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2-21 14:09 (Su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오목대] 집에서 임종하는 가정형 호스피스

집에서 고통없이 눈을 감을 수는 없을까. 우리나라가 다사(多死)사회에 접어들면서 커지는 고민 중 하나다. 저출산고령화의 급격히 진행으로 우리나라는 2020년부터 사망자가 출생자를 앞섰다.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었고 이중 암환자는 150만 명, 치매환자는 100만 명에 이른다. 그래서 대다수 노인들은 노후가 두렵다. 죽음 앞에서 더욱 그러하다. 가족의 간병지옥이 걱정이고 낯선 병상에서 링거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쓸쓸히 죽을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품위있는 죽음,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는 없을까. 특히 말기 환자들이 고통스런 통증에서 벗어나 살던 집(Aging in place)에서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다면 그것은 큰 복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노인의 80% 이상이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임종을 맞는 게 현실이다. 말기 환자들에게 통증 및 증상을 완화해 주는 총체적 돌봄이 호스피스(Hospice Care)다. 처음 호스피스 운동을 제안한 사람은 영국의 간호사 시실리 손더스(1918∼2005)다. 그녀는 품위있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신체적·심리적·사회적·영적 차원에서 고통을 다뤄야 한다는 ‘총체적 고통’ 개념을 제시했다. 우리나라는 1965년 강원도 강릉시에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가 세운 갈바리의원이 최초다. 국내 호스피스 서비스는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환자가 병원에 머무는 입원형과 전문 팀이 가정을 찾아가는 가정형, 일반 병동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전문팀에 자문을 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문형이 그것이다.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호흡부전, 만성 간경화 등 5개 질환이 대상이다. 이중 대종을 이루는 입원형 호스피스는 암 환자만 이용할 수 있다. 호스피스 관련 병원은 전국에 127개가 있다. 지난해 이를 이용한 환자는 2만4318명이다. 이중 가정용 호스피스는 전국에 40개, 이용자는 2245명(9.2%)에 불과했다. 전북의 경우 전북대병원, 예수병원, 군산의료원, 남원의료원, 엠마오사랑병원, 원불교 원병원, 익산성모병원 등 7곳이 있으며 가정형은 전북대병원과 엠마오병원 2곳이 운영하고 있다. 가정형 호스피스는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다학제팀이 방문하는데 가장 중요한 사람은 전문간호사다. 환자 보호자와 의사소통을 하고 환자의 증상 및 상태를 파악하는 역할을 하며 24시간 상시전화가 가능해야 한다. 가정형 호스피스는 가족의 헌신이 전제되어야 하며 재택의료 및 사전돌봄계획(ACP)과의 연계 등 갈 길이 멀다. 또 낮은 수가(건강보험으로 지급하는 진료비)도 문제다. 그러나 환자의 죽을 권리(right to die)와 품위있고 편안한 죽음을 위해 더욱 확산되었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고문)

  • 오피니언
  • 조상진
  • 2025.10.23 16:59

[오목대] 블랙록이 던진 화두와 전북의 AI

블랙록은 래리 핑크 회장이 1988년 설립한 전세계 1위의 자산운용사다. 운용 자금이 12조5000억달러(약 1경7000조원)를 넘어서기에 흔히 '월가의 정부'로 일컬어진다. 대한민국 예산의 수십배에 달한다. 그런데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을 위한 방미 기간 중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과 만나 MOU를 통해 AI(인공지능) 및 재생에너지 인프라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하기로 한 소식이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특히 래리 핑크 회장이 "한국이 '아시아의 AI 수도'가 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혀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AI 데이터센터를 한국에 두고 아태지역 수요까지 아우르는 허브로 역할을 확대시킬 것이란 기대가 커졌다. 향후 5년간 아태지역 AI 재생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대규모 투자를 공동으로 준비하기로 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이미 이재명 정부는 ‘AI 대전환’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선정하고, 세계 3대 AI 강국 도약을 목표로 국가 차원의 AI 인프라 구축과 생태계 조성을 추진중이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2배 이상, 송전망을 30% 추가 확대하는 ‘에너지 고속도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방향으로 가기 위함이다. 만일 블랙록의 한국 투자가 이뤄진다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아태 AI의 수도로 우뚝 설 절호의 기회를 갖게된다. 특히 앞으로 AI의 벨트가 서남해안권이 중심이 될 것이란 관측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지방정부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때다. 그런데 지난 21일 밤 광주지역 정치권과 시민사회·경제·종교·학계 등 각계 대표 80여명이 긴급 회동을 갖고 '국가AI컴퓨팅센터 입지' 문제에 대해 독특한 입장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강기정 시장 주재로 열린 이번 비상회의에서는 삼성SDS가 국가AI컴퓨팅센터 입지를 갑자기 전남으로 선회해 정부 공모를 신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긴급히 마련됐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국가AI컴퓨팅센터 광주 유치를 공약했고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도 '광주'로 명시된 만큼 당연히 광주가 선정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땅값과 전력요금 등 상대적으로 경제성이 있는 전남으로 선정된데 대해 광주 차원에서 불만이 담긴 입장이 표명된 셈이다. 광주로서는 섭섭할 수 있겠으나 기업의 논리, 경제의 논리가 이젠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될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전북은 현 정부들어 미래 신산업 전략으로 피지컬 AI를 강력히 추진중인데 얼마전에는 AI 지역확산 공모에서 탈락해 힘이 좀 빠진 모양새다. 중요한 것은 블랙록이 던진 화두는 굵고 웅장하기에 하나의 사업이나 공모에 연연하기 보다는 서해안권 재생에너지와 새만금 산단을 중심으로 아태 AI 수도 건설에 어떻게든 발을 들어놓는 그랜드 플랜이 필요한 것 같다. 그게 살 길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5.10.22 18:41

[오목대] 대통령 공약과 부유하는 새만금

15년 전, 개발 초기부터 새만금에 큰 관심을 갖고 있던 건축가 김석철 교수(1943년~2016년)를 인터뷰로 만났다. 몸담았던 대학을 퇴직한 후 자신이 설립한 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을 이끌고 있었다. 연구원은 서울 가회동 북촌마을의 가파른 고갯길에서도 가장 위쪽에 있었다. 2000년 초반, 북촌의 100년 된 한옥을 보수해 들어간 이 공간을 그는 북촌의 한옥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나부터 살면서 보존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결실이라고 소개했다. 개보수 과정이 쉽지는 않았으나 이곳 연구원들은 그 후 주변 한옥을 개보수하는데도 참여했으니 어느 정도 전략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한국의 도시들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새만금과 인연이 깊다. 개발 초기부터 새만금을 연구하고 적극적으로 그 미래를 제시해온 그에게 정치인과 자치단체장들은 조언을 구했다. 그는 ‘대통령 선거에서 새만금을 주 쟁점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김 교수가 대통령 선거 공약에 새만금을 끌어들인 이유는 분명했다. ‘우리나라의 미래에 중요한 대상인 새만금이야말로 대통령이 될 사람의 자질을 검증하기에 좋은 이슈’라는 것, ‘새만금이 국정을 좌지우지할 만큼의 비중은 아니더라도 새만금을 어떻게 해석하고 풀어가느냐에 대한 철학은 대통령 자질을 검증하는 데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김 교수는 새만금의 미래에 큰 의미를 뒀다. 어찌 됐든 새만금은 대통령 공약의 우선순위가 됐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폐기되거나 지켜지지 않고 오히려 선거 때마다 이용되는 정쟁의 희생물이 됐다. 도시 설계 결과물을 모아 놓은 명저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는 김 교수의 빛나는 결실이다. 이 책에서도 새만금의 미래를 위한 설계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가 '농업시대에서 해양시대로 간다'며 주목했던 새만금의 미래는 ‘황해공동체의 공동시장과 물류기지, 사계절 관광단지’로서의 기능이다. “세계의 대부분 도시는 살아남기 위해 전 세계를 상대해야 하는 시대”라며 관건은 물류라고 강조한 그는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경제 환경으로 증가하게 될 중국 북안 도시권으로의 항만 물량에 대비해 서해안 어디보다도 좋은 조건을 가진 새만금에 새로운 거점 항만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돌아보면 새만금 개발 전략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크게 요동쳤다. 농지 확보로 시작된 새만금은 개발 기조나 핵심 사업까지 변화무쌍한 과정을 거쳤다. 당연히 제대로 된 결실이 구축되었을 리 없다. 이재명 정부도 공약을 내놓았다. ‘미래가 아닌 현재’를 위해 ‘속도감 있는 추진’을 내세웠다. 새만금기본계획 변경안이 진행되는 모양이다. 새만금의 부유를 끝낼 수 있으면 좋겠다./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5.10.21 18:41

​[오목대] 유치원서 대학까지, 학교는 전쟁 중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 전쟁이 다시 시작됐다. 각급 학교의 ‘신입생 모시기’ 열전이다. 학령인구 감소 추세가 계속되면서 더 치열해졌다. 이미 사회문제로 부각된 대학교만의 얘기가 아니다. 학교의 생존경쟁은 유치원에서부터 시작된다. 저출산 기조 속에 정부 방침에 따라 국공립 유치원이 늘어나면서 사립 유치원들이 사활을 건 아동 쟁탈전에 내몰리고 있다. 의무교육기관인 초·중학교도 이맘때면 내년에 들어올 신입생 수를 헤아리기 바쁘다. 농어촌 작은 학교는 더 절박하다. 해마다 신입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가 속출하니 폐교를 걱정해야 한다. 농어촌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과거 과대·과밀 학교로 유명했던 원도심지역 초·중학교도 농촌학교와 비슷한 처지로 전락했다. 도심 공동화 현상의 여파로 취학아동이 크게 줄면서 물밑 신입생 유치전이 치열하다. 인구절벽 시대, 학교 신설을 제한하는 교육부의 이른바 ‘학교총량제’도 원도심 작은 학교에는 불안 요소다. 고등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특성화고교가 심각하다. 첨단산업분야 특화 학교라는 점을 애써 드러내기 위해 수시로 교명까지 바꾸고 있지만 별 성과가 없다. 여기에 지방대학의 신입생 모집난은 이제 그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역대 정부가 ‘지방대 살리기’를 외치면서 굵직한 지원사업을 잇따라 추진했지만 오히려 수도권 대학의 위상만 높였다. 저출산·고령화 시대, 학교의 관심은 적령기에 학업 기회를 놓친 만학도들에게 쏠렸다. 먼저 지방대학이 ‘만학도 특별전형’을 통해 늦깎이 학생 모집에 나서면서 70~80대 할머니 대학생이 낯설지 않게 됐다. 이어 농촌 초등학교에서도 마을 할머니들을 주목했다. 질곡의 현대사 속에서 학업 기회를 놓친 할머니들에게 평생학습시설 대신 정규학교 입학을 권유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초등학교 과정을 마친 할머니 학생들의 발길은 자연스럽게 농촌 중·고교로 이어졌다. 올해는 18명의 할머니 신입생이 입학한 익산 함열여고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할머니 신입생 모시기는 애초 지속가능성이 없었다. 꼭 10년 전, 할머니 신입생들로 전국적 화제가 됐던 김제 심창초등학교가 이를 보여줬다. 이 학교는 지난 2015년, 50~60대 만학도 6명이 한꺼번에 입학한 후 한때 전교생의 절반이 할머니들로 채워지면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교실의 모습은 지속될 수 없었고, 결국 올초 폐교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찬바람과 함께 시작된 각급 학교의 신입생 모시기 전쟁은 올해도 정해진 기간을 넘겨 내년 봄 새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연장전에 연장전을 거듭할 것이다. 학교의 쇠락은 지역공동체의 붕괴를 부추길 것이다. 균형발전, 지방 살리기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시대의 과제다. 균형발전을 끊임없이 외쳐온 중앙정부가 파격적인 정책과 범국가적 지원을 통해 진정한 지방시대를 열어야 한다. 지역의 작은 학교에서 이 희망의 씨앗이 싹트길 기대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5.10.20 18:33

[오목대] 신언서판이 중요

지금 유권자들의 관심은 누가 내년 지방선거 때 민주당 공천을 받느냐로 쏠린다. 조국혁신당이 지난 총선 비례대표 선거때 선전해서 12석을 차지했지만 그 같은 돌풍이 내년 지방선거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6.3 대선 때 이재명 대통령이 전북에서 82.65%를 득표해 소가 밟고 지나가도 깨지지 않을 정도로 민주당 지지세가 더 견고해졌다. 이 바람에 지사부터 민주당 공천을 누가 받을 것인가가 관전포인트다. 민주당 정서가 강한 전북은 당원주권시대를 맞아 공천 때 유급당원의 비중을 50%에서 70%로 높이더라도 시민여론과의 괴리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당심과 민심이 같기 때문이다. 문제는 유급당원들이 얼마만큼 진정성을 갖고 표심을 바르게 행사하느냐 그 여부에 성패가 달려 있다. 예전과 달리 유급당원들이 귀하신 몸이 되면서 쉽게 움직이지 않지만 얼마든지 금품 유혹을 받을 개연성은 높아졌다. 현재 50대 50으로 돼 있는 공천기준을 7대3으로 높이면 당원 모집을 많이 한 사람이 유리한 구조다. 그러나 꼭 유급당원들이 모집한 후보한테 간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후보자 능력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 지금 현직 단체장을 제외하고는 유급당원을 많이 모집한 후보자가 여론조사에서 높게 나온다. 친 불친과 연고에 따라 표심이 움직이지만 지사나 시장 군수 등 단체장 만큼은 고도의 판단력과 전문성을 요하는 자리라서 각 후보자들의 종합적인 역량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익산시장이나 임실군수는 3연임해 불출마하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 조기에 과열되었다. 전주시장 등 나머지 시장 군수는 모두 재선의지가 충만된 상태지만 도전자가 만만치 않아 일부 여론조사에 일희일비 할 입장이 아니다.특히 관심을 끈 것은 불출마설이 유력했던 재선의 이원택 국회의원이 예상을 깨고 추석전에 지사경선에 나서겠다고 밝혀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번 지사경선 때는 송하진 전지사가 컷오프 되면서 재선의 김관영 전 국회의원이 김앤장을 등에 업고 단박에 공천권을 확보했지만 이번에는 예상외 변수가 많아 경쟁이 치열하다. 재도전하는 안호영 환노위원장은 같은 지역구서 연거푸 3선한 관계로 이번 지사경선을 배수진으로 치고 마지막으로 경선에 임한다는 자세다. 하지만 완주 전주 통합에 부정적이어서 찬성측이 많은 전주표심이 등 돌리고 있는 게 최대 걸림돌이다. 또 그가 주장했던 익산시와 통합해서 100만 메가시티를 건설하겠다는 계획도 익산시의회가 결사반대해 난관에 봉착했다. 세칭 송하진 전지사의 아바타로 칭하는 이원택 의원은 당 대표 선거 때 정청래 의원을 도운 것을 기반으로 정 대표와 함께 추석전에 김제시장을 방문해 한껏 기세를 높였지만 시중에서는 그의 능력상 시기상조라는 입장이 팽배하다.특히 여가부를 상대로 새만금잼버리 준비관계를 강하게 질타했지만 대회가 실패로 끝나고 서울행정법원이 지난 9월 새만금공항건설 취소판결을 내린 것도 그의 지역구 문제인 만큼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 그의 정치력 부족을 지적한 사람도 있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5.10.19 17:50

[오목대] 은퇴 후 인생 3단계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은퇴 후 인생 후반부도 길어졌다. 예전에는 은퇴 후 오래지 않아 죽음을 맞았지만 이제 30∼40년을 더 사는 게 일반적이다. 이 기간은 청장년기의 30∼40년과 질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직장이나 생업에 매어 돈을 벌거나 승진에 목매일 필요없이 주된 직업에서 물러나 온전히 내가 중심이 되는 시기다. 이러한 은퇴기는 대개 3단계로 나눈다. 좀 오래된 구분이긴 하나 미국의 재무설계사 마이클 스테인(Michael Stein)은 1994년에 은퇴기간을 10년 단위로 3단계로 나누었다. 활동기(Go-go Year)와 회상기(Slow-go Year), 간병기(No-go Year)가 그것이다. 활동기는 65∼74세까지다. 이 기간은 생업에서 손을 놓았지만 건강하고 시간이 많고 재산도 인생에서 가장 많은 때다. 따라서 이 시기는 그동안 못했던 외국여행을 떠나거나 골프 등 여가활동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 활동량이 많은 만큼 지출도 늘어나는 인생의 제2 전성기다. 올해 105세의 김형석 교수(전 연세대)는 60∼75세(어떤 강연에선 65∼90세)를 인생의 황금기라 했다. 이때 중요한 것은 3종세트를 잘 관리하는 일이다. 몸을 건강하게 움직이는 신체(Physical)활동과 두뇌를 활용하는 인지(Cognitive)활동, 그리고 타인과 교류하는 사회(Social)활동이다. 건강한 노년을 위해 몸을 움직이고 머리를 쓰고 사람과 섞이는 것을 말한다. 아직 젊은 노인이니 일자리를 찾거나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도 좋다. 회상기는 75∼84세 시기다. 이 시기는 특별히 아픈 곳이 없으면서도 노화가 진행되면서 행동이 느려진다. 지나온 인생을 반추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시기다. 특히 75세는 건강과 인지능력이 확 꺾이는 나이다. 그래서 일본에선 75세를 기준으로 전기고령자와 후기고령자로 나눈다. 또 서구권에서는 65∼74세를 영올드(Young-old), 75세 이상을 올드올드(Old-old)로 나누기도 한다. 이 시기는 가족이나 친구를 자주 만나면서 인생을 복기하는 것이 좋다. 이때는 지출도 줄어 경제적 부담도 적다. 간병기는 85세에서 사망까지의 시기다. 이 기간은 사람에 따라 1년이 되기도 하고 10년을 훨씬 넘기기도 한다. 이때는 혼자서 생활하기 힘들어 남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시기다. 집에서 생활하길(Aging in place) 원하나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경우가 많다. 통계청 생명표에 따르면 이 시기 우리나라 노인들은 15∼16년을 병치레(유병기간)로 보낸다. 이 시기는 의료비가 급격히 늘어나 경제적 부담이 크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상속분쟁에도 대비해 유언서 작성도 해야 한다. 가능하면 활동기를 늘리고 간병기를 줄이는 게 좋다.(조상진 논설고문)

  • 오피니언
  • 조상진
  • 2025.10.16 18:46

[오목대] 배니스터 효과와 낙후전북 타개

한동안 일반인들의 관심권에서 비켜나있던 박항서 전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재조명되는 일이 있었다. 최근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취업 사기‧감금 피해 사례가 급증하는 가운데, 박 감독 또한 작년 3월 방영된 SBS ‘신발 벗고 돌싱포맨’에서 아내와 함께 납치될 뻔한 적이 있다고 했던 일이 새삼 소환된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오래 생활했고 지명도가 있는 박 감독 같은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할 정도라면 인도차이나 반도, 특히 캄보디아의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하다. 베트남에서 그는 소위 ‘박항서 신드롬’을 불러 일으킨 인물이다. 축구 변방인 베트남을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챔피언십 결승으로 이끌면서 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갖은 핍박을 받았고 가난에 시달렸던 베트남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박 감독 얘기를 하다보면 20세기를 통틀어 매우 유명한 사건 하나가 떠오른다. 사상 최초로 육상 1마일(약 1.6㎞)에서 마의 4분 벽을 깬 전설의 육상선수 로저 배니스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배니스터는 1954년 옥스퍼드대에서 열린 육상대회에서 1마일을 3분59초4에 주파했다. 9년 여 동안 깨지 못했던 1마일 4분대의 벽을 무너뜨린 주인공이다. 당시 사람들의 통념은 “죽었다 깨어나도 1마일을 3분대에 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배니스터가 4분 벽을 깨고 난 지 불과 한 달 만에 10명이, 1년 후엔 37명이 4분 벽을 깨뜨렸고 2년 후에는 300명이 마의 벽을 넘어섰다. 그 유명한 ‘배니스터 효과’라는 말이 생겨난 이유다. 그때부터 생각이 바뀌면 결과도 달라지는 현상을 사람들은 ‘배니스터 효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 중 민주주의와 경제 선진화를 이룩한 나라는 지구촌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글로벌 기업들의 활약상은 감동, 그 자체다. 인력과 자원이 온통 수도권 중심으로 쏠리고 있는 지금 지방은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냉소와 비관,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된 전북은 가장 심각한 상황이다. 어느 한 분야에서 마의 벽을 넘어서기 시작하면 한계를 돌파하는 상황이 속출할텐데 요즘 지역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이는 없고 다른 이의 시도나 아이디어의 문제점을 트집잡는데 급급하다. 올림픽 유치의 사례에서 보듯, 새로운 시도나 돌파구를 찾는 것을 응원하기는 커녕 뒷덜미를 잡는 관행이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마의 4분벽을 돌파하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배니스터를 진심으로 응원했던 선수들은 불과 1, 2년뒤 그의 기록을 넘어섰다. 하지만 “말도 안되는 허튼 짓”이라고 비아냥 거렸던 이들은 영원히 역사의 패자로 남아있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5.10.15 18:22

[오목대] 노벨문학상과 영화 '사탄탱고'

2000년 5월, 첫 막을 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화제가 됐던 영화가 있다. 익숙했던 영화에 대한 관념을 깨고 낯선 영화의 세계로 관객을 끌어들였던 전주영화제 상영작 중에서도 가장 특별했던 이 영화는 세계적 거장 벨라 타르 감독의 <사탄탱고>였다. 상영시간 438분. 무려 7시간 18분짜리인 이 영화는 ‘두 시간 안팎’ 정도로 정해두었던(?) 기존 영화의 상영시간을 세 배 이상 뛰어넘으며 국내에서 필름으로 상영된 가장 긴 영화가 됐다.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져가는 1980년대, 헝가리를 배경으로 기적에 대한 기대와 절망을 그린 이 영화는 헝가리의 대평원을 배경으로 기계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살아온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해 전주영화제의 특별섹션인 ‘미드나잇 스페셜’의 마지막 밤을 장식했던 <사탄탱고>는 그 뒤로도 줄곧 화제의 영화 대열에 있었지만, 동시대 가장 위대한 영화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벨라 타르 감독의 기념비적 영화로 꼽혀왔을 뿐 원작자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희망과 몰락이 뒤엉킨 사람들의 모습을 집요하게 쫓는 영화 <사탄탱고>의 원작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가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헝가리 작가로는 임레 케르테스에 이어 두 번째 수상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종말론적 두려움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재확인하는 강렬하고 선구적인 작품 세계”를 높이 평가하며 크러스너호르커이를 ‘중부 유럽 전통을 잇는 위대한 서사 작가’라고 밝혔다. 사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였지만 놀랍게도 여섯 개 작품이 번역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사탄탱고>는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으로 꼽힌다.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서점가를 휩쓸고 있는 선두 작품도 영화로 먼저 알려진 <사탄탱고>다. 알고 보니 국내에서 소개된 크러스너호르커이의 6개 작품 모두를 독점 번역한 것은 ‘알마’라는 작은 출판사다. 알마는 2016년 <사탄탱고>를 시작으로 <저항의 멜랑콜리> <라스트 울프> <서왕모의 강림> <세계는 계속된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등을 시리즈로 기획해 꾸준히 펴냈다. 1쇄 판매도 마치지 못한 작품도 있으니 경제적 부담이 컸겠지만 알마는 남다른 의지로 시리즈를 지켰다. 알마의 안 지미 대표가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작품을 출간하게 된 뒷이야기도 화제다. 안 대표는 25년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사탄탱고>를 처음 만났다. 그는 그때 받은 깊은 감동이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작품 출간을 이끌었다고 소개했다. 독점 번역은 그의 선구적 안목과 의지의 결실이었던 셈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영화 <사탄탱고>가 재조명되고 있다. 이 영화를 만나게 해준 전주국제영화제의 탁월했던 선택이 새삼스럽다./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5.10.14 19:11

[오목대] 명절과 선거, 그리고 민심

추석 연휴가 끝났다. 민족 최대의 명절, 긴 연휴 덕에 귀성·귀경 전쟁은 그리 치열하지 않았다. 치열한 전쟁은 따로 있었다. 이제 7개월여 남은 내년 지방선거 입지자들의 홍보전이다. 이미 출마의사를 밝혔거나 출마를 기정사실화 한 입지자들의 ‘명절 인사’ 현수막이 아직도 즐비하다. 명절 인사를 빙자한 입지자들의 이름 알리기 경쟁이다. 추석 연휴를 기점으로 사실상의 선거전이 시작된 것이다. 내년 6월 3일로 예정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주요 사무일정은 내년 1월 시작된다. 입지자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각 정당의 경선은 내년 3월께 치러진다. 선거가 내년이라고는 하지만 민주당 경선이 곧 본선인 지역 선거구도에서 입지자들의 마음은 급하다. 중앙 정치무대에서 활약상을 보이지 못한 국회의원들도 지역구 유권자들에게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 기성 정치인과 출마예정자들이 큼지막하게 자신의 이름을 새긴 추석맞이 현수막을 여기저기 내건 이유다.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새로 기억되고 싶어서다. 명절은 공직선거의 시점이자, 분기점이다. 민심이 형성되고 움직이는 시기가 바로 사람이 모이는 추석과 설 명절이다. 각 정당의 지방선거 후보자 공천을 앞두고 맞는 내년 설 명절에는 거리의 귀성 인사 경쟁, 민심 잡기 신경전이 더 치열할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명절 밥상머리 화두에 정치와 선거 얘기는 절대 꺼내서는 안 될 금기어가 됐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친지들 사이에 큰 분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증오와 대립의 정치가 고착되면서 그 금기사항은 철칙으로 굳어졌다. 가족 간 말다툼과 주먹다짐을 넘어 칼부림까지 종종 발생하니, 명절 어이없는 비극을 막기 위해 절대 꺼내서는 안 될 화두임에 분명하다. 어쩌다보니 가족 간에도 극도로 말조심을 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취업과 결혼·출산 등 사생활에 대한 간섭은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만, 정치적 견해를 내세울 경우 자칫 극한 충돌을 불러올 수 있다. 그 견해가 확고할수록 위험성은 더 커진다.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우리 사회 불문율이자 웃지 못할 명절 풍속도다. 그나마 농어촌에서는 이런 다툼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마을 어귀, 명절이면 어김없이 줄지어 내걸렸던 귀성객 환영 현수막이 자취를 감췄다. 정치인들의 낯내기용 명절 인사 현수막조차 없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데도 말이다. 표 계산에 도가 튼 정치인들의 셈법이니 그 이유가 분명하다. 그래도 정치인들은 명절 밥상머리 민심을 듣고 싶어 한다. 내년 지방선거 입지자들은 더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귀담아듣지는 않는다. 어느 정치인, 어느 후보를 추켜세우고, 비난하는지에만 촉각을 세운다. 해석도 아전인수식이다. 정치권의 이전투구식 정쟁을 싸잡아 비난하면서 당장의 팍팍한 삶을 걱정하는 서민들의 목소리는 흘려버린다. 민생과 소통을 외친 그들의 명절 현장 행보가 가증스럽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5.10.13 18:15

[오목대] 지사 덕목은 정치력이 우선

대통령제를 채택한 우리 정치 상황하에서는 대통령과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제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대통령과의 관계가 원활하거나 매끄럽지 못하면 실력 발휘를 못하게 돼 있다. DJ가 집권했을 당시 유종근 전 지사가 환란속에서 전방위적으로 힘쓸 수 있었던 것은 경제학자로서 환란을 극복할 역량을 갖췄다고 DJ가 판단해서 무한 신뢰를 보냈기 때문이다. 유 전지사는 DJ의 신뢰를 바탕으로 IMF 극복을 위해 무소불위에 가까울 정도의 권한을 행사했다. 외신 기자나 재벌들이 유 전지사를 만나려고 스위스 다보스 포럼까지 찾아 갔지만 스케줄이 맞질 않아 헛탕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외환위기 수습 과정에서 DJ의 경제고문으로 활동하느라 도정에 전념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지만 재선하면서 소리문화전당을 짓거나 월드컵경기장 용담댐 수몰로 인한 이설도로 개설 등 굵직한 현안사업을 깔끔하게 해결하는 수완을 보였다. 유 지사가 원맨쇼 하듯 거침새 없이 독주하자 도내 국회의원들과 광주 전남지역 정치인들로부터 시기 모함을 받기도 했다. 그 당시 가장 안타까운 일은 김제공항을 지역 유지들과 정치인들이 계란세례까지 퍼부으며 결사 반대해 오늘날 새만금공항 사태를 불러왔던 것. 전북은 노무현 문재인 정권시절이 지역발전시킬 기회였지만 정치인들의 역량 부족으로 허송세월 하고 말았다. 전북이 오늘날 전국에서 가장 낙후지역으로 전락한 이유는 지사 국회의원 시장 군수 선출직을 제대로 뽑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신들 입신양명하기에 급급했으니 지역이 발전할 턱이 없었다. 새만금사업서부터 시작해서 30년 이상을 지역발전이 공회전했으니 무슨 발전이 이뤄졌겠는가. 조금만 눈길을 밖으면 돌리면 충북 오송등 천지가 개벽된 사례가 한둘이 아니었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도민들의 기대감이 크다. 조각과정 때 전북 출신 4명을 장관으로 발탁하면서 그 기대감이 부풀어졌다. 하지만 더 지켜봐야겠지만 현실적으로 국가예산 확보는 기대 이하다. 정부예산이 8.1% 늘어났지만 전북은 절반인 4.3% 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윤석열 전정권 때 탄압받고 핍박받은 것을 감안하면 전북은 전체 예산 규모가 11∼12조는 되어야 한다. 다행히도 김관영 지사가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적극적인 대시로 피지컬 AI 관련예산을 확보하는 등 원군이 되어준 것은 괄목할만하다. 반면 김지사의 2036 하계올림픽 유치를 흠집내는 등 반김라인이 구축되면서 재선의 이원택 의원까지 지사경선전에 뛰어들었다. 송하진 전지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청래의원을 당 대표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고무돼 출사표를 던진 것은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만을 위한 결정이라고 지적한다. 민주당 지지자 중 김 지사의 컷오프설을 흘리지만 정청래 대표가 컷오프는 없다고 잘라 말해 경선으로 판가름 날 것이다. 식자층에서 김 지사의 업적이 없다고 비판하지만 최근 뉴스1 여론조사 결과 김 지사 31% 빼고는 3명 모두가 10%대 전후에 머물러 있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5.10.12 17:30

[오목대] 개그맨 전유성이 남긴 것

(1) 조세호: 제가 슬럼프에 빠져서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 전유성: 그래, 그만둬! 조세호: 근데 그만두려니 걱정됩니다. 전유성: 그럼 해라. 어차피 두 가지 아니냐, 하든가 말든가. 그냥 해라. (2) 김신영: 저는 한물간 개그맨 같아요. 전유성: 축하한다. 김신영: 한물간 게 왜 축하할 일이죠? 전유성: 한물 가고, 두물 가고, 세물 가면 보물이 되거든. 넌 보물이 될 거야. 위 대사는 개그맨 전유성이 힘들어하는 후배들을 격려하며 한 말이다. ‘개그계의 대부’로 불리는 그는 지난달 25일 전북대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6세로 사인은 폐기중 악화. 폐기중은 폐에 기포가 터지면서 흉막에 공기가 스며 들어가 그 압력으로 폐의 일부분이 수축돠는 잘환아다. 고인은 1969년 곽규석이 진행하는 TBC ‘쇼쇼쇼’의 코미디 작가로 방송계에 입문했으며 ‘유머 1번지’와 ‘개그 콘서트’ 등을 통해 코미디계를 이끌었다. 그가 우리나라 연예계에 남긴 발자취는 막대하다. 첫째, 창조성과 탁월한 기획력. 그는 당시 낮게 평가되던 코미디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개그맨’이란 용어를 대중화시켰다. 또 후배 개그맨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코너의 틀을 잡아주는 개그계의 아이디어 뱅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금은 보편화된 심야극장이나 심야볼링장도 그의 기획이다. 이러한 아이디어의 원천은 끊임없는 독서와 사물을 비틀어 보는 데서 나왔다. 그는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등 책도 36권을 냈다. 둘째, 인재를 보는 안목. 그는 가수 이문세, 김현식을 비롯해 개그맨 주병진, 이영자, 팽현숙, 조세호, 김신영, 배우 한채영 등을 발탁했다. 또 개그 콘서트의 신봉선, 안상태, 김대범, 황현희, 김민경 등을 발굴했다. 셋째, 이타성(利他性). 그는 밤무대를 뛰며 어렵게 생활하던 이영자를 TV에 출연시켜 일약 스타로 키웠다. 그러자 이영자가 찾아와 ‘고맙다’며 3000만원을 건네자 돌려보낸 일화는 유명하다. 끝으로 전북과의 인연. 그는 2009년부터 2018년까지 경북 청도군에서 ‘코미디 철가방’극장과 카페를 운영하며 코미디 페스티벌 행사 등 지역문화 활성화에 힘썼으나 군청과 갈등을 겪었다. 이후 2022년 딸이 사는 남원시 인월면으로 옮겨와 ‘국수 교과서’라는 국수 가게를 1년여 운영했다. 유일한 혈육인 딸 전제비는 이곳에서 카페를 운영 중이다. 그리고 예원예술대에 코미디 연기학과를 만들어 조세호, 김신영 등 많은 제자를 키웠다. 그는 가정적으로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숨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개그를 놓지 않았다. “묘비명으로 어떤 문구를 남기고 싶냐?”고 묻자 “웃지마, 너도 곧 와!”라고 답했다고 한다. 죽음조차 개그로 승화시킨 것이다.(조상진 논설고문)

  • 오피니언
  • 조상진
  • 2025.10.09 18:01

전북의 고질병 적전분열

"일단 전주는 서울시하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국내 유치도시로 선정됐다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일을 해냈다.” 정읍 출신 핸드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임오경 의원(민주당 경기 광명갑)이 최근 밝힌 내용이다. 그는 엊그제 '전북 전주 하계올림픽 유치'와 관련해 논란이 이는 것에 대해 "체육인 출신 국회의원으로서 안타깝다"며 "전주 올림픽유치를 위한 특별법 제정이 신속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전북도정과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들과의 의사소통이 더욱 원활해지고 이 문제가 더 이상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했다. 전주 하계올림픽 유치가 최근 'IOC로부터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는 논란에 대해 소회를 피력한 것이다. 앞서 윤준병 민주당 의원(정읍·고창)의 주장에 대한 반박 성격이 짙다. 지역에서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있는 2036 전주 하계 올림픽 유치 문제에 대해 윤 의원은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고 메가톤급 펀치를 날렸다. 논란이 커지자 윤 의원은 1일 간담회에서는 자신의 문제 제기가 올림픽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쉽게말해 하계 올림픽 성공을 위해 문제를 조기에 보완하고 제대로 된 틀을 만들어가자는 취지라는 것이다. 정치적 의도가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문제가 있는 걸 덮고 가는 것이 아니라, 아프더라도 공개해서 고름을 짜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딱히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북 출신 의원이 공개적으로 이 시기에 적전분열처럼 비쳐질 수 있는 정치를 한 것은 분명하다. 전북은 말할것도 없고, 대한민국 국민들이 똘똘 뭉쳐서 노력해도 될까 말까한 올림픽 유치에 대해 정치적 기반을 전북에 둔 의원의 한마디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임오경 의원이 "체육인 출신 국회의원으로서 안타깝다"고 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한편에선 이번 사태의 본질은 내년 지방선거와 맞닿아 있다고 보고있다. 올림픽을 내세우며 재선가도에 나선 김관영 지사와 대항마로 등장하고 있는 안호영, 이원택 의원 등의 시각이 전혀 다른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도내 정치권의 지지가 정청래, 박찬대로 양분된 것도 바닥에 깔렸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윤준병 의원은 사실 정치적 술수가 있거나 노회한 기성 정치인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인물이다. 그러하기에 이번 그의 입장 발표를 정치적 저의가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역에서부터 전주올림픽 유치에 재를 뿌리는 형국이 되고 있다는 거다. 매달 열리는 정책협의회 등에서 얼마든지 다룰 수 있는 사안임에도 주장의 근거조차 박약해 보이는 점을 공개적으로 피력했기 때문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적전 분열이 아니다. 무주 동계올림픽 유치, 김제공항, 방폐장 유치 등 주요 사안이 있을때마다 적전 분열을 했던 전북에 지금 남은 것은 과연 무엇인지 한번 되새겨볼 때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5.10.01 17:15

가양주 부활이 반가운 이유

오래전의 일이다. 겨울을 지켜낸 매화꽃 봉오리가 막 터지기 시작할 즈음이면, 지인들을 초대해 가양주를 나누는 시인이 있었다. ‘여름을 건강하게 넘기는 술’이라는 뜻을 가진 과하주(過夏酒)였다. 시인은 10월이 지나갈 무렵이면 술을 담갔다. 솜씨 좋은 어머니로부터 배운 시인의 술 담기 공력은 해를 더할수록 무르익어 그 맛을 본 지인들은 봄부터 여름이 지나는 동안 그의 부름(?)을 내내 고대하곤 했다. 지금도 시인이 과하주를 빚어 즐거움을 나누는지는 모르겠으나 기다림과 정성으로 빚어낸 과하주의 맛과 추억이 그립다. 가양주는 우리나라의 오랜 전통이었다. 집마다 대물림으로 전해진 술은 그 종류도 다양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와 근대를 거치면서 주세법이 생기자 가양주는 위축되었고 생활방식과 술 문화가 바뀌면서 가양주 전통은 멸실되거나 단절됐다. 돌아보면 술의 역사는 깊다. 나라마다 전통은 다르지만, 그 역사를 담아내는 대표적인 전통주가 있다. 가양주는 우리나라의 전통주 중에서도 대표적인 술이다. 우리나라 전통주는 서양의 술과 매우 다른데, 술빚는 방법이 다양하고 과정이 복잡해 기능을 익히기 쉽지 않다. 재료를 다루는 방법과 발효 과정이 까다로울 뿐 아니라 술마다 다른 향을 더하고 약재를 많이 넣어 약효를 높인다. 전북지역에도 오래전부터 물려온 가양주가 적지 않다. 전북의 술은 재료의 특수성이 좀 더 돋보이는 술이다. 전문가들은 그런 이유로 전북지역의 술을 가장 토속적이면서도 독특한 맛과 향기를 간직한 술로 꼽는다. 조선 시대 명주로 이름을 알린 전주의 이강주와 장군주(과하주), 완주의 송화백일주와 송죽오곡주, 김제의 송순주가 대표적이다. 이 술들은 모두 쌀 외의 부재료를 사용한다. 흥미롭게도 그 부재료들은 생강, 배, 오미자, 울금, 송순, 솔잎, 오곡 등 이 지역 특산품이거나 일상적으로 널리 이용되는 자연산물이다. 예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음주와 건강을 따로 여기지 않고 약주(약용 약주)를 즐겼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2000년대 중반, 전주에서는 가양주 보급 운동이 일었다. 풍류와 멋이 함께 했던 우리의 건강한 술 문화를 부활시켜 그릇된 술 문화를 바로 잡고 과도한 음주로 인한 건강의 폐해를 줄여보자는 취지였다. 우리 전통주에 눈을 뜨게 하는 강좌도 꽤 관심을 모았지만 아쉽게도 가양주 바람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역의 전통주를 되살리는 움직임이 다시 활발하다. 지역성을 살리는 상품 개발에도 전통주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상품화된 전통주도 여럿, 우리 일상에 정착한(?) 맥주나 소주, 양주나 와인이 아니라 새로운 맛과 향기를 품은 가양주와의 새로운 만남이 반갑다. 그러고 보니 곧 추석이다./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5.09.30 17:31

​[오목대] 서남대와 전북대, 그리고 공공의대

7년 가까이 표류해온 ‘공공의대’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되면서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올해 안에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사실 공공의대 논란은 2018년 남원 서남대 폐교 사태가 발단이다. 지역·필수의료 위기 극복 방안이 다방면에서 논의되던 중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정원(49명)을 활용해 공공의대를 설립하자는 주장이 급부상했다. 그리고 그해 민주당과 보건복지부가 당정협의를 통해 ‘남원에 국립공공의료대학원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하고, 남원시와 함께 부지 매입 등 실무절차를 진행했다. 남원에 곧바로 공공의대가 들어설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정부가 법률안 통과 전에 실무 절차를 급히 추진하면서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했다. 이후 의료계의 반발과 대한민국을 뒤흔든 의료계 파업, 정치적 혼란 속에 공공의대는 길을 잃었다. 그리고 올해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공공의료사관학교)으로 내세우면서 불씨를 살렸다. 설립 부지는 당연히 남원이 유력하다. 하지만 확정된 게 아니다. 다시 여러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의대 유치전에 나선 지자체 간의 치열한 경쟁도 불가피하다. 그런데 최근 ‘남원시가 공공의대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전북대가 남원시 소유의 옛 서남대 부지와 건물을 넘겨받아 내년 ‘남원 글로컬캠퍼스’를 개교하기로 하면서다. 당초 공공의대 설립 후보지로는 서남대가 1순위로 꼽혔다. 지역사회와 정치권에서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정원과 그 부지 및 건물을 활용해 공공의대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서울시립대에서 서남대 부지를 매입해 공공의대를 설립·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서남대 부지·건물을 활용한 공공의대 설립 방안이 힘을 얻었다. 이런 가운데 남원시가 애써 매입한 서남대 부지와 건물을 전북대에 넘기기로 하고, 협약까지 체결했으니 의문이 들만하다. 오해다. 남원시가 지난해 서남대 부지 및 시설을 매입한 것은 공공의대가 아닌 전북대 글로컬캠퍼스 설립을 위한 지원 절차였다. 공공의대 부지는 따로 있다. 2018년 보건복지부와 남원시가 부지를 물색할 당시 1순위 검토 대상은 역시 서남대였다. 하지만 당시 법인 청산절차가 지연되면서 매입에 걸림돌이 많다는 이유로 배제됐고, 남원의료원 인근 부지가 최종 선정됐다. 결국 지역 거점대학인 전북대가 서남대 남원캠퍼스를 품에 안았다. 이 대학 의대 정원 일부(32명)를 넘겨받으면서 생긴 뜻밖의 연결고리가 다시 이어진 셈이다. 부실·비리 사학이라는 오명 속에 문을 닫은 후에도 수년 동안 폐건물로 남아있던 서남대는 비로소 긴 그림자를 걷어낼 수 있게 됐다. 이제 공공의대의 향방이 관심이다. 의료서비스 지역 격차 해소와 공공의료 강화의 필요성은 부인할 수 없다. 시대적 과제다. 뚝심있게 추진해야 한다. 논란 속에서도 정부 정책을 믿고 부지 매입 등 관련 절차를 꾸준히 밟아온 남원이 길 잃은 공공의대를 끌어안는 게 맞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5.09.29 17:51

[오목대] 귀하신 몸 민주당원

세상이 급변한다. 바둑왕 이세돌이 AI 와 2016년 3월 9일부터 15일까지 5번 대국에서 한판만 이기고 4판은 졌다.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 이후 AI가 빠르게 발전해 지금은 세상을 바꿔 놓은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산업혁명을 통해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었지만 지금은 산업현장에서 피지컬 AI가 만능일 정도로 생산까지 척척 도맡아서 해내 다시 쫓겨날 신세다.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면서 AI 때문에 사라질 직업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처럼 사람 사는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유독 우리 정치판은 아직도 철 지난 낡은 철밥통이다. 깜냥도 안 되는 사람이 선출직에 나서겠다고 용기백배 나서, 제 정신이 든 사람이냐고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전북은 대선 때 이재명 대통령이 82.65%를 차지해 민주당 지지세가 더 견고해졌다. 이 바람에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되는 것이나 다름 없어 출마를 저울질하는 사람들이 더 기를 쓰고 달려든다. 특히 당 지도부가 당원주권시대를 열어 나가겠다고 강조하면서 당비를 낸 유급당원들의 몸값이 치솟았다. 예전 같으면 친소관계에 따라 입당원서를 쉽게 써 줬지만 지금은 귀하신 몸이 되어 호락호락하지 않는다는 것. 공천 때 일반시민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보다는 당원한테 더 많은 비중을 두기 때문에 누가 뭐래도 존재감이 커졌다는 것. 지구당 위원장인 국회의원 말이면 당심으로 통했지만 지금은 그게 통하지 않아 자기 편으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드러나듯 현직 단체장들이 두각을 크게 나타내지 못한 것도 이 같은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당원들의 지지를 받으려고 신줏단지 모시듯 예우를 갖춰 가며 온통 신경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시민들의 욕구가 다양해지면서 갈수록 행정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판인데 별다른 전문성 없는 사람이 단체장에 나서겠다는 것은 무리수라면서 단체장은 상당 수준의 전문성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지방의원도 갈수록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라서 전문가로 채워져야 한다. 자연히 민주당 공천 방식도 변해야 하지만 아직도 아날로그 방식에 머물러 젊고 유능한 새 피 수혈이 안 되고 있다. 더군다나 당원 모집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금품이 오가는 구조라서 자칫 선거판이 돈선거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1995년부터 주민들이 직접 단체장을 뽑았지만 전문성 없는 사람들이 아마추어식 인기영합주의로 행정을 이끌어 퇴임 후에도 지역발전을 못 했다는 비난을 사 왔다. 아무튼 전북을 이끌어온 민주당은 운동권 출신들이 공천을 받는 것을 마감하고 전문성 있는 인물들이 대거 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당원들도 깜냥이 되는지 매의 눈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연줄에 따라 돈 몇 푼에 양심을 파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내년 선거는 전북이 발전하느냐 아니면 나락으로 빠지느냐의 기로에 놓여 있어 중요하다. 4지(知)란 말처럼 세상엔 영원한 비밀이 없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5.09.28 18:09

[오목대] '황혼의 덫' 치매

매년 9월 21일은 정부가 정한 ‘치매 극복의 날’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알츠하이머협회가 지정한 ‘세계 알츠하이머의 날’에 맞춘 것이다. 치매는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질병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존엄성마저 잃기 때문이다. 치매 극복의 날? 과연 치매를 극복할 수 있을까. 우선 실태부터 보자. 중앙치매센터에 의하면 지난해 65세 이상 전국 추정치매환자는 91만8981명으로 집계됐다. 올해는 약 97만명, 내년엔 100만 명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환자다. 이것도 나이가 올라갈수록 급증해서 80대는 3명 중 1명 꼴이다. 이로 인한 치매 관리비용은 24조원으로 1인당 2699만원이 쓰였다. 성별로 보면 여성이 58.57%로 남성 41.43%보다 훨씬 많다. 치매는 후천적인 다양한 원인으로 기억력을 비롯한 여러 인지기능의 장애가 나타나 일상생활을 혼자 하기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인지기능 장애는 건망증, 경도인지장애, 치매 등 3단계로 나뉜다. 건망증은 정상 노화로, 나이에 따른 기억 감퇴 증상이다. 예를 들어 옛 친구의 이름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다든지 약속을 깜빡 잊는 정도다. 힌트를 주면 잊었던 것이 다시 기억나는 수준이다.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는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기능이 떨어졌을 뿐 아직 모든 일상생활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상태다. 치매와의 차이는 일상생활을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지 여부다. 치매는 크게 노인성치매로 불리는 알츠하이머병과 중풍 등으로 발생하는 혈관성 치매로 나뉜다. 이 중 알츠하이머병이 전체 치매의 55∼70%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유형이다. 치매 여부를 알아보는 검사는 한국형 치매선별검사(KDSQ)가 흔히 쓰인다. △오늘은 몇 월이이고 무슨 요일인지 잘 모른다 △자기가 놔둔 물건을 찾지 못했다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한다 △물건이나 사람의 이름을 대기가 어려워 머뭇거린다 △예전에 비해 성격이 변했다 등 15개 항목에 이른다. 이 검사에서 경도인지장애 이상이 나오면 정밀검사를 해야 한다. 그러면 치매는 치료가 가능할까. 지금까지 치매는 늦추기만 할뿐 완치는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의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치료제들이 속속 개발돼 임상에 쓰이고 있다. ‘레켐비’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예방이다. 의료계의 의견을 종합하면 적절히 운동하고 흡연과 과도한 음주를 지양하며 고혈압·고지혈증을 조절해 건강한 신체를 유지해야 한다. 또 안경이나 보청기 등을 통해 시력과 청력을 최대한 보존하고 고립돼 우울감에 빠지지 않도록 주변과 늘 교류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교육을 통해 인지기능을 끊임없이 자극하면 치매 발생을 늦출 수 있다. 치매가 ‘황혼의 덫’이 아니었으면 싶다.(조상진 논설고문)

  • 오피니언
  • 조상진
  • 2025.09.25 17:51

[오목대] 아침을 먹는 사람들

우리나라 최초의 근린공원은 바로 서울 종로에 있는 탑골공원이다. 원각사지 10층 석탑이 있었기에 ‘파고다 공원’으로 불리기도 했다. 1919년 3월1일 만세운동이 일어난 독립운동의 상징적 장소다. IMF 외환위기를 즈음해서 주변 무료급식소를 찾아 점심 한끼를 해결하려는 노인들이 탑골공원으로 몰려들면서 이곳은 노인문화가 자리잡았다. 꼭 무료급식소가 아니더라도 탑골공원 주변엔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이들이 아침이나 점심을 때우는 저렴한 식당이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다. 요즘 웬만한 식당에서 점심 한끼를 해결하려면 1만원이 훌쩍 넘는 경우가 많다. 비단 노인뿐만 아니라 젊은 청년들도 아침이나 점심 식대가 상당한 부담이라고 토로한다. 더욱이 시간에 쫒기는 청년들은 경제력 여하를 떠나서 아침을 굶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의 53%가 아침식사를 거르고 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이러한 문제의식에 착안해서 이곳저곳에서 간헐적으로 천원의 아침밥을 지원하기도 했는데, 4년전부터 전북대 총동창회에서 십시일반 뜻을 모아 본격적으로 '천원의 아침밥' 지원사업을 펼쳤다. 전북대 총동창회 정영택 전 회장과 최병선 현 회장이 적극 앞장서서 후원하면서 결실을 맺었다. 올해의 경우 3000만원을 후원해서 후배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전북대는 올해로 4년째 천원의 아침밥 사업을 이어오며 학생 복지와 지역 농업의 상생 모델을 정착시켰다. 전북대는 올해 총 120일간 3만명의 학생에게 아침식사를 제공한다.단돈 1천원으로 아침을 해결하게 되자 그동안 아침을 거르던 학생들도 줄을지어 식사를 하려고 몰려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그런데 이게 예상밖으로 인기몰이를 하면서 이젠 전북대뿐 아니라 대한민국 상당수 대학으로 널리 확산됐다. 2023년에는 정부 사업으로 추진하면서 지금은 전국 2백여 개 대학으로 확산됐다. 급기야 일선 산업현장에서도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아이디어 하나가 이처럼 식사 문화를 확 바꾼 것이다. 이젠 정부에서도 젊은 층의 조식 습관화와 쌀 소비 촉진에 나서고 있다. 지난 18일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전북대학교와 국가식품클러스터 산업단지를 방문했다. 송 장관은 '천원의 아침밥' 운영 현장을 둘러보고 학생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정부는 '천 원의 아침밥'을 인구감소지역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도 확대 추진할 계획이다. 사실 요즘엔 돈이 없어 밥을 굶는 경우는 많지않다. 하지만 저렴한 비용으로 제때 식사할 수 있다면 개인은 물론,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서도 퍽 다행스런 일이다. 그런점에서 청년, 중년, 노년 할것없이 부담없이 한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물론, 각 기관, 단체가 십시일반 뜻을 모았으면 한다. 식대가 1천원 짜리가 됐든, 10만원 짜리가 됐든 각자에겐 한끼 식사가 동일한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5.09.24 18:41

[오목대] 낙죽장 이신입 명장, 그 이후

우리의 전통 공예는 대부분 숙련된 기법으로 가치를 품는다. 낙죽(烙竹)도 그중 하나다. 낙죽은 불에 달군 인두(烙鐵)를 사용해 대나무의 겉면을 태워 글씨와 그림, 문양 등을 새기는 전통 공예 기법이다. 합죽선이나 참빗, 붓대 같은 소품과 문방구 등 대나무를 재료로 한 공예품에 다양하게 활용되어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높이지만, 그중에서도 낙죽 기법으로 품격과 완결성을 제대로 갖추게 되는 것은 합죽선이다. 기법으로만 보면 낙죽은 대나무에 문양을 새기는 단순한 과정이다. 그러나 대나무의 단단한 마디까지 품어 다양한 문양을 새기는 작업은 그리 간단치 않다. 손에 의한 공예 기능이 대부분 그렇지만 낙죽은 특히 오랜 경험과 반복된 훈련 과정을 거쳐야만 숙련된 기능을 얻을 수 있다. 낙죽 장인들이 많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낙죽장은 1969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됐다. 역사는 짧지 않으나 그동안 지정된 기능보유자는 세 명뿐이다. 그중 두 명은 해제되어 현재 국가 차원의 보유자는 한 명이다. 다행히 전북에서도 지난 2013년 낙죽장 종목이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보유자는 이신입 명장이다. 그는 합죽선으로 전주 부채의 명맥을 이었던 선자장 고 이기동 명장의 아들이다. 덕분에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부채 만드는 기능을 익혔으나 아버지는 아들에게 선자장 맥을 잇게 하는 대신 낙죽을 배우라고 권했다. 스무 살 무렵부터 낙죽 기법을 배워 익힌 그가 아버지의 뒤를 잇는 선자장 이수자이면서도 낙죽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어 50년 가까운 합죽선의 역사를 지켜오게 된 배경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낙죽에 쓰이는 인두는 전기인두로 변화했다. 편의성을 높인 셈이다. 그러나 그는 현대적 방식에 마음을 주지 않고 오직 화로에 숯불을 피우고 달궈진 인두로 문양을 새기는 전통 방식을 고집해왔다. 자신만의 기법으로 낙죽의 세계를 넓혔던 이신입 명장이 지난 9월 초 세상을 떠났다. 지병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대중의 관심을 저버리지 않았던 그는 자신을 찾는 낙죽 실연 요청에도 가장 성실하게 응했던 장인이다. 그만큼 낙죽 기법의 대중화를 향한 그의 바람은 컸다. 고된 삶에도 전통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던 장인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들이 떠난 후 전통 공예의 명맥은 잘 이어지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돌아보니 환경이 녹록지 않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젊은 세대의 진입은 적고 기능보유자들을 지원하는 제도적 한계는 크다. 후계자는 있으나 기능보유자 지정이 늦춰져 단절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한국문화에 세계가 환호하고 있지만, 여전히 보존과 전승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전통문화의 현실. 안타깝다./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5.09.23 17:23

[오목대] 수몰 60년, 섬진강댐과 계화도

추석이 낼모레다.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해마다 풍년이다. 올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안정적인 농업용수 공급체계가 큰 몫을 했다. 한반도 최대 곡창 호남평야의 수원(水源)은 섬진강댐이다. 현대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숱한 우여곡절 끝에 건설된 이 댐이 올해 준공 60주년을 맞았다. 한국수자원공사가 이를 기념해 9월 한 달 다양한 행사를 연다. 댐 주변 주민들과 함께 과거 댐 건설로 삶의 터전을 잃은 수몰민들을 기억하고, 댐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기자는 취지다. 섬진강댐 수몰민의 애환을 들춰내자면 부안 계화도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댐인 섬진강댐과 이 댐이 만들어놓은 옥정호(玉井湖), 그리고 20세기 중반 국내 최대 간척사업(1963~1978년)으로 기록된 부안 계화도. 내륙 산간지대 다목적댐과 서해안 간척지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정부가 섬진강댐 건설로 삶터를 잃게 된 임실 운암·강진면, 정읍 산내면 일대 수몰민 2786세대의 이주·정착과 식량 증산을 목적으로 조성한 땅이 바로 계화도 간척지구다. 이 대규모 간척지에 필요한 농업용수는 섬진강댐에서 끌어왔다. 유역변경식 발전소인 정읍 칠보수력발전소에서 방류한 옥정호의 물을 길이 67km의 동진강도수로를 통해 부안 청호저수지로 흘려보내 농업용수로 사용한 것이다. 계화간척지를 국내 최고 품질을 자랑한 ‘계화미’의 산지로 탈바꿈시킨 농민들이 바로 섬진강댐 수몰민이다. 그렇다고 수몰민들이 순조롭게 계화도에 정착한 것은 아니다. 계화도 이주단지 조성사업이 늦어지면서 갈 곳을 잃은 수몰민 중 상당수는 고향을 물속에 넣은 대가로 받은 ‘계화도 이주증서’를 헐값에 처분하고, 경기도 등 곳곳으로 흩어졌다. 그 중 일부는 계획과 달리 물이 차오르지 않은 임실 운암면 옥정호 인접 마을에 재정착했다. 하지만 이들은 수십년 후 추진된 ‘섬진강댐 재개발사업(2007~2018년)’으로 댐의 물그릇이 커지면서 다시 삶터를 옮겨야 했다. 그야말로 통한의 이주사다. 새만금사업으로 계화도는 간척지 속의 간척지로 전락했다. 이주 역사와 주민 애환은 새만금 논란에 묻혀 빛을 잃었다. 쌀이 남아도는 시대, 간척지의 위상도 찾을 길이 없다. 게다가 수몰의 아픔을 함께 겪은 임실과 정읍은 옥정호 수질을 놓고 분쟁을 거듭하고 있다. 옥정호를 식수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정읍과 옥정호 개발사업에 나선 임실의 입장차가 뚜렷하다.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섬진강댐의 위상이 많이 달라졌다. 주변 지자체들 간에는 분쟁의 대상, 지난 2020년 여름 발생한 대규모 수해의 원인을 ‘댐 관리 부실’로 지목한 댐 하류 주민들에게는 경계의 대상이 됐다. 우리나라 근현대 농경사와 댐 건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한국 최초의 다목적댐, 섬진강댐의 현 상황이 안타깝다. 준공 60주년을 맞아 수자원 개발의 역사를 돌아보고, 댐의 역할과 주변 지역 상생 방안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5.09.22 18:46

[오목대] 싸구려 여론조사

소슬바람이 불어오면 가을이 온 것을 알 수 있듯 각 가정이나 개인 휴대폰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벨이 울리면 지방선거가 다가온 것을 안다. 한국 여론조사는 언제부턴가 만능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후보까지도 여론조사로 뽑기 때문에 여론조사가 일상의 주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과학의 이름으로 포장된 여론조사는 무속인들이 점치는 것과 달리 데이터에 의존하므로 신뢰도를 중시한다. 이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표본수, 조사기법, 문항, 표본오차 등을 객관적으로 만들어야 함에도 꼭 그런식으로 여론조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자연히 주문자 입맛대로 결과를 도출하려고 하다보니까 기본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여론조사를 실시,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공표해 혹세무민한다는 비판이다. 최근 이름도 없는 매체들이 제대로 된 여론조사를 하지 않고 마구 특정인을 띄워주려고 일방적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게재해 여론을 왜곡시키고 있다. 심지어 조사기관과 사전에 짜고 조사일자 등을 알려줘 지지자들로 하여금 답변토록 유도하는 등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는 여론조사가 판치고 있다. 주문자 생산방식(OEM)처럼 조사의뢰자의 구미에 당기게끔 설계해서 그 결과물을 일방적으로 내놓아 신뢰도 저하로 유권자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은 비용을 적게 들이려고 자신이 직접 ARS 방식으로 문항을 기계음에 담아 샘플수를 적게해서 마구 돌려 여론조사의 근본 취지를 왜곡시키고 있다. 특히 조사결과를 놓고 1등 위주로 경마식 보도를 하는 바람에 유권자들이 식상해 한다. 선관위에서 원칙적으로 여론조사를 할 때 기본수칙을 제대로 지키도록 계도하지만 제대로 안된 경우가 있다. 사실 여론이란 것은 그 시점에서 다수의 생각을 수치화해서 그 경향을 알아 보는 것인데 마치 절대적인 것으로 착각케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인지도와 지지도는 분명하게 개념이 다른데도 그것을 같은 개념으로 확대해서 발표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그 같은 이유는 유권자들이 숫자화 해서 발표하는 것을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유권자의 머릿속에 여론조사를 어느 정도 신뢰하기 때문에 아니면 말고식으로 홍보라도 하겠다는 식이다. 아무튼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판치는 세상에서 너나 할 것없이 여론조사를 맹신하면서 하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무척이나 혼란스러워 한다. 그간 선거 때마다 홍보 업체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 돈만 주면 여론조사부터 맞춤형 선거운동까지 해주겠다고 꼬드기는 바람에 여론조사가 더 불신을 산다. 사실 질문항목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편차가 나는 것인데 가장 맨 앞에다가 홍보할 요량으로 자신의 이름을 올려 놓고 그 뻔한 결과를 유권자에게 믿도록 하는 게 여론왜곡이어서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매체난립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싸구려 여론조사를 여과없이 유포시키는 것은 정보의 왜곡을 가져오므로 제재를 가해야 한다. 가짜뉴스 때문에 옥석구분이 안되면 선거는 결국 망치게 된다. 유권자들도 여론조사라 해서 여과없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내용을 잘 살펴봐야 할 때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5.09.21 18:46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