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6-02-15 15:57 (Su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학·출판

교응의 미학이 절묘하다⋯전호균 시인 '봄은 아픈가'

“삐져나온 마음/ 복숭아나무 서너 가지에/ 아기 꽃잎들을 깨우고 있다/ 옆에, 옆에/ 가지에서도 꽃들이 기지개를 켠다/ 투명한 향기가 여기에 있다고/ 나비 떼 찾아들어 꽃들을 어우른다/ 나비 떼 찾아들어 꽃들을 어우른다/ 꾼들이 지나가고 나면 씨방에/ 생살이 부풀 텐데/ 저들의 봄도 참 아프겠다/ 나는 붓끝에서 시간을 빨기 전에/ 잠시 고단한 기억을 터놓고/ 복숭아나무 그늘에/ 한 줄의 화제를 또박또박 못질했다/ 봄은 아픈 거다”(시 ‘봄은 아픈가’ 중) 미술작가임과 동시에 시인이기도 한 전호균이 시집 <봄은 아픈가>(제이비)를 그려냈다. 총 5부로 구성돼 90여 편의 시가 실려있는 시집 속 전 시인의 작품에는 시의 삼 요소가 균등하게 배분되면서 또 회화적 이미지로 형상화되는 특별한 색채를 띤다. 소재호 문학평론가는 전 시인의 이번 시집을 ‘서정성이 회화적 이미지를 띤 영활의 시’라고 총평했다. 그는 “시인의 시는 감성적 정조는 알맞게 조절되고 감상은 사뭇 절제된다”며“또 그림으로 형용되는 상징물들은 이미지즘의 단계를 밟는다. 이미지의 아우라 변용으로 다양한 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시 몇 편을 골라 깊이 음미해 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실제 책 속 시편들을 감상해 보면, 수직적 교응의 교합이 시편마다 합융해 있다. 화가이기도 한 그는 피사 되는 만물의 질료를 그 근원적 실재에서 통찰하고 소위 견자의 논법대로 아우라를 묘사해 낸다. 전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오랫동안 생각의 무늬만 붙잡고서 좋아하는 붓을 들지 못했다”며 “그림을 가을옷으로 지어 입히고 까치의 노래 듣는 소나무의 푸른 그늘에서 먹물을 달빛에 말렸다, 때때로 밤낮없이 그림이 내 귀속에 자꾸만 말을 할때마다 시어들을 가족으로 불러 모아 놓고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스케치하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날 당신과 함께 같은 꿈을 키웠던 기억의 언어에 채색해 당신이 몹시 그립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시를 그렸다”고 소감을 전했다. 시인은 동국대 미술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월간<한국시>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등단했으며 현재 전북문인협회와 전주문인협회 회원으로 시인으로서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5.04.16 18:18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정숙인 작가-이선애 '방울을 울리며 낙타가 온다'

이삼십 대엔 월급을 타고선 월례처럼 서점엘 갔다. 요즘엔 서점보다 도서관의 서고에 더 매력을 느낀다. 다른 작가나 시민의, 책을 골라 읽는 큐레이션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올봄, 전주시립 완산도서관의 <자작사색> 입주 작가로 3층 책장의 두 칸을 큐레이션 하게 되었을 때, 이선애 시인의 『방울을 울리며 낙타가 온다』를 선보인 적이 있다. 에로티시즘으로 읽어야 할지, 자기 구현으로 읽어야 할지. 그의 시는 상처투성이의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에 멈추지 않고, 공감 이상의 세계, 그 고통의 세계로 거침없이 들어가는 것이다. 상처와 어둠을 이해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함께 버티는 것이다. 그의 시는 매일의 뉴스, 내가 기억하거나 잊었거나 어떤 사건의 뒤를 추적하게 했다. “산다는 것은 머리를 박고/ 목숨을 불꽃 위에서 꽃피우는 것”(「사랑의 기술 2 –가스레인지」) “꽃잎은 그렇게 죽음을 앞지른다” (「사랑의 기술 3 –업사이클링」) “들여다보면 희생도 이기적이다/ 강산은 그저 변하지 않고/ 나를 통하여 너에게 간다/ 악역은 늘 나의 몫” (「사랑의 기술 4 -전골」) 한때 저자의 스승이기도 한 이은봉 시인은,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 12년만인 2020년에 첫 시집을 낸 것에 대해 추천사를 붙이는 일이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꼼꼼하게 뜯어 읽어야 그의 시가 지닌 깊이에 이를 수 있다고. 프랑스 시인 랭보의 말을 빌려,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며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 향기 있는 시, 좋은 시를 쓰기는 어렵다고. 그가 제 시를 상처의 기록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기인한다고. 시인의 말에서 그는 “한 발자국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공중을 펼쳐 놓고/ 발자국을 더듬었다./ 발이 푹푹 빠졌다 그때 낮게 하늘을 나는/ 한 무리 새들의 흰 배가 보였다./ 여린 숨결이 밀고 가는 굶주린 탈주/ 새들의 바닥은 하늘이구나!/ 오독의 천국에서 시간을 눌러 죽였다.”고 했다. 그의 모든 삶과 공간은 슬픔과 고통을 기록하는 작업실로 존재한다. “완성은 언제나 미완성보다 쓸모없는 것인가”(「안나푸르나 –산 혹은 밤」) “사라진 과거는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방울을 울리며 낙타가 온다」) “사라진 과거는 돌아오지 않고”(「공룡발자국 옹달샘」) 시인은, ‘내 몸’이 ‘어린 神이 태어나는 고요한 능선, 정신만 외롭게 빛나는 사막’임을 놓치지 않는다. ‘서늘한 카페’에서 ‘진한 아라비카 커피가 목젖을 적’시면 ‘실재와 악몽 사이에서 기호를 낳는 자궁’이 된다. 그의 과거는 지하도시 같은 비밀스러운 카페와 책꽂이가 가득한 도서관이나 자신의 서재와 같은, 침묵이 으르렁대는 절집, 또는 그의 모든 기록의 장소인 사람, 그 장소를 통해 공간과 시간을 낙타의 가시 돋친 붉은 꽃을 먹으며, 환골탈태의 고통을 견디고 버티지 않고서는 다다를 수 없는, 창작의 쾌감을 기다린다. 사라진 시간을 놓친 슬픔과 그리움, 자기검열의 공간. 그의 시 한편한편은 각각 하나의 방에 들어있다. 원고지 한칸한칸의 네모난 방에 든 것이다. 그의 시집은 아파트 한 동 같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았고, 언제나 현재형으로 살아있다. 그의 네모난 원고지, A4, 워드 자판은 세계이며, 모든 시로 향한 거울이다. 시인은 수없이 많은 방에, 과거의 기록을 가진 사람을 들이고 타자와 자신의 경계를 허문다. “한 줄기에서 태어난 수많은 잎사귀/ 똑같이 제 몫의 햇살 나누어 갖는다/ 그의 붓 자국이 내게로 건너온다”(「사람주나무」) 과거, 현재, 미래가 섞여 있는 것이 시이고, 시의 순간은 지난 시간을 더듬는 자리에서 온다고, 시는 우리가 지나온 과거의 발자국에 대해서만 물을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정숙인 작가는 2017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백팩'으로 등단했다. 작품으로는 몇 편의 단편소설과 채록집 <아무도 오지 않을 곳이라는, 개복동에서>(2017)가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5.04.16 18:18

작은 설렘을 기록한 수필⋯노은정 수필가, '하루살이' 발간

노은정 수필가가 수필집 <하루살이>(한비CO)를 펴냈다. 책은 ‘제1부 풋사랑’, ‘제2부 코딱지’, ‘제3부 사랑은 나를 비우고’, ‘제4부 더덕 꽃향기’, ‘제5부 하루살이’ 둥 총 5부에 거쳐, 지금 독자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책 속에 수록된 수필은 한 편 한 편이 일상에서 대하는 대상을 감각적으로 수용해 지각에 이르게 한 다음 영과 융합시키고 있다. 또 몇 편의 수필에는 동화적 기법이 사용돼 작가의 내면에 잠재한 순수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번 수필집 속 글에는 작가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노 작가가 본인의 가슴이 뛸 때마다 써 내려간 글로 가득한 이번 수필집 속 기록된 작가의 가슴이 뛰었던 시간은 특별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았다. 실제 그의 가슴이 뛴 순간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밥을 먹고, 영유와 낭만을 담아 차를 마시고, 반짝이는 은빛 물결과 부드러운 바람 그리고 예쁜 꽃을 보고, 향긋한 꽃내음을 맡는 등 아주 지극히 사소한 장면들이다. 이처럼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감동하는 작가에게 수필을 쓰는 일 역시 가슴 뛰는 일이었다 고백한다. 그는 “수필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문학이기에 불완전한 삶을 끊임없이 성찰해 완전히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라며 “그동안 내 안의 울림을 듣고 생각한 흔적과 일상에서 잊히지 않은 소소한 이야기를 세상에 내본다. 어설프고 외로운 날갯짓이지만 내 사색의 정원을 찾아준 고마운 방문객들이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이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2011년 대학문단 수필로 등단한 작가는 2014년 한비문학 동시‧동화 신인상을 수상했다. 2015년 한국아동문학 동화부문 신인상, 2022년 한국아동문학 오늘의 작가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동시집 <호박이 열리며>를 비롯해 동화집 <아기 다람쥐의 외출> 등이 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 아동분과 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5.04.16 16:53

소설 '달궁', '강' 펴낸 원로 소설가 서정인 별세

실험적인 소설쓰기를 꾸준하게 실천하며 1970~80년대 한국 문학을 이끈 소설가 서정인(본명 서정택)이 14일 밤 별세했다. 향년 88세. 1936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1962년 잡지 ‘사상계’에 단편소설 <후송>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이후 소설 <강> <가위> <토요일과 금요일 사이>, 장편소설 <달궁> <봄꽃 가을 열매> 등을 펴내며 왕성히 작품 활동을 했다. 1968년부터 2002년까지 전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정년퇴임 후에도 2009년까지 명예교수를 지냈다. 2009년 7월에는 대한민국예술원 문학분과 회원으로 선임됐다. 1968년 ‘창작과비평’ 봄호에 발표한 단편소설 <강>은 작가의 대표작이다. 현실에서 소외된 인물들의 모습을 간결한 문체로 담아내 문학계의 극찬을 받았다. 실제 황석영 작가는 “1960년대 한국 단편문학의 빛나는 결정체”라고 평한 바 있다. 서정인의 문학은 인간의 타락과 삶의 어두운 측면을 정제된 문체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1987년 출간한 <달궁> 3부작은 판소리와 소설을 접목한 독창적인 형식으로 주목받았다. 소설은 한국전쟁 중 부모와 헤어진 후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주인공 인실이 부정과 허위만이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일생을 그렸다. 이 작품으로 작가는 1980년대 한국 리얼리즘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저자 특유의 형식 파괴적 실험이 전면적으로 드러난 작품으로 꼽힌다. 사회의 모습을 해학과 아이러니로 형상화하면서 다양한 문체적 실험을 시도한 작가는 한국 문학작가상, 대산문학상, 월탄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서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02년 녹조근정훈장, 2016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빈소는 경기 김포 뉴고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7일 오전 7시, 장지는 용인평온의 숲이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5.04.16 16:26

도보여행가 신정일이 길어올린 '이토록 매혹적인 역사여행'

신정일 작가에게는 으레 두 가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문화사학자’ 그리고 ‘현대판 김정호’. 40년 간 우리 산과 강, 바다를 누비며 도보여행의 신세계를 열었던 저자는 남도에서 동해까지 관통했던 ‘해파랑길’을 기록했고, 발길과 눈길이 닿는 모든 곳에 얽힌 지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 ‘신택리지’를 세상에 선보였다. 그러나 두 수식어만으로 신정일을 설명할 수 있을까. 도보여행가로서 두 발로 걷고 기록한 것들은 단면에 불과하다. 그가 탐독한 조선왕조실록부터 택리지까지 수많은 역사지리서는 여행을 기록하는데 중요한 연료가 됐기 때문이다. 신정일 작가의 밀도 높은 역사·문화적 서사를 엿볼 수 있는 책이 최근 출간됐다. '도보여행' 선구자로서 현장감도 놓치지 않았다. 신정일 <이토록 매혹적인 역사여행(사찰‧정원‧절경‧문화유적으로 만나는 우리 역사 55)>(깊은샘)에는 저자가 아로 새긴 쉰다섯가지 역사여행의 진면목이 담겨있다. 우리 역사의 문화적 근간을 이루는 주요 사찰과 서원, 정원, 자연명승, 문화유적을 저자 특유의 시각과 해석으로 풀어냈다. 저자는 땅끝 해남 미황사 달마고도에서부터 섬진강 길, 광주 무등산, 강진 다산초당을 거쳐 철쭉꽃과 진달래가 수놓인 합천 황매산과 충북 제천 충주호까지 매혹적인 역사여행길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특히 자신이 최소 세 번 이상 걸었던 우리 산하의 역사를 인문적 성찰로 서술한다. 선운사와 부석사 등 우리나라 대표 사찰을 통해 불교문화에 대한 시각을 전달하고, 사원을 통해 조선유학자의 높은 이상세계를 조명한다. "안양루 밑으로 계단을 오르면 통일신라시대의 석등 중 빼어난 조형미를 간직한 부석사 석등이 눈앞에 나타나고, 뒤로 나라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조건축인 무량수전이 있다" ('나라 안에서 가장 빼어난 절, 경북 영주 부석사' 중에서) 봄‧여름‧가을‧겨울로 구성되어 있는 책은 전남 해남부터 강원 정선까지 전국 팔도의 사계절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사진을 수록해 시각적 즐거움을 전한다. 신정일 작가는 “답사를 마치고 돌아와서 긴 여운이 남는 아름다움 풍경들이 머물러 있다가 한 편 한 편이 글이 되어 세상 속으로 나갔다”며 “이번에 펴내는 책에는 이 땅의 숨어 있는 절경들이 행간을 가득 메울 것”이라고 책을 소개했다. 현재 사단법인 ‘우리땅걷기’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정일 작가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을 역임했다. 1989년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 ‘길 위의 인문학’을 만들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정일의 신택리지> 10권을 비롯해 <강답사여행기> <역사인물교양서> 등 110권을 펴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5.04.16 16:0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영종 시인 – 김해자 외 ‘시 읽는 일이 봄날의 자랑이 될 때까지’

여기 펜이 있습니다. 4+1입니다. 샤프심과 빨강, 초록, 파랑, 검정 펜이 들어있어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찾아봅니다. 플라스틱, 금속, 스테인리스강, 염료, 벤질 알코올, 지방산, 흑연, 햇빛과 달빛의 속삭임, 바람의 귀 기울임 등등 헤아릴 수 없군요. 어느 노동자의 땀과 숨결이 섞였을 수도 있어요. 걷는사람 시인선 100호 기념 시집 〈시 읽는 일이 봄날의 자랑이 될 때까지〉는 98명의 시를 한 편씩 가리어 뽑았어요. 제목은 문신의 시 ‘시 읽는 눈이 별빛처럼 빛나기를’에서 가져왔고요. 생각은 힘이 셉니다. 마을 사진을 찍는 드론에 탈 수 있어요. 빈틈이 있어 많아진 물이 흐릅니다, 적으나 정밀한 불이 타닥타닥 무얼 짓고요. 강하고 견고한 바위가 새소리처럼 질문을 던지기도 하죠. 흩어져 있지만 실한 흙은 콧노래 부릅니다. 두 최고봉을 봅니다. 걷는 사람과 걷지 않는 나무. 다 달라, 하나하나가 시입니다. 가지가 굽었거나 썩었다고 사람과 나무를 비난할 순 없습니다. 칭찬할 걸 찾아 눈과 귀를 엽니다. 그들이 고래처럼 펄럭펄럭 춤을 출 수 있으니까요. 그들이 되어봅니다. 누군가 읽어주길 기다리며 한자리를 지켜온 그들은 자신들의 나이테가 읽을거리가 되는지 어떤지 자책에 떨지 모릅니다. 이름을 부릅니다. 누가 지어주었나, 어떤 (무)의미가 있나, 물어봅니다. 그들에게 코를 기울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배달하는 그들의 내음이 올라옵니다. 펜 하나 눌러 시 하나 펼쳐 봅니다. 경제, 과학기술, 외교, 지역 균형, 문화의 심들 하나씩 눌러 민주와 정의를 쓰고 싶듯. “길은 늘 발끝에서 어린 양처럼 멈춰 서곤 했고/ 그래서 양이 잃어버린 것은 길이 아니라 동행들이라는 것을 생각하며”(송주성 ‘막북漠北에 가서’ 중). “소가 나를 찾아온 밤엔/ 마음이 잉어를 잡아다 넣어 둔 항아리처럼/ 일렁거려 잘 수가 없네”(송진권 ‘소 꿈’ 중). “죽 먹으러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순한 거 같아”(고중식 ‘초식동물’ 중). “갓 쌓인 눈에 발이 잠기는 순간까지만/ 바래다 줘”(박진이 ‘바래다 줄게’ 중). “자작나무가 자꾸만 자작나무다워지는 곳이 있었습니다/ 나도 내가 자꾸만 나다워지는 곳에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안상학 ‘몽골에서 쓰는 편지’ 중). “내놓고 치라고 슬픔이 밖에 나와 있는 걸 안다 마음에 두었던 색을/ 허리에 매고 나아갈 쪽 반대를 치겠다”(졸시 ‘꽃멸치’ 중). “혼자 앉아 있는 것보다 옆에 커피잔이 놓여 있으면 덜 심심하다/ 아는 할머니 한 분은 헤이즐넛 커피를 해질녘 커피라고 한다”(하상만 ‘잔’ 중). “나는 누구의 대신일까/ 누가 나 대신 황야를 걸어 노을 속으로 심부름 갔을까”(김안녕 ‘뼈 심부름’ 중). 시 읽는 일은 낯설지만 본 듯한 곳으로 여행을 가게 합니다. 두근대는 심장을 가슴 밖에 내게 해요.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의 눈을 반짝이게 합니다. 시 속엔 무엇이 있을까요? 경계 없는 유일한 탈것이라는 상상이 기다리고 있어요. 시인이 오래 담가두었던 언어들이 진한 향을 내며 뒷걸음질 치고 있어요. 내 아픔과 등을 기댈 님의 아픔이 갓 지은 밥풀 냄새를 풍기고요. 이영종 시인은 2012년에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에 선정되어 2023년에 첫 시집 〈오늘의 눈사람이 반짝였다〉를 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5.04.09 18:51

청년들이 일군 민주주의 뿌리…이광재 장편소설 '청년 녹두'

소설가 이광재가 꼬박 1년을 집필한 <청년 녹두>(도서출판 한국농정)는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전봉준의 청소년기를 다룬 이야기다. 소설은 전봉준의 열두 살 때인 1866년부터 스물한 살이 되던 해인 1875년까지 십 년 간의 시간을 서술한다. 소설의 시간을 이루는 십 년의 세월은 조선의 안과 밖이 모두 혼란스럽던 시기였다. 체제의 모순이 심화되고,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이 수시로 무력 침범을 일삼았기 때문이었다. 전근대적 왕조가 붕괴됐고, 근대 사회가 열리던 변혁의 시대에 조선은 내우외환에 시달렸다. 그야말로 민심과 민생이 악화일로로 치닫았다. 그렇기에 작가는 조선 내부의 사회모순과 가렴주구가 극심해지는 시대상을 단순 서술하지 않는다. 정치사적 격변을 당대 주요 양요들의 사건으로만 치부하기엔 그 시대를 겪은 인물들이 안쓰럽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근대 이후 오늘에까지 이 땅에서 겪고 있는 '양이(洋夷)’의 문제를 성찰할 수 있도록 섬세한 필치로 동학을 묘사한다. “이제 왜구들은 조선을 제 집 강아지 다루듯 한답니다. 제 나라 임금을 천자라 칭하면서 방자하기가 이를 데 없지요. 그래서 대원위 대감 시절엔 서계를 받지 않았던 겁니다. 그 일로 왜국 사신이 뻔질나게 드나드는데 여기 이 사람이 왜국에 다녀왔으니 물어보시우.”(본문 287쪽‘) 구한말 수차례 겪은 양요는 이 땅의 근세사가 겪은 과거사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지속해서 한국인의 삶에 작용하는 현실의 문제라는 작가의식을 엿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소설에서 '청년 녹두'와 그의 일행들이 양요(洋擾)와 양이를 대하는 비판적 시각은 큰 울림과 감동으로 와닿는다.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소설 <나라 없는 나라>와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 등을 펴내며 ‘동학’에 천착해 온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는 동학사상을 뿌리삼아 농민혁명의 주역으로 성장한 청년들의 치열함을 진지하고 절절하게 전달한다. 하원오 전봉준투쟁단 총대장은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진정한 세계질서를 수립해야 하는 이 시대에 젊은 날 녹두장군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는 '청년 녹두'의 출연은 뜻깊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1989년 녹두꽃2에 단편 ‘아버지와 딸’을 발표한 이광재 작가는 동학농민혁명을 천착하여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를 펴냈다. 이후 장편소설 <나라 없는 나라>로 제5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단편집 <늑대가 송곳니를 꽂을 때>와 장편소설 <수요일에 하자> <왜란>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5.04.09 17:05

김계식 시인, 서른여섯 번째 시집 '명주실 한 꾸리' 발간

“삶의 방법을 일컫는 한 갈래로/ 쌍벽을 이루어 우리의 뇌리에 박힌/ “짧아도 굵게”/ “가늘어도 길게”라는 표현이 있지/ (중략) 자기의 목숨 줄 뚝 잘라/ 아내인 우리 할머니에게 보탬으로/ 쉰다섯 해 전에 아흔두 살까지 살게 하신/ 우리 할아버지/ 오죽 했으면 아까운 손주 아명을/ 항렬 자식 앞에 명주실의 실을 붙여/ “실식”이라 불렀으리라고/ 길거나 깊은 곳을 잴 때/ 쉬 따다가 쓰는 명주실이 인연이 되어/ 누에고치 삶아 실을 뽑는/ 옹기 솥단지 옆에 쪼그리고 앉아/ 번데기 닁큼닁큼 받아먹는 맛도 맛이려니와/ 줄줄 이어지는 명주실 바라보는 재미/ 그 어디에 비할수 있으랴”(시 ‘명주실 한 꾸리’ 중에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하루 시작을 시 쓰기로 여는 영주(瀛州) 김계식 시인이 서른여섯 번째 시집 <명주실 한 꾸리>(인간과문학사)를 펴냈다. 시집은 ‘빛이 되는 길’, ‘삶의 향기’, ‘미지의 증폭’, ‘긍정이 빚은 기쁨’, ‘쾌재의 진원’ 등 총 5부로 구성돼. 80편의 신작을 품고 있다. 매일 새벽 4시부터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시작되는 시 쓰기 시간 속 탄생된 작품이 실린 만큼, 책에는 시인의 두터운 신앙심과 더불어 신선한 창조의 기운부터 삶에 대한 번뇌까지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가득하다. “봄빛 무르익는 4월 끝 주 토요일/ 시인(P) 수필가(E) 소설가(N) 서른아홉/ 빈틈없이 계획된 문학기행의 한 촉이 되어/ 암수 정답게 짝지은 마이산을 바라보며/ 진안휴게소의 빗돌에 새겨진/ ‘행복과 만남의 길’ 일러줌을 따라/ 경상도 서남 문화의 보고 함양을 찾아갔지/ (중략) ‘하나 둘’ 선생님의 구령에 ‘셋 넷’따라하는/ 노란 병아리 유치원생이 된 우리 일행은/ 그의 설명을/ 돋보기 삼지 않고는 바라볼 수 없고/ 보청기 삼지 않고는 들을 수 없었지”(시 ‘역사의 흐름을 굽어보며’ 중)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나라도 더 깨우치려는 하화중생(下化衆生)/ 한판 곱게 어울린 장을 펼쳤으니/ 이보다 더 값진 교육의 장이 어디 있으랴”(시 ‘기행 갈무리’ 증) 또 이번 시집에는 ‘전북PEN 봄날 문학기행’과 ‘전북시인협회 문학기행’ 등 시인이 몸 담은 문학 단체가 진행했던 문학기행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당시 시인이 느낀 감상을 간접적으로 전하기도 한다. 김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서른다섯 번째 시집을 출간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며 “반 년 조금 넘은 시간인데 어찌 된 일인지 너무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는 생각이 들어, 안부를 묻고 싶기도 하고 안부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일어, 또 이렇게 삶의 이모저모를 담아 보냈다”고 말했다. 정읍 출생인 시인은 2002년 ‘창조문학’으로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전주문인협회, 전북시인협회, 완주문인협회, 한국미래문화연구회, 전북PEN클럽, 한국창조문학가협회, 두리문학, 표현문학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 황조근정훈장, 한국예술총연합회장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사랑이 강물되어> 등 일반시집 총 29권과 신앙시선집 <천성을 향해 가는 길>, 단시집 <꿈의 씨눈> 외 2권, 시선집 <자화상> 외 2권, 성경전서 필사본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5.04.09 16:15

자연을 사랑한 저자, ‘양경무의 꽃이 말을 걸다’ 출간

“봄은 시작이 더디기는 하지만 시작하기만 하면 부산하다. 매번 봄은 발바닥에서 감촉으로 오는 것이다. 단단했던 땅이 화신을 실은 볕에서 언 땅을 누벼 발끝으로 전한다. 회색빛 겨울빛에서 물오르는 소리가 들려 눈에 연한 연두의 시작을 느끼게 한다, (중략) 언덕 개나리 및 봄까치, 별꽃이 귀한 모습으로 얼굴을 내밀더니 광대나물이 얼굴을 흐트러뜨리고 꽃마리도 나와 손뼉을 친다.”(글 ‘봄을 이루는 풍경’) 자연을 사랑하는 저자 양경무 씨가 사진 에세이 <양경무의 꽃이 말을 걸다>(신아출판사)를 출간했다. 이번 책은 절박함과 한계 속에서도 고유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꽃과 나무, 풀과 이끼 등 작은 생명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카메라에 담고, 그 순간에 대한 감상과 사색, 신앙심을 함께 엮은 기록이다. 양 씨는 2016년부터 2024년까지 9년에 걸쳐 자연을 오롯이 마주하며 사진을 찍어왔다. 도심의 변두리, 이름 모를 들판, 계절의 경계마다 피고 지는 식물들을 바라보며, 저자는 존재하는 것 그 자체의 가치에 주목해 왔다. 이번 책은 단순한 자연 사진집이 아니다. 책 속에 담긴 사진 한 장 한 장은, 자연이 저자에게 먼저 말을 건넨 순간들이며, 그 말에 귀 기울인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속삭임의 기록이다. 사진과 함께 담긴 짧은 글들은 자연을 관조하는 눈길이자,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책장을 넘기며 꽃의 표정, 나무의 자세, 풀잎의 숨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저자는 머리말을 통해 “동물은 그중에서도 사람은 표전과 자세, 눈빛, 걸음걸이 등에서 전해오는 느낌과 영감, 공유, 경외, 싫어짐 등의 감정이 있다. 식물도 물로 그 자체에서 전해오는 이야기, 예컨대 절박함, 한계성 가운데서도 자신을 보여주고 전해주려는 메시지가 있다”고 말하며 꽃을 마음에 담고 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마다 선호의 감정이 있지만 저는 자신을 표현하고 전해지는 한계 속에서, 환경 속에서, 자신의 능력 가운데서 혹은 속박 같은 무언가에서 변명 없이 전해오는 메시지에 친숙해지는 것 같다”며 “제가 꽃, 식물 그리고 산과 교감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이 한정적일지라도 가까이 가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진안 출생인 양 씨는 전북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현재 그는 대자인병원 성형외과 전문의로 근무하고 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5.04.09 15:05

책을 매개로 로컬의 이야기를 나누다⋯전주 책방똑똑의 특별한 북토크

서울 밖의 저자-독자-기획자-지역이 연결되는 특별한 북토크가 완판본의 고장, 전주에서 펼쳐진다. 전주시 인후동의 한 골목에 자리잡은 ‘책방똑똑’이 오는 12일 <복닥맨션>의 북토크를 연다. ‘책방똑똑’은 전주시 인후동에 있는 수 많은 골목 중 그리 특별하지도, 수상하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하고, 가파른 골목 끝에 있는 독립서점이다. 가파른 언덕이 시작되는 골목 초입, 진짜 이곳에 책방이 있을지 의심이 드는 중, 언덕 끝 하얀 바탕 속 검은색 고딕 글씨체로 ‘책’이라고 쓰인 동그란 간판만이 책방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다. 이처럼 인적이 드물어 고요하기만 해 보이는 이곳이 오는 12일 오후 ‘서울 밖, 로컬 생활자’들의 이야기로 떠들썩해질 예정이다. 이번 북토크는 서울 밖에서 복닥복닥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모음집, 책<복닥맨션>에서 파생된 ‘서울 밖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진행된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저자와 출판사, 그리고 기획자가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번 북토크를 기획한 정은실 책방똑똑 대표는 “저희 똑똑은 독립 출판물을 판매하는 독립 서점이기도 하지만, 공간을 통해 사람들 간의 연결을 중요시하는 정체성을 지닌 ‘공간을 읽는 책방’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며 “ 때문에 도서 판매와 동시에 그간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열고, 전주라는 지역의 지역성과 장소성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다수 진행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프로그램 역시 책방의 장소성을 출판과 서점, 그리고 독자가 직접 소통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 기획된 것”이라며 “우리가 머무는 많은 공간에 자신의 삶과 경험이 녹아들 때 이곳이 장소로서 온전하게 우리의 삶을 보내는 공간으로 와닿는다고 생각해,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다”며 덧붙였다. 특히 이번 행사는 저자와 독자만이 아닌 기획자와 출판사 등 서울과 수도권에 중심된 출판문화계의 관계자가 지역에서 함께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 대표는 “책이 출판돼 독자에게 가는 과정에서, 서점은 단순한 유통 공간이 아니라 지역의 이야기를 엮고 확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지역에서 독립서점을 운영하다 보면 단순한 책 판매를 넘어, 지역과 연결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책은 특정한 공간과 시대를 담을 수 있는 매체다. 이번 북토크가 지역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책을 매개로 한 시시콜콜한 지역 이야기가 열릴 이번 북토크 참여방법 등 자세한 사항은 책방똑똑의 SNS(@ttogttog.door)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5.04.03 17:25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아현 소설가 – 김채람, 양소영, 이풀잎 '효자, 시절'

익산시 남중동의 마당 없는 주택에서 자랐다. 주택을 상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과는 거리가 있는 주택이었다. 소담스러운 골목, 대문, 마당 그리고 화단을 지나 나오는 집의 현관 같은 것들. 나의 어릴 적 공간은 이런 전원 주택 타입은 아니었다. 사거리의 모퉁이에 있었고, 마당이나 화단 같은 건 없었다. 문짝이 하나인 대문을 열면 곧장 계단이 있었고, 그 끝은 바로 현관이었다. 1층은 가게고 2층은 살림집인 주택이었다. 나는 집이 실용적이어서 좋았다. 곳곳의 틈새는 가게를 위해 알차게 사용했고, 막연히 걸어야만 지나갈 수 있는 길 없이 모든 공간이 효율적으로 활용되었다. 마당 대신 있는 옥상에서는 햇볕에 빨래를 널거나 화초를 키우고 아빠와 친 텐트에서 여름밤을 나기도 했다. 집 곁의 사거리에서는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사거리의 모두 다른 길로 연결되었다. 다만 동네에 가게랄 것은 우리 집인 그린유리와 하이퍼마트(몇 년 전, 편의점이 되었다.)뿐이었다. 덕분에 우리 집은 동네 사람들이 택배를 맡기거나 택시에서 목적지로 말하는 랜드마크 같은 곳이 되었다. 내가 성장하는 동안 동네는 서서히 바뀌었다. 아주 어릴 적에는 날마다 내 손을 잡고 집에 데려가 밥을 먹였다던 동네 오빠의 집도 있었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다 쉬던 친구네 집도 있었다. 어느 순간 그 집들은 전부 비어서 을씨년스러워졌고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다. 나중에는 어디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게 되었다. 그러기를 잠시, 집의 양옆으로 큰 빌라와 거대한 아파트가 들어섰다. 빌라와 아파트가 지어지는 동안 사이에서 말 못 할 고생도 많이 했다. 그러나 이전의 동네가 얼마나 한산하고 어두워 보였는지를 생각하면 무턱대고 거대 아파트가 싫다고 말하기도 망설여졌다.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괴롭고 고민스럽기는 사는 이도 마찬가지다. 갑작스레 동네의 변화를 회상한 것은 『효자, 시절』을 읽은 탓이다. 책은 효자주공3단지를 중심으로 그곳에서 살고, 벌고, 떠나고, 버틴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터뷰로 묶어 기록하고 있다. 책의 말미에서는 다른 아파트나 커뮤니티의 기록 작업도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사무실 앞 창고에는 아파트를 관리하며 모아두었던 사진과 도면, 각종 영수등들이 정돈되어 있다. 20년 전 효자주공3단지에 처음 왔을 때부터 어지럽게 널려 있던 자료들을 시기별, 내용별로 분류하고 정리한 것이다. 아파트가 재건축되면 다 사라질 흔적들이다. (161쪽)” 그동안의 모든 일을 기록하고 정리해 둔 관리사무소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 계속해서 마음에 남아 남중동의 그린유리까지 이어졌다. 덩달아 어릴 적 살던 동네를 나름대로 복기해보고 싶어졌다. 건너편이 아파트가 된 마당에 부모의 청장년이, 나의 유년기가 녹아있는 남중동 집도 언젠가 밀리고 헐려 사라질지 모를 일이니까. 작년에는 내게도 새로운 동네가 생겼다. 친구와 함께 전주의 97년생 아파트를 고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시작된 나의 새 시절을 가꾸며 『효자, 시절』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최아현 소설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아침대화>로 등단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5.04.02 18:32

순수한 어조로 자연의 생명력 서술…공인숙 시집 '바람의 일'

안효희 시인은 공인숙 시인의 신간 시집 <바람의 일>(신아출판사)이 “자연을 향한 한 줄기 편지 같다”라는 감상평을 남겼다. 인간은 무엇이든 사물의 내부로 침투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는데, 공인숙 시인의 시집은 상대에 대한 은밀한 유혹과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교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단 내 풀풀 나는 복숭아/생채기가 나 있다/상처 난 것도 버리지마라//산다는 건/상처를 보듬는 일/그 상처가 내가 되는 일”(‘복숭아나무 아래에서’ 전문) 시인은 화려한 수사나 상징보다는 향토적 서정에 뿌리를 둔 수수한 어조로 자연의 생명성과 삶의 근원적 의미를 담백하게 노래한다. 전통적인 서정 문법에 충실하되 삶을 과정하거나 왜곡하지 않는 절제된 감성과 진솔함으로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2007년 한국문인 시 부문 시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시인은 이듬해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 시 ‘바람의 일’이 당선되며 문단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저서로는 엔솔로지 <한국대표명시 1, 2 집> , <불곡산의 미소> 등이 있다. 공 시인은 “시인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시인의 마음에 포근한 바람의 일이 일어나는 날을 지극히 기다려본다”라고 시인의 말을 통해 밝혔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5.04.02 17:06

동화 전문 잡지 '동화마중 2025년 상반기 통권 6호' 출간

동화전문잡지 <동화마중>의 2025년 상반기 통권 6호가 나왔다. 원유순 동화작가의 ‘위기의 시대, 작가의 할 일’이라는 글로 문을 여는 이번 잡지에는 오복이·전은희 동화작가가 전하는 ‘2024 전주 올해의 책’이 특집으로 실렸다. 또 다른 특집 코너에는 노동주·아무려나 작가의 ‘우리 동화 톺아 보기’도 담겨 동화라는 문학 장르를 더욱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올해 상반기 동화 마중의 ‘마중 초대 작가’에는 김옥애·이상배 작가가 이름을 올렸으며, 각각 ‘흰민들레 소식’과 ‘엄마, 쉬고 싶어요’라는 작품을 소개한다. 이어 동화마당 코너에는 강지혜·남은영·박자호·송창우·신소담·유하정·윤일호·이수빈·장정옥·정은경·홍유진 동화작가가 함께했다. 평론·서평에는 영미 작가가 만나본 <우주의 속삭임>(하신하 작)과 박월선 작가의 시선으로 소개하는 <한성이 서울에게>(이현지 작)가 실렸다. 잡지의 마지막 코너인 ‘독자가 추천하는 동화·그림책·청소년 소설’에는 박익산·박자호·심수정·오정수·윤형주·장용수·홍유진 등 총 7명의 독자가 추천한 28권의 작품도 담겨 눈길을 끈다. 김자연 동화마중 편집자는 “’동화마중‘은 동화를 쓰고 발표의 장을 찾지 못하는 분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다”며 “장르 구분 없이 동화를 쓴 분에게 발표의 기회를 드리고 아동문학 발전에도 디딤돌이 되고자 한다. 앞으로도 동화마중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5.04.02 16:36

전주 예술인들의 삶을 기록하다…'2024 전주예술사' 발간

故목경희‧김남곤(문학), 故김윤환‧하수정(미술), 故이성근(국악), 조장남(음악), 김광숙(무용) 씨…. 전북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기라성 같은 문화예술인의 이름이다. 이들은 2012년부터 시작한 전주 백인의 자화상의 주인공으로 뽑혀 삶의 족적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진행했다. 전주문화재단에서 14년째 추진하고 있는 ‘전주 백인의 자화상’은 전주를 연고로 문화예술 진흥에 이바지한 예술인들의 삶과 예술적 가치를 조명하는 사업이다. 지금까지 선정된 문화 예술인은 모두 91명. 문화재단은 지난해 목경희, 김남곤, 김윤환, 하수정, 이성근, 조장남, 김광숙 등 7명의 원로‧작고 예술인들의 삶과 예술세계를 꼼꼼히 기록해 <2024 전주예술사>를 발간했다. 운명이란 참 기이한 것이다. 처음 백인의 자화상 사업이 시작됐을 당시에는 예술인의 삶과 업적을 기록하는 일이 활발하지 않았다. 예인을 기록하는 사업은 필요하지만, 구술‧채록이라는 낯선 작업이었기에 14년간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떤 매력일까. 문화재단이 발간한 <전주예술사> 책을 보면 어렴풋이 알 수 있다. 목경희(1927~2015), 김남곤 (1937~), 김윤환(1942~2024), 하수정(1942~), 이성근(1936~2019), 조장남(1951~), 김광숙(1945~) 등 예술 분야에서 독자적인 경지에 이른 예술가 7명에 대한 삶과 예술세계를 조명한다. 거창한 수식어나 화려한 이력만을 나열하지 않는다. 전주에서 열심히 땀 흘린 예술가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서술되어 있다. 그래서 예술가에 대한 책이지만, 예술세계에 대한 ‘썰’이나 예술가에 대한 ‘아부’가 없다. 대신 그들이 왜 이런 작업을 ,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얘기들로 가득하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전북일보 사장 시절에는 ‘7층 기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사장실이 7층이었는데 그의 책상에는 항상 빨간 펜이 있었다. 대교를 보기 위한 것. 그 시절 ”꿈에서도 대교를 본다“고 말하는 천생 기자이기도 하다. 이즈음 애써 눌러온 궁금증이 고개를 든다. 문학의 꿈이 먼저였을까, 기자가 먼저였을까, 자주 듣게 되는 우문(愚問)에 즉답을 피한 채 그는 미소로 답했다”( ‘김남곤 시인, 참 스승의 삶을 따라’ 중에서) 전주 백인의 자화상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100명의 예인을 기록하자는 의미가 담긴 ‘전주 백인의 자화상’은 어느덧 91명의 예술인을 기록했다. 100이라는 목표 달성까지 9명이 남았다. 그러나 백인의 자화상을 응원하는 이들은 숫자와 관계없이 지역의 많은 예술인들의 삶이 기록되어지길 바라고 있다. 최락기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는 “매년 쌓이는 기록 속에서 전주가 수많은 예술인을 배출하고 품어왔다는 사실에 새삼 깊은 감동과 자긍심을 느낀다”며 “전주예술사를 통해 예술가들이 일궈 온 고귀한 흔적을 기념하고, 지역의 예술인들이 예술로 이룩한 유산을 재조명함으로써 전주의 문화적 가치를 전달하고자 한다”라고 발간사를 통해 밝혔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5.04.02 16:16

'구수한 입말' 가득, 강 따라 글 따라 '시는 마침내 자사전이 된다'

온유한 시선과 유쾌한 발상이 돋보이는 순박한 시편들로 개성적인 시 세계를 탐독할 수 있는 시집 <시는 마침내 자서전이 된다>(시와 에세이)가 출간됐다. ‘강 따라 글 따라’ 시모임에서 펴낸 여섯 번째 시집에는 삶의 쓴맛과 단맛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6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공후남, 김옥희, 김용택, 김인상, 박양식, 박희숙, 유갑규, 이은수 등 시모임 회원들이 삶의 체험에서 배운 지혜를 구수한 입말과 활달한 시적 상상력으로 버무렸다. “풀하고 웬수졌냐/마당에 풀은 그렇게 뽑는 것이 아니여//애끼고 애꼈다가 더 이상/속을 달랠 길 없을 때/기도하는 마음으로 뽑는 것이여”( 공후남‘지독한 것’ 전문) “누가 그랬다//양문형 냉장고를 열 때/늘 들여다보는 공간과/가끔 들여다보는 공간 속에서/생각하게 된다고//어쩌다 나오는 공간에 숨겨진 것들은/언제쯤 나올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고//(…중략…)//용기를 내어 꺼내 본 마음/가벼워진 냉장고 속처럼/자주 여닫으면 좋겠다”( 공후남 ‘꺼내지 못한 마음’ 부분) ‘강 따라 글 따라’ 시모임은 2017년 시작됐다. 회원들은 2주에 한 번씩 모여 시를 쓰고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이야기는 한 편의 시로 완성됐다. 2018년 출간한 첫 시집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를 시작으로 매년 1권씩 시집을 펴내고 있다. 회원들은 특별한 존재보다는 사소한 것들에 애정을 쏟고 진솔한 언어로 시를 써내려간다. 특히 시를 통해 ‘나’를 표현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마음가짐도 엿볼 수 있어 글이 더욱 매력적이다. 강 따라 글 따라 시모임 회원들은 머리말에서“시는 마침내 자서전이 된다”며 “너는 솔직할 수 있는가, 솔직해도 부끄럽지 않은가”라고 독자들에게 묻는다. 그러면서 “꽃에 대해 사랑과 미움에 대해 써도 결국 그것은 반성문 같은 것”이라고 시집에 대해 소개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5.04.02 15:04

진솔하고 담박한 표현 가득⋯이경순 작가, 산문집 '봄 돌아오듯' 출간

이경순 작가가 산문집 <봄 돌아오듯>(신아출판사)를 펴내고 봄을 알린다. 총 6부로 구성돼 60여 편의 글이 실린 이번 책 속 작품은 이 작가가 평소 써온 일기 글이다. 실제 책에는 꾸밈없는 성격으로 김제 원불교 원평 교당과 서울 원불교 신길 교당에 다니며 신자들의 본보기가 되기도 했던 그가 틈틈이 일기 형식의 산문으로 메모한 글들이 수록됐다. 특히 이번 책은 3년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 생활을 하고 있는 작가의 언니, 이금영 수필가의 손길로 탄생됐다고 알려져, 지역 문인들의 눈길을 끈다. “아이를 재워 놓고 어머님과 같이 들에 나가 일하다가 오면 아이가 잠 깨어 혼자 울다가 나를 보고 슬피 울면 같이 운 적이 여러번 있어요./(중략) 달빛 감나무 아래 기죽어 서 있던 그 젊은 여자는 지금도 내 기억 속에 말없이 서 있다. 그 가슴 아프게 혼자 울던 기억을 왜 못 놓아 버리고 이따금 되살아나는가. 왜, 놓지 못하는가.”(‘달빛 감나무 아래’ 중에서) “생채 하는 날은 큰 양푼에 밥 서너 그릇 붓고 밥 비벼 참기름 쳐서 먹으면 꿀맛이었다. 우리는 곧잘 병아리 싸움도 잘하고 토라지고 아버지한테 혼나고 그랬다. 밀 농사해서 밀가루 장만해 어머니가 가마솥 밥 넘으면 호박잎 깔고 반죽 부어 밥 제지면 그 호박잎 냄새난 듯한 그 개떡이 그리 맛있어 그 맛을, 언제 볼거나”(‘가을 무 생채’ 중에서) 이처럼 작가의 산문집에는 진솔하고 담박한 표현으로 가득해 시골 아낙네들의 보편적인 삶이 투영돼, 더욱 구수한 정감을 전한다. 김영 석정문학회장은 이번 책의 감상평을 통해 “산문집 제목처럼 이경순 작가에게도 생의 ‘봄’이 다시 돌아오길 빈다. 활짝 웃는 얼굴은 활짝핀 꽃보다 더 좋은 경전”이라며 “이경순 작가가 비록 지금은 달빛 젖은 감나무 아래에 있지만, 곧 우리에게 봄이오는 소리를 들려줄 것이다. 필자도 이 작가의 활짝 웃는 얼굴이, 작가를 사랑하고 사랑하던, 가족과 친구, 교우에게 기쁨을 주는 ‘경전’이 되는 봄이 꼭 오리라 믿는다”고 전했다. 김제 출생인 작가는 원불교 원평 교당에서 입교해 원불교 서울 신길교당에서 활동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5.03.26 18:35

진안 출신 전근표 시인, 여섯 번째 시집 '아기새 한 마리' 발간

전근표 시인이 여섯 번째 시집 <아기 새 한 마리>(청어)를 발간했다. 시는 ‘인간 본성에 바탕을 둔 과거의 점철된 삶의 역사와 현재의 질곡 된 사회 현상을, 사공을 초월한 자연에 접목해 바람직한 인간성 복원을 위해 미래를 아름답게 노래할 수 있게 하는 한편의 언어적 파노라마’라고 주장하는 시인은 이번 시집 속 그의 일생을 담았다. 시집은 ‘1부 나는 누구인가’와 ‘2부 부모님 은혜’, ‘3부 자연 속으로’, ‘4부 우리 모두 함께’, ‘5부 마음의 고향’, ‘6부 죄와 벌’, ‘7부 꿈은 이루어진다’ 등 총 7부로 구성돼 70편의 신작이 품고 있다. “우르르~쾅, 우르르~쾅쾅…/ 천둥 번개가 진동하니 하늘 열리고/ 땅이 솟구친다/ 안개 자욱한 인기척 없는 새벽에/ 물 폭탄 맞고도 늠름한/ 하늘 향해 우뚝 솟은 마이산/ 암수 한 쌍 시선의 몸이 되어/ 하늘에 열린 파란 창에 흰 구름 내려/ 허리 감싸니 새 몸 단장한 모습이라”(시 ‘내 고향 마이산’ 중 발췌) “부모님께서 세상 떠나신 지 어언 20여 년/ 이 몸 살아 칠순이 지나서야/ 자식 된 도리 알았습니다/ 살아생전 날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 은혜/ 어이 잊겠습니까만/ 자식들 부모님께 생전 효도한다지만/ 그것은 모두가 거짓말이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용서하십시오”(시 ‘부모님 전 상서’ 중 발췌) 이처럼 잠시 들여다본 그의 작품에서도 느껴지는 등 이번 시집에는 그의 고향인 진안에 대한 이야기부터 부모님을 향한 사랑, 자연에 대한 예찬, 시끄러운 세상사, 시인의 소망 등 지금껏 살아온 작가의 삶의 여정을 함축해 선보인다. 전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이름있는 선남선녀 선배 시인들의 힐책이 나의 머릿속을 뒤흔든다 해도 이를 채찍질 삼아 한 조각 구름처럼, 한 떨기 바람처럼 그냥 지나쳐 버릴 뿐”이라며 “언제나 청량제 같은 향기로움으로 남은 삶은 독자 여러분의 따뜻한 가슴에 다가가는 글을 쓰겠다고 스스로 다짐 해 보면서 마지막 시집이 될지 모르는 이번 여섯 번째 시집이 발간되기까지 육성 지도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밝혔다. 진안 출신인 시인은 육군 제3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중령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하림 상무이사를 지냈다. 2008년 <한국시> 로 등단, 한국시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2015년 한국문인협회 진안지부 제6대 회장을 역임했다. 시집 <아버님! 하늘나라 그곳에도 꽃은 피었나요> <사랑합니다! 아버지> <꿈의 노래>, <하늘을 머리에 이고>, <별빛 소나타> 등을 발간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5.03.26 18:34

삶의 풍경 속에 머무르다…김석천 신작 시집 '궁금증'

선한 눈길과 맑은 언어로 독자들과 호흡하는 김석천 시인의 신작 시집 <궁금증>(신아출판사)이 출간됐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삶의 풍경 속에서 기꺼이 머물며 작고 미약한 존재들의 생활과 감정을 촘촘히 기록해나간다. 담백한 시선은 일상의 소소한 장면을 은유적으로 풀어내어 일상 너머로 향하는 길을 열어젖히고, 범상한 매일에서 다른 차원의 정경을 발견해낸다. “잎이 피기도 전에/꽃이 먼저 만발했다//겨우내/뿌리들이 온 힘을 다해/영양과 수분을 밀어 올리고/잎들이 봄을 양보하지 않았다면/저토록 아름다운 벚꽃을/연출해 낼 수 있을까//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뿌리와 잎이다”(‘벚꽃’ 전문) 김석천의 시에는 고독과 슬픔이 드리워진 순간들이 담겨있다. 세상의 관심 밖에서 사라져가기 쉬운 존재들에게 애틋한 마음으로 연민과 공감의 손길을 건네는 것이다. 시인의 그런 눈길은 주변의 자연환경, 사물과 상황 등으로 이어진다. 어지러운 세상 속 뭇 존재들의 가치를 되새기는 시들을 만나다보면 한편의 시를 길어 올리는 시인의 예민한 기척에 감탄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시인의 유머와 해학성을 엿볼 수 있는 시들도 다수 수록되어 있다. “모두 평등해서 좋다//모처럼/거추장스런 형식과 예의를/활활 벗어 던지고 나니/홀가분하다”(‘목욕탕에서’)에는 시인의 너스레가 담겨 있어 피식 웃음 짓게 만든다. 또 “신호등이 많다고/짜증내지 마라//( 중략 ) //위반하고 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참는다”(‘신호등’)에는 왠지 모를 공감을 자아내 시집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평범한 상황과 인물들의 모습을 담은 80여 편의 시를 통해 따스한 기운과 뭉클한 감동을 전달한다. 김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미수(米壽) 기념으로 엮어낸 세 번째 시집”이라고 소개하며 “이번에는 뒤 작품 해설도 입히지 않고 그냥 알몸으로 내놓는다”고 설명했다. 시인은 1939년 익산에서 태어나 남성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63년 서라벌 예술대학(현재는 중앙대학교에 통합 편입됨)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평생 교직에 몸담았으며, 2003년 이리중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했다. 시집으로 <세상 뱃속에 있다가>와 <시의 유방>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5.03.26 18:3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경옥 동화작가-김두를빛'벽을 타는 생쥐, 바타'

얼마 전, ‘과학사’를 다룬 책을 읽었다. 현재의 문명사회를 이룩하기까지 과학의 역사가 얼마나 많은 도전과 실패의 결과인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도전과 실패의 반복은 단순히 과학사에만 한정되는 건 아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목숨까지 담보로 도전한 결과 지구상에 인간이 출현한 짧은 시간 안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처럼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벽을 타는 생쥐, 바타>이다. 목련 아파트 202동 지하에 사는 생쥐 부부의 열세 번째 아들이 탐험가를 만난 건 그날 내린 눈 때문이었다. 하얀 눈송이가 소복소복 내리는 것을 본 열세 번째 아들의 가슴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뛰었다는 서문으로 시작한다. 지하에 사는 생쥐 가족 중 유일하게 호기심이 많은 열세 번째 아들은 창밖을 바라본다. “세상이 너무나 멋져 보여서.”라는 말과 함께 모두 잠든 새벽, 지하를 나와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 위로 첫발을 내디딘다. 호기심이 없다면 시도할 수 없는 위험한 외출인 셈이다. 밖으로 나오면 생쥐에게는 위험한 상황의 연속이지만 엄마마저도 ‘너 자신을 위해서 살라.’며 열세 번째 아들의 모험에 불을 지핀다. 지하가 아닌 아파트 단지 내를 돌아다니며 드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삿짐을 옮기는 사다리차를 발견한다.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차를 보면서 고개를 뒤로 젖히던 열세 번째 아들은 지금껏 생각해 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방향인 ‘위’를 보고 놀란다. 그곳에서 탐험가 쥐를 만난다. 처음 탐험가를 만났을 때 그에게서 먼 길, 바람과 햇살, 촉촉한 새벽 공기와 오후의 마른 대지를 지나, 적막한 밤의 길을 걸어온 것 같은 바람 냄새를 맡는다. 작가가 생각하는 탐험가에 대한 묘사에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을 탐험하다 보면 끊임없이 낯선 곳을 찾아다니며 고단한 길 위에서 걷고 바람과 햇살과 이슬을 함께 해야 하니 어쩌면 바람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탐험하며 정처 없이 떠도는 게 신기하기만 한 열세 번째 아들은 탐험가 쥐에게 묻는다. “왜 떠돌아다녀요?”라고. 이에 탐험가는 “문득 ‘쥐로 태어난 건 어쩔 수 없지만, 어떻게 사느냐는 내가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아닌 낯선 곳에 가보고 싶어졌지. 그때부터 여기저기 떠돌아다닌다.”며 대답한다. 탐험가 쥐의 대답 속에서 조건보다 선택과 도전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탐험가 쥐의 말을 들은 열세 번째 아들은 사람들이 사는 공간에 호기심을 가지고 사다리차를 타고 오른다. 10층이 넘는 거실에서 바라본 세상은 지하실 안에서는 본 적이 없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비밀스러운 세상을 보게 된다. 경이로움을 느낀 열세 번째 아들은 창문과 현관문이 닫히는 사이에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곳에서 알게 된 햄스터와 며칠을 보내며 결국 인간에 의해 발각되어 쓰레기봉투에 담겨 버려지고, 쓰레기 차에 실려 쓰레기 처리장까지 옮겨진다. 우여곡절 끝에 가족들이 있는 목련 아파트로 돌아왔지만, 가족들은 떠나고 없었다. 이에 열세 번째 아들은 고양이에게 쫓기면서 나무를 타고 아파트 벽을 오른다. 평상시라면 생각도 할 수 없는 벽을 오르는 도전. 그렇게 오른 20층 아파트 옥상에서 바라본 세상은 땅에서만 살았으면 볼 수 없는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세상은 이렇게 생겼구나’를 인식하고, 도전하지 않고 지하에 안주하고 살았더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세상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그러다 옥상에서 만난 인간 여자는 열세 번째 아들을 바라보고 신기한 듯 먼 곳을 가리킨다. 그곳은 옥상보다도 더 높은 ‘라라타워’다. 열세 번째 아들은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며 다시 또 길을 떠난다. 과연 열세 번째 아들이 도전에 성공할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미 그는 도전했고, 자신의 세상과는 다른 낯선 세계를 확인했다. 그리고 또 다른 탐험의 길을 떠난 것으로서 자기 세계의 확장이라는 경험을 선택했기에 여기에 또 다른 평가는 의미가 없다. 이처럼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시도하기 전과 시도한 후의 삶의 변화는 크다. 도전은 자신의 공간을 넓혀가는 작업이기도 해서, 새로운 것에 대한 모험은 살아있음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경옥 동화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두번 째 짝>으로 등단했다. 이후 2019년 우수출판제작지원사업과 지난해 한국예술위원회 ‘문학나눔’에 선정됐으며, 2024년 안데르센상 창작동화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의 저서로는 <달려라, 달구!>, <집고양이 꼭지의 우연한 외출>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5.03.26 18:33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