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1-06 14:42 (Thu)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금요칼럼

10월의 남자

10여년 전 겨울, 친구들과 여행가자고 꺼냈던 이야기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서, 우리는 갑자기 하얼빈행 비행기를 탔다. 대륙의 작은 공항에 내리자마자 영하 25도의 찡한 추위보다 먼저 닥쳐온 것은 도시를 온통 뒤덮은 매캐한 석탄 냄새였다. 오리털 의복으로 중무장한 탓에 정작 피부에 닿는 추위는 그리 심하지 않았는데 그 석탄 냄새가 북방의 추위를 더 상징적으로 느끼게 했다. 하얼빈 기차역은 현대적으로 새로 지어졌고,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쏘았던 구 역사는 문화재로 보존되어 있었다. 유리창을 통해 오래된 플랫폼을 볼 수 있었는데,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가 서있던 자리가 5미터 내외, 겨우 승용차 한 대 정도랄까, 거리라기보다 간격이라고 해야할만큼 너무나 가까웠던 것에 가장 놀랐다. 안중근은 세 발의 총알로 이토를 쓰러뜨린 후 “코레아 후라”를 외치고 체포되었다. 심문조사에서 그는 자신이 포수로 살아왔으므로 상박을 겨누면 흉곽을 뚫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어린 시절부터 산과 들을 누비며 짐승을 잡아왔던 청년 안중근, 사냥 기술자로서의 노련함이 보이는 그 진술이 나는 매우 인상깊었다. 스스로 배우지 못한 포수라고 칭한 것과는 달리, 이토 히로부미를 쏜 이유를 말하라는 심문관의 요구에 1, 조선의 왕후를 살해한 것, 2, 한국에 불평등한 을사 5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것 으로 시작해 무려 15번까지의 이유를 막힘없이 서술한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는 것 이상으로 이 심문에 대한 답변을 중요하게 여겼고 철저하게 준비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안중근이 시종일관 강조했던 것 하나는 그가 개인이 아닌 대한의군 중대장의 자격으로 이토를 쏘았다는 점이었다. 하얼빈역에서 일어난 일이 테러리스트의 저격이나 심지어 애국지사의 의거조차 아니며 나라와 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의 일부인 것을 그는 분명히 하고자 했다. 그것은 전쟁이 맞았다. 총 한자루를 품에 넣고 하얼빈으로 가기 전,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는 직책으로 무장독립투쟁에 투신했다. 400여명 규모의 의병대를 이끌고 연해주에서 두만강을 건너 국내 진공작전을 벌이다 1908년 7월 결국 일본군에 의해 궤멸적 타격을 입고 흩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영산 전투였다. 영산 전투의 패퇴 이전까지 부대는 승전을 거듭하고 있었으나 안중근은 생포한 일본군 포로들을 국제법에 의거해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석방된 포로들은 당연하게도 일본군에 부대의 위치를 밀고했다. 그의 고집스러운 원칙주의는 수백명 동지들의 목숨을 대가로 요구했고 불신과 비난에 시달려 고립되는 처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후회에 시달렸으나 죽을 때까지 원칙주의자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하얼빈 역에서 외친 ‘코레아 후라’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러시아어가 아니라 세계언어인 에스페란토 어였다. 그는 자신이 이토를 쏘는 일이 개인의 원한이 아니요 동아시아의 분쟁도 아닌 세계의 정의와 국가간의 존중에 관한 일임을 명확하게 인식했고 세상을 향해 일관되게 주장했으며 그것을 준비하고 표현하기에 철저함을 다했다. 안중근의 서른 해 짧은 생애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원칙주의였다. 유럽과 중동에서 전쟁과 테러의 불길한 연기가 이어지고 있다. 죄없는 민간인, 심지어 어린이들까지 희생되고마는 참혹한 현실에 고개를 돌리려하면, 어느 쪽이 더 수준이 낮고 양심이 적은지 경쟁이라도 하려는 것 같은 졸렬한 국내 정치의 면면에 더욱 할말을 잃고 만다. 다만 시월의 하늘만은 차갑고 푸르고 맑았다. 가을의 구름없이 푸른 하늘을 이고 있는 남산 자락에 안중근 기념관이 있다. 1909년 10월 26일 대한의군 중장 안중근은 이미 매서운 추위가 찾아온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흉곽을 쏘았다. 세계 언어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저항 없이 체포되어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 15조를 지목하고 항소하지 않은 채 처형된 그의 행적은 세계의 모범이 되고도 남음이 있으나 오늘 우리 모습은 그의 가르침과 거리가 멀다. 안중근 기념관에서, 10월의 남자 안중근의 꼿꼿한 원칙주의를 그리워했다. / 심윤경 소설가

  • 오피니언
  • 기고
  • 2023.10.26 16:33

보수의 재(再)구성, 여당이 시작이다

‘야당 지지자와 중도층의 분노참여 그리고 여당 지지층의 낮은 참여’가 강서구청장 보선을 결정했다.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응답이 44%로 가장 많다.ARS 조사에서는 대통령 책임론이 절반을 넘는다. 근본원인은 국민의힘에 있다.‘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여당’은 그 동안 집권당으로서 인재공급과 국정비전 제시와 주도의 정치적 선도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한 달에 두 번도 만나자”고 했다는 국민의힘 대표와 대통령과의 정례회동이 지금도 지켜지지 못하는 게 현재 집권여당의 위상이다. ‘무기력한 여당’을 만든 사람은 대통령이다.윤석열 대통령이 “(주어진) 방침을 잘 따르며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여당체제를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정치의 주체는 정당이고 대통령실을 쳐다보지 말고 국민을 쳐다봐달라는 주문은 오히려 대통령의 뜻”이라며 “국정운영에 있어 때로는 ‘대통령이 이렇게 가시면 안 된다’는 쓴소리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최근 언급은 많은 사람들을 허탈하게 한다. “총선 전초전” 강서구청장 보선에서 패배하고 총선을 6개월 앞둔 지금 시점에 윤 대통령은 두 가지 선택 앞에 서게 된다.그것은 ‘대통령의 총선목표’는 무엇인가?‘이다.대통령의 총선목표는 ‘과반 안정 의석’? 아니면 ‘윤석열 친위대’ 확보? 대통령의 선택이 후자라면 ‘지금까지 하던 대로 계속하면 된다.’하지만 여소야대 국회의 윤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이 불가피하다.총선 승리의 야권은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의 3연승을 향해 정치공세를 강화할 것인데,만약 대통령도 지금처럼 한다면 그 끝은 ‘대통령 탄핵’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내년 총선에서 과반 안정의석의 확보는 ‘2022년 대선승리의 중도보수연합 복원’을 전제로 한다.그래서 유권자 10명 7명 가까이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전환과 인적쇄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이제 부터 ‘정치 승부사 윤석열 대통령’의 진면목을 보일 때라는 것이다. 대통령 국정운영 평가와 국민의힘 지지율 그리고 김태우 득표율이 유사한 수준이다.30%대 박스권이다.거의 모든 이슈에 대한 의견도 ‘6 : 3.5’ 언저리로 나뉜다.이는 ‘윤 대통령을 앞세운 선거가 어렵다.’는 뜻이다. 따라서 ‘대통령 지지율이 회복되지 않으면 총선승부는 어렵다.’보선 직후 실시된 일부 여론조사의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는 위험신호다.20%대 후반의 지지율은 취임이후 두 번째의 최저치 수준의 접근이다.다음주 여론흐름이 중요한 이유다.특히 ‘70% 전후로 알려진 중도층의 대통령 국정운영 부정평가’는 결정적이다.. 대통령 지지율 회복과 대선승리의 중도보수연합 복원을 위해서는 국정기조 쇄신이 요구된다. '정체성 복원과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국정'은 이제 마감할 때다. 새로운 국정비전과 정책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비서실 개편과 내각쇄신의 인사는 총선승리를 향한 대통령의 변화를 상징하는 첫 걸음이다. 새로운 국정과제와 대안 제시는 국민의힘 몫이다.국민적 요구와 필요에 민감하게 대응하며 이슈를 제기하고 논의를 주도하는 게 정당이기 때문이다.집권당은 나아가 총리와 내각을 선도해야 한다.총선에서 표를 얻어야하는 여당은 국민 삶의 현장으로 향해야 한다. 출발은 집권여당의 정상화다.“‘누구를 자르십시오.쳐내야 합니다’하는 건 권력다툼에 불과하다.”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언급은 잘못된 정당이해(理解)다.정당은 ‘권력투쟁의 장(場)’이어야 더욱 건강해진다.그 과정에서 새로운 리더십과 시대정신의 어젠다가 정당에 등장한다. 일요일 의총 후 국민의힘은 “김기현 대표를 중심으로 선거에 나타난 민심을 받들어 변화와 쇄신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기로 했다.”고 하지만 전당대회에서 선출한 ‘임명직 대표’를 중심으로 한 상명하복의 수직적 공무원 조직 같다면 더 이상 정당이 아니다.여당실패는 정권실패의 전주곡이다. “시한부 연명”의 두 번째 기회,김기현 대표가 할 일은 총선을 앞둔 ‘정치와 정당의 시간’을 위한 마중물이다.‘차분한 변화’가 아니라 ‘요란한 변화’가 필요한 시간의 입구에서 김 대표가 할 일은 ‘자기희생’이다‘심판의 시간’을 향한 역습, ‘보수의 재구성’은 국민의힘에서 시작이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 오피니언
  • 기고
  • 2023.10.19 15:35

손자병법 전쟁론

중동지역의 전쟁 소식이 실시간으로 전해진다. 이스라엘을 박격포로 공격한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 하마스, 이에 전쟁 경보를 선포하고 반격에 나선 이스라엘, 여기에 하마스를 옹호하며 공격 작전에 끼어든 시아파 헤즈볼라,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뒤에서 도와주는 이란, 이스라엘을 옹호하며 항모전단 전진 배치와 합동 군사작전을 예고한 미국, 이스라엘과 수교보다 이슬람 세력과 연계하여 정치적 이익을 얻겠다는 사우디의 복잡한 계산, 전쟁에는 많은 국가의 정치와 이익이 연결되어 있다. ‘전쟁은 정치의 연속(War is a continuation of politics)’이라고 프로이센의 전쟁 이론가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는 그의 저서 <전쟁론>에서 정의한다. 전쟁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한다. 전쟁은 감정이나 이유 없는 무력 충돌이 아니라 그 안에는 정치적 이익과 계산이 깔려 있다. 소련이 우크라이나를 공격하여 전쟁을 벌이는 일도 푸틴과 러시아 권력의 정치적 계산과 이익이 숨겨져 있다. 정치의 핵심은 권력의 획득과 유지다. 전쟁을 통해 누군가는 권력을 강화하고, 누군가는 권력을 유지한다. 뇌물 혐의로 궁지에 몰려 있는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 전쟁을 통해 국민의 시선을 다른 곳에 돌릴 수 있을 것이며, 하마스 지도자이자 팔레스타인 총리인 이스마일 하니야는 그의 권력을 더욱 공고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란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수교를 막을 수 있을 것이고, 미국은 다음 대선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전쟁을 통해 피해를 보고 힘든 사람들은 민간인과 노약자들이다. 전쟁은 전쟁의 주체들에게는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애꿎은 사람들만 피해를 본다. 그래서 전쟁의 위협이나 전쟁의 공포를 떠드는 사람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동양의 병법서 <손자병법>에서는 전쟁을 국가의 존망(存亡)과 국민의 생사(生死)를 결정짓는 중대한 일(大事, 대사)이라고 정의한다. 전쟁을 통해 국가가 망하고, 국민이 죽을 수 있는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고 <손자병법> 시계(始計) 편 첫 구절에서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 전쟁은 함부로 벌여서도 안 되고, 전쟁이 나면 가능한 한 빨리 끝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쟁은 자존심도 아니고, 남의 평가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빨리 전쟁을 끝내서 물자와 인명의 최대한 피해를 줄여야 한다. 손자의 졸속(拙速) 이론이다. 못나도(拙) 전쟁은 빨리(速) 끝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쟁이 오래 지속되면 농토는 황폐해지고, 젊은이들은 전장에서 이름 없이 죽어가고, 백성들은 가족과 흩어져 이산가족이 되는 불행을 겪어야 한다. 춘추시대 사상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전쟁의 비극이다. 손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부전승(不戰勝)이 가장 위대한 승리라고 말한다. 칼은 칼집을 떠나는 순간 이미 칼의 가치는 떨어진다. 칼에 묻은 피를 닦아야 하며, 그 피를 흘린 사람들의 원한도 감당해야 한다. 비싼 무기는 사용되는 순간 그 가치는 하락한다. 비싼 돈을 주고 무기를 사고 유지하는 것은 방어력을 높여 전쟁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무기는 오래되어서 사용하지 않고 폐기되는 것이 가장 효용성이 높게 사용한 것이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했거나, 게임기 안에서 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의 전쟁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전쟁을 마치 게임인 듯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전쟁은 벌어짐과 동시에 모든 윤리는 정지되고, 인권과 정의는 소멸한다. 오로지 승패를 위한 처절한 싸움만 있을 뿐이다. 남북한이 대치하여 휴전 상태인 대한민국에서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전쟁이 더 이상 정치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도 안 된다. 용기가 없어서 안 싸우는 것이 아니다. 절제는 용기의 가장 높은 가치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영상으로 생중계되는 시대에 불똥이 한반도에 튀지 않기를 바란다. /박재희(인문학공부마을 석천학당 원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3.10.12 15:10

그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리

올 추석에도 고향에 가지 못했다. 시골집 뜰안 대추나무 가지의 열매들은 단맛이 밴 채로 여물고, 뒤뜰의 석류나무는 과피(果皮)가 벌어진 채로 석류가 알알이 들어찬 제 붉은 속살을 드러내며, 멧비둘기 구구대는 앞산의 산밤나무에 매달린 푸른 밤송이들은 절로 벌어져 알밤을 투두둑 털어낼 테다. 아버지가 짓고 가족과 어린 시절을 보낸 옛집은 사라지고 없다. 고향마을의 느티나무는 무성한 가지를 드리운 채 늠름하고, 너른 들과 땅을 휘감아 돌아가는 강과 바람은 그대로이건만 고향의 새 주인들은 낯설다! 고향에서의 기억은 왜 달콤하고 아련한가? 그것은 과거를 화사하게 윤색하는 뇌의 환각작용 탓일까? 정지용의 시는 내가 오래 전에 낙원에서 추방된 자임을 일깨우며 서글픔에 빠뜨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산꿩이 알을 품고/뻐꾸기 제철에 울건만//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머언 항구(港口)로 떠도는 구름//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정지용, '고향').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가 우는 고향에의 기억은 달콤하고 아련하다. 그것은 지금의 고향이 아니고, 흘러간 옛날은 오늘의 괴로운 현실의 대안이 될 수가 없다. 고향을 떠난 자는 다시는 그 아늑하고 그리운 고향을 찾지 못한다. 고향을 그리는 나침반은 언제나 어린 시절의 목가적 생활을 가리킨다. 내 마음에 자꾸 향수병이 도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노스탤지어의 바탕은 지금 여기에 없는 것, 즉 옛날을 향한 동경과 그리움, 되찾을 수 없는 시간 회복에 대한 열망이다. 프랑스 철학자 블라디미르 얀켈레비치는 "향수병은 불가능한 것에 직면했을 때 갖는 절망이다"라고 한다. 노스탤지어는 고향 없음이 아니라 특정 장소로 돌아갈 수 없음, 고향 회귀의 불가능성에서 발원한다. 그 불가능성은 어떤 지리적 좌표를 찾는 게 아니라 고향에서의 시간을 회복하는 일인 까닭이다. 타향을 떠나 떠도는 자는 삶을 낭비하리라는 불안에 사로잡힌 채 존재한다. 이것은 노스탤지어의 질료적 바탕이 고향 회귀의 불가능함, 그리고 방향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걸 암시한다. 내가 고향을 떠난 것은 열 살 무렵이다. 탈향의 세월이 쌓이면서 고향의 말도 다 잊고, 고향의 벗도 다 떠난 지금 고향은 내 마음의 지리학에서만 찾을 수 있다. "고향을 감미롭게 그리는 사람은 아직 주둥이가 노란 미숙자일 것이다. 모든 장소를 고향이라는 느낄 수 있는 자는 이미 강한 자다. 전 세계를 타향이라고 생각하는 자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나는 12세기 스콜라 철학자 생 빅토르 후고의 말을 여러 책에서 만났다.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되어도 고향에 집착한다면 그는 인격의 성숙함에 이르지 못하는 영원한 미숙아에 속할 테다. 나는 토성의 영향 아래 태어났다. 내가 원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나는 일찍이 고향을 떠났다. 고향을 잃은 채로 떠돌며 사는 동안 불신과 비관에 내 삶을 통째로 내주었다. 세상을 떠도는 자의 마음에서 빛이 꺼지고 무상함에 빠지기 쉬운 까닭은 분명 삶의 보람 없음과 기쁨의 배제의 결과인 오늘의 삭막함과 연관이 있을 테다. 나는 인격이 여문 어른의 삶을 살 수 있을까? 그것은 애초에 글러버린 꿈일까? 나는 고향을 잃어버린 삶을 사랑한다. 아니,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고향을 잃은 삶을 사랑하지 않고 견디며 살 수 있다. 내가 이미 오래 전부터 고향 없이 살아온 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탕약을 가득 채운 잔을 들이켜고 고향 상실자로 살아온 지 반세기가 넘었다. 삶은 쓰디썼다. 하지만 후회와 서글픔은 옅어지거나 사라졌다. 그렇건만 고향을 둘러싼 기억의 화사함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고토에서 몸은 멀어지건만 마음이 품은 노스탤지어는 사라질 기미가 없다. 오, 그대 다시는 고향을 찾지 못하리! 세계는 늙고, 나도 가슴에 남은 한줌의 노스탤지어를 품고 늙어간다. 살아보니, 늙음이 인생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인 걸 알겠다. 죽음이라는 외부가 덮치기 전까지 나는 더 꼼꼼하게 늙어갈 테다. /장석주 시인

  • 오피니언
  • 기고
  • 2023.10.05 17:08

하와이교회

어린시절 살았던 옛 마을, 내가 태어난 옛 집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남아있다고 하면 다들 놀란다. 변화가 빠른 21세기 대한민국, 부동산 광풍이 여러 차례 휩쓴 서울 도심에서 흔히 있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은 계절에 옛마을을 산책하며 그리운 얼굴들과 빛바랜 기억들을 소환하면 알 수 없이 내 안에서 인생은 슬프지만 아름다운 것이고 그 덧없는 아름다움에 기대어 한 세상을 살아볼만한 것이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 숨이 꽤나 가빠질 무렵 인왕산의 숲 끝자락과 길이 맞닿는 부분에 이르면 내가 태어난 옛집이 나타난다. 인가가 사라진 숲자락에 아늑하게 들어앉은 하얀 교회가 있다. 옥인동 서울교회다. 서울교회라는 정식 호칭이 있다는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 뒤늦게 알았다. 아카시아 생울타리로 둘러싸였던 인왕산 숲속의 그 하얀 교회는 우리에게 언제나 하와이교회였다. 어릴 때부터 하와이 교민들이 건립 자금을 보내주어 하와이교회라고 불린다는 교회 탄생 설화를 들으며 자랐다. 이금이 작가의 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하와이 이민자들, 남편이 될 남자의 사진만 보고 결혼해 이국의 척박한 삶을 개척해 나갔던 '사진 신부'들의 삶을 그린다. 장정들이 하루 열 시간 주 6일 꼬박 일해 버는 한달 월급이 17달러였다. "젠장, 조선이 우리한테 해 준 게 뭐 있다고. 나라도 나 있고 가족 있은 다음이야. 박용만이고 이승만이고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동포 앞에서 좋은 본은 고사하고 헐뜯고 싸워대는 꼬락서니 하고는. 그 종자가 그 종자지." 소설 속 청년의 냉소는 당시 이민자 사회의 많은 사람의 마음을 대변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돈을 모아 독립운동을 위한 성금을 냈고, 하와이 교포들의 성금은 임시정부 재정의 절반 넘는 비중을 차지하며 가장 든든한 후원이 되었다. 하와이를 근거지로 외교 중심의 독립을 추구했던 이승만과 무장투쟁을 추구했던 박용만 사이에 어느 쪽 노선이 옳았는지 역사-이념 투쟁을 벌일 생각은 없다. 오늘은 하와이 교회에서 느꼈던 단상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며칠 전 친구들과 산책하던 발걸음이 하와이 교회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서 차담을 나누던 마을 주민들은 반가워하며 말을 붙였다. 전임 시장이 교회 건물을 사들여 청소년 문화공간으로 바꾸려 했는데 그것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의 건국 업적과 하와이 교포들의 물심양면 지원을 역사에서 지우려는 속셈이었다고, 이 곳은 하와이 교포들의 독립 정신을 전하는 공간으로 보존할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그의 열띤 호소를 들으며 나는 그가 아차하면 전임 시장을 동물로 호칭할까봐 두려웠다. 벌써 몇 대 째 전현직 대통령들과 주요 정치인들이 십이간지에 있는 동물들의 호칭으로 불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진영을 막론하고 멸칭으로 부르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고 의논의 파트너로 삼을 생각이 없다는 단호한 선언이다. 한적하고 발길 닿는 이 적은 내 고향마을에서도 역사-이념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나에게는 무엇보다 씁쓸하게 다가왔다. 1928년생, 당시 고려대를 나온 드문 인텔리였고 월북을 심각하게 고민했다는 한 어른은 당신이 경험한 해방 전후의 혼란기를 이렇게 요약해 들려주었다. "그때는 좌나 우나 한치 앞을 몰랐어. 각자 양심에 따라서 이념을 택했지. 북한이 저렇게 기형 국가가 될 줄을 누가 미리 알았겠어? 지금 보면 월북이 미친 일이지만, 그때는 남과 북 양쪽 다 일리가 있었어. 지금의 형편으로 그 때를 이야기하면 나는 가슴이 턱 막히는 것 같다고." 그렇다. 우리는 역사가 흐른 뒤의 일들로 그 시절을 예단하며 역사에 입바른 소리들을 보태는 중이다. 그때는 미국이, 중국이, 일본이, 어느 나라가 우리에게 도움이 될지 한치 앞을 몰랐고 외교전이, 무장투쟁이, 시민불복종이, 어떤 방법이 독립에 가장 필요할지 한치 앞을 몰랐다. 각자의 방법으로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 애썼고 목숨이 오가는 험한 길들을 걸었다. 대한민국의 풍요로운 오늘을 살면서 목숨을 내건 독립운동의 최일선에 서셨던 분들을 잘했느니 못했느니 평가질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고향마을의 언덕을 내려오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심윤경 소설가

  • 오피니언
  • 기고
  • 2023.09.21 16:29

대통령은 불안하다!

불교의 핵심 메시지는 공(空)이라고 한다.공은 ‘존재와 현상은 서로 의존해서 발생한다.’는 인연생기(因緣生起)에 따라 출현한다.연기법에 따르면 어떤 존재와 현상도 혼자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존재와 현상은 공하다.’고 말한다.왜냐하면 존재와 현상은 인연에 따라 만나고 인연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져 불변의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존재와 현상은 ‘인연에 따른 잠깐의 일시적 관계’가 된다. 불교의 공은 복잡계 이론의 메타 안정성과 유사해 보인다.‘메타’는 준(準) 또는 임시적이라는데 ‘메타 안정성’은 존재와 현상 등의 상호작용을 통한 변화와 임계현상 그리고 새로운 질서를 향한 노력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동적(動的) 메카니즘이다.메타 안정성은 세상을 ‘거시적 복잡성과 미시적 불확실성’으로 이해한다.이 때 세상은 ‘안정과 불안정 사이에서 요동치는 연쇄적 다이내믹스’다. 최근 대통령의 메시지를 둘러싸고 논란이다.6월 자유총연맹 8월 광복절 그리고 국힘 의원 연찬회 연설 등이다.한쪽에서는 “대통령이 된 뒤 이념형 인간으로 바뀌며 제왕적 대통령으로 최적화되어 (스스로를 군주의 반열에 놓고) 거침이 없고 용감무쌍하다.”며 “남은 임기를 생각하면 아찔한 생각이 든다.”고 한다.결론은 “폭주를 보수가 책임져야 한다.” 나아가 “21세기 디지털 선진국이 졸지에 1970년대 개도국 시절로 회귀”하며 “실용보수의 종식이자 이념보수의 부활선언”이라고도 한다.집권당의 연찬회는 “부장님의 술자리”라는 소리를 들으며 “윤아(尹我)일체 수준까지”갔으니 차라리 “용산의 힘”으로 당명을 바꾸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대통령의 인식은 확고하다.대통령 메시지도 분명하다.첫째,방향성으로서 이념이다.대통령은 “국가에 정치적 지향점과 국가가 지향해야 될 가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이념”이라고 한다.“나라를 제대로 끌어갈 철학이 이념”이어서 “철학과 방향성 없는 실용은 없다.”는 것이다. 둘째,방향은 정체성 확립이다.대한민국의 정체성으로 “올바른 역사관 책임 있는 국가관 그리고 명확한 안보관을 가져야”하고 동시에 “이권 카르텔의 불법을 근절하여 공정과 법치의 확립”도 중요하다.셋째,협치와 정치복원도 정체성이 공유된 후에 가능하다.대통령은 “새가 날아가는 방향은 딱 정해져 있어서 왼쪽 날개 오른쪽 날개가 힘을 합쳐서 보수와 진보,좌파와 우파가 힘을 합쳐 가지고 성장과 분배를 통해 발전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야당은 “날아가는 방향에 대해서도 엉뚱한 생각을 하고 우리는 앞으로 가려고 는데 뒤로 가겠다.”는 집단이다. 넷째,도전과 위기는 “허위선동과 조작 그리고 가짜뉴스와 괴담을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과 반국가적 작태를 일삼는 사람들”이다.“자유사회가 보장하는 법적권리를 충분히 활용하여 자유사회를 교란시키고 공격”하는 사람들이다.“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다섯째,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힘을 합쳐서 국정운영권을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됐겠나 하는 아찔한 생각이 든다.”며 ‘부실기업’을 인수했는데도 “여소야대에다가 언론도 전부 야당지지 세력들이 잡고 있어서 24시간 우리 정부 욕만 한다.”고 억울해 한다. 대통령의 인식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라 보인다.‘과거의 직업적 경험과 현재의 집권당 불신’ 그리고 “자기세력 없는 대통령의 빈자리를 차지한 뉴라이트”의 정치적 타이밍 등이 함께 가져온 시대와의 부조화일까! 일관되고 분명하며 확고해 보이는 메시지는 불안함의 역설적 표현일 수 있다. 메타 안정성은 겉으로는 강하고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어떤 계기나 내·외부의 충격으로 혼란과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불안한 상태를 동반한다.우연한 사건으로 정치의 실패가 공동체의 붕괴와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한다는 말이다. 메타 안정성의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반야심경에서 바라밀다행의 공을 통해 세상을 여여(如如)하게 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누가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을까!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 오피니언
  • 기고
  • 2023.09.14 15:57

혼돈(混沌)의 미학

시원하게 뚫린 잘 구획된 대로나 신도시보다 자연스럽게 조성된 마을과 오래된 거리가 더 끌린다. 편리함으로 따지면 질서 정연하게 만들어진 도시가 좋지만, 안정감이나 친근함으로 따지면 오랜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무질서한 골목과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오래된 마을이 더욱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관광객들은 북촌 한옥마을에 더욱 붐비고, 전주 한옥마을을 더욱 선호한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빌딩을 보러 관광을 가는 경우는 일부 도시를 제외하고는 없다.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본 알함브라 궁전을 끼고 있는 오래된 집들, 북경의 작은 골목, 일본의 시골 온천마을 장터, 도무지 질서하고는 거리가 먼 혼돈의 장소에 왜 사람들은 몰리고 감동할까? 우리는 질서는 아름답고 무질서는 추악한 것이라고 교육받았다. 그래서 사회가 요구하는 사람은 질서를 따르고 신봉하는 사람이었고, 질서를 벗어난 사람은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모두가 인정하는 대학을 나와 좋은 기업에 취직하여 정년퇴직할 때까지 아무런 사고 없이 다니다가 자식들 좋은 배필 만나 결혼시키는 것이 인생의 정답이었다. 자녀 결혼식과 자신의 장례식에 화환을 놓을 곳이 없어 꼬리표만 떼어내 벽에 줄지어 걸어놓으면 정말 인생 잘 산 사람이라고 사람들 입에서 칭찬이 마르지 않았다. 상식적 인생에서 벗어나고, 사회의 규범에 도전하고, 정해진 패턴을 벗어나는 인생을 사는 사람에 대하여는 온전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지 않았다. 혼돈(混沌)이란 단어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는 불확실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직장을 자주 바꾸고, 전공이 무엇인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왜 좋은 직업을 내려놓고 힘들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사람을 혼돈의 인생이라고 부른다. 혼돈(混沌), 무질서와 불확실성을 통칭하여 부르는 말이다. 패턴이 없고, 마구 뒤섞여 예측이 안 되는 무질서의 상태를 혼돈이라 한다. 질서의 관점에서 보면 해결되어야 할 상태며, 미숙한 단계다. 그러나 혼돈은 질서를 넘어 더 높은 차원을 설명하는 새로운 세계로 재해석 된다. 카오스(chaos)이론은 무질서하게 보이는 혼돈의 상태에서도 논리적 법칙이 존재하고 있으며, 무질서 속에 있는 또 다른 질서를 찾아내는 사고의 틀로 새롭게 응용되고 있다. 혼돈은 하늘과 땅이 분리되기 전의 세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늘과 땅, 바다와 산이 뒤섞여 분리되지 않은 태초의 세상이다. 혼돈의 세상에는 미추(美醜)도 시비(是非)도 없다. 혼돈이란 단어는 <장자(莊子)>에 등장한다. 남해의 왕 숙(儵)과 북해의 왕 홀(忽), 그리고 중앙의 왕 혼돈(混沌)이 있었다. 숙과 홀은 자주 혼돈의 땅에 가서 서로 만났는데, 혼돈은 그들을 매우 잘 대접해 주었다. 숙과 홀은 혼돈의 덕에 보답하려고 서로 의논을 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7개의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을 쉰다고 하는데 혼돈은 구멍이 없이 무질서하니 우리가 그 구멍을 뚫어줘 보답하자고 결정하고 날마다 한 개의 구멍을 뚫어주었다. 그리고 일곱째 되는 날 혼돈의 몸에 7개의 구멍이 뚫리며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다. 혼돈은 무질서가 존재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숙과 홀은 혼돈의 몸에 구멍을 내어 질서를 만들어주었다. 결국 혼돈은 질서라는 칼에 맞아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질서와 합리성보다 어쩌면 무질서와 모호성에서 더 큰 생명력을 볼 수 있다는 장자의 역설의 철학이다. 혼돈은 질서보다 경쟁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질서는 언제나 아름답고 우리를 안정시키는 것인가를 회의해 보고, 혼돈은 늘 추하고 불안하고 제거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 보아야 한다. 질서와 법을 강조한 나머지 세상의 모든 것을 그 틀 안에 넣고 줄을 세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세상은 어쩌면 질서보다는 무질서 속에서 더욱 예쁜 꽃이 피고, 순종보다는 잡종이 훨씬 더 경쟁력이 있고, 확실함 보다는 혼돈 속에서 해답이 더욱 다양할 수 있다. 혼돈을 기쁘게 맞이하자. 대한민국 발전의 주역은 혼돈에서 나온 역동성이었다. 혼돈의 다양성이 죽으면 사회도 죽는다. /박재희 인문학공부마을 석천학당 원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3.09.07 18:11

책상 위 돌은 왜 흐느끼는가

강가에서 주워온 돌 하나가 책상 위에서 가만히 흐느끼고 있다. 그대는 듣는가, 책상 위에서 돌이 혼자 흐느껴 우는 소리를. 나는 새를 쏘았던가? 저 돌은 내가 쏘아 떨어뜨린 새인가? 지난여름 초목을 태울 듯 하던 불꽃 더위가 잦아들고 소슬한 바람이 분다. 복숭아를 좋아하던 용접공은 연애에 빠지고, 줄장미가 붉은 꽃을 피웠던 여름은 지나갔다. 나이 어린 이모가 시골집 뒷곁에서 석류나무에서 몰래 딴 석류를 먹는 계절이 온다. 한때 번성하던 것은 시들고 바스라지며 우리에겐 관조의 시간이 배달되는 것이다. 가을 저녁엔 후박나무 잎사귀가 붙잡고 있던 나뭇가지를 슬그머니 놓치고 제 풀에 내려앉는다. 저렇듯 땅으로 하강하는 조용한 시간이여, 나는 유랑의 무리와 그 속에 고립된 나를 가만히 돌아보련다. 봄엔 산등성이 비탈밭에 심은 사과나무 700그루에 퇴비를 주고 농약을 치고, 늦가을엔 마가목 열매를 따서 설탕을 쏟아부어 과실주를 담그려고 했다. 동지 때면 호롱불 아래서 권정생의 동화책이나 읽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작은 꿈들은 산산이 깨졌다. 하우스 농사를 지으며 농협 빚만 늘었다고 울분을 토해내던 영농후계자들이 서울에서 넥타이를 매고 다단계 회사에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 여름내 식빵을 한 조각씩 떼어 입에 넣으며 '성문종합영어'와 '수학의 정석'을 붙들고 있었지만 학업은 고만고만했다. 술에 취하면 '사랑과 평화'의 노래를 불러 제끼고, 나중에 사법고시를 패스해 변호사를 하겠다던 이종사촌은 모의고사를 망치더니 거제도에 내려가 용접공이 되거나 원양어선을 탈거라고 떠들어 댔다. 나 역시 대학입시를 엎고 정음사판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전권이나 독파하기로 결심하고 풋풋한 눈썹을 밀고 토방에 들어갔다. 가을이 오니, 온갖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른다. 내가 열아홉일 때 대수학과 절대음감은 언감생심이었으니 출세에는 관심이 없었다. 상업고교를 졸업하고 시중 은행에 들어가 창구 직원으로 일하다가 감리교회의 신자 아가씨와 눈이 맞아 조촐한 살림을 꾸리며 1남 2녀를 기르며 살고 싶었다. 내가 진학한 상업고교에는 소설을 잘 쓰는 최재섭과 제홍만이 선배로 버티고 있었다. 한때 문학도였던 이들을 보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제홍만은 소설은 진작에 작파했다고 했다. 그는 날마다 영어단어 50개씩을 외우며 전액 장학금을 받더니 졸업식에서 국무총리상을 받고 곧 외환은행에 특채되었다. 훗날 그가 우수행원에 뽑혀 마드리드지점에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재섭은 서울시청 앞 백남빌딩에 있던 대한항공을 다녔는데, 그는 자주 가난한 후배와 함께 명동의 카페 떼아뜨르에 가서 연극을 보았다. 명지대학 야간부 영문학과를 마치고 미국 유학을 떠난 그를 다시 만난 건 16년 뒤 뉴욕에서다. 1991년이던가? 미국 굴지의 보험회사 부사장으로 입신양명의 꿈을 이룬 그가 뉴욕에서 발행되는 미주 한국일보에 난 내 인터뷰 기사를 보고 연락을 해왔던 것이다. 인생에는 꽃향기와 행운, 실패와 배신, 비탈과 암초가 따른다. 나는 들국화 더미 같이 살뜰하게 살진 못했다. 스물넷에 신춘문예에 당선한 뒤 시집 몇 권을 내고, 출판사 창업을 했다. 감리교회를 다니지는 않았으나 참한 처녀와 결혼도 하고, 여뀌같이 어여쁜 아들 둘과 딸 하나를 식솔로 건사하며 가장 노릇을 해냈다. 그 일을 믿기 힘들 정도로 능란하게 해냈다. 뒤늦게 수영을 배우고 근육을 키웠다. 아이들 셋은 백화점 문화센터의 수영 강습반에서 생존수영을 배우게 했다. 서울 하계올림픽 마라톤 경주가 열리던 날 경주마처럼 질주하던 선수들의 역주와 잠실 주경기장의 폐회식 세레모니를 보며 웬일인지 암담해진 채 불안에 떨었다. 나는 새벽에 들이닥친 검찰 수사관들과의 임의 동행 뒤 서울검찰청 특수2부에서 피의자 심문조서를 작성하고, 저녁 8시쯤 영장이 떨어져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언제나 나쁜 일들은 한꺼번에 닥친다. 가정도 사업도 다 깨졌다. 주말마다 가족과의 외식으로 한일관 불고기를 사 먹고, 서울 연고구단의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을 데리고 잠실야구장엘 가려던 꿈도, 휴일마다 목욕탕에 가서 어린 아들에게 등을 맡겨 밀려던 꿈도 찰나의 꿈인 듯 사라졌다. 아, 고요한 시절이 오기란 아예 글러버린 것인가? 나는 무슨 새를 쏘아서 떨어뜨렸던가? 새는 돌이 되어 저렇게 책상 위에서 흐느끼던가? 낙엽을 밟고 오는 계절이여, 가을 저녁 횃대에 올라가 길게 울던 수탉이여. 나는 계좌이체로 자동 납부하던 녹색당 당비를 더는 내지 않으련다. /장석주 시인

  • 오피니언
  • 기고
  • 2023.08.31 15:29

거리의 선생님들

딸아이가 초등 저학년이던 시절, 학부모 공개수업일에 찾아간 나는 잊을 수 없는 하루를 보냈다. 도심공동화의 충격을 제일 먼저 맞이한 오래된 마을, 한 학년에 4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였다. 기억나는건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동작들이다. 선생님이 무지개~ 라고 나직하게 말하면 아이들은 즉시 책상을 반원형으로 새로 늘어놓고 앉았다. 여섯명~ 하면 다시 착착 움직여 여섯 명씩 그룹을 지어 마주 앉고, 전체~ 하면 스무 명이 칠판을 바라보는 평범한 대형으로 돌아갔다. 선생님의 손끝이나 몸짓, 입모양까지 집중해서 바라보다가 아주 작은 힌트만으로도 기다렸다는 듯 번개같이 지시를 수행하는 아이들은 첨단 동작인식 AI를 탑재한 고성능 기기 같아 보였다. 선생님의 손짓만으로 요술같이 움직이던 아이들 속에는 발달지체아동도 있었는데, 그 아이의 얼굴에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환한 미소와 열정이 일렁였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그만 아이들을 황홀하게 지켜보며 뿌듯한 하루를 보냈다. 그것은 툭하면 폐교 위기가 닥쳐오는 작고 오래된 학교에서, 평범한 수업참관일에 보았던 풍경이었다. 그 요술같은 풍경을 만들어낸 사람은 퇴직을 몇년 앞둔, 덩치가 자그마한 담임선생님이었다. 그분은 교감이나 교장 처럼 높은 자리에 오르지 않고 평교사로 정년퇴임하셨는데, 그분을 담임선생님으로 오래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동네 아이들과 부모들이 누렸던 작은 축복이었다. 물론, 내가 학생으로 지냈을 때나 학부모가 되어 다시 학교에 돌아갔을 때나, 학교에서 늘 좋은 일만 겪었던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12년의 학창시절을 요약해보자면 축복같은 선생님을 한두 분, 그냥 평범한 선생님을 열 명쯤 만났고, 악몽같은 선생님을 한두 번쯤 겪었다. 결론적으로 그냥 평범한 정규분포 곡선이었는데, 일상의 대화에서는 악몽같은 선생님 이야기가 화제에 훨씬 더 많이 올랐다. 행복과 감사는 고통과 분노에 비하면 훨씬 잔잔한 감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되고 나서 전국의 학교를 찾아다니며 강연을 하게 되었다. 내가 등단할 때만 해도 학교에서 작가를 초청해 강연하는 프로그램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학교는 판에 박은 수업을 벗어나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려는 방향으로 꾸준히 진화해왔고 그 덕분에 나는 방방곡곡의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작가로서의 내 삶에 가장 축복같은 시간이었다. 내가 찾아가는 학교들은 유명하거나 특별한 학교들이 아니다. 아파트 단지에, 오래된 마을에, 혹은 전교생이 스무명도 채 안되는, 여러 가지 형태의 평범한 학교들이다. 그곳에는 평범한 아이들과 평범한 선생님들이 있다. 나를 한번 초대하려면 선생님들은 여러 장의 기안서와 행정서류를 작성하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토론이나 연극 같은 연계 활동을 시키고, 감상문과 보고서를 받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시켜줄 생각 하나로 선생님들은 돈도 되지 않고 일만 많은 행사를 자청해서 벌인다. 모든 선생님들이 다 축복같은 존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장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많은 선생님들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열정으로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다. 무더위가 기승이던 8월, 오래 전 내가 폐교 반대 시위를 하러 갔던 교육청 앞에는 난데없는 근조 화환이 무더기로 섰다. 거리에는 검은 옷을 입은 선생님들이 뙤약볕 속에 주말마다 시위를 했다. 시위대에 익숙한 광화문 주민이지만 낯선 풍경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내가 겪은 선생님들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검은 옷의 시위대 속에는 축복같은, 평범한, 악몽같은 선생님들이 정규분포의 비율로 섞여 있었을 것이다. 집단 속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섞여 있는 것은 자연의 순리다. 선생님은 생활인으로서 누구나 일찍 퇴근하고 싶었고 궂은 일은 피하고 싶었고 하는 일에 비해서 급여가 박하다는 한탄을 했을 것이다. 우리와 똑같다. 학교는 지금보다 더 좋은 직장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 곁에 좋은 선생님들이 남는다. /심윤경 소설가

  • 오피니언
  • 기고
  • 2023.08.24 15:22

‘대통령 각하! 만족하십니까?’

결국 대통령이 나선다.시작은 휴가 중인 대통령의 “냉장과 냉동 탑차를 무제한 공급하라”는 지시다.이상민 장관은 “대통령께서 정부차원 대책 마련을 지시했고 정부 비상대책반이 구성됐다”며 "대통령님의 긴급지시로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서 모든 행사운영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대통령의 지시는 이어진다.“식사의 질과 양을 즉시 개선하고,”“관광프로그램 추가하라.”마지막으로 대통령은 “폐영식 후에도 출국할 때까지 숙식과 교통 문화체험 등을 지원하라”고 말한다. 김현숙 장관은 “위기대응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시점”으로 해석한다.정부가 온 역량을 집중한 ‘반전의 카드’ K팝 콘서트가 구원투수로 대한민국의 체면을 지킨다.대통령의 혜안과 용단이 실패의 입구에 들어선 위기의 국제행사를 살려낸 셈이다. 잼버리조직위원회는 마지막 행사를 위해 부처와 공공기관에서 “자원봉사자” 1000여 명을 모집했다고 한다.기재부는 콘서트 지원을 위해 공공기관과 국책금융기관 등에 인력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은 ‘자원봉사자 모집’이라 쓰고 ‘동원’으로 읽는다.기재부는 공공기관의 경영평가자이고 국책금융기관의 최대주주다.“이게 정상적인 정부냐?”라는 공무원노조에 장관은 “공무원들이 동원된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 ‘대통령의 디테일 지시’로 시작된 ‘K 잼버리’의 속살은 ‘국가총동원령시대로의 복귀’라는 우려와 맞닿는다.민관자원을 징발하는 “국가주의적 행태”라는 비판도 있다.사적영역의 시민사회가 권력과 관료의 동원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기업들은 “생수 148만병 얼음 5만톤 아이스크림 28만개”를 보냈다.간이화장실 설치와 지원인력 그리고 조기퇴영 후 숙소제공도 그들의 몫이었다. “잼버리 대회 참여자 모두에게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게 한국인의 마음이다.‘K 잼버리’는 ‘강요된 자발적 협조’에 기꺼이 함께 해준 민간과 기업을 중심을 한 국민적 잼버리 구하기 동참의 결과다. “권위주의적 과거로의 회귀”라는 걱정은 그 동안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보여준 모습과 말들에 겹쳐진다.결과물은 “존재감이 없다.”는 대표와 “대통령실 대변인”이 되었다는 집권당에 대한 평가다.미래의 시대변화와 대통령 인식의 불화는 권력에 불리한 일이다. “잼버리 졸속행정 왜 피해를 K리그가”라고 쓰인 축구팬의 손팻말 시위와 “공공기관 인원을 차출해 강제 봉사활동을 하란다.그것도 금요일 저녁에,시대가 어느 때인데 자원봉사 명목으로 무급노동 시키는지”라는 온라인 게시판 글은 ‘지금이 88 올림픽 시대가 아님’을 웅변한다. “우선은 대회를 잘 치러야 한다.”는 선의로 BTS와 축구경기장 사용을 언급했다가 팬들의 반발에 “왜 우리가 희생을 당해야 되냐 잘못은 정부와 지자체가 해 놓고 왜 우리한테 그러느냐 이런 항변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며 “괴리”를 인정한 성일종·이용호 의원의 말도 시대변화를 상징한다. 대통령이 나서야 움직이는 공공영역의 “보신주의”는 넘어서야 한다.총선승리와 성공하는 권력을 향한 대통령의 시대와의 화해도 필요하다.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시스템 복원이다.사람이 아니라 절차와 제도중심이며 책임과 권한의 재량이 인정되어야 한다.둘째,현장과 지역중심이다.대회 전부터 전북 지역언론은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투명하지도 않고 검증의 자신감도 없었으니 “델타구역 벗어나면 취재협조가 어렵다.”는 경고까지 등장한다. “주인의식을 갖고 현장을 챙긴 공무원이 더 많았다면”하고 탄식한다지만 앞으로도 ‘깨알지시의 대통령’이 계속 된다면 곤란하다.총리와 장관의 브리핑이 “대통령께서 지시한대로”로 시작하는 것은 자율과 책임의 부재다.그들이 스스로 주인의식을 갖고 책임 있는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게 대통령의 리더십이다. “한국정부의 문제해결능력에 놀랐다.”는 말을 전하는 총리와 “무난하게 마무리 되었다.”는 대통령의 언급으로 ‘쌍팔년도식 동원’을 가릴 수는 없다.“아미(Army)”와 “수호신(FC 서울 팬클럽)”은 ‘2023년식 금모으기 운동’을 단호히 거부한다.내년 총선에서 윤 대통령이 마주해야할 사람들은 바로 이들이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 오피니언
  • 기고
  • 2023.08.17 17:34

인생의 태풍을 만났을 때

기억해 보면 어느 한해도 태풍 없이 지나간 여름은 없었다. 한해 평균 3개 정도의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한다고 하니, 태풍은 반드시 만나고 겪어내야 할 한반도의 숙명 같은 것이었다. 인생에도 피할 수 없는 태풍이 있다. <맹자>는 인생의 여정에서 만나는 태풍의 이름을 ‘우환(憂患)’이라고 하였다.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만드는 근심(憂)과 고통(患)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인생의 태풍이라는 것이다. 하늘이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할 때 옵션으로 넣어 준 것이 우환이다. 부귀한 자는 부귀한 자로서의 우환을 만나야 하며, 빈천한 자는 빈천한 자로서의 우환을 겪어야 한다. 맹자는 인생에서 만나는 우환의 태풍은 3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고풍(苦風)이다. 마음(心)과 뜻(志)을 고통스럽게(苦) 하는 정신적인 우환이다. 고풍의 우환은 돈과 지위를 모두 가진 사람도 피해갈 수 없는 우환이다. 고풍의 발생원인은 다양하다. 바라던 기대와 다른 결과에 실망하여 올 수도 있고, 관계의 파탄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어느 날 허무함과 고독감을 느끼면서 발생하기도 하고, 아무 이유 없이 다가오기도 한다. 두 번째는 노풍(勞風)이다. 근육(筋)과 뼈(骨)를 수고롭게(勞) 하는 육체적 우환이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만나는 우환이다. 그토록 원하던 목표를 이루고 성공하였지만 노풍을 만나 한 순간 무너지기도 한다. 평소에 건강관리에 소홀하여 오기도 하고, 육체가 보내는 이상 신호를 감지하지 못하고 방치하여 발생하기도 한다. 과도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다고도 하니, 육체적 우환의 발생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 번째는 아풍(餓風)이다. 몸(體)과 피부(膚)를 굶주리게(餓) 하는 재정적 우환이다. 인생에 가장 자주 만나는 견뎌내기 힘든 우환이다. 사람을 잘못 만나 가진 돈을 모두 날리기도 하고, 잘못된 투자로 원금도 회수하지 못하여 발생하기도 한다. 때로는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만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다. 일반 사람이 아풍을 만나면 자유를 잃고 속박당하기도 한다. 맹자는 인생에서 만나는 우환의 태풍을 정신(mentality), 육체(health), 재정(finance) 세 가지로 정리하면서 반전의 한마디를 던진다. 어쩌면 인생에서 만나는 태풍 덕분에 더욱 생명력을 얻을 수 있고, 더 높은 단계의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환 없이 사는 인생이 반드시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논리다. ‘네가 만나는 근심과 고통이 너를 살릴 것이오(生於憂患, 생어우환), 네가 만나는 편안함과 즐거움이 너를 죽일 것이다(死於安樂, 사어안락).’ 그렇다 태풍은 인생에 틈을 만들고, 공기를 불어넣어 더욱 큰 생명 에너지 만들어낸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더욱 단단해진다. 폭풍이 몰고 온 바람은 대기를 순환시키고, 폭우가 내린 곳은 대지를 더욱 굳게 만든다. 태풍을 대비하고 겪어내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성장하고, 성숙하고, 성찰하게 된다. 인생의 태풍은 하늘이 인간을 더욱 크게 만들고자 하는 축복일 수 있다는 것이 맹자의 인생 태풍 이론이다. 사마천은 궁형(宮刑)이라는 예상치 못한 태풍을 만나 <사기(史記)>를 완성하였고, 베토벤은 귀가 안 들리는 태풍을 만나 악성(樂聖)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전쟁과 몇 번의 재정 위기를 견뎌내며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수 있었다. 태풍은 당장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지만, 견뎌만 낸다면 축복이 되고 전설이 된다. 오늘 대한민국은 각종 태풍들을 만나고 있다. 길거리 흉기 난동, 세계대회의 부실한 준비와 처리, 학부형들의 교권침해에 따른 교사들의 아픔 같은 사회적 태풍에서부터, 강대국들의 무역전쟁에 따른 여파, 북한의 군사적 긴장, 불확실한 세계경제 같은 대외적 태풍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루도 그냥 지나가는 날이 없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태풍도 형성, 발달, 극성, 소멸이라는 주기가 있다는 것이다. 작게는 5일, 길어야 10일이면 결국 태풍은 소멸된다. 인생에서 만나는 태풍도 역시 수명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지나간다. 문제는 태풍을 통해 더욱 강해지느냐, 아니면 태풍의 눈에 빠져 태풍과 함께 사라지느냐이다. 태풍 카눈이 몰고 온 빗물이 눈물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올여름에도 태풍을 기꺼이 만난다. / 박재희(인문학공부마을 석천학당 원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3.08.10 17:39

한여름의 책읽기

여름엔 바닷가나 숲속 휴양지에서 알베르 카뮈의 '결혼·여름',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 같은 책을 읽기에 좋다. 이 목록은 내가 젊은 날에 읽고 여름마다 되풀이해서 읽는 책이다. 범벅하게 말하자면 독서란 일탈, 해방, 몽상, 그리고 무위를 통해 누리는 한 조각의 행복이다.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는 '세 글자로 불리는 사람'에서 '책들은 고요해진 언어의 대양에서 일어나는 파도 같은 것이다. 책들은 포말처럼 솟구친다'(파스칼 키냐르, 74쪽)라고 쓴다. 도처에 흩어져 있는 독자들은 언어의 대양에서 일어나는 파도에 온몸을 맡기고 몽상의 바다를 떠도는 걸 좋아한다. 한여름 울어대는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나무 그늘 아래서 책 읽는 일이다. 내 경우는 그렇다. 나는 동물 사체에 맹금류들이 두 날개를 펼친 채 달려들어 맹렬하게 살을 찢고 삼키듯이 책을 읽어왔다. 조류가 제 발톱과 부리로 먹잇감을 물고 뜯으며 삼키는 일과 독서는 마치 쌍둥이처럼 닮았다. 우리는 맹금류가 동물 사체를 뜯고 삼켜서 영양분을 취하듯이 책에서 정신의 자양분과 타인의 욕망과 살아감의 기쁨을 얻는다. 잘 알다시피 책은 각종 문자로 이루어진다. 문자는 점토판, 피피루스, 양피지, 죽간, 종이 위에 제 형태를 드러낸다. 책은 각종 문자의 집합이고, 문자는 의미를 기호화한 것이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문자를 도약대 삼아 의미계로 솟구친다. 문맹인은 의미 없음에 방치된 채로 음지의 세계에 떠돈다. 반면 의미의 빛으로 넘치는 책을 손에 쥐고 읽는 자는 어둠에서 나와 빛의 세계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며 나아가는 셈이다. 독자란 잠들지 않고 깨어서 홀로 책을 읽는 사람들이다. 독서가들이란 대개 빛을 훔치는 밤의 도둑이거나 항상 깨어 있다는 뜻에서 밤의 야경꾼들이다. 밤은 낮을 훔치고, 새는 곡식의 낱알을 훔친다. 달은 발광체가 아니지만 태양의 빛을 훔쳐 은빛 반사광으로 지상을 물들인다. 책 읽기는 그 본질에서 무언가를 훔치는 행위다. 책을 읽는 자들은 지식을 훔치고, 타인의 욕망을 훔치며, 일찍이 제가 누리지 못한 꿈과 동경을 훔친다. 훔친다는 것은 타인의 벽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 들어가 제 존재를 숨긴 채 무언가를 '먹고, 삼키는'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애써 책을 읽을 이유가 없다. 독서 욕망은 제 밖의 세계를 내 안으로 들인다는 점에서 도둑질이고 탐식이다. 책 읽기는 한가로운 소일거리, 고독한 취향, 무한한 기쁨을 누리는 일을 넘어서서 탈취이자 폭식이며, 무용한 기쁨의 도취다. '인간은 기원과 본능의 영향권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문화, 포착, 함께-포착, 타인의 포식, 학습의 와중에서 태어난다. 그러므로 선재(先在)하는 세계를 훔쳐야만 한다'(파스칼 키냐르, 앞의 책, 61쪽). 온전한 사람이 되려면 아버지의 정신과 어머니가 주는 살 뿐만 아니라 다른 무엇도 필요한 법이다. 독서는 우리가 온전한 사람으로 빚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을 얻는 한 수단이다. 독서란 우리 보다 앞서 존재하는 세계에서 필요한 그 무언가를 훔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독서를 고요한 몰입의 행위라고 착각한다. 아니다. 책이 굶주린 자의 앞에 놓인 먹잇감인 한에서 독서란 책을 난폭하게 움켜잡고 책의 정수를 흡혈하는 행위다. 독서에 몰입한 자의 손과 입은 금세 피로 물 든다. 그들은 책을 찢고 삼킨 뒤에야 폭식의 충만감 속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다. 활짝 펼친 책을 본 적이 있는가? 잘 살펴보면 그것은 두 날개를 펼친 새와 같다. 누군가 읽고 있는 책은 양 날개를 펼친 채 공중을 나는 새다. 새들은 공중을 난다. 독서란 정신의 저공비행, 몰입의 현기증 속에서 나는 일, 상상의 비행(飛行)이다. 책에서 눈을 떼지 말고 그 문면을 따라가라! 마치 새가 어디론가 데려가듯이 책도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그런 뜻에서 독서는 항해이고, 여행이며, 모험이다. 책은 먼저 우리를 독서의 고독 속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러나 한 번은 살고 싶은 미지의 세계, 현실 저 너머 가상의 은신처로 데려간다! /장석주 시인

  • 오피니언
  • 기고
  • 2023.08.03 16:19

폭우 속에서

딸이 미취학 아동이었을 때니까, 어언 15년 전 일이다. 고만고만한 또래 아이들을 키우던 친구들이 뭉쳐서 모처럼 여름 여행을 떠났다. 숙소에서 꼬마들이 물놀이를 하는 동안 엄마들은 수박을 쪼개리라! 아이들이 첨벙거리며 놀 수 있는 야트막한 계곡이 있는 펜션을 예약하고 우리는 한 계절의 추억을 장만할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그날 물놀이를 하지 못했다. 폭우 뒤끝이라서 아이들이 첨벙거릴 예정이었던 야트막한 계곡은 지옥같은 굉음을 내는 폭포가 되어 있었다.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물놀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쉽사리 버리지 못했다. 우리는 그 계곡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오래 서성였다. 여름 내내 이 날을 기다렸는데! 비싼 돈을 주고 이 곳을 예약했는데! 바위에 앉아서 발을 담그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늘이 개어서 햇빛마저 슬쩍슬쩍 오가는데, 우리에게 설마 정말로 TV에서 보듯 무서운 일이 벌어질까? 돌이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할 만큼 위태로운 장면이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내가 계곡물에 살짝 발을 담그자마자 슬리퍼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사라졌다. 구명조끼를 챙겨입은 서너 명의 꼬마들을 돌려세운 것은 내가 슬리퍼 한짝을 희생시킨 다음이었다. 우리가 가진 가장 저렴한 것으로 일어날 뻔했던 비극을 틀어막았으니 우리는 그 날 행운의 돌봄을 받았다. 하지만 철없었던 나는 슬리퍼 한짝을 분실한 것마저도 꽤나 아깝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어리석다는 말조차 아까울 지경이었다. 이전까지 익숙했던 ‘집중호우’나 ‘호우경보’라는 표현을 넘어선 ‘극한호우’라는 표현을 처음 듣고 어리둥절했던 그 주에 나는 4개의 강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첫 강연 장소였던 서울 동작구로 향하면서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빨리 이해한 1인이 되었다. 폭우 속에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나는 정말로 산사태가 일어나지나 않을지 두려워했다. 그날 동작구에는 극한호우의 경보기준을 가뿐히 뛰어넘는 시간당 76.5mm의 집중호우가 내렸다. 본격 극한호우가 한반도를 강타했던 기간에, 나는 호우의 중심지였던 대전과 전북을 오가며 나머지 3개의 강연을 소화했다. 가족의 여름여행 삼아서 맛있는 것을 잔뜩 먹고 오자고 신나게 세웠던 모든 계획들을 떠올릴 틈도 없이, 엄청난 폭우로 눈앞이 보이지도 않았다. 한가롭게 강변 산책로에 서있었을 나무들은 싯누런 강물에 퐁당 잠겼고 저지대 통로의 통행을 제한해 교통혼란이 어마어마했다. 나는 바짝바짝 피가 마르는 기분으로,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연신 ‘늦을 것 같다’는 문자를 날렸다. 어딜 가나 물웅덩이와 손상된 도로와 교통통제와 앞유리창이 보이지 않는 폭우의 연속이었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골목마다 통행금지를 알리는 노란 가로대가 서있었고 차를 돌이킬 때마다 강연장소까지 도착 예정 시간은 큰 폭으로 푹푹 늘어났다. 폭우와 정체에 시달리는 도로에서 남편과 나는 다시 신혼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열정적으로 싸웠다. 남편은 이런 폭우 속에 무리하게 운전해서 가느니 조금 비가 멎을 때까지 휴게소나 식당에서 멈추어 기다리는게 낫겠다고 했고, 나는 정체된 장마전선 속에서 비가 멎을 리 없으니 지금 힘들더라도 달려서 비구름을 벗어나는게 낫겠다고 주장했다. 위험과 안전에 대한 여러 상식과 의견들이 있었으나 당장 우리 눈앞에 놓인 것은 ‘지금 저 길로 들어설 것인가’의 선택, 또 선택, 또다시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무엇이 옳은지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중에 아무도 없었다. 또다시 행운의 도움을 받아, 폭우가 내내 함께한 이틀 동안 마지막 강연에 10분 늦은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무사히 일정을 마쳤다. 그 10분의 지연도 청중들의 너그러움으로 넉넉히 이해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전히 앞창을 두드리는 극한 호우 속에서 비극을 알리는 뉴스를 들었다. 지난 3일간 우리를 돌려세운 수많은 노란 가로대들이 떠올랐고, 내가 행운이라 여겼던 많은 것들이 실은 많은 사람들의 묵묵한 보살핌이었음을 새삼 실감했다. 그 보살핌의 연결고리가 빠진 틈에 기어이 비극은 일어나고 말았다.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을 겪으신 유가족들에게 애통한 마음을 전한다. /심윤경 소설가

  • 오피니언
  • 기고
  • 2023.07.27 15:35

윤 대통령만 할 수 있는 일

내년 총선은 누가 승리할까? 국민의힘? 민주당? 아니면 제3당? ‘한 달이 1년’이라는 한국정치에서 7월 20일 현재 총선을 265일 남긴 시점에서 총선승부를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내년 총선결과를 예상한다면 세 가지다.국민의힘 승리 또는 민주당 승리 그리고 과반의석을 차지한 정당 없이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엇비슷한 수의 의석을 가진 경우다. 국민의힘 또는 민주당 승리는 한 정당이 국회 내 과반의석을 확보한 경우다. 물론 진행 중인 제3당 시도가 성공할 수도 있다.이 때 ‘성공’은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을 제외한 제3정당이 1당이 되거나 또는 독자적으로 과반의석을 가졌다는 게 아니다.만약 그렇다면 성공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한국정치의 혁명적 상황’이다.그만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제3당 입장에서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엇비슷한 수의 의석을 차지하고 제3당이 캐스팅 보트가 되는 경우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기대다.이조차도 거대양당의 원심력이 강력하게 작용하면서 동시에 제3당이 유권자 요구와 불만의 분출구 역할을 담당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국민의힘 또는 민주당의 총선승리다.먼저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민주당의 전국선거 3연패의 반전이다.총선승리의 민주당은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 승리를 향한 반(反)윤석열 행보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민주당 총선승리가 윤석열 정권의 국민적 심판이다. 윤석열 정권은 임기 내내 여소야대로 사실상 ‘식물정부’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이 때 대통령과 의회의 대립은 격화될 것이고 더 이상 대통령 권력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여당은 지방선거와 대선 그리고 다음 총선을 위해 독자행보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말이 좋아 독자행보지 대통령과 거리두기 또는 대통령 버리기다.여권은 각자도생의 시대다. 국민의힘이 승리한다면 전국선거 3연승으로 “정권교체는 완성된다.”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연승을 통한 중앙과 지방권력의 교체가 총선승리의 국회권력 교체로 완결된다. 국민의힘은 선거승리를 자신하는 모습이다.대통령 임기 3년차지만 취임기준으로 보면 임기 만 2년에 한 달 정도 모자라는 시점의 총선이라는 ‘정치적 운’도 따른다.최소한 투표참여가 높은 전통적 지지층의 결집으로 총선승리가 가능하다는 판단으로 보인다.민주당은 “카르텔과 반국가세력”에 점점 갇히고 이재명 체제의 총선이냐를 둘러싼 내부분열은 악화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국민의힘 총선승리는 한국정치의 진화를 가져올까? 여야대립은 협치로 바뀌고 정치는 국민 삶의 개선을 선도하는 본연 역할을 할까? 지금까지 우리가 겪은 여대야소 또한 극단적 여야대립의 다른 모습이었다.누가 먼저인지는 모르지만 거대야당은 야당을 무시하고 소수야당은 장외투쟁에 나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국민의힘 여대야소는 대통령 마음대로 여당 마음대로를 가능하게 할까? 우선 윤석열 권력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비정상’의 문재인 정부를 정상화시키는 것은 권력기대의 최소한’이다.총선에서는 정상화이후 어떤 어젠다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정치개혁부터 시작인데 진정성도 고민도 없어 보인다. 결국 총선 후 여소야대는 말할 것도 없고 여대야소에서도 여론의 지지와 (최소한의) 야당인정과 묵인은 필수적이다.여소야대든 여대야소든 ‘대립과 교착의 정치’에서 벗어나려는 윤석열 권력의 결단이 요구되는 대목이다.제도로 해결할 수 없는 정치의 영역이고 대통령만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정치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는 '인격화된 권력’을 넘어 국민 삶의 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민주화된 권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회 다수당의 총리 복수추천’을 총선공약으로 제시하는 게 출발이다. 기득권 포기와 공익과 공동체 우선, 총선승리의 단기적 비법이고, ‘대한민국 정치 업그레이드의 선도자,’ 퇴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지켜주는 장기적 안전판이 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만 할 수 있는 일이다! /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 오피니언
  • 기고
  • 2023.07.20 15:48

농단(壟斷)과 천장부(賤丈夫)

정보가 권력이다. 정보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정보는 돈이 되고 이익이 된다. 주식 시장에서 기업의 정확한 정보는 투자 성공이 되고, 부동산 시장에서 개발 정보는 곧바로 돈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보다 앞서 정보를 얻으려고 하고, 정보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힘을 이용한다. <손자병법>에서는 정보를 전쟁의 승패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정의한다. 병사를 모집하고, 훈련하고, 물자를 모아 전쟁 준비를 하는데 적의 정보를 모르면 결국 전쟁의 패배로 이어지니,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돈과 지위를 아끼지 말라고 강조한다. 용간(用間)은 정보원의 활용이다. 인적정보를 통해 확실한 정보를 얻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고급 정보는 일반 사람의 눈높이로는 절대로 알 수 없다. 일반 사람들의 시선과 다른 높은 곳에서 보아야 비로소 남들이 못 보는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높은 곳으로 오르려고 힘쓰는 것이다. 옛날 시장에서 고급 정보를 얻으려는 남자가 있었다. 어디에서 어떤 물건을 파는지를 정확히 알면 엄청난 이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옛날 시장은 현물거래였기 때문에, 시장에 물건을 거래하러 나온 사람들이 가지고 온 현물의 공급과 수요로 가격이 결정되었다. 쌀이 넘쳐나면 쌀 가격은 내려갔고, 직물이 모자라면 직물 가격이 올라갔다. 이런 정보를 알려면 높은 곳에서 시장 전체를 보아야 했다. 그래서 그 남자는 시장 전체를 볼 수 있는 언덕(壟, 농)에 올라갔다. 그 언덕은 깎아(斷, 단) 세운 듯 높은 곳이었다. 농단(壟斷)에 올라가니 시장 어느 곳에서 어떤 물건 얼마나 거래되는지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이 정보를 이용하여 싼 곳에서 물건을 사다가 비싼 곳에 가서 팔아 엄청난 이득을 얻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 남자를 천한 남자((賤丈夫, 천장부)라고 부르며 멸시하였다. 농단(壟斷)에 올라 부당이익을 얻었다는 이유였다. 농단도 재주라고 하면 재주다. 왜 너는 높은 언덕에 올라가서 시장 전체를 보고 정보를 얻을 생각을 하지 않냐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언덕은 아무나 올라가는 곳이 아니다. 힘이 있어야 하고, 부당 거래에 대해 옳다고 주장할 수 있는 뻔뻔함이 있어야 한다. 시장을 관리하는 감독관은 이런 농단의 폐해를 근절하고자 세금을 거두었다. 이득을 얻은 만큼 국가에서 세금으로 징수하여 이득을 못 본 사람에게 나누어주고자 함이었다. 시장에 대한 공권력의 첫 개입이다. <맹자>에 나오는 농단(壟斷)에 관한 이야기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농단을 통한 이윤 추구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정보를 이용해서 거래 이윤을 얻고, 선물거래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큰 죄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거대 기업이 가진 고급 정보와 거대 자본으로 중소기업의 이익을 빼앗아 가는 것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권력과 결탁한 농단이다. 국정이든 사법이든, 자리를 이용한 정보를 이용하여 이익을 추구한다면 응징과 처벌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고급 정보를 가진 공직자에게 주식이나 부동산 거래를 제한하는 것은 농단의 의혹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함이다. 높은 자리에서 얻은 정보를 통해 사적인 이익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두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고, 참외밭에서 신발 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애초부터 의심받을 상황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를 가진 국가의 공직자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이 높은 언덕에 올라 자신의 이익을 찾는 농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농단의 결과는 천한 사람이라는 칭호와 몰락이다. 비록 주머니에 돈은 가득 채웠지만 천민자본가라는 비난과 함께 비운의 결말을 맞이한다. 농단의 결말, 모두 알고 있지만 미리 알고 피하는 사람은 매우 드문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박재희(인문학공부마을 석천학당 원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3.07.13 15:26

쇠를 달구고 망치질 하며 노래하라

사람들은 원고료와 인세만으로 생계를 꾸리는 나를 가리켜 '전업작가'라고 한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책상 앞에 어깨를 구부리고 앉아 글을 쓰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인생의 3분의2를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쓰며 보내고 나니 알겠다. 제 고독과 마주하며 무언가를 쓰는 일은 보람도 없지 않지만 꽤나 건조한 작업이라는 것을! 작가의 일이란 '꿈, 낳기, 창작'이다. 그 일은 '우리를 통해 존재하고자 하는 것들'에게 몸을 주어 존재하게 한다. 현실에서 당장의 쓸모는 없을지라도 작가라는 직업을 갖고 사는 동안 가끔 몸을 쓰는 직업을 가졌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까, 하고 묻곤 했다. 국가재해보험국이란 직장에서 근무하며 퇴근한 뒤에는 자기 방에서 타자기로 소설을 썼던 카프카가 그랬듯이 나는 언젠가 '가구를 만드는 장인'이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종일 나무에서 나오는 향내를 맡으로 일하고 싶다는 꿈은 이룰 수가 없었다. 내 아버지의 직업은 목수였다. 그는 솜씨가 좋은 목수였지만 몸을 쓰는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크지 않았다. 현장에서 몸을 쓰며 땀 흘리는 일보다는 '책상에서 펜대를 굴리며' 살기를 갈망하던 아버지는 한 직장에서 진득하니 견디기보다는 여러 번 전직을 하며 옮겨 다녔다. 그렇게 옮겨 다녔건만 아버지는 만족감을 찾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실직으로 빈둥거리며 보낸 세월이 더 길었다. 일하지 않고 무위도식 하는 자는 무기력하고 비루해 보였다. 내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여러 사업을 구상하고 '허황한 일확천금'을 꿈꾸는 아버지의 속내를 이해하거나 용납할 수가 없었다. 이 세상이 온전하도록 떠받치는 것은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 꽃을 피우는 구근식물, 벌과 나비들, 땅에 뿌리를 박고 광합성 작용을 하는 나무들, 그리고 제 자리를 지키며 일하는 자들의 성실함이다.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대장간을 짓고, 쇠를 달구고 망치질 하며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평화롭게 굴러간다. 씨를 뿌리고 파종하는 농부들, 새벽 거리를 청소하는 환경미화 노동자들, 빵을 굽는 제빵사들,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 간호사와 의사들, 우편물을 분류하고 배달하는 우체국 직원들이 없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제 일터에서 헌신하는 노동자가 없다면 우리 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더 조악하고 누추해질 게 분명하다. '저기 언덕 꼭대기에 서서/소리치지 말라./물론 당신이 하는 말은/옳다, 너무 옳아서/그것을 말하는 자체가/소음이다./언덕 속으로 들어가라./그곳에 당신의 대장간을 지어라./그곳에 풀무를 세우고/그곳에서 쇠를 달구고/망치질 하며 노래하라./우리가 그 노래를 들을 것이다./그 노래를 듣고/당신이 어디 있는지 알 것이다'.(올라브 H. 하우게, '언덕 꼭대기에 서서 소리치지 말라')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이 공연히 언덕 꼭대기에 서서 소리치는 일이 되지 않기 위하여 애써야 한다. 그 외침이 의미의 생산이 아니라 소음을 만드는 공허한 짓인 탓이다. 나는 자주 묻는다. 내가 하는 일이 고슴도치나 양치식물이 세상에 기여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가? 한 줄의 시, 한 줄의 산문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 힘을 보태지 못한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무용한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인들이란 얼마나 하염없는 존재들인가! 시인 윤동주는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에 제 얼굴을 비춰 보고 그 욕됨에 부끄러워하며,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라고 다짐한다. 그런 싯구를 적는 청년은 외래의 피침으로 국권을 잃고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에서 야만의 시대를 견뎌야 했던 그 누구보다도 정직한 사람이었다. 생명을 가진 것들은 모두 빛의 격려 속에서 먹고 살기 위하여 일한다. 박새와 곤줄박이, 닭과 오리, 벌과 개미, 저 혼자 돋는 열무 싹과 민들레도 먹이를 구하며 생명의 동력을 얻는다. 우리가 하는 정직한 일들은 생계의 방편이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도정이며, 삶의 기쁨과 의미를 만드는 근간이다. 한 사람의 가치는 그가 하는 일에 대한 평판에서 나온다. 일하지 않는 자는 어떤 평판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시인은 쇠를 달구고 망치질 하며 노래하는 사람이 되라고 썼을 테다. /장석주 시인

  • 오피니언
  • 기고
  • 2023.07.06 17:01

100세 시대

어느 선거일에, 나는 투표소 앞 긴 줄 안에 서 있었다. 하루 종일 줄은 길었고, 코로나의 끝물이라서 아직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남들처럼 스마트폰의 도움을 받아 지루함을 이기며 서있었는데, 문득 투표 진행을 돕는 참관인이 도움을 청했다. “107세 유권자가 오셨습니다. 차례를 양보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 나 아닌 누구라도 이런 양보를 거절할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표정과 몸짓으로 기꺼움을 최대한 드러내보이며, 신성한 투표권을 행사하러 오신 107세 유권자를 기다렸다. 잠시 후 도착한 어르신을 보고 나는 내가 뻔하고 고루한 선입관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그분이 들것이나 휠체어의 도움을 받아 오실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분은 아주 세련된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누구의 부축도 받지 않았고 지팡이조차 짚지 않았다. 다소 천천히 걷기는 했지만 앞선 안내가 없었다면 나는 그분이 80대쯤 되셨으려니 짐작했을 것이다. 아니 아무런 짐작조차 하지 않고 그분에게 어떤 관심이나 주의조차 기울이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그분은 107이라는 깜짝 놀랄 숫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보이는 평범한 노인 중 하나일 뿐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인 1991년 6월, 나의 사랑하는 할머니가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는 87이라는 숫자가 지금의 107처럼 들렸다. 107세 유권자와 나의 할머니를 겹쳐 떠올리면서 나는 그 사이 사람의 수명과 노년의 활력수명이 함께 길어진 것을 실감했다. 누구나 칭송할만큼 장수하고 세상을 떠나신 나의 할머니는 107세 유권자처럼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운신에 어려움이 없었다. “오금이 붙으면 안뒤야.” 할머니가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바지런히 움직였다. 오금이 붙지 않기 위해서 할머니는 눈이오나 비가오나 약수터에서 물을 길어왔고 쑤시는 어깨를 풀기 위해 관절을 돌렸다. 지금 생각하니 손녀에게 어깨나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하셔도 좋았을 텐데,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몸을 누구에게 의탁하지 않았다. “움적거리면 뒤야.” 할머니는 속상한 일이 있어도 불평하거나 한탄하는 법이 없었다. 나쁜 일이 있어도 우울하고 어두운 표정을 한나절 이상 길게 가져가는 일도 없었다. 한숨 한번 쉬고 나서 몸을 움적거리는 것으로 할머니는 노년에 닥쳐오는 어려움을 모두 이겨냈다. 씩씩하게 약수터에 오르고 쑤시는 어깨를 혼자서 풀던 할머니는 단 하루도 몸져 눕지 않고 어느 날 잠자듯 세상을 떠나셨다. 조촐하게 욕심이 없던 할머니가 거두신 생의 마지막 승리는 그 고요하고 갑작스러운 떠나심이었다. 아직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지 않았던 어느 유월의 맑은 날에, 나와 부모님, 그리고 세분 고모들은 할머니의 산소에 성묘를 갔다. 사랑이 많으셨던 우리 할머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 할 수 있다. 산소로 향하는 야트막한 오솔길을 걸으며 나는 마음 속으로 덧셈을 해보았다. 큰고모 96세, 둘째고모 93세, 아버지 89세, 막내고모 84세, 엄마 82세. 할머니의 직계자손 4남매의 나이를 더하면 362, 엄마까지 더하면 444년이라는 놀라운 시간이 조용히 내 앞을 흘러가고 있었다. 큰고모가 가벼운 지팡이를 짚었을 뿐 모두 씩씩하게 잘 걸었다. 몇 년전 둘째고모는 허리를 다치며 보행이 어려워졌다. 고모가 열심히 재활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솔직히 속으로 비관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둘째고모는 끝내 회복해 지팡이 없이 꼿꼿하게 언덕길을 올랐다. 간이 의자 두 개를 챙겼는데 고모들이 계시니 아버지께는 순서가 돌아오지 않았다. 여기서 90세 이하는 모두 젊은이에 해당할 뿐이었다. 그늘에서 쉬시라고 해도 고모들은 좀 움직이는게 좋겠다며 꼬챙이를 들고 산소 주변의 잡초를 뽑았다. 이제는 당신보다 연세가 높아진 딸아들 들에게, 땅 속에서 할머니는 다시 한번 조용히 속삭이셨을지도 모른다. 오금이 붙으면 안뒤야, 움적거리면 뒤야. 그분의 자녀들은 최선을 다해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살았다. 각자에게 주어진 노년의 시간이 얼만큼이 될지 모르지만, 결국 내가 해야할 일은 그것으로 수렴될 것이다. 오금이 붙지 않게 바지런히 움직이고, 속상한 일들은 몸을 움적거려 날려보내면 된다. /심윤경 소설가

  • 오피니언
  • 기고
  • 2023.06.29 16:39

윤석열의 정치적 운(運)

아직은 모른다.유권자들은 좀 더 지켜보겠다는 뜻이다.시간도 충분하다.6월 22일 현재 293일 남은 2024년 총선여론의 흐름이다. 작년 12월부터 최근까지 ‘지원론 vs. 심판론’ 또는 ‘국민의힘 vs. 민주당 지지’의 여론조사는 모두 28개. ‘심판론 또는 민주당 지지’가 25승 1무 2패로 압도적으로 앞선다.‘국정 지원론 또는 국민의 힘 지지’는 평균 40.0%,‘정권 심판론(견제론) 또는 민주당 지지’는 평균 48.4%다. ‘국정 지원론 또는 국민의 힘 지지’의 여론은 최저 36%였는데 작년 12월 초와 4월 초였다.최고는 46%로 5월 말이었다.‘정권 심판론(견제론) 또는 민주당 지지’의 여론은 최저 43%로 5월 초였고 최고는 56.2%로 대통령 당선 1주년 때였다. 28개의 여론조사는 ‘지원론 vs. 심판론’ 또는 ‘국민의힘 vs. 민주당 지지’의 다양한 설문을 시간적 순서로 나열한 것이다.따라서 장점은 여론의 흐름을 볼 수 있는 것이고 단점은 서로 다른 설문의 조사를 동일한 것처럼 간주하는 위험성이다. 그래서 동일 또는 유사한 설문을 사용한 일정한 간격의 조사들을 본다.28개의 여론조사 중 9개가 여기에 해당하는데 그 중 하나는 5월 초부터 2주 간격으로 2회 조사했다.이에 따르면 5월 초순 ‘지원론 vs. 심판론은 44% vs. 43%’였다가 5월 하순 46%로 동률을 이룬다.가장 최근의 조사로 현재여론의 흐름을 반영한다. 일정 간격의 동일 또는 유사설문의 조사 9개 중 7개는 작년 12월부터 6월 초까지 걸쳐있다.이에 따르면 ‘국정 지원론’은 ‘36% 44% 42% 36% 37% 39% 그리고 37%’로 이어지고,‘정권 심판론’은 ‘49% 50% 44% 50% 49% 51% 그리고 49%’다.전제척으로 보면 28개 여론조사의 평균(40% vs. 48%)으로 수렴하는 양상이다. 28개의 여론조사 중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중도 또는 무당층의 선택이다.28개의 조사 중 27개가 이들을 따로 뽑아 분석했는데 중도 또는 무당층의 ‘지원론 또는 국민의힘 지지 vs. 심판론 또는 민주당 지지’의 여론은 평균 ‘33% vs. 54%’였다.‘지원론’은 최저17%를 기록하기도 했고 4월 초순이었던 이 때 ‘심판론’은 69%로 최고를 기록한다.27개의 조사 중 24번 ‘심판론’이 50%를 넘는다. 따라서 오늘 현재 내년 총선을 향한 민심은 첫째,오차범위 내외로 ‘심판론 또는 민주당 지지’의 여론이 상대적으로 높다.둘째,선거의 향방을 결정할 중도 또는 무당층은 ‘심판론 또는 민주당 지지’로 좀 더 기울어져 있다. 총선은 야권의 시간으로 시작한다.민주당은 ‘김은경 혁신위’를 시작했지만 “혁신위가 성공한 사례는 없다.”고 한다.많은 사람들이 갓 출범한 민주당 혁신위를 비대위로 가는 징검다리로 보는 이유다.친명도 비명도 그리고 반명의 향후 민주당의 총선체제를 향한 공통분모는 비대위다. 예를 들어 “김부겸 비대위”가 2016년 김종인 비대위처럼 “이해찬과 정청래 공천탈락”부터 시작한다면 ‘심판론 또는 민주당 지지’는 더 높아질 것이다.물론 그 출발은 ‘왜 5년 만에 40%대 지지율의 퇴임 대통령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내놨느냐?’에 대한 반성이고 이게 김은경 혁신위의 첫 과제다. 임기 만 2년의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을 향한 유권자의 심사는 복잡하다.‘제대로 일 할 기회를 줘야한다.’면서도 ‘권력의 오만과 독선은 막아야 한다.’는 필요가 교차한다.하는 걸 보면 마뜩치 않다는 게 지금의 여론이지만 ‘남은 임기를 생각하면 이렇게 둘 수도 없지 않냐’는 게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 지점이 바로 윤 대통령 정치적 행운(?)의 출발점이다.두 명의 대통령밖에 누리지 못한 ‘타이밍의 포르투나’다.임기 만 2년 안에 총선을 치룬 3명의 대통령 중 두 명이 압승했다. ‘진짜 실력의 비르투나’는 승부의 쐐기를 박는다.출발은 ‘총선이후 대통령 권력이 강화된 경우도 대통령의 친위세력이 대통령의 충성을 더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도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받아들이는 것이다.윤석열의 정치적 운,이제 마지막 시험대에 오른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 오피니언
  • 기고
  • 2023.06.22 16:08

명령 거부권, 군명유소불수(君命有所不受)

인사권자의 부당한 지시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단호하게 거부할 것인가? 부당한 지시나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용납한다면 그 결과는 참혹하다. 작게는 기업과 사회가 부패하고, 크게는 나라가 망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인사권자의 명령이라 하더라도 부당한 지시라면 과감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조직을 살리고, 미래의 더 높은 차원의 조직을 만드는 일이다. <손자병법>에는 전쟁터에 나간 장군이 부당한 지시를 내리는 군주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고 한다. 전방의 현장 상황도 모르고 후방에 앉아 측근들의 편협한 의견을 듣고 잘못된 명령을 내리는 군주에 대하여 현장의 장군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엄한 임금의 명령이라도(君命, 군명), 따르지 않을 경우가 있다(有所不受., 유소불수).’ 이순신 장군은 무모하게 돌격하라는 선조의 명령을 거부하고 스스로 어려운 길을 선택하였다. 나의 생존을 위해서 나라와 백성의 생명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는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군대가 전쟁에서 패하고, 나라가 망하는 이유는 후방 군주의 지나친 간섭과 부당한 지시가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기>에는 제(齊)나라 대장군 사마양저(司馬穰苴)가 왕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쟁터에 군대가 출정하던 날, 왕이 총애하는 신하 장고(張賈)라는 사람이 군율을 어기고 제멋대로 전횡을 일삼았다. 사마양저는 군율에 따라 참형을 명령하였다. 왕이 이 사실을 알고 사자를 보내 측근인 장고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였으나 양저는 아무리 지엄한 임금의 명령이라고 부당한 명령이라면 거부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장고의 목을 베었다. 그는 군율을 어긴 제나라 왕의 측근 장고의 죄를 물어 처형하면서 유명한 말을 남긴다. ‘장군은 전장에서 지엄한 임금의 명령이라도 거부할 수 있다. 임무를 맡아 전쟁터에 나선 장군이 잊어야 할 것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장군은 임명된 날에(將受命之日, 장수명지일) 자신의 집안일을 잊어버려야 한다(忘其家. 망기가). 둘째 전장에서 군법을 한 번 정하게 되면(臨軍約束. 임군약속) 그때부터 부모도 잊어버려야 한다(忘其親, 망기친). 셋째 전쟁터에서 북을 치며 적진을 향해 돌격할 때는(鼓之急, 고지급), 자신의 몸조차 잊어버려야 한다(忘其身).’ 사람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조국과 임무에 충성한다는 사마양저 장군의 철학이 담겨 있는 말이다.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부대를 이끌었던 양저는 병사들의 강한 지지를 얻게 되었고, 사기가 충천한 제나라 군대는 빼앗긴 영토를 회복하고 승리한 군대가 되어 제나라 수도로 돌아왔다. 윗사람의 부당한 지시는 거부할 수 있다는 철학은 머리로는 이해하기 쉬우나 실행에 옮기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직장에서 상사의 지시가 부당하다고 생각할 때, 과감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공권력에 대하여 부당한 권력의 행사에 반기를 드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친구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충고하면 친구와 이별을 맞이할 수 있고, 직장상사의 부당함을 거부하면 직장을 잃을 수도 있고, 부당한 권력에 대하여 저항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옳은 일에 대하여 자신의 자리와 목숨을 걸고 지켜 온 사람들에 의하여 더욱 발전하였으니, 내가 비록 어떤 이유로 옳은 길을 선택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자리를 걸고 옳은 길을 선택한 사람에 대하여 비난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부당함에 눈을 감고 침묵할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경우도 있고, 소신을 가지고 거부하며 저항해야 할 때도 있다. 어느 결정이든 다 이유가 있고, 논리가 있으니 어느 한 편에서 함부로 비난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때로는 목숨을 걸고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인생에서 후회할 일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박재희 (인문학공부마을 석천학당원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3.06.15 15:06

나는 뭔가를 찾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요

앵두나무에 박새 몇 마리가 포르르 날아와 앉고, 불두화는 꽃을 흐드러지게 피웠다. 오늘 아침 앵두나무 가지에 매달린 앵두는 붉게 익어가는 중이다. 새벽에 어린 고양이는 내 품에 안겨 아기처럼 가르랑거린다. 어린 고양이의 털에 코를 묻고 있으면 기분 좋은 햇빛 냄새가 난다. 나는 날마다 변화무쌍하게 달라지는 날씨 속에서 산다. 해가 떴다 지고, 어둠 속에서 달은 야위었다가 차오르기를 반복하고, 어린 고양이는 반드시 성체 고양이로 자라나는 그런 합법칙의 세계에서! 남해 물결은 섬과 섬 사이에서 잠잠하고, 항구마다 정박한 배들은 묶여 있다. 동해에는 돌고래와 귀신고래들이 새끼를 데리고 떼 지어 유영을 한다. 먼 데서 달려온 파도는 해변에 포말을 남기며 사라지고, 깨끗한 하늘엔 적멸보궁 같은 흰구름이 피어오르는데, 꿀벌들은 지상에서 날개를 붕붕거리며 꿀과 꽃가루를 채집하고, 복숭아나무 가지에서는 열매들이 최선을 다해 여문다. 지난가을 어머니가 담근 고추장에는 순한 단맛이 들고, 장을 가득 채운 항아리들은 반짝거린다. 간밤엔 별똥별 몇 개가 동에서 서로 횡선을 그으며 흘러가고, 올해 처음 목격한 반딧불이의 군무는 신기했다. 실내 등을 다 끄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초록빛 인광을 반짝이며 떠다니는 반딧불이를 자정 너머까지 보다 잠들었다. 새벽에 깨어나 책상머리에 앉아 몇 년 째 쓰던 책의 마지막 줄을 쓰고 마침표를 찍었다. 나를 누르던 압박감은 사라지고 미래에 대한 기대와 낙관은 이스트를 낳은 빵처럼 부푼다. 오늘 아침은 혈압은 높지도 낮지도 않고, 당뇨 수치는 정상이다. 연체료가 붙은 미납 세금고지서가 날아온 적은 없고, 두루마리 휴지도 몇 달은 쓸 만큼 넉넉하며, 오늘 외출할 때 신고 나갈 구두는 새 구두다. 주방에서는 딸아이가 콧노래를 부르며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텃밭에서 딴 토마토를 믹서기에 갈아 주스를 만드는 중이다. 지금보다 젊었던 시절 한때 노름에 빠진 적이 있다. 외적 우연에 판돈을 걸지만 내 예측은 번번이 빗나갔다. 푼돈을 털리고 분노와 허탈감을 안고 귀가하곤 했다. 시 한 줄 쓰지 못한 채 노름으로 허송세월하는 나 스스로가 한심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튿날 역으로 나가 기차를 타고 예정에 없던 여행을 떠났다. 일제 강점기 때 지은 건물들이 유적처럼 남은 남쪽의 항구도시였다. 그 도시에 지인은 없었다. 나는 며칠 동안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어느 날 숙박업소에 들어 불을 끄고 잠 들려는 순간 옆방에서 라디오라도 틀었을까, 빌리 조엘(Billy Joel)이 부르는 'The River of Drems'이라는 아름다운 노래가 들려왔다. 눈을 감은 채 가만히 노래를 듣다가, 아, 참 좋다, 라고 나는 감탄했다. 빌리 조엘은 밤중에 강가를 서성이며, 나는 뭔가를 찾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요, 라고 노래했다. 나 역시 낯선 고장에서 무얼 찾아 헤매는 것일까. 무언가가 내 생의 한 찰나를 흔들고 지나갔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아무도 아닙니다. 한 목소리가 내게 물음을 던지고, 나는 정직하게 대답을 했다. 이튿날 아침 나는 낯선 여관에서 나와 항구의 한 식당에서 조반을 먹고 돌아왔다. 내가 찾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인생의 진실이었을까? 하지만 나는 그게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 막막하던 시절에서 서른 해 쯤 흘렀다. 그리고 이 여름 아침에 나는 다시 빌리 조엘의 노래를 듣는다. 빌리 조엘은 여전히 난 뭔가를 찾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요, 라고 노래한다. 나는 찾으려던 인생의 진실을 찾았을까? 나는 젊음을 탕진하고 속절없이 나이를 먹으며 늙어간다. 세면대에서 물을 쓴 뒤에는 수도꼭지를 잘 잠그고, 밤하늘을 가린 지붕 아래서 일찍 잠자리에 든다. 나는 더 이상 사랑의 번뇌에 빠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직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인생의 진실은 무엇인지를 잘 모른 채 살아간다. 고작 이 여름날에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에 몇 마디 할 수 있을 뿐이다. 저녁답 마당귀에서 꽃망울을 터뜨린 작약꽃, 무릎에 올라와 가르랑거리는 어린 고양이, 다리미 열기가 남은 면 셔츠의 감촉, 얼음덩이 몇 개를 띄운 토마토주스, 그리고 빌리 조엘의 노래! 서른 해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왜 빌리 조엘의 노래를 들으면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걸까. /장석주 시인

  • 오피니언
  • 기고
  • 2023.06.08 15:35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