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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는 계엄 발동으로 얼마나 놀랬는지 지금도 안심 못하고 있다. 계엄으로 탄핵되어 6.3 대선이 치러지지만 국민들은 사회가 빨리 안정되길 바란다. 서민들은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어렵기는 매 한가지지만 지금은 중산층도 흔들린다. 그 만큼 계엄후유증이 가시지 않고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쳐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 집권2기를 맞아 자국의 이익만 극대화시키겠다고 전방위적으로 높은 관세를 일방적으로 부과해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에 타격을 줬다. 예전 같으면 국가가 국민들을 걱정했지만 지금은 반대로 국민들이 국가를 걱정하는 꼴이 되었다. 젊은이들이 피 흘려가며 만든 지금의 헌법은 시대상황에 맞질 않아 개헌 필요성이 꾸준하게 제기돼왔다. 몸에 맞지 않은 옷과 같은 헌법이라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국민적 합의를 거쳐 헌법을 고쳐야 할 것이다. 지금 3권분립이 되어서 법치가 이뤄지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대통령 한테로 쏠린 권한이 너무 막강해 12.3 계엄이 무모하게 발동 되었던 것. 윤 전대통령이 헌재에서 파면당했지만 아직도 그 추종자들이 버젖이 경찰 검찰 등 권력핵심요직에서 버티고 있어 국민들이 불안해 한다. 지금 국민들은 국가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제발 사회가 안정되기만을 학수고대 할 뿐이다. 한마디로 불안해서 맘 편하게 살 수 없다는 불안심리로 가득차 있다. 활짝 핀 꽃 구경을 가고 싶어도 예전 같은 기분이 아니라는 것.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처럼 마음이 편해야 뭔가를 해보고 싶은 욕구도 생기는 법인데 지금은 놀랜탓인지 그런 맘이 생기지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민가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한다. 왜 그럴까. 사회가 안정되지 못해서 그렇다는 것.그간 허리띠 졸라매서 만든 이 나라가 왜 이모양 이꼴이 되었는지를 잘 살펴야 할 것이다. 대선일이 촉박하게 다가오지만 국가적 어젠더가 사라져 대선이 김 빠진 맥주꼴이 돼버렸다. 하지만 전북도는 나름대로 기대를 걸고 있다. 2036 하계올림픽이 전북 전주에서 개최될 수 있도록 대선공약으로 채택해주길 바란다. 서남대 의대 폐교로 생긴 49명의 정원을 갖고 공공의대를 설립해주길 바라고 제2중앙경찰학교도 남원으로 유치해주길 바라고 있다. 여기에다가 군산 김제 부안간 이해다툼이 첨예한 새만금에 특별행정구역을 설정해주길 바란다. 광역시가 없는 전북은 전주 완주를 통합시켜 앵커도시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선공약에 반영되길 바라고 있다. 지금껏 도민들은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도록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다. 이번에도 이심전심상 또 몰표가 예상된다. 그 이유는 도민들이 6.3 대선이 왜 치러지는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 전원합의체가 이재명후보에 대한 공직선거법 판결에서 유죄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을 잘못된 판결이라고 지적하면서 더 지지가 굳건해졌다. 이 후보에 대한 재판이 대선 후로 미뤄지면서 사법리스크가 상당부분 해소,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도민들의 지역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한덕수와 고건은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 관료들이다. 모두 전북출신으로 학벌과 경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이들을 보는 눈은 다르다. 특히 고향에서 그런 것 같다. 이들의 공통점부터 보자. 학력을 보면 1949년생인 한덕수는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인 경기중고와 서울대를 졸업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1938년생인 고건 역시 경기중고와 서울대를 졸업했으며 서울대 재학중 총학생회장을 역임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잠시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다음 경력을 보자. 한덕수는 21세 때 행정고시에 합격해 특허청장,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역임했다.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경제부총리, 주미(駐美)대사, 2번의 국무총리(노무현·윤석열 정부)를 거쳐 이번 윤석열 탄핵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고건 역시 23세 때 행정고시에 합격 후, 37세에 최연소 전라남도 지사를 거쳐 교통부·농림식품수산부·내무부 등 3개 부처 장관을 지냈으며 국회의원과 두 번의 서울시장, 두 번의 국무총리(김영삼·노무현 정부)를 역임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대통령 권한대행도 맡았다. 이만큼 화려한 경력이 있을까. 질릴 정도다. 이들은 출중한 능력으로 보수정부와 진보정부를 가릴 것 없이 중용되었다. 그러나 다른 점이 없지 않다. 고향에 대한 태도가 그렇고 물러설 때가 그렇다. 한덕수는 고향세탁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공직자 프로필에 서울출신으로 표기하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전북 전주출신’으로 표기했다. 그 전까지 고향을 전북으로 표기하면 일일이 정정을 요구했다는 증언도 있다. 이를 두고 영남정권에서 입신양명을 위해 고향을 숨겼다는 해석과 호남차별이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는 동정론이 나왔다. MBC 드라마 ‘전원일기’로 인기를 모았던 완주출신 유인촌의 경우도 비슷하다. 반면 고건은 서울에서 태어났음에도 군산출신인 부친 고형곤 박사를 따라 전북사람으로 활동했다. 황인성 전 총리와 함께 재경전북도민회를 만들고 2대 회장으로 출향인을 묶는 가교역할을 했다. 그리고 공직에서 물러날 때의 모습도 다르다. 고건은 2007년 대선 당시 유력한 대선 주자로 거론되었으나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했다. 한덕수는 윤석열 정부 2인자로 계엄과 탄핵에 책임이 있음에도 오히려 대선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 이어 광주 5·18묘역을 방문,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치자 “나도 호남사람입니다”를 15번 외쳤다. 이런 과정에서 전북변호사 100명이 “고향 세탁과 새만금예산 삭감을 주도했다“며 ”도민 배신행위“라고 지적했다. ‘까마귀도 내 땅 까마귀면 반갑다’는데 왜 좀 씁쓸할까.(조상진 논설고문)
KRI 한국기록원에 의해 ‘국내 최장수 TV 프로그램’으로 인증 받은 것은 무려 46년간 진행된 장학퀴즈다. 전국노래자랑보다도 역사가 더 길다고 한다. 광고주를 찾지 못해 폐지 위기에 처하자 선경그룹 고 최종현 회장이 나섰다. 2만명이 넘는 장학퀴즈 출신들은 학계, 재계, 법조계, 의료계, 언론계 등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해 오피니언 리더로서 활발히 활동중이다. 그저그런 상태이던 선경을 일약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최고 재벌로 키운 이가 바로 최종현 회장인데 그는 사람의 잠재적 가치를 꿰뚫어보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한다. 최종현 회장은 노태우 대통령과 사돈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는 머지않아 SK가 어마어마한 대기업으로 우뚝 서는 일대 전기가 됐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진 한컷이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청와대에서 사위 최태원 SK회장과 대국을 벌이는것을 딸 노소영씨가 지켜보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노 대통령은 사돈 기업에게 이동통신사 설립 이라고 하는 큰 선물을 했다. 1994년 한국이동통신 인수비용이 치솟자 반대하는 임원들에게 최종현 회장은 “지금 2000억원을 더 주고 사지만 나중 일을 생각하면 더 싸게 사는 것이다. 우리는 충분히 준비했으니 10년 이내에 1조~2조원의 이익을 낼 수 있다”며 설득했다고 한다.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있던 최종현 회장은 1980년에 이미 정보통신 중심의 시대가 올 것임을 간파했다고 한다. 1990년 노태우 정부때 공기업인 한국이동통신과 경쟁할 수 있는 민간사업자(제2이동통신 사업권) 선정을 발표하자 그동안의 준비를 바탕으로 입찰해 압도적인 점수 차로 1위에 선정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물론 사돈특혜 지적이 일었고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결국 SK텔레콤은 탄생하게 된다. '세기의 결혼'으로 주목받던 최태원-노소영 결혼은 한참 시간이 지난뒤 '세기의 이혼'으로 마무리됐다. 작년 이맘때 항소심에선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재산 분할로 1조 원이 넘는 돈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최태원 회장은 노소영 관장과 결혼식을 올리고 몇 년 뒤인 1990년대 초 장인이 있는 청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무선통신 시연을 했고, 노 전 대통령이 이를 본 뒤 이동통신사업을 민간에 맡기기로 하며 관련 법 개정에 나섰다고 한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단을 뒤집은 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종현 전 회장의 보호막이나 방패막이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SK그룹의) 성공적 경영 활동에 무형적 도움을 줬다고 판단한다"고 했다.요즘 가장 큰 관심사가 바로 SK텔레콤 해킹 사태다. 급기야 최태원 회장은 7일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런데 SK는 전북과도 해묵은 과제 하나가 계속 진행형이다. 지난 2020년 11월 SK그룹 계열사로 구성된 SK컨소시엄은 새만금에 창업클러스터와 데이터센터 등 2조원 규모의 투자에 나선다고 밝힌 바 있으나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SK E&S 등 SK컨소시엄은 새만금청의 산업투자형 발전사업을 통해 새만금에 2조1000억원을 들여 데이터센터와 창업클러스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당시 투자협약식에는 정세균 국무총리와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 SK그룹 최태원 회장, 송하진 전라북도지사, 강임준 군산시장 등도 참석했다. 새만금에 SK데이터센터를 유치하고도 4년 넘게 진척이 없는 현실에 대해 전북도민들은 의아해 하고 있다. SK그룹으로부터 2조 원 규모의 데이터센터와 창업클러스터 투자를 유치하면서 금방 뭐가 되는줄 믿었던 도민들에게 SK 최태원 회장은 답변할 때가됐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만다라> <우상의 눈물> <짝코> <안개마을> <길소뜸> <티켓> <씨받이>. 1970~8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영화들이다. 〈짝코〉는 반공영화의 상징적 이름이 됐고, <만다라>와 <씨받이>는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주목받았다. 이 영화들을 세상에 내놓은 사람, 시나리오 작가 고 송길한 선생(1940년~2024년)이다. 사실 한 편의 영화가 이룬 성취가 감독의 전유물로 인식되었던 지난날, 시나리오 작가의 존재는 부각되지 않았다. 70여편 영화를 남긴 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가 그에게 특별상을 수여했다. 덕분에 ‘전주국제영화제의 시작’을 기억하게 하는 그의 존재는 더 특별(?)해졌다. 송길한은 전주가 고향이다. 북중과 전고를 거쳐 대학 입학을 위해 서울로 갔지만 여러 이유로 학업을 중단했다. 대한석탄공사 입사 시험에 합격해 직장생활을 했지만, 내놓을만한 직장은 딱 거기까지다. 막노동부터 시장 공판장 잡일까지 가리지 않고 일을 했던 그는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흑조>가 당선되면서 데뷔했다. 첫 영화이기도 한 <흑조> 이후 그는 가장 바쁜 시나리오 작가가 됐다. 10여 년 동안 밀어닥치는 시나리오 주문(?)에 무엇을 쓰는지도 모를 정도로 기계처럼 주문을 받고 생산하는 글쟁이로 살았던 그를 자성의 시간으로 불러들인 것을 80년 광주항쟁이었다. 그즈음 임권택 감독을 만났다. 몸담았던 영화제작사를 그만두고 임 감독과 10년 동안 10개 영화를 연이어 써냈다. <짝코>를 시작으로 한국영화사에 굵은 궤적을 남긴 영화들이 이때 쓰였다. 그를 고향에 다시 부른 것은 전주국제영화제다. 영화제 초기 그는 부집행위원장을 맡아 영화제 틀을 다졌다. 변영주 감독의 <지역 영화사-전주> 시나리오를 맡아 오랫동안 기억되지 못했던 전북의 영화 역사를 기록하는데도 열정을 쏟았다. 그를 인터뷰로 만난 것은 7년 전이다. 그는 영화의 역할을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삶의 고통을 드러내고 함께 고민하며 치유하고 북돋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 올리기>를 끝으로 작업을 중단했지만 좋은 시나리오 한편 남기는 일을 소망으로 삼은 이유도 거기 있었다. 그러나 ‘시대 정신을 담은 깊고 탄탄한 시나리오로 독립영화 정신을 가진 감독을 만나 좋은 영화 한 편 만들어보고 싶다’던 그는 결국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떠났다. 전주영화제가 올해로 스물여섯 해를 맞았다. 들여다보면 영화제의 노정 위에 수많은 사람의 열정과 시간이 놓여있다. ‘독립과 대안’을 내세워온 전주국제영화제의 정신과 가치가 지켜진 것도 그들 덕분 일터. 기억은 힘이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김은정 선임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1일 선종했다. 아르헨티나 언론은 그가 남긴 유산이 100달러(약 14만원)라고 전했다. 평생 그의 청빈한 삶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세계 가톨릭 신자 13억명의 영적 지도자인 교황에게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2500유로(약 405만원) 가량의 월급이 주어진다(월급이 4600만원이라는 보도도 있음). 교황은 재위 12년뿐만 아니라 추기경에 임명된 2001년 이후 월급을 모두 교회에 기부했다. 76세 때인 2013년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이름처럼 가난하고 약한 자의 수호성인이었다. 교황청 개혁을 비롯해 빈곤 퇴치, 환경문제, 난민 보호 등에 앞장섰으며 성 소수자와 무슬림, 비신도들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2014년 8월, 4박5일 일정으로 방한한 교황은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의전차량으로 방탄 리무진 대신 소형차인 ‘쏘울’을 택했으며 헌구두에 낡은 가방을 직접 들고 다녔다. 가장 먼저 팔을 벌려 만난 사람은 세월호 사건으로 슬픔에 빠진 유족이었으며 그들이 건넨 노란 리본을 끝까지 단채 기도를 올렸다. 세월호 유족들에게 “울어도 됩니다. 그러나 결코 희망을 놓지 마십시오”라고 위로해 큰 울림을 주었다. 또 위안부 할머니와 장애인, 북한 이탈주민, 외국인 근로자들과도 함께했다. 남북문제에도 관심을 가져 방북도 추진했다. 겸손하고 근검한 평소의 성품처럼 묘지석도 고급 대리석 대신 증조부 고향에서 가져온 돌에 고황의 라틴어 이름 만을 새겼다. ‘프란치스쿠스’. 생몰연도, 재위기간도 새기지 않았다. 이처럼 청빈하게 살다간 종교인은 우리나라에도 없지 않다. 성철스님과 법정스님, 김수환 추기경 등이 그들이다. 법정 스님은 “장례식도, 수의도, 관(棺)도 짜지 말고, 사리도 찾지 마라”고 유언했다. 평소 ‘무소유’ 등 30여권의 베스트셀러에서 나온 인세 수십억원은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부처님에게 3000배를 올려야 만나주기로 유명했던 성철 스님은 돌아가실 때 염의(染衣) 한 벌과 돋보기, 검정고무신 한 컬레만 남겼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인 김수환 추기경은 선종시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한 비상금 300만원을 통장에 남겼으며, 사후 그의 뜻에 따라 자선단체에 기부되었다. 이들 종교인 외에도 진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했던 김장하 선생은 종교인 못지않은 유산을 남겼다. 100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평생 번 돈 300억원을 장학금으로 주었으며 “돈은 똥과 같아서 모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된다”는 돈철학을 남겼다.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조상진 논설고문)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은 1813년부터 1907년까지 100년 가까이 계속된 러시아와 영국 사이의 패권 경쟁을 이르는 말이다. 부동항을 찾아 남으로 진출하려는 러시아와 이미 러시아 남쪽 전역에 걸쳐 식민지를 가진 영국은 사사건건 부딪치며 지축을 흔드는 것처럼 국제무대에서 경쟁했다. 크림 반도에서 발발한 크림전쟁을 비롯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 한반도 일대에서 벌어진 러일전쟁 또한 큰 틀에서보면 그레이트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러일전쟁의 경우 외형상 러시아와 일본의 대결이지만 영국, 미국 등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영국, 러시아, 미국 등과 전쟁을 치른 아프가니스탄은 어쩌면 그레이트 게임의 가장 큰 희생양 이라고 할 수 있다. 1907년 러시아와 영국간 협상을 끝으로 그레이트 게임은 외형상 종결됐으나 미국과 중국이 관세전쟁을 치르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레이트 게임은 진행형이다. 그런데 강자가 아닌 약자의 입장에서는 그레이트 게임 같은 지축을 흔드는 상황이 벌어질 때 판단한번 잘못하면 끝이다. 속된말로 졸면 죽는다. 역사의 변곡점마다 지도자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나라가 망하고, 백성이 도륙을 당하는 일은 수없이 많았다. 국제흐름을 읽지 못한채 화를 자초했던 병자호란은 말할 것도 없고 임오군란과 동학혁명때 국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세를 불러들인 지도층의 무능과 오판은 통탄할 일이다. 프랑스의 침공 위협에 놓였던 태국이 영국을 끌어들여 결과적으로 영ㆍ프의 중립지대로 남으며 독립을 보전했던 실용외교는 상황 판단을 잘못해 식민지로 전락했던 조선과는 너무나 대조된다. 그레이트 게임은 비단 국제관계에서만 벌어지는게 아니다. 지방화 시대를 맞아 각 지역간에 벌어지는 각축전은 흡사 그레이트 게임이 진행되는 국제 외교무대나 마찬가지다. 짧게는 반세기, 길게는 한세기가 넘게 축소지향적 모습을 보여왔던 전북은 지도급 인사들의 잘못된 판단에 기인한 바 크다. 재작년 새만금잼버리 사태는 사실 여야간 그레이트 게임의 희생양 이라고 할 수도 있다. 집권당인 국민의힘과 야당인 민주당이 격돌하는 와중에 불거진 것이 바로 전북의 새만금잼버리였다.야당의 한 축을 희생양 삼아야만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는 집권당 국민의힘은 무서운 노림수가 있었다. 상대적으로 민주당은 화끈하게 전북 편을 들어주지 않은것이 바로 새만금 예산 아니었던가. 막판에 민주당이 힘을 실어주면서 일부 복원되기는 했으나, 타 시도 예산은 모두 늘어난 반면, 전북만 감소하는 기가막힌 일이 벌어졌다. 당초부터 새만금잼버리는 독이 든 성배라는 우려의 시각이 없지 않았으나 어쨋든 이를 두고두고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고래싸움이 격화하면 할 수록 눈치없는 새우는 등이 터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지난 일은 잘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전통 한지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에 도전한 것은 지난해 3월이다. 한지는 우리보다 앞서 종이를 발명한 중국으로부터 제작기술을 들여왔지만, 중국의 선지나 일본의 화지와는 기법이 다르다. 한지가 선지나 화지보다 내구성과 보존성에서 빼어난 품질을 인정 받는 것도 이 독창적 기법 덕분이다. 한지는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은 지 오래다. 기록유물 보수에 화지나 선지를 활용해온 루브르 박물관이 내구성과 보존성에 문제가 생기자 대체 종이를 찾아 나선 끝에 보존성이 뛰어난 한지의 기능에 감탄하며 이제는 유물복원까지 한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하다. 우리나라 세계기록유산 중에서도 보존성을 돋보이는 <조선왕조실록>이나 <훈민정음> 등 대부분 유물은 한지로 만들어졌다. 사실 한지의 등재 추진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선지와 화지는 2009년과 2014년에 이미 인류문화유산에 등재된 터다. 한지의 등재 신청 내용은 '한지 제작의 전통 지식과 기술 및 문화적 실천'이다. 문화재청은 한지를 ‘닥나무 채취에서 과정에 이르기까지 장인의 기술과 지식, 마을 주민들의 품앗이가 더해져 우리나라의 공동체 문화를 잘 보여주는 유산’으로 설명한다. 단순히 전통 종이 한지가 아니라 오래 계승되어온 고도의 숙련된 기술과 경험, 그리고 그것을 보전해온 역사와 문화를 가치로 내세웠으니 장인들의 ‘오래된 경험과 기술’은 온전히 계승되고 있어야 함이 옳다. 그러나 한지가 처한 현실은 다르다. 전통 한지를 만드는 장인은 줄어가고 단절 위기에 놓인 기능도 있다. 한지를 뜰 때 기본이 되는 한지발 제작 기능도 그 하나다. 전주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한지발을 만드는 장인이 있었다. 2023년 작고한 유배근 명장이다. 전통한지발을 만드는데 온 생애를 바쳤던 그는 2005년 도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그 덕분에 한지발장 종목이 만들어졌지만, 뒤를 이을 전수자는 아직 지정되지 않고 있다. 평생 한지발 만드는 일을 함께해온 그의 아내와 아들이 있는데도 기능보유자나 전수자가 지정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안타깝다. 한지의 인류문화유산 등재는 2026년 12월,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목록에 많은 유산이 올라있는 국가는 2년에 한 건씩만 심의할 수 있다는 규정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등재된 ‘장담그기 문화’까지 23개 종목이 인류무형유산 등재되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종목을 보유하고 있는 ‘다등재’ 국가다. 한지 등재를 앞두고 한지 도시를 자처하는 자치단체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반가운 일이지만 정작 챙겨야 할 일은 놓치고 있는 형국이 불편하다./김은정 선임기자
호레이쇼 넬슨, 잔 다르크, 조지 워싱턴, 모차르트, 칭기즈칸, 레닌…. 동상(銅像)으로 부활해 도시의 관광자산이 된 역사 인물이다. 이들 동상은 해당 도시와 국가를 상징하는 조형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이렇게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었어도 어느 순간 해당 인물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바뀌면 대우는 확 달라진다. 어떤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특정 인물의 동상이 수난을 당한 사례가 많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상은 서울 광화문광장에 우뚝 선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이다. 매번 조사할 때마다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1, 2위로 꼽히는 위인이니 논란의 여지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동상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 인물을 꼽자면 단연 이승만 전 대통령이다. 사회적 평가가 크게 엇갈려서다.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 1956년, 서울 남산에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인 25m 높이로 건립된 이승만 동상은 4·19혁명 때 성난 시민들에 의해 무너졌다. 이후 여기저기서 이승만 동상 건립사업이 추진됐고, 그 때마다 논란이 반복됐다. 최근 대선 정국에서 다시 ‘동상 논란’이 불거져 나왔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의 입에서 서울 광화문광장에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을 건립하자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사실 동상이나 지역을 상징하는 공공 조형물을 둘러싼 논란은 오래전부터 전국 곳곳에서 이어져 왔다. 최근 사례로는 대구광역시 달성공원 앞 ‘순종황제 동상’, 동대구역 앞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경주 관광역사공원 박근혜 전 대통령 동상, 대전광역시 서대전광장의 ‘오월걸상’ 논란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천년 전통도시 전주에서는 여태껏 동상·조형물을 둘러싼 이렇다 할 논란이 없었다. 사실 전주에는 내세울 만한 동상이나 공공 조형물이 아예 없다. 세간에 전주를 대표할 수 있는 동상 인물로 태조 이성계, 정여립, 견훤왕, 전봉준 장군 등이 거론되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논의 과정은 없었다. 아니, 그 전에 그런 조형물을 세울 만한 지역 대표 광장이나 상징적 공간이 없다. 광장(廣場)은 글자 그대로 ‘넓은 마당’이다. 유서 깊은 지구촌 도시들이 이 빈 공간에 시민의 목소리, 그리고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차곡차곡 채워왔다. 전주에도 광장이라 불리는 곳이 적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은 광장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 심지어 어떤 곳은 광장이라 불리는 이유조차 알 수 없다. 민선 8기 전주시가 ‘전주 대변혁’을 내세워 야심찬 도시개발 청사진을 내놓았지만 역시 광장은 없다. 앞으로도 암울하다. 빚더미에 앉아 있는 전주시가 도시 중심에 공터를 만들기 위해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동상을 세우기 위해 광장을 조성하자는 게 아니다. 전주를 대표하는 광장이 있어야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이고, 동상이나 지역을 상징할만한 조형물 건립 제안도 나올 수 있다. 전통도시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활력공간이 필요하다. / 김종표 논설위원
정여립의 대동사상과 전봉준의 사람이 하늘이다는 인내천 사상이 제대로 꽃 피울 좋은 기회를 맞이했다. 지난 윤석열 전 정권 때 전북은 차별과 냉대를 받아왔지만 인동초 마냥 시들지 않고 동토에서 생명을 싹트게 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 새만금잼버리 대회 실패 책임이 여성가족부와 조직위원회의 책임이 제일 무겁고 다음으로 전북도도 개최지로서 준비소홀 등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적시했다. 잘잘못을 명확하게 따지지 않고 모든 것을 전북도가 잘못한 것처럼 뒤집어 씌워 심지어 정부와 국민의 힘이 국가예산 삭감을 강행해 전북은 이미지 타격은 물론 지금까지도 예산반영이 제대로 안돼 피해를 입어왔다. 하지만 전북은 지난해 전북대에서 세계한상대회를 성공리에 개최한 것을 비롯 2036년 하계올림픽 국내후보지로 골리앗 서울을 제치고 유치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모두가 서울이 유치할 것으로 보고 전북에서 조차 반신반의 했지만 도전경성을 입버릇처럼 말해온 김관영 지사가 IOC에서 무슨 기준으로 후보지를 정하는지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비수도권 연대전략을 세운 게 주효했던 것. 지금 전북에서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도민들 맘속에 꿈틀대면서 그간 어려울 것으로만 여겼던 대광법이 통과된 것을 보고 하계오륜 유치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본다. 그간 전북인들은 느닷없이 윤석열 전 대통령이 12.3 계엄을 선포하자 구름처럼 순식간에 전주 객사 앞 광장에 모여 윤 전대통령 탄핵 관철을 위해 목이 터지라고 외쳐왔었다. 영하의 차가운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참가한 애국 시민들이 일사분란하게 탄핵을 외쳐 결국 6.3 장미대선을 가져오게 만들었다. 지금 겉으로는 전북이 조용하지만 오리가 수면아래에서 쉼없이 물갈퀴 짓을 하듯 내란 청산을 말끔하게 해서 새로운 정권을 탄생시켜야 한다는 열망으로 가득차 있다. 전북인은 왜 장미대선이 치러지는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가 그 어느때보다 강하다. 서로가 대놓고 표심을 말하지 않지만 이심전심으로 눈빛만 봐도 알 정도로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크다. 지난 대선 때는 국힘 윤석열후보에 대한 지지가 14.42%를 기록, 호남에서 가장 높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변해서 국힘후보에 일체 말이 없을 정도다. 당시 전북에서 두자릿수 지지를 보낸 것은 혹시나 행여나하고 지역개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해서 표를 주었지만 결국은 예상대로 아닌 것으로 끝나버렸다. 또 새만금에 기업유치가 잘되어 사람이 바글거리도록 하겠다는 윤 석열 후보의 공약이 희망고문이 된채 핍박만 가해지고 말았다. 전북인들은 장미대선이 개혁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여기고 뭔가 새로운 전북을 만들기 위해 더 단합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똘똘 뭉치고 있다. 특히 대선 공약이 빌공자 공약으로 그치지 않도록 국회의원들을 더 채근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번 대선승리가 미완으로 끝난 동학혁명이 승리하도록 다함께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전남도의회가 ‘전라남도 선배시민 지원 조례’를 마련해 25일 본회의에서 의결할 예정이다. 여기서 선배시민(Senior Citizen)은 ‘65세 이상의 도민’을 뜻한다. 곧 노인이다. 반대는 후배시민으로 65세 미만의 도민을 말한다. 이 조례에는 선배시민에 대한 활동 연구 및 조사, 공동체 참여 사업 지원, 프로그램 개발, 학습 동아리 지원, 선배시민 교육, 강사 양성 등의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북자치도의회도 지난해 9월 같은 내용의 조례를 만들었고, 이에 앞서 경기도의회가 2023년 12월에 가장 먼저 조례를 제정했다. 지자체들이 이처럼 조례를 만드는데 나서는 것은 100세 시대를 맞아 노년기의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굳이 노인이라는 말을 놔두고 선배시민이라 한 것일까. 노인을 이르는 말은 여러 가지다. 늙은이, 노인, 어른, 어르신, 꼰대, 영감 등등. 예전, 즉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늙은이라는 말이 자주 쓰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현실언어에서 이 말은 비하의 뜻으로 인식되었다. 대신 노인이 가치중립적인 말로 쓰이게 된 것이다. 그러다 1997년 ‘노인의 날’ 제정을 계기로 ‘어르신’으로 부르자는 제안이 있었다. 어른의 높임말로 노인공경의 분위기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원래 ‘어르신’은 남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한자로는 춘부장(春府丈) 춘당(春堂)이다. 노인을 선배시민이라 부르게 된 것은 최근에 이르러서다. 2022년에 선배시민학회가 창립되고 2024년에는 선배시민협회가 결성되었다. 본래 시민(Citizen)은 민주주의가 태동한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 나왔다. 공간적으로 도시의 거주민, 경제적으로 도시국가라는 공동체 내에서 재산과 교양을 갖춘 사람, 정치적으로 공동체의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능동적 존재라는 개념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국민국가의 구성원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국민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선배시민협회 등은 ‘노인은 실존의 인간이고 권리의 시민’이라는 새로운 노인상을 제시한다. 인간과 시민을 인식하고 앞장서서 실천할 때 공동체의 선배가 되고 이러한 존재를 선배시민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또 노인은 NO人이나 know人이 아니라고도 한다. 돌봄의 대상도 현자(賢者)도 아닌 활동적 노인(active senior)을 지향하는 것이다. 명칭이야 무엇이 되었건 노인은 최소한의 인간답게 살 권리를 가진 동시에 의무도 다해야 한다. 특히 지혜와 경륜을 바탕으로 지역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동체와 후배시민을 돌보면서, 공동체의 길을 밝히는데 앞장서는 존재였으면 한다.(조상진 논설고문)
지금은 파격의 시대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주류가 아닌 변방의 비주류가 가장 중심에 서는 경우가 왕왕있다. 그런데 잘 보면 주류의 입장에서 볼때 파격일뿐 사실은 변방이나 비주류에 있는 개인이나 집단은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온 당연한 결과다. 지난달 제10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으로 커스티 코번트리(41) 짐바브웨 체육부 장관이 선출됐다. IOC 역사상 최초의 여성 위원장이자 첫 아프리카 출신 수장이 됐다. 전북이 야심차게 도전장을 던진 2036 하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이 코번트리 위원장이 주도하는 IOC 총회에서 투표로 결정될 것이기에 그의 당선은 국내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지난 2007년 한국인 최초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탄생했다. 신생 독립국으로 오랫동안 유엔 가입조차 못하던 대한민국에서 사무총장을 배출한 것은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반기문 전 총장은 최근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명예위원으로 추대되면서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은 또한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의 사무총장(임기택)도 배출한 바 있다. 부산항만공사 사장 출신인 그는 전세계 171개 나라가 정회원인 국제해사기구를 이끌었다. 조선과 해운 안전, 해양 환경 보호, 해상 교통, 해양 사고 보상 등과 관련된 국제 규범을 제·개정하는 막중한 기구다. 요즘 지구촌의 이목은 온통 로마 교황청에 집중돼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으로 인해 가톨릭 신자들은 물론, 전세계 정치 지도자들이 운집해 소위 조문외교의 장이 펼쳐진다. 그런데 한국인 최초 교황청 장관인 유흥식(73) 라자로 추기경이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가 꼽은 차기 교황 유력 후보에 선정돼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후임자를 뽑는 콘클라베(Conclave·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 비밀회의)를 앞두고 총 12명의 차기 교황 유력 후보를 선정했는데 그중 한명이 바로 유흥식 추기경이다. 콘클라베는 라틴어로 ‘열쇠로 문을 잠근 방’ 이다. 한국 추기경이 콘클라베에 참가하는 것은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요한 바오로 2세를 교황으로 선출한 1978년 10월 투표에 자리를 함께한 이후 47년 만이다. 그런데 이탈리아 출신도 아니고, 백인도 아닌 유 추기경이 교황에 오르는 대이변을 앞두고 있으니 가슴벅찬 일이다. 4차례 북한을 방문했던 그는 특히 2021년 6월 한국인 최초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발탁돼 두터운 인맥을 쌓았다고 한다. 한국인 최초의 교황이 탄생해서 남북화해와 통일의 문을 여는 평화의 사도 역할을 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한국인 출신 교황이 2036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의 주역이 되는 꿈같은 일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다시 논란이다. 4월 22일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정치인들이 야스쿠니 신사 춘계 예대제를 맞아 공물을 봉납하거나 참배하면서다. 참배에는 초당파 의원연맹인 '다 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70여 명이 함께 했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참배는 하지 않았으나 몇 각료들과 공물을 봉납했단다. 해마다 불거져온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이제 특별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비교적 온건한 역사 인식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온 이시바 총리까지 이 대열에 동참한 상황은 일본 정부의 과거사에 대한 태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일본이 일으킨 침략 전쟁에서 숨진 246만여 명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기도 한 이곳이 참배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1978년,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되면서다. 야스쿠니 신사에 처음 공식 참배한 일본 총리는 나카소네 야스히로다. 1985년 8월 15일, 그는 각료들을 이끌고 공식 참배했다. 일제 침략을 받은 한국과 중국은 '총리가 전범의 위패 앞에 고개를 숙이는 것은 일본의 전쟁책임을 부인하는 것'이라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이후 일본 총리의 공식 참배는 중단됐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들어서면서 다시 참배 논란의 불씨를 틔웠다. 일 년에 한 번씩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겠다는 공약까지 내놓았던 그는 2001년 8월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를 시작으로 퇴임 전인 2006년까지 해마다 참배했다. 한국과 중국이 반발하고 미국까지 비판하자 일본 총리의 공식 참배는 다시 중단됐지만 2013년, 아베 신조 총리가 참배를 공식화하면서 첨예한 외교적 마찰과 논란을 불렀다. 일본은 여러 차례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하는 입장을 밝혔었다. 1993년 8월 발표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담화와 1995년 8월, 전후 50주년 종전기념일을 맞아 발표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의 담화가 그 시작이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강제성을 처음 인정한 ‘고노담화’와 일본 현직 총리로는 처음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사과한 담화로 꼽힌다. 30년 전의 무라야마 담화를 들여다보니 그 의미가 각별하다.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여러분들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본 정부는 내각이 바뀔 때마다 담화의 계승과 수정을 두고 입장을 번복하고 있다. 직시해야 할 일본의 실체가 따로 없다. /김은정 선임기자
100주년을 앞두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축제다. 지역사회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오는 30일부터 1주일간 95번째 잔치를 여는 ‘춘향제’다. 춘향제 하면 바로 남원, 광한루, 미스춘향, 판소리 등이 연상된다. 그런데 최근 이 전통축제에 뜻밖의 인물이 연계되면서 논란이다. 성공한 외식사업가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다. 남원시는 지역축제 ‘바가지요금’ 논란이 거셌던 지난해, 뜬금없이 ‘백종원 대표와의 춘향제 협업’을 발표했다. 당시 명성이 자자했던 백 대표를 축제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그렇게 백 대표는 남원의 ‘이도령’이 됐다. 축제 직후 남원시는 ‘춘향제 대성공’을 자랑했다. 언론은 ‘백종원 매직이 또 통했다. 남원을 살렸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면서 백 대표와 갈등을 빚거나 문제점을 지적한 일부 지역 상인들을 ‘악덕 장사꾼’으로 치부했다. 남원시민의 소중한 자산인 춘향제가 일순간에 백종원의 춘향제로 각인됐다. 물론 바가지요금 근절 성과를 간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는 해당 지자체 차원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게 올봄 곳곳의 꽃축제에서도 확인됐다. 옛 명성을 찾지 못하던 춘향제가 지난해 ‘백종원 이름값’을 톡톡히 본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데 지금 춘향제의 가장 큰 리스크는 바가지요금이 아니라 백종원 대표다. 최근 백 대표의 권위와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다. 지역축제장 위생 논란을 비롯해 온갖 구설에 오르면서 그동안의 사회적 신뢰와 존경, 호의는 꼭 그만큼의 불신과 분노, 반감으로 바뀌었다. 서로 동행을 자랑한 춘향제에도 불똥이 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백 대표의 춘향제 참여를 재고해 달라는 민원도 있었다. 그런데도 남원시는 백 대표에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올해 백 대표의 참여폭을 더 확대하고, 향후 ‘백종원 테마거리’를 조성하겠다는 계획까지 내놓았다. 대한민국 대표 축제 춘향제가 백 대표의 브랜드 홍보와 돈벌이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그냥 흘려버렸다. 어이없는 일이다. 새로 그린 ‘춘향영정’을 둘러싼 논쟁이면 몰라도, 그 이름값에 막대한 혈세를 들여 끌어들인 사람이 논란과 지탄의 대상이 됐으니 말이다. 모두 남원시가 자초한 일이다. 특정 인물, 그것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생존 인물의 명성에 기댄 사업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적지 않다. 굳이 백종원이어서가 아니다. 누구여도 마찬가지다. 지역축제는 지자체가 주도해야 한다. 외부 기업의 힘을 빌리면 ‘반짝 효과’는 낼 수 있어도 궁극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리스크를 함께 떠안으면서 수렁에 빠질 수 있다. 여러모로 올 춘향제를 상세히 들여다볼 일이다. 축제의 정체성과 자생력, 지역경제 파급효과, 기업참여의 명암 등을 선입견 없이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부정적 여론 속에 백종원 대표와의 동행을 고집한 남원시 자체 평가에 객관성을 기대할 수 없다. ‘춘향제 100년’을 준비하는 남원시민의 몫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지난해 총선 때 여소야대가 만들어지면서 사실상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국회권력을 장악, 여의도 대통령이란 칭호를 얻었다. 윤 전대통령은 이 대표를 정적 1호로 여기고 계속해서 부관참시까지 강행했다. 대선 출마를 막으려고 그렇게 집요하게 검찰권을 동원해서 이 대표를 전방위로 수사했지만 무위로 끝나자 난데없는 계엄령을 발동, 그 자신 한테 결국 부메랑 되어 탄핵되면서 6.3 장미대선을 치르게 했다. 공자가 설파했듯 순천자(順天子)는 존하고 역천자(逆天子)는 망한다는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하늘의 섭리에 순응한 사람은 흥하고 역행하는 사람은 망한다는 뜻이다. 탄핵당한 윤 전대통령 한테 딱 들어 맞는 말 같다. 윤 전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파면이 인용되어 두달안에 대선을 치르도록 한 규정 때문에 촉박하게 대선이 진행되고 있다. 국힘이나 민주당이 대선 후보를 경선을 통해 정하지만 뭔가 부족하고 아쉬운 감이 많다. 11명이 입후보 한 국힘은 1차 여론조사로 8명을 선출했고 2차 때는 국민 50% 당원 50%로 4명을 선출한 후 3차 때는 2명으로 압축해서 최종 후보를 선출한다. 민주당은 이재명 후보를 비롯 김동연 경기지사 김경수 전 경남지사 3명이 전국을 4개 권역으로 나눠 후보를 선출키로 했다.문제는 전북이 호남권으로 묶여 도민들과 당원들이 제대로 후보들 얼굴조차 볼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선거기간이 촉박한 관계도 있지만 그 만큼 전북이 차지한 정치적 비중이 낮다는 것을 반증한다. 대선 때만 되면 전북은 여야로 부터 찬밥신세다. 그 이유는 국힘측은 표가 나오질 않는다는 이유로 멀리했고 민주당은 90% 가까이가 절대적으로 지지를 해주기 때문에 굳이 전북에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런식으로 이번 대선이 진행되다보니까 탄핵을 이끌기 위해 영하의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주 객사 앞 광장에 모였던 도민들이 무척 허탈해 한다. 상당수 도민들은 윤 전대통령이 한밤중에 기습적으로 계엄을 선포한 때부터 헌재의 파면 결정이 날 때까지 생업을 포기한채 윤 전대통령 탄핵을 강도 높게 외쳐왔었다. 도민들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민주화를 쟁취하려고 독재타도와 직선제 개헌을 줄곧 외쳐왔던 것. 진보세력이 탄핵찬성을 외쳐왔지만 도민들도 함께 탄핵찬성을 외쳐왔었다. 그 이유는 민주주의와 경제를 당장 살려내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지난 총선 때 10석 전석을 석권해 완전히 이재명 당으로 만들어준 도민들은 이 후보에 대한 기대가 제일 크고 남 다르다. 새만금 사업을 비롯 각종 현안이 대선 공약에 꼭 반영돼 실현되도록 하기 위해 경선이 전주에서도 이뤄지길 바랬던 것. 지금 도민들은 전북특자도 출범 1년이 지났지만 특별하게 지원된 것이 없다면서 새로운 대통령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지역정서상 전북은 이번에도 민주당 후보 한테 압도적으로 표를 줄 것이다. 이 때문에 도민들은 민주당이 집권 하면 전북 출신들을 당정청에 대거 발탁해주길 바라면서 낙후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예산이 많이 지원되길 학수고대한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는 온통 6월 3일 치러지는 제21대 장미대선에 쏠려있다. 새 대통령 앞에는 나라를 다시 만드는 것 만큼의 엄청난 개혁과제가 놓여있다. 각종 지표(중앙선관위 여론조사 결과 참고)를 보면, 대이변이 없는 한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당선이 확실해 보이지만 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여야 유력정당 후보군만 해도 14명이나 된다. 후보 등록 마감 결과 더불어민주당은 김경수 전 경남지사와 김동연 경기지사, 이재명 전 대표 등 3파전 양상이다. 11명이 접수한 국민의힘은 16일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나경원 의원, 안철수 의원, 양향자 전 의원, 유정복 인천시장, 이철우 경북도지사, 한동훈 전 대표, 홍준표 전 대구시장 등 8명으로 압축했다. 그런데 이번 장미대선에서 전북정치권은 변방에 머물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있다. 우선 전북 출신 후보가 없기 때문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출마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건 아니지만 실현 가능성은 별로 없는듯하고, 박용진 전 국회의원은 일찌감치 불출마 입장을 밝혔다. 인구나 정치적 영향력 측면에서 몸집이 왜소한 전북에서 유력한 대권 후보를 내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 전북 출신 정치인들은 종종 대선때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줬기에 도민들 입장에서는 아쉬운 감이 없지않다. 전북 출신으로서 맨 먼저 대권가도에 뛰어든 이는 바로 소석 이철승이다. 1971년 대선을 앞두고 야당인 신민당 후보 경선때 소석은 김대중, 김영삼과 맞대결을 펼쳐 비록 패하기는 했으나 확실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했다. 2002년 노무현 돌풍이 불때 유종근 당시 전북지사가 대권에 도전했으나 중도에 포기했고, 정동영 의원은 제17대 대선때 집권당 대선후보까지 됐으나 이명박 후보에게 참패를 당했고, 이후 대권 후보군에서 멀어졌다. 2021년 대선때는 정세균 전 총리가 민주당 경선에 나섰으나 득표율 저조로 인해 중도 사퇴했다. 전북 출신 고건 전 총리도 한때 유력한 대권후보로 거론됐으나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끝내 출마하지는 못했다. 현 정치구도나 정치인의 면면을 볼때 앞으로도 상당기간 전북 출신 국회의원이 대권가도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는듯하다. 한편에선 김관영 지사가 올림픽 최종 유치 등 극적인 반전을 만들어낼 경우 훗날 후보군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는 희망섞인 전망을 하는데 이는 현재로선 가능성의 영역에 불과하다. 인촌 김성수를 비롯, 한민당의 오너이자 뿌리가 바로 전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민주당의 한복판에 있는 전북이 이번 장미대선에서 변방에 머무는 것은 사실 안타까운 일이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전북 출신 정치인들이 당 대표나 국회의장, 최고위원, 원내총무 등에 도전하는 당찬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성패는 추후의 문제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제주 서귀포에 있는 동광리는 해발 300m에 있는 산간마을이다. 300여 년 전, 관의 침탈을 피해 쫓겨온 사람들이 모여 화전을 일궈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니 역사는 그리 길지 않지만, 깊게 패어 있는 현대사의 궤적은 특별하다. ‘무등이왓’이란 별칭을 갖고 있던 이 마을은 조선 말기, 관의 침탈에 항거하여 농민봉기를 일으킨 진원지였다. 일제강점기에는 2년제 동광간이학교가 건립되었을 정도로 주민들의 교육열이 높았다. 마을의 비극이 시작된 것은 국가 폭력에 맞서면서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일본군이 철수한 제주도에는 미군정이 들어섰다. 직접 통치에 나선 미군정은 제주도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한다는 이유로 다양한 조치를 시행했다. 공물(세금)징수도 그중 하나였다. 이 마을 사람들은 미군정의 공물징수에 항의하며 보리 공출에 응하지 않았다. 마을에 가해진 군경의 탄압은 집요하고 악랄했다. 대부분 청장년이 탄압을 피해 산으로 피신했지만, 군경의 토벌작전으로 수많은 주민은 목숨을 잃어야 했다. 1948년 4.3 사건 당시에도 마을은 군경의 토벌 대상이 됐다. 마을 사람들은 군경 토벌을 피해 숨어 지낼 곳을 찾아야 했다. 동광리 중산간에 있는 천연동굴 ‘큰 넓궤’가 그곳이었다. 1948년 가을부터 두 달여 동안 주민 120여 명은 그 좁은 동굴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냈다. 토벌대에 발견되었지만, 다시 피신해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결국 붙잡혀 주민 대부분이 희생을 당했다. 제주 곳곳에는 동광리처럼 수난과 비극의 역사를 안고 사라졌던 마을이 많다. 제주 4.3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가 승인한 제주 4.3아카이브(Revealing Truth : Jeju 4.3 Archives)'는 진실 규명과 화해의 과정을 담은 1만 4,673건의 기록이다. 놀랍게도 이 중 대부분은 1990년대에 제주도민들이 경험과 기억을 직접 써서 낸 피해신고서들이다. 4·3의 비극을 세상에 알린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 진상규명과 화해를 위한 시민운동기록, 군·사법기관 재판기록, 정부 진상조사 관련 기록도 포함됐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역사적 가치와 진정성, 보편적 중요성을 인정받았다는 증거다. ‘역사적 비극 속에서 제주 공동체가 걸어온 치유와 회복의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 ‘화해와 상생을 향한 지역사회의 민주주의 실천이 이룬 성과’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제주 4.3사건은 이제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인류의 기억’이 됐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왜곡과 폄훼가 여전히 맞서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진실 규명의 의지와 힘이 단단해져야 하는 이유가 더 분명해졌다. /김은정 선임기자
벼르고 별러서 연 국제행사인데 망신살만 뻗쳤다. 책임을 피할 수 없었지만 울분이 앞섰다. 전북도민 누구도 지자체의 책임을 거론하지 않았다. 대신, 머리띠를 두르고 주먹을 쥐었다. 행사 개최지인 전북에 마녀사냥식 비난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파행으로 얼룩지면서 책임의 칼날이 전북을 향했다. 갈길 바쁜 새만금 SOC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폭거가 뒤따랐다. 전북이 잼버리 유치에 나서면서 SOC 등 새만금 내부개발에 기폭제로 삼겠다는 의도와 기대가 있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부‧여당의 견강부회(牽強附會)식 공세와 어이없는 문책성 조치에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지역사회 응어리진 설움과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했다. 시민단체와 종교계까지 나서 ‘도민의 명예를 훼손하는 정치공세를 멈추고 책임규명에 나서라’고 외쳤다. 은연중에 새만금 잼버리 유치 공로를 내세우면서 공동조직위원장까지 맡았던 모 국회의원은 곧바로 대정부 투쟁의 선봉장이 돼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김관영 전북지사는 “제기된 의혹에 대한 진실을 밝히겠다”면서 전북도가 먼저 자체 감사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총성만 울린 채 중단됐다. 곧바로 감사원 감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예견된 일이다. 관련 법률에 명시된 ‘중복감사 금지’ 규정에 의해서다. 떠들썩하게 감사원 감사가 예고된 상황에서 김 지사가, 전북도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 억지 공세와 비난, 그리고 책임 떠넘기기에 대한 격한 항변, 울분 표출의 한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어물쩍 건너뛴 자성의 시간이 다시 왔다. 감사원이 ‘2023년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추진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를 마침내 내놓았다. 감사 착수 1년 6개월여 만이다. 준비‧운영기구인 조직위원회와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 행사를 유치한 전라북도의 부실한 업무처리와 무책임 행정이 겹친 총체적 부실이라는 게 감사원의 결론이다. 새만금잼버리 추진 주체 중 하나인 전북자치도에서도 ‘잘못한 만큼의 책임’을 되새기고, 반성해야 한다. 전북의 미래를 위해서다. 게다가 지금 전북은 잼버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지구촌 최대 축제 올림픽 유치에 나서지 않았는가. 골리앗 서울을 제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게 된 전북의 도전에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국제행사 개최 역량을 의심하면서 잼버리 파행의 아픈 기억을 애써 불러내고 있다. 경쟁에 뛰어들었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다. 어렵게 잡은 전북 대전환의 기회다. 걸림돌이 된 잼버리를 다시 디딤돌로 만들어야 한다. 보여주기식 반성과 입장 발표로 끝낼 일이 아니다. 드러난 과오를 꼼꼼히 살피고,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그해 여름날의 악몽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굳이 책임의 경중을 따져 뒤로 물러서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올림픽 유치에 나선 도시답게 책임감과 자신감을 보여줘야 한다. 실추된 도민의 명예와 자존심, 전북의 위상을 회복하는 길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전주시민들은 완주 전주 통합에 찬성인데 반해 완주군민들은 소극적이며 반대가 많다. 양측의 통합을 놓고 찬반단체가 구성돼 찬반 활동에 들어갔으나 완주 무주 진안 출신 민주당 안호영 국회의원과 유희태 군수, 완주군의회가 결사 반대해 자칫 4번째 통합이 물건너 갈 상황에 놓여 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양측이 속내를 감추지만 그 실상을 알아보면 정치적 이해관계가 철저하게 대립돼 진전이 안되고 있다. 느닷없이 계엄령을 발동해서 대한민국을 하루아침에 아프리카 변방국 보다 못한 나라로 만들었던 윤석열 전대통령을 파면시켜 6월3일 장미대선을 치르게 한 위대한 시민정신을 갖고 있기에 완주 전주 통합도 역사의식과 거시적 안목을 갖고 추진해 나가야 한다. 생활권이 같은 완주와 전주는 경제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공장부지가 없어 더 공단을 조성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전주시는 비싼 아파트 분양가와 청년들의 일자리가 없어 65만 인구가 해마다 줄고 있다. 완주 전주 통합은 전북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다. 전북은 대광법 통과로 발전의 전기를 마련했다. 도로와 철길 등 사회간접시설을 국비로 건설할 수 있어 그 만큼 경쟁력이 강화된다. 이 같은 좋은 여건을 일부 정치인의 이해관계로 살려 나가지 못하면 천추의 한으로 남게 될 것이다. 사실 완주는 공단분양이 잘 되어 다시금 공단을 조성해야 할 상황이라서 앞길이 탄탄해 보인다. 인구 10만명 달성도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이어서 통합문제에 굳이 목을 멜 입장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통합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더 발전할 기회가 있음에도 그 기회를 살리지 않고 오불관언으로 일관하면 후세들에게 죄를 짓는 행위나 다름 없다. 지금은 수도권대 비수도권 대결구도로 파이를 키우기 위한 통합이 대세다. 이미 청원과 청주가 통합해서 어떤 결과를 도출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청원과 통합한 청주시는 중부권 허브도시로 발전을 거듭, 수도권에서 밀려난 기업들이 입주러시를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가질 않아도 일자리를 마련해 삶의 질을 높여가고 있다. 통합을 놓고 바라다 보는 눈 높이를 너무 미시적 잣대를 갖고 들이대선 안된다. 각종 복지혜택이 잘 갖춰진 마당에 굳이 전주시와 통합할 필요가 있느냐는 완주군민의 생각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아적 태도에 불과할 따름이다. 지금부터는 완주군민들이 통합을 통해 전북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통합작업에 나서야 한다. 안호영의원도 지역구 문제라서 신경이 곤두세워지겠지만 적극 반대하는 군수와 군의회 의원들을 설득해서 통합토록 해야 한다. 그간 안 의원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군민들의 사랑과 격려를 충분하게 받았기에 그에 보답하는 자세로 나와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전주시도 말로만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고 할 게 아니라 통합시장 통합시의장을 완주 출신한테 준다고 선언해야 한다. 끝으로 전주시는 완주군민이 요구하는 사항을 다 들어줘야 한다. 아무튼 장미대선에 나선 이재명 후보도 이 문제에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주문 :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이같이 주문을 낭독하고 재판을 마쳤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로부터 123일, 국회 탄핵소추로부터 111일만의 일이다. 이 기간동안 많은 국민들은 가슴 졸이며 불안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연일 엄청난 시위와 함께 가짜뉴스가 난무했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문 대행 등 8명의 헌법재판관은 수십차례 머리를 맞대며 고통스런 평의를 거쳐 전원일치 결론을 냈다. 8 : 0이라는 만장일치를 통해 국가적 혼란을 막고 사회통합의 단초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역사적 결정문(판결문)은 광인(狂人)과도 같은 윤석열 시대의 막을 내리고 새로운 정부 수립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도록 했다.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본질적 의미 외에도 많은 함의를 던졌다. 그 중 두 가지를 꼽아 보겠다. 첫째, 114쪽에 이르는 방대한 결정문은 헌법교과서요, 명문장이다. 이번 결정문은 계엄선포 요건 등 쟁점마다 객관적 증거와 법 조항을 대며 법리적 해석을 내놓았고 군더더기 없이 간단명료했다. 부사 형용사 등을 자제하고 어려운 한자나 법률용어를 최소화하는 등 생활언어를 사용하려 노력한 점이 눈에 띤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결정문의 백미(白眉)는 5쪽 분량의 ‘결론’부분에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제1조 제1항)로 시작하는 이 대목은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하였다’고 끝맺고 있다. 여기서 대한국민은 헌법 전문에 나오는 용어다. 둘째, 헌법재판관의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계엄사태로 감정이 메마른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해줬다. 대표적인 게 문 대행의 일화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문 대행은 경남 진주에서 한약방을 하던 김장하 선생(본보 2024년 4월 2일자)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공부할 수 있었다. 그가 6년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밝힌 두 일화는 감동 그 자체다. 하나는 “제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인사하러 간 자리에서 선생은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닌 이 사회에 갚아라’ 하였고, 그 말씀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했다. 또 하나는 “제가 결혼할 때 다짐한 게 있다.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최근 통계에서 가구당 평균 재산이 한 3억원 남짓 되는 거로 아는데 제 재산은 (아버지 재산을 제외하면) 4억원이 조금 못 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평균 재산을 좀 넘긴 거 같아 반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읍출신 김형두 재판관은 지난해 12월 25일 부친상을 당하고도 정상출근해 변론기일을 준비했다. 또 자폐성 장애를 가진 둘째 아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피고 그로부터 세상을 폭넓게 이해하는 법관으로서의 자세를 배운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의 가슴 따뜻한 일화는 선한 영향력으로 어려운 시대에 등불이 되었으면 한다.(조상진 논설고문)
4월 13일은 일년 365일중 하나일 뿐이지만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 매우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 날이다. 조선이 건국된지 꼭 200년이 되던 1592년 4월 13일 한반도에 사는 이들에게 꿈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대참사가 다가왔다. 왜군의 조총소리와 함께 시작된 임진왜란이 바로 그것이다. 무려 7년간 국토는 유린됐고, 살아있는 민초들의 코와 귀가 베어졌다. 침략자인 왜군의 무자비한 살육과 약탈은 말할것도 없고 조선을 돕겠다며 한반도에 건너온 명나라 군사들의 횡포 또한 상상을 초월했다. 오죽하면 그 당시에 백성들 사이에 “명군은 참빗, 왜군은 얼레빗” 이라는 말이 나돌았을까. 명군이 지나고 나면 참빗으로 훑어내듯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기가막힌 현실을 개탄하는 말이었다. 어정쩡한 종전이 이뤄졌으나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조선은 불과 한 세대만에 또다시 정묘호란(1627년)과 병자호란(1636년)의 치욕을 겪게된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근대화 이후 양력을 사용했는데 어김없이 4월 13일 또다른 격변이 찾아왔다. 5공화국이 말기로 치닫던 1987년 소위 4.13 호헌조치가 바로 그것이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분출하는 국민적 요구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4.13 호헌조치를 발표했다.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호헌(護憲)은 원래 나쁜 의미가 아니었으나, 4. 13 호헌조치는 직선제 개헌(改憲)을 바라는 국민의 뜻과는 달리 체육관식 간접선거로 정권을 좀 더 연장하겠다는 의미였다. 분노한 국민들은 ‘호헌 철폐’를 외치며 거리에 나섰고 결국 6월항쟁과 직선제 개헌으로 귀결됐다. 그게 벌써 38년전 일이다. 87년 개헌에서는 상당 부분 국민의 기본권 강화가 이뤄졌으나 가장 핵심적인 것은 유신(1972년) 이후 없어졌던 대통령 직선제였다. 당시엔 단임 대통령 직선제가 지고지선의 가치로 여겨졌으나 점차 세월이 흐르면서 대통령 한사람에게 제왕적 권력을 부여하는게 과연 맞는가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탄핵을 당한 이는 말할것도 없고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임기를 마칠때쯤엔 욕만 먹고 퇴장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하지만 유력한 대권 후보들은 시대적 흐름과 달리 개헌 문제를 외면했다. “나까지는 대통령을 한번 하고 나서 다음번에나∼” 라고 하는 정치공학적 계산이 깔려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또다시 윤석열 탄핵으로 인한 6월 3일 장미대선을 앞두고 권력구조 개편과 대통령 임기를 조정하는 개헌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대다수 대권 후보들이 개헌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으나 가장 유력한 후보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금은 내란 종식이 먼저”라며 개헌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제1당인 민주당이 반대한다면 현실적으로 개헌은 어렵고 호헌조치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현행 헌법 호헌조치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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