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가 우리 사회에 좋은 영향 미칠 수 있어”
“외국인 학생들은 나라별로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어 금방 입소문이 납니다. 대학이나 익산, 나아가 대한민국 이미지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해 정말 성심을 다했습니다.”
32년간 원광대학교 교직생활을 마침과 동시에 다시 학교로 돌아와 봉사에 나선 김종현 전 원광대 학생생활관장.
코로나19가 전국을 뒤덮고 있는 가운데 무엇이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겠다는 일념에 격리시설 도시락 봉사에 나선 그는 자신의 선택을 ‘작은 실천’이라고 표현했다.
원광대 외국인 유학생 격리시설 입구에서 만난 그는 마른 체격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호복을 착용한 채로 철두철미한 인상을 풍겼다. 연일 계속되는 숙소 생활에 힘들 법도 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봉사에 대한 보람과 감염 예방 최일선에서의 긴장감이 묘한 조화를 이뤘다.
‘실천, 봉사, 정, 정서적 안정, 학생들, 소통, 변화.’
한 시간여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이들 단어를 반복해서 쏟아냈다. 그의 말들은 모두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하며 조금씩이라도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
지난 3월부터 1년간 사회적응기간을 가질 예정이었지만 그의 선택은 다시 학교였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대학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특히 원광대의 경우 중국인 유학생이 많아 대응에 고심 중이었기에 “방학 중이니 기숙사 1동을 격리시설로 활용하자”고 학교 측에 제안했다.
시설은 충분했지만, 문제는 관리 인력 확보였다. 도시락은 물론 24시간 모니터링이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적잖은 인원이 필요했다. 학교 정규인력이 투입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고 만약 감염될 경우에 대한 위험부담이 컸다.
별도 인력이 필요했지만 혼자서는 무리라고 판단, 퇴직한 동료들의 의사를 타진했다. 단체 채팅방에 봉사의 취지를 알리고 개별적으로 의사를 물었다. 처음 2~3명이던 호응이 13명까지 늘어났다. 이중 기저질환이 없는 이들로 10명을 추려 학교 측에 뜻을 전달했다.
그렇게 시작된 봉사에서 그는 항상 솔선수범했다. 야간 비상상황에 대비한 당직도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3월 중순부터 아예 격리시설에 봉사자 숙소를 마련하고 짐을 풀었다. 그가 선택한 객지생활은 한 달 가까이 지속됐다. 2주간의 자가격리 기간이 끝나 퇴소했던 학생들 이야기에서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김 전 관장은 “항상 마음을 놓지 않고 학생들의 불편이 없도록 임했다”면서 “1명의 확진환자 발생 없이 마무리 지은 것이 작은 일이지만 큰 보람이다. 학생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유학생활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간다면 더없는 큰 기쁨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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