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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시네마(Healing Cinema)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치유 의미로 사용하는 Healing의 어원은 그리스어 Holos에서 찾아볼 수 있다. Health의 어원이기도 한 Holos는 Holy(신성한)와 Whole(전체성)을 뜻한다. 전체성이란 매우 복잡하고 다의적인 용어인데, 칼 융의 개성화란 말을 통해 이해하자면 인간 속에는 정신의 분열을 지양하고 통일하게 하는 요소가 내재되어 있는데 이것이 자기, 혹은 본연의 자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영화로 힐링한다고 하니 질문이 많다. 한 어르신은 영화 보면 암이 나아요? 이렇게 물었다. 세상에 치유 도구가 많이 있는데요. 영화도 그중 하나입니다. 어떤 치유 도구든 활용해서 도움받으세요. 이 어르신 조금 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를 보고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린 후 말했다. 내가 저렇게 살았어! 덕수는 한국전쟁 이후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 캐릭터다. 되고 싶었던 것, 하고 싶었던 것도 많았지만 가족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하다가 늙었다. 영화를 치유의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 연구하고, 임상에 적용하고, 인력을 양성하는 일을 주로 하는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가 창립 13주년을 맞았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을 영상영화심리상담사 라고 하며 현재 국내에 13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힐링 시네마란 교육, 상담, 심리치유 시 영상과 영상매체를 활용하는 모든 방법을 지칭한다. 주재자가 피교육자나 내담자에게 치유를 촉진할 수 있는 영화를 선택하고 주재자-내담자(피교육자)-영화 간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대안적인 해결 방법을 습득하거나 자신과 타인에 대해 정서적인 통찰을 깨우치도록 하는 과정이다. 개인의 성장과 치유를 위해 영화를 활용하는 것은 구어체가 시작되면서 유래한 이야기 하기와 자기 반영 사이의 오랜 연장선에 있다. 영화 보고 자기를 반영 하는 것, 치유의 핵심이다. 방법을 개략적으로 소개하자면 첫째, 영화 보고 목록을 작성한다. 대상은 아동청소년, 가족, 부부, 페미니즘, 노인 등 생애 주기별로 나눈다. 이후 연도별, 국가별, 사용 빈도별로 범주를 세분화한다. 둘째, 영화 만들기 작업이다. 시나리오 작성에서부터 영화 촬영 기법, 상영회까지 주관한다. 청소년 영화(진로, 또래 관계, 학교폭력, 성교육, 자존감, 다문화 등 다양), 가족영화 앨범, 영상 자서전 등 적용 범위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셋째, 사진 작업이다. 사진 찍기와 사진 지각의 주관성에 초점을 맞춘다.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내담자(피교육자)가 반응하기까지 심리적 과정, 감각, 지각, 인지를 다룬다. 넷째, 내담자와 함께 영화를 보고 영화 속 메시지를 현실과 연결하고 포커싱 한다. 항상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영화를 보며 지각하는 것은 객관적인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라는 사실이다. 주요 기법으로는 영화를 통해 통찰하도록 안내하는 지시적 접근, 잊힌 경험과 기억에 접촉하도록 돕는 연상적 접근, 감정의 방출과 정서의 환기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연결하는 정화적 접근이 있다. 영화는 경험과 접촉하고 무의식으로 이끌며, 이를 통해 의식을 확장하고 다른 세상과 만나는 기회를 제공한다. 방어를 해제하고 본연의 자기와 만나 기쁨을 만끽하도록 하는 경지, 힐링 시네마가 추구하는 세계다. /이승수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이승수 회장은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단비심리상담센터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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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05 17:00

알바트로스와 자전거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팔복예술공장 <크리스 조던:아름다움 너머> 전시를 보며 말문이 막혔다. 시작부터 충격을 받았다. 작품 「침묵의 봄」은 농약으로 숨진 18만 3천 마리의 새들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새들임을 알 수 있는 형상 외에, 구별할 수 없는 무수히 작은 점들마저 모두 인간에 의해 사라진 새들이었다. 분명 아름다웠지만, 너무 아픈 아름다움이었다. 전시의 마지막 순서였던 다큐멘터리 <알바트로스>는 마음이 아파 끝까지 보지도 못했다. 함께 사는 생명체들에게 인간이 얼마나 사악한 존재인지를 다시 통렬하게 실감했다. 보들레르는 시집 『악의 꽃』, 「알바트로스」에서 이렇게 썼다. 뱃사람들은 아무 때나 그저 장난으로, / 커다란 바닷새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네, / 험한 심연 위로 미끄러지는 배를 따라 / 태무심하게 나르는 이 길동무들을. / 그자들이 갑판 위로 끌어내리자마자 / 이 창공의 왕자들은, 어색하고 창피하여, / 가엾게도 그 크고 흰 날개를 / 노라도 끄는 양 옆구리에 늘어뜨리네. / 이 날개 달린 나그네, 얼마나 서투르고 무력한가!알바트로스는 거대한 날개 때문에 활주 공간이 없으면 날아오르지 못한다. 인류 문명은 알바트로스의 활주공간을 계속해서 파괴했고, 더는 날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크리스 조던의 작품 중에 「미드웨이 : 자이어의 메시지」라는 것이 있다. 나선형, 소용돌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Gyre는 아일랜드 태생의 시인 예이츠가 인류 문명이 2천년 주기로 순환한다는 이론을 만들었을 때 사용하기도 했다. 자이어론을 문명발전론에 대입한다면 같은 모습이 순환하면서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명이 순환하며 점진적으로 나아간다는 이론을 거부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문명은 그렇게 변모해왔다. 그런데 그런 이해가 인간의 삶을, 멈추는 순간 쓰러지는 무한질주의 자전거타기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중학교 시절, 체육대회 때마다 빠지지 않았던 경기가 자전거 천천히 타기였다. 넘어지지 않고 가장 늦게 결승점에 닿는 사람이 승리하는 경기였다. 지금 우리는 그 경기 규칙을 배워야 한다. 문화는 거꾸로 가면 안 된다고 믿겠지만, 얼마든지 거꾸로 갈 수도 있고 어쩌면 지금은 바로 그렇게 해야 하는 시간인지 모른다. 이제껏 질주하며 만든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후세에게 물려줄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멈추고 뒤돌아서는 것도 문화다. 앞으로만 질주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전의 문화를 불완전하고 미개한 수준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맞는 생각일까? 우리가 찬양하는 모든 문화는 과거의 것이다. 한편으로는 찬양하며, 한편으로는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은 근본적으로 불일치를 갖고 있다. 구르는 것은 언젠가는 멈춘다. 시간의 장단이 있을 뿐이다. 인류는 지금의 예측치보다 더 오래 구를 수 있었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을 실현하며 구를 수 있었다. 앞으로도 더 구르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이끼는 끼지 않는데, 바퀴를 부식시키는 독이 자꾸 끼고 있다. 바퀴를 더 잘 구르게 하려고 윤활유를 쳤는데, 그게 독이어서 바퀴를 부식시키고 있다. 자전거는 멈출 때의 자세가 중요하다. 너무 속도를 낸 자전거는 멈추기 어렵다. 속도를 줄인 뒤에야 안정적으로 멈출 수 있다. 멈추자는 것이 아니다. 천천히 달리며 더 많은 풍경을 오래 보자는 것이다. /천세진(문화비평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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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28 17:29

힘이 되는 문화예술경영…창작활동과 행정지원의 뉴딜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오늘날 예술 활동은 개인의 자유로운 생각, 감정 등을 창작할 수 있는 순수함이 있지만 르네상스시대만 하더라도 후원이란 주문자였고 작가와는 주종관계에 가까웠다. 그 시대에는 모든 예술분야를 장려하고 후원하는 진정한 의미 보다는 특정가문의 사회적 지위상승과 정치권력을 강화하기 위한수단으로 삼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거장 중 한 사람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는 피에타(성모 마리아가 죽은 아들 예수를 안고 있는 슬픈 모습을 묘사한 예술작품의 통칭) 조각 작품을 23세의 젊은 나이에 완성했으니 천재 중의 천재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작품의 명성으로 미켈란젤로는 당대 최고의 스타가 되었고 피에타로 인한 명성에 힘입어 1501년에는 미켈란젤로의 예술 여정에 정점을 찍는 작품제작 주문을 받는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인물 다비드(다윗)을 조각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대리석의 크기가 5m 정도 거대한 돌덩이를 다룬다는 것은 당시의 유명조각가들도 엄두를 내지 못할 작업이었으나 26세의 패기 넘치는 미켈란젤로는 감동적으로 완성을 했다. 다비드를 조각해 나갈 때 재미있는 갑과 을의 일화가 하나 있다. 다비드 작품을 주문한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위원회의 위원들은 간혹 작품에 대한 말 한마디씩을 던지곤 했는데 다비드상의 머리 부분이 너무 크지 않느냐고 계속 시비를 걸어 왔다. 원래 말도 없고 사교성이 없던 미켈란젤로는 대꾸도 하지 않고 작업에만 여념이 없었는데, 하루는 머리가 커 보인다는 시비에 견디다 못해 돌가루를 한줌 쥐고 조각상 위로 올라가 조각도로 깍아 내는 시늉을 하면서 돌가루를 떨어뜨리자 위원들은 그제 서야 입을 닫았고 다비드상은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사람의 큰 키 높이정도 되는 단 위에 설치되었는데 관람객들은 상당한 높이에 위치한 조각상을 보기 위해 고개를 젖혀 올려다 보아야 한다. 멀리 있는 부분은 실제보다 작아 보이니 바라보는 사람의 눈에 제대로 된 비례로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 미켈란젤로의 생각을 성당의 추진위원들은 알 리가 없었다. 행정적인 지원을 하는 위원회와 작업현장의 미켈란젤로의 심리적 갈등은 서로의 입장에서 근본적으로 이해를 달리할 수밖에 없다. 미켈란젤로가 로마에서 활동할 수 있었고 천지창조, 최후의심판 등 위대한 작품들을 탄생시킨 배경에는 당시 교황 율리우스2세의 초청에 의한 것이었고 거대한 과시적 목적과 작업에 열광하는 두 사람의 의기충천 하는 기질의 충돌은 주와 종의 관계 또는 갑과 을이 되어 이루어진 결과물들이다. 예술지원행정과 실행되는 예술의 현장은 상호 의존 관계지만 예술경영, 현장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은 작가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의 권한과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기 때문이다. 기관은 공적 자원을 집행하기 때문에 공익실현과 절차상의 투명성 등 신뢰성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진행에 개입할 수밖에 없지만 예술 활동의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수직적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적 파트너십의 적극적인 협치가 필요하다. 예술가들은 전문성, 소통, 이해의 부족을 구실로 행정부서를 갑 이라 하고 행정부서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리한 요구와 민원제기로 한계를 넘어서는 예술인들을 오히려 갑이라고 하는 불편한 진실을 자유로운 창의성 보장과 행정지원의 효율성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뉴딜, 즉 새로운 계약관계가 이루어지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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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21 17:37

한(恨)과 천이두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그의 쑥대머리를 기억한다. 서울, 누구의 혼인식(1998년 1월)에 참석했다가 전주로 돌아오는 관광버스 안에서 찰지게 쑥대머리를 불렀던 것이다. 일국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당대 최고의 문학평론가인 분이 관광버스 안에서 판소리를 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가 천이두 교수이다. 그는 근대문학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김소월, 서정주, 김동리, 황순원 등의 작품뿐만 아니라 1970년대를 풍미한 작품들까지 면밀히 분석했다. 첫 저서인 『한국 현대소설론』(1969, 형설출판사)에 수록된 「한과 인정」을 통해 한(恨)을 언급한 이래 『한의 구조 연구』(1993, 문학과지성사)에 이르기까지, 한에 몰두한 연구가이기도 했다. 그는 한에 슬픔이 내재된 것은 사실이지만 원(怨)과는 차원이 다른 웅숭깊은 정신문화임을 밝혔고 이를 멋과 슬기로까지 끌어올렸다. 한국 정신문화의 뿌리인 한(恨), 여기에 깃든 슬픔의 내력을 천이두 교수도 비껴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슬픔은 폭이 넓고 깊었다. 평생을 뙤약볕에 그을려 얼굴이 더 이상 하얘질 가망이 없는 민중의 삶을 사랑했다. 갯벌에서 바지락 캐다가 저녁놀과 눈 맞추는 잠깐, 산자락에서 취를 뜯다가 한숨 쉬는 잠깐, 감자 캐다가 논두렁 깎다가 깻잎 따다가 시름 뉘어보는 잠깐에 선명히 새겨지는 이 땅의 집단적 그리움을 아꼈고 아파했다. 갑오년 죽창과 일제의 수탈과 분단과 625의 떼죽음, 보릿고개와 유신독재와 5월 광주의 학살로 모질게 이어지는- 근현대사의 비참한 숨소리가 아직도 삶과 역사를 핍박한다는 사실에도 집중했다. 그의 글줄 안팎에 철저하리만큼 한국적 빛깔이 충만해 있음은 이를 증명한다. 이 지점에서 그는 한(恨)을 만났을 것이다. 사람들이 형벌처럼 짊어진 슬픔 속에 슬픔을 넘어서고 싶은 욕망이 도사리고 있음을 꿰뚫어본 지점도 삶의 현장일 터이다. 여기서 그는 한이 불행한 삶을 견디게 하는 동력이자 윤리적 조절정치라는 탁견에 닿았고, 진정한 화해를 바라는 정한(情恨)에 이르렀으리라. 모두가 정의에 굶주려 원통절통함에 갇혀 있을 때 천이두 교수는 역사의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민중의 억울함을 한(恨)으로 껴안고 피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글은 엄정하다. 모순으로 점철된 시대의 한복판에서 붓끝을 벼렸으되 그의 언어미학은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다. 예술에 앞서 삶이 먼저라는 것을 깨친 냉철한 학자였던 것이다. 한을 멋과 슬기로 끌어올린 어른. 그의 업적은 단지 업적만으로 치부될 수는 없다. 콜라와 햄버거와 AI를 끼고 사는 세대에게 한국 문화의 원천인 한(恨)을 명징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유는 또 있다. 외국 문예이론과 사회담론에 속박됨 없이 시와 소설과 판소리를 명쾌하게 분석해간 글줄을 읽다보면 제발, 한국의 자존심을 지키고 살라는 그의 엄한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천이두 교수는 오래 전부터 겨레의 스승이었다. 요즘 그를 기억하는 이가 드물다고 들었다. 부귀영달과 먼 분이었으므로 갈수록 잊힐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의 품에서 일가를 이룬 학자들과 시인작가들은 오늘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은사님의 학문적 순결성과 치열성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오는 7월 7일이 천이두 교수의 4주기이다. 당신의 제사상에 찰진 쑥대머리 한 자락 올려야 하리라./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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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14 16:45

이제 겨우 시작인 일들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열 한 살 아들의 입에서 뜻밖의 질문이 흘러나왔다. 엄마,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떤 대답을 해줘야 할지 순간 멍해졌다. 아이의 눈에도 지구가 빠르게 병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나 보다. 자신의 하루만 봐도 플라스틱을 쓰는 일은 너무 많고, 학교에서 재활용교육을 받고 분리수거를 해도 교문 밖만 나가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문구점에서부터 정체모를 비닐과 플라스틱에 담겨있는 과자를 먹는 일부터 시작해서 친구들이 플라스틱에 들어있는 음료수를 날마다 먹는다고 말한다. 아들이 이 질문을 던진 것은 환경의 날을 앞두고 시작된 크리스 조던 : 아름다움 너머 전시회를 팔복예술공장에서 보고 나온 직후였다. 7월 11일까지 진행되는 크리스 조던 사진전은 우리에게 자연 생태계의 위기를 보여주며 우리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의미있는 전시다. 크리스 조던은 환경예술 분야의 독보적인 작가로 손꼽히지만, 본인 스스로는 환경운동가나 예술가가 아니라며, 현재의 삶을 직시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전하는 메신저일 뿐이라 말한다. 인디고서원에서 출판된 크리스 조던의 책에는 「세상에서 존재하는 모든 슬픔에 대해서 느끼려고 하는 것, 아름다움을 알려고 하는 것, 이 세계를 온전히 사랑하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자연에 대한 슬픔까지도 온전히 알아주는 일이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의 대표작인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득 찬 알바트로스의 사진은 지금의 인류가 만든 환경 문제의 비극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플라스틱 조각을 먹이로 착각하고 자신의 새끼에게 먹이는 알바트로스는 결국 이유도 모른채 죽임을 당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너무 편리하기만한 소비문화와 산업성장이라는 이유로 분별력을 상실한 채 쓰레기를 생산해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겨우 탄소발자국과 제로웨이스트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직은 다수가 아닌 소수다. 그럼에도 고마운 것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차츰 빨대가 사라지고 있으며, 환경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점이다. 책방을 운영하며 생태코너의 책들에 늘 주목했다. 1회용품을 쓰지 않기 위해 나부터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 재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갔다. 그러나 개인이 하는 것에는 늘 한계가 느껴졌고 매일매일 무섭게 쌓여가는 배달음식들의 플라스틱 쓰레기나 택배박스들을 보면 순간 절망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크리스 조던의 전시회를 통해 다시금 지구의 슬픔과 분노를 직시하며 극복해야 하는 용기와 마주했다. 그리고 주위를 다시 둘러보니 이를 함께 하는 청년들이 있었다. 1회용품과 플라스틱제품을 전혀 쓰지 않고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마켓을 지향하는 불모지장 팀은 전주의 가게들과 연합하여 우유팩과 플라스틱 뚜껑을 모아 재활용을 시작하고, 플라스틱 화장품 용기를 바꾸기 위해 화장품회사를 공격하는 캠페인을 벌이며 두려움을 희망으로 바꾸고 있다. 음식가게에서 음식을 담기 위해 용기(그릇)를 내기 시작했다는 용기캠페인처럼 우리는 지구를 위해 모든 용기를 총동원해야한다. 그리고 아들에게 절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을, 우리가 살아있는 한 희망은 계속되어야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기 위해서라도.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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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07 14:54

트롱프뢰유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사실이나 진실일까? 1670년경, 플랑드르 출신의 화가 코르넬리스 헤이스브레흐트는 <그림의 뒷면>이라는 작품을 그렸다. 그림을 보면, 실제의 캔버스 액자를 뒤집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 그림들을 언뜻 보기에 현실로 착각하게 하는 효과를 가진 그림이라는 뜻의 프랑스어트롱프뢰유(trompe-loeil)라고 불렀다. 당시에 유행했던 트롱프뢰유는 그림으로 착시를 만들 수 있다는 기술적인 의미가 컸다. 트롱프뢰유는 17세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었다. 신라의 솔거가 황룡사 벽에 그린 <노송도>나, 고대 그리스 시대에 제욱시스와 파라오시스가 대결을 펼치며 그린 그림들도 트롱프뢰유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전반까지는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이 유행했다. 유행은 지났지만, 지금도 극사실주의 그림들은 계속해서 그려지고 있다. 극사실주의 작품은 사진을 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한다. 정말 실제 같구나 하는 감탄과 함께 한편으로는 왜 사진과 같은 그림을 그리는 가에 대한 의문도 생긴다. 극사실주의는 트롱프뢰유의 현대적 재현이라는 의미만 가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실제처럼 보이는 허구를 굳이 만들어, 우리가 믿고 있는 어떤 것들을 뒤집으려는 것일까? 사물이나 현상을 뒤집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기술적 방식이고, 하나는 내용적 방식, 즉, 사유의 전복이다.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뉘지만, 우리 눈에 먼저 다가오는 것은 기술적 방식의 산물인 미술작품이고, 내용적 방식조차도 작품을 보고 난 후의 해석에서 끌어내어진다. 현대인들은 선호하는 매체와 정도는 다르지만 거의 모두 SNS를 하고 있다. SNS를 통해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의 대부분은 이미지다. 현대인의 삶은 이미지 속에 들어있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기술들과 동거하고 있는 셈이다. 마셜 맥루언은 기술이 확장하는 것은 인간의 신체와 감각이라고 했다. 현대문명의 기술들은 여러 측면에서 예술의 영역을 확장했다. 극사실주의가 그 증거 중 하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확장해야 할 것은 감각과 신체가 아니라, 사유다. 삶은 비슷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상업적 사물을 통해 드러낼 경우에는 여러 범주(알고리즘)의 하나에 해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다름을 얻는 방법은 다른 이들의 것과는 다르게 해석되는 내용을 갖는 것이다. 누구도 기술적 양식들을 피해가며 살기는 어렵다. 하지만 트롱프뢰유처럼 보이는 삶은 피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예술적으로 표현했을 때 트롱프뢰유 단계인지, 그걸 넘어서 사유의 전복 단계에 이르렀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삶의 명작처럼 보이는 대중 스타의 삶을 베낀다고 해서 멋진 삶이 되지는 않는다. 가짜를 보고 날아간 참새가 될 수도 있다. 멀리서 선망하는 삶이 실제로 보일지라도, 가까이 다가가 보면 꾸민 것일 수 있고, 알맹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처럼 다를 수 있다. 이것이 나의 삶이라고 내놓은 이미지가, 체험으로 일군 풍경들에서 얻은 이미지가 아니라, 누군가 만들어 놓거나 제공한 것들에서 얻은 이미지라면, 그 삶은 트롱프뢰유에 깜박 속은 시간의 이어짐일 뿐이다. 언젠가 가짜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공허밖에 남지 않는다. 삶은, 이미지를 넘어선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 /천세진(문화비평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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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31 18:11

색채로 얘기하고 색채에 빠져보자!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우리는 색채 속 에서 평생을 살아간다. 고대에서 시작되어 시각적, 감성적인 부분에서부터 미학, 디자인은 물론 심리, 물리, 경영, 사회, 의학 등의 영역까지도 활용 되어 왔다. 4차 산업 혁명을 선도하는 것은 디지털문화뿐만이 아니다. 색채도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밀접하게 존재해 있으며 지구촌의 환경문제에 있어서도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정부에서는 컬러리스트 자격증시험을 실시해서 학문으로서의 전문가를 생산하고 있고 컬러리스트들은 기업에서 컬러마케팅이라는 기획단계에서 부터 눈부신 활동을 하고 있다. 컬러마케팅 이란 기업들이 시장에 상품을 내 놓을 때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색상으로 포장하여 관심을 끌어 대박으로 연결되어지게 하는 역할이다. 색상의 선택은 생산 과정 중 가장 심도 있게 결정을 한다. 정해지는 색상에 따라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시켜 매출로 이어지게 하는 소비자의 시각적 선택에 높은 비중을 두는 감성 마케팅이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C-19로 인해 마음이 우울한 시기에는 어두운 색채 보다는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화려한 색채의 상품들이 인기가 높다. 컬러마케터들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가오는 계절의 변화와 경제의 호, 불황으로 예견되는 사회의 상황에 맞는 색채발굴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 전에는 자동차의 색상이 흰색,은색,검정색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에는 빨강,주황,파랑등 다양한 색채로 제작되어 출고되고 있으며 냉장고 세탁기도 백색에서 벗어나 유명화가의 그림이 사용되기도 하고 컬러리스트에 의해 개발된 특별한 색상으로 변신하여 소비자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한편 색채가 심리적으로도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지면관계상 몇가지 기본색채만 살펴보자면 해방이후의 빨강색은 부정적인색채로 인식되었고 현재도 간혹 정치판에 이 색채가 튀어나와 설전을 벌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미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빨강색의 위력을 실감한 적이 있고 국가대표 축구선수 유니폼의 고정색채 이기도 하다 빨강색이주는 따뜻함 외에도 자극성과 활성이 강하고 유대감의 형성과 감정의 고조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노란색은 일단경고의 의미를 준다. 노란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낙천적이며 가을을 탄다 보라색과 더불어 예술적인 색채라고도 한다. 그림을 그리다가 엎드려 잠든 아이의 손에는 녹색크레파스가 쥐어져 있기도 한다. 감정과 격한 흥분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기 때문이다. 희망을 상징하며 경쾌함과 창조성을 증가시켜주는 파랑색은 거쉬인의 피아노곡 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에서 우울함으로 벤쳐스악단의 나의 푸른 창공(My Blue Heaven)에서 청명과 희망을 주는 양면성이 있다. 물체와 풍경 고유의 색채를 보지 않고 반사 되어 나온 빛을 그렸던 인상파화가들은 빛의 강약에 따라 형태와 느낌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색채로 표현 하였다. 6월이 온다 원색의 계절이다 맑은 색채로 표현되는 청음의 계절, 톡쏘는 냄새로 미각을 돗구는 와인색, 은은한 향기가 매력적인 연한보라의 라일락색, 다정하게 말하는 것은 따뜻한색 계열, 차갑고 각을세운 대화는 찬색계통이다.우물쭈물 의미 없는 말소리는 흐릿한 저채도 색채이므로 기왕에 말을 할 때에는 선명한 고채도 색채의 목소리를 내어보자.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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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24 18:00

오월, 무덥던 날

이병초 전북작가회의 회장 그날, 1980년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진압작전을 예감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은 전남도청에 남은 어린 학생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너희들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제 너희들은 집으로 돌아가라. 우리들이 지금까지 한 항쟁을 잊지 말고, 후세에도 이어가길 바란다.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자로 만들 것이다. 윤상원의 말을 글로 읽은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실제로 시민군은 계엄군에 떼죽음을 당했다. 그 뒤 2007년, 한 여고생의 시를 읽고 사람들은 또 한번 말을 잃었다. 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불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 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 것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 그땐 참말 오줌 지릴 뻔 했시야. 고놈이 목이 다 쇠갔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데잉 발이 안 떨어져부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 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애 갔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오 허드랑께./ 아깐 떨어지도 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 나오데./ 고놈은 총구녕이 델꼬가고, 난 뒤도 안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재. 심장이 쿵쾅쿵쾅 허더라고./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 그쟈서 뒤를 본께 아까 고놈이 교복을 입고있데. 어린놈이/ 그라고 보내놓고 나가 테레비도 안보고야, 라디오도 안 틀었시야./ 근디 맨날 매칠이 지나도 누가 자꼬 뒤에서 갑시다 갑시다 해브냐./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 -정민경, 「그날」, 전문. 시의 정황이 급박하다. 사람보다 총구가 먼저 보이는 상황은 전시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다. 주인공의 자전거 짐칸에 웬 어린놈이 다짜고짜 올라타서는 어른더러 어서 가자고 보채던, 그 어린놈을 총구녕이 데리고 간 시적 긴장은 팽팽하다. 전라도 토박이말이 시행에 쩍쩍 들어붙는다. 계엄군 앞에서 입이 안 떨어졌지만, 자신을 사촌 형님이라고 둘러대는 어린놈 말이 사실이 아님을 밝힌 순간 주인공은 어린놈을 계엄군에 내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총구를 벗어나기 위해 자전거를 정말로 허벌나게 몰았을 주인공은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서 교복을 입고 있는 어린놈을 본다. 총구 앞에서 엉겁결에 둘러댄 언행이, 살고 싶은 욕망에 충실했던 제 목숨이 버거웠을까.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멀리하고 어린놈의 환청을 듣는 주인공, 목이 다 쇠가꼬 어서 가자고 보채던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으로 맺어지는 시상은 그라고라는 입말에 들어붙어 피가 마른다, 5월, 무덥던 날- 계엄군에 떼죽음을 당한 사람들은 트럭에 실려 어디로 갔던가. 대한민국을 집어삼키려했던 신군부 쿠데타 세력에 저항했던 광주여. 이 땅의 산천은 2021년 5월 18일 오늘도 어린놈의 뒤가 궁금해서 그라고 흰꽃들을 한꺼번에 피우는가. /이병초 전북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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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17 18:10

구호보다 중요한 것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다음 카카오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100이 있다. 당신의 습관이 되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100일 동안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자유로이 선택한 다음 꾸준히 그것을 해나가는 것을 함께 체크하고 100일까지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다. 책방 손님들과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매일 한 문장 쓰기라는 것을 3월 20일경부터 시작했다. 매일 책에서 발견한 마음에 드는 문장을 노트에 적어 사진을 찍어 올려야 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책을 뒤적이며 문장을 골라 쓰는 일이 처음엔 꽤 즐겁고 보람 있었다. 문제는 주말이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을 차리다보면 어느새 잊고 있어서 놓칠 뻔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제 겨우 반 지나왔는데, 딱 하루를 빠트려서 나는 98%의 실천율을 갖고 있다. 100일간 완벽하게 하려던 실천에 차질이 생겼지만 남은 기간 동안 만큼은 지키기 위해 노력중이다.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면 상투적으로 쓰는 100일이라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는 것이다. 백일기도의 정성이 그저 허투루 하는 기도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실천이라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며, 뭐든 해보지 않고서는 이 또한 모를 일이니 쉬이 어떤 것을 하겠다고 말을 못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5월이 되고부터는 여기저기에 실천 없는 구호들이 떠다니는 것을 보고 있다. 갑자기 거리에 화려한 현수막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지방선거는 내년이라 아직 멀었지만 물밑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5월은 특히나 첫날부터 노동절로 시작해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518 민주화기념일까지 의미 있는 날로 가득하다. 이런 날들은 구호를 만들기에 좋은 기회를 주기 때문에 현수막은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에는 어김없이 하나씩 걸려있었다. 구호들을 살펴보니 속이 빤하다. 개인적으로 들어본 이름도 있고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언제까지 이런 뻔한 구호들로 선거경쟁을 해야 하는지 나는 시민의 입장으로서 아쉬움이 많다. 누구 하나 어떤 실천을 통해 감동을 주었다든지 어떤 행동에 노력을 기울였다라든지의 소식을 들을 수 없다. 물론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시점에는 분명히 움직임이 클 것이다. 그러나 구호를 기획하고 외치기 전에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은 없는지,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실천하는 목소리가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시민들은 이제 휘날리는 현수막의 문구보다 진짜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하려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남은 기간 동안이라도 어떤 구체적인 실천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100일이 생각보다 짧지 않다. 100일 동안이라도 어린이를 위해, 또는 청소년을 위해, 또는 노동자를 위해 무언가 프로젝트를 해보는 일은 어떨까. 큰 실천이 아니라 아주 작은 실천도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늘 말은 쉽다. 정치인들이 그래서 입으로 정치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제는 움직이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선한 움직임을 준비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의 구호는 헛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신념을 실천하는 것, 나의 전문 분야는 행동이다라고 말했던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되새기며, 반짝이는 구호보다 단 한 번의 실천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이제는 만나고 싶다.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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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10 17:49

색의 과소비 시대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좋아하는 꽃이 달라졌어. 색 때문인 것 같아. 꽃을 구경하던 이의 말이었다. 봄은 꽃이 피어나는 계절이니, 색이 피어나는 계절이기도 하다. 꽃의 정체(正體)는 형태, 색상, 향기다. 그 셋을 모두 음미한 후에야 꽃의 정체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있다. 좋아하는 꽃이 달라졌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인 것일까. 그냥 시간의 일이고, 색의 일이고, 취향이 달라진 정도의 일일까? 꽃의 정체 중 하나인 색은 문화의 정체이기도 하다. 도시의 거리를 걸을 때면 현란한 색들을 만나게 된다. 거리의 간판들이 무채색이었다면 우리 눈은 훨씬 심심했을 것이다. 거리의 간판들이 보여주는 색은 원칙이 없다. 그걸 본다면 누구든 자유로운 색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믿게 될 것이다. 정말 색은 지금 자유로운 것일까? 색채전문가 미셸 파스투로(1947)는 『파랑의 역사』에서 색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일반적 경향이나 분석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 복잡한 문화 구조라 할 수 있다. (중략) 색은 무엇보다도 사회적 현상이다. 문화를 초월한 색의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쓰고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색은 자유보다는 통제와 구분을 위한 장치였고, 자유롭지 못한 역사가 대부분이었다. 조선시대의 붉은색은 서민에게는 허용되지 않은 귀한 색이었고, 군부독재 시대에는 사상적 불온함을 담았다는 의미로 읽혀 금단의 색이었다. 한국인의 옷은 흰옷이라는 상징이 있지만, 『경국대전』에서 일반 백성의 흰옷은 금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장 흔한 옷 색이 되었다. 색이 계급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동양보다 먼저 자유를 찾은 유럽에서도 2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색의 세계인 미술 작품 속에서도 인상주의 시대에 들어서서야 색은 자유를 얻었다. 색은 계급으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문화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색은 신화, 상징, 메시지다. 색이 다양하다는 것은 신화, 상징, 메시지가 넘쳐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색을 만날 때마다 신화, 상징, 메시지를 얻는 것은 아니다. 이제 신화는 사라졌고, 상징은 수시로 바뀌며, 고작 메시지를 얻을 뿐이다. 그 메시지조차도 상업적이고, 어지럽게 다가온다. 색을 가장 많이 탄생시키는 것은 기업들이다. 기업들이 보여주는 색은 소비 욕망과 닿아 있다. 플라스틱과 포장지에 입힌 색은 현란하고 육감적이다. 색은 분명 문화다. 하지만 색도 과소비의 경계가 있다. 현시대의 색들은 그 경계를 넘은 것 같다. 다양한 색은 자유를 의미하지만, 색의 다양함이 곧 자유의 수준까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업이나 정당, 이익단체, 사상단체 같은 곳에서 유포하는 색의 굴레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색은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고, 색이 만들어내는 문화가 풍성해진다. 인류의 시간이 색을 계급적, 경제적, 종교적, 정치적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길을 달려왔지만 아직 멀었다. 코로나시대에도 색은 과거의 악습으로 살아나고 있다. 코로나 증오범죄는 유색 혐오와 맞닿아 있다. 봄꽃 핀 들판 같은 색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지만, 색은 문화적 소비물이다. 과도한 상징이나 메시지를 퍼부으며 함부로 소비되는 색은 세계와 사람들의 문화적 수준을 높여주지는 못한다. 과소비도 문화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어느 것도 넘쳐서 아름다운 것은 없다. /천세진(문화비평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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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03 17:35

선(線)의 미학, 손보다 머리를 먼저 작동해야 한다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형상들은 선(線)으로부터 시작된다. 드로잉 이란 주로 선으로 그리는 회화적 표현이며 일반적 개념으로 보면 많은 선이 그어져서 입체적 작업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 속에 데생이라는 용어로 구분되지만 드로잉과 데생은 작품을 완성해 가는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도형의 기본요소가 점선면이라면 그중에서도 선(線)이 지닌 역할은 인간으로 해야 할 역할을 지탱해온 가장 위대한 정신활동이라 할 수 있다. 점이 움직여 시작된 선의 기능은 시간예술이라 하는 음악과 공간예술이라 하는 미술 창작을 리드하는 인간의 우뇌로부터 생성 된다고 볼 수 있다. 르네상스를 태동시킨 문학의 단테는 명확한 언어로 메시지를 드로잉 하듯 표현하였고 서양화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지오토는 기하학적인 드로잉의 형태에서 현실적인 드로잉을 구사하여 르네상스의 전성기에 공기원근법, 스푸마토 기법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피렌체 대성당과 같은 거대한 돔 건축양식과 회화와 조각 등을 드로잉이라는 조형언어를 통해 공간예술의 원천으로 승화시켰다. 동양화에서도 선으로 윤곽을 나타내는 구륵법(鉤勒法)이나 먹의 농담으로 선과 명암을 표현하는 몰골법(沒骨法) 같은 묘법 드로잉이 있다. 선(線)의 예술은 기원전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에서 보여주는 드로잉에서부터 2018동계 올림픽 때 첨단 기기를 이용 창공에 그려진 드론들의 드로잉과 빙상경기장 피겨스케이트의 날에 의해 그려진 수많은 선들은 인간의 창조적인 천재성이 만들어낸 시공을 초월한 최고의 작품들이다. 드로잉은 인류의 보편적인 조형문화 활동이다. 꼭 필기구와 같은 표현 도구가 아닌 정신적 표현 활동으로서의 드로잉은 인간만이 창조활동으로서의 환희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마당에 막대기로 또는 벽에 숯덩이로 그어대던 그리기 놀이는 본능적 감각의 표출이며 창작의 기본적 놀이행위였다. 창의적 사고에서 비롯된 모든 선은 의도적이든 우연적이든 자신의 자아를 표현하는 행위로서 결정된 명확한 이미지를 더해 형성된 결과물을 만들어 가는 기술이 바로 드로잉 이다. 드로잉이 미술의 기본교육이나 단순한 밑그림 또는 습작 차원의 논리로 미술시장에서는 값싼 의미로 해석된 적도 있었으나 근대 이후의 드로잉은 혁신적 표현을 추구한 인상파와 추상표현주의로 이어지는 미술의 다변화에 따른 새로운 조형 활동은 미래의 가치관을 만들어가는 콘텐츠로서의 가장 중요한 창조행위로 재인식되고 있다. 한국의 드로잉(線) 미학은 우수함이 차고 넘친다, 농악 중 상모놀이는 모자에 매단 기다란 띠가 허공에 그려 대는 공간 드로잉이고 한복의 저고리에서 치마 버선으로 이어지는 곡선미는 3차원의 입체 드로잉이며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유려한 드로잉을 바탕으로 완성된 현대종합예술의 극치이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를 따라가는 손은 그저 따라갈 뿐이다. 손보다 머리를 먼저 작동해야 한다라고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말했다. 머릿속에 과녁의 이미지를 그리고 손끝으로 화살을 당겨 과녁 중앙에 명중시키는 세계 최강 우리나라 양궁 궁사들의 드로잉처럼 팬데믹 사태로 복잡한 우리네 희로애락을 각자의 자아를 찾아 종착점에 이를 때까지 수없이 많은 선을 쌓아보자 반복되는 드로잉의 과정 속에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예술가들과 더불어 우리 모두 드로잉이라는 언어로 편하게 그려보고 대화해 보자.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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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26 17:47

시를 쓰는 여자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말끝이 쌉싸름한 여자. 안방 벽에 죽창과 개펄을 그려놓은 여자.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제 여성성을 지우고 싶은 여자. 담배 연기를 배꼽 아래까지 깊게 빨아들이던 여자. 염소 떼 몰고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는 그녀를 못 만나고 뒤를 돌아본다. 산과 산 사이 오목한 곳에 비스듬히 기운 집들이 오종종 모여 있는 동네, 이 너덜겅을 벗어나면 전북 남원시 인월면 소재지가 눈앞일 거라고 연초록 잎사귀에 햇살이 반짝인다. 눈 씻고 봐도 깡촌인, 산자락이나 부쳐 먹는 게 고작일 사람들에 섞여 그녀도 하루 품을 팔았을 것이다. 어떻게 쓰는 게 시(詩)이고 무엇을 써야만 시가 되는가. 이 문제를 붙들고, 현실이냐 미학이냐를 붙들고 골머리 앓고 있을 때 우리는 그녀를 만났다. 부조리한 현실을 도외시한 언어미학은 시의 직무유기에 속하는 반편이 문학이었고, 언어미학을 고려하지 않은 시의 현실적 문제제기 또한 구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쳐갈 때쯤이었다.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 전에 자신의 생활 태도가 일상에 누가 되는 것은 아닌지를 먼저 살피던 시절, 신영복 선생이 어떤 글에선가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제자이자 스승이다.라고 적었는데 그 글귀를 되새겨보던 시절에 그녀는 글판에 샘물같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녀의 시는 농경문화에 뿌리박힌 너나들이의 삶에 관심을 쏟았다. 가난해도 삶의 온기를 잃지 않은 이웃을 아꼈고 살뜰한 언어의 결을 매만지듯 괭이질과 호미질로 양식을 구했으며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의 이치에 닿은 삶의 행위를 시에 담았다. 누구든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는 잣대를 확실히 부러뜨려야겠지만- 입만 열면 정치와 경제를 끄집어내는 말짱 허드렛것들의 치기, 불평등한 현실에 맞서 동료와 결정적인 행동을 보여야 할 때 자신만 쏙 빠지는 노예근성을 그녀의 시는 경멸했다. 대승적 차원이란 말을 입에 달고 범민주적 정의를 내세우다가도, 돈만 보면 전혀 딴 얼굴로 제 잇속에 침이 튀는 일부 지식인의 근천기를 그녀의 시는 단칼에 베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녀의 시는 자본 또는 문명의 취향과 거리를 두었다. 엄경희가 문명의 위장된 편리함과 편안함에 자신을 내어준 자가 치러야 할 대가는 자유의 박탈이다.(『시인동네』, 2018년 9월호)라고 언급한 대목처럼 그녀의 시는 문명의 이중성에 단호했다. 시 바깥에서 함부로 유랑하는 너무 낡았다, 빨리빨리, 미래에 대한 안목이 근시안적이다.라는 담론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늘 새롭고 매사 빠릿빠릿하고 미래에 대한 안목이 거시적이라면 이런 삶의 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이냐, 문명과 자본에 길들여져 살라고 강요하는 노회한 세력에 소용되는 것 아니냐, 그녀의 시는 냉철했다. 도끼로 손전화를 박살낸 여자. 무한경쟁에 짠지가 되어버린 세상일수록 시가 필요하다고 붓끝을 벼리는 여자. 시의 갱신을 잡곡밥알처럼 꼭꼭 씹어 삼키며 한국시의 미래는 바다 밖 강대국에서 오는 게 아니라 죽창과 개펄의 상상력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줄 여자. 된장 풀어 끓인 아욱국같이 어진 사람들에게 목마치는 여자. 장끼가 길게 목 빼는 이 너덜겅을 오가며 제 마음 속 죽간에 글씨 새기듯 시를 쓴 여자. 이맛머리 쓸어 올리며 시의 지도(地圖)를 그려갔을 여자. 오늘도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염소 떼와 더불어 시가 된 여자.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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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19 17:35

알아주지 않아도 한다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자본이 없으면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무용지물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양한 문화 창작자들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꿈의 시작점을 찾기도 한다.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은 군중을 뜻하는 영어 크라우드와 재원 마련을 뜻하는 펀딩이 합쳐진 단어다. 보통 온라인 펀딩사이트에 제품 프로젝트를 올리면 여러 사람들이 후원해준 금액으로 다양한 상품을 출시하거나 크게는 창업을 하기도 한다. 물론 목표 금액에 미달하여 실패한 프로젝트도 있다. 얼마 전 진행한 제1회 전주동네책방문학상은 텀블벅이라는 펀딩사이트에서 수상작품집을 만들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 책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서였고, 목표 금액은 250만원으로 잡았다. 다행히도 100% 달성까지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고 현재는 목표액의 두 배 가까이 후원금액이 모아졌다. 이렇게 모인 금액은 약 1,000부의 책 제작과 사은품 제작비, 편집 디자인비, 작가 원고료, 배송비 등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비록 책방지기의 인건비까지 챙길 수는 없어도 이런 제도가 없었더라면 힘든 시기에 십시일반 돈을 걷어서 책을 만들거나 아니면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은 가진 것 없는 창작자들에게는 기회의 제도이며, 재도약을 위한 발판이 되기도 해서 그 영역이 점차 확장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곧 출간될 <제1회 전주동네책방문학상 수상작품집>에는 대상 수상작을 비롯한 각 책방상의 수상작 외에도 작가 인터뷰, 수상 소감, 심사평이 수록되며 문학상 주제였던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벗어나 자유롭게 작성된 작가들의 신작들도 처음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책 표지의 접히는 양쪽 날개부분에는 책방 소개와 작가들의 소개가 간단히 들어가는데, 개성강한 책방들의 소개도 재밌지만 현역군인부터 70대 작가까지 다채로운 작가들의 소개 역시 감칠맛이 난다. 사실 이 소박한 문학상에 대중들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으며 기관에서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마 후원을 해주신 분들도 책방의 단골이거나 책방지기들의 지인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수상작품집을 만드는 일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필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 어떤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진행된 국내 최초의 동네책방문학상을 지속하기 위해서도 필요했고, 수상자들이 가져갈 작은 자부심을 위해서라도 책은 나와야 했다. 1회에서 그칠 것이었다면 시작하지도 않았다. 제1회 전주동네책방문학상을 진행한 서점 카프카, 살림책방, 물결서사, 잘 익은 언어들, 오래된 새길, 에이커북스토어, 책방 토닥토닥까지 일곱 군데의 책방은 문학상을 기점으로 앞으로 책을 읽는 독자 외에 글을 쓰는 독자와도 직접 연결할 수 있는 다양하고 새로운 기획들을 고민하는 중이다. 제1회 전주동네책방문학상 수상작품집은 4월 말경에 출간될 예정이며 전주의 동네책방들에서 판매하게 된다. 비록 책방지기들이 전문 문학심사단이 아니어서 부족한 부분들이 보일지도 모르나 소신을 가지고 진행하는 문학상인만큼 우리지역 전주시민들의 관심과 응원을 바라본다. 더불어 전주 곳곳의 도서관에서도 전주동네책방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만나기를 고대한다. 마지막으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만났던 독특한 아이디어 상품들과 누군가 크게 알아봐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만들어가는 작은 프로젝트들을 응원한다.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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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12 17:42

먹방과 투우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코로나 발생 이후에 먹방(음식 먹는 방송)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음식은 문화를 이해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권에 존재하는 음식들과 그 문화적 연원을 살피기 위해 음식 프로그램을 보지만 모든 프로그램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먹는 양에 집중하는 먹방은 몹시 불편하다. 오로지 먹기에만 집중하는 먹방을 볼 때마다 묘하게 투우장이 떠오른다. 먹방=투우장이라는 연상이 뜬금없겠지만, 재미를 위한 생명살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이 먹는 모든 음식은 다른 생명체에게서 왔다. 조미료와 가공식품을 천연식품이 아니라고 기피하지만, 그것들조차 생명체에서 얻어진 것이다. 인간의 미각을 유혹하고, 오래 보존하기 위해 복잡한 추출과 가공 과정을 거칠 뿐이다. 결국, 음식은 다른 생명체의 죽음을 통해서 얻어진다. 살해행위가 있고 나서야 밥상에 오르는 것이다. 음식의 역사에서 조리 과정이 불성(不聖)과 불결로 여겨져 생활공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행해진 시기가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지금도 예외는 아니다. 요리가 예술이 되고, 요리사(셰프)가 스타 연예인이 되고, 주방이 예술 생산의 공간이 되었지만, 식재료를 얻기 위한 생명체 살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78억 명이나 되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단지 생명체 살해와 가공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고, 주방에는 죽음의 흔적이 최소화된 깔끔한 상태의 재료가 도착하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먹방의 관심사는 많이 먹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보다 최소한 서너 배는 먹어야 관심을 받는데, 그 얘기는 먹방을 위해서 정상치의 서너 배를 넘어서는 생명체 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십 명 분을 먹어치우는 먹기 대회는 상상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하다. 식물의 경우에는 다른 생명체에게 몸의 일부를 주고 살아남는 방식을 택했지만, 옥수수와 아보카도 재배에서 볼 수 있듯이 현대인이 식물을 대하는 방식은 파괴적이다. 동물에게는 더 가혹하다. 동물은 생명을 대신해서 인간에게서 받을 대가가 전혀 없다. 현대 자본주의 문명의 특징은 과잉이다. 현대의 모든 상업적 시스템이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에 맞춰져 있다. 한국의 상황을 살피면, 이제 그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했다. 2020년부터 인구가 순감소 국면으로 돌아섰다. 인구 축소는 시장 축소로 이어진다.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과잉으로 채우는 것은 무모하기도 하고, 지속가능성도 없다. 코로나를 겪으며 과잉이 얼마나 치명적인 독인가를 깨달았지만, 독이라고 해서 무조건 피할 수는 없다. 파라켈수스(14931541)의 모든 것은 독이며 독이 없는 물질은 없다. 독이 아닌 것은 그 양이 결정한다.는 말을 빌려야 할 것 같다. 다른 생명체를 먹는 것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육식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생명과 건강 유지를 위한 음식은 필요악이다. 육식이든 채식이든 넘치지 말자는 것이다. 꼭 필요한 만큼만 먹는 것은 다른 생명체에 대한 존중이고, 코로나와 같은 재난을 피하는 방법이다. 적게 먹고, 적게 여행하고, 적게 입는 3소 운동이라도 하고 싶다. 음식이 곧 생명체라는 인식을 갖지 못하고, 재난을 통해 깨닫지 못한다면 재난은 분명히 다시 찾아온다.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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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05 17:47

전주 남부시장을 스마트 문화관광형 '아고라'로 만들자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재래시장이라 함은 지역고유의 자원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상거래문화 중심이 되는 곳이다. 원도심지 과거의 융성했던 우리 남부시장만의 무늬와 형태가 있었을 것이다. 전국의 수많은 재래시장들이 시장부흥을 위해 혁신적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미 주민과 지자체의 행정 그리고 민간협력단체들의 협업으로 성공적인 모범사례들도 나타나고 있다.지붕이 있고 칸막이로 구분된 평범한 상점형태로는 번영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역의 문화자원과 문화요소 특성을 활용한 내외적 하드웨어의 조형적 공간형성과 전통과 스마트한 컨텐츠의 융합으로 전주남부시장만의 특색 있는 상점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설계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우리 남부시장,풍남문 주변의 상가들은 대표상품개발, 홍보를 통한 전통시장다운 상점가를 활성화 시키는 일에 여러 가지 사업계획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고 있지는 않다. 물론 C-19이전 주말에만 펼쳐지던 야시장 사업은 상당히 많은 방문객들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이 인기 있는 사업이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며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가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도시국가의 시장이나 지금 열거한 남부시장의 분위기나 변함이 없는 시장의 형태는 인류 역사상 실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지속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온 생활문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스 도시국가의 시장은 아고라(Agora)라 하였다 시장에 나오다 라는 뜻으로 폴리스에 형성된 광장이며 이곳이 시민들의 일상생활의 중심이 되면서 사람이 모여들어 사람들의 광장이 되었다. 아크로폴리스는 정치, 경제와 종교의 중심 이었으며 아고라는 시민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상적인 활동과 연극의무대 체육대회를 여는 운동장으로 쓰이는 등 예술 활동을 비롯 철학, 인문, 사상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던 곳 이었고 민회를 열어 국방과 정치문제에 대한 국가의 정책을 듣기위해 국가와 시민이 소통하였던 곳이다. 흐르는 세월 속에 이곳은 자연스럽게 상인과 시민이 만나 물건을 사고파는 우리 삶의 터전인 전통(재래)시장이 형성이 된 것이다. 지금 남부시장과 시장 인근에는 전형적인 아고라의 모습을 찾아가는 듯 그림이 그려진다. 시장주변에 형성되는 문화 인프라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전통시장만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매채들 이기 때문이다.1960~70년대 옛 도청 이었던 복원된 감영주변은 그야말로 호남문화예술과 경제의 중심이었다.50여개에 이르는 표구점,화랑,들이모여 있어 전주의 인사동이라 할만 하였고 전북의 모든 교통수단 의 중심 배차장이 있었으니 말이다. 근래에는 상인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사고의 변화로 각 분야의 문화예술의 장인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적은 힘이나마 지자체의 도움으로 터를 잡은 동아리도 있다. 무슨 일이든 독선은 없다. 모든 세대가 시간과 공간을 불문하고 같이 모여 토론하며 정도로 가기위해 노력하고 있듯 고대의 아고라에서 갖춰졌던 요소가 다 모여드는 곳이다. 선거철만 되면 후보들이 맨 먼저 찾아가서 평소 않 하던 상인들의 거친손을 덮석 덮석 잡고 한 표를 호소하는 모습은 우리사회의 구성시스템 으로서 아고라의 역할은 계속될 것이고 상업적인 삶의 터전으로서 아고라는 우리들의 생활에 반드시 있어야 하며 살려 가야할 곳이다.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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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29 17:55

언어유희 또는 말장난?

이병초 시인웅지세무대 교수 일상의 언어 현실에서 차용된 시어는 생생하다. 입말이 가진 현장성과 행동성은 몇 마디의 어법이나 단어 한 개로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통쾌함까지 갖는다. 이 지점에 언어유희라는 용어가 닿는다. 영어의 pun에 해당될 이 기교는 소리의 유사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실질적으로는 메타언어에 비중을 둔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 가리 -「동학민요」, 전문. 동학혁명 당시에 창작되었을 이 민요는 뜻보다도 갑오년에 뒤에 이어지는 을미년, 병신년 등의 입말에 더 관심을 가졌을 터이다. 시어 가보세는 갑오년(甲午年)과 싸우자는 행동성에, 을미적은 을미년(乙未年)과 행동의 미적거림에, 병신되면도 병신년(丙申年)과 비속어인 병신에 주목한 것이다. 이런 내용으로 볼 때 동학군은 갑오년에 대내외적 모순을 끊어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싸우지 않고 을미적 을미적 굼뜬 행동을 보이다가 병신년까지 가면 필패가 자명하니 죽창 든 해에 혁명을 완수하자는 진군가 역할을 민요에 맡긴 셈이다. 일반인이 사용하는 입말을 절묘하게 버무려 시대의 당위성으로 응집시킨 동학민요 집단창작자들의 언어감각이 놀랍다. 모두가 익히 아는 불과 4개의 단어로 뜻하는 바를 명쾌하게 전한 비유의 미덕은 시의 오랜 관습이기도 하다. 또한 이 민요는, 언어유희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기발한 기지(wit)이거나 풍자의 형식이 됨과 동시에 메타언어를 생성시킨다는 점을 확인해 준다. 친숙한 단어나 어법에 이중의미를 갖게 함으로써 당대의 집단적 그리움을 떠오르게 하는 기법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민중성이 강조된 판소리나 탈춤, 민요 등에서 해학을 넘어선 말들의 중의적인 쓰임새를 자주 만났기 때문이다. 일상어에 속뜻을 갖고 쓰이는 말이 많고 그런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 중에는 점잖지 못한 말도 다수 섞여 있다. 문제는 말에 잘못이 있는 게 아니라 특정의 말이 비속어적 속성을 가졌을지라도 발화 상황에 적절히 사용되는가가 관건이다. 점잖지 못한 말들 중 일반인에게 가장 익숙한 말이 개이다. 영어 dog를 덕으로 발음하던 광복 후의 현실에서도 개는 요즘처럼 쓰임새의 폭이 넓었던 것 같다. 변영로 시인과 최남선, 두 사람에 얽힌 일화는 시어(詩語) 운용의 측면에서 여전히 흥미롭다. 시 「논개」로 널리 알려진 변영로는 친일파의 우두머리 격인 최남선과는 달리 변절하지 않았던 시인이다. 해방공간이라고 일컬어지는 광복 후의 시기가 혼란의 연속이었음을 모르는 이는 없다. 연일 계속되는 혼란과 좌우익의 정치적 대립 구도에서 문인들도 자유로울 수 없었고 당시 문단의 주도권을 쥔 좌익 문인들에 비해 우익 문인들은 수세에 몰려 있었다. 이런 사정에서 두 사람이 어떤 문인 회의에 참석했다. 이들이 참석한 회의가 <전조선문필가협회>인지 <조선청년문학가협회>인지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 더구나 이 글은 회의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 회의에 참석한 문인들의 뜻이 제각각이어서 의견일치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중구난방으로 저 잘났다고만 떠들어대는 소리를 듣고 있던 최남선 씨가 참지 못하고 사람은 덕이 있어야 돼. 라고 말참견을 하자, 변영로 선생이 이 말을 제대로 받았다. 맞아, 덕은 영어로 개야. /이병초 시인웅지세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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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22 17:52

소외받는 사람이 없는 문화평등사회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제 1회 전북여성문화예술제가 이틀간 열렸다. 미지수를 나타내는 알파벳 N을 사용하여 차별과 혐오가 없는 N의 반란이라는 주제로 시작된 전북여성문화예술제에는 전북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여성예술인이 참여했다. 그 안에는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 연극인들부터 전통음악인, 서양음악인, 사진가, 작가, 유투브 영상 크리에이터까지 다채롭고 개성 넘치는 여성 예술인들이 함께 했다. 새롭게 시작된 여성예술인의 연대인 만큼 앞으로도 숨어있는 여성 예술인들을 발굴하고 그녀들의 끼와 열정을 드러낼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라본다. 또한 지역에서의 문화예술 활동은 소외받는 예술인도 없어야 할뿐더러 문화예술의 경계를 낮추어 시민들과 함께 하는 일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작년 코로나로 모든 문화예술인들이 설 자리를 잃고 힘들어할 때 청년예술인들과 지역주민들이 함께 하는 모습에 흐뭇했던 기억이 있다. 남노송동의 오래된 목욕탕을 리모델링해서 동네의 사랑방으로 만든 까페이자 공유공간 기린토월에서는 노송동 주민들의 삶과 애환을 녹여낸 연극을 공연하기도 하고, 달달마을 토끼잔치라는 이름으로 지역의 청년예술인들과 오래된 마을의 어르신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하나 될 수 있는 작은 축제를 마련하기도 했다.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일이 멋지게 차려입고 어딘가를 가야만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동네 안에서도 얼마든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문화예술에서 소외된 오래된 구도심 어딘가에서도 이런 일들이 자주 벌어져야 소위 보편적이지 않음을 추구하는 예술가들도 실험할 수 있는 무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모 기관에서 중장년층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 교육 기획회의에 잠깐 참석한 적이 있다. 50-60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마련한 수업 기획안에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가장 많은 나이대임을 고려하여 외국고전소설과 연극을 접목시킨 과목과 클래식 및 와인배우기 등 다채로운 수업 기획안들이 나와 있었다. 나 역시도 한 번쯤은 배워보고 싶은 수업들이긴 했으나 의문이 들었던 것은 과연 이 수업이 일반시민 대상이 맞을까 하는 것이었다. 또한 시의적으로 따져본다면 코로나로 많은 자영업자들이 신음소리를 내며 겨우 버티고 있는 이 시기에 공공기관에서의 수업이 마치 일부 여유로운 사람들의 놀이터마냥 비춰질 수 있다는 점에서 쓴 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문화예술의 분야는 매우 넓어서 물론 타겟에 따라 이런 수업도 필요하고 원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뜩이나 문턱 높아 보이는 예술 영역을 공공기관에서조차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어버린다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시민들이 많을 것이다. 할 수 있지만 안하는 것과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인지해야 할 것이다. 또한 공공기관의 문화예술 기획이야말로 주변의 소외된 계층을 감싸 안아주는 기획이라면 어떨까. 대중적인 수업과 더불어 문화예술과 거리가 멀게 살아온 그러나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기도 한 그들에게 예술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따뜻한 삶을 만나게 한다면 떨어진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는 보람까지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가까운 이웃들과 소통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팔복예술공장이 팔복동에 위치해있지만 팔복 5길이라는 미디어아티스트의 활동 외엔 주민들과의 예술 활동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팔복예술공장만을 홍보할 것이 아니라 실제 공장지대와 낙후된 주거 공간 속에도 예술이 스며들 수 있도록 더 아름다운 동네를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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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15 17:46

‘책의 도시’가 가야할 길

천세진 인문학 칼럼니스트 전주의 도서관들이 속속 독서 친화적 문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이전의 도서관들은 서가들이 좁게 배치되어 있었고, 독서공간도 편안하지 않았다. 2019년 12월 문을 연 꽃심도서관은 책을 고르는 것도, 읽는 것도 편안하고 여유 있는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2017년, 전주를 책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전주시의 선언이 도서관 인프라를 새롭게 구축하고 확장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더없이 반갑다. 문화는 공간이 있어야하니 도서관 인프라 구축은 책의 도시를 만들기 위한 선결 요건이다. 공간이 먼저 존재해야 그 안에서 시민들과 책이 만나 수준 높은 사유가 탄생하고,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다음 수순으로는 다양한 장르의 많은 책을 갖추는 것이지만, 책의 확보를 양적으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 전주의 시립도서관 12곳 중 10곳을 이용하는데, 가장 안타깝게 느낀 것은 양보다는 도서의 편중과 질적 문제였다. 공간을 특징짓는 구성요소가 채워지면 문화는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할 수 있지만, 그렇게 탄생한 문화는 질적 수준을 따지기 어려운 지점에 머물기 쉽다. 한 문화공간을 대변하는 특징적 콘텐츠나 사물이 양적인 확보를 넘어서서 질적인 측면에서 최고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손길이 필요하다. 도서관 인프라 구축은 선결 요건이지만 고품위의 독서문화를 보장하진 못한다. 고품위의 문화는 결국 질 좋은 책의 선정과 향유에서 결정된다. 당신이 읽는 책을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줄 수 있다.는 독서가들의 경구는 결코 개인적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도서관이 어떻게 도서를 선정하고, 어떤 책을 구비하는지에 따라 한 도시의 독서문화 수준과 문화적 사유의 수준도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업 작가 생활을 시작하며 블로그 활동을 함께 시작했는데, 책에 대한 글을 올리는 블로거들의 글을 주로 찾아 읽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여전히 한국인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고, 질적인 측면에서도 편향된 독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후 오프라인과 온라인 독서회를 만들어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좋은 책을 어떻게 고르고 음미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른 분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지만 여전히 책의 질적 문제에 대한 답을 내는 것은 쉽지 않다. 책의 질 문제를 음식문화로 이해해보자. 음식은 고급과 저급이 무게로 결정되지 않는다. 같은 무게의 식재료라도 질에 따라 가격은 현격히 차이가 난다. 자녀들이 원해서 패스트푸드를 주기도 하지만, 정말로 주고 싶은 것은 슬로푸드다. 그런데 책의 세계에서는 그 방식이 채택되지 않는다. 좋은 책도 나쁜 책도 동일하게 책의 페이지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고, 내용을 살피지 않고 광고에 현혹되거나 디자인과 제목만 보고 결정하는 경우도 많다. 책을 고르는 것은 음식을 고르는 것보다 더 심도 있는 이해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음식문화를 경험한 사람이 음식의 가치에 대한 이해가 높은 것처럼, 책의 가치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두루 깊게 읽어 본 사람의 이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책의 도시는 멋진 도서관을 갖는 것이 종착지가 아니다. 책 읽기 좋은 멋진 도서관을 만들었다면, 그 다음으로 전문가 중심의 도서선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좋은 책들을 선정하고, 도서관을 통해 수준 높은 독서문화가 만들어지도록 지원하는 구조가 정착되어야 한다. /천세진 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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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08 17:54

2021년은 팬데믹 시대 마감하고 메디치의 효과 기대해보자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15,16세기에 유럽문예부흥의 시대를 활짝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색다른 분야의 전문가들 즉 예술가,사업가,학자,상인들의 상호교류와 소통을 통해서 의지를 모아 경제적 후원과 정치적 후원을 아끼지 않고 적극적으로 후원매체가 되어준 것은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 생각이 서로 다른 많은 논리와 연구결과물들을 만들어내고 그 정점을 이루는 교차점에서 융합된 혁신적인 작품이 탄생되었을 때 메디치의 효과라고 부른다. 대가들의 타고난 천재성과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탄생된 전무후무한 작품들과 이 가문의 영향을 받은 당대의 유명예술가나 학자들은 대부분 1400년경부터 1737년 300여 년 간 펼친 메디치 가문이 주도한 후원 정책으로 이루어 질 수 있었으니 서양화의 아버지 지오토를 비롯 도나텔로,안젤리코,기베르띠,보티첼리,다빈치,미켈란젤로,라파엘외 그들이 남긴 다비드, 피에타, 천지창조, 최후의심판, 프리마벨라, 비너스탄생, 아테네학당 등의 회화작품, 베드로 대성당의 돔 건축과 우피치 미술관을 유럽 여행 중 숨을 죽이며 바라본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갈릴레오를 학문적으로 지위를 상승시킬 수 있었던 것이나 문예부흥기의 발레를 프랑스왕정에서 의 공연으로 귀족들을 매료 시킨 것도 메디치 가문이고 우리가 양식당의 상차림에서 보듯 포크, 나이프, 스푼의 사용방법까지도 이 가문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문화예술 세계사에 혁명적 영향을 끼친 메디치 가문의 역할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다. 아카데미 영화상에 빛나는 기생충 역시 봉준호 감독의 뛰어난 작품성과 배우들의 연기력도 중요했지만 전폭적인 물질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CJENM의 역할도 절대적으로 한목 했다.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즉 노블리스 오플리제가 있다. 투철하게 바른 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 로마 초기의 사회는 고위층의 공공봉사와 기부와 후원의식이 투철하여 전투에서 수많은 귀족들이 희생되었던 것은 귀족들의 솔선수범과 희생으로 고대 세계의 강국으로 자리 하였었고 도덕적으로 헤이해지면서 쇠퇴하고 말았지만. 한번 살고 가는 인생! 있으나 없으나 보람 있는 삶을 살기가 쉬우면서도 어렵기도 하다. 내 삶을 흔들만한 기념비적인 일을 만난다는 것은 최고의 보람일 것이다. 나 혼자 배부르게 풍족함을 느끼면서 사는 것 보다 함께 나누고 사는 것이야말로 다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한 마음가짐이 진정한 삶의 가치와 진정한 행복이 아닌가? C-19로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을 인간중심의 문예부흥 으로 이제는 감정보다는 이성적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찾아가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예술계의 심각하고 충격적인 피해상황 속에서도 예술가들은 예술 활동의 실천으로 지역사회와의 상생 고리를 연결해가며 펜데믹 상황에서의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문화예술 활동의 실천이 실의에 빠진 시민들의 사기를 드높이고 지역사회의 구성원의 협동과 결속의 원동력이 되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러한 예술계의 동력은 무엇일까? 바로 정치가,사업가,학자들이 문화예술의 옷을 입는 것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메디치가문의 지원이 수많은 문화유산을 남긴 것처럼 동시대를 살아가는 문명인으로서 의무감을 가지고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새롭게 출범하는 3기 전북문화관광재단 의 메세나 사업을 진행하고 열열히 성원하는 가운데 메디치효과를 기대해 본다.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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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01 16:57

앞시암의 미학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소통이라는 말이 갈수록 낯설다. 더불어 살자는 뜻으로 읽히는 소통 옆에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따라붙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에 대흉년이 들었거나 전쟁 등으로 모두의 삶이 절박할 때 이를 극복하자는 데서 유래된 각자도생이 어째서 저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신고립주의적 탐욕을 빗댄 말로 둔갑해버렸는지. 인간성 회복이 목적일 소통의 뜻을 곰곰이 짚어볼 때면 문득 앞시암이 떠오르곤 했다. 샘을 시암이라고 불렀던 전주시 팔복동 3가 유제리. 일명 버드랑죽이었던 동네 초입에 앞시암이 있었다. 너비는 세 발 가옷을 웃돌았고 깊이는 그보다 더 깊어 보였는데 머리엔 양철지붕을 했다. 두레박이 필요 없는 샘, 왕돌을 테처럼 둘렀던 샘가를 시멘트로 동그랗게 단장했는데 높이가 바닥에서 두어 뼘도 안 되었다. 바가지를 박적이라고도 했으므로, 박적으로 물을 막 퍼먹을 수 있으므로 앞시암을 박적시암이라고도 불렀다. 사람들은 샘 바닥에 염소 대갈통만 한 물구멍이 있어서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철철 넘쳐난다고 믿었다. 정말로 사시사철 물이 철철철 넘쳤다. 울안에 샘을 판 집들도 이 물을 자주 길어먹었고 무더위가 진을 치는 한여름 밤이면 청년들이 몰래 물을 끼얹었다. 아줌마들은 여기서 빨래도 했다. 바가지로 물을 막 퍼서 쓸 수 있고 때도 잘 빠졌으니 조선 천지에 이보다 더 좋은 공동빨래터는 없을 것이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밤이면 청년들 입담이 낮에는 빨래방망이질 소리가 그치지 않았으므로 앞시암은 동네의 눈이었고 귀였고 입이었다. 살쾡이에 간 빼먹힌 씨암탉을 찾아내어 생기다 만 알까지 정히 갈무리하던 곳. 논밭 일에 지친 어른들이 하루 일을 내려놓고 얼굴을 씻던 곳. 누구네 집에 초상이 나면 물지게가 부산했다. 고인을 모신 꽃상여가 노제를 끝내고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정원 대보름이면 샘 주위를 돌며 풍장을 치던 곳. 물맛 좋기로 소문나서 택시기사들도 척척 알아들었고 우체부 아저씨가 자전거 받쳐 놓고 목을 축이던 곳. 앞시암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다. 어른이든 아이든 엿장수든 머슴이든 자신을 찾는 이에게 물을 주었고 사람들은 앞시암에서 정다웠다. 소통이란 말이 안 쓰였어도 서로를 아끼고 존중했다. 그러나 1985년, 포클레인을 앞세운 중장비들이 앞산을 파헤쳐버렸고 동네가 까뭉개지기 시작했다. 토지개발공사에 팔렸다던가, 전주시 제2공단에 싸잡혔다던가. 나눔과 베풂의 산실인 앞시암도 콘크리트에 묻혔다. 황방산 꼭대기에서 바라보니 유제리는 흔적도 없다. 누구네 집터인지 누구네 전답인지도 모르고 공장이 즐비할 뿐이다. 경제 성장이 뭔지 개발이 뭔지 나는 잘 모른다. 사람들이 살던 동네를 무덤 속같이 파헤친 뒤 거기에 공장을 들여놓은 행위가 자본과 문명의 몫인지 죄악인지를 따져볼 능력이 내게는 없다. 앞시암이 궁금하다. 그러나 오죽잖은 건물들을 눈알 빠지게 둘러봐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앞시암은 있을 것이다. 땅속 제자리에서 맑은 물, 솟아나는 물, 온도가 일정한 물로 유제리 사람들의 기억을 철철철 넘치게 하리라. 이름도 빛깔도 없이 살아온 분들의 노고가 이 땅의 앞시암이었음을 깨쳐 주리라. 경제학을 이재학(理財學)으로 패대기친 각자도생을 거절함은 물론- 의(義)를 따르는 척하다가도 결국 제 잇속에 동료들을 이용해먹는, 자본가의 이윤창출에 소용될 가짜 소통의 친자식들을 앞시암은 철철철 지우고 있으리라.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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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2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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