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2-21 17:26 (Su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오목대] 기권과 기권표

‘찍을 사람이 없다’, ‘그래도 아무개는 절대 안 된다’ …. 선거철이면 매번 들리는 유권자들의 푸념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다. 투표장에 간 유권자들이 꼭 좋아하는 후보를 찍는 것은 아니다. 마지못해 ‘가장 덜 나쁜’ 후보,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헌법이 보장한 소중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투표장에 들어선 유권자들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물론 어떤 후보에게도 기표하지 않은 채로 투표함에 용지를 넣을 수는 있지만 이런 유권자들의 표심은 드러나거나 반영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공직선거에서는 기권표를 따로 분류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제179조)’에 따라 ‘무효표’로 싸잡아 처리돼 투표율에만 반영될 뿐이다.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는 의사를 에둘러 표시한 ‘기권표’는 특정 후보를 찍을 의사가 있었지만 실수로 표기를 바르게 하지 못한 표와는 구분해서 처리하는 게 맞다. 확고한 의지를 담은 기권표는 엄연한 의사표시로 권리행사의 한 방식이다. ‘찍을 사람이 없다는 것’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국민의 의사표시다. 정치권을 향한 항의이자 절규이기도 하다. 지지후보가 없다는 주권자의 명확한 의사표시(기권표)는 아예 권리를 포기하는 기권과도 당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기권표가 인정될 경우 이를 행사하는 유권자들은 ‘누가 당선돼도 상관없다’는 무관심층일까? 그렇지 않다. 후보들의 행적과 공약을 예의주시해온 유동층·중도층일 가능성이 높다. 특정 정당을 맹신해 후보의 비리나 명백하게 드러난 부도덕성까지 애써 옹호하면서 이른바 ‘묻지마 투표’를 하는 ‘고정지지층’보다 훨씬 더 존중받아야 한다. 온갖 막말과 범죄로 얼룩진 인물들이 국회와 지방의회에 입성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묻지마 투표 덕분이지 않은가. 인물과 정책평가는 내팽개치고, 묻지마 투표로 민주주의를 모독해온 유권자들을 격려하고, 부추긴 세력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다. 분열과 대립의 시대, 이번 대선에서도 묻지마 투표가 우려된다. 소중하게 지켜온 우리 민주주의를 좀먹는 행위다. 왜곡되지 않은 민의를 더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는 투표방식을 찾아야 한다. 투표용지 기표란 맨 아래에 ‘지지후보 없음’ 칸을 마련해 기권표를 인정하고, 이 기권표가 최다 득표 후보의 표보다 많다면 당선자를 내지 않는 방법이 있다. 이러면 유권자들이 선거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정당과 후보들은 국민을 조금이라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여러 부작용도 예상된다. 기권표가 쏟아져 나온다면 당선자 확정절차가 늦어지면서 선거 일정은 물론 국정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용론(無用論)’까지 나온 ‘지방의원 선거’에 우선 적용해보면 어떨까? 어떤 방식으로든 선거를 다시 치르면서 지방의회 개원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기본 자질조차 갖추지 못한 인물을 걸러내고 참일꾼을 뽑는 게 훨씬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5.05.26 17:34

[오목대] 93% 표만 달라고

전북도민들이 97년 대선 때부터 죽을 힘을 다해 진보후보를 밀어줬지만 지역으로 돌아온 게 별로였다. DJ 노무현 문재인 등 3명의 진보후보를 밀어 대통령으로 당선시켰으나 인재발탁이나 지역발전은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도민들이 행동하는 양심으로 똘똘뭉쳐 지난 97년 15대 대선 때 DJ한테 92.3%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노무현 때는 91.58% 문재인 때는 다소 저조한 64.84%를 지지했지만 당선됐고 지난 3년전 20대 때 출마한 이재명 후보 한테도 82.98%를 지지했다. 투표는 총알 보다 강하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선거의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각 지역마다 국가예산을 많이 확보해 지역발전을 꾀하려고 특정당 후보를 지지후보로 내세우고 선거운동에 적극 동참한다. 전북은 역대 대선 때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이심전심으로 진보당 후보를 집중적으로 지지해 3명의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나면 기대감으로 충만해 있던 공약사업들이 물거품이 되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채 언제 그랬냐는식으로 흐지부지 되었다. 결국 도민들만 닭쫓던 개 지붕쳐다 보는 꼴이 되었다. 죽음의 고비를 여러차례 넘기면서 친신만고끝에 대통령이 된 DJ 때는 당정청 요직에 전북 정치인이 대거 기용됐지만 전남 출신 동교동 실세들 눈치 보느라 지역일을 못했다. 새만금사업이 본 괘도에 진입할 수 있었지만 목포 대불항과 여천항 발전에 찬물을 끼얹는다면서 국가예산 확보 때마다 태클을 걸었다. 부안과 고창을 잇는 노을대교도 얼마든지 전북정치권이 힘을 합치면 할 수 있었지만 DJ가신들 눈치 보느라 허송세월 하고 말았다. 그 때 광주 전남은 DJ 진두지휘하에 서해안고속도로가 건설됐고 섬과 섬을 연결하는 연육교 사업을 마칠 수가 있었다. 다행히도 전북은 DJ의 신임을 받았던 유종근 전 지사가 좌고우면하지 않고 도민수보다 3배가 큰 소리문화전당과 용담댐 주변도로 건설 그리고 월드컵 경기장을 뱃심좋게 건설했다. 나중에 유 전지사가 DJ측근들의 모함성 비난에 휘말리면서 대선 경선을 포기했고 급기야는 F1그랑프리 사업 과정 때 업체측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이유로 옥고를 치르는 불행한 일을 겪기도 했다. 노무현 문재인 정권 때도 전북발전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 누구 하나 총대 매고 소신껏 국가예산을 확보할 정치인이 없어 전북은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6.3 장미대선은 진보가 정권을 잡을 절호의 기회다. 민주당 전북도당도 과거 DJ가 전북서 얻었던 92.3% 보다 높은 93%를 달성하겠다고 기염을 토하지만 그 실현가능성은 미지수다. 그 이유는 도민들의 가슴속에 죽어라고 민주당 후보 밀어줘봤자 지역으로 돌아온 게 별로 없었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선거유세가 진행중이라서 결과를 예단하기가 쉽지 않지만 선거가 막판으로 치닫으면서 보수단일화등 예측불허의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어 민주당이 겸허한 마음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사즉생의 각오로 나서야 정권을 가져올 수 있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5.05.25 18:17

[오목대] 뽀빠이와 송해

마이크만 잡으면 대중을 울리고 웃겼던 코미디언이자 MC 뽀빠이 이상용이 지난 9일 세상을 떠났다. 감기 기운이 있어 서울 자택 인근 병원에 다녀오다 쓰러진 것이다. 향년 81세로 사인은 심정지. 2022년 6월 원조 MC 송해 역시 같은 원인(급성 심근경색)으로 95세에 별세했다. 이들은 요즘 최고 인기를 모으고 있는 국민 MC 유재석 못지않게 한 시대를 풍미했다. 송해는 1988년부터 KBS 1TV ‘전국노래자랑’의 사회를 맡아 사망하기 22일 전까지 34년을 진행했다. 이 프로는 기네스북에 최고령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로 올라 있다. 뽀빠이도 송해에 앞서 잠깐 이 프로를 맡았으며 1975년부터 15년간 KBS 어린이 노래 프로인 ‘모이자 노래하자’를, 1989년부터 MBC 병영 위문 프로그램 ‘우정의 무대’를 8년간 진행했다. 모두 입담과 순발력이 뛰어난 덕분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모두 키가 작고 각별하게 건강을 챙겼다는 점이다. 우선 키를 보면 송해는 158㎝, 뽀빠이는 160㎝ 미만이었다. 작은 거인인 셈이다. 송해는 1970∼80년대 서영춘, 구봉서, 배삼룡, 이주일 등과 같이 활동하면서 항상 작은 키가 코미디 소재로 활용되었다. 뽀빠이는 스스로 우리나라 학군장교(ROTC) 가운데 가장 키가 작았다고 밝힌 바 있다. 흥미로운 것은 건강관리에 열심이었으나 수명은 꽤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송해는 생전 자동차, 휴대 전화, 큐카드(일종의 대본) 등 3가지를 가지지 않았다. 자동차가 없는 대신 'BMW'(버스, 지하철, 걷기)를 주로 이용했다. 또 한 달에 두세 번은 치과 가기, 우거지와 우거지국밥 즐겨먹기, 매일 오후 4시에 목욕탕에서 새로운 물로 목욕하기, 밤 10시에 잠자기와 아침 식사 챙겨먹기를 꾸준히 실천했다. 다만 술은 대단한 주당이어서 연예계 후배인 이상벽, 이용식, 김학래 등이 송해와의 술자리를 가장 무서워했다고 한다. 주량은 소주 5병. 알통 근육이 상징이었던 뽀빠이는 병약하게 태어났으나 11세부터 삼촌이 건넨 아령을 시작해 ‘미스터 대전고’ ‘미스터 고대’에 등극했으며 고대 응원단장을 역임했다. 송해와 같이 차를 타지 않고 걸어 다녔으며 하루 2시간 이상 운동을 거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술, 담배, 커피는 태어나 단 한번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런데 뽀빠이는 한국인의 평균수명(남성 80.6세, 여성 86.4세-2023년 통계청)에 그친 반면 송해는 14년을 더 살았다. 평생 국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던 두 사람이 지하에서 어떤 익살펀치를 날리고 있을까.(조상진 논설고문)

  • 오피니언
  • 조상진
  • 2025.05.22 18:33

[오목대] 대선 후보의 입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 입구에 있는 진실의 입은 강의 신인 홀로비오 얼굴을 조각한 것이다. 로마 시대 하수도 뚜껑으로 추정되는 이 조각은 영화 ‘로마의 휴일’로 인해 유명해졌다. 그레고리 펙이 여자주인공 오드리 햅번을 놀리기 위해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마치 손이 잘린 듯 익살을 부리는 장면은 너무 생생하다. 그런데 장미대선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는 요즘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손이 잘린다는 ‘진실의 입’이 아닌가 싶다. 후보들의 발언 하나하나는 단순히 뱉어내는게 아니다. 심모원려한 구상속에서 고도의 상징성과 파급효과를 노린 거라고 봐야한다. 전북은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으나 유력한 대선 후보들의 지역관련 공약은 별무신통이다. 그럴듯한 청사진조차 아예 제시되지 않는 것은 문제다. 전북 관련 공약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새만금과 올림픽 이라고 할 수가 있다. 파급효과가 크고 길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이 두가지 사안에 대해 직접적이면서도 강렬한 언급을 하지 않아 답답하기 그지없다. ‘HMM 이전’같은 딱 떨어진 약속이 없다. 후보가 직접 강렬하면서도 확고한 의지를 피력해야만 새정부 출범 후 탄력을 받을 수 있는데 지금까지 언급한 수준은 도민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지난 16일 전주에서 "전주를 중심으로 열리게 될 전북 올림픽 유치를 위해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유치 경쟁에서 패한) 부산 엑스포처럼 되면 안 된다"며 "결과는 하늘에 맡겨야 하지만, 우리가 노력하면 올림픽 유치가 가능하다"고 했다. 김문수 후보는 하계올림픽 유치를 통해 국가 경쟁력 향상을, 이준석 후보는 하계올림픽 유치 지원을 기점으로 한 숙박, 체육 등 인프라 구축을 약속했다. 새만금과 관련, 이재명 후보는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새만금 이차전지 특화단지를 성공적인 국가첨단전략산업단지로 조성하겠다고 강조했다. 김문수 후보는 새만금 국제공항 활주로 연장 및 적기 개항, 제2국가산단 조성, 광역 기반 시설 공공 재정 선투자 등을, 이준석 후보는 군산·김제·부안을 아우르는 새만금 메가시티 통합 조성을 언급했다. 지역정가 일각에서는 올림픽의 경우 예선경쟁에서 탈락한 서울 표심에 악영향이 우려되기에 전주올림픽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새만금 역시 타 지역에서 잼버리에 대한 부정 여론이 있는 점을 감안, 가만 놔둬도 몰표가 나오는 전북 민심을 얻으려다가 다른 지역에서 표를 잃는 것을 감안했다는 후문이다. 유력 후보의 입에서 올림픽이나 새만금사업은 단 한두번 오르내렸다. 후보자들이 더 직설적이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직접 설파하길 기대한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5.05.21 18:34

[오목대] 국민을 기만하지 않는 대통령

“깊은 슬픔과 함께 우리 동지 페페 무히카의 서거를 알린다.” 야만두 오르시 우루과이 대통령이 지난 13일, 소셜미디어 엑스를 통해 ‘너무나 그리울 것'이라는 '오랜 친구’와의 이별을 알렸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린 호세 알베르토 무히카 코르다노 전 대통령(1935~2025)의 별세 소식이었다. 무히카 대통령은 우루과이 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신망을 받았던 정치인이다. 특히 두 번씩이나 대통령을 탄핵한 불운한(?)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국민에게 청빈한 리더십의 표상이었던 무히카 대통령은 신망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도시 게릴라 전사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의 삶은 특별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무히카는 1960~70년대, 도시 게릴라 단체 ‘투파마로스(국민해방운동)’ 대원으로 반정부 활동을 하며 군사독재에 맞섰다. 13년 동안 독방에 갇히는 등 숱한 고초를 당했던 그는 1985년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의 도움을 받아 석방된 이후 좌파 정치조직에 들어가면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도시 게릴라로는 처음 하원의원이 된 그는 상원의원과 농축수산부 장관을 거치면서 진보적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대통령이 된 것은 2010년이다. 좌파 연합 후보로 우루과이 40대 대통령에 선출됐던 당시 그의 재산은 몬테비데오 변두리에 있던 오래된 농장과 20년이나 지난 낡은 자동차 한 대가 전부였다. 그는 늘 쉬운 말로 대중들을 설득했고, 그 과정에서 남긴 어록들은 세상을 일깨웠다. 2012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의 지속가능발전 정상회의에서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비판한 연설로 세계 언론의 뜨거운 반향을 불렀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대통령궁을 노숙자들에게 개방하고 수행원도 없이 자신의 오래된 농장에서 출퇴근하며 일했다. 월급의 90%를 기부했던 그가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정책은 가난한 국민을 위한 부의 재분배였다. 그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철학으로 진보적 정책을 주도하며 우루과이의 안정과 성장을 이끌면서도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고 세계 최초로 마리화나 흡연을 합법화하는 등 진보적 가치를 지켰다. ‘나는 조금 더 떳떳한, 조금 더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갖고 싶다’던 무히카를 국민은 ‘페페(할아버지)’라고 부르며 존경과 사랑을 보냈다. 2015년, 그가 퇴임할 때 그들이 보낸 지지율도 당선 때(52%) 보다 더 높은 65%였다. 대통령 탄핵이 가져온 조기 대선이 13일 남았다. 국민을 기만하지 않는 대통령, 부끄럽지 않은 대통령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5.05.20 18:34

[오목대] ‘큰 바위 얼굴’ 찾기

‘바위 언덕에 새겨진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다.’ 19세기 미국의 한 계곡마을, 어니스트라는 소년은 어머니에게 마을의 전설을 듣고, 언젠가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자신도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간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는 큰 바위 얼굴과 닮았다는 성공한 재력가와 장군, 정치인, 시인을 잇따라 만났다. 하지만 탐욕과 권력욕, 명예욕에 찌든 이들의 이면을 보고 실망만 안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노년이 된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던 한 시인이 ‘어니스트가 바로 큰 바위 얼굴’이라고 대중에게 소리친다. 하지만 어니스트는 그 말에 반응하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언젠가 큰 바위 얼굴과 꼭 닮은 사람을 만나기를 소망하면서⋯.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이다. ‘주홍글씨’로 유명한 미국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이 1850년대에 발표했다. 그리고 실제 미국에 그 ‘큰 바위 얼굴’이 생겼다. 1927년~1941년, 14년에 걸쳐 대륙 중서부 사우스다코타주 러시모어산 꼭대기 화강암에 4명의 대통령 얼굴이 새겨졌다.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미국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4명의 역대 대통령이 ‘큰 바위 얼굴’이 된 것이다. 이후 이 거대한 대통령 조각상이 국가의 랜드마크가 되면서 미국에서는 러시모어산에 추가로 새길 인물 선정을 놓고 논란이 계속됐다. 존 F 케네디, 프랭클린 루스벨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로널드 레이건, 버락 오바마 등이 거론됐다. 그리고 그 자격을 논하면서 이들의 공적과 과오가 낱낱이 들춰졌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집권 1기에 러시모어산에 자신의 얼굴이 새겨지기를 희망하면서 큰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어떨까? ‘큰 바위 얼굴’을 찾는 대선이 눈앞이다. 소설 속 어니스트처럼 잔뜩 기대를 걸고 그 얼굴을 기다려왔다. 그런데 실망이 앞선다. 소설에서 마을 사람들은 귀향한 명망가들의 번지르한 겉모습을 보고 매번 ‘큰 바위 얼굴과 꼭 닮았다’며 환호한다. 전설 속의 큰 인물을 애타게 기다리는 상황에서 화려하게 등장한 인물의 명성에 현혹돼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동안 우리 선거판은 기대하던 ‘큰 사람’ 대신, 거짓에 능하고 기본 인성조차 갖추지 못한 소인배들로 넘쳐났다. 나라가 둘로 쪼개졌다. 갈등과 대립의 시대를 종식하고 우리 사회를 하나로 통합할 ‘큰 사람’, 큰 바위 얼굴을 닮은 믿음직한 지도자가 지금 간절하다. 그런데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처럼 스스로 자격이 있다고 나서는 사람들뿐이다. 소설에서 마을 사람들이 매번 그런 것처럼 환호할 일만은 아니다. 선입견 없이 들여다보고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 기다릴 수밖에 없다. 소설 속 주인공 어니스트가 그랬던 것처럼.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5.05.19 19:06

[오목대] 유권자는 다 안다

왜 장미대선이 치러지는지 유권자는 다 안다. 전북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가 강해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표심이 결집될 것이다. 하지만 대선열기는 느끼기가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국민의힘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치러지는 대선이기 때문에 누구를 찍어야할 것인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어 외견상 무관심하게 보인다. 확성기를 통해 아무리 여야 선거운동원들이 지지를 호소해도 유권자 표심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지금 우리 국민들의 정치 수준은 세계 정상급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민주주의인가도 잘 안다. 결코 국민이 계몽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국리민복 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정쟁을 일삼기 때문에 나라가 어지럽혀지고 있다는 사실을 꽤뚫고 있다. 국민들이 위임해준 입법권을 조자룡 헌칼쓰듯 남용한 것도 잘 알고 민주주의 요체인 삼권분립 가운데 사법부를 마구 흔들어 대는 모습을 안타까워라 하면서 경계하는 눈치다. 윤석열 전대통령이 12.3 계엄령을 위헌 위법하게 발동해 역사의 죄인으로 낙인 찍히면서 탄핵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우리사회는 남북으로 갈린 게 불행의 단초이며 보수다 진보다로 갈기갈기 찢긴게 오늘의 현실이다. 마치 자기와 생각이 다르거나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아예 상종도 안할 사람처럼 대하는 게 사회불안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일제 식민지시대와 동족상잔의 비극을 거치면서 피와 땀방울로 일궈낸 이 나라가 왜 이 모양 이꼴이 되었는가를 다시금 반문해 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세계 선진국가 대열에 끼면서 그 자부심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12.3 그날밤 계엄으로 사회 각분야가 깨지고 분열되면서 설산이 햇빛을 받아 무너진 것처럼 기운이 쫙 빠져 있다. 그렇게 힘써서 만든 대한민국이 이렇게 될 줄이야 꿈에서도 몰랐을 것이다. 지금 각당 후보들이 연일 표를 모으려고 공약을 발표하는 등 사자후를 토하지만 유권자들은 교언영색한 말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있다. 국민들은 윤 전대통령이 국회 탄핵과 헌재의 파면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일찍부터 동의했기 때문에 그 결과물로 치러지는 장미대선의 결과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보수후보가 계엄발동에 따른 사과를 국민들 한테 해도 잘 먹혀들지 않은 이유는 진정성이 결여 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국민들의 정치 수준을 모른채 계몽대상으로 알고 캠페인을 벌이는 것은 밑바진 독에 물붓기나 다름 없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을 굳이 원용할 필요가 없는 선거가 돼버렸다.계엄령 발령상황을 각종 매체들이 실시간을 통해 즉각적으로 국민들 한테 전달해 줘서 일찍 국민들은 시시비비에 따른 판단을 끝냈다. 6.3 장미대선이 끝난 후가 더 걱정스럽다. 갈기갈기 찢긴 사회통합을 어떻게 이뤄내느냐가 중요한 과제다. 지역주의 극복은 말할 것 없고 계층간 이념간 갈등극복이 제일 중요하다. 도내 출신 민주당 국회의원과 지방의원들은 전북에서 93% 득표율 달성을 위해 전력투구 하지만 이미 전북 유권자들의 표심은 결판 나 있다. 제발 숫자놀음에 급급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5.05.18 17:26

노화와 노쇠

나이들면서 체중이 많이 빠진다든지 활력이 이전만 못하고 굉장히 피곤하다고 느끼는 노인들이 많다. 기억력도 마찬가지다. 나이 들어 자연스런 현상이려니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노쇠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 노화(Aging)와 노쇠(Frailty)는 다르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노화는 젊을 때에 비해 신체 능력이 점차 떨어지는 현상이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젊은 시절에 비해 눈이 침침해지고 반응 속도가 느려지며 근력도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 노화다. 반면 노쇠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신체, 생리, 인지적 기능이 떨어지면서 질병이나 장애가 생기기 쉬운 취약한 상태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노쇠한 노인들은 보행속도가 느려지고 팔다리의 근육이 말라 있으며 식사량이나 활동력이 뚜렷하게 떨어진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의 50% 가량이 노쇠 전 단계(Pre-Frailty)이고, 10% 가량이 노쇠상태다. 노쇠는 노쇠 자체로 끝나지 않고 가족들에게 부양 부담을 주거나 요양시설 입소로 이어진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의료 및 돌봄 지출을 늘어나게 한다. 노쇠는 보통 70∼75세 전후에 발생하지만 최근에는 40∼50대에도 많이 발생한다. 너무 마른 사람은 좀더 일찍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를 진단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다. 미국의 노년의학자 린다 P.프라이드에 의한 프라이드(Fried) 노쇠 진단기준이 대표적이다. 이 기준은 의도하지 않은 체중감소(연간 4.5kg 또는 5% 이상), 극도의 피로감(무엇을 하든 귀찮다고 1주일에 3∼4일 이상 느낌), 보행속도의 저하, 근육 허약(악력의 저하), 신체활동의 감소 등으로 평가한다. 이중 3항목 이상에 해당하면 노쇠로 판단한다. 대한노인병학회에서도 8가지 항목의 한국형 노쇠 측정도구를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4가지 이상의 약물복용, 옷이 헐렁한 정도의 체중 감소, 우울감, 소변이나 대변을 지렸는지, 일어나 걸어가기 검사(Timed Up & Go test) 등을 측정한다. 8항목 중 2점 이하는 정상, 3∼4점 노쇠 전단계, 5점 이상 노쇠로 진단한다. 노쇠는 예방이 가능하다. 단백질 등 균형잡힌 영양 섭취와 규칙적인 근력 유지 운동, 낙상 방지, 다약제 사용 감소 등이 핵심이다. 뿐만 아니라 문화생활, 봉사활동, 반려동물과의 활동 등 정신적 사회적 관계도 중요하다. 일본은 1978년부터 국가 차원에서 노쇠 방지에 나섰다. 현재는 ‘건강 일본 21’ 3차 계획(2024∼2035)이 시행 중이다. 우리도 내년부터 질병관리청이 ‘노쇠 예방’에 나선다고 한다. (조상진 논설고문)

  • 오피니언
  • 조상진
  • 2025.05.15 16:49

[오목대] 시험대에 선 전북의원

오는 6월 3일 장미대선을 앞두고 전북에서는 과거와 다른 모습이 목격된다. 지방선거나 총선도 아니고 대통령 선거때 전북지역 도처에 내걸린 민주당 선거 홍보물이나 유세 물결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절대우세 지역인 전북에서 민주당이 이처럼 눈에 띄게 선거운동을 하는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대선 후보나 당 총재로 선거를 진두지휘하던 1987년 대선과 이듬해 총선때부터 전북에서는 민주당 계열 정당은 상상을 초월하는 압도적 득표를 해왔다. 그때부터 전북에서는 민주당 계열의 정당이 너무 유난스런 선거운동을 하는 것을 극도로 자제해왔다. 자칫하면 영남권을 뭉치게해서 결과적으로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 패배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 이번엔 어떻게 될까. 민주당 전북도당은 '93% 득표 '를 목표로 정했다. 계엄과 그에 따른 탄핵 과정에서 여야간 대결 구도가 극단적으로 갈렸고, 특히 새만금잼버리 사태 등을 거치면서 지역민들 사이에서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커졌기에 93% 득표율은 불가능한 수치가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정치 전반에 대한 염증이 확산한데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여야간 우열이 확실히 생기면서 전북의 투표율이 의외로 낮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기에 최종 결과는 두고 볼 일이다. 전북에서 민주당 계열 후보 중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경우는 19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때 김대중 후보의 92.3% 였다. 당시 집권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전북에서 4.54%를 얻는데 그쳤다. 이후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는 91.6%를 얻었고,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는 전북에서 64.8%를 얻었으나 결국 승리했다. 지난 2022년 대선때 이재명 후보는 전북에서 82.98%를 얻었다. 광주(84.82%), 전남(86.10%)과 근소하지만 어쨋든 호남에서 가장 낮은 수치다. 이재명 후보는 당시 불과 24만7077표차로 윤석열 후보에게 패했는데, 만일 텃밭인 호남에서 조금만 더 얻었어도 승패는 엇갈렸으리라. 그래서일까. 민주당 중앙당은 전북 국회의원들에게 선거구 사수를 지시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중앙당이나 후보에게 눈도장 찍으려고 하지말고 자신의 지역구를 지키면서 구체적인 득표율로 말하라는 거다. 지방의원들도 각자 지역구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국회의원들과 함께 인증샷을 찍어서 보낼것을 지시 받았다. 대선때 중립의무가 있는 단체장과 달리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은 이제 구체적인 점수로 답해야 할 상황이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나 차기 총선때 이번 대선의 성적표가 살생부로 활용될 소지도 있다. 그래서 긴장감도 높다고 한다.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다고 보기에 적어도 전북에서는 대선 결과는 물론, 각 지역구와 전북 전체의 득표율은 큰 관심사가 아니다. 하지만 도내 국회의원과 지방의원들은 생사가 걸린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5.05.14 18:13

[오목대] 최승희 명창과 판소리 악보

2001년 봄이었다. 판소리 애호가라면 놓치기 아쉬운 판소리 무대가 열렸다. 최승희 명창과 제자들이 함께 선 무대. 스승과 제자의 발표회는 낯설지 않은 공연 형태였으나 이 무대가 특별했던 이유가 있었다. 최승희는 이날 자신이 이어온 정정렬제 소리에 의미 있는 작업을 더했다. 정정렬제 춘향가 악보집 발간이었다. 판소리 한바탕을 오선지에 옮겨 악보로 만들어낸 명창은 그가 처음이었다. 판소리 악보화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엇갈리고 미학적 본질이나 음악적 특질에 비추어 악보화가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도 없지 않았으나 그가 찾아낸 결실은 단연 돋보였다. 근대 5명창으로 꼽히는 정정렬은 창극 발전을 주도했던 소리꾼이다. 일제 치하에서 활동했던 명창 대부분이 판소리 발전에 기여했지만 정정렬의 활동은 특히 빼어났다. ‘30년 앞을 내다보고 소리를 한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그는 자신의 독특한 소리를 꾸준히 개발하고 실험하면서 귀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고도의 음악적 기교를 구사하고 선율과 장단이 까다로운 소리를 받겠다고 나서는 소리꾼은 많지 않았다. 그 소리를 이어낸 소리꾼이 최승희다. 최승희는 스승 김여란으로부터 정정렬제 춘향가를 받았다. 정정렬제 춘향가는 서편제 소리의 영역이지만 특별한 기교와 부침새를 구사하는 특성으로 독창성을 인정받는 소리다. 덕분에 20세기 전반에 유행하면서 춘향가 전승에 영향을 끼친 소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소리에 비해 계승의 맥이 굵지 못한 정정렬제 소리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일은 최승희에게 무겁고도 귀한 과제였다. 다행히 뜻이 맞는 제자가 그의 소리를 사설로 정리하고 악보로 만드는 일에 나서주었다. 꼬박 4년 동안 고된 분투가 이어졌다. 두 번의 위암 수술로 일상이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는 ‘제자들이 조금은 쉽게 판소리를 익힐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 판소리 대중화니 뭐니 하여 지나치게 거창하게 평가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러나 판소리 악보화야말로 일반인들이 판소리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라는 확신을 거두지 않았다. 실제로 그가 만든 춘향가 악보는 젊은 제자들에게 더없이 좋은 교재가 됐다. ‘현대의 음악적 환경으로 보자면 판소리 악보화 작업은 더 적극적이고 새롭게 모색될 필요가 있다’는 판소리 연구자들의 조언도 그에게 큰 힘이 되었을 터다. 열여덟 살 늦은 나이로 소리길에 들어서 남다른 열정으로 자신의 소리를 지키고 이어온 최승희 명창이 세상을 떠났다. 편식 심한 소리판 속에서 외롭게 정정렬제를 지켜온 명창. 여든 아홉 해 그의 생애를 들여다보니 판소리 대중화를 향한 열정과 의지가 빛난다. / 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5.05.13 18:20

[오목대] 지방소멸 시대, 지자체의 민관협력

전국 14개 지자체장들이 손잡고 민관협력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뜬금없다. 심각한 경제위기 속에 대선 국면을 맞았다. 민생회복과 지역사회 안정에 행정역량을 총동원해야 할 비상시국에 지자체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그렇게 급박한 일이었을까? 그렇다고 민관협력의 모범사례를 보여준 지자체들도 아니다. ‘민관협력은 특정 단체나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당연한 사실을 애써 들춰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선 백종원의 더본코리아와 업무협약을 맺은 지자체들이다. 백종원 대표의 유명세에 힘입어 잘나가던 이 외식업체가 식품위생 등 각종 논란에 휩싸이면서, 신뢰를 잃었다. 그러면서 홍보와 컨설팅 등의 명목으로 막대한 혈세를 이 기업에 지원한 지자체에 불똥이 튀었다. 전북에서는 남원시가 ‘비난 자제’를 요청한 이번 대국민 호소에 동참했다. ‘대한민국 대표 축제가 백종원 대표의 브랜드 홍보와 돈벌이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지역사회 우려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올 춘향제에서도 백 대표와 동행하고, ‘백종원 테마거리’를 조성하겠다는 계획까지 내놓았으니 지금 상황이 편할 리 없다. 지자체장들은 ‘지방소멸 위기’를 들먹이면서 ‘민관협력의 성과는 지역주민에게 돌아가며 보호받아야 할 가치’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들 지자체는 과연 민관협력에 진심이었을까? 21세기, 행정주체와 민간이 파트너십을 통해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민관협력의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전국 지자체들이 지역현안 해결을 위해 ‘거버넌스(민관협치)’ 체계를 속속 구축했다. 민관협력 활성화를 위한 조례를 제정하고, 민관협치기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번에 새삼 민관협력을 강조하고 나선 남원은 어떨까? 전국 네트워크를 갖춘 이 민관협치기구가 이곳에서는 태동 조짐조차 없었다. 시민단체와도 연신 대립각이다. 춘향제 100년을 준비하면서 새로 그린 ‘춘향 영정’을 놓고 불거진 지역사회 갈등도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더본코리아에 과도한 혜택을 제공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군산시도 민관협력의 내력과 평판은 별반 다를 게 없다. 전국 곳곳의 지자체들이 ‘지역경제를 살리겠다’고 나선 ‘장사의 신’에게 매혹돼, 혈세를 지원했다. 유명 사업가의 인기에 편승해 절차를 생략하고 당장 손쉽게 과실을 얻으려 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쥐꼬리 예산을 쪼개고 쪼개야 하는 궁핍한 지자체들이 이익을 쫓는 기업에 혈세를 생각 없이 퍼붓고는 논란이 일자 돌연 민관협력의 가치를 들고 나선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볼 일이다. 영리 추구가 목적인 사기업과 손잡으면서 자발적으로 리스크를 떠안은 지자체들이 지방소멸 위기를 들먹이며 발표한 대국민 호소가 궁색하기 짝이 없다. 지자체의 민관협력 사업은 지역사회와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신뢰·협력체계를 구축하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은 호소보다 성찰이 필요한 때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5.05.12 16:41

[오목대] 대선에 대한 기대감

느닷없는 계엄 발동으로 얼마나 놀랬는지 지금도 안심 못하고 있다. 계엄으로 탄핵되어 6.3 대선이 치러지지만 국민들은 사회가 빨리 안정되길 바란다. 서민들은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어렵기는 매 한가지지만 지금은 중산층도 흔들린다. 그 만큼 계엄후유증이 가시지 않고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쳐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 집권2기를 맞아 자국의 이익만 극대화시키겠다고 전방위적으로 높은 관세를 일방적으로 부과해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에 타격을 줬다. 예전 같으면 국가가 국민들을 걱정했지만 지금은 반대로 국민들이 국가를 걱정하는 꼴이 되었다. 젊은이들이 피 흘려가며 만든 지금의 헌법은 시대상황에 맞질 않아 개헌 필요성이 꾸준하게 제기돼왔다. 몸에 맞지 않은 옷과 같은 헌법이라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국민적 합의를 거쳐 헌법을 고쳐야 할 것이다. 지금 3권분립이 되어서 법치가 이뤄지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대통령 한테로 쏠린 권한이 너무 막강해 12.3 계엄이 무모하게 발동 되었던 것. 윤 전대통령이 헌재에서 파면당했지만 아직도 그 추종자들이 버젖이 경찰 검찰 등 권력핵심요직에서 버티고 있어 국민들이 불안해 한다. 지금 국민들은 국가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제발 사회가 안정되기만을 학수고대 할 뿐이다. 한마디로 불안해서 맘 편하게 살 수 없다는 불안심리로 가득차 있다. 활짝 핀 꽃 구경을 가고 싶어도 예전 같은 기분이 아니라는 것.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처럼 마음이 편해야 뭔가를 해보고 싶은 욕구도 생기는 법인데 지금은 놀랜탓인지 그런 맘이 생기지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민가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한다. 왜 그럴까. 사회가 안정되지 못해서 그렇다는 것.그간 허리띠 졸라매서 만든 이 나라가 왜 이모양 이꼴이 되었는지를 잘 살펴야 할 것이다. 대선일이 촉박하게 다가오지만 국가적 어젠더가 사라져 대선이 김 빠진 맥주꼴이 돼버렸다. 하지만 전북도는 나름대로 기대를 걸고 있다. 2036 하계올림픽이 전북 전주에서 개최될 수 있도록 대선공약으로 채택해주길 바란다. 서남대 의대 폐교로 생긴 49명의 정원을 갖고 공공의대를 설립해주길 바라고 제2중앙경찰학교도 남원으로 유치해주길 바라고 있다. 여기에다가 군산 김제 부안간 이해다툼이 첨예한 새만금에 특별행정구역을 설정해주길 바란다. 광역시가 없는 전북은 전주 완주를 통합시켜 앵커도시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선공약에 반영되길 바라고 있다. 지금껏 도민들은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도록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다. 이번에도 이심전심상 또 몰표가 예상된다. 그 이유는 도민들이 6.3 대선이 왜 치러지는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 전원합의체가 이재명후보에 대한 공직선거법 판결에서 유죄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을 잘못된 판결이라고 지적하면서 더 지지가 굳건해졌다. 이 후보에 대한 재판이 대선 후로 미뤄지면서 사법리스크가 상당부분 해소,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도민들의 지역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5.05.11 16:39

[오목대] 한덕수와 고건

한덕수와 고건은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 관료들이다. 모두 전북출신으로 학벌과 경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이들을 보는 눈은 다르다. 특히 고향에서 그런 것 같다. 이들의 공통점부터 보자. 학력을 보면 1949년생인 한덕수는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인 경기중고와 서울대를 졸업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1938년생인 고건 역시 경기중고와 서울대를 졸업했으며 서울대 재학중 총학생회장을 역임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잠시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다음 경력을 보자. 한덕수는 21세 때 행정고시에 합격해 특허청장,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역임했다.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경제부총리, 주미(駐美)대사, 2번의 국무총리(노무현·윤석열 정부)를 거쳐 이번 윤석열 탄핵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고건 역시 23세 때 행정고시에 합격 후, 37세에 최연소 전라남도 지사를 거쳐 교통부·농림식품수산부·내무부 등 3개 부처 장관을 지냈으며 국회의원과 두 번의 서울시장, 두 번의 국무총리(김영삼·노무현 정부)를 역임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대통령 권한대행도 맡았다. 이만큼 화려한 경력이 있을까. 질릴 정도다. 이들은 출중한 능력으로 보수정부와 진보정부를 가릴 것 없이 중용되었다. 그러나 다른 점이 없지 않다. 고향에 대한 태도가 그렇고 물러설 때가 그렇다. 한덕수는 고향세탁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공직자 프로필에 서울출신으로 표기하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전북 전주출신’으로 표기했다. 그 전까지 고향을 전북으로 표기하면 일일이 정정을 요구했다는 증언도 있다. 이를 두고 영남정권에서 입신양명을 위해 고향을 숨겼다는 해석과 호남차별이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는 동정론이 나왔다. MBC 드라마 ‘전원일기’로 인기를 모았던 완주출신 유인촌의 경우도 비슷하다. 반면 고건은 서울에서 태어났음에도 군산출신인 부친 고형곤 박사를 따라 전북사람으로 활동했다. 황인성 전 총리와 함께 재경전북도민회를 만들고 2대 회장으로 출향인을 묶는 가교역할을 했다. 그리고 공직에서 물러날 때의 모습도 다르다. 고건은 2007년 대선 당시 유력한 대선 주자로 거론되었으나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했다. 한덕수는 윤석열 정부 2인자로 계엄과 탄핵에 책임이 있음에도 오히려 대선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 이어 광주 5·18묘역을 방문,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치자 “나도 호남사람입니다”를 15번 외쳤다. 이런 과정에서 전북변호사 100명이 “고향 세탁과 새만금예산 삭감을 주도했다“며 ”도민 배신행위“라고 지적했다. ‘까마귀도 내 땅 까마귀면 반갑다’는데 왜 좀 씁쓸할까.(조상진 논설고문)

  • 오피니언
  • 조상진
  • 2025.05.08 16:54

[오목대] SK 최태원 회장과 새만금

KRI 한국기록원에 의해 ‘국내 최장수 TV 프로그램’으로 인증 받은 것은 무려 46년간 진행된 장학퀴즈다. 전국노래자랑보다도 역사가 더 길다고 한다. 광고주를 찾지 못해 폐지 위기에 처하자 선경그룹 고 최종현 회장이 나섰다. 2만명이 넘는 장학퀴즈 출신들은 학계, 재계, 법조계, 의료계, 언론계 등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해 오피니언 리더로서 활발히 활동중이다. 그저그런 상태이던 선경을 일약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최고 재벌로 키운 이가 바로 최종현 회장인데 그는 사람의 잠재적 가치를 꿰뚫어보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한다. 최종현 회장은 노태우 대통령과 사돈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는 머지않아 SK가 어마어마한 대기업으로 우뚝 서는 일대 전기가 됐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진 한컷이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청와대에서 사위 최태원 SK회장과 대국을 벌이는것을 딸 노소영씨가 지켜보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노 대통령은 사돈 기업에게 이동통신사 설립 이라고 하는 큰 선물을 했다. 1994년 한국이동통신 인수비용이 치솟자 반대하는 임원들에게 최종현 회장은 “지금 2000억원을 더 주고 사지만 나중 일을 생각하면 더 싸게 사는 것이다. 우리는 충분히 준비했으니 10년 이내에 1조~2조원의 이익을 낼 수 있다”며 설득했다고 한다.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있던 최종현 회장은 1980년에 이미 정보통신 중심의 시대가 올 것임을 간파했다고 한다. 1990년 노태우 정부때 공기업인 한국이동통신과 경쟁할 수 있는 민간사업자(제2이동통신 사업권) 선정을 발표하자 그동안의 준비를 바탕으로 입찰해 압도적인 점수 차로 1위에 선정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물론 사돈특혜 지적이 일었고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결국 SK텔레콤은 탄생하게 된다. '세기의 결혼'으로 주목받던 최태원-노소영 결혼은 한참 시간이 지난뒤 '세기의 이혼'으로 마무리됐다. 작년 이맘때 항소심에선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재산 분할로 1조 원이 넘는 돈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최태원 회장은 노소영 관장과 결혼식을 올리고 몇 년 뒤인 1990년대 초 장인이 있는 청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무선통신 시연을 했고, 노 전 대통령이 이를 본 뒤 이동통신사업을 민간에 맡기기로 하며 관련 법 개정에 나섰다고 한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단을 뒤집은 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종현 전 회장의 보호막이나 방패막이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SK그룹의) 성공적 경영 활동에 무형적 도움을 줬다고 판단한다"고 했다.요즘 가장 큰 관심사가 바로 SK텔레콤 해킹 사태다. 급기야 최태원 회장은 7일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런데 SK는 전북과도 해묵은 과제 하나가 계속 진행형이다. 지난 2020년 11월 SK그룹 계열사로 구성된 SK컨소시엄은 새만금에 창업클러스터와 데이터센터 등 2조원 규모의 투자에 나선다고 밝힌 바 있으나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SK E&S 등 SK컨소시엄은 새만금청의 산업투자형 발전사업을 통해 새만금에 2조1000억원을 들여 데이터센터와 창업클러스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당시 투자협약식에는 정세균 국무총리와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 SK그룹 최태원 회장, 송하진 전라북도지사, 강임준 군산시장 등도 참석했다. 새만금에 SK데이터센터를 유치하고도 4년 넘게 진척이 없는 현실에 대해 전북도민들은 의아해 하고 있다. SK그룹으로부터 2조 원 규모의 데이터센터와 창업클러스터 투자를 유치하면서 금방 뭐가 되는줄 믿었던 도민들에게 SK 최태원 회장은 답변할 때가됐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5.05.07 14:10

[오목대] 시나리오 작가 송길한

<만다라> <우상의 눈물> <짝코> <안개마을> <길소뜸> <티켓> <씨받이>. 1970~8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영화들이다. 〈짝코〉는 반공영화의 상징적 이름이 됐고, <만다라>와 <씨받이>는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주목받았다. 이 영화들을 세상에 내놓은 사람, 시나리오 작가 고 송길한 선생(1940년~2024년)이다. 사실 한 편의 영화가 이룬 성취가 감독의 전유물로 인식되었던 지난날, 시나리오 작가의 존재는 부각되지 않았다. 70여편 영화를 남긴 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가 그에게 특별상을 수여했다. 덕분에 ‘전주국제영화제의 시작’을 기억하게 하는 그의 존재는 더 특별(?)해졌다. 송길한은 전주가 고향이다. 북중과 전고를 거쳐 대학 입학을 위해 서울로 갔지만 여러 이유로 학업을 중단했다. 대한석탄공사 입사 시험에 합격해 직장생활을 했지만, 내놓을만한 직장은 딱 거기까지다. 막노동부터 시장 공판장 잡일까지 가리지 않고 일을 했던 그는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흑조>가 당선되면서 데뷔했다. 첫 영화이기도 한 <흑조> 이후 그는 가장 바쁜 시나리오 작가가 됐다. 10여 년 동안 밀어닥치는 시나리오 주문(?)에 무엇을 쓰는지도 모를 정도로 기계처럼 주문을 받고 생산하는 글쟁이로 살았던 그를 자성의 시간으로 불러들인 것을 80년 광주항쟁이었다. 그즈음 임권택 감독을 만났다. 몸담았던 영화제작사를 그만두고 임 감독과 10년 동안 10개 영화를 연이어 써냈다. <짝코>를 시작으로 한국영화사에 굵은 궤적을 남긴 영화들이 이때 쓰였다. 그를 고향에 다시 부른 것은 전주국제영화제다. 영화제 초기 그는 부집행위원장을 맡아 영화제 틀을 다졌다. 변영주 감독의 <지역 영화사-전주> 시나리오를 맡아 오랫동안 기억되지 못했던 전북의 영화 역사를 기록하는데도 열정을 쏟았다. 그를 인터뷰로 만난 것은 7년 전이다. 그는 영화의 역할을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삶의 고통을 드러내고 함께 고민하며 치유하고 북돋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 올리기>를 끝으로 작업을 중단했지만 좋은 시나리오 한편 남기는 일을 소망으로 삼은 이유도 거기 있었다. 그러나 ‘시대 정신을 담은 깊고 탄탄한 시나리오로 독립영화 정신을 가진 감독을 만나 좋은 영화 한 편 만들어보고 싶다’던 그는 결국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떠났다. 전주영화제가 올해로 스물여섯 해를 맞았다. 들여다보면 영화제의 노정 위에 수많은 사람의 열정과 시간이 놓여있다. ‘독립과 대안’을 내세워온 전주국제영화제의 정신과 가치가 지켜진 것도 그들 덕분 일터. 기억은 힘이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5.05.06 16:42

[오목대] 유산 14만원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1일 선종했다. 아르헨티나 언론은 그가 남긴 유산이 100달러(약 14만원)라고 전했다. 평생 그의 청빈한 삶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세계 가톨릭 신자 13억명의 영적 지도자인 교황에게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2500유로(약 405만원) 가량의 월급이 주어진다(월급이 4600만원이라는 보도도 있음). 교황은 재위 12년뿐만 아니라 추기경에 임명된 2001년 이후 월급을 모두 교회에 기부했다. 76세 때인 2013년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이름처럼 가난하고 약한 자의 수호성인이었다. 교황청 개혁을 비롯해 빈곤 퇴치, 환경문제, 난민 보호 등에 앞장섰으며 성 소수자와 무슬림, 비신도들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2014년 8월, 4박5일 일정으로 방한한 교황은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의전차량으로 방탄 리무진 대신 소형차인 ‘쏘울’을 택했으며 헌구두에 낡은 가방을 직접 들고 다녔다. 가장 먼저 팔을 벌려 만난 사람은 세월호 사건으로 슬픔에 빠진 유족이었으며 그들이 건넨 노란 리본을 끝까지 단채 기도를 올렸다. 세월호 유족들에게 “울어도 됩니다. 그러나 결코 희망을 놓지 마십시오”라고 위로해 큰 울림을 주었다. 또 위안부 할머니와 장애인, 북한 이탈주민, 외국인 근로자들과도 함께했다. 남북문제에도 관심을 가져 방북도 추진했다. 겸손하고 근검한 평소의 성품처럼 묘지석도 고급 대리석 대신 증조부 고향에서 가져온 돌에 고황의 라틴어 이름 만을 새겼다. ‘프란치스쿠스’. 생몰연도, 재위기간도 새기지 않았다. 이처럼 청빈하게 살다간 종교인은 우리나라에도 없지 않다. 성철스님과 법정스님, 김수환 추기경 등이 그들이다. 법정 스님은 “장례식도, 수의도, 관(棺)도 짜지 말고, 사리도 찾지 마라”고 유언했다. 평소 ‘무소유’ 등 30여권의 베스트셀러에서 나온 인세 수십억원은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부처님에게 3000배를 올려야 만나주기로 유명했던 성철 스님은 돌아가실 때 염의(染衣) 한 벌과 돋보기, 검정고무신 한 컬레만 남겼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인 김수환 추기경은 선종시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한 비상금 300만원을 통장에 남겼으며, 사후 그의 뜻에 따라 자선단체에 기부되었다. 이들 종교인 외에도 진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했던 김장하 선생은 종교인 못지않은 유산을 남겼다. 100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평생 번 돈 300억원을 장학금으로 주었으며 “돈은 똥과 같아서 모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된다”는 돈철학을 남겼다.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조상진 논설고문)

  • 오피니언
  • 조상진
  • 2025.05.01 18:21

[오목대] 그레이트 게임과 전북의 입지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은 1813년부터 1907년까지 100년 가까이 계속된 러시아와 영국 사이의 패권 경쟁을 이르는 말이다. 부동항을 찾아 남으로 진출하려는 러시아와 이미 러시아 남쪽 전역에 걸쳐 식민지를 가진 영국은 사사건건 부딪치며 지축을 흔드는 것처럼 국제무대에서 경쟁했다. 크림 반도에서 발발한 크림전쟁을 비롯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 한반도 일대에서 벌어진 러일전쟁 또한 큰 틀에서보면 그레이트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러일전쟁의 경우 외형상 러시아와 일본의 대결이지만 영국, 미국 등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영국, 러시아, 미국 등과 전쟁을 치른 아프가니스탄은 어쩌면 그레이트 게임의 가장 큰 희생양 이라고 할 수 있다. 1907년 러시아와 영국간 협상을 끝으로 그레이트 게임은 외형상 종결됐으나 미국과 중국이 관세전쟁을 치르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레이트 게임은 진행형이다. 그런데 강자가 아닌 약자의 입장에서는 그레이트 게임 같은 지축을 흔드는 상황이 벌어질 때 판단한번 잘못하면 끝이다. 속된말로 졸면 죽는다. 역사의 변곡점마다 지도자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나라가 망하고, 백성이 도륙을 당하는 일은 수없이 많았다. 국제흐름을 읽지 못한채 화를 자초했던 병자호란은 말할 것도 없고 임오군란과 동학혁명때 국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세를 불러들인 지도층의 무능과 오판은 통탄할 일이다. 프랑스의 침공 위협에 놓였던 태국이 영국을 끌어들여 결과적으로 영ㆍ프의 중립지대로 남으며 독립을 보전했던 실용외교는 상황 판단을 잘못해 식민지로 전락했던 조선과는 너무나 대조된다. 그레이트 게임은 비단 국제관계에서만 벌어지는게 아니다. 지방화 시대를 맞아 각 지역간에 벌어지는 각축전은 흡사 그레이트 게임이 진행되는 국제 외교무대나 마찬가지다. 짧게는 반세기, 길게는 한세기가 넘게 축소지향적 모습을 보여왔던 전북은 지도급 인사들의 잘못된 판단에 기인한 바 크다. 재작년 새만금잼버리 사태는 사실 여야간 그레이트 게임의 희생양 이라고 할 수도 있다. 집권당인 국민의힘과 야당인 민주당이 격돌하는 와중에 불거진 것이 바로 전북의 새만금잼버리였다.야당의 한 축을 희생양 삼아야만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는 집권당 국민의힘은 무서운 노림수가 있었다. 상대적으로 민주당은 화끈하게 전북 편을 들어주지 않은것이 바로 새만금 예산 아니었던가. 막판에 민주당이 힘을 실어주면서 일부 복원되기는 했으나, 타 시도 예산은 모두 늘어난 반면, 전북만 감소하는 기가막힌 일이 벌어졌다. 당초부터 새만금잼버리는 독이 든 성배라는 우려의 시각이 없지 않았으나 어쨋든 이를 두고두고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고래싸움이 격화하면 할 수록 눈치없는 새우는 등이 터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지난 일은 잘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5.04.30 18:35

[오목대] 한지 장인을 지켜야 하는 이유

전통 한지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에 도전한 것은 지난해 3월이다. 한지는 우리보다 앞서 종이를 발명한 중국으로부터 제작기술을 들여왔지만, 중국의 선지나 일본의 화지와는 기법이 다르다. 한지가 선지나 화지보다 내구성과 보존성에서 빼어난 품질을 인정 받는 것도 이 독창적 기법 덕분이다. 한지는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은 지 오래다. 기록유물 보수에 화지나 선지를 활용해온 루브르 박물관이 내구성과 보존성에 문제가 생기자 대체 종이를 찾아 나선 끝에 보존성이 뛰어난 한지의 기능에 감탄하며 이제는 유물복원까지 한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하다. 우리나라 세계기록유산 중에서도 보존성을 돋보이는 <조선왕조실록>이나 <훈민정음> 등 대부분 유물은 한지로 만들어졌다. 사실 한지의 등재 추진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선지와 화지는 2009년과 2014년에 이미 인류문화유산에 등재된 터다. 한지의 등재 신청 내용은 '한지 제작의 전통 지식과 기술 및 문화적 실천'이다. 문화재청은 한지를 ‘닥나무 채취에서 과정에 이르기까지 장인의 기술과 지식, 마을 주민들의 품앗이가 더해져 우리나라의 공동체 문화를 잘 보여주는 유산’으로 설명한다. 단순히 전통 종이 한지가 아니라 오래 계승되어온 고도의 숙련된 기술과 경험, 그리고 그것을 보전해온 역사와 문화를 가치로 내세웠으니 장인들의 ‘오래된 경험과 기술’은 온전히 계승되고 있어야 함이 옳다. 그러나 한지가 처한 현실은 다르다. 전통 한지를 만드는 장인은 줄어가고 단절 위기에 놓인 기능도 있다. 한지를 뜰 때 기본이 되는 한지발 제작 기능도 그 하나다. 전주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한지발을 만드는 장인이 있었다. 2023년 작고한 유배근 명장이다. 전통한지발을 만드는데 온 생애를 바쳤던 그는 2005년 도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그 덕분에 한지발장 종목이 만들어졌지만, 뒤를 이을 전수자는 아직 지정되지 않고 있다. 평생 한지발 만드는 일을 함께해온 그의 아내와 아들이 있는데도 기능보유자나 전수자가 지정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안타깝다. 한지의 인류문화유산 등재는 2026년 12월,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목록에 많은 유산이 올라있는 국가는 2년에 한 건씩만 심의할 수 있다는 규정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등재된 ‘장담그기 문화’까지 23개 종목이 인류무형유산 등재되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종목을 보유하고 있는 ‘다등재’ 국가다. 한지 등재를 앞두고 한지 도시를 자처하는 자치단체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반가운 일이지만 정작 챙겨야 할 일은 놓치고 있는 형국이 불편하다./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5.04.29 18:46

[오목대] 반복되는 동상(銅像) 논란, 그리고 전주

호레이쇼 넬슨, 잔 다르크, 조지 워싱턴, 모차르트, 칭기즈칸, 레닌…. 동상(銅像)으로 부활해 도시의 관광자산이 된 역사 인물이다. 이들 동상은 해당 도시와 국가를 상징하는 조형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이렇게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었어도 어느 순간 해당 인물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바뀌면 대우는 확 달라진다. 어떤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특정 인물의 동상이 수난을 당한 사례가 많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상은 서울 광화문광장에 우뚝 선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이다. 매번 조사할 때마다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1, 2위로 꼽히는 위인이니 논란의 여지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동상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 인물을 꼽자면 단연 이승만 전 대통령이다. 사회적 평가가 크게 엇갈려서다.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 1956년, 서울 남산에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인 25m 높이로 건립된 이승만 동상은 4·19혁명 때 성난 시민들에 의해 무너졌다. 이후 여기저기서 이승만 동상 건립사업이 추진됐고, 그 때마다 논란이 반복됐다. 최근 대선 정국에서 다시 ‘동상 논란’이 불거져 나왔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의 입에서 서울 광화문광장에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을 건립하자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사실 동상이나 지역을 상징하는 공공 조형물을 둘러싼 논란은 오래전부터 전국 곳곳에서 이어져 왔다. 최근 사례로는 대구광역시 달성공원 앞 ‘순종황제 동상’, 동대구역 앞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경주 관광역사공원 박근혜 전 대통령 동상, 대전광역시 서대전광장의 ‘오월걸상’ 논란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천년 전통도시 전주에서는 여태껏 동상·조형물을 둘러싼 이렇다 할 논란이 없었다. 사실 전주에는 내세울 만한 동상이나 공공 조형물이 아예 없다. 세간에 전주를 대표할 수 있는 동상 인물로 태조 이성계, 정여립, 견훤왕, 전봉준 장군 등이 거론되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논의 과정은 없었다. 아니, 그 전에 그런 조형물을 세울 만한 지역 대표 광장이나 상징적 공간이 없다. 광장(廣場)은 글자 그대로 ‘넓은 마당’이다. 유서 깊은 지구촌 도시들이 이 빈 공간에 시민의 목소리, 그리고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차곡차곡 채워왔다. 전주에도 광장이라 불리는 곳이 적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은 광장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 심지어 어떤 곳은 광장이라 불리는 이유조차 알 수 없다. 민선 8기 전주시가 ‘전주 대변혁’을 내세워 야심찬 도시개발 청사진을 내놓았지만 역시 광장은 없다. 앞으로도 암울하다. 빚더미에 앉아 있는 전주시가 도시 중심에 공터를 만들기 위해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동상을 세우기 위해 광장을 조성하자는 게 아니다. 전주를 대표하는 광장이 있어야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이고, 동상이나 지역을 상징할만한 조형물 건립 제안도 나올 수 있다. 전통도시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활력공간이 필요하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5.04.28 16:53

장미대선과 동학혁명

정여립의 대동사상과 전봉준의 사람이 하늘이다는 인내천 사상이 제대로 꽃 피울 좋은 기회를 맞이했다. 지난 윤석열 전 정권 때 전북은 차별과 냉대를 받아왔지만 인동초 마냥 시들지 않고 동토에서 생명을 싹트게 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 새만금잼버리 대회 실패 책임이 여성가족부와 조직위원회의 책임이 제일 무겁고 다음으로 전북도도 개최지로서 준비소홀 등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적시했다. 잘잘못을 명확하게 따지지 않고 모든 것을 전북도가 잘못한 것처럼 뒤집어 씌워 심지어 정부와 국민의 힘이 국가예산 삭감을 강행해 전북은 이미지 타격은 물론 지금까지도 예산반영이 제대로 안돼 피해를 입어왔다. 하지만 전북은 지난해 전북대에서 세계한상대회를 성공리에 개최한 것을 비롯 2036년 하계올림픽 국내후보지로 골리앗 서울을 제치고 유치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모두가 서울이 유치할 것으로 보고 전북에서 조차 반신반의 했지만 도전경성을 입버릇처럼 말해온 김관영 지사가 IOC에서 무슨 기준으로 후보지를 정하는지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비수도권 연대전략을 세운 게 주효했던 것. 지금 전북에서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도민들 맘속에 꿈틀대면서 그간 어려울 것으로만 여겼던 대광법이 통과된 것을 보고 하계오륜 유치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본다. 그간 전북인들은 느닷없이 윤석열 전 대통령이 12.3 계엄을 선포하자 구름처럼 순식간에 전주 객사 앞 광장에 모여 윤 전대통령 탄핵 관철을 위해 목이 터지라고 외쳐왔었다. 영하의 차가운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참가한 애국 시민들이 일사분란하게 탄핵을 외쳐 결국 6.3 장미대선을 가져오게 만들었다. 지금 겉으로는 전북이 조용하지만 오리가 수면아래에서 쉼없이 물갈퀴 짓을 하듯 내란 청산을 말끔하게 해서 새로운 정권을 탄생시켜야 한다는 열망으로 가득차 있다. 전북인은 왜 장미대선이 치러지는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가 그 어느때보다 강하다. 서로가 대놓고 표심을 말하지 않지만 이심전심으로 눈빛만 봐도 알 정도로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크다. 지난 대선 때는 국힘 윤석열후보에 대한 지지가 14.42%를 기록, 호남에서 가장 높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변해서 국힘후보에 일체 말이 없을 정도다. 당시 전북에서 두자릿수 지지를 보낸 것은 혹시나 행여나하고 지역개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해서 표를 주었지만 결국은 예상대로 아닌 것으로 끝나버렸다. 또 새만금에 기업유치가 잘되어 사람이 바글거리도록 하겠다는 윤 석열 후보의 공약이 희망고문이 된채 핍박만 가해지고 말았다. 전북인들은 장미대선이 개혁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여기고 뭔가 새로운 전북을 만들기 위해 더 단합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똘똘 뭉치고 있다. 특히 대선 공약이 빌공자 공약으로 그치지 않도록 국회의원들을 더 채근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번 대선승리가 미완으로 끝난 동학혁명이 승리하도록 다함께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5.04.27 17:19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