게 의미 있어지는 생태적이고 문화적인 도시는 우리들 삶과 문화, 그리고 도시환경-시민문화가 구분되어진 게 아닌 일체적이고 생체적인 구조일 것이다. 시민들개개의 도시의 자율적인 문화생산과 소통, 적절히 안배된 공간문화의 토양이 갖추어질때 삶의 나눔이라는 의미교환과 삶의 진실된 기쁨이 우리들에게 환원될 것이다. 이제는 다시 도시가 공간과 문화, 문명의 주체자인 우리들에게로 되돌려져야 할때라고 생각된다. 어쩌면 도시재생이란 수단과 프레임이 우리들에게 소유되어져야만 하는 도시공간속의 다양한 삶의 양태와 공간적 컨텐츠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잊혀졌던 소중한 문화적 아이템을 우리들 의식의 저변에 공유하고자 하는 바램을 담고 있다. 자기성장 장소로서의 도시적 공간문화의 발견과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한 공공예술에 대한 위상성취, 삶의 주체를 회복하기 위한 도시공간문화에 대한 창조적 담론의 생성과 삶의 토양으로서의 대안적 공간문화를 가꾸어 나가기를 원하다. 또한 방관되어지고, 우리들의 도시민의 삶과 무관하게 진행되어졌던 도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통해 우리들 도시의 공간과 장소를 우리들 삶의 무대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러한 주제에 근본적인 상황을 고민해보면, 우리의 도시는 해방이후 50년~60년 시간 속에서 개발위주의 압축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혹은 잊혀진 공동체적 시간과 장소에 대한 회복 혹은 새로운 시작이란 생각이 든다. 즉 도시재생이 진행과정에서 도시의 기억과 장소에 대한 고찰을 통해 전주의 감춰진 모습과 도시적 매력을 찾고자 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시에 대한 문화적 탐구와 고찰 그리고 시민과 전문가들의 소통과 협업을 중심으로 이해를 넓히는 과정을 재조직 하는 부분도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단지, 구체적인 현실감각이 있는 실행과정의 논의 보다 우리가 관습화된 논의 중심의 한계를 벗어나지고 못하고, 정책과제 프레임과 주민들의 경제적자립만 논의하고 사업성과만을 추구하는 사업수행만 있다면, 전주의 삶의 모습과 정체성이 빠진 도시성장만 추구할까 두렵기도 하다, 어쩌면, 이제는 전주의 개발과 성장과 순환고리의 틀을 구성하는데 있어 전주에서의 삶이 어떠했으면 하는지 그리고 도시의 삶에 대한 균형감 있는 운영철학으로 뭔가 필요한지도 고민해야하지 않을까. /소영식 전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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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29 16:07

연습이 필요해

삼복(三伏)이 지나기 무섭게 펄펄 끓던 더위가 한풀 꺾였다. 자연의 이치가 참 신묘하다. 에어컨 바람을 피해 잠시 집으로 들어왔다. 미지근한 물에 샤워하고 선풍기를 틀고 앉아있으니 아들 내외가 손자를 안고 들어왔다.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들렀단다. 손자가 여름 감기에 걸렸다. 햇빛에 그을릴까 모자를 쓴 모습이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니다. 냉기가 올라올까 얇은 이불을 덮고 아기를 뉘고 양말을 벗기니 손발이 차기만 하다. 아들은 잔소리와 함께 에어컨 리모컨부터 찾았다. “어유 또 혼자 있다고 에어컨도 안 켜고 있네. 콩나물국밥 세 그릇만큼만 틉시다. 내가 밥값 내고 갈게.” 하는 모양새가 날 덥다고 온종일 에어컨만 틀고 지낸 것이 틀림없다. 아들은 손자 옷을 모두 벗기더니 기저귀 차림 위에 두툼한 이불을 덮어주었다. “뭐하냐? 애는 왜 홀딱 벗겨?” “더우니까.” “두꺼운 이불은 왜 덮고?” “추우니까.” 옛끼! 등짝을 한 대 때려주려다가 며느리 눈치가 보여 슬그머니 주먹만 쥐었다. 없이 살던 시절에도 한여름이라고 두 아들을 홀딱 벗겨 키운 적은 없었다. 면 배냇저고리 팍팍 삶아 수시로 갈아입히고 배에는 천기저귀 한 번 접어 덮어주고, 선풍기 바람도 직접 닿지 않게 비스듬히 쐬어주었다. 그러고도 여름 감기에 걸리면 손발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땀띠가 나면 얇은 거즈 수건으로 살포시 덧대주었다. 손자를 보고 있으니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애를 어찌 돌봤으면 감기 걸려 떨어지질 않느냐고 잔소리가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다. 참느라 며느리 얼굴을 돌아보았다. 나도 저런 새색시 시절이 있었지. 나는 뭐 얼마나 철들어 엄마가 되었나. 실전이 연습이고 연습이 실전인 셈이지. 여자는 눈물로 엄마가 된다. 아이를 끌어안고 수십 수백 번을 철철 울어야 엄마가 된다. 울어야 할 때 울지 않으면 훗날 더 큰 눈물을 흘리게 된다. 내 가슴에 피눈물 나게 했던 아들 녀석이 눈을 반짝이며 에어컨 바람을 등지고 바싹 다가앉았다. “엄마, 내가 생각해봤는데 여름에 뜨거운 콩나물국밥은 좀 심하지 않아요? 냉콩나물국밥 어때? 아삭아삭한 콩나물 위에 살얼음 가득 얹으면, 어우 뱃속까지 시원해질 거 같은데.” 들은 척도 않고 손주랑 눈 마주치며 까꿍거리고 있으니 아들 녀석은 코앞에 제 얼굴까지 들이밀었다. “어? 어? 어떠냐고요. 내 생각 죽이지?” “아나, 밥이다 이놈아! 이열치열(以熱治熱) 몰라?” “아 우리 엄마 답답한 소리 하시네. 이열치열 잘못하면 돌아가신다니까!” “여름에 뜨거운 콩나물국밥 먹다가 돌아가셨다는 사람 봤냐?” “젊은 사람들은 여름에 뜨거운 거 안 좋아해요. ‘얼죽아’ 몰라? ‘얼죽아’? 한겨울에 얼어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 마시는 사람들이 한여름에 뜨거운 국밥 먹겠냐고요?” “이한치한 이열치열이네.” 시큰둥한 반응에도 아들은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외국인들이 가장 이해하기 힘든 한국인의 문화가 바로 무더운 여름에 뜨거운 거 먹으면서 ‘아 시원하다’를 연발하는 거라는 둥 계속 나를 설득해댔다. 손자를 덮은 두꺼운 이불을 치우고 수건 한 장 덮어주며 뜬금없는 설득을 마무리지었다. “나는 내 세상 살 테니 너는 네 세상 살아라. 내가 니들 키운대로 애기 키우라고 강요 안 할테니까 너도 니 생각대로 내 장사 강요하지 마. 알겄냐?” 더울 때 땀을 적당히 흘려야 한다. 안 그러면 다음 계절에 쉽게 감기에 걸린다. 불편함도 적당히 참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자연의 이치다. 불편을 참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유대성 전주왱이콩나물국밥전문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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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15 17:24

날씨 만큼 화 나는 요즘

연일 불볕더위가 기승이다. 전국에 폭염경보가 발효 중이고, 밤낮 없는 폭염에 지쳐 이 여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는 와중에 8월이 시작되면서부터는 무더위와 함께 우리를 화나게 하는 일들이 매일 발생하고 있어 어서 여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8월 1일 세계 158개국 청소년 4만4000명이 참가한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시작되었다. 모두의 기대와는 다르게 시설미비와 부실 운영으로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온열 질환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영지 내 병원에는 병상이 없고, 온열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는 찾을 수 없는데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턱없이 부족하고 위생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결국 최다 참가국인 영국과 미국 등의 단원이 폭염과 위생 문제를 견디기 어려워 철수를 결정하기도 하였다. 잼버리 개최 장소로 선정된 후 6년이란 기간 동안 10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고도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심지어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폭염과 폭우, 방역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고, 당시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대책을 세워놨다"고 밝혔지만 지금으로서는 정말 대책이란 것이 있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남은 기간 더 이상의 최악을 막고 인명피해 없이 마무리되기를 바랄 뿐이다. 잼버리 폐영 이후에는 정치권이 부디 남탓 말고 사태가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하여 철저한 진상규명을 해 준비 부족과 안일한 대처로 인한 파행이 준 교훈마저 쓸모 없는 것으로 만들지 않길 바란다. 8월3일에는 서현역에서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서울 신림동에서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한 지 2주 만에 비슷한 일이 벌어진 것으로 A씨가 자신의 차량을 타고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 AK플라자 앞 인도로 돌진해 5명을 쳤고, 차에서 내린 뒤 백화점 건물 안으로 들어가 흉기를 무차별적으로 휘둘러 9명이 부상을 입혔다. 중상인 피해자가 12명이나 되고, 안타깝게도 부상자들 중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어 4일에는 B씨가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 침입해 교사를 흉기로 찌르고 도주한 사건이 발생했다. 연달아 발생하는 흉기난동 사건에 치안강국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 A씨와 B씨는 모두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뒤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정신질환자의 범죄율 자체는 일반인보다 높지 않고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지만 일단 범죄를 저지르면 피해가 심각한 강력 범죄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고, 조현병 환자의 경우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 극단적 상황에 빠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만큼 중증 정신 질환자의 치료와 관리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온라인에는 이와 유사한 살인예고 글들이 올라왔고, 경찰은 지난 2일부터 6일 오후까지 전국에서 54명의 살인예고 글 작성자를 검거했다. 전주에서도 덕진구 일대에서 칼부림을 벌이겠다는 글이 SNS에 게시되면서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들은 대부분 장난으로 글을 올렸다고 진술했다. 장난으로 이런 글을 쓴다는 무모함이 놀랍고, 그 장난으로 인하여 시민의 공포감이 가중되고 막대한 경찰력이 낭비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어리석음이 개탄스럽다. 해당 행위는 협박 혐의가 적용된다. 협박죄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이다. 부디 이제 이 여름이 좀 무탈하게 지나갔으면 한다. /우아롬 민변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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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08 18:17

전주 ‘원도심’의 변화와 현재에 대해서

1980년대 중반즘 부터 평화동에서 전주역까지 전주를 가로지르는 ‘백제로’라는 큰 도로가 개설되고, 그즘에 전주의 이곳 저곳에 새로운 아파트들이 막 들어서기 시작했던 것 같다. 도시의 골격을 키우고 개설된 크고 작은 도로를 따라 곳곳에 새로운 주거공간과 아파트가 건설되고 공급되면서 새로운 동네들과 상권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그럴 즈음해서 전주시의 외적성장과 확장을 견인하는 전북도청이 이전과 맞물린 '신시가지'개발이 이루어지고 전주의 새로운 풍경과 소비지로서 시가지가 생겨났다. 80년 중반부터 본격화된 전주의 변화를 주도하는 새로운 개발들, 아중리, 서신동, 삼천동, 신시가지, 하가지구, 혁신지구, 에코-만성-효전지구 등등 지금까지의 약 40년의 시간을 전주시민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 중앙동, 교동, 다가동, 풍남동 등을 일컬어 원도심이라 부르는 지역은 이러한 전주의 외적 양적 성장과 발전에서 어떻게 자리고 하고있을까 ? 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여러정비와 사업을 해오던 한옥마을은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 국내 혹은 세계적인 명소로 변화의 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한옥마을의 관광지로서 번창하는 과정과 풍경은 전주에 사는 이로서는 생각도 못한 상황을 보는 것 같아 놀라기도 했다. 또한 그와 맞물려 전주국제영화제의 꾸준한과 성장과 성공도 놀랍기만 했다. 전주국제영화제를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여기저기서 들리고 주변거리 여기저기에 낯선 풍경을 경험해왔다. '부산영화제' 아니면 '전주국제영화제'란 인식이 생겼을 정도로 전주국제영화제는 국내에서 보기 힘든 제3세계 영화 매니아를 끌어모으는 영화제로 급부상했다. 또한 한 켠에서는 남부시장이라는 전통시장에 청년몰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탄생시키고 한옥마을의 성장과 맞물려 새롭게 형성된 서학예술마을이 탄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한옥마을과 원도심중심으로 펼쳐진 전통문화와 예술, 청년컨텐츠는 전주에 유래없는 여행자들의 취향과 관광적 소비를 끌여 들였다. 이러한 소비과 컨텐츠가 전주의 시작이고 중심부라할 수 있는 원도심의 정체성으로 혹은 비전으로 정의되어지고 있다. 원도심을 중심으로 이제 한옥마을, 국제영화제, 남부시장, 청년몰, 객리단길, 서학예술마을 등 전주의 원형을 품고 있는 오래된 장소들이 청년창업과 문화적‘재생’이라는 프레임으로 새롭게 읽히고 쓰이고 있다. 어쩌면 청년과 문화예술적 컨텐츠의 새로운 활동과 시도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것들(신시가지와 혁신도시 등)과 다르게 쓰이기를 원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원도심은 청년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작은 자본을 가지고 하기에 적당한 곳이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펼치기에 편하고 자유로운 곳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전주의 변화와 발전과정에서 오랫동안 쌓여진 시간과 기억의 장소들이 새롭게 확장되고 개발된 시가지보다 자신의 취향과 감성을 소비하기 좋고, 더 나아가 자신의 일을 찾고 실현하기를 원하는 청년들에게 좀더 친근하고 편하게 와 닿는 곳인 것 같다. 그러나 그것 또한 현재는 생각만큼은 마냥 낭만적이지 않다. 비워진 곳이 채워지면서 생기는 과도한 경쟁으로 재능과 실력만으로 접근할수 있었던 상황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인다. 이러한 현상은 건축주나 부동산업을 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기회니깐 말이다. 도시가 생기고 성장한 시간만큼 그 토양 위에 자라고 있는 각자의 욕망과 갈망도 이전 도시를 계획하고 운용했던 합의만으로는 수용할 수 없을 만큼 너무도 다양해지고 복잡해지고 있다. /소영식 전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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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01 16:49

우산 100개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공공기관에 볼일이 있어 방문했다. 궂은 날씨에도 민원인은 끊이지 않고 겨우 일을 마치고 나서는데 청사관리실 유리문에 붙인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우산 없음’ 고개를 돌려 밖을 내다보니 빗줄기는 더욱 거세져 있었다. 아뿔싸, 발길을 돌려 다시 민원실을 찾았다. 깜빡한 내 우산은 우산꽂이 어디쯤에 숨어있는 건지, 빗물을 잔뜩 손에 묻히고야 겨우 살대 안쪽까지 빗물이 들어찬 우산을 구출할 수 있었다. 현관 앞에 서서 빗물을 탈탈 털며 문득 든 생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리실에 찾아와 우산을 빌려달라 했으면 유리문에 ‘우산 없음’이란 안내문까지 붙여놓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며칠 해가 반짝하다 다시 급격히 악화된 날씨라 미처 대비하지 못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나보다. 십수 년 전 여름이었다. 여름 초입부터 많은 비가 예보되었다. 오지랖도 넓고 정도 많고 게다가 손도 큰 나는 우산 100개를 사놓았다. 장마가 시작되면 분명 우산을 잊고 당황하는 손님들이 있을 것이고 카운터에서 우산을 빌릴 수 있는지 물어보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많은 손님들이 우산을 빌려갔고, 다음 방문 때 꼭 다시 가져다주마 약속했다. 혹여 우산을 그냥 빌리는 것이 미안하여 구입하겠노라 하는 손님이 있다면 넉넉한 웃음으로 ‘다음에 다시 찾아주시면 되죠’할 요량이었지만 그리 물었던 손님은 없었다. 그 여름이 끝날 무렵, 몇 개의 우산이 남았을까? 채 10개가 되지 않았다. 빌려 갔던 우산을 다음 방문 때 다시 챙겨온 손님은 한 손에 꼽았다. ‘아, 깜빡했다!’면서 너털웃음을 웃고 다시 다음 방문 때 가져올 것이라 말하는 손님이 많았다. 사실 누군가 우산을 빌려 가고 다음 방문 때 깜빡한 것을 내게 말하지 않았다고 해도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나는 우산을 빌린 손님들의 이름이나 연락처를 묻지 않았고, 애당초 그에 대한 대가로 큰 호의를 원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렇게 미안해하던 몇몇은 가게에 다시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반드시 챙겨야겠다고 마음 먹을만큼의 성의는 없음과 그에 대한 약간의 미안함 이런 감정들이 누적되어 국밥집으로 향하는 걸음을 붙들었을 것이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언론을 통해 ‘양심우산’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느 비영리기관에서 시민들의 편의를 목적으로 운영한 우산 대여 서비스였다. 좋은 의도와는 달리 관리, 회수의 문제가 있었고 2달 만에 75%가 분실됐다는 것이었다. 사연을 알게 된 어느 마케팅 전문가가 내게 ‘실패한 우산 마케팅’이란 분석을 내주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우선 비영리 목적으로 했다고 하기에는 서비스에 들어간 비용이 너무 컸다. 가정용 우산에는 비할 수 없는 품질이지만 결코 일회용은 아닌, 당시 국밥 값의 절반쯤 되는 가격의 우산이었다. 그쯤 되면 본전 생각이 안 날 수 없으니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손님이 더 찾아주겠지?’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나는 호의를 전했지만 상대방에겐 결국 양심의 가책이라는 부담이 되었다. 갖지 않아도 되었을 양심의 가책을 되려 나 때문에, 내가 빌려준 우산 때문에 갖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손님들이 가게에 발길을 끊을 수밖에. 결론은 우산 잃고 손님 잃고 그 해 여름은 참외꼭지 같은 쓴맛만 남겼다. 나는 서민의 음식, 콩나물국밥을 팔고 있지만 내가 파는 것은 단순한 국밥이 아니요, 정(情)이고 인심(人心)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전주의 마음일 것이다. 누군가는 ‘실패한 마케팅’이라고 나무랄지 모르지만 글쎄 내가 이 오지랖을 그만둘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유대성 전주왱이콩나물국밥전문점 대표 △유대성 대표는 전주콩나물국밥의 우수성을 알리며 대중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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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18 15:50

우리는 평등의 시대를 살고 있는가

최근 미국에서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소수인종 우대정책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 일이 있었다.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tudents for Fair Admissions·이하 SFA)이 소수인종 우대 입학 제도로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를 차별했다며 노스캐롤라이나대와 하버드대를 상대로 각각 제기한 헌법소원을 각각 6대 3 및 6 대 2로 위헌이라고 결정한 것이다. 입학과 고용에서 소수인종을 우대한다는 뜻의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은 1961년 당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연방정부 계약업체는 인종·신념·피부색·출신 국가에 관계 없이 직원을 고용하고 그들을 공정하게 대우하기 위해 적극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시작됐다. 이러한 소수 인종 우대정책은 인종차별로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기 위한 것으로 평등조치가 아니라 적극적 우대조치 성격이 강하다. 대학 입시에서의 ‘어퍼머티브 액션’은 인종적 요소를 고려함으로써 다양한 배경을 지닌 학생들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됐고, ‘역차별’ 논란이 계속되어 오면서 최근에는 특정 인종에게 할당제를 부여하거나 무조건 가산점을 부여하는 등 인종이 당락의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인종이 입학 전형의 여러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왔으며, 이 제도를 도입한 대학의 숫자 역시 감소 해왔다. 그런데 이 소수인종 우대정책 위헌결정 뉴스를 보자마자 60년 동안의 우대정책으로 이제 기울어진 운동장의 수평이 맞춰진 것인가, 나아가 이제 미국은 인종으로 인한 어떠한 차별도 없는 평등한 사회가 이루어진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리고 왜 동문 및 거액 기부자 가족을 우대하는 입학 관행에 대하여는 위헌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가 하는 의문 역시 생겼다. 미국 사회에서 이러한 문제를 직접 겪어 보지 않은 내가 이를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공통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가 이념 논쟁을 촉발한다거나 나와 다름이 틀림을 의미한다거나 기회의 평등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분위기에서 많은 실망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가 성별, 인종, 재산으로 인하여 차별 받는 경우가 존재하지 않아 조건의 불평등을 상쇄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면 이러한 논의가 무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자신이 어쩔 수 없는 문제 때문에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는 사회일까? 조건의 평등을 수반하지 않고 기회의 평등을 극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평등의 최고 가치로 여기는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여러 조치가 있는 것이다. 이 조치의 실현이 곧 나의 손해를 의미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투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이, 지역, 성별, 성적 지향, 인종, 국적, 장애, 질환 등이 개인의 삶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살아 가는데 차별 요소로 작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 공동체를 위한 일이고 서로가 서로의 행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이 행복하기 위해 그저 서로에 대한 배려가 조금 더 필요할 뿐이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한 정책이 이념 논쟁으로 변색 되지 않도록 그리고 나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회의 모습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문제의식을 함께 가졌으면 한다. /우아롬 민변 전북지부장 △우아롬 지부장은 법률사무소 한서 변호사로 전북지방노동위 심판담당 공익위원, 전북교육행정심판위원회 위원, 전주지방법원 조정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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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11 15:31

전주도시재생의 현재와 앞으로 방향

도시는 변화를 추구하는 생명체다. 태어나고 자라고 발전하고 쇠퇴하는 순환과정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변화를 도전받고 요구한다. 성장과 발전이란 욕망을 추구하면서.... 그러한 도시의 성장과 발전과정에서 새로운 수요와 공급에 자리를 내주면서, 한 시대를 살아왔고 지켜왔던 오래된 동네들이 있다. 하지만, 오래되고 낡은 동네들의 손을 맞잡고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옛것을 현대에 맞게 재창조하며 잊혀져가는 전주의 오랜된 곳곳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들이다. 도시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쇠퇴하면서 생기는 지역의 문제가 매우 다양하고, 양상도 각양각색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도시재생사업은 그 지역의 문제를 진단하고, 시민들과 함께 소통하면서 해결 방안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사업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현장의 문제를 통합적이고 유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친다.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떠한 과정으로 지역사회 혹은 동네를 바라고 논의하고, 실행하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현장에서 추구하는 도시재생의 의미는 어쩌면 어렵지 않다고 본다. 한 지역이 쇠퇴의 시기에 들어섰을 때 수수방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과 행정과 함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렇다고, 행정가 혹은 전문가에게만 문제 해결을 요구하지 않고, 지역 주민 스스로 발전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실천하고 하도록 하는 것. 시민들과 함께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잃어버린 경제적·물리적 환경과 같은 삶의 불균형을 시민 활동으로 바로 잡아보자는 의미 아닐까 생각한다. 기존의 도시개발과 정비계획중심에 의한 수요와 공급창출위주의 관리계획만 있었다면 지금의 도심 재생은 다양한 시민 활동과 수요을 발굴하고 무엇을 어떻게 공급할 것이냐는 대해 역동적인 시민 활동과 시민들이 가진 공간자산을 어떻게 개발하고 정비할것이냐는 쟁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자산의 대한 시민중심의 개발 생태계를 새롭게 구축하는 것. 한 예로, 전주 구도심 역시 전라감영이나 풍패지관 복원 등 굵직한 물리적 재생을 진행하면서도, 시설자산을 기반으로 시민들이 공유하고 협력하는 활동 생태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자산기반(시설)기반의 활동을 통해 전주 구도심이 문화적 공간으로서 공공성과 시민들이 공간 및 시설자산을 기반으로 새로운 생산과 소비의 장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타 도시와 구별되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만이 도시재생의 목적은 아닌 것 같다. 전주의 성장과 태동의 과정을 거쳐, 현재 전주시민에게 어떠한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지 혹은 수행해야 하는지, 그리고 전주시의 발전과 미래에 있어 시민들에게 무엇을 요구받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전주의 개발과 발전의 과정에서 소외된 오래된 동네와 장소가 전주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청년들에게는 자신의 일을 찾을 수 있는 터전이 되고 새로운 기회의 공간이 됐으면 한다. 그리고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옛 추억을 찾아 쉴 수 있는 여유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도시재생사업이 전주의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양적 팽창 될수록 이러한 사업이 전주시민의 생활과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기반이되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되짚곤 한다. 그러한 질문을 잊지 않고, 전주가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시민들의 수요와 함께 사업이 전개 됐으면 한다. 아울러 사업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의 투자가 열악하거나 소외된 오래된 동네를 새롭게 구성하고, 재건할 수 있는 요소와 사람을 발굴하고 성장시키고, 지켜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전주의 도시발전과의 비전에 있어 도시재생이 제대로 역할을 할수 있는 방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소영식 전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장 △소영식 센터장은 전통문화(원도심)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센터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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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04 15:31

저출산 대 저출생?

5년 전 본격화한 개념 논쟁이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아직도 지속하고 있다. 2018년 무렵 여성계에서 출산 정책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를 향해 “여성을 출산 수단으로 여기지 말라”며 제동을 걸면서,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바꿔 부르자고 요구했다. ‘저출산’이 아이를 적게 낳는 주체인 여성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고, ‘저출생’은 태어난 아이 수가 줄어드는 사회 구조에 무게를 둔 것이라 주장하면서, 한국사회가 직면한 인구문제의 원인이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저출생’ 개념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출산’이 일본식 한자어라서, 우리식 한자어인 ‘출생’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한때 있었다. 이 주장에 찬동한 국회의원들은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과 그 관련 법에 쓰인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바꾸려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그것은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그 사이에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 이하로 떨어져, 비교 상대국을 찾기조차 힘든 수준으로, OECD 회원국 중 꼴찌로 전락했다. 이렇게 출산율이 급격히 하락한 원인이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정책 개념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일까?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정책 개념을 바꿨다면, 출산율 하락을 막을 수 있었을까? 한국의 인구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유배우 출산율’, 즉 기혼 부부의 출산율 수준이 과거에는 OECD 평균과 유사한 수준에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조차도 급격히 하락했음을 발견한다. 구체적 인구정책 입안과 집행은 도외시한 채, 위기가 눈앞에 닥친 상황에서도 공리공론에 몰두하고 있다. 저출산·저출생은 하나의 현상을 다른 각도에서 조명한 개념인데, 그것 중 하나를 취사선택한다는 것은 황당한 발상이다. ‘인구학’ 교과서에는 출산력(fertility), 출산율(fertility rate), 출생률(birth rate) 개념을 모두 소개하고 있다. 출산 현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 전문 용어는 그 외에도 여럿 있다. 당연히, UN과 OECD 등 국제기구에서도 다양한 출산율·출생률 지표를 소개하고, 세계 각국의 구체적 수치를 발표한다. 이 자료를 통해, 사람들은 특정국의 출산율·출생률 수준을 다른 나라와 비교해 가늠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저출산 대책 관련 법 전반에 걸쳐 출산을 출생으로 개념을 대체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출산과 출생은 별개의 개념이고, 한국 정부에서도 두 개념을 모두 사용한다. 최근 감사원은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출산’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 2,236명을 조사했고, 그 과정에서 유기·사망·실종된 사례를 여럿 발견하여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출산과 출생 개념은 대체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에 있음을 쉽게 발견한다. 한국이 초저출산율을 기록하는 원인(예, 만혼율·독신율, 주거·일자리, 임신·출산·육아·교육비 등)을 찾아 그에 합당한 대책을 수립하는 것은 ‘저출산’정책의 지향점이고, 출생인구가 적어서 생긴 사회문제(예컨대,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아동 관련 산업, 교육산업, 지역소멸 등)의 본질을 찾아서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은 ‘저출생’정책의 목표 지점이다. 당연히, 이 둘 중 어느 하나를 버릴 수 없다. ‘실질적인 일(實事)에 나아가 옳음을 구한다(求是)’라는 실사구시 정신에 바탕을 두고, 인구정책을 재정비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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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27 16:22

그럼에도 청소년 자치활동을 하는 이유

토요일 아침이다. 중학생인 큰아이가 청소년자치공간 달그락달그락(이하 달그락)에 간다고 했다. 달그락은 지역 시민들과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민간 청소년 자치활동 공간이다. 아이가 오전에는 줌(zoom)으로 인도네시아 청소년들과의 국제교류 참여하기로 했고, 오후에는 기자단 활동으로 지역 취재한 이후 여름방학에 진행하는 상상캠프를 준비하는 기획 회의도 한다고 했다. 토요일에 큰아이는 거의 달그락에서 또래 청소년들과 자치활동 하면서 보낸다. 오래전이다. 주 5일제 되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최소한 토요일은 청소년이 입시에서 해방되어 여가와 함께 청소년 진로와 사회참여 활동 등 ‘청소년 자치활동’이 이루어질 것으로 알았다. 당시 보충수업 자율화, 야간자율학습이라고 했던 강제 학습의 자율화를 위해서 싸워 왔다. 학원 또한 12시 넘어서까지 수업하는 것이 학생들의 건강권 침해라고 주장하는 교육·청소년단체의 연대활동에도 참여했었다. 이제는 야자, 보충도 자율이고 주5일 된 지도 오래다. 그런데 꿈꾸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입시는 강화되었고 입시학원이 학교의 야자와 보충의 빈 공백을 모두 메워 버렸다. 뜻있는 소수가 청소년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치열하게 싸워 왔던 결과가 사교육 시장만 키우는 데 도움을 준 것은 아닌지 자괴감까지 들었다. 청소년이 건강한 생활을 하고 의미 있는 진로를 찾도록 돕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라고 믿고 활동해 왔는데 제도가 바뀌어도 그러한 실제적인 사회 변화는 쉽게 오지 않았다. 시간이 가면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럼 어떻게 하나? 내 결론은 그냥 할 일 꾸준히 행하는 거다. 제도나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서 행하는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의 삶에 옳은 일을 선택해서 활동할 뿐이다. 사교육이 강화되고 입시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에서 인지교육과 함께 그 근본의 삶을 이해하고, 경험하고 체험하면서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 내도록 사회적 가치 실현을 조금이라도 추동할 수 있는 활동을 한다. 나는 이러한 활동을 ‘청소년 자치활동’이라고 주장한다.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 정도라도 자치활동 하면서 청소년이 숨도 좀 쉬고 시민성도 기르면서 사회를 알아가며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에너지도 만들면 안 될까? 학원도 가지 말라는 게 아니다. 입시를 사교육에 모두 의존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평균 수명 80살 조금 넘는다고 하는데 그 시간 동안 가장 열정적이고 머리도 번뜩이며 몸 상태가 최고인 10대에 아무것도 못 하게 하고 10여년을 책상머리 앉혀 놓고 문제집만 풀게 하는 게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일 년에 학원비 몇백, 많게는 몇천만 원씩 쓰고도 결국 목적했던 서울에 대학 가는 학생들이 한 반에 1, 2명 내외나 될까 말까 한 현실에서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하기도 어렵다. 일주에 하루 이틀 자치활동 하면서도 일류대라고 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느냐 묻는 이들이 있는데, 당연히 입학할 수 있다. 함께 활동했던 청소년 중 서울에 좋은 대학이라는 곳에 많이도 입학했다. 물론 지방대 간 친구도 있고 소수는 대학을 저항하기도 했다. 대학이 목적이 아니지만 청소년이 원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가야 하는 대학이라면 당연히 진학하기를 바란다. 그러니 청소년의 미래와 함께 지금, 이 순간 청소년의 삶에 가장 이상적이고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곧 다가오는 따뜻한 여름방학에 한 번쯤은 멈추어서 생각해 보면 어떨지? /정건희 청소년자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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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20 18:27

미래교육에는 두 개의 길이 있다

미래교육에는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오래된 길이고, 또 하나는 새로운 길이다. 1. 오래된 미래교육 나는 옥동자다. 옥처럼 아름답고 귀한 아이라는 뜻이다. 1970년대, 전주의 J고교에서 교장 샘은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 조회에서 공개적으로 우리 1학년을 옥동자라고 불렀다. 그건 차별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2,3학년 선배들은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당시 J고와 B중은 동일계 학교로 B중학생은 J고를 무시험 진학했는데, 유독 그해에는 전원 시험을 치르게 했다. 그러니까 옥동자라는 칭호는 고난의 시험을 통과한 자에게 준 훈장 같은 것이었다. 옥동자들은 특별한 혜택을 누렸는데 첫째, 2.3학년들이 하는 보충수업, 야간 학습을 면제받았다. 게다가 교실마다 축구, 농구, 핸드볼 등 각종 구기용품을 배급받았다. 옥동자는 7교시가 끝나면 운동장에서 열심히 뛰놀았다. 친구들과 몸을 부딪히며 소리를 질렀고 운동이 끝난 뒤엔 함께 라면을 먹었다. 교실에선 늘 토론이 벌어졌다. 입시준비에 급한 선생님도 옥동자에게는 관대했다. 독일어 시간엔 사랑, 인생, 문학을, 사회 시간엔 정의란 무엇인가를 논했다. 과목에 관계없이 수업시간엔 늘 질문이 있었고 질문은 토의로 이어졌다. 도서관은 크고, 책이 많았다. 동서양의 고전과 신간이 책장을 가득 채웠다. 운동장에서 뛰놀던 친구를 도서관에서 만나면 한층 더 반가웠고 속깊은 얘기를 나누게 됐다. 입시 지옥의 긴 터널을 옥동자들은 쌩쌩하게 통과했다. 그래서, 대학입시는 어떻게 됐냐고? 하하, 짐작하신바 그대로다. J고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교장샘은 문책을 당해 쫒겨났다. 일년 뒤, 옥동자의 대학 진학은 예년의 성적을 회복했다. 진학은 일년 늦었지만 옥동자들은 어디서나 활달하고, 주도적이고, 공동체적 삶을 존중했다. 그러고 보면 쫒겨난 교장샘은 앞서간 미래교육자였고, 인문, 예술, 체육, 질문이 있는 교실은 오래된 미래교육이었다. 당시 J고 3학년이었던 서거석 교육감은 인문, 예술, 체육활동을 미래교육의 중심 축으로 삼는다. 학교 도서관을 리모델링하고, 아이들의 문예체, 창작활동을 한껏 지원하고 있다. 아이들 모두가 재학중에 뮤지컬, 영화, 연극 한 편은 제작할 수 있기를... 전북교육에 오래된 미래교육의 르네상스가 시작됐다. 2. 새로운 미래교육 사회시간. 스마트칠판에는 WSJ 영문 기사가 띄워져 있다. 탈레반의 학살을 피해 보트피플이 된 아프간 하자라족을 다룬 기사다. 그 옆에는 교사가 작성한 질문지가 있다. 탈레반은 왜 하자라족을 학살하는가? 난민은 국제법상 어떻게 처리되는가? 교사의 질문에 학생들의 답이 하나씩 스마트 칠판에 올라온다. 교사는 칠판에 올라온 답 중 하나를 클릭 확대해서 토의의 소재로 삼는다. 교사는 인종 차별이 전세계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설명하고 학생들은 다양한 인종차별의 사례를 조사한다. 학생들은 4명씩 한 모둠을 이뤄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는데 사례 취재, 이미지 디자인, 스토리 구성 등 역할을 나누어 협력한다. 학생들의 학습 과정은 모두 온라인 교육 플랫폼에 저장된다. 저장된 학습 데이터는 인공지능의 분석을 통해 개별 학생에게 제공된다. 미래교육은 디지털 대전환시대에 필요한 지식과 역량을 기르는 교육이다. 디지털 활용 역량은 필수적이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라는 새로운 직업이 떴다. 연봉 10억이다. 뭘 하냐고? 인공지능 채팅창에 '질문을 던지는' 일을 한다. 질문을 잘 만들면 드라마도 예술작품도 인공지능이 만들어낸다. 질문이 곧 창조다. 질문이 있는 교실, 에듀테크 수업혁신, 전북 미래교육이 가는 길이다. /한긍수 전라북도교육청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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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13 15:14

비판 세력 몰아붙이는 국정 운영; 노조 다음 시민단체

현 정부의 시민단체 옥죄기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노조 때리기’가 진행되더니, 다음 목표가 시민단체인 것이다. 감사원, 보수언론, 보수여당이 긴밀한 보조를 맞추고 있고, 서슬 퍼런 수사기관이 곧이어 등장할 것이다. 포문은 이미 조준되어 있었다.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도움 세력으로 ‘민노총(민주노총), 전교조, 시민단체들’을 언급했었다. 현 정부 출범 이후에는 ‘비영리민간단체 보조금 투명성 강화’를 국정과제에 포함했다. 지난해 말 국무회의에서는 보조금 사업 회계부정을 정비하라고 지시했다. “혈세가 그들만의 이권 카르텔에 쓰인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시민단체를 전 정권과 야당의 ‘이권 카르텔’로 보는 인식이 편 가르고 갈라치는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음이다. 하던 대로 감사원이 먼저 나섰다. 감사원은 5월 16일 비영리민간단체 대표·회계담당자 등 73명을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다. 언론이 뒤를 이었고, ‘범죄단체 아닌 시민단체’, ‘문정부서 혈세 타내 펑펑 쓴 시민단체’, ‘횡령백화점 된 시민단체’ 등 자극적 표현을 앞세웠다. 이 와중에 언론은 자신들의 주특기들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첫째는 감사원의 조사결과를 사실로 전제하고 그대로 전달하는 ‘받아쓰기 저널리즘’, 둘째는 ‘비영리민간단체’를 ‘시민단체’로 일반화 하는 비틀기 기법, 셋째는 시민단체에 부정적 이미지를 덧칠하는 ‘프레임 씌우기’ 기법이다. 보수여당 역시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서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기구는 ‘일제강제동원 시민모임’에 대한 보수언론의 왜곡보도를 지렛대 삼았다. 차제에 시민단체 전반에 대해 점검하겠다고 보수여당이 나선 것이다. 시민단체 선진화라니...누가 누구를 선진화시키겠다는 것인지 어안이 벙벙하다며, 시대착오적 시민사회 재갈물리기를 중단하라는 질타가 이어졌다. 마침내 대통령실이 직접 나섰다. 지난 3년 동안 민간단체 보조금 314억이 부정사용 되었다며, 적발 단체에 대한 형사고발 및 수사의뢰를 발표했다. 내년부터 당장 보조금 5천억원 이상을 삭감하고, 향후 지속적으로 감축할 것이라 밝혔다. 대통령은 단죄와 환수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 민간단체 보조금 투명성, 선진화라는 규범적 수사(修辭)가 앞세워지고 있다. 하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비판세력을 흠집내고 위축시키기, 갈라치고 지지세력 결집시키기라는 그림이 보여진다. 이를 위해 보수정권, 보수여당, 보수언론이 한 팀이 되어 법치와 투명성 강조-부정적 이미지 씌우기-사법처리 수사라는 빌드업(build-up)을 진행하고 있다. ‘노조 때리기’, ‘비판언론 옥죄기’에 구사되었던 방식이 시민단체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비판세력을 정해놓고 옥죄고 몰아붙이는 것이 국정운영으로 치환되는 듯 하다. 며칠 후면 6·10민주항쟁 36주년이다. 6·10항쟁은 오랜 군사독재를 끝낸 전국민적 항거였다. 우리 국민은 때때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저력을 가지고 있다. 1960년 4·19혁명,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 1987년 6·10민주항쟁, 그리고 가깝게는 2016/2017년의 촛불혁명이 그랬다. 도도한 근현대사의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은 억압한다고 기죽지 않는다. 탄압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처음엔 숨죽이는 것 같아도, 한 숨 돌리고 일어선다. 그것이 현재의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만들었고, 그러한 정신이 우리 국민이 일구어 온 진정한 국격이다. /김은규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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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06 16:00

지역이민비자

한국의 내국인 총인구는 2019년 11월 정점에 달한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인구감소 원인은 여러 가지지만 그 핵심은 저출산에 있다. 저출산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합계출산율, 즉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살펴보면, 1983년에는 2.06으로 당시 인구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1984년에 대체출산율 이하인 1.74로 떨어졌고, 그 후 꾸준히 감소하여 2021년에는 0.81로 격감하였다. 저출산은 오래된 일이지만, 인구감소는 비교적 최근에 시작되었다. 그것은 평균수명의 증가, 즉 사망력 저하 때문이다. 또한, 다행히 인구감소 개시 이후에도 노동력 부족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지 않고 있다. 이는 고령자·여성 등 비경제활동인구의 취업 증가, 기술 혁신에 의한 생산성 향상, 적정 외국 인력 도입 등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것은 불과 앞으로 5∼10년이라고 말한다. 요컨대, 한국은 생산연령인구를 대량 보유하여 ‘인구 보너스’를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달성했지만, 이제는 인구가 줄 뿐 아니라 노인부양인구가 늘어나는 ‘인구 부담’에 직면해 있다. 앞으로는 인구압력이 생산성 향상과 투자에 부담을 주고 재정 문제를 초래하여, 경제성장 엔진을 꺼트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한국경제가 인구감소의 충격이 크게 확산하기 직전 ‘골든타임’을 누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관점을 달리하여 국내 부문간·지역간·취업유형간 노동시장 상황을 살펴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업종별·지역별 노동력 수급 불균형이 존재하여, 수도권과 지방의 노동시장 상황이 판이하기 때문이다. 특히, 비수도권 지역에서 인구감소의 충격은 이미 심각하다. 몇몇 지역에서 경제는 황폐해질 위기에 처해 있고, 지역 인구 소멸로 치닫는 곳도 한둘이 아니다. 전라북도는 전국에서 인구감소 충격이 심한 곳 중 하나다. 행정안전부는, 전라북도 14개 시군 가운데 전주시·익산시·군산시·완주군을 제외한 10개를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했다. 전라북도는 법무부·행정안전부와 함께 ‘지역특화형 비자 제도’ 시범 사업 등을 시행하며, 인구감소 충격 완화 방안을 찾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전라북도는 지역 발전을 지속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올해 1월 국회에서 통과되어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전북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이 담아야 할 구체적 사항을 정비하여,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려 시도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지역이민비자’ 제도다. 그것은 ‘전라북도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정착할 외국인에게 대한민국 정부가 발급하는 사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캐나다·호주 등 해외사례에서 시도한 사례가 있긴 하나, 예상되는 문제를 차단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여 최선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 ‘지역이민비자’ 발급 건수와 활동 범위 등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그 근거가 되는 노동시장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당연히, 현재 전라북도의 ‘빈 일자리’ 수와 분포를 분석하고, 그것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 것인지부터 출발해야 한다. 전라북도 주민, 국내 다른 지역 주민, 외국인 주민의 구성 비율도 고려 대상이다. 바늘귀에 실을 꿰기 어렵다고 해서,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 쓸 수는 없다. 정책을 섣불리 수립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전라북도의 체계적이면서 면밀한 ‘지역이민정책’ 수립을 기대한다. /설동훈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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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3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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