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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슬픔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동네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식당을 찾아 갔는데, 임대가 붙어 있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꽤 손님이 있던 곳이었고, 2년도 안 된 것 같은데 코로나에 자영업자들이 쓰러져가는 모습을 보니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건너편에는 새로운 베이커리 카페가 문을 열었고 어떻게 알았는지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요즘 신상 카페들의 흔한 모습처럼 심플한 인테리어에 통창이 있는 공간으로, 포토존이 될 만한 곳도 따로 마련하여 셀카를 찍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인테리어 공사비로 많은 돈을 쓰며 고심 끝에 오픈했을 카페들이 지속적으로 운영되기를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1년 후에 가보면 새로 개업한 카페에 밀려 있는 모습도 가끔 만나게 된다. 자본이 만든 거대한 대형 카페들도 요즘 꽤 많이 들어섰다. 동네에서 오랜 시간 커피 맛과 손님과의 신뢰에 공들이며 카페를 꾸려온 사장님들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유독 카페들의 세상은 총성 없는 전쟁터 같다. 내가 운영하는 서점 양옆으로도 작은 카페가 나란히 있고, 바로 건너편에도 프랜차이즈 카페가 나란히 세 개나 서 있다. 책방 뒷골목은 카페 골목이라고 말해도 될 만큼 개성있는 카페들이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 결국 넓고 쾌적한 공간과 신선한 원두로 맛을 책임지는 카페들은 살아남았지만, 그렇지 않은 공간은 뜸해진 발길에 살아남지 못했다. 이런 현실에서 카페들의 존폐 여부를 두고 사장들의 운영 능력 때문이라고 절대 말하지 못하겠다. 모든 자영업자들이 살고자 시작한 사업도 자본의 논리에 속수무책일 때도 있거니와 자본을 이기려면 24시간이 모자라게 일하거나 뛰어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미친 듯 노력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고고한 인테리어를 뽐내며 서 있는 카페들을 보고 있노라면 애초에 출발선이 다른 시작에서 어떤 공정을 바랄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자본주의에선 돈이 돈을 번다고 말하며 푸념하는 수밖에. 최근에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에서 지금 서 있는 그 자리, 정말 당신의 능력 때문인가?라며 능력주의에 질문을 던졌다. 능력이 있어도 자본이 없으면 설 자리가 없는 것이 여전한 우리의 현실이고 능력이 없어도 자본이 있다면 만들어진 기회의 땅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기도 한다. 문제는 그 성공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는 일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고 좋은 직업을 갖고 사는 일이 온전히 본인의 실력과 재능 때문이라는 믿음이 과연 맞는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사교육시장의 어마어마한 편차만 보더라도 기회의 불균형이 만들어낸 결과를 체감할 것이다. 사회적으로 낙오자라 낙인찍히는 사람들이 과연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사는 것인지 아니면 이 사회의 공정하지 못한 시스템이 누군가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우리는 눈여겨 봐야한다는 이야기다. 보통 성공을 하게 되면 스스로의 노력 때문이라는 착각에 도취되어 다른 이들이 걷는 길을 보지 않으려 한다. 성공에도 윤리가 있다면 문을 닫은 가게들을 보며 살아남지 못한 이유를 무능력으로 치부하지 말자. 그들에게는 더 적은 기회와 더 적은 자본이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때로 알아줘야 한다. 무한 경쟁 속에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살아남은 자들이 살아남지 못한 자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지 않을까?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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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15 16:50

도시의 상상력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전업 작가로 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택한 곳이 전주였다. 전에 살던 곳의 인구가 145만 정도였고, 전주는 65만 정도이니 절반이 채 안 되는 공간으로의 이주였다. 모든 것이 전보다 부족하리라는 예측이 가능했지만, 오히려 작은 도시가 갖고 있을 문화에 마음이 끌렸다. 전주로 온 후에 일상의 파도는 잔잔해졌고, 복잡했던 공간을 헤집던 발길은 한적한 곳을 딛고 다닌다. 누군가는 그 한적함을 결여(缺如)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비어 있는 공간이란 판단은 오해다. 그곳에는 분명 무언가 자리하고 있지만, 그 존재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뿐이다. 공간을 인공적인 것들로 채워야만 문화가 되는 건 아니다. 누군가 결여로 보는 것을 누군가는 여백으로 읽는다. 서울에 있는 것이 전주에 없다는 사실을 결여로 볼 것이 아니라, 문화적 형상이 다른 것으로 읽으면 된다. 한 공간에 사는 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위해 인공적 구성요소들을 선택하는데, 인구 수, 면적, 강과 산, 언덕의 높낮이 등에 맞게 선택한다. 그러고도 비어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상상력이 숨 쉬는 여백이 된다. 공간은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으로 확장해서 해석해야 한다. 물리적 공간이 문화적 장소가 되려면 사람과 시간이 어우러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우러진 시간이 쌓이면 공간은 지리적 개념을 넘어서서, 정신적 개념이 짙게 밴 장소가 된다. 이―푸 투안이 『공간과 장소』에서 장소는 정감어린 기록의 저장고이며 현재에 영감을 주는 찬란한 업적이라고 말한 것을 떠올려봄직 하다. 옛 법조지구를 두고 전주시와 개발 기업 사이에 견해가 갈린 모양이다. 발전이라는 개념을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개발이다. 개발도 문화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다른 문화다. 빅토르 위고는 『레 미제라블』의 원고 대부분을 망명지인 영국 남단의 건지 섬에서 썼다. 1870년 위고가 프랑스로 돌아왔을 때는 나폴레옹 3세가 주도한 파리 개조사업을 지휘한 오스만 남작에 의해 소설 속 공간이 사라지고 난 뒤였다. 위고는 소설의 배경이었던 곳에 자리한 낯선 건물들과 거리를 보고 어떤 심정이었을까. 새로운 파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했을까? 위고가 아름답다고 느꼈다면, 기억의 미학을 배제한 건축적 아름다움에 대한 것에 그쳤을 것이다. 도시는 상상력과 꿈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자신만의, 자신에게 어울리는 상상력과 꿈이어야 한다. 한국의 도시들은 서울을 닮으려고 한다. 장 보드리야르는 『아메리카』에서 뉴욕에 대해 도시의 회전이 그토록 강하고 원심력이 너무나 커서 둘이서 살아간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 누군가와 삶을 공유하는 것은 초인적인 일이다. 오직 부족들, 갱들, 마피아들, 비밀결사집단들 혹은 도착적인 집단들, 확실한 공모 집단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으며, () 이것은 반(反)노아의 방주다라고 말했다. 서울이 그런 뉴욕을 닮아가고 있으므로 서울은 닮을 이유가 없는 도시다. 전주는 어느 도시도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장소도 다른 도시들과 닮지 않은 때문에, 상상력이 남다른 도시라고 불렸으면 좋겠다. 장소가 갖고 있는 기억을 지키는 것도 상상력이 된다. 새로 만들어진 장소가 푸른 이끼 같은 기억을 덮고 문화적 장소가 되려면 시간이 다시 오래 흘러야 한다.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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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08 16:39

포스트 코로나19 예술 재앙을 넘어서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문화정책은 국민의 삶의 질과 행복을 좌우한다. 1960년 프랑스 문화부장관 앙드레 말로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적 향유를 부르짖었다. 문화를 통해 사회적 갈등과 괴리를 치유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였던 것이다. 생업에 몰두해 있는 국민에게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문화정책을 펼쳐나가야 하고 경제적으로는 윤택하나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문화예술스포츠 등으로 행복의 최소한의 기준을 설정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정책을 펼쳐나갔던 것이다.문화예술은 어떤 위기의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고 쉼 없이 그 심장은 뛰고 있다.위기의 시대에 사회불안과 우울증 문제,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감, 사회통합 문제 등의 해결사 노릇을 하는 것은 문화예술일 것이다. "전례없는 변화와 불확실성 시대에도 예술에 대한 지원은 변함이 없다. 500만의 예술과 문화종사자들은 잠재적으로 위험 상황에 있다. 이러한 도전의 시기에도 우리는안다. 예술은 위안, 회복, 지혜, 자기 표현 수단, 연결의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을 -미국국립예술기금(NEA) 이처럼 미국의 NEA를 비롯한 각 나라의 예술을 지원하는 단체에서는 위기상황에서도 문화예술분야의 사람과 조직을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문화예술정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생태계의 발전이 지속되도록 일시적 행정이 아닌 총체적인 접근방식의 연구가 필요하고 나눠주기형태의 관행에서 벗어난 장기적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프로그램의 공모지원 사업이 되어야 한다. 또한 피해부분에 있어서는 문화예술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적극적인 분석을 토대로 접근되어야 한다. C-19가 금년에도 종식되지 않는다는 상황을 전재로 본다면 현재 실행되고 있는 온라인서비스를 통한 문화예술 활동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적극 추진해 나가야 한다. 즉 가상공간에 기반 한 문화예술 활동이다. 문화뉴딜로 극복하는 새로운 문화예술 활동 문화예술은 불황이 닥치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고 ,가장 늦게 회복이 되는 분야이다. 그동안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마다 겪게 되는 시련이지만 이번 C-19 만큼은 체감정도가 너무 다르다. 팬더믹 사태와 함께 다가올 온라인 디지털 문화들이 예상된 시간보다 빨리 왔다! 완전하게 되돌아갈 수 없는 우리의 지난 시간보다 지속가능한 미래사회를 설계하며 대비해야한다. 우리는 위기 때마다 사회의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약자들과 공동체는 더욱 가혹한 직격탄을 맞았다. 하지만 예술가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문화예술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선구자적 문화리더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온라인 문화에 어려움을 느끼는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으로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개인의 이야기와 추억이 담긴 자서전적 영상을 제작해 보거나, 지역의 유명문화를 직접 소개하고 해설사 역할을 영상으로 제작하여 유튜브등SNS를 통해 송출하는 체험을 해보는 일은 일상적 고립감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또한 평소 문화공연을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저소득층 청소년들의 문화체험 기회확대와 문화감수성 향상을 위한 문화 활동 동아리를 활성화하고 지역사회의 긴밀한 네트워크 협력으로 서로 간에 화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문화예술을 향유하며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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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01 16:57

눈부신 아침이 그립다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한 편의 시에 전율과 감동이 한꺼번에 올 수 있을까. 사실과 행위의 인간적 형상화를 토대로 시는 삶의 진정성을 획득함과 동시에 역사처럼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는 시가 정양 선생의 시편들이다. 그의 시편들 중 「내 살던 뒤안에」는 수준 높은 언어감각이 역사에 대한 통찰력으로 확산되면서 비상한 시의 울림을 얻는다. 그는 일상에서 자상한 분이었지만 시대의 질곡에 대해서는 냉철했다. 삶에 얽힌 우여곡절의 원인은 역사의 왜곡에 있다는 점을 꿰뚫어 봤고 이 모순을 시로 형상화했다. 그는 시에 칼끝 같은 면을 가졌다. 시집 『철들 무렵』(2009. 문학동네)이 출간되었을 때 나는 보았다. 출판사가 운영하는 문학카페에 새 시집을 소개하겠다는 연락이 왔던 것인데 당신은 거기에 올릴 시들을 고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선생님, 시집에 수록된 작품을 또 손보시면 어떡해요? 여쭈었더니 시집에 수록되었어도 고칠 데가 있으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 눈 감기 전까지는 자기가 쓴 시를 고치는 게 시인의 의무이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정양 선생의 시(詩)가 한국시의 정점이라는 데에 이견은 없다. 일상의 구체적인 정황에서 촉발된 시는 동시대 삶의 통점에 집중되면서 4?16참살과 촛불집회에까지 이르는 게 예사다. 그의 시는 광복 후 75년이 넘도록 독립기념일이 없는 참담한 역사, 여기에 함몰된 이 땅의 가난과 무덤조차 없이 떠도는 혼백들에 무례하지 않다. 불평등한 시대의 한복판에 그의 시정신이 빛났던 것이다. 당신은 「나의 삶 나의 문학」(『유심』, 2015, 3.)에서 모두의 심금을 울리는 고백을 했다. 정년퇴임식 내내 지난 일들이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스쳤다. 직장에서 쫓겨나고 수배되고 투옥당하면서 끝끝내 역사의 흐름을 되찾으려던 이들의 고통스럽던 삶을 상기하면서, 그리고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40년 넘게 변함없이 교직에 몸담고 살아온 나를 돌이켜보면서 나는 자괴감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5?16쿠데타 이후 장기간의 군부독재와 광주항쟁 그리고 6월항쟁 등을 겪으면서도 한 달도 거르지 않고 40년 넘도록 꼬박꼬박 봉급을 챙겨온 나의 정년퇴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무슨 훈장인가를 받으면서 나는 도둑질이라도 하다가 들킨 것만 같아서 참담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그 엄혹한 세월에 한 달도 안 거르고 또박또박 봉급을 챙겨먹은 내 처지가 너무 부끄러웠다. 요 근래에 이처럼 뜨거운 고백을 읽어본 적이 없다. 자본증식이라는 소비자본주의의 속도에 말린 시절에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참회록처럼 써내려간 글줄은 백설처럼 순결하다. 삶과 역사에 대한 치열성과 순정을 생경한 언어기호에 가두지 않고 입말의 생동감으로 시에 표면화한 것처럼, 자신의 삶도 이 지점에서 활활 타올랐던 것이다. 이 고백은 문명과 자본의 지배논리에 갇혀 살지 않으려면 속된 것을 일절 끊어버리는 삶의 태도 또한 부조리한 현실을 견디는 뒷심 못지않게 단단해야 함을 나타낸다. 사실과 행위의 인간적 형상화를 토대로 생명력 넘치는 시편을 발표한 현역 시인 정양. 그의 절창 「내 살던 뒤안」에를 다시 읽는다. 시는 진술이 아니라 시어 개개의 인상과 소리맵시가 어울려 새로운 형상을 얻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나는 새삼 깨친다. 당신이 그리워하는 세상, 산도 들판도 골목도 지붕도 평등하게 눈에 덮인- 눈부신 아침이 그립다.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이병초 회장은 시인으로, 웅지세무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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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25 16:48

지역을 벗어나지 않고 지역을 넘어서라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몇 년 전부터 로컬브랜드를 양성하기 위한 지역의 노력들이 눈에 띈다. 자신이 가진 전문성을 기반으로 지역의 문제를 찾고 해결해 지역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을 로컬 디자이너라고 정의내리기도 한다. 그나마 로컬리즘에 희망을 거는 이유는 지역의 인재들이 타지에 정착하기란 물리적,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뿐더러 지역에서는 도전해볼 수 있는 공간이나 기회가 그나마 다양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어느덧 5년차 책방을 운영하다보니 전주 동네책방들의 연합이 로컬브랜드가 될 수 있지 않을까를 고민한다. 책의 도시를 표방하는 전주시의 다양한 도서관 정책과 어울려 동네마다 자리한 개성 있는 책방들이 관광객이나 시민들에게 색다른 문화공간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지역 안에서 우리가 외친다고 로컬브랜드의 자리가 거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는 지난해 5월, 10곳의 전주책방들이 연대하여 만들어진 단체다. 그러나 작년은 하필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를 겪으며 책방들은 보릿고개를 만나야했다. 그럼에도 책방들은 전주동네책방문학상을 기획하며 움츠러든 마음을 함께 다독였다. 또한 문학상의 응모대상을 전주시민으로 한정하기보다 전국으로 넓혔다. 비록 대형 언론사나 출판사가 운영하는 문학상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지역의 동네책방이 주최하는 문학상을 통해 지역의 책방과 전국의 독자가 새롭게 관계를 맺는 방식을 시도해보고 싶었던 뜻도 컸다. 예상외로 문학상에는 40여 일 동안 무려 375편이라는 많은 작품이 도착했다. 여러 차례 심사를 통해 대상과 각 책방상을 선정했고, 다양한 매체에 소식이 당도했다. 책방들은 이 문학상에 더욱 책임감을 갖고 매해 진행할 예정이며 당선작들은 따로 모아 책으로 출간할 계획도 갖고 있다. 상금도, 상품도 비록 소박하지만 책방지기들이 독자적으로 기획한 문학상이기에 갖는 의미가 더 특별하다. 욕심을 부리자면 이 문학상이 전주의 책방들을 전국에 알린 계기가 되고, 전주를 책으로 기억하게 돕는 하나의 문화 키워드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지금 책 한 권도 새벽배송이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아날로그 감성과 경험을 중시하는 시대의 또 다른 트렌드를 살필 때 책방은 단순히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님을 주목해야 한다. 동네 안에서 동네사람들과 협업하여 서가를 꾸미고 동네의 작가를 발굴하고 지역의 역사를 알리는 작지만 큰 공간이 바로 책방인 것이다. 지역의 콘텐츠는 비로소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이 기획자가 되어 그 공간을 비교불가한 콘텐츠로 만들 때 지속가능한 힘을 갖게 된다. 책이 들어선 화려한 공간들 때문에 책의 도시가 되는 것이 아니며 이용하는 독자와 책의 유통이 활발하고 작가 및 출판사 등이 다채롭게 일할 수 있는 도시여야 진짜 책의 도시다. 전주는 지금 그걸 준비하는 중이다. 이제는 맛의 고장과 한옥마을을 넘어 진정한 문화와 예술이 숨 쉬는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 지역에 있는 인재들을 통해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전주를 벗어나지 않고도 전주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진정한 로컬의 힘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지선 전주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이지선 회장은 광고대행사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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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18 16:31

시대의 분기점에서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전 시대에 없었던 특이한 사건은 시대적 분기점이 된다. 스페인 독감이 있었지만 1세기만의 일이니, 코로나 19도 역사의 장에 분기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어떻게 기록될지는 모르지만 1세기 전의 사건과 같은 색조로 기록되지 않을 것만은 확실하다. 한 시대의 탄생은 꽤 복잡한 구성요소들이 녹아든 용광로에서 흘러나온 철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라는 위기의 형태에만 주목하면 안 된다. 주형틀이 아무리 달라도 위기라는 광석의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찰스 디킨스는 『두 도시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한다. 최고의 세월이요, 또한 최악의 세월이었다. 지혜와 우둔의 시대요, 광명과 암흑의 계절이요, 신앙과 불신앙의 기간이요, 희망의 봄이요, 절망의 겨울이기도 했다. 우리들 앞에는 온갖 것들이 갖추어져 있었고, 또한 아무것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모두가 다 천국으로 곧장 연결될 것들이었으며, 지옥으로 곧장 떨어질 것들이었다. 디킨스는 최고가 되거나 최악이 될 형질이 한 시대 안에 공존한다고 보았다. 어쩌면 같은 형질의 다른 발현일지도 모른다. 디킨스가 말한 두 도시, 런던과 파리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 파리는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을 기점으로 런던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고, 그 시간적 결과를 벨 에포크라고 불렀다. 1940년 11월 앙드레 알레오가 <라디오 파리>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인 벨 에포크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파리의 시간을 아름답고, 좋은 시대로 만들었지만, 그 후에 어떤 시대가 이어졌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벨 에포크는 20세기 최악의 비극인 제1차,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고, 유럽문학의 주류 목소리는 오랫동안 1, 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다루는데 바쳐졌다. 르네상스라는 위대한 인문주의를 탄생시켰다고 그토록 자부했던 유럽문화가 홀로코스트를 위시한 무차별적 살육의 역사를 낳은 것에 대해 유럽의 지성들과 작가들이 받은 충격의 여진이 매우 길었던 때문이다. 위기는 사회구성원에게 여지가 많지 않은 선택을 강요한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가장 좋은 것에서부터 가장 나쁜 것까지 탄생한다. 지금이 그런 국면이다. 문제는 위기가 아니라 위기를 대하는 태도에 있다. 위기는 필연적으로 변화를 가져오는데, 그 변화는 사회구성원들을 승자와 패자로, 적응한 이들과 적응하지 못한 이들로 나눈다. 패자 혹은 적응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변화가 곧 재난이다.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때 주목할 것은, 변화가 반드시 선은 아니며 변화에 따르지 못한 것이 악은 아니라는 것이다. 삶은 다양해야 하고, 그 다양성은 변화가 찾아왔을 때 함께 변화하지 않겠다는 것들까지를 존중하고 포함해야 한다. 역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18181897)의 말을 깊이 새겨야 한다. 중요한 것은 역사를 통해 이후에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지혜를 얻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 이번 위기를 통해 지식을 축적하고 전보다 똑똑해지겠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지식의 축적이 모든 구성원의 삶이 더 나아지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만 지혜가 될 수 있다. 같은 위기 속에 있지만, 나라마다 다른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 사회의 선택과 대응이 새로운 시대를 연 지혜로 기록되고, 모두가 따르는 답이 되기를 바란다.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천세진 작가는 시집 『순간의 젤리』(천년의시작, 2016)와 『풍경도둑』(모악, 2020), 문화비평서 『어제를 표절했다』(피서산장, 2019)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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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11 16:38

예술인을 위한 권리장전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오래 전 필자가 관장으로 재직하던 미술관 기획전을 준비할 때의 일이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후배 작가 한 명이 찾아와 기획전에 대한 계약서를 내밀어 순간 당황한 적이 있다. 그동안은 전시회에 대한 작품 출품을 부탁하면 구두로 승낙을 받는 일이 당연시 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후배 작가는 기본 계약 외에도 전시기간 동안 작품에 대한 안전과 책임, 책임성 상해보험 가입 여부, 대외적으로 홍보 시 사전 동의를 구할 것 등을 명시한 구체적인 서류 몇 개를 더 내밀었다. 여러 장의 서류에 사인을 하고 나서야 겨우 후배의 작품을 반입할 수가 있었던 기억은 필자에게 당황스러웠던 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예술인의 서면계약 체결(표준계약서)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행위다. 정부는 지난해 6월부터 서면계약 체결을 의무화하고 예술 활동 분쟁 시 법적판단의 근거, 공정한 계약문화 정립, 불공정 행위 예방, 예술인의 직업적 권익보호, 예술인의 저작권보호 의식강화 등 예술인의 권리 보장 및 보호에 대해 사회적인 환경을 준비하는 데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술인의 권리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사회로 성숙하는 것이다. 여기서 불공정행위에 대한 예를 몇 가지 들어 보자. 한 작가가 프로젝트 운영자로부터 작가의 의도와 무관한 내용을 추가하라는 일방적인 지시를 받거나, 공연 기획자로부터 보수의 일부분을 공연티켓으로 지급받았다면 이는 불공정행위에 해당한다. 또한 공연기획 전문회사에서 행사에 참여해주는 조건으로 작품의 사례비 인하를 강요했다거나, 다른 경쟁업체와 계약하지 말 것을 예술인에게 강요하는 등의 경우, 예술인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강요한 불공정행위에 해당한다. 예술인들도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예술환경의 변화와 법, 제도 등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가 필요하다. 필자는 크게 세 가지를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예술인 신문고 제도에 신고를 하여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 시정명령 미이행 시에는 1차 300만원에서 2차 400만원, 3차 500만원 까지의 과태료가 부과되며 서면계약 위반의 경우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문화예술기획업자에게는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둘째, 산재보험이다. 지난 2012년 11월 예술인복지법 시행 및 산재보상보험법 개정으로 인해 이제 프리랜서 예술인도 산재보험 가입이 가능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예술인 고용보험제도다. 지난해 12월 10일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잦은 실업과 고용불안정으로 지속적 창작활동이 어려웠던 직업예술인에게 휴직, 실업 상태에서의 구직활동 기간 동안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제도다. 프리랜서 예술인 중 문화예술용역 계약을 체결한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제도로 1개월 미만의 단기 계약 예술인도 가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근로자인 예술인, 65세 이후 용역 체결 예술인, 계약 건별 50만 원 미만인 예술인은 제외된다. 더욱 자세한 사항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또는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이 운영하는 전북예술인복지증진센터에서 온오프라인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예술인들도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예술환경의 변화와 법,제도 등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가 필요하다. /이기전 전북문화관광재단 대표 △이기전 대표는 서양화가로 사단법인 목우회 이사장, 전주현대미술관관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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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04 17:40

온고지신의 산실, 한국전통문화전당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전통이란 모름지기 온고지신 정신으로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하여 새것을 찾는다는 의미로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한국전통문화전당은 시대와 사람, 지역에 머무르는 전통문화가 아니라 역동적으로 변모하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현대와 다음세대에 이어질 수 있도록 발신자 역할에 충실한 전주시출연기관이다. 올 한해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발굴한 국가공모 사업은 대략 60억 원에 달하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첫째, 시민과 함께하는 전통문화 활성화인 방문객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식, 한지, 공예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매우 큰 만족도를 주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다중이용시설 방문이 어려운 전라북도 내 학교 및 단체를 대상으로 찾아가는 서비스와 가정에서도 할 수 있는 집콕키트를 제작 배포하여 비대면 체험을 동시에 실시하였으며, 시민과 함께하는 메이커스페이스는 전국 164개 운영기관 중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둘째, 전통문화 R&D사업으로는 공예용 천연 접착제 평가기준 개발, 전통 직조 기반의 수직기 시뮬레이션 및 개량기술 개발, 한지 건축 및 인테리어 산업 육성, 소기업 혁신역량강화사업, KOLAS(전국유일의 지류분야 국제공인시험기관)인증 등 전당만이 할 수 있는 연구실적을 달성했다. 특히 한지보급화로 전주한지 초등학교 교과서 제작 지원사업은 한지지도, 편지지, 색지를 교과서에 삽입하고 배포하여 좋은 반응을 얻어 전국으로 확대해나가는 중이다. 이번 시예결산특위에서 모의원이 독려했던 전주한지 제조 닥나무 수매사업은 전주시 근교에 닥나무를 계약 재배하여 수입산 닥펄프 대신 안정적인 공급과 생산농가의 소득보장을 위한 일거양득과 동시에 내년 초에 전주한지 메카였던 흑석골에 전주한지전통제조시설이 개관하면 전주한지의 원형 복원과 세계 문화유산 유네스코 등재에 한걸음 다가갈 것이다. 여기에 한지 세계화로 재외공간 한스타일 공간연출사업은 외교부에서 대상 국가의 순번을 조정해 줄 만큼 인기가 많다. 또한 맛의 고장 전주에 걸맞은 전주 음식 아카이브 구축사업은 전주음식 명인에 대한 자료를 보존하고 보급하여 세계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 위상을 드높이는 사업이다. 셋째, 전통문화를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한 전통놀이 실태조사와 전통놀이 공간조성사업은 국내 석학을 중심으로 국제 심포지엄을 열었고, 전주한옥마을에 개관한 전통놀이 체험관인 마루달은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연일 예약이 폭주하여 전주한옥마을의 중요 콘텐츠로 가능성을 보았다. 넷째, 전주공예품전시관은 코로나로 문 닫는 날이 많았는데도 온라인과 찾아가는 마케팅으로 작년 매출에 준한 성과를 올렸고, 전국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현대 공예품 경매 옥션은 전품목이 완판 되어 그 가능성을 보았다. 이 외에도 한국공예장인학교, 동네 손 상회, 수공예작가 현황조사 등 대한민국에서 유일무이하게 한국전통문화전당 만이 할 수 있는 사업들이다. 올해 출연기관 외부평가에서 수많은 국책사업을 성실히 수행한 점을 인정받아 A등급을 받았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내년에도 한국전통문화전당은 대중과 향유하는 전통문화의 미래가치를 재창조하는 기관으로 거듭 나기위해 연구 콘텐츠 개발과 전통문화 발굴 육성을 통해 황소걸음처럼 시나브로 온고지신의 산실로서 그 역할을 다 할 것이다.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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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28 17:54

세계 유일의 ‘천국’을 새만금에 건설하자

소재호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유토피아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토마스 모어가 일컬었던 말이다. 이상향 또는 이상국은 플라톤의 <국가>에서부터 유래된다. 뒤에는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 베이컨의 뉴아틀란티스 등으로 이어진다. 동양에서는 도원경이라 했고 불계에서는 극락이라는 말이 이미 등장해 있었다. 또한 이백의 시구에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란 어구가 이상향이란 뜻으로 회자되었다. 파라다이스 낙원 등도 그 의미의 특색은 조금씩 다르겠으나, 묶어서 보면, 근심 걱정 없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 도덕적 율법이 완전히 구현된 곳, 사악함이 없고 진.선.미의 세계로만 조성된 곳 등등으로 필요 충분 조건을 갖춘다. 그래서 인간계의 최선이며 자연계의 최상인 세상이므로 인류가 오랫동안 꿈꾸워 온 세계이나 결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경지의 땅이다. 자연 환경의 최상은 기화요초(琪花瑤草) 만발한 배경이 가장 먼저 선행 요건이다. 신선이나 선녀가 사는 세상, 천사가 거처하는 세상은 벌써 온 천지가 꽃밭인 것이다. 인간의 미적 감지 능력은 꽃을 보면서 배양되었다는 설이 있다. 꽃에게서 인간의 아름다움은 전이되는 것이다. 필자가 언감생심 인간들의 도덕 국가, 천년지복설(千年至福說)을 논할 엄두도 못내나, 다만 꽃의 천국을 건설하면 곧 이게 지상의 천국일 것이란 주장을 펴고 싶은 것이다. 네덜란드가 꽃의 나라를 조성하여 외화 벌이도 하고 청정 환경 국가도 이루고 나아가 국격이 최상에 이르는 문화 문명이 최고인 나라가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만약에 새만금을 꽃의 천국 그러니까 꽃의 낙원을 만든다면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 이상향인 유토피아를 건설하게 되는 것에 다름 아니리라. 무슨 무슨 공장을 세워 굴뚝으로 공기 오염의 연기만 뿜어낼 궁리를 서둘 일이 아니고, 산업체 무엇 무엇을 유치해 그들이 누리는 영리로 인해 지역 경제가 마비될 일을 궁구할 일도 아니며, 오히려 천년 낙원, 천년 복지의 별천지를 구상한다면 한반도의 영화가 여기서 비롯 몇 백년을 영속할 터이다. 꽃밭이 늘어난 만큼 반비례로 감옥이 줄어든다는 말도 있다. 인간의 숭고한 정신이 고차원 정서 함양에서 비롯됨을 우리는 알아차려야 할 것이다. 천국의 청사진은 빌딩 하나 건설하는 데에 소용되는 기획력의 천분지 일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자연이 심볼이기 떄문이다. 그러니까 진경산수(眞景山水) 이모저모를 모사하면 될 터이다. 무한대의 노동력이 필요하여 일자리도 무한 창출되리라. 뭍과 물이 서로 맞물려 있고, 사방으로 뻗은 육교가 있고, 이미 광활한 빈 터가 마련되어 있다. 작은 폭포 수백개 세우고, 요리조리 오솔길도 만들고, 한 2박3일 주유하다 아름다운 인간성 형성 후에 그들의 일상으로 되돌아 가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숙박시설도 정교한 코테이너 박스를 수천개 꽃 무늬로 배열하고, 음식점도 요지가지로 수백개 도열시키며, 해돋이, 해넘이 관망대도 솟구쳐 놓고, 드라이브 코스도 만들고, 승용차 관람 꽃받 야외 영화관도 만들고, 약간의 위락 시설도 확보 하며 그야말로 힐링의 낙원을 준비해 두는 것이다. 제4의 국격 높이는 사업으로 종합예술 창도는 물론 대규모 화훼 산업도 일으키고, 식물원, 수석원 , 분재원도 구비하며 미술관,도자기 공예품 전시관도 마련하여,손이 손을 부르게 하는 연쇄성 천국 건설을 시도해 볼 만하지 않는가. 예쁜 의상의 고객이 무시로 출현하여 인화(人花) 까지 만발케 한다면 사람의 동네가 바로 천국이러니. 공감 정서에서 곰감 문명으로 다시 공감 문화로 진화 한다면 한국의 국격은 최상이 되리라. 천국,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지상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소재호(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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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21 17:44

2020 전북 국악계를 돌아보다

김문성 국악평론가 2020년 경자년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코로나19의 급습으로 도내 문화예술계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3차 유행 이전까지는 타시도에 비해 피해가 비교적 적어 각종 사업이 순연되는 가운데 진행되었으나, 3차 유행이 본격화하면서 사실상 올스톱되었다. 그럼에도 2020년, 도내 문화예술계는 비교적 선방한 것으로 평가된다. 눈에 띄는 점은 전북문화관광재단과 전북도의 선제적이고 신속한 피해구제 노력과 위기관리 능력이다. 코로나19 초기 도내 예술인과 단체를 위해 4억 여원의 예산을 긴급 투입해 재난 극복 지원 사업을 실시했다. 공모 대신 지역 문화 예술 육성 지원사업에서 탈락한 190여 예술인과 단체를 대상으로 차순위 선정자로 추가해 지원함으로서, 행정낭비와 시간 지연의 한계를 극복했다. 3억을 투입해 공연예술 창작활성화 지원사업 이름으로 30개 단체를 지원한 것도 시의적절했다. 타시도와 달리 예술인 생계를 위한 재난지원금 사업을 선제적으로 도입한 것도 눈에 띈다. 예술활동 증명을 마친 예술인을 상대로 도가 직접 30만원을 지급해 예술인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이러한 노력에 호응하듯 국악계는 비록 공연부문은 타격이 있었으나, 경연대회, 연구, 콘텐츠 등 사업부문은 어느 정도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경향각지에서 활동하는 전북 출신 국악인들의 낭보가 이어졌다. 도내에서 터를 잡고 활동하는 이난초, 김영자, 김일구 명창이 차례로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 심청가, 적벽가 예능 보유자로, 군산 출신 김수연 명창이 수궁가 예능 보유자로 인정되는 개가를 올렸다. 전주 출신 황인유씨가 경주신라문화제 대통령상을, 도립국악원 심미숙씨가 상주전국민요경창대회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고창 출신 유희경씨가 대구국악제 대통령상을 수상해 전북예술의 우수성을 알렸다. 우려스러운 일도 있었다. 국악과와 음악과를 통합해 음악과로 운영하던 원광대가 폐과를 결정했다. 음악과 폐지 대안으로 실용음악과 설치 가능성의 여운을 남기기는 했으나 우석대에 이어 원광대 국악과 폐지로 도내 우수한 국악 인재 양성에 빨간 불이 켜졌다. 도내 국악계 최대 현안인 통합무형문화재 전수관 설립 여론이 잠잠해진 것도 다소 우려스럽다. 사업비와 부지 문제 등으로 표류하다가 신축이 확정된 도립국악원은 내년에 착공해 2022년 12월 준공할 예정이나, 코로나19로 영향을 받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주세계 소리축제도 커다란 도전을 맞았다. 전세계 유수 뮤지션의 참여를 통해 규모를 확장하던 축제가 코로나19로 해외 연주자 참여가 불가능해졌고, 미디어를 활용한 실험적인 온라인 콜라보 공연으로 진행했으나, 일정 부분 한계를 노출하기도 했다. 축제 종료 후 전주역 광장에서 19일간 진행된 1919챌린지 릴레이 버스킹 공연은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도내 국악인들에게 훌륭한 무대로 역할해 지역 예술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다만 코로나19가 내년에도 지속될 경우 월드뮤직, 퓨전, 청년화를 키워드로 확장하는 소리축제의 정체성과 콘텐츠 구성에 대한 고민이 과제로 남는다. 2020년 코로나19로 도내 국악계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국악에 대한 도민의 관심과 예술인들의 열정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 있다. 2021년 신축년에는 전북이 K-소리 본향으로서 면모를 일신하며 한단계 더욱 성장하고 도약하기를 기대해본다. /김문성 국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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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14 17:48

눈빛만으로, 송년이라니

곽병창 우석대 교수 마스크를 쓰고 모자에 목도리를 단단히 여민 학생들이 캠퍼스를 오고간다. 대면수업을 시작한 뒤 한 달여가 지났지만 20학번의 얼굴은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이제는 마스크 쓴 모습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오죽하면 마스크를 벗고 나면 더 못 알아볼 거라는 씁쓸한 농담도 건넨다. 상담을 하러 찾아온 학생도 먼 거리에 앉게 하고 창문, 출입문을 다 열어 둔 채 이야기를 나눈다. 날씨가 추워져 롱 패딩까지 갖춰 입고 나니 이제 캠퍼스는 흡사 외계인들의 나라처럼 낯설다. 실시간 화상 강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인터넷 서비스는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작은 화면 안에서 조그마한 방을 나누어 가진 학생들이 제각기 편안한 차림으로 모니터에 들고나는 게 오래된 일상이었던 것 같다. 실시간으로 채팅창을 통해 질문을 하고 창작실기와 토론을 진행하니 더 자연스럽고 편안하다는 의견들도 제법 많다. 만약, 아주 장기적으로 이게 더 편안해지면, 이 방식이 더 자연스러워지면 학교는, 대학은 어디로 갈까? 캠퍼스를 팔아서 아파트나? 편안하려다가 섬뜩해진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교육에 대한 백가쟁명, 난상토론이 이어진다. 전통적인 일자리를 제공해주던 기업들이 구조조정의 격변을 맞이하는 환경에서 취업률 일변도의 대학평가는 과연 지속가능한 해답을 제공해줄까? 창의력과 융통성을 길러주는 예술교육을 지금처럼 도외시하는 대학 교육에도 더 근본적이고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와 우려, 생산적 전망과 허탈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한 해가 저문다. 하지만 여전히 대학의 본질은 캠퍼스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마주하는 공간에 있다.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를 익명의 골방에서 개인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보낸 시기로 간주한다면, 대학은 광장으로 나온 개인들이 서로의 자아를 드러내고 소통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야 비로소 (우리나라의 청년들은 특히), 나 아닌 다른 존재들의 삶에 눈과 귀를 열고 낯선 것들과 공존하고 소통하는 경험을 제대로 하게 된다. 그 점이 대학이 오랫동안 해온 일이자 놓칠 수 없는 미래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 교수는 더 이상 학생들의 지식욕을 충족시키는 지식전달자가 아니다. 학생들은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서 더 빠르고 광범위하고 정확하게 얻어낼 수 있다. 취업을 잘 하기 위해서라면 대학보다 오히려 노량진의 학원이나 인강을 찾는 게 시간과 돈을 절약하는 길이다. 대학이, 학교가 소중한 이유는 바로 현장에서 만나는 그 구성원들에게 있다. 교육은 강의실에서 교수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논어(論語)에서는 셋이 걸어가면 반드시 그 안에 스승이 있다고도 했다. 삶의 오솔길을 함께 걷는 이들 모두가 스승인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에게서 궁극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은 그의 걸음걸이, 표정, 말투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그 사람의 삶 전체이다. 어떤 이의 진면목(眞面目)을 안다는 건 그래서 엄숙한 일이다. 한 때 눈빛만으로 그 사람의 영혼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제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우리는 상대의 웃는 입술과 하얀 이빨, 가볍게 씰룩이는 보조개에서도 우주를 배운다. 그렇게 그의 입김과 한숨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눈빛만으로 송년이라니, 내년에는 이러지 말기를, 학교는 다시, 제대로 열려야 한다. /곽병창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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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07 17:42

마음속의 자화상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나훈아의 노랫말에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에서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사실 아폴론 신전에 적힌 글로 신전을 찾는 모든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한 아폴론의 신탁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나르키소스는 우물에 비친 자기 모습에 반하여 물에 빠져 죽는 비관적인 결과를 낳고 후에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에 의해서 나르시시즘 혹은 자기애로 개념이 정립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을 갖고 있으며, 이는 극히 주관적이고 그 정도에 의해 건설적인가 비관적인가 하는 상반된 결과를 초래한다. 인간 삶 자체가 자신의 외적인 모습과 내적인 성격 취향 등에 대하여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라는 끝없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면서 자아를 찾는 과정과 다를 바 없다. 문인이 자서전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본다면, 화가는 자화상을 제작하면서 자아인식을 체험한다. 화가가 자화상을 제작하는데 그 이유는 다양하다. 본인 스스로 직접 모델이 되어 인물화를 기초부터 습득하기 위한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장점과 잠시 마음의 여유를 찾기 위한 자아를 찾는 과정 일 수도 있고 때로는 새로운 작품 기법을 실험하기 위해서 자화상을 제작한다. 동서양 화가들이 자화상을 제작하는 의식은 분명 차이가 있으나 공통적으로 자아를 인식하는 수단으로 그려졌음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인본주의에 가치를 둔 서양에 비해 동양은 자화상이 비교적 적게 제작되었다. 한국미술에서 자화상하면 누구나 다 책자나 인터넷을 통해서 한 번쯤은 보았을 법한 18세기 윤두서의 자화상을 떠올린다. 몸은 생략하고 얼굴만 확대하여 눈꼬리가 약간 치켜 올라간 부릅뜬 눈매와 콧수염과 구레나룻을 섬세한 필치로 표현하여 현대회화와 맞먹는 시대를 앞서 간 자화상으로 극사실의 묘미와 윤두서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자화상이다. 서양미술에서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로는 단연 100여점을 제작한 렘브란트와 40여점을 제작한 후기 인상파 반 고흐가 있다. 렘브란트는 20대 청년부터 60대 노년에 이르기까지 연대별로 자화상을 제작하여 변화된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자전적 요소가 강하다. 고흐는 이글거리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그대로 반영한 자화상으로 유명하다. 남미 멕시코의 국부로 추앙받는 민중벽화의 거장인 디에고 리베라의 부인이자 여류화가인 프리다 칼로는 교통사고로 산산 조각난 온 몸으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의 순간과 남편에 대한 애증과 갈등을 자화상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부분 자화상이 얼굴 형상을 중요시한 반면,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秋聲賦圖)는 작가가 처한 현실을 주변 상황을 설정하여 보여 준 독특한 자화상이다. 추성부도는 중국 북송대의 문인 구양수가 가을과 낙엽을 통해 인생의 황혼과 허망함을 읊은 산문시로 김홍도는 구양수를 통해 자신의 와병 중에 쓸쓸한 말년을 늦가을에 비유한 서술적인 자화상으로 공감을 준다. 누구나 다 가끔 잠자리에서 일어나 거울에 비친 생뚱맞고 낯선 자신의 모습에서 지위나 권력과 재력으로 포장된 삶에서 자신의 진정한 민낯을 보게 된다. 굳이 그림이나 글을 남기지 않더라도 거울을 바라보든 마음속으로든 간에 사람은 누구나 다 매일같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자화상을 그려 보고 자서전을 쓴다. 이미 에고이즘과 변덕이 극성을 부리는 나르시시즘의 경계에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나르키소스처럼 물에 비친 모습에 스스로 매몰되어 파멸적이거나 비관적이지 않은 건설적인 자기 긍정과 시각화를 통한 자화상을 우리 모두 마음속으로 그려 보면서 한 해를 갈무리하는 건 어떨까.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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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1.30 17:35

이것은 취하고, 저것은 버려라

소재호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노자는 말한다. 저것은 버리고 이것은 취하라. 이 말, 거피취차(去彼取此)를 도올은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저것이란 모든 관념적 허구이며 형이상학적 폭력이며 감각적 허환이다. 이것은 나의 일상적 현실이며 나의 생명 중추가 느끼는 실재이며, 이 세계에 근접한 번뇌이며 보리이다. 노자가 말한 리얼리즘이며 실천주의이며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의 현실주의이다. 관념이나 이념 따위의 극단적 대립은 실학적 이로움이 없는 먼 곳의 화두일 뿐이다. 학문의 서책 안에서 논의되는 철학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우리 국민들은 느닷없이 관념적 대립, 혹은 이념적 대칭의 양극 모서리에서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해대는 양상을 띤다. 정말 느닷없고 어처구니 없는 곳으로 지향한다. 시비가 옳고 그름의 본질적 차원에서 시작되지 않고 감정의 대입으로 확대되다가 마침내 진영 논리로 양분되는 현실을 자주 보게 된다. 흑백의 양분 논리는 철학이 아니고 심리학도 아니다. 더구나 인간주의를 함유하는 인문학도 아니다. 흑과 백이 혼융하는 회색이 오히려 상생의 근원이며 만물 생성의 시발이다. 물들고 번짐으로 인해 이룩됨이 생성의 단계로 차차 나아감이다. 생성은 제2의 생성을 파생시키며 진화하는 것이 세상 발전의 이치이자 선가치이다.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 중에 대나무 송(頌)을 읊은 시조가 있다.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대나무는 풀인지 나무인지 분류 논쟁으로 인해 실용적 가치가 달라지지도 않으며, 이런 논급은 실존적 존재를 식물 분류 그 본질성에 억지로 갈래지우려는 뜻에 다름 아니다. 부부간에 한 쪽은 기독교 신앙자이고 다른 쪽은 불교인이라 할 떄 밥상머리에서 날이면 날마다 교리에 대한 쟁투를 벌릴 일인가? 신앙의 문제는 멀리 두어 저것이고 살림살이 전반에 관한 문제는 이것의 실용으로 삼을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슬기로운 민족이기도 하면서 어느 대목에서는 저것만을 가지고 피투성이가 되는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2000년 615 공동선언이 있었고 한국과 북한이 합의해서 개성공단지를 조성하고 생산 활동을 전개하여 매우 큰 성과를 낸 일이 있었다. 세계 인류사상 이렇게 절묘하고 아름다운 교집합을 이뤄낸 사실이 없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공리주의의 공동선의 이룸이었다. 사상 문제, 이념 문제는 먼 뒷골목에 던져 두었고 만지작거리지도 않았다. 유물사관론이 어떻고 민주자본주의가 어떻고는 저것이었을 뿐이다. 개성공단의 산업 열차는 38선을 지워가고 있었다. 참 잘 되어갔다. 그런데 대박 운운하며 박근혜 정부가 이를 철폐하고 말았다. 개성공단은 생산공장 가동의 의미를 넘어 민족의 동질성 찾아가기의 상징적 의미였다. 박근혜 정부의 큰 실수였다. 반민족적 범죄였다. 사이가 좋은 양자를 적으로 삼게 이간하는 일이 법죄의 하나인 것이다. 너무 철없었다. 개성공단의 사업은 교집합 단계의 확대였다. 교집합이란 용어는 수학 용어인데 필자가 시를 설명하는 수단으로 잘 사용한 매우 긍정적 어휘이다. 서로 물들기요, 서로 번짐을 담보하는 용어이다. 이런 문법은 저 관념적인 어휘인 융복합의 개념을 뛰어 넘는 구체적 행동 용어인 셈이다. 저것으로 인해 매몰되어 버린 이것들을 마냥 찾아내어 교집합을 만들어 가자.이 일이 공동선이요, 공리주의 실현이며 민족의 미래 비젼인 것이다. 성씨가 각각 다른 이성지합異姓之合 도 부부가 되지 않는가? 콩깍지를 서로 눈에 쓰며 사랑을 도출하지 않는가? /소재호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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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1.23 18:06

광대전(廣大戰)은 계속되어야 한다

김문성 국악평론가 지난 9월 24일 제1화- 희로애락 판소리 대결로 5년 만에 전파를 탔던 판소리 명창대첩 광대전2020이 11월 5일 제6화를 끝으로 종영했다. 번외전이라도 하고 싶다는 한 명창의 솔직한 후기는 역설적으로 번외전조차 하기 어려운 현실을 곱씹어보게 하지만, 그래도 판소리의 미래는 밝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받은 것이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싶다. 광대전2020은 시작과 동시에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다. 우선 코로나19 재유행으로 공연장이 봉쇄되는 가운데 방송의 이점을 충분히 살려 야외를 활용한 제작이 관객의 관심을 끌어냈다. 경쟁 포맷도 관심을 끌었다. 예전처럼 회를 거듭할수록 탈락하는 서바이벌 방식 대신 4명씩 조를 나눠 매회 우승자를 내는 방식을 도입했다. 덕분에 매회가 결승전 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한번은 우승하겠다는 광대들의 간절함이 매주 브라운관으로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캐스팅도 화제였다. 8명의 소리꾼 모두 판소리 전문 대회 대통령상 출신들로 특정 대회에 쏠리지 않는 황금 비율이 돋보였다. 이전 광대전을 능가하는 캐스팅이었다. 무엇보다도 재정이 열악한 지역 방송국의 제작 선택지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판소리 프로그램을 제작해 선보인 것은 상당한 신선함을 주었다. 광대전은 국악의 대중화를 고민하던 우리 지역 방송사가 2013년 본사의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 포맷을 가져와 성사시킨 프로그램이다. 전통예술을 소재로 그것도 지역 방송에서 만든 프로그램임에도 전 국민적 화제를 불러 모았고, 그 해 많은 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꾸준한 제작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전 탈락자와 우승자가 모두 나와 재격돌했던 2015광대전을 끝으로 더 이상 광대전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재정 문제가 컸다. 최근 들어 재정이 열악해지고 있는 방송사가 화제성만으로 국악 프로그램을 런칭하기엔 리스크가 컸을 것이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많은 언론사 사업들이 올스톱되는 상황에서, 국악 프로그램 제작은 더더욱 언감생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광대전은 제작되었다. 계산기를 두드리기 보다는 광대들의 자존심을 지켜준 것이다. 시청률 확보에 도움이 되는 B급 감성을 택하지도 않았다. 창작과 퓨전을 앞세워 대중성을 확보하려고 발버둥치는 전통예술계와 달리, 광대전은 전통예술의 마지막 보루라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듯한 인상마저 갖게 했다. 어찌 보면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경향 각지에서 활동하는 소리꾼들이 광대전을 꿈의 무대로 부르는 것이 빈말이 아닌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당분간 광대전은 볼 수 없다. 언젠가는 이라는 희망섞인 바람이 현실이 되려면 극복해야 할 현실이 있다. 재정적 지원 문제다. 지금처럼 지역 언론사들의 뻔한 재정 상태를 알고도 광대전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는 다소 후안무치일 수도 있겠다. 대안이 있을까? 전북에 입주한 공기업, 공공기관이 지역과 상생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접근해보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언론사 직접 지원 방식이 문제된다면 예술단체나 기관과 매칭해 포맷을 지원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지역에 기반한 기업들 역시 메세나에 대한 적극적인 열린 마인드를 가질 시점이라고 본다. 예향 전북에서 광대전은 계속 만들어져야 하고, 계속 되어야 한다. /김문성(국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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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1.16 17:51

이날치가 이날치에게

곽병창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날치라 하데-. 내가 엉덩이로 줄을 튕겨 하늘로 날아오를 때마다-. 사람들이 짙푸른 바다를 박차고 허공으로 자맥질하는 날치를 떠올린 거였다네, 줄광대 어름사니, 줄 위의 인생이었지. 한때는 그저 세상이 다 만만하였네. 저 아래서 거드름 피우는 양반, 환호하는 군중들 모두가 발아래 까마득하였으니 말일세. 아비는 평생 땅만 보고 굽실거리던 머슴, 나는 하늘을 보고 싶었네. 문득 박차고 나와 줄을 탔지. 봐라, 떵 더러러러러, 누가 더 높으냐, 누가 이 세상에서 젤 높은 데까지 솟구칠 수 있는가 봐라-. 그러다 소리판에 홀렸네. 줄 위에서 호통 치던 소리가 너무 크다고, 걸걸하게 십 리 바깥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아깝다고들 했지. 소릿길로 마음을 정한 뒤에도 고분고분 수행고수나 하는 일은 성에 차지 않았네. 갑질 하는 명창 세숫물 엎어버리고 뛰쳐나왔지. 내가 사람을 울리고 웃긴다는 소리에 조정 높은 양반이 내기를 걸기도 했다네. 심청이 팔려가는 대목에서 그만 울음을 터뜨리더니 큰돈을 내어놓더군. 그렇게 소리로 한 평생 거리낌 없이 살았다네. 새타령을 하면 새가 날아들었다는 소문이사 어지간한 소리꾼한테는 다 따라붙은 것이니 그리 내세울 것도 없네. 나는 그저 나랑 비슷한 사람들 이야기를 내 방식으로 외치고 터뜨렸을 뿐이고, 내 소리에 함께 울고 웃은 밑바닥 청중들 덕분에 한 평생 낭창낭창 잘 살았네-. 양반, 부자들 덕에 밥, 술, 고기도 잘 먹고 살았으나 그들 비위에 맞춰 내 소리 굽혀본 적 없으니 그것만으로도 복 받은 인생일세. 이날치밴드라니, 이 무슨 묘한 이름인가?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 깊은 골로 대한짐승이 내려온다. 잔디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르 흩치며,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는 듯 범이 내려오는 대목을 어찌 그리 신통방통하게 갖고 노는지, 저 세상 가던 명창들까지 다 나와서 사지를 나풀거릴 지경일세-. 내 이름을 갖다 쓰다니, 아마도 날렵하고 부르기도 친근하니 그리 했을 터이지만 나로서는 새삼 가슴이 벌렁벌렁 오지고도 반가운 일일세. 요즘 여기가 어딘지 나는 누구인지 이승과 저승이 헷갈리어 분간이 안 될 참이네. 내가 백여 년 전에 심청가나 춘향가의 슬픈 대목을 즐겨 불렀던 건 다 처량하기만 하던 시절 덕이었네. 그대들이 수궁가를 들고 나오면서 사설을 새로 짠 것도 아니고 쉽게 알아들으라고 풀어놓은 것도 아닌데, 지금처럼 온 세상이 들썩거리는 건 다 그 오묘한 성음과 장단 덕인 듯싶네. 한없이 반복하는 자진모리의 쑥덕거림에 온갖 선율악기들이 들락날락 노니는 품이 영락없이 내 청춘시절의 천방지축 발걸음을 닮은 듯도 하네. 그 발걸음 잃지 마시게. 이리저리 치이고 지친 세상 사람들 그저 너나없이 흔들흔들 놀게 해주는 게 으뜸광대 사는 길이라네. 게다가 배운 대로만 따라 하기보다 그대들 사는 세상의 희로애락을 담는 게 진정한 소리꾼이라는 진리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으니 더 보탤 말이 없네. 허나 자네들을 규정하고 붙들어 두려는 이런저런 시도에는 부디 거리를 두시게. 광대라는 이름은 돈으로도 명성으로도 다 잴 수 없는 것일세. 그것들마저 가지고 노시게. 그래야 더 빛날 것일세. 하나만 더, 애매모호한 춤패(Ambiguous dance company) 하고도 그 판 오래오래 잘 꾸려 가시기를-. 나도 내내 곁에 있겠네. 흔들흔들-. 촤르르르르르-. /곽병창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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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1.09 18:02

미술감상, 귀명창에 버금가는 눈명창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요즘 대부분 사람들은 코로나 때문에 가급적 외출을 삼가고 집에서 스마트폰과 TV 시청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소위 뽕짝이라고 할 수 있는 폭스트롯(foxtrot)풍의 우리 대중가요로 가히 전국적인 열풍은 식을 줄 모르고 얼마 전 나훈아 비대면 지상파 공연으로 트롯 신드롬에 정점을 찍었다. 소리명창은 아니더라도 귀명창에 근접한 사람들은 각자 스타일과 취향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음정과 박자와 목소리 톤을 기준으로 가수의 노래 실력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가늠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그림 감상과 평가의 기준은 무엇인가? 색채, 균형, 조화, 밀도, 시대성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있으나 음악처럼 객관적인 평가보다는 주관적 평가가 절대적인 우위에 있다. 19세기 이전까지는 미술 감상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고 화가는 천재성과 결부되어 비교적 일반인이 범적 할 수 없는 아우라로 포장되었다면, 오늘날 현대미술은 다원화라는 다양한 얼굴로 모습을 드러내고 도무지 이해 할 수도 없는 난해함과 곤혹스러움을 누구나 다 한 번쯤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일찍이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이 예술은 사기다라는 말로 일갈했듯이, 현대미술 감상에는 명확한 척도가 없어서 평론가의 글을 참고로 하지만 오히려 작품을 이해하는데 더욱 더 혼란스럽고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꿈보다 해몽이 좋은 자본에 침몰된 미술계를 비꼬기 위해 작품을 제작하는 미술 판의 테러리스트 얼굴 없는 화가로 알려진 영국의 낙서화가인 뱅크시는 그의 작품가격이 오히려 청정부지로 치솟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몇 번이고 되새겨 보아도 하늘의 섭리로 지어진 자연과 인간을 그림이나 작품과 비교 할 수는 없지만, 화가의 그림에는 우리가 보는 그 이상의 무엇이 분명히 담겨 있다. 모든 예술의 형태가 그랬던 것처럼 언제라도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왔고 그럼으로써 작가가 처한 현실이 투영되어 하나의 예술을 펼쳐 보여 주었던 것이 곧 예술의 조건이자 역사였다. 야스퍼스는 인간의 유형을 두 가지로 분류한바 있다. 하나는 자신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스스로 많은 짐을 지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전진 해 갈 기백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전자가 엘리트적 인간이라면 후자는 대중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엘리트적 작가란 자기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작가로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 나오기 까지는 많은 갈등과 고통을 수반하는 사람이다. 미술평론가 입장에서 창작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바로 독특함이라 말 할 수 있다. 이 세상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래도 새로움을 추구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자세는 예술가의 본성이고 바로 아방가르드(전위) 정신으로 예술가의 숙명이요 본질이다. 가령 많은 화가들이 꽃을 소재로 작품을 제작하면서 꽃을 어떤 대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미국의 여류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꽃 그림과 네덜란드 고호의 꽃 그림, 한국화가 천경자의 꽃그림은 분명 다르고 세상 어디에다 내놓아도 구분된다. 같은 사물과 대상을 보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조형미술에서 말하는 창작이요 차별화와 다름의 미학인 것이다. 화가들이 사물과 대상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어떻게 독특하고 다르게 작품에 표현하였는지를 발견 할 수 있는 감상자의 눈이야 말로 귀명창에 버금가는 예리한 눈썰미를 가진 눈명창(?)이라 말 할 수 있겠다.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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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1.02 20:16

생(生)은 ‘의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데

소재호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죽은 뒤에까지 의미로 남지 않는 일이라면 하지 말라 미켈란젤로의 준엄한 훈도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살아서도 의미요, 사후에도 의미인 것이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의미 있는 일이란 가치 있는 일일 터요, 크게는 인류를 위해서, 작게는 이웃이나 가족을 위해서 보람있게 공헌하는 일일 터이다. 태양이 하루의 난간에 걸릴 무렵에 스스로 무위도식(無爲徒食)했다고 반성될 떄 그 무위로 난파된 시간들에 대한 회한이 가슴을 칠 것이다. 소설에서도 주인공의 생애 중 가장 응축된 정채(精彩) 있는 부분만을 다룬다 하였는데, 바다의 파도만큼이나 굽이쳐 오는 온갖 사상(事象)이 의미 없이, 또는 가치 없이 명멸하여 인생을 덮쳐 지나가고 만다면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무슨 보람된 것이며 무슨 존엄한 것이겠는가. 선종(禪宗)에서 수행하며 무념무상에 드는 면벽(面壁)하는 일도 무위도식으로 보는가 하는 의문도 든다. 아침을 열며 귀한 시간을 명상한다면 이 또한 무의미의 일인가. 깊이 사유(思惟)에 골똘하며 침잠(沈潛)에 드는 일은 역시 무의미요, 무가치인가. 다만 그 수도와 그 사유로 연유하여 큰 철리(哲理)를 얻어 인류에게 인문학적 큰 업적을 남긴다면, 아니면 이로 말미암아 다음 날에 자신이 한층 고귀한 삶을 누리게 된다면, 수천 수만 번 연습으로 골프채를 휘둘러 골프왕 타이거 우즈에 이른다면 그 수도와 수련의 과정을 무위로 셈할 일은 아닌 성싶다. 그리고 또한 자기 성찰로, 자기 정신 도야로 시간을 낭비한다고 여기면 이것 역시 무의미의 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러나 여기에서 인문학적 철학적 의미론을 부각시켜 갑론을박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으로서 마땅이 사람에게 유익한 일을 찾아 도모하고 시혜하는 일로 국한하는 협의의 일반적 의미론에 안주하고 싶다. 의미 있다, 의미 없다의 구분법은 인정물태(人情物態) 제반이 아니라 가시적 물상의 이룸에만 국한할 일은 물론 아닌 성싶다. 필자는 여기서 의미 유무를 근원적 본질에 입각해 생각하지 않고, 애초에 의미가 존재해 있었던 게 아니라 사람이 의미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하는 창조적 의미론에 매달리고 싶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어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중략)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앟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라는 시구를 인용해 본다. 여기서 의미는 상징성을 띤다. 또한 의미란 내가 만들어 부여하는 것이란 암시를 품는다. 우리의 만남은 큰 의의가 있었어 우리 모임은 유익한 의미가 있었어하고 언급했다면 사람들 일상의 만남도 의미의 창조가 아니겠는가. 자꾸자꾸 이토록 의미를 창조해 간다면 생은 빛나게 될 것이다. 노자의 무위자연은 예술에서나 찾고, 현실의 유의미를 찾아 나서자. 꽃을 심으며, 음악을 감상하며, 독서하며,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며 하루를 묶어 내자. 가족끼리 정리를 쌓고 효도하며, 상추 심고 가꾸며 하루씩 유의미로 묶자. 그 하루하루들이 축적되어 빛나는 인생이 되리라. 이토록 참 의미를 쌓는 인생을 펄펄 휘날리자. /소재호(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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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26 18:03

트롯 유감

김문성 국악평론가 건국 이래 트롯이 이렇게 주목받은 일은 없었습니다. 트롯이 대중음악계를 리드하고 있다. 아이돌도, 록가수도, 포크가수도, 성악가도 트롯을 부르지 않으면 스폿라이트를 받지 못한다. 불과 2년여 전, 제작비 절감을 이유로 유일한 공중파 트롯 가요 프로그램은 출연 라인업을 A급 트롯 가수에서 소위 B급으로 대거 변경했고, 출연자 대기실 한켠에 울리던 국악계보다도 못한 트롯이라는 트롯가수의 절규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말그대로 상전벽해요, 경천동지할 일이 아닐 수 없다. 2019년 한 종편사가 미스트롯 런칭을 예고할 때만 해도 이를 주목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방송가에서는 아이돌 중심의 케이팝이 대세인 시대 흐름에 역행한다는 조롱까지 나왔다. 하지만 아이돌 문화가 활성화될수록 문화소비 주도권을 쥐고 있는 40~50대의 소외는 극에 달했다. 결국 40~50대는 트롯을 택했다. 그리고 1년여가 지난 지금. 방송계의 음악콘텐츠 대부분이 트롯 물결이다. 코로나19로 문화예술계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트롯은 여전히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있다. 리모콘을 돌려봐야 손가락만 아플 정도로 트롯 프로그램뿐이며, 심지어 언텍트 공연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그러니 트롯 가수들의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몇몇 비평가들은 무분별한 트롯 프로그램 양산이 급격한 트롯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대중문화 속성상 트롯 열기도 언제든지 식을 가능성이 있는데, 현재의 과잉 양상이 그 시기를 앞당길 수 있으며, 꿀만 빨아먹은 기획사나 미디어 관계자들이 이를 걷어차고 대체 콘텐츠로 눈을 돌리게 되면, 결국 가수 양성 체계가 다소 허약한 트롯계만 한탕주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체질적 허약함은 트롯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주전공으로도 고스란히 확인된다. 이러한 이유로 안정적인 수익창출 모델을 고민하는 검은 손들이 국악계로 드리우고 있다. 기획사나 방송 작가들이 국악과 등에 마구잡이로 연락하며, 숙련된 젊은 국악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국악 소울과 트로트 소울이 한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트롯에 발을 담근 젊은 국악인들이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송가인의 성공을 롤모델 삼기엔 아직 국악에 대한 국민의 이해가 많이 부족한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젊은 국악인들의 활동이 타지역에 비해 월등히 많은 전북 지역 젊은 국악인들 역시 이러한 유혹에 심하게 노출되어 있다. 트롯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며 대중음악계에 외연을 넓혀가는 현상은 축하할 일이다. 40대 이상 음악 소비층들의 니즈를 잘 파악해 케이팝 일변도로 성장하던 대중음악 시장에 추의 균형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반갑다. 그러나 실현 방식은 페어해야 한다. 국악계의 젊은 인재들을 쌍끌이하는 방법으로 확장하는 것은 우려스럽고 유감스러운 일이다. 트롯을 국악과 사촌격인 것처럼 생각하는 젊은 국악인들 역시 국악과 트롯 음악은 전혀 다른 DNA임을 인식하고, 잠시 잠깐의 화려함에 취하지 않아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 젊은 제자들에게 뻗친 마수를 보고도, 이들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는 처지 때문에 쓴소리 한 번 못 하고 눈감아주는 국악계 어른들의 대오각성이다. 더불어 젊은 국악인들이 맘 편하게 공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무대를 만들어주는 정부와 국악계의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인다. /김문성 국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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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19 15:35

‘테스 형’이 이겼다

곽병창 우석대 교수 한때 나훈아와 남진이 숙명의 라이벌이었던 적이 있었다. 하나는 부산 출신의 거칠고 가난한 터프 가이, 하나는 목포 유지 집안의 귀공자 같은 미남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때는 바야흐로 이른바 통기타와 청바지를 앞세운 포크송의 물결이 대학가를 휩쓸어오기 시작하던 즈음이었다. 라디오나 TV와는 달리, 대학가에서 남진이나 나훈아, 이미자에 열광하는 이들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 당시 트로트는 적어도 대학생들에게는 너무 값싼 신파였고, 그 리듬은 촌스러운 뽕짝의 단순반복에 지나지 않았다. 적어도 트로트를 듣지 않는 것은, 그 시절 지식인들의 일종의 구별 짓기였던 셈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른바 민중가요의 시대가 열렸고, 그 다음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쏘아올린 X 세대 음악들이 청년들을 사로잡았다. 그리고도 세월은 한참 더 흘렀다. 그랬던 트로트가 최근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2020년의 트로트가 가히 부활의 경지를 선보이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원래의 트로트가 결코 가보지 못 했던 세계를 너무도 짧은 순간에 너무도 강력한 힘으로 열어젖히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 등장하는 트로트는 단순히 애상적이고 처량한 정서를 단조 위주의 유장한 가락에 얹어서, 꺾고 떨고 밀고 당기는 화려한 기교로 들려주는 노래 정도가 아니다. 때로는 격렬한 댄스와 어우러져 코믹하거나 섹시한 감성을 유감없이 드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오리지널 트로트보다 훨씬 진한 애상과 그리움의 정서를 표현하기도 한다. 최근의 랜선 콘서트에서 나훈아는 테스 형을 외치며 비뚤어진 세상을 향해 신랄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발라드, 랩, 판소리, EDM 등을 가리지 않고 주변 장르를 빨아들여 소화해내는 흡인력으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오죽하면 어떤 이는 국악과에 트로트 전공을 신설해야 할 판이라며 자조 섞인 푸념을 내뱉기도 한다. 트로트에 대한 이 모든 열광은, 오랫동안 이른바 B급 감성이라 불리던 것들의 총체적 반란을 상징한다. 누가 지었는지도 모르고 당연시하며 사용하던 B급이라는 용어에는 사실 매우 낡은 구별 짓기와 선민의식이 전제되어 있다. 지식인, 중산층이라 자부하던 이들이 즐기는 예술만이 A급이라는 생각, 클래식 또는 고전이나, 정전(正典, canon)을 둘러싼 오래된 권위의식이 만들어낸 시대착오적 언술이, 곧 B급 예술, B급 감성 등의 용어이다. 두말할 것 없이 서둘러 사라져야 할 단어이다. 지금 새롭게 세상의 전면에 나서는 대중들은 그런 용어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는다. 이제 대중은 클래식도 팝도 재즈도 즐길 줄 안다. 하지만 삶의 희로애락을 가식 없는 언어로 드러내고, 가슴 속 깊은 곳의 원초적 심성을 직설적으로 터뜨려주는 트로트를 내숭떨며 외면하는 이들을 지식인이라 우러러 보지도 않는다. 이런 판에 잘 늙은 노가수가 노래하다 쉬면서 세상 이야기 한 마디 한 걸 두고, 사이비 지식인, 위정자들이 되지도 않은 정치적 덧칠을 해대는 꼴이야말로 저급하기 짝이 없는 B급 상상력이다. 그의 신곡 테스 형을 두고 소크라테스를 오독한 것이라는 둥, ~형이라는 호칭이 가부장제의 유산이라는 둥 요설을 붙이는 일도 그다지 심오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섣부른 지식인들이여, 함부로 분석하지 말고 겸허히 받아들이자. 바야흐로 대중의 시대이다. 그리고 그냥 테스 형이 이겼다. /곽병창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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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12 18:06

서양미술, 인물 초상화의 역사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대부분 유럽 관광을 다녀온 사람들은 교회와 성당과 유명미술관을 필수 코스로 방문하고 수많은 인물화를 보고 온 것이 기억에 남을 것이다.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실내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 중에 종교화를 비롯하여 인물화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서양미술은 인물화의 역사이다. 이는 서양의 역사가 기독교와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인물화가 많이 제작되었던 반면에 조선시대는 화원화가를 선발할 때 산수화가 인물화보다 배점이 많았듯이 동양은 도가 및 자연사상이 주가 되는 사상적 배경에서 산수를 우위에 두는 가치관이 다르다. 평소 유명화가의 인물화를 화집으로만 보다가 미술관에서 원작을 감상한다는 흥분과 설렘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인물화가 주는 감동의 깊이는 풍경과 정물화하고는 다르다. 서양미술사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성화나 인물화는 부유한 고객의 주문에 의해서 당대에 가장 유명한 화가가 제작했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순수미술과는 거리가 멀고 시장의 논리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아카데믹한 인물화의 대가를 추천한다면 러시아 사실주의 화가인 일리야 레핀(1844-1930)과 미국 인상주의 화가인 존 싱어 서전트(1856-19250)를 꼽을 수가 있다. 일리야 레핀은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와 더불어 최고의 인민작가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인물 심리 묘사에 탁월함을 보였다. 현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학교가 레핀 아카데미 전신이고 사회주의 국가 화가들을 다수 배출한 곳으로, 국내 소수의 인물화 작가들도 단기코스로 레핀 아카데미를 수료한다. 여기에 비해 존 싱어 서전트는 아주 활달한 붓 터치로 부유한 상류층의 인물을 근사하고 우아하게 보이도록 그리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마치 사진사가 인물을 촬영하듯이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당대에 최고의 인물화가임에는 틀림없다. 이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제국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해방이후 월북한 서양화가 이쾌대(1913-1987)는 서사적이고 장엄한 화풍으로 한국의 미켈란젤로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인물화에 능했다. 서구적 화풍을 토대로 지극히 향토적이고 민족주의적 색채가 농후한 여러 명이 한꺼번에 한 화면에 등장하는 무리그림으로 유명하다. 요즘 인터넷 동영상에 실린 다양한 인물화 제작과정을 얼마든지 참고 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지만, 예전에는 유화 인물화기법서라고 해도 외국서적을 카피한 선명도가 떨어진 조악한 번역서 정도가 고작이었다. 본인이 대학 강사 시절 인물화를 지도하면서 홍보용 리플레까지 배포하고 인물 초상화를 주문받아 제작하여 경제적인 부분에 다소나마 보탬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내친김에 아이부터 노인을 대상으로 스케치부터 완성단계까지 유화로 그리는 인물화 제작 기법서를 2007년에 재원출판사에서 발간하여 지금도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 근대화가 중에서 박수근 화백은 미군군부대에서 초상화를 주문받아 제작하여 생활고를 해결하면서 후대에 명작을 남겨놓았듯이, 화가들에게 작품이 밥이 되고 생활이 되는 것은 가장 현실적이고 매우 신성한 행위에 속하는 일이다. 해외에는 초상화 전문화가도 많고 권위 있는 인물 초상화 공모전만도 따로 열린다. 시대가 디지털기기로 손쉽게 찍는 사진을 선호하지만 오히려 손으로 그림 인물화는 더욱 더 그 가치가 빛날 것이다. 미술 판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서라도 인물 초상화 시장이 더욱 커지고 많은 젊은 화가들도 관심을 갖고 다양한 인물화가 제작되기를 바란다.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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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0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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