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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운명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글 창제 원리를 한자로 설명해놓은 책이다. 세종은 당시 ‘문자의 역사상 가장 과학적이고 진화된 문자’로 평가 받는 한글을 창제하면서 한글을 만든 목적과 과정, 자음과 모음의 글자 내용 등을 집현전의 학자들에게 집필하게 했다. 해례본이 제작된 배경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해례본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보관해온 간송본과 골동품상이 갖고 있는 상주본 등 두 권만 남았다. 얼마 전 세 번째 <훈민정음 해례본>이 등장했지만 전문가들은 진본이 아닌 위작본에 무게를 두고 있다. 간송본과 상주본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길이 다르다. 간송본은 전형필선생이 우여곡절 끝에 소장한 이후 6·25전쟁이 났을 때는 품에 안고 피난을 떠났고, 잠잘 때는 베개 속에 넣어 보관했을 정도로 귀하게 여겨 끝내 지켜냈다. 해례본이 대중들과 만난 것은 간송이 1956년 후학들을 위해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해례본을 영인본으로 만들어 공개하면서다. 물론 이후 간송은 해례본 원본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를 통해 세상에 공개했다.상주본은 지난 2008년 경북 상주에서 발견됐다. 간송본과 같은 판본으로 추정되지만 간송본보다 보존상태가 좋고 주석까지 더해져 학술적 가치가 주목되고 있다. 상주본은 원소유자로 알려진 조모씨가 이것을 처음 공개한 배익기씨와의 재판에서 승소한 이후 문화재청에 기증해 법적으로는 국가 소유가 되었지만 배씨가 소유권을 주장하며 문화재청의 상주본 반납요구를 외면해왔다. 최근 상주본 실체가 공개됐다. 2008년 세상에 그 존재가 알려진 이후 사진으로라도 실물의 상태가 다시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현재 상주본은 일부가 훼손된 상태다. 지난 2015년에 난 화재로 일부가 타거나 훼손된 탓이다. 배씨는 지난 4월 12일 치러진 국회의원 재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국보로 등재시키겠다는 것이 공약이었다고 한다. 상주본 공개도 역시 그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배씨는 이 선거에서 낙선했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본다면 상주본이 다시 자취를 감추게 될 공산이 크다. 문화재청은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돌려받기 위해 협상에 나섰지만 배씨가 응하지 않자 반환 소송과 함께 고발 조치를 예고했다. 심화되는 분쟁 과정에서 우려되는 것은 상주본의 존재다. 훼손과 멸실의 위험에 처해있는 상주본의 운명이 안타깝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7.04.28 23:02

대선 공약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측은 국민연금관리공단 산하 기금운용본부의 전북 혁신도시 이전을 앞다퉈 약속하며 지역 표심을 자극했다. 당시 LH공사 본사를 경남에 빼앗긴 보상책으로 주어진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만족해야 했던 전북의 기분은 ‘울며 겨자를 먹는’ 심정이었다. 그렇다고 국민연금공단마저 놓칠 수 없었다. 당시 전북에선 국민연금공단 산하 알짜배기 금융기관인 기금운용본부를 전북혁신도시로 유치하려는 적극적 움직임은 부족했다. 다만 LH공사 본사 이전에 실패한 전북도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정부에 기금운용본부 전북 혁신도시 이전과 새만금개발전담기구 및 특별회계 설치 등 5대 후속조치를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기금운용본부 이전안을 외면했다. 그런 불투명한 상황에서 새누리당 친박 김재원 의원이 7월 10일 기금운용본부를 공단에서 분리해 ‘국민연금기금운용공사’로 신설하는 내용 등을 담은 ‘국민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의 ‘공사화’ 주장은 불 난 전북 민심에 기름을 부은 꼴이었지만 당시 박근혜를 차기 대통령감으로 내세운 새누리당과 이명박정부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기세당당했고, 전북의 기분이 상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중 반전의 기틀이 마련됐다. 2012년 10월 28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전주 근영여고 체육관에서 열린 전북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우선 전북혁신도시부터 제대로 살리겠다”며 “도민들의 염원을 받들어 365조원을 굴리는 세계 4대 공적 연기금인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도 (전북혁신도시에)함께 이관하겠다”고 약속했다. 전북에 금융허브도시의 꿈이 그려지자 민심이 민주통합당 쪽으로 크게 기울었고, 이에 긴장한 새누리당이 반응했다. 김무성 선대위원장 등이 전북을 찾아 기금운용본부 전북 이전을 약속하고, 그 공약 플래카드를 대로변에 줄줄이 내걸며 표심에 호소했다. 박근혜 집권 후에도 새누리당과 정부의 격한 거부가 계속됐지만, 대선에서 한 약속을 물거품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결국 기금운용본부는 지난 2월 전북혁신도시로 이전, 정상 가동되고 있다. 대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이번 대선전에서도 각 후보마다 전북지역 공약을 내놓고 지역 표심을 기다리고 있다. 투표일이 불과 열흘 남았지만 전북의 미래 경쟁력을 담보할 지역발전 공약들을 꼼꼼히 비교해 보는 건 유권자 임무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7.04.27 23:02

구름재 박병순

박병순은 1938년 동광신문에 시조 생명이 끊기기 전에를 발표하면서 시단에 나왔다. 그는 이병기의 가르침대로 시조를 현대화하는 일에 고심하였다. 그는 일체의 기교를 멀리하고 진솔한 심성에 비친 진실한 정감을 정직하게 형상화하느라고 노력한 시인이다. 1952년 최초의 시조 전문지 신조를 발행하였고, 한국시조시인협회장 등을 역임하며 시조의 위상을 높이는 일에 열성이었다. 1985년 한국시조큰사전을 상재하여 시조를 종교로 숭앙하던 신념의 일단을 선보였다. 이 사전으로 기존의 한국 시조는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으며, 고려말에 시작된 이후의 역사를 정리하게 되었다.구름재 박병순 선생(1917~2008)에 관해 문학평론가 최명표씨가 2011년 본보에 연재한 글( 전북 작고 문인을 찾아서) 일부다. 그가 생전에 자신의 비문으로 남긴 시 비명(碑銘)은 그의 일생을 더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한글을 사랑하고 시조를 종교하는 민족 시인으로 가람의 뒤를 이은 한국의 별로 살다 간 가냘프고 고달픈 순결한 대한의 교육자였다.구름재는 평생 서기 대신 단기를 썼고, 교단에 오를 때면 국기에 대한 경례를 빠뜨리지 않았다고 한다. 한글날을 문화의 날로 선포해야 한다고 청와대에 탄원서를 냈다. 전주상고, 전주고, 남원농고, 이리공고, 전주공고, 진안농고, 전주여상, 전라고, 임실고 등에서 40년간 평교사로 학생들의 문학적 감수성을 키웠다. 자신이 소장하던 장서 1만여권의 장서를 한양대에 기증했다. 생전에 애국자로, 한글운동가로, 시조시인으로, 교육자로, 장서가로 기억되길 원했을 만한 족적들이다.구름재의 이런 문학적 자산을 후배 문인들이 귀히 여겨 지난해에는 진안 부귀의 생가를 복원하고, 학술대회를 열었다. 생가 복원을 위해 2011년 추진위원회가 구성됐으나 사업비 확보를 못해 유야무야되기도 했다. 추진위를 재구성해 어렵게 복원작업을 마무리했다. 고향과 전북의 문인들이 도리를 한 셈이다.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가 27일 열리는 2017년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에 구름재 박병순을 선택했다. 시인 윤동주이기형조향최석두, 소설가 손소희와 함께다. 2001년부터 열어온 탄생 100주년 문학제에 채만식(2002)신석정(2007)김환태(2009)서정주(2015) 등이 이름을 올린 전북 출신 문인들이다.구름재의 문학을 다시 돌아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김원용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7.04.26 23:02

세월호

지난 주말 전북일보 리더스아카데미 춘계문화탐방의 일환으로 원우들과 함께 세월호가 옮겨진 목포신항을 찾았다.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나라의 역할 및 책임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자는 취지였다.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고 그동안 느껴왔던 여러가지 궁금증을 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그 배라고는 쉽게 믿기지 않았다. 목포항의 세월호는 모로 누웠다는 점을 제외하면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여느 항구에서나 누구나 흔히 볼 수 있는 겉모습을 가졌고, 어마어마한 참사를 빚었던 배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왜소하게 보였다.길이가 100m가 넘는 배의 크기가 결코 작지는 않은 터이다. 그런데도 특별하다기보다 일상적으로 보인 것은 추모객들의 접근이 허용된 도로에서 세월호가 놓여진 곳까지의 거리가 짧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심장을 압박하는 긴박감이나 왁자지껄한 대립갈등도 눈에 띄지 않았고, 작업을 위해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멀리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동안 언론에서 보고 듣던, 우리가 느끼고 상상했던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만큼 세월호라는 이름을 가진 배는 우리의 현실에서 저만치 벗어나 홀로 존재하고 있었다. 추모객들은 오히려 당황했다. 두런두런 귓속말이 이어졌다. 저렇게 작은 배였나? 왜 3년 동안이나 건지지 못했나? 뭘 숨기려고 했나?세월호의 참사를 실감나게 하는 것은 오히려 탐방객들이 오가는 도로변의 노란 리본과 미수습자 사진이었다. 추모객들이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걸어둔 수 만, 수 십 만개의 노란 리본들은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모습으로 따사로운 봄바람을 맞고 있었다. 미수습자 9명의 사진과 이름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추모객들의 눈시울은 저절로 뜨거워졌다. 노란 리본의 담벼락은 아픔과 슬픔이 교차하는 파도를 이루며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전북도민들에게 세월호의 의미와 아픔은 남다르다. 서해훼리호 침몰사고로 292명이 숨지는 참사를 위도 앞바다에서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세월호에 비해 20년전인 지난 93년 10월 10일의 일이었다.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이제 2주가 지나면 대선이 치러진다. 국민들의 힘으로 국민들이 만들어준 대통령 선거다. 국민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정부, 국가의 품격을 높이고 미래를 열어가는 정부, 그런 정부를 이끌 수 있는 새로운 대통령의 탄생을 꿈꿔본다. 서해훼리호와 세월호의 슬픔을 또다시 되풀이 할수는 없지 않겠는가?

  • 오피니언
  • 이성원
  • 2017.04.25 23:02

대선후보 선택 기준

선거가 중반으로 치닫으면서 양강구도가 더 견고해졌다. 갈수록 문재인 아니면 안철수냐로 세가 결집돼 가고 있다.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전북에서도 같은 양상이다. 이번 선거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조기대선이 실시되는 만큼 그 해답을 역지사지로 생각하면 쉽게 답이 나온다. 도덕적인 민주역량을 으뜸으로 치면 된다. 박 전대통령이 최순실로 하여금 국정을 농단해서 각종 비리를 저질렀기 때문에 그와 정반대의 깨끗한 인물을 뽑으면 된다. 깨끗한 인물을 뽑아야 개혁을 단행할 수 있다. 과거를 말끔하게 청산해야 미래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보수정권의 적폐를 비롯해 해방 이후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 이명박근혜 때 이뤄진 적폐는 아직 접근도 못한다. 4대강 사업으로 국가재정을 파탄나게 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정도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 지금 그는 마치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라도 된 것처럼 돼 있지만 그건 박 전대통령의 비리에 일시적으로 가려져 있을 뿐이다. 국민들의 시선은 그의 비리도 결코 박 전대통령에 못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도민들은 정권교체는 반드시 이뤄지겠지만 누구로 해야 하는가를 놓고 고민이 많아 보인다. 특히 보수로 대변되는 노인층들은 자식들 한테 누구를 찍어야 옳은 선택인지를 놓고 문의가 많아지고 있다. 예전과 달리 하루 종일 종편 등에서 알기 쉽게 토론과 해설을 통해 각 후보 장단점을 알려 주는 바람에 판단하기가 용이해졌다. 하지만 양강구도로 좁혀지면서 선택은 그리 쉽지 않다는 것. 도민들 사이에는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계승할 적자가 누구인가를 놓고 무척 고민하는 눈치들이다. 문측의 얘기를 들으면 문 같고 안측 이야기를 접하면 안 같고 선택이 여간 쉽지 않다는 것. 행복한 고민 같지만 그래서 부동층이 여전하다. TV토론을 봤자 아전인수식 해석이 많고 지지율이 낮은 후보들이 벌떼처럼 공격해 문안후보 장단점을 쉽게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것. 여기에 네거티브 전략으로 가짜뉴스까지 판쳐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차가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촛불집회 때 민주주의를 지켜내려고 굳게 맘 먹은 초심을 다시한번 생각해야 할 때다. 과거회귀 보다는 4차산업혁명을 통해 미래로 나가야 하는 게 시대적 당위다. 각 후보별로 사드배치를 놓고 말바꾸기를 하고 있다고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만 누가 더 현실적으로 안보문제를 잘 다룰 능력이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지금 한반도 안보상황은 누란의 위기와 맞먹을 정도로 위태롭다.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면서 중국을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미국은 625 때 피흘린 동맹이다. 국가이익 때문에 미국을 우선시 하는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피흘리지 않고 촛불집회를 통해 거악 박근혜정권을 끌어낸 국민들의 현명함이 장미선거 때 좋은 결과를 선보일 것이다. 보수정권한테 철저히 무시당했던 전북도 그날부터 새날이 온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7.04.24 23:02

회고록

오래전 여든세 살 할머니가 펴낸 회고록이 있었다. 열여섯 살에 시집와 아홉 남매를 기르며 살아온 시골 할머니가 자신의 삶의 역정을 모아 쓴 일기집(님은 가시고 꽃은 피고)이었다. 할머니는 시집와서부터 쓰기 시작한 ‘출납부(가계부)’를 50대부터 일기로 바꾸어 쓰기 시작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썼던 일기와 틈틈히 썼던 글은 수십권 노트로 쌓여 삶의 기록이 되었다. 남다른 역경이나 삶의 질곡이 드러나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지켜온 할머니의 일기집이 주는 감동은 컸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담담히 기록한 할머니의 진솔한 글이 주는 울림 때문이었다. 유난히 고왔던 송할머니는 서른아홉 살에 버스 화재로 심한 화상을 입었다. 품속에 있던 돌배기 딸을 감싸 안느라 그의 얼굴과 온몸은 불에 녹아내렸다. 그때 남편은 “벽에 기대 살아도 좋으니 살아만 달라”고 했단다. 췌장암으로 앞서간 남편에 대한 깊은 그리움은 다시 여러 편의 시로 쓰여졌다.할머니는 회고록을 펴낸 소감을 이렇게 말했었다. “내가 쓴 글이 세상에 남을 수 있게 되었으니 기쁨이 크지만 글 같지도 않은 글을 많은 사람들 앞에 내놓으려니 부끄러움이 커요.” <전두환 회고록>이 논란이다. 사실 논란을 불러일으킨 정치인들의 회고록은 적지 않다. 근래 들어서만도 이명박 대통령 회고록이나 노무현정부에서 외교통상부장관을 지낸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의 회고록 역시 논란과 쟁점을 불러왔다. 그러나 <전두환 회고록> 논란은 기왕의 회고록들이 가져온 논란과는 그 성격이 또 다르다. 가장 첨예한 논란은 5·18광주항쟁에 대한 전 전 대통령의 태도다. 그는 자신이 ‘(5·18광주항쟁의)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었다고 회고한다. 광주항쟁의 억울한 희생자란 이야기다. 12·12 군사반란, 5·17 내란 및 5·18 광주민중항쟁 유혈진압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그가 ‘씻김굿의 제물’을 운운하는 형국은 역사왜곡의 죄를 더하는 일이다. 그의 회고록을 둘러싸고 광주민중항쟁 관련 단체와 독자들이 나섰다. 5·18기념재단은 법원에 판매,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자신의 삶을 거짓 없이 기록한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부끄럽다’는 할머니의 회고록이나 <전두환 회고록>으로 다시 알게 되는 진리(?)가 있다. ‘글은 꼭 그의 삶만큼 보여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7.04.21 23:02

스탠딩 바람

크건작건 어떤 조직에서든 중요 사항들을 점검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회의를 한다. 회의 횟수나 참석 대상, 회의 방식 등은 조직마다 다르다. 다만 조직의 장이 회의를 주재하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상하관계가 분명한 조직의 회의는 경직되기 십상이다. 이 경우 말만 의견 수렴일 뿐 곧잘 질타성 회의로 끝난다. 조직을 빨리 알려면 그곳의 회의에 몇 번 참석해 보라는 말도 있다. 회의 방법과 수준에서 그 조직문화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회의를 할수록 회의(懷疑)가 든다’면 그 조직의 미래는 없다. 잇단 회의에 치여 회의가 부담스럽고, 생산적 결과를 도출시키기 위한 회의인지 회의하게 만든 경우가 많은 게 잘못된 우리 회의문화의 현실이다. 이런 반성 아래 근래 다양한 회의 형태가 등장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스탠딩 회의다.서서 회의를 하는 스탠딩 회의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이 채택한 방법으로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 서서 일하기 열풍이 불었다. 국내에서도 스탠딩 회의를 갖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나아가 기업벤치마킹을 통해 스탠딩 회의로 진행하는 자치단체도 속속 생기고 있다. 서울 금천구는 지난해 회의실 책상을 높이고 의자를 없애 국장 이상 간부들이 회의 때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할 수 있게 꾸몄다. 이에 앞서 경북도 인재개발정책실도 비슷한 방식으로 스탠드 회의를 도입해 업무 효율을 높였다고 자평하고 있다. 회의 방식은 아니지만, 도내에서는 완주군과 정읍시 정우면이 민원처리 부서에서 ‘스탠딩 오피스’를 도입했다. 창구직원들이 민원인이 눈높이에 맞춰 서서 근무함으로써 민원인과 거리를 좁혔다. 대선에도 스탠딩 바람이 불고 있다. 대선후보 토론으로서 올 처음 ‘스탠딩 토론’ 방식이 도입돼 어젯밤 처음으로 진행됐다. 준비된 대본이나 자료 없이 즉석에서 후보자들이 서서 벌이는 난상 토론 방식으로, 후보들간 신경전을 거쳐 어렵게 성사된 것이다. 토론회 결과에 대해서는 후보 진영마다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겠지만, 유권자들로선 모범답안이 아닌 후보의 민낯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스탠딩 토론이 후보 지지에 어떤 영향과 변화를 일으킬지는 미지수다. 후보의 진짜 능력과 심성을 알고자 하는 국민적 욕구에 부응한 시도였다는 점만으로 대선 역사에 남을 유산이다. 스탠딩 토론이 사회 전반의 경직된 조직문화를 바꾸고 소통을 원활히 할 자극제가 된다면 망외소득일 것이다. 김원용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7.04.20 23:02

분탕질

’분탕질’은 야단법석 소동을 일으키는 짓, 집안 재물을 탕진하는 짓, 남의 것을 빼앗거나 약탈하는 짓 등을 일컫는 말이다. 어느 집·집단·나라에서 분탕질하는 사람은 정의와 이익에 반하는 짓을 서슴치 않는 자이니 항상 경계와 혐오의 대상이다. 분탕질이 심한 자는 교도소에 격리된다. 하지만 교묘한 분탕질꾼은 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런 작자가 구성원 가운데 한 명이라도 있는 집단은 균열이 가고, 결국 쇠락해 망하고 만다. 분탕질을 하다가 주변의 미움을 사 소외되고, 그래서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하게 되면 오기가 발동해 더 심한 악행을 저지른다. 주변에 자신의 허물을 사과하기는커녕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기에 급급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배 째라’ 식으로 대응한다. 오히려 의기양양하고, 태연하게 행동한다. 이런 황당한 인물이 활개치면 조직에 균열이 생긴다. 구심력은 약해지고 원심력이 강해진다. 박정희가 한국경제 발전에 공이 있다는 세력이 많다. 실제로 박정희 집권시대에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경제 성장이 있었으니, 당시의 집권자가 그 부분에 대한 공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자금 조달을 위해 일본과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성급하게 맺는 바람에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치유할 길이 사라졌다면, 그래도 공을 인정할 것인가. 그에 대한 시대의 답은 나와 있다. 측근은 물론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을 고문 박해하는 등 온갖 분탕질을 하며 장기집권을 이어가는 그를 최측근 김재규가 권총으로 심판했다. 개인적 야욕을 채우기 위해 온갖 분탕질을 하다 결국 믿은 도끼에 발등 찍혔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을 수사해 온 검찰이 지난 17일 박근혜와 우병우를 기소, 재판에 넘겼다. 이번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이 42명(구속 21명), 박근혜의 뇌물액수가 592억 원에 달하니 현직대통령 탄핵과 구속에 이어 또 하나의 신기록이 됐다. 역대로 보면 정권 핵심부에서 분탕질 안 친 적이 없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물론 김영삼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권에 이르기까지 본인 또는 측근의 분탕질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웠다. 그들 탓만 할 것도 아니다. 박근혜는 사탕발림 공약에 힘입어 무려 51.63%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5·9 대선’에서 유권자가 감언이설 공약에 현혹되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7.04.19 23:02

여론조사

2007년 1월 9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하자 각 언론들이 앞다퉈 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두 언론사의 대조적인 결과였다. 한 방송사는 당일 저녁 뉴스에서 ‘찬성한다’는 응답이 51%라고 보도했다. 다음날 한 신문은 ‘적절치 않다’는 응답이 72.3%에 이른다고 밝혔다. 헷갈리는 것은 두 개의 여론조사를 담당한 여론조사기관이 똑같다는 점이다. 같은 시기에 같은 기관이 실시한 여론조사의 결과가 이처럼 대조적인 것은 무슨 이유일까?5·9 장미대선이 시작되면서 언론에는 후보자 지지율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날마다 넘쳐난다. 국민들의 눈과 귀가 쏠리고, 지지자들은 하나하나의 결과에 일희일비한다. SNS 등에서는 관련 소식이 밀물과 썰물처럼 교차하고, 각 진영의 사기는 이에따라 널뛴다.여론조사가 현실을 얼마나 제대로 반영하는지에 대한 논란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비슷한 시기에 실시된 여론조사도 그 결과가 큰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집단을 대표하지 못하는 표본선정(샘플링), 낮은 응답률, 편의적 보정 등 결과를 왜곡할 수 있는 기술적인 한계는 무수히 많다. 여기에 언론사의 관점과 이해, 여론조사기관과 정당·후보와의 관계 등 인위적인 잡음까지 끼어들면 더욱 심각해진다. ‘여론을 알아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론을 조작하기 위한’ 여론조사가 될 수도 있다.그럼에도 여론조사와 경마식 보도는 줄지 않을 것이다. 경마중계처럼 재미있고 사람을 빨아들이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치열한 경쟁과 선두다툼이 계속되면 관람객들은 손에 땀을 쥐고 숨쉬는 것조차 잊은채 경기에 몰두할 것이다. 정당과 후보측에서도 여론조사를 이용하려는 욕구를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선두라는 이름이 주는 밴드웨건 효과가 작지 않기 때문이다.국민들이 바로 보아야 한다. 앞에 언급한 2007년의 조사에서도 애초 질문은 ‘임기를 1년 남겨놓은 시점에서 개헌을 추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느냐’였다. 그러나 보도되고 알려진 것은 ‘현 시점에서 적절치 않다’라기 보다는 ‘적절치 않다’는 것이었다.이처럼 여론조사는 아 다르고 어 다를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하나의 결과에 연연하기 보다는 큰 흐름을 살펴보는 정도로 그쳐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후보자들의 정책과 공약이다. 후보자들의 면면을 뜯어보고 누구에게 우리의 미래를 누구에게 맡겨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대통령 뽑는 일은 인기에만 맡길 수는 없지 않겠는가?이성원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성원
  • 2017.04.18 23:02

장미대선과 전북

도민들은 장미대선때 정권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확신하면서도 내심 걱정하는 모습이다. 지난 2007년 이명박과 박근혜 두 보수후보간 당내 경선이 사실상 결승이나 다름 없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본선에서 야권의 문재인 과 안철수가 피마르는 경쟁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다자대결이지만 여론흐름상 양강구도로 좁혀졌다. 지지율이 연초만해도 6%대에 머물러 있던 안 후보가 당내 경선을 거치면서 유약한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컨벤션효과를 누리면서 강철수로 변해 단박에 문과 양강구도를 형성했다. TK를 중심으로 한 보수층과 50대 이후에서 안이 문을 앞서는 형국이다.상당수 도민들은 후보등록 전까지만해도 ‘문과 안 두후보간에 누가 되어도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것’아니겠느냐면서 여유를 부렸지만 지금부터는 한명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신중모드가 이어지고 있다. 도민들의 표심은 문과 안으로 양분돼 있다. 아직 두 후보를 놓고 저울질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번 대선이 촛불집회 영향을 받아 그 누구도 우위를 쉽게 점치지 못한다. 후보 등록 당시 지지율 1위가 당선으로 이어지던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주장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그 이유는 콘텐츠가 강한 안이 안풍(安風)을 일으키며 지지율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지난 12일 치러진 호남지역 5곳의 재보선에서 국민의당이 3석으로 한석을 얻은 민주당을 제쳤다는 것. 민주당은 결과에 대해 별 것 아닌 것으로 애써 의미부여를 안할려고 하지만 국민의당은 무척 고무돼 있다. 국민의당은 ‘지난 총선 때 불었던 녹색바람이 다시 재연된 것’이라며 ‘학군이 좋아 중산층이 많이 사는 서신동이 갖는 정치적 무게감 때문에 의미가 각별하다’고 평했다. 전주 서신동 도의원 선거에서 투표율이 저조했으나 그래도 대선 풍향계를 어느 정도는 앞서 짐작할 수 있다는 것. 시의원 당락 경험이 있는 국민의당 최명철 후보가 57.17%를 얻어 친민주당계 무소속 김이재 후보가 얻은 42.82%를 크게 제쳤다. 국민의당 최 후보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기로 한 약속을 저버리고 갑자기 민주당을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를 미는 꼼수를 부렸기 때문이다. 정직하지 못한 민주당의 꼼수정치에 유권자들이 반기를 들었다.이번 대선이 뚜렷한 이슈 없이 펼쳐지지만 문 후보의 일자리 공약과 안 후보의 안보공약을 놓고 도민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아직은 미지수다. 도민들은 문 후보의 적폐청산을 과거회귀형으로 안 후보가 내거는 4차산업혁명을 미래지향형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전북몫 찾기를 위해 전략적 투표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돼 귀추가 주목된다. 도민들은 대선 주자들의 전북 방문 발길이 뜸해진 것에 몹시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이 때문에 전북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될 후보보다 되어야 할 후보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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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17.04.17 23:02

전주의 요정 '행원'

구한말 서울 종로에 문을 열었던 ‘명월관’은 20세기 최초의 유흥음식점이었다. 명월관은 1909년 관기제도가 폐지되면서 딱히 활동할 곳이 없어진 궁중의 기녀들이 모여들어 영업이 번창하고 이름을 알렸다. 명월관은 주류와 음식을 판매하며 가무를 행할 수 있는 장소, 이른바 ‘요정’이었다. 당시 요정에서는 권번 출신의 기생들이 소리와 연주와 춤으로 주흥을 돋우었다. 그러나 해방이후 권번에서 교육을 받은 기생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단순히 술을 따르고 말벗으로 시중을 드는 유흥업종사자들이 기생의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자연히 요정이 갖고 있던 특성은 사라지거나 퇴색됐다. 전주에도 한때 ‘요정문화’가 성했다. 전주의 요정들 역시 권번 출신의 기생들이 사라져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이후에도 한정식 음식점으로 명맥을 지켰으나 90년대 말부터 서서히 문을 닫기 시작해 대부분이 이름을 지웠다.2000년대 중반, 사라진 요정문화를 현대에 맞게 살려보겠다며 문을 다시 연 한정식 음식점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전주 풍남문 앞에 문을 열었던 ‘행원’이다. 전주의 요정문화를 이끌었던 ‘행원’은 그 자신 권번 출신으로 가무와 시서화에 빼어났던 화가 남전 허산옥(1926~1993)이 운영했던 요정이다. 남전은 1942년, 전주국악원이었던 ‘낙원권번’ 건물을 인수해 ‘행원’을 열었다. 정치인과 기업인 등 지역 유지들이 애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전주의 대표적인 요정으로 자리 잡은 ‘행원’은 한편으로는 예술가들의 거점(?)이기도 했다. 남전은 전쟁의 혼란 속에서 생계 자체가 어렵거나 피난을 온 내로라하는 당대의 예술인들을 불러들여 후원하고 창작활동을 북돋았다. 덕분에 ‘행원’은 예술인 식객들이 줄을 이었다. ‘행원’은 남전이 경영에서 손을 뗀 이후 두세 차례 주인이 바뀌면서도 그 명맥을 유지했지만 운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았다. 2005년, ‘행원’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나선 사람은 지방 무형문화재 판소리 기능보유자인 민소완 명창이다. 전통음악과 춤의 명맥을 잇게 한 요정문화를 살려 ‘전주의 풍류 명소’로 만들겠다는 그의 열정은 기대를 모았지만 역시 가중되는 운영난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 후에도 한정식 집으로 이름을 지켜왔던 ‘행원’이 최근 폐업했다.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손님들이 끊기면서 더 이상의 운영이 어렵게 된 탓이다. 이제 ‘행원’은 추억 속 공간이다. 소중한 문화유산이 기억으로만 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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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17.04.14 23:02

가지 않는 길

길은 소통이고, 확장이고, 시쳇말로 발전의 시작이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작품 ‘가지 않는 길’이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건, 일상 속에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크고 작은 길에서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도전, 단 한 번 뿐일 수 있는 건곤일척의 선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노란 숲 속에/ 두 갈래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한참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지나간 사람의 흔적이 적어/ 아마 더 걸어야 할 길이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 길을 걸어가면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중략) 먼 훗날/ 나는 어디에선가/한숨을 쉬며 이야기 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그 중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시인 프로스트는 수많은 사람들이 앞서 간 길, 잘 다져진 길을 가기보다는 숲 속의 한적한 길, 수풀이 우거져 순조롭게 나아가기 힘든 길을 은근히 권하고 있다. 전자는 가기는 편하겠지만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지대다. 후자는 당장 수풀을 헤치며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힘들지만 경쟁이 적은 블루오션이다. 인생은 최초에, 혹은 나중에라도, 어떤 길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인간성은 물론 삶의 질 등 많은 부분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선택한 길 위에서 만난 직업과 친구, 이런 저런 주변 환경은 때론 우호적이지만 때론 극도의 스트레스다. 그래서 ‘먼 훗날’은커녕 당장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길은 당사자가 선택하는 것이 맞지만, 어쩔 수없이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일제강점과 광복, 전쟁 등 고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살아온 70대 이상 어르신들이 그렇다. 6.25전쟁부터 10여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상당수도 희생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요즘 취업난에 처한 청년들에게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이 권장되고 있다. 아스팔트 길에는 사람이 가득하니 수풀길이든, 자갈길이든 헤쳐 나아가라 한다. 성공하는 청년도 더러 있지만, 스타트업 벤처 창업의 성공률은 5%도 채 안된다. ‘실패는 성공의 지름길’을 되뇌며 다시 일어서 뛰라한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7.04.13 23:02

벚꽃엔딩

벚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전주 천변과 전주동물원 가는 길만 들어서도 눈이 하얗게 시릴 만큼 실컷 벚꽃구경을 할 수 있다. 벚꽃만 볼 요량이면 굳이 야외를 찾을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봄 꽃구경은 야외가 제 맛이다. 완주 송광사, 정읍천변, 마이산 등과 같이 오래된 벚꽃명소에서 벚꽃축제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지금이야 벚꽃축제가 갖는 무게가 떨어졌지만, 봄 축제가 많지 않던 시절에 벚꽃축제는 늘 시비의 대상이었다.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벚꽃을 우리가 축제로 즐기는 것부터 잘못이라는 비판이 늘 따라다녔다.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도라는 학설이 나오면서 그 비판이 어느 정도 완화되기는 했다. 그럼에도 매번 축제 자체가 먹고놀자판의 상업주의로 흘러 ‘바가지 상혼’이라는 말이 지워지질 않았다. 그런 탓인지 벚꽃축제의 생명력은 짧은 절정기의 벚꽃만큼이나 길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진해 군항제가 벚꽃 개화기에 열리는 대표적 벚꽃축제로 전통을 자랑하는 정도다. 전북의 경우 정읍시에서 가장 의욕적으로 벚꽃축제를 진행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어갈 지는 미지수다. 단순히 벚꽃만으로 고유의 축제성이나 지역성을 담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대부분 벚꽃축제들에 인파가 몰리면서도 달리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과거 전북 벚꽃의 대표적인 명소는 전주~군산간 도로인 ‘번영로’였다. 4차선도로의 양옆 백리길에 이르는 벚꽃터널이 장관이었다. 번영로 벚꽃은 스토리도 있었다. 재일관동지구 전북인회가 1975년 전군도로 가로수 조성사업비로 당시 700만원을 기탁해서 6700그루를 심었다.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통로로 아픔을 간직했던 번영로의 벚꽃은 10여년 전까지도 도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축제기간 만경교(목천포 다리)에 펼쳐졌던 야시장은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매년 상춘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며 계속 이어졌다. 번영로의 벚나무는 40여년의 고령으로 인해 하나 둘씩 고사하고, 제때 보식이 안 되면서 번영로는 벚꽃명소로서 자리를 내놓았다. 벚꽃철 불야성을 이뤘던 야시장을 지켜봤던 만경교는 2년 전 철거됐다. 익산국토청은 익산·김제시와 손잡고 철거된 만경교 인근에 만경문화관 건립을 추진한단다. 벚꽃의 화려했던 시절을 포함, 일제강점기의 아픔까지 지역의 애환을 담는 역사적 공간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마지막 불꽃을 태울 올 ‘벚꽃엔딩’은 아직 남아 있다. 김원용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7.04.12 23:02

미세먼지와 스모그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대기환경의 가장 큰 문제는 황사였다. 날이 풀리고 들판이 기지개를 켜는 봄이 오면 중국이나 몽골 쪽에서 불어오는 황토먼지가 어김없이 하늘을 뿌옇게 뒤덮곤 했다. 중국과 몽골의 사막지대 황토가 그 원인으로 지목됐고, 대륙의 사막이 더 확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대책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사막으로 날아가 나무를 심는 일도 적지 않았다.요즘에는 황사보다 미세먼지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미세먼지는 대기 중에 오랫동안 떠다니거나 흩날리는 매우 작은 입자상 물질(직경 10㎛ 이하)로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황사도 미세먼지 농도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보다는 자동차나 공장, 가정 등에서 사용하는 화석연료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이 주요 원인이다.미세먼지라고 하니 심각성을 덜 느끼지만, 실상은 주요 성분이 스모그다. 스모그는 18세기 유럽에서 석탄소비량이 증가하면서 심각해지기 시작했으며, 자연발생적인 황사에 비해 그 해로움이 훨씬 심하다. 특히 디젤 자동차 등에서 배출되는 입자크기 2.5㎛ 이하의 초미세 먼지는 호흡기의 가장 깊은 곳까지 침투하고 혈관으로 흘러들어가 인체에 치명적인 위해를 준다. 스모그로 인한 폐해는 역사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런던에서는 1872년에 243명, 그리고 1952년에 수 천명이 사망했으며, 미국 펜실베니아 도노라에서도 1948년에 20명의 사망자를 냈다. 최근에는 중국 베이징의 스모그가 매우 심해 외국인들의 탈 베이징 현상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외국 언론들은 베이징을 ‘대기오염으로 인한 종말’이라는 뜻의 ‘에어포칼립스’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에어포칼립스는 공기(air)와 종말(apocalypse)을 합친 신조어다.엊그제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마스크 없는 봄날’을 만들겠다며 미세먼지 6대 공약을 발표했다. 화력발전소 신규승인을 취소하고, 기존의 화력발전소에 대해서는 미세먼지가 많은 계절의 가동률을 낮추며, IOT(사물인터넷)을 활용해 동네수준의 미세먼지 예보체계를 구축하고, 중국 베이징처럼 ‘스모그 프리타워’ 시범설치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측은 곧바로 ‘스모그 프리타워’가 현실성이 없는 선거용 공약이라고 비판했다. 근거없는 공격은 아니겠지만, ‘뭔이 중헌지’도 함께 따져봤으면 좋겠다. 단순하게 정치적인 공방에서 그치지 말고 대기오염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정책대결이 시작됐으면 좋겠다.이성원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성원
  • 2017.04.11 23:02

헌법을 준수하는 대통령

5월9일 실시하는 장미대선이 문재인 대 안철수 양강구도로 가고 있다. 이번 대선은 박근혜 전대통령의 탄핵으로 치러지기 때문에 깨끗하고 역량있는 후보를 뽑으면 그만이다. 깨끗한 후보는 정치적으로 빚을 지지 않은 후보를 지칭한다. 정치적으로 많은 빚을 진 후보는 국정운영을 소신있게 할 수 없다. 선거때 자신을 도왔던 사람들을 일일이 자리라도 만들어서 챙겨줘야 하기 때문에 맘 먹은대로 국정을 운영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문 후보는 노무현 정권 때 비서실장을 지냈기 때문에 국정운영에 대한 풍부한 경험이 장점이다. 이 장점이 대세론으로 작용하면서 친노 친문세력이 패권을 형성하고 있다.시중에는 문재인이 집권하면 박근혜정권의 친박세력 보다 더 강한 친문세력이 국정을 장악해 좌지우지할 것이란 말들이 나돈다. 한번 권력을 잡아봤고 그 권력 맛을 본 사람들이라서 배타성이 강하다는 것. 반면 간철수라는 유약한 이미지를 완전히 벗긴 안철수는 강철수를 거쳐 독철수로 탈바꿈하면서 집권의지를 불사르고 있다. 안 지지자 쪽에서는 안이 대통령이 되면 미국 오바마와 독일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친다. 김종인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겨냥해서 3D를 쓰리 디라고 읽지 않고 삼디라고 읽었다면서 혹평한 것만 봐도 다음 대통령은 정보통신에 능한 4차산업혁명을 이끌 인물을 뽑아야 한다.안랩을 창립해 무료로 백신을 제공했던 안 후보는 다른 후보보다 4차산업혁명 쪽에서 강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KAIST와 서울대 교수를 거쳤기 때문에 교육개혁에 관해서도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가 공약으로 내세운 학제개편은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다음 대통령은 두 동강난 민심을 통합하면서 위기관리를 잘 해야 하기 때문에 통섭능력이 요구된다. 특히 국정을 운영하면서 풀고 나가야할 일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에 전문성과 순발력이 극도로 요구된다. 박 전대통령처럼 불통하거나 먹통이 돼선 안된다.지금 국민들이 왜 조기대선이 치러지게 됐는가를 생각하면 답을 쉽게 풀수 있다. 박 전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조기대선을 실시하기 때문에 법치주의 정착과 희망찬 미래사회를 열어 젖힐 인물을 뽑으면 된다.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할 때 헌법을 준수하고란 대목이 있기 때문에 그걸 금과옥조로 여겨야 한다. 대선을 앞두고 국민들은 각 후보들의 공약과 정책을 비교하면서 판단해야 한다. 촛불혁명으로 박 전대통령을 탄핵한 국민들인 만큼 자부심을 갖고 깨끗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된다.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권좌에서 몰아낸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자랑할만한 일이다. 구한말 때처럼 한반도에 격변이 예상되는 만큼 안보를 굳건하게 다져갈 인물이 필요하다. 이번에 대통령을 잘 뽑으면 국운이 상승해 선진국으로 진입할 것이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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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17.04.10 23:02

오바마 포스터

미국의 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내세웠던 화두는 변화와 희망이었다. 2008년 1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첫 경선지 아이오와주의 코커스에서 승리를 거두며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한 오바마는 결국 힐러리 클린턴과의 경합 끝에 2008년 8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 본격적인 대통령 선거에서도 Change(변화)와 Yes, We can(우리는 할 수 있다)을 외치며 새로운 바람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끌어들인 그는 마침내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를 압도적인 승리로 꺾고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다.신선하고 진정성과 열정이 넘쳤던 그의 도전으로 미국의 대선은 전 세계 사람들의 높은 관심을 끌어냈다. 숱한 화제와 감동을 이끌어냈던 선거의 풍경은 이채로웠다. 그 중 대중적인 관심을 받았던 것이 있다. 오바마의 포스터다. 오바마 얼굴 밑에 HOPE를 새겨 넣은 이 포스터는 오바마를 당선시킨 주역으로 꼽힐 만큼 대중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사실 이 포스터는 오바마의 공식 포스터가 아니었다. 오바마의 대선 캠페인을 지원하기 위한 풀뿌리 캠페인으로 제작된 것이었다.제작자는 미국의 대표적인 그래픽 디자이너인 셰퍼드 페어리.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그라피티 아티스트다. 대학 재학 시절 제작한 스티커로 티셔츠, 스케이트보드, 벽 포스터 등을 점령(?)하는 OBEY GIANT 캠페인을 펼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덕분에 오베이 자이언트(OBEY GIANT)란 별칭을 얻게 됐다.전쟁과 평화, 정치, 환경 등 우리 삶과 직결된 문제에 대중적 관심을 불러올 수 있는 예술작품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구현해온 그는 최고의 예술은 예술을 통해 세상을 조금 덜 두렵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세상과 더 밀접한 관계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오바마 포스터를 제작한 의도 역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오바마 포스터는 2009년, 런던디자인 뮤지엄이 선정하는 브릿 인슈어런스 디자인 어워드(Brit Insurance Award)의 올해의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디자인이 우리 일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상기시키는 작품이라는 평이 더해졌다. 포스터 원본인 오바마의 초상화는 스미소니언 국립 초상화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제19대 대통령 선거가 바로 앞에 와있다. 대통령 후보들의 포스터가 궁금해진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7.04.07 23:02

우리사회의 비적들

최근 한 방송사의 드라마가 인기 탤런트 부부를 잇따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지성과 이보영이다. 지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드라마에서 지성은 딸과 아내를 살해한 누명이 씌워져 사형수가 되는 검사 역을 맡았다. 이 드라마 후속작에서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보영은 사형수 누명을 쓰고 수감중인 아버지 구출을 위해 열연하고 있다. 인기 탤런트 부부가 특정 방송사 드라마 작품에서 릴레이로 주인공을 맡아 열연하는 것은 관심을 끌 수도 있겠다. 방송사 측에서 드라마를 기획하며 노린 상업적 포인트이기도 할 것이다.과거에도 비슷한 드라마가 적지 않지만 이번 지성이보영 주연 드라마는 소위 법비(法匪)를 응징하는 내용이다. 지성이 친형을 살해한 엄기준의 공격을 받고 살인범 누명을 썼을 때 동료 검사와 교도소장 등이 법비로 등장한다. 이보영의 부친이 살인범으로 몰렸을 때 대법관과 대형 로펌 등 공룡 법비의 위협에 굴복한 판사역의 이상윤(결국 이보영과 힘을 합해 법비 응징에 나서지만)은 정의를 버렸다.이런 종류의 드라마나 소설 따위를 접하는 사람들은 예전에 비해 순수 픽션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판사와 검사, 변호사 그리고 경찰과 사법경찰리, 세무사, 일반 공무원 등 민간의 이익과 직간접적 접촉면이 큰 직업 종사자들이 법비가 돼 민간을 억업하고, 겁박하고, 빼앗고, 직간접적 살인에 가담하는 경우가 더 이상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나 있음직한 일이 아니란 인식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이다.드라마에서는 결국 권선징악 결말이 나온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권선징악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 최근 박근혜최순실 사건에서 흑막이 벗겨지며 드라마같은 권선징악 결말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법비 드라마가 세인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은 그 원한을 간접적으로나마 풀고 싶은 민초들의 작은 바람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지난 1일 전북도교육위원회 의장을 지낸 박규선씨가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0년 교육감 선거에서 낙선한 후 대전의 한 평생학습기관을 인수, 만학도들을 위해 노력했지만 학내 분규에 휘말렸고, 심한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유서에서 설동호 교육감님, 한을 품고 갑니다라고 했다. 설 교육감 등 관계기관 등은 이번 사건에 내재한 교비(敎匪)의 실체를 밝혀내고, 고인의 한을 풀어주기 바란다.김재호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7.04.06 23:02

춘향과 향단이

한국의 대표적 고전인 춘향전은 판소리뿐 아니라 창극·연극·뮤지컬·오페라·드라마·영화 등의 다양한 장르를 통해 국민적 사랑을 받아왔다. 시대를 초월해 춘향전이 꾸준히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위대한 것은 그저 그런 사랑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분제 사회의 시대적 상황에 맞서 춘향이 자기실현을 이루는 데서 독자와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맛본다.춘향전의 주인공은 물론 춘향이다. 나머지 인물들은 춘향이 사랑을 이루는 데 촉매제 혹은 장애물이다. 그렇다고 나머지 인물들의 역할이 하찮다는 말은 아니다. 방자와 향단이 있기에 스토리가 풍성해지고 해학이 넘친다. 변사또가 없다면 갈등 구도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며, 춘향을 옥바라지 하는 월매의 애틋한 모정은 긴장감을 놓치 못하게 하는 기제다.춘향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가 이렇게 뚜렷하고, 모두가 잘 아는 이야기인 까닭에 종종 정치권에 불려 나온다.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는 대표에 선출된 후 “향단이가 춘향이 돼부렀다”고 으쓱했다. 그러나 그의 춘향이 시절은 총선 패배와 대통령 탄핵으로 오래가지 못했다.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인 홍준표 경남지사가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해“춘향인줄 알고 뽑았더니 향단이더라”고 한 것이 강렬했다. 홍 지사는 “우파 대표를 뽑아서 대통령을 만들어놓으니까 허접한 여자하고 국정을 운영했다. 그래서 국민이 분노하는 것이고, 그래서 탄핵당해도 싸다”고 곁들였다. 홍 지사는 지난해에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회에 가보면 방자 주제에 이도령 행세하는 사람도 있고, 향단이 주제에 춘향이 행세하는 사람도 있다”고 올렸다. 이에 대해“촛불은 바람에 꺼진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던 김진태 의원은 홍 지사를 향해“그가 이몽룡인 줄 알았는데 방자였다”고 비꼬았다. 정치적 수사라고는 하지만,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춘향 역할은 적절한 비유가 아니다. 홍 지사의 말대로라면 춘향이는 최순실씨다. 춘향을 사랑하는 국민들이 최씨를 과연 춘향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춘향과 향단이로 비유된 두 사람 모두 옥중에 있다. 춘향의 억울함은 이도령이 풀어줬지만, 두 사람은 변호사의 조력을 받는 처지다. 부패 관료 앞에 희생된 춘향과 가장 큰 힘을 가진 부패 세력의 장본인을 동일시하는 것도 맞지 않다. 이걸 두고 ‘억지 춘향’이라고 해야 하나. 잘못된 비유에 춘향과 향단이가 촛불을 들지도 모르겠다. 김원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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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용
  • 2017.04.05 23:02

청명과 한식

4일은 청명, 5일은 한식(寒食)이다.청명은 하늘이 차츰 맑아져 푸르게 되는 날이고, 한식은 찬 음식을 먹는 날이다.청명은 24절기 중 5번째로 춘분(春分)과 곡우(穀雨) 사이에 든다. 우수·경칩을 지나 춘분이 오면 절기상으로는 봄이지만, 아직 농사 등 바깥일을 하기는 이르다. 청명이 되어 날씨가 풀려야 농사준비를 하고 겨우내 묵혀 두었던 일을 챙긴다. 농경사회에서 청명은 사실상의 봄의 시작을 알린다.한식은 중국 진(晉)나라의 충신 개자추를 추모하는 데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개자추는 자신의 허벅지 살을 잘라 먹여 망명 중인 문공을 구했지만, 문공은 왕이 된 뒤 그를 잊었다. 늙은 어미와 함께 산에 들어가 살았고, 왕이 뒤늦게 후회하고 불렀지만 나오지 않았다. 산불을 놓아 유인했지만 끝내 버드나무 아래서 타 죽었다.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우리나라에서도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전통적인 4대 명절이었다. 한식에는 임금이 백성들에게 불을 나눠주는 ‘사화(賜火)’풍습이 있었다. 불씨를 오래 두고 바꾸지 않으며 불꽃이 거세지고, 양기가 지나쳐서 역질(疫疾)이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서 만든 새로운 불씨를 임금이 정승과 판서를 비롯한 문무백관, 그리고 360개 고을 수령에게 나눠줬다. 수령들은 이를 다시 백성들에게 전달하는데 이 때 묵은 불(舊火)을 끄고 새 불(新火)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수 없어서 찬밥을 먹었다.이처럼 청명과 한식은 서로 다른 날이지만, 오늘날에는 흔히 구분하지 않는다. 청명이 하루 전날이거나 같은 날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매한가지’라는 속담도 여기서 나왔다. 도긴개긴과 비슷한 뜻이지만, 굳이 ‘죽기 좋은 계절’을 주저없이 입 밖에 내는 조상들의 심정에서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초연함과 곤궁했던 살림살이가 읽혀지는 듯하다.청명과 한식은 귀민날(귀신이 하늘로 올라가 매인 날)이라고 하여 지팡이를 거꾸로 꽂아도 손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농삿일 준비와 함게 이장이나 묘자리 손보기, 비석세우기, 집 고치기 등을 하고 있다. 농경사회를 벗어난 현대에는 청명과 한식이 봄나들이의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남쪽에서부터 꽃 소식이 들려오고 들판은 점차 초록색 옷을 입는다. 그러나 항상 주의해야 한다. 바람이 유난히 심한 때여서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수 있다. 조상들이 찬밥을 먹고 새로운 불씨를 나눈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이성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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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원
  • 2017.04.04 23:02

전략적 선택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구속됐다. 탄핵 21일만에 구속됐다. 탄핵 때와 똑같이 국민 대다수는 박 전대통령이 구속될 것이라고 믿었다. 법원이 박 전대통령을 구속함으로써 국민적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 법치가 살아 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일부 박근혜 지지세력은 박 전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이 부당하다고 강력하게 맞섰지만 결국 무위로 끝났다. 대법원 판결이 나야 유무죄가 최종적으로 가려지겠지만 일단 그가 구속됨으로해서 폭풍드라마 제1막은 내려졌다. 민심을 거역하면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도 망가진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그녀가 사법적 판단에 따라 구속되면서 영어의 몸이 됐지만 촛불민심은 오래전부터 그를 탄핵하고 구속했다.이제 나락으로 떨어진 국가운명이 되살려 지게 됐다. 망가진 국정운영이 정상을 되찾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간 수없이 박근혜 정권한테 차별과 냉대를 받았던 전북도 기사회생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전북은 이 시간 이후 더 특별하게 나빠질 게 없다.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마냥 민심을 거스를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정권을 잡았다고해서 과거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 박근혜 정권처럼 전북을 업신 여긴적이 없다. 전두환 노태우 군부독재정권 시절에도 이렇게 전북을 홀대하고 망가뜨리고 썰렁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박근혜 정권에서 전북은 아예 없었다. MB 때보다 표를 더 줬지만 그녀의 수첩에는 전북이 철저하게 배척됐다. 무장관 무차관만이 아니라 아예 인재의 씨를 말려버렸다. 국가예산 배분때도 똑 같았다. 지금 전북이 무력증에 빠져 강원 제주 세종시 위에서 허우적 대고 있다.장미대선이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 것 같다. 이번 대선은 국가적으로도 중요하지만 전북으로서도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정권교체가 이뤄질 가능성이 한층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대세는 잡혔다. 민주당 문재인이냐 국민의당 안철수이냐만 남았다. 전북으로도 퍽 다행이다.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상당 부분 잘못된 부분이 고쳐질 수 있다. 인재등용은 말할 것 없고 국가예산 배분도 지금 같이는 안될 것이다. 두 후보를 감성적으로 접근하면 안된다. 문재인 후보를 미워도 다시한번 정도로만 떠올리면 안된다. 인수위원회 없이 가기 때문에 그의 공약을 잘 살펴야 한다. 청춘콘서트 당시 50% 지지를 받았던 안철수 교수가 5% 지지를 받았던 박원순씨를 서울시장으로 밀었던 대목부터 떠올리며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누가 더 정치적으로 빚을 많이 졌는지부터 시작해서 북핵문제 해결능력, 사드배치 문제, 양극화, 재벌해체문제 등 공약을 비교 검토해봐야 한다. 친노 친문 패권주의의 병폐는 뭣이고 금수저인 안철수가 사회에 2500억원을 환원했는데도 리더십이 약해 보이는 이유가 뭣인가도 살펴야 한다. 전북몫 찾기는 그냥 앉아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될 사람한테 표를 몰아주는 전략적 선택이 그래서 필요하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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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17.04.0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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