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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때 유럽의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 군의관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병명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시철망 병’입니다. 이 병은 극도로 우울해지고 먹어도 살이 찌지 않으며 전신이 쇠약해져서 누워만 있으려는 증세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병은 원인도 모르고 치료의 방법도 없었습니다. 다만 철망 속에 갇혀 사는 상황에서 온 병이라고 하여 가시철망 병이라고 불렀습니다.그런데 이 환자들의 행동에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거의 하루 종일 투덜대고 불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시철망이 희망을 빼앗아갔다고 생각해서 계속 불평만 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수용소에 살면서도 끝까지 견디어내고 살아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철망을 넘어서서 푸른 하늘을 보고, 철망 밑에 핀 작은 들국화를 보며, 고향도 그려보고, 사랑하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내일을 꿈꾸던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에게는 ‘가시철망 병’이 없었고 마침내 살아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절망은 가장 치명적인 병입니다. 인간의 의지를 꺾습니다. 기력을 잃게 만듭니다. 주위 사람까지 쓰러지게 만드는 전염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절망의 마지막은 죽음이요, 패배입니다.그러나 내일에 대한 소망은 오늘의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가진 능력을 한없이 증가시킵니다. 모든 일에 승리를 가져다 줍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빌라도의 법정에 섰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내 종들이 싸워 나를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18:36). 예수님은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내일에 대한 소망을 가지셨고, 그 소망으로 고난을 이기셨던 것입니다.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들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든 절망 대신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소망이 있는 한 실패는 없기 때문입니다. 단 환난을 이길 수 있는 소망은 오직 주님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온 낙심거리를 세상의 소망으로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오직 주님 주시는 지혜와 주님을 바라보는 소망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시71:14).소망은 단순히 지혜로운 생각이 아니라 신앙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과 소망은 하나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삶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소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기독교인 환자를 치료하고 있던 어떤 의사가 그 환자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러한 확신과 기쁨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까?” 그때 환자의 대답이 이러했습니다. “의사 선생님, 나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상태를 당신의 손에 맡겼습니다. 나는 지금 당신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통해서 오늘도 평안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소망의 삶을 통해 얻어지는 축복입니다. 삼중고에 시달렸던 불구자 ‘헬렌 켈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망은 성공에 이르는 신앙이다.” 한 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가슴 깊이 새겨놓아야 할 말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29:11).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셨던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 찼지만, 악한 세대를 본받지 아니한 노아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배를 만들게 하셨다. 심판을 면한 노아의 후손 중에 일부는 진안군 상전면 금지 배넘실 마을에 정착하였다고 믿는다. 진안문화원은 홍수로 물이 넘실거릴 때 마을진산으로 배가 넘어 다녔기에 배넘실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 앞산에 무지개가 걸려 있는 날들이 많다. 또한 이 지역은 용담댐이 생길 때에 많은 마을들이 수몰되었지만 금지 배넘실마을은 물에 잠기지 않아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배넘실은 전국에서 하나 밖에 없는 고유명사이다. 배넘실교회가 있는 진안 배넘실마을은 홍수설화에서 유래되었다. 배넘실은 노아가 홍수를 극복하고 구원받은 것처럼 어떤 고난과 풍파도 이겨내고 사랑과 자유와 평화가 넘치고자 하는 의미도 담겨있다. 배넘실은 마을주민총회의 결의에 따라 금지마을의 예명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했던 이사야는 해함도 상함도 없는 천지만물이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의 땅이 도래할 것이라 말했다. 이러한 역사가 이루어지는 배넘실마을이 되도록 기도하고 있다. 배넘실마을은 황토방과 황돗배가 있고 당나귀마차와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산들엄니밥상이 있는 곳이다. 볼거리, 체험거리, 먹거리 그리고 숙박이 준비된 곳이 배넘실마을이다. 2012년 농림수산식품부는 배넘실마을을 가고 싶은 농어촌 100대 마을로 선정하였고 전라북도는 최우수 향토산업마을로 선정하였다. 2013년 농민신문사와 농협은 전국19개 향토음식 중에 하나로 배넘실마을을 선정했다. 그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주민 대다수가 마을수입을 가지고 해외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2007년에 일본여행을 하였고, 2013년에는 중국여행을 갈 수 있었다. 비록 몇 분은 고령으로 여행 도중에 쓰러지기도 하고, 인천공항에 휠체어로 입국한 최고령자도 있었지만, 평생토록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농촌과 마을을 지키며 살아온 주민들이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가슴 벅찬 기쁨이었다. 이러한 축복을 누리도록 배넘실마을을 도와주신 분들은 하늘에 별 만큼이나 많았다. 아무 조건 없이 도와주신 그 분들이 아니었다면 배넘실마을의 꿈은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다. 날마다 천사 같은 그 분들에게 감사하며 그 분들의 평안과 축복을 빌고 있다. 천지만물이 더불어 살아가는 해함도 없고 상함도 없는 곳은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창조주 하나님이 도우시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배넘실마을의 꿈이 이루어져 주님께 영광이요 우리에게 평강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하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할 것이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지난달 22일 사제단 소속 전주교구 사제들의 시국미사와 관련해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밝혔다. 정의구현사제단은 4일 낸 입장문을 통해 "시국미사는 민주주의 토대가 뿌리째 뽑혀나가는 현실에 위기감을 느끼면서 근본적 개선을 촉구하는 자리였다"며 "대통령과 각료들, 여당은 강론의 취지를 왜곡하고 이념의 굴레까지 뒤집어씌움으로써 한국천주교를 심히 모독하고 깊은 상처를 안겨줬다"고 말했다. 사제단은 "양심의 명령에 따른 사제들의 목소리를 빨갱이의 선동으로 몰고 가는작태는 뒤가 구린 권력마다 지겹도록 반복해 온 위기대응 방식이었다. 여기에는 신문과 방송의 악의적 부화뇌동도 한몫했다"고 주장했다. 사제단은 "봄부터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 개입을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요구가 종교계 등 각계각층에서 빗발쳤다"며 "그러나 대통령은 원칙에 충실했던 검찰총장과 수사팀장을 몰아내며 수사를 방해하고 부정선거를 말하면 종북몰이의 먹잇감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사회와 종교계의 질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통과 독선, 반대세력에대한 탄압으로 일관하는 공포정치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다"며 "지금이라도 모든 것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남이 명예로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 "교회가 권력에 저항할 때마다 역사는 무거운 대가를 요구해왔지만 불의에 대한 저항은 우리 믿음의 맥박과 같다"며 "우리는 가시밭길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며이는 사제들에게는 기쁨이며 당위다"라고 했다. 사제단은 "유신독재의 비참한 결말은 모든 집권자에게 뼈아픈 교훈이다. 새 하늘, 새 땅을 기다리며 참회하고 속죄하는 시기인 대림절을 맞아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전면적인 회심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불의에 맞서는 일에서 우리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대한불교조계종은 3일 주지급 승려들이 일반인에게도 개방된 종단의 연수시설에서 밤새 술판을 벌인 사실이 확인돼 감찰조사에 나섰다고 밝혔다. 조계종에 따르면 승가대 동기인 승려 10여 명은 지난달 28일 밤 충남 공주의 한국문화연수원 레크레이션룸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튿날 아침까지 술자리를 계속했으며, 소주 한 박스와 맥주 세 박스 분량의 술을 마신 것으로 파악됐다고 조계종은 전했다. 술을 마신 승려들 가운데는 지난 10월 총무원장 선거 때 자승 스님 캠프에서 활동한 조계종 중앙종회 3선 의원이자 한 사찰의 주지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계종은 "정확한 경위를 조사한 뒤 적절한 징계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2009년 '전통불교문화원'이란 이름으로 문을 연 이 연수원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일반인과 기업 연수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대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과 600명이 이용 가능한 교육 및 연수시설을 갖췄다.
겸손이란 남을 대할 때 거만하지 않고 공손한 태도로 제 몸을 낮추는 것이며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겸손은 자기보다 남을 존중히 여기며,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상대방의 의견을 폄하하지 않는 것입니다. 겸손은 섬김 받기보다 섬기는 것이며, 이해 받기보다 먼저 이해하는 성품입니다. 또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지 않고 배우려고 내려앉아 조용히 청취하는 자세입니다. 겸손은 높임 받기보다 낮은 자리에서 겸허하게 섬기는 것이며,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찬 마음을 비워 종의 자세를 가지는 것으로서 우선순위에서 자신을 맨 나중에 두는 마음 자세입니다. 겸손은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여 관용적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다. 겸손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하여 노래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슬픔에 같이 슬퍼하는 마음입니다. 겸손은 스스로 자신을 높이거나 다른 사람에 의해 높임 받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더 자신을 살펴보면서 자신을 비우는 자세입니다. 또한 높아지는 것은 내러가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겸손은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않는 마음이며 참음으로 이겨내는 마음입니다. 겸손은 그 어떤 영광스러움도 자신만을 위하여 누리기보다, 모두 함께 누리고자 하는 마음 입니다. 겸손은 자신의 보잘것없는 이성의 이해력과 경험으로 판단하지 않고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생각하는 지혜로운 성품입니다. 겸손은 가장 소중한 성품입니다. 논어에 보면 지혜로운 생각이 투철하더라도 어리석은 듯 함으로 지켜나가고, 공덕이 천하를 덮을지라도 사양함으로 지켜나가고, 용기와 힘이 세상에 떨칠지라도 겁내는 듯 지켜나가고, 부가 온 누리에 가득차 있을지라도 겸손함으로 지켜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더불어 가는 우리사회의 이상적인 삶의 성품은 겸손함입니다.사람밖에 사람있고, 하늘위에 하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자기만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기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겸손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겸손히 섬길 때 괴로운 일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자한 말을 가지고 겸손히 섬기며 형제와 이웃을 감화시킬 때 진정한 삶의 기쁨과 보람, 참 평강과 승리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겸손히 섬길 때 힘든 일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손한 태도로 섬기며 형제와 이웃을 친절히 대할 때 장래의 소망이 될 것입니다.그러므로 겸손이 앞장서야 합니다. 자아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겸손으로 살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인간적인 능력을 과신하기 때문이며 교만이 앞서기 때문입니다.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현재의 삶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는 우리의 기억속에 살고 있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는 우리의 상상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선도 악도 다 알지만 교만한 사람은 선도 악도 다 모르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힘들지만 멀리 돌아갑니다. 왜냐하면 가장 멀리 돌아가는 것이 가장 빨리 집에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교만은 미래의 희망을 보지 못하지만 겸손은 희망을 봅니다.겸손은 치료입니다.부족한 상태에서 넉넉한 상태로, 문제의 상황에서 해결의 상황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의 상황으로, 막힌 상황에서 열린 상황으로, 부서진 상황에서 고쳐진 상황으로 치료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하면 현실성 없는 요구와 자기주장만 고집함으로 합리적인 타협과 해결책을 이루어내지 못합니다. 우리사회의 원만한 인간관계의 답은 겸손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18:12)
전북 군산지역 목회자 20여명이 지난 대선에서의 국가기관 개입 진상 규명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했다. 군산 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소속 목회자 20여명은 2일 군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18대 대통령선거를 부정선거로 규정한 뒤 "부정으로 당선된 박 대통령은 모든 죄를 국민 앞에 사죄하고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또 "우리 목회자들은 예수 그리수도의 신앙과 양심으로 현 한국정치의 현실을 보며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면서 "사람의 권리가 보장되는 민주질서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에 시국선언을 한다"고 덧붙였다. 협의회는 대통령 사퇴 촉구 시국기도회(9일)와 금식기도(1625일)를 계획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에 이어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로 기록되고 있는 최양업 신부가 중국에서 수학 후 첫 입국지가 현재 신시도 기념탑 부근으로 밝혀져 군산의 종교문화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이 같은 지적은 천주교 전주교구(교구장 이병호 주교)가 주관하고 호남사회연구소(소장 이영춘 신부)와 (사)쌍백합 주최로 지난달 30일 군산시립도서관에서 열린 최양업 신부 신시도 행적기념심포지엄에서 나왔다. 차기진 양업연구소장은 최양업신부와 신시도를 주제로 한 연구 발제에서 최양업 신부는 1842년부터 7년 동안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유학지 마카오에서 귀국로를 탐색하는 데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의 신시도 입도와 체류는 네 번째 탐색여정에 해당된다고 밝혔다.최 신부가 신시도에 입도한 뒤 천주교 신자를 만나 완전히 조선으로 귀국하는 것을 염원했으며, 1847년 9월 부안 대공소의 한 신자를 비밀리에 만나면서 그 가능성을 찾았으나 완전 귀국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다시 상해로 가야만 했다는 게 차 소장의 설명.차 소장에 따르면 신시도는 바로 최 신부가 귀국로 탐색 과정에서 처음으로 조국 땅을 밟았던 곳이며, 한 달간 체류하면서 완전한 귀국을 염원했던 의미있는 장소인 만큼 관련 기념비 건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박재길 (주) 뉴스컴퍼니아 이사는 최양업 신부와 새만금주제발표에서 최양업 신부를 중심으로 한 스토리텔링 도입, 생태역사문화관광 중심의 순례길 조성, 군산 근대역사자원과 연계한 콘텐츠 개발 및 활용 등을 제안했다. 이와 함께 신시도 주변 최 신부의 흔적을 명소화시켜 신시도의 상징공간으로 만드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지난 2002년 한국 천주교회에서 시복시성으로 추진, 현재 교황청 시성성에 제출돼 시복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필자가 목회 26년 중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가정이 있다. 김○○집사 가정인데 농촌지역임에도 작은 농기계에서부터 자가용까지 남부럽지 않게 살던 김 집사네는 딸도 넷 있었다. 문제없는 집이 없겠지만 김 집사에겐 외아들로 자라난 성인아이적인 외골수만 없었다면 지금도 행복한 가정이었을 것이다. 문제의 시작은 술과 도박 그리고 외박. 그땐 서울로 학교를 다니는 기간이어서 금요일 집에 도착과 동시에 심방을 통한 부인 김 집사를 위로하는 것이 제일 급선무이었다. 그것도 잠시 끝내 부부는 이혼과 동시에 나는 그 교회를 사임하고 임지를 옮기게 되었다.목회 초년 때라 더 많은 격려와 위로, 그리고 목회적 돌봄이 있었다면 하는 회한이 창세기 제2장을 읽는 순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아마 찬 바람이 간밤에 많이 불어서일 게다.성경은 원색적으로 이혼을 금한다. 왜냐하면 남편에겐 부인이 바로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 한 발 더 나아가 에베소에 보낸 편지를 통해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을, 남편은 아내를 사랑할 것을 설교하고 있다. 왜 사랑인가. 사랑 많이 부부관계의 해답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랑의 방식에 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 펴냈다.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하더라도 반드시 부부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현 시대적 흐름에 우리는 응답해야 한다. 사랑으로…남자는 머리라면 여자는 목이다. 목 없는 머리는 앙꼬 없는 찐빵이다. 더 나아가 머리는 목이 가는 방향으로 가야만 한다. 그래서 여성 상위시대가 정답이다. 사실 여자는 남자보다 재료도 월등히 좋고 강한 존재들이다. 박인비선수를 보라! 인비마마께서(?)는 올해의 선수를 LPGA에서 당당히 수상하였다. 보편적으로도 그렇다.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도 남편 밥이며 아이들 학교에 보내는 시중을 다 하곤 한다. 창조 재질을 보더라도 남자는 흙, 여자는 뼈로 만드셨다. 둘이 붙으면 흙은 잘게 부서지지만 뼈는 오히려 반질반질 윤기가 더 흐른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혼한 부부 들 중 여자쪽이 훨씬 돌싱녀를 자처하면서 초라한 더블보다 화려한 싱글이 더 좋다며 유유자적하곤 한다. 그렇다고 이혼을 조장하거나 방임하는 목사는 아니다. 부부 중 부인의 신앙 중요성을 말하기위해 에둘러 여기까지 말한 것이다. 여자 신앙의 중요성은 4대를 결정한다. 남편, 자녀 손자, 부모까지 4대들의 가정의 행복과 불행, 천국과 지옥을 한 손에 움켜지고 있는 분들이 바로 부인들이시다.내가 좋아하는 목사님들 중에 장경동목사님께서 모 프로그램에서 남자는 ○○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다. 나도 그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동감을 표했다. 남자는 무엇일까요? 남자는 늑대다. 남자는 도둑이다. 그러나 정답은 아니다. 남자는 돼지다. 이것이 정답이다. 돼지는 밀어서는 넘어지지 않는다. 돼지들인 남자들을 한 방에 KO시키려다가 오히려 카운터펀치를 얻어맞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남자가 돼지라는 걸 모르기 때문이다. 기꺼이 손을 내밀어 등을 긁어 주고 턱밑을 섬섬옥수로 쓰다듬어줘 봐라. 그 돼지는 힘을 다 빼버리고 털썩 누워 버리게 될 것이다. 이것이 기술이다. 콧소리를 내는 것도 큰 방법이다. 약간 코맹맹이 소리로 맞장구를 쳐봐라!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은 가변적(changeable)입니다. 먼저 자연 세계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변합니다. 우리가 인식하든 하지 못하든, 자연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시간마다 변하고 매일 변화가 일어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를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태산도 변하고, 거대한 강줄기도 결국은 변합니다. 태어난 날이 있음으로 마지막이 반드시 찾아오는 것입니다.둘째, 인류 역사에서 왕국들과 나라들이 변합니다. 한 때 전 세계를 호령하며 수천 년을 이어갈 것 같았던 왕국들이 어디로 갔습니까? 부유하며 능력이 많으며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문명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바벨론이나 페르시아, 헬라제국이나 로마제국의 흥망성쇠를 생각해 보십시오. 해가지지 않는다던 나라 대영제국의 위상도 100년을 넘기지 못했고, 전 세계를 양분하여 호령하던 소련도 불과 70년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이 만드는 것은 가변적인 것일 뿐입니다.셋째, 사람도 변합니다. 그 모습이나 성품이나 결심들이 얼마나 쉽게 바뀌고 있습니까? 우리의 몸, 믿을 게 못됩니다. 우리의 마음 또한 믿을 수 없습니다. 그토록 사랑한다던 가슴 뛰는 맹세가 하루아침에 휴지조각 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국에 얼마 전에 왔던 닉 부이치치라는 아주 유명한 신앙인이 있습니다. 그는 태어났을 때 해표지증이라고해서 아기를 낳고 보니까 양 팔과 다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발바닥만 있고 처음에는 발가락도 없었는데 의사가 수술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는 발가락으로 다 합니다. 연주도 하고, 컴퓨터도 잘치고 음악도 하고 그는 발가락으로 다합니다. 이 사람이 바로 닉 부이치치입니다. 어머니가 간호사인데 닉 부이치치를 낳고 나서 너무 당황해서 4개월 동안 아이를 보려고 안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아이가 우리 집에 태어났는지 유전적인가? 아닙니다. 닉 부이치치의 동생 둘이 태어났는데 딱 보니까 닉 부이치치만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장하면서 아버지가 목사님인데 "부이치치야, 너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 너를 특별히 사용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어" 그것을 깨닫게 하는 겁니다. 닉 부이치치는 8살부터 세 번이나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며 일어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축복을 전하는 인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생애 극적인 변화가 있습니다. 한번은 그가 고등학생 때 전교회장에 당선된 후였습니다. 한번은 자기 학교에 호주 출신의 강사가 왔습니다. 140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비좁은 강당에 모였습니다. 막 웅성웅성대고 분위기는 산만했습니다. 그런데 이 강사가 강단에 서자마자 첫 마디를 하는데 "여러분 저의 어머니는 몸을 파는 매춘부였습니다." 아이들이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10대 시절에 길거리에서 저를 낳았습니다. 저를 기를 수가 없어서 우리 어머니를 아끼고 사랑하는 한 아주머니가 저를 입양해서 저를 자기 집에서 키웠습니다. 그 집도 6명이 되는 식구가 있지만 저를 사랑해주고 아껴주셨습니다. 저는 그 분의 사랑 안에서 이렇게 좋은 강사가 되도록 성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말합니다. 어떻게 부모, 성장 환경을 바꿀 수 있습니까? 못 바꿉니다. 그러나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매춘부의 아들로 태어난 자기 운명이지만 자기는 미래를 개척할 때 어머니께 감사하고 전 세계를 다니는 강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닉 부이치치의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모임에 가서 간증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그 간증을 듣고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청년들이 닉 부이치치의 간증을 듣고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났습니다. 마약을 끊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자기 얼굴을 못 생겼다고 저주하며 열등감에 살아갔던 아이들이 닉 부이치치의 강연을 듣고 나서 행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닉 부이치치는 팔도 없고 다리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믿음 안에서 늘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그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믿음 좋은 집안의 딸을 아내로 맞이해서, 아들을 낳아 정상적인 아이로 잘 키웁니다.여러분 우리 인생은 어떻게 바라보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올해 초 순창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으로 부임했다. 전 부임지 남원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다문화업무를 봐 왔던 터에 법인의 인사방침에 의해 순창군으로 옮겨온 것이다. 순창군센터는 개신교 법인에서 3년간을 운영해 오다가 작년에 원불교 산하 법인으로 운영주체가 옮겨졌다. 덕분에 직원들의 종교성향이 다양하다. 개신교와 천주교, 불교, 원불교를 신앙하는 직원들이 함께 다문화라는 공동 목적지를 향해 올곧게 노력하는 것이다. 사실 다문화와 다종교는 한 의미이다. 인류역사에서 종교를 배제하고 다양한 문화를 논할 수 없는 것이다. 일례로 한국의 문화를 보면 불교와 유교, 그리고 근현대사 문화재로 등록되는 천주교와 개신교 건축물이 상당수에 이른다. 유교의 합리주의에 바탕한 불교, 천주교, 개신교가 한집안에서 사이좋게 공존하는 것이다. 이런 점은 외국에서는 사례를 찾을 수 없어 미국 국무성이 다종교 화합국 연구로 한국을 주목할 정도란다. 필자가 근무하는 순창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센터장실에는 일원상과 십자가가 함께 모셔져 있다. 처음에는 일원상만 걸었었는데 직원들이 어려워하는 것 같아 베트남에 갔을 때 어렵게 구해온 나무십자가를 함께 걸었다. 일원상을 위로 하고 그 밑에 십자가를 모셨는데 교회에 다니는 직원이 눈치를 주어서 십자가를 위로 하고 일원상을 밑으로 하니 이번에는 원불교 직원이 센터장님 정체성이 의심된다고 되레 눈치를 주어 할 수 없이 수평으로 하여 모셔놓았다. 그 밑에는 역시 중국, 베트남과 일본, 캄보디아에서 모셔온 성모마리아, 부처님 등 종교의 상징물들을 안치하고 인류 성현들의 뜻을 받드는 기도를 올리고 있다. 원불교에서는 1년에 재사를 두 번 올린다. 육일대재와 명절대재가 그것이다. 육일대재는 원불교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의 열반기일을 맞아 합동으로 모든 선진열위전에 공동으로 향례를 올리고 명절대재는 한 해 동안 조상님들의 은덕으로 오곡백과를 풍성하게 거두고 건강하게 잘 살게 되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추수감사절의 성격이다. 그런데 두 번의 재사에서 이 세상의 정신사를 열어주었던 모든 종교 스승님들(선성각위 - 先聖各位)의 위패를 모시고 예를 올린다. 불교와 유교, 천주교, 개신교, 천도교, 증산교 등 자비와 인의, 사랑, 박애, 은혜를 전해준 모든 성자들의 뜻을 받들고 정신을 이어받아 이 땅에 낙원세상을 건설하자는 것이 원불교 문을 열게 된 동기이다.원불교의 2대 종법사를 역임했던 정산 송규(1900~1962)는 삼동윤리(三同倫理)라는 게송을 남겼다. 한울안 한이치에 한집안 한권속이 한일터 한일꾼으로 일원세계를 건설하자는 내용이다. 삼동윤리에 바탕한 원불교의 복지사업은 지구촌의 무지와 질병과 빈곤을 물리치는 일을 벌이고 있다. 다문화가족지원사업도 예외가 아니어서 아시아 각국의 이주여성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적응교육을 받고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더불어 이주여성들이 한국의 문화를 배우는 피동적인 관계가 아니라 이제는 자신들의 나라 언어와 문화를 가르치는 적극적인 관계설정을 하고 있다. 참 고무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 다문화 다종교가 21세기 대한민국을 정신사적으로 선진국 반열에 올리고 아시아가 함께 대동화합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문화센터를 운영하는 관계로 아시아권 외국에 곧잘 나간다.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들은 우리보다 소득수준이 열악하다. 하지만 제국주의 식민지 시절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6·25 전쟁을 겪는 아픔 속에 유엔에서 원조를 얻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첫 번째 나라이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부지런하고 머리 좋고 열정적이다. 다문화 다종교를 좌우 날개로 삼아 한국을 정신의 지도국 도덕의 부모국으로 자리매김 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전북 익산시에 들어설 예정이던 원뷸교 국제마음훈련원 건립이 사실상 무산됐다. 원불교는 국제마음훈련원 건립 사업을 중단할 방침이라고 8일 밝혔다. 국제마음훈련원은 2015년까지 익산시 웅포면 대붕암리 2만8천700㎡의 터에 건축면적 1만1천800㎡ 규모로 건립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익산시의회가 일부 개신교의 반대 등을 이유로 건립 예산을 부결해 사업이 중단됐다. 원불교 인사로 구성된 익산 국제마음훈련원 대책위원회는 "훈련원은 특정종교의특혜사업이 아니며 시민도민을 위한 공익사업"이라며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촉구했다. 반면 일부 개신교인들은 특정종교 포교시설에 대한 예산 지원은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원불교는 외부에 종교간 갈등이 깊어지는 것처럼 비춰지자 대승적 차원에서 사업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수해서 대학입학을 하게 된 친지의 딸이 엄마 왜 이렇게 인생이 힘들어하더란다. 원하는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서울에 가서 1년 동안 학원에서 공부하고 고시원에서 지냈으니 어련할까?부모 품에서 공부만 하다가 낯설고 물선 곳에서 밥해 먹으며 공부하랴, 빨래하랴 힘도 들었으리라. 더구나 원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서 차선에 만족해야 했으니 어찌 힘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이라면 몰라도 그래도 공부가 가장 쉬운 일이거늘, 어찌 보면 더 힘든 일들을 이겨내도록 입시전쟁을 통해서 우리 자녀들을 연단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래도 그때는 그것이 가장 힘든 일이리라.언젠가 헬스장 샤워실에서 한 수험생을 만났던 기억이 있다. 반갑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 학생이 내게 "목사님은 행복하세요?" 라고 물었다. 나는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그 의도를 파악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다시 물었다. "왜 행복하지 않니? "나의 질문에 "아니, 그런 것은 아닌데요…." 라고 대답을 시작한 아이는 "목사님을 뵈면 늘 행복하고 여유가 있게 보여서요"라고 대답했다. 곧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입시문제로 지금 마음이 편치 못하구나, 그래서 목사인 나에게 행복하냐는 물음으로 마음 한 자락을 보여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대답했다.그럼 믿음으로 사니까 늘 행복하지. 하나님을 믿고 산다는 것은 우리의 염려와 걱정과 근심을 다 맡기고 사는 것이기 때문에 혹 세상에서 힘들고 고달프고 실패했다 해도 좋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리라 믿기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거야! 그러니 입시나 다른 세상사가 네 뜻대로 되지 않아도 믿음으로 살면 행복하고 넉넉하게 살 수 있을 거야! 힘내라 화이팅!그 아이가 나간 후 나는 새삼스럽게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과연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믿음이 무엇이길래 사람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고, 생명과 사망으로 갈라놓기도 하는 것일까? 한 사람의 인생을 여유롭게 만들기도 하고 쫓기게 살게도 하는 것일까?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라고 단순하게 정의한다. 쉬운 성경은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해서 확신하는 것입니다. 또 한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아는 것입니다 라고 해석한다.비록 눈에는 안 보이시지만 좋으신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시고 나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거늘 어찌 행복하지 않으리?어찌 여유롭게 살 수 없을까?좋으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의 염려와 걱정과 근심을 혼자 지고 끙끙대는 것은 불신이리라.오늘 지면을 통해 부족하나마 나의 종교 칼럼을 본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지금 행복하세요?
전북선도문화연구원(원장 김세화)은 5일 완주 모악산 선도의 거리에서 다큐영화'체인지, 생명전자의 효과'(이하 체인지) 무료상영과 '체인지 명상 체험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체인지 상영회 및 체인지 명상 체험회'는 '체인지' 영화를 시청한 후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자신과 세상을 체인지 할 수 있는 에너지 '생명전자'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자리다. 또 컴퓨터 장비로 사람의 기에너지(오라, Aura) 상태를 점검하여 상담을 해주는 시간도 마련하였다.영화'체인지'는 현대 물리학의 과학적 접근을 통해 삶의 변화의 참 의미를 전달하고, 변화의 주체로서 인간 뇌의 중요성과 명상 등 몸과 마음을 힐링하는 뇌의 활용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속보=원불교가 중앙총부의 수도권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이 확산되는 가운데 공식입장을 통해 "이전계획을 수립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30일자 1면 보도)30일 원불교는 "원불교 중앙총부 수도권 이전계획이 수립되고 있다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며 "총부 전체를 옮기는 계획은 없다"고 공식입장을 내놓았다.이어 "원불교가 세계화를 추진하는 일은 맞지만 현재는 중앙총부를 이전하는 것과는 별개의 사안이다"며 "세계화를 위해 이미 문화사회부를 서울로 옮겼고 총부나 다른 기관을 이전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원불교는 최근 지도부에서 중앙총부의 서울이전을 주장하며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었지만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았다.특히 원불교 지도부에서 흘러나오는 총부 이전설과 원광대학 수도권 진출 추진설이 겹치면서 지역민들의 충격이 심해지는 등 파장이 확산되고서야 짧은 공식입장을 뒤늦게 내놓았다.아울러 원광대 수도권 진출에 대해선 "대학에 문의해야 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WCC)는 성경에 따라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고백하며, 성부,성자,성령의 영광을 위하여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교회들의 교제이다. 그러므로 WCC는 세계교회협의회에 영어 이니셜이다.세계교회협의회(WCC)는 세계의 흩어진 모든 교회의 일치를 도모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대표적인 기구이다. 에큐메니칼은(Ecumenical)은 헬라어 오이쿠메네(Oikoumene)에서 시작됐으며 뜻은 "하나님의 집에 살고 있는 모든 식구들" 즉 하나님의 권속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태초에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풍성한 생명을 주시고 번성하며 살라고 하셨다. 창조후 하나님은 보기에 좋다고 하셨고, 사람을 지으시고 매우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집 이름을 기쁨이란 뜻인 에덴으로 지으셨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조화로운 세계가 깨어졌는데 이 깨어진 하나님의 한 세계를 회복하는 것이 곧 에큐메니칼 운동이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에큐메니칼 운동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됨을 목적으로 하는 교회의 본질에 속하는 개념이다. 교회의 일치와 연합, 이를 통한 선교의 의미를 담고 있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구체적으로 진행된 것은 바로 세계교회협의회(WCC)를 통해서이다. 지금의 WCC는 1910년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에서 태동되었고 194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전세계 150여개 교단들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교회협의회가 창설되었던 것이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전세계 140개국의 349개 회원교회 약 5억8000만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기독교 협의회로서 세계에서 가장 폭넓고 포괄적인 에큐메니칼 기구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 성공회가 회원 교회로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특히 WCC가 말하는 일치란 거대한 하나의 교회를 만드는 구조적인 일치가 아니라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삶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일치라고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일치는 기본적으로 교회가 온전한 교회가 되는것(being the Church) 이다. 그것은 바로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리고, 모든 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게 하는 일이다. 쉽게 말씀드리면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게 하는 일치이다. 이를 통해 교리와 질서, 그리고 삶에서 나타나는 차이점과 반대되는 견해들을 상대화 시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강화시킴으로써 차이점과 반대 견해들을 줄여 나가는 것이 일치의 중심인 것이다. 이처럼 소중한 세계교회협의회(WCC)제10차 총회가 30일부터 11월 8일까지 대한민국 부산에서 열린다. WCC 총회는 7년 혹은 8년마다 한번씩 열리며 세계의 다양한 전통의 교회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이 시대의 공동의 선교적 사명을 분별하고, 공동의 증언과 공동의 봉사의 과제를 설정하는 전세계 교회들의 신앙 축제이다. WCC제10차 부산 총회는 1961년 인도 뉴델리 총회 이후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개최되는 총회다. 313년 로마에서 시작된 서구 중심의 기독교가 2013년 대한민국 부산에서 개최됨으로 복음이 동아시아 중심인 우리나라에서 21세기 새역사를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이며 한국교회의 위상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해방이후 세계에서 경이적인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꽃피운 나라 선교를 받은 나라에서 세계 제2의 선교대국으로 발전하여 세계에서 선교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발전하였다. 이번 WCC제10차 총회는 한국교회의 영성, 선교의 열정, 새벽기도회, 금요철야기도회, 섬김과 나눔의 경험을 세계 교회와 나눌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뿐만아니라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평화와 통일이 남한과 북한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세계 교회가 함께 기도하고 함께 이루어가야 하는 공동의 신앙과 제임을 확인하는 장이 되기도 할것이다.WCC총회가 전세계 기독교인들의 축제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 국격을 높일 수 있고 국제신인도를 향상시킬수 있는 국제적 행사이기도 하다. WCC제10차총회는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며 축복이다. 이를 위하여 한국 교회는 일치와 화합, 섬김과 봉사의 마음으로 성공적인 총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협력해야 할 것이다.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
금산사 창건 1414년 기념식 겸 제15대 주지 취임식이 지난 26일 금산사에서 2000여명의 사부대중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행사는 역대 조사스님들의 뜻을 기리는 다례제를 시작으로 부도전 참배, 창건1414주년 기념식, 17교구 본말사 신도 합동 보살계수계식, 만등불사 순으로 진행됐다.성우스님은 주지 취임사를 통해 "역사는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교량이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없고 현재가 없는 미래는 상상할 수 없다"며, "대한민국의 역사와 항상 함께하셨던 조사 스님, 태공 월주 대종사님, 그리고 선배 주지 스님께서 걸어갔던 길을 따라 오늘 새로 내딛는 길이 험난하고 외롭더라도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정신으로 감내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금산사 조실 월주스님은 개산대재 법어에서 "함께 나누고 서로 위할 줄 아는 자비정신이 성숙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게 될 것 이다"며, "개산대재와 금산사 신임주지 취임식에 함께하신 모든 이들의 발심 정진이 대한민국과 온 우주의 상생, 정토, 복지, 평화를 실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불국사 주지 성타스님, 통도사주지 원명스님, 강현욱 전 전북도지사, 최규성유성엽 국회의원, 조배숙 전 국회의원, 송하진 전주시장, 이건식 김제시장, 문동신 군산시장, 박성일 전북도 행정부지사, 유광찬 전주교대 총장 등이 참석해 축하했다.
어느 병원 응급실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새벽에 환자가 급히 실려 왔습니다. 당직 의사가 살펴보았는데, 심장마비로 이미 죽은 후였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시신을 수습하려고하는데 좀 이상하였습니다. 오른 손은 펴고 있는데, 왼손은 꽉 쥐고 있었습니다. 대개 죽으면 손을 펴잖아요. 그래서 왼손을 펴주는데, 손 안에서 뭔가 툭 떨어집니다. 의사가 자기도 모르게 말했습니다. 어! 삼팔 광땡이네! 사연인즉슨 이랬습니다.밤새 화투를 치는데 계속 잃었습니다. 얼마나 속이 상했겠습니까? 그런데 밤을 새고 끝 무렵에 판돈이 수북하게 쌓였는데 화투를 받고 펴 보니까 삼팔 광 땡인 겁니다. 너무 마음이 벅차올라 그만 심장 마비를 일으킨 겁니다.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살아가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삼팔광땡 잡아보려고 기를 씁니다. 못 잡으면 못 잡는 대로 속상해 하고, 잡으면 잡는 대로 허무하게 떠나는 게 세상의 모습 아닌가요?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나 심령에 흐르는 생수의 강으로 인생의 참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토니 에반스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하루는 침실 벽에 균열이 생긴 것을 발견 했습니다. 그는 기술자를 불러 고치게 했습니다. 시멘트 몰타르 바르고 그 위에 다시 페인트를 칠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 뒤 보니까 다시 갈라졌습니다. 다시 기술자를 불러 고치게 했습니다. 시멘트 몰타르 갈라진 틈을 메우고 그 위에 페인트칠을 했습니다. 완벽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며칠 뒤에 보니 다시 균열이 갔습니다. 그때 기술자가 하는 말이 "주인님, 이것은 벽의 문제가 아닙니다. 집의 기초가 문제가 있습니다. 기초가 문제가 있어 벽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집을 헐고 다시 짓기 전에는 이 벽을 고칠 수가 없습니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선하게 보이려고 애를 써도 우리 인간은 기초가 되는 본선에는 죄의 품성을 갖고 있어서 선함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과 사회구조 속에 이미 죄가 창궐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죄를 짓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이기 때문에 사탄이 유혹하고 침투시키는 죄를 막을 길이 없어 스스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에 의해서만 구원의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선함이나 노력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의한 용서를 받아드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영화 「벤허」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벤허는 류 월리스의 소설인데 영화화 된 겁니다. 월리스는 본래 미국의 남북 전쟁 당시 북군의 장군 출신입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던 무신론자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을 공박하려고 성경을 연구하다 뒤집어졌습니다. 무릎 끓고 예수님을 향해 고백했습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여! 그 후 이 소설을 쓴 겁니다. 그래서 부제가 아예 '그리스도의 이야기'입니다. 벤허는 유대인 귀족이었는데, 애매하게 노예로 끌려가고 인생이 꼬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누이도 감옥에 갇혔다가 나병에 걸렸죠. 그런데 마지막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 하늘에서 비가 쏟아집니다. 그 비를 맞으며 어머니와 누이가 나병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벤허는 쌓이고 쌓였던 원한이 사라짐을 경험합니다. 그 비가 흐르고 흘러 시내가 되고 큰 강을 이룹니다. 이게 바로 생수의 강입니다. 이 생수의 강이 내 심령에서부터 가정으로 직장으로 사회로 나라로 세계로 흘러넘치게 해야합니다. 이게 먼저 경험한 성도들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사막화된 세상에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도록 해야 합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는 26일 교구 산하 60여 사찰 사부대중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산 1414주년 개산대재를 갖는다고 21일 밝혔다. 개산대재와 함께 보살계 수계식 및 금산사 새 주지로 부임한 성우 스님 취임식도 이날 열린다. 개산대재는 사제불보살과 역대조사스님들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일상생활에서 바르게 실천되도록 마음에 새기기 위한 자리. 개산대재와 함께 열리는 보살계 수계식은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계율을 받아 지니고 배움으로써 가정이 평온하고 나라가 화평하고 세계인류가 다 함께 성불하도록 회향 발원하는 의식이다. 수계식은 금산사 조실 월주스님, 불국사주지 성타스님과 통도사 주지 도명스님이 집전한다. 성우 주지스님은 개산대재를 맞아 "부처님께서 전해주신 계율을 잘 지켜 깨달음과 지혜를 얻어 행복하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자"며, "미륵의 근본 도량 금산사는 깨달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생활 속에 있음을 잘 알고 순간순간 착하고 진실되게 살아가는 생활 불교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빈대 네 마리가 살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네 몸집이 너무 작은 게 항상 불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이 빈대들에게 새해 소원을 각각 물어보았습니다. 먼저 첫 번째 빈대에게 물었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네, 저는 몸집이 너무 작아 힘이 약합니다. 그래서 힘이 센 소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 그럼 소가 되어라." 그러자 빈대는 소원대로 소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빈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 "네, 저는 하늘을 나는 새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 그럼 너는 새가 되렴." 두 번째 빈대도 소원대로 새가 되었습니다. 세 번째 빈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 "네, 저는 배고픈 건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굶지 않고 매일 음식을 뒤져 먹을 수 있는 쥐가 되게 해주세요." "그래? 그럼 너는 쥐가 되거라." 세 번째 빈대 역시 소원대로 쥐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빈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 이 때 네 번째 빈대가 슬그머니 욕심이 생겼습니다. '어차피 원하는 대로 다 받는다면 실컷 구해보자.' 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소처럼 힘도 세고요, 새처럼 하늘도 날고요, 쥐처럼 굶지도 않는 그런 것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빙긋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그럼 네 소원대로 '소새쥐'가 되어라." 그런데 이 세상에는 '소새쥐'라는 동물이 없었기 때문에 그만 그 이름과 가장 비슷한 소시지가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빈대도 낯짝이 있지!"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이 빈대는 너무 뻔뻔하게 욕심을 부리다가 낭패를 보고 말았습니다. 무엇이든 과욕을 부리면 그 때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만 해도 그렇습니다. 음식은 우리가 한 생을 살아가는 동안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음식이 아무리 좋고 필요하다 해도 적당히 먹어야 유익합니다. 욕심을 부려서 자꾸 과식하면 위장에 부담을 주고 결국에는 탈이 나게 마련입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이 땅의 동물 중에서 위장병으로 고생하는 동물은 사람뿐이라고 합니다. 개나 돼지가 위장병에 걸렸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식탐을 하고 그 결과 위장병을 얻습니다. 이는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은 우리가 한 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합니다. 돈이 있어야 양식을 얻고, 돈이 있어야 편안하게 살고, 돈이 있어야 온갖 혜택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대로 돈을 많이 벌면 좋습니다. 많이 저축해 놓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돈이 아무리 위력이 있고 좋다 해도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문제가 됩니다. 돈에 대한 탐욕은 돈을 우상으로 만들고, 범죄하게 만듭니다. 사람에게서 인간미를 빼앗아가고, 삶의 목적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인간을 파멸로 몰아갑니다. 그러므로 돈이 좋을지라도 지나친 욕심은 금물입니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2장에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밭에서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되었는데 그것이 고민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다다가 마침내 결론을 내렸습니다.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지은 다음에 내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자." 그리고서 자기 자신을 향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날 밤에 이 사람의 영혼을 도로 가져가셨습니다. 결국 그가 애써 모아놓은 재물은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고, 그는 헛수고의 인생을 살다간 인물이 되었습니다. 소유에 대한 지나친 욕심의 종착점은 비극이요, 실패입니다.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승리를 가져다 준 적이 없습니다. 인생의 참된 가치는 소유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에릭 프롬'은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무엇을 가졌느냐?'가 인생의 승패를 좌우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한 오늘의 시대 속에서 우리 스스로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성경 잠언에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다"고 했다. 지혜로운자는 신중하게 말하고 신중하게 일을 처리함으로 공감을 얻지만 신주하지 못하면 공감을 얻을 수 없다. 똑똑한 바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때 강력한 힘을 자랑했던 사자가 늙고 병들어 배고픔에 허덕인 체 새끼양을 뒤쫓고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추격했지만 새끼양은 사자를 비웃듯이 자유자재로 도망쳤다. 굶주린 사자는 먹이를 구할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자기가 갇혀서 죽게 되었으니 동물들이 방문해 주었으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고 말을 퍼뜨렸다. 그러나 찾아오는 동물들이 없었다. 그런데 여우 한 마리가 찾아왔다. 나무 틈사이로 천천히 엿보고 있는데 사자가 그 모습을 보고 "어서 내게로 가까이 오게, 이리와서 나를 위로해 주게나" 그때 여우가 "사자님의 말은 믿을 수가 없어요 평소에 저희들에게 신뢰를 주지 않았고 신중하지 못함을 알고 있으니까요" 사자는 굶어 죽었다는 것이다. 공감을 얻지 못한 말은 군중을 움직일 수 없다. 자신의 잘못된 가치관과 부정적 시각의 말은 공감을 얻을 수 없다. 기존의 질서와 규범, 전통과 양식, 방법과 생활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비판적인 말은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주장과 생각, 의견과 논설에 대한 공감을 얻기를 바란다. 공감을 얻고,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희망이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 속에서 항상 있어야 할 공감은 사람됨의 소중한 윤리이며, 가치이며, 힘인 것이다. 공동체 속에서 공감은 자신의 신뢰를 돈돈히 하는데서 나오며 존경과 사랑을 실현하는데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눈으로 타인을 보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을 평가하는 것도 아니다. 타인의 입장에서 살펴보고 생각하는 태도가 진정성을 가질 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공동체에서 자신의 의견과 뜻을 공감시키려면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할 뿐만 아니라 그 삶의 방식과 의견과 감정과 주장을 더 깊이 이해하며 존중해야 한다. 공감을 얻는다는 것이 우리 안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공감의 인격을 향상 시키는 노력을 기울려야 하고 지속적인 수련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공감을 얻으려면 다른 사람의 곤경과 실패, 아픔과 역경, 갈등과 반목에 대한 이해와 사랑, 관심과 위로, 희망과 용기의 말로 북돋아 줄 수 있을 때 얻어지는 것이다. 공감을 얻으려면 배타적이 아니라 보완적이여야 하고, 이기적인 아니라 이타적이여야 하며, 소유적이 아니라 공유적이여야 하고, 분열이 아니라 일치를 이루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비난이 아니라 존중함으로 나아가야 하며, 비협력적이 아니라 협력적이여야 하고, 관망이 아니라 참여적이여야 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려 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이 좀 더 희생적일 때에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 공감을 얻으려면 내가 남에게 기대한 만큼 남도 나에게 기대하고 있음을 깨닫고 희생과 헌신의 마음으로 존중히 여기고 배려할 때에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공감을 얻어야 질서가 확립되고 협력적 미래 비젼도 실현할 수 있다. 신앙 공동체에서의 성공적인 사역을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공감을 얻는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공감은 신앙 공동체를 구성하는 교우들에게 우리의식을 증진하고 상생하는 조정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정체성을 갖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공감은 매우 소중한 가치이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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