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6-05-17 00:48 (일)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문화마주보기

문화재의 숲을 만들자

김호석 수묵화가전 전통문화대 교수 제사 때 쓰이는 신위는 반드시 밤나무로 제작된다. 제기는 노각나무가 사용된다. 노각나무의 주산지는 지리산이다. 무분별한 벌채로 노각나무가 없어지자, 노각나무는 거제수 나무로, 그리고 물오리나무로 대체되었다. 1967년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벌목을 할 수 없게 되자, 은행나무가 제기의 주된 재료로 떠올랐다. 먹감은 곶감과 식초를 만드는데 최적이다. 이 나무의 중심 부위에는 탄닌이 산소와 결합하면서 생성시킨 검은 색 무늬가 있다. 조선 목가구의 단순하면서 쾌활한 멋은 이런 재료 선택에서 나온다. 지금도 임실과 고산의 먹감나무는 한국을 대표하는 진귀한 자원임이 분명하다. 전통 악기 특히 거문고에 사용되는 중요한 재료는 오동나무이다. 한국산 오동나무는 가볍고 탄성이 커 진동을 잘 전달한다. 울림이 풍부하고 음향 교환률이 높다. 나이테가 조밀하여 연륜 폭이 좁고 균일하기 때문이다. 이런 나무가 소리를 만들었다. 현실은 타이완산 오동나무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중국산 오동나무로 만든 악기는 공명이 적다. 우리는 옛 악기의 소리를 잃어버리고 있다. 옻나무는 가장 검은 색을 구현한다. 칠흑 같은 밤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옻은 따뜻하고 부패를 방지한다. 전국 어느 곳이든 잘 자란다. 옻은 한국 특유의 색상으로 깊고 공간이 숨 쉬는 특유의 서사가 숨어 있다. 대부분의 목조 문화재는 옻칠과 관련돼 있다. 도료로서 옻은 즙을 채취하여 생칠로 사용한다. 옻의 생즙 채취는 원주가 유일하다. 품질이 뛰어난 옻은 일본으로 수출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쓰이는 옻은 대부분 중국산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 옻을 외면하는 사이에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은 옻칠로서 세계 공예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충북 옥천군이 옻나무 생산 단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신선하다. 전북은 칠보, 쌍치, 복흥, 장수, 진안 등 곳곳에 옻나무 자생지가 널려 있다. 찬란하고 섬려한 문화유산이 후손들의 무지로 시대의 주목을 받지 못함은 부끄러운 일이다. 나무만 그런가. 고려조선시대 섬려한 문화를 창출했던 쪽 풀이 사라졌다. 지금 쪽 염색에 사용되고 있는 식물은 일본산이다. 1980년대 토착화 된 조선쪽이 사라진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예용해 선생이 일본으로부터 쪽 씨를 국내로 들여 온 이래 현재에 이르렀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염장은 일본산 쪽 풀로 염색하며 한국의 색을 자랑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문화재의 재료가 되는 나무와 풀은 위에서 거론한 실례를 훨씬 뛰어 넘는다. 소나무, 돌배나무, 느티나무, 솔송나무, 물푸레나무, 대나무, 신이대, 시누대, 참죽나무, 황칠나무, 닥나무, 꾸지나무, 애기닥나무, 산뽕나무, 황벽나무, 모시풀, 삼. 목화 등은 중요한 문화적 근거가 된 일차 재료다. 이런 재료들이 한반도에 어떻게 분포하는지, 경제적 수령이 된 나무가 얼마나 되는지, 실태 조사한 보고서를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고건축에 사용되는 소나무에 대한 실례는 있다. 2008년 숭례문 화재 사건이 나면서 삼척의 준경묘에 있는 것을 사용한 것이 처음이다. 그러나 이 소나무 숲마저 문화재의 숲으로 지정된 것은 아니다. 산림청에서 지정한 문화재의 재료는 없다. 이것이 후손들이 계승하고 발전시켰다는 이 땅 임산자원의 현주소다. 지금부터라도 최소 100년을 내다보고 문화재의 재료가 되는 다양한 수종의 숲을 조성해야 한다. 문화재 별로 복원에 필요한 정확한 재료와 최적의 숲 조성을 위한 로드맵을 만들자. 전북은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임실의 먹감나무와 순창의 돌배나무, 닥나무. 부안의 소나무, 꾸지나무. 위봉산의 거제수나무. 대아의 애기 닥나무. 고창의 동백나무 등은 이미 최적의 자생지로서 의미를 지닌다. 전라북도는 산림을 자원화 할 수 있는 산림환경 연구소가 있다. 지금 부터라도 전국 최초로 문화재의 재료가 되는 나무를 모두 조사하여 전북 자체만이라도 산림문화를 선점해 나가야 한다. 눈 밝은 단체장이 필요한 이유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7.29 17:05

동학농민혁명 문화콘텐츠 개발 절실하다

문병학 전북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전봉준이다. / 한 지경(地境, 고부군)의 인민이 강제로 빼앗김을 당하는 해(害)를 입었는데 너는 홀로 해를 입지 않았다 하니 무슨 까닭인가? 학구(學究)로 업을 삼아 전답(田畓)이라 하는 것이 3두락(斗落)밖에 되지 않아 아침에 밥을 먹고 저녁에 죽을 먹을 뿐이니 빼앗길 게 없었다. / 너는 해를 입은 것이 없는데 왜 난을 일으켰는가? / 일신의 해를 위해 기포(起包)함이 어찌 남자의 일이겠는가! 중민(衆民)이 원통하여 한탄(恨歎)하는 까닭에 백성을 위하여 해를 제거코자 일어섰다. / 다시 (삼례에서) 기포한 이유는 무엇인가? 너희(일본)가 개화(開化)라 칭하고 한 마디 말도, 한 장의 격서도 없이 군사를 거느리고 도성(都城)에 들어와 야반(夜半)에 왕궁을 격파하여 국왕을 핍박하기에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마음으로 일어나 너희들과 접전(接戰)하여 그 책임을 묻고자 했다. 위 문답은 전봉준 장군이 붙잡혀 서울로 압송된 후 일본 영사와 조선정부의 법무아문 심문관에게 조사를 받은 첫 번째(1895년 2월 9일) 심문기록의 부분이다. 동학농민혁명이 부정부패로 얼룩진 낡은 중세사회를 개혁하여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추구하였고, 일제의 침략에 맞선 반일구국항쟁이었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은 일제강점기와 해방이후 세계사적 차원의 동서냉전체제 구축시기에 빚어진 민족내부의 좌우대립, 민족분단,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반란사건으로 왜곡축소된 채 역사의 뒤안길에 버려져왔다. 그러다가 지난 1994년 혁명 100주년을 전후하여 전국에서 역사바로세우기운동이 전개되었고, 그 결실로 2004년 3월 「동학농민혁명참여자등의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이 제정되었다. 그로부터 15년 후인 지난 2월 동학농민혁명 국가 기념일(5월 11일)이 제정되었다. 이에 따라 지난 5월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부주관으로 제125주년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그동안 역사학계, 시민사회단체, 문화예술단체 등이 중심이 되어 동학농민혁명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민주운동, 근대민족운동, 근대개혁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자 노력하였다. 이제는, 국가기념일이 제정된 지금 기념사업의 새로운 지평 모색에 나서야할 때인 것 같다. 새로운 지평을 모색함에 있어 이성보다 감성에 어필하는 문화예술작품을 제작하여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제작공연된 뮤지컬 [금강]이나 음악극 [천명]을 비롯한 여러 연극이나 마당극 작품들은 대체로 갑오년의 역사를 한국사의 범주에서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에 방점이 두어졌다고 볼 수 있다. 흔히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말한다. 이제는 동학농민혁명의 동아시아, 세계사적 의미와 그 위상을 되찾아 21세기 한반도의 새로운 비전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문화콘텐츠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열흘 전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녹두꽃]이라는 방송드라마가 종영(終映)되었다. 지난 4월부터 총 48부작으로 제작방영된 이 드라마는 본격 역사드라마로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첫 번째 사례로 그 의미가 크다. 국가기념일 제정 등으로 형성된 이런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문화예술계에서 동학농민혁명 문화콘텐츠 개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인 것 같다. 세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프랑스혁명을 꽃피운 뮤지컬 [레미제라블]과 같은 동학농민혁명 주제 문화예술작품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는가? /문병학 전북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 오피니언
  • 기고
  • 2019.07.22 17:01

도시는 꽃심으로 활력에 넘쳐야 한다

이종훈 전주시립극단 예술감독 지난해(2018년) 10월 <전주시립예술단>의 전속단체인 <전주시립극단>의 상임연출로 부임한 다음 날, 주말을 맞아 산책을 할 겸 집 근처인 조경단을 찾았다. 전주 이씨의 시조인 사공 이한의 위패가 모셔진 곳이라기에 전주 이씨인 나는 족보 책에서만 읽었던 조상님을 뵙는다는 마음에 감회가 새로웠다. 허지만 조경단 문이 잠겨있어 들어가지 못하고 아쉬움에 문틈으로 묘역과 비각만 바라보면서 조상님께 인사를 올렸다. 주차장으로 내려온 나는 주변의 울창한 나무숲을 바라보다 주차장 나뭇잎 사이에 가려진 뜻밖의 인물을 만나게 되었는데 바로 연극인 박동화선생의 흉상이었다. 연극인 흉상이 숲속에 설치된 것은 전국에서 오직 하나뿐이다. 전주에 와서 연극을 하게 된 나로서는 전북을 대표하는 연극계 원로선생님을 뵙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흉상 앞에 잠시 묵념을 드렸다. <소리의 전당> 공연장인 연지홀 앞이나, 연극인들이 많이 오가는 거리에 자리 잡았더라면 더욱 좋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전북 연극인들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발길을 돌려 지척에 있는 전주의 대표적인 소설가 최명희 묘가 있는 <혼불 문학공원>을 향했다. 문학공원이라 이름 붙여져 많은 사람이 오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사람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고 낙엽만 바람에 실려 바닥을 쓰는 모습이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돌 판에 새겨진 작가의 글들을 읽으니 혼불의 등장인물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글을 읽을 때마다 청암부인, 강모, 허요원의 삶의 흔적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꽃심의 작가 최명희는 전주를 꽃심의 도시로 만들어 주었지만, 그녀의 묘에는 빛바랜 꽃잎이 볼품없이 떨어진 꽃다발 세 개가 몸을 비틀며 주인을 지키고 있었다. 전주 시민이 된 지 8개월이 지난 요즈음 건지산을 산책하며 즐거운 상상력에 빠진다. 전주는 꽃심의 도시고, 전주의 정신이라고 하는데 꽃을 피워내는 힘, 새로운 문화와 세상을 열어가는 강인한 힘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는 없을까? 전주를 처음 찾는 사람들에게 아, 이래서 전주를 꽃심의 도시라고 하는구나 라고 보여줄 그 방법은 무얼까? 꽃심 전주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특징이 무엇일까라는 고민 때문이다. 연극을 하다 보니 상상력은 나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은 미래의 시사회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전주역 앞의 마중길을 사시사철 꽃길로 장식하면 어떨까? 마중길은 850m라는데 너무 짧지 않을까? 경기장 사거리 로터리까지 꽃길로 장식하고 로터리엔 대형 꽃밭을 만들어 꽃심의 정점(꽃심을 상징하는 조각상)을 설치한다. 나는 전주를 찾는 사람들이 자신을 마중하는 꽃길을 보며 전주가 꽃심의 도시임을 떠올리는 생각을 하며 즐거워한다. 전주는 한옥마을로 대표되는 도시다. 그래서 양반의 도시라고도 하는데 한옥마을엔 양반이 없다. 어딜 가면 양반들을 볼 수 있을꺄? 아니다, 양반들을 거리로 불러내자! 품격있는 양반 조각상들을 만들어 전주시내 광장이며, 정거장, 공원, 쉼터로 불러내자! 다양한 모습의 양반 조각상으로 그들을 도시의 시각적 이미지로 디자인하자! 뉴욕의 황소상(charging bull)과 겁 없는 소녀상처럼! 도시는 꽃심과 양반으로 활력에 넘쳐야 한다! /이종훈 전주시립극단 예술감독

  • 오피니언
  • 기고
  • 2019.07.15 17:20

귀한 만남의 초심을 늘 간직하겠습니다

서현석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올 1월 나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를 맡은 이래 바쁘게 지내오며 간간이 틈이 날 때면 한 분을 찾아보곤 했다. 18년 전인 2001년 개관을 앞둔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의 예술감독을 맡아 밤새워 일을 해도 -그 덕분에 9월 11일 새벽, 잠을 쫓으려고 켜 놓았던 TV에서 뉴욕 무역센터가 재난영화의 한 장면같이 무너지는 현장을 전율 속에 지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손으로는 끊임없이 일을 하며- 시간이 부족하던 때에 큰 도움을 주신 분이셨다. 어린 딸아이와 사내아이를 둔 어머니셨는데 개관 초창기 홍보와 관객 모으기에 당신의 일처럼 참여하셨고, 극장예절 정착에도 솔선수범 하셨으며, 자녀들 또한 적극 참여시켜 당시 오즈의 마법사 공연에 동물역으로 출연하기도 하였다. 고마워하는 우리에게 그분은 아이들에게 문화가 무엇인지 어려서부터 알게 하고, 본인도 문화활동에 참여한다는 즐거움 때문이라 하셨다. 개관 후에 나는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떠나게 되었고, 그후 늘 이분께 고마움을 전하지 못한 부담을 느껴왔다. 그래서 부임 후 나는 우리전당의 회원명부도 들여다보고, 개관 때부터 근무 중인 직원들에게도 물어보고 했지만 어디서도 그분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3월 12일 오후 2시 11분. 우리직원이 외부에서 온 전화인데 대표님을 찾는다고 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하니 맞아, 목소릴 들으니 서현석 감독님이 맞네요. 저 ㅇㅇㅇ예요, 감독님. 순간 나도 알았다. 바로 내가 찾던 분이라는 걸. 너무 기뻐 눈물이 날 것 같다는 말씀에 나도 눈물이 날 뻔했다. 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서현석? 혹시나 동명이인인가? 확인하고자 전화를 하셨다니 잊지를 않고 계셨음에 가슴이 잠에서 깨어나듯 뭉클 하는 것이었다. 이후 그분과 나는 서로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 등등 얘기 끝에 내가 아이들도 많이 컸겠네요 하니 웃으시며 딸아이는 시집을 갔고 아들은 대학 졸업반이에요.라고 하셨다. 아직도 내 마음 속에는 그저 똘망똘망 아이들로 남아 있었던 거였다. 나도 올 9월이면 할아버지가 된다는 등 신변얘기가 이어졌고, 빠른 시일 내에 뵙기로 하고 나의 전화번호를 알려드렸다. 그 때가 오후 2시20분경 이었다~ 반가움을 가라앉히고 업무 중인데 4시가 조금 넘었을까, 웬 아저씨가 내 사무실로 들어 오길래 손님이신가보다 했더니 꽃배달을 왔다며 수령증에 싸인을 하라셨다. 싸인을 하며 1월에 축하 꽃은 거의 받았는데 누구지? 하며 예쁜 카드가 있어 열어보니 바로 ㅇㅇㅇ 어머님께서 보내신 꽃바구니가 아닌가! 아마도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보내셨나 보다. 이렇게나 큰 감격은 내 아내가 드디어 결혼해주겠다고 한 순간 이후 처음이었다.18년 동안을 잊지 않고 나에 대해 궁금해 하고 찾으셨다니, 이런 대접을 언제 또 받을 것인가! 너무나 고마운 마음에 또 한 번 울컥. 나에게 전당을 떠나 있던 18년은 안타깝지만 잊어야 하는 아릿한 추억의 편린이 아니라 숙성의 시간이었던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깨닫도록 자긍심을 북돋아주신 고마운 그분께 다시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내년 개관 20년을 맞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은 예향 전북의 자랑이요 도민의 삶 속에 한부분이 되도록 더욱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ㅇㅇㅇ어머님 같은 도민 여러분의 성원과 참여가 더해지면 금상첨화가 될 것입니다! 도민 여러분의 행복과 번창을 기원합니다. /서현석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 오피니언
  • 기고
  • 2019.07.08 17:18

한지를 한지라 하지 못하고…

김호석 수묵화가전 전통문화대 교수 한지는 없다. 아니 지금까지 우리가 한지라고 부르고 있던 종이는 한지가 아니다. 전주는 조선시대 최상품 한지 생산지였다. 그 한지 위에서 맑고 투명한 조선 미술이 꽃을 피웠다. 다양한 기록들이 세계적 유산이 되었다. 그러던 한지가 중국, 일본에 밀려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이다. 중국 전통 종이인 쉔지는 2009년, 일본 전통 종이인 와시는 2014년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 이유에 대해 짧은 글로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 한지의 우수성을 연구 용역을 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한, 한지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첨단 과학시대, 현대 한지의 질은 어떤가. 조선시대의 것과 비교했을 때 물리화학적 특성에서 크게 뒤떨어진다. 전국의 한지 장인 대부분을 참여시켜 조선 정조 시대의 한지를 재현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기준이 되었던 전통한지와 재현한 한지를 비교한 결과 전반적으로 차이가 두드러졌다. 이에 대해 한 한지 전문가는 이 시대의 장인들이 조선시대 수준의 한지를 만들기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원형을 되살려 재현한 한지로 정부포상을 수여하려는 계획도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전통문화의 원형을 발굴, 조사하여 미래 자원을 위한 동력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연구는 일회성에 그쳤다. 더 나아가지 못했다. 문화수준의 한 단면을 보는 듯 했다. 한지에 관하여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서화와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기본이 되는 바탕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전주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지 원형 재현 사업은 늦었지만 고무적이다. 조선시대의 종이를 재현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더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해 지난날의 잘못과 한계를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조선시대 한지 제작 방식을 알지 못한다. 특히 한지의 특성인 질기고 윤기가 있는 수준의 품질은 현재의 장인 기술로 따라가기 힘들다. 한지 수명을 결정짓는 섬유의 배향과 인쇄성을 높이는 평활도는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다. 둘째, 한지의 재료가 되는 닥나무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부족하다. 한국 토종인 닥나무가 애기닥과 꾸지나무와의 사이에서 생성된 잡종임은 최근에 밝혀졌다. 닥나무 품종에 관한 기본 연구조차 안 되어있다. 조선시대에는 각 지역마다 특색이 있는 닥나무가 존재했다. 지역 특산 닥나무 품종에 대해 실태 파악도 안 되어 있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통일되어 단품종 만이 존재한다. 이 또한 암컷만 있음으로 인해 종이의 품질이 향상되지 못했다. 제대로 된 연구를 위해서는 애기닥나무와 꾸지나무를 키워 1대 잡종인 닥나무를 생육 시켜야 한다. 닥 섬유의 연구는 한지 연구의 출발이며 기본이다. 과학적이고 실천적인 연구가 절실하다. 셋째, 정부가 시행한 정책과 사업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정부는 한지의 본질적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지에 대한 개념 정립이 안 되어 있고 품질 기준조차 없다. 심지어 K.S 표준조차 터무니없다. 문화재 수리 규정에 전통 한지를 사용하라는 규정조차 없다. 정부 부문에서조차 한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정부의 이러한 무지는 현재까지 진행된 주먹구구식의 한지사업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넷째, 민간부문에서 전통한지 소비 시장이 무너졌다. 한지에 대한 품질 규정이 없으니 공예용 한지가 주를 이룬다. 이러다보니 전통한지를 구입하려해도 구입 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한지제조 업체가 1996년 64곳이었던 것이 2018년 현재 21곳으로 줄었다. 이에 대해 중요무형문화재인 지장은 인간문화재가 된 것은 가문의 영광이지만 국가에서 종이 한 장 사가지 않아서 서운했다는 말을 남겼다. /김호석 수묵화가전 전통문화대 교수

  • 오피니언
  • 기고
  • 2019.07.01 18:02

6·25 원혼 유월 뻐꾸기

류희옥 (사)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 그해 여름, 아버지는/ 세상에 왜 이리 춥느냐며/ 솜이불을 덮으셨고/ 어머니는/ 애성받친 메아리만 삼키며/ 산으로 들로 휘젓고 다니셨다// 끝내/ 형은/ 피다 그친 꽃잎 그대로/ 아카시아 우거진 무너미 계곡에서/ 일곱 개의 총알이 박힌 채/ 한 마리 뻐꾸기가 되어// 아버지는/ 시신에 박힌 총알을 빼내시고/ 칼끝에 묻어난 시혈을 삼켜/ 피멍진 가슴 쥐어뜯으며 속울음만 꾹꾹 울다가/ 그 이듬, 이듬해에 또/ 한 마리 뻐꾸기가 되어// 홀로 남은 어머니는/ 영영 치유하지 못할 가슴앓이/ 등피만 닦다가/ 다시는 울지 말아야제, 다시는 울지말야야제/ 한 맺힌 통일을 노래하다 또다시/ 한 마리 뻐꾸기가 되어// 오늘도 저렇게 가시나무 가지에 앉아/ 뻐꾹뻐꾹 달무리를 짓는다. - 「유월 뻐꾸기」 (1990 『현대문학』 8월호 발표, 『月刊文學』 9월호 이달의 작품 선정) 이인복 숙명여대 교수 문학평론가는, 柳熙玉의 「유월 뻐꾸기」는 현대 한국사에서 유월이라는 시간 속에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뻐꾸기의 寃魂으로 바뀌어갔는가를 노래한다. 시간이란 한 번 흐르면 결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일회적인 것인데 우리 인간들은 그것을 순환개념으로 바꾸어 도막쳐 놓는다. 여기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생기고 밤낮이 생긴다. 유월달이 생기는 것, 20세기, 21세기가 생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 번 흐르고 그만인 시간이라면 유월 뻐꾸기가 작년에도 울고 금년에도 또 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형님 뻐꾸기는 해마다 유월이면 찾아와 울더니 아버지 뻐꾸기와 어머니 뻐꾸기까지 만들어 냈는가를 따져 묻는다. 이 詩人의 물음에, 이 시인과 같은 시대, 같은 시간을 누리고 있는 우리들은 무엇이라 대답할 것인가? 시간이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시원스럽게 대답할 수 없는 우리들은 이 해답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 그 해답이 유보되어 있는 동안, 유월 뻐꾸기는 내년에도 내명년에도 우리들 가슴 속에서 달무리를 지으며 울 것이다. 라고 평했다. 625가 발발한 지도 어언 칠십 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러나 어릴 적 어머니의 통곡과 배고픔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지난 6일 현충일날 문재인 대통령이 거론한 김원봉 관련 서훈 자격 논란이 정치권에서 일고 있다. 이를 본 6.25 세대들은 마음이 편치 않음이 사실이다. 김원봉은 일제 강점기 의열단을 조직하고 광복군 부사령관 등을 지낸 인물이다. 하지만 이후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고 고위직까지 지내, 그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논쟁이 적지 않다. 그런 자를 6.25도 겪어보지 않은 자들이 서훈 추서 등등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2018년 4월 개정된 독립유공자 포상 심사 기준에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 및 적극 공조한 것으로 판단되거나 정부수립 이후 반국가 활동한 경우 포상에서 제외 한다고 명시돼 있다. 북한은 6.25 침략을 감행하여 동족 400만 명을 살상시키고 민족 전체를 참화에 빠뜨렸다. 더 나아가 천안함과 연평도, 금강산 등에서 폭침, 폭격, 총질을 감행해 왔다. 그러고도 모자라 우리 민족 수백만을 살상시킬 핵무기를 만들어 배치하고 위협하는 현실이다. 그런 체제를 만든 주역에게 훈장을 수여한단 말인가. 참으로 천인공노할 일이다. 6.25 전쟁에서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키려고 순국한 호국영령들이 무덤을 박차고 벌떡 일어날 일이다. /류희옥 (사)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

  • 오피니언
  • 기고
  • 2019.06.24 17:53

靑年들에게 무모한 도전을 許하자

한동숭 전주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사람은 서울로 모이고, 출산율은 줄어들고,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지역들은 소멸 위기를 벗어나려 노력 중이다. 가장 위기감이 높은 경북은 이웃사촌 청년 시범 마을로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 1차적으로 지방소멸지수 1위인 의성군의 안계면 일대에 일자리와 주거, 교육, 의료, 복지 체계를 갖춘 청년 시범 마을을 만들어 70여명의 청년이 농사와 창업 시설을 확보하고, 2022년까지 청년 200여명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식품산업 클러스터, 반려동물산업단지 조성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마을 리모델링, 주택, 아파트 건립 등으로 청년 친화적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한다. 전남은 전남인구, 희망찾기 프로젝트로 기초지자체별 사업을 선정 추진하였다, 순천시는 원도심의 빈집을 활용한 청년공유공간인 공유로사업, 광양시는 창작 연구 실험공간인 상상 캠퍼스사업, 곡성군은 폐교를 청년문화 공간으로 조성해 외지 청년을 유입하는 청년작당사업, 보성군은 외지 청년예술인 정착을 위한 BLUE VILLAGE 공방촌 조성사업, 무안군은 귀농희망 청년에게 주거 공간 제공사업, 고흥군은 지역 출신 귀향청년의 유턴 정착을 위한 주거 체험 교육 공간 조성사업, 장흥군은 지역 농수축산특산물 마케터 양성 및 정착사업 등을 추진한다. 이에 발맞춰 서울시는 서울시 지역상생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서울 청년의 지방 창업에 대한 5000만원 사업비 지원사업, 한해에 60~70의 귀농 희망 가구를 선발하여 10개월간의 농촌체험사업, 농업 체험 복합공간인 농업공화국을 서울 마곡에 건립한다. 이런 시도는 무모해 보인다. 그 많은 산적한 문제들을 놓아두고, 성공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지역에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만나게 될 세상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다른 사회, 경제, 문화 시스템을 가지게 된다.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는 경제가 축소하고, 경제활동인구가 줄고, 청년들이 줄고 노인들이 늘고, 사람들의 욕망과 참여는 늘어나고, 도시집중화는 심화되고, 기후위기로 생존환경이 극악해지고, 자원은 부족하여,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한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 특히 변화 속도는 너무 빠르게 진전되어 간신히 제도적, 법률적 체계를 갖추기 급급하고 사회 문화적으로는 그 지체현상은 너무 커져서, 세대간, 지역간 격차와 갈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또 모든 문제들은 서로 뒤엉켜 있고, 각 지역에서의 문제 원인, 해결 주체들의 상황, 해결 방안들이 너무 다르다. 이와 같이 예측불가능한 복잡계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프로젝트의 단위, 목표, 해결방법, 해결 주체들의 구성 등에서 현실에 기반한 무모한 시도들이 필요하다. 지구상에는 불가능을 넘어 도전하여 성공한 많은 사례들이 있다. 노키아의 폐허 위에서 유럽의 실리콘밸리 오타니에미 혁신단지를 만들어 낸 핀란드 알토대학,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며 플랫폼 협동조합을 만들어 가는 영국의 전환마을 토트네스, IT기업들의 사업공간으로 변화시킨 5400명의 일본 가미야마 시골마을, 노인만 있는 한계 마을라는 장애를 넘어서서 장식용 야채 사업으로 농가당 억대의 매출까지도 올리고 있는 도쿠시마현, 그림책 작가와 출판사의 성지가 된 아리다가와정. 이 모든 사례는 무모한 도전을 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 /한동숭 전주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 오피니언
  • 기고
  • 2019.06.17 17:15

지리산의 염두고도(鹽·豆 - 소금과 콩) 소금길 이야기

김용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우리 조상들은 조선팔도를 금수강산 살기 좋은 땅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정감록이라는 책에서는, 조선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열 군데를 지목했다. 이른바 십승지지가 그곳이고 그중에 지리산의 운봉현 고을이 있다. 지금의 운봉읍, 인월면, 아영면, 산내면을 관할했던 운봉현은 지리산 깊숙한 요새의 고을이었다. 조상들은 십승지지의 땅이란 예로부터 질병이 없고, 흉년이 들지 않으며, 전쟁이나 범죄가 적거나 없어서, 사람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러한 요건이 충분하지 못한 지리산 운봉고을이 십승지지에 든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고을 백성 모두가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치적 기능이 탁월한 고을을 만들어 왔다는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지리산 운봉은 가야시대로부터 삼국, 그리고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요충지였다. 이곳의 전쟁 기록과 구전과 흔적이 그것을 설명해 내고 있다. 거기에 고원지대의 특성으로 냉해가 심해서 농사가 잘되지 않았던 곳이었다. 이것만을 보면 조선 십승지지의 땅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 보인다. 운봉은 1930년대 신작로가 생겨나기 전까지는 아흔 아홉 고개를 넘어야 오갈 수 있었던 첩첩산중이었다. 그곳에 든 운봉은 지리산 분지 속에 있는 작은 나라와도 같은 고을이었다. 외부 세계와도 소통이 쉽지 않은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이곳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는 생활 세계를 가졌다. 먹는 것, 입는 것, 그리고 노는 것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교육의 방법까지도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을 가졌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이 자급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소금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리산에서 자라는 붉나무에서 소금을 얻어 생활을 했다. 소금나무라고 불리는 붉나무는 오배자 나무라고 불렀으며, 가을이 되면 이 열매껍질에 생긴 짠 성분을 소금대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사용하게 될 소금이 필요하여 지리산 벽소령을 넘어 화개장터까지 가서 소금을 구해왔다. 지리산의 소금 길은 그렇게 해서 생겨났다. 운봉 사람들이 오갔던 지리산 소금길의 시원은 1500여 년 전 가야 기문국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철의 왕국이라는 가야의 나라 기문국은 첩첩산중 지리산 속에 든 나라였다. 사람살이에 가장 중요했던 소금을 구하기 위하여 바다로 나아갈 길은 지리산 화개재를 너머 하동으로 가는 길 뿐이었다. 그때로부터 생겨난 길은 운봉사람들이 서리 태 콩을 짊어지고, 화개재를 넘어 화개장터로 가서 소금으로 교환해 오는 소금길이 되었다. 화개장터의 유명했던 서리태콩 두부는 이렇게 해서 생겨났었다. 삼십 명으로 이루어진 운봉의 소금무데미들은 지리산 소금길을 넘나들면서 소금과 서리태 콩을 주고받으며 살았다. 그 소금무데미 선창 꾼은 훗날 동편제 소리꾼이 되기도 했다. 지금 지리산 소금 길에 놓여 있는 간장소, 소금장수무덤 같은 흔적과 하동댁과 운봉댁의 소금장수 이야기는 지리산 염두고도의 정체성이다. 중국의 운남성을 지나는 차마고도 보다도, 더 사람 냄새난다는 한국의 염두고도(鹽豆 - 소금과 콩)가 지리산에 있고, 그 출발지 운봉은 십승지지의 한 곳이기에 충분한 고을이었다. 사람살기 좋은 고을은 좋은 자연환경에 앞서 공동체 속에 든 사람 모두가 존재로 선행인 튼튼한 인문적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김용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19.06.10 20:44

인증샷 찍기 좋은 국립전주박물관 만들기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 국립전주박물관은 현재 변신 중이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러 오는 곳이었지만, 여기에 더해 맛있는 것을 먹으러, 재미있는 것을 즐기고 쉬고 위로받고 놀러오는 곳으로 변화하고 있다. 박물관 입구에 전주에서 가장 큰 글자로 국립전주박물관이란 문패를 달았고, 밤에는 조명을 비추어 한층 더 멋스러워졌다. 이처럼 어수선한 박물관 입구를 국립전주박물관 격에 맞는 대문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박물관 앞에 교통표시판을 설치하고 도로노면에 방향표시도 했다. 그러나 도로 표지판이 바뀌면 관람객들이 쉽게 찾아올 수는 있어도, 많이 오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국립전주박물관이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는 단순히 접근성을 용이하게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 각종 온라인 포털 검색창에 전주여행, 전주명소를 치면 국립전주박물관이 나오지 않는다. 국립전주박물관의 가장 큰 적은 관람객으로부터 무관심이다. 국립전주박물관 만의 새로운 이슈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관람객의 인식 속에 강력하게 자리 잡히도록 전주시민도 오게 하는 콘텐츠, 전주에 여행오는 사람들도 오게 하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무관심을 깨기 위해는 이제까지의 국립전주박물관과는 전혀 달라야 한다. 전주 거기 갔어?, 전주에 그거 봤어?, 전주에 그거랑 찍었어? 요즘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콘텐츠는 사진찍기 좋은 곳이다. 요즘 여행객들은 인증샷을 중시한다. 이제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진이 예쁘게 찍히는 명소가 사람을 모은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문화재, 전시, 큰 건물 등의 국립전주박물관 관념에서 나아가 앞으로의 국립전주박물관이 인증샷 건지기 좋은 곳, 셀카 잘 나오는 곳, 사진찍기 좋은 곳으로 변모하면 어떨까! 누구나 한번씩은 부처가 되어보라고 부처님들은 자기의 목을 잘랐구나로 끝은 맺는 정호승 시인의 소년부처라는 시를 유물 설명문으로 삼고 목없는 부처님과 사진 찍으면 누구나 부처님 될 수 있는 장소도 만들었다. 이것을 기점으로 정문 국립전주박물관 문패와 함께 단순한 박물관의 사인물이 아닌 랜드마크 같은 선비 캐릭터를 개발하여 세우고 싶다. 선비 캐릭터는 국립전주박물관의 상징이자 랜드마크 되고, 사진찍기 좋은 명소로 만들어 주지 않을까. 또한 집모양 가야토기의 꼭대기에 고양이처럼 어린이박물관 옥상에 세상에서 가장 큰 고양이를 그리고, 박물관 곳곳에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앞으로 만들 것이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이제 막 이런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여름에 소나무 숲에 해먹을 설치하고 멍 때리고 쉬면서 위로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올 겨울에는 짚풀 놀이터를 만들려고 한다.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겨울에도 마음껏 박물관 야외에서 놀게 하고 싶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짚둥지 안에 들어가면 따뜻하다. 짚은 보온력이 뛰어나고 천연 자연재료다. 짚풀은 어린이놀이 재료로는 안성맞춤이다. 짚으로 둥지와 미로를 만들어 마음껏 뛰놀게 하고, 가끔식 동네 어르신들을 모셔와 새끼 꼬고, 멍석 만들고, 짚신 삼는 것을 보고 체득한다면 아이들은 책상머리 바보가 아닌 손재주 많고, 창발적인 존재로 성장해 가지 않을까! 일년 내내 제철보다는 철없이 나오는 과일과 야채를 먹고, 더위와 추위를 모르니 현대인들은 철이 없다. 철을 안다, 철이 났다, 철이 들었다는 계절의 변화를 알고 씨 뿌리고 기르고 수확하는 성인이 되고, 또한 성숙한 농군이 됐다는 의미이다. 앞으로 국립전주박물관에 자주 놀러 오셔서 인증샷도 건지고 철들 수 있는 많은 역사문화 콘텐츠를 즐기시길 바란다.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

  • 오피니언
  • 기고
  • 2019.06.03 17:20

농촌 공동체의 결집체를 다양성의 포용에서 찾아보자

김용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귀농귀촌이 사회적 화두다. 자신의 우월한 색깔을 내던 도시에서 전통적 통제 시스템 속으로의 삶터 이동이다. 귀농귀촌은 도시유전자와 농촌유전자의 충돌을 운명으로 가진다. 그 현상의 해법을 내는 정답은 거의 없다. 조상들의 단단했던 공동체 문화를 들여 다 보고 서로의 마음내기를 조금씩 키워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우리 조상들의 마을에는 공동체 살이의 지혜가 많다. 그 실체들은 마을의 이름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을에는 수많은 이름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내고 있다. 웃골목, 둔덕골목, 까치골목, 더턱굴, 가재골, 호랑골, 너럭바우, 제바우, 수랭소와 같은 어느 마을에서나 다 있음직한 이름들이 그것이다. 골목, 뒷산골짜기, 마을 앞 냇가에 있던 그러한 이름들은 종이에 기록하지 않고서는 다 외워내지 못할 정도다. 이러한 이름들에서 마을 공동체 문화의 속살을 살펴 볼 수 있고 그 이야기중 하나는 이렇다. 지리산의 어느 마을에 호랑이를 닮은 바위가 있었다. 지금은 호랑이 바위라고 부르게 되었지만, 당초에는 여러 개의 이름을 가졌었다. 그 사연의 구전은 이렇게 전해오고 있다. 이 마을에 처음 정착하게 된 사람이 마을 입구에 있는 바위를 개바위라고 불렀다. 그 사람은 개 말고는, 다른 동물을 보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몇 달 후에 한 사람이 이사를 왔다. 그 사람은 이 바위를 늑대 바위라고 불렀다. 이 사람은 개와 늑대를 모두 보았기에 개보다는 늑대의 모양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후 이사를 온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이 개와 늑대, 곰을 보았다며 이 바위를 곰바위라고 불렀다. 몇 년 후에 또 한사람이 이사를 왔다. 그는 개와 늑대 뿐 아니라, 곰과 호랑이도 보았다며 호랑이를 가장 많이 닮았으니 호랑이 바위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바위 하나가 개, 늑대, 곰, 호랑이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마을은 혼란스러워졌다. 마을 촌장은 회의를 했다. 서로의 주장이 팽팽하자 촌장은 결론을 내렸다.모두가 다 맞는 말이다하면서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뒷산으로 사냥을 갔다. 마을 사람들은 사냥 도중에 개, 늑대, 곰, 호랑이를 모두 보게 되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그 바위가 무엇을 닮았는지 쉽게 생각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촌장은 사람들을 모아서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모두가 이 바위는 호랑이를 닮았다고 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이 호랑이 바위라고 부르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나그네들은 이 바위를 자기의 생각대로 불렀다. 개바위, 늑대바위, 곰바위와 호랑이바위등 마을 사람들과는 달리 좀처럼 호랑이바위로 부르는 것이 통일되지 않았다. 촌장은 바위 옆에 사당을 짓고, 그 안에 호랑이 그림을 걸어 두었다. 나그네들은 그곳을 지나면서 사당 안에 걸린 호랑이 그림을 보았다. 그러더니 호랑이의 영신이 바위로 변한 것이라며 누구나가 호랑이 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 조상들은 자신의 마을들을 튼튼한 공동체로 가꾸어 온 마중물을 가졌다. 그것의 도구는 구성원 개개인의 다름을 결집체로 묶어내는 촌장의 공심적 지도력이었다. 거기에 촌장의 지도력을 신뢰하는 구성원들의 따름은 큰 에너지를 내어 주었다. 지금의 농촌 공동체는 귀농 귀촌인의 증가로 각자의 색깔이 진해져 가는 삶터가 되어 가고 있다. 조상들의 지혜로운 삶에서 구성원과 지도자의 협치 공동체를 배워 보아야 할 때다. /김용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19.05.27 20:07

생태계 복원

한동숭 전주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따오기, 오랜만에 들어보는 정겨운 말이다. 따오기 40 마리가 우리나라에서 멸종된 지 40년 만에 우포의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따오기는 논과 같은 습지에서 미꾸라지와 개구리 등의 양서 파충류를 먹으며 살아가는 주변의 흔한 새였다. 허나 농약 살포 등 생태계 파괴로 개체 수가 줄어 1979년 비무장 지대에서 마지막으로 발견되고 한국에서 멸종되었고 한다. 우포 따오기복원센터에서 인공 자연부화로 따오기는 350여 마리로 늘어났고, 이 중 일부를 자연 방사하기 위해 따오기들은 3개월 동안 자연적응훈련 즉 둥지에서 먹이터까지의 비행훈련, 습지에서 먹이 잡는 훈련, 대인대물 적응 훈련 등을 했다고 한다. 이들 중 몇 마리의 따오기가 자연에서 생존하며 번식할 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인류는 2000년 이후 매년 우리나라의 산림 크기에 맞먹는 650만 ha의 산림이 사라졌고, 전체 동식물의 1/8 가량인 100만 종 이상 생물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이런 생물 다양성의 감소는 서식지의 감소, 인간의 무분별한 사냥, 기후변화가 원인이라고 한다. 이제 인류는 생산과 소비의 혁신적인 변화를 도모하지 않는다면, 이 현상은 더욱 가속될 것이다. 최근 영국의 멸종저항이란 환경단체는 1000여명이 구속되고, 런던 자연사 박물관까지 점거하는 등 강력한 요구를 하면서 탄소배츨량을 0으로 줄이기 위한 혁신적 변화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이런 다양성의 말살은 생물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의 자기증식을 위한 무차별적인 개발 생산 소비, 자연과 사회에 대한 착취로 지역이 지니고 있던 사회적, 문화적 다양성들이 말살되고, 블랙홀처럼 중앙으로 인구집중, 자본집중 현상들이 일어났고, 지역은 중앙 의존적인 환경이 조성되면서 사회, 문화, 산업적 생태계가 무너졌다. 특히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지식 산업을 육성하려면 더욱 지역의 독특함이 반영되고 세계화의 보편성과 함께 지역성이라는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 다양성의 복원은 한 생물종의 복원과 마찬가지로 지역의 생산과 소비가 혁신적인 변화하여 자기 완결적인 생태계가 조성되고 그 생물종이 그 생태계에 위치 지워질 때 가능하다. 하지만 인간 생활의 혁신적인 변화가 쉽게 이루질 수는 없다. 그래서 따오기의 자연 방사를 위해 방사가 가능한 생태계를 찾아내고, 인공적 환경에서 개체수를 늘여 가고, 다양한 훈련과 실험으로 그 환경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기존의 복원 활동은 개체 훈련도 없이 아무 곳에나 풀어 놓고 연명할 물만 조금씩 주면서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는 원론적 주장만 되풀이해 왔다. 이제 우리에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악마의 맷돌은 회전속도를 점점 높여가면서 지역적 토대를 20-30년 이내에 소멸시킬 것이다. 지역성의 중요성을 확산하고, 지속가능한 다양한 실험으로 각종 생물종들을 복원 방사하여 생존해 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전국 각지에서 사회혁신 리빙랩이란 기치로 다양한 실험들이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방사를 위한 훈련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방사한 따오기가 자연 속에서 번식하면 살아가려면 따오기 한 종의 복원으로는 불가능하다. 따오기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먹이사슬과 환경이 구축되어야 한다. 지역 생태계 조성은 다양한 분야와 장소에서의 리빙랩 실험들이 정착 확산되고, 상호작용하면서 우리들의 삶을 바꾸어 갈 때 가능해 질 것이다. /한동숭 전주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 오피니언
  • 기고
  • 2019.05.20 20:12

미래, 150세 가공인간 탄생

류희옥 (사)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 첨단 과학의 발달로 뇌와 기계가 결합된 인간이 태어난다. 돈 있는 사람들은 신체의 장기를 업그레이드해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산다. 신체의 일부가 로봇제품으로 대체되고 인간의 영혼을 구제한다던 종교도 사라지고 사람들이 신봉하는 것은 오직 과학기술뿐이다. 우리나라 국회미래연구원의 미래예측 보고서에서 2050년경에는 향후 인간 수명이 150세까지 연장되고 뇌의 핵심기능인 인지와 기억 등을 데이터화하는 기술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이 같은 추세는 세계적일 것이며, 허종호 국회미래연구원 위원은 개인의 뇌에 저장된 정보를 컴퓨터에 업로드할 수 있게 된다면 정신작용이라고 믿어 왔던 뇌를 신체에서 분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3년 미국 정부는 45억 달러를 투자해 뇌의 신경회로망을 분석해 데이터화하는 브레인 이니셔티브(BRAIN Initiative)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뉴럴 링크(Neural Link) 기업은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AI)을 결합하는 뉴럴 레이스(Neural Lace)를 연구 중이며, 이는 뇌에 칩을 심어 컴퓨터와 연동하는 이른바 뇌 임플란트의 기술이다. 우리나라 국회미래연구원에서도 2050년엔 영화 아바타처럼 인간의 생각만으로 로봇을 조종하는 뇌-컴퓨터 접속(BMI) 기술이 현실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미 미국 피츠버그대 앤드루 슈워츠 신경생물학과 교수는 2012년에 각각 원숭이와 인간의 뇌에 조그만 칩을 넣어 로봇 팔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 인간 수명의 연장과 트랜스 휴면의 등장으로 가족제도가 변화하고, 복제인간 등의 출현으로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새로운 가족 형태가 나올 것이며, 유전자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개념도 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11월 중국에서도 세계 최초 배아상태에서 유전자를 편집한 맞춤형 아기가 태어났다고 한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로 부모가 원하는 유전자만 가진 아이를 만들 수 있고, 생식을 위한 여성의 출산이 사라지고 인공 자궁을 통한 생식이 상용화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면면 등을 볼 때 한국 사회는 어떻게 해야 디스토피아를 피할 수 있을까. 국회미래연구원은 인간 중심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체와 구성을 제시했다. 합의체에서는 앞으로 인간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 생식과 성교를 분리해 공장식 출산을 허용할 것인지, 인간 유전자 실험을 해도 되는지 등의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허종호 연구위원은 기술의 발전 속도는 나라와 관계없이 매우 빠르기 때문에 미래에 나타날 문제들을 미리 고민하지 않으면 큰 혼란이 생길 수 있다며 한국이 앞서서라도 과학기술이 인간 행복을 높이는 용도로만 쓸 수 있도록 제도적인 담론의 장을 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처럼 새로운 기술 발전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기대와 걱정을 함께 한다. 솔직히 말하면 걱정이 더 앞선다.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대박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가 준비도 제대로 안된 채 맞을 충격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늘을 숭배하고 자연을 찬양하며 노래했던 백치미(bimbo)의 옛 세상이 그리워진다. /류희옥 (사)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

  • 오피니언
  • 기고
  • 2019.05.13 20:01

전주, 선비, 박물관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 요즈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좋은 뜻이 담겨있는 처음처럼이라는 글귀를 들려주면 원래의 의미를 생각하기 보다는 술의 이름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현대인들은 물질적 풍요에 비해 인간성 상실, 정체성과 소속감의 부재, 공동체문화의 해체 등으로 몸과 마음을 둘 곳도 둘 바도 모르면서 그저 단순히 처음처럼 술로만 세상과 인생을 잊으려고 하고 있지나 않은지 반문해 본다. 얼마 전에 김병일이 쓴『퇴계처럼』(글항아리, 2012),『선비처럼(나남, 2015)』두 권 처음처럼과 같은 처럼 돌림의 책을 읽었다. 『퇴계처럼』에서는 학식이 높고 근엄한 대학자로만 알았던 퇴계선생 아니라 평생토록 자신을 낮추고, 자신보다 지위나 신분이 낮은 사람과 얼마나 공감하고, 배려했는지, 그리고 상대 누구든지 간에 함부로 대하지 않았던 일상 실천적 삶을 살았다고 소개하고 있다. 퇴계는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겸손과 배려, 희생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선비와 선비정신은 동서고금을 통해 최고의 사회적 어른이며 인류보편의 정신적 자산이다. 선비는 수양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의 조화를 추구해나가는 인물이다. 선비가 도야하는 수양의 내용이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며, 자신에겐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박기후인(薄己厚人)의 정신을 근본으로 한다. 앞으로 선비의 고장 전주에서, 선비문화를 선도하는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선비문화의 가치를 조명하고 재발견하여, 창출하고 새롭게 선도해 나가려고 한다. 전주 지명 뒤에 양반, 선비라는 명칭을 붙여도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한다. 국립박물관 유일의 선비문화 중심은 국립전주박물관이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 선비의 모습을 제시하고, 특화된 공간콘텐츠를 구축하려고 한다. 선비문화를 조사연구하고, 상설전시와 특별전시, 어린이박물관 전시를 통해 가시적으로 구현하며, 선비아카데미와 다양한 교육을 통해 국립전주박물관은 명실 공히 국립박물관 유일의 선비문화를 지향하고 있다. 지금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선비, 글을 넘어 마음을 전하다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조선시대 선비의 편지글을 통해 우리가 알리 못했던 선비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현재 3천편 이상 연구논문이 나올 정도로 유명한 퇴계와 고봉의 100여 통 편지, 다산이 아내가 보낸 다홍치마에 아들과 딸을 위해 쓴 편지 『하피첩』과 『매화병제도』, 아들에게 고추장을 보낸다는 『연암선생서간첩』, 딸과 사위의 싸움은 타이르는 효종의 편지『숙명신한첩』, 기생과의 추문은 사실이 아니니 걱정마라고 아내에게 보내는 「추사의 한글편지」, 서른에 죽은 사랑하는 남편의 관 속에 넣은 가슴 저미는 애절한 「원이엄마편지」와 머리카락으로 만든 미투리신발 등 선비들의 편지와 사료를 전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 유물들은 보물, 중요민속자료 등으로 지정된 쉽게 만날 수도 없고 한자리에서 볼 수 없는 희귀한 자료들이다. 근엄하고 학문만 하는 선비들이 아니라 편지로 애틋한 우정, 따스한 사랑, 가족에 대한 애정을 나누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족과 함께 꼭 한번 관람 하시기를 강권한다 이제 선비와 선비정신에 대한 우리 시대의 왜곡과 편견을 걷어내고 새로이 탐구하고 구현해야 한다. 배려와 섬김이라는 선비와 선비정신을 현대에 다시 불러내어 오늘날의 새로운 가치관과 자신의 생활 지침으로 삼는다면, 풍요로운 정신문화를 이룩하는 데 해법이 될 수 있다. 우리 시대의 선비문화는 전주에서부터 출발한다.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

  • 오피니언
  • 기고
  • 2019.05.06 19:05

진상품 문화 그 속살 들여 다 보기

김용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조선시대에는 고을마다 왕에게 보낼 만큼 자랑스러운 특산품이 있었다. 그 지방의 땅과 기후에 가장 잘 적응해서 어느 지역의 것보다 우월한 산품이 그것이었다. 토질과 기후에 사람의 심성까지 들여지면 그것은 진상품이 되었다. 진상품은 고을 원님들의 무리한 아부경쟁으로 백성들의 원한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크고 작은 고을들의 브랜드를 키워내는 역할도 했다. 진상품은 그러한 외형적인 문화 외에도 내면의 속살을 가졌다. 그것은임금이 고을수령의 봉임 자세와 백성들의 형편을 알아보는 직접적인 소통의 도구라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왕이 지방고을 수령들의 봉임 자세를 깊고 세세하게 알아보는 방법은 별로 많지 않았다. 요즈음 같이 민원전달 시스템이 구축되지도 않았으니 지방의 수령들은 아방궁의 주인이었다. 간혹 암행어사 같은 제도를 활용하거나 상급기관의 감찰활동도 있었으나 너 좋고 나 좋은 일로 무마되기 일쑤였으니 지방 고을 수령들의 큰 통제수단은 스스로 수양된 선비정신이었다. 임금은 고을 수령들의 봉임 자세와 백성들의 형편을 알아보는 소통의 방법을 고민했고 그것의 방법은 각자의 고을들에서 올라오는 진상품의 실체를 점검해 보는 것이었다. 진상품은 왕실로 보내진 고을의 특산품이었다. 그러나 진상품의 실상은 왕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고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고을 사람들이 가장 잘 만들거나 가꾸거나 채취할 수 있었던 것이었기에 그랬다. 한양의 임금에게 올라간 진상품은 그 품질과 크기와 상품성이 해마다 기억되고 기록되었다. 흉년이 들었는데도 예년과 같은 좋은 진상품이 올라왔다면 그 고을 원님은 백성들에게도 좋은 상품을 기준으로 평년과 같이 조세를 과하게 부과징수 하고 있는지 점검했다. 그러나 흉년의 진상품이 흉년 수준이었다면 그 고을 원님은 아부적 충성이 아니라 정직한 것이니 백성들의 사정을 잘 알고 선정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고을들에서 한양으로 올리는 진상품은 백성과 임금의 소통도구인 셈이었고 그것을 통하여 수령의 봉임 자세와 백성들의 형편을 점검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임금에게 올리는 고을들의 먹는 진상품을 관리하는 곳은 공상청이었다. 조선팔도의 고을들에서 올라오는 진상품의 고을 형편을 가장 잘 아는 이는 소리꾼들이었다. 조선팔도를 유랑하며 고을들의 민심과 백성들의 형편과 산품들의 풍, 흉을 잘 알던 소리꾼들을 한양의 공상청에서 불러 조선팔도 고을들의 산품에 대한 형편을 점검하기도 했다. 동편제 판소리 창시자 가왕 송흥록은 경상도와 함경도까지 생의 흔적이 많은 명창이다. 그가 한양의 고관들과 인연을 많이 가지게 되었던 첫 번째 사연은 왕실 공상청의 부름으로 조선팔도 고을들의 진상품에 대한 실상을 제공해 주는 일을 하면서부터였다. 송흥록 명창은 조선최고의 명창이 되면서 활동영역이 조선팔도로 커졌다. 그러한 연유로 수많은 고을들의 사정을 잘 알 수 있었던 것이 그 일과의 인연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에 참여했던 또 다른 집단은 보부상들이었다. 전라도 보부상은 전라도 진상품을, 경상도 보부상은 경상도 진상품을 그러한 방법으로 조선팔도 고을들의 진상품은 백성들의 사정과 수령들의 백성 섬김 자세를 확인해 내는 도구이기도 했다. 진상품의 속살은 존재로 선행인 고을백성들의 형편을 제대로 살펴보고 고을 수령들의 봉임 자세를 묵시적으로 감시해내는 문화적 통치술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4.29 20:44

소셜 벤처를 육성하자

한동숭 전주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독서기반의 커뮤니티 서비스로 사업하는 트래바리는 소프트뱅크 벤쳐스로부터 5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책을 읽지 않는 세상의 흐름을 역발상하여 국내 최초로 독서모임을 사업화하여 4600여명의 회원과 함께 압구정, 안국, 성수 아지트에서 약 300개의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사업을 꾸려가고 있다. 제주토박이이면서 도시재생스타트업 기업 다자요의 대표인 남성준씨는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하여 2억원을 모은 후 오래된 제주의 빈집 살리기 프로젝트로 서귀포시의 도순돌담집 1, 2호점을 독채 숙박시설로 운영 중이며, 2020년까지 공간 브랜딩과 체인점 영업으로 빈집 100 채를 공유하겠다는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 이런 기업들을 소셜 벤쳐라고 부른다, 보통 소셜 벤처는 개인사업자, 기업,?비정부기구,?지역사회단체 등 다양한 조직을 기반으로, 외부 파트너를 모아 재정적 지원을 받거나, 제품 또는 서비스 판매로 사회적 사업의 비용을 조달하거나, 사업으로 이익을 창출하지만 사회적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그 이익을 재투자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소셜 벤처와 일반 벤처기업의 차이점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혜택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소셜 벤처는 빈곤, 불평등, 환경파괴, 교육격차 등 사회 문제 중에서 시장 경제나 정부가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부분을 시민의 힘과 창의적 아이디어로 풀어나간다. 소셜 벤처 기업가는 창조적이고 혁신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하며, 특히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매우 힘든 과정 중 하나이다. 한국의 대표적 소셜벤쳐 기업인 마리몬드는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한 분 한 분의 인생을 모티브로 한 꽃할머니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디자인제품, 콘텐츠, 커뮤니티를 통해 그 분들의 존귀함을 이야기한다. 사회적기업 컴윈은 전기, 전자폐기물의 재활용으로 환경을 지킴과 동시에 희귀 자원을 재활용하여 컴퓨터 제작사업까지도 하고 있다. 또한 국제적인 기업인 트리플래닛은 2010년 스마트폰 나무 심기 게임 사업으로 시작하여 크라우드 펀딩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심은 나무에서 지속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크라우드 파밍 사업과 숲 속 휴양문화 콘텐츠 개발 사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테라사이클은 국제적인 환경 스타트업 기업으로 재활용이 불가능한 제품을 재활용하고 자원순환 문화를 전 세계적으로 선도하고 있으며, 현재 21개국에 진출하여 제로웨이스트 박스를 이용하여, 담배꽁초, 과자 봉자 등을 재활용하고 있다. 소셜 벤처는 혁신적 비즈니스모델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며 사회혁신에 기여하고 있다. 서울 성수동에는 많은 소셜 벤쳐들이 모여 있고, 서울시에서는 2022년까지 5000억원 수준의 펀드를 조성하여 소셜 벤쳐 밸리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전라북도에도 올해부터 3년간 사업으로 사회적경제 혁신타운이 군산의 폐교 부지에 설립되고, 전문인력양성과 사회적기업 육성을 추진한다고 한다. 전북은 오래 전부터 혁신센터의 설립과 운영에 대해 많은 논의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전문교육, 팹랩 기반의 기술 혁신, 사회적경제에 적합한 금융지원, 사회적경제 전문연구 및 리빙랩을 통한 사회혁신연구 등의 기능 수행할 수 있는 혁신타운으로 조성되기를 바라며, 많은 활동가들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이 모여들어 전북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 /한동숭 전주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 오피니언
  • 기고
  • 2019.04.22 18:47

꽃 등 걸기

류희옥 (사)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 긴 겨울 속에서 우리는 따뜻한 봄을 기다려 왔습니다. 여느 해처럼 복수초, 변산바람꽃, 노루귀, 영춘화 등 봄의 전령사가 꽃을 피웠습니다. 그런데도 왠지 올봄은 봄 같지가 않습니다. 그건 아마도 계속된 미세먼지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이 온통 꽃밭으로 변하여도 누구든 집 밖으로 나오길 꺼리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하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불안한 듯 눈망울을 껌뻑거리며 걷고 있는 풍경이 일상화된 요즈음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풍경이 있습니다. 앞에 누가 오든 말든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며 걷고 있습니다. 마침내 인공지능 시대가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와, 십년 후를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물질문명으로 계속 이어가다 보면 백년 후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요즘 현대인들의 내면에 자욱한 미세먼지입니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가 공고히 유지되면서 일어나게 된 현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갈수록 핍진해가는 우리 영혼을 정화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제는 새삼 미개했던 옛 세상이 그리워집니다. 하늘을 향하여 신비로 가득한 대자연을 찬양하며 노래하고 춤추고 그렇게 간절히 살아왔던 상고시대 말입니다. 조선 중기시대 승려인 서산대사(1520~1604)는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이리저리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라는 선시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전국의 사찰 승려들을 독려, 승병을 일으켜 평양성을 탈환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또한 독립 운동가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도 시국이 어지럽고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할 때마다 서산대사의 답설야(踏雪野)를 되새기면서 실행에 옮겼다고 합니다. 무릇 인간관계란 서로가 서로의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겸손한 마음으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며, 올바른 길로 가고자 합니다. 나도 누군가의 꽃길로 가는 이정표가 되기를 바라면서-. 그들은 한결같이//좋은 곳을 찾아 떠나는/다리를 갖지 않았습니다//밉거나 예쁘다를 말할 줄 아는/입을 갖지 않았습니다//아름답다거나 추하다를 분별하는/눈을 갖지 않았습니다//주변이 소란스럽다거나 적적함 따위를/멀리하는 귀를 갖지 않았습니다//구릿하다거나 향기롭다는 물론/자신의 몸에서 풍기는 향마저도 거부하는/코도 갖지 않았습니다//누구에게도 곁으로 와 달라거나 멀리하라는/수화마저 보낼 수 있는/손도 갖지 않았습니다//오직, /바람과 눈과 비와 구름과 해와 달과 별을 삭이며/생각마저도 버리는 선정(禪定)이/눈을 가진 모든 이들의 얼굴과 얼굴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없음에서 있음을 이루고/어둠에서 밝음을 여는/정령(精靈)의 화신(花神)이기 때문입니다. -「꽃이 되는 이유」 전문

  • 오피니언
  • 기고
  • 2019.04.15 20:12

박물관장의 다섯 가지 기도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 저는 매일 아침에 다섯 가지 기도를 합니다. 박물관에 근무하기 전에는 일신의 안녕과 개인의 영달을 위해기도했고, 박물관장이 되고 난 후에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기도하다가 최근에는 여기에 세 가지가 더해졌습니다.인류의 공존과 공영을 위해, 인종, 동물, 식물 등 자연생태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 우주질서의 안녕을 위해 매일 기도합니다 라고 하면 대부분 듣는 분은 피식 웃으시고 맙니다. 그런데 저의 기도가 마치 농이 섞인 말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속에는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희망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기도까지는 누구나 인정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 이후의 기도부터는 좀 의아해 할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초록별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선 인류가 타문화에 대해 다양성과 상대성을 인정하고, 공존과 공영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기도입니다. 그동안 저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인류공통의 문화요소인, 샤만, 혼례, 청바지, 소금, 장난감과 인형 등을 조사하여 전시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다루기엔 조금은 생소했던 주제 청바지는 19세기 중반 미국 서부광산 노동자의 작업복으로 탄생해 어떻게 세계인의 일상복이 되었는지를 조사하고 전시하여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웃을 잘못 만나면 이사가 가면 그나마 해결될 수 있지만 이웃나라를 잘못 만나면 나라를 옮길 수도 없고 아주 난처한 일입니다. 박물관을 통해 우리와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진 민족과 나라들을 이해하고 공존하고 공영할 수 있는 안목과 마음을 키워야 합니다. 세 번재 기도를 답하는 타문화, 인류학박물관은 전라북도에는 없습니다만 앞으로 국립전주박물관이 그 역할을 하겠습니다. 네 번째 인종, 식물, 동물 등 자연생태계의 균형을 위한 기도는 정말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인간들은 심심하면, 동물을 빗대어 욕지거리를 합니다. 그런데 동물세계에서 가장 나쁜 욕은 인간같은 놈일 것입니다. 인종이야 말로 지구의 주인인양 자연을 훼손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면서 지구 멸망을 앞당기고 있습니다. 인종 이외에 지구의 주인은 많습니다. 식물계, 동물계도 어엿한 지구의 주인들입니다. 2017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쓰레기전시를 통해 인간 문화에서 버린 모든 것이 얼마나 인류의 환경과 미래를 위협하는 지를 가늠해 보았습니다. 진시황도 결국 못찾았던 불로장생의 영약은 오늘날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스치로폼 물질로 나타났고, 18만년을 산 삼천갑자동박삭보다 더 오래 사는 유리?플락스틱?비닐 등 신 십장생이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물질입니다. 자연생태계의 획복과 균형을 위한 네 번째 저의 기도는 식물원, 동물원, 생태원, 자연사박물관에서 답하리라 믿습니다. 다섯 번째 우주질서의 안녕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명제입니다. 해가 뜨고 지고, 달이 뜨고 지고, 계절이 바뀌고,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은 반짝입니다. 이 모두가 어우러지는 하나의 질서와 조화 속에서 우주가 운행됩니다. 만에 하나 어느 하나라도 질서에서 벗어나면 대재앙이 지구에 닥칩니다. 얼마전 진주 인근에서 떨어진 운석도 어찌 보면 작은 우주질서의 반란입니다. 언론에서는 운석의 경제적 가치만 야단치레 따졌지,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중요한 과학적 증거라는 사실은 대부분 외면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주질서의 안녕에 대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 기도는 우주항공박물관, 천문대 등에서 답을 구할 수 있습니다. 박물관에 놀러 오십시오. 박물관 존재의 필요성에 대한 철학적 바탕을 느끼게 될 이 다섯 기도의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4.08 20:46

고향의 씨앗 마을 이야기

김용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사람은 누구나 고향이 있다. 도시나 농, 산촌 아니면 바닷가 그 어디에서든지 태어남과 자람이 있고 그 터전에 고향을 둔다. 고향의 속살은 그러한 터전에 이웃사촌하며 공동체의 삶을 들인 마을살이에 들어 있다. 마을은 사람살이의 현실적인 유토피아 공동체이다. 이웃사촌의 모둠이 모여 가장 생태적이고 인문사회적인 환경을 진화의 에너지로 삼으며 수 백 년을 이어오고 있으니 그렇다. 나는 지리산 농촌들의 마을들을 수십 년 동안 조사해왔다. 마을 속에 들어 있던 음식과 씨족이며 풍수와 생활문화 같은 것이 그것들이었다. 그 이야기 중 마을의 탄생 신화를 꺼내보고자 한다. 지리산의 마을들은 대부분 자연의 일부에 들어있고 마을 탄생의 이야기는 구전에 있다. 조선시대 전란이나 사화 같은 사회적 불안을 피해 새로운 삶터를 구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지리산 산중을 찾아들었다. 여기저기 다니던 한 사람이 사람살기 좋을만한 곳에 머물게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노숙을 하며 비가 오기를 기다렸다. 비가 개이자 주변 곳곳에 불을 피웠다. 저기압의 영향을 받아 연기가 여러 갈래로 구불구불 산 계곡을 타고 올라갔다. 훗날 그 연기 길은 마을의 골목이 되었다. 풍수의 바람 길을 사람살이의 터전에 두고자 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노숙하던 주변에서 가장 습한 곳을 찾아 땅을 팠다. 물이 고였고 조금 지나 개구리며 소금쟁이 같은 미물들이 찾아들었다. 살아있는 물이 확인되었으니 풍수의 우물을 사람살이의 터전에 둘 수 있게 되었다. 바람과 물길을 알아냈으니 이번에는 주변에서 가장 큰 나무를 찾아갔다. 뿌리며 가지의 방향과 상처 등을 살펴서 태풍이며 가뭄이며 자연재해의 정보를 그 나무에서 얻고 그 댓가로 제를 올리며 당산나무로 섬겼다. 이만한 곳이면 일가친척을 불러 마을을 이루어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내고 그 터전에 집을 짓고 살게 되었으니 마을은 그렇게 생겨났다. 조상에게 새로운 터전의 마을 정착을 알리는 일 또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집에서 가져온 씨 간장을 집안의 가장 좋은 자리에 모셔두고 조상이 계신 곳을 향해 두 손 모아 고했다. 그 일들이 모두 끝나면 돼지를 들여 사람살이의 터를 지신에게 고했고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까지 집안에 들이게 되었다. 마을은 그렇게 수풍청(水風廳)삼합을 보듬으며 그것을 자양분 삼아 제대로 된 사람으로 자란다는 선조들의 생각은 마을의 정체성이다. 마을은 대부분 씨족집단이었다. 그래서 마을의 가장 큰 어른인 종가는 마을 공동체의 뿌리인 규범적 존재였다. 종가는 마을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위치했다. 마을에서 가장 좋은 자리는 어디일까? 수풍청(水風聽)의 삼합이 일 년 내내 집안에 존재하는 곳이었다. 우물과 바람과 자연의 소리가 가장 잘 들리는 곳이 종가의 집터가 되었다. 우물은 종가의 씨 간장 종자가 되었고, 흔들바람은 일 년 내내 새 기운을 불러 집터의 지기를 지켜내어 건강한 종손을 길러냈다. 그리고 사계절의 자연이 내는 소리 또한 사람을 소우주체로 단단하게 해주는 집안의 버팀목이 되게 했다. 사람들은 종가의 양택(陽宅)을 중심으로 집터를 골라 자리하며 마을을 이루었고 지금 우리는 그 후손들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대가로 풍성한 삶 속에 들었다하나 항상 갈구하는 자신의 정체성은 아직 미완의 행복이다. 물과 바람과 자연의 소리를 보듬은 고향에서 그 에너지를 들여 보자. 마을은 마음에 크게 두어야 할 삶의 이정표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4.01 20:28

청년들의 미래를 위한 청정의 전북을 기대하며

한동숭 전주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스웨덴은 점점 더 나쁜 것들로 인해 뜨거워지고 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그것을 막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학교 수업을 거부하고 스웨덴의 땅이 건강해지도록 노력하기를 촉구한다. 세계 최연소 노벨 평화상 후보인 스웨덴의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는 이러한 이유로 국회의사당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벌였다. 이 등교 거부 운동를 시작으로 지금은?#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ForFuture)이라는 해시태그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이제는 호주, 영국, 벨기에, 미국 등 전 세계 270개 지역에서 10만 명 가까운 학생들이 등교 거부 운동에 함께 하였고, 지난 3월15일에는 전 세계 59개국, 524개 지역에서 전 세계적인 등교 거부 운동이 벌였다. 한국에서도 5대탄소발생국가라는 불명예에 기후악당 대한민국이란 피켓을 들고 온난화와 미세먼지 등 기상재난에 신속히 대응할 것을 호소했다. 툰베리는 기후변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우리 실존을 위협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중요한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지도 않았고 정치인들은 토론회에서 스웨덴이 온실가스 배출 감축 정책의 본보기인 것처럼 말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스웨덴은 기후 변화에 모범적으로 대응해 온 국가 중 하나이고, 2045년까지 탄소 중립국을 목표로 하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기후관련 법안을 제정하기도 했지만, 스웨덴 사람들은 매년 1인당 11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기에 스웨덴의 정책은 충분치 않다고 툰베리는 생각했다. 2019년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툰베리는?세계 각국의 정상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우리들의 집에 불이 났어요. 불이 났다고 말하려고 여기 왔습니다. 다른 모든 곳들처럼 이곳 다보스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돈에 대해서만 얘기합니다. 돈과 성장이 우리의 주요한 관심사인 것 같습니다. 영국의 경제학자인 케이트 레이워스(Kate Raworth)는 도넛 경제학이란 책에서 21세기 인류가 맞닥뜨린 생태, 사회 문제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하고, 더 나아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성장 중독에 빠진 주류 경제학에서 벗어나 지구 차원에서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공평하게 살 수 있는 방향으로 경제학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세계 개발 정책, 정부 정책, 기업 전략의 가이드로 자리 잡았다. 2015년 UN의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SDGs) 협상 과정에서도 경제 성장을 매우 함축적으로 묘사한 도넛이 번영을 위해 지켜야 할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세계가 내걸어야 할 여러 목표의 큰 그림을 상기시키는 기준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에도 다시 선거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또 다시 미래보다는 표만을 생각한 무분별한 성장과 개발 공약만이 난무할 것으로 생각된다. 툰베리와 같은 청년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어른들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위해 우리 문명은 희생되고 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합니다. 어른들이 만든 정치 체제는 모두 경쟁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경쟁하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우리는 협력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지구의 자원을 공평하게 공유해야 합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3.25 20:18

제주도에 뜬 무지개

류희옥 (사)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 제주도에 무지개가 떴다. 제주도에 뜬 무지개가 왜 전북 사람인 나에게 부럽고 반가운 걸까. 우리 전라북도에도 하루속히 떠오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멀리 제주도에 뜬 무지개는 문학관 건립이다. 인구 70만 명밖에 안 되는 제주도에 연 면적 2,500㎡에 지상 4층의 규모란다. 거기에는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수장고, 세미나실, 북카페, 대강당, 창작 공간, 문인단체 사무실 등이 들어선다고 한다. 제주도민 70만 명에 비하면 전북도민은 180만 명이나 된다. 제주도보다 더 크고 다양성 있는 문학관이 건립되어야 함에도 전북문학관의 실태는 너무도 낙후되어 있고 초라하다. 전북문학관은 본래부터 문학관용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다. 1980년대에 전두환 대통령 영빈관, 도지사 관사 등으로 사용했던 것을 리모델링하여 쓰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단층 건물인데다 비좁고 오밀조밀하다. 현재 전북에는 몇 개의 문학관이 있다. 그중 전북문학관은 전라북도를 대표할 수 있는 문학관이다. 그럼에도 전북문학관이 가장 낙후한 상태로 남아 있어서야 되겠는가. 전북문학관은 예향 전북 도민들의 자존심이다. 문화의 고장이라 자칭하고 있는 전라북도문학관이 지금처럼 초라하게 서 있다면 우리 고장 전북의 위상과도 관련이 아니 된다 할 수 없다. 전북문학관의 신축이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전북문학관이 제대로 세워지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먼저 위치다. 문학인은 물론이요 일반 도민들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곳에 세워져야 한다. 전국 어디에서나 접근성이 용이하도록 위치를 선정해야 한다. 지금의 문학관 자리에 개축하는 것보다 장소 선정을 심사숙고하여 누구나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에 문학관 고유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신축해야 한다. 다음은 건물의 용도다. 현재 옛 도지사 관사를 문학관으로 개조하여 쓰고 있어서 너무 동떨어진 시설이다. 이제는 미래 지향적인 최첨단 시설의 철저한 설계를 갖춰야 한다. 그리고 도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다. 전북문학관 신축의 필요성은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에 젖어 있어서는 안 된다. 전북도민들의 능동적인 참여와 행정기관의 적극적인 실천의지가 있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제주도의 경우 제주문학관 건립을 위하여 노력하던 중 2016년에 문학관 건립에 대한 국고 지원이 가능해지게 되자 바로 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켜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한다.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온다. 기다리는 사람만이 기회를 잡는다. 앞으로는 문화 사업이 먹고 사는 업종의 주요 분야가 된다고 한다. 직업 중에 많은 직업이 성쇠해도 사람들의 마음을 풍족하게 해주는 문화 분야의 직업이야말로 오히려 더 융성할 거라 한다. 특히 마음을 다스리고 살찌우는 데 문학이 큰 역할을 하고 있어 그 기대감이 크다. 이는 보이지 않는 정신이 보이는 형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전북은 일찍이 문화예술 분야에 눈을 떠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인들이 많다. 그분들에 대한 자취를 제대로 조명할 수 있는 전국적인 문학관이 들어서기를 바란다. 전북을 대표하는 새로운 문학관 건립에 모든 도민과 정치권과 사회단체들이 나서야 할 때이다. 예향의 고장 전북에 머지않아 전국적으로 소문난 전북문학관이 세워지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도 하루빨리 전북문학관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켜 제주도에 뜬 무지개가 전라북도에도 떠오르기를 고대하면서.

  • 오피니언
  • 기고
  • 2019.03.18 20:18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