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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늙은이·노인·선배시민

전남도의회가 ‘전라남도 선배시민 지원 조례’를 마련해 25일 본회의에서 의결할 예정이다. 여기서 선배시민(Senior Citizen)은 ‘65세 이상의 도민’을 뜻한다. 곧 노인이다. 반대는 후배시민으로 65세 미만의 도민을 말한다. 이 조례에는 선배시민에 대한 활동 연구 및 조사, 공동체 참여 사업 지원, 프로그램 개발, 학습 동아리 지원, 선배시민 교육, 강사 양성 등의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북자치도의회도 지난해 9월 같은 내용의 조례를 만들었고, 이에 앞서 경기도의회가 2023년 12월에 가장 먼저 조례를 제정했다. 지자체들이 이처럼 조례를 만드는데 나서는 것은 100세 시대를 맞아 노년기의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굳이 노인이라는 말을 놔두고 선배시민이라 한 것일까. 노인을 이르는 말은 여러 가지다. 늙은이, 노인, 어른, 어르신, 꼰대, 영감 등등. 예전, 즉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늙은이라는 말이 자주 쓰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현실언어에서 이 말은 비하의 뜻으로 인식되었다. 대신 노인이 가치중립적인 말로 쓰이게 된 것이다. 그러다 1997년 ‘노인의 날’ 제정을 계기로 ‘어르신’으로 부르자는 제안이 있었다. 어른의 높임말로 노인공경의 분위기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원래 ‘어르신’은 남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한자로는 춘부장(春府丈) 춘당(春堂)이다. 노인을 선배시민이라 부르게 된 것은 최근에 이르러서다. 2022년에 선배시민학회가 창립되고 2024년에는 선배시민협회가 결성되었다. 본래 시민(Citizen)은 민주주의가 태동한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 나왔다. 공간적으로 도시의 거주민, 경제적으로 도시국가라는 공동체 내에서 재산과 교양을 갖춘 사람, 정치적으로 공동체의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능동적 존재라는 개념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국민국가의 구성원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국민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선배시민협회 등은 ‘노인은 실존의 인간이고 권리의 시민’이라는 새로운 노인상을 제시한다. 인간과 시민을 인식하고 앞장서서 실천할 때 공동체의 선배가 되고 이러한 존재를 선배시민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또 노인은 NO人이나 know人이 아니라고도 한다. 돌봄의 대상도 현자(賢者)도 아닌 활동적 노인(active senior)을 지향하는 것이다. 명칭이야 무엇이 되었건 노인은 최소한의 인간답게 살 권리를 가진 동시에 의무도 다해야 한다. 특히 지혜와 경륜을 바탕으로 지역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동체와 후배시민을 돌보면서, 공동체의 길을 밝히는데 앞장서는 존재였으면 한다.(조상진 논설고문)

  • 오피니언
  • 조상진
  • 2025.04.24 13:29

콘클라베와 비주류의 등극

지금은 파격의 시대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주류가 아닌 변방의 비주류가 가장 중심에 서는 경우가 왕왕있다. 그런데 잘 보면 주류의 입장에서 볼때 파격일뿐 사실은 변방이나 비주류에 있는 개인이나 집단은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온 당연한 결과다. 지난달 제10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으로 커스티 코번트리(41) 짐바브웨 체육부 장관이 선출됐다. IOC 역사상 최초의 여성 위원장이자 첫 아프리카 출신 수장이 됐다. 전북이 야심차게 도전장을 던진 2036 하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이 코번트리 위원장이 주도하는 IOC 총회에서 투표로 결정될 것이기에 그의 당선은 국내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지난 2007년 한국인 최초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탄생했다. 신생 독립국으로 오랫동안 유엔 가입조차 못하던 대한민국에서 사무총장을 배출한 것은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반기문 전 총장은 최근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명예위원으로 추대되면서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은 또한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의 사무총장(임기택)도 배출한 바 있다. 부산항만공사 사장 출신인 그는 전세계 171개 나라가 정회원인 국제해사기구를 이끌었다. 조선과 해운 안전, 해양 환경 보호, 해상 교통, 해양 사고 보상 등과 관련된 국제 규범을 제·개정하는 막중한 기구다. 요즘 지구촌의 이목은 온통 로마 교황청에 집중돼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으로 인해 가톨릭 신자들은 물론, 전세계 정치 지도자들이 운집해 소위 조문외교의 장이 펼쳐진다. 그런데 한국인 최초 교황청 장관인 유흥식(73) 라자로 추기경이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가 꼽은 차기 교황 유력 후보에 선정돼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후임자를 뽑는 콘클라베(Conclave·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 비밀회의)를 앞두고 총 12명의 차기 교황 유력 후보를 선정했는데 그중 한명이 바로 유흥식 추기경이다. 콘클라베는 라틴어로 ‘열쇠로 문을 잠근 방’ 이다. 한국 추기경이 콘클라베에 참가하는 것은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요한 바오로 2세를 교황으로 선출한 1978년 10월 투표에 자리를 함께한 이후 47년 만이다. 그런데 이탈리아 출신도 아니고, 백인도 아닌 유 추기경이 교황에 오르는 대이변을 앞두고 있으니 가슴벅찬 일이다. 4차례 북한을 방문했던 그는 특히 2021년 6월 한국인 최초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발탁돼 두터운 인맥을 쌓았다고 한다. 한국인 최초의 교황이 탄생해서 남북화해와 통일의 문을 여는 평화의 사도 역할을 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한국인 출신 교황이 2036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의 주역이 되는 꿈같은 일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5.04.23 11:37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실체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다시 논란이다. 4월 22일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정치인들이 야스쿠니 신사 춘계 예대제를 맞아 공물을 봉납하거나 참배하면서다. 참배에는 초당파 의원연맹인 '다 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70여 명이 함께 했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참배는 하지 않았으나 몇 각료들과 공물을 봉납했단다. 해마다 불거져온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이제 특별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비교적 온건한 역사 인식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온 이시바 총리까지 이 대열에 동참한 상황은 일본 정부의 과거사에 대한 태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일본이 일으킨 침략 전쟁에서 숨진 246만여 명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기도 한 이곳이 참배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1978년,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되면서다. 야스쿠니 신사에 처음 공식 참배한 일본 총리는 나카소네 야스히로다. 1985년 8월 15일, 그는 각료들을 이끌고 공식 참배했다. 일제 침략을 받은 한국과 중국은 '총리가 전범의 위패 앞에 고개를 숙이는 것은 일본의 전쟁책임을 부인하는 것'이라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이후 일본 총리의 공식 참배는 중단됐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들어서면서 다시 참배 논란의 불씨를 틔웠다. 일 년에 한 번씩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겠다는 공약까지 내놓았던 그는 2001년 8월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를 시작으로 퇴임 전인 2006년까지 해마다 참배했다. 한국과 중국이 반발하고 미국까지 비판하자 일본 총리의 공식 참배는 다시 중단됐지만 2013년, 아베 신조 총리가 참배를 공식화하면서 첨예한 외교적 마찰과 논란을 불렀다. 일본은 여러 차례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하는 입장을 밝혔었다. 1993년 8월 발표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담화와 1995년 8월, 전후 50주년 종전기념일을 맞아 발표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의 담화가 그 시작이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강제성을 처음 인정한 ‘고노담화’와 일본 현직 총리로는 처음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사과한 담화로 꼽힌다. 30년 전의 무라야마 담화를 들여다보니 그 의미가 각별하다.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여러분들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본 정부는 내각이 바뀔 때마다 담화의 계승과 수정을 두고 입장을 번복하고 있다. 직시해야 할 일본의 실체가 따로 없다. /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5.04.22 19:01

춘향제와 백종원

100주년을 앞두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축제다. 지역사회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오는 30일부터 1주일간 95번째 잔치를 여는 ‘춘향제’다. 춘향제 하면 바로 남원, 광한루, 미스춘향, 판소리 등이 연상된다. 그런데 최근 이 전통축제에 뜻밖의 인물이 연계되면서 논란이다. 성공한 외식사업가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다. 남원시는 지역축제 ‘바가지요금’ 논란이 거셌던 지난해, 뜬금없이 ‘백종원 대표와의 춘향제 협업’을 발표했다. 당시 명성이 자자했던 백 대표를 축제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그렇게 백 대표는 남원의 ‘이도령’이 됐다. 축제 직후 남원시는 ‘춘향제 대성공’을 자랑했다. 언론은 ‘백종원 매직이 또 통했다. 남원을 살렸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면서 백 대표와 갈등을 빚거나 문제점을 지적한 일부 지역 상인들을 ‘악덕 장사꾼’으로 치부했다. 남원시민의 소중한 자산인 춘향제가 일순간에 백종원의 춘향제로 각인됐다. 물론 바가지요금 근절 성과를 간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는 해당 지자체 차원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게 올봄 곳곳의 꽃축제에서도 확인됐다. 옛 명성을 찾지 못하던 춘향제가 지난해 ‘백종원 이름값’을 톡톡히 본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데 지금 춘향제의 가장 큰 리스크는 바가지요금이 아니라 백종원 대표다. 최근 백 대표의 권위와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다. 지역축제장 위생 논란을 비롯해 온갖 구설에 오르면서 그동안의 사회적 신뢰와 존경, 호의는 꼭 그만큼의 불신과 분노, 반감으로 바뀌었다. 서로 동행을 자랑한 춘향제에도 불똥이 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백 대표의 춘향제 참여를 재고해 달라는 민원도 있었다. 그런데도 남원시는 백 대표에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올해 백 대표의 참여폭을 더 확대하고, 향후 ‘백종원 테마거리’를 조성하겠다는 계획까지 내놓았다. 대한민국 대표 축제 춘향제가 백 대표의 브랜드 홍보와 돈벌이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그냥 흘려버렸다. 어이없는 일이다. 새로 그린 ‘춘향영정’을 둘러싼 논쟁이면 몰라도, 그 이름값에 막대한 혈세를 들여 끌어들인 사람이 논란과 지탄의 대상이 됐으니 말이다. 모두 남원시가 자초한 일이다. 특정 인물, 그것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생존 인물의 명성에 기댄 사업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적지 않다. 굳이 백종원이어서가 아니다. 누구여도 마찬가지다. 지역축제는 지자체가 주도해야 한다. 외부 기업의 힘을 빌리면 ‘반짝 효과’는 낼 수 있어도 궁극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리스크를 함께 떠안으면서 수렁에 빠질 수 있다. 여러모로 올 춘향제를 상세히 들여다볼 일이다. 축제의 정체성과 자생력, 지역경제 파급효과, 기업참여의 명암 등을 선입견 없이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부정적 여론 속에 백종원 대표와의 동행을 고집한 남원시 자체 평가에 객관성을 기대할 수 없다. ‘춘향제 100년’을 준비하는 남원시민의 몫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5.04.21 16:22

대선판서 찬밥된 전북

지난해 총선 때 여소야대가 만들어지면서 사실상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국회권력을 장악, 여의도 대통령이란 칭호를 얻었다. 윤 전대통령은 이 대표를 정적 1호로 여기고 계속해서 부관참시까지 강행했다. 대선 출마를 막으려고 그렇게 집요하게 검찰권을 동원해서 이 대표를 전방위로 수사했지만 무위로 끝나자 난데없는 계엄령을 발동, 그 자신 한테 결국 부메랑 되어 탄핵되면서 6.3 장미대선을 치르게 했다. 공자가 설파했듯 순천자(順天子)는 존하고 역천자(逆天子)는 망한다는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하늘의 섭리에 순응한 사람은 흥하고 역행하는 사람은 망한다는 뜻이다. 탄핵당한 윤 전대통령 한테 딱 들어 맞는 말 같다. 윤 전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파면이 인용되어 두달안에 대선을 치르도록 한 규정 때문에 촉박하게 대선이 진행되고 있다. 국힘이나 민주당이 대선 후보를 경선을 통해 정하지만 뭔가 부족하고 아쉬운 감이 많다. 11명이 입후보 한 국힘은 1차 여론조사로 8명을 선출했고 2차 때는 국민 50% 당원 50%로 4명을 선출한 후 3차 때는 2명으로 압축해서 최종 후보를 선출한다. 민주당은 이재명 후보를 비롯 김동연 경기지사 김경수 전 경남지사 3명이 전국을 4개 권역으로 나눠 후보를 선출키로 했다.문제는 전북이 호남권으로 묶여 도민들과 당원들이 제대로 후보들 얼굴조차 볼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선거기간이 촉박한 관계도 있지만 그 만큼 전북이 차지한 정치적 비중이 낮다는 것을 반증한다. 대선 때만 되면 전북은 여야로 부터 찬밥신세다. 그 이유는 국힘측은 표가 나오질 않는다는 이유로 멀리했고 민주당은 90% 가까이가 절대적으로 지지를 해주기 때문에 굳이 전북에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런식으로 이번 대선이 진행되다보니까 탄핵을 이끌기 위해 영하의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주 객사 앞 광장에 모였던 도민들이 무척 허탈해 한다. 상당수 도민들은 윤 전대통령이 한밤중에 기습적으로 계엄을 선포한 때부터 헌재의 파면 결정이 날 때까지 생업을 포기한채 윤 전대통령 탄핵을 강도 높게 외쳐왔었다. 도민들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민주화를 쟁취하려고 독재타도와 직선제 개헌을 줄곧 외쳐왔던 것. 진보세력이 탄핵찬성을 외쳐왔지만 도민들도 함께 탄핵찬성을 외쳐왔었다. 그 이유는 민주주의와 경제를 당장 살려내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지난 총선 때 10석 전석을 석권해 완전히 이재명 당으로 만들어준 도민들은 이 후보에 대한 기대가 제일 크고 남 다르다. 새만금 사업을 비롯 각종 현안이 대선 공약에 꼭 반영돼 실현되도록 하기 위해 경선이 전주에서도 이뤄지길 바랬던 것. 지금 도민들은 전북특자도 출범 1년이 지났지만 특별하게 지원된 것이 없다면서 새로운 대통령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지역정서상 전북은 이번에도 민주당 후보 한테 압도적으로 표를 줄 것이다. 이 때문에 도민들은 민주당이 집권 하면 전북 출신들을 당정청에 대거 발탁해주길 바라면서 낙후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예산이 많이 지원되길 학수고대한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5.04.20 16:14

장미대선의 변방 전북의 활로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는 온통 6월 3일 치러지는 제21대 장미대선에 쏠려있다. 새 대통령 앞에는 나라를 다시 만드는 것 만큼의 엄청난 개혁과제가 놓여있다. 각종 지표(중앙선관위 여론조사 결과 참고)를 보면, 대이변이 없는 한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당선이 확실해 보이지만 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여야 유력정당 후보군만 해도 14명이나 된다. 후보 등록 마감 결과 더불어민주당은 김경수 전 경남지사와 김동연 경기지사, 이재명 전 대표 등 3파전 양상이다. 11명이 접수한 국민의힘은 16일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나경원 의원, 안철수 의원, 양향자 전 의원, 유정복 인천시장, 이철우 경북도지사, 한동훈 전 대표, 홍준표 전 대구시장 등 8명으로 압축했다. 그런데 이번 장미대선에서 전북정치권은 변방에 머물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있다. 우선 전북 출신 후보가 없기 때문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출마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건 아니지만 실현 가능성은 별로 없는듯하고, 박용진 전 국회의원은 일찌감치 불출마 입장을 밝혔다. 인구나 정치적 영향력 측면에서 몸집이 왜소한 전북에서 유력한 대권 후보를 내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 전북 출신 정치인들은 종종 대선때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줬기에 도민들 입장에서는 아쉬운 감이 없지않다. 전북 출신으로서 맨 먼저 대권가도에 뛰어든 이는 바로 소석 이철승이다. 1971년 대선을 앞두고 야당인 신민당 후보 경선때 소석은 김대중, 김영삼과 맞대결을 펼쳐 비록 패하기는 했으나 확실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했다. 2002년 노무현 돌풍이 불때 유종근 당시 전북지사가 대권에 도전했으나 중도에 포기했고, 정동영 의원은 제17대 대선때 집권당 대선후보까지 됐으나 이명박 후보에게 참패를 당했고, 이후 대권 후보군에서 멀어졌다. 2021년 대선때는 정세균 전 총리가 민주당 경선에 나섰으나 득표율 저조로 인해 중도 사퇴했다. 전북 출신 고건 전 총리도 한때 유력한 대권후보로 거론됐으나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끝내 출마하지는 못했다. 현 정치구도나 정치인의 면면을 볼때 앞으로도 상당기간 전북 출신 국회의원이 대권가도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는듯하다. 한편에선 김관영 지사가 올림픽 최종 유치 등 극적인 반전을 만들어낼 경우 훗날 후보군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는 희망섞인 전망을 하는데 이는 현재로선 가능성의 영역에 불과하다. 인촌 김성수를 비롯, 한민당의 오너이자 뿌리가 바로 전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민주당의 한복판에 있는 전북이 이번 장미대선에서 변방에 머무는 것은 사실 안타까운 일이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전북 출신 정치인들이 당 대표나 국회의장, 최고위원, 원내총무 등에 도전하는 당찬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성패는 추후의 문제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5.04.16 12:42

‘인류의 기억’이 된 제주 4.3

제주 서귀포에 있는 동광리는 해발 300m에 있는 산간마을이다. 300여 년 전, 관의 침탈을 피해 쫓겨온 사람들이 모여 화전을 일궈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니 역사는 그리 길지 않지만, 깊게 패어 있는 현대사의 궤적은 특별하다. ‘무등이왓’이란 별칭을 갖고 있던 이 마을은 조선 말기, 관의 침탈에 항거하여 농민봉기를 일으킨 진원지였다. 일제강점기에는 2년제 동광간이학교가 건립되었을 정도로 주민들의 교육열이 높았다. 마을의 비극이 시작된 것은 국가 폭력에 맞서면서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일본군이 철수한 제주도에는 미군정이 들어섰다. 직접 통치에 나선 미군정은 제주도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한다는 이유로 다양한 조치를 시행했다. 공물(세금)징수도 그중 하나였다. 이 마을 사람들은 미군정의 공물징수에 항의하며 보리 공출에 응하지 않았다. 마을에 가해진 군경의 탄압은 집요하고 악랄했다. 대부분 청장년이 탄압을 피해 산으로 피신했지만, 군경의 토벌작전으로 수많은 주민은 목숨을 잃어야 했다. 1948년 4.3 사건 당시에도 마을은 군경의 토벌 대상이 됐다. 마을 사람들은 군경 토벌을 피해 숨어 지낼 곳을 찾아야 했다. 동광리 중산간에 있는 천연동굴 ‘큰 넓궤’가 그곳이었다. 1948년 가을부터 두 달여 동안 주민 120여 명은 그 좁은 동굴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냈다. 토벌대에 발견되었지만, 다시 피신해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결국 붙잡혀 주민 대부분이 희생을 당했다. 제주 곳곳에는 동광리처럼 수난과 비극의 역사를 안고 사라졌던 마을이 많다. 제주 4.3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가 승인한 제주 4.3아카이브(Revealing Truth : Jeju 4.3 Archives)'는 진실 규명과 화해의 과정을 담은 1만 4,673건의 기록이다. 놀랍게도 이 중 대부분은 1990년대에 제주도민들이 경험과 기억을 직접 써서 낸 피해신고서들이다. 4·3의 비극을 세상에 알린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 진상규명과 화해를 위한 시민운동기록, 군·사법기관 재판기록, 정부 진상조사 관련 기록도 포함됐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역사적 가치와 진정성, 보편적 중요성을 인정받았다는 증거다. ‘역사적 비극 속에서 제주 공동체가 걸어온 치유와 회복의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 ‘화해와 상생을 향한 지역사회의 민주주의 실천이 이룬 성과’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제주 4.3사건은 이제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인류의 기억’이 됐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왜곡과 폄훼가 여전히 맞서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진실 규명의 의지와 힘이 단단해져야 하는 이유가 더 분명해졌다. /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5.04.15 18:38

잼버리와 올림픽

벼르고 별러서 연 국제행사인데 망신살만 뻗쳤다. 책임을 피할 수 없었지만 울분이 앞섰다. 전북도민 누구도 지자체의 책임을 거론하지 않았다. 대신, 머리띠를 두르고 주먹을 쥐었다. 행사 개최지인 전북에 마녀사냥식 비난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파행으로 얼룩지면서 책임의 칼날이 전북을 향했다. 갈길 바쁜 새만금 SOC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폭거가 뒤따랐다. 전북이 잼버리 유치에 나서면서 SOC 등 새만금 내부개발에 기폭제로 삼겠다는 의도와 기대가 있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부‧여당의 견강부회(牽強附會)식 공세와 어이없는 문책성 조치에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지역사회 응어리진 설움과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했다. 시민단체와 종교계까지 나서 ‘도민의 명예를 훼손하는 정치공세를 멈추고 책임규명에 나서라’고 외쳤다. 은연중에 새만금 잼버리 유치 공로를 내세우면서 공동조직위원장까지 맡았던 모 국회의원은 곧바로 대정부 투쟁의 선봉장이 돼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김관영 전북지사는 “제기된 의혹에 대한 진실을 밝히겠다”면서 전북도가 먼저 자체 감사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총성만 울린 채 중단됐다. 곧바로 감사원 감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예견된 일이다. 관련 법률에 명시된 ‘중복감사 금지’ 규정에 의해서다. 떠들썩하게 감사원 감사가 예고된 상황에서 김 지사가, 전북도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 억지 공세와 비난, 그리고 책임 떠넘기기에 대한 격한 항변, 울분 표출의 한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어물쩍 건너뛴 자성의 시간이 다시 왔다. 감사원이 ‘2023년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추진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를 마침내 내놓았다. 감사 착수 1년 6개월여 만이다. 준비‧운영기구인 조직위원회와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 행사를 유치한 전라북도의 부실한 업무처리와 무책임 행정이 겹친 총체적 부실이라는 게 감사원의 결론이다. 새만금잼버리 추진 주체 중 하나인 전북자치도에서도 ‘잘못한 만큼의 책임’을 되새기고, 반성해야 한다. 전북의 미래를 위해서다. 게다가 지금 전북은 잼버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지구촌 최대 축제 올림픽 유치에 나서지 않았는가. 골리앗 서울을 제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게 된 전북의 도전에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국제행사 개최 역량을 의심하면서 잼버리 파행의 아픈 기억을 애써 불러내고 있다. 경쟁에 뛰어들었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다. 어렵게 잡은 전북 대전환의 기회다. 걸림돌이 된 잼버리를 다시 디딤돌로 만들어야 한다. 보여주기식 반성과 입장 발표로 끝낼 일이 아니다. 드러난 과오를 꼼꼼히 살피고,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그해 여름날의 악몽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굳이 책임의 경중을 따져 뒤로 물러서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올림픽 유치에 나선 도시답게 책임감과 자신감을 보여줘야 한다. 실추된 도민의 명예와 자존심, 전북의 위상을 회복하는 길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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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5.04.14 16:05

키맨 안 의원이 해결하라

전주시민들은 완주 전주 통합에 찬성인데 반해 완주군민들은 소극적이며 반대가 많다. 양측의 통합을 놓고 찬반단체가 구성돼 찬반 활동에 들어갔으나 완주 무주 진안 출신 민주당 안호영 국회의원과 유희태 군수, 완주군의회가 결사 반대해 자칫 4번째 통합이 물건너 갈 상황에 놓여 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양측이 속내를 감추지만 그 실상을 알아보면 정치적 이해관계가 철저하게 대립돼 진전이 안되고 있다. 느닷없이 계엄령을 발동해서 대한민국을 하루아침에 아프리카 변방국 보다 못한 나라로 만들었던 윤석열 전대통령을 파면시켜 6월3일 장미대선을 치르게 한 위대한 시민정신을 갖고 있기에 완주 전주 통합도 역사의식과 거시적 안목을 갖고 추진해 나가야 한다. 생활권이 같은 완주와 전주는 경제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공장부지가 없어 더 공단을 조성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전주시는 비싼 아파트 분양가와 청년들의 일자리가 없어 65만 인구가 해마다 줄고 있다. 완주 전주 통합은 전북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다. 전북은 대광법 통과로 발전의 전기를 마련했다. 도로와 철길 등 사회간접시설을 국비로 건설할 수 있어 그 만큼 경쟁력이 강화된다. 이 같은 좋은 여건을 일부 정치인의 이해관계로 살려 나가지 못하면 천추의 한으로 남게 될 것이다. 사실 완주는 공단분양이 잘 되어 다시금 공단을 조성해야 할 상황이라서 앞길이 탄탄해 보인다. 인구 10만명 달성도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이어서 통합문제에 굳이 목을 멜 입장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통합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더 발전할 기회가 있음에도 그 기회를 살리지 않고 오불관언으로 일관하면 후세들에게 죄를 짓는 행위나 다름 없다. 지금은 수도권대 비수도권 대결구도로 파이를 키우기 위한 통합이 대세다. 이미 청원과 청주가 통합해서 어떤 결과를 도출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청원과 통합한 청주시는 중부권 허브도시로 발전을 거듭, 수도권에서 밀려난 기업들이 입주러시를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가질 않아도 일자리를 마련해 삶의 질을 높여가고 있다. 통합을 놓고 바라다 보는 눈 높이를 너무 미시적 잣대를 갖고 들이대선 안된다. 각종 복지혜택이 잘 갖춰진 마당에 굳이 전주시와 통합할 필요가 있느냐는 완주군민의 생각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아적 태도에 불과할 따름이다. 지금부터는 완주군민들이 통합을 통해 전북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통합작업에 나서야 한다. 안호영의원도 지역구 문제라서 신경이 곤두세워지겠지만 적극 반대하는 군수와 군의회 의원들을 설득해서 통합토록 해야 한다. 그간 안 의원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군민들의 사랑과 격려를 충분하게 받았기에 그에 보답하는 자세로 나와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전주시도 말로만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고 할 게 아니라 통합시장 통합시의장을 완주 출신한테 준다고 선언해야 한다. 끝으로 전주시는 완주군민이 요구하는 사항을 다 들어줘야 한다. 아무튼 장미대선에 나선 이재명 후보도 이 문제에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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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5.04.13 17:57

[오목대] 헌재 판결이 남긴 것

‘주문 :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이같이 주문을 낭독하고 재판을 마쳤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로부터 123일, 국회 탄핵소추로부터 111일만의 일이다. 이 기간동안 많은 국민들은 가슴 졸이며 불안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연일 엄청난 시위와 함께 가짜뉴스가 난무했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문 대행 등 8명의 헌법재판관은 수십차례 머리를 맞대며 고통스런 평의를 거쳐 전원일치 결론을 냈다. 8 : 0이라는 만장일치를 통해 국가적 혼란을 막고 사회통합의 단초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역사적 결정문(판결문)은 광인(狂人)과도 같은 윤석열 시대의 막을 내리고 새로운 정부 수립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도록 했다.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본질적 의미 외에도 많은 함의를 던졌다. 그 중 두 가지를 꼽아 보겠다. 첫째, 114쪽에 이르는 방대한 결정문은 헌법교과서요, 명문장이다. 이번 결정문은 계엄선포 요건 등 쟁점마다 객관적 증거와 법 조항을 대며 법리적 해석을 내놓았고 군더더기 없이 간단명료했다. 부사 형용사 등을 자제하고 어려운 한자나 법률용어를 최소화하는 등 생활언어를 사용하려 노력한 점이 눈에 띤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결정문의 백미(白眉)는 5쪽 분량의 ‘결론’부분에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제1조 제1항)로 시작하는 이 대목은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하였다’고 끝맺고 있다. 여기서 대한국민은 헌법 전문에 나오는 용어다. 둘째, 헌법재판관의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계엄사태로 감정이 메마른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해줬다. 대표적인 게 문 대행의 일화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문 대행은 경남 진주에서 한약방을 하던 김장하 선생(본보 2024년 4월 2일자)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공부할 수 있었다. 그가 6년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밝힌 두 일화는 감동 그 자체다. 하나는 “제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인사하러 간 자리에서 선생은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닌 이 사회에 갚아라’ 하였고, 그 말씀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했다. 또 하나는 “제가 결혼할 때 다짐한 게 있다.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최근 통계에서 가구당 평균 재산이 한 3억원 남짓 되는 거로 아는데 제 재산은 (아버지 재산을 제외하면) 4억원이 조금 못 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평균 재산을 좀 넘긴 거 같아 반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읍출신 김형두 재판관은 지난해 12월 25일 부친상을 당하고도 정상출근해 변론기일을 준비했다. 또 자폐성 장애를 가진 둘째 아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피고 그로부터 세상을 폭넓게 이해하는 법관으로서의 자세를 배운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의 가슴 따뜻한 일화는 선한 영향력으로 어려운 시대에 등불이 되었으면 한다.(조상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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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진
  • 2025.04.10 13:49

4.13 호헌조치 그후

4월 13일은 일년 365일중 하나일 뿐이지만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 매우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 날이다. 조선이 건국된지 꼭 200년이 되던 1592년 4월 13일 한반도에 사는 이들에게 꿈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대참사가 다가왔다. 왜군의 조총소리와 함께 시작된 임진왜란이 바로 그것이다. 무려 7년간 국토는 유린됐고, 살아있는 민초들의 코와 귀가 베어졌다. 침략자인 왜군의 무자비한 살육과 약탈은 말할것도 없고 조선을 돕겠다며 한반도에 건너온 명나라 군사들의 횡포 또한 상상을 초월했다. 오죽하면 그 당시에 백성들 사이에 “명군은 참빗, 왜군은 얼레빗” 이라는 말이 나돌았을까. 명군이 지나고 나면 참빗으로 훑어내듯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기가막힌 현실을 개탄하는 말이었다. 어정쩡한 종전이 이뤄졌으나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조선은 불과 한 세대만에 또다시 정묘호란(1627년)과 병자호란(1636년)의 치욕을 겪게된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근대화 이후 양력을 사용했는데 어김없이 4월 13일 또다른 격변이 찾아왔다. 5공화국이 말기로 치닫던 1987년 소위 4.13 호헌조치가 바로 그것이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분출하는 국민적 요구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4.13 호헌조치를 발표했다.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호헌(護憲)은 원래 나쁜 의미가 아니었으나, 4. 13 호헌조치는 직선제 개헌(改憲)을 바라는 국민의 뜻과는 달리 체육관식 간접선거로 정권을 좀 더 연장하겠다는 의미였다. 분노한 국민들은 ‘호헌 철폐’를 외치며 거리에 나섰고 결국 6월항쟁과 직선제 개헌으로 귀결됐다. 그게 벌써 38년전 일이다. 87년 개헌에서는 상당 부분 국민의 기본권 강화가 이뤄졌으나 가장 핵심적인 것은 유신(1972년) 이후 없어졌던 대통령 직선제였다. 당시엔 단임 대통령 직선제가 지고지선의 가치로 여겨졌으나 점차 세월이 흐르면서 대통령 한사람에게 제왕적 권력을 부여하는게 과연 맞는가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탄핵을 당한 이는 말할것도 없고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임기를 마칠때쯤엔 욕만 먹고 퇴장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하지만 유력한 대권 후보들은 시대적 흐름과 달리 개헌 문제를 외면했다. “나까지는 대통령을 한번 하고 나서 다음번에나∼” 라고 하는 정치공학적 계산이 깔려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또다시 윤석열 탄핵으로 인한 6월 3일 장미대선을 앞두고 권력구조 개편과 대통령 임기를 조정하는 개헌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대다수 대권 후보들이 개헌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으나 가장 유력한 후보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금은 내란 종식이 먼저”라며 개헌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제1당인 민주당이 반대한다면 현실적으로 개헌은 어렵고 호헌조치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현행 헌법 호헌조치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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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5.04.09 14:03

해외입양의 불편한 진실

“국가가 입양인들의 인권을 침해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지난 3월 26일, ‘해외 입양과정 인권침해 사건의 진실규명 결정’을 발표하면서 과거 해외입양 과정에서 국가의 인권침해를 인정했다. 2022년 8월, 해외입양인들이 입양과정에서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진상 조사를 신청한 지 2년 7개월 만이다. 진상조사를 신청한 사람은 1960년~1990년대에 스웨덴 노르웨이 등 11개국에 입양됐던 한국인 367명. 진실화해위는 이들 중 56명에 대한 인권침해를 확인하고 국가의 공식적인 사과를 권고했다. 국가기관이 과거 해외 입양의 인권침해와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해외입양 과정에서 자행된 인권침해 실상은 충격적이다. ‘내 입양의 배경은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입양인의 절규는 진실이었다. 출산한 산모에게 아기가 사망했다고 속이고 입양을 보내거나 집을 잃어버린 아이에게 부모를 찾아주지 않고 고아라고 속여 입양을 보냈다. 입양과정에 있는 아이가 사망하면 바꿔치기하고, 양부모에게 강제 기부금을 받기도 했다. 국가가 관리를 방기하는 동안 해외 입양기관들이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피해자는 속절없이 늘었다. 친생부모의 적법한 동의 없이 해외입양이 진행되거나 호적이 없는 상태의 아동을 보내기 위해 가짜 서류가 작성되는 등 입양아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불법과 탈법의 결과는 참혹했다. 우리나라의 해외입양은 6.25 전쟁이 가져온 비극이다. 공식적으로는 1953년 해외입양이 시작됐으니 그 역사도 70년을 넘는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23년까지 해외 입양된 아동은 16만9천859명이지만 비공식 통계까지 더하면 20만 명을 넘는다. 2차 대전 이후 해외에 입양된 아동이 50만 명, 그중 40%가 우리나라 아동인 셈이다. 다행히 국내에서도 입양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07년에는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아 수를 넘어섰다는 통계가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패러다임은 여전히 혈연 중심이지만 더 이상 혈연에 얽매이지 않고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인식 변화의 산물이 반갑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아동을 해외에 입양 보낸 나라’라는 불명예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해외 언론들이 이번 진실화해위의 발표를 주목한 배경이기도 하다. 진실화해위의 해외입양 진상규명 결정으로 안겨진 과제가 많다. 정부의 공식 사과는 물론 입양인들의 피해에 대한 적극적인 진상 조사가 먼저다. 입양인 실태조사와 후속 대책 마련, 피해 구제와 입양정보 시스템 개선 등 실질적인 지원도 절실하다.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부끄러운 과거’를 지울 수는 없지만, 그래야만 진실과 화해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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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5.04.08 17:16

대선과 개헌, 그리고 지방분권

10년 전인 2015년 11월 전북도청에서 ‘지방분권 개헌 대국민 토론회’가 열렸다. ‘지방분권형 개헌’을 주창해온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가 개헌의 당위성과 방향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해 전국 순회 형식으로 마련한 행사다. 이 무렵 정치권에서도 개헌 논의가 활발했다. 1987년 제9차 개헌 이후 수시로 불거져 나온 개헌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 장악력을 상실한 2016년 하반기 절정에 달했다. 당시 여야 의원 180여명이 참여한 ‘20대 국회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이 결성됐고, 원외 유력인사들도 별도 모임을 갖고 동참했다. ‘1987년 체제’의 헌법이 시대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조속히 개헌을 마무리짓고 새로운 체제에서 대선을 치르자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곧 실행될 듯 했다. 하지만 신기루였다.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오랜 세월 논의만 반복한 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정치권에서 매번 ‘지금은 때가 아니다. ~이 우선이다’는 논리에 묻혀 용두사미가 됐다. 이런저런 구실이 있었지만 결국은 권력구조 개편을 놓고 정치세력의 셈법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때가 왔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과 함께 막이 오른 ‘조기 대선’ 국면에서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 마침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선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시행하자’고 제안하면서 개헌론을 구체화했다. 정치권에서 그 시기와 절차를 놓고 논란이 있지만, 필요성에는 이의가 없어 보인다. 다만 ‘우선 권력구조 개편을 골자로 한 개헌을 하고, 부족한 내용은 다음에 추진하자’는 국회의장의 제안은 신중히 생각해 볼 일이다. 국가의 기본질서를 규정한 최상위 법을 개정하는 일이다. 화폐개혁만큼이나 쉽지 않은 과정이다. 또 국가운영의 기틀인 헌법을 일반 법령 개정하듯이 수시로 뜯어고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대한민국은 과도한 중앙집권체제로 인해 지역 불균형을 넘어 지방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 극복을 위해 대통령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는 분권형 권력구조가 요구되는 것처럼 중앙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과 행정‧재정 권한을 지방에 분산하는 자치분권도 시대적 과제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이후 전국 지자체에서는 진정한 지방자치, 지방분권을 요구하면서, 헌법에 자치분권을 명시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지난달에는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가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를 강화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시대적 요구다. 대한민국이 미루고 미뤄둔 일이다. 이번 기회에 ‘권력구조 개편’과 ‘지방분권 강화’ 등 우리 사회 축적된 열망을 담아 국가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사회적 공감대는 이미 충분하다. 남은 것은 실행이다. ‘나중에 하자’고 다시 미룰 일이 아니다. 대선까지 일정이 너무 촉박하다면 그 시기를 정확히 명시해 국민과 약속해야 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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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5.04.07 16:18

되살려야할 탄핵정신

보수쪽에서 윤석열 탄핵에 강력히 반대를 했지만 헌법을 조금만 아는 사람들은 인용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계엄 선포후 TV로 생중계 되다시피해 전 국민들이 알고 있는 사실만 갖고도 증거는 차고 넘쳤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재판관 전원일치로 인용이 되었지만 너무도 위헌과 위법한 부분이 많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판결이 지연되면서 가짜뉴스가 범람해 국민들의 눈을 멀게 했고 판단을 흐리게 했던 것. 사실 윤석열에 대한 탄핵은 지난해 22대 총선 때 이미 결정났었다. 국민이 여소야대 정치구조를 만들어 줬기 때문에 야당과 대화와 협상을 통해 국정을 이끌어 나가라고 명령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무당들의 이야기만 듣고 외골수로 나간게 패착이었다. 대통령이라고 절대 권력을 갖는 게 아니다. 헌법을 근간으로 그 범위안에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당시에는 계엄을 발령할 상황이 아니었다. 준 전시적 상황이나 사회질서가 엉망진창인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계엄령을 발동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국무회의를 소집해서 각 장관들이 부서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대한 절차적 하자가 생겼다. 그런데도 야당의 탄핵남발로 국정운영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모든 책임을 야당 한테로 똘똘 몰아 씌웠지만 헌재는 이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지금 이 같은 어처구니 없는 계엄령을 발동해서 역사의 단조를 받게 되었는지를 무작정 보수쪽이 잘못되었다고 거부만할 일이 아니고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국가가 나락으로 빠지지 않고 세계를 무대로 국가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헌법이 민주주의를 되살려 냈기 때문이다. 그 만큼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갈 역량이 충분하다는 것을 전 세계인 한테 다시금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흘린 피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시켰다. 이번 헌재의 판결로 대한민국은 정의가 강물처럼 살아 숨쉬고 다시는 이같은 어처구니 없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겨울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탄핵찬성을 외쳐온 애국시민들의 올곧은 기개와 성난 외침이 있었기에 만개한 벚꽃마냥 민주주의가 되살아 났다. 지금 전북은 탄핵찬성이 주류지만 이번 탄핵을 계기로 해서 또아리 치고 있는 적폐를 청산시켜야 할 것이다. 그간 전북은 30년 이상 특정 정치세력과 일부 부패한 토호세력들이 결탁해 자신들의 잇권을 챙기려고 높은 성을 쌓아 올렸다. 자신들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 서로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짝자꿍문화가 형성돼 서민들만 한숨 짓는 신음소리만 들린다. 2달안에 대선부터 시작해서 내년 지방선거 때는 민주당이 투명하게 공천을 하도록 옥석구분을 잘 했으면 한다. 전북은 정서상 도민 모두가 당원이나 다름 없기 때문에 후보자 결정을 오픈 프라이머리로 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돈 선거의 유혹으로 깜냥이 안되는 사람들이 선출직 후보가 될 수 있다. 진흙탕 싸움이 안되도록 경선 방식을 과감하게 바꿔야 탄핵정신을 되살릴 수 있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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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5.04.06 17:05

산불…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역대 최악의 산불이 한반도 동남부를 휩쓸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도깨비불 같은 불덩어리가 강한 바람을 타고 날아다녔다. 마을이고 산이고 바닷가 어선까지 화마가 집어삼킨 것이다. 지난달 21일 시작된 산불은 울산, 경북, 경남, 충북, 전북 등 11개 지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이중 경북 의성, 안동, 청송, 영양, 영덕과 경남 산청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피해 면적이 서울의 약 80%에 해당하는 4만8000ha에 달하고 인명 피해도 사망 30명, 부상 45명에 이르는 사상 최악의 기록을 남겼다. 집 3800여 채가 잿더미가 됐고, 대피소로 옮긴 이재민이 4700여 명이다. 간접피해 인원까지 합하면 4만명에 육박한다. 경제적 손실만 2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천년고찰인 경북 의성의 고운사, 운람사 등도 전소됐다. 이같이 엄청난 재난은 기후위기와 인간의 부주의가 빚어낸 결과였다. 기후변화로 지구가 빠르게 뜨거워지면서 산불과 폭염, 홍수 등이 잦아졌다. 이번 산불은 성묘객이 라이터로 봉분에 있는 나무를 태우려다 바람에 불씨가 날려 초대형 산불로 번졌다. 쓰레기 소각과 제초작업 중 발생하기도 했다. 산불이 덮친 곳에 숲이 다시 돌아 오는데 30년, 땅까지 완전 복원되는데 100년의 세월이 걸린다고 한다. 이번 산불의 최대 피해자는 누구일까. 사망자 30명 중 26명이 노인이었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76세였다. 영덕읍에 살던 89세와 83세 노부부는 대피 도중 참변을 당했다. 잿더미가 된 대문 앞에서 꼭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으로 발견돼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대피 중 할머니가 넘어지자 할아버지가 일으켜 세우다 연기에 질식사한 것으로 보인다. 71세 여성은 소아마비 환자로 고립돼 질식해 숨졌고 88세와 86세 남성과 86세 여성은 실버타운 외상환자들로 차량으로 대피하던 중 산불이 확산되면서 차량이 폭발해 숨졌다. 또 대피소에 임시거처하는 주민도 대부분 노인들이다. 이번 산불 피해지역은 전국적으로 고령화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첫 발화지역인 의성군은 고령화율이 47.9%로 전국 226개 시·군·구 중 1위다. 청송군은 7위, 100세 노인이 매몰돼 숨진 영덕군은 9위, 영양군은 11위, 경남 산청군은 고령화율 43%로 전국 12위이다. 또 이들 지역은 1인 가구나 노부부 가구가 많다. 거동이 불편해 제때 대피하지 못한 것이다. 이들은 일상생활수행능력(ADL)이 낮은데다 고혈압, 당뇨, 골다공증 등 만성질환을 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고령사회와 인구소멸이 빚은 비극인 셈이다. 현행 화재예방법(제23조)과 재난안전법(제31조의2)은 노인을 화재안전취약자로 분류한다. 하지만 임의규정으로 형식적이다. 미국은 대형산불이 발생하면 강제 대피명령을 내린다. 지난 1월 로스앤젤레스(LA)에서 대형산불이 났을 때 경찰이 집집마다 방문해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공무원들이 직접 도로를 폐쇄하고 긴급대피소로 주민들을 안내했다. 우리는 재난약자가 가장 먼저 희생당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었다. (조상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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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진
  • 2025.04.03 11:56

이창호와 조훈현

전주시 중앙동 웨딩거리에 가면 전주시 미래문화유산 12호인 ‘이시계점’이 있다. 평범해 보이는 이곳은 바로 바둑천재 이창호(50)가 태어난 곳이다. 이창호는 4살때 할아버지(이화춘)에게서 바둑을 어깨너머로 처음 배웠는데 바둑으로 키워보려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이재룡)의 기대는 적중했다. 이창호는 9살때 조훈현 국수 집에서 기거하면서 제자로서 본격적인 수업을 받는다. 10대 중반부터 정상권에 진입한 이창호가 걷는 길은 말 그대로 역사였다. 1991년 국내 14개 프로 타이틀 가운데 7개를 석권, 스승 조훈현을 앞섰고 마침내 1995년에는 15개중 14개를 석권하면서 프로 바둑 세계 최다관왕에 등극했다. 이후 이창호는 세계 최다연승(41연승) 기록을 보유하게 된다. 두터운 기풍의 이창호는 조남철, 김인, 조훈현으로 이어지는 국내 1인자의 영역을 뛰어넘어 세계무대를 석권했다. 한동안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진듯했던 이창호가 요즘 각광받고 있다. 박스 오피스 1위 '승부'에서 그가 등장했다. 바둑 레전드 조훈현(이병헌)이 제자 이창호(유아인)와의 대결에서 패한 후 타고난 승부사 기질로 다시 한번 정상에 도전하는 영화다. 이 작품은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의 전설적인 ‘사제 대결’을 담아냈는데 이병헌과 유아인은 인간의 내면적 감정을 너무나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이병헌은 얼핏보면 조훈현 그 자체라고 할만큼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였는데 "바둑돌만은 제대로 잡아달라"는 조훈현 국수의 부탁에 이병헌은 프로 바둑기사에게 1대 1 교습을 받으며 손가락 관절까지 세밀하게 표현했다고 한다. 언필칭 전북을 일컬어 바둑의 메카라고 한다. 이창호를 배출한 곳이 전주이고, 조남철 초대 국수의 고향이 부안 줄포임을 감안하면 틀린말도 아니다. 특히 이창호를 중심으로 짜여진 ‘수소도시 완주’ 바둑팀이 최근 파란을 일으키는 것도 주목할만하다. 수년전 전북바둑연맹 회장을 지낸 유희태 완주군수와 이창호 국수와의 인연으로 지난해 9월 창단한 ‘수도도시 완주’는 정수현 9단이 감독을 맡았으며, 이창호 9단 등 선수 4명으로 구성됐다. 그런데 전북뿐 아니라 타 시도에서도 바둑의 메카를 표방하는 곳이 많다. 전남 영암군은 한국 바둑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무대를 제패한 조훈현 국수의 고향이다. 영암군에는 조훈현 바둑기념관이 있고 해마다 굵직한 바둑대회를 열고 있고 특히 국립바둑연수원 유치에도 나섰다. 그런가하면 국내 최초 바둑전용경기장인 ‘의정부시 바둑전용경기장’이 착공됐다. 바둑전용경기장은 2026년 8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수의 프로기사를 배출한 전북은 바둑의 메카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뭔가 좀 부족해 보인다. 차제에 전주와 부안 등에서도 전세계적인 바둑의 메카에 걸맞는 선 굵은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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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5.04.02 11:57

문학인 '한 줄 성명'과 탄핵 선고

1974년 11월 18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 문학인들이 섰다. 백낙청 염무웅 고은 신경림 조태일 이문구 박태순 황석영 등이 참여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101인 선언>. 유신정권의 독재와 탄압을 비판하며 문학인들의 현실 참여를 주장하고 나선 이날 시국선언은 문학인들의 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민주화 투쟁의 시작을 알리는 포고(?)이기도 했다. 실제 이날 시국선언을 계기로 결성된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1980년대 가장 치열했던 민주화 운동을 중심에서 이끌었다. 돌아보면 사회가 민주주의의 위기에 처할 때마다 사회 각계각층의 시국선언은 이어졌다. 퇴행하는 현실을 직시하며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수단, 시국선언의 힘은 곧 사그라지기도 했으나 때로는 공동체의 힘을 불러오는 막강한 힘이 됐다. 특히 시대를 직시했던 문학인들의 시국선언은 곧 시대의 기록이 됐다. 지난 3월 25일 한국작가회의가 전국의 문학인 2,487명 이름으로 긴급 시국선언을 하며 ‘윤석열 즉각 파면’을 촉구했다. 이들 중 414명 작가의 ‘한 줄 성명’이 있었다. 탄핵 선고가 늦어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진 한국 사회를 직면해야 하는 절절한 심정을 담은 글. 이 암울한 시절을 인내심으로 버티고 있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며 위로받을 수 있는 문장들이다. ‘훼손되지 말아야 할 생명, 자유, 평화의 가치를 믿는다’는 한강은 ‘파면은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일’이라고 했다. ‘내란을 공부하는 고통, 헌법을 공부하는 비참, 극우의 배후와 분열의 배후를 공부하는 통증, 공부하는 분노가 반드시 이길 거라는 믿음’(김소연 시인)이나 ‘나는 보았고, 너는 들었고 우리는 알았다. 진실의 뿔을 갈아 너희의 어둠을 찢으리’(김현 시인)같이 저절로 고개 끄덕여지게 하는 글도 있다. 모두가 이심전심, 수많은 사람이 안았을 분노와 다르지 않다. 헌법재판소가 미뤄오던 탄핵 선고기일을 알렸다. 4월 4일 오전 11시 헌재 대심판정이다. 지난해 12월 4일 윤대통령이 탄핵 소추된 지 111일, 변론이 종결된 2월 25일로부터 38일 만에 탄핵 여부가 결정되는 셈이다. 방송 생중계와 일반인들의 방청도 허용됐다. 지난 한 달여 간의 시간이 스쳐 지나간다. 비상계엄의 위헌과 위법성은 변론 과정에서 더 분명해졌지만, 헌재의 결정은 예상 밖으로 길어졌다. 불안과 혼란 속에 무너진 일상은 회복될 수 있을까. ‘앞발에 채찍을 들고 있었다(문지혁 소설가)’ 는 ‘그’를 제대로 심판하는 날. 그 날, 금요일이 '정의와 평화로 충만한 날’(김연수 소설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인가. 더 선명해지는 소설가 맹문재의 한 줄 성명이 있다. ‘불법 계엄자 파면은 역사의 명령이다.’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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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5.04.01 16:25

꽃보다 먼저 온 불청객, 그리고 꽃잔치

불쑥 찾아와 쑥대밭을 만들었다. 기다렸던 봄날, 피하고 싶었던 불청객이다. 새 생명이 움트는 계절, 남녘의 ‘꽃소식’을 기다렸는데 ‘불소식’이 먼저 왔다. 봄의 전령 매화와 산수유, 그리고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이 전국의 산과 들에서 다투어 피어나야 할 때, 우려했던 그 괴물이 몸집을 불려가며 국토를 삼켰다. 현장의 주민들은 물론 멀리서 하릴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도 속이 새까맣게 탔다. 건조한 날씨에 강풍이 더해지는 계절, 거세게 타오른 불길을 잡는 건 쉽지 않다. 결국은 애타게 기다린 봄비가 아주 적은 양이었지만 진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가까스로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상처가 깊다. 이번엔 유난히 크다. 기록을 갈아치웠다. 화마는 물러갔어도, 돌아갈 곳이 없는 이재민이 적지 않다. 소중한 삶의 터전을 순식간에 잃고 결국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우리 산골, 우리네 고향은 더 적막해진다. ‘폭풍이 지난 들에도 꽃은 핀다. 지진으로 무너진 땅에도 맑은 샘은 솟아난다. 불에 탄 흙에서도 새싹은 움튼다.’ 주옥 같은 명문으로 유명한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이 남긴 명언이다. ‘절망 속에 잉태되는 희망’을 새삼 강조한 표현이다. 바이든이 노래한 것처럼 자연의 치유력은 대단하다. 시간 문제다. 불에 탄 숲이 복원되려면 수십 년이 걸리고, 토양이 살아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올봄 화마가 할퀴고 간 폐허에도 생명의 불씨, 희망의 불씨는 분명 다시 살아날 것이다. 산불이 사그라들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꽃소식이 올라온다. 따스한 봄날을 알리는 벚꽃이 여기저기서 꽃망울을 활짝 터트리고 있다. 꽃잔치 소식도 속속 들려온다. 당장 축제를 눈앞에 두고 행사 취소·연기를 심각하게 고민했을 지자체들이 앞다퉈 꽃잔치 소식을 전하며 상춘객을 유혹하고 있다. 그래도 봄은 축제다. 좌절을 딛고 함께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생각 없이 꽃잔치에 취해 있을 때는 아니다. 봄날의 이 악몽을 해마다 되풀이할 생각이 없다면 말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산불이 대형화·장기화하고 있다. 산불 대응체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국가재난사태를 겪으면서 ‘산불 예방과 초기 대응을 위해 임도(林道) 확충이 시급하다’거나 ‘산불에 저항력이 강한 활엽수림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나온다. 대형 산불이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지적이다. 산림청이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임도 확충’을 놓고는 ‘조기 진화에 효과가 적고, 산사태 위험만 키운다’는 반론이 맞서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어쨌든 지금의 산불 예방 체계를 재점검해야 하고, 장비와 인력 보강을 포함한 진화 대책의 전환도 요구된다. 긴 겨울을 보내고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한 생명의 계절, 모두가 기다리는 남녘의 꽃소식이 화마에 묻히는 일은 이제 두 번 다시 없어야 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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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5.03.31 18:18

비바람에 시달리는 벚꽃

꽃 피는 봄이 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희망을 갖고 목표가 이뤄지길 바란다. 하지만 올 봄은 유난히 대형산불이 많이 발생해 귀중한 목숨을 너무 많이 앗아갔다. 강풍을 타고 화마가 덮쳐 일평생 살아온 삶의 터전이 일순간에 잿더미로 변해 망연자실 하고 있다. 마치 현장의 모습은 전쟁터나 다름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전북에서도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해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올 봄에도 목련 개나리 벚꽃이 교향곡을 연출하듯 함께 환하게 피어 올랐다. 그 가운데 벚꽃은 화사함의 극치를 이룬다. 전주 삼천변 금산사길 송광사길 마이산길 정읍천변길은 대표적인 전북벚꽃 명소로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겨우내 꽁꽁 얼어 붙었던 추위를 이겨낸 탓인지 활짝 피어난 벚꽃의 자태가 뭉게구름과 솜뭉치처럼 부풀어 올라 장관을 이룬다. 기온차이에 따라 피는 시기가 각기 다르지만 그 아름다움은 견줄대가 없을 정도다. 세상사 모든 게 유한하다는 표현으로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을 쓴다. 순백의 화사한 벚꽃은 봄을 대표하는 꽃이지만 피어 있는 시간이 길지가 않다. 조금만 기다려주면 좋으련만 웬걸 비바람이 강하게 불어 닥쳐 마구 흔들어 대는 바람에 꽃잎이 떨어진다. 부여 낙화암에서 삼천궁녀가 꽃잎처럼 떨어지듯 거센 비바람이 불어닥쳐 몰골을 드러내게 만든다. 언제 피었는가 싶었더니 몇일 보고나면 듬성듬성 꽃이파리만 매달려 있다. 우리 인생도 거의 똑같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밤잠 못자고 열심히 공부하거나 일해서 성공하면 주위에서 흔들어대기 바쁘다. 사촌이 논 사면 배아프다란 말을 우리지역에서 자주 듣는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성공을 칭찬은 커녕 마구 흔들어대고 폄훼하니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는가. 전북인은 장점이 많지만 그 반대로 시기 질투와 남을 험담하고 뒷담화를 까는 일이 너무 많은 것은 고쳐야 할 일이다. 앞에서 형님 동생하던 사람들이 눈 앞의 이익 앞에서는 협력하기 보다는 다시 쳐다보지도 않을 사람처럼 냉혈한으로 돌변하니 무슨 지역발전이 이뤄지겠는가. 그간 선거가 잦다보니까 지역이 갈기갈기 찢겨 순후 했던 인심이 사나워지고 거칠어졌다. 형님 동생하며 의리를 바탕삼아 살아온 삶의 괘적들이 하나 둘씩 무너졌다. 면전에서 형 동생하던 따뜻한 인간 관계가 자그마한 이익을 앞에서는 다시 안만날사람 처럼 등져버리니 무슨 협력이 이뤄지겠는가. 지금 수치상 전북이 전국에서 가장 자존심 상하게 못사는 낙후지역이 된 것도 남의 탓이 아니라 결국 내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풀어 나갈려는 것보다는 힘으로 완력으로 밀어부치는 일이 너무 많다. 아름답고 화사한 벚꽃을 떨어뜨리는 풍우(風雨) 같은 짓은 안했으면 좋겠다. 2036년 국내 올림픽개최후보지 도시다운 처신을 해야 한다. 모두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이번에 경험했기 때문에 화합과 단결로 지역발전을 도모해 나가야 할 것이다. 탄핵정국하에서 오리가 자맥질 하듯 정치권부터 전북몫 찾기에 앞장섰으면 하는 마음이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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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5.03.30 18:23

노년에 어디서 살아야 하나

노년기에 접어들면 집은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다. 나이들수록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집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병원을 가거나 돌봄서비스를 받아야 하고, 편안한 죽음(dying in place)까지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러면 노후에 어디서 사는 게 좋을까. 노인의 주거형태는 3∼4가지 정도로 나눠볼 수 있다. 노인복지주택(시니어타운 또는 실버타운)과 공공임대인 고령자복지주택, 전원주택, 그리고 자신이 살던 집에서 그대로 사는 형태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는 시니어타운과 내집에서 그대로 살기 등을 살펴보자. 시니어타운은 1988년 국내 최초로 수원에 건립된 유당마을(279세대)을 효시로, 전국에 40곳 1만 세대 가량이 입주해 있다. 시설이나 위치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대개 호텔식으로 운영되며 병원과 피트니스센터, 골프장 등 각종 편익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 의사나 간호사가 상주해 있고 방안에는 응급벨이나 동작감시센서가 설치돼 응급시에 즉각 대응이 가능하다. 텃밭가꾸기나 골프모임, 문화활동 등 각종 동호회가 활성화된 곳도 있다. 그러나 비용이 만만치 않다. 최고가인 삼성 노블카운티(경기도 용인· 800세대), 더 클래식500(서울 광진구· 380세대) 등은 평형에 따라 다르나 10억원 안팎의 보증금과 1인당 한달 500만원 이상의 관리비와 생활비가 들어간다. 서민들은 그림의 떡이다. 전북에는 서울 송도병원이 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웰파크시티)를 2017년 석정온천 지구에 설립했다. 10층 높이의 576세대로 14-33평형 규모다. 저렴한 보증금과 의무식이 없고 부부가 월 100만원 안팎으로 생활할 수 있다고 한다. 입주자 60% 이상이 수도권에서 고창으로 내려온 은퇴자들이다. 하지만 시니어타운은 첨단 시설에 비해 노년세대들을 세상과 격리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잇달고 있다. 일부에서는 “시니어타운에 절대 가지 마라”는 말도 나온다. 또 대부분의 시니어타운이 낙상사의 우려 등 건강이 좋지 못한 입주민을 퇴거시키는 점도 단점이다. 다음으로 내집에서 그대로 살기를 보자. 보건복지부의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87.2%가 건강을 유지하면서 현재 거주지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응답했다. 또 건강이 나빠져 독립적 생활이 어려워지더라도 그렇다는 이들도 48.9%에 달했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내 집에서 계속 사는 걸(Aging in place) 원한 셈이다. 그러나 노년에는 몸 기능이 쇠퇴하면서 살던 집이 불편해지기 십상이다. 실제로 고령자에게 가장 빈번히 일어나는 사고가 낙상인데 고령자 낙상사고의 74%가 집에서 발생했다. 따라서 살던 집에서 그대로 살기 위해서는 생활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 문턱을 없애고, 욕실과 화장실에 미끄럼 방지 바닥재와 안전 손잡이를 설치하는 게 좋다. 또 밝은 조명과 자동 조명 시스템을 설치해서 야간 이동시 안전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다. 노년의 주거는 나이와 건강, 경제력, 배우자 유무, 취향 등을 고려해 신중히 선택해야 할 것이다. (조상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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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진
  • 2025.03.27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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