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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오늘 발표될 예정인 2005년 환경지속성지수(ESI) 평가결과 우리나라가 세계 146개 국가중 122위를 기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지난 2002년 발표된 EPI지수에서 142개 국가중 136위를 차지했던 것과 비교할때 다소 순위는 올랐지만 여전히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환경정책이 아직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WEF가 미국 예일대와 컬럼비아대학 연구소에 의뢰해 격년으로 조사 발표하는 ESI지수는 75개 요소를 근거로 산출한다. 75개 요소 가운데는 대기, 수질등 물리적 환경요인 외에 사회 정치적 환경등도 포함되기 때문에 122위라는 순위가 한국의 현재 환경수준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그러나 지난 20여년간 우리의 환경여건 변화를 살펴보면 ESI지수 개념대로 우리의 환경분야가 ‘지속 가능성’에서 지속적으로 멀어져 온것을 알 수 있다. 현재는 물론 미래의 환경개선 전망 역시 불투명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1980년 이후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환경여건 변화는 도시의 급속한 팽창이다. 도시인구는 지난 84년 전체의 73%에서 2001년 88%로 증가했다. 2001년말 현재 4천2백만명이 도시지역에 거주하고 있고 이 가운데 46%가 서울·경기등 수도권지역에 몰려있다. 반면 농촌인구는 1984년 1천80만명에서 2001년에는 580만명으로 20년도 못돼 절반정도인 5백만명이 줄었다. 급격한 도시화에 따라 에너지소비량 중대, 폐기물 과다발생, 대기오염 악화등 수많은 환경문제가 야기됐다.국내 에너지 소비량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지속가능성 악화의 대표적 적신호다. 이에따른 온실가스 배출량 증대와 개발허가 남발에서 비롯된 산림면적 축소등으로 한반도의 기온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세계평균 상승폭보다 더 크다는 것은 간과할 사안이 아니다.이같은 우리의 환경실태를 우리 정부가 아닌 국제기구에서 정확히 파악하고 우려해주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호나경부하(負荷)를 줄이려는 노력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다. 삶의 질을 높이고 건강한 환경을 후손에 물려주기 위해 정부는 물론 사회 구성원 각자의 노력과 반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문화재청은 광화문 현판을 바꾼다고 한다. 그런데 그 현판 글씨가 전 박정희 대통령이 쓴 글씨라 논란이 되고 있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글씨가 아니었다면 정치적으로 별다른 문제 제기가 없었을 것이다.광화문은 임진왜란 당시 불에 탔던 것을 대원군이 복원하면서 1865년 그 당시의 대서예가인 정학교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는 이 건물을 조선의 기운을 훼손하기 위해 동쪽으로 옮겨 버렸다. 이곳 현판은 6.25 때 광화문 문루와 함께 소실되었다.1968년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을 복원하면서 문루에 내건 현판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쓴 것이다. 이 현판을 조선 왕 중에서 가장 글씨를 잘 쓴 것으로 알려진 정조의 글씨로 새로운 현판을 만들어 오는 8월15일 교체하겠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문화재청은 현재 현판은 왕실 정궁인 경복궁의 공간 성격과 맞지 않고, 19세기 중건 때 만든 원래 한자 현판과 달리 글씨 방향도 거꾸로 되어 교체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전대통령 또는 그의 딸인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한글현판이 글자체도 강퍅하고 원래 현판인 한자원형을 무시한 것이고 순서도 한자와 거꾸로 되었다며 교체를 환영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많다. 한나라당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정치적 의도가 없는 것은 아닌지 또는 문화재청장이 현 노무현대통령에게 잘 보이려 의도도 있는지 모르겠다. 현 문화재청장이 노무현대통령을 만났고 그 때 정조의 이야기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합리적인 반대는 현재의 광화문이 경복궁 복원계획에 따라 헐리면 그 때 바꿔도 늦지 않는데 지금 바꿔서 정치적 논란만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정조가 광화문이라고 쓰지 않았는데 각각의 글자를 여기 저기에서 수집해 합친 것이 무리 아니냐는 주장이다.여러 의견들이 나름대로 타당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화유산을 복원하려면 원래에 가깝게 복원해야한다는 기본 원칙이 있다. 따라서 박정희 전대통령이 제대로 복원했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도 경복궁 복원계획에 따라 광화문을 새로 지을 때 교체했더라면 훨씬 자연스럽게 일이 처리되었을 것이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는 것이 좋겠지만 일 처리과정에 아쉬움이 남는다.
“얘야, 저 쪽 하늘에서 별이 움직이는데 저 별이 무슨 별이냐” “할아버지, 저것은 별이 아니라 인공위성이라는 거예요. 인간이 지구를 관측하기 위해 쏘아올린 인공위성이 지금 지구를 돌고 있는 겁니다” “에끼 이놈, 할아버지를 놀리긴…” 1960년대 초쯤, 어느 한적한 농촌 마당에 멍석을 깔고 저녁식사를 하던 할아버지와 손자가 움직이는 별을 보고 나누던 대화 한토막이다.좀 더 정확하게 짚어보면 첫 인공위성은 소련이 1957년 10월4일에, 두번째는 미국이 1958년 1월31일에 발사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신문이나 TV같은 대중매체를 구경하기도 힘든 시절이어서, 인공위성이 지구 궤도를 돌기 시작한지 몇 년이 흘렀어도 시골에서는 깜깜 무소식이었다. 이후 불과 40여년의 세월이 지난 요즘, 과학기술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여 인간은 문명의 이기 속에 푹빠져 살고 있다.인간은 마침내 산업화, 정보화, 지식화사회를 뛰어 넘어 유비쿼터스(ubiquitous) 혁명을 꿈꾸고 있다. 화장실문에 심어진 센서나 카메라를 통해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이상이 있으면 센서나 홈로봇이 직접 119를 부르거나 주치의에 연락하여 원격진료를 받고 구급약을 공급받는다. 또한 돼지고기에 컴퓨터 칩을 심어 이 칩이 스스로 전자레인지의 온도와 시간을 조절해 최적의 상태로 요리를 한다.꿈같은 이야기라고 콧방귀를 뀔지 모르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 앞에 펼쳐질 실제상황이다. 이미 골프공에 추적 칩을 단 레이더 골프공이 개발됐고, 쇼핑수레가 통과만 하면 계산 OK, 주인이 오면 문열어주는 차, 비가 오면 자동으로 창문이 개폐되는 집까지 등장했다. 라틴어에서 유래한 ‘언제 어디서나’’동시에 존재한다‘는 뜻의 유비쿼터스 기술은 이제 더이상 꿈의 기술이 아닌 것이다.하지만 사람이 살기 편해진다고 마냥 좋아만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문명의 이기는 인간이 그에 대해 완벽한 통제력을 가질 수 없을 뿐아니라, 야누스와 같은 두 얼굴을 갖고 있어 언제든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문명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빼앗아 가 인간을 획일화하고 수단화하기 때문에 ‘인간성 상실’을 몰고 온다. 그렇다고 모두 다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으로 딱하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대화하던 그 시절 쯤으로 돌아가면 어떨까.
설연휴가 다가온다.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가 연휴기간이다. 그런데 주 5일제 근무를 생각하고 월요일과 금요일 2일간을 휴가로 쓰면 9일간의 휴일을 만끽할 수 있다. 이런 정도의 연휴라면 세계 어디라도 다녀올 수 있다.아닌게 아니라 소득이 많아지고 생활형편이 좋아져서인지 해외여행이 봇물을 이루어 설날 연휴의 여행상품들이 모두 팔렸다는 소식이다. 지난해 해외여행과 유학, 의료서비스 등으로 해외로 흘러나간 돈이 무려 17조원에 달했는데 만약에 이 돈이 국내에서 회전되었다면 18만여명 실업자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해외여행 폭주를 비판할 것만은 아니지만 입맛이 씁쓸한 이야기다.가진자가 해외여행을 가겠다는데 뭐라고 말하랴마는 지금 우리나라 경제 사정이 말이 아니라는데 껄끄러움이 있다. 부총리가 설날 연휴기간에 해외여행을 자제토록 했지만 결국 헛소리만 늘어놓은 우스운 꼴이 되었다.해외여행은 커녕 설을 지내기도 힘든 서민들에게 자칫, 가진 자에 대한 질시와 반부자 정서가 만연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가진자와 부자들을 질투하기 보다는 부러워하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되어야 맞을거다. 또한 부자들 또한 부자다워야하고 사회분위기에 걸맞아야 한다.최근 미국 대통형 취임식에 무더기로 참가한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미국 대통령 얼굴도 안보이는 먼발치에 서서 덜덜 떨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지난 연말에 국회의원들이 무더기로 외유를 떠나더니 연초부터 너도나도 외국으로 다시 나가고 있다. 게다가 부인이나 자식들을 대동하고 국민의 혈세를 축내며 관광위주의 외유일정을 가졌다는 비난마저 일고 있다. 의원들의 잘못된 외유가 눈총을 받는 것은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니다. 저래가지고 무슨 새정치를 하겠다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보다 못한 한 국회의원이 자신들의 잘못된 외유관행을 없애기 위해 의원외교규정 개정안을 다시 낼 계획이다. 지난해 제출한 개정안에 대해서 국회가 묵묵무답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바로잡지 못하는 한심한 집단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미국 엘에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성조기이다. 물론 국가를 상징하는 국기가 어느 나라인들 없을까 보냐마는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 싶다. 국기를 게양해야 하는 기관인 관공서는 물론이고 일반 상점들에서도 성조기는 자주 볼수 있는 깃발이다. 신품 자동차를 수백 대 질열해 놓고 파는 자동차 판매상에서부터 조그만 음식점이나 가구점 등에도 성조기는 걸려 있다.이런 미국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깃발의 상징성을 떠올리게 된다. 깃발은 음악과 더불어서 선동성이 아주 강하다. 음악은 청각적인 자극을 통해서 군중의 마음을 움직인다. 소리의 특성상 공간적인 제약을 극복하지 못하는 수단이 음악이라면 깃발은 이러한 제약을 뛰어 넘는다. 먼 거리에서도 깃발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이런 깃발의 특성은 군중의 일체감을 끌어내는 아주 강력한 도구로 작용한다. 청마 유치환은 그의 시대에서 깃발을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 표현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깃발의 또 다른 특성은 단순성에 있다. 특정 색깔과 단순한 상징물만으로도 그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을 설득시키는 데는 논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다수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논리적 설득보다 강렬한 상징성이 훨씬 설득력을 강하게 갖는다.이런 의미에서 미국사회에서 즐겨 게양하는 국기의 의미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미국은 단일민족이 아니다. 문화적 배경이 각기 다른 민족들이 뭉쳐서 하나의 연합체를 형성한 나라에 속한다. 소비에트 연방으로 불리던 소련이 바로 그런 경우에 속한다. 이 소련은 결국 이 연합체를 유지하는 데 실패했고 러시아와 다른 여러 민족국가로 갈라져 나갔다. 그 러시아에서 국기를 그토록 열심히 내 건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결과론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미국과 소련의 차이 중 하나는 국기를 게양하는 모습이라고 할 만도 하다.어울리지 않게 큰 성조기를 내건 가구점을 바로 보면서 문득 영화 “깊고 푸른 밤”이 생각났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백호빈(안성기 분)은 제인(장미희 분)과 위장결혼을 하지만 이민국 직원에게 들통이 난다, 미리 연습해 둔 미국 국가를 열창하면서 이 위기를 모면해 나가는 장면은 성조기가 갖고 있는 상징성을 연상하게 한다.강한 부정은 긍정을 의미한다고 했던가. 미국인들이 국기에 집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는 않은가.
기초자치단체장은 정치인인가 행정가인가, 이에 대한 답을 딱 부러지게 하기는 곤란하다. 선거를 통해 당선될 때까지의 과정을 보면 정치인인데 당선후 수행해야 할 의무는 행정가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초자치단체장은 주민들로부터 위임받은 지방행정에 대해 정치적인 명운을 걸고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반은 정치인이요 반은 행정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기초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 문제가 늘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정당정치의 역사가 깊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단체장을 선출할 때 지방의원중에서 호선을 하거나 간접선거 방식을 택하기 때문에 직접선거를 실시하는 우리와 선거방식이 크게 다르다. 단순비교를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이웃 일본에서도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무소속후보의 단체장 당선률(2000년)이 무려 95%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에 정당공천이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지방자치제가 오래 전에 정착된 미국은 통일된 지방선거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주마다 주법에 따라 지방선거를 실시하고 있다. 78.8%는 정당공천을 배제하고 있고 21.2%는 정당참여를 허용하고 있다.기초자치단체장 정당공천문제가 또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정당공천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만약 공천을 배제하는 선심행정이 남발되고 정당이 할일이 없게 된다고 강변한다. 이에 반해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지역살림을 할 일꾼을 뽑는데 인물과 무관하게 정당에 의해 좌지우지되면 지방행정이 정치적도구로 전락하게 된다며 성토하고 있다.각자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서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정당공천찬성측의 논리는 궁색해 보인다. 지금 우리나라 정당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민주정당이 아니라 지역으로 나뉜 지역정당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그렇다.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정치풍토에서 정당공천을 계속 고집한다면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는 언제 꽃을 피우게 될지 막막하다.마침 임채정 열린우리당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기초단체장 공천제도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히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도 정당공천배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화답을 해 모처럼 정치권이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다. 이번에는 꼭 다수국민의 뜻으로 받들어주기를 바란다.
과학사(科學史)에서는 놀랄만한 연구업적이 발표되는 등 두드러진 해를 ‘기적의 해’로 부른다. 1905년이 바로 이런 해였다. ‘역대 최고의 물리학자’로 꼽히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1905년 스물여섯의 젊은 나이에 물리학사에 길이 남을 세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던 것이다.첫번째 논문은 빛이 파동인 동시에 여러 종류의 에너지를 가진 알맹이(광양자)로 이뤄졌다는 ‘광양자설’이다. 두번째는 물질분자의 존재를 증명하는 ‘브라운운동 이론’이다. 세번째가 E= 으로 집약되는 ‘특수 상대성이론’이다. 시간, 공간, 중력에 대한 기존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새로운 이론이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아무리 작은 질량(m)도 빛의 속도(C)의 제곱에 곱해지기 때문에 엄청난 에너지(E)로 전환될 수 있다. 원자력 에너지도 이 이론으로 설명이 된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은 물질과 과학의 차원을 떠나 인류문화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올해가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이 발표된지 꼭 1백년이 되는 해이다. 또한 지난 1955년 아인슈타인이 76세의 나이로 사망한지 5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UN은 ‘국제순응용물리연맹(IUPAP)의 요청으로 올해를 ‘세계 물리(物理)의 해’로 정했다. 각국은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늘 서울에서 ‘물리의 해’로 선포식을 개최하는 것을 시작으로 빛의 축제(4월 19일) 물리영재 선발(3월), 아인슈타인 전시회(7월 1일부터), 각종 학술회의 등 다양한 기념행사를 계획하고 있다.새삼 물리학이라는 순수과학의 대표적 분야가 일반대중의 관심을 끌게 됐다. 하지만 이같은 행사들이 자칫 반짝 이벤트로 그치지 않을까 우려되는 대목이 없지 않다. 현재 우리의 심각한 이공계 기피현상을 보면 이러한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공계 기피현상의 저변에는 과학기술 접근은 어렵기만 할 뿐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장래에 대한 보장을 담보받을 수 없다는 현실인식이 널리 깔려 있다.우수인력이 과학을 멀리하면 국가의 미래는 암울할 수 밖에 없다. 기술인력의 개발성과가 경쟁력 강화로 이어져 경제성장과 국가발전을 이룩하는 사이클이 제대로 굴러갈 수 없기 때문이다. ‘물리의 해’를 맞아 이공계 활성화를 위한 국가적인 특단의 대책과 사회적으로 과학기술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기대한다.
삼성전자의 브랜드 마케팅 전략에 전세계가 놀라고 있다. 영국 시사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4일자에서 "삼성은 첨단기술과 현명한 브랜드 마케팅이 결합하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보도했다.싸구려 가전제품 업체였던 삼성이 불과 10여 년 만에 디지털 융합시대를 주도하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4년 1년 동안에 무려 100억달러라는 이익을 거두어 세계 최고의 대기업으로 성장하였음을 보여주었다. 일본의 10대 전자 대기업들의 이익을 모두 합쳐도 그 반절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삼성전자의 성공은 놀랍다. 삼성의 쿨하고 미래지향적인 브랜드 전략이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물론 끊임없는 반도체개발과 기술융합 그리고 과감한 추진전략이 밑받침되어 가능한 일이었지만 브랜드전략이 없었으면 지금처럼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브랜드는 기업이 지닌 상표명, 분위기, 디자인 등을 총괄한 것이다. 브랜드는 상표, 기호, 디자인, 레터링 등의 브랜드 마크로 구체화되며 조직의 구성과 행동과 전략, 마케팅의 전략, 그리고 미래의 비젼과 전략에 스며들어 작동하게 된다. 즉, 브랜드란 단순히 브랜드 마크로 표현된 것뿐만 아니라 그 기업의 소프트한 모든 것들 나아가 하드한 모든 것들의 종합이라고 할 수 있다.우리가 보통 브랜드라고 하는 것은 브랜드명으로 상표이다. 상표는 넓은 브랜드가 집약적으로 표현된 이름이다. 제품에 브랜드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그것을 경쟁 상대의 제품과 명확히 구별하여 소비자가 쉽게 기억하고 소비자가 상표를 매개로 브랜드에 계속 집착하게 만들기 위한 전략이다. 좋은 브랜드는 소비자의 호의적인 감정을 그 상표와 쉽게 연계하여주며, 이를 통해 반복적으로 구매하고 호감을 지속적으로 갖게 해준다.사전에 확인할 수 없는 제품이나 장소에서 브랜드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브랜드이름만 보고 구매하거나 방문하여야하기 때문이다. 지역도 시대를 선도하는 브랜드전략을 세워 집행해야할 시기가 왔다. 삼성이 디지털 융합시대에 알맞게 여러 디지털 영역에서 깔끔한 디자인과 혁신적 제품을 효율적인 브랜드 전략으로 포장하여 성공을 거둔 것처럼 지역도 지역의 이미지와 제품과 산업을 고려한 효율적인 브랜드 전략을 통해 활성화시킬 수 있어야겠다.
중국산 꽃게와 복어에서 납과 쇠조각이 발견돼 국민들이 아연실색을 한 적이 있다. 나라의 체면이 걸려있는 국제 무역거래를 하면서 고기 중량 좀 늘려보자고 납이나 쇠를 고기뱃속에 집어넣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속이는 방법이 무식해서 그렇지 인체에 치명적인 약품을 쳐서 감쪽같이 속이는 것보다는 낫다. 상품의 때깔을 내거나 장기간 보관을 위해 농약이나 방부제를 과다사용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덜 지능적이라는 말이다.우리 식탁이 질 낮은 수입농산물의 ‘무차별 공세’에 노출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더구나 수입 농산물을 국산으로 속여 파는 상술이 갈수록 지능화·고도화돼가고 있어 소비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평소 수입농산물에 명절 때만은 차례상에 우리농산물을 올려놓으려고 잔뜩 신경을 쓴다. 그래서 명절이 가까워지면 신문지상에 어김없이 ‘우리농산물 고르는 법’이 기획취재로 실린다.“마른 고추는 꼭지가 붙어있고 몸통이 둥글어야 국산이고 꼭지가 없고 몸통이 납작하면 외국산이다. 마늘은 수염뿌리가 붙어있고 면이 각져있으면서 뾰족해야 국산이고 수염뿌리가 없고 면이 둥글둥글하면 외국산이다. 호두는 흔들어 소리가 나지 않아야 국산이고 잣은 씨눈이 붙어있지 않고 윤기가 있어야 국산이다. 또 조기는 머리에 다이아몬드 표시가 있고 배부분에 선명한 줄이 있어야 국산이고 쇠고기는 기름기가 촘촘히 배어있고 너무 붉은색을 띠지 않아야 한우다.”우리농산물 식별 요령을 읽고 또 읽어서 이 정도면 웬만큼 알겠다 싶어서 시장에 나가보면 도로 마찬가지다. 집에서 숙지한 식별 요령이 오락가락 하는데다 아무리 살펴봐도 국산이나 외국산이 엇비슷하다. 심지어 전문가가 이게 국산이고 저게 외국산이요라고 해도 헷갈리기는 매한가지다. 그나마 원산지 표시마저 없다면 영락없이 둘리고 말 것이다.그러나 어쩔 것인가. 외국산이 국산으로 둔갑하는 꼴 보기싫으니 외국농산물 수입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미 봇물은 터져 전국이 온통 수입농산물로 뒤덮여있는 것을. 한데 억울한 것은 외국농산물 수입덕분에 수출해서 돈많이 번 사람들은 어떻게든 우리농산물을 사먹고 외국농산물 때문에 다 죽게된 농민들은 외국농산물을 먹게 된다는 점이다.
중국 주나라때 왕족이었던 기자가 망명지에서 왕의 부름을 받고 도읍으로 가던 도중 은나라의 옛 도읍지를 지나게 되었는데, 번화하던 옛 모습은 간데 없고 궁궐터엔 보리와 기장만이 무성했다. 슬픈 감정이 든 기자는 시 한 수를 읊었다. '보리 이삭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벼와 기장도 윤기가 흐르는구나/ 교활한 저 철부지가/ 내 말을 듣지 않았음이 슬프구나' 망국의 설움을 읊는 맥수지탄이 나온 이야기다. 깊은 탄식을 표현하는 사자성어중 하나이다.기회를 놓치고 일이 지나간 뒤에 때늦은 탄식을 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로 우리가 잘 아는 만시지탄 또는 후시지탄이란 단어가 있다. 비슷한 말로 사람이 죽은 뒤에 약을 짓는다는 뜻의 사후약방문이나 죽은 뒤 청심환 찾는다는 사후청심환이란 말이 있다. 또한 양 잃고 우리를 고친다는 망양보뢰,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실우치구 등도 같은 뜻이다. 우리말 속담 '늦은 밥 먹고 파장간다', '단솥에 물붓기'도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다. 장이 끝난 뒤에 가 보았자 소용없고, 벌겋게 달아 있는 솥에 몇 방울의 물을 떨어뜨려 보았자 솥이 식을 리 없다는 말이다.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부모가 일찍 돌아가셔서 효도할 기회가 없음을 한탄하는 풍수지탄이란 말도 있다. 역시 기회를 놓친 탄식을 의미한다. 자기로 말미암아 남에게 해가 미치게 됨을 탄식을 유아지탄이라는 말이 있다. 또한 허벅지의 살이 찐 것을 보고 한탄한다는 뜻으로 비육지탄이 있는데 이는 이룩한 것도 없고 뜻을 펼치지도 못한 채 늙어가는 자신을 한탄하는 것이다.넓은 바다를 보고 감탄한다는 뜻의 망양지탄은 다른 사람의 원대함에 감탄하고, 나의 미흡함을 부끄러워한다는 뜻이다. 결국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할 때 내뱉는 탄식이다.최근 한일협정 문서가 일부 공개되면서 탄식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내용을 보아하니 울음 섞인 소리로 나라의 신세를 한탄할 수 밖에 없다. 넋두리라도 해야할 판이다. 한탄과 탄식의 충격에서 벗어나는데는 넋두리도 하나의 처방전이기 때문이다.
절집에 가면 부처님에게 공양을 드리거나 돌아가신 이의 명복을 비는 의식을 종종 볼 수 있다. 제를 지낼 살마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음식과 언행을 삼가며 부정을 멀리해야 한다는 뜻의 재계(齋戒), 죽 재(齋)를 지내는 것이다. 절집에서 지내는 재는 부처님 앞에 공양한다는 의미의 불공(佛供)을 말하는 것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이나 신령에게 음식을 바쳐 정성을 나타내는 의식인 제사(祭祀)와 다르다.재를 지낼 때는 잡념을 모두 털어버리고 정성을 다해 소원을 빌어야 한다. 행여 사심(邪心)이 들지 않도록 마음을 꽉 채워 일념으로 불공을 드려야 하는 것이다. 한데 불심(佛心)이 여간 깊지 않으면 정신을 한곳으로 모으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오랜 시간 염불을 해서 배는 출출한데 바로 코앞에 먹음직스런 음식이 놓여있으니 어찌 아니 신경을 쓰이겠는가.우리는 흔히 제 할일은 소홀히 하면서 엉뚱한 욕심만 부리는 염치없는 사람을 빗대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정신을 판다”고 비아냥댄다. 그러나 이 어느 경지에 이른 사람이 아니고서야 잿밥에 초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정도가 지나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자신의 본래 소임보다 본인에게 주어진 직책이나 권한을 이용하여 제 뱃속 채우기에 급급하다 비난을 받는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불교 조계종 교구본사 주지스님들이 최근 해인사에서 사찰의 크고 작은 행사 때 여비를 지급하던 관행을 끊겠다고 결의를 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날 결의는 통도사 주지인 현문 스님이 불필요한 행사경비를 줄요 뜻있는 일에 사용하고자 제안하여 이뤄졌다고 한다. 그동안 불교계에서는 다비식(화장식)과 진산식(취임식)은 물론 문중 큰스님의 생일과 기일 다례식에 참석한 손님 스님들에게 여비를 지급해왔는데, 근래에는 행사가 목적이 아니라 잿밥을 노린 객승(客僧)들이 부쩍 늘어 이같은 조치를 취하기에 이른 것이다.하지만 인심이 후하기로 정평이 난 절집에 잿밥이 사라진다니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구서이 허전해진다. 잿밥 좀 챙겨보겟다고 사찰행사 찾아다니는 객승들의 처지가 딱하게 됐다. 정작 잿밥이 없어져야 할 곳은 이 멀쩡한 사회인데 어쩌다가 절집에서부터 잿밥이 없어지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한다’는 말이 있다. 자신이 감당하기 버거운 대상을 두고 왈가왈부할 때 쓰이는 말이다. 기실 우리가 접하는 일상 중에서 이러한 비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하지만 만져 보려고조차 않는다면 코끼리의 실체는 더더욱 알기 어려울 것이다. 무관심과 일상적 태도로 코끼리를 만질 것이냐 아니면 지적인 호기심과 탐구정신으로 만져볼 것이냐의 차이만이 있다고 본다.낯선 곳을 찾아가다 보면 제일 힘든 것 중의 하나가 지리적인 문제다. 교통수단도 문제이지만 지명도 만만치 않은 문제거리가 된다. 이럴 때 지도 한 장은 소중하기 이를 데 없다. 이도 안되면 다음으로 좋은 방법이 전화번호부를 들추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화번호부에는 제일 앞장에 그 지역의 지도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이처럼 직접 발로 찾아 다니며 그 지역의 일상을 관찰하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여러 제약으로 그리 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제약 속에서 그 지역의 실정을 비교적 쉽게 그리고 거칠게나마 알아 볼 수 있는 방법은 신문 등의 대중매체에 실린 광고를 통해서이다.광고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인쇄 형태를 한 판매술’(제임스.E.케니디, 1849) 이라거나 ‘광고주의 이익에 따라 행동을 하게 하기위한 아이디어, 서어비스, 상품에 관한 정보의 전달’이라고 할 수 있다.이런 사전적 정의와 달리, 정보 취득자의 관점에서 광고를 보면 낯선 사회의 모습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19세기 말 독립신문 등의 광고를 통해서 그 사회상을 유추해 보는 것도 이러한 관점이라할 수 있다.미국 로스 엔젤리스에서 발행되는 한인 신문 등의 광고매체를 접하면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동산 관련 광고였고 건강식품에 관련된 광고 역시 인상적이었다. 이들 광고의 분량은 눈가늠으로 보아도 전체 광고 중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잇었다.국외자의 입장에서 부동산 광고는 우리 교민들의 경제적인 역량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그리고 건강식품에 관한 광고가 활발한 것은 당연히 건강에 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기도 한데 고국을 떠나온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읽을 수 있는 창이 아닌가 싶다. 이런 미주사회의 모습들을 보면서 이들 교민이 주류사회의 주역으로 서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
국내의 대표적 환경시민단체인 환경운동연합의 부설조직인 에쾡활협동조합이 호나경감시 대상인 기업들에 자기 제품을 판매한 것이 밝혀지면서 시민단체의 도덕성에 따가운 시선이 쏠리고 있다. 특히 제품을 구입한 기업 가운데 한 기업은 지난해 부안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 건설문제로 환경연합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고, 또 다른 기업 역시 광양만 오염문제로 공격을 받았던 포항제철이라는데 사안의 중대성이 있다. 에코생협은 지난 2년동안 개당 3만원 짜리 친(親)환경 손전등 1천개를 한수원에, 같은 제품 3백개를 포항제철에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파문이 확산되자 에코생협의 이사장인 최열대표가 책임을 지고 이사장직에서 사퇴했다.지난 2002년 4·13총선에서 ‘바꿔 열풍’을 일으키며 낙선운동을 주도하여 상당수의 대상자를 낙선시키면서 국민곁에 다가섰던 시민단체가 곧 이어 터진 ‘장원(長元) 성추문 사건’에 이은 또 다른 악재로 시민단체의 첫번째 덕목인 도덕성에 상처를 입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우리 사회 시민운동의 성격은 초기 반독재 기치를 내건 민주화운동이 대세를 이뤘었다. 그후 소비자운동과 환경운동을 비롯 경제정의 실현을 위한 사회운동과 공명선거 감시를 위한 정치참여등 그 활동폭을 넓혀왔다. 그 과정에서 양적(量的)성장을 이룩했으나 거대한 조직을 꾸려가고 활동하기 위한 재정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것이 사실이다.회원들의 회비로만으로 조직을 운영하기에 역부족이다 보니 일부는 정부나 기업등으로 부터 보조나 후원금을 받아 눈총을 받기도 했다. 이번 에코생협의 경우처럼 제품을 생산 판매한 것도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감시대상 기업에 제품을 파는 무리수까지 정당화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이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힘으로 우리사회를 밝고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시민운동은 지속돼야 한다. 아픔을 또 한단계 성숙시키는 전기로 삼아야 한다. 혹시 그동안 손쉽게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유혹에 넘어가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보아야한다. 비록 어려운 여건속에서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에 최선을 다할 때 국민들도 시민단체를 더욱 신뢰하고 힘을 보텔 것이다.
갈수록 초국적 투기자본의 폐해가 커지고 있다. 이들이 한국 기업들을 사냥하여 막대한 차익을 남기면서도 세금관련 조약 등을 이용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 뉴브리지 캐피탈은 제일은행을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에 팔았다. 미국계 투기자본인 뉴브리지캐피탈은 제일은행을 3억달러 미만을 투입하여 사서 5년만에 10억달러 이상의 이윤을 남겼다. 또한 한국에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는다.정부는 그동안 제일은행에 무려 17조6천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12조원을 회수하여 약 5조5천억원의 손실을 가져왔다. 국민의 혈세로 외국의 투기자본의 장사를 도와주는 꼴이 되었다.한미은행, 외환은행외에도 보험, 증권, 부동산, 기업, 주식 등 빠른 속도로 외국계 자본이 장악해가고 있다. 세계 경제의 흐름상 자본개방은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한국경제의 체질강화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대규모 잉여유출로만 이어지는 것 아닌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자본의 직접 투자는 자본확대, 고용기회확대, 선진기술도입, 선진경영기법도입, 통상마찰해소 등 한국경제에도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렇지만 투기자본이 판치면 한국자본시장을 교란하며 한국의 자본만 빨아가 한국의 경제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 외국자본이라 하더라도 기업과 자본의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외국자본이 종업원, 하청 중소기업, 한국경제에의 기여를 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다양한 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벨기에는 해외투기자본의 약탈적 잉여유출을 막기 위해 '스판세(Spahn Tax)'법을 도입하고 있다. 모든 외환거래에서 투기자본의 총거래액이 단기간에 미리 정해둔 환율 변동폭을 초과할 경우 그 자본거래의 80%를 징수하는 방식이다. 대규모의 국제 투기자본이 손쉽게 금융시장을 교란하는 것을 막을 목적이다. 장기적인 투자자금보다는 단기적인 투기자본에 부담을 주자는 취지다.초국적 투기자본들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세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심지어 미국조차도 이들의 공격에 경제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이미 한국은 말할 것도 없이 영국과 일본도 호된 홍역을 치른 적이 있다. 한국도 투기자본에 의한 약탈적 잉여유출을 막고 순기능을 하도록 하는 장치들을 고안해내야 한다.
겨울철에 하늘에서 펑펑 쏟아지는 눈(雪)은 대기 중의 구름으로부터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는 얼음의 결정이다. 눈의 모양은 내릴때의 기상조건에 따라 육각판·별·나뭇가지·육각기둥·바늘 모양 등 다양한 형태로 바뀌게 된다. 크기는 보통 0.1∼5㎜이며 큰 것은 10㎜가 넘는 것도 있다. 눈이 얼음의 결정이라고 하니까 일반 얼음과 혼동할 수도 있겠으나 눈은 수증기에서 직접 얼음으로 결정된다는 점이 다르다.눈은 겨울 풍경을 만들어 분위기나 잡게 하는 것쯤으로 가볍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인간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귀한 손님이다. 눈이 오지 않으면 무엇보다 수원이 고갈돼 자연생태계에 영향을 준다. 20㎝의 적설량이 1㎝의 강우량과 같다는 점을 생각하면 눈이 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눈 많은 해는 풍년들고, 비 많은 해는 흉년든다’는 속담이 괜히 생겼겠는가.눈은 우리 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어 그에 대한 기록도 많다. 신라 벌휴이사금 9년(192) 음력 4월 경도(京都)에 석 자의 눈이 내렸고, 신문왕 3년(683) 초여름에는 한 자의 눈이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또 고려 공민왕 12년(1363ㅁ0 음력 2월에도 석 자의 눈이 내린 적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모두 33차례의 눈재해가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특히 삼국시대에 13뢰나 겨울에 눈이 없었다는 무설(無雪) 기록이 남아있다는 것이 이채롭다.올해 유난히 전주지방에는 눈이 귀하다. 지난 10일 오후에야 첫 눈을 볼 수 있었으니 눈 기다리다 지친 시민들이 제법 많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주의 첫 눈은 빠르면 11월 초순, 늦어도 12월 중·하순을 넘기지 않았는데, 올해는 아마 첫 눈이 늦기로 근래 기록을 세우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적설량이라야 고작 3∼4㎝ 정도에 그쳤다가 하루만에 대부분 사라져버렸으니 오랜만에 겨울 정취에 젖어보려던 시민들 아쉬움이 클 것 같다.사실 눈은 내려서 쌓여있을 때까지가 아름답지 녹기 시작하면 추한 일면도 있다. 더구나 녹았던 눈이 얼어붙으면 교통사고의 위험이 높아지고 각종 안전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눈을 기다린다. 요즘처럼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살기가 어려울 때 더욱 그런 것 같다. 눈이 오면 온 세상이 똑같이 하얗게 되니까.
예절이란 인간관계에서 반드시 지켜야할 규범이며, 오랫동안 지켜져 오면서 관습화된 것이다.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도리라고 할 수 있다.인사는 그러한 예절중의 하나이다. 새해가 되면서 우리는 덕담인사를 많이 주고 받는다. 연초가 아니라도 만나는 이웃, 동료, 누구에게나 반갑게 그리고 마음이 담긴 인사를 해야 한다. 이 모든 고마운 이웃들 덕분에 사회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인사하는 것만 보아도 가문의 내력, 가정 교육, 그 사람의 품성까지 파악 할 수 있다. 정중하고 예의 바른 인사, 진심이 담긴 인사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강한 힘이 있다. 반가운 인사를 주고 받으면 마음까지 밝고 따뜻하게 되는 걸 느낄 수 있다.지역에 따라, 시대에 따라, 상대방에 따라 인사하는 예절이 상이하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무릎 밑까지 내려 절을 하였으며, 왕에게 경의를 표할 때는 무릎을 굽히거나 땅에 엎드렸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인사를 할 때 상대편의 지위나 중요성에 따라 세 가지 정도의 단계가 있었던 것 같다. 즉 최대의 경의를 표시할 때는 몸을 땅에 엎드렸고, 보통 경의를 표시할 경우는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하듯이 상반신을 굽히고, 간단한 인사는 단지 머리만을 수그렸다. 이슬람교도는 몸을 구부리고 오른손 바닥을 이마에 대는 절을 한다. 그 밖에 탈모하거나 악수로 하는 인사도 있으며 몸을 앞으로 구부리며 오른발을 뒤로 끌어당기는 우아한 궁정풍의 인사도 있다.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 하여 인사법도 시간, 상황에 따라 양식을 달리했고 단순한 인사마저도 정례, 거례, 목례, 묵례, 배례 등이 있다. 이중에서 우리가 인사한다고 할 때 일반적인 의미로 널리 쓰이는 것이 고개를 숙여서 인사하는 정례이다. 그러나 서구식 문물의 유입과 함께 남자의 경우 대부분 서구식 악수를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인사 예절은 아니지만 요즘 부도덕한 사람으로 인사를 잘못해서 나라안이 온통 시끄럽다. 지켜야할 인사 원칙이 깨지고 민심과 상반되는 인사가 행해지면 될 일도 안되는 것이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 황해도 출생으로 본관은 청도(淸道).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지리학자로 대동여지도(大動與地圖)를 집대성한 의지와 집념의 표상이다. 1804년에 출생하여 1866년에 ‘국가 기밀 누설죄’로 감옥에서 타계했다는 주장이 있으나 정확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그는 30여년의 각고 끝에 청구도(靑邱圖) 2첩(순조 34년)과 대동여지도 2첩(철종 12년)을 완성하여 마침내 완벽에 가까운 한국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것도 숫제 맨주먹으로.위성영상과 같은 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한 실측자료를 근거로 1백년 만에 오류를 바로잡은 정밀한 한반도 산맥지도가 나와 화제다. 정부 산하 국토연구원이 위성영상 처리와 지리정보시스템(GIS) 그리고 공간분석기법과 각종 실측자료를 활용하여 한반도 산악지형을 3차원으로 재현한 산맥지도를 완성한 것이다.새로 완성된 산맥지도를 보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기존의 산맥지도가 얼마나 엉터리였는가를 알 수 있다. 현행 지리교과서나 사회과부도에는 한반도에 모두 14개의 산맥체계가 형성돼있는 것으로 수록돼 있으나 국토연구원의 연구결과 우리나라에는 총 48개의 크고작은 산맥들이 형성돼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낭림산맥과 강남·적유령·묘향·차령·노령산맥 등은 아예 실재하지 않거나 방향과 위치가 터무니 없이 잘못된 사실도 드러났다. 이로써 지난 1903년 일본인 지질학자 고토분지로(小 文)가 제작하여 그동안 학계와 교육계 등에서 무비판적으로 사용해온 산맥지도는 휴지조각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한데 놀라운 것은 이번에 완성된 3D 산맥지도가 조선시대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의 산줄기 체계와 매우 흡사하다는 점이다. 국토연구원이 “대동여지도와 새 산맥지도는 구체적으로 백두대간 산줄기의 세세한 방향과 갈래는 물론, 개마고원 지역과 평안북도·전라남북도 지역의 산줄기들이 자로 잰듯 거의 일치한다”고 밝혔을 정도니 대동여지도의 역사적 가치가 새삼 돋보인다.요즘처럼 자동차나 등산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과학적인 조사장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수로 그렇게 정밀한 지도를 만들었는지 생각이 미치지 않는다. 전국 각지를 세번씩이나 답사를 하고 백두산을 여덟번씩이나 오르내린 그의 불굴의 정신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언어는 사회적 산물이다. 따라서 사회적인 배경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사회·문화적 배경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접경 지역에서의 언어는 어떤 모습일까.나제통문을 지나야 하는 무풍지역은 전라도와 충청도 그리고 경상도가 접한, 언어적으로도 경제지역으로 구분된다. 즉 전북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충청도와 경상도 말투가 섞여 있어서 그 정체성에서 결코 단순하지 않은 곳이 바로 무풍이다.그런데 그런 접경이 국내가 아니고 국외라면 어떤 모습일까. 그 중 대표적인 지역이 미국 로스엔젤레스인데 ‘서울시 나성구’라고 불릴 만큼 한국인들이 많이 산다. 이들은 미국땅에서 한국말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들 한국사람은 전적으로 한국말이 모국어라고 할 수 있는 이민 1세대와 한국말을 먼저 배웠지만 미국말을 하면서 사회생활을 하는 1.5세대 그리고 영어를 먼저 접하며 자라고 있는 이민 2세대로 나눌 수 있다.이들 이민세대 중에서 언어 문제로 갈등을 많이 겪는 이들은 1.5세대이다. 이들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지만 영어를 구사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미국적 사고방식 때문에 갈등을 겪게 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거칠게 묘사된 표현들에 대한 거부감이다.‘송송’썬다, ‘살짝’익힌다 등의 표현과 ‘데친다, 삶다’의 차이 등이 이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또한 ‘너무 센 불’도 아니고 ‘너무 약한 불도 아닌 불’로 하는 요리와 ‘무르게 익힌’요리를 안내하는 책자를 들고서 1.5세대는 어쩔줄 몰라 한다. 물론 이런 문제는 한국적인 정서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일 것이다.이런 한국적인 그 중에서도 전라도적인 정서를 가득 담은 표현이 바로 ‘거시기’이다. 영화 ‘황산벌’에서 “거시기할 때까지 머시기허자”는 대사는 이러한 정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하지만 한국어와 영어의 접경을 넘나들어야 하는 이들에게 그러한 표현은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 직장 등의 일상이 명료하고 투명한 성격을 갖는 이들 1.5세대가 용기를 내어 접하는 한국 관련 정보가 애매모호하다는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외국에 사는 한국인이 감동할 수 있어야 외국인이 한국을 가까이 하게 된다. 문화의 전령사인 이들 교민의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는 일제식민지로 수탈당하고 6·265전쟁 중에 황폐해진 산을 약 40년에 걸쳐 녹화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세계적으로도 국토는 녹화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국토녹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난방 및 취사용으로 쓰던 나무 땔감을 석탄이나 석유·가스 등으로 전환한 정부의 연료정책이 주효한 때문으로 볼 수 있다.우리의 산림면적은 남한만 따져 볼때 전체 면적의 65%인 6백43만㏊에 이른다. 이같은 숲이 1년동안 우리 국민에게 주는 공익적 가치는 50조원으로, 국민 1인당 1백60만원의 혜택을 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숲의 대표적 공익기능이라면 대기정화 및 수원(水源)함양 기능을 비롯 목재 등 임산물을 얻을 수 있는 점을 꼽을 수 잇따. 그러나 이같은 경제적 이득도 크지만 숲이 제공하는 정신 문화적 가치는 실로 엄청나다. 우리에게 정서적 안정과 휴식공간을 제공해주는 가치는 계량할 수가 없다.울창한 숲속에 들어가면 자연의 위엄을 새삼 실감한다. 아름드리 몸통은 하늘을 떠받들고 있고, 대지에 깊이 박힌 뿌리에서는 쉼없이 물을 퍼올린다.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드문드문 비치는 햇살은 흡사 어떤 계시처럼 신비감 조차 느끼게 한다.인간들은 이같은 숲을 생명과 풍요의 원천으로 믿었기 때문에 경배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프랑스의 수목학자이며 문필가인 ‘자크 부로스’는 그의 저서 ‘나무의 신화’에서 ‘나무들도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역설했다. 아직도 우리나라 일부 마을에서 당산 노거수(老巨樹)에 제(祭)를 올리고 정성껏 보호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보여진다.‘숲 해설’은 이러한 숲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한 작업이다. 숲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효율적인 탐방활동을 도와주는 것이다. 숲 해설은 1889년부터 미국 록키산맥에서 안내활동을 한 ‘에노스 밀스’가 창시자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일부 애호가들이 자체적으로 펼치던 ‘숲 해설’활동이 엊그제 국무회의에서 숲 해설가의 공인자격을 인증하는 법률안이 의결됨으로써 앞으로 숲과 관련된 각종 프로그램이 본격 개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주 5일근무제 및 웰빙 붐을 타고 숲을 찾는 사람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각종 개발로 수난받은 숲을 아끼고 보존하는 일이야 말로 잊고 지냈던 숲의 고마움을 다시 깨닫는 첫걸음이라 여겨진다.
우리는 하루에 수 없는 이미지, 정보, 소식을 듣는다. 너무 많아서 대충 흘려 버린다.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면, 귀에 들리거나 눈에 보여도 정신에는 접수하지 않는다. 이미 광고는 사실 보다 과장되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안 보거나 대충 본다. 정보가 너무 많다 보니까 이제 아무리 전달하려고 노력해도 정신에 도달하지 않는다.정보 사회의 역설은 정보가 너무 많아 대부분의 정보가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정보가 쓰레기가 되어 사라져버린다. 버리기 위해서 만들어내는 셈이다. 쓰레기가 되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지 않는다면 아무리 광고를 내보내도 쓸모가 없다.지역도 마찬가지 상황에 처해있다. 모든 지역이 사람들이나 기업의 관심을 끄는 데 커다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지만 너무 많고 비슷하다 보니 사람들이 별 관심이 없다. 역사가 있는 곳들은 대부분 예향이라고 하고, 서해안에 있으면 서해안 거점이라고 하고, 산골에 있으면 청정지역이라고 하고, 평야에 있으면 풍요로운 지역이라고 한다. 전라북도나 시군들도 거의 마찬가지이다.특히 전북의 장소마케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동계올림픽의 경우 강원도의 술수로 결국 평창으로 넘어갔고 이에 대해 전북도민이 억울해 하지만, 국민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이미지적으로 강원도가 전북보다 동계올림픽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원도로 결정된 과정의 문제점들에 관심이 없다.광주와 같은 호남이라는 하나의 장소로 인식되어 나타나는 문제도 있다. 광주가 이미 문화중심도시를 하는데, 전주도 왜 또 문화중심도시를 하느냐는 생각도 있다. 전남이 대체에너지에 적극 나서니까 전북이 이전부터 나섰더라도 같은 권역이니 한 곳에서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북은 농도고 아무래도 전통적인 곳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어 첨단에는 약할 것 같은 이미지가 있다. 알려진 기업이 부족하다가 보니까 기업하기에도 불편할 것 같은 이미지도 있다.머리 속에 있는 이미지를 바꾸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체계적인 노력을 하면 바꿀 수 있다. 그 것이 장소마케팅이다. 사실에 기반하여 전북에 가장 유리하면서 설득하기 좋은 것을 골라서 잘 정리해서 각인시켜야 한다. 전라북도도 보다 적극적으로 장소이미지 정립과 마케팅에 힘써야겠다.
새만금의 것은 새만금에게
전주문화재단 20년, 정체성·역할 재정립을
지방선거 본격 불법행위 신속 엄단 대응을
“시민의 일상이 관광이 되는 도시 전주”
단체장 경선이 중요한 이유
탑-승한
지속 가능한 토석 채취를 위한 방안
논란빚는 전주 경전철사업 포기
고전과 전통의 가치
전북은행장, 지역이해도 높은 내부 발탁을