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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선유도와 이순신 - 조상진

군산항에서 배를 타고 남서쪽으로 50㎞쯤 가다보면 고군산(古群山)군도에 닿는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크고 작은 섬들이 어깨동무하듯 모여 있다. 행정구역상 옥도(沃島)면에 속하며 선유도를 중심으로 신시도 야미도 무녀도 장자도 등 10개의 유인도와 20여개의 무인도를 아우른다.

 

이곳은 고려시대 이래 해운교역상 중요한 위치였다. 여송(麗宋) 무역로의 기항지로서, 몽고 일본, 멀리 대식국(아라비아) 상인까지 드나들었다. 당시는 만경현 소속이었다.

 

조선시대 들어 태조 6년(1397)에는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선유도에 수군부대 만호영을 두었다. 그에 앞서 1380년 최무선이 진포(현 군산시) 일대에서 왜선 500척을 무찌른 쾌거는 유명하다. 하지만 왜구들은 수군이 있는 선유도를 우회해 금강하구지역을 노략질하곤 했다. 그래서 세종때 선유도에 있던 군산진을 진포로 옮기고 군산도(島)는 옛 고(古)자를 붙여 고군산이라 칭했다.

 

이어 선조 2년(1569)에는 김영아문이란 관청을 설치하고 수군절제사가 상주했다. 이 수군절제사는 임피군창(軍倉) 만경 김제 부안 무장 고창 영광 등 8개 군현을 관할했다.

 

이곳 선유도는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임진왜란 당시인 선조 30년(1597) 9월 21일 위도를 거쳐 선유도를 찾아 12일간 머무른 것이다. 명량해전에서 크게 승리한후 이 사실을 임금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계를 작성하며 휴식을 취했다. 난중일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9월 21일 새벽에 나서서 고군산도에 이르니 호남순찰사 박홍로가 내가 왔다는 말을 듣고서 배를 타고 옥구로 갔다는 것이다./ 10월 초1일 아들을 보내서 저의 모친도 보고 집안 사람들의 생사도 알아보게 하였다.… 아산(牙山)집이 적에게 분탕질 당해 잿더미가 되어 남은 것이 없다고 한다./ 10월 초3일 새벽에 배를 띄워서 법성포로 돌아왔다."

 

또 신시도에는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이 글을 읽던 월영대가 있었다.

 

군산시는 최근 이순신 장군이 머물던 선유도 진영 복원사업을 서두르고 있다. 11월께 학술세미나를 갖고 용역을 맡길 것이라고 한다. 고군산군도는 탄력을 받고 있는 새만금사업과 함께 머지않아 국제해양관광단지로 탈바꿈될 예정이다. 이에 발맞춰 선인들의 숨결을 되살리는 것도 괜찮을듯 싶다.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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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진 chos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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