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 판문점 선언은 군사·정치변화뿐 아니라 한민족 기상 다시 세울 것
나는 10대 후반부터 20여 년 동안 전국을 돌아 다녔다. 버스를 탄 것도, 기차를 탄 것도 아니다. 오로지 두발로 하루에 오십여리를 걸으며 이 산하와 맨살을 부딪쳤다. 인문학의 필수인 천문과 지리를 온 몸으로 익혔다. 눈을 감고 있어도 대한민국 어디든 위치와 형세, 특징, 각 고을 사람 특유의 억양과 사투리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남북정상의 판문점선언은 각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 경제협력을 판문점 공동선언문에 전격 포함시켰다. 남북정상은 2007년 ‘10·4 선언’에서 합의한 사업을 전격 추진하며 1차적으로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현대화하겠다는 일정표를 제시했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가 해제되면 남북경협을 통해 70년간 단절된 남북의 혈맥이 연결되고 한반도가 하나의 경제권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걸어서 도달할 수 있는 끝까지 가봤다. 땅 끝 마을에서부터 설악산 끝까지. 북으로 향하는 길은 ‘민통선’이 가로 막았다. 강원 고성이 끝이었다. 그럴 때 마다 북한의 개마고원을 거쳐 백두산 천지에 도착하는 모습을 그리곤 했다. 광개토대왕이 누비던 길을 걷고 싶었다. 10대와 20대 푸르른 청춘의 꿈이었다.
포기했던 그 꿈이 ‘판문점 선언’을 통해 다시 새싹을 틔우고 있다. 도보가 아니어도 좋다. 철도여도 좋다. 남북정상은 동해선과 경의선을 연결하고 현대화하는 것을 남북경협의 첫 번째 사업으로 제시했다. 동해선은 부산~포항~영덕~삼척~강릉~원산~함흥~청진~나진~러시아 하산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동해안 구간이다. 대륙으로 곧장 연결되는 노선이다.
동해선이 이어지면 부산에서 출발,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나 만주횡단철도(TMR)을 타고 러시아를 거쳐 유럽에 도착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분단으로 반도국의 이점을 살리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대륙과 해양을 연결해 중심축 역할을 할 수 있는 반도의 지정학적 이점을 갖고 있었으나 ‘냉전의 벽’에 가로막혀 섬처럼 고립됐었다.
분단 70년은 우리의 삶과 기질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대륙으로 통하는 길이 막히다 보니 우리도 모르게 좁은 땅에서 피 터지게 제 살 깎기 경쟁을 하는 소인배로 일부 전락했다. 원대한 꿈이 망상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대의가 공허한 이상으로, 대범함이 허세로 손가락질을 받았다.
대륙으로 가는 길이 열리면 우리에게 잠재된 기마민족의 특성이 만개할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력,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대담성과 속도, 세계로 뻗어 나가는 호연지기가 꽃을 피울 것이다. 고립된 섬 같은 상황에서도 기마민족의 본성을 잃지 않으며 강대국들의 위협 속에서도 억척스럽게 살아남아 글로벌 톱을 향해 전진해 온 저력이 물 만난 고기처럼 때를 만날 것이다.
판문점 선언은 군사-정치적 변화 뿐 아니라 경제와 한민족의 웅혼한 기상을 다시 일으켜 세울 일대 사변이다. 그동안 결박된 ‘대륙적 기질’이 풀려나는 기분이다. 국가와 민족의 병을 치유하는 중의(中醫)가 되겠다던 초심을 잃지 않았는지, 정치적 생존을 최우선으로 삼지는 않았는지, 당리당략에 매몰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본다.
대륙으로 향하는 철도길이 열리면 아무리 바빠도 우리 젊은이들과 기차를 타고 유럽의 끝까지 가련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경제와 IT, 문화, 예술 분야 등에서 ‘제2의 칭기즈칸’이 되는 부푼 꿈을 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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