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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8기 출범과 전북의 향후 과제] ④리더십 한계와 필요성

3% 전북. 전국에서 차지하는 전북의 비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단어다. 인구는 3% 남짓에 불과하고, 경제규모는 전국대비 1%에 불과하다는 자조섞인 아쉬움이다. 1980년대 전국 대비 3%를 차지했던 지역내총생산 규모는 1990년대 2% 수준 남짓으로 떨어졌다. '3% 전북'은 누가 만들었을까. 현대사 무수한 변곡점을 지나오며 수많은 선택이 지금의 전북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전북의 '지도자'라 부를 인물들의 리더십이 처참했다는 것은 도민 대부분 공감하는 부분이다. 중앙에 변변한 목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방안퉁수'(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못 하고 집안에서만 큰소리치는 짓을 이르는 전라도 방언)에만 머물렀던 전북의 정치인들. 지역이 아닌, 개인 영달에 치우친 선택으로 지역 발전에 해가 된 사례도 적지 않다. 민선 8기 출범과 함께 새로운 전북이라는 변화를 이끌어가기 위해 '새로운 리더십'이 부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 리더십 ‘반면교사’ 과거를 반추해보면 전북의 태평성대는 전라도(전라북도, 전라남도, 제주도)를 총괄하던 전라감영이 조선왕조 500년 동안 전주에 자리했던 시대다. 전라도의 수도였던 전주는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자의 반 타의 반 변방의 들러리 신세로 전락했다. 영토는 충남과 전남에 뺏기고 지방관청들은 광주에 종속되는 와중에도 지역의 마름 정치인들은 모난 돌이 정 맞을까 찍소리도 못하고 움츠려있었다. 지난 시간 매시기 결정적인 기회가 지역에 주어졌지만 정치권은 개인적 이해로 얽혀 지역 현안마다 될 듯 안 되는 양상으로 통한의 세월만 보낸 꼴이 됐다. 부안 방폐장 입지 선정 문제는 2003년 정부는 방폐장 입지에 주민 지원금을 6000억 원으로 늘린다고 했으며 당시 김종규 전 부안군수가 유치 신청에 나섰으나 주민 간 갈등이 컸다. 주민들은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안고 2005년 방폐장을 유치한 경주는 인센티브와 지역발전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새만금 사업은 방조제 착공 30년이 되도록 역대 정부에서 5명의 대통령을 거쳐도 중단과 소송을 거듭한 끝에 겨우 완공됐다. 무주 동계올림픽 유치 실패는 무주가 1997년 동계유니버시아드 개최 등으로 평창과 경쟁에서 우위에 섰으나 결국 뒷심 부족으로 쓴맛을 봤다. 이러한 장면들 속에 지역 정치권의 목소리는 약했고 도민들은 단결이 부족했다는 박한 평가가 나온다. 지역에서 단체장이나 정치인이 행동으로 보일 때도 있었다. 2003년 새만금 사업 논쟁 종식을 위한 ‘총궐기대회’에서 유철갑 당시 도의장 등은 삭발 투쟁을 했고 김완주 전 지사도 2011년 LH 분산 배치에 삭발하며 맞섰다. 그러나 전북에는 스타 정치인이 없고 특정 정당에 안주해 텃밭만을 지키고자 중앙에 기댄 리더십의 부재가 큰 문제로 꼽혔다. 지역 원로인 이치백(93) ㈔전북향토문화연구회 명예회장은 “얌전한 전북 도민의 성향이 지역 발전에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도 했다”며 “정치인의 나약한 리더십은 지역의 낙후를 초래한 결과가 됐다”고 지적했다. 변혁과 통합의 ‘빛’나는 리더십 필요 지난 15일 전북일보 주최로 열린 '민선 8기 출범과 전북의 향후 과제 좌담회'에서도 지역 정치권의 리더십과 관련해 각종 비판이 쏟아져나왔다. '직무 유기', '소극적', '방어적' 등 정치인과 단체장들의 한계를 지적하는 이야기가 잇따랐다. 이 가운데 미래 전북을 위한 리더십 키워드로는 '역동적'이고 '변혁적'인 리더십. '통합'의 리더십이 꼽혔다. 지역 원로의 생각도 맥락을 같이 했다. 이와 관련해 전북의 역사를 바라봤던 장명수(90) 전 전북대·우석대 총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장 전 총장은 현재 전북 정치권에 소위 '빛나는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중앙 정치권에서 주목 받는 정치인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전북 자체도 정치적 비중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과거 소석(素石) 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 등 전국에서 내로라했던 정치인이 다수 포함됐던 전북이지만, 현재 상황은 암울하기만 하다. 단체장들도 자기 고장의 특색있는 정책이 안보인다고 지적했다.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라 추진력 자체를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그는 "어떤 발언이나 정책에도 찬반은 항상 있기 마련이고, 반대와 비난을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반대에만 매몰돼 휘둘리고 추진하지 않으면 맹탕이된다"면서 "최근에는 종전 단체장들보다 기대되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도민들이 더 지켜봐야한다"고 말했다.<끝> 천경석·김영호 기자

  • 기획
  • 천경석외(1)
  • 2022.07.27 18:49

[민선8기 출범과 전북의 향후 과제] ③ 전주·완주 통합

뜨거운 감자였던 전주·완주 통합 논의가 민선 8기 출범으로 다시 불붙고 있다. 우범기 전주시장이 핵심 현안으로 문제를 끌어냈고, 김관영 전북도지사도 취지에 공감하면서다. 최근 전국 지자체의 몸집 불리기가 한창인 가운데, 초광역경제권과 메가시티 논의에서 배제된 전북의 경우 전주·완주 통합과 새만금을 필두로 전북 발전을 이끌 양대 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다만, 지난 통합 실패 사례에서 알아볼 수 있 듯, 한 지자체나 정치권의 일방적인 주장에 함몰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합의 키를 쥔 곳은 완주군과 군민들로, 실제 통합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완주군민들이 우려하는 문제에 대한 '안전장치' 마련과 함께 자기 이익에만 매몰되지 않는 정치권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세 차례 실패 교훈 지금까지 전주·완주 통합 시도는 총 세 차례가 있었고 모두 실패했다. 1997년에는 당시 결정권을 쥔 완주군의회의 반대로 좌절됐고, 2009년은 당시 완주지역의 국회의원, 군수, 지방의원 모두가 반대했다. 세 번째 시도였던 2013년에는 당시 임정엽 완주군수는 찬성했지만, 국회의원과 지방의원들이 반대했고, 완주군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통합 투표에서 55.4%(찬성 44.4%)가 반대표를 던져 무산됐다. 당시 최규성 김제·완주 국회의원, 민주당 전북도당, 김완주 도지사가 찬성 입장에서 돌연 반대로 돌아서면서 불발됐다. 김제·완주를 지역구로 전북 정치 좌장 역할을 하던 최 의원의 반대는 결정적으로 도지사와 전북도당을 반대로 나서게 했고, 본격적으로 통합 반대운동을 조직하는데 명분을 줬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향후 주민 투표와 관련해서는 투표율을 높이는 것에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지난 2013년 주민투표는 53.2%의 투표율을 보였다. 사전 여론조사에서 통합 찬성률이 높았고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인 삼례읍(26.1%), 봉동읍(34.9%), 용진면(31.0%)의 투표율이 매우 낮았던 것이 결정적인 패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통합 이득 제시 필요 통합을 위한 통합에만 매몰되서는 안된다는 여론도 있다. 통합으로 거둘 수 있는 실리를 직접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전주·완주 통합에 앞서 국내에서 지자체 통합을 진행한 청주시의 사례도 참고할만하다. 2014년 통합시로 출범한 청주시의 경우 고속철도, 대기업 위주의 공단, 국제공항, 수도권과의 접근성을 필두로 전주와는 비교도 안 되는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다. 아울러 통합을 통해 정부에서 보통교부세 총액의 6%를 특별교부세 등으로 10년간 지원받게 되면서 지난 8년 매년 200억 원가량의 특별교부세를 받았고, 인구도 통합 첫해인 2014년 83만 2000명에서 지난해 84만 8000명으로 늘었다. 수도권 제외 유일한 특례시로 출범한 창원은 100만 명의 인구를 내세워 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의 한 축을 담당하는 도시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다. △통합 방식 고민 필요 통합 방식에도 종합적인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밀어붙이기 식 추진이 아닌, 단체장이나 정치권 위주의 위로부터(Top-down) 방식과 주민 숙의를 통한 아래로부터(Bottom-up) 방식 모두를 아우르는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 힘이 실린다. 1997년 3전 4기 끝에 성공한 전남 여천군·여천시·여수시의 ‘3려(三麗)’ 통합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해관계자인 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회의 주도로 이뤄졌다. 청주시·청원군의 통합 성공에도 반대에서 찬성으로 입장을 바꾼 지역 국회의원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전주·완주 통합과는 반대되는 지점이다. 정치권의 결단과 함께 주민 스스로, 특히 완주군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데 힘이 실리고 있다. △완주군민 '안전장치' 마련 통합의 '키(Key)'는 완주군민들에게 있다는 것은 공연한 사실이다. 통합으로 얻게되는 완주 군민들의 각종 혜택을 더욱 최대화하고, 불이익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담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완주군민들은 통합으로 인한 세금 증가, 농업투자 감소, 혐오시설 집중 등을 우려하고 있다. 통합의 해법은 전주와 상황이 비슷했던 과거 청주시의 사례에서 이미 상당 부분 도출된 상황이다. 충북도와 청주시, 청원군은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예산과 정책 운용의 무게 중심을 청원 쪽에 두는 내용의 ‘상생발전방안’을 만들었다. 농민 혜택은 청원군 시절보다 더 돌아가도록 하고, 도시행정이 아닌 종합행정을 이루겠다는 약속을 상생방안을 담았다. 군민의 피해가 없을 것이란 구체적인 약속이 제시했던 것. 이는 완주군민들이 우려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 기획
  • 천경석
  • 2022.07.26 18:23

[민선8기 출범과 전북의 향후 과제] ② 공항·KTX 등 교통

전북 혁신도시에 거주하는 이모(55)씨는 서울 출장길에 자가용을 타고 20km를 달려 익산역에 간다. 이씨는 “전주역이 주차장도 협소할뿐더러 운행 횟수가 적다”며 “익산역은 KTX, SRT가 정차해 이용하기 수월하다”고 말했다. 전주에 사는 사업가 김모(47)씨는 “해외 바이어를 만나려고 항공편을 이용할 때면 청주 등 타 지역 국제공항을 이용해 허비하는 시간이 많다”고 불만이다. 이처럼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고 변곡점 마다 축소지향을 선택한 전북은 도민들이 철도뿐 아니라 국제공항에 가려면 이동이 불편해 하나같이 번거로움을 호소하고 있으며 타 시·도에 비해 정주 여건 등 인프라가 뒤쳐지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게 됐다. △오판이 불러온 오욕의 역사 전주는 전북 제1의 도시로 전라선 승하차율이 전국에서 선두를 달리지만 전주역이 외곽에 있어 타 지역 거점 역사 중에서 발전이 늦다는 게 중론이다. 전주역은 1914년 현재 태평동 SK뷰아파트에 위치해 있다가 1929년 전주시청 자리로 이전했다. 그리고 1978년 전라선 이설 문제로 전주 우아동에 역사를 이전하게 됐다. 전주역은 노후화가 심해 선상역사로 새로 지을 예정이지만 개발이 더뎌지고 있다. 2017년에는 김제 백구로 KTX역 신설 주장이 있었다. 전문가 용역에서도 백구가 제일 좋은 자리라는 평가가 나왔었고 채수찬 전 국회의원 등 정치권이 일부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역에서는 특히 익산 정치권에서 지방선거를 앞둔 시기여서 삭발 투쟁을 하는 등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따라서 전북혁신역이 추진됐지만 정부가 타당성이 없다고 결론짓고 익산시의 강한 반대로 무산된 것이다. 지역 일각에서는 혁신역 무산이 과거 유림의 반대로 전주 용머리 고갯길로 철길을 내지 못한 전철을 밟은 것과 오버랩 된다는 말이 회자된다. 문제는 현재로서는 익산역이 있지만 그 주변으로 배후도시 등 지역 발전도 더디고 전북 혁신도시를 감안하면 인프라가 크게 충족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낙후 전북을 벗어나기 힘들게 됐다. △국제공항 없는 전북은 외딴 섬 공항 문제는 전북의 아픈 손가락으로 알려져있다. 과거부터 전북은 근대와 현대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 교통이 낙후됐다는 지적을 면치 못했다. 교통이 낙후되다 보니 기업유치도 턱없이 부족하고 주변 인프라도 조성이 더뎌 배후도시가 없다는 문제점이 커진 상황이다. 특히 기업들이 굳이 물류비용을 들여서 전북으로 와서 공장을 세울 필요성도 못느끼는 형국이 됐다. 정부는 1998년 김제 공덕면과 백산면 일대(총 158만m² 부지)에 활주로 1개, 보잉 737 여객기 3대가 이용할 수 있는 공항을 2007년까지 완공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2005년까지 사업비 1400억원 중 부지매입비 등 480억원이 투입됐으나 지역 내 시민단체와 주민들의 반발로 공항 건설이 무산됐다. 현재 김제공항 터는 20년간 방치돼 ‘배추밭’ 부지란 낙인이 찍혀 개발 사업이 시급한 과제다. 김제공항이 무산되고 그로부터 10여년이 흘러서 새만금국제공항이 2029년 개항을 목표로 준비 중이지만 최근 시민단체가 공항 예정지에 고려청자로 추정되는 유물이 발견됐다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에 따라 또 다시 새만금국제공항 건립 추진이 엎어지고 난관에 봉착해 멈춰 서게 된다면 지역의 산더미처럼 쌓인 현안을 해결하는데 차질이 빚어질 게 불보듯 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역 내 에서는 그동안 수십년에 걸쳐 장기간 추진돼온 새만금 사업인 만큼 향후 전북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가져다 채워 넣을 것인가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이 중요한 시기처럼 여겨진다. 이러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현재 추진 중인 새만금 개발사업에 국제투자진흥지구와 같은 알곡들이 채워져야 한다. 그렇다면 결코 새만금국제공항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전북의 공항 건설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면 1990년대에 추진해서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것이 안타까운 현주소다. 문재인 정부가 적극 밀어줘서 예비사업타당성조사 면제로 어렵사리 성사시킨 새만금국제공항인 건립 사업인 만큼 완공 시기를 적어도 1년 정도는 단축해야 될 필요성이 제기된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현재 전북이 추진하는 새만금 육, 해, 공 트라이포트 구축과 KTX천안~전주선 유치 등 당면한 과제가 놓여져 도민들의 의식 개선이 절실한 과제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과제들을 난제로만 볼 수는 없다. 새만금국제공항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사업인 만큼 과감한 추진력이 필요하다. 국가 예산 확보 등 정치권의 노력도 필요하고 거침이 없는 행정적인 뒷받침을 끝없이 이어가려는 움직임도 병행해야 한다. 그러자면 새만금국제공항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서도 지역 주민은 물론 지역사회가 함께 협력하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인 것이다. 결국 이러한 시도들은 축소지향의 전북 역사를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사통팔달 교통의 중심지로 거듭나기 위함이다. 이경재 전북애향운동본부 기획처장은 “전주역이 외곽으로 이전한 이유는 시내를 관통하는 전라선이 문젯거리가 돼 유림의 반대로 철길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며 “새만금국제공항은 정부의 예비사업타당성조사 면제 등으로 탄력을 받게 됨으로써 공항의 개항 시기를 지금보다 더욱 더 앞당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영호 기자

  • 기획
  • 김영호
  • 2022.07.25 17:37

[민선8기 출범과 전북의 향후 과제] ①소외와 배제의 역사

낙후와 쇠퇴를 떨치고, 다시 비상하는 전라북도. 민선 8기 도정 슬로건에 포함된 '새로운 전북'이라는 단어도 도민들이 가장 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말해준다. 현대사를 지나오며 변곡점마다 무수한 선택들이 지금의 전북을 만들었다. 새로운 전북. 기존에 낙후됐던 전북이 민선 8기 출범과 함께 터닝포인트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현재 시점에서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그 질문에 대한 전북일보의 대답은 '반면교사'다. 지난 15일 전북일보가 개최한 '민선 8기 출범과 전북의 향후 과제 좌담회'는 축소 지향적인 전북의 과거를 반면교사 삼아 대변혁을 일으킬 수 있는 과제와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갖가지 제언 속에서 전북일보가 집중한 키워드는 '축소 지향의 역사'와 '미래 전북'이다. 전북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동안 왜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걸을 수밖에 없었는지 냉철히 현실을 되돌아보고, 그에 따른 해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토대로 '올바른' 방향성을 갖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것. 전북일보는 소외와 배제의 역사를 반추하고, 공항, KTX 등 교통 문제를 톺아본다. 이후 논의가 재점화하고 있는 전주·완주 통합 문제와 전북 지도층의 리더십 한계와 새로운 리더십 필요성에 대해 4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 편집자 주 전북 침체의 역사는 국가의 구성 요소인 영토, 국민, 주권을 중심으로 되짚어봐도 확인할 수 있다. 전북은 일제강점기때 보다 인구가 감소한 유일한 지역으로 꼽힌다. 실제 1949년 광복 후 처음 실시한 인구총조사에서 전북 인구는 205만 485명이었지만, 지난달(2022년 6월) 기준으로는 177만 8279명이다. 전북의 인구는 1966년 252만 2000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지속 감소해오고 있다. 1949년 2018만 8641명이던 국내 인구수가 지난달 기준 5157만 8178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하는 가운데 전북은 그 어느 지역보다 빠른 인구 유출이 나타난 셈이다. 수도권 집중발전으로 인한 전국 공통현상이라 항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광복 이후보다 인구수가 적은 곳은 전북이 유일하다. 그만큼 전북에 먹고살 만한 기반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영토로 불리는 지역도 축소의 역사다. 가장 극단적인 예가 금산군의 충청남도 강제편입이다. 1963년 11월 21일 금산군과 익산군 황화면이 충남으로 편입됐다. 이는 박정희 정권 초기 도민들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정치적 노림수 때문에 일어난 폭거로, 당시 군사 정부의 실력자인 공화당 사무총장 길재호(吉在號)가 주역으로 꼽힌다. 금산이 충남으로 편입되면서 당시 중위권 수준이던 전북의 도세를 하위권으로 떨어뜨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인삼으로 유명한 금산이 빠져나가면서 재정적으로 큰 타격을 줬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조선 이래 500년 동안 전라도였던 금산이 하루아침에 충남에 편입된 것을 두고 단순히 땅을 빼앗겼다는 의미가 아니라 전북의 무력감이 내포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력 부문도 손에 꼽힐 만큼 아쉬운 대목이다. 전북은 전체 국회의원 수가 300명을 한참 밑돌던 시기에도 11명∼14명의 지역구 국회의원이 있었지만,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서 10명으로 줄어든 뒤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로 따지면 20명에 가까운 국회의원이 전북 지역 국회의원이었다는 설명이다. 실제 입법부가 양원제에서 단원제로 바뀐 제6대 국회의원 선거(지역구 131명, 전국구 44명)의 전북 지역구 국회의원 수는 11명이었다. 이후 11대 국회(지역구 184명, 비례 92명)에서는 지역구가 2개나 늘어 14명이 된 뒤 15대 국회까지 20년 동안 14명을 지켰다. 그러나 16대 국회에서 무려 4개 지역구가 줄어 10명이 됐고 17대 때 11명으로 늘어 19대까지 이어졌지만 20대 국회에서 다시 10명으로 줄었다. 더 큰 문제는 인구의 지속적인 감소로 오는 2024년 22대 총선을 앞두고 진행될 선거구 개편에서 한 자릿수 국회의원을 둔 지역으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는 점이다.

  • 기획
  • 천경석
  • 2022.07.2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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