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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고 싶은 전주의 특별한 문화 벨트를 꿈꾸며

엄혁용 전북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최근, 심심치 않게 주변 사람들로부터 전주한옥마을 방문객들의 숫자가 줄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올해 극심했던 여름의 불볕더위로 전주를 찾는 관광객 숫자가 일시적으로 줄어든 측면도 있겠으나 여름이 지나고 여행하기 좋은 가을에도 회복세가 보이지 않는다니 원인을 찾고 대책을 모색하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사실 전주를 찾는 관광객 감소는 수년전부터 예견되었던 부분이다. 예전처럼 전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한옥마을을 둘러보고 정작 전주에서는 숙박하지 않고 다른 도시로 떠나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은 안타깝다. 전주를 찾는 여행객들의 상당수가 한옥마을을 끝으로 전주 여행을 마감하는 상황은 전주가 한옥마을 이상의 여행콘텐츠가 없거나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여행은 세대를 초월해 남녀노소 누구나 만족감을 얻어야 좋은 여행이 될 수 있다. 태국 촌부리주의 작은 해양도시인 파타야는 이름 없는 작은 어촌에 불과하던 곳이었지만 1961년, 베트남전쟁의 휴가병들을 위한 휴양지로 개발되면서 아시아의 대표적인 휴양지가 됐다. 지금은 해마다 5백만 명이 넘는 해외 관광객들과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인파로 북적이는 관광도시가 되었으니 주목을 끌만하다. 지난여름 필자가 가족과 함께 찾았던 파타야는 특별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도 빼어났지만 여느 휴양지 부럽지 않은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가득한 이 작은 섬도시의 여행은 매력적이었다. 특히 초등학생인 아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테마파크에서 우리는 아주 훌륭한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공간이 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까지도 즐겁고 신비한 체험을 할 수 있었던 증강현실, 트릭아트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은 7년 동안 문 닫고 방치되었던 나이트클럽을 활용, 지난 2013년 1200평 규모의 세계에서 가장 큰 증강현실-트릭아트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트릭아트미술관은 이후 태국뿐 아니라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그리고 최근에는 호주에도 설립돼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것은 이들 미술관이 오랜 건물이나 폐공장을 허물지 않고 재생의 관점으로 접근해 예술가들이 직접 설계하고 제작하였다는 사실이다. 전라남도 순천은 2017년부터 지역의 어린이와 전문가, 그리고 행정기관이 함께 손잡고 만든 신개념의 놀이터인 기적의 놀이터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 놀이터는 기존의 틀에 박힌 시설물에서 벗어나 자연소재를 사용해 어린이들에게 도전과 모험정신을 기를 수 있도록 조성된 것인데 개장 이후 전국 200여개의 기관 단체가 벤치마킹을 다녀가면서 시작과 함께 전국적 관광명소가 되었다. 순천시는 2020년까지 10개의 기적의 놀이터 완성을 목표로 어린이와 부모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 나간다는 계획이라니 이 또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파타야나 순천의 예를 보면서 문득 전주에는 진정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이 있는가 묻게 된다. 사실 전주는 그 어느 도시보다도 풍부한 유형무형의 문화자산이 많다. 어린이를 위한 공공시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도 적지 않다. 전주시 팔복동의 폐공장 터와 철길을 보자. 이 공간을 활용하여 전주의 예술가들과 행정기관이 손을 잡고 아트 플레이그라운드를 만들어내면 어떨까. 전주만의 특색 있는 어린이 전용 쉼터와 놀이터는 전주시민 뿐 아니라 전주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도 큰 선물이 되지 않을까. 전주가 다양한 연령대의 방문객들이 즐기고 의미 있는 여행지가 될 수 있으려면 전주만의 문화 벨트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편향된 콘텐츠와 다양함의 부재는 건강한 여행문화를 만들어 나가려는 전주의 행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친구들과 가족들과 전주를 찾은 여행객들이 하루 더 머물다 가고 싶은 전주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전주는 콘텐츠의 다양성과 깊이를 더하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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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15 20:29

피고 지는 데는 선후가 있어도 모두가 가을꽃

조미애 시인전북시인협회장 서늘한 바람에 잠이 깼다. 문이 열려 있나 싶어 자리에서 일어서니 유리창에 부딪힌 햇살에 눈이 부시다. 문틈으로 새어 든 바람마저 차게 느껴지는 것은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는 것이리. 며칠 전까지만 해도 곱게 피던 나팔꽃이 지고 그 자리에는 왕관모양으로 씨가 들어섰다. 초록의 잎은 갈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날이 선선해지면서 더위에 자라지 못했던 화초들이 늦게 싹이 나고 줄기도 굵어지더니 하얗게 고추 꽃이 피고 연이어 풍선덩굴과 분꽃도 피었다. 지난여름 폭염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피어났을 것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이제라도 꽃을 선물해준 그들이 고맙다. 가을이 되면 상허 이태준의 수필이 생각난다. 그는 과꽃은 가을이 올 때 피고 국화는 가을이 갈 때 이운다. 피고 지는 데는 선후가 있되 다 마찬가지 가을꽃이다국화를 위해서는 가을밤도 길지 못하다. 꽃이 이울기를 못 기다려 물이 언다. 윗목에 들여놓고 덧문을 닫으면 방안은 더욱 향기롭고 품지는 못하되 꽃과 더불어 누울 수 있는 것, 가을밤의 호사다.라고 했다. 상상만으로도 풍경들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지난밤에 찬비를 맞으며 돌아온 우산이다. 아침에 나와 보니 거죽에 조그만 나뭇잎 두엇이 아직 젖은 채 붙어 있다. 아마 문간에 선 대추나무 가지를 스치고 들어온 때문이리라. 그러나 스친다고 나뭇잎이 왜 떨어지랴 하고 보니 벌써 누릇누릇 익은 낙엽이 아닌가! 글에서 가을날의 온도를 느낄 수 있다. 몇 해 전에 나팔꽃씨 몇 개를 가져와 아파트 베란다 화분에 심었는데 잘 자라서 여름이면 울창한 숲이 되어 꽃그늘을 이루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노란 꽃이 피었던 분꽃을 살펴보니 어느새 꽃이 진 자리에 씨가 맺혀있다. 풍선덩굴도 올해 두 개가 열렸다. 아직은 녹색이지만 탱탱한 햇살을 받고나면 잘 익은 씨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씨를 받게 되면 분양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문화행사가 많은 가을이다. 지역문화축제를 비롯하여 음악, 미술, 무용 등의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소식을 들을 때면 가끔은 행사를 위한 행사인 것 같기도 하고 지나치게 요란한 것이 시끄럽고 버겁기도 하지만 풍성한 볼거리가 있고 참여하는 사람들의 웃음이 있어서 좋다. 다만 해마다 계속되는 축제나 문화행사가 모든 사람을 위한 자리가 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쉽다.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축제와 행사가 제한된 소수 사람들만의 잔치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모름지기 축제라면 지역의 남녀노소가 모두 참여하여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시간과 공간을 배려함으로써 진정한 마을 굿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문단의 가을은 꽃밭처럼 풍성하다. 각각의 색깔과 향기를 지닌 책들이 출판되고 있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은 크고 화려하지 않아도 자세히 보면 예쁜 작은 꽃이다. 작가의 맑고 곧은 정신이 담긴 씨앗이면 충분하다. 세상에 하고 많은 꽃 중에서 나와 인연이 되고 씨앗을 맺어 더욱 소중한 것처럼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황량한 들판이면 어떠하리. 동인지 출간과 문학상 소식들이 꽃씨가 되어 날아온다. 문단의 주인은 좋은 작품을 쓰는 사람! 꽃밭에서 꽃들이 피고 지는 것처럼 피고 지는 데에는 선후가 있어도 모두가 가을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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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08 19:24

이 땅의 음악은 국악이다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 원장 이 땅의 음악은 마땅히 국악이어야 하고, 국악이 이 나라 음악의 주인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터인가 음악이라는 말이 서양음악을 지칭하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국악이라는 말은 이러한 음악과는 별개의 장르를 뜻하는, 협의의 개념으로 쓰이면서 가치에 편견이 매겨져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양악은 고급스럽고 우월한 것이며 국악은 진부하고 무언가가 부족한 변방의 음악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게 하는 현실이며 주객이 전도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 밥 먹는다 라고 하면 당연히 한식(韓食)으로 이해하고 말한다라고 하면 당연히 국어인 우리말을 하는 것으로 이해되듯이, 당연히 음악이라는 말은 우리음악을 뜻해야 옳다. 서양을 통해 수입된 음악은 서양음악, 양악(洋樂)으로 불려야하고 음악을 한다고 하면 당연히 우리음악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우리 중심의 사고 체계와 의식의 각성이 있어야 한다. 몇 해 전 이탈리아에서 <수궁가>완창을 한적이 있다. 그때 성악을 공부하고자 유학을 온 학생한테 들은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제법 노래를 잘 한다고 인정받던 학생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학생들 틈에서 뒤떨어지지 않게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어느 한 학기를 마치고, 동료학생들끼리 종강 파티에서 각자 자기나라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그는 자기 순서에서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혼신의 힘을 다해 불렀다고 한다. 노래를 마치고 많은 박수를 기대했는데 생각만큼 환호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서운함을 달래면서 한참을 서 있었는데 앙코르가 뒤늦게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내 노래에 앙콜이 없다니 그게 말이나 될 법이냐 하면서 미소로 신청곡을 받았는데, 그들의 요청인즉 너희 나라 노래를 불러보라고 청하더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리운 금강산은 코리아의 노래가 아니었다. 그들의 귀에 그 노래는 서양의 노래이었던 것이다. 아! 코리아의 노래, 무엇이 한국의 노래란 말인가?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한국의 색깔과 냄새를 느끼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십 수 년을 먹고 자랐지만 막상 부르려고 찾아보니 아는 노래가 없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이 땅에 태어난 우리는 한국말을 먼저 배우고, 우리의 음식을 먼저 먹으면서 자랐지만 음악의 경우는 정반대였다. 서양음악을 음악으로 알고 먼저 듣고 배우고, 또 불렀던 것이다. 그 학생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망설이다 궁여지책으로 찾아 부른 노래가 삼천만의 노래,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본조 아리랑>....... 그리 큰 공력을 들여 부른 것은 아니었지만, 그 때서야 그들은 제대로 된 노래를 감상했다는 듯 만족해하면서 원더풀! 을 외치더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참으로 괴로웠다고 한다. 왜냐하면 또 다시 시키면 부를 노래가 없었기 때문에 매우 참담했었다고 나에게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서양음악은 수십 개 씩 소화하면서 민요 하나 제대로 부를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나라,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는 현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땅에서 우리 음악을 하는 것이 유별나고 특별한 일을 하는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이런 식의 척박한 풍토가 이어지는 한 우리의 정체성은 확립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 전개될 치열한 문화전쟁에서 살아남지 못 할 것이다. 음악의 주체는 국악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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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01 19:36

‘첫마중길’을 걷다, 전주의 첫인상을 보다

엄혁용 전북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전주역 앞 도로에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2015년부터 전주시가 도시재생사업과 지역 활성화를 위해 추진해 만든 길 위의 길, 첫마중길이다. 전주역은 전주를 찾는 많은 여행객이 전주를 처음 마주하게 되는 첫 관문이다. 역을 빠져나와 만나게 되는 눈 앞 풍경은 자연히 전주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처음 첫마중길이 만들어졌을 때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찬반 여론에 비판과 호평이 부딪쳤다. 그러나 1년여가 지난 지금 첫마중길은 전주만의 문화 예술적인 특색을 보여줄 수 있는 명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전주를 찾는 여행객에게는 아름다운 첫인상을, 전주시민들에게는 쉼터기능을 더해 도시 속의 자연과 문화를 어우르는 생태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전주시의 도시 철학이 이제 비로소 빛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는 무엇보다도 역 앞을 무섭게 달렸던 차량들의 속도 변화가 반갑게 느껴진다. 도시지역 차량 제한속도가 10km 감소하면 교통사고 비율이 24%나 감소한다는 국가교통안전연구센터의 연구 결과를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사람이 중심이 되는 안전한 도로와 길을 갖추는 일은 좋은 도시가 갖추어야할 덕목이다. 실제 도심의 운전 제한속도를 기존보다 10km로 낮추는 것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가 되었다. 전주의 첫마중길처럼 도시의 역과 터미널 앞에 예술광장과 문화거리를 조성해 활용하고 있는 세계적 도시들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6년 연속 1위를 차지한 호주의 멜버른이 대표적 예다. 멜버른시가 플린더스 스트리트역 앞에 조성한 페데레이션 스퀘어는 여행객들이 편안하게 휴식하며 교류하는 만남의 장소로 이름이 높다. 필자 역시 멜버른을 처음 방문했을 때 페데레이션 스퀘어에 걸터앉아 눈앞에 펼쳐진 야라 강변을 보며 멜버른 여행 계획을 세우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뉴욕도 포드 어소리티 터미널 근처에 타임스퀘어가 있다. 이 곳 역시 대중교통을 이용한 많은 방문객에게 뉴욕시만의 열정적이고 활기찬 첫인상을 전하는 공간이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역 앞의 문화공간도 수많은 여행객들에게 부다페스트를 아름답고 따뜻한 도시로 기억하게 하는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전주시는 그동안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문화예술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첫마중길, 팔복문화공장, 풍남문과 객사를 잇는 전라감영 테마거리 등 전주시의 외관을 다듬는 일이나 전주시 곳곳의 소중한 이야기를 복원하고 발굴해 시민들과 여행객들이 함께 공유하는 공공재개념으로서 활용하는 사업들이다. 작년 7월, 2017아시아 도시경관상에 전주의 첫마중길이 선정됐다. 유엔 해비타트 후쿠오카 본부와 아시아 인간주거환경협회, 아시아경관디자인학회, 후쿠오카 아시아 도시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2017아시아 도시경관상은 도시경관 형성에 훌륭한 실적을 쌓아 널리 모범이 될 수 있는 사업을 선정해 수상하는 상이다. 조건 없는 부를 축적하는 것이 아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삶의 질이 더 큰 화두로 자리 잡은 지금, 첫마중길은 전주시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좋은 기준이 됐다. 그러나 아직 전주시가 세계적인 문화예술 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첫마중길처럼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쉼터의 기능을 가진 야외문화공간을 늘려나가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뉴욕에 오래된 기찻길을 사람들이 걷고 쉴 수 있는 공원으로 만든 하이라인이 있다면 우리에겐 팔복동 공단 철로가 있다. 전주를 찾는 여행객들이 첫마중길에서 아름다운 첫인상을 만났다면 도심 곳곳에서도 그 첫인상을 유지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과 거리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도시 전주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지금, 더 치열한 고민과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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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17 19:39

전북문인들의 책이 풍성한 작은도서관

조미애 시인전북시인협회장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낭군의 얼굴이 유난히도 밝고 환하다. 오랜만에 찾아간 도서관에서 좋은 책을 발견하여 빌려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책이 있어 대여해 왔다고 두툼한 한 권을 보여주는데 상기된 얼굴에 목소리마저 들떠 있다. 비슷한 책이 집에 있는 것 아니냐고 하니 그것과는 다르다면서 기뻐한다. 요즘 같으면 집안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가는 것이 책이다. 매월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잡지들과 지인이 보내오는 책들, 거기에 필요에 의해 구입하는 책까지 하여 나날이 집안 곳곳에 쌓이고 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책은 언제나 반갑다. 평소 필요한 책은 사서 읽는 편이지만 도서관은 소장해 둘 책을 미리 볼 수 있고 절판된 책을 읽을 수 있어서 편리하다. 엄청난 양의 도서를 보유하고 있는 대학도서관은 물론이고 시립도서관과 작은도서관 역시 상당수의 도서를 보유하고 있다. 평소 보지 못했던 귀한 서적을 가까운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을 만큼 되었으니 누구든지 책을 읽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지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춘 셈이다. 굳이 어떤 책을 찾아서 읽겠다고 계획하지 않아도 도서관 책장에 진열되어 있는 책들을 보면서 눈에 띄는 대로 한 두 권을 골라서 읽는 재미도 특별하다. 아는 문인의 글을 발견하여 가볍게 다시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전주에서 유일했던 경원동 시립도서관을 찾아 친구들과 공부하러 다니던 시절이 엊그제 같다. 예전에 법원이 있던 자리였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말 현재 전라북도에는 총 61개소의 공공도서관과 132개소의 작은도서관이 있으며 도서관 하루 이용자는 3만 300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폭염이 연일 계속되고 있던 어느 날 집근처 도서관을 찾아 나섰다. 냉방이 잘되어 있는 도서관에서 한나절 책을 읽겠다는 생각이었다. 얼마나 기온이 높았는지 도서관 출입문 옆 대형 유리가 마치 무색의 스테인 글라스처럼 균열이 가고 있었다. 더위에 유리창이 깨지는 모습은 처음이라 위험이라고 써 붙이고 주위에 가림 막을 치긴 했으나 어린 학생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는 것이 크게 염려되었다. 우려와 달리 열람실은 만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책상 앞에 앉아 독서삼매에 빠져 있었다. 한편에 마련된 마루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벽에 기대거나 바닥에 엎드려서 책을 보고 있었다.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읽을 책을 찾아 진열대를 둘러보면서 행여 아는 문인들의 책이 있는지 살펴보는데, 실망스럽게도 눈에 띄질 않는다. 과거 잠깐씩 전라북도와 전주시에서 전북문인들의 신간을 일정량 구입하여 도서관 등에 보급한 적이 있었는데 그나마도 찾을 수가 없었다. 좋은 일은 계속되어야 하는데 한때 전북문인들의 도서를 구입했던 사업은 아주 짧은 기간 그것도 소수 몇몇 사람들에게만 해당된 단기적인 기회였던 것이다. 새롭게 성장을 도모하는 도서관에서 전북 문인들의 책이 풍성하게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우리 학생들이 내 고장 문인들의 글을 찾아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지금 도서관의 기능은 단순히 시민들이 찾아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장소만이 아니라 책과 관련한 여러 문화 행사를 기획하고 시민이 성장하는 도서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변화하는 도서관에서 전북문인들의 다양한 활동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낙후된 전북의 미래가 달려 있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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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10 19:20

'우리 것'일수록 더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장 <우리>라는 어휘가 내포한 의미와 풍기는 이미지의 폭은 아주 넓다. 마음과 뜻을 같이 한다, 모두가 손잡고 함께 해야 하는 구성원, 책임을 같이 지는 한 덩이 등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고 우리 식구, 우리 학교, 우리나라, 우리 집, 우리 엄마, 우리 편 등의 말에서 찾아 볼 수 있듯이 <우리>라는 말이 붙으면 익숙하고 편안하다는 느낌이 다른 이미지보다 강하게 다가오는 단어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우리>라는 말이 붙는 일은 격식이 없어도 되는 일, 시간과 절차가 생략될 수 있는 일, 부담이 없는 것,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익힐 수 있는 것등 아주 쉬운 일, 가벼운 일로 치부하면서 만만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과연 그러한가? 우리 말인 국어가 노력 없이도 익혀지던가, 우리 글을 쓰는 일이 쉬운 일인가, 답은 물론 아니다이다. 우리 것일수록 진지하게 접근해야 하며 정성과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깨지기 쉽고 상처받기 쉽다. 우리 음악에 대한 접근도 마찬가지이다. 준비 없이 들어도 쉽게 와 닿는 게 아니다. 음악을 감상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애정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 양악(洋樂)을 이해하기 위해 쏟은 시간과 노력을 생각해 보라. 무슨 교향곡의 몇 악장을 알기 위해서 숨을 죽이며 듣느라고 얼마나 많이 인내했던가? 학창 시절에 시험을 보기 위해서,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교양의 일환으로 우리는 양악에 아주 많은 시간을 쏟았었다. 덕분에 모차르트, 베토벤, 브라암스, 헨델 등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고 고전주의, 낭만주의 등 음악의 사조에 대해서도 대충은 알게 되었다. 양악의 이해를 위해서 기울인 우리의 관심과 노력은 실로 지대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정작 애지중지 보듬고 가야 할 우리 음악에 대한 우리의 대접은 어떠한가? 참으로 반성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다. <영산회상>, <수제천>, <여민락>을 들어 본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이며, 전판 <판소리>를 듣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참을성을 발휘한 사람은 또 몇이나 있겠는가. 가야금과 거문고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국악기를 서양악기만큼 설명할 수 있는가. 우륵을 아는가. 악성(樂聖)옥보고를 아는가. 신재효를 아는가. 가왕(歌王) 송흥록을 아는가. 최초의 여류 명창 진채선을 아는가. 한 번에 이해하고 알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뜨거운 애정이 있어야 하고, 시간을 투자해야 하며 감상을 위한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 양악을 필수 교양의 반열에서 이해하기 위해 쏟았던 노력보다도 몇 십 배 더 큰 부담과 당위성을 가지고 접근을 해야 한다. 우리 음악은 조상들의 뼈를 깎는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진 선율로 그 속에 우리의 역사와 문화, 정제된 의식이 담겨 있는 총체적인 세계이다. 일조일석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신과 애환이 장구한 세월에 걸쳐 걸러지고 켜켜이 쌓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국악도 마찬가지이다. 문화적 사대주의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하며 국악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극복되어야 한다. 자중자애(自重自愛)하면서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문화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국악(國樂) 사랑이 곧 나라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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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03 19:55

세속적 성공과 문화 활동

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성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우리는 정확히 알고 있을까? 안다는 것 자체가 정보의 인지, 사실에 대한 판단과 느낌 등의 영역을 포함하는 다소 광범위한 개념이라서 이 질문에 응답하기가 간단치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성공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머뭇거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성공이 과연 어떤 내용을 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개인적 차원에서도 질문을 던지고 검토하고, 사회적으로도 소통해야 한다. 왜냐하면 시대가 움직이면서 가치가 달라지고, 그 가치를 추구해나갈 방법도 다양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인권과 같은 기본가치는 시대와 공간을 불문하고 성공적으로 추구되어야겠지만, 세계사를 보면 이 기본가치가 중요하게 여겨진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선포되기 전에는 인권이 그야말로 인류 중 몇 퍼센트의 존재들만 누리던 권리였다. 대부분의 인류가 인권적 측면의 성공사회가 아닌 폭력과 차별과 억압을 당연한 사회질서로 수용하고, 그 안에서의 생존과 생활의 성공을 추구했던 것이다. 우리 역사도 1945년 이전에는 제국주의의 억압을 우리 민족 전체가 떠안고 있었고, 우리 민족은 그 질서 안에서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질서를 깨뜨릴 성공을 추구하였다.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성공은 과연 어떠한가. 성공은 사전적 의미로 목적한 바를 이루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에 충실하자면, 매일매일 성공할 수도 있고, 단기적으로 성공할 수도 있고,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도 있다.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성공 여부가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사회에서 요구하는 몇 가지 관혼상제와 같은 통과의례 단계에 따라 그 의례를 멋지게 통과하는 것만이 성공은 아니다. 성공의 순간이나 성공의 상태를 고대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정서이다. 성공의 반대라고 할 수 있는 실패의 순간이나 실패의 상태를 즐기는 가학적 존재는 없으리라. 세속적 삶과는 다른 영역, 예컨대, 산 속의 수도생활이나 국외의 선교활동이나 희생적 봉사활동을 하는 자들도 그 목적을 이루어내고자 하는 것이 보편적 지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공을 어떤 기능적인 분야에서 특별히 업적을 이루어내는 탁월한 한, 두 사람의 것으로 제한하여 그들을 영웅시 하거나 우상시 하는 사회적 풍토는 나머지 모든 시민들을 상대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자로 잠재적 낙인을 찍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균형 잡힌 사소한 성공들의 집합체가 될 때 시대와 공간에 부끄럽지 않은 보편적이고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특별히 문화 활동은 주변의 이웃들과 나눌 수 있는 성공, 오래가는 성공, 깊이 느껴질 수 있는 성공을 담보해주는 공감능력을 키워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공감능력은 상대방의 말에 아! 그렇군요. 네! 맞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등으로 천천히 맞장구치면서 상대방의 의견을 일단 인정해주고, 동의하여 대화와 소통을 지속시킬 수 있는 기본감각과 이해에서 출발한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는 이른바 성공모델들이 특정 기능에만 오로지 집중하여 삶을 영위할 때 이런 기본감각에 소홀해질 수 있다. 즉 문화 활동 경험이 빈약한 성공모델들이 지도력을 행사하는 사회는 인간과 인권에 대한 공감 자체가 미비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을 기계와 동일시하는 기능주의적 성공의 잣대만이 판칠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 활동의 소재가 되는 모든 장르의 작품과 활동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자, 단절된 관계, 지구의 문제, 그리고 아름다움과 슬픔과 분노의 원인들을 다룬다. 따라서 문화 활동은 인간의 삶에 대한 공감의 폭을 넓혀주고 깊게 해줄 수 있다. 공감능력을 기반으로 매일 매일의 성공적 삶을 위한 재설계를 시도하는데, 어떠한 시점이라도 늦지 않다. 늦는 시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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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27 20:08

뮌스터 거리에서 전주를 생각하다

엄혁용 전북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독일의 북서쪽에 있는 뮌스터는 인구 26만 명 정도의 크지 않은 도시다. 중세의 사원과 교회, 시청사 등 사적이 많이 남아 있어 구 시가지가 특히 아름다운 이 도시에서는 10년마다 한번 대규모 미술행사가 열린다. 베니스비엔날레, 카셀도큐멘타와 함께 유럽의 3대 미술행사로 꼽히는 세계 최고의 공공미술 축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다. 작년 여름, 제자들과 함께 이 축제를 찾았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와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카셀도큐멘타, 10년에 한 번씩 열리는 뮌스터 조각프로젝트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우리에게 정말 큰 축복이었다. 기대한 만큼 눈호사를 누릴 수 있는 전시는 얼마든지 많았다. 이들 축제 중에서도 나의 관심은 10년에 한 번 열리는 뮌스터 프로젝트에 닿아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중세도시 뮌스터를 거대한 야외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키는 조각과 설치미술과 영상미술로 이름이 높다. 1977년에 시작되었으니 40년이 지났지만 이제 다섯 번째 축제를 치렀으니 그 느린 호흡과 여유(?)만으로도 놀라운 미술축제다. 뮌스터 조각프로젝트의 감동은 한둘이 아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웠던 것은 뮌스터 시내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자전거 행렬이었다. 게다가 미술축제가 열리는 동안 시민들은 물론이고 많은 관광객들이 작품 지도를 들고 자전거를 타고 도시 곳곳에 놓여 있는 작품들을 찾아다니는 모습은 특별한 풍경이었다. 아름다운 도시 풍경에 눈을 빼앗기다보면 또한 마주치게 되는 곳곳에 숨어있는 작품들은 어느새 도시와 한 몸이 되어 관객을 맞고 있었다. 기획자의 의도가 숨어있겠지만 뮌스터 프로젝트의 모든 작품을 단 하루 만에 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시내에 숙소를 잡고 도시의 깊은 향기를 맡으며 머물렀던 뮌스터에서의 그 며칠은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시간이 되었다. 오늘에 이르러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뮌스터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뮌스터프로젝트도 초기에는 시민단체와 예술계의 거센 비판과 반대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하지만 당시 뮌스터 시립미술관 관장이었던 클라우스 부스만과 큐레이터 카스퍼 쾨니히의 뮌스터에 대한 애정과 끈질긴 노력이 결국은 긍정적인 여론을 만들어냈다. 보수적인 뮌스터 시민들을 지속적인 예술교육과 대화로 설득해나간 뮌스터 시장의 역할도 뮌스터 프로젝트의 역사적인 걸음을 뗄 수 있게 만든 주된 원동력이었다. 뮌스터에 머무는 동안 불쑥불쑥 내가 살고 있는 전주의 거리가 생각났다. 세계적으로 핫한 여행 도시가 된 전주는 한옥마을 중심의 1000만 명 관광도시로 이름을 올렸다. 불과 몇 년 사이 관광도시로서의 양적 성장은 놀라울 만하다. 그러나 전주가 앞으로도 관광객들이 다시 찾아오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뮌스터 거리를 거닐면서 전주가 떠오른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전주 거리 곳곳에 아름다운 미술품이 놓인 거대한 야외미술관. 자전거를 타고 한옥마을과 전라감영과 객사와 풍남문을 거쳐 남부시장에서 미술품을 만나고 팔복동 예술공장의 예술품들과 대화하며, 덕진공원과 전주 곳곳에 숨어있는 쌈지공원과 천변 길에 설치된 작품들로 전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난다면, 그리하여 천년 역사가 깃든 전주를 매력적인 도시로 기억할 수 있게 된다면........ 긴 안목으로 미술프로젝트를 만들어 세계적인 명소가 된 뮌스터의 사례는 세계적인 문화여행 도시를 꿈꾸는 도시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은 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에서 끝나는 일차원적인 관광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문화와 예술로 치유되고 정화되는 품격 있는 여행의 시대다. 전주는 그러한 여행의 품격을 갖출 수 있는 좋은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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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20 21:53

승강장에 걸린 시는 어디로 갔을까

▲ 조미애 시인전북시인협회장 최근 전주시내버스승강장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예술이 숨쉬는 승강장이 되어 시민들에게는 이용의 편리를 도모하고 전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쾌적한 인상을 주기 위해 현대적인 모습으로 하나 둘 바뀌고 있는 것이다. 전주시 전역을 지붕 없는 미술관과 예술관으로 만들기 위한 큰 행보라고 한다. 천년의 빛과 천년의 숨을 주제로 했다는 소식이다. 승강장 하나에도 예술을 접목하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런데 전주시내버스승강장이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던 날에 그곳에 걸려 있던 시(詩)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얼마 전 우리 협회 카페에는 특별한 글이 올라왔다. 전주를 방문한 경기도의 한 여성이 버스승강장에서 만나게 된 시 한 편에 대한 감동을 적은 글이었다. 전북도청 버스정류장에 있는 글이었는데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여 카페를 찾아 글을 남긴 것이었다. 우연히 만난 시에 대한 여운과 함께 사진으로 찍어간 시를 캘리그라퍼 지인이 작품으로 만들어주었다면서 족자와 부채로 만들어진 사진까지 올려 둔 것이다. 공개된 자리에 연락처까지 남긴 그분의 정성은 한 줄기 소나기처럼 신선하고 고마웠다. 그동안 전주시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버스승강장에 전주 시인들의 시를 승강장 벽의 옆면에 새겨 시민들이나 전주를 찾는 관광객이 자연스럽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버스승강장에 시인들의 작품이 걸리던 날 전주는 다른 그 어느 도시에서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해낸 것만으로 문화예술도시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승강장문학작품은 점차 상업적 광고에 밀려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당시 나의 시는 전북대학교 승강장에 있었는데 빠르게 커다란 광고 한 장이 그 위를 덮어버렸다. 이후 승강장 시 걸기는 한 차례 더 시도되었고 그때 걸었던 작품은 다행히 아직 남아 있다. 한때는 기와를 얹어 고전적인 도시로써의 풍모를 자랑하였는데 이제 현대적인 감각의 조형물로써 승강장 자체가 예술적인 위엄을 담아 고전과 현대가 병존하는 전주시의 모습을 승강장에서도 볼 수 있는가 보다. 승강장이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새롭게 건축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예술이 숨쉬는 승강장 바로 그곳에서 시인들의 아름다운 작품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시에서는 오래전부터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시를 써서 보여주고 있다. 서울에 가는 날에는 지인들의 시를 읽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지하철을 이용하곤 한다.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지하철 시를 읽고 있을 것이다. 바쁜 걸음으로 그냥 스치는 인연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한 편의 시가 친구가 되어 고단한 일상을 위로하고 있을 것이다. 서울시가 처음 지하철에 시를 걸기로 했을 때에는 전국의 시인들에게 청탁을 하여 시를 모았으며 최근에는 시인들의 시와 함께 시민들의 작품도 받아서 올리고 있다.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시가 있는 승강장의 풍경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새로운 단장이 모두 끝나고 나면 공사 기간 중 잠시 보관해 둔 시를 찾아서 시내버스승강장에 다시 걸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전주를 찾은 사람들로부터 승강장에 걸린 시를 읽고서 보내오는 반가운 소식을 오래도록 선물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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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13 19:23

추억의 부채

▲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장 요즘같이 4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와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 조그마한 부채 하나쯤 손에 쥐고 있으면 그래도 약간은 더위를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에 큰 위안이 된다. 부채는 고향이요, 어머니이다. 여름이면 으레 고향집 마당에는 평상(平床)이 펴져 있었고 그 평상에서 우리 가족의 인정(人情)과 여름이 익어갔다. 밤이면 마당 한 켠에서 피어오르는 매캐하고도 구수한 모깃불 연기를 온몸에 감고 어른들의 얘기를 들으며 내 나름 세상일을 가늠했었다. 그런 밤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평상에 누우면 총총한 밤하늘의 별은 내 눈에 쏟아졌고, 어머니의 옛날 이야기는 내 귀에 켜켜이 쌓여 갔다. 그때 어머니의 손에는 언제나 부채가 들려 있었고, 하염없는 어머니의 그 부채질 속에서 나는 잠이 들곤 했다. 모기와 더위를 함께 쫓아 주었던 어머니의 부채는 부정한 것들을 몰아내어 자식의 앞날을 순탄하게 펼쳐주고자 했던 마음속 깊고 깊은 축원이었으리라. 그립기만 한 어머니의 그 손길,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요, 아련한 풍경이다. 부채는 새로운 기운(氣運)이요 다짐이다. 단오절에 나누는 선물로 부채는 빼놓을 수 없는 품목이었다. 특히 단오절에 임금은 신하들에게 무엇보다 우선으로 부채를 하사했는데, 임금이 내리는 그 부채는 단순한 선물의 차원을 뛰어넘는 엄숙한 의미의 신표(信標)였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부채로 바람을 일으키듯, 이 나라 종묘사직에 새로운 기풍을 진작(振作)시켜 달라는 임금의 간곡한 부탁과 조정(朝廷)의 다짐을 서로 담았기 때문이다. 나는 소리꾼이다. 소리꾼에게 부채는 실과 바늘이다. 부채는 판소리꾼에게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다. 멋도 멋이지만 소리판을 쥐락펴락하는 상징적 도구로, 그리고 소리의 이면(裏面)을 그려내는 약속의 기호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춘향가에서는 춘향의 애절한 옥중편지로, 심청가에서는 심봉사의 눈을 대신해주는 지팡이로, 흥보가에서는 박을 가르는 톱으로, 그 변용의 양상은 장면의 상황만큼이나 다양하다. 이처럼 부채는 소리의 사설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장면을 실감나게 형상화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하나의 무대장치이고, 지휘봉이기도 하다. 보통 소리꾼들이 사용하는 부채는 전주의 특산품인 합죽선을 쓴다. 일반 부채와는 격이 다르고 값의 차이가 크다. 이런 이유에서 1980년 처음 소리에 입문한 시절에는 합죽선을 구해 쓸 여력이 없어 지하철역 입구나 노점에서 파는 값싼 줄 부채를 사서 사용했었다. 지금은 나를 아끼는 시인 묵객들의 글과 그림이 있어 꽤나 값나가는 30여개의 합죽선을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있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갖지만, 지금도 새 부채를 손에 쥘 때면 판소리 초년시절을 떠올리며 그때의 각오와 다짐을 되새기곤 한다. 바라건데 나의 소리가 어머니의 부채가 되어 이 시대의 끝자락에서나마 인정으로 피어나고, 나의 소리가 새로운 기풍을 진작시키는 이 시대의 바람으로 털끝만큼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소리꾼으로서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나의 판소리가 더불어 함께 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고 힘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나는 오늘도 부채를 손에 움켜쥐고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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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06 20:07

불안한 개인과 문화 활동

▲ 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과 노동이 결합되어 상품이 생산된다. 생산된 상품은 팔려야 한다. 팔리지 않으면 그 상품의 가치는 인정되지 않고, 폐기되는 수순을 밟게 된다. 팔리지 않지만 의미 있는 상품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안타까워하지만, 이 생산과 유통과 소비 단계의 전 과정은 엄격한 편이고, 결과적으로 냉정하다. 우리 개인들은 이 생산과 소비의 전체적인 순환 과정에서 두 가지 이상의 정체성을 갖는다. 생산자이고, 소비자이기도 하다. 물론 유통과정에 관계되기도 한다. 생산자일 때는 소비자의 수요를 고려하지만, 소비자일 때는 사실 생산자를 고려하는 경우가 드물다. 소비자일 때는 거의 대부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된다. 다만, 이 욕망이 간단치가 않다. 소비자로서 뭔가를 소비하고자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외 없이 망설인다. 욕망을 충족시킬 최적의 상품을 선택하기 위한 판단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욕망의 변덕이나 무가치한 욕망에 대한 고려는 주로 생략되는 것이 이 시대의 특성이기도 하다. 너무 망설이는 경우로 인해 최근에는 결정 장애라는 개념도 생겨났다. 망설이는 이유는 선택 행위 이후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후회가 예상된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든가, 적절한 것이 선택되지 않았다든가, 더 좋은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든가하는 부정적 자책이 꼬리를 문다. 게다가 성장기 내내 부모나 스승에게 질책당해 온 역사도 자책을 강화시킨다. 자책의 경험이 누적되면 자신이 선택한 것을 믿을 수 없게 되며, 결국에는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불안한 삶의 경계에서 오락가락 하게 된다. 물론 소비할 자원이 풍족해 후회 없이 관련 상품을 모두 구매해 버리면 망설임이 줄어들지 모른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이라면 최소한의 자원은 있으므로, 자원의 양만이 중요변수는 아니다. 불안은 문화 활동을 통한 즐거움과 자존감 회복으로 극복이 가능하다. 물론 문화 활동이 늘 즐거운 것은 아니다. 예컨대 예술 장르 중 악기 연주의 경우 기능적인 연습시간에는 뜻대로 되지 않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시기를 넘기고 나면 조금씩 즐길 수 있게 된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머리와 몸을 맑게 하고 나면 삶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노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고, 노는 자신을 허용하게 된다. 삶에 여유가 생긴다. 즐기는 시간에는 불안이 범접하지 못한다. 즐기지 않는 생명체가 있을까. 물론 그 즐거움도 지속되지 않는다면 참으로 허무할 것이다. 따라서 즐거움도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욕망이 품고 있는 가치에 대한 고려를 생략하는 이 시대의 트렌드를 거슬러 욕망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는 지혜도 요청된다. 지구상의 모든 인류는 평등하다. 저자 오연호가 만난 덴마크 인이 덴마크 사회는 불평등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했듯이 모든 인간은 각기 장점을 살려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많이 아는 사람은 나눠 줘야 하고, 필요 정보는 적극 섭취해야 한다. 나누고 배우는 관계는 언제나 역전될 수 있다. 루스 그레엄(Ruth Graham)의 묘비명은 공사 끝. 그동안 참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End of construction, Thank you for your patience)이다. 우리는 주로 공사 중인 채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라는 점에서도 평등하다. 그 와중에 주어지는 문화 활동할 수 있는 시간들에 감사하며 즐기고 나누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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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30 19:10

지붕 없는 미술관, 세병호에 거는 꿈

▲ 엄혁용 전북대 미술학과 교수 지난해 학회 참석차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방문했다. 2000년에 개관해 10여년 만에 한해 400만 명의 관람객이 찾아오는 런던의 명소로 자리잡은 이 미술관의 전신은 놀랍게도 화력발전소다. 2000년대 이후, 국가와 도시의 번성을 이끌었던 산업유산이 생명력을 잃은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새롭게 변신해 도시 발전의 동력이 되고 있는 예는 많다. 테이트모던 또한 그 대표적인 공간이다. 특히 프랑스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의 마망 등 거대한 조형물들이 설치된 테이트모던 앞 광장은 런던 시민들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의 휴식공간이 되었으니 예술의 힘을 새삼 깨닫게 된다. 탄광산업의 쇠락으로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빠져있던 영국의 작은 탄광도시 게이츠 헤드 또한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북방의 천사조각상으로 이름을 얻어 해마다 수십 명이 찾아오는 도시로 탈바꿈했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공간을 색다른 예술적 시각으로 재생시켜 도시를 활성화시키고 주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 성공적 사례들이다. 몇 년 전부터 전주 에코시티에 위치한 세병호 호수공원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애초 35사단이 있던 이 호수공원은 아직 부대를 상징하는 기념물이 남아 있지만, 넓게 펼쳐지는 잔디마당이 일품이다. 35사단이 이전한 이후 에코시티로 이 일대가 개발되면서 세병호를 둘러싼 산책로와 공원은 인근 아파트 주민들뿐 아니라 전주시민들이 찾아오는 소중한 휴식공간이 되었다. 나도 그 중 한사람인데, 어느 날 세병호 산책길을 걷다가 문득 갖게 된 생각이 있다. 아름답게 펼쳐지는 호수공원의 잔디마당을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만드는 일이다. 넓디넓은 잔디 광장에 자연과 호흡하는 다양한 조형물이 놓이는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조각을 전공한 나에게는 무거운 짐이 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제자들의 창작열정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부재한 지역의 문화 환경이다. 조각은 공간성과 장소성이 확보되어야 작품의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는 특별한 영역이다. 전주는 문화예술의 도시라는 수식어만큼 다양한 예술 분야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유독 조각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미흡하고 야외 전시공간(조각공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그 때문에 이제 막 새롭게 나아가려는 젊은 작가들이 꿈을 포기하거나 지역을 떠나는 현실은 안타깝다. 젊은 청년 작가들이 의욕을 잃지 않고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을 이제부터라도 만드는 것은 어떨까. 좋은 통로가 있다. 세병호 지붕 없는 미술관 설립이다. 대단한 예산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자치단체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세병호를 둘러싼 잔디마당에 야외 조형물을 설치할 수 있도록 기반만 조성하면 전주도 훌륭한 야외조각공원을 가질 수 있다. 해마다 졸업을 앞둔 예비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하고, 기성 작가들은 실험정신으로 구현해낸 조형물들로 교류하며 관객들은 일상에서 예술을 향유하는 공간. 말 그대로 지붕 없는 야외 미술관이 되는 것이다. 야외 조각공원(혹은 지붕 없는 미술관)은 단순히 작가들의 야외작품을 설치하고 감상하는 전시장으로서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다. 긴 안목으로 보자면 문화예술의 씨앗을 심는 중요한 토양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조형물들은 회색의 도시를 생동감 있게 변화시키고, 장소가 갖고 있는 역사와 힘을 기억하게 해주는 통로도 된다. 여름 폭염에도 비지땀을 흘리며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제자들을 본다. 지붕 없는 미술관 설립의 꿈이 더 간절해진다. △엄혁용 교수는 홍익대 미술대학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국민대 디자인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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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23 20:01

섬세한 상징 폭력에 반하여

▲ 조미애 시인전북시인협회장 한때는 이름 난 화가의 전시회나 동숭동 연극을 관람하기 위해서 밤 열차를 예매하고 이웃집 아이들과 집단을 이루어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한 모습이 사라지게 된 것은 분명 민선지방자치 시대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주민의 선택을 받은 지방의 수장들이 지역문화예술정책을 공약하고 실천함으로써 굳이 서울행 버스를 타지 않아도 상당 수준의 문화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발전한 지역문화예술이 전문예술인과 예술동호인들의 간극과 차별화를 이루지 못함으로써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적인 문화예술 영역은 본질적으로 일반인들의 문화적 인식과 구별된다. 예술동호인들의 다양한 활동은 개인적 만족감을 넘어 지역 주민의 삶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주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전문 예술인들의 태도는 예술동호인들과는 서로 다른 아비투스를 생산한다. 예술동호인들의 행위는 전문예술인들의 형식을 모방하는데 주위를 집중하는데 반해 전문예술인들은 새로운 문화를 개발함으로써 더욱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행동은 우월한 것과 저급한 것이라는 이분법적 대립이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서 평가되기 때문에 전문인과 동호인에 대한 정체성의 충돌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전문예술인들은 스스로 문화의 대중화를 선호하다고 하고 있지만 희소성의 객관적 토대인 문화적 독특함을 보존하는 데는 불안해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에 살았던 장자(莊子)는 뛰어난 시인이었다. 그는 대지한한(大知閑閑) 소지간간(小知間間)이라고 했다.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여유가 있고 작은 지혜를 지닌 사람은 남의 눈치만 살핀다는 말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겸손하고 너그럽지만 지혜가 부족한 사람은 자신을 내세우려고 애쓰며 사소한 것에도 시비를 가리려 한다. 그러기에 전문가는 진지하면서도 너그러워야한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은 분명해야 하지만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항상 이겨야한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다. 이러한 장자의 가르침은 오늘 날 많은 시인들에게 문학적 상상력을 북돋아 주었으며 이것은 곧 예술적 상상력으로 승화되어 문화와 예술이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사실 정통문화에 대해 예술인들의 논쟁은 문화자본과 사회적 권력의 지배원리를 규정하기 위한 투쟁의 한 단면일 수 있다. 상당 부분 문화는 사회 계층을 구별하고 차별하는 도구이다. 그러므로 문화는 섬세한 상징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예술인들이 자신의 영역을 고집하고 생활동호인의 비전문적이고 비문화적인 요소를 비판만 계속한다면 지금보다 더 고립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대중으로부터 외면 받게 될 것이 자명하다. 사회적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각각의 영역에서 서로 다른 자본을 동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양과 학식을 동일시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예술 작품은 구별 관계를 객체화한다. 예술동호인의 활동은 화려하게 활성화되어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다지만 전문예술인의 질적 성장을 추월할 순 없다. 높은 수준의 문화예술 미학은 유치하지 않으며 질박하고 소박하다. 더구나 수단의 절약과 같은 미덕에 가치를 둔다. 그럼에도 민선시대 문화예술의 여러 분야에서 양적인 평가만을 우선시함으로써 질적으로 우수한 문화적 가치가 무시되고 상대적으로 지원이 부족한 것은 깊이 우려되는 일이다. △조미애 시인은 한국문인협회 이사이며 시집 <꽃씨를 거두며>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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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16 20:29

고향 사랑으로 전북의 몫을 찾자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장 [달님이시여! 높이 높이 돋으시어 멀리 멀리 비춰 주십시오] 이 노래는 현재 전해지고 있는 백제 유일의 가요로 알려진 정읍사(井邑詞)의 첫 머리입니다.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 이 노래에 대한 배경과 그의 증표에 해당하는 망부석이 잘 소개되고 있으며 노래는 악학궤범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읍사에는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한(恨)이 담겨 있습니다. 백제의 노래 정읍사는 남도의 노래입니다. 남도의 노래 판소리는 한(恨)의 예술입니다. 정읍이 고향인 나는 소리꾼입니다. 나의 세포 하나 하나는 전라북도의 바람과 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는 태생적으로 전북을, 남도의 한을 노래 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고향(故鄕)! 불씨처럼 가슴에 담고 사는 말. 내 가슴속에는 전북의 산천이 언제나 펼쳐지고 굽이쳐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산업화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고향의 현실에 미치면 울분을 떨칠 수 없는 면이 있기도 하지만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곳, 생각할수록 아늑한 내 영혼의 안식처, 그곳이 바로 내 고향 전북입니다. 나는 40여년 가까이 서울에 사는 동안 경동시장에 가기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특히 모과와 석류가 나오는 가을에는 꼭 한 차례씩 들르곤 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고향의 냄새를 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무신으로 개울물 품어 가며 잡았던 미꾸라지가 추억을 거슬러 올리듯 꿈틀대고 있고 어머니와 같은 과일, 모과가 있기에 그곳에 갑니다. 모과를 보면 어머니가 생각나고, 어머니를 생각하면 고향이 떠오릅니다. 모과 향기는 어머니의 손길입니다. 나무 등걸처럼 굽어진 손으로 배앓이 배를 쓰다듬어 주시고, 골 깊게 패인 주름 속 잔잔한 눈길로 머리맡을 지켜주신 어머니를 나는 모과로 하여 만나곤 했습니다. 나에게 어머니는 고향입니다. 내 고향 전북은 모과처럼 은근한 곳이고, 어머니의 손길처럼 인정이 펼쳐지는 곳입니다. 해거름엔 저녁 짓는 연기가 낮게 깔려 갔던 고향마을! 판소리꾼인 나는 내 영혼의 원천인 그곳의 삶처럼 은근한 소리, 속 깊은 소리를 하고 싶습니다. 그 시장에 가면 부지런한 사람들이 있고, 화장기가 없기에 더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으며, 목청을 높이며 악착을 보이는 아줌마가 있고, 큰 돈보다 한 푼이 더 소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논에 발을 묻고 허리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했던 어머니가 그곳에 있습니다. 9남매를 기 안 죽이고 거두기 위해서, 남들만큼은 가르쳐 보겠다고 두 팔을 걷어 부쳤던 생전 어머니의 모습을 그곳에서 보게 됩니다. 판소리꾼인 나는 고향사람들처럼 건강한 소리, 어머니처럼 생명력이 약동하는 소리를 하고 싶습니다. 나아가 정읍사의 달처럼 높이 돋아서 우리 소리 판소리를 백두에서 한라까지 이 강산 구석구석에 메아리치게 하는데 손색없는 전북인으로 활약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우리 전북인은 더욱 높이 높이 돋아서 이 나라 이 민족의 앞길을 밝히는 빛나는 존재로, 내 고향 전북은 문화와 예술이 숨 쉬는 고장으로 거듭날 것이라 확신합니다. 올해는 전라도 명명 천년이 되는 해입니다.이제 웅비하는 전라북도, 새로운 천년을 준비할 때입니다. △왕기석 원장은 제31회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명창부 장원이며 전북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예능보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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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09 18:46

사소한 문화 활동과 심리적 자본

▲ 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문화 활동은 예술 행위를 포함하여 사회관계 속에서 취하는 삶의 방식과 가치와 신념과 전통적 활동 등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특히 예술은 장르별로 인식되기도 하고, 최근에는 장르별 융합이 자주 일어난다. 이렇듯 예술을 포함하는 문화 활동이라는 것은 사회 구성원의 고유한 정신과 물질, 지적감성적 특성의 총체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문화 활동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생활 속에서 우리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예술 행위이건 지적 대화이건, 전통에의 몰입이건 간에 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분명 폭력적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물리적인 폭력 혹은 정신적인 폭력 혹은 그 둘 다 일수도 있다. 왜냐하면 자신이 무엇인가를 통해 즐기지 못하는 경우에는 늘 주변의 누군가를 대상으로 하여 삶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특성을 지닌 생명력 있는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고, 움직임은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나타난다. 때로는 희생이라는 생활양식으로 누군가 상대방을 위한다는 생활방식을 끝내 고집하다가 결국 그 상대방을 함정에 빠뜨리는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희생을 즐기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삶의 방식일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현재 즐거운 상태인가를 확인할 책임이 있다. 즐겁지 않다면 곧바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예술 장르로 돌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최소한 영화관이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PC방으로라도. 그래야 비로소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을 괴롭히는 활동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다. 프레드 루턴스(F. Luthans)는 2006년에 심리적 자본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가 말하는 심리적 자본은 모두 네 가지로, 희망(hope), 자기효능감(Efficacy), 복원력(resiliency), 낙관주의(optimism)이다. 이 네 가지 심리적 자본의 앞 글자만 따서 단어를 만들면 영웅(HERO)이 된다. 우리가 심리적 자본을 스스로의 방식으로 잘 축적하면 어느새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비유적 해석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 어느 순간에도 이러한 심리적 자본이 자기 통장에서 제로 상태 혹은 마이너스 상태가 아닌지 꺼내보아야 할 것이다. 어디서나 손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통해서, 손쉽게 볼 수 있는 영화를 통해서, 손쉽게 읽을 수 있는 만화나 시나 소설을 통해서 이러한 심리적 자본을 다시 채워 넣을 수 있다면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굳이 부러워할 필요가 없으리라. 심리적 자본과 유사한 개념으로는 정서지능 혹은 감성지수라는 것도 있다. 피터 샐로베이(Peter Salovey)와 존 메이어(John D. Mayer)가 일반적인 지능지수(IQ)와는 질이 다른 정서지능을 언급하였다. 즉 마음의 지능지수라는 것이다. 첫째, 자신의 진정한 기분을 자각할 수 있으며, 이를 존중하는 자기인식이다. 둘째 충동을 자제하고 불안이나 분노 같은 스트레스를 제어하는 자기관리 지능이다. 셋째, 어떠한 목표를 추구하다가 그 추구가 실패로 끝났을 때에도 좌절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격려할 수 있고, 계속적으로 동기유발을 하는 자기확신이다. 넷째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다. 다섯째 집단 내에서 조화를 유지하고 다른 사람들과 협력할 수 있는 사회적 지능이다. 프레드 루턴스가 언급한 자기효능감과 복원력이라는 심리적 자본과 공통점이 있음을 눈치 채셨을 것이다. 정서적 지능은 아직 정형화된 테스트 방법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최소한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심리적 자본이 튼실해지는 여름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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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02 19:46

시선으로부터의 여유

▲ 김승희 국립전주박물관장 여름 바캉스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이국의 풍광을 즐기기 위해 국외로 떠나는 여행객들이 매년 늘어나고 청년 이상 중년의 사람들이 모이면 해외여행 이야기로 대화의 꽃을 피우기 일쑤다. 굳이 발품을 팔지 않아도 TV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안방에서도 충분히 해외 여러 나라의 자연과 문화를 감상하는 호사를 누린다. 그 중에서 요즘 나의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노래 잘하는 가수들이 유럽의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래뿐 아니라 유명 팝송들도 기량을 다해 불러주어 시청자가 충분히 귀호강을 할 수 있게 하고, 더불어 고풍스런 건축물들을 품은 아름다운 그 나라의 자연을 감상하는 눈호강도 하게 해준다. 그들은 내가 아는 한, 또는 느끼는 한, 우리나라 탑가수들이다. 당연히 거리의 구경꾼들은 그들의 노래에 감탄하고 소박한 환호의 박수를 보내는데, 마음 조리던 그 가수들은 그런 반응에 안도하고 시청자도 함께 뿌듯해하고 으쓱해한다. 이봐, 우리가 코레안이야, 우리 이 정도야, 알겠어? 하는 느낌이랄까. 아직도 한국인은 외국인의 호응에 유난히 배고파한다. 그리고 어린사람들의 음악이라고 관심 없던 K팝이 미국 빌보드에 상위권을 차지하면 그 그룹을 평소에는 몰랐어도, 노래를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어도 덩달아 어깨 으쓱하며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좋아한다. 방탄소년단이 그만큼의 칼군무와 노래실력을 갖추기까지 기울였던 피나는 노력, 그것을 뒷받침한 소속사 스텝들의 노력이 국위를 선양하기 위해 있었던 건 아니지 않겠는가. 그들의 아름다운 성공일 뿐이다. 그들의 성공을 애국으로 연결 짓는 행위는 요즘 젊은이들에겐 좀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다. 전후세대라 불리는 기성세대가 살아온 세상은 국가의 탄탄한 설립 위에 개인의 성공도 있어왔지만 그 2세, 3세들에겐 국가의 존재감이 개인의 존재감보다 옛날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지향해나가는 국가발전형태도 개인과 인권이 우선 존중되고 국가는 서비스의 기능에 충실해져야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영화 비긴 어게인에서 모티프를 딴 그 신선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온전히 릴렉스하게 즐기지만은 못하는 시청자 부류의 한 사람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한번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시청자로서 유명가수들의 노랫소리를 충분히 즐기는 것은 물론 호강이고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어디서든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고 충분히 자리매김되어 있는 가수들이다. 그들보다 아직 자리매김에 허기진 신인, 또는 무명의 실력있는 가수들(혹은 가수지망생들)이 우리나라에 많고 많은 걸 안다. 버스킹이란 그런 이들에게 주어져야 할 무대가 아닐까. 외국인들이 우리 프로가수들의 노래실력에 얼마만큼 감탄하는지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었다면, 실력파 아마추어들이 도전하는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것으로 포커스를 옮기는 건 어떨까 싶다. 그 아마추어들도 충분히 박수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점은 박수를 받지 못해도 좋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승자독식으로 만연한 사회의 일면을 이 아름답고 여유로운 프로그램에서까지 내비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한다. 저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하는 두려움보다 그냥 나는 무엇을 어떻게 얼마만큼 보여줄까에 핵심을 두는 여유로운 사회가 늘 그리운 심정에서 한번 욕심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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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25 18:41

남북교류에 문학이 가장 앞서야 하는 이유

▲ 윤철 전북수필문학회장 세기적 사건인 612 북미정상회담이 잘 끝났다. 지난주에는 어느 자리에서나 북미정상회담이 화두였다. 일부에선 성과를 깎아내리기도 하지만 처참한 전쟁까지 겪었던 지난날의 대립과 갈등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화해와 평화의 온기를 느끼기에 충분한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 작년 이맘때를 돌이켜보자. 내 책상에 핵 단추가 있다라는 김정은의 말 폭탄과 핵실험, 미사일 발사에 미국은 코피 전략으로 북한 핵 관련 시설을 정밀 타격하겠다는 북미 간의 대립이 고조되어 이 땅에 전운이 감돌고 대다수 국민은 불안에 떨지 않았던가. 이제 전쟁의 위협은 사라졌다. 통일의 시야를 가리던 짙은 안개도 지난 여섯 달 사이에 빠르게 걷혀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통일이 보인다. 제대로 된 통일의 밑그림을 그리고 준비해야 하는 『통일의 시대』가 온 것이다. 나뉜 땅덩어리가 합해지고 남북한의 기존체제를 무너뜨려 새로운 단일체제가 태어난다고 해서 그것을 진정한 통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통일이란 땅 위의 경계선을 허물고 하나로 합하는 물리적 개념뿐 아니라 같은 민족으로서 혈연적 유대성, 지역적 인접성, 문화적 동질성, 정서적 연대성, 즉 생활문화를 공유하는 정신적 개념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지난 73년 세월 동안 남과 북의 생활문화는 정반대 방향으로 너무나 다르게 변화하고 발전하였다. 격차 또한 극심해진 탓에 충분한 준비 없이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조정하기 어려운 사회 혼란으로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쪽박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탈북자들의 남한 사회 적응을 모델로 통일 이후의 문제점을 꼼꼼히 짚어봐야 한다. 탈북자 대부분이 적응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가 생활문화 차이 때문이란다. 이념과 체제에 의한 통제가 정당화된 획일적 사회주의 체제에서 교육받고 세뇌된 사고와 가치 기준으로는 갑작스럽게 주어진 자유를, 경쟁이 치열한 시장 경제를, 이질적인 것이 공존하는 다변화 사회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음은 당연한 현상이다. 탈북자가 늘어나면서 이것이 사회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제 남북한은 문화적 동질성, 정서적 연대성만으로 본다면 단일 민족이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생각한다. 체제 안전을 보장받은 북한의 다음 수순은 경제발전을 위한 개혁개방이다. 북한의 개혁개방 결과로 남북 사이에 사람과 교통수단의 왕래가 자유롭게 되고, 전화와 편지 인터넷 통신에 제한이 없으며, 관세나 수량 등의 규제 없이 상품을 교역할 수 있다면 그것이 실질적인 통일이리라.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져 서로를 이해하는 섞임과 스밈 가운데 문화 격차가 자연스레 줄어들고 없어진다면 휴전선의 있고 없음을 떠나 통일은 완성될 것이다. 따라서 남과 북의 심각한 생활문화 격차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해소를 위한 노력이 진정한 통일의 디딤돌이며 통일 이후 사회 혼란과 통일 비용을 가장 최소화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평생 직접경험으로 체득하는 것보다 간접경험으로 알고 익히는 것이 훨씬 많다. 지금으로선 남과 북이 서로를 직접 경험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간접경험을 통해 생활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밖에 없다. 간접경험으로나마 서로의 생활문화 차이를 이해하고 습득하며 단절점을 이어 붙이는 유용한 방법을 찾자면 문학만 한 장르가 없다. 보통 수준의 사고와 가치 기준이 바탕을 이루는 일상의 삶을 진솔하게 그려낸 문학작품은 미지의 사회를 간접 경험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또한 남북교류에 문화교류가, 그것도 문학이 가장 앞에 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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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18 18:50

배고픈 예술계

▲ 염광옥 한국무용협회 전북지회장 문화예술이 밥 먹여 주냐? 이런 비아냥은 이제 구식이다. 지금 이 시대에는 문화예술이라는 것이 밥만 먹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요즘 세상에서 문화는 어느 한 지역이나 나라의 대외 이미지를 좌우하는 브랜드로서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술가를 가장 빈번하게 수식하는 단어는 가난 아닐까 싶다. 가난은 모더니즘 사조가 예술계를 지배하던 시기부터 예술가들을 따라다녔던 꼬리표였다. 예술 그 자체만을 위한 예술이라는 가치 아래 가난은 예술작품의 고결함과 깊이를 더해주는 혹독한 주문이 되었다. 음악의 아버지라 추앙받는 바흐도 가족의 생계를 걱정했고, 세기의 천재 모차르트도 빚에 쪼들렸다. 가곡의 왕으로 불리는 슈베르트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니 말이다. 그래도 반 고흐에 비할까.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채 고독하고 비참하게 살다 권총 자살로 37세의 삶을 마감했으니 말이다. 지금이야 반 고흐의 작품들이 모두 엄청난 고가에 거래되고 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생전에 단 하나의 작품밖에 팔지 못했다. 다른 나라 예술가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비운의 천재 화가 이중섭의 인생도 극심한 빈궁과 처자식을 일본으로 보낸 후의 애절한 고독으로 가득하다. 예술가의 숙명이라고 해야 하나. 예술가의 가난은 시대가 변해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물론 본질적으로 예술의 미학적 가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의 노동과는 대항적 위치에 놓여야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 예술가들이 처한 현실적 상황을 직시하면 예술가처럼 비정규직이나 저임금 노동 착취를 당하는 직업군도 찾기 어렵지 않을까 한다. 시간제 아르바이트의 시급에도 못 미치는 대가와 전문적 기능과 기술을 제공하면서도 사회적으로 받는 무시와 편견은 이들로 하여금 자기 직업에 대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각종 예술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직업적 특성을 감정노동이라는 단어를 생성시킴으로써 설명하듯 예술 노동 또한 무엇보다도 정신노동이라는 기본 전제를 그 특징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 행위는 육체적 노동을 수반하는 정신적 노동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예술인복지법이 만들어지고 복지재단도 설립됐다지만 예술가들의 빈궁한 처지가 개선됐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예술가를 돕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자기가 좋아 선택한 예술인데 왜 국가가 나서서 이들을 도와야 하느냐는 것이다. 자영업자가 망하면 국가가 도와주는 것을 보았냐는 말이 덧붙는다. 어떤 이들은 예술가는 가난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믿기도 한다. 그러나 예술가들이 일한 대가만큼은 정당하게 지급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예술가는 가난하기 마련이라고 외면해야 할까. 열심히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상황이 정상은 아니다. 예술가들도 돈 버는 일이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경제에만 매달려 물질적인 예술을 창조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문화예술은 지역국가의 브랜드로서만이 아니라 국민과 지역 주민으로 하여금 문화 체험과 예술 경험을 통해 긍정적 판타지와 인생의 전환점을 경험하고 사회와 삶을 진지하게 탐색할 수 있도록 이끄는 매개이기도 하다. 문화예술은 건강한가? 아직도 문화예술인들이 춥고 배고픈 세상은 한낱 공허한 빈 수레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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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11 19:04

선거와 문화다양성

▲ 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6월 13일을 앞두고 있어 길거리가 활력이 넘친다. 한편 소음 때문에 괴롭다는 분들도 있다. 피곤할 때는 소음이 더욱 힘겹다. 이 소음이 전국의 공간에서 6월 12일이라는 시간까지는 지속될 것이므로 공간과 시간의 양 측면에서 견디는 경험이 축적될 기회이다. 오히려 소음이라는 현상에 시선을 두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나 취미활동 쪽으로 신속히 방향을 전환해 듣거나 보거나 뭔가 하는 것이 현명한 대응일 수 있겠다. 후보들은 시민들에게 자신을 지지해주기를 호소한다. 자신의 경력 중 장점 그리고 정책 공약을 타 후보와 차별화해 제시한다. 경력 중의 장점은 선명한 편이지만 정책 공약은 미래에 대한 약속이므로 그 근거나 공약의 준수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불명확하고 자기중심적인장담에 가깝다. 그래서 정책 공약에 대한 유권자들의 판단은 후보자의 논리적 설득력뿐 아니라, 후보자가 보여주는 확신에 찬 태도나 신념에 의존하기도 한다. 하지만 후보자가 가진 신념은 객관적이고 진정한 안목을 지닌 시민들과 소통과 공유 되지 않을 경우, 스스로 거는 최면에 그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신념은 그 시대와 공간의 제도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선택되는 것이고, 유권자의 공통적인 희망사항과 맞닿을 때 이해되며, 특히 자신의 이익에 기반 하지 않은 모양새이지만 실은 자신의 이익에 기초하는 예측성 명제들이기 때문이다. 일자리 증가나 국가예산 증액 등의 공약 수단과 신념은 시민으로 하여금 풍요에의 접근과 행복의 증진이라는 미래의 열매를 기대하게 한다. 결국 이런 꿈들을 현실화 시킬 수 있다고 믿는 후보자 자신을 선택하여 주기를 원하고, 선택 받으면 해당 임기 동안 자신의 정치적 힘을 행사할 것이다. 그리고 그 권력은 합의된 선거제도로 보장한다. 현재 선거운동을 보면 공약이 크게 다르지 않듯이, 문화적으로 다양한 표현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름이 적혀 있는 현수막과 명함, 정당 이름과 번호와 후보자 이름으로 장식된 소형 트럭의 확성기와 간혹 소형 트럭에 서 있는 후보자들, 교차로에서 율동을 하는 선거운동원들의 모습에서 성별, 연령별, 분야별, 지역별 표현의 다양성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들의 획일적인 노동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어찌 보면 정치적인 의정과 행정활동이라고 하는 기능적 혹은 전문적 탁월성을 중시하는 분야에서 문화다양성을 논의하는 것이 부적절해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모든 부서가 인간과 인권중시, 과정과 소통중시, 관계와 지속성 중시, 예술과 놀이와 휴식을 중시하는 문화적 부서가 되는 날을 꿈꾸는 문화계의 입장에서는 선거에서도 문화다양성이 발현되기를 바란다. 짧은 선거운동 기간이라는 한계 상황에서 효과적인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가장 효율적이라고 여겨지는 선거운동 방식으로 획일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조차 다양한 표현과 행동 방식이 자연스럽게 여겨지고 펼쳐지는 선거운동의 풍경을 기대한다. 오전에는 선진국 버스기사였다가 오후에는 개발도상국, 저녁에는 후진국 기사가 된다는 허혁 작가의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라는 책에서 볼 수 있듯이, 이번 선거 결과 우리 시민들이 오전에는 선진국 시민이었다가 오후에는 개발도상국, 저녁에는 후진국 시민이 되지 않고, 늘 선진국 시민으로 생활할 수 있는 사회가 앞당겨지기를 바란다. 버스기사들, 정치인들, 회사원들, 농민들, 교사들, 청년 직업 대기자들, 학생들 너나 할 것 없이 선진국에서 선진국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나의 이웃들이 이 선거기간 동안에 무례한 상황에 놓이지 않는 선진국 시민으로 생활하도록 나는 나의 의무를 충실히 행하고 예를 갖출 수 있을까. 그리고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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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04 20:04

좀비 영화를 보며 정치를 생각한다

▲ 김승희 국립전주박물관장 지방선거가 가까워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매번 선거 때마다 어떤 기준으로 일꾼을 뽑아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러던 중 최근에 우연히 좀비를 다룬 영화를 접하게 되었다. 이러한 영화들이 자꾸 만들어지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우리 역사 속에서 좀비와 비슷한 귀신을 살펴보고자 하는 흥미가 생겼다. 우리의 전통 귀신은 보통 죽은 자의 혼을 말한다. 귀신은 보고 들을 수는 있지만 붙잡을 수 없는, 즉 질료적인 한계가 분명한 존재이다. 그런데 일부 억울하게 죽은 자의 귀신이 이승에 개입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한 귀신은 한 사회 집단의 존속을 방해하는 존재가 된다. 반면에 좀비는 질료적 한계는 없으나 가사(假死)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그 형상에서는 내면화된 분노를 표상하고 있다. 그들은 떼를 지어 다니며 전염을 통한 무한 증식을 한다.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우리나라는 작은 빙하기라 불리는 소빙기(小氷期)를 맞는다. 기후학자들은 이 소빙기의 절정을 1550~1700년에 걸친 약150년으로 상정하는데, 이때 조선 사회는 커다란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선조 때(1567~1608)에는 전쟁과 절대적인 기아상태에서 사람들은 시체를 베어가고 서로를 잡아먹기에 이른 적도 있었다. 그리하여 1594년에는 식인행위를 금지하는 조치가 내릴 정도였다. 숙종대의 을병대기근(1695~1699) 때에는 400여만 명이 죽었는데, 전체인구의 23~33%로 추정한다. 이 시기에 서양에서는 종교개혁운동이 시작된 가운데 전쟁과 반란이 끊이지 않았고, 기근과 역병으로 1693~1694년 프랑스에서는 1/10의 인구가 사망하였다. 조선 사회에 불어닥친 기근과 혹독한 재앙은 백성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으며, 민간에 떠도는 흉흉한 귀신 이야기는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한 반영 내지는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도 있는 죽음에 대한 불안 심리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이에 국가에서는 불안한 민심을 잡기 위한 정치적 대안이 필요하였다. 조선사회에서는 유교의 천도관(天道觀)에 따라 천재지변의 책임이 인간에게 있으므로, 인간사회의 질서를 바로 잡는 방도에 천착하여 이를 해결해나가고자 하였다. 당시 조선은 유교 이념에 따라 예(禮)를 강조하는 사회로 가고 있었음에도, 한편으로는 불교의식인 천도재를 열어 억울한 귀신을 위로하는 정책을 펼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천도재는 죽음으로 비롯된 사회적 갈등과 모순을 해결하는 정치적인 행사였던 것이다. 이렇듯 재앙으로 인하여 국가적 상황이 위급할 때에는 설령 통치 이념에 반하는 것이라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게 바로 정치의 일인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좀비를 다룬 영화나 소설 등의 매체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좀비는 모순으로 가득한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에 미국 영화에 처음 등장했다. 좀비는 원하지 않는 전쟁에 동원되거나 노동시장에 몸을 맡겨 사물화한 인간을 상징하고 있다. 좀비의 행태는 온라인의 익명성을 이용해 하나의 이슈에 몰려들거나 쇼핑몰을 배회하며 해방감을 찾는 모습과 비교되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귀신은 치자(治者)가 죽음 뒤의 세계에까지 뻗은 사회적 화합의 통찰을 보여준 예라면, 좀비는 삶과 죽음의 권리 자체도 박탈당한 채 세계와 절연된 적개심에 가득 찬 존재를 투사한 모습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좀비를 자신의 자화상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런 젊은이들의 아픔을 읽고 포용할 정치적 리더가 선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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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28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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