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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섬 만들기

최근 예술로 새롭게 떠오른 섬이 있다. 1,000여 개의 섬이 모여 마을을 잇는 전남 신안군이다. 신안의 섬은 국내 섬의 25%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수가 많다. 인구는 3만 8천 명, 인구소멸 고위험지역이 된 지 오래다. 소멸 위기에 처한 이 섬이 예술섬으로 부상하고 있다. 예술로 신안을 새롭게 만들자는 <신안 예술섬 프로젝트> 덕분이다. 27개 섬에 미술관이나 예술관을 만드는 ‘1도 1뮤지엄’ 사업의 첫 결실이 지난해 말 도초도에 들어섰다. 세계적 거장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작품 ‘숨결의 지구’(Breathing Earth Sphere)다. 완성까지는 6년이나 걸렸다. 신안의 선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앤터니 곰리, 제임스 터렐, 마리오 보타를 비롯한 거장들의 작품 설치와 미술관 건립이 뒤를 잇는다. 국내외 그라피티 작가들이 참여하는 <그라피티 타운 조성사업-위대한 낙서마을>도 지난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내년 완공되는 또 다른 예술섬이다. 국내외 예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신안의 도전은 빛난다. 세계적 거장들의 참여를 끌어낸 자치단체의 오랜 공력도 관심사다. 사실 예술의 섬으로 지역재생에 성공한 곳은 적지 않다. 일본 세토내해의 섬 나오시마는 ‘쓰레기 섬에서 예술의 섬’으로 변신한 대표적 공간이다. 나오시마가 특히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또 있다. 20여 년 지난 지금도 세계 수많은 도시가 벤치마킹을 위해 이 섬을 찾고 있는 지속가능한 생명력이다. 나오시마는 1917년 미쓰비시광업의 금속제련소를 시작으로 제련산업 공장이 늘어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공장이 배출한 산업폐기물로 환경 폐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떠나면서 섬은 고립됐다. 수십 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쓰레기 섬을 사들인 기업이 있었다. 교육 관련 기업 베네세홀딩스다. 베네세는 1980년대 중반, 섬에 국제야영장을 조성하면서 예술을 입히기로 했다.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동행한 ‘나오시마 프로젝트’였다. 오랜 시간 탄탄한 기획과 준비 과정을 거친 나오시마의 변신은 놀라웠다. 안도가 설계한 건축물이 들어서고 시대를 대표하는 국내외 거장들의 작품이 조우한 섬은 아름다운 자연과 예술을 품은 거대한 미술관이 되어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주민들이 떠난 마을의 오래된 골목과 빈집도 작은 미술관으로 변신했다. 나오시마의 영향으로 이누지마나 데시마 등 세토내해의 다른 섬들도 예술섬이 됐다. 적잖은 자치단체들이 예술섬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너나없이 지역재생이 목표지만 예술을 내세운 본래 취지는 애매하고 기획은 탄탄하지 못하다. 독창성이나 정체성도 없이 투자자를 먼저 찾는 기이한 방식도 있다. 좋은 결실이 얻어질 리 없다. / 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5.03.11 15:25

농촌학교의 할머니 신입생들

겨우내 닫혀 있던 교문이 활짝 열렸다. 학교의 새해는 3월에 시작된다. 이맘때면 각급 학교의 이색 신입생이 화제가 된다. 올해 전북지역에서 가장 눈길을 모은 입학식은 단연 익산 함열여고다. 풋풋한 10대 여고생들 사이에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앉은 18명의 할머니 신입생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이 학교는 전북지역 일반계 고교에서는 처음으로 올해 성인반을 개설했다. 만학도들의 향학열이 만들어낸 훈훈한 미담으로만 보일 수 있다. 물론 고령에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고 도전한 할머니들의 열정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런데 그 이면을 들춰보면 우리 농촌, 그리고 농촌 학교의 안타까운 현실이 드러난다. 적령기에 학업 기회를 놓친 만학도들의 정규학교 입학 열풍은 대학에서 시작됐다. 학생수 감소로 존폐 위기에 몰린 지방대학들이 만학도 특별전형을 통해 늦깎이 학생 모집에 나섰고, 어르신들이 용기를 내면서 70~80대 할머니들의 캠퍼스 생활이 낯설지 않게 됐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저출산·고령화 시대, 학령인구 감소로 폐교 위기에 몰린 몇몇 농촌 초등학교들이 마을 할머니들을 주목했다. 한국전쟁 직후 사회 혼란과 빈곤, 남존여비의 가부장적 사회관습 등으로 인해 학업기회를 놓친 할머니들에게 평생학습시설 대신 정규학교 입학을 권유한 것이다. 그리고 농촌학교 할머니 학생들의 발길은 자연스럽게 중·고교로 이어졌다. 농촌 중·고교의 절박한 사정과도 맞아떨어졌다. 함열여고도 그랬다.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던 상황에서 성인반을 통해 학급수 감축 위기를 일단 벗어나게 됐다. 학생 모집난과 맞물린 할머니 신입생 모시기는 애초부터 지속 가능성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폐교를 막기 위한 미봉책’이라는 지적과 함께 논란도 있었다. 꼭 10년 전, 할머니 신입생들로 전국적 화제가 됐던 김제 심창초등학교는 올봄 교문을 열지 못했다. 이 학교는 지난 2015년 50~60대 만학도 6명이 한꺼번에 입학한 후 한때 전교생(18명)의 절반이 할머니들로 채워지면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교실의 모습은 지속될 수 없었고, 결국 올해 폐교를 막지 못했다. 올해 개설된 함열여고 성인반도 지속 가능성은 높지 않다. 머지않아 일반 학생처럼 할머니 신입생도 줄어들 게 분명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학령기를 놓쳐 ‘배움의 한’을 안고 살아가는 할머니들은 그 수가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애초 위기에 몰린 농촌학교가 찾아낸 고육책이다. 할머니 신입생 모시기, 성인반 운영이 학교나 학급 수 유지를 위한 방편이라면 분명 한계가 있다. 지방소멸 위기의 시대다. 학교를 넘어 지역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 농촌 작은학교 살리기는 이제 교육기관에서 감당할 수 있는 단계를 벗어났다. 국가균형발전을 끊임없이 외쳐온 중앙정부가 파격적인 정책과 범국가적 지원을 통해 진정한 지방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래야 농촌학교도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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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5.03.10 18:39

도전경성(挑戰竟成)한 김관영 지사

도민들은 미완으로 끝난 동학혁명으로 패배주의가 생기기 시작했다. 일제강점때 수탈현장으로 변한 전북은 광복후 정부수립 과정에서 걸출한 정치지도자를 많이 배출, 한국정치의 중심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18년간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동안 산업화에 소외되면서 발전이 더디었다. 서울의 봄을 맞는듯 싶었지만 또다시 전두환 군부독재정권 출현으로 전북은 국가산업화 전략에서 완전 배제,낙후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지금 전북은 어떠한가. 문민정부가 출현했지만 아직도 농업위주의 경제체계가 지속돼 GRDP가 전국 최하위로 쳐져 돈과 사람이 모이지 않는 곳이 되었다. 200만 도 인구가 햇빛 받은 설산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리면서 해마다 일자리가 없어 청년들의 엑소더스가 이어진다. 노인인구가 40만으로 전국 3위를 달리면서 지역은 활력을 잃었다. 지방자치제가 부활한지 30여년이 지났지만 인구소멸만 가속화 되었다. 이 같은 악조건하에서 지난달 28일 2036년 올림픽 국내후보지 선정때 전북이 골리앗 서울을 제치고 유치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모두가 서울이 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김관영 지사가 이끄는 전북 유치단은 끝까지 젖먹던 힘을 발휘,전북 유치를 이뤄냈다. 그 이면에는 도민들 성원도 있었지만 상당수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것이 서울은 이미 88서울올림픽을 치른 노하우가 있고 각종 경기장 숙박시설이 완비돼 마치 전북이 대항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를바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괄목할만한 것은 김 관영 지사의 계산된 유치 전략이었다. 그간 개최도시마다 경기장 신설하는 데 막대한 돈이 투입되면서 대회 치른 후에 모두 빚더미에 앉아 있는 것을 감안, 리스크 분산을 위해 개최도시를 대구 광주 청주 충남 홍성 전남 고흥등과 연합해 서울대 비수도권으로 묶어서 분산 개최키로 한 것이 신의 한수였다. 지역균형발전을 내세운 김 지사는 취임이후 줄곧 영국의 역사학자인 토인비의 역사발전은 도전과 응전으로 이뤄진다는 말을 원용,도전경선을 캐치플레이즈로 내걸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도정을 이끈 게 주효했다. 2023년 새만금잼버리가 실패하면서 모두가 낙심하고 있었을 때 김 지사는 혼자서 2036년 올림픽 전북유치를 떠올리며 궁리를 해나갔던 것. 이후 2024년 전북대에서 한상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친후 그 자신감으로 올림픽유치에 뛰어들었다. 그 때 정치권에서는 무슨 뜬금없는 짓이냐며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김 지사는 전북연구원 이남호 원장한테 논리개발과 추진전략을 지시했고 파리올림픽으로 날아가 이기흥 전 체육회장의 지지를 이끌어내면서 정강선 한국팀 단장과 맨투맨 전략으로 득표작업에 올인 49대 11로 승리를 견인했다 . 김앤장 출신답게 끝없는 도전으로 일궈낸 김 지사의 값진 성과는 도민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면서 패배주의를 떨쳐내는 전기를 마련했다. 앞으로 인도 등 만만치 않은 경쟁국과 피튀기는 싸움이 남아 있어 끝까지 도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격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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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5.03.09 18:39

노후준비가 자녀의 결혼선물

요즘 젊은이들에게 결혼은 필수일까 선택일까. 결혼에 대한 생각은 성별, 연령, 혼인 여부에 따라 크게 갈린다. 지난해 5월 발표된 한국리서치 정기조사에 따르면 남성은 60%가 결혼을 필수, 여성은 55%가 결혼을 선택이라고 응답했다. 연령별로 보면 60대 이상은 70%가 결혼을 필수, 40대 이하는 과반 이상이 결혼을 선택으로 보았다. 여성과 젊은 세대는 결혼이 선택이라는데 손을 든다. 특히 30대 여성은 63%가 결혼을 해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이다. 대학가에서 인기를 모았던 가수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 가사가 딱 맞는 듯하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가슴이 뛰는대로 가면 돼”라는 게 트렌드인 셈이다. 그러면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같은 조사에서 미혼 응답자 314명에게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기 때문에’라는 응답이 49%로 가장 높았다. 구체적으로 보면 남녀 간에 차이가 있다. 미혼 남성은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가 59%로 가장 높은 반면 미혼 여성은 43%가 ‘적당한 상대를 아직 만나지 못해서’가 제일 높았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게 있다. 젊은 세대에게 결혼 상대방 부모의 노후준비가 결혼 여부를 판단하는 조건 중 하나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상대방의 외모와 성격, 학력, 직업 등을 먼저 봤다. 그리고 부모가 모두 계시는지, 뭐를 했는지를 물었다. 더불어 집안의 내력, 즉 뼈대 있는 집안인지도 살폈다. 그도 저도 아니고, 인물 하나만 똑 부러져도 성사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상대방 부모의 경제적 삶 설계 여부를 따진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노후준비 여부다. 결혼 후 상대방 부모가 손을 벌려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하긴 예전처럼 자녀를 많이 낳거나 자녀가 부모의 노후 보험인 시대는 지났기 때문에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조사도 있다.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가 지난해 9월, 25~39세 직장인 600명(주니어 세대)과 55~65세 사이 남녀 중 자녀가 있는 사람 600명(시니어 세대)을 대상으로 노후준비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이 가운데 부모의 노후준비가 자녀의 결혼에 영향을 미칠까를 알아보는 항목이 있었다. 먼저 시니어 세대에게 본인의 노후준비가 자녀의 결혼 결정에 영향을 미쳤거나 혹은 미칠 것으로 예상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응답자 중 9.3%가 ‘매우 그렇다’고 했고, 37.3%는 ‘대체로 그런 편’이라고 했다. 같은 질문을 주니어 세대에게 했더니, 응답자 중 15.7%는 ‘매우 그렇다’, 35.7%는 ‘대체로 그런 편’이라고 답했다. 결혼을 앞둔 자녀세대의 51.4%와 부모 세대의 46.6%가 부모의 노후준비가 자녀 결혼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 상대의 스펙이나 연봉, 저축, 집만큼이나 상대방 부모의 노후준비를 중요하게 꼽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청춘 남녀가 결혼하기 좋은 새봄이다. 자녀의 결혼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도 노후준비를 서둘러야겠다. (조상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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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진
  • 2025.03.06 15:31

김관영과 정강선

두고두고 회자되는 초대형 오보가 있다. 1948년 11월 2일 실시된 미국 대통령 선거때의 일이다. 당시 친공화당 성향의 언론이었던 시카고 트리뷴은 개표가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듀이가 이겼다"는 기사를 1면에 게재한 것이다. 트루먼 대통령이 재선 확정 후 승리를 만끽하며 공개적으로 시카고 트리뷴의 오보를 들고 조롱하던 사진은 너무나 유명하다. 며칠전 국내 유력한 경제지 하나는 서울이 올림픽 개최 도시로 확정됐다는 기사를 지면에 내보냈다. 서울과 전북 전주의 대결을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지난달 28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는 2036 하계올림픽 국내 후보도시 선정을 위한 대의원총회가 열렸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유되는 이 대결에서 전북은 서울을 상대로 49대 11, 상상치도 못한 압승을 거뒀다. 건물 하나를 지으려면 설계자, 목수, 미장공, 함바집 주인 등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공헌이 있겠으나 이번 전주올림픽 유치의 일등 공신은 단연 김관영 전북지사와 정강선 전북체육회장 2인을 꼽을 수 있다. 만일 이번에 일이 잘못됐더라면 그 다음날부터 여론은 김 지사의 재선 가도에 의문을 품게되고, 정강선 회장 또한 3선가도가 불투명해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런데 실낱같은 가능성에 도전해 승리를 거두면서 김 지사는 당장 내년 지선때 큰 거침새가 없게됐고, 정 회장 또한 내년 3선 가도에 탄력을 받게됐다. 만일 2036 올림픽 최종 유치에 성공한다면 김 지사는 여세를 몰아 차차기 또는 그 이후 대권가도에 명함을 드러낼 수 있게되고, 정 회장 또한 3선 임기를 마친 뒤 언젠가는 대한체육회장에 도전하는 것도 무망한 일이 아니다. 반면 허를 찔린 오세훈 서울시장은 유력한 여권내 대권후보로서 이미지 실추가 이만저만한게 아니다. 묘하게 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관영 전북지사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났고, 일합의 결과는 훗날 정치적 명운을 가르는 변수가 될 소지도 있다. 전북이 이번에 압승한 비결을 딱 하나만 꼽는다면 박스 선거에 최적화된 전략을 구사했다는 거다. 약 한달전 두 사람은 구체적 전략을 짜는 시간을 가졌다. 그것은 바로 1971년 신민당 대선 경선을 앞두고 김대중 후보가 대의원 한사람, 한사람 찾아가며 공을 들였던 것에서 착안했다. 신민당내 막강한 주류파는 물론, 유진산 당수의 지명까지 등에 업은 김영삼의 후보 선출이 자명해 보였으나 결과는 김대중 후보였다. 정강선 회장과 체육인들이 대의원들을 한사람, 한사람 찾아다니고 그 결과를 토대로 김관영 지사가 어떻게든 연고를 찾아내 일일이 대의원과 통화하거나 만남을 가지면서 협조를 구한 것이 결정타였다. 주사위가 던져진 것은 이미 과거일뿐이고 지금은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다. 올림픽 최종 유치가 돼야만 훗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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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5.03.05 13:22

'헌법의 말, 헌법의 풍경'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헌법 제 1조 1항과 2항은 익숙하다. 전문과 본문 130개조, 부칙 6개조로 구성된 헌법은 대한민국의 최고 법규다. 헌법은 단순히 법규를 열거한 교본이 아니다. 국가의 통치조직과 통치 작용의 기본원리,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을 담은 사회적 계약. 이를테면,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질서다. 이러한 헌법이 우리에게 새삼스러운 존재가 됐다. 지난해 말, 대통령 윤석열의 비상계엄 포고 이후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원인이다. 혼란스러운 탄핵 정국에서 헌법은 다른 누구도 아닌 권력자에 의해 왜곡되고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 수호를 외치면서 오히려 헌법을 훼손하고 파괴하는 권력자의 행태가 가져온 결과는 참담하다. 헌법의 존재와 실체가 새삼스러워진 것은 그래서일 터다. 서점가에서는 헌법 관련 책이 관심을 끌고, 헌법 관련 강좌와 모임도 전에 없이 늘고 있다. 한 인터넷 서점 집계에 따르면 계엄 포고 직후인 지난해 12월, 헌법 관련 책 판매율은 전월 대비 219% 늘었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는 무려 13배가 늘어난 결과다. 올해 들어서도 <일생에 한 번은 헌법을 읽어라> <헌법필사> <지금 다시, 헌법> <슬쩍 보는 헌법> 같은 헌법 관련 책들이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2030 세대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은 필사의 대상으로도 헌법 책은 인기다. 헌법을 읽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직접 쓰면서 집중할 수 있는 필사의 대상으로 삼게 된 것은 탄핵 정국이 가져온 변화다. 헌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환경은 여러모로 반갑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혼란스러운 탄핵 정국에서 헌법의 개념은 왜곡되고 훼손된 채 부유하고, 헌법으로 지켜야 할 질서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 심판 마지막 변론일이었던 지난달 25일, 국회 측 대리인인 장순욱 변호사의 품격있는 변론이 화제(?)다.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는 노랫말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을 소개한 장 변호사는 “이 노랫말처럼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 우리도 하루빨리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며 ”그 첫 단추는 권력자가 오염시킨 헌법의 말들을 그 말들이 가지는 원래의 숭고한 의미로 돌려놓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품격에 아름다움을 더한 그의 변론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탄핵 결정문에서 피청구인이 오염시킨 헌법의 말과 헌법의 풍경이 제자리를 찾는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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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5.03.04 15:28

올림픽과 지방도시

‘지방연대’의 힘이다. 수도권공화국의 중심 서울은 방심했고, 변방 전북은 간절했다. 국가균형발전 명분을 내세워 지방도시 연대 전략을 펼친 게 주효했다. 49대 11, 전북이 서울을 제치고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 국내 후보 도시로 선정됐다. 대반전이다. 이미 1988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서울은 경기장과 숙박시설, 교통망 등 인프라에서 전북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전북은 2023년 새만금 잼버리 파행으로 국제적 망신을 사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전북이 올림픽 유치에 나서겠다고 했을 때 시선은 싸늘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한다’는 비아냥도 있었다. 사실 지역주민들도 반신반의했다. 올림픽은 전통적으로 1개 도시 개최가 원칙이다. 올림픽 명칭에 도시 이름이 붙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올림픽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 ‘돈 먹는 하마’,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지난 2014년 ‘올림픽 어젠다 2020’을 통해 여러 도시에서의 분산 개최·공동개최를 승인했다. 그러면서 대도시가 아닌 전북이 분산 개최 전략으로 올림픽 유치에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올림픽 유치 기피 현상이 있기는 하지만 올림픽은 여전히 세계인이 주목하는 지구촌 최대 축제다. 전북이 대한민국 역사상 두 번째로 하계올림픽을 유치한다면 국격이 한층 더 높아지는 것은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와 국가균형발전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경쟁은 지금부터다. 이미 유치전에 뛰어든 인도네시아·튀르키예·인도·칠레·카타르·헝가리 등 쟁쟁한 해외 국가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국가 차원의 총력전이 필요하다. 이전 서울올림픽이나 평창동계올림픽 때도 정부와 기업, 국민이 하나가 돼서 뛰었다. 그러고도 평창은 3번째 도전 끝에서야 가까스로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국내 여건이 당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좋지 않다. 올림픽을 바라보는 국민적 시선도 달라졌다. 경기불황의 긴 터널 속에서 정국혼란의 끝도 보이지 않는다. 국가 역량과 국민적 염원을 모아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전북은 지금의 승리에 도취되어서는 안 된다. 절박했던 심정 그대로 다시 뛰어야 한다. 앞길은 더 가시밭이다. 전북이 골리앗 서울에 압승했지만, 국제경쟁력에서는 서울에 한참이나 뒤떨어진다. 우선 올림픽 유치가 과거 서울이나 평창의 사례처럼 전 국민의 염원이 되어야 한다. 전 국민의 뜨거운 함성이 울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역사회와 도민이 결집해야 한다. 정부와 민간의 협력은 물론 국민적 성원까지, 범국가적 차원에서 역량을 모아야 할 것이다. 수도권공화국에서 모처럼 일으킨 지방의 반란이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지역소멸 위기의 시대, 진정한 지방시대를 여는 전환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5.03.03 15:31

경로당과 노인회장 선거

경로당이 언제 생겼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문헌상 고려 때 결성된 해동기로회(海東耆老會)나 조선시대 기로소(耆老所)를 효시로 잡기도 하나 이들 모임이나 노인 여가시설은 오늘날의 경로당과 많이 달랐다. 1203년 결성된 해동기로회는 은퇴한 일부 관료들이 정기적 또는 부정기적으로 모여 시문을 짓고 술, 거문고, 바둑 등을 통해 노년생활을 즐기는 사적인 네트워크였다. 또 기로소는 연로한 고위 문신들의 친목 및 예우를 위해 국가에서 설치했고 기로연을 베풀었다. 서민들을 위한 연회로는 양로연(養老宴)이 있었다. 이들 기로연이나 양로연은 국가 차원에서 베푼 것이다. 민간에서는 조선시대 중기 이후 양로당(노인정)과 사랑방이 경로시설로 운영되었다. 이중 사랑방은 오늘날 마을회관이나 경로당 같은 역할을 했다. 대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에서 마을 사람들을 위해 제공하던 비교적 개방된 공간이었다. 이처럼 농경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랑방은 일제의 강압, 광복과 사회적 혼란, 6·25 전쟁의 참화 등 격동기를 거치며 급속히 사라졌다. 특히 6·25 전쟁은 많은 가옥을 대거 파괴시켰다. 이로 인해 도시 주변은 피난민들이 모인 판자촌이 등장하면서 더 이상 사랑방을 기대할 수 없었다. 도시 노인들은 복덕방 주변이나 가로수 그늘진 곳, 공원 등지를 여가활동 장소로 활용했다. 이 틈을 비집고 한때 다방이 등장해 번창했지만 호주머니가 가벼운 노인들에게는 접근이 쉽지 않았다. 이후 도시 주변에는 판잣집 형태의 무허가 경로당이 부쩍 늘어났다. 이는 국회의원 선거와도 무관하지 않았다. 표를 의식한 국회의원 출마자들이, 노인이 많이 모이는 곳을 찾았고 선심 공세로 경로당을 지어주는 일이 유행일 정도였다. 이때부터 경로당이 오랫동안 노인들의 공간으로 기능해 온 사랑방을 대체하게 된 것이다. 1950년대 중반부터는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전주 등 대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경로당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이들 경로당은 상호 친목 또는 시설의 자치운영을 위해 회장단을 선출했다. 하나의 노인단체로서의 성격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1969년에는 서울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대한노인회로 출범했다. 경로당을 존립 근거로 하는 대한노인회는 현재 중앙회와 16개 시도연합회, 20개 해외지부, 244개 시군구지회로 조직돼 있다. 전국에 6만8828개에 이르는 경로당이 실핏줄처럼 퍼져 있고 회원이 300만명을 웃돌고 있다. 전북에는 6889개의 경로당에 회원이 20만명 가량이다. 하지만 조직과 권한이 커지면서 중앙회장을 비롯해 연합회장, 시군구 회장 등 선거에 따른 잡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26일 실시된 전주시 노인회장 선거도 예외가 아니었다. 후보자의 경력 논란과 함께 매달 분회장 및 경로당 회장에게 일정액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투표권자들에게 발송한 것이다. 또한 현직 시의원이 선거운동을 도와주다 상대편에 사과하기도 했다. 노인회장은 황혼의 권력 또는 경로당 권력이라고 불린다. 높아진 위상만큼 존경받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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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진
  • 2025.02.27 13:29

뜨거운 감자 새만금 관할권

프랑스 파리 외곽에 있는 베르사유 궁전은 유럽에서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뭐니뭐니해도 압권은 거울의 방(Hall of Mirrors)이다. 350개 이상의 거울과 샹들리에, 화려한 금장식은 화려함의 극치다. 제1차 세계대전을 종결짓는 베르사유 조약이 바로 이곳 ‘거울의 방’에서 1919년에 체결됐다. 베르사유 조약은 프랑스와 독일간 1차대전의 종말을 고한 평화조약이었으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불과 20년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도화선이 됐다. 그러면 그 많은 장소를 다 놔두고 왜 베르사유 ‘거울의 방’에서 조약을 체결했을까. 해답은 멀리 1871년 독일제국의 탄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로이센 왕 빌헬름 1세와 천재 지략가 비스마르크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제국을 선포한 곳이 바로 ‘거울의 방’ 아니던가. 프로이센은 나폴레옹 3세까지 포로로 잡은 뒤 프랑스인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베르사유 궁전, 그것도 ‘거울의 방’에서 1871년 1월 18일 독일제국 황제의 대관식을 거행했다. 전쟁에 진 프랑스는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고 알자스-로렌 지역을 할양한다는 굴욕적인 항복 조건에 서명해야만했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은 바로 이 때를 배경으로 한다.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하면서 알자스-로렌 지방을 프로이센 왕국(독일 제국)에 넘겨주는 것을 배경으로 프랑스인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내용이다. 알자스-로렌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에 반환됐으나 히틀러 집권시기인 제2차 세계대전중 독일에 잠시 넘어갔다가 종전이후 다시 프랑스에 반환된다. 작은 지방에 불과하지만 알자스-로렌 지방이 이처럼 독일과 프랑스간 뜨거운 감자가 됐던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막대한 배상금을 골자로 한 베르사유 체제를 지켜본 경제학자 존 케인스는 적국의 완전한 굴복을 요구하는 ‘카르타고 방식 평화’ 라고 지적했다. 훗날 ‘국민적 굴욕감’을 발판 삼아 독일에선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당이 급부상하면서 불과 20년만에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게 된다. 요즘 군산, 김제, 부안 등 3개 시군은 새만금 관할권을 둘러싸고 10년넘게 갈등을 빚고있다. 특히 군산과 김제 지역에서는 상대의 완전한 굴복을 요구하는 카르타고 방식을 추구하는 듯해서 지역사회의 우려가 크다. 새만금 개발이 언제 끝날지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동서도로, 수변도시, 새만금신항 관할권을 둘러싸고 서울의 대형로펌까지 동원해서 다투는 것은 실망 그 자체다. 차기 총선이나 지방선거를 의식하지 않는다면 해당 지역 국회의원, 단체장, 지방의원들이 새만금특별시 조성 등 얼마든지 상생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치 적성국가들끼리 알자스-로렌 지방을 차지하려고 하는듯한 모습을 보여야만 되겠는가. 황새와 조개가 다투는 틈을 타서 이익을 얻는 자는 결국 어부뿐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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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5.02.26 14:40

‘희망하우스 빈집사업’

빈집이 늘고 있다. 도시의 지속가능성, 도시의 쇠락과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빈집 증가는 그만큼 도시 쇠퇴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주목되는 것은 빈집 증가가 이제는 더이상 농어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와 자치단체가 ‘빈집 관리’를 위해 정책을 만들어 시행한 지 여러 해. 그러나 빈집 증가 환경은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유행처럼 번진 도시재생 사업에서도 ‘빈집’은 중심에 있었다. 공동화되어가는 농어촌 마을을 살리기 위해, 오래된 도시의 원도심을 살리기 위해 시행된 빈집 활용 프로젝트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도시재생으로 추진된 사업은 오랫동안 방치됐던 빈집을 도서관이나 마을회관 등 주민 공동시설로 바꾸면서 다양한 공공시설을 확대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쇠락한 중소도시의 원도심 재생사업도 대부분 빈집을 활용해 거점을 만들고 침체한 상권을 살리는 것이 목표였다.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빈집 관리를 위한 다양한 정책이 지속적으로 실행되어왔는데도 왜 빈집은 계속 늘어나고 있을까. 5년 단위로 실시되는 정부의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의 빈집은 151만 1,300여 채. 2015년의 106만 9,000채보다 43만여 채나 늘었다. 지표로만 보자면 정부와 자치단체의 빈집 정책의 성과가 그다지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전문가의 제안이 있다. 전주시 주거재생 총괄계획가였던 조준배 단장의 ‘주거환경 개선과 재생’이다. 주거재생은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자신들의 삶과 환경을 바꾸는 일이어서 단순히 하드웨어만 바꾸는 것으로는 목표를 이루기 어렵다. ‘새로운 건물도 필요하지만 비워질 곳은 비워져 숨통을 틔우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공공의 편의시설이 많아질 때 살기 좋은 동네가 된다’는 조 단장의 조언은 주목할만하다. 전주시는 이러한 주거재생을 위해 <저층 주거지 골목길 정비 및 집수리 지원에 관한 조례(2021년 시행)>를 만들었다. 적극적이고 꾸준히 시행되었다면 지금쯤 빛나는 결실(?)을 얻었을 테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전북도가 인구 감소와 빈집 증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내놓았다. ‘2025년 희망하우스 빈집사업’이다. 90동의 빈집을 정비하겠다는 것이 목표. 빈집 관련 정책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추진해온 것이어서 새삼스럽지 않지만, 올해는 농어촌에서 도심까지 확대한 것이 눈에 띈다. 그런데 아쉬움이 있다. 여전히 공급자 중심 사업으로부터 구체적 변화가 보이지 않아서다. 돌아보면 빈집 정책으로 성공한 사례가 적지 않다. 흥미롭게도 그 대부분은 주민이 주체가 되어 이끈 사업이다./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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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5.02.25 14:40

‘5년 일기장’, 기록의 힘

벌써 두 달이 다 지나간다. 새해 다짐한 목표를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해가 바뀔 때마다 단단히 마음먹고 ‘새로운 나’를 다짐하지만 삶의 방식이나 생활습관을 단번에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흔히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곤 했던 새해 다짐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일기 쓰기’다. 기록에는 힘이 있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라는 말처럼 기록은 단순히 적어두는 것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 자신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생각하는 힘과 소통능력도 기를 수 있다. 일기는 개인의 성장과 변화를 위한 강력한 도구다. ‘작년 이맘때 나는 무엇을 했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새해 첫날 나는 어떤 다짐을 해왔을까?’ 수년 전부터 ‘5년 일기장’이 인기다. 덕분에 다시 일기를 쓰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일기장의 한 페이지에 5년간의 ‘오늘’을 기록하는 형식이다. 맨 윗부분에 날짜(월,일)를 큼지막하게 적고 그 아래에 순서대로 해당 연도를 적어가면서 그날의 일기를 짤막하게 쓰면 된다. 같은 날짜에 썼던 5년의 기록을 쉽게 비교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연도별 오늘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변화 과정과 감정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짤막한 기록이어서 부담도 크지 않다. 무엇보다 자신의 소중한 삶을 꼬박꼬박 적어 기록물로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디지털 시대를 넘어 AI(인공지능) 시대, 아날로그 기록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디지털 기록은 편리하지만, 데이터 손상‧유실 위험성 등 여러 취약점이 있다. 반면 손글씨로 남기는 기록은 디지털로는 구현할 수 없는 특별한 감성까지 담아낼 수 있다. 또 감정을 차분히 정리하고, 심리적 안정도 얻을 수 있다. 21세기 디지털 시대, 많은 사람이 종이책, 종이매체의 종말을 이야기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무엇보다 문해력 저하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학생들이 디지털 매체에 익숙해지면서 글이나 말로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치는 데 서툴고, 복잡하고 긴 문장의 해독을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웨덴 등 북유럽을 중심으로 몇몇 국가에서는 디지털 교육에 제동을 걸고, 아날로그로 회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종말의 길로 향하던 종이책의 수명이 다시 연장될 것 같다. 올해부터 초·중·고교 일부 교과에 AI교과서를 일괄적으로 도입하고 이를 점차 확대하려던 교육부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새 학기를 눈앞에 둔 가운데 전국에서 AI디지털 교과서를 선정한 학교는 전체의 32.3%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가 올부터 종이교과서를 대신해 AI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기로 했지만 정작 이를 사용겠다는 학교는 절반에도 못 미친 것이다. 지금 당장 손글씨로 쓰는 ‘5년 일기’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하루하루 소중한 내 삶을 돌아보면서 ‘오늘의 나’를 기록하고, 또 ‘더 성장한 나’를 써내려가기 위해서.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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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5.02.24 18:53

이제는 생각이 달라져야

탄핵정국을 거쳐온 도민들의 생각도 달라져야 한다. 너무 온정주의로 살면 안된다. 얼음처럼 차갑고 냉정할 때는 한 없이 냉정해야 한다는 것. 그간 도민들은 전북의 낙후를 거의 남의 탓으로 돌렸다. 주로 정권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원인을 정권 탓으로 무작정 돌릴 일이 아니라는 것. 진보가 정권을 잡았을 때가 기회였지만 정치권의 무능으로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진보 때도 기회를 못 살렸는데 표를 주지 않았던 보수 때는 말할 필요가 없다. 그 대표적 사례가 윤석열 정권이었다. 윤 정권은 전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해버렸다. 국가예산을 증액시켜주지 못할 망정 삭감시키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기 때문이다. 특별자치도가 만들어진지 1년이 지났다. 전북특자도는 이름만 특자도이지 강원도나 제주도와 성격이 다르다. 강원도와 제주도처럼 특별한 광역권설정을 요구했지만 정부가 그걸 들어 주지 않고 그냥 전북광역권으로 떼어냈다. 전북은 정부의 절대적 지원 없이는 홀로 지역발전을 도모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독자적인 광역권으로 설정돼 거의 홀로서기를 해야할 상황이다. 정부가 강원이나 제주처럼 밀어주는 것도 크게 기대할 수 없다. 한마디로 찬밥신세가 되었다. 왜 이런식이 되었을까. 정치권 무능 때문이다. 전북 국회의원들이 제 역할을 다했으면 전북이 강원 제주도와 하나로 묶어져 있었을 터인데 정치력 부족으로 내팽개쳐졌다. 전북 국회의원들은 너무 철거반장 한테 일방적으로 맹종하는 반원처럼 느껴진다. 이제부터는 도민들의 의식이 달라져야 한다. 정부에서 전북을 크게 도와주는 것을 거의 기대할 수 없어 자력갱생한다는 맘으로 대처해야 한다. 대기업과 자원이 빈약해 자주재원을 확보하기가 힘든 상황이지만 이를 유능한 인적자원으로 대체해 나가야 한다. 한마디로 내년 지방선거 때 전문성 있는 인물들이 단체장과 지방의원이 되도록 하면 된다.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된 이후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았지만 민주당 위주로 선출한 결과가 지역발전에 큰 도움이 안되었다. 그 이유는 전문성 결여로 비전제시를 못했고 중앙정부를 상대로 국가예산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운동권출신이 세상을 이끄는 시대가 아니다. AI시대인 만큼 전문가들이 행정을 이끌도록 도움 줘야 한다. 그간 도민들이 지역정서에 의존해서 연고주의 내지는 바람선거를 해왔지만 내년 선거때는 냉정하게 유능한 인물을 뽑아야 한다. 그래야 지방소멸을 막고 지역발전을 특화시켜 나갈 수 있다. 민주당이 공천자를 결정할 때 전북의 정치적 특성을 감안, 당심 민심을 50 대 50으로 하지 말고 백% 오픈 프라이머리로 가야 한다. 현행 경선제도의 맹점이 금권선거를 가능하도록 만들어 놓아 유능한 인물이 경선에서 당원 모집이 안돼 절대로 불리하게 돼 있다. 입지자들이 알게 모르게 유급당원을 모집하는 등 조직정비에 박차를 가하지만 깜냥이 안되는 사람이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되면 안된다. 그간 선거 때마다 범했던 우를 다시금 범하지 않도록 도민들이 공렴의식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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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5.02.23 17:34

[오목대] 저속노화 열풍

저속노화 열풍이 거세다. 한 마디로 ‘느리게 늙기’다. 노화(aging)의 속도를 늦추고 건강한 삶을 오래 유지하자는 것이다. 단순히 수명만을 연장하는 게 아니라 질병없이 신체적·정신적으로 오랫동안 건강하게 지내다 막판에 짧게 돌봄을 받는 게 목표다. 반대는 가속노화다. 2000년대의 웰빙, 2010년대의 힐링에 이어 2020년대 들어 폭넓게 공감을 얻는 듯하다.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웰에이징, 헬시에이징 등이 사용되고 있다. 또 화장품분야에서는 슬로우 에이징(Slow aging)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예전에 노화를 막는다는 의미의 항노화(Anti-aging)에서 천천히 자연스럽게 늙는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나아가 최근에는 AI 발달로 AI가 설계한 회춘 단백질이 늙은 세포를 젊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항노화를 넘어 역노화(Reverse aging)의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저속노화 개념은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가 책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주장하면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확산의 근저에는 한국인의 잘못된 습관이 깔려있다. 영국 의학 저널 <랜싯(Lancet)>의 최근 논문은 한국인에 대한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다. 매우 적은 운동량과 자극적이고 매운맛을 즐기는 식습관, 심각한 디지털 미디어 중독과 높은 스트레스, 여기에 세계 1위의 우울감 호소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면량 등이 그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은 가속사회요, 한국인은 가속노화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빠르게 늙는 환경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정 교수는 한국식 MIND 식사, 즉 저속노화 식사를 꾸준히 실천할 것을 권한다. 주요 원칙은 6가지다. △통곡물과 콩, 견과류를 통해 주요 영양소를 섭취하기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기 △기름 종류는 올리브 오일을 주로 사용하기 △육류는 생선, 가금류를 많이 먹고 붉은 고기와 가공육류, 치즈 등은 조금만 섭취하기 △튀김, 과자, 탄산음료 등을 통한 단순당과 정제곡물 섭취 줄이기 △술은 하루 와인 한잔 정도까지 절주하기 등이다. 이 중에서도 정 교수는 '흰 쌀밥'을 '콩을 많이 넣은 잡곡밥'으로 바꾸는 방법을 강조한다. 정제곡물인 백미를 현미, 귀리 등의 통곡물과 잡곡으로 바꿔 혈당을 느리게 높이면서도 콩을 더해 건강한 단백질의 섭취율을 함께 늘리는 것이다. 다만 저속노화 식단은 소화가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소화기계가 약한 사람, 노인, 근감소증환자, 악액질(전신쇠약)환자 등은 피해야 한다. 근육량이 쉽게 줄어드는 65세 이후 노년기(여성은 완경 이후)부터는 육류 섭취를 줄이지 않고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식습관 외에 삶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젊은 감성, 항상 새로운 공부에 참여하기, 청력·시력 보존, 사회 활동, 봉사 등도 노화를 늦추는 브레이크라고 한다. 결국 건강한 음식을 먹고, 잘 자고,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사회적 관계를 원활히 하는 것이 느리게 늙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조상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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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진
  • 2025.02.20 14:23

올림픽과 오세훈 서울시장

탄핵사태로 인해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여와 야의 격돌은 최근들어 더욱 불을 뿜고있다. 특히 유력한 대권 후보인 이재명, 김경수, 김동연, 오세훈, 홍준표, 김문수 등의 일거수일투족은 정가의 초미 관심사다. 이러한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게 바로 19일 명태균 관련 여야의 격돌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명태균게이트 진상조사단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명태균 씨 관련 의혹에 대해 오세훈 서울시장이 거짓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오 시장이 서울시장직에서 사퇴하고 검찰 수사에 응할 것을 강력 촉구했다. 이들은 회견에서 “오세훈 시장과 명태균 씨 진술 중 누가 국민을 속이는지 100일 안에 드러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질세라 오세훈 서울시장은 19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최근 근로소득세와 상속세 개편 필요성을 언급한 것과 관련, "이재명식 '달콤한 경제사기'가 지향하는 방향은 대한민국 국가 부도"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오 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 대표가 전 국민 25만원 살포를 포함한 13조원 규모의 지역화폐까지 주장하고 있는데 한 마디로 '돈 퍼주기'와 '세금 깎아주기'를 동시에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야 공방의 한 중심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있는 것은 한마디로 그가 여권의 유력한 대표주자 중 한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당 정서가 절대적인 전북에서 요즘 오세훈 서울시장을 주목하는 사람도 있다. 2036년 하계올림픽 국내 후보 도시 선정을 앞두고, 전주와 서울의 공동개최 여부가 사실상 그의 결정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단독개최가 불가능한 전북으로선 서울-전주 올림픽이 최선의 카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김관영 전북지사와 손잡는 것을 꺼리고 있다. 이미 인천, 경기, 강원 등과 연대를 맺은데다 경우에 따라 서울-평양 올림픽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28일 대의원총회에서 공동개최안이 다뤄지려면 전북도와 서울시의 협의가 급선무다. 그런데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치적 셈법은 더 복잡하다. 대권가도로 가려면 일단 국민의힘 내부에서 후보가 돼야하는데 가장 큰 지지기반인 영남의 정서를 감안할 때 현 시점에서 호남과 손을 잡는 것은 썩 구미가 당기지 않는 카드다. 대한민국의 본선 경쟁력 배가를 위해 전주와 공동개최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지만 그것은 훗날의 문제일뿐 오세훈 서울시장으로선 일단 5월 조기대선까지만 2036 올림픽 카드가 유효하다는 얘기다. 결국 전북의 살 길은 단 하나다. 28일 대의원총회때 표결로 서울을 이겨야만 한다. 물론, 그런 상황이 온다고 하여 전주가 서울을 빼버리고 단독개최하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대의원 76표 중 전북의 득표력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서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관영 전북지사의 막판 전격적인 담판이 성사될 수도 있다. 다윗과 골리앗 싸움으로 보이는 오는 28일 대의원총회 결과가 주목된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5.02.19 15:22

길원옥 할머니의 인권운동, 그 후

또 한 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2월 16일, 97세로 별세한 길원옥 할머니다. 여성가족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240명. 길 할머니의 별세로 생존자는 이제 일곱 명이다.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위안부 피해자 찾기에 나선 것은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 공개적으로 증언한 이후 여가부가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 회복과 진상 규명을 위해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다. 그리고 그해 8월 14일, 위안부 피해자 등록이 시작됐다. 길 할머니는 1998년 10월에서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했다. 이후 위안부 피해 진상을 국내외에 알리는 일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나섰다. 유엔 인권이사회, 국제노동기구 총회에 참석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진상을 알리고 세계 각국을 돌며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을 위한 활동을 벌였다. 인권운동에 바쳤던 할머니의 말년은 빛났다. 2012년에는 고통받고 있는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해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배상금으로 고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나비기금’을 만들었다. 2017년에는 평화와 통일을 위해 일하는 국내 여성활동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길원옥여성평화상’도 제정했다. 233명 위안부 피해자가 세상을 떠난 지금, 일본 위안부 강제동원 역사는 바로잡아졌을까.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강제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1993년 8월이다. 당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은 담화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가 존재했으며 일본군이 관여해 강제 동원했다고 밝혔다. 일본군의 요청으로 위안소가 설치되었고, 위안소 관리와 위안부 이송에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시인하면서 역사 연구와 교육으로 이러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실제 ‘고노담화’는 한일 간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1998년)을 이끌어내는 바탕이 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의미와 효력은 지속되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국제적 관계를 의식해 겉으로는 담화 계승을 내세워왔지만, 아베 정권에 이르러 결국 ‘고노담화 검증’을 정부 차원의 과제로 삼으면서까지 공식 입장을 바꿨다. 고노담화의 정신이 폄훼된 지 이미 오래, 이제 담화 계승의 진정성을 기대하기는 더더욱 어렵게 됐다. 여가부에 공식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 일곱 명의 평균 나이를 보니 95세가 넘는다. 일제 강제동원의 역사가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다. 속절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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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5.02.18 17:02

‘철도 르네상스’ 시대, 전북은?

다시 철도의 시대다. 우리나라에서 철도는 제국주의 침략의 산물이지만 근대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1960~70년대 산업화 시대에는 고속도로와 더불어 국토의 대동맥으로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냈다. 21세기 초 KTX 개통 이후 국가교통망은 도로에서 철도 중심으로 바뀌었다. 정부가 국가고속철도망 조기 구축과 간선철도의 고속화·전철화를 추진하고, 대도시권 광역교통망을 철도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정책을 속속 내놓았다. 철로가 지나는 전국 각 지자체에서도 ‘철도 중심도시’ 비전을 속속 발표했다. 전국 각지에서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에는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 첫 구간이 개통돼 ‘수도권 30분 출퇴근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또 서해안권역 수도권 서부와 충청권을 잇는 서해선·장항선·평택선이 동시 개통했고, 중앙선 복선전철화 사업이 마무리돼 서울~부산을 잇는 또 하나의 KTX 노선이 생겼다. 이어 삼척~포항 고속철도 완공으로 강릉~부산 동해선 전 구간이 연결되면서 을사년(乙巳年) 새해 벽두 ‘동해안철도 시대’ 개막을 알렸다. 전북은 어떨까? 달라진 게 없다. 뚜렷한 청사진도 없다. 수십 년간 헛바퀴만 돌렸다. 전주시가 지난 2000년대 초 경전철 도입을 추진했지만 논란 속에 결국 무산되면서 막대한 예산만 날렸다. 이어 민선 7기에는 한옥마을 트램 사업에 주력했지만 역시 헛심만 쓰고 끝났다. 남원시가 추진해 온 ‘지리산 산악열차 시범사업’도 환경영향평가를 놓고 논란에 휩싸여 앞길을 알 수 없게 됐다. 호남 철도교통의 관문인 익산시가 큰 그림을 그렸지만 아직 가시적 성과가 없다. 익산시는 정부 정책에 맞춰 ‘유라시아 철도 출발역·거점역 선정’을 핵심 시책으로 정하고, 행정력을 집중해왔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남북관계 경색과 국제정세 변화로 성큼 다가온 꿈의 길이 다시 멀어져 있다. 경기도 고양 대곡역에서 시작된 서해안철도는 충청권까지만 이어졌다. 나머지 군산~목포 구간은 하세월이다. 군산과 고창·부안·함평·영광 등 호남 서해안권 5개 지자체장들이 ‘서해안철도(군산~목포) 국가계획 반영’을 요구했지만 결과는 알 수 없다. 최근 ‘전북권 광역전철망’ 계획이 다시 이슈로 떠올랐다. 익산시에서 추진해온 전북권 광역철도는 전주~익산~새만금국제공항을 동서축으로, 정읍~익산~논산을 남북축으로 연결하자는 계획이다. 그런데 전북특별자치도에서는 지난해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7개 노선 반영을 건의하면서 전북권 광역전철망을 빠뜨렸다. 그 대신 전주~김제~광주선 철도 계획을 포함시켜 익산시와 엇박자를 냈다. 정부가 지난해 ‘교통분야 3대 혁신’전략으로 발표한 ‘지방 대도시권 광역급행철도(x-TX)’ 계획에서도 전북은 없다. 안타깝다. 근대화 시대, 일제 수탈의 아픔을 안고 달린 전북의 기찻길이 한 세기가 지나서 맞이한 철도 르네상스 시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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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5.02.17 18:25

서서히 달궈지는 지선판

조기 대선이 점쳐지면서 내년 지선에 나설 입지자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도청의 경우 익산시장 출마가 예상되는 최병관 행정부지사도 헌재 판결이 3월 초중순께 나올 것으로 보고 사퇴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다. 남원 출신으로 제34회 행정고시로 공직에 발을 들인 양충모 전북도 감사위원장이 오는 3월 전북대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사직할 것으로 알려졌다. 양 위원장은 기재부와 대통령비서실을 거쳐 제4대 새만금개발청장을 역임한 예산통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남원양씨 종중 쪽과 공직자로 있는 동안 인연을 맺은 지인들로부터 남원시장 출마요청을 강력하게 받아온터라 내년 지선 때 민주당 경선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농림수산부 차관을 지낸 김종훈 경제부지사는 전주시장 출마를 놓고 고심한 흔적이 엿보였지만 최근 출마 보다는 김관영지사 한테 새로운 인물을 기용토록 사퇴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김부지사는 대한민국 농업정책 전반을 설계한 기획통으로 전북발전을 위해 스마트 영농을 보급시키는 등 김지사의 브레인으로 최선을 다해왔다. 김 지사와 행정고시 동기인 그는 3년이 다되도록 지사를 도왔기 때문에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고 판단,사퇴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지사직에 다시 도전할 김 지사는 도민들에게 도정의 면모를 새롭게 일신할 기회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유치를 통해 청년들의 일자리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그의 공약을 실현할 실무형을 경제부지사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취임 때부터 줄곧 도전경성을 도정구호로 내건 김 지사가 재선에 성공하려면 전주여론을 어떻게 유리하게 만들어 가느냐가 핵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주 완주 통합은 꼭 실현시켜야 할 과제다. 김지사가 연초부터 시군을 방문하면서 도민들과 스킨십을 강화해 가고 있지만 맨 마지막 방문지로 완주에서 어떤 결과가 도출될지 기대반 걱정반이다. 그 이유는 완주군의회와 완주 출신 도의원들이 삭발투쟁을 하는 등 통합을 결사반대해 자칫 지난해와 같이 방문도 못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완주는 지난 설때 1인당 30만원씩 민생지원금을 나눠줘 통합반대 여론이 고무돼 있다. 이런 안좋은 상황인데도 김 지사는 평화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만 만들어지면 완주군민을 설득할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김 지사는 특히 안호영의원이 왜 통합을 반대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전주 완주가 통합되면 전주 의석이 3명에서 4명으로 늘어 결코 정치적으로 손해볼 일이 없을텐데라면서 못내 아쉬워 하는 눈치다. 지난 민주당 지사 경선 때 김 지사와 일합을 겨뤄던 안 의원이 또 경선에 나설 경우 전주시민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데 통합을 반대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김 지사와 안의원 한테 전주 완주 통합이 뜨거운 감자다. 아무튼 헌재의 탄핵재판이 빨라지면서 내년 지선경쟁구도가 달궈지고 있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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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5.02.16 18:09

[오목대] 송대관·김수미의 고향사랑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모두 비켜라/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 한때 전국민의 희망가로 불렸던 노래가 조용히 울려퍼졌다. 9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가수 송대관의 영결식장에서다. 이 자리에는 태진아, 설운도, 김성환, 박상철, 강진, 김수찬 등 연예인 70여 명이 참석해 합창했다. 이 노래는 산업화와 함께 유신정권으로 숨막히던 시절, 국민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건네 준 송대관의 대표 곡중 하나다. 정읍 출신인 송대관은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응급실을 찾았다 심장마비로 숨졌다. 향년 79세. 지난해 10월 군산 출신 탤런트 김수미가 75세로 떠난데 이은 비보다. 송대관은 할아버지가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해 징역을 살고 아버지도 6·25때 실종되는 바람에 어렵게 컸다. 어린시절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어야 할만큼 가난했다. 초등학교를 4군데 다녔고 전주 영생고에 진학해서는 야간으로 옮겨 신문 배달과 이발사 보조노릇을 했다. 하지만 끼가 넘쳐 고교때 KBS 전주방송국 전속가수로 발을 딛게 되고 서울로 올라가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직접 가사를 쓴 해뜰날(1975)이 쨍하고 떴으나 칼러TV 시대 개막으로 그것도 잠깐이었다. 1980년 처가가 있는 미국으로 이민갔다 향수병을 이기지 못해 돌아왔다. 귀국 후 정 때문에(1989), 차표 한 장(1992), 네박자(1998), 유행가(2003), 분위기 좋고(2009)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부동산 투자 등으로 빚더미에 올라앉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다. 석달 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김수미는 만능 엔터테이너다. MBC 탤런트로 입사한 후 1980년 농촌드라마 ‘전원일기’에 일용엄니로 출연했다. 당시 나이 32세였다. 22년 2개월간 방영된 이 드라마에서 수다스러운 시골 할머니 역할을 맡아 국민배우로 각인되었다. 또 걸쭉한 입담의 욕쟁이 할머니 캐릭터와 뛰어난 요리솜씨로 유명했다. 이들의 특징은 고향사랑이 남다른 점이다. 고향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왔다. 2022년에는 고향사랑기부제 홍보를 위해 전라북도 명예홍보대사에 위촉되었다. 송대관은 방송가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그대로 사용했다. 한번은 방송국 간부가 표준말을 쓰라고 권유하자 “현철(부산 출신)이가 서울 말 쓰면 나도 쓸께”하면서 넘겼다. 또 단풍철에 내장산 관광지를 알리는 ‘정읍 송대관 가요제’를 열기도 했다. 김수미는 1990년대 말, 전북 프로야구단 쌍방울 레이더스가 모기업 부도로 해체 위기에 놓이자 후원회장을 맡아 발벗고 나섰다. 최불암, 유인촌, 고두심, 유승준 등 정상급 연예인을 동원해 쌍방울 살리기 자선공연을 했고 ‘1인 1만원 구좌갖기 운동’을 벌였다. 이밖에도 박근형(정읍), 김성환(군산), 현숙(김제), 진성(부안), 김용임(익산), 임현식(순창), 이문식(순창), 이경실(군산), 박명수(군산), 김태연(부안) 등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전북의 큰 자산이다. 오랫동안 국민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조상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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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진
  • 2025.02.13 11:37

홍범도 장군과 전북의 외국인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을 계기로 사람들은 카레이스키 라는 단어를 새삼 주목했다. 고려인은 1860년 무렵부터 1945년 사이 두만강 북방 연해주로 농업이민, 강제동원, 항일독립운동 등을 위해 이주한 이들을 일컫는다. 일제강점기 만주로 이주한 사람들은 조선족이고 연해주로 간 사람들은 고려인이라고 불린다. 러시아어로 ‘카레이스키’라고 부른다. 주지하다시피 소련 독재자 스탈린은 카레이스키와 일제의 내통을 의심, 결국 1937부터 연해주의 카레이스키 17여만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켰다. 카레이스키와 더불어 130년 한국 이민사에서 가장 슬픈 삶을 영위한 이민자는 중남미 ‘애니깽’”이다. 선인장의 일종인 애니깽(에네켄)에서 유래했는데 선박용 로프 재료였던 애니깽 농장으로 팔려가면서 시작된 슬픈 이민사가 바로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한 장면이다. ‘카레이스키와 애니깽’ 전혀 무관한 듯한 두 단어가 담고있는 함의가 이처럼 무겁다. 한세기가 훌쩍 지나면서 요즘엔 전세계에서 대한민국을 찾는 이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특히 동남아, 중앙아시아 등지에선 단순 관광이 아닌 생계를 위해 한국을 찾는 이들이 급증 추세다. 2023년 기준 전북의 외국인 거주자는 5만2799명으로 전북 전체 인구의 2.99%에 달한다. 특이한 것은 충남 거주 외국인이 무려 12만6837명으로 거주 비율이 가장 높다. 충북은 7만1311명, 경남 11만7235명, 전남 6만2493명 등이다. 도내 시군별 숫자는 군 단위가 대략 1천명 이내인데 완주군은 5095명으로 많아 눈길을 끈다. 정읍시가 4218명, 김제시가 3413명, 고창군이 2251명 등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최근들어 결혼이민자 수는 정체상태인데 외국인유학생과 외국인근로자가 급증하는 특징이 있다. 이젠 외국인거주자를 이방인처럼 보는 시각을 바꿀때가 됐다. 현지인과 외국인이 함께 하지 못한다면 지역발전은 말할것도 없고 대한민국이 한번 더 도약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아직도 다문화가족의 경우 특히 자녀들이 각종 차별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극도의 인구감소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가사 도우미인 ‘필리핀 이모’ 제도까지 도입됐는데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상황이다. 노예제도가 있던 미국에서 흑인 출신 대통령이 나오는데 200년이 넘게 걸렸다. 대한민국에서도 이젠 외국인 출신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나왔다는게 뉴스가 돼선 미래가 없다. 다양성과 포용을 배제할 때 그 사회는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을 계기로 외국인 거주자들이 각종 문화 활동이나 스포츠 활동에 아무 부담없이 참여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시민의식도 크게 바뀌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도와 시스템으로 그 장치를 마련하는게 급선무다. 카레이스키와 애니깽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잊어선 안된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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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5.02.12 13:37

대통령의 명연설과 아무 말 잔치

역사적 순간마다 영감과 용기를 준 명연설이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1863년>, 존 F. 케네디의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1963년>, 넬슨 만델라의 <자유를 향한 긴 여정-1994> 등 기억되고 있는 대통령들의 명연설도 그 대열에 있다. 2008년,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대선 캠페인으로 진행한 첫 대중연설에서 미국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준 명연설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를 남겼다. 섬세하고 명쾌한 문장에 열정과 감동을 담은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직면한 경제적, 사회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참여와 협력으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의 탁월한 리더십과 소통 능력을 보여주는 이 연설에 국민은 환호했다. 특히 그가 내세웠던 구호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공감의 힘이자 오바마의 상징이 되었다. 그 자체로 역사가 된 명연설은 적지 않다. 전쟁과 빈곤, 인종차별과 이념의 첨예한 갈등이 빚어낸 위기에서 용기와 희망을 전한 이 명연설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간결한 문체와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말이다. 자신이 가진 식견을 내세우지 않고 ‘간결한 문체’와 ‘쉬운 말’을 구사하는 일은 간단할 것 같지만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명연설의 힘도 결국은 소통이고 공감에 있는 셈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을 지낸 강원국 씨는 두 대통령으로부터 배운 좋은 연설문 쓰기의 비법을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쉬운 말로, 가장 많은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글쓰기로 꼽는다. 덧붙인 비법의 중심 또한 배려와 공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쏟아내는 말에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 군대를 써서라도 그린란드와 파나마운하를 차지하겠다며 그린란드의 천연자원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더니 이번에는 “가자지구 장악”을 내놓았다. 지난 4일, 백악관에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직후 연 공동기자회견을 통해서다. 가자지구는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이 시작됐지만, 지난 1월 15일, 양국의 합의로 지금은 휴전 중이다. 가자지구를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트럼프의 허황한 발언에 중동 국가들의 반발이 거세다. 각각 독립국으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을 내놓았던 바이든 시절의 약속과도 배치되는 발언에 ‘아무 말 잔치’란 비판이 이어진다. 국가와 국가를 분열시키며 인종주의를 부추기고 빈곤의 재난을 불러들인다는 우려도 크다. ‘대통령의 말’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 새삼스러워지는 때. 나라 안팎이 따로 없다./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5.02.11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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