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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자만동금표(滋滿洞禁標) - 조상진

전주시 자만동(滋滿洞)은 지금 교동으로, 한옥마을 인근 높은 곳에 자리잡은 동네를 가리킨다. 정확히 말하면 승암산(중바위) 자락을 따라 한벽루 이목대 오목대를 잇는 능선 밑으로 형성된, 향교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녹엽성음(綠葉成陰), 자만지운운(子滿枝云云)의 고가(古歌)에서 따왔다고 한다. 예전엔 나무가 꽤 울창했던 모양이다. 한벽당에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흘러 옥류동(玉流洞)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곳 산의 이름은 발산(鉢山)이다. 중바위에서 탁발하러 오는 스님의 바리때(鉢盂)를 닮았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바리때는 스님이나 부처님의 밥그릇으로, 이를 엎어 놓은 형상이라는 것이다.

 

또 이씨 왕조가 일어난 산이라 하여 발이산(發李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성계의 4대조인 이안사가 태어나 산성별감과 다투고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20여년을 살았던 곳이다. 그래서 이목대에는 고종황제가 1900년 써서 내린 목조대왕구거유지(穆祖大王舊居遺祉)라는 친필 비석이 세워져 있다.

 

오목대는 이성계가 남원지역에 출몰하는 왜구를 소탕한, 소위 황산대첩을 거둔 후 들러 종친들을 모아놓고 크게 잔치를 베푼 곳이다. 이 자리에서 한고조 유방이 불렀다는 대풍가(大風歌)를 부름으로써 왕조창업의 뜻을 드러냈다. 이를 기리고 황혼녘 왕조를 지키고자 고종은 친필로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古皇帝駐畢遺祉)라는 비문을 남겼다.

 

이처럼 자만동은 조선 건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인재를 배출한 명당이다. 조선 개국공신으로 집현전 직제학을 지낸 최담이 말년에 이곳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조선의 명필 이삼만과 조선 중기의 풍운아 정여립(?)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또 일제 초기 옥류동 최학자로 유명했던 최병심도 이곳 출신이다.

 

때 마침 조선왕조 직계의 생활터에 대한 출입금지를 알리는 자만동금표(滋滿洞禁標)가 문화재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 화강암으로 된 이 표지석은 높이 62㎝, 폭 31㎝로 1900년 오목대비 이목대비 조경단비와 함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금표는 해당지역의 벌목이나 개장, 채석 등을 금하는 경계석이다.

 

조선왕조의 뿌리가 전주임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문화 콘텐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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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진 chos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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