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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규 우석대 교수 그 여자의 목소리가 텅 빈 광장에 울려 퍼졌다. 새벽 4시가 가까워오는 시간이었다. 시민 여러분,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도청으로 모입시다. 광주를 지킵시다. 누구 하나 나서는 이 없이 도시 전체가 무거운 침묵에 잠겨 있을 때 적막을 깨고 드르륵 드르륵 총소리가 들렸다. 탱크 캐터필러가 줄을 지어 가더니 연이어 폭음이 났다.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올 때까지 도청이 한 블록 바로 앞인 김정형외과 5층 창에 붙어 앉아, 나는 불을 끈 병실의 커튼 사이로 바깥 풍경을 내다봤다. 전남여고와 중앙초등학교 담벼락을 넘어 도망치는 시민군 뒤를 쫒듯 투항하라, 투항하라 계엄군의 선무방송이 1980년 5월 27일 아침의 광주 시내를 뒤덮었다. 6월 초가 되어 깁스를 풀고 퇴원하던 날 금남로를 달리는 택시에서 도청 쪽을 힐긋 보았을 때 이제 여름인데도 내 몸을 덥치던 괴괴한 냉기를 잊을 수 없다. 그 새벽의 목소리가 자꾸 나를 따라오는 것만 같았다. 다시 나가게 된 학교는 더 휑했다. 총탄에 신체의 상당 부분이 날아간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던 친구 전영진의 책상에는 국화꽃이 담긴 화병이 주인을 대신해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어린 시민군으로 도청을 사수하다가 체포된 김효석, 이덕준, 김향득 등의 빈 의자를 보았다. 주먹 좀 쓰던 뒷줄 친구들은 사회를 정화하겠다는 집권 군부의 명분에 희생되어 삼청교육대로 끌려가고 말씀이 좋았던 선생들은 모두 학교에서 쫓겨나고 없었다. 우리들은 다시 선생들의 매를 맞으며 쥐 죽은 듯이 학교를 다녔고 학력고사 점수에 따라 대학으로, 공장으로, 어둔 거리로 흩어졌다. 그로부터 40년.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는 세월을 네 번 거듭하는 동안 이 땅의 대통령은 여덟 번 바뀌었다. 그 시간 사이로 유행가가 해마다 바뀌고 스포츠와 드라마의 명장면들이 흘러갔다. 거리의 아우성과 이유를 달리 하며 죽은 시신과 지상에서는 더 의지할 데가 없어 고공으로 올라간 사람들의 얼굴이 콜라주처럼 뒤섞이며 이어졌다. 수많은 목소리와 선전 전단과 밀실의 술잔이 강물처럼 더해지는 동안 도시는 끝없이 아파트를 지었다 부수며 외곽으로 확장되었고 주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북에서 가장 가까운 수도권이 진공청소기처럼 먼지같은 사람들을 빨아들이며 욕망의 마천루를 쌓았다. 40년 세월을 뒤로 하고 우리는 어디만큼 걸어 나왔나. 이만하면 자리 잡아가는 거 아닐까. 한때의 시간을 저다마의 방식으로 보상받고 때로는 잊고 잊혀지며 그렇게 흐릿해진다고 생각했는데 전두환 그자의 광주가 나랑 무슨 상관인데. 말을 듣는 순간, 다시 피투성이 시간대로 돌아가고 만다. 광주를 겪은 우리 세대에게 그 피투성이 시신들, 그 거리와 새벽의 장면들은 미라처럼 굳어져 부석부석 회벽으로 부서질망정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문득 문득 도청이 나오는 꿈을 꾼다. 내 꿈에서 전두환은 여전히 푸른 군복을 입은 오십대의 장군이다. 다만 다른 것은 전세가 역전되어 시민군들이 시신으로 널브러졌던 그 광장에 전두환이 포승줄에 묶여 있다. 그 옆에 학살의 대가로 장관이 되고 몇 대에 물려줄 돈을 그러모은 자들이 굴비로 엮여 있다. 5월 27일 새벽에 차마 발사하지 못했던 시민군의 총에서 불꽃이 피어 오르자 훈장을 주렁주렁 매단 자들이 연이어 쓰러진다. 나는 환호하다가 눈물에 젖은 얼굴로 한낱 꿈에서 깨어나온다. 내게 오월은 꽃잎처럼 흩어져 내린 여린 목숨들의 몸에서 흘러내려 길바닥에 말라붙은 핏덩이이다. 그 피값을 제대로 돌려받기 전까지 우리의 오월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아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정태춘 노래 518) /이재규 우석대 교수
신정일 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 위원 어디에서 살 것인가?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근원적인 고민이자 물음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사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그 땅의 영향을 받는가? 괴테는 대자연의 어머니인 땅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보며 태초에 인간들은 그들 자신들에게 적합한 땅을 선택해서 자리를 잡았다고 보고 있다. 괴테와 비슷한 견해를 피력한 사람이 조선 중기의 실학자인 성호 이익이다. 한 민족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리적기후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 그는 경상도의 풍성(風聲)과 기습(氣習)은 굳게 뭉치어 흐트러짐이 없다. 여러 사람의 마음도 함께 모여서 외치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화답하여 일을 당하면 힘을 아울러서 가담한다. 순후한 옛 풍속은 변함없이 남아 명현을 배출하니 나라 안에서 으뜸 되는 고장이오, 그러나 전라도의 물길은 산발사하(散髮四下)와 같이 되어 국면을 이루지 못하는 땅인지라 재덕 있는 사람의 출현이 드물고 인풍(人風)이 획교(獲狡)하여 사대부가 귀의할 수 없는 땅이며, 차령 이북에 대하여 역세의 모양임을 부인할 수가 없는 땅이다 지도를 펼쳐 놓고서 전라도를 흐르는 강의 흐름을 보면 이익의 말이 나름대로 일리는 있다. 장수에서 발원하여 군산으로 빠져드는 금강과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운장산 기슭에서 발원한 만경강, 그리고 내장산에서 발원한 동진강은 서해로 빠져들고 담양에서 발원한 영산강은 전라도 서남쪽으로 빠져든다. 백운면 신암리 상초막골에서 발원한 섬진강과 장흥의 탐진강은 남해 바다로 흘러든다. 이처럼 전라도의 산천을 흐르는 모든 강들은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방사성으로 흩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경상도의 물줄기가 동해로 흐르는 형산강, 대종천, 울진의 왕피천 등 몇 개의 하천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태백에서 말원한 낙동강에 합류하여 다대포 앞바다로 빠져나간다. 이익은 금강에 대해서는 풍수감여가들이 말하는 활을 거꾸로 쥔 모양으로 반궁수(反弓水)가 되어 서울과 개성에 역심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 반면 영남 지방에 대하여는 좋게 평하고 있다. 세계 지도를 펴 놓고 보면 프랑스의 물길도 전라도의 물길에 못지않다. 프랑스의 강들은 국토의 중앙에 위치한 마시프 상트랄(Massif Central)이라는 고원 지대에서 시작되어 사방으로 흩어져 나간다. 세느강은 영국해협으로, 르와르강은 비스케이만으로, 소느강과 로느강은 지중해로 흘러 들어간다. 전라도를 물길과 같은 형세로 흐르는 프랑스의 물줄기를 보고 이익과 같이 동시대를 살았던 독일의 풍토학자 헤르더(herder 1744-1803)는 〈인류역사 철학고>에서 전혀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지세와 기후가 극단을 피하고 있으므로 프랑스인의 인간적 기질도 중용적이고 하천이 삼면의 바다로 유입되니 사람들도 가슴을 활짝 열고 오는 자를 환영하는 해방성을 갖고 있으며, 주민을 낙천적 사교적으로 만드는 은근성과 균형 잡힌 풍토로 인한 언어 논리 표현의 명석성이 뛰어나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두 사람의 풍토와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은 동양과 서양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중요한 것은 시대에 따라 어디서 사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삶도 결정되는 것인데,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중종 때의 문인으로 요절한 곽시(郭詩)의 <서북의 인재는 동남의 인재와 다르다(西北人才與東南不同)라는 글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각지역마다 성함과 소함, 강함과 약함이 차이가 있는 것은 그저 풍성(風聲)과 기습(氣習)에서 온 것이고, 풍성과 기습의 차이는 본성과 리(理)를 다 못 지켜 그런 것일 뿐이다. 어찌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본질에 관계된 바이겠는가? 요지는 사는 지역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고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신정일 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 위원
박문칠 다큐멘터리 감독우석대 교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대학에서는 온라인 교육이 한창이다. 필자가 속해 있는 대학에서도 몇 주째 비대면 화상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시행착오가 없지는 않다. 수업 중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떠드는 학생의 목소리 때문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고, 누워서 수업을 듣는 학생을 일으켜 세우거나, 놀러 가면서 차 안에서 수업에 접속한 학생에게 주의를 줘야 하는 황당한 상황들도 있었다. 화상 수업이 어느덧 익숙해지니 장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평소 수업시간에 대답을 안 하는 학생들도 채팅창을 통해 질문이나 의견을 말하라고 하니 훨씬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한다. 또한 온라인상의 각종 설문조사나 투표 기능을 활용해 학생들의 내용 이해 정도를 편하게 확인할 수도 있다. 화면상에서 학생들의 얼굴이 모두 동일한 크기로 보이니, 멀리 뒷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을 소홀히 대할 일도 없어졌다. 하지만 아무래도 직접 눈을 마주치고, 인간적인 유대를 형성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수업을 하다 보면 교수와 학생 간에 주고받는 기라는 게 있다. 학생들이 수업에 흥미를 느끼고 눈을 반짝이기 시작하면 교수자도 덩달아 에너지가 올라가서 마치 서로 팽팽한 줄을 잡아당기고 있는 듯한 긴장감인데, 아쉽게도 온라인으로는 이런 기를 주고 받을 수가 없다. 강의가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기능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교육주체 간 상호작용과 전인적인 교육을 목표로 한다면 대면 수업의 중요성을 간과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제 전 세계가 온라인 교육의 맛을 봤으니, 코로나 상황이 종료되더라도 그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벌써부터 4차 산업혁명이라는 레토릭을 써가며 포스트-코로나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을 설파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실제로 최근 대학 총장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서는 73%가 대학교육의 생태계를 온라인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했다고 한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 온라인 교육의 장점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러한 온라인 교육이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평생교육에 활용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온라인 전환의 진의가 교육의 질 향상이라기보다 비용 절감에 있는 것으로 보여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온라인 교육은 학생 수의 제한이 없고, 강의실도 배정하지 않아도 되어 학교 입장에서는 소위 가성비가 훌륭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교육부나 대학들은 갖은 방법으로 온라인 강의를 확대하려고 애를 써 왔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온라인 강의가 급속히 확대됐을 때 교육의 질 저하는 불가피하다. 사이버대학에서 오랫동안 온라인 강의를 해온 교수들에 따르면 온라인 강의는 단지 오프라인 강의를 그대로 온라인에 탑재하면 되는 게 아니라고 한다. 품질 좋은 사이버 강의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두 달 전부터 5~6명의 제작진이 교수와 함께 기획 회의를 갖고, 영상, 디자인, 프로그래밍 등 전문 인력이 함께 해야만 한다. 또한 온라인 환경에 걸맞은 교육학적 고민과 방법론도 수반되어야 한다. 지금 각 대학들이 이런 부분들을 얼마나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현재 코로나로 인해 각 대학은 비상 운영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족하더라도 여러 교육 주체들이 서로 참고 양보해가며 온라인 교육을 하고 있다. 예외 상황은 어디까지나 예외 상황이지, 상시화를 위한 발판으로 이용되어서는 곤란하다. 부디 교육부와 각 대학이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의 유혹에 빠져 교육의 질을 떨어드리는 자충수는 두지 않기를 바란다. /박문칠 다큐멘터리 감독우석대 교수
이흥재 정읍시립미술관 명예관장 올해도 봄은 왔다. 벚꽃잎이 거리마다 속절없이 눈처럼 날린다. 벚꽃은 군락을 이루어 피기 때문에 한순간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봄기운에 취하게 한다. 세상 속 벚꽃이 질 무렵이면 봄 산은 나무에 새순이 연두로 피고 안개인 듯, 구름인 듯, 군데군데 산벚꽃이 피어 아련하고 아름다운 산으로 태어난다. 우리가 벚나무라 부르는 나무 가운데 진짜 벚나무는 아주 드물다고 한다. 벚나무와 비슷한 나무 중에 산벚나무, 왕벚나무, 개벚나무 등이 있다. 일본 국화인 왕벚나무가 자생하는 것을 일본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는데, 1908년 한국에 선교 차 와있던 신부가 한라산에서 처음 왕벚나무를 발견했고 이어 1912년 독일인 식물학자에 의해 정식 학명이 등록되어 우리나라가 왕벚나무 자생지임이 밝혀졌다. 우리나라 왕벚나무는 높은 곳에서 자라는 산벚나무와 낮은 곳에서 자라는 올벚나무와의 잡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나무는 씨를 맺는 것이 매우 부실하여 자연적으로 많이 퍼지지 못한다.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 경로도 아직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요즘, 완주 불명산 계곡엔 산벚꽃이 봄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불명산에 산벚나무가 많아서 아름답기도 하지만 불명산 화암사는 조선 초 우리나라 불경간행의 메카였다. 산벚나무는 조직이 조밀하나, 너무 단단하지도 무르지도 않고 잘 썩지 않아 글자를 새기는 데 좋다. 그래서 책을 간행하기 위한 경판제작에 최적의 나무이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에 사용한 나무 중 60% 이상이 산벚나무라고 한다. 화암사가 불경간행의 중심사찰이 된 데는 이 절을 중창한 성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달생은 조선 초 전라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절을 중창하고 불경을 간행했다. 무인 출신이었지만 아버지와 성달생, 그리고 그의 아들 모두 글씨를 잘 썼다 한다. 그의 손자는 사육신 중 한 사람인 성삼문이다. 경판을 만들려면 먼저 경전의 내용을 글씨로 써야 하는데 명필이었던 성달생의 글씨로 찍은 화암사판 불경은 세종 때부터 나와 12종에 이른다. 심지어 화암사판 법화경은 복각본이 24종이나 되어 조선 시대 법화경은 성달생 글씨로 판각한 것이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화암사는 성달생이란 인물로 조선 초 불경간행의 중심사찰이 된 것이다. 조선 초 성달생의 글씨로 찍은 화암사판 불경은 전국에서 간행이 되었고, 조선 중기에는 정읍 무성서원에서 일종의 상업용 책을 만들어내기 위한 방각본이 간행된다. 조선 후기에는 전주에서 완판본이 간행되어 한양에서 나온 경판본과 함께 우리나라 출판문화의 양대 축을 이루었다. 안도현 시인의 시「화암사, 내 사랑」에 인간세 밖에도 있고 안에도 있는 곱게 늙은 절이라며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라고 한 절이 불명산 화암사이다. 화암사에는 국보로 지정된 극락전과 꽃비 내리는 누각이라는 보물, 우화루의 유명세에 가려 철영재라는 한 칸짜리 사당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극락전과 불명암 사이에 있는 유교 문화의 공간인 이 사당, 철영재가 바로 성달생을 모신 사당이다. 철영재 현판은 대나무를 잘 그리는 조선 3대 화가 중 한 사람인 자하 신위가 썼다. 화암사 요사채는 적묵당이라 한다. 적묵(寂?)은 여유로움을 뜻한다. 봄 같지 않은 올 봄, 화암사 우화루(雨花樓)에 내리는 산벚나무 꽃비에 답답한 마음 씻어 보면 어떨까? /이흥재 정읍시립미술관 명예관장
이재규 우석대 교수 집으로 두툼한 선거공보 봉투가 왔다. 일부 후보자들의 방송토론과 길거리 인사를 제외하고는 예년의 선거 분위기를 느끼기 힘든 코로나 시국에서 총선 날짜가 코앞이라는 것을 비로소 실감한다. 세어보니 지역구 후보자 홍보물이 7개, 보궐선거인 시의원 후보가 2, 비례대표 정당홍보물이 12개다. 비례후보를 낸 정당이 35개에 달하는데 몇 정당은 전국에 배포할 홍보물조차 찍지 못해 선관위 홈페이지를 찾아보는 수고를 더하지 않는 한 누굴 내세웠는지 명부를 알 수 없다. 지금 감옥에 갇혀있는 박근혜 사진을 전면에 내건 정당도 두 곳이나 있는 것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표방할 수 있는 사회이지만, 모든 노조를 폐지한다거나 대통령이 모든 국민의 관혼상제를 챙김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지역구 후보자의 공약도 모두 신기루 같은 건설 공약, 수백 수천 억의 돈을 쏟아 붓는 뻥카들이 즐비하다. 공직자를 투표로 선출하는 선거는 지지하는 정당과 인물을 밀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유권자인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말을 몰아가는 채찍질이 본질이다. 누구를 열혈 지지하여 그가 어떻게 변심하든 연심을 거두지 않는 추종, 정치 소비자로 남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정치인들을 몰아세우는 참여가 선거라는 과정의 알갱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로 제시되는 주권재민에서 핵심은 국민에게 있다(在)는 것이다. 지갑 안에 든 돈처럼 그저 거기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쓰여야 비로소 구현이 되는, 있다 이다. 주권자인 민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실천적 주문이 거기 들어있다. 그러므로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살 때처럼 부지런하게 내 눈 앞에 있는 상품을 살피고 뜯어봐야 한다. 가짜 상품은 반품하고 고발하며 부실한 제조사를 문 닫게 해야만, 매대가 훨씬 보기 좋아진다. 정치 시장에서 상품은 명부로 존재한다. 만지고 뜯어볼 수 없기에 그 이름자가 걸어온 내력과 언행을 살펴서 앞으로 어떻게 일할지 짐작하는 것이 물건을 잘 고르는 첩경이다. 내가 바라는 최고의 상품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면 발길을 거두고 돌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겠으나 지금 가능한 최선(어쩌면 차차선=차차악)을 골라야 시장이 그쪽으로 움직인다. 구매를 포기하지 않아야 더 나은 상품을 내놓으려고 제조사가 분발하는 이치다. 이번 총선은 참으로 복잡다단한 우여곡절을 거쳐 시장에 명부가 나왔다. 지역구 후보자 선출도 그렇지만 정당의 지향이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비례 대표 후보자 명부는 막판까지 요동쳤다. 그 과정에서 아쉽고 답답한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정치는 내 생각과 100퍼센트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면 모든 것이 0(Zero)이 되는 영역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님 말고 단절하며 돌아서는 순간 더 나쁜 것들이 문 앞에서 칼을 들고 기다린다. 정치는 현재 가능한 선택지 중에서 고르고 고르는 일이다. 정당이나 유권자 모두가 거기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분단과 전쟁, 그 이후 수많은 정국의 부침을 겪으면서 우리 국민들은 피눈물 속에서 어디 두고 보자 주먹을 움켜쥐는 지혜와 용기를 발휘해왔다. 다 죽은 것 같은 잿더미 위에서도 단 한 발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쪽으로 길을 뚫었다. 총칼이 목덜미를 겨누는 순간에도 한 잎의 싹이라도 보이는 정치인을 세워 다음 승부의 발판을 마련했다. 며칠 후 투표장에 들어서는 마음도 그러할 것이다. 공감하는 지인, 가족들과 함께 공동구매 방식으로 표를 나누는 지혜도 발휘하면서, 내일은 좀 더 나은 명부를 만나리라 기대하면서. /이재규 우석대 교수
신정일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우리 땅 걷기 대표 길을 걷다가 어느 순간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서 아! 하고 말을 잇지 못하면서 경탄을 금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 아름다운 경관이 그 순간 가슴 속에서 잠자고 있던 영혼에게 말을 건넨 것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에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파우스트 박사의 영혼을 앗아가려고 온 메피스토텔레스에게 파우스트가 말한다,내가 순간을 향하여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하고 말을 한다면 너는 나를 꽁꽁 묶어도 좋다. 그럼 나는 기꺼이 멸망해도 좋으리라. 그런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고 경탄하면서 무아지경에 빠져 있을 때, 그때는 누가 내 목을 쳐가도 좋고, 나를 붙잡아가도 괜찮은 것이다. 일순간에 그 자신을 잊어버리는 보석같은 풍경들이 우리들 곁에 있는데, 그 보석의 진가를 아는 사람은 극히 적다. 경주시의 바닷가에 꽃처럼 펼쳐져 동해바다를 수놓고 있는 읍천리 주상절리가 있다. 그 주상절리가 온 나라에 알려진 것은 2011년 무렵이었다. 원래 군 초소가 있어서 2007년 부산 오륙도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해파랑 길을 처음 걸을 때는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 땅 걷기의 제안을 통해 해파랑 길이라고 명명된 그 길을 두번 째 걷고 있다가 초소에 사람이 없어서 들어갔는데, 그 초소 앞에 통천의 총석정에 기둥처럼 서 있는 주상절리와 달리 바다에 연꽃처럼 주상절리가 펼쳐져 있었다. 그때 그 경이로움과 경탄으로 촬영한 사진이 <우리 땅 걷기>를 통해 언론에 알려진 뒤 그때까지 집 한 채 없었던 그곳이 대처가 들어섰다. 후일담이지만 그때 나와 함께 그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그곳에 땅을 샀더라면 큰 돈을 벌었을 것인데, 그 진가를 너무 늦게 알았던 것이다. 중국의 장가계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이 불과 몇십 년 밖에 안 된 것처럼 읍천리 주상절리가 있었던 것을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얼마 전에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회에서 변산의 직소폭포 일원을 국가명승으로 심의 의결했다. 국립공원안에 있던 명소로만 알려졌던 것을, 산림청 국가 신림문화자산으로 선정했다가 이번에 국가 명승으로 승격시킨 것이다. 전라북도에 그러한 곳이 여러 곳이 있다. 임실군 덕치면 구담리에서 동계면 회룡마을의 물돌이동을 지나 장군목에 이르는 구간, 용궐산과 무량산 사이의 섬진강이 바로 천하의 절경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곳이 국가 명승이라는 것을 모른다. 진안 용담의 섬바위에서 감동마을로 이어지는 금강 벼릿길이나. 조선시대 혁명가인 정여립이 꿈꾸었던 대동사상을 품고 있는 진안 죽도와 천반산 일대의 절묘한 풍경도 명승 중의 명승이다. 또한 부안 개암사는 백제 부흥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우금산성이 있고, 이매창의 문학의 산실이기도 하며 원효굴이 있는 울금암의 절묘한 풍광을 간직한 곳이다. 변산의 아름다움은 그것만이 아니다. 전나무 숲이 아름다운 천 년 고찰 내소사와 변산의 풍경. 그리고 여암 신경준의 자취가 서린 순창 강천산 자락의 강천사 주변 풍경도 훌륭한 명승 유적이다. 이런 문화유적들을 국가에서 명승으로 지정하도록 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네 눈이 미치는 곳에 네 보물도 있느니라 <마태복음> 6장에 실려 있는 말과 달리, 보물이 아니라고 여겨서 그런지 우리 곁에 있는 보물을 모른다. 사람도 역시 그러하다. 내 곁에 보물 같은 사람이 있는데, 그 보물을 알지 못하고, 다른 곳에서 그 보물을 찾고 있다. 우리 모두 내 곁에 있는 보물을 찾아내고 보존하자. /신정일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우리 땅 걷기 대표
박문칠 다큐멘터리 감독우석대 교수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사태를 맞아서 많은 이들이 재난 영화나 좀비 영화를 찾고 있다. 위기의 순간 드러나는 인간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데에는 이만한 선택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이미 좀비 영화의 상상력을 뛰어넘은지 오래다. 전지구적 위기를 맞아서 우리는 이제껏 본 적 없는 풍경과 조치들을 목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유례없이 재난 기본소득이 검토되고 있고, 해외에서는 통행금지, 한시적 해고금지, 일시적 병원 국유화 등이 단행되었다. 전시 상황이나 혁명정부 하에서나 볼 법한 조치들을 보면서 좀비 영화보다, 켄 로치 감독의 <1945년의 시대정신>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지난 세기를 뒤흔들었던 전지구적 위기를 꼽자면 2차 대전을 빼놓을 수는 없다. 역사책을 들춰보면, 당시 상황이 지금과 흡사하게 느껴진다. 각국 정부는 전쟁 승리라는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회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배분했으며, 시민의 안녕을 책임지기 위해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식량배급이 실시되었고, 생필품과 군수물자 생산에 대한 국가 통제가 이뤄졌다. 전시라는 비상상황이라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흥미로운 점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이러한 경향이 한동안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전쟁이라는 삶의 위기는 사람들에게 각자도생보다는 함께 살기가 더 낫다는 교훈을 남겼고, 이런 정신은 전후 서구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결실로 맺어졌다. 영국의 경우, 노동당 정부가 집권하면서 전국민 무상의료시스템인 NHS (National Health Service)가 도입되었고, 국가 기간산업은 국유화되었으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험(National Insurance)이 확대되었다. 말 그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시민의 삶을 책임지는 사회 시스템이 마련된 것이다. 전쟁이라는 위기 상황에 직면해서 집단적으로 터득한 삶의 지혜, 즉 나 하나의 이익보다는 공동체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가진 것을 나누는 정신이 전후 복구의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 당시의 시대정신을 담은 영화가 제목 그대로 <1945년의 시대정신>이다. 코로나가 지나가고 평온한 일상을 되찾을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팬데믹과 같은 전지구적이고 체계적인 위기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꼭 팬데믹이 아니더라도 전 세계는 이미 온난화와 생태계 파괴와 같은 기후위기, 전쟁과 내전으로 인한 난민 문제 등 심각한 위협에 놓여 있지 않은가? 피할 수 없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 철저히 대비하자. 금번 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이미 전시상황에 버금가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실천하고 있다. 헌신하는 의료진, 마스크가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내 것을 기꺼이 내놓는 사람들, 고생하는 택배기사를 위해 간식과 응원쪽지를 남기는 사람들. 그리고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획기적인 지원책들. 이렇듯 위기의 순간 발휘되는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시스템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기여할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방법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방안들이 코로나에 대한 일시적인 조치가 아니라, 보다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중장기적인 사회개조 프로젝트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2차 대전이라는 끔찍한 인류사의 불행을 딛고, 복지국가를 건설한 지난 세기의 교훈처럼 우리도 위기를 기회 삼아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사회를 예비해보면 어떨까? /박문칠 다큐멘터리 감독우석대 교수
이흥재 정읍시립미술관 명예관장 무릇, 옛 선비들은 사군자 중에서도 매화를 으뜸으로 여겼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화폐를 보더라도 오만원권 지폐에 매화가 그려져 있다. 오만원권 뒷면에 그려진 묵매는 조선 중기 화가, 설곡(雪谷) 어몽룡(魚夢龍, 1566~1617)이 그린 월매도(月梅圖)이다. 오랜 세월 풍상을 겪은 고목을 보름달과 함께 그렸다. 굵은 줄기의 중간이 툭툭 부러져 있고, 그 줄기에서 새로 난 가지는 힘차게 쭉쭉 뻗어 둥근달과 함께하고 있다. 가지에서 피어난 매화는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강직한 선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여백을 한껏 살려 달에 닿을 듯 씩씩하게 뻗은 매화 가지의 조형은 오히려 시적이다. 천원권 지폐에는 퇴계 이황의 초상 옆에 매화가 그려져 있다. 1570년 겨울, 퇴계 이황 선생이 숨을 거두며 마지막 남긴 유언은 매화분에 물을 주라였다. 이 말은 평생을 매화와 함께했던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 퇴계의 정한 삶을 엿볼 수 있다. 오만원권, 천원권 지폐에 매화가 그려져 있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옛사람들은 매화가 피면 친구들을 불러 매화시를 읊고 감상하는 잔치를 열었다. 이를 매화음(梅花飮)이라 하는데 당시 문인들의 풍류문화의 하나였다. 꽃이 귀하여 하는 잔치이기도 하지만 꽃이 피면 찾아오는 봄이 반가웠던 것이다. 단원 김홍도가 생활이 어려웠던 만년 시절, 선금으로 받은 그림값으로 매화분을 사고 친구들과 매화음을 여는데 쓰는 바람에 식량 살 돈이 부족했다는 고사가 있다. 이를 보더라도 당시 사람들의 매화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문인화가 우봉 조희룡의「매화서옥도」는 매화 그림의 백미라 하겠다. 조희룡은 매화와 관련된 그림을 많이 그린 화가로서, 매화를 심어 감상하고 매화시를 읊으며 자신의 처소를 매화백영루라 했을 만큼 매화를 유난히 좋아했다. 그는, 평생을 매화를 부인 삼아 살았던 임포의 삶을 동경하여 그 마음을 매화서옥도에 담았다.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는 난만하게 피어, 마치 함박눈이 내린 것처럼 흐드러진 매화에 둘러싸인 조그만 서재에서 선비가 글을 읽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매화서옥도는 향설해(香雪海) 즉, 매화의 향기와 꽃이 바다와 같은 풍경으로 펼쳐져 있다. 눈처럼 흩날리는 매화는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조희룡의 현대적 조형 감각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추사 김정희는 제자 조희룡을 문기(文氣)가 없다고 무시하기도 했지만, 의연하게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해 간 우봉 조희룡의 삶은 오히려 매화처럼 아름답게 피어난 것이다. 옛 그림을 읽는 것은 단순히 옛것을 보는 게 아니다. 옛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부분으로 지속하고 있다. 우리는 이 지속성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일부를 다시 찾을 수 있으며 오랜 기억과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러므로 옛 그림과의 만남은 진정한 자기 회귀라 하겠다. 자기 회귀란 자신을 긍정하되, 자기에 갇히지 않고 잃어버린 것을 통해서 자기를 재창조해 내는 과정이다. 여러모로 힘든 요즘, 잠시 짬을 내어 구례 화엄사 홍매화나 가까운 공원의 매화를 만나보자. 깊고 고운 색, 그윽한 향기를 직접 느껴보면 매화를 사랑했던 선비들의 마음과 그 사랑을 흠뻑 받은 매화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지 않을까? 흐드러진 매화를 카메라에 담으며 화하주(花下酒) 한잔으로 시름을 달래보면 어떨까? /이흥재 정읍시립미술관 명예관장
이재규 우석대 교수 마스크 대란이라는 말이 연일 뉴스의 중심에서 오고간다.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사람들은 코로나 시대를 증거하는 한 풍경으로 오래 기억에 남게 될 것이다. 1월말 중국 우한이 전격 폐쇄되고 역병이 밀려드는 기세를 보도하는 뉴스가 급증하면서 대중의 공포는 자꾸 덩치를 키웠다. 자가 격리, 모임 자제, 공공장소 폐쇄 등이 권고되고 마스크 착용이 거의 의무처럼 통용되면서 마스크 수요는 공급을 단숨에 앞질렀다. 빠른 속도의 진단과 격리, 치료에서 보듯 감염병에 대한 우리 정부와 의료진의 대응 수준은 세계가 주목할 정도이지만 일부에서 마스크 공급의 혼선을 정략적으로 오도하고 공격하면서 코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마스크는 민심의 향방을 결정할 정도로 커졌다. 마스크는 본질상 차단하고 감추기 위해 존재한다. 내 코와 입을 가림으로써 외래의 것을 차단하고 본의 아니게 내가 피해를 주는 것을 막는다. 마스크는 의료 현장이나 재난의 장소에서는 이렇게 안전의 도구이지만 사회적 의미에서는 신분의 노출을 막는 가림막으로 쓰여 왔다. 영화 <조로>나 <베트맨>에서 사회악을 물리치는 숨은 영웅은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다. <브이 포 벤데타>에서처럼 저항에 동의하는 익명의 군중들이 상징으로 내세우는 가면은 <조커>에서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를 가진 어릿광대 악당으로 전변하기도 한다. 마스크는 얼굴이 드러났을 때 확인되는 개별적인 정체성을 소거하고 무리 중의 하나로 개인을 위치시킨다. 위협이든 저항이든 어떤 의미에서이건 마스크는 그곳의 장소와 시간이 비상한 상황임을 드러내는 비일상적인 표지다. 모두가 마스크를 쓴 군중들로 가득한 도시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이는, 위기에 처한 공동체를 위협하는 외래의 것이거나 방종한 이탈자, 지극히 개인적인 사람으로 취급된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소망하는 것은 마스크를 벗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되찾고 개인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역병 소식이 돈 지 한두 달 만에 전혀 다른 것으로 변해버린 일상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존 버거의 소설 끝부분에는 많은 이들이 죽고 집이 파괴되는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이야기가 나온다. 희망은 일시에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초능력을 가진 구원자에게서 오지 않는다. 작가는 매 순간, 매일의 삶이 의존하는 규칙성에서 희망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 규칙성에는 박자가 있어요. 아주 희미하고, 들리지 않을 때가 많고, 심장박동과 비슷하죠. 그곳에 환상이 들어설 자리는 없어요. 그 박자가 외로움을 그치게 해주지도 않고, 고통을 치유해 주지도 않으며, 전화로 그 박자를 전해 줄 수도 없죠. 그건 다만 당신이 어떤 공통의 이야기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줄 뿐이죠.우리의 삶이 끝없는 불규칙성에 빠져 버렸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것들. 그것은 일상의 소중함이다. 끼니 때가 되면 주섬주섬 밥을 챙겨 먹고, 친구와 술잔을 나누고, 무용한 농담을 하다가 누군가를 돌려 욕하고 응원하며, 눈 오는 풍경 하나에 감탄하며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의 회복. 그것만이 종종 치욕을 안기는 이 삶을 지탱하게 한다. 다음 세대에게 이 불완전한 세계를 남겨주고서야 자연스럽게 종료될 내 소소한 일상이 이토록 그리운 것은 처음이다. 코로나가 물러가면 그동안 금지되었던 것을 한꺼번에 해치우는 보복소비가 찾아올 것이라고 한다. 내 얼굴을 어루만지는 바람과 햇빛, 풍경, 좋은 사람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들려주는 다정한 목소리는 어떻게 보복해서 되찾을 수 있을까. 빼앗긴 시간을 두 배로 되찾을 순 없지만 소중한 것들을 비로소 깨달은 마음만큼은 오래 저장해두고 싶다. /이재규 우석대 교수
신정일 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 위원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에 화양동구곡이 있다. 그곳에 있는 암서재는 서인의 영수로 이름을 드높인 우암 송시열이 머물며 제자를 가르쳤던 곳이다. 바로 옆에 일명 큰절이라고 부른 환장사(煥章寺)가 있다. 환장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절 앞에 여덟 가지 소리가 난다는 팔음석(八音石)이 있고, 숭정황제의 친필인 비례부동(非禮不動) 넉 자와 의종황제의 친필인 사무사(邪無邪) 석 자가 보관되어 있다. 화양동서원이 한창 드날리던 시절 이 절의 한 스님은 이곳에 들르는 사람들의 형태만 보고도 그 사람이 어떤 당파에 속해 있는 지를 정확하게 알아냈다고 한다. 예를 든다면 만동묘 앞을 지날 때 공경하고 근신한 뜻이 안 보이며 활달하게 떠들고 지나가는 사람은 진보적이던 남인(南人)이었다. 또한 만동묘에 이르러서 쳐다만 보아도 감개무량하게 여기고 몸을 굽혀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은 보수적인 노론(老論)이고, 그저 산수구경을 간단히 하고 만동묘 구경도 절차를 무시한 채 와서 절에 와서는 중을 곧잘 꾸짖었던 사람들은 혁신적인 노론(老論)이라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당색에 대한 강인한 집념은 당색에 따라 옷의 디자인이나 헤어스타일도 달리하였다고 한다. 노론 가문의 부녀자는 저고리의 깃과 섶을 모나지 않고 둥글게 접었으며 치마 주름은 굵고 접은 수가 적으며, 머리 쪽도 느슨하게 늘어서 지었다. 이에 비해 소론 가문의 부녀자는 깃과 섶을 뾰족하고 모나게 접었다. 이처럼 모난 디자인을 당(唐)코라 불렀으며 소론 가문을 당코로 속칭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치마 주름 수도 많고 잘며 머리 쪽도 위쪽으로 바짝 추켜 지었고 이 같은 옷매무새나 머리모양은 그들 당의 정신과 너무나 잘 부합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곧 노소론의 분당 원인은 주자학(朱子學)을 둔 보수적 해석과 혁신적 해석 때문이며, 곧 보수혁신이 그 분당의 분기점이었던 것이다. 당코처럼 날카로운 디자인, 잔주름 많은 치마, 바짝 올려붙인 머리 쪽이 혁신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고, 완곡한 옷깃, 굵은 치마 주름, 느슨한 머리 쪽은 보수적 이미지를 물씬 나게 한다. 그들이 속해있던 당색이 인격이나 언동(言動), 그리고 옷차림새에까지 배어버린 것을 보면 우리 선조들은 이와 같이 당색과 인간이 절충 융합해 있었던 같다. 그러한 당색들이 오늘날까지도 줄기차게 이어져 왔다. 동인과 서인에서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져 왔고, 노론, 소론으로 이름은 계속 바뀌면서도 당색은 더욱 깊어져 갔다. 그러한 폐단 때문에 질곡의 세월을 보낸 끝에 <택리지>를 지은 이중환의 말은 오늘날에도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정사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이익만 도모하고, 실상 나랏일을 걱정하는 사람은 적다. 관직을 매우 가볍게 여기고, 관청을 주막같이 생각한다. 조선시대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현대에도 당마다 옷 색깔이 다르다. 노란색이나 , 파란색, 또는 빨간색으로 당의 특색을 나타내고, 그들만의 고유언어로 상대방을 공격도 하고, 같은 당을 똘똘 뭉치는데 활용하기도 한다. 오랜 세월 속에 또 한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나하고 생각이 같으면 군자(君子)고, 나하고 생각이 다르면 소인(小人)이다라는 허균의 군자소인지변이라는 말이 하나도 변형되지 않고 진행되어 왔다. 그래서 제 눈에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끌만 보인다는 속담이 무색하지 않은 세상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우파네. 좌파네 하며 서로의 등을 떠밀며 날 선 칼을 겨누고 있는 그러한 세상 속에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역사의 거센 풍랑에 흔들리고 있다. 이 배가 정박할 따사로운 항구는 어디에 있는가? /신정일 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 위원
박문칠 우석대 교수 아카데미가 달라지고 있다. 올해 시상식은 여성, 유색인종, 장애인, 비인간 동물 등 다양한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애쓴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다. 물론 그 화룡점정은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주요 상을 휩쓴 <기생충>이었다.?이런 변화는 아카데미가 그 동안 백인 남성 위주의 잔치라는 비판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넓게 보자면 이러한 움직임은 미디어 내 소수자를 올바르게 재현하려는 사회적, 문화적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과 관련된 담론에 대한 역풍도 심심치 않게 일고 있다. 먼저 가깝게는 트럼프 대통령. 그는 <기생충>의 수상을 조롱하며 자국 영화가 수상하지 못한 것을 개탄했다. 지난 해 게임 업계에서는 오버워치라는 게임의 간판급 남성 군인 캐릭터 솔져:76이 동성애자로 밝혀지면서 부자연스럽다는 유저들의 반발이 일기도 했고, 인어공주의 실사판 주인공 에리얼 역에 피부색이 검은 할리 베일리가 캐스팅되자 #나의 애리얼은 이렇지 않아(#NotMyAriel)라는 해시태그가 확산되고 디즈니를 상대로 한 캐스팅 취소 청원이 돌기도 했다. 우리도 이러한 역풍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옹호하는 사람을 PC충이라고 비하하는 행위가 공공연히 이루어진다. 소수자 재현을 반대하는 목소리의 기저에는 소수자 기용이 부자연스럽다는 정서가 공통되게 흐른다. 우리가 어렸을 때 봤던 동화 속 인어공주는 피부가 하얀 색이었고, 총을 잘 쏘는 군인 캐릭터가 강인한 남성 이성애자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카데미는 미국인들의 잔치였으니 미국=백인의 나라라는 도식을 내면화하고 있는 우리에게 올해 시상식 풍경 역시 생경할 수밖에 없었다. 아시아인들이 대거 단상에 올라가고, 톰 행크스나 샤를리즈 테론 같은 내로라하는 할리우드 배우들이 객석에서 박수 치고 환호하는 장면은 필자의 눈에도 CG나 합성화면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중매체 속 소수자를 올바르게 재현하려는 운동은 바로 무엇이 자연스럽고 무엇이 부자연스러운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재정의하는 움직임이다.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많은 것들 안에는 이 사회의 지배적인 통념과 권력관계가 녹아들어 있다. 남녀가 키스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동성이 키스하는 건 왜 부자연스럽다 여기는지. 아랍인이 테러범으로 출연하는 건 자연스럽지만, 지구를 구하는 영웅이 되면 왜 부자연스럽게 느끼는지.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을 직면하지 않으면 이런 집단 무의식이 사회적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이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미국인들만을 위한 무대라고 여겨졌던 아카데미의 단상에 봉준호 감독이 올라감으로써 이제 다양한 국가, 다양한 지역의 영화 감독들에게 나도 언젠가 저 무대를 밟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미국인들도 자국 영화 외에 더 넓고 풍요로운 영화의 세계에 눈을 뜰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조금 낯설고 잠시 부자연스러울 순 있어도 기존의 통념을 깨고 한 발 나아가는 기분 좋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기생충>이 열어젖힌 새로운 가능성이 반갑다면 비백인 인어공주나 다른 대중매체 속 소수자 재현에도 박수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박문칠 우석대 교수
이흥재 무성서원 부원장 2019년 7월 6일,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무성서원을 비롯한 한국의 9개 서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무성서원은 이제 대한민국의 문화재일 뿐만 아니라, 세계인이 관심을 가지고 보존 관리해야 할 세계의 문화유산이 된 것이다. 정읍 칠보에 자리한 무성서원은 1615년, 고운 최치원의 생사당과 태인 현감 신잠의 생사당을 함께 모시고 태산서원으로 시작하였다. 고운 최치원이 지금의 칠보인 태산 태수를 역임한 후 생사당(生祠堂)을 지어 모신 때부터는 1100여 년의 역사이다. 조선 초, 불우헌 정극인이 상춘곡을 읊고 성리학적 질서의 고현동 향약을 실현한 때부터 계산해도 600여 년 가까이 된다. 무성서원은 1696년 조선 숙종 때 사액(賜額)을 받아 무성서원이 됐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 훼철을 면한 전북의 유일한 서원이다. 1968년 사적 166호로 지정되었다. 오랜 기간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왔고, 선비들의 귀감이 될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뜻을 추모하며 계승하려고 노력한 점, 마을 주민들과 민주적인 공동체를 이룬 점 등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 받아 전국 8개 서원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가 된 것이다. 논어 양화편에 공자는 제자 자유(子遊)가 무성 현감으로 부임하자, 다른 제자들과 함께 격려차 방문했다. 무성 고을 입구에 이르자 백성들의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려 무성 현감인 제자 자유에게 공자가 물었다. 어찌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려고 하느냐? 자유가 답하기를 예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군자가 도를 배우고 예악(禮樂)을 알면 곧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하자, 공자가 앞에서 한 말은 농담이었다.고 하는 내용이 있다. 논어 양화편의 공자지무성(孔子之武城) 문현가지성(聞弦歌之聲)에서 인용하여 서원 이름을 무성(武城)으로 하고, 입구 누각을 현가루(絃歌樓)라 하였다. 최치원의 치적을 자유(子遊)에 비견한 것이다. 나라를 다스릴 역량을 가지고 있는 큰 인물이 작은 태산 고을의 태수를 지내며 감동적인 선정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고운 최치원과 관련된 일화를 전하는 공간은 도처에 있다. 하지만 최치원을 주벽(主壁)으로 배향하여 사액서원이 된 곳은 무성서원이 유일하다. 서원 강당을 보면 가운데 마루 3칸이 벽체가 없이 툭 틔어있어 내삼문의 태극문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비움의 담백함이라는 아름다움의 건축미를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 공부하던 반듯한 선비의 모습을 닮았다. 한겨울 눈보라에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반듯한 자세로 서 있는 강당의 모습은 선비들의 중요한 덕목인 신독(愼獨 - 홀로 있을 때 삼가야 한다) 그 자체인 것이다. 최치원은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고 했다. 고운이 말한 풍류는 유교, 불교, 도교를 아우르는 최고의 가치였다. 1100여 년간 고운 최치원의 풍류정신을 이어, 성리학적 유토피아를 구현해 온 곳이 무성서원이다. 무성서원이 이 시대 모든 사람이 함께하는 서원이 되기 위해서는 풍류와 선비정신을 구현하는 문화공간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무성서원이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거듭나 앞으로 또 천 년을 이어갈 서원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하는 일이 이제 우리의 몫으로 남았다. /이흥재 무성서원 부원장
이재규 우석대 교수 새해 첫 달을 제주에서 살았다. 요즘 트랜드라는 한 달 살이를 해본 것이다. 매일 제주 곳곳의 숲과 오름, 바다를 발길 닿는 대로 가보았다. 시간이 많아지니 눈에 담는 장소도 늘어났지만 일주일 이내 짧게 머물렀던 이전의 여행에 비해 무엇보다 마음의 자세가 달랐다. 겨우 한 달에 현지인이 될 수는 없으나 주마간산으로 다닐 때 놓쳤던 것들을 보게 되고 그곳에 대해 더 깊은 애정을 갖게 되었다. 풍광과 사람 모두가 새롭게 다가왔던 것이다. 국내 여행지 중에 제주는 한 달쯤 살아보는 데 최적의 장소다. 일단 섬이라는 특성상 일상에서 떠나왔다는 고립감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고 동서남북 적당한 면적에 숲과 해변, 오름마다 개성이 있어 돌아볼 거리가 충분하다. 들어서는 순간 식생대와 바다 물색이 바뀌면서 이역(異域)에 왔다는 느낌을 제주만큼 주는 곳도 없을 것이다. 거기에 제주만의 신화, 생존과 수난의 역사가 가세하며 뭍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제주는 해안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보는 올레코스 총 26구간, 425km를 개발하면서 더 많은 이들이 찾게 되었다. 오로지 올레 완주를 위해 한 달 살이를 계획하는 이들도 상당수라 들었다. 실제 걸어보니 곳곳의 표지와 안내 시스템(책자, 사이트, 스탬프, 안내센터, 자원봉사자)이 잘 되어 있어 불편함이 없다. 디지털 지도 등의 기술 발전도 낯선 여행자에게 든든한 도우미 역할을 한다. 지자체에서 대중교통을 촘촘히 연결한 것도 평가할 대목이다. 먹고, 자고, 풍광을 즐기는 것. 여행지 품평에서 중요한 요소인 이 3박자를 골고루 갖춘 곳을 찾아서 사람들은 후기를 공유하며 여행정보의 빅데이터를 자율적으로 구축해간다. 정해진 패키지 구간을 가이드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여행은 이제 올드한 것이 되었다. 낯선 곳에서 장기 체류하며 지극히 개인적인 여정의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들이 대세를 이루어간다. 여행은 SNS 채널을 통해 개인사의 기록으로 남겨지고 공유된다. 장소의 인증과 감정, 정보의 공유를 빼놓고서는 폰카를 들고 여행지를 득템하듯 표류하는 현대인의 여행 방식을 설명할 수 없다. 한 달 살이는 좋은 곳에 조금 더 머무르고 싶다는 여행 트랜드 너머의 것을 말해준다. 삶에 대한 태도의 변화가 밀물처럼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붙박이로 한 곳에 묶여 신분과 재산에 따라 하나의 직업으로 평생을 살던 시대는 갔다. 그때의 여행은 일생에 한두 번 어렵게 나갔다 생존하여 돌아오는 귀향의 길이었다. 기본적으로 정주(定住)가 모형이었다. 이제 농경시대, 산업혁명을 거쳐 노마드의 세기가 왔다. 끔찍할 정도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고 한 사람의 생애 주기도 2막, 3막으로 길어졌다. 고용과 노동의 형태도 급속한 변화를 거치면서 우리가 기준점으로 삼는 성취, 생의 목표도 이전 세대와는 아주 다른 모습이 되고 있다. 국가와 민족의 경계로 나뉘어 반목 대립해온 이 지루한 낡은 전쟁도 가까운 몇 세대 안에 종식될 수 있을지 모른다. 언어와 지역의 장벽이 무너지고 가족의 전통적 형태, 애정의 결합 방식도 바뀔 것이다. 옛 시대 낡은 감정과 관념들은 언제 그런 시기가 있었냐는 듯 썰물처럼 퇴조해갈 것이다. 집단의 결속보다 주체적 개인이 더 소중해지고 지금 여기가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는 전환의 시대. 제주 바다로 지는 단 한 번의 노을을 바라보며, 이번엔 또 어디로 건너뛸까 미래를 당겨 사는 사람처럼 다음 한 달 여행지를 궁리해봤다. /이재규 우석대 교수
신정일 우리 땅 걷기 대표 옛날에는 백 리 마다 풍속이 달랐다. 안자춘추에 실린 글이다. 오랜 옛날에 사람들의 왕래가 많지 않았던 시절 이야기이다. <서유기>에도 그와 비슷한 글이 실려 있다. 집을 떠나 3리만 가도 다른 풍속이 펼쳐진다. 같은 나라에서도 그럴진대, 하물며, 이역만리 떨어져 있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말해 무엇하랴, 만물이 오고, 만물이 가는 우주의 순환 속에서 오래 전 풍속과 현재를 비교해 보면 흐르는 세월 속에 사람들의 풍속과 문화가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유추해볼 수 있다.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의 임진강가에 징파도라는 나루터가 있다. 그 나루터에서 일어난 일이 이수광(李?光)의『지봉유설芝峰類說)』에 실려 있다. 임진왜란 때의 일이다. 양반집 귀부인들이 난을 피하는 와중에 징파도에 이르러 배를 타려고 하였다. 그때 여종을 데리고 온 귀부인이 있었는데, 배에 빨리 오르지 못하자 뱃사공이 그 부인의 손을 잡아당겨 올리려고 하였다. 부인이 크게 통곡하면서 내 손이 네 놈의 손에 욕을 당하였으니 내가 어찌 살겠는가?하고는 곧 물에 빠져 죽었다. 여종도 통곡하며 내 상전이 이미 빠져 죽었으니 어떻게 차마 홀로 살겠는가?하고 역시 물에 빠져 죽었다. 오늘날에 미투라고 할까? 다른 남자에게 손을 잡힌 것조차도 치욕이라고 여겼던 것이 그 당시 아낙네들의 전통적 사고방식이었다. 또 하나 진기한 이야기가 선조 때에 펼쳐졌다. 서울의 운종가에서 아내의 간통을 적발한 남편이 아내의 음부를 돌로 쳐서 죽인 사건이 일어났다. 성리학이 주가 되던 조선에서 여성의 음부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설왕설래 끝에 경상도 함양에 기인으로 소문났던 오일섭이라는 사람에게 찾아가 물었다.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그때 오일섭이라는 사람이 알려준 말은 이러했다. 모나지 않은 돌로 차마 보지 못할 곳을 쳐서 죽었다(以無方之石他殺不忍見之處). 그 뒤 조선이 막을 내리기 전까지 이와 같은 사건이 일어나 음부를 표현해야 할 때는 꼭 쓰게 되는 법조문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조선 중기의 실학자인 이익이 지은 『성호사설』에도 재미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속이 중국보다 나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미천한 여자도 절개를 지켜 개가(改嫁)를 하지 않는다. 그 당시의 풍속에는 재혼을 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고, 아름다운 풍속으로 추앙받았다는 것을 실학자인 이익도 동조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하루에도 1,200쌍이 결혼하고 400쌍이 이혼하며 급기야는 결혼한 사람들 중 수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하기때문에 세계에서 미국에 이어 이혼율이 두 번째로 높은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혼자 살겠다거나 결혼은 해도 자식을 낳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불과 80년대 초만 해도 예비군훈련장에서 정관수술을 하면 5박 6일의 동원훈련을 빼주었는데 정부에선 인구 감소를 우려해 여러 가지 출산 정책을 입안하고 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거리마다 재혼하세요라 동남아 여자와 결혼하세요. 는 선전 문구가 범람하는 이 상황을 징파나루의 귀부인이나 이수광 또는 성호 이익이 저세상에서 볼 수 있다면 뭐라고 말할까?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유수와 같이 흐르는 세월 속에 전통도 변하고 사람의 마음도 변한다. 그 변화 속에서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풍속과 버려야 할 풍속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가 없는 그것이 문제다. /신정일 우리 땅 걷기 대표
박문칠 우석대 교수 곧 있으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다. <기생충>의 수상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하지만 이 열기에 가려져 충분히 주목받지 못한 영화가 있다. 바로 한국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오른 <부재의 기억>(In the Absence)이라는 작품이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이 29분짜리 다큐멘터리는 국내 관객에게는 익숙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처음부터 국내가 아니라 전 세계 관객을 대상으로 기획되었다. 작품을 만든 이승준 감독, 감병석 프로듀서 팀은 미국의 Field of Vision이라는 단편 다큐멘터리 전문 제작팀과 공동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이 결과 사건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담백한 기록물이 탄생했다. 사실 그 동안 외국인들에게 세월호 참사가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게 왜 단순한 대형 참사가 아닌지.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는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이유도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는 최순실, 국정농단 같은 원인들을 열거해 보기는 하지만,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의 속뜻은 여전히 설명하기 난망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어려운 과업을 29분 안에 해낸다. 그리고 작품이 거둔 세계적인 성공은 한국인이 세월호 이후 느꼈던 분노와 실망이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임을 입증했다. 이 작품은 최초 공개된 뉴욕다큐멘터리 영화제(DOC NYC)에서 단편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세계보도사진협회(World Press Photo)에서 개최하는 디지털 스토리텔링 대회에서도 수상했다. 또한 미국의 저명한 주간지 뉴요커(New Yorker)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온라인 공개가 되었는데, 현재까지 조회 수 244만을 기록하고 있다.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와 당시 정권과 관료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댓글들이 국적을 가리지 않고 달리고 있다. 이제 한국의 다큐멘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 세계에 전할 영상 언어와 실력을 갖추었다. 사실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의 극영화가 세계 시장에서 이룬 성과에 비해, 한국의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변방에 머물러 있었다. 서구 선진국 중심으로 짜여진 국제 다큐멘터리 시장에서 한국 작품들은 주로 북한에 대한 서구인들의 호기심을 채워주거나, K-pop과 같이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들을 소개하는 이상으로는 뻗어나가기 어려웠다. 그나마 최근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휴먼스토리들로 한국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의 폭이 조금 확장된 정도이다. 한국의 독립 다큐멘터리는 한국사회를 뒤흔들어온 정치사회적인 문제를 탁월하게 다뤄온 오랜 전통이 있다. 그러나 이런 작품들이 세계 시장에서는 너무 로컬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외면 받아왔다. <부재의 기억>은 이제 한국의 정치사회적인 이슈들도 전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서구인들의 시각에 갇혀서 그들이 보고 싶은 것만 내놓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치관과 언어로도 세계와 소통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세계적인 담론에 끼어들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다면, 이제 우리는 한국의 어떤 이야기를 세계에 전할 것인가, 어떤 화두를 갖고 세계인들을 만날 것인가, 고민해볼 차례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부재의 기억>을 찾아보면서 이런 고민을 함께 해보면 어떨까? <부재의 기억> 관람하기: https://youtu.be/5_A8dq2fA5o /박문칠 우석대 교수
이흥재 정읍시립미술관 명예관장 유난히 눈이 보기 힘든 올겨울 내내, 나는 개밥바라기별 바라기를 하고 있다. 개밥바라기별은 해바라기가 해 바라기를 하듯 저녁밥을 기다리는 개가 밥통이 채워지기를 기다리며 올려다보는 별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인 금성에 붙인 별명이라고 한다. 요즘 같은 한겨울에는 해진 후 두세 시간 동안 서쪽 하늘에 있다가 사라져 버린다. 3월 하순부터는 아예 보이지 않다가 4월 중순 이후엔 새벽 해뜨기 전 밝게 빛나서 우리가 흔히 샛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금성은 항상 태양 근처에 머물면서 해보다 먼저 떠오르거나, 해가 지면 따라서 진다. 때문에, 태양이 뜰 때는 날이 밝아오는 동쪽에서 그리고 해가 질 때는 서쪽에서 찾아야 한다. 목동의 별이라고 불리는 샛별은 비너스신과 동일시하여 사랑, 기쁨을 상징한다고 한다. 2019년이 저무는 어느 날 오후, 구이저수지를 찾았다. 해가 질 무렵의 구이저수지는 푸른 하늘을 담고 있었다. 그 하늘 한켠에 소나무 한 그루, 모악산 매봉으로 금방 떨어질 것 같은 초승달, 그 위로 초롱초롱한 밝은 별 하나가 빛나고 있었다. 그 별이 바로 개밥바라기별이었다. 고창 구시포에서 만난 개밥바라기별은 푸르고 영롱한 구름 속에 떠 있어 마치 추상표현주의 회화 같았다. 색면 추상 화가들의 신의 숭고는 가장 단순한 자연현상에서 발견된다.라는 말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이런 푸른 하늘은 땅거미가 내려앉은 황혼 무렵이나 새벽 해뜨기 전에 나타난다. 어둠과 밝음 두 빛이 공존할 때 나타나는 푸른색을 트와일라잇 블루(Twilight blue)라고 한다. 불어권에서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하기도 하고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흰 실과 검정 실을 나란히 늘어뜨리면 어느 게 흰 실이고 어느 게 검정 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시간이라고도 한다. 요즘 나는 이런 블루에 푹 빠져 있다. 일몰 후나 새벽녘에 사진 작업을 하며 푸른 하늘을 유영하는 새벽달도 보고 개밥바라기별도 만난다. 국립 경주박물관의 기획전시 신라를 다시 본다.에 초대받아 신라 고분과 왕릉을 촬영한 적이 있다. 이때 트와일라잇 블루를 만났다. 해가 진 후나 새벽에 고분의 주인공인 왕들을 만나러 가면 푸른 하늘이 나타났다. 그 황홀한 블루를 사진기에 담아 신라, 그 푸른 밤. 멀고도 가까운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하였다. 노서동 고분과 감나무가, 황남대총의 능선 위의 보름달이, 황남동 고분군 143호의 표주박형 곡선에 새벽달이. 경주의 밤은 그렇게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1,600여 년 된 노동동 고분에 살고 있는 느티나무 푸른 가지 사이로 초승달이 떠오르는 풍경은 아마 몇백 년은 되었을 것이다. 신라의 왕들과 우리는 푸른 하늘을 벗 삼아 수백 년 동안 함께 살아오고 있었다. 1960년대 초 누보 레알리즘의 이브 클랭(Yves Klein)이 인터내셔널 클라인 블루(International Klein Blue)라고 자신의 고유색으로 특허받은 파랑색을 클랭블루라고 한다. 그에게 푸른색은 가장 순수하고 무한한, 무(無)에 접근한 색채였다. 푸른색, 하면 떠오르는 바다나 하늘은 경계가 없어 블루는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의 색이기도 하다.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색이지만 정말 깊은 맛이 나는 색, 블루. 저녁식사 후, 따뜻한 목도리에 편한 신발 신고 푸른 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개밥바라기별을 만나러 나가보는 건 어떨까? /이흥재 정읍시립미술관 명예관장
이재규 우석대 교수 한 마디 말 때문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된다. 설화야 고금을 걸쳐 있었지만 요즘은 SNS를 통해 확산되는 속도와 파급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주워 담기도 전에 말은 네트워크를 타고 천리를 가버린다. 복제되는 것 뿐만 아니라 댓글이 줄줄이 달려 곳곳에서 불이 붙는다. 몇 명이 쑥덕거리던 우물가 담화가 순식간에 수천 수만 개로 증식되는 것이다. 말의 통로가 무한대로 확대된 디지털사회에서 말은 더욱 중요해졌다. 매일 말로 시작하여 말로 끝나는 정치인은 물론 언론인, 연예인, 작가 예술인 교수 등 발화자의 영향력이 높게 설정된 영역에서 말은 이들의 운명을 가르는 샷건이 된다. 멋진 말은 듣는 이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며 지지와 연대 행동을 불러오지만, 저열한 말은 비난과 품평의 대상으로 지목된 상대보다 먼저 발화자를 시궁창에 던져 넣기도 한다. 1인치 정도 되는 그 장벽(자막)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언어를 쓴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영화(cinema)라는 언어입니다. 영화 <기생충>으로 얼마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짧은 수상 소감은 자막이 있는 외국어영화에 배타적인 미국 관객들을 향한 위트이자 영화예술의 보편성을 잘 드러낸 멋진 말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그간 한국영화가 왜 한 번도 아카데미 시상식에 후보로 오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한 인터뷰에서도 오스카는 국제영화제가 아니다. 매우 지역적이다(The Oscars are not 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Theyre very local)라는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다. 오스카는 LA지역에서 상영된 영화를 대상으로 하는 지역영화제라는 당연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미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으로 여겨온 미국인들의 관념에 브레이크를 건 것이다. 봉준호의 말이 품격 있는 언어가 넓혀주는 지평을 실감나게 하는 사례라면 지난 해 조국 사태 이후 여러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보여준 말의 추락은 우리 사회의 수준에 대해 깊이 회의하게 만들었다. 논객을 자처했던 몇몇 이들은 예전의 자신을 스스로 뒤집으며 사람이 궁색한 처지에 몰리면 어떻게 훼절되어 가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당사자 뿐만 아니라 그 추락을 지켜보는 우리도 함께 오물을 뒤집어 쓴 듯 치욕스럽고 허탈했다. 말과 글을 다룰 줄 안다는 것이 이전에는 고귀한 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구설을 자청하는 천업(賤業)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세상일이라는 것은 두부 자르듯이 한 번의 칼질로 선악 진영을 나눠 단순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때때로 시비는 우리 안에도 뒤섞여 있다. 종교나 정치 영역처럼 적과 아군, 구원과 지옥행을 선명한 대비로 가르고 이것만이 진리이니 믿고 따르자는 통속적 솔루션은 짧은 순간 명쾌해보이지만 속으로 깊이 든 멍은 결코 풀어지지 않는다. 결국 끊임없이 또 다른 적을 호명하며 배제와 단죄의 소용돌이를 반복해 가게 된다. 어떤 사회적 성취나 지위를 내세워 대표성을 자처하며 대형 스피커를 독점해온 이들은 자기 주장 뒤로 늘 사람들을 줄 세우려 한다. 그들은 다른 이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며 단지 말싸움의 잔기술과 선동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만 든다. 숙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사회는 민주주의의 미래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다가오는 봄에는 정치권력의 향방을 놓고 또 한 차례 말의 전쟁터가 벌어진다. 휘황한 깃발과 장담들이 기세를 올릴 것이다. 이번에는 숙련되고 멋진 말솜씨를 가진 진짜 싸움꾼들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 말솜씨의 최고봉은 제 입을 닫아야 할 때를 아는 것. 진실은 늘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전해질 때 비로소 현실의 힘이 된다는 것을 몸으로 아는 사람을 뽑고 싶다. /이재규 우석대 교수
신정일 우리 땅 걷기 대표 몇 년 전 일이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강의 요청이 왔다. 부여에서 개최하는 전국 행사에 주제발표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부여에 도착한 뒤 티타임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그중에 한 사람이 뽀로로를 만든 최성일씨였다. 그는 부분 발제를 하기 위해 왔던 것이다. 전국 각 지역에서 온 300여 명의 청중 앞에서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강연장 맨 앞줄에 앉은 진흥원장에게 물었다. 원장님! 22가 얼마지요? 예, 4입니다. 최성일 선생님은 22가 얼마지요? 예, 저도 4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은 내가 듣고자 했던 대답이 아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새로운 문화를 총괄적으로 지휘하는 한국문화 콘텐츠진흥원장이고, 뽀로로라는 히트상품을 만든 창조자이기 때문에 그와는 다른 대답이 나올 줄 알았던 것이다. 과연 그럴까요? 하면서 나는 김수영 시인이 쓴 <산문, 불온성不穩性에 대한 비과학적인 억측>의 한 구절을 들려주었다.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수영 시인은 불온성이야말로 예술과 문화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고, 인류의 문화사와 예술사가 바로 이 불온의 수난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본 것이다. 김수영 시인의 산문만이 아니라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에도 그와 비슷한 글이 실려 있다. 하나님, 자연 법칙이나 산술법칙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말입니까? 무슨 이유에서건 자연의 법칙들이나 둘 곱하기 둘은 넷이라는 산술법칙을 나는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22는 4라고 하는 이런 공식은 더이상 삶이 아니고. 차라리 이것은 죽음의 시작입니다. 나는 두 사람의 예를 들고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설의 주인공이 말했던 것처럼 수학에서 22가 4만 되는 것이 아니고, 6도 되고 8도 되고, 아니면 백도 되고, 천도 될 수 있는데 꼭 4만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왜 우리는 의심하지 않는 것일까요. 삶 그 자체가 무한한 가능성인데, 그 가능성을 한정 짓고 살아가는 상황에서 어떤 새로운 창조물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새로운 문화 창조는 지금의 것에 만족하지 않고, 어딘가에 있을 그 무엇, 어쩌면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르는 그 무엇 에 대해 물음표, ? 즉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요? 내 말이 끝나자 최성일씨가 나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앞으로는 22를 절대 4라고 말하지 않고 무한한 가능성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그렇다. 문화의 본질은 불온不穩한 것이라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향해서 움직여야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전북의 문화가 정체되어 있다. 오래전에도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고, 지금도 그렇게 말한다. 왜 그럴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정여립 사건이라고 불리는 기축옥사와 동학농민혁명을 겪으면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새로운 것을 꿈꾸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그 당시는 불온성이 문제가 되었지만, 현재는 불온성이 새로운 창의성이 되고, 창의성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상이다. 남이 뚫어 놓은 길을 따라서 가면 그것은 창조가 아니다. 전라북도의 문화, 새로운 꿈을 꿔야 할 때다. 전라도를 벗어나 대한민국, 아니 세계 속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때가 바로 지금이다. /신정일 우리 땅 걷기 대표
이종훈 전주시립극단 예술감독 우리나라는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한글맞춤법통일안을 펴내면서부터 표준어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 나라의 말에 방언을 비롯한 많은 변종이 있어 국민 간에 의사소통에 불편이 생기고, 한 국가로서 통일성을 유지하는 일에 방해가 생기는 일을 막기 위하여 모든 국민이 지키고 따르도록 표준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탄생한 어휘를 쓰지 않고, 하나의 어휘로 고착시켜 대중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서울말을 표준어로 선정한 것이다. 이후부터 획일화된 표준어를 배우고 사용하다 보니 사투리가 점차 사라져 갔다. 급기야 근자에 이르러는 디지털언어, SNS 언어에다, 취업을 위한다고 표준말을 배우다 보니 사투리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지역마다 각기 다른 사투리가 사용되는 것은 지역의 언어습관에 맞게 말의 형태가 바뀌고, 음이 바뀌어서 그런 것이다. 사투리는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의 생각과 정서를 하나로 묶고 친밀감을 주는 기능을 한다. 또 우리말의 옛 모습과 특유한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말은 기록되기 어려워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다가 소멸되기 쉬운 게 현실이고 타고난 운명이다. 사투리에는 그 지역의 멋과 맛과, 힘과 맘이 있어서 정겨울뿐더러 성정이 담백하고, 찰 짓고 곰삭다. 투박하고 촌스럽지만 따스하고 알토란같은 맛이 난다. 그래서 어머니 같고 고향 같은 생각이 절로 난다. 그렇다. 사투리에는 특정지역과 특정시대의 문화가 그대로 자리 잡고 있어서 사투리가 사라지면 문화가 사라지고, 문화가 사라지면 사투리가 사라지고 미래도 사라진다. 2003년, <한국연극협회>에서는 서울 중심의 연극 편향에 반발하여 지역의 특유한 자연과 습성, 전통과 문화, 방언과 사투리, 숨겨진 설화를 발굴하고 사투리를 기반으로 한 향토언어를 사용하는 연극제가 필요하다는 연극인들의 요청에 의해 충남 공주의 공산성에서 <고마나루 향토연극제>를 시작했다. 한국인들의 정서와 흥과 멋이 고스란히 배어나올 수 있는 연극을 통해 세계 속에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좋은 취지로 시작된 이 연극제는 몇 해 못 가서 지역의 조그마한 연극제로 추락하고 말았다. 향토연극제의 취지를 살리지 못할뿐더러 투박하고 촌스럽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참가 작품들의 이야기와 구성이 짜임새가 부족하고 보편성이 떨어진다는 점과 연극적 미학의 결여가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시키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후 지역의 사투리를 사용하는 연극을 관람하기가 힘들어 졌다. 이제는 지역에서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연극들이 자취를 감춰버리고 대신 표준말이라는 서울말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 버렸다. 머지않아 지역의 사투리와 억양이 사라지고 획일화된 표준말로만 연극이 공연될 때, 언어와 정서가 단조로워져 감정이 메마른 황량한 연극으로 변해버릴 것 같아 두렵기만 하다 2020년은 <연극의 해>다. 전주는 가장 한국적인 도시로서 한국의 얼을 흥과 멋으로 풀어내는 고장이다. 사투리가 넘쳐나는 <향토연극제>를 유치해 보는 것을 어떨까? <전주시립극단>은 올 해 전북의 작가 윤홍길의 완장을 김제 사투리로 공연한데 이어, 2020년 봄에는 임실 사투리로 공연하는 이강백의 봄날을, 초여름에는 조정래 작가의아리랑을 전북의 사투리로 공연한다. /이종훈 전주시립극단 예술감독
서현석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11월부터 시작된 송년 행사가 12월에 들어서자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어느 모임은 조촐하지만 대접 받은 느낌이 들고 어떤 모임은 비싼 음식에 대접도 받았는데 뭔가 개운치 않을 때가 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런 경험을 일찍이 겪었다. 동승처럼 빡빡머리에 솜털이 보송보송 예뻤던 중학교 1학년 때 내게는 두 명의 동무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한 친구는 집이 못 살았다. 그런데도 그 친구의 집에 가면 마치 우리 집같이 편했고 특히 친구 어머니가 내어 주시던 따뜻한 밥과 된장찌개는 지금 생각해도 침이 고인다. 또 한 친구는 몇 번을 자기 집에 가자고 하기에 간 것인데 엄청 많은 책이 있어 읽을 욕심에 친하게 되었다. 그 친구의 집에 들어서면 응접실의 전면을 꽉 채운 고급 유리책장 속에 내가 보고 싶었던 50권짜리 브리태니커사전을 비롯, 국내외 현대문학과 고전문학, 셰익스피어, 그리스신화, 태평양전쟁, 일본 대하소설 등의 전집류가 금박을 번쩍거리며 양주병들과 함께 빽빽이 들어차 있었고 친구의 방에도 괴도 루팡, 셜록홈즈, 김찬삼의 세계여행, 시이튼 동물기, 역사 및 과학사전 시리즈 등의 전집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친구 어머니께서 나 때문에 아들이 책을 본다며 사골국물에 맛있는 반찬을 잔뜩 차려주셨다. 늘 먹어서 질려 버린 아들이 잘 먹는 내게 자극을 받아 다시 먹을 것이라는 기대였는데 점점 나만 먹어대자 점점 먹을 것도 줄이시고 쌀쌀맞아지셨다. 나도 슬슬 눈치가 보였지만 부지런히 전집들을 읽어나갔다. 읽는 책마다 내가 첫 손님이어서 더 신이 났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그랬듯이 책을 읽으러 갔는데 친구 어머니께서 이제 오지마! 내 자식은 안 읽고 너만 읽는 꼴을 더 이상 보다가는 울화병이 도지겠다. 그래서 중지되었지만 그 때의 독서량이 지금도 나를 버티어 주고 있다. 그 때 내가 너무도 눈치가 없었구나 싶어 미안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하지만 내게 그 집은 책과 사골국 이외에는 기억이 없다. 그 집은 모든 것이 풍족했고 여기저기 비싸고 번쩍이는 것들이 가득했지만 부럽기보다는 산만하고 값싸 보였던 이미지만 남아 있다. 한편 앞의 친구를 생각하면 늘 깔끔하던 방안의 내음과 벽에 걸린 하얀 옷덮개들, 장농에 개어 있던 정갈한 이불과 베개들,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던 손때 묻은 책들, 그리고 기어서 올랐던 우리의 아지트인 다락방과 앉은뱅이책상들이 새록새록 내 마음을 따스하게 한다. 이 두 느낌의 차이는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을 더듬어보니 집에 들어설 때 눈에 띈 디테일의 차이였다! 작고 낡았어도 정성이 담긴 가지런함과 정갈함의 조화, 그리고 맑은 진정성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반면에, 각각은 고급스럽고 우아한 것들인데 과시를 위한 전시품으로써 있어야 할 곳이 아닌 여기저기서 그저 비싸다는 것과 번쩍이는 금테만 보여주니 빗물에 분장이 번져도 웃어야만 하는 거리의 피에로를 볼 때처럼 졸부의 천박한 사치에 질렸던 것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보면 시조 온조왕께서 궁궐을 지으며 하명을 하신다.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도록 하라. 이 말씀은 백제 예술의 근간이 되었다. 오늘의 예술인들도 명심해야 할 귀한 말씀이다. 가난한 친구네는 검이불루를 이루었고 부자인 친구네는 화이불치에 실패한 것이다. 아~ 온조왕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 정말 보고 싶다! /서현석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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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논의를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