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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력난신(怪力亂神) vs 상덕치인(常德治人)

“튀어야 시청률이 올라갑니다.” 방송국 PD가 인문고전 강의를 하던 필자에게 자주 하던 말이다. 처음 들어본, 상식으로 설명이 안 되는, 괴상하고 기이한 강의라야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시청률을 높일 수 있다는 마케팅 논리다. 삭발을 하든, 기발한 복장을 하든, 기괴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든, 신비적이고 충동적인 논리로 말하든, 이 어느 한 가지라도 있어야 시청률이 올라갈 수 있다는 나름 대중을 분석하고 있다는 그 분야 전문가의 조언이다. 한마디로 평범하고 정상적인 언변으로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없으니 이상하고 특별함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충고였다. 그러고 보니 세상이 온통 괴상하고 이상하고 특별한 것으로 가득하다. 먹는 즉시 효력이 발생하는 건강식품,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상품, 신비하고 오묘한 효능은 그런대로 들어줄만 하다. ‘마귀와 사탄이 들려서 그렇다(怪).’ ‘내 능력은 사람의 생사와 국가의 운명을 주관한다(力).’ ‘혼란의 세상이 다가왔다(亂).’ ‘하늘에서 벌을 내릴 것이다(神).’ 이 정도 되면 괴력난신(怪力亂神) 마케팅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고, 권력을 만들고, 왕국을 만드는 선동가이며 사기꾼이다. 예수님, 부처님 입장에서 보면 신을 모욕하고 능멸한 자로서 벌 받아야 할 대상이며 신성(神性)을 가장한 혹세무민(惑世誣民)의 목회자이다. 공자는 괴력난신을 경계하고 멀리하였다. 공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도 튀어야 팔리던 시대였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정상적이고 평범한 논리는 수요자인 귀족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가 없었다. 당시 왕들과 귀족들은 신들의 이야기와 비약의 논리를 선호하였다. 당대의 백가(百家)들은 온갖 특별하고 신비한 이야기로 유세하여 자신의 이익을 채우려 하였다. 공자 역시 귀족들의 지지를 받아 정치에 참여하여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고 싶었지만, 괴력난신으로 접근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세상을 속여서(欺世, 기세) 이름을 도둑질하지 않겠다(盜名, 도명).” 비록 14년 동안 유랑의 길을 걸으며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遯世, 둔세) 고난의 삶을 살았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았던 공자의 선택이 오늘날까지 공자를 있게 한 이유다. 괴력난신으로 이름을 날리고, 왕국을 세우고, 권력을 얻었던 승려, 마술사, 목회자, 차력사, 신비주의자들은 봄날에 녹는 잔설(殘雪)처럼 역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괴력난신에 대항하는 말이 상덕치인(常德治人)이다. 상식(常)은 재미없고, 인격(德)은 평범하고, 질서(治)는 따분하고, 인간(人)은 흔하다. 그래서 괴상(怪)하고, 능력(力)있고, 혼란(亂)하고, 신비(神)한 것에 항상 밀린다. 그러나 결과는 시간이 지나면 역전된다. 가장 상식적인 것이 가장 정의로운 것이다. 물은 맛이 없는 무미(無味)의 맛이나 영원히 질리지 않는다. 달콤하고 새콤한 것은 아무리 혀를 유혹하고 마음을 사로잡아도 그때뿐이다. 어머니는 평범했지만 가장 뼛속 깊이 새겨진 인생의 추억이었고, 공기는 흔했지만 생명의 근원이 되어 나를 숨 쉬게 한다. 우리가 당연하고 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드러나지 않는 위대함이고 특별함이다. 하늘에는 솔개가 날고, 연못에는 물고기가 뛰고, 들에는 말이 달리는 것이 상식이다. 그 상식이 자연이고, 자연은 영원하다.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영원한 것이다. 신을 빌려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고, 혼란을 이용해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는 목회자들이 사회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마음이 허전하고 갈길 몰라 하는 사람들은 황당하고 신비적인 이야기에 기대어 자신의 빈 마음을 채우고 있다. 비약은 마약처럼 정도(正道)를 마취시켜 사회를 비정상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괴력난신(怪力亂神)이 상덕치인(常德治人)을 위협하고 있는 시대가 안타깝다. 내세가 아닌 현세에서, 미래가 아닌 지금에 집중하며,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위대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긴다.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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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20 16:50

봄날이 가도 삶은 계속되어야 해

지뢰가 폭발하듯이 꽃은 만발하고, 대포가 터진 자리에는 꽃 사태였다. 봄은 다투어 피어나는 꽃들의 전쟁이다. 평지와 둔덕마다 흐드러진 개나리 산수유 진달래 목련 벚꽃들이 시샘하듯 불어 닥친 비바람에 덧없이 졌다. 길가 벚나무 아래에는 하얀 꽃잎들로 낭자하다. 봄은 서둘러 왔다가 철수할 기색이다. 사월의 태양 아래 꽃들은 지고 나뒹구는 꽃잎들은 철수하는 봄이 남긴 사체들이다. 봄꽃 진 뒤 느티나무 묵은 가지마다 연두색 새잎들이 돋고, 가랑잎 두텁게 쌓인 표토를 밀어 올리며 원추리 싹이 떼 지어 올라온다. 도처에서 피어나고, 돋고, 꿈틀거리고, 뻗치는 것은 봄에 대한 살아 있는 것들의 벅찬 생명 반응들이다. 봄꽃 둘레에 노오란 햇빛이 꿀벌처럼 잉잉거릴 때 우리는 벅찬 희망을 품고 낙관적인 기분에 빠졌었다. 심장은 보람으로 펄떡이고, 혈관의 피들은 온몸을 돌며 환호성을 지른다. 고양이 요람 같은 봄날에 우리의 쾌감지수는 상승하고, 우리는 가장 희망적인 호모 사피엔스로 재발명되는 것이다. 봄날 대기에는 꽃들이 어지럽게 내뿜는 방향만이 아니라 약간의 허무, 약간의 슬픔, 약간의 외로움도 함께 녹아 있다. 봄날의 바람과 태양이 우리 젊음을 약탈해가듯이 세월이 돈과 아름다움과 사랑을 열망하던 우리의 푸르고 아름다운 젊은 날을 앗아간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의 첫 키스는 뇌리에 강렬함으로 각인되지만 어느 입술이 열일곱 번째로 내 입술에 가 닿았던 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이토록 얕은 기억의 용량이라니! 우리 오감을 문지르던 꽃이 다 지면, 보람과 기쁨을 앗아간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아름다운 것들의 유효기간은 비정상적으로 짧구나! 종달새 우짖는 이 허전한 봄날을 어떻게 맨 정신으로 견딜 수 있나? 오래 전에 헤어진 당신은 잘 지내는가? 이제는 유난히 찰랑이던 당신의 검은 머릿결만 기억날 뿐 나머지 이목구비는 희미해졌다. 당신에게 미처 부치지 못한 편지들을 꿈속의 우체통에 집어넣는 꿈에서 깨어난 아침에는 가슴이 텅 빈 듯 허전하다. 나는 아침을 먹고 나가 공연히 근린공원을 한 바퀴 돌고, 볼 일도 없는데 동사무소에도 들렀다가 돌아온다. 오늘은 동네 도서관에서 철학책을 빌어 반나절 넘게 읽고, 저녁 무렵엔 강가를 따라 바람을 맞으며 걷었다. 봄날은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지나간다. 희망과 기쁨과 보람으로 가득 하던 우리의 전성기도 지나간다. 우리는 팔짱을 낀 채로 속수무책으로 지나가는 것을 바라볼 뿐이다. 바다의 악령인 하얀 고래를 좇던 에이허브 선장처럼 용맹했던 우리의 모습을 이제 누가 기억할까! 아무도 우리가 삶에서 거둔 공훈을 기억하지 못하리라. 봄날 저녁의 어스름에 찾아드는 허무와 고통은 견딜 수가 없었다. 우리 보람이던 봄꽃의 수명은 짧고 우리가 견뎌야 할 고통은 길다. 빈센트 밀레이는 노래한다. "내 밥그릇은 고통으로 가득 차 넘친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이다"라고. 봄날의 달콤한 고통과 허무를 견디며 우리는 속절없이 하루하루 늙어간다. 한 살이라도 더 나이를 먹을수록 좋은 한 가지는 인생 마일리지가 쌓인다는 점이다. 인생 마일리지는 삶의 지혜를 체득할 수 있는 경험의 두터움이고, 그것에서 양조된 인격의 원숙함이다, 우리는 치열하게 고투하며 보낸 젊은 시절을 지불하고 그것을 손에 넣는다. 인생 마일리지란 자기 인생에 최선을 다한 자에게 주어지는 삶의 원숙함이란 이름의 훈장이다. 당신의 인생 마일리지는 얼마나 되는가? 봄의 무대에서 꽃들은 퇴장했다. 그렇다고 낙담하고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한 계절이 끝나면 새로운 계절이 달려온다. 우리에겐 살아갈 날들이 무궁무진하다. 봄을 여윈 슬픔을 딛고 우리의 갈망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자. 먼 데서 당신이 새로운 아침을 맞을 때, 우리에겐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늠름하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 지금 당장 할 일은 봄이 떠나면서 흐트러뜨리고 어지럽힌 자리를 말끔하게 치우는 것이다. 봄날이 끝나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우리는 저마다 제 인생의 이야기를 마저 써야 한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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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13 17:37

촉촉했던 산들의 기억

내가 태어나 성장한 마을은 인왕산 아래 옥인동 47번지다. 결혼 이후 옥인동을 떠나 10여년간 살다가 2008년 연어처럼 회귀에 성공했고 그 뒤로 계속 경복궁 서쪽 마을에 살고 있다. 2010년 인왕산 계곡 자락에 얹힌 옥인아파트를 철거하고 수성동계곡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는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물소리가 울린다는 뜻을 가진 그 계곡의 이름에 의구심을 가졌다. 물소리가 들리는 계곡이라면 내가 살던 그 언덕이 아닌가? 옥인아파트 쪽이라면 위치가 다른데? 가까운 곳이지만 내가 태어나 자란 마을은 인왕산의 동남쪽 사면이었고 수성동계곡은 정남향 사면이라서 줄기가 좀 달랐다. 그런 작은 차이에도 예민해지는게 내 마음이었다. 우리 동네의 이름을 남에게 빼앗긴 것처럼 억울했지만 겸제 정선 선생님이 장동팔경첩에서 그 계곡의 모습을 아름다운 필치로 남기고 그 이름을 ‘수성동(水聲洞)’이라고 정확하게 기록해놓으셨으니 따질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내 마음 속의 수성동은 우리 동네였다. 우리 마을은 정말이지 사철 물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환각이나 환청이 아닌게, 정말로 인왕산 계곡 위에 한겹 얇은 시멘트를 덮고 게딱지만한 작은 집들을 세운 구조였다. 어릴 때 살았던 우리 집 화장실은 그 아슬아슬한 주거 형태의 가장 좋은 예가 되어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반듯하게 하얀 도자기로 된 신식 변기가 달려 있었지만 오로지 그 말단 부분만 문명의 흉내를 냈을 뿐 그 아래로는 거침없는 인왕산 계곡이 펼쳐져 있었다. 힘차게 치솟은 바위와 천둥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계곡물 위에 살포시 변기를 얹은 천연 수세식 화장실이었다. 친구들과 친척들은 우리 집에 놀러오면 무서워서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했다. 우리 가족들은 아무런 감흥 없이 힘차게 흐르는 계곡물을 보며 날마다 용변을 해결했다. 세월이 흐르며 물소리가 점점 작아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렁차게 힘차던 콸콸 소리가 졸졸 소리로 줄어들어 있었다. 수성동계곡 쪽도 형편은 마찬가지였다. 겸재 정선 선생의 그림 속 아름다운 바위들은 여전한데 그 아래 흐르던 물길은 명맥을 유지하기 위태로울만큼 줄어들었다. 느낌의 변덕이 아닌 것이, 예전에 옥인아파트가 있을 때 그 맨 꼭대기에는 계곡물을 받은 수영장이 있었다. 여름에도 뼈가 시린 그 물 속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첨벙거리며 놀았다. 이제는 아이들도 물도 없어, 그곳에 수영장이 있었다는걸 믿을 수 없다. 여름 장마철이 되어도 수영장을 만들만한 계곡물을 모으기는 터무니없다. 수성동계곡에서 시작된 물길의 흔적을 따라 걸으면 청계천으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인왕산에서 발원한 그 물길이 청계천으로 이어지고 답십리로 흘러 한강으로 가는 거였다. 이제 인왕산에서 오는 물은 터무니없이 수량이 적기 때문에 청계천의 물은 모두 인공급수에 의존한다. 그 많던 물들은 어디로 갔을까? 기상청의 통계자료를 참조하면, 1970년대에서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강수량은 큰 변화가 없다. 서울 외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대한민국에 한정해볼 때 하늘은 인간들에게 늘 비슷한 양의 물을 공급했다. 차이는 사용량에 있었다. 인구가 늘었고, 1인당 물 사용량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어릴 때 나는 주 1회 대중목욕탕에 갔지만 지금은 따뜻한 우리집 욕실에서 매일이다시피 씻는다.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어마어마하게 지하수를 퍼낸 토지는 말라서 파삭해졌다. 기후 변화라 하니 하늘을 원망해야 할 것 같지만 실은 사람이 문제다. 벚꽃이 한창이던 주말, 갑자기 인왕산 산불 소식이 전해졌다. 바삭하도록 오래도록 가물었던 산자락은 거침없이 타들어갔다. 마을 친구들은 메신저로 화재 이곳저곳의 장면들을 전해주었는데, 그 중에는 놀랍도록 정밀하게 화재 하한선에 소화액을 뿌리는 소방 헬기의 진화 장면도 있었다. 전국에서 산불과 싸우신 소방관님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반년 넘게 이어진 남녘의 가뭄에 다같이 근심하는 봄이었다. 전국에서 꼬리를 물던 산불 소식을 잠재우는 고운 봄비를 반갑게 맞이하며, 목마른 산들이 다시 촉촉해질 그날을 기다려본다. /심윤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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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06 16:07

2024년 총선, 1년이다

내년 이맘 때 쯤은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기간이다.2024년 3월 28일부터 선거운동이 시작되는데 4월 5일은 사전투표 날이고 10일은 본 투표 날이다.2024년 4월 10일 22대 총선은 어느 정당이 승리할까? 총선을 1년 여 앞둔 현재시점에서 정당 지지율과 ‘정권 지원론 vs. 정권 심판론’의 여론흐름을 보자. 우선 정당 지지율.윤석열 대통령 취임이후 지난주까지 실시된 여론조사는 모두 373개.주별평균 8.3개로 매일 1개 이상의 여론조사가 있었던 셈이다.이중 ARS 조사가 256개 면접조사가 107개였다. 지난 45주 동안 정당 지지율 흐름을 보면 첫째,국민의힘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때는 작년 지방선거 전후였다.당시 국힘 지지율은 주별평균 50%까지 육박했다.둘째,지방선거 이후 국힘 지지율은 하락하여 주별평균 40%이하로 떨어지고,민주당 지지율은 주별평균 40%를 돌파하며 양당 지지율은 역전된다.이 때가 7월 중하순인데 주별평균 40% 전후의 민주당과 30% 중후반대의 국힘 지지율 패턴은 12월 초중순까지 이어진다. 셋째,12월부터 2월초까지 민주당 약간 우위의 양당 지지율은 주별평균 30% 후반대에 머물면서 엎치락뒤치락 한다.넷째,전당대회를 전후해서 국힘 지지율은 민주당에 잠시 앞서는 모습을 보이지만 최근 한일정상회담과 69시간 논란의 여파로 민주당에 다시 역전 당한다. 다섯째,최근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 하락은 전통적 지지층의 이탈과 함께라서 주목된다.보수층과 영남 그리고 고연령층의 이탈이다.작년부터 시작되어서 전당대회를 통해 마무리된 젊은층의 이탈과 함께 복합위기의 국민의힘 지지율이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은 다시 하한선에 다가설 가능성을 보여준다.첫번째 하한선은 35% 전후인데 35%는 “바이든 vs. 날리면 논란” 때 ‘날리면으로 들은 사람들’이다.마지막 저지선은 25% 전후인데 이는 2017 대선 때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얻은 득표율이다. 다음으로 여야 심판론의 여론흐름.작년 11월부터 올 2월까지 여야 심판론의 여론조사는 모두 5개인데 모두 정권 심판론이 우세했다.그 중 3번은 여당 심판론이 50%에 육박했고 가장 낮은 게 47%였다.야당 심판론은 44%가 가장 높았고 36%가 가장 낮았다. 총선 1년 전에 좀 더 다가서는 올해 3월의 여야 심판론 여론조사도 5개인데 4:1로 민주당 우세다.국민의힘이 42% vs. 39%로 근소하게 앞섰던 것은 전당대회 직후 한 번뿐이다.정권 심판론은 낮게는 39% 높게는 55%였고 국힘 전당대회 전후를 제외하면 44%에서 시작하여 55%까지 계속해서 상승하는 추세다.최근의 민주당-국민의힘 지지율 역전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과거의 경험을 보면 실제 총선결과는 총선 전 여야 심판론의 흐름에 먼저 나타난다.예를 들면 2016년 총선을 7개월 여 앞둔 2015년 9월 조사를 보면 정부 견제론(42%)이 정부 지원론(36%)에 앞선다.총선을 2개월 여 앞둔 2016년 1월 말 조사에서는 정권 심판론이 50%를 넘기며 민주당의 +1 신승(123석)을 예고한다. 2020년 총선 1년 전인 2019년 4월 조사에서도 정부 지원론(47%)이 정부 견제론에 10% 포인트 앞선다.2020년 신년조사에서는 국민 절반 이상이 ‘국정발목을 잡는 야당을 심판해야 한다.’고 하고 여당 심판론은 30% 중반에 머문다.2020년 총선의 민주당 역대급 압승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2024년 총선승부의 핵심은 수도권이다.2020년 총선기준 253개 지역구는 122개의 수도권과 131개의 비수도권으로 나뉘는데 131개의 비수도권 중 64곳이 영남이다.따라서 253개 국회의원선거 지역구는 수도권(122)과 영남(64) 그리고 비영남(67)이다.양당 모두 수도권과 중도층 그리고 2040세대가 총선승부의 분수령이라는 말이다.내년 총선,이제 1년이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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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30 17:46

청안(靑眼)과 백안(白眼)

눈은 인간의 많은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 눈을 통해 신체 건강을 알 수도 있고, 마음의 상태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눈은 거짓말을 못한다.’는 말은 눈을 통해 상대의 마음 상태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심지어 동공을 둘러싸고 있는 홍채인식을 보안에 적용하는 기술이 있는가하면, 홍채를 통해 전생을 읽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는 상대방의 눈을 통해 상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나를 호의적으로 보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기도 한다. 눈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눈빛에는 꿀물이 뚝뚝 떨어진다고 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보는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하다고도 한다. 애써 눈을 피하는 사람은 숨기는 것이 있는 것이고, 이야기를 하면서 눈은 다른 곳을 향해 있다면 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탐내는 물건을 보면 눈에서 독(毒)이 나와 눈독을 들이기도 하고, 상대방이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며 눈에 붙은 살이 움직여 눈살이 찌푸려지거나, 더하면 눈에서 총이 발사되어 눈총을 주기도 한다. 눈은 독이 되기도 하고 총이 되기도 하여 내 감정이 상대방에게 가장 먼저 전달되는 인간의 기관이다.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한 사람인 완적(阮籍)은 눈빛으로 상대방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였다. 완적은 속세를 피해 산림으로 들어가 권력과 단절된 삶을 선택한 지식인이었기에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일단 속물이라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흰 눈동자로 상대방을 보았다. 일명 백안시(白眼視)의 시선법이다. 마주보고 이야기는 하고 있으나 동공은 다른 곳에 있고, 흰(白) 눈자위(眼)로 상대방을 보는 시선법이다. 백안시는 앞에 있는 사람을 유령취급하고 완전 무시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모멸감을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무시(無視)당하는 것이다. 시선(視)을 주지 않기(無) 때문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사람들은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명품으로 치장하기도 하고, 비싼 차를 타며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상대방의 시선이 나를 보아주기를 바라고, 부러움의 눈으로 바라봐주기를 바라는 인간의 인정 욕구이다. 반면 상대방을 존경하거나 인정할 때는 파란 눈으로 상대방을 보았다고 한다. 일명 청안시(靑眼視)의 시선법이다. 파랗게(靑) 빛나는 눈동자(眼)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호의를 표시하는 눈빛으로 가장 친근하게 대하는 태도이다. 백안시라는 말은 참으로 다양하게 사용한다. 곧은 사람이 의롭지 못한 이익과 자리를 보면 백안시하여 눈길 주지 않을 때는 좋은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여 상대방이 누구든 자신의 맘에 들지 않으면 깔보고 무시하여 백안시하는 것은 나쁜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다. 눈빛을 곱게 하고 상대방을 바라봐 주는 것만 해도 참으로 큰 보시다. 흰 눈동자를 뒤집으며 무시와 경멸의 눈빛으로 사람들을 대한다면 그 어떤 이유와 명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좋은 모습은 아니다. 아파트 승강기 안에서 만난 이웃에게 청안의 눈인사를 건네고, 세상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백안시당하는 분들을 따뜻한 청안의 눈빛으로 맞이한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임이 분명하다. 세상에서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큰 나눔이 눈빛과 얼굴빛이다. 생각이 다르다고, 노선이 다르다고 서로 얼굴을 찡그리며 흰 눈동자로 백안시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민망하기까지 하다.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하얀 눈동자를 푸른 눈동자로 전환하여 서로 아름다운 눈빛으로 대하는 그런 따뜻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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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23 17:50

불효자는 웁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잃으며 살아간다. 상실과 몰락은 생명을 품은 모든 존재의 불가결한 실존의 조건 중 하나다. 상실 없는 삶이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삶은 많은 것을 잃는 경험 가운데 빚어진다고 할 수 있다. 애착하는 것들은 망각과 소멸, 세월의 파괴 속에서 자취 없이 사라지는데, 이 상실은 달콤하고도 씁쓸하다. 생에서 가장 큰 상실은 혈연의 사라짐일 테다. 혈연 중 누군가 죽으면 유품들은 소각되거나 증여되고, 소수의 물품만 보존되는 행운을 맞는다. 이마저도 세월이 흐르는 와중에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다. 모든 어머니는 바쁜 천사를 대신해서 이 땅에 온다고 했다. 그 천사가 지상에서의 소명을 다 하고 떠난 지 몇 해가 지나간다. 올해도 돌아온 어머니 기일을 혼자 조용히 보냈다. 모란과 작약이 피기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사는 일에 치어 차츰 얇아지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어머니와 시골집 거실에 둘이 있던 어느 쓸쓸한 저녁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심상한 어조로 죽으면 화장해 달라고 내게 부탁을 했는데, 어머니 죽음을 염두에 두지 못했던 탓에 나는 놀라고 무언가에 찔린 듯 아팠다.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슬픔이나 쓸쓸한 자락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목소리가 하도 담담해서 내 마음은 패는 듯 아팠을 것이다. 어머니가 젊은 시절 때 나는 사춘기를 맞았다. 자식이 고분고분하지 않았으니 다루기 까다로웠으리라. 모성의 부재 속에서 보낸 유년기 내 무의식에 가라앉은 앙금이 원인이었을 테다. 어머니는 내 어린 입술에 젖을 물리고 배부르게 먹였겠지만 내겐 도무지 그런 기억이 남아 있지 않다. 열두어 살 쯤 되었을 때 서울에서 온 한 소년을 만났다. 어머니의 고향 친구의 아들로 우리는 곧 친해졌는데, 그는 제 엄마의 젖이 모자라 내 어머니의 젖을 자주 얻어먹었다는 얘기를 꺼냈다. 처음 듣는 얘기에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나중에는 기분이 야릇해졌다.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누구 잘못도 아니었지만 젖 떼자마자 유기로 인한 슬픔, 즉 스스로조차 인식하지 못한 분노와 고통이 내 무의식 어딘가에 각인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농부의 딸로 자란 어머니는 배움이 많지는 않았으나 아득한 눈빛을 가졌으니 딱히 불우하다고 할 수는 없다. 어머니는 결혼을 한 뒤 도시 변두리를 떠돌며 올라와 최저 생계수준의 삶을 이어가는 동안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가족 부양의 책임을 혼자 짊어졌다. 어머니가 모란과 작약 꽃을 사랑하고, 구불구불 흘러가는 강물과 골짜기를 사랑하셨다, 라고 나는 쓸 수 없다. 어머니는 가난이라는 최저 낙원에서 영혼이 깎이고 고통과 슬픔을 왜 감당해야 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삶을 견뎌냈다, 라고 나는 쓸 수 있을 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서울에서 홀로 보내시는 어머니를 시골에 마련한 거처로 모셨다. 늙어가는 아들과 늙은 어머니 사이에는 어느덧 세월의 더께가 두터워져 그럭저럭 안온했다. 어머니가 텃밭에 작물을 심어 가꾸는 걸 낙으로 삼을 때 나는 서재에서 책이나 꾸역꾸역 읽었다. 아들이 묵언수행 하는 라마승이었다면 노모는 착한 보살 같았다. 어머니는 변덕스러운 운명에 시달리다가 경기도 남부의 한 요양병원에서 시난고난하는 생애를 마감했다. 한 상조회사의 도움을 받으며 동생들과 함께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는데, 나는 시종 담담했다. 살아가는 내내 가족 생계의 무거움에 짓눌린 채로 가난의 무두질이 거듭되며 착한 본성은 활짝 피지 못한 채로 어머니 영혼은 삭막해지고, 내면의 부드러움과 덕성은 말라붙었을 테다. 시나 음악 같은 예술의 효용성을 받아들이지 못한 생전의 어머니에게 나는 반항했다. 철부지 아들의 성냄과 엇나감에 어머니는 난감했으리라. 더러는 엇나가는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뜬 눈으로 지새운 밤들도 있었으리라. 아, 어머니, 불효자는 웁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나의 어머니'라는 시에서 죽은 어머니의 체중이 얼마나 가벼운지 땅을 누르지 않는다, 라고 쓴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노화가 진행되며 몸피가 눈에 띄게 줄고, 죽은 뒤에는 나비보다 꽃잎보다 더 가벼워진다. 내 어머니가 묻힌 땅도 전혀 그 무게를 느끼지 못했으리라. 세월 갈수록 어머니를 겨냥했던 내 거친 분노와 메마름이 불효의 증표였다는 회한에 자꾸만 가슴이 아린 것이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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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16 17:08

그 드라마의 주인공

도합 12년이나 되는 초중학교 시절은 대체로 지겹고 칙칙한 기억으로 남았지만 즐거운 시간이나 중요한 배움이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경우 가장 기억에 남는 행복한 학교생활은 고2때 찾아왔다. 돌이켜보면 신기한 일이었다. 고2는 보통 코앞에 닥친 입시의 압박이 극에 달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공부 이야기는 오늘의 본론이 아니지만 이때 나는 성적도 일생의 바닥을 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정황들을 보자면 일생 가장 우울하고 두려운 시간을 보내야 옳았을 시기에 나는 가장 행복했다. 나만 행복했던 게 아니었다. 그때 우리반은 전교에서 가장 사이가 좋은 반으로 소문이 났다. 입시를 앞두고 까칠해진 사춘기 소녀들 60명을 모아놓았는데 믿을 수 없이 다정하고 화목했다. 그때 우리가 행복했던 것이 대체 어떤 모습이었냐고 말하면 딱 꼬집어 말할만한 일이 없다. 그냥 우리는 학교에서 마음이 편안했고 각자의 문제들을 잊은 채 수다를 떨며 하루를 보냈다. 가장 기억나는 남다른 풍경은 우리의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시간에는 수업시간동안 헤어져 있던 절친들이 다시 뭉치는 것이 중요했으므로 도시락을 들고 다른 반으로 뛰어가는 일도 흔했다. 인싸들은 커다란 그룹을 이루고 시끌벅적하게, 아싸들은 혼자 혹은 둘이서 조용히 밥을 먹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행복했던 우리 교실에서는 그런 소란스러운 재배치가 일어나지 않았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우리는 그냥 앉은 자리 그대로 네다섯명씩 짝지어 도시락을 나누어 먹었다. 몇 주에 한번씩 자리를 바꾸었는데,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새로 만난 이웃들끼리 새로 그룹을 이루어 종알거리며 밥을 먹었다. 곧 절친을 찾아 다른 반에서 달려오는 아이들이 없어졌다. 그들은 자기 절친이 낯선 아이들과 만족스럽게 밥을 먹는 모습에 놀랐고 절친들의 배타성이 없는 그 그룹에 굳이 끼어들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그들이 불평하지 않고 조용히 각자의 교실로 돌아갔던 것은 우리가 만든 희귀한 행복에 대한 존경의 의미였을 것이다. 우리 60명은 1년동안 절친도 왕따도 없이 오붓했다. 그것은 분명 흔치 않은 일이었다. 우리는 모두 우리 반이 특별하다는 걸 알았고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 아름다운 시간에 보이지 않는 연출자가 있었음을 깨달은 것은 어른이 되고 난 뒤, 관찰자의 시선으로 교실을 다시 보게 된 이후였다. 그 탁월한 연출자는 우리 담임선생님이었다. 20대 후반의 미혼여성이었던 그분은 아주 침착한 성격이었고 말수가 적었다. 사이좋게 지내라고 강조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분은 이런 식으로 움직이셨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어제 학급청소시간에 무엇을 했냐고 물으셨다. 나는 약간 죄책감을 느끼며 학생회 회의에 다녀왔다고 대답했다. 어쩌면 야단을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알았다. 다음부터는 청소시간에 회의하지 마.” 겨우 그것 뿐이었다. 나는 이후로 청소를 땡땡이치고 학생회 회의에 가는 얄미운 행동을 다시 하지 않았다. 그것이 보이지 않는 손, 또는 어른의 일이었다는 걸 깨달은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분이 그런 식으로 많은 일들을 보이지 않게 바로잡으셨으므로 우리는 누구나 사이 좋게 1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분은 한번도 그 일을 당신의 공적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우리 반 아이들이 참 착해서요.” 그때 우리반이었던 아이들 중에 유명인이 되거나 대 부호가 된 사람은 드물겠지만, 우리는 평범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영광의 시간을 살았다.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야만과 폭력의 일들로 한참동안 세상이 들썩였다. 드라마에서 보던 것보다 더 추하고 파렴치한 일들을 뉴스로 접해야했다. 아이들이 저지른 일이었지만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연출자가 있었다. 어른의 삶이 아이들의 삶을 연출하게 된다는 것은 놀랍고도 두려운 일이다. 나의 선생님은 모든 아이들이 싸우지 않는 행복한 1년을 연출했고 뉴스 속의 부모들은 법과 권력을 총동원한 학폭 드라마를 연출했다. 내가 연출한 폭력 드라마의 주인공이 내 자식이 되어 불행과 불명예까지 모두 그 아이의 목에 걸게 될 줄을, 그들은 알았을까. /심윤경(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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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09 18:21

김기현 레거시?!

한 주 앞으로 다가온 국민의힘 전당대회의 관심사항은 두 가지,김기현 후보가 결선 없이 당선되느냐 그리고 친윤계가 최고위원 5명 중 4명을 확보하느냐다. 최고위원 5명 중 4명이 사퇴하면 비대위 전환이 가능한 게 주류에게는 ‘최후의 안전장치’가 된다. 1월 중순부터 2월말까지 국힘 지지층을 상대로 한 32개 조사결과를 보면 첫째,안철수 후보는 1월 25일 ‘나경원 불출마’ 직후 김기현 후보에 앞서며 지지율 최고점을 찍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한다.2월 초가 분기점인데 “윤안연대 표현은 무례,국정운영의 방해꾼이자 적,공산주의자 신영복 존경하는 사람 그리고 안철수 당 대표되면 윤 대통령 탈당”여파의 영향으로 해석된다. 둘째,여론조사는 1 라운드 김기현 승리 가능성을 시사한다.2월 초 이후 김기현 지지율은 30% 중반대에서 45%까지 접근하는데 국힘 지지층의 40% 초반 지지율은 50%를 훨씬 넘는 당원투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경험론과 최근 당원구성의 변화로 알 수 없다는 주장이 엇갈린다. 그렇다면 김기현의 국힘 전당대회가 남긴 것은 무엇일까? 우선 정당의 공천이나 당직선거가 점점 개방화되는 추세의 반전이다.‘당원투표 70% + 여론조사 30%’ 방식은 2006년 강재섭 대표선출 때 도입된 이후 2021년 이준석 대표선출 때까지 사용된다.‘당원 100%’ 방식은 2003년 중앙당과 지구당이 인구비례에 따라 각각 50%씩 추천한 당원 23만의 선거인단 투표이후 처음이다.2003년 이전 대의원 투표에서 선거인단 투표로 바뀐 것 또한 정당 구성원의 참여확대였다. 당원 아닌 시민들이 여론조사든 직접참여든 처음으로 정당의 당직선거에 참여한 곳은 보수정당이다.2004년 박근혜 대표선출 때인데 민주당은 2012년 한명숙 대표선출 때에야 비로소 시민을 참여시킨다.박 대표는 여론조사였고 한 대표는 선거인단 방식이었다.2004년 당시 한나라당은 노무현 탄핵 후폭풍의 역대급 총선패배를 앞둔 상황에서 고육지책으로 선택한 게 시민참여로 알려져 있다. ‘당정 일체론’에 대통령의 ‘명예 당대표론’ 논란도 있다.민주화 이후 한국정치는 ‘입법부 vs. 행정부의 관계’가 아니라 ‘정부여당 vs. 야당’ 대립구도의 악순환이다.따라서 “(집권)당과 (대통령이) 혼연일체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 처음은 아니다.2021년 당시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청와대에 여당 의원들이 휘둘리는 것을 바꾸겠다.”고까지 했다. 민주화 이후 집권당과 대통령 관계는 크게 ‘대권-당권 통합형’과 ‘대권-당권 분리형’으로 나눌 수 있다.이승만 대통령부터 김대중 대통령까지가 통합형으로 이 때 집권당은 “여의도 출장소”로 전락한다.통합형은 ‘정부 주도 또는 지배형’이고 분리형은 ‘정당 주도 또는 지배형’이다. “대통령이 당을 장악해 의회를 지배하는 것은 유신잔재”라며 집권당과 대통령의 분리를 선언한 대통령은 노무현이 처음이다.이후 ‘대권-당권 분리형’의 ‘정당 주도 또는 지배형’이 한국정치의 규범이지만 통합형의 속성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게 현실이다.공천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어느 날은 신의 섭리에 따른 구세주로 찬양받다가 다음날은 단지 쓰러진 신상처럼 저주를 받는다.”고 한다.특히 “제왕적 대통령”은 내각제와 달리 선거이후 정부운영에 있어서 정당(그리고 의회)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갖고 있다.대통령이 “현대판 군주”가 되는 상황에서 집권당은 취약해진다. 따라서 집권당이 대통령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집권당이 ‘사인적(私人的) 대통령’의 민주적 책임성 부재를 극복하는 데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집권당의 역할확대는 결국 집단적 책임성의 강화다.정치적 책임의 주체를 개인에서 조직으로,사인적 책임에서 집단적 책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대통령의 정당인식이 핵심인데 특히 대통령의 개인적 특성이 결정적이다. 개방화와 견제와 균형 그리고 분권이라는 시대적 요구의 반전이 김기현 레거시일까? 김기현의 행보를 주목한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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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02 18:01

개학(開學)과 재학(再學)

학생들이 있는 집집마다 개학 준비로 분주하다. 중국에서 방학을 방가(放暇)라고 해서, 휴가(休假)의 뜻이 강하다면, 한국에서의 방학(放學)은 학교 밖에서 풀어놓고(放) 스스로 배우는(學) 배움의 연장이다. 한국인에게 배움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인생의 우선순위다. 전쟁 통에도 피난지에서 천막을 쳐놓고 배웠고, 공장 끝나고 야학을 하며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돈이 없어도 배워야 하고, 병이 들어도 배워야 하고, 나이 들어도 배워야 한다. 코로나 전염병도 배움을 멈출 수 없으며, 어떤 이유든 배움을 포기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며, 배움을 지속하는 것은 가장 위대한 인간의 모습이다. 오죽하면 죽고 나서도 후손들에게 자신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제사를 지낼 때 배우다(學) 살다간(生) 사람이라 써 달라고 하였을까?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 ‘평생 배우며 사셨던 우리 집의 어르신 나타나세요!’ 죽어서도 자식들에게 성공한 사람도, 돈 많은 사람도 아닌 평생 배우며 살았던 우리 아버지로 기억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유교 경전의 대표자인 <논어> 첫 구절은 배움의 기쁨(悅)에 대한 선언이다. 명품을 줄서서 사고, 새 차를 사는 기쁨도 있지만, 중독성이 강하고, 더 큰 물질적 욕망을 동반하기 때문에 소모적이고 일시적인 기쁨이다. 배움을 통해 꽉 막혔던 내 생각의 둑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생각과 만나 신세계를 만나는 기쁨은 그 어떤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는 희열(喜悅)이다. 거기에 배움을 함께하는 친구(朋)가 있다면 열락(悅樂)의 인생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배움을 좋아하는 호학(好學)이나 모르는 것을 묻기 좋아하는 호문(好問)은 인간에 대한 최고의 찬사다. 나보다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下) 사람에게 내가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恥)하지 않고 묻는 것은 성숙한 사람의 미덕이다. 인간은 배움을 통해 상승의 날개를 달고(下學上達) 저 먼 세상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배움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이동하는 가장 효율적인 이동 수단이다. 한국인에게 배움은 책 속의 지식만은 아니었다. 집에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밖에 나가 사람 공경하고, 신의를 지키며 일처리 잘하고, 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학교 문턱에 가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이미 배움을 이룬 사람이라고 여겼다. 학력은 높지만 도리를 모르고 인성이 안 된 사람은 헛배웠다고 비난받기도 한다. 배움은 지식으로서의 축적이 아니라 내 삶에 반영되어야 한다. 학습은 배움(學)이 습(習)이 되어 내 삶에 구동되어야 하는 것이다. 배우고 그저 귓가에 스치는 바람처럼 배움을 흘려보낸다면 나에게 배움은 어떤 작용도 하지 않는다. 하나라도 배웠다면 어떻게 실천하고 내 삶에 반영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배움은 다섯 가지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넓게 배우고(博學, 박학), 깊이 묻고(審問, 심문), 신중하게 생각하고(愼思, 신사). 명확하게 판단하고(明辯, 명변), 독실하게 실천(篤行, 독행)하는 과정은 배움을 더욱 단단하게 하는 과정이다. 김장독을 제대로 묻으려면 넓게 파야하고, 깊게 묻어야 하고, 생각하고 파묻어야 하고, 제대로 독을 놓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학생들은 개학(開學)하고 어른들은 재학(再學)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산다. 밀쳐놓았던 책을 다시 꺼내고, 나의 삶을 치열하게 질문하여 부족한 것은 묻고(問), 넘치는 것은 깊이 묻어(埋) 버려야 한다. 이제 배움은 출세나 과시의 도구가 아니라 나를 위한 일에 온전히 사용되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이 되어야 한다. 배움을 갖고 태어난 생이지지(生而知之)가 아니라면, 열심히 배워서 깨우치는 학이지지(學而知之)는 되어야 한다. 그것도 안 된다면 열심히 반복해서 깨우치는 곤이지지(困而知之)도 마다할 이유는 없다. 배움이 중지된 삶은 정신적인 혼수상태에 빠진 것이다. 꽃이 피고(開花), 배움이 열리는(開學) 때에 마음의 문을 열어(開心) 나의 수준을 높여 더 좋은 삶으로 나아가는 개선(開善)하기 딱 좋은 때이다. 다시(再) 공부(學)하자!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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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23 17:46

봄날엔 그 노래를 듣는다

벌써 도타워진 햇볕과 청명한 날은 추위로 웅크렸던 날에 대한 보상이다. 그래서 봄이 온다는 소식은 기껍다. 곧 한파를 견딘 산수유와 생강나무에 노란 꽃이 피고, 느릅나무와 버드나무 가지에는 연초록 새순이 돋을 게다. 아침에는 껍질 째 사등분으로 쪼갠 사과에 곁들여 호밀빵과 견과류를 챙겨 먹었다. 포만의 행복은 없지만 한 끼로 부족하지 않다. 봄기운을 더 느끼려면 둔덕이나 빈 밭에서 나온 냉이나 달래를 넣은 된장찌개와 머위나 두릅 같은 나물을 된장이나 액젓과 버무려 들깨가루를 넣어 곁들여 먹어야 한다. 입안에 퍼지는 흙냄새는 기력이 쇠해진 사람이 묵은 병마저 떨치고 일으켜 세울 만한 봄의 보약이다. 아직 조춘(早春)의 바람 끝은 차다. 이맘때 유독 알러지가 심해진다. 연신 재채기를 하고 콧물이 흐른다. 항히스타민 류의 약을 한두 알 먹지만 효과는 일시적이다. 약의 내성을 피하려면 몸의 면역력을 높일 수밖에 없다. 우리보다 한 세기를 먼저 살다 간 젊은 시인은 '바람이 부는데/내 괴로움엔 이유가 없다'(윤동주, '바람이 불어')라고 노래한다. 바람이 일깨운 괴로움엔 이유가 없다고 했다. 눈 녹은 물이 종일 흐르는 하천에는 일찍 겨울잠에서 깬 산개구리들이 모여 우는데, 어짜자고 어쩌자고 바람은 우리 안의 괴로움을 일깨우는 것일까. 낮엔 겨우내 덜컹이던 낡은 부엌문 문짝의 헐거워진 경첩의 나사못을 죄고 못이 빠진 판자에는 새로 못을 박는다. 봄볕 아래 낮잠을 자던 고양이들이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한다. 허기로 출출해져 서둘러 잔치국수를 끓여 한 그릇을 비우고 약수터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양지에 의자를 내놓고 무릎에 담요를 덮은 채 책을 읽었다. 책을 얼마나 읽었을까. 봄날의 낮은 까치 꽁지만큼이나 짧다. 누가 서편 하늘에 낡은 피를 한 양동이나 쏟았나? 어느새 뉘엿뉘엿 지는 해는 핏물인 듯 붉은 석양에 잠겨 있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다. 춥다고 실내에 웅크려 있던 아이들이 운동장에 나와 소리를 지르며 캐치볼을 하다가 돌아간 뒤 저녁답의 땅거미가 내려온다. 살아 있다는 것은 망각과 상실의 세월을 산다는 뜻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십여 년이 지났다. 어머니 애창곡은 옛노래 '봄날은 간다'였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그 노래 말고는 들어본 적이 없다. 어머니의 노래에 울컥했는데, 노래에 어머니의 온갖 슬픔과 시름이 다 녹아 있었던 탓이다. 앙가슴에 쌓인 회한의 내역도 아득해져 이젠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그 아득함에 맞물려 홍콩 영화 전성시대의 배우 장국영이 출연한 영화의 한 대사가 떠오른다.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날아다니다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딱 한 번 땅에 내려앉는다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어머니의 봄날은 짧았다. 발 없는 새 같이 산 어머니가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신 것은 이른 봄이다. 침상에 누운 어머니의 핏기 없이 하얀 발이 이불 밖으로 비어져 나왔다. 그 발을 무심코 쓰다듬었는데 얼음처럼 차가워서 섬뜩했다. 어머니가 임종을 맞는 순간 여동생 셋이 일제히 무너지듯 주저앉으며 오열했다. 2월 하순께 장례를 치르고 납골당에 모신 뒤 돌아왔다. 며칠 동안 어머니의 빈자리는 텅 빈 채로 허전했다.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고 혼자 있는데, 새벽마다 부엌에서 성경을 읽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시름없는 천국을 꿈꾸며 고된 생의 날들을 견디셨던 것일까. 아버지는 거듭된 사업 실패로 노동의 의욕을 잃은 채 오랜 세월 바깥 활동을 접고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어머니가 무기력한 아버지를 대신해 식솔을 챙기셨다. 초등학교 졸업 학벌에 기술도 익힌 게 없으니, 어머니가 감당할 노동은 남들이 다 기피하는 하찮고 궂은일뿐이었다. 이제는 어머니가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빈다. 젊은 날엔 봄도, 봄꽃에도 태무심하다가 나이 들어 봄꽃의 화사함을 알아보고 감탄하게 되었다. 부쩍 부고 소식이 잦은 봄날, 병과 죽음은 이렇듯 흔한데, 어쩌자고 어쩌자고 봄꽃은 마구 피어나는가? 담주엔 열일 제쳐놓고 봄 바다를 보러 떠나자. 눈이 시리고 가슴 탁 트일 때까지 통영의 쪽빛 바다를 보자. 중앙시장통 허름한 식당에서 도다리쑥국을 사먹고, 박경리 문학관도 둘러보자. 이튿날을 쌍계사로 건너가 대웅전 부처도 만나고 뒤뜰을 살뜰하게 돌아본 뒤 하동에서 재첩국수 한 그릇을 먹은 뒤 상행 열차로 돌아오자.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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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16 15:04

비효율의 효율

인간의 생애가 기적적으로 길어진 것을 감안하더라도 꼬바기 반평생을 흘려보낸 지금에야 깨달았으니, 나에게 ‘효율’이란 얄궂게도 효율을 가장 깎아먹는 구호였다. 동선과 시간을 생각해서 효율적으로 일하기는 나에게 전혀 효율적이지 않은 목표였다. 예를 들어 나는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은 잡동사니들을 담아둔 주방 서랍 세 개를 정리하자. 먼저 커피 한잔 마시고.’ 물을 끓이려고 보면 주전자는 싱크대의 가장 더러운 설거지거리들 아래에 파묻혀있다. 그 다음 단계는 이렇게 된다. ‘설거지 먼저 해야겠군.’ 하지만 커다란 곰솥을 보자 벌써 맥이 풀린다. ‘곰솥이 싱크대를 온통 차지하고 있으니 먼저 저것부터 씻어서 높은 수납장에 올려놔야겠다. 그런데 곰솥을 넣기 전에 냉동실의 우거지로 국을 끓일 생각이었는데. 국끓일 재료를 다듬으려면 시간이 또 많이 걸리겠네. 이러다가는 서랍 정리를 또 미루고 말겠는걸. 그러려면 아무래도 서랍 정리를 먼저 시작해야겠어. 그런데 내 커피는? 아, 주전자, 아, 우거지국. 해야할 일이 너무 많구나. 이렇게 많은 일을 해내려면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할텐데.’ 이러다보면 머리가 온통 뒤죽박죽이 된 채 아침밥을 기다리는 고양이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넋을 놓고 마는 것이다. 나처럼 일머리가 없는 사람은 효율 따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시작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그걸 깨닫는 데에 반평생이 걸렸다. 무작정 세 개의 서랍을 비우는 것으로 일을 시작한다. 서랍 세 개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 주방은 온통 발디딜 틈 없이 가득 차버렸다. 싱크대의 곰솥에는 눈을 질끈 감고 주전자만 건져내서 일단 물을 끓인다. 혁명이라도 일어난듯한 부엌바닥을 요령있게 비집으며 나는 커피를 한잔 타는 것까지 성공했다. 원두커피 생각이 간절하지만 이런 날은 더운물만 부으면 되는 달달한 믹스커피 한모금을 마시며 머리 속을 정리하는게 좋다. ‘다 됐어. 이제 이것들을 서랍에 도로 넣고, 사용하지 않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들은 버리면 돼. 해야할 일은 겨우 그것 뿐.’ 놀랍게도 겨우 그것 뿐이었다.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빈 수납장과 종량제봉투를 채우는 것, 내가 할 일의 양이 시각적으로 구체화되자 왠지 마음이 정돈되었다. 원두커피를 포기하고 믹스커피로 대신하는 것은 모든 것이 완벽하기를 기대하지 않는 것을 상징한다. 우거지국은 포기하고 일단 곰솥을 씻어서 넣는다. 높은 수납장에 올려놓을 물건을 한번에 모아서 한번에 올렸으면 효율적이었겠지만, 나는 오늘 사다리에 다섯 번쯤 올라갔다. 실은 정확히 세어보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했지만 나는 몇 번의 비효율적인 움직임을 포함해 끈기 있게 물건들을 정리했다. “이번에도 효율적으로 일하지 못했군. 순서를 좀 더 생각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 따위는 좀 전에 지나간 호랑이에게 물려 보내기로 한다. 실은 효율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져 오히려 손이 느려질 뿐이다. 과정의 비루함을 곱씹을 필요 없다. 똑같은 일을 두 번 할수도 있고 세 번 할 수도 있다. 하루를 꼬박 씨름한 끝에 두 개의 종량제 봉투를 채우고 세 개의 서랍을 정리했다. 그거면 됐다. 토끼해를 훌륭하게 시작했다. 내 친구에게 들은 어린시절의 일화가 있다. 고된 노동으로 자녀를 키우던 어머니는 퇴근해서 아이들을 보면 딱히 무엇이다 할 것 없는 칭찬을 하곤 했다. “내새끼들, 뭐라도 한다잉.” 제각각 그림을 그리고, 만화책을 보고, 라디오 음악을 듣고 있던 아이들은 별 생각이 없다가도 그 말에 왠지 힘이 났다. 필요한 일을 하는가, 효율적으로 하는가 하는 것은 어머니의 기준에 없었다. 그저 ‘뭐라도 하는 것’으로 어머니는 만족했고, 이것저것 하다보면 일머리가 생겨났다. 아이들은 씩씩하게 제 일을 하는 어른으로 자라났다. 효율적으로 일하라는 주문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먼저 도달하는 선불형 야단이다. 어머니의 지혜를 따라, 뭐라도 하는게 낫다. 하다 보면 언젠가는 빠르게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효율부터 외치지 말고, 두서없이 일할 시간을 주자. 먼저 나 자신에게부터. /심윤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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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09 16:28

‘윤석열의 정치와 권력’은 무엇으로 기억될까?

‘정치개혁은 사라졌다.’대통령의 중대선거구제 언급으로 선거제도 개편이 잠깐 주목받긴 했지만 지금은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나경원과 유승민은 출마하느냐? 김기현은 결선 없이 당선 되느냐?’ 그리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구속되느냐? 그 이후 민주당은 어디로 가느냐?’가 중요하다. 엊그제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이 출범했다.정치개혁을 주제로 한 의원모임은 ‘화해와 전진 포럼’ 이후 21년만이고 100명이 넘는 여야의원이 참여한다.국회의장은 “2월 말까지 정개특위가 복수안을 만들고 3월에는 전원위원회를 주 2회 이상 열겠다.”는 계획이다.총선 1년 전인 4월 10일이 시한이다. 작년 7월 여야합의로 구성된 정치개혁특별위원회도 “연동형 비례대표제 개선”을 목표로 한다.현재 20여 개에 가까운 관련 법안이 제출되어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폐지에 강조점을 둔 반면 야당 의원들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추가하며 적게는 3인에서 10인까지의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한다.유권자가 정당추천 후보를 직접 선정하는 개방형 비례대표제와 지역구와 비례제의 비중을 1:1로 한 법안도 있다. 대안은 다양하고 상상력의 영역이다.소선거구제를 하면서 권역별 비례제를 할 수도 있고 중대선거구제를 하면서 전국단일 비례제를 할 수도 있다.권역별 비례제를 연동형으로 하면서 소선거구제나 중대선거구제와도 결합시킬 수도 있다. 이 대목에서 두 가지가 중요하다.하나는 왜 선거제도를 개선 하느냐인데,인구와 지역대표성을 가능한 높이자는 것이 핵심이다.둘째는 ‘제도적 친화력’인데 선거제도가 다른 정치제도(정부형태나 대통령 선출방식 등)는 물론 정치문화나 관행 등과 서로 긍정적 영향을 주고받아 시너지를 내야한다 후자가 중요하다.중대선거구제는 ‘승자독식의 양당 혐오정치’에서 ‘공유와 타협의 다당제 정치’를 향한 대안의 하나로 볼 수는 있다.어떤 식으로든 비례성과 대표성이 강화된 국회의원 선거제도에 결선투표까지 더해진 대통령 선거는 국회와 정치권에 ‘문제해결의 다원주의 연합정치’를 제도적으로 강제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강화된 국회권한과 기능에 따라 일단은 ‘총리 추천제’에서 출발하여 최종적으로는 ‘총리 선출제’까지 이른다면 증오와 배제와 독점의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벗어나 ‘합의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결국 비례성과 대표성의 선거제도 개혁에서 출발하여 대통령 결선투표가 더해지고 국회의 총리추천에서 시작하여 국가원수의 직선 대통령과 원내 다수파 총리의 행정부 구성으로 완성되는 게 정치개혁의 완결이다.개헌은 정치개혁의 공식적 완료다. 정치개혁의 종합적 이해와 이에 따른 제도설계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리당략과 기득권의 포기’다.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없다면 포기는 불가능하다. 이게 가능한 사람은 현재 우리 정치권에 대통령 한 사람밖에 없다.윤 대통령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대통령 선거 한 번으로 자신의 정치인생을 장식한다.과거의 빚도 없고 미래의 정치적 부채도 없다.공동체의 기여밖에 없다. 윤 대통령의 중대선거구제 제안은 계획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개헌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던 것을 보면 대통령의 언급이 개헌까지 포함한 종합적인 정치개혁의 차원에서 검토된 것도 아닌 듯하다.지난 대선 때도 국민의힘은 정치개혁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이슈를 제기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승자독식과 지역대결 구도에 따른 양당 중심의 대립과 교착의 정치를 마감해야 한다는 과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고,이에 따라 국회의원 선거구제 개편을 시작으로 개헌으로 완결되는 정치개혁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한다면 ‘윤석열의 권력과 정치’가 한국정치에 남길 족적은 뚜렷하다.‘정치개혁의 대통령’이다. ‘나경원 사태’는 ‘어젠다 없는 정치인의 한계’를 보여준다.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 없는 권력과 정치는 실패한다.그들의 실패가 아니라 대한민국 공동체의 불행이다.‘시대정신과 역사적 책무의 인식이 출발점이다.윤석열 권력과 정치’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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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02 16:15

인생의 맛

코로나에 걸려 미각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도무지 살맛이 안 났다고 한다. 냄새도 못 맡고, 맛도 모르니 사는 맛이 안 났었다는 것이다. 음식의 맛을 못 느끼는 병을 미각장애 또는 미맹(味盲)이라고 한다. 맛에 깜깜(盲)하다는 것이다. 맛을 못 느끼는 병을 미맹이라고 한다면 인생의 맛을 못 느끼는 병을 생맹(生盲)이라 불러도 될 듯하다. 삶(生)의 맛에 깜깜하다는 의미다. 어느 날 갑자기 살맛이 안 나고, 재미있는 일도 없고, 사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면 생맹 증상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삶의 맛을 느끼는 센서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정신적 우울증이나 소진증후군 같은 이름도 생소한 병리 현상은 사는 맛에 이상이 생겨서 나타난 것이다. 건강한 자아에 균형이 깨지고, 재미와 의미의 맛을 느끼는 센서에 비상등이 켜진 것이다. 인생 사는 재미와 의미를 모르겠다고 자주 말하고 있는 나를 만난다면 심각하게 치료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중용(中庸)>은 균형 잡힌 인생을 사는 법을 설명하고 있는 고전이다. 균형 잡힌 인생의 극치는 인생의 맛(味)을 알고(知) 사는 것이다. 사는 재미(在味)와 의미(意味)를 음미(吟味)하며 사는 인생이 맛있는 인생이다. <중용(中庸)>에서는 맛을 잃어버린 사람의 병리 상태를 ‘지미(知味)’의 센서에 이상이 생겼다고 정의한다. ‘사람들은 모두 음식을 먹지만(人莫不飮食也, 인막불음식야), 제대로 맛을 알고(知味) 먹는 사람이 드물다(鮮能知味也, 선능지미야).’ 사람들이 자기중심을 잃고 불균형과 편향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세태에 대하여 공자는 맛을 모르는 병에 걸렸다고 정의하고 있다. 음식을 먹으면서 맛을 모르고 먹는 것이나, 인생을 살면서 삶의 맛을 음미하지 못하며 사는 것이나, 같은 병이라는 것이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은 항상 넘쳐서 맛을 모르고,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모자라서 맛을 모른다. 성공한 사람은 교만해서 맛을 모르고, 실패한 사람은 우울해서 모른다. 인생의 맛을 알고 산다는 것은 학력과 성공 여부와 상관이 없는 일이다. 감정의 불균형(中和), 자기 불신(愼獨), 현실적 판단의 부재(時中), 현실의 부정(自得), 지속성의 결여(能久), 선택의 부적절(擇善) 등 다양한 문제들이 맛을 못 느끼며 사는 인생의 원인이라고 <중용>에서는 열거하고 있다. 인생의 맛을 음미하지 못하는 생맹은 돈과 지위와 상관없이 나타난다. 자식을 좋은 대학 보내는 일에 인생을 걸었던 부모가 막상 목표를 이루고 나면 허탈하여 걸리기도 한다. 그토록 원하던 성공은 이루었는데 막상 돌이켜 보면 재미와 의미 없이 살아 온 인생이 후회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목표만 이루면 인생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막상 그곳에 이르렀다고 모두가 행복하지는 않다. 우울함의 근원은 결국 맛을 모르고 살았던 나의 삶에서 시작된 것이고, 소진된 인생의 에너지는 의미 없이 목표를 향해 뛰어온 결과다. 그때 비록 작지만 소중했던 시간에 재미와 의미를 느끼지 못한 결과가 지미(知味)의 기능을 고장 나게 한 것이다. 하늘은 인간을 이 세상에 살게 함에 재미와 의미를 모두 느끼며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었지만 모든 인간이 그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살아가지는 못하는 것이다. 지금 하는 일이 재미있고 의미도 있다면 무조건 해도 좋다. 그러나 도무지 재미도 의미도 만들어 낼 수 없다면 그만두는 것이 좋다. 재미는 현재(在) 좋아서 하는 것이고, 의미는 힘들어도 선(善)해서 하는 것이다. 편한 일을 한다고 재미있는 것은 아니고, 돈을 많이 번다고 의미 있는 일은 아니다. 삶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을 때 재미와 의미를 얻을 수 있다. 배를 채우기 위해서만 음식을 먹지 않고, 음식의 맛을 느끼며 배를 채운다면 한 수 위다. 성공하기 위하여 인생을 사는 것보다, 인생의 재미와 의미를 느끼며 목표를 달성한다면 높은 수준의 성공이다. 재미없는 일상과 의미 없는 인생으로 하나뿐인 삶을 낭비하지 말자. 고장 난 지미(知味) 센서를 복구하여 맛있는 인생을 사는 나를 만나자. 하늘(天)은 나에게 맛있게 살라는 명(命)을 내려 이 땅에 보냈으니까. 그 천명을 잊지 말고 한 해를 살아보자.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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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26 14:07

내 인생사용법

가끔 인생 뭐 별거 있나,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이런 생각은 주로 잠 안 오는 밤에 찾아온다. 물거품처럼 사라진 소규모 인생 계획들, 커피 삼천사백스물 세 잔, 후추와 소금 약간, 대통령 여럿, 쓰라렸던 백수 시절, 21그램도 채 안 되는 키스와 연애, 그리고 무수한 실패. 그게 특별할 것 없던 내 인생사용법이었다. 아들이 생기면 아이에게 야구 글로브를 사주고 둘이 캐치볼을 해야지, 했지만 그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사느라 바빴던 탓이라는 변명은 비겁하다. 거위처럼 어기적거리며 변명이나 늘어놓는 인생은 비루하다. 나이 드니, 그토록 혼란에 감싸였던 인생의 전모가 또렷하게 보인다. 시간이 완전함을 가늠하는 인생의 시험이라는 걸 부정할 수가 없다. 인생 처음의 시련은 벌에 쏘인 것이다. 설마 여섯 살에 통렬한 아픔 속에서 인생이 녹록치 않음을 깨달았다는 것은 아니다. 벌 쏘인 턱이 금세 부풀고, 마치 불에 덴 듯 따끔거렸다. 외손자를 들쳐 업은 외할머니는 찐 옥수수를 물려주며 달랬다. 벌에 쏘인 그 선연한 통증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요즘 들어 내가 여섯 살이었을 때 엄마라고 알았던 외할머니 얼굴을 자주 떠올린다. 평생 시 쓰기에 매달렸다. 열다섯 살 때 김소월 시집을 읽고 그 운율을 흉내내어 시를 적었다. 학생잡지 '학원'에 뽑혀서 활자화된 시를 길거리에서 여러 번 읽었다. 그 어린 시절 내가 쉰 해 동안이나 시를 미련스럽게 붙잡고 있으라고 어찌 상상이나 했을까? 시를 환대하고 정중하게 대했다. 시를 아는 것은 우주를 아는 것이라 여기고, 급류 같은 사나운 세월을 시라는 난간을 붙잡은 채 건너왔다. 시가 아니라 다른 일을 그토록 열심히 팠더라면 삶은 지금보다 더 나았을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스물일곱 살에 출판사에 사표를 내고 창업을 했다. 1인 출판사였다. 혼자 책상에 엎드려 코를 박고 기획과 원고 교정, 표지 디자인을 다 처리하고 인쇄소며 제본소를 쫓아다니며 제작 감리를 봤다. 운 좋게도 창업 직후에 낸 책이 기적 같은 성공을 거두며 직원을 두어 명 뽑고 사무실을 넓혀 이사를 했다. 내가 만들고 싶은 책들을 맘껏 펴내는 동안 출판사는 번창해서 직원이 서른 명으로 늘고, 창업 십년 만에 강남에 사옥을 지었다. 그게 내가 일군 사업의 정점이자 전성기였다. 필화사건으로 구속되고, 두 달 만에 집행유예로 풀려나서 출판사 폐업을 결심했다. 열다섯 해 동안 출판편집자로 책 만들며 보낸 세월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인생 후반부엔 제주도에서 작은 서점이나 꾸리며 살고 싶었다. 은둔 거사로 살며 멀 데서 온 젊은 벗들과 담소하고 오후엔 바닷가나 걷고 싶었다. 그 꿈은 이루지 못했다. 차선으로 시골에서 영농후계자로 살려는 야무진 꿈을 꾸며 경기도 남단에 집을 지었다. 봄, 가을마다 물안개가 집과 마당을 삼키는 시골에서 나는 처절하게 외로웠다. 낮엔 나무시장에서 사온 유실수와 관상수를 부지런히 심고, 밤엔 안성시립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으며 물안개와 고독을 견뎠다. 가끔 벗들이 들고 온 붉은 포도주나 동네 슈퍼에서 사온 좁쌀막걸리를 한잔씩 마셨다. 어둠 속에서 고라니나 너구리가 집 마당을 서성거리다 기척없이 사라졌다. 그 동물들은 야생이었다. 십오 년 뒤 영농후계자라는 난망한 꿈을 접고 시골을 떴다. 돌아보니 인생이란 미친 엄마가 품고 다니는 태아 같다. 우연이라는 날개를 달고 붕붕거리는 애처로운 인생아! 잘 사는 일이란 무엇인가? 곰곰 생각해보니 진실의 환한 빛 속에서 사랑하고 슬퍼하며 사는 것, 바람에 펄럭이며 마르는 빨래를 지켜보는 시간을 갖는 것, '일하는 육체와 창조하는 정신'으로 사는 것이다. 평생 읽는 자이자 쓰는 자로 살았다. 내 인생사용법에 실수와 오류가 없었다고 우길 수는 없다. 그러나 엉터리로 살지 않았다는 자부심조차 없는 건 아니다. 내 귀는 바흐를 듣고, 내 눈은 권진규의 '붉은 가사를 걸친 자소상'을 보았다. 청년 시절 추앙하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향인 지중해 크레타 섬을 찾아가 그의 돌무덤 위에 붉은 꽃 몇 송이를 바쳤다. 내 인생 추는 갈망과 현실 사이 한 가운데에서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균형을 이룬다. 그게 내 인생사용법이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근거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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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19 16:17

토끼처럼 다정하게

새해를 알리는 신문에는 맨몸 마라톤이나 바다수영 같은 힘찬 사진이 오르곤한다.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 사람들은 어딘가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만날 수는 없는, 청룡 주작 봉황 현무 같은 상상속 동물들인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가까운 친구가 새해 첫날 아침 제주도 바다에 뛰어든 사진을 보내왔다. 나는 입을 딱 벌리고 믿을 수 없는 친구의 모습을 여러번 보았다. 양력으로는 새해를 맞이했지만 아직 설날이 오지 않아 임인년이다. 호랑이와 토끼 사이의 이 날들은 한해를 돌아보고 맞이하기 적합한 때다. 나의 2022년은 거창하지 않으나 오목조목 잘 놀았던 좋은 한 해였다. 봄에는 친구들과 ktx를 타고 청주, 공주, 대전 등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녔다. 숲에서 가쁜 숨을 내쉬며 나누는 이야기는 카페에서 나누는 대화보다 훨씬 밀도가 촘촘하다. 밀린 근황을 나누며 숲길을 한시간 쯤 걷고 나서 도토리묵과 청국장 같은 옛날 음식을 먹었다. 누가 충청도 음식이 맛없다고 했는가! 가까운 곳에 아름답고 좋은 곳이 이렇게 많이 있는데 그동안 멀고 화려한 것들에 눈이 멀어 누리지 않았을 뿐임을 깨달았다. 여름에는 대학 동창들과 속초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 입학 30주년이라고 거창한 계획들을 세우다가 코로나 때문에 대폭 축소해서 가까운 속초에 펜션을 잡아 1박 놀고 오기로 했다. 여섯 친구들이 SUV의 맨 뒷자리까지 채우고 떠나며 우리에게 MT라는 배타적인 추억의 영역이 존재함을 깨달았다. 90년대 히트곡들을 틀어놓고 우리가 젊었던 날, 휴대폰도 없던 선사시대에 기타를 메고 떠나 종일 노래를 부르고 허름한 숙소에서 코펠에 밥을 지었던 오래된 기억들을 소환했다. 우리는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철부지이기도 했다. 연말에는 깜짝 선물처럼 중학교 동창들과 35년만에 재회하며 우리를 다시 이어준 SNS의 위력에 감사했다. 단발머리 소녀들이었던 우리는 직업도 사는 곳도 모두 달라진, 그러나 웃는 얼굴은 옛날과 똑같은 중년 여성들이 되어 다시 만났다. 우리에겐 '동네'라는 추억의 영역이 보장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시절 중딩들의 핫플이었던 떡볶이집, 만화가게, 약과공장 등의 안부를 확인하며 시간을 잊은 하루를 보내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토끼는 다산의 동물이고 가족을 상징하지만 나는 오늘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친구는 가족과는 또 다른 사랑의 영역이다. 가족이 배타적이고 결속력이 강하다면 친구는 열려있고 느슨한 관계다. 그 느슨함이 꽉 조인 생활 속에 긴장을 풀게 하는 무엇이 된다. 결혼과 출산이 극도로 드물어진 요즘 가족의 범위는 확장되기 어렵고 한번 상실하면 다시 충원하기도 매우 어렵다. 반면에 친구는 확대와 축소가 자연스럽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하룻저녁만에 가까워지기도 하고, 이런저런 형편이 여의치 않으면 절친이라도 뜸해지기도 한다. 오래 못 보던 친구라도 다시 만났을 때 오랜만이야!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하고 의자를 권하면 끝이다. 그 모든 것이 유연하고 자연스럽다. 조지 베일런트는 <행복의 조건>에서 1938년 시작돼 무려 70년간 이루어진 행복에 관한 종단연구를 소개한다. 이 연구에서는 하버드 법대 졸업생 집단, 아이큐 150 이상의 고지능 여성집단, 보스턴 슬럼가 출신 청소년 집단의 인생을 수십년간 추적해 인간이 노년에 느끼는 행복감을 결정지은 요인이 무엇이었는지 분석하는데 이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흔히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강이나 직업, 재산, 가족은 뜻밖에도 행복의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었다. 노년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행복과 가장 유의미하게 연관되는 결정적 요인은 친밀한 인간관계, 즉 친구의 힘이었다. 젊은 날에는 일과 가족, 여행과 건강 같은 것들이 우리를 감싸고 보호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우리는 그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팔다리의 힘을 잃고 가족도 먼저 보내고 돈도 더 이상의 기쁨을 주지 않을 때 인간의 곁에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사랑하고 교감할 수 있는 근원적 능력이다. 친구를 만나 잡담과 근황을 나누는 일은 소소하지만 핵심적인 행복의 근원이며 통장보다 더 중요한 노후대비이다. 호랑이의 기운을 잠시 내려놓고, 토끼들처럼 소소한 다정을 나누는 새해를 맞이해야겠다. /심윤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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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12 17:36

‘정치하는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회복세다.작년 11월 넷째 주부터 주별 평균 지지율 흐름을 보면 33%-37%-37%-39% 그리고 41%의 오름세가 12월 마지막 주까지 이어진다.새해 초 조사들도 대부분 40% 초반의 대통령 지지율이다.반대로 대통령 국정운영의 부정평가는 63%-60% -59%-57%-57%로 낮아지는 추세다. 반전이다.작년 5월 10일 대통령 취임이후 12월 27일까지 조사일 기준으로 실시된 여론조사는 모두 222개(면접조사 63개 ARS 159)다.대통령 지지율이 주별 평균으로 50%를 넘은 것은 취임이후 딱 5주차까지였다.이후 대통령 지지율은 주별 평균으로 40%대를 3주 동안 기록한 다음 11월 넷째 주까지 주별 평균으로 30% 초반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8월 첫 주와 둘째 주는 2주 연속으로 주별 평균이 30% 아래로 떨어지기까지 한다. 문제는 반전 회복세의 대통령 지지율이 내년 4월 총선까지 이어지느냐다.대통령 임기 중의 총선은 대통령의 중간평가로 대통령 지지율이 여당의 총선승부를 결정한다.대통령 취임일로부터 멀어지는 선거일수록 대통령과 여당에는 불리하다. 내년 총선은 대통령 당선(3월 9일)과 취임(5월 10일)의 중간인 4월 10일로 만 2년의 윤석열 권력심판이다.한 조사에 따르면 “국정 안정론(44%)”과 “국정 견제론(46%)”이 팽팽하다.중도층은 “야당후보 지지(48%)”가 “여당후보 지지(37%)”에 앞선다. 경제상황은 대통령 지지율의 기초인데 무척 나쁘다.작년 한국경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수출을 기록했지만 동시에 무역적자 또한 역대 최대치였다.최근 3개월 연속으로 ‘대한민국 경제의 희망’ 수출도 하락세다.‘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고현상’은 올해도 이어지고 성장률은 1%대라고한다.소상공인의 56%는 경영환경이 작년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로서는 올 하반기 세계경제 개선에 따른 회복세를 기대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경제와 민생악화는 사회적 양극화를 더욱 가속화 시킬 것이다.따라서 ‘공동체 지키기의 정치’가 필요하다.사회적 낙오자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줄 수 있어야 하고 실패자를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 확대가 요구된다. 올해는 대통령 임기 3년차에 치러지는 중간평가의 총선을 향한 ‘대통령의 시간’이다.윤석열의 이름으로 총선을 치르고 그에게 책임을 묻는 총선이다.‘윤석열 어젠다(Agenda)’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구체적 계획으로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윤석열 대통령은 ‘노동, 교육 그리고 연금의 3대 개혁과제’를 제시했는데 3대 개혁에서 어떤 성과를 실질적으로 보여주느냐가 핵심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노동조합 부패에 엄격한 법 집행해야 한다.”라는 주장에 55%가 동의했다고 한다.일부는 윤 대통령이 파업사태 등에 원칙적 입장을 견지한 것이 지지율 회복세로 이어졌다고 해석한다.“노조 부패척결”기조가 대통령의 지지층 결집과 지지율 상승이라는 것이다.윤 대통령 지지이유의 대부분이 “결단력”과 “공정과 정의”가 꼽힌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윤석열의 색깔’을 지키는 게 핵심이다.‘계획된 것인지 우발적인지’ 알 수 없지만 새해 초 대통령이 언급한 선거구제 개편의 정치개혁까지 가능하면 ‘윤의 정치’는 보다 확실해진다.당장 여당 내 반발 또는 불안감을 어떻게 관리할지 관심이다.“윤심”의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최근 “민심에서는 유승민,당심에서는 나경원 선두”의 전당대회 판세다.“자칭 타칭” 친윤 후보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양상이다.나경원 출마여부가 첫 번째 분수령일 텐데 “윤심”은 끝까지 전략적 모호성과 함께해야한다.내년 총선은 대통령의 중간평가이고 적어도 그때까지 여당은 대통령의 권력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대통령의 정치력이 핵심이다.‘공동체 지키기의 정치’도,‘윤석열 어젠다’의 구체적 성과창출도 그리고 ‘윤석열 색깔의 정치’도 그의 정치력에 달렸다.‘정치하는 대통령 윤석열’을 기대한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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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05 14:16

측은지심(惻隱之心)

이 엄동설한에 그 고양이는 어디에서 긴 밤을 떨며 견디고 있을까? 문득 아침마다 밥 먹으러 오는 길고양이 걱정이 든다. 어느 날 학당 앞에서 배고픈 표정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어, 먹이를 사서 몇 번 주었을 뿐인데, 이 추위에 얼어 죽지는 않았을까 괜한 걱정이 드는 것은 무슨 마음일까? 나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그 고양이가 오늘밤을 무사히 견뎌내고 아침에 먹이를 먹으러 와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무엇일까? 공자는 그것을 사랑(愛)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면 그가 살기를 바란다(愛之欲其生, 애지욕기생).’ <논어>의 짤막한 이 구절은 인생을 살면서 자주 가슴 떨리게 하는 구절이다. 사랑은 아끼는 마음이다. 아끼는 대상은 잘 살아 있기를 바란다. 내가 타고 다니는 차가 상처 없이 잘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그 차를 아끼기 때문이다. 내 자식, 부모형제가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다. 그런데 고양이는 나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내가 키우는 고양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에게 다가와 꼬리를 흔들어 대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 그 고양이가 이 추운 겨울을 잘 보내고 살아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나와 인과 관계가 있듯 없든, 인간이라면 타자의 불행에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고, 타자의 불행에 대하여 차마 참지 못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유교의 마음 이론이다. 안 보이는 타자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 측은지심(惻隱之心)이고, 보이는 타자의 불행에 대한 슬픔이 불인지심(不忍之心)이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박노해 시인의 이 시를 읽으면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측은지심과 불인지심이 느껴진다. 측은(惻隱)은 내가 모르는 이(隱)에 대한 슬픔(惻)이다. 불인(不忍)은 내 눈앞에 벌어지는 불행을 참지(忍) 못함(不)이다. 나와 관련 없는 존재의 아픔을 공감하고, 내 눈앞에 불행을 차마 두고 보지 못하는 마음이 있어 인간은 여전히 아름다운 존재다. 낮에 본 장터의 거지들의 안녕을 걱정하고, 나와 전혀 관련 없는 뒷산에 노루와 토끼의 생사를 염려하는 할머니의 그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 할머니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뉴스가 하나 들려왔다. 워싱턴 D.C에서 출발하여 나이아가라 폭포로 가던 한국 여행객들이 버펄로 시 부근에서 폭설을 만나 타고 가던 밴이 눈 속에 고립되었다. 눈 치우는 삽을 빌리러 간 집에서 40대 부부가 한국 여행객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음식을 나누고 함께 지냈다고 한다. 그 부부는 일면식 없는 이방인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들의 음식을 나누고, 안식처를 내주었다. 내 집 앞에서 눈에 고립되어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사람들을 차마 두고 보지 못하는 불인지심과, 그들의 고통을 측은하게 여기는 측은지심을 발휘한 것이다. 나의 선행이 널리 알려져 명예를 얻고자 함도 아니고,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였다고 훗날의 비판을 면하고자 함도 아니었다. 그저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할머니의 마음을 그대로 실천한 것뿐이었다. 몸이 불편하여 대중교통을 편하게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 졸지에 사랑하는 가족을 사고로 잃고 힘들어 하는 가족들, 안전을 위하여 좀 더 나은 노동 조건을 요구하는 노동자들, 가족과 미래를 위하여 이역만리 한국 땅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이 잘 살기를 바라는 할머니의 마음이 절실한 시대다. 어린 시절 우리의 배를 토닥이며 들려주시던 측은과 불인의 마음 자장가, 그 자장가 소리가 다시 우리 사회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 해가 저물고 새 해가 오면, 그 전설이 현실이 되고, 그 자장가가 애창가가 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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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29 13:50

늦게 찾아온 그리움

자고 일어나니, 간밤에 폭설이 내렸는지 천지간이 하얗다. 키가 큰 전나무 가지마다 쌓인 눈이 소담하다. 전나무 너머 너른 회색빛 하늘 아래 먼 산도 순백이다. 고요가 켜켜이 쌓인 날에는 턴테이블에 즐겨듣는 음반을 찾아 올리자. 오늘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나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을 듣자. 음악이 주는 환희와 위안에 기대어 스스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자. 음악의 무아지경 속에서 마음의 격랑은 잦아들고 가슴은 기쁨으로 벅차오른다. 폭설이 내린 날에도 생명 가진 것들은 몸을 움직여 먹이를 찾느라 바쁘다. 먹고 사는 일은 사람이나 담비와 족제비들, 말과 황소들, 뭇 조류에게도 생명의 숭고한 업이다. 산수유나무 가지에 달린 빨간 열매를 쪼으러 곤줄박이 몇 마리가 날아든다. 곤줄박이가 산수유 열매를 쪼는 광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일하러 나간 어머니를 종일 기다리던 어린 날의 저녁들, 붉은 피에 잠긴 황혼이 사라지고 어둠 내린 마당을 가로질러 오신 어머니가 부엌에서 서둘러 쌀보다 보리가 많은 밥을 안치던 섣달그믐을 떠올린다. 마당엔 차가운 어둠이 차오르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걸린 하늘엔 별 한 점도 안 보였다. 저녁밥을 기다리다 지친 소년이 깜빡 잠이 들면 어머니는 기어코 흔들어 깨운다. 소년은 잠이 덜 깨어 비몽사몽 중이다. 그런 소년이 한밤중 밥상 앞에서 목구멍으로 넘기던 밥은 꺼끌꺼끌 했다. 가난은 조금도 자랑스럽지 않았다. 그 시절의 남루와 모욕을 견디고 살 만큼 용기를 준 것은 어머니다. 오, 열이 펄펄 끓던 소년의 이마에 차가운 손을 얹던 어머니, 나를 변함없이 사랑해주세요! 계절은 삐걱거리는 거룻배처럼 흘러가고, 당신 가슴 속 숨은 비탄과 환희는 감히 짐작조차 못하던 소년은 늙어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어요. 자식을 위해 늦은 저녁밥을 짓고, 구호물자로 받아온 우유를 데우던 어머니는 지금 이 세상에 안 계시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겐 날마다 뜨는 태양이다. 그 태양이 사라진 세상은 텅 비고 어둠은 고집 센 바위처럼 여린 마음을 짓누른다. 나는 행복했던가? 눈 덮인 겨울 마가목 열매는 붉고, 태양계에 속한 행성은 제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돈다. 그런 세상에 사는 동안 나는 아주 불행하지는 않았다. 내 안에서 죽음과 무가 자라난다. 나이 들어 허리가 굽을 때 우리 안의 짐승들은 살이 쪄서 뚱뚱해진다. 그런 불행쯤은 견딜 만했다. 봄엔 모란과 작약 꽃이 피고 여름밤엔 반딧불이가 꽁무니에 푸른 인광을 단 채 군무를 추었으니까. 무엇보다도 자기 몫의 감자도 심지 않고, 대리석으로 마을을 건설하는 업적을 남기지 않아도 우리 낡고 해진 옷을 꿰매고 떨어진 단추를 달아주던 어머니가 살아 계셨으니까. 오후에도 폭설에 덮인 세상은 여전히 고요하다. 돌이켜보면 좀 먹은 옷감 같이 헐벗은 내 영혼을 위로해준 건 어머니, 바다, 음악들이다. 어머니는 안 계시고, 바다는 저 멀리 있다. 그런 오후엔 잔치국수 한 그릇으로 출출한 배를 채우고, 행복에 겨워 가르릉거리는 고양이를 품에 안고 음악을 듣자. 오, 살아 있는 동안 당신의 어머니를 사랑하라. 어머니가 세상을 등진 뒤라면 편지 몇 줄이라도 쓰자. 그 편지를 부칠 데가 마땅치 않더라도 괜찮다. 어머니가 계신 천국의 주소를 아는 자식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다. 우리 피난처이자 안식처인 어머니가 이 세상에 안 계신 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들짐승처럼 세상을 헤매던 자식을 안아줄 어머니가 안 계시다면 우리는 탄식을 하고 말겠지. 적막이 늙은 개처럼 짖는 밤에 우리는 흙이라도 한 줌 삼키는 심정으로 어머니를 그리워하겠지. 어머니, 무릎에 앉아 새처럼 종알거리던 소년은 늙었어요. 이게 믿어지시나요? 어머니도 믿지 못하실 거예요. 어머니, 어디에 계시든지 자식들의 때늦은 탄식과 그리움을 기억해주세요. 저희에게 부디 시련과 고난을 견딜 용기를 주시고, 죽음의 휘둘림에 의연하게 맞설 담대함을 갖게 해주세요. 어머니, 당신을 사랑합니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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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22 13:55

김장을 담그며

어릴 때 나는 왠지 김장 담는 모습을 보면 ‘저 사람들은 진정한 어른이다’라고 혼자 속으로 존경심을 가지곤 했다. 초겨울이면 리어카에 실린 배추 더미가 이집 저집 마당으로 들어가고 동네 여기저기서 김장을 담갔다. 산더미같은 배추와 다라이에 담긴 고춧가루 양념, 고무장갑을 끼고 목에 수건을 둘렀지만 추위로 코가 빨개진 여자 어른들. 고른 두께로 곱게 썰린 무채와 비린내가 나는 젓갈, 알싸한 마늘과 생강. 노란 배춧속과 붉은 고춧가루와 푸른 쪽파가 이루는 선명한 색채의 대비. 그것은 정말이지 오감을 자극하는 현장이었다. 부드럽게 절여진 배추 사이사이 김장양념을 채워서 장독에 차곡차곡 쌓으면 1년치 식탁을 책임질 김장이 되었다. 나는 가끔 절인배추에 빨간 양념을 바르는 과정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어린아이의 부드러운 피부에 매운 양념이 닿으면 안된다고, 어른들은 재미삼아 한두번 발라보게 한 후 서둘러 나를 부엌에서 쫓아냈다. 어린 내가 보기에 김장은 고된 노동과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삶의 현장이었고 사람이 자라서 어른이 된다는 것의 성대한 기준 중 하나는 김장을 담는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김장을 담근 이웃들이 한번 맛이나 보라며 접시에 담은 김치를 나누어주기도 했다. 김장철이면 삶은 돼지고기와 생굴과 갓 담은 김치가 저녁 상에 자주 올랐다. 나는 삶은 돼지고기를 조금 먹었을 뿐 굴도 날김치도 먹지 않았으므로 내 입장에서는 김장철이면 오히려 먹을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 분위기만은 즐겼다. 김치와 함께 부침개나 내가 먹을만한 것들이 따라오는 일도 있었고, 집집마다 김치의 맛과 모양이 조금씩 다른 것도 흥미로웠다. 옆집에서 온 김치 갈피에서 조그만 새끼 조기가 통째로 발견된 날 우리 가족들은 한참 웃었다. 우리는 김장김치에 해물을 많이 넣지 않았으므로 그 작은 생선을 김치와 함께 으적으적 씹어 먹어치울 자신은 아무도 없었고 양념을 씻어내고 프라이팬에 굽는 것이 어떻겠냐는 우스개가 저녁식탁을 오갔다. 김치 갈피를 헤치며 여기도! 여기도! 하고 작은 생선들을 찾아냈던 그 저녁은 어린 나에게 특별히 흥겨웠던 날이었다. 자라서 직업을 가지고,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키우고, 거울에서 흰머리와 주름살을 어렵지않게 만나게 된 이후로도 나의 어른 되기는 완성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집안일에 익숙해져갔지만 김장만은 쉽게 도전하지 못했다. 해마다 양가 어른들이 보내주시는 김장김치가 넉넉해 김치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고 김치 소비가 많지도 않았다. 어쩌다 배추나 무가 생기면 배추전 무전을 부쳐 먹었다. 하지만 5년전 어느날 텃밭에 취미를 붙인 친구가 배추 세 통과 무 두 통을 선물로 주자 전을 부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분량인 것이 한눈에도 확실했다. 나는 벌벌 떨면서 인터넷을 뒤져 초보용 김장 레시피를 검색했고 시장에서 젓갈과 고춧가루를 사왔다. 밤새도록 비장하게 배추를 절였고, 그렇게 얼떨결에 우리집의 김장이 시작되었다. 덜 절여진 배추가 김치뚜껑을 열고 살아 나왔다느니, 김장이 물러져서 모두 버릴 수밖에 없었다느니 하는 초보김장괴담은 일어나지 않았다. 첫해부터 맛있는 김치가 담가져서 내가 가장 놀랐다. 겨울이 다 가기도 전에 김장김치를 다 먹어치워서 새로 담그기까지 했다. 실은 첫해 김장이 가장 맛있었고 다음 해부터는 첫해의 기적적인 맛이 재현되지 않았다. 레시피를 바꾸지도 않았는데, 첫해 김장의 비결이 뭐였을까? 아마 고소한 텃밭 배추의 위력이 아니었을까 짐작할 따름이다. 이듬해부터 텃밭 배추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맛있는 김장이 만들어졌다. 자식은 평생 어린애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던 부모님도, 내가 김장을 담기 시작하자 갑자기 나를 동등한 어른으로 존중하기 시작했다. 이후로 해마다 배추 여섯 통으로 김장을 담고 있다. 올해는 배추값이 내 김장 역사상 가장 쌌던 해였다. 김치통 하나를 가득 채우면 끝나는 소량 김장이지만 우리 세 식구 1년 먹기는 충분하고, 이웃들에게 한쪽씩 먹어보라고 돌리는 재미는 충분히 누릴 수 있다. 김치를 주고 김치를 받는 재미있는 거래가 일어나기도 한다. 내 김치도 맛있지만 이웃들의 김치는 더 맛있다. 굴과 갓 담은 김치와 삶은 돼지고기로 이 계절의 정찬을 즐기며, 성냥갑 같은 아파트 살이에도 소소하게 남은 이웃간의 정을 기쁘게 누린다. /심윤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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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15 14:10

여야의 리더십을 주목한다

최근 여야 리더십이 주목받는다. 여권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과 인식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며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의 자격기준과 선출방식 등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제1야당 민주당에서는 이번 주 취임 100일을 넘긴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되면서 파장이 이어지는 양상이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3월 초순이 유력해 보인다.정진석 비대위 임기가 3월 13일까지라는 게 일단 기준 시점이다. 그 전이냐 그 후냐 정도가 쟁점인데 비대위 체제를 가능한 빨리 정상화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다. 문제는 누가 차기 당 대표로 적합 하느냐는 것이다.“수도권에서 대처가 가능하며 (상식·공정·정의의 미래) MZ세대에 인기가 있어야 하고 안정적으로 공천을 할 수 있는 대표”여야 한다고 하자, 한 쪽에셔는 “수도권 출신 당 대표론은 지역감정을 부추긴다.”고 비판한다. “거론되는 당권주자 중에서 당 대표를 뽑느냐,좀 늦더라도 새로 사람을 찾아서 하느냐 이런 문제도 정리가 안 됐다.”는 언급은 “한동훈 차출설”에 다시 불을 붙였다.“ 대통령이 그런 말씀을 하셨을 리 없다.”고 반박하고 한 장관 본인이 직접 “중요한 일 많아 장관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한다. “한동훈 차출설”은 결국 대통령에게 부담이다.물론 대통령은 한동훈 논란에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윤심이 한동훈에게 있다는 것을 띄워서 국민과 당원의 반응을 보려했다.”는 해석은 지나친 상상력의 산물일 수 있지만,“관저 갔다 와야지 (당 대표에) 낙점이 된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의도하지 않은 메시지를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7:3 당원투표와 여론조사 비율을 9:1로 바꾸자는 주장은 “수양버들 당 대표”를 향한 구체적 실행수단이라고 해석한다. “당 대표는 우리 당원들이 뽑는 것”이라고 하자 “특정후보를 배제하거나 지지하기 위한 룰 변경 오해”를 받는다고 한다. 정당들이 국민세금 받는 만큼 가능한 민심을 반영해야 하고 당원만으로 하려면 정당의 국고보조는 반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국민의힘 차기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2024년 총선승리다.“의회 권력교체 없이는 진정한 정권교체의 완성이라 볼 수 없다.”는 말이 정답이다. 총선승리를 향한 베스트 리더십 조합의 창출이 정진석 비대위의 역할이다. 윤 대통령은 집권당의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그래야 짧게는 총선승리를 통한 윤석열 권력 임기후반의 안정과 보장이 가능하고 길게는 보수가치의 연속성과 지속성을 위한 토대확보가 가능하다. 그게 윤 대통령의 역사적 역할이다. “77.77%”의 역대 최고 득표율로 당선된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위상이 위협받고 있다. 대표취임 전인 8월 4주차와 12월 첫 주차의 민주당 지지율을 비교하면 3% 포인트 떨어졌다. 국민의힘 지지율에 큰 변화가 없었고 무당파가 같은 기간에 3% 포인트 늘어난 것을 보면 민주당 지지율 하락이 뚜렷하다. 8월 중순 대통령 취임 100일 이후 지속되고 있는 ‘30% 대통령 지지와 60% 대통령 반대’라는 최근 여론흐름에 따른 민주당 반사이익조차 없었다는 말이다. 특히 핵심 지지층에서의 지지율 하락은 민주당으로서 아쉬운 대목이다.20대와 40대는 지난 100일 동안 민주당 지지율이 9% 포인트 하락했다.30대에서도 7% 포인트 하락했다. 진보층에서도 7% 포인트 지지가 빠진 것을 보면 결국 민주당 지지율 하락은 40대와 진보층의 이탈이 결정적이다. 여야 리더십 논란은 2024 총선을 향한 승부의 시작이다. 국민의힘은 “여의도 출장소”나 “체질적 충성여당”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권력을 선도하는 집권당이 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다. 민주당은 “이재명 방탄”과 “분당 가능성”의 우려에서 벗어나 “유능한 대안야당”으로 거듭 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다. 여야의 리더십을 주목하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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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08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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